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부록 안만지사십구칙어(安晩之第四十九則語)

태화당 2019. 8. 12. 09:05

無門老禪 作四十八則語 判斷古德公案 大似賣油餅人令買家開口接了更呑吐不得 然雖如是 安晩欲就渠熱爐熬上 再打一枚足成大衍之數 却仍前送似 未知老師從何處下牙 如一口喫得 放光動地 若猶未也連 見在四十八箇 都成熱沙去 速道速道

第四十九則語

經云 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安晩曰 法從何來 妙從何有 說時又作麽生 豈但豐干饒舌 元是釋迦多口 這老子造作妖怪 令千百代兒孫被葛藤纏倒 未得頭出 似這般奇特話靶 匙挑不上甑蒸不熟 有多少錯認底 傍人問云 畢竟作如何結斷 安晩合十指爪曰 止止不須說我法妙難思 却急去難思兩字上 打箇小圓相子 指示衆人 大藏五千卷 維摩不二門 總在裏許

頌曰 語火是燈 掉頭弗譍 惟賊識賊 一問卽承

淳祐丙午季夏初吉安晩居士書于西湖漁莊

老禪; 老禪師

安晩; 鄭淸之(一一七六~一二五一) 南宋大臣 初名燮 字德源 文叔 別號安晩 居住在青田 [百度百科]

大衍之數; 五十 周易正義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王弼曰 演天地之數 所賴者五十也 其用四十有九 則其一不用也 不用而用以之通 非數而數以之成 斯易之太極也 四十有九 數之極也

下牙; 與下口同 張開口吻準備喫

經云; 妙法蓮華經一 方便品云 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諸增上慢者 聞必不敬信

豐干饒舌; 豐干 唐代僧 饒舌 多言之貌 豐干 又作封干 善作詩 與寒山拾得竝稱國淸寺三隱 剪髮齊眉 穿布衣 身長七尺餘 初居天台山國淸寺 晝任舂米之職 夜則吟咏 言語無準 多似預記 人或借問 則只答以隨時二字 更無他語 嘗誦唱道歌 乘虎直入松門 衆僧驚懼 先天 (七一二~七一三)年間 行化於京兆(長安) 曾爲太守閭丘胤治病 按傳燈錄二十七 豐干滅後 閭丘胤因師謂寒拾二人文殊普賢故 入山訪之 見寒拾二人圍鑪語笑 閭丘不覺致拜 二人連聲咄叱 寺僧驚愕曰 大官何拜風狂漢耶 寒山復執閭丘手 笑而言曰 豐干饒舌 由是 叢林遂有豐干饒舌之語 [聯燈會要二十九 宋高僧傳十九 釋氏稽古略三]

多口; 多語 口 泛指言論言語

葛藤; 指文字言語 一如葛藤之蔓延交錯 又指公案中難以理解之語句 更轉義作問答工夫 玩弄無用之語句 稱爲閒葛藤 執著於文字言語 而不得眞義之禪 稱爲文字禪 或葛藤禪

話靶; 話柄 多指禪家公案 亦作話霸 話把

匙挑不上甑蒸不熟; 匙挑不上 謂其軟滑 甑蒸不熟 謂其生硬 形容禪機難以應對 難以承領

打箇; 打 動詞前綴 無實義 多表示人的動作行爲

圓相子; 子 後綴

大藏五千卷; 佛祖歷代通載十三 是歲(七二二) 沙門智昇 上釋敎經律論目錄凡二十卷 銓次大藏經典及聖賢論譔 凡五千四十八卷 自是遂爲定數

維摩不二門; 維摩詰所說經中 文殊師利曰 如我意者 於一切法無言無說 無示無識 離諸問答 是爲入不二法門 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 我等各自說已 仁者當說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時維摩詰默然無言 文殊師利歎曰 善哉善哉 乃至無有文字語言 是眞入不二法門

