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應菴初依蔣山圓悟會中 與此菴元爲友 及元住處之連雲 華從虎丘隆會中來 初到 便令作首座 未久 令立僧 元上堂云 西河有師子 連雲出虎兕 親從猛虎窟中來 文彩爪牙悉皆備 雖未及驚羣 已有食牛志 痛念楊岐宗令之如掃地 豎起鐵脊梁 與先師出氣 諸人還識麽 兩眼大如環 當頭立底是 後出世玅嚴 爲虎丘燒香 自後住十年 其道與玅喜相抗 李浩侍郞與師游久矣 甞贊師眞云 平生波波挈挈 纔得箇院子住便打脫開悟 而今又向幀子上出來 知他是死是活
●應菴; 曇華(1103-1163) 宋代楊岐派僧 蘄州(湖北蘄州縣)人 一說黃梅(湖北黃梅縣)人 俗姓江 字應庵 十七歲於東禪寺剃髮 十八歲受具足戒 初從水南靑遂受學禪要 其後遍參善知識 禮謁圜悟克勤 嚴受策勵 復受克勤之命 入彰敎寺 侍虎丘紹隆 得嗣其法 此後歷住諸刹 而於明州天童山大振法化 師住於歸宗寺時 大慧宗杲在梅陽 曾寄偈稱歎 與大慧宗杲竝稱臨濟法系之二甘露門 孝宗隆興元年示寂 壽六十一 密庵咸傑爲其法嗣 [聯燈會要十八 嘉泰普燈錄十九 佛祖歷代通載二十 釋氏稽古略四 續傳燈錄 三十一 大明高僧傳六]
●此菴元; 景元(1094-1146) 宋代楊岐派僧 號此庵 永嘉(浙江溫州)楠溪張氏 年十八依靈山院希拱出家 初習台敎 尋謁圓悟於鍾阜 聞僧讀死心語徹證 悟曰 我這裏禪 都被元首座作一布袋盛去了 一時衲子呼爲元布袋 紹興(1131-1162)初 還浙東 開法仁壽 遷連雲 眞如 晩歸台州護國寺 [五燈會元十九 統要續集二十二 續傳燈錄二十七]
●虎丘隆; 紹隆(1077?-1136) 宋代楊岐派僧 和州(安徽)含山人 九歲入佛慧院 精硏律藏 曾參長蘆之淨照崇信 歷訪寶峰之湛堂文準 黃龍山之死心悟新 後赴夾山(湖南) 隨侍圜悟克勤 凡二十年 竝嗣其法 建炎四年(1130) 居平江之虎丘山雲巖禪寺 大振圜悟之禪風 世稱虎丘紹隆 久之遂成一派 卽虎丘派 圜悟示寂後 與若平共編圜悟之語錄 紹興六年示寂 壽六十(一說六十五) 門人嗣端編纂虎丘隆和尙語錄一卷 徐林撰塔銘 於日本 其法系亦頗隆盛 [釋氏稽古略四 大明高僧傳五 續傳燈錄二十七 普燈錄十四]
●首座; 寺院參禪僧衆中居于首位者 又僧堂中居于首位的參禪僧 是禪寺職事僧之一
●立僧; 卽立僧首座 指禪林僧堂中坐於後堂首座之分手位者 卽位於後堂首座之左右 竝排向內或向外 立僧 指分派職位之僧 卽會下僧衆中之第一座 充任立僧首座者 竝無一定之人 乃於正規首座之外 別於西堂或前堂及諸耆宿中 擇選竝敦請有道博達之人 爲衆開法 或請大方之尊宿充任之 職責極重 禪苑淸規七請立僧條 退院尊宿 首座 藏主 如合衆望 可擧立僧 卽住持人陞座擧白訖 知事大衆詣寮禮請(請辭云 大衆傾心 久思示誨 伏望慈悲 俯賜開允) 可見其事之愼重 此外 立僧首座坐禪之場所 稱爲立僧床 立僧首座床 立僧板頭 立僧首座普說終了 欲退回首座寮時 則將普說入室二牌納入方丈 稱爲立僧納牌 [百丈淸規上祝釐章 下兩序章 象器箋殿堂類 坐位類 職位類]
●西河; 位於山西洪洞西南 汾陽市位于山西省 唐肅宗上元元年(7 66) 縣名改稱西河 ◆西河有師子; 汾陽語錄上 上堂云 汾陽門下 有西河師子 當門踞坐 但有來者 卽便齩殺 有何方便 入得汾陽門 得見汾陽人
