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요

고봉선요(高峰禪要) 앙산노화상(仰山老和尙)에게 의사(疑嗣)를 통(通)하는 글

태화당 2026. 9. 24. 09:47

通仰山老和尙疑嗣書

 

昔年敗闕 親曾剖露師前 今日重疑 不免從頭拈出 某甲十五歲出家 十六爲僧 十八習敎 二十更衣 入淨慈 立三年死限 學禪請益 斷橋和尙 令參箇生從何來 死從何去 意分兩路 心不歸一 又不曾得他說做工夫處分曉 看看擔閣 一年有餘 每日只如箇迷路人相似 那時因被三年限逼 正在煩惱中 忽見台州淨兄 說雪巖和尙當問你做工夫 何不去一轉

●敗闕; 失敗缺陷之義 又受挫 挫敗 此指二

●更衣; 一更換衣服 二轉宗轉派之意

●死限; 壽命的期限

●分曉; 分明 分 明也

●擔閣; 卽擔擱 一遲延 二耽誤 三停留

 

앙산노화상(仰山老和尙; 祖欽. 仰山은 仰山禪寺)에게 의사(疑嗣; 嗣法을 質疑)를 통(通; 通報)하는 글

 

석년(昔年)의 패궐(敗闕)을 친히 일찍이 스님 앞에 부로(剖露)했습니다만 금일의 중의(重疑; 거듭된 의심)를 첫머리로 좇아 염출(拈出)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모갑(某甲)은 15세에 출가했고 16에 승인(僧人; 僧)이 되었고 18에 습교(習敎)했고 20에 경의(更衣)했습니다. 정자(淨慈)에 들어가 3년의 사한(死限)을 세워 학선(學禪)하며 청익(請益)했습니다. 단교화상(斷橋和尙; 妙倫)이 저(箇) 생은 어디로 좇아오며 죽으면 어디로 좇아가느냐를 참(參)하게 했습니다. 뜻이 양로(兩路)로 나뉘고 마음이 귀일(歸一)하지 못했습니다. 또 일찍이, 그가 설한 주공부처(做工夫處)의 분효(分曉; 분명함)를 얻지 못했습니다. 간간(看看; 將次) 담각(擔閣)하기가 일년유여(一年有餘; 1년 남짓)였고 매일 다만 저(箇) 미로인(迷路人)과 상사(相似)한 것 같았습니다. 나시(那時; 그때) 3년의 기한이 닥침을(逼) 입음으로 인해 바로(正) 번뇌 중에 있었습니다. 홀연히 태주(台州; 지금의 절강성 臨海縣)의 정형(淨兄)을 보았는데 설하기를 설암(雪巖; 祖欽의 호) 화상이 마땅히 너의 주공부(做工夫)를 물을 텐데 왜 일전(一轉; 1회. 1차) 가지 않느냐.

●敗闕; 실패결함(失敗缺陷)의 뜻. 또 수좌(受挫; 좌절을 받음). 좌패(挫敗; 꺾여 패함).

●更衣; 1. 의복을 경환(更換; 바꿈)함. 2. 전종전파(轉宗轉派; 종을 바꾸거나 파를 바꿈)의 뜻.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死限; 수명의 기한(期限).

●分曉; 분명. 분(分)은 명(明)임.

●擔閣; 곧 담각(擔擱). 1. 지연(遲延). 2. 탐오(耽誤; 延長). 3. 정류.

 

於是欣然懷香 詣北磵塔頭請益 方問訊插香 被一頓痛拳打出 卽關却門 一路垂淚 回至僧堂 次日粥罷 復上始得親近 卽問已前做處 某甲一一供吐 當下便得勦除日前所積之病 却令看箇無字 從頭開發做工夫一遍 如暗得燈 如懸得救 自此方解用工處 又令日日上來一轉 要見用工次第 如人行路 日日要見工程 不可今日也恁麽 明日也恁麽 每日纔見入來 便問今日工夫如何 因見說得有緒 後竟不問做處 一入門便問 阿誰與你拖者死屍來 聲未絕 便以痛拳打出 每日但只恁麽問 恁麽打 正被逼拶 有些涯際

