擧 藥山久不陞座〈動不如靜〉 *院主白云 大衆久思示誨 請和尙爲衆說法〈便重不便輕〉 山令打鐘 衆方集〈聚頭作*相 *那事悠悠〉 山陞座良久 便下座 歸方丈〈一場話覇〉 主隨後問 和尙適來許爲衆說法 云何不垂一言〈大海若知足 百川應倒流〉 山云 經有*經師 論有*論師 爭怪得老僧〈可惜*龍頭蛇尾〉
●院主; 又名寺主 禪家監事之舊名也 今之監事 古稱院主或寺主 院主之名 以住持之稱 號旣濫故 改爲監事云
●相; 漢語大字典 相 佛敎名詞 對性而言 佛敎把一切事物外現的形象狀態 稱之爲相
●那事; 隱指悟道成佛之事
●經師; 精通經藏 善於誦講經文的僧
●論師; 精通幷善于講解論藏典籍的師僧
●龍頭蛇尾; 比喩禪機作略首盛尾衰 或有始無終 前是後非
거(擧)하다. 약산(藥山)이 오래 승좌(陞座)하지 않았다. 〈동(動)이 정(靜)만 같지 못하다〉 원주(*院主)가 사뢰어 이르되 대중이 오래 시회(示誨; 가르침을 보이다)를 생각했으니 청컨대 화상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십시오. 〈중(重)이 편하고 경(輕)은 편하지 않다〉 약산이 타종하게 했다. 대중이 바야흐로 모이자 〈취두(聚頭)하여 형상(形相; *相)을 지어도 나사(*那事)는 유유(悠悠)하다〉 약산이 승좌하여 양구(良久)하더니 곧 하좌하여 방장으로 돌아갔다. 〈한바탕의 이야깃거리다〉 원주가 뒤따라 가서 묻되 화상이 적래(適來; 아까. 조금 전)에 대중을 위해 설법하겠다고 허락하시더니 어찌하여 일언도 내리지(垂) 않으십니까. 〈대해가 만약 만족할 줄 안다면 백천(百川)이 응당 거꾸로 흐르리라〉 약산이 이르되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論師)가 있거늘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는가. 〈가석(可惜)하게도 용두사미(*龍頭蛇尾)다〉
●院主; 또 명칭이 사주(寺主)니 선가의 감사(監事)의 옛 명칭임. 여금의 감사는 옛 명칭이 원주 혹 사주였음. 원주의 명칭은 주지(住持)의 호칭으로 썼으나 호가 이미 범람하는 고로 고쳐 감사라 했음.
●相; 한어대자전. 상(相) 불교의 명사(名詞)니 성(性)을 상대해 말함이다. 불교에선 일체의 사물과 밖으로 나타난 형상(形象)과 상태(狀態)를 잡아 이를 일컬어 상(相)이라 한다.
●那事; 오도하고 성불하는 일을 은유로 가리킴.
●經師; 경장(經藏)에 정통(精通)하여 경문을 잘 송강(誦講)하는 승인(僧人).
●論師; 논장(論藏)의 전적(典籍)에 정통하고 아울러 강해(講解)를 잘하는 사승(師僧).
●龍頭蛇尾; 선기(禪機)의 작략(作略)이 머리는 성대하더니 꼬리가 쇠하거나 혹은 시작은 있더니 마침이 없거나 앞은 옳더니 뒤가 그름에 비유함.