●楊岐; 方會(996-1049) 北宋臨濟宗楊岐派之開祖 石霜楚圓之法嗣 南嶽下十一世 臨濟下七世 袁州(江西)宜春人 俗姓冷 法名方會 初從楚圓掌監院之事 後住筠州九峰山 未久至袁州楊岐山住持普通禪院 大振禪風 宋仁宗慶曆六年(1046) 住潭州雲蓋山海會寺 皇祐元年示寂 壽五十四 一說慶曆六年或皇祐二年示寂 壽五十八 與同門慧南之黃龍派對峙 與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等五家 竝稱爲五家七宗 [續燈錄七 佛祖歷代通載十八 五燈會元十九]
●脊梁; 脊梁骨 脊柱 用以比喩人的志氣和精神力量 亦比喩人的節操
●李浩; 宋代楊岐派居士 字德遠 號正信 建昌(四川西昌)人 紹興(1131-1162)中進士 纍官吏部侍郞 忠憤激烈 言切時弊 讀首楞嚴經如遊舊國 後造明果 問法於天童應庵曇華 得其旨 以偈寄同參嚴康朝曰 門有孫臏鋪 家存甘贄妻 夜眠還早起 誰悟復誰迷 後爲夔路帥 卒於官 [續傳燈錄三十四 續燈存稾一 圖書集成神異典居士部二一一]
●侍郞; 官名 秦漢代爲郞中令之屬官 掌握宮門事 唐代爲中書省門下省之長官 後代爲六府次官
●波波挈挈; 同跛跛挈挈 行動遲緩而不穩健
○응암(應菴; 曇華)이 처음 장산(蔣山)의 원오회중(圓悟會中)에 의지하며 차암원(此菴元; 景元)과 벗이 되었다. 및 원(元)이 처(處; 處州)의 연운(連雲; 연운사)에 주(住)하자 화(華)가 호구륭(虎丘隆; 紹隆)의 회중(會中)으로 좇아왔다. 처음 이르자 바로 수좌(首座)가 되게 하였고 오래지 않아 입승(立僧)을 시켰다(令). 원(元)이 상당(上堂)해 이르되 서하에 사자가 있고(西河有師子) 연운(連雲)에 호시(虎兕)가 나왔다. 친히 맹호굴(猛虎窟) 속으로 좇아왔으며 문채(文彩)와 조아(爪牙)를 모두 다 갖추었다. 비록 경군(驚羣)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미 식우(食牛)할 의지(意志; 志)가 있다. 양기종(楊岐宗)을 통념(痛念)하여 그것(之)으로 하여금 땅을 쓴 듯하게 한다. 철척량(鐵脊梁)을 세워 일으켜 선사(先師; 圓悟)를 위해(與) 출기(出氣)하나니 제인(諸人)은 도리어 아느냐. 양안(兩眼)은 크기가 고리(環)와 같나니 당두(當頭; 면전)에 선 것(立底)이 이것이다. 후에 묘엄(玅嚴)에서 출세했고 호구(虎丘)를 위해 소향(燒香)했다. 자후(自後; 此後. 後來)로 10년을 주(住)했고 그(응암)의 도는 묘희(玅喜)와 상항(相抗; 서로 겨룸)했다. 이호(李浩) 시랑(侍郞)이 스님과 더불어 교유(交游; 游)한 지 오래되었다. 일찍이 스님의 진(眞; 肖像)을 찬(贊)해 이르되 평생 파파계계(波波挈挈)하다가 겨우 저(箇) 원자(院子; 子는 조사)를 얻어 머물자 바로 타탈(打脫; 開悟)했고 이금(而今; 여금)에 또 정자상(幀子上; 上은 방면을 표시)을 향해 출래(出來)하니 그가 이 죽었는지 이 살았는지 알겠는가.
