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일적

태화일적(泰華一滴) 826

태화당 2020. 11. 25. 10:12

826萬歲 呼萬歲 自古至周 未有此禮 桉春秋後語 趙惠王得楚和氏璧 秦昭王聞之 遺五書 願以十五城易之 趙遣藺相如奉璧入秦 秦王見相如奉璧 大喜 左右呼萬歲 又田單(戰國時代齊將)守卽墨 使老弱女子乘城上 僞約降 燕軍皆呼萬歲 …… 至秦始皇 殿上上壽 群臣皆呼萬歲 見優孟傳 蓋七國之時 衆所喜慶於君 皆呼萬歲 自漢已後 臣下對見於君及拜恩慶賀 以爲常制 又謂山呼者 漢武帝至中嶽 翌日親登崇高 御史乘屬在廟旁 吏卒盛聞呼萬歲者三 山呼萬歲者 自漢武始也 祖庭事苑五

 

만세(萬歲) 만세를 부른 것은 고대로부터 주()에 이르기까지 이 예()가 있지 않았다. 춘추후어(春秋後語)를 안험하니 조혜왕(趙惠王)이 초()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자 진소왕(秦昭王)이 이를 듣고 5()를 보내어 15()으로써 그것과 바꾸기를 원했다. ()가 인상여(藺相如)를 보내어 벽()을 받들고 진에 들어가게 했다. 진왕이 상여가 벽을 받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좌우가 만세를 불렀다(사기81을 보라). 또 전단(田單; 전국시대 의 장수)이 즉묵(卽墨)을 수비하면서 노약(老弱)과 여자로 하여금 성 위로 오르게 하고 거짓으로 항복을 약속하자 연군(燕軍)이 다 만세를 불렀다(사기82를 보라) …… 진시황에 이르러 전상(殿上)에서 상수(上壽; 百歲. 백세토록 살기를 祝壽)하면서 군신이 다 만세를 불렀다. 우맹전(優孟傳; 우맹은 樂人. 滑稽家)을 보라(사기126優旃으로 지어졌음). 대개 7()의 시대엔 뭇 사람이 군주에게 희경(喜慶; 기뻐서 慶賀)하는 바에 다 만세를 불렀다. () 이후부터는 신하가 군주를 대견(對見)하거나 및 배은(拜恩; 은택에 拜謝)하거나 경하(慶賀)에 상제(常制)로 삼았다. 또 이르되 산호(山呼)란 것은 한무제가 중악(中嶽)에 이르러 다음날 친히 숭고(崇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어사(御史)와 승속(乘屬)이 묘() 곁에 있었는데 이졸(吏卒)이 만세를 부름을 성대하게 들은 것이 세 번이었다(한서6을 보라). 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한무제로부터 비롯했다.

'태화일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일적(泰華一滴) 828  (0) 2020.11.25
태화일적(泰華一滴) 827  (0) 2020.11.25
태화일적(泰華一滴) 825  (0) 2020.11.25
태화일적(泰華一滴) 824  (0) 2020.11.25
태화일적(泰華一滴) 823  (0) 20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