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2 수기선사(修己禪師)-운봉문열(雲峯文悅)

태화당 2025. 10. 7. 11:14

明州仗錫山修己禪師

與浮山遠公遊 嘗卓庵廬山佛手巖 後至四明山心 獨居十餘載 虎豹爲隣 嘗曰 羊腸鳥道無人到 寂寞雲中一箇人 爾後道俗聞風而至 遂成禪林 僧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四稜著地 曰 如何是塔中人 師曰 高枕無憂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舶船過海 赤脚回鄕

羊腸鳥道; 狹窄彎曲又高又險的山上小路

 

명주(明州) 장석산(仗錫山) 수기선사(修己禪師)

부산원공(浮山遠公)과 더불어 교유(交遊; )했다. 일찍이 여산(廬山) 불수암(佛手巖)에 탁암(卓庵)했고 후에 사명산(四明山) 가운데() 이르러 독거(獨居)하기 10여 재()였으며 호표(虎豹)와 이웃이 되었다. 일찍이 가로되 양장조도(羊腸鳥道)에 이르는 사람이 없고 적막한 구름 속의 한 개의 사람이다. 이후(爾後)에 도속(道俗)이 도풍(道風; )을 듣고 이르렀으며 드디어 선림(禪林)을 이루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사릉착지(四稜著地). 가로되 무엇이 이 탑중인(塔中人)입니까. 사왈 고침무우(高枕無憂).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박선(舶船)으로 바다를 지나고 적각(赤脚; 맨발)으로 고향에 돌아간다.

羊腸鳥道; 협착(狹窄)하고 만곡(彎曲)하며 또 높고 또 험한 산상의 작은 길.

 

唐州大乘山德遵禪師

問谷隱曰 古人索火 意旨如何 曰 任他滅 師曰 滅後如何 曰 初三十一 師曰 恁麽則好時節也 曰 汝見甚麽道理 師曰 今日一場困 隱便打 師乃有頌曰 索火之機實快哉 藏鋒妙用少人猜 要會我師親的旨 紅爐火盡不添柴 僧問 世界圓融一句 請師道 師曰 團團七尺餘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鼻大眼深 上堂 上來又不問 下去又不疑 不知是不是 是卽也大奇 便下座

親的; 與禪法契合相應

 

당주(唐州) 대승산(大乘山) 덕준선사(德遵禪師)

곡은(谷隱)에게 물어 가로되 고인이 색화(索火)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가로되 그 끄는() 대로 일임한다. 사왈 끈 후엔 어떻습니까. 가로되 초삼십일(初三十一)이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좋은 시절입니다. 가로되 네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사왈 금일 한바탕 피곤합니다. 곡은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이에 송이 있어 가로되 색화지기(索火之機)가 실로 쾌재(快哉)/ 장봉(藏鋒)의 묘용(妙用)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다/ 아사(我師)의 친적(親的)한 지취를 알고자 한다면/ 홍로(紅爐)에 불이 다했으나 섶을 더하지() 않는다. 승문(僧問) 세계가 원융(圓融)1구를 청컨대 스님이 말하십시오. 사왈 단단(團團; 매우 둥근 모양)하기가 7척 남짓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코는 크고 눈은 깊다. 상당(上堂) 올라와서 또 묻지 않고 내려가서 또 의심하지 않나니 옳은지() 옳지 않은지 알지 못하겠네. 옳은 즉 또한 대기(大奇)하다. 바로 하좌했다.

親的; 선법과 계합하여 상응함.

 

荊南府竹園法顯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好手畫不成 問 如何是道 師曰 交橫十字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往往不相識

交橫; 縱橫交錯

 

형남부(荊南府) 죽원(竹園) 법현선사(法顯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호수(好手)도 그림을 이루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십자(十字)로 교횡(交橫)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왕왕(往往) 서로 알지 못한다.

交橫; 종횡으로 교착(交錯).

 

彭州永福院延照禪師

僧問 如何是彭州境 師曰 人馬合雜 僧以手作拽弓勢 師拈棒 僧擬議 師便打

 

팽주(彭州) 영복원(永福院) 연조선사(延照禪師)

승문 무엇이 이 팽주경(彭州境)입니까. 사왈 인마(人馬)가 합잡(合雜)하다. 중이 손으로써 활을 당기는()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방()을 잡자 중이 의의(擬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安吉州景淸院居素禪師

僧問 卽此見聞非見聞 爲甚麽法身有三種病二種光 師曰 塡凹就缺 問 承和尙有言 寰中天子勑 塞外將軍令 如何是塞外將軍令 師曰 揭 曰 其中事如何 師曰 蹴 曰 莫便是和尙爲人處也無 師彈指一下 問 遠遠投師 乞師一接 師曰 新羅人打鼓 曰 如何領會 師曰 舶主未曾逢 問 如何是末上一句 師曰 金剛樹下 曰 如何是末後一句 師曰 拘尸城邊 曰 向上更有事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波旬拊掌呵呵笑 迦葉頭擡不識人

三種病二種光; 元賢廣錄五 乾峰云 法身有三種病二種光 更須知有向上一竅 老僧今日不惜眉毛 爲諸人註破 凡山河大地 明暗色空 一切萬象 窒礙眼光 皆爲法身之障 是謂一種病 或見諸法空 隱隱地見有法身之理 是謂法執不忘 亦是一種病 或雖透得法身 簡點將來 或覺無可倚靠處 或覺無可主張處 或覺無可指示處 亦是法執不忘 是謂最後一種病 前一種病 是一種光不透脫 後二種病 亦是一種光不透脫 學者若能透向上一竅 則 三種病二種光 不消一揑而破 始謂之參學事畢也

