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79쪽

태화당 2019. 12. 13. 08:59

智旭(1599-1655) 明代僧 俗姓鍾 名際明 字振之 號蕅益 八不道人 吳縣(今江蘇省蘇州市吳中區)人 少習儒學 誓滅佛老 偶閱袾宏的自知錄 竹窗隨筆 知世俗孝行非眞 出家事佛爲大孝 乃決意信佛 焚其所作辟佛論 二十四歲 依憨山大師門人雪嶺剃度 此後雲游東南 廣學法相 禪 華嚴 天台 淨土 律諸宗敎義 主張融合諸宗 念佛卽禪 又認爲參禪者必須學習經典 以敎理作指導 曾住九華山 晩年移居孝豐(今浙江安吉)靈峰寺 世稱靈峰蕅益 著述有閱藏知津等四十餘種 其弟子成實編輯其遺文 題爲靈峰蕅益大師宗論 爲明代四大高僧之一 [靈峰蕅益大師宗論一 淨土聖賢錄六] 百丈淸規證義記七之下附天台敎觀一宗 百松傳天台幽溪無盡傳燈爲三十世祖 燈傳曉峯靈峯蕅益智旭素華爲三十一世祖

지욱(智旭) (1599-1655) 명대승. 속성은 종이며 이름은 제명이며 자는 진지며 호는 우익(蕅益)ㆍ팔불도인(八不道人)이니 오현(지금의 강소성 소주시 오중구) 사람. 소년에 유학을 익혔고 맹세코 불로(佛老; 불교와 도교)를 없애리라 했음. 우연히 주굉의 자지록(自知錄)과 죽창수필(竹窗隨筆)을 열람하고는 세속의 효행(孝行)이 진리가 아니라 출가하여 불타를 섬김이 대효(大孝)임을 알았음. 이에 결의(決意)하고 그가 지었던 바 벽불론(辟佛論)을 태웠음. 24세에 감산대사(憨山大師)의 문인(門人) 설령에게 의지해 체도(剃度)했음. 차후에 동남을 운유하며 법상ㆍ선ㆍ화엄ㆍ천태ㆍ정토ㆍ율 제종의 교의를 광학(廣學)했음. 제종(諸宗)을 융합하여 염불이 곧 선()이라고 주장했음. 또 인식하기를 참선자는 필수(必須)로 경전을 학습하고 교리로 지도해야 한다 했음. 일찍이 구화산에 거주했고 만년에 효풍(지금의 절강 안길) 영봉사로 이거(移居)했음. 세칭이 영봉우익(靈峰蕅益). 저술에 열장지진(閱藏知津) 40여 종이 있고 그의 제자 성실(成實)이 그 유문(遺文)을 편집하여 제목하기를 영봉우익대사종론(靈峰蕅益大師宗論)이라 했음. 명대 4() 고승의 하나가 됨 [영봉우익대사종론1. 정토성현록6]. 백장청규증의기7지하 부천태교관일종. 백송이 천태유계무진전등에게 전했으니 30세 조()가 되고 전등이 효봉영봉우익지욱소화(曉峯靈峯蕅益智旭素華)에게 전했으니 31세 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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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沄(1629-1700) 淸代曹洞宗僧 字湘翁 湘潭(今屬湖南)郭氏 禮南嶽泰然披薙 納戒於荊紫峰之萬仞壁 憤志苦參嗣法 住雲門顯聖 蘄水天然 白巖 普濟 湖州龍華諸處 有洞上祖憲錄十六卷 散木正傳若干卷 [正源略集十三]

지운(智沄) (1629-1700) 청대 조동종승. 자는 상옹이며 상담(지금 호남에 속함) 곽씨. 남악태연을 참례하여 피치(披薙)했고 형자봉의 만인벽(萬仞壁)에게서 납계(納戒)했고 분지(憤志)로 고참(苦參)하여 법을 이었음. 운문 현성ㆍ기수 천연ㆍ백암ㆍ보제ㆍ호주 용화 여러 곳에 주()했음. 동상조헌록 16권과 산목정전 약간권이 있음 [정원약집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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指雲孝淸代臨濟宗僧光孝 字指雲 詳見光孝

지운효(指雲孝) 청대 임제종승 광효의 자가 지운이니 상세한 것은 광효(光孝)를 보라.


智源宋代臨濟宗僧 住潭州中峰山寺 得法於大潙山眞如院慕喆 [續燈錄二十二]

지원(智源) 송대 임제종승. 담주 중봉산사에 주()했고 대위산 진여원 모철에게서 득법했음 [속등록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