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합본

평심사 관련 신문기사 합본

태화당 2019. 3. 27. 11:15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자무실길 113 평심사 전경  010-7566-7503 (주지 淨圓)







(33) 일우 선사

등록 :2005-12-06 20:03 수정 :2005-12-07 14:02



일우 선사의 유일한 상좌 정원 스님이 25년째 은거 중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서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

세상 모르게 설파한 불법… 무게가 삼천근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승가에서 ‘엉덩이에 뿔난 소’처럼 괴팍스런 스님을 불러 괴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괴각 정원 스님(53)을 만나러, 그것도 불청객으로 가는 때문이다.


정원은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에 25년째 홀로 은거하며, 선종의 결정판인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힌 글을 모은 <현구집>, <태화당 수세록>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그가 쓴 책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입소문만이 선객들 사이에 나도는 은둔의 수행자다.

그 정원은 일우 선사(1918~1989)에게 출가한 유일한 상좌다. 일우는 선승들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장이나 조실은 커녕 주지 살이 한 번 한 적이 없고, 절 한 칸, 책 한 권, 법문 한 자 남긴 게 없다. 오직 그를 만났던 이들에게 소리 없이 불법의 인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 일우를 만나 발심하게 된 씨앗들이 바로 일년 내내 산문을 철폐하고 정진하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63), 20여 년째 지리산 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정진 중인 현기 스님(63), 그리고 정원 스님 등이다.


절 한칸·책 한권 안남긴 채… 조용히 입으로만 불법 설파

석달간 한숨 안자고 책 독파… 열반 땐 “할말 없다” 입 ‘꾹’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은 일우에 대해 묻자 “그 분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평생 남 모르게 살다 가신 분이니, 그렇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학식이었다고 할만함에도 열반 때 열반송을 묻는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입을 다문 일우였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고(故) 일우선사(一愚禪師)

정원도 그와 인연이 있는 선승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소식만을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뜻이 있으니 길을 갈 밖에. 태화산의 한 골짜기로 접어들어 끝까지 오르니, 세속과는 다른 별천지다. 두레박처럼 둘러싼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서재와 잔디언덕과 연못이 한 폭의 그림이다. 평심사다.


“난 우리 스님(일우)하곤 달라. 말 귀도 못 알아듣는 놈들한테 말은 해서 뭐해” 그의 첫마디였다. 그를 종종 찾던 한 여신자가 “남편 사업이 부도나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망할 것은 빨리 망해야지!”라고 했다는 정원에게 어찌 세간의 대접을 원할 것인가.


그의 불 같은 성정은 스승을 닮은 것이라고 한다. 정원이 일우를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불법을 알게 된 그가 도를 찾으러 노심초사하자 먼 친척이 일우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일우는 부산 구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에 머물고 있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일우는 속리산 법주사 지산 스님에게 출가해 옛 고승들의 선어록을 파고 들었다. 일우는 않아만 있는 것(좌선)을 병신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석 달 간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책을 볼만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진력과 집중력을 지녔다.


일찍이 공부에 힘을 얻은 일우는 그 뒤부터는 산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속인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비구니와 살림을 차려 그처럼 세간의 초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세속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비구니에서 환속한 보살이 그 집에서 하숙을 쳐서 살림을 도맡았다. 일우는 세속에 나오기 전 절에 살면서도 출가 승려가 시줏밥을 얻어먹기 위해선 해야 할 기본적인 염불조차 못해 탁발 나가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도, 수염도, 손톱도 깍지않아, 답답한 보살과 제자들이 깎곤 했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있던 제자도 도망갈 법한 그런 일우에 대해 정원은 한 번도 (스승으로서)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를 보고서야 이 세상에도 ‘현묘한 도가 실재함’을 직감했다고 하니, 숙연이 아닐 수 없다.


일우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 100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선승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통도사, 송광사 등 대찰로 그를 초청해 법을 들었고, 그의 초가를 찾아 법을 물었다. 당시 그와 당대에 알려진 고승들의 법문을 번갈아 들은 선승들은 양쪽을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차이 정도로 비교하곤 했다.


그는 누군가 불법을 들으러 오면 하루고 이틀이고,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을 벗어난 사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사는 이 곳에 일우가 열반 전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비둘기호를 타고 10시간 동안 온 일우는 밤 새 한 잠도 안 자고 정원에게 법을 설한 뒤 아침에 공양(식사)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한 번 말문이 터지니 오줌 쌀 틈조차 주지 않는다. 그가 쥐어준 무려 4천여 쪽에 이르는 저서 석 질을 짊어지고, 다음에 또 만날 기약까지 하고 산문을 나서니 산문을 오를 때 ‘무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근 같던 마음들도 일우의 몸에 붙은 한갓 먼지였던가.(끝)



천안/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5406.html#csidx9f0fac79e0cc182b28ae6a673e43a52 


 




경전 속 핵심, 11만개 문구로 압축대장사원 상하권

승인 2009.08.19. 11:01

정원스님 엮음 / 도서출판 수미산 선 

   


방대한 내·외전에 실린 11만개의 장단문구를 발췌한 <대장사원>이 출간됐다.


상하권 합쳐 총 4500페이지에 걸쳐 엮은 <대장사원>은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의 5년여 원력에 대한 결실이다. 스님은 <고려대장경>, <속장경>, <신수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 총 1000부에 달하는 내전을 11만개의 문구로 압축해서 엮었다.

“11년간 전 내전을 두 번 독파했다”는 정원스님은 “전 대장경을 두루 섭렵해서 군더더기를 뺀 꼭 필요한 알곡들만 뽑아서 압축시켰다”며 “이 책만으로 경전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담하는 인원이 많고 돈이 충분하다고 쉽게 할 수 있는 불사가 아닌 만큼 부처님의 신세를 갚는다는 일념으로 긴 세월을 하루같이 경전작업에 임한 정원스님은 “전문서적이지만 되도록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도 갑자를 서기로 환산했고 독해를 도울 편자의 주(註)만 해도 7000여개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웹하드에 접속하면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불교신문 2551호/ 8월22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130





 


 

조정사원 속 고사·숙어 2400여개 풀어내

조정사원


승인 2009.12.23. 10:01

 정원스님 역주 / 도서출판 수미산선



<조정사원(祖庭事苑)>은 1100년 무렵 중국 송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스님이 편찬한 자서(字書)다. <운문록(雲門錄)>이하의 각종 선종(禪宗) 관련 서적 가운데 고사와 숙어 2400여 개를 추려서 그 출전을 밝히고 주석을 붙인 책으로 총 8권이다. 이번에 나온 <조정사원>은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이 직접 자구를 풀이하고 번역.주해했다.

서문의 일부다. “천하에서 불씨(佛氏;釋迦, 佛家, 僧侶)를 존상(尊尙)하는 것은 그 말씀이 이목의 겉을 초출(超出)하며 이치가 육합(六合;天地四方)의 밖에 존재해서이다. 믿고 그것을 생각하여 일언지하에 돈증(頓證)해 잃지 않고 환히 본성을 본다면 성불이 의심 없으리니, 이런 고로 학자가 비록 언어문자에 마음이 노닐더라도 문자에 막히지 않음은 대개 도를 위하기 때문이다.”

<대반야론>에 나온 개와 사자에게 던진 흙덩이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도 흥미롭다. “흙덩이를 개에게 던짐이 있으면 개가 흙덩이를 쫓으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사자에게 던짐이 있으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그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이에 대한 스님의 해설이다.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사자에게 던지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단지 그 생을 끊으므로 사(死)가 저절로 멸한다. 개는 오직 흙덩이를 쫓고 사람을 쫓을 줄 알지 못하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외도(外道)도 또한 그러하여 생을 끊을 줄 알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死)를 여의지 못한다.”

이번 책과 관련 정원스님은 “수많은 전적과 인물, 일화, 사건, 명구 등이 나오므로 불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유익한 학습이 될 것”이라며 “웹하드(ID: pyungsimsa/ PW: 7503)에 접속하면 <조정사원> 뿐만아니라 동양연표 등 많은 외전을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했다”며 많은 이들의 활용을 당부했다.

한편 정원스님은 지난 8월 방대한 내.외전에 실린 11만개의 장단문구를 발췌한 <대장사원>을 출간하기도 했다. 상하권 합쳐 총 4500페이지에 걸쳐 엮은 <대장사원>은 정원스님의 5년여 원력에 대한 결실이다. 스님은 <고려대장경>, <속장경>, <신수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 총 1000부에 달하는 내전을 11만개의 문구로 압축해서 엮었다.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불교신문 2586호/ 12월2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945







“禪은 문자 여읜 敎, 敎는 문자에 붙은 禪”


하정은 기자

승인 2014.09.26 19:02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 깊은 골짜기.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연못이 그림처럼 놓여 있다. 천안 평심사다.


평심사의 더욱 그림같은 형상은 이 곳 도량 한켠 서재에서 30년을 하루같이 역경불사에 매진해온 은둔수행자, 정원스님이다. 선종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혀 <현구집> 등 방대한 책을 무던하게 세상에 내보낸 스님이다.


특히 내ㆍ외전에 실린 11만개의 장단문구를 발췌한 <대장사원(2009년)>은 상하권 합쳐 총 4500페이지에 걸쳐 엮어낸 대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


출가 이후 40년 공부 결실

3만3000 표제어…대사전 편찬


<고려대장경> <일본속장경> <대정신수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 1000부에 달하는 내전을 십수만개의 문구로 압축해서 엮어내 고려 일연선사의 <석원사림> 250권 편찬에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님은 이들 내전을 한번도 아닌 두 번이나 열독한 스님으로 유명하다.


어찌 둘이 있으리요…”이뿐만 아니다. 1100년 무렵 중국 송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 스님이 편찬한 <조정사원>의 자구를 풀이하고 번역ㆍ주해한 ‘정원스님판 조정사원’도 지난 2009년 세상에 빛을 보았다. 당시 ‘조정사원’에 실린 내용 가운데 <대반야론>에 나온 개와 사자에게 던진 흙덩이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은 언제봐도 흥미롭다.

“흙덩이를 개에게 던짐이 있으면 개가 흙덩이를 쫓으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사자에게 던짐이 있으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그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이에 대한 스님의 해설서다.


한중일과 대만 선교사전 7종

선어 주해서 13종 섭렵하고

현대불교사전 20종 대조첨삭

“선은 이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이 부처의 말씀이거늘

어찌 둘이 있으리요…”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사자에게 던지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단지 그 생을 끊으므로 사(死)가 저절로 멸한다. 개는 오직 흙덩이를 쫓고 사람을 쫓을 줄 알지 못하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외도(外道)도 또한 그러하여 생을 끊을줄 알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死)를 여의지 못한다.”


정원스님의 집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10년 선록과 선서에서 가려뽑은 6300개의 장단송구를 담아 <선림송구집>을 내기에 이르렀다. 선의 송구를 거칠게 모은 것이 아니라, 한자의 획수와 그에 따른 한글 가나다순까지 고려해서 사전식으로 편찬했다. 찾고자 하는 게송 첫 글자만 알아도 송구는 물론 발췌한 게송의 전거까지 적시한다.


이어 2011년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등 5대 종파 대표선사 어록인 <오종록>을 발간했다. 3100개의 한문주석을 모아 원문과 함께 수록한 <오종록>을 통해 임제 위산 앙산 법안 운문 동산 등 7인 선사의 어록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이 편찬한 <선문념송집>의 출전과 인명, 어구 등을 주석한 <선문념송집표주>를 CD로 간행해 눈길을 끌었다.


정원스님이 이번에 들고 나온 <태화선학대사전> 전3권은 1968년 출가 이후 40여년간 스님이 공부해온 발자취이자, 결정판이다. “평소 열장(閱藏), 역경(譯經), 편저(編著)과정 중 각종 등사(燈史)ㆍ어록(語錄)ㆍ청규(淸規) 등에서 수집한 사목(詞目)에 <선종대사전> <불광대사전> <선학요감> <선학사전> 등 중국 대만 일본 한국 4국에서 발행한 현대불교사전류 20종을 대조 첨삭하여 간행했다. 표제어 3만3475개, 예문 2만5899개, 보주 1200여개에 달한다.” 정원스님은 서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선(禪)은 이 부처의 마음이며 교(敎)는 이 부처의 말씀이거늘 어찌 둘이 있으리요. 이른바 선은 곧 문자를 여읜 교며 교는 곧 문자에 붙은 선이다. 마음에서 얻는다면 곧 시장의 돼지고기 파는 탁자에도 초불월조(超佛越祖)의 얘기가 있겠지만 말씀에서 잃는다면 곧 영취산의 염화미소에도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지취가 없을 것이다.”