寰中天子勑 塞外將軍令; 寰中天子卽皇帝 具有至高無上的權利 塞外將軍面臨軍機敵情 也有臨時處理一切事務的權利 禪師常以此語 啓示學人領悟自心是佛 以我爲主的禪旨

 

안길주(安吉州) 경청원(景淸院) 거소선사(居素禪師)

승문(僧問) 곧 이 견문이 견문이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법신에 삼종병과 이종광(三種病二種光)이 있습니까. 사왈 요()를 메우면() ()로 나아간다. 묻되 듣건대() 화상이 말씀이 있어 환중에선 천자의 칙령이며 새외에선 장군의 군령이다(寰中天子勑 塞外將軍令). 무엇이 이 새외에선 장군의 군령입니까. 사왈 높이 들어라(). 가로되 그 가운데의 일이 무엇입니까. 사왈 차라().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한 번 탄지(彈指)했다. 묻되 멀고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구걸합니다. 사왈 신라 사람이 타고(打鼓)한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박주(舶主)를 일찍이 만나지 못했다. 묻되 무엇이 이 말상(末上; 최조)1구입니까. 사왈 금강수( 金剛樹) 아래다. 가로되 무엇이 이 말후(末後)1구입니까. 사왈 구시성변(拘尸城邊)이다. 가로되 향상(向上)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입니까. 사왈 파순(波旬)이 부장(拊掌; 拍掌)하며 하하(呵呵) 웃고 가섭이 머리를 들매() 사람을 알지 못한다.

三種病二種光; 원현광록5. 건봉(乾峰)이 이르기를 법신에 3종 병()2종 광()이 있으며 다시 꼭 향상의 한 구멍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했다. 노승이 금일 눈썹을 아끼지 않고 제인을 위해 주석해 깨뜨리겠다. 무릇 산하대지와 명암색공(明暗色空)의 일체 만상이 안광을 막아 장애함이 다 법신의 장애가 된다. 이를 일러 1종의 병이라 한다. 혹은 제법이 공했음을 보았으나 은은히 법신의 도리가 있음을 본다. 이를 일러 법집(法執)을 잊지 못함이라 하나니 또한 이 1종의 병이다. 혹은 비록 법신을 투득했으나 살펴서(察看) 점검해 가져오매 혹은 가히 의지해 기댈 곳이 없음을 느끼며 혹은 가히 주장할 곳이 없음을 느끼며 혹은 가히 지시할 곳이 없음을 느끼나니 또한 이는 법집을 잊지 못함이며 이를 일러 최후의 1종의 병이라 한다. 앞의 1종의 병은 이 1종의 광()을 투탈하지 못함이며 뒤의 2종의 병은 또한 이는 1종의 광을 투탈하지 못함이다. 학자가 만약 능히 향상의 한 구멍을 투득한다면 곧 3종 병과 2종 광을 한 번 누름을 쓰지 않고도 타파하리니 비로소 이를 일러 참학의 일을 마쳤다 하는 것이다.

寰中天子勑 塞外將軍令; 환중천자는 곧 황제니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권리를 갖추고 있으며 새외장군은 군기(軍機)와 적정(敵情)을 면림(面臨; 면전에서 만남)하고 또한 일체의 사무를 임시처리하는 권리가 있음. 선사가 늘 이 말로 학인에게 계시(啓示)하여 자심이 이 부처며 나를 위주로 하는 선지(禪旨)를 영오(領悟)하게 함.

 

處州仁壽嗣珍禪師

僧問 知師已得禪中旨 當陽一句爲誰宣 師曰 土鷄瓦犬 曰 如何領會 師曰 門前不與山童掃 任意松釵滿路岐 上堂 明明無悟 有法卽迷 日上無雲 麗天普照 眼中無翳 空本無花 無智人前 不得錯擧 參

松釵; 松葉 因其雙股如釵狀 故名

麗天; 麗 附著也 易離卦 彖曰 離 麗也 日月麗乎天 百穀草木麗乎土(云云) 王弼注 麗 附著也

 

처주(處州) 인수(仁壽) 사진선사(嗣珍禪師)

승문 스님은 이미 선중(禪中)의 지취를 얻었음을 아나니 당양(當陽)1구를 누구를 위해 선양(宣揚; )하겠습니까. 사왈 토계와견(土鷄瓦犬)이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문 앞을 산동(山童)이 쓸()게 하지 않나니 뜻대로(任意) 송차(松釵)가 노기(路岐)에 가득하다. 상당(上堂) 밝디밝게 깨침이 없나니 법이 있으면 곧 미()한다. 해가 떠오르니 구름이 없고 하늘에 붙어(麗天) 널리 비춘다. 안중(眼中)에 가림()이 없으며 허공에 본래 꽃이 없다. 지혜가 없는 사람 앞에서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하라.

松釵; 송엽(松葉)이니 그 쌍고(雙股)가 비녀()의 형상(形狀)이기 때문에 고로 이름함.

麗天; ()는 부착임. 역 이괘(離卦) ()에 가로되 리()는 려(). 일월이 하늘에 려()하매 백곡과 초목이 땅에 려()한다 (운운) 왕필의 주() ()는 부착이다.

 

越州雲門顯欽禪師

上堂 良久曰 好箇話頭 若到諸方 不得錯擧 便下座

 

월주(越州) 운문(雲門) 현흠선사(顯欽禪師)

상당(上堂) 양구하고 가로되 호개(好箇)의 화두(話頭).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바로 하좌했다.