裏許; 內裏 裏邊 許 表示處所

初吉; 朔日 卽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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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노선(無門老禪)이 사십팔칙(四十八則)의 말씀을 지어 고덕(古德)의 공안(公案)을 판단(判斷)하였거니와 유병(油餅. 기름떡)을 파는 사람이 사는 이로 하여금 입을 열어 접촉하고는 다시 탄토(呑吐)를 얻지 못하게 함과 매우 흡사하다 하노라.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안만(安晩)이 그의 뜨거운 화로(火爐)의 볶은 음식 상에 다시 일매(一枚)를 만들어 족히 대연지수(大衍之數)를 이루고 도리어 전과 같이 보내어 주리니 노사(老師. 慧開)가 어느 곳으로부터 하아(下牙)할지 알지 못하겠노라. 한입에 먹을 것 같으면 방광동지(放光動地)하려니와 만약 오히려 잇지 못한다면 현재 사십팔개(四十八箇)가 모두 열사(熱沙)를 이룰 것이다.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제사십구칙어(第四十九則語)

경에 이르되(經云) 그치고 그쳐라,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나의 법은 묘()해 사량하기 어렵다(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안만(安晩)이 가로되 법()은 어디로부터 오며 묘()는 무엇을 좇아 있는가. 설할 때는 또 어떠한가. 어찌 다만 풍간만 요설(豐干饒舌)이리오 원래 이 석가(釋迦)다구(多口)로다. 이 노자(老子. 석가를 가리킴)가 요괴(妖怪)를 조작(造作)하여 천백대(千百代)의 아손(兒孫)으로 하여금 갈등(葛藤)에 전도(纏倒)됨을 입어 머리 내밀음을 얻지 못하게 하였다. 이런 종류의 기특한 화파(話靶) 같은 것은 숟가락을 올리려고 해도 올라가지 않고 시루로 찌려 해도 익지 않나니(匙挑不上甑蒸不熟) 착인(錯認)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옆 사람이 물어 이르되 필경 어떻게 결단(結斷)하는가 한다면 안만(安晩)이 열 손가락의 손톱을 합하고 가로되 그치고 그쳐라,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나의 법은 묘하여 사량(思量)하기 어렵다() 하리라. 다시 난사(難思)의 두 자 위로 급히 가서 작은 원상자(圓相子)를 만들고(打箇) 중인(衆人)에게 지시(指示)하되 대장오천권(大藏五千卷)유마불이문(維摩不二門)이 모두 이 속(裏許)에 있다 하리라.

송왈(頌曰) 불이 이 등()이라고 말하면/ 머리를 흔들며 응(. )하지 않으리니/ 오직 도적이라야 도적을 알아서/ 한 물음에 바로 승수(承受)하느니라.

순우병오(淳祐丙午. 1246) 계하(季夏) 초길(初吉)에 안만거사(安晩居士)가 서호(西湖)의 어장(漁莊)에서 쓰다.

노선(老禪); 노선사(老禪師)

안만(安晩); 정청지(鄭淸之. 1176~1251)니 남송(南宋)의 대신(大臣). 처음 이름은 섭()이었고 자()는 덕원(德源)ㆍ문숙(文叔)이며 별호(別號)가 안만(安晩). 청전(青田)에 거주하여 살았음. [百度百科].

대연지수(大衍之數); 오십(五十). 주역정의(周易正義) 대연지수오십(大衍之數五十)에 그 용()은 사십유구(四十有九. 四十九). 왕필(王弼)이 가로되 천지(天地)의 수()를 펴면() 의뢰(依賴)할 바의 것은 오십(五十)이다. 그 용()은 사십유구(四十有九)니 곧 그 하나()는 쓰지 않는다. ()이 아니면서 용()이니 이를 써 통하고 수()가 아니면서 수()니 이를 써 이룬다(). 이것이 역()의 태극(太極)이다. 사십유구(四十有九)는 수()의 극()이다.

하아(下牙); 하구(下口)와 같음. 입술을 열어 먹을 준비(準備)를 함.