정원스님은 “고래로 선종의 어사를 해석한 전적은 교종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미미하다” 면서그러나 “선학을 매우 사랑하여 이를 생각하고 이에 있으면서 천착하고 연구한게 이미 40년을 겪었다”며 “이에 근세의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서 간행한 선교사전 7종과 선어 주해서 13종을 수집하여 2012년 시작, 한자 부수와 한글의 한글음 순서를 따라 다시 정리하여 안배했다”며 그 과정을 낱낱이 설명했다.


“중화전자불전과 인터넷을 참조하였고 컴퓨터의 신령한 힘과 신기한 공을 빌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68년 열아홉에 출가한 정원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사경수행에 임했다고 한다. 스승이 하라고 하니 무작정 써내려 갔다고. <금강경>을 비롯해서 <백운어록> <임제어록> 등을 직접 붓으로 쓰며 공부했는데, 이 때 쓴 붓만도 1000자루가 넘을 정도였다.


어느순간 신심이 절로 나고 한 자를 쓰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백지 위에 펼쳐져 금광을 캐가는 기분이었다는 스님이다. 깊은 산중 ‘무문관’에서 한평생 ‘안거’에 들어있는 스님은 ‘평심’을 화두로 오늘도 정진한다

정원스님은 “선학을 매우 사랑하여 이를 생각하고 천착하며 40년을 겪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선종대찰 진전사지

[불교신문3044호/2014년9월27일자]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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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한자도 배우고 불교도 익히고

안직수 기자

승인 2016.03.15. 11:20

선종천자문 정원스님 지음/평심사 


중국 남조 양나라 때 주흥사가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는 천자문은 지금도 한자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학습서다. 이 형식을 빌려,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이 1000자의 한문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담았다. <선종 천자문>이다.


“세존염화 가섭미소 사칠이삼 부이련소(世尊拈花 迦攝微笑 四七二三 副貳蓮紹) 세존이 꽃을 드시매 가섭이 미소하고, 사칠이삼이 부이하여 연이었도다.”


선종천자문은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가섭존자에게 법을 부촉한 것을 시작으로, 황매선사, 희양선사, 백장선사의 가르침을 비롯해 6조 혜능스님을 걸쳐 선종이 한국에 들어와 발달한 과정을 담았다. 여말 나옹스님과 경한선사에서 조선 중기 휴정스님의 가르침을 4언절구 형식의 4문장으로 엮은 내용이다.

정원스님은 각 문장마다 자세한 주석과 설명을 달고 있다. 예를들어 부처님의 경우 정반왕과 마야부인에 대한 설명과 당시 인도의 현황,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을 통해 설명하는 형식이다. 한자로 압축한 내용을 풀어 설명한 것. 예문과 각주만 총 1350여 개에 달하며, 가섭존자에게 이어진 선의 가르침을 이은 290여 명의 스님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원스님은 “서역(인도)과 중화(중국), 해동(한국)의 저명한 선종인물과 그에 관련된 인연을 시대별로 서술했다. 한문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로 번역해 한자를 공부하면서 불교를 알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부록으로 천자문 색인과 선종 계보도를 삽입해 이해를 도운 것도 특징.


정원스님은 1970년 일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8년 쌍계사에서 석암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하고, 1980년 천안 광덕산 폐사지에 평심사를 창건하고 수행에 전념해 왔다. 다양한 동양의 고전과 한문, 경전에의 지식을 압축해 이번에 <선종천자문>을 발간했다.



[불교신문3185호/2016년3월16일자]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430





태화선학대사전 증보판

 

허정철 기자

승인 2017.05.29. 09:29



태화선학대사전 증보판

천안 태화산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 도량 한 켠 서재에서 30여 년을 하루같이 역경불사에 매진해온 스님은 지난 2014년 평소 열장(閱藏), 역경, 편저 과정 중 각종 등사(燈史)·어록·청규 등에서 수집한 사목(詞目)에 <선종대사전> <불광대사전> <선학요감> <선학사전> 등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행한 현대불교사전류 20종을 대조해 간행한 <태화선학대사전>을 펴냈다.

표제어 3만3475개, 예문 2만5899개, 보주 1200여개에 달하는 역작이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러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 교정한 사전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번에는 출판하지 않고 USB 메모리에 담았다. 

 

여기에는 초간본 <태화선학대사전>을 비롯해 정원스님의 저서를 모은 태화집이 수록돼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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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스님의 책상]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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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책상]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스님“‘선학사전만들어 부처님께 밥값했다고 생각해요

 

 

천안=여태동 기자

승인 2019.04.19 09:39

  

    

 

출가 후 경전과 선어록공부

1985년 평심사 창건해

출판불사 시작해 20여 권(부) 출간

한글 태화선학대사전 발간

선학사전의 금자탑 세우다

禪學 공부하는 수행자와 불자

널리 활용해 부처님 법 배우길...”

 

어떻게 가면 되냐고 물었다. “네비게이션을 치면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평심사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 밖인 유일무이한 절이란다.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천안시. 시내 어느 외곽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남구 광덕면 자무실길 113’이라는 신주소를 믿고 찾아갔더니 천안의 끄트머리 언저리다. 공주와 인접해 있었다.

 

사찰임을 알려주는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었다. 자동차가 안내하는 시골길을 따라 가다가 두어번 길을 잃었다. 겨우 도착한 평심사는 봄 정취가 그윽한 시골 암자였다. 대웅전 한 채와 요사채 한 채가 전부다. 일주문도 없고, 입구에 석재로 조성한 금강역사와 자그마한 석탑이 전부다. 평심사는 주지 정원스님이 지은 평심이라는 시에서 나왔다. 시에는 스님의 삶이 담겨 있었다.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獨居卄秋事若何) /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有時看經有時寫) / 밤마다 탐탐하며 혹 시를 짓기도 함은(夜夜酖酖或題詩) / 선계중의 습기를 제하지 못했음을 어찌하리요(不除仙中習那何) / 비 때리고 바람 붊은 묘리를 연설함이요(雨打風吹演妙理) / 꽃 피고 잎 짐은 진기를 드러냄이로다(花開葉落露眞機) / 왕고에도 여여요 미래와 현재도 여하니(往古如如來今如) / 이런 고로 평심이라 이름 함이 옳다 하노라.(是故名爲平心是)” [태화당수세록 2002년 작].

 

1985년 정원스님이 창건한 평심사에는 불전함이 없었다. 전국의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부처님 전에 불전함이 없는 사찰은 처음이다. 사격으로 봐서는 불전함을 열어 쌀이라도 사야 할 것 같은 가난이 묻어나는 절이었다. 이런 사찰에서 홀홀단신으로 총 10권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을 발간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연구는 둘째 치고 책을 발간할 어느 정도의 재력도 있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시골 가난한 흥부절이 평심사였다.

 

지독하게 공부만 하는 스님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책상에는 대장경류와 한문사전, 조사어록이 가득했고 직접 저술한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문경 봉암사 선방수좌인 어느 스님이 자신의 도반인데 평생 공부만 하며 대장경을 수차례 열독한 뒤 많은 책을 직접 저술하고 출간했고, 여타 선 어록을 직접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든 스님이니 꼭 한번 만나보라는 제보를 받았다. 불교신문에도 <태화선학대사전> 판매광고가 자그마하게 몇 번 나간 적이 있었다.

 

스님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자신에 차 있었다. 세수가 70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지금까지 경전을 공부하며 붓으로 책을 쓴다고 1000자루는 망가뜨렸을 겁니다. 직접 붓으로 써 영인해 책을 발간하기도 했지요. 그런 저런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은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책을 여럿 소개할 수 있었지요.”

 

스님은 원고 쓰기에서부터 번역과 편역, 편집, 교정까지 출판에 관련된 모든 것을 스님 혼자 했다. 하물며 컴퓨터에 없는 한자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제자(製字)와 집자(集子)까지 했다. 스님의 책상 앞에는 대형 입체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즈음 됐으면 시력이 저하돼 노안이 와 도수 높은 돋보기를 쓰고도 남았을 법한데 스님은 안경조차 끼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제게 경전을 번역하고 책을 만들어 내라고 건강한 눈을 부모님께 점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전 안경을 끼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또 있었다. 평심사에서 출간한 책은 시중에는 유통되지 않았다. 출판등록을 하고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부여받아 시중에 유통해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도서를 널리 읽도록 해야 했는데 말이다.

 

제본을 해서 시중에 유통시킬 정도의 여력이 없어요. 또 유통 마진을 주면서까지 팔릴 책들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경전과 어록들이지만 한문세대가 줄어들었고, 관심 있는 학자나 불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서 그렇게 출간을 하면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죠.”

 

다행히 스님의 대작의 출판 불사를 이해해 주는 스님과 불자들의 후원이 있어서 지금까지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원스님은 그 스님들 중 3명을 언급했다. 수원 용화사 주지 성주스님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대구 한국불교대학 회주 우학스님이었다. 이 세 스님은 정원스님의 엄청난 불서 편찬에 공감하며 적지 않은 비용을 무주상으로 후원해 주어서 큰 힘이 됐다.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 발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운 듯했다.

 

한 생 출가사문으로 살아오며 <태화선학대사전>을 발간하니 부처님 앞에 밥값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선종관련 사전으로 이 정도 규모로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화선학대사전>은 정원스님이 한국,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간된 선교사전과 선어해설서 20여종을 대조해 지난 40여 년간의 선어록(禪語錄) 연구를 통해 정리한 결정체다. 2014년 출간한 3권의 한문본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하고 한글화한 것이다. 10권으로 분량만 10,024쪽에 달하고, 사목(詞目)42,235(), 예문은 34,068()이다. 보주(補註) 역시 1,315()에 이른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선학사전을 뛰어넘는다. 일본의 <선학대사전>과 중국의 <선종대사전>은 표제어도 없고 분량도 1800여 쪽과 614쪽 정도다.

 

부산 출신인 스님은 경전에 일가견을 이뤘던 일우스님을 만나 1970년 출가사문의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을 경전공부에 매진하며 저술활동을 해 왔다. 무릇 전생에 구마라집 스님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님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묵서(墨書) 영인본의 <법문곡> <금강경육조해>, <백운화상어록> <금강경야보송> <영가증도가> <대승기신론소기회> 6권을 발간했다. 이어 스님은 고려대장경과 일본의 신수대장경에 들어 있는 중요 문구를 발췌한 수서(手書) 영인본인 <현구집>(1994)<벽암록(碧巖錄>(1996) <증보현구집>(1998)을 발간했다.

 

2000년 이후부터는 컴퓨터에 입력해 직접 편집한 불서를 출간했다. 정원스님이 900수의 한시를 게송하고 주석을 단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2004)과 한문불전등 대장경의 핵심을 압축한 <대장사원>(2009)과 중국 송대(宋代)의 선종사전인 <석자역주조정사원(釋字譯註祖庭事苑)>(2009)을 출간했다.

 

이어 대장경과 한문불전 등 선록에서 6,300여 개의 구절을 발췌한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2010), 임제 위산 앙산 운문 동산 조산 법안선사 등 7인의 어록 합본집인 <집주역해오종록(集註譯解五宗錄)>(2011), 선문염송집의 한문주석서인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2014)를 간행했다. 2014년에는 한문 선학사전으론 세계 최다 사목(詞目)과 아울러 예문(例文)<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을 발간한 후 2019년에는 한글화 해 10권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을 출간했다.

 

그 사이에는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2016), <입주역해무문관(入註譯解無門關)>(2016),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2017)를 출했다. 이 많은 저술을 스님은 인터넷에 무료로 열람하게 했다.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판매중이라 1권만 무료로 공개했다. 한문권인 대만과 중국에서는 포털사이트인 구글을 통해 스님의 저작물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정원스님은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로 경전보기를 멀리하는 풍토를 질타했다. “고금을 두고 선사들은 철저하게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가까이 성철스님조차 여러 경전과 선어록을 독파한 후 궁극에 선의 경지를 내어 보였지요. 선학을 공부하는 수행자와 불자들이 제가 만든 선학대사전을 널리 활용하길 바랍니다.”





정원스님의 서재 살펴보니...