 

果州永慶光普禪師

初問谷隱 古人道 來日大悲院裏有齋 意旨如何 曰 日出隈陽坐 天寒不擧頭 師入室次 隱曰 適來因緣汝作麽生會 師曰 會則途中受用 不會則世諦流布 曰 未在更道 師拂袖便出 住後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蜀地用鑌鐵

 

과주(果州) 영경(永慶) 광보선사(光普禪師)

처음 곡은(谷隱)에게 묻되 고인(古人; 普化)이 말하되 내일 대비원(大悲院) 속에서 재()가 있다. 의지가 무엇입니까. 가로되 해가 나오면 외양(隈陽; 모퉁이의 陽地)에 앉고 날이 추우면 머리를 들지 못한다. 스님이 입실한 차에 곡은이 가로되 아까의 인연을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사왈 이회하면 곧 도중(途中)에서 수용(受用)하고 이회하지 못하면 곧 세제(世諦)로 유포(流布)됩니다. 가로되 미재(未在; 不然)니 다시 말하라.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촉지(蜀地)에서 빈철(鑌鐵)을 쓴다.

 

駙馬都尉李遵勗居士

謁谷隱 問出家事 隱以崔趙公問徑山公案答之 公於言下大悟 作偈曰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公一日與堅上座送別 公問 近離上黨 得屆中都 方接麈談 遽回虎錫 指雲犀之翠嶠 訪雪嶺之淸流 未審此處彼處 的的事作麽生 座曰 利劒拂開天地靜 霜刀纔擧斗牛寒 公曰 恰直今日耳聵 座曰 一箭落雙鵰 公曰 上座 爲甚麽著草鞋睡 座以衣袖一拂 公低頭曰 今日可謂降伏也 座曰 普化出僧堂 公臨終時 膈胃躁熱 有尼道堅謂曰 衆生見劫盡 大火所燒時 都尉切宜照管主人公 公曰 大師與我煎一服藥來 堅無語 公曰 這師姑藥也不會煎得 公與慈明問答罷 泊然而終 語見慈明傳中

崔趙公問徑山; 崔趙公問 弟子今欲出家 得否 師曰 出家乃大丈夫事 非將相之所能爲 公於是有省 見上二道欽章

麈談; 執麈尾而淸談 亦泛指閑居談論

虎錫; 虎 性凶猛 力大 後引申爲勇猛 威武

中都; 泛指中國歷史上的古都 亦指中國歷史上不同朝代的國都 首都 中京

霜刀; 雪亮鋒利的刀

斗牛; 二十八宿中 斗星與牛星 卽北斗星與牽牛星

照管; 照察管理

 

부마도위(駙馬都尉) 이준욱(李遵勗) 거사

곡은(谷隱)을 예알(禮謁)하여 출가사(出家事)를 묻자 곡은이 최조공이 경산에게 물은(崔趙公問徑山) 공안(公案)으로써 답했다. ()이 언하에 대오하고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도를 배움엔 모름지기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손을 대면 바로 판단하여/ 바로 위없는 보리로 취향(趣向)하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하지 말아라. ()이 어느 날 견상좌(堅上座)를 위해() 송별했다. 공이 묻되 요사이 상당(上黨)을 떠나 중도(中都)에 이름()을 얻어 바야흐로 주담(麈談)을 접()했고 급히 호석(虎錫)을 돌이키며() 운서(雲犀; 靈犀)의 취교(翠嶠; 翠峰)를 가리키고 설령(雪嶺)의 청류(淸流)를 심방(尋訪)했습니다. 미심하나니 차처피처(此處彼處)의 적적(的的; 진실)한 일이 어떻습니까. 좌왈(座曰) 이검(利劒)으로 불개(拂開)하니 천지가 고요하고 상도(霜刀)를 겨우 들매 우두(斗牛)가 차갑습니다. 공왈(公曰) 마침 금일 귀가 먹음(耳聵)을 만났습니다(). 좌왈(座曰) 1()에 쌍조(雙鵰)가 떨어졌습니다. 공왈(公曰) 상좌는 무엇 때문에 짚신을 신고 잡니까(著草鞋睡). 상좌가 옷소매를 한 번 떨쳤다. 공이 머리를 숙이고 가로되 금일 가히 항복(降伏)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좌왈(座曰) 보화(普化)가 승당(僧堂)에서 나갔습니다. 공이 임종 시 가슴()과 위()가 조열(躁熱; 煩燥하고 열이 남)했다. () 도견(道堅)이 있어 일러 가로되 중생이, 겁이 다하여 큰 화재에 타는 바를 볼 때입니다. 도위는 간절하고 마땅하게 주인공(主人公)을 조관(照管)하십시오. 공왈(公曰) 대사(大師)는 나를 위해 한 번 복용할 약을 다려 오십시오. 도견이 말이 없었다. 공왈 이 사고(師姑; 비구니)가 약도 또한 다릴 줄 알지 못하는구나. 공과 자명(慈明)이 문답을 마치자() 박연(泊然)히 마쳤으니 어()는 자명전(慈明傳) 가운데를 보라.

崔趙公問徑山; 최조공(崔趙公)이 묻되 제자가 이제 출가하려고 하는데 얻겠습니까. 사왈 출가는 곧() 대장부의 일인지라 장상(將相)이 능히 할 바가 아니다. ()이 이에서 살핌이 있었다. 2 도흠장(道欽章)을 보라.

麈談; 주미(麈尾)를 가지고 청담(淸談). 또한 널리 한거(閑居)하며 담론함을 가리킴.

虎錫; ()는 성품이 사납고 힘이 큼. 후에 인신(引申; 轉義)하여 용맹, 위무(威武)로 삼았음.

中都; 널리 중국 역사상의 고도(古都)를 가리킴. 또한 중국 역사상의 같지 않은 조대(朝代)의 국도ㆍ수도ㆍ중경(中京)을 가리킴.

霜刀; 눈처럼 밝고 칼날이 날카로운 칼.