●應菴; 담화(曇華; 1103-1163)니 송대 양기파승. 기주(호북 기주현) 사람. 일설엔 황매(호북 황매현) 사람이라 함. 속성은 강이며 자는 응암(應庵). 17세에 동선사에서 머리를 깎았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처음엔 수남청수로부터 선요(禪要)를 수학(受學)했고 그 후에 두루 선지식을 참알했으며 원오극근을 예알해 책려(策勵)를 엄히 받았음. 다시 극근의 명령을 받아 창교사에 들어가 호구소륭(虎丘紹隆)을 모셨으며 그 법을 이음을 얻었음. 차후에 여러 사찰에 역주(歷住)했으며 명주 천동산에서 법화(法化)를 크게 진작했음. 스님이 귀종사에 거주할 때 대혜종고가 매양에 있으면서 일찍이 게를 기탁해 칭탄(稱歎)했음. 대혜종고와 아울러 임제법계(臨濟法系)의 이감로문(二甘露門)으로 일컬어짐. 효종 융흥 원년 시적했음. 나이는 61. 밀암함걸이 그의 법사가 됨 [연등회요18. 가태보등록19. 불조역대통재20. 석씨계고략4. 속전등록31. 대명고승전6].
●此菴元; 경원(景元; 1094-1146)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는 차암(此庵)이며 영가(절강 온주) 남계 장씨. 나이 18에 영산원의 희공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처음엔 천태교를 익혔음. 이윽고 원오를 종부에서 알현했으며 중이 사심(死心)의 어록을 읽음을 듣다가 철증(徹證)했음. 원오가 가로되 나의 이 속의 선은 모두 원수좌가 한 포대를 만들어 담아 감을 입었다. 일시의 납자가 원포대(元布袋)로 호칭했음. 소흥(1131-1162) 초 절동으로 돌아가 인수에서 개법하고 연운ㆍ진여로 옮겼다가 만년에 대주 호국사로 돌아갔음 [오등회원19. 통요속집22. 속전등록27].
●虎丘隆; 소륭(紹隆; 1077?-1136)이니 송대 양기파승. 화주(안휘) 함산(含山) 사람. 9세에 불혜원(佛慧院)에 들어가 율장을 정연(精硏)했음. 일찍이 장로(長蘆)의 정조숭신(淨照崇信)을 참알(參謁)했으며 보봉(寶峰)의 담당문준(湛堂文準)ㆍ황룡산의 사심오신(死心悟新)을 역방(歷訪)하였음. 후에 협산(夾山; 湖南)에 다다라 원오극근(圜悟克勤)을 따르며 모시기가 무릇 20년이었으며 아울러 그 법을 이었음. 건염 4년(1130) 평강(平江)의 호구산(虎丘山) 운암선사(雲巖禪寺)에 거주하며 원오의 선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세칭이 호구소륭(虎丘紹隆)임. 오래되어 드디어 1파(派)를 이루었으니 곧 호구파(虎丘派)임. 원오가 시적(示寂)한 후 약평(若平)과 함께 원오의 어록을 함께 편집했음. 소흥 6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60(일설엔 65). 문인(門人) 사단(嗣端)이 호구륭화상어록 1권을 편찬(編纂)했으며 서림(徐林)이 탑명(塔銘)을 지었음. 일본에서도 그 법계(法系)가 또한 자못 융성함 [석씨계고략4. 대명고승전5. 속전등록27. 보등록14].
●首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僧衆) 가운데 수위(首位)에 거처하는 자임. 또 승당(僧堂) 중에 수위에 거처하는 참선승임. 이는 선사(禪寺)의 직사승(職事僧)의 하나임.