한어대등 해진 사전 수두룩

   


스님의 생활공간은 공부하는 공간 중심으로 배치돼 있었다. 공양하는 공간은 아예 지하에 두고, 요사채 입구가 잠자는 공간이자, 출간한 책을 쌓아두는 공간이었다. 메인 공간인 접객실 겸 공부방에는 스님이 공부하는 한문사전과 스님의 저서들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도반을 포함해 누구라도 평심사에서 이틀 이상 머물면 불편합니다. 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기도 하지만 공부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지나고 더 머물려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가시라고 합니다.(웃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에서 나온 <한어대자전>이다. 8권 분량(색인포함)의 이 사전은 세계 최다의 글자가 들어 있는 사전이다. 단어는 별도로 표기돼 있지 않지만 예문이 들어 있어 글자 용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전을 스님은 너덜너덜하게 해질 때까지 옆에 끼고 살고 있었다. 이 사전을 참고하며 스님은 컴퓨터에 입력할 한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태화선학대사전> 출간 이후 스님은 <염문염송집표주>를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고 싶어한다. 한문해설서로 9400개 한문 주석이 있는데 선학공부를 하는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난관에 부닥쳐 있다. 그래도 스님은 낙담하지 않고 허허 웃는다. “이 모두가 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일인데 좋은 인연이 와 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천안=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218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 서문(序文) 및 범례(凡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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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신문광고 사진(불교신문/ 현대불교신문/ 법보신문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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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江에서 달을 보다]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


법보신문

승인 2010.06.22 14:46


대장경 항해 11년…法海서 건진 보물 세상에 내놓다


일우 선사 만나 출가 결심

사경에 쓴 붓만 1천 자루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산사 평심사(平心寺). 이곳에 30여 년 동안 은둔하고 있는 스님이 한 분 있다. 정원 스님이다. 대중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선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선사다. 정원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을 2회 열독한 스님이다. 스님이 대장경 보는 게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지만 전 대장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냥 눈으로만 대장경을 본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핵심을 파악해 해설한 책까지 내 놓았다. 『벽암록』을 비롯한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은 정원 스님의 안목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들이다. 특히 각 대장경과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및 각종 선교 및 전적에서 11만 장단구를 가려 뽑아 내 놓은 『대장서원』은 고려 일연선사의 『석원사림』 250권 편찬에 견줄만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벽암록』만 보더라도 일반 벽암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 대장경과 선적을 탐독하지 않고는 해설할 수 없는 대목이 산재해 있다. 『운문록』 등 20여 종의 선가어록의 난해구를 해설한 조정사원 역시 기존에는 맛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선미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평심사 태화당에 다다르며 정원 스님이 지은 ‘평심’ 이라는 시를 음미해 보았다. 사명인 평심사와도 연계돼 있지만 이 시 한 수에 스님의 지난 과정과 현재의 모습이 담겨져 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에서다.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獨居卄秋事若何)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有時看經有時寫).

밤마다 탐탐하며 혹 시를 짓기도 함은(夜夜酖酖或題詩)

선계중의 습기를 제하지 못했음을 어찌하리요(不除仙中習那何).

비 때리고 바람 붊은 묘리를 연설함이요(雨打風吹演妙理)

꽃 피고 잎 짐은 진기를 드러냄이로다(花開葉落露眞機).

왕고에도 여여요 미래와 현재도 여하니(往古如如來今如)

이런 고로 평심이라 이름 함이 옳다 하노라(是故名爲平心是).


대장경-불교전서-삼장법수

두 번 열독 후 명저 선보여


정원 스님은 1968년 세납 열아홉에 부산 구포에서 일우 스님을 만났다. 일우 스님은 당시 ‘괴각’승으로 소문나 있었지만 법만큼은 출중해 누구나 존경했다고 한다. 일단 법문을 시작하면 폭포수와도 같은 장광설이 떨어졌는데 한 대목도 흘려들을 게 없었다고 한다. 스승의 법문 한 토막에 출가를 결심한 정원 스님은 1970년 탈백(脫白)했다. 스승 일우 스님은 정원 스님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렸을까?


“방석 위에 앉는 것부터 배우지 마라 하셨습니다. 공부하라 했어요. 스승님도 경이나 어록 앞에 한 번 앉으면 끝장이라도 보려는 듯 무섭게 파고들었지요. 어떤 날은 석 달 동안 거의 잠도 안 주무시고 경과 어록을 보셨지요.”


정원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사경에 들어갔다.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은 물론 『속지월록』, 『백운』, 『임제어록』 등을 직접 붓으로 쓰며 공부해 갔다. 이 때 쓴 붓만도 1천여자루가 넘는다. 눈으로 보며 귀로 듣는 일반 강원 교육 형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자적인 공부 형태다.


“처음엔 스승님이 하라고 하니까 ‘예’ 하고 무작정 써 내려간 셈이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번뜩번뜩 거리는 게 있었어요. 신심이 절로 나더군요. 이후로는 한 자를 쓰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백지 위에 펼쳐졌습니다. 마치 금광을 캐 가는 기분이라 할까요!”


‘홀로 이십년을 안거하는 일이 어떠하냐 한다면, 어떤 때는 간경하고 어떤 때는 사경한다 하노라’한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정원 스님이 고려대장경 완독 원력을 처음 세운 것은 1992년. 그러니까 출가 22년째 되던 해다.


“백장, 설두, 대혜종고, 잠대충 같은 선지식을 보세요. 선을 했다고 단순히 선만 아는 게 아닙니다. 선교를 겸수했지요. 이 공부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 봐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 해 3월, 정원 스님은 인근의 천안 공동묘지 앞에서 서원했다고 한다. ‘인내심을 갖고 한 번 해 보자. 보다가 죽는다면 그냥 죽자.’ 이후 정원 스님은 11년 동안 ‘대장경’이라는 큰 바다를 항해했다. 법해(法海)서 건져 올린 보물은 그대로 세상에 나왔다. 『벽암록』과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원 스님의 혜안에 의해 해설된 내용도 독보적이만 해설에 따른 출처를 모두 밝히고 있다는 점 역시 놀랍다.


『태화당수세록』에 나온 시 한수 ‘생력’(省力)를 보자. 이 책은 정원 스님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3년간 지은 시게 700여 수를 선보이고 있는데 각 시게마다 해설이 되어 있다.


봄에 다다르면 봄을 읊고 가을엔 가을을 읊고(屆春唫春秋詠秋)

늪을 만나면 늪이요 강을 만나면 강이니(逢湫乃湫遇江江)

앞 노정을 묻지 않고 좋은 일을 행함이(不問前程行好事)

이것이 생력의 제일방이로다(此是省力第一方).


11만 장단구 뽑은 ‘대장사원’

고려 석원사림과 비견돼 화제


살펴 볼 대목은 3, 4행인데 특히 3행에 주목해 보자. ‘앞 노정을 묻지 않고 좋은 일을 행함이’라 했지만 정원 스님은 이에 대한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단지 좋은 일을 행할 줄만 알고 앞 노정 물음을 쓰지 말라’(但知行好事 不用問前程)는 ‘오등전서 권37 보령원기장’에서 취해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자신이 써간 시 한수에도 이렇듯 분명하게 출처를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치와 요처를 말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전거(典據)를 대야 합니다. 자신이 지은 말이 아님에도 자신이 처음 지은 것처럼 한다면 이 또한 거짓말이지요. 더욱이 선법을 말하는데 있어서 조사들의 고구정녕한 일언을 슬쩍 쓰면서도 그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 또한 훔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정원 스님이 이렇듯 출처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사실 이 뿐만은 아니다. 더 큰 원력이 배어있다. 후학을 위한 배려가 함축돼 있다. 자신의 박식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이 살피고 정리한 글 한 줄을, 후학이 다시 살피고 더욱 파헤쳐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붓 1000여 자루를 써가며 사경했던 필사본과 대장경을 공부한 후 내놓은 명저 『벽암록』과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가능한 한 원문을 해석할 때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직역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지만 원문을 그대로 살릴 때 더 큰 사유의 폭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원 스님은 가능한 한 직역을 택하고 있다.


대장경을 살핀 정원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수행에 따른 인가 문제다. 이에 대해 정원 스님은 시 한수로 답을 대신했다.


단지 오처가 바닥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只爲悟處不到底)

우인을 요하고 이천을 요함이 있거니와(有要遇人要履踐)

한 번 깨쳐 영원히 깨치면 이 설이 없나니(一悟永悟無此說)

관문을 벗어난 사람은 관문을 지키는 이에게 묻지 않노라(出關人不問守掾).


물론 이 시가 나온 배경과 출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백운어록에 나온 일언 즉 ‘깨치고 나서 우인(遇人, 인가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써야 비로소 옳나니 만약 우인하지 않는다면 단지 꼬리 없는 원숭이가 겨우 재롱을 떨며 나오매 사람들이 바로 웃는다’를 상기해 보라 한다. 하지만 이어 ‘만약 한 번 깨치매 영원히 깨친 것으로 대략(大略)한다면 결단코 이 설(인가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없느니라’ 한 명본선사의 일언에 귀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그대로 살핀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기에 묻는 것일 뿐, 진정 깨달았다면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문을 벗어 난 사람이 굳이 문지기에게 내가 문을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물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가가 필요 없다는 말일까?


“물어야 할 사람은 물어야 하고, 묻지 않아도 될 사람은 묻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오전인지 오후인지는 본인만 아는 일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말로는 깨달았다 해도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남아 있지요. 그러니 깨달아야 할 무엇인가를 또 찾지요. 깨닫지 못한 사람이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는 망언입니다. 이에 관한한 선인들은 참회하려 해도 참회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선지식에 의지해야 할 때가 있고, 스스로 일어서야 할 때가 또 있음을 설파한 것이리라. 대장경 속에서 건진 선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는지를 묻자 즉석에서 신 한수를 내 보였다,


한 번 명성을 보고 꿈을 바로 돌이키니(一見明星夢便回)

천년 묵은 복숭아씨에 청매가 자라도다(千年桃核長靑梅)

비록 조리된 국 맛은 아니지만(雖然不是調羹美)

일찍이 장군에 주어 갈증을 그치게 했도다(曾與將軍止渴來).


정원 스님에게 이 시는 지금도 ‘가슴 뭉클한 선시’라 했다. 이 선시를 통해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무엇일까! 이 시는 ‘오도(悟道) 화두’ 즉 ‘세존께서 샛별을 보시고 깨치셨다’는 부분에서 연유하는데 취암종이 설한 게송이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세존의 깨달음은 샛별에 있지 않고 향엄의 깨달음은 대나무를 때리는데 있지 않다.”

정원 스님이 세간에 내놓은 책 중 『대장사원』은 『석원사림』과 견줄만한 명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아쉬움이 있다. 아직 한문으로만 편찬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대만 등지에서는 보기 쉬울 수 있겠으나 국내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훗날 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도 국내서는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20여종 선가어록 난해구

해설한 ‘조정사원’도 탁월


정원 스님도 언젠가는 한글로 번역한다 했지만 지금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야 600권이나 화엄경도 이 책에서는 각각 20여 쪽에 불과하다. 핵심만을 가려 뽑아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4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이 책이 모두 한글로 번역되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에 따른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다 해도 그 시절인연이 빨리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원 스님이 어느 날 평심사 경내를 조용히 돌아보았다. 한 때는 밭이었던 땅이 주차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쓴 시 한수다. 제목은 ‘접몽(蝶夢)’이다.


등한히 언덕을 보다가 옛 물건을 엿보니(等閒看壟覰故物)

비로소 제법이 원래 모양이 없다 함을 믿게 되었노라(始信諸法元無相).

겨우 한 생각 일으키면 운니처럼 막히지만(才起一念隔雲泥)

덤으로 접몽을 얻음엔 누가 있어 방애(妨碍)하리요(瀛得蝶夢有誰妨).


혹여 대장경이나 선어록을 보다가 막히는 구석이 있다면 평심사를 찾아보라. 새로운 해석에 따른 독특한 선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원 스님도 스승 일우 스님과 마찬가지로 한 번 법을 펴기 시작하면 폭포수와 같이 뿜어내니 그릇을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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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1649






대장경서 뽑은 선기 넘치는 6300 송구 한 눈에

법보신문

승인 2010.07.28 09:52

『선림송구집』/정원 스님 집역/수미산禪


선림송구집을 엮어낸 정원 스님


남전, 귀종, 마곡이 혜충국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남전이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는 말했다. “답을 하면 함께 가겠다.” 귀종은 동그라미 안에 앉았고, 마곡은 여자가 하는 절을 했다. 이에 남전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소.” 그러자 귀종이 외쳤다. “그 무슨 마음씨인고?” 남전선사가 외쳤다. “돌아가자.”


