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요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태화당 2026. 9. 24. 09:32

示衆

 

拈拄杖召大衆云 還見麽 人人眼裏有睛 不是瞎漢 決定是見 以拄杖卓一下云 還聞麽 箇箇皮下有血 不是死漢 決定是聞 旣見旣聞 是箇甚麽 以拄杖[○@─] 見聞卽且止 只如六根未具之前 聲色未彰之際 未聞之聞 未見之見 正恁麽時 畢竟以何爲驗 以拄杖 [○@│] 吾今與汝保任斯事 終不虗也 以拄杖 [○@□] 三十年後 切忌妄通消息 靠拄杖下座

 

시중(示衆)

 

주장(拄杖)을 집어 대중을 부르고 이르되 도리어 보느냐, 인인(人人)의 안리(眼裏)에 눈동자가 있으니 이 할한(瞎漢; 눈먼 자)이 아니라면 결정코 이 보리라. 주장(拄杖)으로써 일하(一下; 1회) 치고(卓) 이르되 도리어 듣느냐, 개개(箇箇)가 피하(皮下)에 피가 있으니 이 사한(死漢)이 아니라면 결정코 이 보리라. 이미 보았고 이미 들었으니 이것이(是箇) 무엇인가. 주장으로써 . [○@─]  보고 들음은 곧 차지(且止; 且置)하고 지여(只如) 6근(六根; 위 六窓을 보라)을 갖추지 아니한 전, 성색(聲色)이 나타나지(彰) 아니한 즈음의, 듣지 아니한 전의 들음과 보지 아니한 전의 봄인, 바로 이러한 때 필경 무엇으로써 시험하느냐. 주장으로써  [○@│]   내가 지금 너희를 위해(與) 사사(斯事)를 보임(保任)했으니 마침내 헛되지 않으리라. 주장으로써 [○@□]   30년 후 소식을 망통(妄通; 허망하게 通知)함을 절기(切忌)한다. 주장에 기대어(靠) 하좌(下座)했다.

 

若論此事 只要當人的有切心 纔有切心 眞疑便起 眞疑起時 不屬漸次 直下便能塵勞頓息 昏散屛除 一念不生 前後際斷 纔到者般時節 管取推門落臼 若是此念不切 眞疑不起 饒你坐破蒲團百千萬箇 依舊日午打三更

●日午打三更; (一)正午時敲打午夜三更的鐘鼓 是禪家所謂之奇特句 是祛除了區別對立妄心的禪悟境界 (二)不是正常現象 而是矛盾表述 意指‌時間錯亂 事出反常或比喻極度荒謬‌ ◆三更; 自午後十一時至翌日午前一時 更 古代夜間計時單位 一夜分爲五更 每更約兩小時 正字通 又因時變易 漏刻曰更 ▲顔氏家訓 或問 一夜何故五更 更何所訓 答曰 漢魏以來 謂爲甲夜乙夜丙夜丁夜戊夜 又云鼓 一鼓二鼓三鼓四鼓五鼓 亦云一更二更三更四更五更 皆以五爲節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다만 당인(當人)의 절심(切心;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요(要)하나니 겨우 절심이 있으면 진의(眞疑)가 바로 일어나며 진의가 일어날 때 점차(漸次)에 속하지 않는다. 직하(直下)에 바로 능히 진로(塵勞)가 돈식(頓息)하고 혼산(昏散)이 병제(屛除; 제거)되어 일념도 나지 않고 전후제(前後際)가 끊어진다. 겨우 자반(者般; 이러한)의 시절에 이르면 퇴문낙구(推門落臼)를 관취(管取; 보증)하리라. 만약 이 차념(此念)이 간절하지 않고 진의(眞疑)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가령(假令; 饒) 네가 포단(蒲團)을 백천만 개 좌파(坐破)하더라도 의구히 일오에 3경을 친다(日午打三更).