師云 飢者易爲食 渴者易爲飮 是以*三家五請 *菩薩上堂 *半偈全身 *夜叉陞座 豈悕法哉 *黃龍南禪師云 蓋今之人 容易輕法者衆 欲如田夫時時乾之 令其枯渴 然後漑灌方得*秀實也 藥山久不陞座 又且不然 *覺範道 *一菴深藏*霹靂舌 *從敎萬象自分說 *永嘉道 默時說 說時默 大施門開無壅塞 院主頭頭蹉過 白云 大衆久思示誨 請和尙爲衆說法 仁義道中 主賓分上 也未爲分外 山令打鐘 只見雷霆施號令 衆方集 豈知*星斗煥文章 山陞座良久下座歸方丈 一上神通 不同小小 主隨後問云 和尙適來許爲衆說法 云何不垂一言 *翠巖芝云 藥山下座 院主當初怪不爲衆說法 可謂誤他*三軍 萬松道 正是*將頭不猛 山云 經有經師 論有論師 爭怪得老僧 *瑯琊覺云 藥山下座不妨疑著 及乎院主拶著 失却一隻眼 萬松道 再得完全能幾箇 而不知換得兩隻眼 雪竇道 可惜藥山老漢 *平地喫交 盡大地人扶不起 萬松道 和尙也須出隻手 無餘頌云 *丈室未離已*喫交 *悄然歸去轉無憀 經師論師猶相告 一款分明便自招 萬松道 *曹司易勘 公案未圓 解與天童 如何判斷 頌云
●三家五請; 圓覺經大疏釋義鈔一云 然風畫是華嚴十地品初金剛藏菩薩歎十地難說之喩也 謂剛藏說十地名已 默然不釋 解脫月菩薩三請 大衆一請 諸佛加請 總三家五請 然後說之
●菩薩; 具名菩提薩埵 舊譯爲大道心衆生 道衆生等 新譯曰大覺有情 覺有情等 謂是求道之大心人 故曰道心衆生 求道求大覺之人 故曰道衆生 大覺有情 又薩埵者勇猛之義 勇猛求菩提故名菩提薩埵 又譯作開士 始士 高士 大士等 義譯也 總名求佛果之大乘衆 [注維摩經一 大乘義章十四 法華玄贊二 佛地論二 淨名疏一]
●半偈全身; 祖庭事苑一 夜叉說半偈 涅槃經(13)云 佛言 過去之世 佛日未出 我於爾時作婆羅門 修菩薩行 周徧求索大乘經典 乃至不聞方等文字 住雪山中 思惟坐禪 時釋提桓因心大驚怪 要當自試 自變其身作羅刹像 去其不遠 其聲淸雅 宣過去佛所說半偈 諸行無常 是生滅法 聞是半偈 心生歡喜 卽從座起 四向顧視云 向所聞偈 誰之所說 唯見羅刹 卽便前至 善哉大士 汝於何處 得是過去離怖畏者所說半偈 卽答我言 我不食多日 心亂䆿語 非我本心之所知也 汝所食者爲是何物 答言 食人暖肉 飮人熱血 汝但具足說是半偈已 當以此身奉施 誰當信汝爲八字故 捨所愛身 我所證者 梵天釋提桓因十方世尊 汝若如是 諦聽諦聽 當爲汝說 生滅滅已 寂滅爲樂
●夜叉; <梵> yakşa 又曰閱叉 新作藥叉 夜乞叉 譯言能噉鬼 捷疾鬼 勇健 輕捷等 ▲玄應音義三 閱叉或云夜叉 皆訛也 正言藥叉 此譯云能噉鬼 謂食噉人也 又云傷者 謂能傷害人也 ▲法華玄贊二 夜叉者此云勇健 飛騰空中攝地行類諸羅刹也 羅刹云暴惡 亦云可畏 彼皆訛音 梵語正云藥叉邏刹娑 ▲慧苑音義下 夜叉 此云祠祭鬼 謂俗間祠祭以求恩福者也 舊翻捷疾鬼也
●黃龍南; 黃龍慧南(1002-1069) 宋代僧 臨濟宗黃龍派之祖 信州玉山(江西上饒)人 俗姓章 少習儒業 博通經史 十一歲從定水院智鑾出家 十九歲受具足戒 遍參棲賢澄諟 雲峰文悅 石霜楚圓等諸宿 遂嗣石霜楚圓之法 師初住同安崇勝禪院開堂說法 四衆歸趨 未久移至歸宗寺 因堂宇突遭火災 全寺盡毁 遂蒙冤坐獄 吏者百端求隙 而師怡然引咎 久而後赦 乃退居黃檗 於溪上築積翠庵 四方接踵而至 受請至黃龍山崇恩院 大振宗風 遍及湖南 湖北 江西 閩粤等地 此一系統乃蔚成黃龍派 日本臨濟宗之祖榮西卽源出此一流派 師每以公案廣度四衆 室中嘗設佛手驢脚生緣三轉語 以勘驗學人 三十餘年鮮有契其旨者 世稱黃龍三關 師住黃龍時 法席鼎盛 於宋熙寧二年入寂 壽六十八 世稱黃龍慧南 徽宗大觀四年(1110) 追諡普覺禪師 與同門方會之楊岐派對峙 與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等五家 竝稱爲五家七宗 遺有黃龍南禪師語錄 語要 書尺集等各一卷行世 門下之晦堂祖心 寶峰克文 泐潭洪英等 皆馳名禪林 [續傳燈錄七 禪宗正脈十七 釋氏稽古略四]