남전 스님은 국사를 만나기도 전에 ‘혜충의 원상’을 간파했던 것일까? 귀종과 마곡이 남전자신의 마음과는 계합되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라 ‘돌아가자’한 것일까? 아니면, 세 선사 모두 자신들만의 ‘삼매’경지를 내어 보이고 있음에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보녕용이 송했다.


만만한 대지에 척설이 가득하니(漫漫大地盈尺雪)

강호가 한 조각이라 분별하기 어렵도다.(江湖一片難分別)

어부가 도롱이를 입고 달 아래 돌아가니(漁父披蓑月下歸)

누가 말하느냐. 야행에 인로가 끊겼다고.(誰道夜行人路絶)


보녕용도 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분별의 어려움을 참으로 멋지게 읊었다. 하얗게 내린 눈으로 인해 강과 호수는 하나가 되었으니 분별하기 어렵다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다시 분명 ‘길’이 있다고 한다. 세 선사의 마음 한 자락을 꿰뚫는 길이 있다는 뜻이리라.


이처럼 화두 하나에 얽힌 조사들의 게송 하나하나는 선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한다. 화두가 뿌리라면 조사들의 게송은 잎이요 열매다. 그 열매를 맛본다는 것은 어쩌면 선에 다가 간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작은 선물일 것이다.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이 내놓은『선림송구집』은 우리를 선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에 충분하다. 고려·신수·속장경과 한국불교전서 등에 실린 선록(禪錄)과 선서(禪書)에서 가려 뽑은 6300여 개의 장단송구를 담고 있다.


단순히 선의 송구를 모아만 놓은 게 아니다. 일단 7언 4구, 7언 2구, 5언4구, 5언 2구식의 품류를 먼저 고려한 후 송구의 첫 한자의 획수와 그에 따른 한글 가나다 순까지 고려해 배열했다. 한마디로 사전식 편찬이다. 따라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게송 첫 글자만 알아도 이 책을 통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 발췌한 게송의 전거(典據)까지 적시하고 있다.


정원 스님의 혜안에 따라 송구가 갈무리 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정원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 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을 2회 열독 한 바 있다.


이후 『벽암록』을 비롯해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등을 잇달아 내놓았는데 이 중에서도 각종 선교와 선적에서 11만 장단구를 가려 뽑아 내놓은 『대장서원』은 고려 일연선사의 『석원사림』 250권 편찬에 견줄 만 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정원 스님의『선림송구집』을 펼쳐보라. 분명, 옛 조사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울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1십만원. 문의)041-566-7503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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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67






중국 5대 종파 7인 선사 선지 한 눈에


법보신문

승인 2011.11.07 16:04

‘오종록’ / 정원 집주 역해 / 수미산 선

집주역해(集註譯解) 오종록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을 대표하는 임제, 덕산.

임제 선사는 ‘할’을 쓰고, 덕산 선사는 ‘방’(몸둥이 회초리)을 썼다. 임제 ‘할’, 덕산 ‘방’을 두고 ‘벽암록’에서는 이렇게 평한다. “덕산 스님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주장자의 모습은 마치 소나기 빗방울 쏟아지듯 하고, 임제 스님의 고함 소리는 벼락 치듯 한다.”

임제 선사는 할만 썼을까? 아니다. ‘불법이 무엇이냐’묻는 제자의 질문에 임제는 주장자를 세워 보였고, 이에 제자가 ‘할’을 하자, 임제는 그 주장자로 제자를 후려쳤다.

그 주장자 또한 덕산의 ‘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임제의 선기는 오늘도 쩌렁쩌렁 하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임제는 정녕 사자후만 토하고 자비로운 일언 하나 없었단 말인가? 아니다.

임제 선사가 어느 날 시중설법 했다. “납자들이여, 불법을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 없이 똥 싸고 오줌 누고,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라. 그 뿐이다.”

임제가 그토록 ‘벼락같은 고함’을 낸 건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라’는 뜻을 알아가게 하기 위한 또 다른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이처럼 한 선사의 선지를 확연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다양한 법거량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임제 선사만 하더라도 벌써 ‘할’외의 두 단계 방편이 더 있지 않은가.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이 선보인 ‘오종록’은 선의 진수를 맛보기에 충분하다. 우선 오종록이라 하면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의 5대 종파 대표선사 어록, 즉 오가어록를 말한다. 여기에는 임제, 위산, 앙산, 법안, 운문. 동산, 조산 7인 선사의 어록이 올곧이 담겨 있다.

정원 스님이 내놓은 ‘오종록’은 단순한 선사어록 합본집이 아니다. 3천1백 개의 한문주석을 모아 원문과 함께 수록한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역해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제는 물론 동산, 법안, 운문 선사들의 선지를 여실하게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오종록’을 보려 한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먹을 것 다 먹고, 잘 것 다 자’며 이 어록을 보려 한다면 임제 선사로부터 호된 꾸지람과 함께 한 방 먹을 것이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운문 스님이 전한 일언에 기대보자. 제자가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밟아가야 합니까?” “걸음걸음 밟아가야 한다.” 7인 선사의 법을 헤아려 보면 분명 얻는 게 있을 것이다. 12만원. 041)566-7503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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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8042





‘선문염송’ 한문 주석 9400개로 재해석


이재형 기자

승인 2013.01.29 17:06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

‘선문염송집표주’ 완성

공안 출처 등 상세 풀이

“염송 최고 해설서” 평가

웹하드에 무료로 제공


‘천하제일의 선서(禪書)’로 일컬어지는 ‘선문염송’. 고려 혜심국사에 의해 편찬된 이 책은 스님이 채집한 공안 1125칙과 수선사 제3세 국사인 몽여 스님이 모은 347칙의 공안을 더해 편찬한 것으로 한국 최고의 선서로 꼽힌다. 특히 ‘선문염송’은 한국 간화선의 정착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선문염송’은 그 유명세에 비해 연구는 극히 미비했다. 이 책이 온전한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이런 가운데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이 방대한 선문염송의 출처를 일일이 밝히고 그에 대해 상세히 풀어쓴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을 완성해 일반에 공개했다.


은둔의 학승이 이룬 업적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선문염송집표주’은 각각의 공안에 대한 정확한 출처를 밝히는 등 9400여개에 달하는 방대한 주석이 특징이다. 더욱이 서문부터 해설까지 모두 한문으로 써내려갔다는 점도 놀라운 점이다. 지난 1995년 ‘선학사전’(불지사 간) 편찬자로 참여했던 이철교 선생은 정원 스님의 ‘선문염송집표주’을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비록 일반인들이 읽기 어렵기는 하지만 원전에 대한 철저한 주석은 이 책이 발간된 이후 나온 연구서나 번역서들 중 단연 돋보인다는 것이다.


정원 스님이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처럼 극단적인 학문에의 매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0년대 출가 때부터 경전과 선어록을 사경했다는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학문정진’에 돌입했다. 작은 사찰 공간을 무문관 삼아 ‘글을 읽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고려대장경, 속장경, 대정신수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을 한권씩 독파해나갔다. 막히는 부분은 중국의 ‘한어대자전’을 참고했다. 하루 13~14시간씩 10년간 한눈팔지 않고 ‘문자삼매’를 이어갔고, 결국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대장경들을 1번도 아닌 2번이나 완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옛 경전과 선어록을 다 읽고 났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어대자전이 너덜너덜해진 것도 그 중의 하나겠지만, 경전과 선어록의 뜻이 통하는 것은 물론 난해했던 선어록의 내용이 절로 눈에 들어왔다.


이후 스님은 ‘벽암록’을 비롯한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 웬만한 학자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저서들에 대한 방대한 해설을 한문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선문염송집표주’도 지난 2년간 선문염송과 각종 문헌들에 매달려 일궈낸 성과다. 스님이 한문을 고집하는 것은 이것을 한글로 해설할 경우 그 분량이 감당할 수 없도록 많은데다가 한글로 번역하더라도 읽을 사람들은 극히 드문 상황에서 차라리 이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나라 학자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다.


‘선문염송집표주’ 작업을 모두 마친 스님은 최근 3만개의 표제어를 목표로 선종 사전 편찬 작업에 다시 착수했다. 비록 일본 고마자와대학에서 10만 어휘가 담긴 ‘선학사전’을 펴냈지만 일본 지명, 인물, 책이름 등을 빼면 정작 중요한 것은 2만개도 안 된다는 게 스님의 지적이다. 그나마 중국의 선종사전은 표제어가 1만개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 정원 스님은 그동안 연구 성과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웹하드(www.webhard.co.kr)를 통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디는 pyungsimsa, 비밀번호는 7503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4086







표제어 3만3475개…세계 최대 한문 선학사전 발간


이재형 기자

승인 2014.09.30 10:30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 편찬

기존 선어록·주해서 총망라

구체적 용례도 2만6천개 수록

“선 풍부하게 설명” 평가


▲ 정원 스님이 편찬한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




세계 최대 규모의 한문 선학사전이 국내 한 스님에 의해 완성됐다.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은 최근 3000쪽 분량의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총 3권)을 펴냈다. 표제어가 총 3만3475개이며, 출전과 용례도 2만5899개에 이른다. 일본의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1985년)과 중국의 ‘선종대사전(禪宗大辭典)’(2010년)이 표제어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 1800여쪽과 614쪽 분량이라는 점에서 ‘태화선학대사전’은 이들 사전을 훨씬 능가한다.

정원 스님은 사전 편찬을 위해 한국,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간된 7종의 불교·선학 사전과 주요 선어해설서 13종을 꼼꼼히 대조해가며 첨삭한 뒤 한자의 부수와 한글 음의 순서에 따라 표제어를 배치했다. 여기에 수록된 2만5899개의 용례들은 정원 스님이 지난 40여년 간 선어록을 연구하며 정리했던 내용들이다. 또 1220여개의 주석과 더불어 사전 말미에 부록으로 게재한 57쪽 분량의 ‘서역·중국·한국·일본의 선등계보약도(禪燈系譜略圖)’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995년 ‘선학사전’(불지사 간) 편찬자로 참여했던 이철교 전 동국대출판부장은 정원 스님의 ‘태화선학사전’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존의 어떤 선학사전보다 선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방대한 선어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신규탁 연세대 교수도 “한 개인의 인내와 원력으로 만들어낸 뛰어난 성과물”이라며 “구체적인 전거와 용례가 많이 수록돼 선학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원 스님의 한문과 불교전적에 대한 이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살 때 선과 교에 두루 밝았던 일우 스님과 인연이 닿아 21살 때 정식 출가한 정원 스님은 그때부터 경전과 선어록을 사경했다. 특히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간경정진’에 돌입했다. 천안의 궁벽한 산골에 위치한 평심사에서 “글을 읽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고려대장경, 만속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을 하나하나 독파해나갔다. 막히는 부분은 중국의 ‘한어대자전(漢語大字典)’을 참고했다. 옛 선승들이 턱 밑에 송곳을 받쳐놓고 좌선하듯 정원 스님은 매일 13~14시간씩 10년간 한눈팔지 않고 문자의 오묘한 세계에 침잠해 들어갔다. 그 결과 정원 스님은 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대장경들을 2번이나 완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옛 경전과 선어록을 다 독파했을 때 한어대자전은 너덜너덜해졌다. 동시에 경전과 선어록의 뜻이 통하기 시작했고 난해했던 선어록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스님은 고려대장경·신수대장경·한국불교전서 등을 압축 정리한 4500여쪽 분량의 ‘대장사원(大藏辭苑)’을 비롯해 선종 최초의 사전인 ‘조정사원(祖庭事苑)’ 역주, 각종 불교전적에서 6300여개의 송(頌)과 구(句)를 발췌한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등을 잇따라 펴냈다. 지난해 초에도 천하제일의 선서(禪書)로 일컬어지는 ‘선문염송’의 출처를 일일이 밝히고 9300여개의 주석을 단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을 완성해 CD로 간행 공개했다.