●懷香; 一懷中之香 二或爲請益以香入懷中 此指二

●北磵; 宋代臨濟宗僧居簡 晩年的法號

●塔頭; (一)大寺德高之住僧入寂後 其徒弟 慕師德 不去塔頭 構房而住 稱爲某大德之塔頭何院 必別有院號 其後只爲寺中別坊之名 (二)卽塔 頭後綴 此指(一)

●問訊; 合掌而口問安否也 但敬揖以表問安否之心 亦云問訊 說文 訊 問也

●一頓;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供吐; 說出眞實情況

●逼拶; 禪師巧作施設 截斷言語知解 逼使學人無可用心 無路可通 陷于疑塞窘迫之中 然後有可能猛然 激奮 躍入悟境 這種施設稱爲逼拶

 

이에 흔연(欣然)히 회향(懷香)하고 북간탑두(北磵塔頭)로 나아가(詣) 청익(請益)했습니다. 바야흐로 문신(問訊)하고 삽향(插香)하려는데 일돈(一頓)의 통권(痛拳)으로 타출(打出; 때리고 쫓아냄)함을 입었습니다. 곧 문을 닫아버리고(關却) 일로(一路)에서 수루(垂淚; 눈물을 흘리다)하며 승당(僧堂)으로 회지(回至)했습니다. 다음날 죽파(粥罷; 죽 먹기를 마침)하자 다시 올라가매 비로소 친근함을 얻었습니다. 곧 이전(已前)의 주처(做處)를 물으시매 모갑이 낱낱이 공토(供吐)했는데 당하(當下; 즉각)에 바로 일전(日前)에 쌓인 바의 병(病)을 초제(勦除; 消滅)함을 얻었습니다. 도리어 저(箇) 무자(無字)를 간(看)하게 하셨고 첫머리로 좇아 주공부(做工夫)의 일편(一遍; 1회. 1차)을 개발하셨습니다. 어둠에서 등을 얻음과 같았고 매달렸다가(懸) 구제(救濟; 救)를 얻음과 같았고 이로부터 바야흐로 용공(用工; 工夫를 쓰다)할 곳을 이해했습니다. 또 날마다 일전(一轉; 1회) 올라오게 하여 용공(用工)의 차제(次第)를 보려고 하셨으니 사람이 길을 가매(行) 날마다 공정(工程)을 보려고 함과 같았습니다. 금일도 또 이러하고 명일도 또 이러함은 옳지 못했으니 매일 들어옴을 겨우 보시면 바로 묻되 금일의 공부(工夫)는 어떠한가 하셨습니다. 설(說)에 유서(有緒; 실마리가 있음)를 얻었음을 봄으로 인해 뒤로는 마침내(竟) 주처(做處)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一) 입문(入門)하자 바로 묻되 아수(阿誰; 阿는 조사)가 너와 더불어 이 사시(死屍)를 끌고(拖) 왔느냐.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한 전에 바로 통권(痛拳)으로써 타출(打出)하셨습니다. 매일 단지(但只) 이렇게 물었고 이렇게 때렸는데 바로(正) 핍찰(逼拶)을 입으면서 조금(些)의 애제(涯際; 邊際)가 있었습니다.

●懷香; 1. 품 속의 향. 2. 혹 청익하기 위해 향을 품 속에 넣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北磵; 송대 임제종승 거간(居簡)의 만년의 법호.

●塔頭; (1). 큰 사원의 덕이 높은 주승(住僧)이 입적한 후 그 도제(徒弟)가 스승의 덕을 흠모해 탑두에서 떠나지 않고 방을 만들어 거주하는데 일컫기를 모대덕(某大德)의 탑두(塔頭) 하원(何院)이라 일컬음. 반드시 따로 원호(院號)가 있음. 그 후 다만 사중(寺中)의 별방(別坊)의 이름이 되었음. (2). 곧 탑이니 두는 후철.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問訊; 합장하면서 입으로 안부를 물음임. 다만 경읍(敬揖)하면서 안부를 표문(表問)하는 마음도 또 이르되 문신임. 설문 신(訊) 문(問)이다.