●秀實; 論語子罕 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後因以秀實謂人成年
●覺範; 宋代黃龍派僧德洪字覺範 德洪(1071-1128) 宋代黃龍派僧 瑞州(江西高安)人 俗姓喩(或謂彭 兪) 字覺範 號寂音尊者 年十九 試經於東京天王寺而得度 初名慧洪 參眞淨克文而得法 崇寧(1102-1106)年中 住持臨川北禪院 後遷金陵淸涼寺 未久 爲狂僧誣以度牒冒名旁連訕謗事 誣陷入獄 張無盡特奏得度改今名 太尉郭天民奏賜椹服 號寶覺圜明 自稱寂音尊者 政和元年(1111)頃 坐交張郭厚善 張罷政事 有嫉之者 誣指師與二人交通 詔奪袈裟 發配然州 三年始得歸 同年冬 復拘之於幷州獄 踰年獲釋 遂棄僧服入九峰洞山 以文章自娛 其後將赴湘西 途經南昌 復爲道士誣陷下獄 幸遇赦得免 遂入居南臺明白庵 靖康元年(1126) 蒙賜再度剃髮 恢復慧洪舊名 建炎二年寂於同安 壽五十八 著林間錄二卷 僧寶傳三十卷 高僧傳十二卷 智證傳十卷 志林十卷 冷齋夜話十卷 天厨禁臠一卷 石門文字禪三十卷 語錄偈頌一編 法華合論七卷 楞嚴尊頂義十卷 圓覺皆證義二卷 金剛法源論一卷 起信論解義二卷 並行于世 [佛祖歷代通載十九 普燈錄七 續傳燈錄二十二]
●一菴深藏霹靂舌; 以下二句 出林間錄後集源禪師贊
●霹靂舌; 舌動如霹靂雷聲
●從敎; 任隨 任凭
●永嘉; 永嘉玄覺(665-713) 唐代僧 溫州永嘉(位於浙江)人 俗姓戴 字明道 號永嘉玄覺 八歲出家 博探三藏 尤通天台止觀 後於溫州龍興寺側巖下自構禪庵 獨居硏學 常修禪觀 偶因左溪玄朗之激勵 遂起遊方之志 與東陽玄策共遊方尋道 至韻陽時 謁曹溪慧能 與慧能相問答而得其印可 慧能留之一宿 翌日卽歸龍興寺 時人稱之一宿覺 其後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玄朗贈書招之山棲 師覆書辭退 先天二年(七一三 一說開元二年 或先天元年)十月十七日 趺坐入寂 壽四十九 賜諡無相大師 塔曰淨光 著證道歌一篇 梵僧傳歸天竺 彼皆欽仰目爲東土大乘經 又著禪宗悟修圓旨十篇 及觀心十門 永嘉集十卷 並盛傳于世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星斗; 星的總稱
●翠巖芝; 翠巖守芝 宋代臨濟宗僧 族王氏 太原人也 幼棄家 依潞州承天寺 試法華得度 從賢首諸師 嘗講金剛般若 名滿三河 學者宗之 時汾陽善昭禪師出世汾水 因往觀 聞其語異 遂投誠入室 未及閫 疑情頓釋 乃蒙印可 出住高安大愚 後遷南昌翠巖 嘉祐(1056-1063)初示寂 [普燈錄二 續傳燈錄三]
●三軍; 金光明經文句記五云 軍者 萬二千五百人曰軍 天子六軍 諸侯三軍 ▲論語子罕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將頭; 將帥
●瑯琊覺; 瑯琊慧覺 北宋臨濟宗僧 西洛人 弱冠時 父爲衡陽太守 因疾而歿於任地 師扶靈柩自衡陽歸洛 過澧州藥山古寺 宛若宿居於此 遂緣此出家 復遊方參學 得法於汾陽善昭 後住滁州瑯琊山 大振臨濟宗風 世稱瑯琊慧覺 同時 明州雪竇重顯 唱雲門之法道 時人稱二甘露門 及今淮南地區猶蒙其遺化 其餘事蹟與生卒年皆未詳 [釋氏稽古略四 聯燈會要十二 續傳燈錄三 禪宗正脈十二]
●平地喫交; 又作平地上喫交 謂平白無故地摔跤 譏刺禪人做作多事 其施爲作略不契禪法 徒勞且有害 喫交 跌倒也 交 脚脛相交 說文 交 交脛也
●丈室; 寺院住持僧的房間
●喫交; 摔倒 摔跟頭 見上平地喫交
●悄然; 與寂然同義 悄 寂靜無聲 字彙 悄 靜也
●曹司; 一官署 曹郞中職司所在 二吏目(官職名)