‘태화선학대사전’은 스님의 다른 책이 그렇듯 학술적 가치와는 별도로 대중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선학사전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전체가 한문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정원 스님은 “굳이 한문을 고집한 것은 한글로 엮어내더라도 읽을 사람들은 드문 상황에서 차라리 이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나라 학자들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며 “이 사전이 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41)566-7503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64호 / 2014년 10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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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3817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 서문(序文) 및 범례(凡例)

http://blog.daum.net/pyungsimsa/16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 한문본(漢文本) 무료(無料. 免費) 다운로드(下載)

此漢文本泰華禪學大辭典可自由免費流通

http://www.webhard.co.kr/

IID pyungsimsa

PW 7503

增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불교식 ‘천자문’으로 읽는 선종 역사


이재형 기자

승인 2016.03.21. 17:07

선종천자문’ / 정원 스님 / 평심사



▲ ‘선종천자문’

이 책은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이 기존 ‘천자문’ 형식을 빌려 1000자의 한자 중 단 1자도 중복되지 않게 4언4구 62.5행을 게송으로 서술한 선종의 역사서다. 그런 만큼 중국적인 세계관을 깔고 있는 일반 ‘천자문’과는 달리 전형적인 불교의 세계관을 표방한다.

‘世尊捻花 迦攝微笑(세존념화 가섭미소: 세존이 꽃을 드시매 가섭이 미소하고)’로 시작하는 ‘선종천자문’은 ‘欲識助辭 焉哉乎也(욕식조사 언재호야: 조사를 알고자 한다면 언제호야니라)’로 끝마친다. 정원 스님은 1000개의 글자로 인도, 중국, 한국의 저명한 선종인물과 그와 관련된 인연, 기연(機緣) 등을 시대별로 서술했다. 그렇게 다룬 인물이 무려 290명이며, 예문이나 각주도 1350여개에 이른다. ‘선종천자문’으로 간략한 선종의 언어와 역사, 그리고 선종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각각의 구에 대한 설명 전체를 한문으로 상세히 풀어낸 뒤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싣고 있는 점도 놀랍다. 또 중국 선어록을 비롯해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조당집, 한국불교대사전, 동양연표 등에 언급된 자료들을 토대로 선종의 법맥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선등세계약보(禪燈世系略譜)’를 수록했으며, 남악, 위앙, 임제, 양기, 황룡, 운문, 법안, 청원 조동, 태고에서 시작되는 주요 선사들의 전등 역사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중국 양나라 때 주흥사가 ‘천자문’을 쓰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 부를 정도로 모두 다른 1000자로 한자를 이용해 문장을 짓는다는 것은 난해함의 극치다. 한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고도의 훈련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문을 사용했던 조선시대도 아닌 현대에서 선종의 특성에 맞는 천자문을 새로 만든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저자인 정원 스님의 한문에 대한 탁월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정원 스님은 2014년 표제어 총 3만3475개, 출전과 용례 2만5899개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문 선학사전인 ‘태화선학대사전(泰華禪學大辭典)’(총 3권)을 편찬한 실력자다. 스님은 4언4구 게송 형식으로 쓴 이 책 서문에서 “늙은 정원이 너무 한가함을 이기지 못해 칠주야(七晝夜)를 소비하여 이 사한을 지었다”며 “사언사구가 육십이반이니 일천자 중에 중복된 자는 없다”고 밝혔다. 전체 700여쪽에 이르는 이 책의 가격은 9만원이다. 010-7566-7503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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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1714







박람강기 스님의 무문관 풀이


이재형 기자

승인 2016.06.07 16:55


입주역해 무문관’ / 정원 스님 역해 / 평심사


                  

▲ ‘입주역해 무문관’‘


무문관(無門關)’은 송나라 무문혜개 선사가 조사들의 어록에서 공안 48칙을 선별해 평창과 송을 덧붙인 공안집이다. 이 책은 ‘벽암록’ ‘종용록’과 더불어 오랜 세월 참선수행자들의 바랑 한 귀퉁이를 차지할 정도로 중시됐다. 48개 관문을 뚫으면 역대조사와 손을 잡고 그들과 동일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많은 납자들이 문 없는 문을 통과하려 치열하게 정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무문관’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유독 한국에서 홀대받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천안 평심사 정원 스님이 ‘무문관’ 48칙에 한문 주석을 넣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한 ‘입주역해 무문관(入註譯解無門關)’을 펴냈다.

정원 스님은 ‘무문관’이 “말은 간략하고 뜻은 풍부하며 참선수행의 경로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마음을 쉬고자 하는 이가 무문관의 면목을 간파한다면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스님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를 위해 번역문 중 한자는 모두 한글을 병기했다. 주석·예문·각주가 1500여개에 이르며, 여기에 언급된 예문이나 용어들 하나하나에 모두 출처를 밝혔다.


이러한 지난한 작업이 가능한 것은 정원 스님의 박람강기(博覽强記)에서 비롯된다. 1970년 일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부터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 주석한 스님은 원을 세우고 방대한 대장경을 두 번이나 열람했다. 문리가 트고 눈이 열린 스님은 이후 고려대장경·신수대장경·한국불교전서 등을 압축 정리한 4500여쪽 분량의 ‘대장사원’을 비롯해 선종 최초의 사전인 ‘조정사원’ 역주, ‘선문염송’의 출처를 일일이 밝히고 9300여개의 주석을 단 ‘선문염송집표주’를 완성했다. 또 표제어가 총 3만3475개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문 선학사전인 ‘태화선학대사전’(총 3권)을 비롯해 올 초에는 ‘천자문’ 형식을 빌려 1000자의 한자 중 단 1자도 중복되지 않게 게송으로 선종의 역사를 서술한 ‘선종천자문’을 펴내기도 했다.

입주역해 무문관’이 마음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옛글이 갖는 고풍스러움과 더불어 ‘무문관’의 정취에도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전체 570여쪽에 이르는 이 책의 가격은 8만원이다. 010-7566-7503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2850





세계 최대 한문선학사전 증보판 나와

김규보 기자

승인 2017.05.29 15:19


평심사 정원 스님 편찬

표제어 8000여개 추가

‘태화집’까지 USB 유포


세계 최대 규모의 한문 선학사전 ‘태화선학대사전’의 표제어를 대폭 추가하고 내용을 보완한 증보판이 나왔다.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사진>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의 내용을 증보·교정해 USB(컴퓨터 파일을 담은 연결기기)로 출시했다. 앞서 스님은 2014년 표제어 3만3489개, 예문 2만5902개, 주석 1200개를 모아 3000쪽 분량의 ‘태화선학대사전’ 초간본을 발간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간된 7종의 불교·선학 사전과 주요 선어해설서 13종을 대조해 표제어를 배치했으며 40여년간의 선어록 연구를 통해 정리했던 내용을 용례로 풀이한 것이었다. 방대한 선어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불사에 학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이후 스님은 2015년 말부터 16개월 동안 증보와 교정 작업에 매진해왔고 올 3월 표제어 4만1961개, 예문 3만3748개, 주석 1331개에 이르는 증보판을 완성했다. 이번 증보판이 더욱 특별한 것은 스님이 20년간 선학을 연구해온 결실인 ‘태화집’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태화집’은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대장사원(大藏辭苑)’ ‘석자역주조정사원(釋字譯註祖庭事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집주역해오종록(集註譯解五宗錄)’ ‘선문념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무문관(無門關)’ ‘벽암록주해(碧巖錄註解)’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으로 구성된다. ‘태화선학대사전’과 ‘태화집’을 합치면 무려 1만6083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정원 스님은 “평생 공부해왔던 결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 불교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증보판 작업에 매진해왔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USB 유포를 결정했다”며 “대만의 경우 선학사전 관련 후원이 활성화됐지만, 한국의 경우 그러지 못해 증보판의 정식 발간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태화선학대사전’에 ‘태화집’까지 합친 증보판 발간으로 이번 생의 역할은 마무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차후 뜻 있는 분의 발심이 있다면 ‘태화선학대사전’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1만원.

010-7566-7503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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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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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가치·대중성 담보한 최고 한글 선학사전



심정섭 전문위원

승인 2019.03.12 11:07



‘국역태화선학대사전’ / 정원 스님 편찬 / 평심사


국역태화선학대사전’

세계 최대 규모의 선학사전인 ‘태화선학대사전’을 펴내며 대중의 찬탄을 받았던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이 이를 한글로 풀어 ‘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권으로 완성했다.

정원 스님이 최근 완성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지난 2014년 완성한 한문본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한 후 한글화 한 것으로 5년에 걸친 역경불사다. 전체 10권에 걸친 분량만 1만24쪽에 이르고, 사목(詞目)은 4만2235항, 예문은 3만4068조(條)에 달한다. 또 보주(補註)도 1315목에 이르는 등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스님은 한글 번역에 앞서 한문 사전 편찬을 위해 한국, 중국, 대만, 일본에서 발간된 7종의 불교·선학 사전과 주요 선어해설서 13종을 꼼꼼히 대조해가며 첨삭한 뒤 한자의 부수와 한글 음의 순서에 따라 표제어를 배치했다. 당시 초간본에 수록된 사목(詞目) 33,475조(條)와 2만5899개의 용례들은 스님이 지난 40여년간 선어록을 연구하며 정리했던 내용들이다. 또 1220여개의 보주와 더불어 사전 말미에 부록으로 게재한 57쪽 분량의 ‘서역·중국·한국·일본의 선등계보약도(禪燈系譜略圖)’도 주목을 받았었다.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꼬박 10년을 “글을 읽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을 통독했다. 막히는 부분은 중국 ‘한어대자전’을 참고했다. 옛 선승들이 턱 밑에 송곳을 받쳐놓고 좌선하듯 정원 스님은 매일 13∼14시간씩 10년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문자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도저히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대장경들을 2번이나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핵심을 파악해 해설한 책까지 내놓았다. ‘벽암록’을 비롯한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조정사원’ 등은 스님의 안목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로 꼽힌다. 특히 각 대장경과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및 각종 선교 및 전적에서 11만개에 달하는 장·단구를 가려 뽑아 내놓은 ‘대장서원’은 고려 일연 스님의 ‘석원사림’ 250권에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님은 그렇게 오롯이 10년 동안 여러 대장경을 공부하면서 유독 선학 쪽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때문에 사전을 찾기도 했으나,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때의 답답함이 직접 이 방대한 분량의 ‘태화선학대사전’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됐다.


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이 ‘태화선학대사전’을 한글로 번역해 10권 분량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으로 완성했다.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선학 관련 사전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정원 스님이 내놓은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그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공부는 좋은 사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신념을 지닌 스님은 한글뿐만 아니라 원문 및 예문과 출처가 함께 있어서 한자문화권 사람이면 누구나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사전을 만들면서 편역, 수교(교정), 타자, 조판에 이르는 출판 작업을 직접 해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님의 이러한 원력은 스승 일우 스님으로부터 비롯됐다. “방석위에 앉는 것부터 배우지 말라”고 했던 스승의 경책을 잊지 않은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사경을 시작했다.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은 물론 ‘속지월록’ ‘임제어록’ 등을 붓으로 쓰며 공부했고, 그렇게 경전과 어록을 옮겨 적으며 스님 손을 거쳐 소멸된 붓만 천 자루에 달한다.

“선은 부처의 마음이며 교는 부처의 말씀이거늘 어찌 둘이 있으리오. 선은 곧 문자를 여읜 교이며 교는 곧 문자에 붙은 선”이라며 선과 교가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 스님은 “불립문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불교 공부를 포기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궁금한 사람이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스스로 번역하고 지은 역서와 저서를 모두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렇게라도 대중들이 고전을 봤으면 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더불어 공부에 뜻을 둔 후학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스님의 당호인 태화를 따서 이름 지은 ‘태화선학대사전’을 이 시대 대중들이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10권 분량으로 번역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을 담보한 이 시대 최고의 한글 선학사전이라 할 만하다. 사전은 직접 문의하고 구입할 수 있다. (010-7566-7503)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80 / 2019년 3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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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정가 80만 원  우체국 311787-02-000518  예금주 김호열 

구입문의 010-7566-7503(정원)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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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광고 사진(불교신문/ 현대불교신문/ 법보신문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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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最多 표제어 한문 선학사전 출간

박재완 기자

승인 2014.09.26 20:49

태화선학대사전 - 전3권(한문본) / 정원 스님 편찬|수미산선 펴냄|전3권 30만원


태화선학사전

표제어 33,475조, 3책 3천 쪽

저자 40여년 공부 집약한 역작

한글본 아닌 한문본 출간 이유는

연구 성과·사전 편찬역량 등

세계에 한국 선학계 위상 세우고

원문의 오역 최소화하기 위함

세계 최다(最多) 표제어를 수록한 한문 선종사전이 출간됐다. 천안 평심사 정원(淨圓) 스님이 편찬한 〈태화선학대사전〉이다. 사전에는 수록 표제어 33,475조, 예문 25,899, 참조 표제어 1,200여 개가 실렸으며, 전 3책(3,000쪽)이다. ‘태화’는 정원 스님의 당호이다.