경운(經云); 묘법연화경일(妙法蓮華經一) 방편품(方便品)에 이르되 그치고 그쳐라,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나의 법은 묘하여 사량하기 어렵고 모든 증상만자(增上慢者)가 들으면 반드시 경신(敬信)하지 않으리라(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諸增上慢者 聞必不敬信).

풍간요설(豐干饒舌); 풍간(豐干)은 당대(唐代)의 승려며 요설(饒舌)은 말이 많은 모양임. 풍간(豐干)은 또 봉간(封干)으로 지음. ()를 잘 지었고 한산(寒山)ㆍ습득(拾得)과 함께 국청사(國淸寺)의 삼은(三隱)으로 나란히 일컬음. 머리카락을 잘라 눈썹과 가지런하고 포의(布衣)를 걸쳤고 신장(身長)은 칠 척 가량이었음. 처음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거주하면서 낮에는 쌀을 빻는 직무를 맡고 밤에는 곧 음영(吟咏)했는데 언어가 표준(標準)이 없고 다분히 예기(預記. 預言)와 흡사했음. 사람이 혹 시험삼아 물으면 곧 다만 수시(隨時) 두 자로 답하고 다시 다른 말이 없었음. 일찍이 창도가(唱道歌)를 외우며 범을 타고 바로 송문(松門)에 들어오매 중승(衆僧)이 경구(驚懼)하기도 했음. 선천(先天. 712~713)년 간 경조(京兆. 長安)에서 행화(行化)하며 일찍이 태수(太守) 여구윤(閭丘胤)을 위해 병을 치료했음. 전등록이십칠(傳燈錄二十七)을 안험(按驗)하니 풍간(豐干)이 죽은 후 여구윤이, 스님이 이르기를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두 사람은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입산(入山)하여 방문했는데 한산과 습득 두 사람이 화로(火爐)에 둘러 앉아 어소(語笑)함을 보고 여구윤이 불각(不覺)에 절을 드리자 두 사람이 연성(連聲)으로 꾸짖는지라 사승(寺僧)이 경악(驚愕)하고 가로되 대관(大官)이 왜 풍광한(風狂漢. 미친 놈)에게 절을 하십니까. 한산이 다시 여구윤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해 가로되 풍간이 요설(饒舌)이로다. 이로부터 총림(叢林)에 드디어 풍간요설(豐干饒舌)이란 말이 있음. [聯燈會要二十九 宋高僧傳十九 釋氏稽古略三].

다구(多口); 말이 많음(多語). ()는 널리 언론(言論)ㆍ언어(言語)를 가리킴.

갈등(葛藤); 문자언어(文字言語)를 가리킴이니 갈등(葛藤)이 덩굴져 뻗어 서로 엉킴과 똑같음. 또 공안(公案) 중에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어구(語句)를 가리킴. 다시 전의(轉義)하여 문답공부(問答工夫)가 됨. 쓸데없는 어구(語句)를 완롱(玩弄)함을 한갈등(閒葛藤)이라고 호칭하며 문자언어(文字言語)에 집착하여 진의(眞義)를 얻지 못하는 선()을 문자선(文字禪) 혹은 갈등선(葛藤禪)이라고 호칭함.

화파(話靶. 는 자루 파); 화병(話柄. 얘깃거리). 다분히 선가(禪家)의 공안(公案)을 가리킴. 또한 화패(話霸)ㆍ화파(話把)로 지음.

시도불상 증증불숙(匙挑不上 甑蒸不熟); 숟가락을 올리려고 해도 올라가지 않음(匙挑不上)이란 그 연활(軟滑)를 말함이며 시루로 찌려 해도 익지 않음(甑蒸不熟)이란 그 생경(生硬)을 말함이니 선기(機難)가 응대(應對)하기 어렵고 승령(承領)하기 어려움을 형용(形容).

타개(打箇); ()는 동사(動詞)의 전철(前綴. 接頭辭)이며 실의(實義)가 없음. 다분히 사람의 동작행위(動作行爲)를 표시(表示).

원상자(圓相子); ()는 후철(後綴).