스님이 이르되 배고픈 자가 쉽게 먹고 목마른 자가 쉽게 마신다. 이런 까닭으로 3가5청(*三家五請)에 보살(*菩薩)이 상당(上堂)하고 반게전신(*半偈全身)에 야차(*夜叉)가 승좌(陞座)했으니 어찌 법을 아낌이라 하겠는가. 황룡남(*黃龍南) 선사가 이르되 대개(大蓋) 여금의 사람들은 용이하게 법을 가볍게 여기는 자가 많다. 의욕(意欲)이 전부(田夫; 농부)가 시시로 그것을 말려 그것으로 하여금 고갈(枯渴)케 한 연후에 개관(漑灌; 灌漑)하여 비로소 수실(*秀實)을 얻음과 같아야 한다 했거니와 약산이 오래 승좌하지 않음은 우차(又且) 그렇지 않다. 각범(*覺範)이 말하되 한 암자에서 벽력설을 깊이 감추고(*一菴深藏*霹靂舌) 만상(萬象)이 자분(自分; 자기. 자체)으로 설하는 대로 좇는다(*從敎). 영가(*永嘉)가 말하되 묵시(默時)가 설(說)이며 설시(說時)가 묵(默)이니 대시문(大施門)을 열어 옹색(壅塞)함이 없다(증도가의 글). 원주(院主)가 두두(頭頭)에 차과(蹉過; 놓치다)하고 사뢰어 이르되 대중이 시회(示誨)를 오래 생각했으니 청컨대 화상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십시오 하니 인의(仁義)의 도중(道中)과 주빈(主賓)의 분상(分上)에선 또한 분외(分外; 분한 밖)가 되지 않는다 하리라. 약산이 타종하게 했으니 다만 뇌정(雷霆; 천둥소리)이 호령(號令)을 시행함을 본다. 대중이 바야흐로 모였거니와 어찌 성두(*星斗)의 환한 문장을 알겠는가. 약산이 승좌하여 양구하다가 하좌하여 방장으로 돌아갔으니 일상(一上; 一番)의 신통이 소소(小小)함과 같지 않다. 원주가 뒤따라 가서 물어 이르되 화상이 적래(適來)에 대중을 위해 설법하겠다고 허락하시더니 어찌하여 일언도 내리지 않으십니까. 취암지(*翠巖芝)가 이르되 약산이 하좌하매 원주가 당초에 대중을 위해 설법하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겼으니 가위(可謂) 저 삼군(*三軍)을 그르쳤다. 만송이 말하노니 바로 이는 장두(*將頭; 장수)가 용맹하지 않았다. 약산이 이르되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거늘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는가. 낭야각(*瑯琊覺)이 이르되 약산이 하좌함은 의착(疑著)함에 방애되지 않지만 원주가 찰착(拶著; 압박하다)함에 이르러선 일척안(一隻眼)을 잃어버렸다. 만송이 말하노니 다시 완전함을 얻는 이가 능히 몇 개이던가, 양척안(兩隻眼)을 환득(換得)한 줄 알지 못하는구나. 설두가 말하되 가석(可惜)하게도 약산 노한이 평지끽교(*平地喫交)했나니 온 대지 사람이 도와 일으키지 못한다. 만송이 말하노니 화상도 또한 꼭 척수(隻手)를 내어야 한다. 무여(無餘; 미상)가 송운(頌云)하되 장실(*丈室)을 떠나지 아니한 전에 이미 끽교(*喫交)했거늘/ 초연(*悄然)히 귀거(歸去)하니 더욱(轉) 무료(無憀; 의뢰할 바가 없음)하다/ 경사와 논사로 아직 서로 고하니/ 일관(一款; 1條目)이 분명하여 곧 자초(自招)했다. 만송이 말하노니 조사(*曹司)는 감험(勘驗)하기 쉽지만 공안은 원만하지 않다. 해석은 천동에게 줄지니 어떻게 판단할까. 송운(頌云)하되
●三家五請; 원각경대소석의초1에 이르되 그러하여 풍화(風畫)는 이 화엄 10지품 초 금강장보살이, 10지는 설하기 어려움을 찬탄한 비유이다. 이르자면 금강장이 10지의 이름을 설한 다음 묵연하고 해석을 하지 않자 해탈월보살이 3청하고 대중이 1청하고 제불이 가청(加請)했으니 총 3가5청(三家五請)이다. 연후에 이를 설했다.