●一頓; 돈(頓) 양사니 명량(名量)으론 밥의 먹는 수(數)에 쓰이고 동량(動量)으론 끽반(喫飯)ㆍ척책(斥責)ㆍ권설(勸說)ㆍ타매(打罵) 등의 행위의 차수(次數; 次例의 수)에 쓰임. 혹은 설하기를 당토(唐土)의 형벌은 죄인을 때리면서 20방(棒)을 1돈(頓)으로 삼는다 함.

●供吐; 진실한 정황(情況)을 설해 냄.

●逼拶; 선사가 시설을 교묘히 지어 언어와 지해를 절단하고 학인으로 하여금 가히 용심함이 없고 가히 통할 길이 없게 핍박하여 의색군박(疑塞窘迫; 의심이 가득해 군박함)의 가운데로 빠지게 한 연후에 맹연(猛然)히 격분(激奮)하고 오경(悟境)에 약입(躍入)함의 가능함이 있음. 이런 종류의 시설을 일컬어 핍찰이라 함.

 

値老和尙赴南明請 臨行囑云 我去入院了 却令人來取你 後竟絕消息 卽與常州澤兄 結伴同往 至王家橋俗親處 整頓行裝 不期俗親念某甲等年幼 又不曾涉途 行李度牒 總被收却 時二月初 諸方掛搭皆不可討 不免挑包上徑山 二月半歸堂 忽於次月十六夜 夢中忽憶斷橋和尙堂中所擧 萬法歸一 一歸何處話 自此疑情頓發 打成一片 直得東西不辨 寢食俱忘 至第六日辰巳間 在廊下行 見衆僧堂內出 不覺輥於隊中 至三塔閣上諷經 擡頭忽覩五祖演和尙眞贊 末後兩句云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這漢 日前被老和尙所問 拖死屍句子 驀然打破 直得魂飛膽喪 絕後再甦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 乃是辛酉三月廿二 少林忌日也 其年恰廿四歲

●涉途; 行走在路途上‌或‌經歷路程‌

●行李; 一行走 二行脚時所帶的複包 三參習 參禪 四悟道者的機用實踐 五行人 此指二

●度牒; 許出家之公驗也 又云祠部牒 以從尙書省之祠部司出之故也 隆興編年通論十六云 天寶五年(746)五月制 天下度僧尼 並令祠部給牒 今謂之祠部者 自是而始 唐書食貨志云 安祿山反 楊國忠遣御史崔衆至太原納錢 度僧尼道士 旬日 得百萬緡 明年御史鄭叔淸與宰相裴冕 又議度僧道收貲 按此是鬻度牒之始

●掛搭; 又作挂搭 掛 懸也 搭 附也挂也 禪僧止住 云掛搭 懸衣缽袋於僧堂之鉤也 因之住持許行脚人依住 謂爲許掛搭 與掛錫掛缽等亦同

●眞贊; 圖畵坐貌謂眞也

 

