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8칙 건봉일로(乾峯一路)

태화당 2019. 8. 12. 09:00

乾峯一路

乾峯和尙因僧問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未審路頭在甚麽處 峯拈起拄杖 劃一劃云 在者裏 後僧請益雲門 門拈起扇子云 扇子?跳 上三十三天 築著帝釋鼻孔 東海鯉魚打一棒 雨似盆傾

無門曰 一人向深深海底行 簸土揚塵 一人於高高山頂立 白浪滔天 把定放行各出一隻手 扶竪宗乘 大似兩箇馳子相撞著 世上應無直底人 正眼觀來 二大老總未識路頭在

頌曰 未擧步時先已到 未動舌時先說了 直饒著著在機先 更須知有向上竅

乾峯; 唐末曹洞宗僧 生卒年不詳 洞山良价法嗣 住於越州(浙江) 以乾峰一路之公案 與乾峰二光三病之法語 而知名禪林 [傳燈錄十七 聯燈會要二十三 五燈會元十三]

十方薄伽梵一路涅槃門; 此二句出楞嚴經五

薄伽梵; 佛陀十號之一 諸佛通號之一 又作婆伽婆 婆伽梵 此云有德 能破 世尊 尊貴 卽有德而爲世所尊重者之意 在印度用於有德之神或聖者之敬稱 具有自在 正義 離欲 吉祥 名稱 解脫等六義 在佛敎中則爲佛之尊稱 按佛地經論一 薄伽梵具有自在 熾盛 端嚴 名稱 吉祥 尊貴等六種意義 [大智度論二 淸淨道論七 大乘義章二十]

扇子; 卽扇 子 後綴

? ? 蹦也 又作踣跳 勃跳

三十三天; 忉利天也 此云三十三天 爲欲界之第二天 在須彌山頂上 中央爲帝釋天 四方各有八天 故合成三十三天也

築著; 築 刺也 著 助詞

帝釋; 忉利天之主也 居須彌山之頂喜見城 統領他之三十二天 梵名釋迦提桓因陀羅 略云釋提桓因 新譯之梵名 釋迦提婆因達羅 釋迦譯能 天帝之姓 提桓者天 因陀羅者帝 卽能天帝也 玄應音義三 拘翼 此言訛略也 姓憍尸迦 卽釋提桓因及帝釋同一位名也 三藏法數十一 梵語釋提桓因 華言能天主 言帝釋者 梵華兼擧也 祖庭事苑七 帝釋千名 或名鑠羯羅 或名補爛達羅 或名莫伽梵 或名婆颯縛 或名憍尸迦 或名舍芝夫 或名印達羅 或名千眼 或名三十三天尊 見大毘婆沙論(七十二)

把定放行; 把定和放行 是禪家不同方式或風格的機緣施設 把定謂截斷語路 使對方無可用心 是本分手段 放行則慈悲爲懷 施以言句敎說 是方便法門 也作放行把住

宗乘; 各宗所弘之宗義及敎典云宗乘 多爲禪門及淨土門標稱自家之語

馳子; 馳 車馬疾行 子 後綴 書 胤征 嗇夫馳 陸德明釋文 車馬曰馳 走步曰走

機先; 又作機前 原指事機之先兆 禪林中 形容一念未動 一言不發前之狀態

向上竅; 卽向上一竅 與向上一著 向上一路同義 指言絶意斷之正眞大道 是千聖不傳之妙道 乃釋迦所不說 達摩所不傳底

 

건봉일로(乾峯一路)

건봉화상(乾峯和尙), 중이 묻되 시방(十方)박가범(薄伽梵)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이라 하니 미심(未審)합니다, 노두(路頭)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함으로 인해 건봉이 주장자를 들어 일으켜 일획(一劃)을 긋고 이르되 이 속에 있다. 뒤에 중이 운문(雲門)에게 청익(請益)하자 운문이 부채(扇子)를 잡아 일으키고 이르되 부채가 펄쩍 뛰어(?跳)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올라가 제석(帝釋)의 콧구멍을 찌르고(築著) 동해(東海)의 잉어(鯉魚)를 한 방() 때리니 비가 옴이 동이()를 기울인 것과 같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한 사람은 깊고 깊은 해저(海底)로 향해 가니 흙을 까부르고 티끌을 날리며 한 사람은 높고 높은 산정(山頂)에 서니 흰 물결이 하늘에 넘실거린다. 파정방행(把定放行)하면서 각기 한 짝의 손을 내어 종승(宗乘)을 부축해 세웠거니와 두 개의 타자(馳子)가 서로 부닥친 것과 매우 흡사하여 세상에 응당 바른 사람이 없다 하노라. 정안(正眼)으로 바라보매 이대로(二大老. 二大老漢)가 모두 노두(路頭)를 알지 못한다 하노라.

송왈(頌曰) 걸음을 들기 전에 먼저 이미 이르렀고/ 혀를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설했도다/ 직요(直饒. 가령. 卽使) 착착(著著) 기선(機先)에 있더라도/ 다시 꼭 향상규(向上竅)가 있음을 알아야 하리라.

건봉(乾峯); 당말(唐末)의 조동종 승려며 생졸년(生卒年)은 불상(不詳)이며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法嗣). 월주(越州. 浙江)에 거주했는데 건봉일로(乾峰一路)의 공안(公案)과 건봉의 이광삼병(二光三病)의 법어(法語)로써 선림(禪林)에 이름이 알려졌음. [傳燈錄十七 聯燈會要二十三 五燈會元十三].

시방박가범 일로열반문(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이 이구(二句)는 릉엄경오(楞嚴經五)에 나옴.