●菩薩; 갖춘 이름은 보리살타(菩提薩埵; 梵 bodhi-sattva). 구역(舊譯)으론 대도심중생(大道心衆生)ㆍ도중생(道衆生) 등이 되며 신역(新譯)은 가로되 대각유정(大覺有情)ㆍ각유정(覺有情) 등임. 이르자면 이는 구도하는 대심(大心)의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심중생(道心衆生)이며 도를 구하고 대각을 구하는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중생(道衆生)ㆍ대각유정(大覺有情)임. 또 살타란 것은 용맹의 뜻이니 용맹하게 보리를 구하는 고로 이름이 보리살타임. 또 개사(開士)ㆍ시사(始士)ㆍ고사(高士)ㆍ대사(大士) 등으로 번역함은 의역(義譯)이니 총명(總名)이 불과(佛果)를 구하는 대승중(大乘衆)임 [주유마경1. 대승의장14. 법화현찬2. 불지론2. 정명소1].
●半偈全身; 조정사원1. 야차설반게(夜叉說半偈) 열반경(13)에 이르되 불타가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 불일(佛日)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적에 내가 이때 바라문이 되어 보살행을 닦으면서 대승경전을 두루 구색(求索)했건만 내지 방등문자(方等文字)를 듣지 못해 설산 중에 머물면서 사유하며 좌선했다.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마음에 크게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요컨대 마땅히 스스로 시험코자 스스로 그 몸을 변화하여 라찰(羅刹)의 형상(形像)을 지었는데 거기에서 떨어지기가 멀지 않았다. 그 소리가 청아(淸雅)하게 과거 불타가 설하신 바 반게(半偈)를 선창(宣暢; 暢은 화창할 창. 후련할 창)했으니 제행은 무상이라 이 생멸법이다(諸行無常 是生滅法). 이 반게를 듣고서 마음에 환희를 내어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 사향(四向; 동서남북)을 돌아보고 이르되 아까 들은 바 게는 누가 설한 것인가. 오직 라찰만 보이는지라 곧 바로 앞에 이르러 선재(善哉)로다 대사(大士)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이 과거이포외자(過去離怖畏者; 과거의, 포외를 여읜 자)의 소설(所說)인 반게를 얻었는가. 곧 나에게 답해 이르되 내가 먹지 못한 지 여러 날이라 심란(心亂)하여 잠꼬대(䆿는 잠꼬대 예)한 것이니 내 본심의 알 바가 아니다. 그대가 먹는 바의 것은 이 어떤 물건이 되는가. 답해 말하되 사람의 더운 살을 먹고 사람의 뜨거운 피를 마신다. 그대가 단지 이 반게를 구족히 설한 다음에 마땅히 이 몸을 봉시(奉施)하리라. 누가 마땅히 네가 여덟 글자를 위하는 고로 아끼는 바 몸을 버린다 함을 믿겠는가. 내가 증득한 바의 것은 범천(梵天)이며 석제환인(釋提桓因)이며 시방의 세존이다.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체청(諦聽; 諦는 살필 체. 자세할 체)하고 체청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생멸이 멸한 다음 적멸로 낙을 삼는다(生滅滅已 寂滅爲樂).