●立僧; 즉 입승수좌(立僧首座)니 선림 승당 가운데 후당수좌(後堂首座)의 분수위(分手位)에 앉는 자를 가리킴. 곧 후당수좌의 좌우에 위치하며 나란히 향내(向內)나 혹은 향외(向外)에 안배(安排)함. 입승은 분파직위(分派職位)의 승려를 가리키며 곧 회하(會下) 승중(僧衆) 중의 제일좌(第一座)임. 입승수좌에 충임(充任)하는 자는 모두 일정한 사람이 없음. 곧 정규수좌(正規首座) 외에 따로 서당(西堂) 혹 전당(前堂) 및 여러 기숙(耆宿) 중에서 도가 있는 박달(博達)의 사람을 택선(擇選)하거나 아울러 돈청(敦請)하여 대중을 위해 개법(開法)함. 혹은 대방(大方)의 존숙을 초청하여 그에 충임하는데 직책이 극히 중요함. 선원청규7 청입승조(請立僧條). 퇴원한 존숙ㆍ수좌ㆍ장주(藏主)나 중망(衆望)에 합당할 것 같으면 가히 입승으로 천거한다. 곧 주지인이 승좌하여 천거하여 알림을 마치면 지사와 대중이 요(寮)에 나아가 예청(禮請)한다 (請辭에 이르되 대중이 마음을 기울여 示誨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자비를 伏望하오니 開允을 俯賜하십시오). 가히 그 일의 신중함이 보임. 이 밖에 입승수좌가 좌선하는 장소를 일컬어 입승상(立僧床)ㆍ입승수좌상(立僧首座床)ㆍ입승판두(立僧板頭)라 함. 입승수좌가 보설을 종료하고 수좌료로 퇴회(退回)하려고 할 때 곧 보설ㆍ입실 2패(牌)를 방장에게 납입함을 일컬어 입승납패(立僧納牌)라 함 [백장청규상축희장, 하양서장. 상기전전당류, 좌위류, 직위류].
●西河; 산서 홍동 서남에 위치하고 분양시는 산서성에 위치함. 당 숙종 상원 원년(766) 현명(縣名)을 서하로 개칭했음. ◆西河有師子; 분양어록상. 상당해 이르되 분양의 문하에 서하사자(西河師子)가 있어 당문(當門)에 웅크리고 앉았다. 단지 오는 자가 있으면 바로 곧 물어 죽인다. 어떤 방편이 있어 분양문에 입득(入得)하여 분양인을 득견하겠는가.
●楊岐; 방회(方會; 996-1049)니 북송 임제종 양기파의 개조(開祖). 석상초원(石霜楚圓)의 법사(法嗣)니 남악하 11세며 임제하 7세. 원주(강서) 의춘 사람이며 속성은 냉(冷)이며 법명은 방회(方會)임. 처음엔 초원(楚圓)을 따르며 감원(監院)의 일을 장악했고 뒤에 균주 구봉산에 거주했고 오래지 않아 원주(袁州) 양기산(楊岐山)에 이르러 보통선원(普通禪院)에 주지(住持)하며 선풍을 크게 진작했음. 송 인종 경력 6년(1046)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해회사(海會寺)에 주(住)했으며 황우 원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54. 1설엔 경력 6년 혹은 황우 2년에 시적했다 하니 나이가 58. 동문인 혜남(慧南)의 황룡파(黃龍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ㆍ위앙ㆍ조동ㆍ운문ㆍ법안 등 5가(家)와 병칭(竝稱)하기를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함 [속등록7. 불조역대통재18. 오등회원19].
●脊梁; 척량골(脊梁骨)이니 척주(脊柱; 등골뼈)임. 사람의 지기(志氣)와 정신의 역량의 비유로 사용함. 또한 사람의 절조(節操)에 비유함.
●李浩; 송대 양기파거사. 자는 덕원(德遠)이며 호는 정신이니 건창(사천 서창) 사람. 소흥(1131-1162) 중 진사(進士)가 되었고 벼슬을 거듭하여 이부상서가 되었음. 충분(忠憤; 충의로 인하여 일어나는 분한 마음)이 격렬했으며 당시의 폐단을 말함이 간절했음. 수릉엄경을 읽으면서 옛 나라를 유람함과 같았음. 후에 명과로 나아가 천동 응암담화(應庵曇華)에게 법을 묻고 그 지취를 얻었음. 게를 동참인 엄강조에게 기탁해 가로되 문에는 손빈포(孫臏鋪)가 있고/ 집에는 감지처(甘贄妻)가 있다/ 밤에 자고 도리어 아침에 일어나나니/ 누가 깨치고 다시 누가 혼미한가. 후에 기로수(夔路帥)가 되었고 관서에서 마쳤음 [속전등록34. 속등존고1. 도서집성신이전거사부211].
●侍郞; 벼슬 이름. 진한대(秦漢代)에 낭중령의 속관(屬官)이 되어 궁문사(宮門事)를 장악했음. 당대(唐代)에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이 되었으며 후대에 6부(府)의 차관(次官)이 되었음.
●波波挈挈; 파파계계(跛跛挈挈)와 같음. 행동이 지완(遲緩)하면서 온건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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