斗牛; 28(宿) 중에 두성(斗星)과 우성(牛星)이니 곧 북두성과 견우성.

照管; 조찰(照察)하며 관리함.

 

英公夏竦居士

字子喬 自契機於谷隱 日與老衲遊 偶上藍溥禪師至 公問 百骸潰散時 那箇是長老自家底 藍曰 前月二十離蘄陽 公休去 藍却問 百骸潰散時 那箇是相公自家底 公便喝 藍曰 喝則不無 畢竟那箇是相公自家底 公對以偈曰 休認風前第一機 太虛何處著思惟 山僧若要通消息 萬里無雲月上時 藍曰 也是弄精魂

 

영공(英公) 하송거사(夏竦居士)

자가 자교(子喬). 곡은(谷隱)에게서 계기(契機)함으로부터 날로 노납(老衲)들과 교유(交遊)했다. 우연히 상람부(上藍溥) 선사가 이르렀다. ()이 묻되 백해(百骸)가 궤산(潰散)할 때 어느 것(那箇)이 이 장로의 자가의 것(自家底)입니까. 람왈(藍曰) 전월(前月) 20에 기양(蘄陽)을 떠났습니다. 공이 쉬러 가자 람이 도리어 묻되 백해가 궤산할 때 어느 것이 이 상공(相公)의 자가의 것입니까. 공이 바로 할()했다. 람왈(藍曰) 할은 곧 없지 않으나 필경 어느 것이 이 상공(相公)의 자가의 것입니까. 공이 게로써 대답해 가로되 풍전(風前)의 제일기(第一機)를 인정(認定)함을 그칠지니()/ 태허(太虛)의 어느 곳에 사유를 붙이겠는가/ 산승이 만약 소식을 통지함을 요한다면/ 만 리에 구름이 없고 달이 떠오를 때다. 람왈(藍曰) 또 이는 정혼(精魂)을 희롱함입니다.

 

廣慧璉禪師法嗣

東京華嚴道隆禪師

初參石門徹和尙 問曰 古者道 但得隨處安閑 自然合他古轍 雖有此語 疑心未歇時如何 門曰 知有乃可隨處安閑 如人在州縣住 或聞或見 千奇百怪 他總將作尋常 不知有而安閑 如人在村落住 有少聲色則驚怪傳說 師於言下有省 門盡授其洞上厥旨 後爲廣慧嗣 一日 福嚴承和尙問曰 禪師親見石門 如何却嗣廣慧 師曰 我見廣慧 渠欲剃髮 使我擎凳子來 慧曰 道者 我有凳子詩聽取 乃曰 放下便平穩 我時便肯伊 因敘在石門處所得 廣慧曰 石門所示 如百味珍羞 祇是飽人不得

洞上; 乃洞山良价禪師所倡導之禪宗 亦用以指曹洞宗 因相對於末師末流而言 故稱洞上

 

동경(東京) 화엄(華嚴) 도륭선사(道隆禪師)

석문철(石門徹; 慧徹) 화상을 초참(初參)하여 물어 가로되 고자(古者)가 말하되 단지 곳을 따라 안한(安閑)함을 얻으면 자연히 저 고철(古轍)에 합한다. 비록 이 말이 있으나 의심을 쉬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문왈(門曰) 지유(知有)라야 이에 가히 곳을 따라 안한하나니 마치 사람이 주현(州縣)에서 머물며 혹 듣고 혹 보되 천기백괴(千奇百怪)를 그가 모두 가져다 심상(尋常)으로 삼음과 같다. 지유(知有)하지 않고 안한함은 사람이 촌락(村落)에서 머물며 조금의 성색(聲色)만 있어도 곧 경괴(驚怪)하고 전설(傳說)함과 같다. 스님이 언하에 살핌이 있었다. 석문이 그 동상(洞上)의 궐지(厥旨)를 모두 수여했다. 후에 광혜(廣慧)의 사(; 法嗣)가 되었다. 어느 날 복엄승(福嚴承; 審承) 화상이 물어 가로되 선사(禪師)는 석문(石門)을 친견했거늘 어찌하여 도리어 광혜를 이었는가. 사왈 내가 광혜를 뵙자 거(; )가 체발(剃髮)하려고 하면서 나를 시켜 등자(凳子; 걸상)를 받들어 오게 했다. 광혜가 가로되 도자(道者), 나에게 등자시(凳子詩)가 있으니 청취(聽取)하라. 이에 가로되 방하(放下)해야 바로 평온하다. 내가 당시에 바로 그()를 긍정했고 인하여 석문의 처소에서 얻은 바를 서술하자 광혜가 가로되 석문이 보인 바는 백미진수(百味珍羞)와 같으나 다만 이는 사람을 배부르게 함을 얻지 못한다.

洞上; 곧 동산양개 선사가 창도(倡導)한 바의 선종이니 또한 조동종을 가리키는 데 씀. 말사말류(末師末流)에 상대해 말함으로 인해 고로 일컬어 동상(洞上)이라 함.