●夜叉; <범> yakşa. 또 가로되 열차(閱叉)며 신역은 약차(藥叉)ㆍ야걸차(夜乞叉)로 지음. 번역해 말하면 능담귀(能噉鬼)ㆍ첩질귀(捷疾鬼)ㆍ용건(勇健)ㆍ경첩(輕捷) 등임. ▲현응음의3. 열차(閱叉) 혹은 이르되 야차는 다 그르다. 바른 말로는 약차(藥叉)니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능히 먹는 귀(能噉鬼)니 이르자면 사람을 식담(食噉)한다. 또 이르되 상자(傷者)니 이르자면 능히 사람을 상해한다. ▲법화현찬2. 야차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용건(勇健)이니 공중에 비등하고 땅을 밟고(攝) 다니는 종류의 모든 라찰(羅刹)이다. 라찰은 이르되 포악이며 또 이르되 가외(可畏)다. 그것은 모두 와음(訛音)이며 범어로 바르게 이르면 약차라찰사(藥叉邏刹娑)다. ▲혜원음의하. 야차(夜叉) 여기에선 이르되 사제귀(祠祭鬼)니 이르자면 세속 속에서 사제하여 은복(恩福)을 구하는 자다. 구번(舊翻)은 첩질귀(捷疾鬼)다.
●黃龍南;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니 (1002-1069) 송대승.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 신주(信州) 옥산(玉山; 강서 상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章). 어릴 적에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했음. 11세에 정수원(定水院) 지란(智鑾)을 좇아 출가했으며 19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서현징식(棲賢澄諟)ㆍ운봉문열(雲峰文悅)ㆍ석상초원(石霜楚圓) 등 여러 존숙을 두루 참알(參謁)하다가 드디어 석상초원의 법을 이었음. 스님이 처음엔 동안(同安)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주(住)하며 개당설법(開堂說法)했는데 4중(衆)이 귀추(歸趨)했음. 오래지 않아 귀종사(歸宗寺)로 이지(移至)했는데 당우(堂宇)가 돌연(突然)히 화재를 만나 전사(全寺)가 모두 훼손(毁損)됨으로 인해 드디어 원통(寃痛)하게 옥사(獄事)에 연좌(連坐)됨을 입었음. 이자(吏者; 獄吏)가 백단(百端; 온갖 방법)으로 틈을 구했으나 스님이 이연(怡然)히 허물을 끌어당겼음. 오래 후에 사면(赦免)되어 이에 황벽(黃檗)으로 퇴거했으며 계곡 위에 적취암(積翠庵)을 축조(築造)했는데 사방에서 접종(接踵; 사람이 잇따르다)하여 이르렀음. 요청을 받아 황룡산(黃龍山) 숭은원(崇恩院)에 이르러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호남ㆍ호북ㆍ강서ㆍ민월(閩粤) 등의 땅에 두루 미쳤음. 이 일계통(一系統)이 곧 황룡파를 위성(蔚成)했으며 일본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영서(榮西)도 곧 이 한 유파(流派)에서 원출(源出)했음. 스님이 매번 공안으로 4(衆)을 널리 제도했는데 실중(室中)에서 늘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의 3전어(三轉語. 轉은 양사)를 시설해 학인을 감험(勘驗)했음. 30여 년에 그 지취(旨趣)에 계합하는 자가 드물게 있는지라 세칭이 황룡삼관(黃龍三關)임. 스님이 황룡에 주(住)할 때 법석이 정성(鼎盛; 융성)하였으며 송(宋) 희녕(熙寧) 2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68. 세칭이 황룡혜남(黃龍慧南)이며 휘종(徽宗) 대관(大觀) 4년(1110) 추시(追諡)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 했음. 동문인 방회(方會)의 양기파(楊岐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ㆍ위앙ㆍ조동ㆍ운문ㆍ법안 등 5가(家)와 더불어 병칭(竝稱)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함. 유작(遺作)에 황룡남선사어록(黃龍南禪師語錄)ㆍ어요(語要)ㆍ서척집(書尺集) 각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문하(門下)의 회당조심(晦堂祖心)ㆍ보봉극문(寶峰克文)ㆍ늑담홍영(泐潭洪英) 등은 다 선림에 치명(馳名)했음 [속전등록7. 선종정맥17. 석씨계고략4].