노화상(老和尙)이 남명(南明; 浙江 南明佛日禪寺)의 청(請)에 다다름(赴)을 만나(値) 임행(臨行)에 부촉(付囑)해 이르시되 내가 가서 입원(入院)해 마치면 도리어 사람을 시켜(令) 와서 너를 취하게 하겠다. 후에 마침내(竟) 소식이 끊겼습니다. 곧 상주(常州; 지금의 江蘇 常州) 택형(澤兄)과 결반(結伴)하여 함께 가다가 왕가교(王家橋)의 속친(俗親; 세속의 父親이나 혹 親人)의 처소에 이르러 행장(行裝)을 정돈(整頓)했는데 속친(俗親)이 모갑(某甲) 등의 나이가 어림(幼)을 염려(念慮; 念)할 줄 기대(期待)하지 못했습니다. 또 일찍이 섭도(涉途)하지 못했고 행리(行李)와 도첩(度牒)은 모두(總) 수각(收却; 回收해버림)됨을 입었습니다. 당시에 2월 초(初)였으며 제방(諸方)에서 괘탑(掛搭)함을 모두 가히 찾지(討) 못한지라 도포(挑包; 보따리를 메다)하고 경산(徑山)에 오름을 면치 못했고 2월 반에 귀당(歸堂; 僧堂으로 復歸)했습니다. 홀연히 다음달 16야(夜)에 몽중(夢中)에서 홀연히 단교화상(斷橋和尙; 妙倫)이 당중(堂中)에서 든(擧) 바,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한 화(話)를 추억(追憶; 憶)했는데 이로부터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했습니다. 바로(直) 동서(東西)를 분변하지 못하고 침식(寢食)을 모두(俱) 잊음을 얻었습니다. 제6일 진사(辰巳; 辰時에서 巳時) 사이에 이르러 낭하(廊下)에 있으면서 다니다가 중승(衆僧)이 당내(堂內)에서 나옴을 보고 불각에 무리(隊) 속으로 굴러갔습니다(輥). 삼탑각상(三塔閣上)에 이르러 풍경(諷經)하다가 머리를 들매(擡) 홀연히 오조연(五祖演; 法演) 화상의 진찬(眞贊)을 보았습니다(覩). 말후의 양구(兩句)에 이르되 백 년 삼만육천 조(朝)에 반복(返覆)하는 게 원래(元來) 이 저한(這漢)이다. 일전(日前)에 노화상이 물으신 바를 입은 타사시(拖死屍; 死屍를 끌다) 구자(句子; 子는 조사)를 맥연(驀然)히 타파했습니다. 바로(直) 혼비담상(魂飛膽喪)하고 절후재소(絕後再甦; 기절한 후에 다시 깨어남)함을 얻었으니 어찌 백이십 근(斤) 담자(擔子; 질대)를 내려놓음(放下)일 뿐이었겠습니까(啻). 곧 이 신유(辛酉; 1261) 3월 입이(廿二; 22) 소림(少林; 달마를 가리킴)의 기일(忌日)이었고 그 해에 마침(恰) 입사세(廿四歲; 24세)였습니다.

●涉途; 행주(行走; 다님)하여 도로 위에 있거나 혹 노정(路程)을 경력(經歷)함.

●行李; 1. 행주(行走; 다니다). 2. 행각할 때 휴대하는 바의 복포(複包; 보따리). 3. 참습(參習)ㆍ참선. 4. 오도자의 기용(機用)의 실천. 5. 행인.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度牒; 출가를 허락하는 공험(公驗; 관청에서 발행하는 증명서)임. 또 이르되 사부첩이니 상서성의 사부사(祠部司)로부터 나오는 연고임. 융흥편년통론16에 이르되 천보 5년(746) 5월에 제(制; 制誥니 제왕의 명령)하되 천하에서 승니를 득도하면 모두 사부(祠部)에서 급첩(給牒)하게 했다. 여금에 이를 일러 사부라 하는 것은 이로부터 시작했다. 당서 식화지에 이르되 안녹산이 반란하자 양국충이 어사 최중을 보내 태원에 이르러 돈을 받아들이고 승니와 도사를 득도시켰는데 열흘 만에 백만 민(緡; 돈꿰미)을 얻었다. 명년에 어사 정숙청이 재상 배면과 더불어 또 의논하여 승도(僧道)를 득도시키면서 재물을 걷었다. 이것을 안험컨대 이는 도첩을 판 시초다.

●掛搭; 또 괘탑(挂搭)으로 지음. 괘(掛)는 현(懸; 매달다. 걸다)이며 탑(搭)은 부(附)며 괘(挂)임. 선승의 지주(止住)를 괘탑이라 이르나니 옷과 발대(缽袋; 缽은 鉢과 같음)를 승당의 갈고리에 걺임. 이로 인해 주지가 행각인의 의주(依住)를 허락함을 일컬어 허괘탑(許掛搭)이라 함. 괘석(掛錫)과 괘발(掛缽) 등도 또한 같음.