 

師至和初游京 客景德寺 日縱觀都市 歸常二鼓 一夕不得入 臥於門之下 仁宗皇帝夢至寺門 見龍蟠地 驚覺 中夜遣中使視之 覩師熟睡鼻鼾 撼之驚矍 問名歸奏 帝聞名道隆 乃喜曰 吉徵也 明日召至便殿 問宗旨 師奏對詳允 帝大悅 後以偈句相酬唱 絡繹於道 或入對留宿禁中 禮遇特厚 賜號應制明悟禪師 皇祐間 詔大覺璉禪師於化成殿演法 召師問話 機鋒迅捷 帝大悅 侍衛山呼 師卽奏疏擧璉自代 禁林待問 秘殿譚禪 乞歸廬山 帝覧表不允 有旨 於曹門外建精舍延師 賜號華嚴禪院 開堂 僧問 如何是道 師曰 高高低低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脚瘦草鞋寬 師年八十餘 示寂於盛暑 安坐七日 手足柔和 全身塔于寺之東

縱觀; 縱 放縱 不加拘束 玉篇 縱 恣也

絡繹; 前後相接 連續不斷

侍衛; 侍從護衛 在帝王左右衛護的武官

山呼; 臣下祝頌皇帝的一種禮節 也作嵩呼 禪林疏語考證一 嵩呼 前武帝紀 朕親登嵩山 乘屬在後 吏卒咸聞呼萬歲者三

禁林; 一皇家園林 二翰林院的別稱

秘殿; 奥深的宫殿

 

스님이 지화(至和; 1054-1055) 초 경사(京師; )를 유행(游行)했고 경덕사(景德寺)에 의탁(依託; )하면서 날마다 도시를 종관(縱觀; 마음대로 봄)했는데 돌아옴이 늘 2(二鼓; 二更)였다. 어느 날 저녁 득입(得入)하지 못해 문()의 아래 누웠는데 인종황제(仁宗皇帝)가 꿈에 사문(寺門)에 이르러 보매 용이 땅에 서렸다(蟠地). 놀라서 깨어 중야(中夜)에 중사(中使)를 보내 그것을 보게 했다. 스님을 보매 푹 자면서 코를 골았다(; 코를 골 한). 흔들자 놀라며 두리번거렸다(驚矍). 이름을 묻고 돌아와 아뢰었다. 황제가 도륭(道隆)이란 이름을 듣고 이에 기뻐하며 가로되 길징(吉徵)이다. 명일 불러 편전(便殿)에 이르게 하여 종지(宗旨)를 묻자 스님의 주대(奏對)가 상윤(詳允; 상세하고 允當)했다. 황제가 대열(大悅)했다. 후에 게구(偈句)로써 서로 수창(酬唱)하며 도()를 낙역(絡繹)했다. 혹은 입대(入對)하여 금중(禁中)에 유숙(留宿)했는데 예우(禮遇)가 특후(特厚)했고 사호(賜號)하여 응제명오선사(應制明悟禪師)라 했다. 황우(皇祐; 1046-1053) 간 대각련(大覺璉; 懷璉) 선사를 불러() 화성전(化成殿)에서 연법(演法)하게 했고 스님을 불러 문화(問話)하게 했는데 기봉(機鋒)이 신첩(迅捷)하여 황제가 대열(大悅)했고 시위(侍衛)가 모두 산호(山呼)했다. 스님이 곧 주소(奏疏)하여 회련(懷璉; )을 천거(薦擧)해 자기를 대신(代身)하여 금림(禁林)에서 대문(待問)하고 비전(秘殿)에서 담선(譚禪)하게 하고 여산(廬山)으로 돌아감을 구걸했다. 황제가 표문(表文; )을 열람하고 윤허하지 않았고 성지(聖旨)가 있어 조문(曹門) 밖에 정사(精舍)를 건립해 스님을 맞이하고 사호(賜號)하여 화엄선원(華嚴禪院)이라 했다. 개당(開堂)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높은 것은 높고 낮은 것은 낮다(高高低低).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발이 야위면() 짚신이 넓다(). 스님이 나이 80()에 성서(盛暑)에 시적(示寂)했는데 안좌(安坐)하기 7일 동안 수족(手足)이 유화(柔和)했다. 전신(全身)으로 사원의 동쪽에 탑을 세웠다.

縱觀; ()은 방종(放縱)이니 구속을 가하지 않음임. 옥편 종() ().

絡繹; 전후가 상접(相接)하여 연속(連續)해 끊기지 않음.

侍衛; 시종(侍從)하며 호위(護衛). 제왕(帝王)의 좌우에 있으면서 위호(衛護)하는 무관(武官).

山呼; 신하가 황제를 축송(祝頌)하는 일종의 예절. 또 숭호(嵩呼)로 지음. 선림소어고증1. 숭호(嵩呼) 전한 무제기(武帝紀) 짐이 친히 숭산에 올랐는데 승속(乘屬)은 후면에 있었고 이졸(吏卒)이 모두, 만세를 부름을 들은 게 세 번이다.

禁林; 1. 황가(皇家)의 원림(園林). 2. 한림원(翰林院)의 별칭.

秘殿; 오심(奥深)한 궁전.

 

臨江軍慧力慧南禪師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鐵牛不喫欄邊草 直上須彌頂上眠 曰 恁麽則昔日汝陽親得旨 臨江今日大敷揚 師曰 禮拜了退 問 如何是佛 師曰 頭大尾小 曰 未曉玄言 乞師再指 師曰 眉長三尺二 曰 恁麽則人人皆頂戴 見者盡攢眉 師長噓一聲 僧拍一拍便禮拜 師曰 一任𨁝跳

臨江軍; 宋淳化三年(992) 析淸江 新淦 新喩三縣置臨江軍 元世祖至元十四年(1277) 改臨江軍爲臨江路 治所淸江在今江西樟樹市臨江鎭 [百度百科]

 

임강군(臨江軍) 혜력(慧力) 혜남선사(慧南禪師)

승문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철우(鐵牛)가 난변(欄邊)의 풀을 먹지 않고 수미정상(須彌頂上)으로 직상(直上)하여 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석일(昔日) 여양(汝陽)에서 친히 득지(得旨)했고 임강(臨江)에서 금일 크게 부양(敷揚)합니다. 사왈 예배하고 물러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다. 가로되 현언(玄言)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지(再指)를 구걸합니다. 사왈 눈썹의 길이가 32.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람마다 모두 정대(頂戴)하고 보는 자가 다() 눈썹을 찌푸릴(攢眉) 것입니다. 스님이 길게 허()를 일성(一聲)했다. 중이 두드려 한 두드리고(拍一拍) 바로 예배했다. 사왈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는 대로 일임한다.