●秀實; 논어 자한(子罕). 싹텄지만 꽃 피지(秀) 않는 것이 있고 꽃이 피었지만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후에 인하여 수실(秀實)로써 사람의 성년(成年)을 일컬음.
●覺範; 송대 황롱파승 덕홍(德洪)의 자가 각범(覺範)임. 덕홍(德洪; 1071-1128) 송대 황룡파승. 서주(강서 고안) 사람이며 속성은 유(喩. 혹은 이르되 彭ㆍ兪)며 자는 각범(覺範)이며 호는 적음존자(寂音尊者). 나이 19에 동경 천왕사에서 시경(試經)하여 득도했음. 처음의 이름은 혜홍(慧洪)이었으며 진정극문(眞淨克文)을 참알해 법을 얻었음. 숭녕(1102-1106)년 중에 임천 북선원에 주지했으며 후에 금릉 청량사로 옮겼음. 오래지 않아 광승(狂僧)이, 도첩(度牒)의 모명(冒名)과 두루 산방(訕謗)의 일을 연결해 무고(誣告)하는 통에 무함(誣陷)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장무진이 특주(特奏)하여 득도(得度)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음. 태위 곽천민이 주청하여 침복(椹服. 僧服)과 보각원명이란 호를 주었음. 자칭이 적음존자(寂音尊者)임. 정화 원년(11 11) 무렵(頃) 장곽과 교유(交遊)하며 후선(厚善)함에 연좌되었으니 장곽은 정사(政事)를 그만두었으며 질투하는 자가 있어 스님이 두 사람과 교통(交通)했다고 무고(誣告)로 가리키는 통에 조칙으로 가사를 뺏고 연주로 유배를 떠났음. 3년 만에 비로소 돌아옴을 얻었으나 같은 해 겨울에 다시 병주옥에 구속되었다가 해를 넘기자 석방됨을 얻었음. 드디어 승복을 버리고 구봉의 동산(洞山)에 들어가 문장으로 자오(自娛)했음. 그 후 장차 상서(湘西)에 이르려는데 길이 남창을 경유했으며 다시 도사(道士)의 무함(誣陷)으로 하옥되었음. 다행히 사면을 만나 면함을 얻었음. 드디어 남대 명백암으로 들어가 거주했는데 정강 원년(1126) 재도(再度. 再次) 체발(剃髮)을 몽사(蒙賜)하여 구명(舊名) 혜홍(慧洪)을 회복했음. 건염 2년 동안(同安)에서 입적했으니 나이는 58. 저서에 임간록 2권ㆍ승보전 30권ㆍ고승전 12권ㆍ지증전 10권ㆍ지림 10권ㆍ냉재야화 10권ㆍ천주금련 1권ㆍ석문문자선 30권ㆍ어록게송 1편(編)ㆍ법화합론 7권ㆍ릉엄존정의 10권ㆍ원각개증의 2권ㆍ금강법원론 1권ㆍ기신론해의 2권이 있어 모두 세상에 행함 [불조역대통재19. 보등록7. 속전등록22].
●一菴深藏霹靂舌; 이하 2구는 임간록후집 원선사찬(源禪師贊)에 나옴.
●霹靂舌; 혀를 움직이면 벽력뇌성(霹靂雷聲)과 같음.
●從敎; 임수(任隨; 任凭과 같음). 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
●永嘉;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니 당대승. 온주(溫州) 영가(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대(戴), 자(字)는 명도(明道), 호는 영가현각(永嘉玄覺). 8세에 출가하여 3장(藏)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임.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先天) 2년(713. 一說엔 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10월 17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49.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1편(篇)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10편(篇) 및 관심십문(觀心十門)ㆍ영가집(永嘉集)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송고승전8. 불조역대통재13. 불조통기10. 전등록5. 오등회원2].
●星斗; 별의 총칭(總稱).