책은 편자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平心寺) 정원 스님이 1970년 이래 대장경을 열람하고 불교 경전과 어록을 번역하고 〈현구집(玄句集)〉, 〈벽암록(碧巖錄)〉, 〈오종록(五宗錄)〉, 〈오가어록〉,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 등 10여 종의 저서를 편찬 간행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어휘에 각종 전등사서(傳燈史書)·선사(禪師)들의 어록(師語錄)·선종 사찰의 청규(淸規) 및 중·근세에 편찬 간행한 선학 사전인 〈조정사원(祖庭事苑)〉(宋·睦庵善卿 편)·〈선림소어고증(禪林疏語考證)〉(明·永覺元賢 편)·〈선림상기전(禪林象器箋)〉(日本·無着道忠 편) 등에서 수집한 어휘를 보태고, 이를 〈선종대사전(禪宗大詞典)〉(중국·袁賓 편)·〈불광대사전(佛光大辭典)〉(대만·佛光山寺 편)·〈선학요감(禪學要鑑)〉(일본·相澤專海 편)·〈선학사전(禪學辭典)〉(한국·불지사 편) 등 중국·대만·일본·한국 4국에서 발행한 선교사전 7종과 선어해설서 13종, 현대 불교사전류 20여 종을 대조하여 증첨하고 정원 스님이 평생 수집한 문구를 증첨하여 한문으로 편찬한 것이다.


사목(詞目)의 배열 순서는 첫째 한자부수를 따랐으며, 둘째 한글의 한글음(가나다순)을 따라 차례로 안배했다. 사목엔 한글음을 병기했으며, 한글의 두음법칙을 쓰지 않았다. 사목에 병기한 한글음은 범어 외엔 대개 원음으로 표기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예컨대 布施(포시) 十方(십방) 南泉(남천) 遍照(편조) 呵呵(하하) 등등이다. 선적 인용 예문은 ▲號로 표시했으며, 선적 외 인용한 내외전의 예문이나 및 주해는 △號로 표시했다.

조선조 이전 해동 선종의 선사나 거사는 기록이 없더라도 편입했으며, 중화의 임제 위산 운문 법안 동산 아래의 모든 선사 거사 등은 크게 7宗으로 나누어 표시했으니 곧 임제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 양기파 황룡파이다.


〈태화선학대사전〉은 2014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표제어를 수록한 한문 선학사전이며, 부록으로 서역·중국·한국·일본의 〈선등 계보 약도〉를 실었다. 또한 편찬, 입력, 편집, 제작 등 전 과정을 편자가 직접 수행한 자가 출판본이다. 〈태화선학대사전〉의 출간은 편집 작업에는 약 20여 개월이 소요됐지만 정원 스님 40여 년 공부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선종의 어사(語詞)를 해석한 선학사전류의 국내 출간은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관련국에 비해 매우 저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태화선학대사전〉이 한글본이 아닌 한문본이라는 점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태화선학대사전〉 출간의 취지와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태화선학대사전〉은 ‘국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정원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을 한문으로 출간한 이유는 세계 선학계에 한국 선학계의 연구 성과 및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학문적으로는 용어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선학연구에 있어 국제적으로 한문본의 효용과 수요가 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태화선학대사전〉의 출간의 의미와 취지는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저자인 정원 스님은 언제라도 여건이 허락되면 〈태화선학대사전〉의 한글본 출간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10월 말 경에는 〈선문염송집표주〉 한문주석서를 ‘문헌보존용’으로 100권 한정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다음 출간 계획을 밝혔다.


저자 정원 스님은

1970년 8월 일우 스님을 의지하여 출가했다. 1980년까지 일우 스님으로부터 선교를 배웠다. 1984년 8월 천안 광덕면 매당리에 평심사를 창건하고 11년 간 칩거하며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대일본속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 내전을 두 차례 열독했다.


1994년 각종 선교의 전적, 사서, 노자, 장자, 채근담의 명구 및 구송을 모아 자필로 서사한 〈현구집〉을 출간했으며, 1996년에는 〈벽암록〉을 번역 주석하고 자필로 서사하여 출간했다. 2005년에는 1992년~2004년에 지은 시게(詩偈) 700여 수를 모아 번역 주석한 〈태화당수세록〉을 출간했다.


2005년~2009년까지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대일본속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三藏法數)〉 및 각종 선교의 전적(典籍)에서 11만 장단문구(長短文句)를 가려 뽑아 직접 입력하여 〈대장사원(大藏辭苑)〉 DB를 구축했다.


2009년에는 〈대장사원(大藏辭苑)〉 〈현구집〉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 〈선등세보(禪燈世譜)〉 및 십삼경(十三經), 이십사사(二十四史), 제자백가(諸子百家), 동양연표(東洋年表) 등 그 동안 구축한 DB를 공개했다. 또한 송대(宋代) 선승 목암선경(睦庵善卿)이 〈운문록(雲門錄)〉 등 20여 종의 선가어록(禪家語錄)의 난해구를 해설하고 오자와 탈자를 교정한 〈조정사원(祖庭事苑)〉을 석자역주(釋字譯註)하여 출간했다.


2010년에는 선가(禪家)의 각종 어록·등록(燈錄)·승전(僧傳)·송고(頌古)·염송(拈頌) 등에서 장단송구(長短頌句) 6,300여 항목을 가려 뽑아 역해(譯解)하고 그 출전(出典)을 밝힌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을 출간했다.


2011년에는 임제(臨濟), 위산(山)·앙산(仰山), 운문(雲門), 동산(洞山)·조산(曹山), 법안(法眼) 등 선문(禪門) 5종(五宗) 7조사(七祖師)의 어록을 집대성한 〈오종록(五宗錄, 통칭 五家語錄)〉을 집주역해(集註譯解)하여 출간했다.


2013년에는 고려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이 편찬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의 출전·인명·어구 등을 주석한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를 CD로 간행했으며, 2014년 6월에 〈태화선학대사전〉을 한문본으로 출간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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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천안·글=신성민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승인 2019.02.15. 16:08



사전에 禪學을 망라하다


산문 밖의 禪- 정원 스님(천안 평심사 주지)

정원 스님은… 1969년 일우 스님을 의지해 출가했으며, 1980년까지 일우 스님으로부터 선교를 배웠다. 1984년 8월 천안 광덕면 매당리에 평심사를 창건하고 11년 간 칩거하며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대일본속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 내전을 두 차례 열독했다. 이후 〈현구집〉을 비롯해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大藏辭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를 간행했다. 2014년 6월에 〈태화선학대사전〉을 한문본으로 출간했으며, 2016년 〈선종천자문〉을 발간했다. 올해 1월에는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한글화 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을 10권으로 완간했다.


사전(辭(事)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와 함께 했다. 어문을 익히는 데 기본이 되는 단어의 의미·품사·용법·어원·표기법 등을 해설하거나 일련의 사상에 대한 분석과 정보들을 사전은 제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은 인류 지식의 요체를 모은 결집이면서 확장을 도모하는 교보재이기도 했다.


불교에도 이 같은 사전들이 고래(古來)로 존재했다. 송나라의 선경(善卿)이 선지식의 어록에서 어려운 낱말 2400여 개를 꼽아 풀이하고 그 출전을 밝힌 〈조정사원(祖庭事苑)〉은 일종의 불교 선학 사전이다.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불교가 학문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불교사전들이 발간되기 시작했음에도 유독 〈조정사원〉과 같은 선학사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학사전’이라는 대작불사



〈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권 완간

2014년 태화선학사전 증보·韓譯

1만 페이지·4만 2천여 사목 자랑

경전·어록 근거 예문 3만 4천條

中·日 사전보다 방대·질도 우수

매일 평균 14시간 간경·번역 작업

디지털 문서·조판 직접… 1인 4역


내가 사전을 만든 이유는


1992~2002년 대장경 등 2차례 열독

의문 해결할 좋은 사전 없어 시작

원문 복기 안되는 경전 번역은 잘못

정신·물질 힘들어도 후학위해 노력


진짜 선학사전이 나오기까지

하지만, 근자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선학사전인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이 10권으로 완간됐다는 것이다. 이를 편찬한 사람은 천안 매당리 평심사라는 작은 사찰의 주지인 정원 스님이다.


스님이 편찬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2014년 내놓은 한문본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한글화 한 것으로 무려 5년에 걸친 역경불사였다.

10권에 걸친 분량만 10,024쪽에 달하며, 사목(詞目)은 42,235항(項), 예문은 34,068조(條)이다. 보주(補註) 역시 1,315목(目)에 이른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선학사전을 뛰어넘는 분량으로 스님 스스로 세계 최대 규모라고 자부하는 이유가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 일본의 〈선학대사전(1985)〉과 중국의 〈선종대사전(2010)〉은 표제어도 없고 분량도 1800여 쪽과 614쪽 정도다.


정원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이야말로 선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사전임을 강조했다.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됐음에도 선학 관련 사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중국과 일본에 사전이 있기는 하나 너무 빈약합니다. 하지만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한글뿐만 아니라 원문 예문과 출처가 함께 있어서 한자문화권 사람이면 누구나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원 스님은 2014년 〈태화선학대사전〉까지만 불사를 할 생각이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태화선학대사전〉 발간에 도움을 준 이철교 前 동국대 출판부장이 이번에도 불을 붙였다. 그는 한음순(韓音順)으로 정렬한 사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스님은 결국 고민 끝에 한글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스님의 출판 불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뿐만 아니라 서문에도 밝히고 있지만, 스님의 출판은 모두 어느 누구의 도움없이 사찰 요사채 안에서 혼자 작업해 이뤄진다. 편역, 수교는 물론 컴퓨터 문서 작업과 조판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 세납이 70세지만,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컴퓨터 문서 작업에 능숙하다. MS워드와 한컴오피스의 장단점까지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다.


“혼자서 하니까 너무 힘들죠.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평균 14시간을 작업해서 지금의 국역본 사전을 편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금이 없으니 학자나 출판업체에 맡길 수 없습니다. 1만여 쪽에 대한 타자 작업 비용만 1억 5천만 원이 들어요. 내가 편역부터 컴퓨터 조판까지 1인 4역을 하는 이유입니다.”

컴퓨터 앞에서 조판을 하고 있는 정원 스님. 편역, 수교, 타자, 조판 등 출판 작업을 모두 혼자 진행한다.


공부는 좋은 스승과 사전 있어야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함에도 정원 스님이 사전 편찬 불사를 오롯이 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는 좋은 사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평소 스님의 지론 때문이다. 스님은 공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는 ‘좋은 스승’이고 둘째는 ‘좋은 사전’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정원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을 2회 열독했다. 대장경 등 내전을 2차례 읽어가는 데 선학 쪽 용어가 막혔다. 그래서 사전을 찾았는데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 편찬 계기를 묻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짧게 답한 것이다. “내가 답답해서. 답답해서 못 살겠더라.”


정원 스님은 대장경과 어록을 보면서 출처와 예문들을 모두 정리했고 이는 국역에 앞서 내놓은 2014년 한문본 사전에 모두 담겼다. 사전 안에 “쓸데없는 말이 없다”고 자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사전에는 경전과 어록에 대한 출전과 원문 예문까지 친절하게 수록돼 있다.


그렇다면 장장 11년동안 두문불출 내전을 간경한 계기는 무엇일까. 스님은 경전 역경을 꼽았다. 출가 이후 경전 번역을 시작했지만, 하다보면 오류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대장경을 통독하자는 원력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30년 전부터 경전 번역을 했죠.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으니 모두 붓으로 썼습니다. 대장경 간경을 발원하고 〈고려대장경〉을 구해 읽었는데 이는 오픈게임이었어요. 〈고려대장경〉을 다 읽었는데도 모르는 것이 나와서 〈대정신수대장경〉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대정신수대장경〉은 오자도 많고 어록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속장경〉을 구해서 읽었어요. 이를 반복한 것입니다.”