●眞贊; 도화(圖畵)의 좌모(坐貌)를 일러 진(眞)이라 함.

 

滿三年限 便欲造南明求決 那堪逼夏 諸鄕人亦不容 直至解夏 方到南明 納一場敗闕 室中雖則累蒙煅煉 明得公案 亦不受人瞞 及乎開口 心下又覺得渾了 於日用中尙不得自由 如欠人債相似 正欲在彼終身侍奉 不料同行澤兄 有他山之行 遽違座下

●鄕人; 謂舊里之人 ▲百丈淸規三議擧住持 爲勤舊知事者 不可以鄕人法眷阿黨傳會

●解夏; 又作夏竟 夏滿 夏解 意指解除夏安居之制 解夏之日謂七月十五日 此日亦稱自恣日

 

3년의 기한(期限; 限)을 채우자 바로 남명(南明)으로 나아가(造) 구결(求決; 決疑를 구함)하려 했으나 어찌(那) 핍하(逼夏; 結夏가 닥침)를 감내했겠습니까. 여러 향인(鄕人)도 또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直) 해하(解夏)에 이르자 비로소(方) 남명(南明)에 이르렀고 일장패궐(一場敗闕)을 받았습니다(納). 실중(室中)에서 비록 곧 누차(屢次; 累) 단련(煅煉)을 입어(蒙) 공안(公案)을 명득(明得)하고 또한 타인의 속임(瞞)을 받지 않았으나 개구(開口)함에 이르러선 심하(心下; 마음 속)에 또 혼탁(渾濁; 渾)함을 느꼈습니다(覺得). 일용(日用) 중에 오히려(尙) 자유(自由)를 얻지 못했음이 마치(如) 타인에게 빚진(欠) 부채(負債; 債)와 상사(相似)했습니다. 바로(正) 거기에 있으면서 종신(終身)토록 시봉(侍奉)하고 싶었으나 동행(同行)인 택형(澤兄)이 타산지행(他山之行; 다른 산으로 감)이 있는 줄 헤아리지(料) 못해 급히(遽) 좌하(座下)를 위배(違背; 違)했습니다.

●鄕人; 구리(舊里; 고향)의 사람을 말함. ▲백장청규3 의거주지(議擧住持). 근구(勤舊)ㆍ지사(知事)가 된 자는 향인(鄕人)과 법권(法眷)으로 아당(阿黨)하고 전회(傳會; 전하고 모으다)함음 불가하다.

●解夏; 또 하경(夏竟)ㆍ하만(夏滿)ㆍ하해(夏解)로 지음. 뜻은 하안거의 제약을 해제함을 가리킴. 해하의 날은 이르자면 7월 15일이며 이 날은 또한 명칭이 자자일(自恣日)임.

 

至乙丑年 老和尙在道場 作掛牌時 又得依附隨侍 赴天寧中間 因被詰問 日間浩浩時 還作得主麽 答云 作得主 又問 睡夢中作得主麽 答云 作得主 又問 正睡著時 無夢無想 無見無聞 主在甚麽處 到者裏 直得無言可對 無理可伸 和尙却囑云 從今日去 也不要你學佛學法 也不要你窮古窮今 但只飢來喫飯 困來打眠 纔眠覺來 却抖擻精神 我者一覺 主人公畢竟在甚處安身立命 雖信得及遵守此語 柰資質遲鈍 轉見難明 遂有龍鬚之行 卽自誓云 𢬵一生做箇癡獃漢 定要見者一著子明白

●浩浩; 廣闊宏大 水勢很大

 