臨江軍; 송 순화 3(992) 청강ㆍ신감ㆍ신유 3()을 쪼개어 임강군을 설치했음. 원 세조 지원 14(1277) 임강군을 고쳐 임강로라 했음. 치소는 청강이니 지금의 강서 장수시 임강진에 있었음 [백도백과].

 

汝州廣慧德宣禪師

僧問 祖祖相傳傳祖印 師今得法嗣何人 師曰 仲氏吹塤 伯氏吹篪 曰 恁麽則廣慧的子 首山親孫也 師曰 椽塠裏坐地 不打闍黎

 

여주(汝州) 광혜(廣慧) 덕선선사(德宣禪師)

승문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하여 조인(祖印)을 전했거니와 스님이 이제 득법(得法)함은 어떤 사람을 이었습니까. 사왈 중씨(仲氏; 二弟)가 질나발(; 이 훈)을 불고 백씨(伯氏; 長兄)가 피리(; 이 지)를 분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광혜(廣慧)의 적자(的子)며 수산(首山)의 친손(親孫)입니다. 사왈 써까래 무더기(; 와 같음) 속에 앉아(坐地) 사리(闍黎)를 때리지 않겠다.

 

文公楊億居士

字大年 幼擧神嬰 及壯負才名而未知有佛 一日過同僚 見讀金剛經 笑且罪之 彼讀自若 公疑之曰 是豈出孔孟之右乎 何侫甚 因閱數板 懵然始少敬信 後會翰林李公維 勉令發問 及由秘書監出守汝州 首謁廣慧 慧接見 公便問 布鼓當軒擊 誰是知音者 慧曰 來風深辯 公曰 恁麽則禪客相逢祇彈指也 慧曰 君子可八 公應喏喏 慧曰 草賊大敗 夜語次 慧曰 秘監曾與甚人道話來 公曰 某曾問雲巖諒監寺 兩箇大虫相齩時如何 諒曰 一合相 某曰 我祇管看 未審恁麽道還得麽 慧曰 這裏卽不然 公曰 請和尙別一轉語 慧以手作拽鼻勢曰 這畜生更𨁝跳在 公於言下脫然無疑 有偈曰 八角磨盤空裏走 金毛獅子變作狗 擬欲將身北斗藏 應須合掌南辰後

翰林; 翰林院 唐代以來歷代王朝所置的官廳之一 按唐會要五十七 翰林院開元(713-741)初置 本在銀臺門內 麟德殿西廂重廊之後 蓋天下以藝能技術見召者之所處也 學士院者 開元二十六年之所置 在翰林之南 別戶東向 皇帝的文學侍從官 唐朝以後始設 明淸改從進士中選拔 [百度漢語] 此指

秘書; 祕書 職務名 古代稱掌管圖書之官 如漢以來之祕書監祕書郞皆是 [百度百科]

君子可八; 指怜悧之人 或悟得之人 又君子可以具仁義禮智孝悌忠信之八德

監寺; 禪宗六知事之一 卽總領衆僧之職稱 爲一寺之監督(與寺主同) 古稱監院 院主 寺主 後爲特尊住持而改稱此名 祖庭事苑八 梵語摩摩帝 此云寺主 卽今之監寺也 詳其寺主 起於東漢白馬也 寺旣爰處 人必主之 于時雖無寺主之名 而有知事之者 至東晉以來 此職方盛 今吾禪門有內外知事 以監寺爲首者 盖相沿襲而然也

脫然; 一形容超脫 通達 二省悟 領悟

八角磨盤; 磨者石磨也 盤者磨之座也 以板造之 或爲團圝 或作八角 八角者必因磨目之數有八故也 [碧巖錄不二鈔]

 

문공(文公) 양억거사(楊億居士)

자가 대년(大年)이며 어릴 적에 신영(神嬰; 神童)으로 거천(擧薦)되었다. 및 장성(壯盛)하자 재명(才名)을 지었으나() ()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동료(同僚)에 이르러() 금강경을 읽음을 보고 웃으며 또() 탓했으나(罪之) 그는 읽으면서 자약(自若)했다. ()이 이를 의심해 가로되 이것이 어찌 공맹(孔孟)의 우(; )를 초출하겠는가, 어찌하여 아첨(阿諂; )이 심한가. 인하여 몇 판()을 읽었는데 몽연(懵然)하며 비로소 조금 경신(敬信)했다. 후에 한림(翰林) 이공유(李公維)를 만났더니() 권면(勸勉; )하며 발문(發問)하게 했다. 및 비서감(秘書)을 말미암아 여주(汝州)로 출수(出守)하자 먼저() 광혜(廣慧)를 예알했다. 광혜가 접견(接見)하자 공()이 바로 묻되 포고(布鼓)를 당헌(當軒)하여 치면 누가 이 지음자(知音者)입니까. 혜왈(慧曰) 내풍(來風)을 깊이 분변()한다. 공왈(公曰) 이러하다면 곧 선객이 상봉하매 다만 탄지(彈指)함입니다. 혜왈(慧曰) 군자가팔(君子可八)이다. () 응하여 낙낙(喏喏)했다. 혜왈(慧曰) 초적(草賊)이 대패(大敗)했다. 야어(夜語)하던 차에 혜왈(慧曰) 비감(秘監)은 일찍이 어떤 사람과 도화(道話; 도를 얘기하다)하여 왔는가. 공왈(公曰) ()가 일찍이 운암량(雲巖諒) 감사(監寺)에게 묻되 두 개의 대충(大虫)이 서로 물 때 어떻습니까. 량왈(諒曰) 일합상(一合相)입니다. ()가 가로되 나는 다만 관간(管看)하겠습니다. 미심하오니 이렇게 말함이 도리어 옳습니까. 혜왈(慧曰) 저리(這裏)는 곧 그렇지 않다. 공왈(公曰) 청컨대 화상이 일전어(一轉語)를 별()하십시오. 광혜가 손으로써 코를 끌어당기는() 자세를 짓고 가로되 이 축생(畜生)이 다시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는구나. ()이 언하에 탈연(脫然)하여 의심이 없었다. 게가 있어 가로되 팔각마반(八角磨盤)이 허공 속을 달리고/ 금모사자(金毛獅子)가 변해 개가 되었다/ 몸을 가지고 북두(北斗)에 감추려고 한다면/ 응당 꼭 남진(南辰) 뒤에서 합장(合掌)하라.

