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第一義觀】 三觀中 中觀之德名 以空假二諦 方便雙照而離有無二邊之觀法也 破障中道之根本無明者 ▲宗鏡錄十二 今觀理事無礙 中道第一義觀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 3관 중 중관의 덕명임. 공가(空假) 2제(諦)로써 방편으로 쌍조(雙照)하여 유무(有無) 2변(邊)을 여의는 관법이니 중도를 장애하는 근본무명을 타파하는 것. ▲종경록12. 여금에 이사무애(理事無礙)를 관하는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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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同分】 使有情得同等類似果報之因 名爲衆同分 ▲宗鏡錄七十四 首楞嚴經云 (中略)阿難 如彼衆生同分妄見 例彼妄見別業一人 一病目人 同彼一國 彼見圓影 眚妄所生 此衆同分所現不祥
중동분(衆同分) 유정으로 하여금 동등하고 유사한 과보의 인(因)을 얻게 함을 이름해 중동분(衆同分)이라 함. ▲종경록74. 수릉엄경에 이르되 (중략) 아난아, 저 중생의 동분(同分)의 망견(妄見)과 같이 저 망견의 별업(別業)의 1인(人)을 예로 들면 1병목인(病目人)이 저 1국(國)과 같아서 그가 보는 원영(圓影; 燈影)은 생망(眚妄)의 소생(所生)이라 이 중동분(衆同分)의 소현(所現)은 상서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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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洞山】 唐代曹洞宗僧道全 住洞山 爲第二世 人稱中洞山 詳見道全
중동산(中洞山) 당대 조동종승 도전이 동산에 주(住)했으며 제2세가 됨. 사람들이 일컬어 중동산이라 했으니 상세한 것은 도전(道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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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郞】 官名 郞官的一種 卽省中之郞 爲帝王近侍官 戰國始設 漢代沿置 秩爲比六百石 屬光祿勳(秦及漢初爲郞中令) 習稱中郞 其職爲管理車 騎 門戶 擔任皇帝的侍衛和隨從 初分爲車郞 戶郞 騎郞三類 長官則設有車戶騎三將 其後逐漸不加區分 東漢除三署外又分屬虎賁 羽林中郞將 曹魏仍有中郞將 晉 南北朝 又有從事中郞 則爲將帥之幕僚 [百度百科] ▲祖庭事苑七 中郞 卽東漢中郞將蔡邕 ▲拈八方珠玉集中 僧問百丈 抱璞投師 請師一決 丈云 昨日南山虎咬大蟲 僧云 不謬眞詮 爲什麽不施方便 丈云 掩耳偸鈴漢 僧云 若非中郞鑒 還同野舍薪(詳見焦桐) 丈便打
중랑(中郞) 벼슬 이름. 낭관(郞官)의 일종이며 곧 성중(省中)의 낭이니 제왕의 근시관(近侍官)이 됨. 전국(戰國)에 처음 설치했고 한대(漢代) 따라서 설치했으며 질(秩)은 6백 석(石) 가까이 됨. 광록훈(光祿勳; 秦 및 漢初에 郞中令이라 했음)에 속했고 습칭(習稱)이 중랑(中郞)임. 그 직책은 거(車)ㆍ기(騎)ㆍ문호(門戶)를 관리했고 황제의 시위(侍衛)와 수종(隨從)을 담임했음. 처음은 거랑(車郞)ㆍ호랑(戶郞)ㆍ기랑(騎郞) 3류로 분류했고 장관은 곧 거호기(車戶騎) 3장(將)을 시설해 있었음. 그 후에 축점(逐漸; 점차) 구분을 가하지 않았음. 동한(東漢)은 3서(署)를 제한 밖에 또 분속(分屬)이 호분(虎賁)과 우림중랑장(羽林中郞將)이었음. 조위(曹魏)는 그대로 중랑장이 있었고 진(晉)ㆍ남북조는 또 종사중랑(從事中郞)이 있었으니 곧 장수의 막료(幕僚)가 됨 [백도백과]. ▲조정사원7. 중랑(中郞) 곧 동한 중랑장 채옹(蔡邕)이다. ▲염팔방주옥집중. 중이 백장에게 묻되 박(璞; 옥돌)을 안고 스님에게 투신하오니 스님의 1결(決)을 청합니다. 백장이 이르되 어제 남산의 호랑이가 대충(大蟲; 범)을 물었다. 중이 이르되 진전(眞詮)에 어긋나지 않습니다만 무엇 때문에 방편을 베풀지 않습니까. 백장이 이르되 엄이투령한(掩耳偸鈴漢)이로구나. 중이 이르되 만약 중랑(中郞)의 감(鑒)이 아니었다면 도리어 야사(野舍)의 땔감과 같았을 것입니다(상세한 것은 焦桐을 보라). 백장이 바로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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