스님의 번역은 직역이다. 시문이나 소설은 의역이 가능하지만, 불교 경전은 의역을 하면 안된다는 게 정원 스님의 주장이다. 한 글자(一字)의 해석만으로도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문을 복기할 수 있어야 잘된 번역이라고 본다. 그래서 스님은 이번 국역 사전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문불전의 역한가(譯韓家)들은 직역하는 자가 드물게 있다. 그러나 많이들 이르기를 나는 직역한다 하거니와 정원이 이르나니 만약 능히 번본으로 방불하게 원본을 복기(復記)하지 못한다면 직역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오번이 있을까 염려스럽다고 이른다.”


“불립문자? 공부 포기한 사람이 하는 말”


나의 수행·원력의 뿌리는 스승


일우 스님을 은사로 1969년 출가해

첫 배움 선문염송… 선·교 모두 중시

붓 1천 필 소모한 사경 수행도 시작

좋은 스승 만난 것도 사전 편찬 도움

한국불교, 공부 좀 하세요


옛 스님들 경전 통달… 교학에 밝아

10년 집중해야 깨달음 일켠에 이르러

“옷은 새 옷이, 책은 고전이 좋습니다”

사부대중 모두 고전에 관심 갖기를


 정원 스님이 발간한 역·저서들. 가장 오른쪽의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스님의 원력이 총집합된 결정체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스승에게 배웠다

11년간의 간경 안거부터 사전 편찬, 요즘에는 드문 직역체의 번역 스타일. 이는 모두 스승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정원 스님의 은사는 일우 스님이다. 오두막 한 칸에 기거하며 수행한 일우 스님은 당시 숨겨진 선지식으로 회자되고 있었다고 한다.


정원 스님은 1969년 일우 스님을 친척 소개로 찾아가게 된다. 이미 불교에 뜻이 있던 터라 곧장 질문을 던졌다. “스님, 생사는 열반이죠.” 그러자 일우 스님이 “이놈아 말은 누가 못하냐”고 일갈하며 폭포수 같은 법문을 쏟아냈다. 당시 속인 정원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결국 일우 스님을 쫓아다니다가 출가를 하게 됐다.


출가한 정원 스님에게 스승은 사집이나 율장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던져준 것이 〈선문염송〉이었다. 스승이 번역하면 제자를 이를 받아썼다. 이는 정원 스님에게 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직역 스타일의 번역도 당시 스승에게 배운 것이다.


또한 일우 스님은 제자 정원 스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문염송〉 30권을 모두 사경하면 깨달을 수 있다.” 이를 믿고 정원 스님은 1978년부터 사경 수행을 시작했다. 〈선문염송〉은 물론 〈금강경〉을 1000번을 서사했고, 이후에는 여러 경전과 어록을 사경했다. 이를 통해 약 1000필의 붓이 닳아 없어졌다.


“사경 수행의 이익은 집중입니다. 모든 수행은 오롯이 10년을 집중해야 합니다. 은사 스님도 그러셨습니다. 기도가 들어오면 1주일 간 잠도 자지 않고 염불을 하셨습니다. 석달 정도는 자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고 하셨고요. 스승님의 이 같은 모습을 배우고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선사가 더 경전을 보았다

경전과 선 수행을 모두 강조했던 일우 스님의 가르침은 정원 스님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정원 스님은 경전을 보지 않는 현재 한국불교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다. “뛰어난 선사가 되고 대강백이 되려면 대장경을 봐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불교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경전과 어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옛 스님들에게는 일상이었지만, 지금의 한국불교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일본불교의 재가자들은 〈벽암록〉 원전을 찾아봅니다. 한국은 이를 보지 않아요. 가르쳐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스님들도 배우질 않는 것이죠. 안 보니 불교 수준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원 스님은 옛 선사들이 박학다식한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내가 사전에 유교나 도가 등의 주석을 단 이유는 선어록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옛 선사들은 경전뿐만 아니라 외전까지도 지식이 있었던 것이죠. 분양선소는 대장경을 6번 보았고, 만송행수도 3번을 보았다고 하죠. 선사도 강사보다 더 경전을 보았습니다. 선종을 공부하면서 교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부만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방편이다

정원 스님은 자신이 발간한 모든 역·저서들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한 명이라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차피 사는 사람도 없어요. 굳이 자료를 가지고만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공개하면 한국불교 대중이 좀 읽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고전을 봤으면 합니다. 옷은 새옷이 좋고 책은 고서가 좋은 법입니다.”


인터뷰의 말미, 불교는 무엇인지 물었다. 스님은 ‘방편(方便)’이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을 의미하는 방편이 왜 불교일까?


“정해진 것은 없어요. 맞고 옳은 것도 없습니다. 이를 알면 시비가 사라집니다. 방편을 몰라 시비하고 우열심을 갖는 것입니다. 깨우치겠다는 것도 집착입니다. 깨우치면 좋겠지만, 못 깨우쳐도 상관없습니다. 그에 맞춰 부처님은 방편법을 설하셨습니다.”


스님은 자리에 앉아 다시 조판 작업을 시작했다. 책상의 한 켠에는 스님의 손때가 묻어 이제는 해어진 낡은 사전이 있다. 어쩌면 스님은 사전과 저서를 통해 후학들에게 선학을 배우기 위한 방편을 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창밖으로 풍경소리가 들린다. 스님이 던진 일구(一句)를 다시 곱씹어 본다. “깨닫기는 쉬워도 깨닫지 않기는 어렵다.(若悟卽易 不悟卽難, 대정신수대장경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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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9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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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pyungsimsa/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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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補改訂版 總上中下編3冊 共計 面數3,827頁 詞目42,269條 例文34,064目 補註1,315項








정원스님 “禪은 문자여읜 敎, 敎는 문자에 붙은 禪”


천안 평심사주지 정원스님, 세계최대 규모 선학사전 '태화선학대사전' 10권 완간


守岩 칼럼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기사입력: 2019/02/25 [22:01] 최종편집:



세계 최대 규모의 한문 선학사전이 한 스님의 집념으로 7년간의 대장정 불사를 마무리하고 총10권으로 완간됐다. 이름 하여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이다.


지난 2014년 초간본 발간 후 끊임없는 증보와 교정을 통해 완간한 천안 평심사(平心寺) 주지정원(淨圓)스님이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서 발간된 선교사전과 선어해설서 20여종을 대조해 지난 40여 년간의 선어록(禪語錄) 연구를 통해 정리한 내용을 용례로 풀이한 것이다.


선학사전으로는 1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내용으로 총 4만2천여 사목(詞目)과 3만4천여 개의 예문이 사용됐으며, 특히 원문을 함께 수록해 후학들이 공부할 때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정원 스님은 “반드시 번역이 다 맞을 수는 없다. 사람이 100% 완벽한 번역을 못하니까 원문을 넣어놓아야 학자들이 보기도 하면서 본인이 고쳐보기도 하고, 보는 관점이 다르기도 하고 그런 수가 많다. 이 선(禪)용어들은 그런 점이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원스님의 선학대사전은 방대한 양을 떠나 원문수록과 수많은 예문, 분명한 출전을 근거로 해 기존 선학사전과의 차이를 두고 있다.

사전에 禪學 망라한 정원 스님 “不立文字? 공부 포기한 사람이 하는 말”

사전(辭典·事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와 함께 했다. 어문을 익히는 데 기본이 되는 단어의 의미·품사·용법·어원·표기법 등을 해설하거나 일련의 사상(事象)에 대한 분석과 정보들을 사전은 제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은 인류 지식의 요체를 모은 결집이면서 확장을 도모하는 교보재이기도 했다.


불교에도 이같은 사전들이 고래(古來)로 존재했다. 송나라의 선경(善卿)이 선지식의 어록에서 어려운 낱말 2400여 개를 꼽아 풀이하고 그 출전을 밝힌 『조정사원(祖庭事苑)』은 일종의 불교 선학 사전이다.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불교가 학문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불교사전들이 발간되기 시작했음에도 유독 『조정사원』과 같은 선학사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낭보(朗報)가 날아들었다. 세계 최대규모의 선학사전인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이 10권으로 완간됐다는 것이다.


매일 평균 14시간 간경·번역 작업…中·日사전보다 방대·質도 우수


◆‘진짜’ 선학사전이 나오기까지


정원 스님이 편찬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2014년 내놓은 한문본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한글화한 것으로 무려 5년에 걸친 역경(譯經)불사였다.


10권에 걸친 분량만 10,024쪽에 달하며, 사목(詞目)은 42,235항(項), 예문은 34,068조(條)이다. 보주(補註) 역시 1,315목(目)에 이른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선학사전을 뛰어넘는 분량으로 스님 스스로 세계 최대 규모라고 자부하는 이유가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 일본의 『선학대사전(1985)』과 중국의 『선종대사전(2010)』은 표제어도 없고 분량도 1800여 쪽과 614쪽 정도이다. 정원 스님은 『태화선학대사전』이야말로 선학(禪學)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사전임을 강조했다.


그는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이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됐음에도 선학 관련 사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과 일본에 사전이 있기는 하나 너무 빈약하다. 하지만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은 한글뿐만 아니라 원문 예문과 출처가 함께 있어서 한자문화권 사람이면 누구나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정원 스님은 2014년 『태화선학대사전』까지만 불사를 할 생각이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태화선학대사전』 발간에 도움을 준 이철교 전 동국대 출판부장이 이번에도 불을 붙였다. 그는 한음순(韓音順)으로 정렬한 사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스님은 결국 고민 끝에 한글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스님의 출판 불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문에도 밝히고 있지만, 정원 스님의 출판은 모두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사찰 요사채 안에서 혼자 작업해 이뤄진다. 편역, 수교는 물론 컴퓨터 문서 작업과 조판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 세납이 70세이지만,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컴퓨터 문서 작업에 능숙하다. MS워드와 한컴오피스의 장단점까지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이다. 정원 스님은 “혼자서 하니까 너무 힘들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평균 14시간을 작업해서 지금의 국역본 사전을 편찬할 수 있었다. 자금이 없으니 학자나 출판업체에 맡길 수 없다. 1만여 쪽에 대한 타자 작업 비용만 1억5천만 원이 든다. 내가 편역부터 컴퓨터 조판까지 1인 4역을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공부는 좋은 스승과 사전 있어야

옛 스님들 경전 통달…교학에 밝아, 첫 배움 선문염송…禪·敎 모두 중시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함에도 정원 스님이 사전편찬 불사를 오롯이 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는 좋은 사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평소 스님의 지론 때문이다. 스님은 공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는 ‘좋은 스승’이고 둘째는 ‘좋은 사전’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정원 스님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1년 동안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을 2회 열독했다. 대장경 등 내전(內典)을 2차례 읽어가는 데 선학 쪽의 용어가 막혔다. 그래서 사전을 찾았는데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 편찬 계기를 묻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짧게 답한 것이다. “내가 답답해서. 답답해서 못 살겠더라.”


정원 스님은 대장경과 어록을 보면서 출처와 예문들을 모두 정리했고 이는 국역에 앞서 내놓은 2014년 한문본 사전에 모두 담겼다. 사전 안에 “쓸데없는 말이 없다”고 자평(自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사전에는 경전과 어록에 대한 출전과 원문 예문까지 친절하게 수록돼 있다.


그렇다면 무려 11년간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내전을 간경한 계기는 무엇일까. 스님은 경전 역경(譯經)을 꼽았다. 출가 이후 경전 번역을 시작했지만, 하다보면 오류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대장경을 통독하자는 원력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정원 스님은 “30년 전부터 경전 번역을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으니 모두 붓으로 썼다. 대장경 간경을 발원하고 『고려대장경』을 구해 읽었는데 이는 오픈게임이었다. 『고려대장경』을 다 읽었는데도 모르는 것이 나와서 『대정신수대장경』을 구해서 읽었다. 그런데 『대정신수대장경』은 오자도 많고 어록도 부족했다. 그래서 『속장경』을 구해서 읽었다. 이를 반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번역은 직역이다. 시문이나 소설은 의역이 가능하지만, 불교 경전은 의역을 하면 안된다는 게 정원 스님의 주장이다. 한 글자(一字)의 해석만으로도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문을 복기할 수 있어야 잘된 번역이라고 본다. 그래서 스님은 이번 국역 사전의 서문에 “한문불전의 역한가(譯韓家)들은 직역하는 자가 드물게 있다. 그러나 많이들 이르기를 나는 직역한다 하거니와 정원이 이르나니 만약 능히 번본으로 방불하게 원본을 복기(復記)하지 못한다면 직역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오번(誤飜)이 있을까 염려스럽다고 이른다”고 썼다.