翰林; 한림원(翰林院)이니 당대 이래 역대 왕조에서 설치한 바의 관청의 하나. 당회요57을 안험컨대 한림원은 개원(713-741)초에 설치했으며 본래 은대문(銀臺門) , 인덕전(麟德殿) 서상중랑(西廂重廊; 은 곁채)의 뒤에 있었음. 대개 천하에서 예능과 기술로 현소(見召; 부름에 알현)하는 자의 소처(所處). 학사원(學士院)이란 것은 개원 26년에 설치한 곳이며 한림의 남쪽에 있고 별호(別戶)는 동향(東向). 황제의 문학시종관(文學侍從官)이니 당조(唐朝) 이후에 비로소 설치했음. 명ㆍ청에선 진사(進士) 가운데로부터 고쳐서 선발했음 [백도한어]. 여기에선 를 가리킴.

秘書; 비서(祕書)와 같음. 직무의 이름. 고대에 도서를 장관하는 관리의 호칭이니 한() 이래의 비서감ㆍ비서랑 같은 게 다 이것임 [백도백과].

君子可八; 영리(怜悧)한 사람이나 혹은 오득(悟得)한 사람을 가리킴. 또 군자는 가이(可以) 인ㆍ의ㆍ예ㆍ지ㆍ효ㆍ제ㆍ충ㆍ신의 8덕을 갖추어야 함.

監寺; 선종 6지사(知事)의 하나. 곧 중승을 모두 거느리는 직칭이니 한 절의 감독이 됨(寺主와 같음). 옛 명칭은 감원ㆍ원주ㆍ사주인데 후에 특별히 주지를 존중하여 이 명칭으로 개칭했음. 조정사원8. 범어로 마마제(摩摩帝)는 여기에선 이르되 사주(寺主)니 즉금의 감사(監寺). 그 사주를 상고(詳考)하건대 동한(후한)의 백마사에서 일어났으며 사()가 이미 이에 처하자 사람이 반드시 이를 주재해야 했음. 때에 비록 사주의 이름이 없었으나 지사(知事)하는 자가 있었고 동진(東晉)에 이른 이래로 이 직()이 비로소 성했는데 지금 우리 선문에 내외의 지사가 있으며 감사를 으뜸으로 삼는 것은 대개 서로 본받아 좇아서 그러함.

脫然; 1. 초탈ㆍ통달을 형용. 2. 성오(省悟; 살펴 깨침). 영오(領悟; 깨달아 앎).

八角磨盤; ()란 것은 석마(石磨; 맷돌)며 반()은 마()의 좌()니 판()으로 그것을 만들며 혹 단란(團圝; 둥긂)하거나 혹 팔각으로 만듦. 팔각이란 것은 반드시 마목(磨目)의 수가 여덟이 있음을 인한 연고임 [벽암록불이초].

 

復杼其師承密證 寄李翰林曰 病夫夙以頑憃 獲受獎顧 預聞南宗之旨 久陪上國之遊 動靜咨詢 周旋策發 俾其刳心之有詣 墻面之無慙者 誠出於席間牀下矣 矧又故安公大師每垂誘導 自雙林滅影 隻履西歸 中心浩然 罔知所止 仍歲沉痾 神慮迷恍 殆及小間 再辯方位 又得雲門諒公大士見顧蓬蒿 諒之旨趣 正與安公同轍 竝自廬山雲居歸宗而來 皆是法眼之流裔 去年假守茲郡 適會廣慧禪伯 實承嗣南院念 念嗣風穴 穴嗣先南院 南院嗣興化 興化嗣臨濟 臨濟嗣黃檗 黃檗嗣百丈 丈嗣馬祖 祖出讓和尙 讓卽曹溪之長嫡也 齋中務簡 退食之暇 或坐邀而至 或命駕從之 請扣無方 蒙滯頓釋 半歲之後 曠然弗疑 如忘忽記 如睡忽覺 平昔礙膺之物 嚗然自落 積劫未明之事 廓爾現前 固亦決擇之洞分 應接之無蹇矣 重念先德 率多參尋 如雪峰九上洞山 三到投子 遂嗣德山 臨濟得法於大愚 終承黃檗 雲巖多蒙道吾訓誘 乃爲藥山之子 丹霞親承馬祖印可 而終作石頭之裔 在古多有 於理無嫌 病夫今繼紹之緣 實屬於廣慧 而提激之自 良出於鼇峯也 欣幸欣幸

