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862쪽

태화당 2019. 12. 11. 07:11

住果聲聞緣覺之聖者 各安住於所得之證果 不更進求勝道也 宗鏡錄四十六 或澄心泯色 住果於八難之天

주과(住果) 성문과 연각의 성자가 각기 얻은 바의 증과(證果)에 안주하고 다시 승도(勝道)를 진구(進求)하지 않음. 종경록46. 혹 징심(澄心)하고 민색(泯色; 색을 없앰)하여 8()의 천()에서 주과(住果)한다.

) --> 

酒官執掌造酒及有關政令的官員 五燈會元十七慧洪覺範 商英頃自金陵酒官移知豫章

주관(酒官) 조주(造酒) 및 유관(有關)한 정령(政令)을 집장(執掌)하는 관원. 오등회원17 혜홍각범. 상영(商英)이 요사이 금릉의 주관(酒官)으로부터 옮겨 예장(豫章)을 지(; 主宰)했다.

) --> 

袾宏(1532-1612) 明代僧 杭州人 俗姓沈 字佛慧 號蓮池 幼習儒學 中年歸依佛敎 投西山無門性天剃髮 就昭慶無塵受具足戒 尋參四方 以遊方爲務 隆慶五年(1571) 入杭州雲棲山 居山中廢寺 師常精修念佛三昧 敎化遠近 衲子雲集 遂成叢林 萬曆十二年(1584) 著往生集三卷 三十年 撰楞嚴經摸象記一卷 又制定水陸儀文及瑜伽焰口法 以濟幽冥之苦 於城之內外開放生池 撰戒殺放生文 師主張淨土 痛斥狂禪 力闡禪淨兼修 道風益盛 萬曆四十年(一說四十三年)示寂 壽八十一 世稱雲棲和尙 蓮池大師 與紫柏憨山湡益 竝稱爲明代四大高僧 所著除上記之外 有禪關策進 梵網戒疏發隱 阿彌陀經疏鈔 華嚴經感應略記等三十餘種 後王宇春集其著作 稱雲棲法彙 三十四卷 [釋鑑稽古略續集三 淨土聖賢錄五 補續高僧傳五 續燈存槀十二 五燈嚴統十六]

주굉(袾宏) (1532-1612) 명대승. 항주(杭州)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심()이며 자()는 불혜(佛慧)며 호()는 연지(蓮池). 어려서 유학(儒學)을 익혔고 중년(中年)에 불교에 귀의해 서산(西山) 무문성천(無門性天)에게 투신해 머리를 깎았으며 소경무진(昭慶無塵)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이윽고 사방으로 참방(參訪)하면서 유방(遊方)으로 업무를 삼다가 융경(隆慶) 5(1571) 항주(杭州) 운서산(雲棲山)에 들어가 산중의 폐사(廢寺)에 거주했음. 스님은 늘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정수(精修)하면서 원근을 교화했으며 납자가 운집하여 드디어 총림을 이루었음. 만력(萬曆) 12(1584) 왕생집(往生集) 3권을 지었고 30년 릉엄경모상기(楞嚴經摸象記) 1권을 지었으며 또 수륙의문(水陸儀文) 및 유가염구법(瑜伽焰口法)을 제정(制定)하여 유명(幽冥)의 고()를 제도했음. ()의 안팎에 방생지(放生池)를 열고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을 지었음. 스님은 정토를 주장하고 통렬히 광선(狂禪)을 배척했으며 선정겸수(禪淨兼修)를 역천(力闡)하여 도풍(道風)이 더욱 성했음. 만력 40(一說43)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1. 세칭 운서화상(雲棲和尙)ㆍ연지대사(蓮池大師)며 자백(紫柏)ㆍ감산(憨山)ㆍ우익(湡益)과 함께 명대(明代)의 사대고승(四大高僧)으로 병칭(竝稱). 소저(所著)는 상기(上記)를 제한 밖에 선관책진(禪關策進)ㆍ범망계소발은(梵網戒疏發隱)ㆍ아미타경소초(阿彌陀經疏鈔)ㆍ화엄경감응약기(華嚴經感應略記) 30여 종이 있으며 후에 왕우춘(王宇春)이 그의 저작을 모아 운서법휘(雲棲法彙)라 일컬었으니 34권임 [석감계고략속집3. 정토성현록5. 보속고승전5. 속등존고12. 오등엄통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