●日午打三更; (1). 정오 시 오야(午夜) 3경의 종과 북을 고타(敲打; 치다)함이니 이는 선가에서 이르는 바의 기특구(奇特句). 이는 구별과 대립의 망심(妄心)을 거제(祛除; 消除)한 선오(境界)의 경계. (2). 이는 정상(正常)의 현상이 아니며 이는 모순(矛盾)된 표술(表述)임. 뜻이 시간을 착란(錯亂)함을 가리킴이니 사(事)가 반상(反常)에서 나오거나 혹 극도(極度)의 황류(荒謬)에 비유함. ◆三更; 삼경(三更)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에 이르기까지임. 경(更)은 고대 야간의 계시단위(計時單位)니 1야(夜)를 5경으로 분류했고 매경(每更)은 약 두 소시(小時; 시간)임. 정자통 또 시(時)로 인해 변역(變易)했으니 누각(漏刻)을 가로되 경(更)이다. ▲안씨가훈. 누가(或) 묻되 1야(夜)가 무슨 연고로 5경(更)인가. 경은 무엇을 가르치는 바인가. 답해 가로되 한위(漢魏) 이래로 이르기를 갑야(甲夜)ㆍ을야ㆍ병야ㆍ정야ㆍ무야라 했다. 또 이르되 고(鼓)니 1고(鼓)ㆍ2고ㆍ3고ㆍ4고ㆍ5고다. 또 이르되 1경(更)ㆍ2경ㆍ3경ㆍ4경ㆍ5경이다. 모두 5로써 마디를 삼았다.

 

迷中有悟 悟復還迷 直須迷悟兩忘 人法俱遣 衲僧門下 始有語話分 大衆 旣是迷悟兩忘 人法俱遣 共語話者 復是阿誰 速道速道

●阿誰; 阿 助詞 名詞詞頭 宋代趙彦衛雲麓漫鈔十 古人多言阿字 如秦皇阿房宮 漢武阿嬌金屋 晉尤甚 阿戎阿連等語極多 唐人號武后爲阿武婆 婦人無名 以姓加阿字

 

미중(迷中)에 오(悟)가 있고 오(悟)가 다시 미(迷)로 돌아가나니(還) 바로(直) 모름지기 미오(迷悟)를 양망(兩忘)하고 인법(人法)을 모두(俱) 보내어야(遣) 납승문하(衲僧門下)에서 비로소 어화(語話)할 분(分; 분한)이 있다. 대중이여 이미 이 미오를 양망하고 인법을 모두 보냈거늘 함께 어화(語話)할 자는 다시 이 누구인가(阿誰).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阿誰; 아(阿)는 조사니 명사(名詞)의 사두(詞頭). 송대(宋代) 조언위(趙彦衛)의 운록만초10. 고인이 많이들 아자(阿字)를 말했으니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과 한무제의 아교금옥(阿嬌金屋) 같은 것들이다. 진(晉)은 더욱 심했으니 아융(阿戎)과 아련(阿連) 등의 말이 극히 많았다. 당인(唐人)은 무후(武后; 則天武后)를 아무파(阿武婆)라 호칭했고 부인(婦人)이 이름이 없으면 성에 아자(阿字)를 더했다.

 

若論此事 如登萬仞高山 一步一步將搆至頂 唯有數步壁絕攀躋 到者裏 須是箇純鋼打就底 捨命𢬵身 左睚右睚 睚來睚去 以上爲期 縱經千生萬劫 萬難千魔 此心此志 愈堅愈强 若是根本不實 泛泛之徒 何止望崖 管取聞風而退矣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만인(萬仞)의 고산(高山)에 오름과 같다. 일보일보(一步一步) 장차 구(搆; 連接)하여 꼭대기에 이르려고 하는데 오직 몇 보(步)가 있어 초벽(峭壁; 壁)에 반제(攀躋; 攀登)가 끊긴다. 이 속에 이르면 모름지기 시개(是箇)의 순강(純鋼)으로 타취(打就; 打成)한 것이라야(底) 하나니 사명반신(捨命𢬵身; 목숨과 몸을 버림)하면서 좌애우애(左睚右睚; 좌우로 살핌)하고 애래애거(睚來睚去)하되 오름(上)으로써 기한(期限; 期)을 삼아야 한다. 설령(設令; 縱) 천생만겁(千生萬劫), 만난천마(萬難千魔)를 겪더라도(經) 차심차지(此心此志)는 유견유강(愈堅愈强; 더욱 견고하고 더욱 강함)하다. 만약 이 근본이 부실(不實)한 범범(泛泛; 凡常)한 무리(徒)라면 어찌 망애(望崖)에 그치겠는가, 문풍(聞風)하고 물러남을 관취(管取; 保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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