◆모든 것은 스승에게 배웠다


11년간의 간경 안거부터 사전 편찬, 요즘에는 드문 직역체의 번역 스타일. 이는 모두 스승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정원 스님의 은사는 일우 선사이다. 오두막 한 칸에 기거하며 수행한 일우 스님은 당시 숨겨진 선지식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정원 스님은 1969년 일우 스님을 친척 소개로 찾아가게 된다. 이미 불교에 뜻이 있던 터라 곧장 질문을 던졌다. “스님, 생사는 열반이죠.” 그러자 일우 스님이 “이놈아 말은 누가 못하냐”고 일갈하며 폭포수 같은 법문을 쏟아냈다. 당시 속인(俗人) 정원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일우 스님을 쫓아다니다가 출가를 하게 됐다.


출가한 정원 스님에게 스승은 사집이나 율장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던져준 것이 『선문염송』이었다. 스승이 번역하면 제자는 이를 받아썼다. 이는 정원 스님에게 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직역 스타일의 번역도 당시 스승에게 배운 것이다.


또한 일우 스님은 제자 정원 스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문염송』 30권을 모두 사경(寫經)하면 깨달을 수 있다.” 이를 믿고 정원 스님은 1978년부터 사경 수행을 시작했다. 『선문염송』은 물론 『금강경』을 1,000번을 서사(書寫)했고, 이후에는 여러 경전과 어록을 사경했다. 이를 통해 약 1,000필의 붓이 닳아 없어졌다.


스님은 “사경 수행의 이익은 집중이다. 모든 수행은 오롯이 10년을 집중해야 한다. 은사 스님도 그러셨다. 기도가 들어오면 1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염불하셨다. 석달 정도는 자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고 하셨다. 스승님의 이같은 모습을 배우고 본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정원스님의 스승 일우선사…절 한칸·책 한권 안남기고 조용히 입으로 불법 설파


정원 스님은 일우 선사(1918~1989)에게 출가한 유일한 상좌다. 일우는 선승들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장이나 조실은커녕 주지 살이 한 번 한 적이 없고, 절 한 칸, 책 한 권, 법문 한 자 남긴 게 없다. 오직 그를 만났던 이들에게 소리 없이 불법(佛法)의 인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 일우를 만나 발심하게 된 씨앗들이 바로 일년 내내 산문을 철폐하고 정진하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 20여 년 이상 지리산 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정진 중인 현기 스님 그리고 정원 스님 등이다.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은 일우 선사에 대해 “평생 남모르게 살다 가신 분이니, 그렇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학식이었다고 할만 함에도 열반 때 열반송을 묻는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정원이 일우를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불법을 알게 된 그가 도를 찾으러 노심초사하자 먼 친척이 일우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일우는 부산 구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에 머물고 있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일우는 속리산 법주사 지산 스님에게 출가해 옛 고승들의 선어록을 파고들었다. 일우는 앉아만 있는 것(좌선)을 병신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석 달 간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책을 볼만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진력과 집중력을 지녔다.


일찍이 공부에 힘을 얻은 일우는 그 뒤부터는 산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속인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비구니와 살림을 차려 그처럼 세간의 초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세속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비구니에서 환속한 보살이 그 집에서 하숙을 쳐서 살림을 도맡았다. 일우는 세속에 나오기 전 절에 살면서도 출가 승려가 시줏밥을 얻어먹기 위해선 해야 할 기본적인 염불조차 못해 탁발을 나가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도, 수염도, 손톱도 깍지를 않아 답답한 보살과 제자들이 깎곤 했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있던 제자도 도망갈 법한 그런 일우에 대해 정원은 한 번도 (스승으로서)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를 보고서야 이 세상에도 ‘현묘한 도가 실재함’을 직감했다고 한다.


일우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 100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선승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통도사, 송광사 등 대찰로 그를 초청해 법을 들었고, 그의 초가를 찾아 법을 물었다. 당시 그와 당대에 알려진 고승들의 법문을 번갈아 들은 선승들은 양쪽을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차이 정도로 비교하곤 했다.


그는 누군가 불법을 들으러 오면 하루고 이틀이고,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을 벗어난 사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원 스님이 칩거하는 평심사에 일우선사가 열반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비둘기호를 타고 10시간 걸려서 온 스승 일우는 밤 새 한 잠도 안 자고 정원에게 법을 설한 뒤 아침에 공양(식사)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그가 쥐어준 무려 4천여 쪽에 이르는 저서 석 질을 짊어지고, 다음에 또 만날 기약까지 하고 산문을 나서니 산문을 오를 때 ‘무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근같던 마음들도 일우의 몸에 붙은 한갓 먼지였던가. 정원 스님의 불 같은 성정은 스승을 닮은 것이라고 한다.


◆선사가 더 경전을 보았다


경전과 선 수행을 모두 강조했던 일우 스님의 가르침은 정원 스님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정원 스님은 경전을 보지 않는 현재 한국불교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다. “뛰어난 선사가 되고 대강백이 되려면 대장경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원 스님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불교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경전과 어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옛 스님들에게는 일상이었지만, 지금의 한국불교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당장 일본불교의 재가자들은 『벽암록』 원전을 찾아본다. 한국은 이를 보지 않는다. 가르쳐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스님들도 배우질 않는 것이다. 안 보니 불교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옛 선사들이 박학다식한 부분에 대해서도 “내가 사전에 유교나 도가 등의 주석을 단 이유는 선어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옛 선사들은 경전뿐만 아니라 외전까지도 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분양선소(汾陽善昭: 송나라 때 임제종 승려)는 대장경을 6번 보았고, 만송행수(萬松行秀: 종용록의 저자. 정원이 訂定. 기사에 영명연수로 지어졌음)도 3번을 보았다고 한다. 선사도 강사보다 더 경전을 보았다. 선종을 공부하면서 교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부만 한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불교는 방편이다


정원 스님은 자신이 발간한 모든 역·저서들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한 명이라도 더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어차피 사는 사람도 없다. 굳이 자료를 가지고만 있을 이유는 없다. 이렇게라도 공개하면 한국불교 대중이 좀 읽었으면 한다. 그래서 대중들이 고전을 봤으면 한다. 옷은 새옷이 좋고 책은 고서가 좋은 법”이라고 했다.


불교는 무엇인지 물었다. ‘방편(方便)’이라고 답했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을 의미하는 방편이 왜 불교일까.


스님은 “정해진 것은 없다. 맞고 옳은 것도 없다. 이를 알면 시비가 사라진다. 방편을 몰라 시비하고 우열심을 갖는 것이다. 깨우치겠다는 것도 집착이다. 깨우치면 좋겠지만, 못 깨우쳐도 상관없다. 그에 맞춰 부처님은 방편법을 설하셨다”고 했다.


어쩌면 정원 스님은 사전과 저서를 통해 후학들에게 선학을 배우기 위한 방편을 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禪은 이 부처의 마음이요 敎는 이 부처의 말씀이거늘 어찌 둘이 있으랴”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 깊은 골짜기.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연못이 그림처럼 놓여 있다. 태화산 평심사다.


평심사의 더욱 그림같은 형상은 이곳 도량 한켠 서재에서 40여년을 하루같이 역경불사에 매진해온 은둔수행자, 정원스님이다. 선종(禪宗)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혀 『현구집』 등 방대한 책을 무던하게 세상에 내보낸 스님이다. 특히 내·외전에 실린 11만개의 장단문구를 발췌한 『대장사원』(2009년)은 상하권 합쳐 총 4500페이지에 걸쳐 엮어낸 대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일본속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삼장법수』 등 1000부에 달하는 내전을 십수만개의 문구로 압축해서 엮어내 고려 일연선사의 『석원사림』 250권 편찬에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님은 이들 내전을 한번도 아닌 두 번이나 열독한 스님으로 유명하다.


“어찌 둘이 있으리요…” 이뿐만 아니다. 1100년 무렵 중국 송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 스님이 편찬한 『조정사원』의 자구(字句)를 풀이하고 번역ㆍ주해한 ‘정원스님판 조정사원’도 지난 2009년 세상에 빛을 보았다. 당시 『조정사원』에 실린 내용 가운데 ‘대반야론’에 나온 개와 사자에게 던진 흙덩이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은 흥미롭다.


“흙덩이를 개에게 던짐이 있으면 개가 흙덩이를 쫓으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사자에게 던짐이 있으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그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이에 대한 스님의 해설서다.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사자에게 던지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단지 그 생을 끊으므로 사(死)가 저절로 멸한다. 개는 오직 흙덩이를 쫓고 사람을 쫓을 줄 알지 못하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외도(外道)도 또한 그러하여 생을 끊을 줄 알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死)를 여의지 못한다.”


정원 스님의 집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10년 선록과 선서에서 가려 뽑은 6300개의 장단송구(頌句)를 담아 『선림송구집』을 내기에 이르렀다. 선(禪)의 송구를 거칠게 모은 것이 아니라, 한자의 획수와 그에 따른 한글 가나다순까지 고려해서 사전식으로 편찬했다. 찾고자 하는 게송 첫 글자만 알아도 송구는 물론 발췌한 게송의 전거까지 적시한다.


이어 2011년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위앙종(潙仰宗) 등 5대 종파 대표선사 어록인 『오종록』을 발간했다. 3100개의 한문주석을 모아 원문과 함께 수록한 『오종록』을 통해 임제 위산 앙산 법안 운문 동산 등 7인 선사의 어록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에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이 편찬한 『선문념송집』의 출전과 인명, 어구 등을 주석한 『선문념송집표주』를 CD로 간행해 눈길을 끌었다.


“선(禪)은 이 부처의 마음이며 교(敎)는 이 부처의 말씀이거늘 어찌 둘이 있으리요. 이른바 선은 곧 문자를 여읜 교이며 교는 곧 문자에 붙은 선이다. 마음에서 얻는다면 곧 시장의 돼지고기 파는 탁자에도 초불월조(超佛越祖)의 얘기가 있겠지만 말씀에서 잃는다면 곧 영취산의 염화미소에도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지취가 없을 것이다.”


정원스님은 “고래로 선종의 어사를 해석한 전적은 교종과 비교하자면 지극히 미미하다”면서 그러나 “선학을 매우 사랑하여 이를 생각하고 이에 있으면서 천착하고 연구한 게 이미 40년이상을 겪었다”며 “이에 근세의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서 간행한 선교사전 7종과 선어 주해서 13종을 수집하여 2012년 시작, 한자 부수와 한글의 한글음 순서를 따라 다시 정리하여 안배했다”며 그 과정을 낱낱이 설명했다. “중화전자불전과 인터넷을 참조하였고 컴퓨터의 신령한 힘과 신기한 공을 빌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68년 열아홉에 출가한 정원스님은 출가하자마자 사경수행에 임했다고 한다. 스승이 하라고 하니 무작정 써내려 갔다고 한다. 어느 순간 신심이 절로 나고 한 자를 쓰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백지 위에 펼쳐져 금광을 캐가는 기분이었다는 스님이다. 깊은 산중 ‘무문관’에서 한평생 ‘안거’에 들어있는 스님은 ‘평심(平心)’을 화두로 오늘도 정진한다. 스님이 던진 일구(一句)를 다시 되새겨 본다. “깨닫기는 쉬워도 깨닫지 않기는 어렵다.(若悟卽易 不悟卽難, 대정신수대장경47)”


◆정원 스님은


1969년 부산에서 일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80년까지 일우 스님으로부터 선교(禪敎)를 배웠다. 1984년 8월 천안 광덕면 태화산 평심사를 창건하고 11년 이상 칩거하며 〈고려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 〈대일본속대장경〉 〈한국불교전서〉 〈조선불교통사〉 등 내전을 두 차례 열독했다. 이후 〈현구집〉을 비롯해 〈태화당수세록〉 〈대장사원(大藏辭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선문염송집표주(禪門拈頌集標註)〉를 간행했다. 2014년 6월에 〈태화선학대사전〉을 한문본으로 출간했으며, 2016년 〈선종천자문〉을 발간했다. 2019년 1월에는 〈태화선학대사전〉을 증보·한글화한 〈국역태화선학대사전〉을 10권으로 완간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출처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1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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