을축년(乙丑年; 1265)에 이르러 노화상(老和尙)이 도량(道場)에 있으면서 괘패(掛牌)를 만들 때 또 의부(依附)하여 수시(隨侍)함을 얻었습니다. 천녕(天寧)에 다다르는 중간에 힐문(詰問)하시되 일간(日間)의 호호(浩浩)할 때 도리어 주(主; 主人公. 主宰)를 작득(作得)하느냐 함을 입음으로 인해 답운(答云) 주를 작득합니다. 우문(又問) 수몽(睡夢) 중에 주를 작득하느냐. 답운 주를 작득합니다. 우문 바로(正) 수착(睡著)했을 때는 무몽무상(無夢無想)하고 무견무문(無見無聞)인데 주(主)가 어느 곳에 있느냐. 이 속에 이르자 바로(直) 가히 대답(對答; 對)할 말이 없었고 가히 펼(伸) 도리(道理; 理)가 없었습니다. 화상이 도리어 부촉해 이르시되 금일로 좇아가면서 또한 너에게 학불학법(學佛學法)함을 요하지 않으며 또한 너에게 궁고궁금(窮古窮今)함을 요하지 않나니 단지(但只) 배고프면(飢來) 끽반(喫飯)하고 피곤하면(困來) 타면(打眠; 睡眠)하라. 겨우 잠에서 깨어나거든(覺來) 도리어 정신(精神)을 두수(抖擻; 털다)하고 내가 이 일교(一覺; 한 번 깸)하매 주인공(主人公)이 필경 어느 곳에 있으면서 안신입명(安身立命)했는가 하라. 비록 믿어 미침을 얻어 차어(此語)를 준수(遵守)했지만 자질(資質)이 지둔(遲鈍)함을 어찌하겠습니까(柰; 음이 나). 더욱(轉) 밝히기 어려움을 보았고 드디어 용수지행(龍鬚之行; 臨安 龍鬚寺로 가다)이 있었습니다. 곧 자서(自誓)하여 이르되 일생(一生)을 버려(𢬵; 음이 반) 저(箇) 치애한(癡獃漢; 어리석은 자)을 짓더라도(做) 결정코(定) 이 일착자(一著子)의 명백함을 보기를 요한다.

●浩浩; 광활하고 굉대(宏大)함. 수세(水勢)가 매우 큼.

 

經及五年 一日寓庵宿 睡覺正疑此事 忽同宿道友推枕子墮地作聲 驀然打破疑團 如在網羅中跳出 追憶日前所疑 佛祖誵訛公案 古今差別因緣 恰如泗州見大聖 遠客還故鄕 元來只是舊時人 不改舊時行履處 自此安邦定國 天下太平 一念無爲 十方坐斷 如上所供 並是詣實 伏望尊慈 特垂詳覽

●誵訛; 混淆訛誤 又作誵譌 淆訛 殽訛 聱訛 肴訛 譊訛 詨訛 從容錄音義云 誵訛 不謹也 同事略云 言辭不平易貌

●泗州見大聖; 泗州 卽今江蘇省泗洪 泗陽 宿遷一帶 祖庭事苑六 僧伽 釋僧伽 何國人 姓何氏 始至西凉府 次歷江淮 當龍朔(661-663)初年也 卽隷名於山陽龍興寺 初將弟子慧儼同至臨淮 就信義坊居人乞地 下標志之言 決於此處建立伽藍 遂穴土 獲古碑 乃齊國香積寺也 得金像 衣葉刻普照王佛 居人歎異 嘗臥賀跋氏家 身忽長其牀榻各三尺許 次現十一面觀音形 其家擧族欣慶 遂捨宅焉 卽今寺是也 中宗景龍二年(708) 遣使詔赴內道場 帝御法筵 言談造膝 占對休咎 契若合符 仍褒飾其寺 曰普光王寺 四年 示疾 敕自內中往薦福寺安置 三月二日 儼然坐亡 神彩猶生 止瞑目爾 俗齡八十三 僧臘罔知 帝慘悼黯然 于時穢氣充塞而形體宛如 多見靈迹 敕有司給絹三百匹 俾回葬淮上 令郡官祖送 五月五日 抵于今所 帝以仰慕不忘 因問萬回公曰 彼僧伽何人也 曰 觀音菩薩也 經不云乎 應以比丘身得度者 故見沙門相也 見宋僧傳 ▲宋高僧傳十八唐泗州普光王寺僧伽傳 咸通中(860-873)龐勛者 本徐州戍卒 擅離桂管 沿路劫掠 而攻泗州圍逼其城 伽於塔頂現形 外寇皆睡城中 偶出擊之 驚竄而陷宿州 以事奏聞 仍錫號證聖大師也 ▲佛祖統紀四十六崇寧三年(1104)條 楊州奏 泗州大聖屢見於普慧塔