대장오천권(大藏五千卷); 불조역대통재십삼(佛祖歷代通載十三) 이 해(722) 사문(沙門) 지승(智昇)이 석교(釋敎)의 경률론목록(經律論目錄)을 진상(進上)했는데 무릇 이십권(二十卷)이며 대장경전(大藏經典)과 및 성현(聖賢)의 논찬(論譔)을 전차(銓次. 次序대로 편집하여 排列)한 것이며 무릇 오천사십팔권(五千四十八卷)이었으니 이로부터 드디어 정수(定數)가 되었다.

유마불이문(維摩不二門); 유마힐소설경중(維摩詰所說經中) 문수사리(文殊師利)가 가로되 예컨대() 나의 뜻이란 일체법에 무언무설(無言無說)하고 무시무식(無示無識)하며 모든 문답을 여읨이 이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 不二에 드는 법문)이 됩니다. 이에 문수사리가 유마힐(維摩詰)에게 묻되 우리들(我等)은 각자 설해 마쳤으니 인자(仁者)가 마땅히 설하십시오, 무엇 등이 이 보살의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입니까. 때에 유마힐이 묵연(默然)하며 말이 없었다. 문수사리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로다, 내지 문자어언(文字語言)이 있지 않음이 이 참다운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입니다.

이허(裏許); 내리(內裏). 이변(裏邊). ()는 처소를 표시(表示).

초길(初吉); 삭일(朔日)이니 곧 초하루(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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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板磨滅 故重命工鋟梓畢 這板置于武藏州兜率山廣園禪寺也

應永乙酉十月十三日 幹緣比丘 常牧

鋟梓; 刻板印刷 書板多用梓木 故稱

武藏州; 今日本東京都 崎玉和神奈川一帶

應永乙酉; 應永(一三九四~一四二七) 日本後小松時年號 應永乙酉卽西紀一四五年

比丘; 又作比邱 指出家得度 受具足戒之男子 新云苾芻 金剛般若經偈會本 比邱名含三義 一破惡 謂修戒定慧 能破見思煩惱惡故 二怖魔 謂魔王驚怖 恐出三界 損其黨故 三乞士 謂離四邪命 乞食資身 利檀那故 翻一遺二故存梵名


구판(舊板)이 마멸(磨滅)한지라 고로 다시 공인(工人)을 시켜 침재(鋟梓)해 마쳤고 이 판본(板本)무장주(武藏州) 도솔산(兜率山)의 광원선사(廣園禪寺)에 안치한다.

응영을유(應永乙酉) 시월 십삼일 간연(幹緣. 幹事) 비구(比丘) 상매(常牧).

침재(鋟梓); ()에 새겨 인쇄(印刷)함임. 서판(書板)은 많이 재목(梓木. 가래나무)을 썼으므로 고로 일컬음.

무장주(武藏州); 지금의 일본(日本) 동경도(東京都)의 기옥(崎玉)과 신나천(神奈川) 일대(一帶).

응영을유(應永乙酉); 응영(應永. 1394~1427) 일본(日本) 후소송(後小松) 때의 연호(年號). 응영을유(應永乙酉)는 곧 서기 1405.

비구(比丘); 또 비구(比邱)로 지음. 출가하여 득도(得度)하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를 가리킴. 신역(新譯)은 이르되 필추(苾芻). 금강반야경게회본(金剛般若經偈會本) 비구(比邱)의 이름은 삼의(三義)를 포함한다. () 파악(破惡) 이르자면 계정혜(戒定慧)를 닦아 능히 견사(見思)의 번뇌악(煩惱惡)을 깨뜨리는 연고이다. () 포마(怖魔) 이르자면 마왕(魔王)이 경포(驚怖)함이니 삼계(三界)를 벗어나 그의 당()을 손상(損傷)할까 두려워하는 연고이다. () 걸사(乞士) 이르자면 사사명(四邪命)을 여의고 걸식(乞食)하여 자신(資身)하며 단나(檀那)를 이롭게 하는 연고이다. 하나만 번역하면 둘을 잃는지라 고로 범명(梵名)을 존치(存置)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