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력(定慧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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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임종담소거(高僧臨終談笑去)
개유정혜력치지(蓋繇定慧力致之)
염념정혜종불란(念念定慧終不亂)
염념산란안득지(念念散亂安得之)
좌서수불극치사(坐逝雖不極致事)
수기임종망사지(誰冀臨終忙四肢)
아불호선불습좌(我不好禪不習坐)
부득불사좌착이(不得不使坐著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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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高僧)이 임종에 담소하면서 떠남은
대개 정혜력(定慧力)을 말미암아 그것에 이르나니
생각생각 정혜(定慧)면 임종에도 산란(散亂)하지 않지만
생각생각 산란하면 어찌 그것을 얻으리오.
좌서(坐逝)가 비록 극치(極致)의 일은 아니지만
누가 임종에 사지(四肢)가 바쁨을 바라리오
나는 선(禪)을 좋아하지 않고 좌선도 익히지 않지만
너를 앉게 하지 않음을 얻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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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행 한 절에 이르니 긴 대가 추녀 끝에 가득하고 풍물(風物)이 곱고 아름다웠다. 구양수(歐陽修)가 전내(殿內)에서 쉬는데 곁에 어떤 노승이 경을 열람하면서 자약(自若)한지라 수(修)가 묻되 무슨 경을 욉니까. 가로되 법화경이니라. 수가 가로되 옛적의 고승(高僧)들이 사생(死生)의 즈음에 임하여 많이들 다 담소하면서 탈거(脫去)함은 무슨 도(道)로 그에 이름입니까. 가로되 정혜력(定慧力)일 뿐이니라. 또 묻되 요즈음은 왜 적료(寂寥)하여 있지 않습니까. 가로되 고인(古人)은 생각생각 정혜(定慧)거늘 임종에 어찌 산란(散亂)을 얻으리오만 금인(今人)은 생각생각 산란하거늘 임종에 어찌 정혜를 얻으리오. 수가 크게 탄복(嘆服)했다. (中略) 이에 주육(酒肉)을 버리고 성색(聲色)을 철제(徹除. 徹은 除의 뜻)하고 회심(灰心. 마음을 재처럼 함)하고 묵좌(默坐)했다. 노병(老兵)을 시켜 가까운 절에서 화엄경을 빌려 읽다가 팔권(八卷)에 이르자 이에 안좌(安坐)하여 서거(逝去)했다 [居士分燈錄卷下 歐陽修章]. 유(繇)는 말미암을 유. 치(致)는 이를(至) 치. 불러올 치. 지(之)는 대사(代詞)니 그 지. 이 지. 기(冀)는 바랄 기. 이(尒)는 이(爾)와 같음. 너 이, 저 이, 이 이니 이 글에선 망상번뇌(妄想煩惱)를 가리킴.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이르되 묘보리좌(妙菩提座)는 수승(殊勝)한 장엄(莊嚴)이니 제불이 앉자 말자 정각을 이루셨다 (妙菩提座勝莊嚴 諸佛坐已成正覺) 했는데 선사(先師)가 이르되 이 구절에서 좌(坐)란 망상번뇌(妄想煩惱)를 앉힘이지 몸뚱이를 앉힘이 아니라 했음. 설간(薛簡)이 가로되 경성(京城)의 선덕(禪德)이 다 이르되 도를 앎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좌선(坐禪)하고 습정(習定)해야 하나니 만약 선정(禪定)을 인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 자는 있지 않다 하거니와 미심(未審)합니다 스님의 설하는 바 법은 어떻습니까. 조사(祖師. 六祖慧能)가 가로되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치거늘 어찌 앉음에 있으리오. 경(經. 金剛經)에 이르되 만약 여래가 앉거나 누움을 본다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함이니 무슨 연고냐 좇아온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다 했느니라. 만약 생멸(生滅)이 없으면 이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며 제법(諸法)이 공적(空寂)하면 이 여래청정좌(如來淸淨坐)니라. 구경(究竟)엔 증(證)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앉음이겠는가 [五燈全書卷二 慧能章].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나의 설한 바 뜻을 알지 못함이니 무슨 까닭인 연고냐 여래란 것은 좇아오는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는지라 고로 이름이 여래니라 (若有人言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 是人不解我所說義 何以故 如來者無所從來亦無所去 故名如來) [金剛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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