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4책(ㅂ)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4책(ㅂ) 821쪽

태화당 2019. 11. 1. 09:30

佛蹟又作佛跡 佛迹 指釋尊之遺蹟 卽釋尊誕生至入滅期間 遺留足迹之場所 介石智朋語錄 佛蹟 石火電光中出沒 崖崩石裂尙難酬 放行一步還知不 佛是西天老比丘

불적(佛蹟) 또 불적(佛跡)ㆍ불적(佛迹)으로 지음. 석존의 유적을 가리킴. 곧 석존이 탄생하여 입멸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 족적을 남긴 장소. 개석지붕어록. 불적(佛蹟) 석화전광 가운데 출몰하니/ 벼랑이 무너지고 돌이 갈라짐으로도 오히려 응대하기 어렵다/ 방행(放行)1()를 도리어 아느냐/ 부처는 이 서천의 노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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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迹昱宋代黃龍慧南法嗣道昱 住泉州佛述 傳記未詳 [禪燈世譜四]

불적욱(佛迹昱) 송대 황룡혜남의 법사 도욱(道昱)이 천주 불적에 거주했음. 전기는 미상 [선등세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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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殿安置佛菩薩像之殿堂 或安置本尊佛而成爲伽藍中心之殿堂 又稱佛堂 大雄寶殿 印度則稱香殿 按毘奈耶雜事十 僧寺佛殿應作七層 尼寺應作五層 五宗錄二仰山 有一行者隨法師入佛殿 行者向佛而唾

불전(佛殿) 불보살상을 안치하는 전당. 혹 본존불을 안치하여 가람의 중심을 이룬 전당. 또 명칭이 불당ㆍ대웅보전이니 인도에선 곧 향전(香殿)으로 일컬음. 비나야잡사10을 안험컨대 승사(僧寺)의 불전은 응당 7층으로 짓고 니사(尼寺)는 응당 5층으로 지음. 오종록2 앙산. 어떤 한 행자가 법사를 따라 불전(佛殿)에 들어갔다. 행자가 불상을 향해 침을 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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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纏被佛以及佛與衆生對立的俗情認識所纏縛 在禪家看來 佛纏是成佛之障礙 廣燈錄九百丈懷海 無善纏 無惡纏 無佛纏 無衆生纏 量數亦然 乃至都無一切量數纏 故云佛是出纏過量人

불전(佛纏) 불타 그리고 불타와 중생이 대립하는 속정(俗情)의 인식에 전박(纏縛)되는 바를 입음. 선가에서 보면 불전(佛纏)은 이 성불의 장애임. 광등록9 백장회해. 선전(善纏)도 없고 악전도 없고 불전(佛纏)도 없고 중생전도 없나니 양수(量數)도 또한 그러하다. 내지 도무지 일체의 양수전(量數纏)도 없는지라 고로 이르되 부처는 이 출전(出纏)한 과량인(過量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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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定淸代臨濟宗僧 字宗風 思南(今屬貴州)任氏 年二十三在都勻觀音寺 禮峰池祝髮 矢志參學 至楚親潙山 不契 徑上天童參密雲圓悟 在行寮數年 亦不契 因病歸里 寓南望山住靜 後謁語嵩裔 住六年 親承印證 永住西山 寂後塔於本山 [黔南會燈錄五]

불정(佛定) 청대 임제종승. 자는 종풍이며 사남(지금 귀주에 속함) 임씨. 나이 23에 도균 관음사에서 봉지를 예알하고 머리를 깎았음. 참학에 뜻을 세우고 초()에 이르러 위산을 친근했으나 계합하지 못했음. 곧장 천동에 올라 밀운원오을 참해 몇 년 동안 행료(行寮)에 있었으나 또한 계합하지 못했음. 질병으로 인해 향리로 돌아가 남망산에 살면서 주정(住靜)했음. 후에 어숭예(語嵩裔)을 참알하여 6년을 거주했고 친히 인증을 받았음. 서산에 오래 거주했으며 입적한 후 본산에 탑을 세웠음 [검남회등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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