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興泉】 (1641-1690) 淸代曹洞宗僧 字淇園 安慶(今屬安徽)人 年十四脫白於桐城龍眠山 二十禮華山見月讀體受具 熟練律乘 經三載 出參天岸昇 一日坐香睹火有悟 由是訪名宿 至杭州皋亭 參觀濤奇 奇囑以大法 康熙十七年(1678) 開法崇先 二十六年歸隱龍眠 二十八年住持千佛禪院 有語錄 [廩山正燈錄 正源略集十三]
흥천(興泉) (1641-1690) 청대 조동종승. 자는 기원(淇園)이며 안경(지금 안휘에 속함) 사람. 나이 14에 동성 용면산에서 탈백했고 20에 화산 견월독체를 참례하고 수구(受具)했음. 율승(律乘)을 숙련(熟練)했고 3재(載)가 지나자 나가서 천안승을 참했음. 어느 날 좌향(坐香)하면서 불을 보고 깨침이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명숙(名宿)을 참방했음. 항주 고정에 이르러 관도기(觀濤奇)를 참했고 기(奇)가 대법을 부촉했음. 강희 17년(1678) 숭선에서 개법했고 26년 용면으로 회귀하였고 28년 천불선원에 주지했음. 어록이 있음 [늠산정등록. 정원약집13].
) -->
【興徹】 (1635-?) 明末曹洞宗僧 濟南(今屬山東)人 俗姓魏 世稱義雲興徹禪師 年十六卽有出塵之志 遂禮報恩寺嵩乳道密出家 一日 偶見霜天一色 鴻雁飛鳴 頓覺前疑冰釋 復聞一尊宿擧狗子無佛性話 乃得大悟 遂往參檀度依和尙 得嗣其法 檀度門下之傑出者中 以師爲最 初開法於金峰 後遷住石頭 大弘禪風 [增訂佛祖道影三]
흥철(興徹) (1635-?) 명말 조동종승. 제남(지금 산동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은 위니 세칭이 의운흥철선사(義雲興徹禪師). 나이 16에 곧 출진(出塵)할 의지(意志)가 있었고 드디어 보은사 숭유도밀을 참례하여 출가했음. 어느 날 우연히 상천(霜天)이 일색(一色)인데 홍안(鴻雁)이 비명(飛鳴)함을 보다가 돈각(頓覺)했고 전의(前疑)가 빙석(冰釋)했음. 다시 한 존숙이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듦을 듣고 이에 대오를 얻었음. 드디어 단도의화상(檀度依和尙)을 왕참(往參)하여 그의 법을 이음을 얻었음. 단도 문하의 걸출한 자 중 스님을 으뜸으로 삼음. 처음 금봉에서 개법했고 후에 석두로 천주(遷住)하여 선풍을 대홍(大弘)했음 [증정불조도영3].
) -->
【興喆】 淸代曹洞宗僧 字子愚 句容(今屬江蘇)張氏 幼喜誦經 長不茹葷 一日偶閱敎典有省 卽往匡廬依梅逢忍祝髮 受具 後參諸方 回里結茅 往來竺庵 石潮諸老處 日益深奧 及忍住盱江壽昌 遂承記莂 康熙十四年(1675) 繼席吉水龍華 遷壽昌匡廬金竹 [廩山正燈錄]
흥철(興喆) 청대 조동종승. 자는 자우며 구용(지금 강소에 속함) 장씨. 어릴 적에 송경(誦經)을 좋아했고 장성하자 여훈(茹葷)하지 않았음. 어느 날 우연히 교전(敎典)을 열람하다가 성찰이 있었음. 곧 광려로 가서 매봉인(梅逢忍)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고 수구(受具)했음. 후에 제방을 참방했고 향리로 돌아와 결모(結茅)했음. 축암, 석조 여러 노숙의 처소로 왕래하며 날로 심오(深奧)를 더했음. 인(忍)이 우강 수창에 거주함에 이르러 드디어 기별(記莂)을 받았음. 강희 14년(1675) 길수 용화를 계석(繼席)했고 수창 광려 금죽으로 옮겼음 [늠산정등록].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820쪽 (0) | 2020.01.02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819쪽 (0) | 2020.01.02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817쪽 (0) | 2020.01.02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816쪽 (0) | 2020.01.02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815쪽 (0) | 2020.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