●行履; 行者進退 履者實踐 指日常一切行爲 衲僧行履 佛祖不能窺 外魔不能亂 頭頭物物 擧足下足 都是道之現成

●坐斷; 截除 截斷 多用于禪機施設 謂截除語言知解 區別妄念 斷字 主眼也 坐者 平坐之義

●尊慈; 一對方的敬稱 二慈愛的父母

 

경과해 5년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암자에 우거(寓居; 寓)하며 자다가(宿) 잠에서 깨자(覺) 바로(正) 차사(此事)를 의심했습니다. 홀연히 동숙(同宿)하던 도우(道友)가 침자(枕子; 베개. 子는 조사)를 밀어(推; 밀 퇴) 땅에 떨어지면서 소리를 지으매 맥연(驀然)히 의단(疑團)을 타파했으니 나망(網羅) 가운데 있다가 도출(跳出; 뛰어나감)함과 같았습니다. 일전(日前)의 소의(所疑)를 추억(追憶)하였더니 불조의 효와(誵訛)의 공안(公案)과 고금의 차별의 인연(因緣)이 사주에서 대성을 보고(泗州見大聖) 원객(遠客)이 고향으로 돌아옴과 흡여(恰如; 恰似)했습니다. 원래 다만 이 구시인(舊時人)인지라 구시의 행리처(行履處)를 고치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안방정국(安邦定國; 나라를 안정시킴)하고 천하태평(天下太平)했으며 일념이 무위(無爲)라 시방(十方)을 좌단(坐斷)했습니다. 위와 같은 소공(所供; 提供한 바)은 아울러 이 실(實; 事實)로 나아갔으니 존자(尊慈)에게 복망(伏望)컨대 특별히 상람(詳覽)을 드리우소서.

●誵訛; 어지럽게 섞여 그릇되고 잘못된 것(混淆訛誤). 또 효와(誵譌)ㆍ효와(淆訛)ㆍ효와(殽訛)ㆍ오와(聱訛)ㆍ효와(肴訛)ㆍ요와(譊訛)ㆍ효와(詨訛)로 지음. 종용록음의(從容錄音義)에 이르되 효와(誵訛) 불근(不謹; 삼가지 않음)이다. 동(同) 사략(事略)에 이르되 언사(言辭)가 평이하지 아니한 모양이다.