●翠巖芝; 취암수지(翠巖守芝)니 송대 임제종승. 씨족(氏族)은 왕씨며 태원 사람. 어릴 적에 집을 버리고 노주(潞州) 승천사에 의지했으며 법화경을 시험하여 득도(得度)했음. 현수종(賢首宗)의 여러 스님을 좇아 일찍이 금강반야를 강설해 명성이 삼하(三河)에 가득했으며 학자가 그를 종앙(宗仰)했음. 때에 분양선소선사(汾陽善昭禪師)가 분수(汾水)에서 출세하였고 인하여 가서 보았는데 그의 말이 이상(異常)함을 듣고 드디어 투성(投誠)하여 입실(入室)했는데 문지방에 미치기도 전에 의정(疑情)이 문득 풀렸으며 곧 인가(印可)를 입었음. 출세하여 고안(高安)의 대우(大愚)에 거주하다가 뒤에 남창(南昌)의 취암(翠巖)으로 옮겼으며 가우(1056-1063) 초에 시적(示寂)했음 [보등록2. 속전등록3].
●三軍; 금광명경문구기5에 이르되 군(軍)이란 것은 만2천5백 인을 가로되 군이다. 천자는 6군이며 제후는 3군이다. ▲논어9 자한(子罕). 공자가 가로되 3군에서 가히 장수를 뺏지만 필부에게서 가히 의지를 뺏지 못한다.
●將頭; 장수(將帥).
●瑯琊覺; 낭야혜각(瑯琊慧覺)이니 북송(北宋)의 임제종승. 서락(西洛) 사람. 약관(弱冠; 20세 안팎의 남자 나이) 때 아버지가 형양태수(衡陽太守)가 되었는데 질병으로 인해 임지(任地)에서 죽었음. 스님이 영구(靈柩)를 떠받치고 형양으로부터 서락(西洛)으로 돌아오다가 예주(澧州) 약산고사(藥山古寺)를 지나는데 완연(宛然)히 전부터 여기에 거주한 것 같았음. 드디어 이 때문에 출가하였고 다시 유방(遊方)하며 참학(參學)했으며 분양선소(汾陽善昭; 首山省念을 이었으니 임제하 5세)에게서 법을 얻었음. 후에 저주(滁州) 낭야산(瑯琊山)에 머물며 임제의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니 세칭(世稱)이 낭야혜각(瑯琊慧覺)임. 동시대(同時代)에 명주(明州)의 설두중현(雪竇重顯; 운문하 3세)이 운문의 법도(法道)를 제창(提唱)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2감로문(甘露門)이라 일컬었음. 지금에 이르도록 회남지구(淮南地區)에선 아직도 그 유화(遺化)를 입었음. 그 나머지 사적(事蹟)과 생졸(生卒)한 해는 다 미상(未詳)임 [석씨계고략4. 연등회요12. 속전등록3. 선종정맥12].
●平地喫交; 또 평지상끽교(平地上喫交)로 지음. 이르자면 평백무고지(平白無故地; 조금의 이유도 없음. 공연히)에서 솔교(摔跤; 넘어지다. 씨름)함이니 선인이 많은 일을 지어 그 시위와 작략이 선법에 맞지 않으며 헛수고에 또 해가 있음을 기자(譏刺; 헐뜯고 비꼼)함. 끽교(喫交)는 미끄러져 거꾸러짐임. 교(交)는 다리 정강이가 서로 꼬임임. 설문(說文) 교(交) 정강이가 꼬임이다.
●丈室; 사원 주지승의 방간(房間).
●喫交; 솔도(摔倒; 쓰러지다). 솔근두(摔跟頭; 미끄러져 자빠지다). 위 평지끽교(平地喫交)를 보라.
●悄然; 적연(寂然)과 같은 뜻. 초(悄)는 적정하고 소리가 없음임. 자휘 초(悄) 정(靜)이다.
●曹司; 1. 관서(官署)니 조낭중(曹郞中)의 직사(職司; 직무)가 있는 곳. 2. 이목(吏目; 관직의 이름).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blog.daum.net
'종용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종용록 제8칙 시중 (0) | 2022.04.24 |
|---|---|
| 종용록 제7칙 송 (0) | 2022.04.23 |
| 종용록 제7칙 시중 (0) | 2022.04.23 |
| 종용록 제6칙 송 (0) | 2022.04.22 |
| 종용록 제6칙 본칙 (0) | 20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