박가범(薄伽梵. Bhagavad); 불타십호(佛陀十號)의 하나, 제불의 통호(通號. 통칭)의 하나. 또 바가바(婆伽婆)ㆍ바가범(婆伽梵)으로 짓나니 여기에선 이르되 유덕(有德)ㆍ능파(能破)ㆍ세존(世尊)ㆍ존귀(尊貴). 즉 유덕(有德)하여 세상에서 존중(尊重)하는 바가 됨의 뜻. 인도에 있어선 유덕한 신, 혹은 성자(聖者)의 경칭(敬稱)에 사용됨. 자재(自在)ㆍ정의(正義)ㆍ이욕(離欲)ㆍ길상(吉祥)ㆍ명칭(名稱)ㆍ해탈(解脫) 등의 여섯 뜻을 갖추어 있음. 불교 중에 있어선 곧 부처의 존칭이 됨. 불지경론일(佛地經論一)을 안험(按驗)컨대 박가범(薄伽梵)은 자재(自在)ㆍ치성(熾盛)ㆍ단엄(端嚴)ㆍ명칭(名稱)ㆍ길상(吉祥)ㆍ존귀(尊貴) 등의 여섯 가지 의의(意義)를 갖추고 있음. [大智度論二 淸淨道論七 大乘義章二十].

선자(扇子); 곧 부채(). ()는 후철(後綴. 接尾辭).

발도(?跳); (?) (. 뛸 붕). 또 부도(踣跳. 는 넘어질 부)ㆍ발도(勃跳. 은 우쩍 일어날 발)로 지음.

삼십삼천(三十三天); 도리천(忉利天)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삼십삼천(三十三天). 욕계(欲界)의 제이천(第二天)이며 수미산(須彌山)의 정상(頂上)에 있음. 중앙이 제석천(帝釋天)이 되며 사방에 각기 팔천(八天)이 있는지라 고로 합하면 삼십삼천(三十三天)을 이룸.

축착(築著); ()은 찌름()이며 착()은 조사(助詞).

제석(帝釋); 도리천(忉利天)의 주인임. 수미산 꼭대기의 희견성(喜見城)에 거처하며 저 삼십이천(三十二天)을 통령(統領). 범어의 이름이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며 간략히 일러 석제환인(釋提桓因). 신역(新譯)의 범어 이름은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석가(釋迦)는 번역하면 능()이며 천제(天帝)의 성()이며 제환(提桓)이란 것은 천()이며 인다라(因陀羅)란 것은 제()니 곧 능천제(能天帝). 현응음의삼(玄應音義三). 구익(拘翼) 이 말은 그르고 생략되었음. ()이 교시가(憍尸迦)니 곧 석제환인(釋提桓因) 및 제석(帝釋)과 동일한 지위의 이름임. 삼장법수십일(三藏法數十一). 범어로 석제환인(釋提桓因)은 화언(華言)으론 능천주(能天主). 제석(帝釋)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화(梵華)를 겸해서 든 것임. 조정사원칠(祖庭事苑七). 제석천명(帝釋千名) 혹은 이름이 삭갈라(鑠羯羅)며 혹은 이름이 보란달라(補爛達羅)며 혹은 이름이 막가범(莫伽梵)이며 혹은 이름이 바삽바(婆颯縛)며 혹은 이름이 교시가(憍尸迦)며 혹은 이름이 사지부(舍芝夫)며 혹은 이름이 인달라(印達羅)며 혹은 이름이 천안(千眼)이며 혹은 이름이 삼십삼천존(三十三天尊).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卷七十二)을 보라.

파정방행(把定放行); 파정(把定)과 방행(放行)은 이 선가(禪家)의 같지 아니한 방식(方式)이나 혹은 풍격(風格)의 기연시설(機緣施設). 파정(把定)은 이르자면 어로(語路)를 절단(截斷)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가히 용심(用心)함이 없게 함이니 이는 본분수단(本分手段). 방행(放行)은 곧 자비(慈悲)를 품고서 언구(言句)의 교설(敎說)을 베푸는 것이니 이는 방편법문(方便法門). 또 방행파주(放行把住)로 지음.

종승(宗乘); 각종(各宗)에서 홍포(弘布)하는 바의 종의(宗義)와 및 교전(敎典)을 종승(宗乘)이라고 말함. 다분히 선문(禪門)과 및 정토문(淨土門)에서 자가(自家)의 말을 표칭(標稱)함임.

치자(馳子); () 거마(車馬)가 급히 달림임. () 후철(後綴. 接尾辭). () 윤정(胤征) 색부(嗇夫. 벼슬 이름이니 主幣之官)가 치()하다. 육덕명(陸德明)의 석문(釋文) 거마(車馬)를 가로되 치()며 걸음을 달림(走步)을 가로되 주().

기선(機先); 또 기전(機前)으로 지음. 원래(原來)는 사기(事機)의 선조(先兆)를 가리키지만 선림(禪林) 중에선 일념(一念)이 움직이기 전, 일언(一言)을 발()하기 전의 상태(狀態)를 형용(形容).

향상규(向上竅); 곧 향상일규(向上一竅. 는 구멍 규)니 향상일착(向上一著)ㆍ향상일로(向上一路)와 같은 뜻임. 말이 끊기고 뜻이 끊어진 정진(正眞)의 대도(大道)를 가리킴. 이것은 천성(千聖)이라도 전하지 못하는 묘도(妙道)니 곧 석가(釋迦)도 설하지 못하는 것이며 달마(達摩)도 전하지 못하는 바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