●泗州見大聖; 사주는 즉금의 강소성 사홍ㆍ사양ㆍ숙천 일대. 조정사원6. 승가(僧伽) 석승가(釋僧伽; 6 28-710)는 하국(何國) 사람이며 성이 하씨(何氏)다. 처음 서량부에 이르렀고 다음으론 강회(江淮; 揚子江과 淮水)를 경력했는데 용삭(661–663) 초년에 해당한다. 곧 산양의 용흥사에 이름을 붙여(隷) 놓고 처음에 제자 혜엄을 데리고 함께 임회(臨淮)에 이르러 신의방(信義坊)의 거인(居人; 住民)에게 나아가 땅을 구걸해 푯말을 내려 거기에 기록(志)하고 말하되 결정코 이곳에 가람을 건립하리라. 드디어 땅을 파자(穴은 뚫을 혈) 고비(古碑)를 획득했는데 곧 제국(齊國)의 향적사였으며 금상(金像)을 얻었는데 옷자락(葉)에 보조왕불(普照王佛)이 새겨져 있었다. 거인(居人)이 탄이(歎異; 괴이함을 감탄함)했다. 일찍이 하발씨(賀跋氏)의 집에 누웠는데 몸이 홀연히 길어져 그 상탑(牀榻; 榻은 平床)의 각 3척 가량(許)이었고 다음엔 11면 관음형(觀音形)을 나타냈다. 그 집의 거족(擧族; 擧는 다 거. 곧 온 가족)이 흔경(欣慶; 欣은 기쁠 흔. 좋아할 흔)했고 드디어 집을 희사했으니 즉금의 사(寺)가 이것이다. 중종 경룡 2년(708) 사자를 보내 조칙으로 내도량(內道場; 궁궐 안에서 佛道를 닦던 집)에 다다르게 하고 제(帝)가 법연(法筵; 筵은 대자리. 좌석)에 거둥했다(御). 언담(言談)하며 무릎을 나아가 휴구(休咎; 길흉)를 점쳐 대답했는데 계합함이 합부(合符; 符는 符節이니 이를 써서 신분을 증명한 고대의 符信. 合符는 곧 合致하는 符節)와 같았다. 인하여 그 사(寺)를 포식(褒飾; 褒賞하여 꾸밈)하여 가로되 보광왕사(普光王寺)라 했다. 4年 시질(示疾)하매 칙령해 내중(內中; 內道場 안)으로부터 천복사로 가서 안치하게 했다. 3월 2일에 엄연(儼然)히 좌망(坐亡)했는데 신채(神彩; 정신과 풍채. 뛰어나게 훌륭한 풍채)가 생시와 같았으되 단지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속령(俗齡)은 83이며 승랍은 알지 못한다. 제(帝)가 참도(慘悼; 慘은 비참할 참. 悼는 슬플 도. 곧 매우 슬퍼함)하여 암연(黯然; 黯은 어두울 암. 슬플 암)했는데 이때 더러운 기운이 가득 찼으며 형체가 완여(宛如)했다. 많이 영적(靈迹)을 나타냈다. 유사(有司)에게 칙령하여 비단 3백 필(匹)을 공급하여 회상(淮上)으로 회장(回葬)하게 하면서 군(郡)의 관리에게 조송(祖送; 祖는 길제사 조. 餞送할 조. 곧 떠나는 사람을 전송함)하게 했다. 5월 5일에 지금의 장소에 이르렀다. 제(帝)가 앙모하여 잊지 못한지라 인해 만회공(萬回公)에게 물어 가로되 그 승가(僧伽)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로되 관음보살입니다. 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응당 비구신(比丘身)을 써서 득도(得度)할 자라 했으므로 고로 사문의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송승전(宋僧傳)을 보라. ▲송고승전18 당사주보광왕사승가전(唐泗州普光王寺僧伽傳) 함통 중(860-873) 방훈(龐勛)이란 자는 본래 서주(徐州)의 수졸(戍卒)이었다. 계관(桂管)을 마음대로 떠나(擅離) 길을 따라 겁략하더니 사주(泗州)를 공격하면서 그 성을 둘러싸 핍박했다. 승가(僧伽)가 탑 꼭대기에 형상을 나타냈다. 외구(外寇)가 다 성 안에서 잠들었는데 마침(偶) 나가서 그들을 격파했다. 놀라서 달아났으며 숙주(宿州)를 함락했다. 사건을 주문(奏聞)하자 곧 증성대사(證聖大師)란 호를 주었다. ▲불조통기46 숭녕 3년(1104) 조(條). 양주(楊州)에서 아뢰기를 사주대성(泗州大聖)이 누차 보혜탑에 나타났습니다.

●行履; 행(行)이란 것은 진퇴며 리(履)란 것은 실천이니 일상의 일체 행위를 가리킴. 납승의 행리(行履)는 불조라도 능히 엿보지 못하고 마외(外魔)도 능히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거족하족(擧足下足)이 모두 이 도의 현성(現成)임.

●坐斷; 절제(截除). 절단. 다분히 선기의 시설에 사용함. 이르자면 어언과 지해, 구별과 망념(妄念)을 절제함. 단자(斷字)는 주안(主眼; 주된 목표)이며 좌(坐)란 것은 평좌(平坐)의 뜻.

●尊慈; 1. 상대방에 대한 경칭. 2. 자애로운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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