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興源】 ①淸代曹洞宗僧 字卑牧 長興(今屬浙江)錢氏 九歲於湖州崇恩落髮 初依弁山蕃光璨 後參石公璸於佛日 朝夕徵詰 洞徹玄旨 得璸印可 繼住 [廩山正燈錄] ②淸代曹洞宗僧 字楚雲 長沙(今屬湖南)上湘龍氏 禀性倜儻 不循轍軌 時當明末 烽烟遍地 決志出家 投瀏陽圍山覺恒薙度 於作務之暇 則習禪定 聞竺庵成住信州壽昌 道望高峻 因參謁入堂 奮勵修持 寢食俱忘 一日聞魚磬聲 豁然徹悟 得成印可 開法金陵棲霞 次主壽昌 [廩山正燈錄 攝山志]
흥원(興源) ①청대 조동종승. 자는 비목이며 장흥(지금 절강에 속함) 전씨. 9세에 호주 숭은에서 낙발(落髮)했음. 처음 변산 번광찬에게 의지했고 후에 석공빈(石公璸)을 불일에서 참하여 조석으로 징힐(徵詰)했고 현지(玄旨)를 통철(洞徹)했고 빈의 인가를 얻었고 계주(繼住)했음 [늠산정등록]. ②청대 조동종승. 자는 초운이며 장사(지금 호남에 속함) 상상 용씨(龍氏). 품성이 척당(倜儻; 뜻이 크고 기개가 있음)하여 철궤(轍軌)를 따르지 않았음. 당시는 명말이라 봉연(烽烟)이 땅에 두루했음. 결지(決志)로 출가했고 유양 위산각항에게 투신하여 치도(薙度)했고 작무(作務)의 여가에 곧 선정을 익혔음. 축암성(竺庵成)이 신주 수창에 거주하면서 도망(道望)이 고준(高峻)하다 함을 듣고 인하여 참알해 입당(入堂)하여 분려(奮勵; 기운을 내어 힘씀)하며 수지(修持)했고 침식을 모두 잊었음. 어느 날 어경(魚磬) 소리를 듣다가 활연(豁然)히 철오했고 성(成)의 인가를 얻었음. 금릉 서하에서 개법했고 다음에 수창을 주지(主持)했음 [늠산정등록. 섭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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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元府】 三國時期設置的梁州 治所在陝西漢中 隋大業三年(607)廢 乾元元年(758) 復爲梁州 唐德宗改其爲興元府 此後不再稱梁州 [百度百科]
흥원부(興元府) 삼국시기 설치한 양주(梁州)니 치소(治所)는 섬서 한중에 있었음. 수 대업 3년(607) 폐했고 건원 원년(758) 다시 양주라 했음. 당 덕종이 그것을 고쳐 흥원부라 했고 이 후에 다시 양주라고 일컫지 않았음 [백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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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元寺】 見千福寺
흥원사(興元寺) 천복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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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偉】 淸代曹洞宗僧 字顧堂 依藥地智得法 住吉州龍偉寺 [廩山正燈錄]
흥위(興偉) 청대 조동종승. 자는 고당이며 약지지에게 의지해 득법했고 길주 용위사에 주(住)했음 [늠산정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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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瑋】 淸代曹洞宗僧 字遠溪 參石潮寧得法 住江浦補處 [廩山正燈錄]
흥위(興瑋) 청대 조동종승. 자는 원계며 석조녕을 참해 득법했고 강포 보처에 거주했음 [늠산정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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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正】 淸代曹洞宗僧 字幻牧 初參鼓山永覺賢 後謁明招松山補 機契 遂承記莂 [廩山正燈錄]
흥정(興正) 청대 조동종승. 자는 환목이며 처음 고산 영각현을 참했고 후에 명초 송산보(松山補)를 참알해 기계(機契)했고 드디어 기별(記莂)을 승수(承受)했음 [늠산정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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