獎顧; 賞識眷顧

刳心; 一道敎語 謂摒棄雜念 二挖出心臟 表示忠心

牆面; 尙書 人而不學 其猶正牆面而立 從容錄第七十一則 尙書不學牆面 疏 面牆無所覩見

浩然; 一正大豪邁 二廣闊盛大

仍歲; 連年 多年

沉痾; 積久難治的病

神慮; 精神 心神

迷恍; 迷離恍惚 形容模糊而難以分辨淸楚

小間; 病稍愈

見顧; 猶光顧 看待我 賞識我

蒿蓬; 一蒿和蓬 泛指雜草 二草野

禪伯; 對德高望重的禪師的尊稱

長嫡; 正妻所生的長子或長女

; 請問扣問

嚗然; 嚗 放杖聲 莊子知北遊 神農隱几擁杖而起 嚗然放杖而笑 又怒聲 集韻 嚗 怒聲

廓爾; 開悟貌 空闊貌

提激; 提撕激勵

忻幸; 歡喜而慶幸

 

다시 그 사승(師承)의 밀증(密證)을 펴서() 이한림(李翰林)에게 기탁해 가로되 병부(病夫; 양억)가 예로부터() 완용(頑憃; 미련하고 어리석음)했는데 장고(獎顧)를 획수(獲受; 얻어 받다)하여 남종(南宗)의 종지(宗旨)를 예문(預聞; 참여해 듣다)했고 오래 모시고 상국(上國; 國都)을 노닐며 동정(動靜)에 자순(咨詢; 諮問)했고 주선(周旋)하며 책발(策發; 발심을 策勵)하시어 그 고심(刳心)의 나아감이 있고 장면(牆面)의 부끄러움이 없게 한 것은 참으로() 석간(席間)과 상하(牀下)에서 나왔습니다. 하물며() 또 고() 안공대사(安公大師)는 매번 유도(誘導)를 내리셨는데 쌍림(雙林)에서 멸영(滅影; 滅度를 가리킴)함으로부터 척리(隻履)로 서귀(西歸)함의 중심(中心)이 호연(浩然)하여 머물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잉세(仍歲; 여러 해)에 침아(沉痾)로 신려(神慮; 정신)가 미황(迷恍)하다가 거의() 소간(小間)에 미치자 다시 방위를 분변했습니다. 또 운문(雲門) 량공대사(諒公大士), 호봉(蒿蓬)을 견고(見顧)하심을 얻었는데 량()의 지취는 바로() 안공(安公)과 동철(同轍)이었습니다. 모두() 여산(廬山)의 운거(雲居)ㆍ귀종(歸宗)으로부터 오셨고 모두 이 법안(法眼)의 유예(流裔; 流派의 후예)입니다. 지난해(去年) 잠시() 이 군()을 수호(守護; )했는데 마침() 광혜(廣慧; 元璉) 선백(禪伯)을 만났으니 실로 남원념(南院念; 省念)을 승사(承嗣)했습니다. ()은 풍혈(風穴; 延沼)을 이었고 풍혈은 선남원(先南院; 慧顒)을 이었고 남원은 흥화(興化; 存獎)를 이었고 흥화는 임제(臨際; 義玄)를 이었고 임제는 황벽(黃檗; 希運)을 이었고 황벽은 백장(百丈; 懷海)를 이었고 백장은 마조(馬祖; 道一)를 이었고 마조는 양화상(讓和尙; 懷讓)에게서 나왔으며 양()은 곧 조계(曹谿; 혜능)의 장적(長嫡)입니다. 재중(齋中)의 직무(職務; )가 간단(簡單)했고 음식을 물리는(退食) 여가(餘暇)에 혹 앉아서 맞이하면() 이르렀고 혹 어거(馭車; )를 명()하면 좇았습니다. 청구(請扣)하며 방위가 없었는데 몽체(蒙滯; 蒙昧하고 遲滯)가 문득 풀렸습니다(頓釋). 반세(半歲; 半年) 후에 광연(曠然)하여 의심하지 않았으니(弗疑) 잊었다가 홀연히 기억함과 같았고 자다가 홀연히 깸과 같았습니다. 평석(平昔)의 애응지물(礙膺之物; 가슴에 거리끼는 물건)이 박연(嚗然)히 저절로 떨어졌고 적겁(積劫)에 밝히지 못했던 일이 확이(廓爾) 현전(現前)했습니다. 참으로() 또한 결택(決擇)의 통분(洞分; 환한 분분)이며 응접(應接)의 무건(無蹇; 굼뜸이 없음)입니다. 선덕(先德)을 거듭 생각하건데 솔다(率多; 大多)가 참심(參尋)했습니다. 설봉(雪峰)은 아홉 번 동산(洞山)에 오르고 세 번 투자(投子)에 이르렀는데 드디어 덕산을 이었고 임제는 대우(大愚)에게서 득법했으나 마침내 황벽을 이었고() 운암(雲巖; 曇晟)은 많이 어리석어() 도오(道吾; 宗智)가 훈유(訓誘)했는데 이에 약산(藥山; 惟儼)의 법자(法子; )가 되었고 단하(丹霞; 天然)는 마조의 인가(印可)를 친승(親承)했으나 마침내 석두(石頭; 希遷)의 후예(後裔; )가 되었습니다. 옛적에(在古) 많이 있었으니 이치에 혐의(嫌疑; )가 없습니다. 병부(病夫)의 지금의 계소지연(繼紹之緣)은 실로 광혜(廣慧; 元璉)에 속하나니 제격(提激)의 처음()이 참으로() 오봉(鼇峯)에서 나왔습니다. 흔행(忻幸)하고 흔행합니다.

獎顧; 상식(賞識; 재능을 알다)하여 권고(眷顧; 돌보아 줌).

刳心; 1. 도교어(道敎語)니 이르자면 잡념을 병기(摒棄; 물리쳐 버림). 2. 심장을 후벼냄. 충심을 표시.

牆面; 상서. 사람이면서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장면(牆面)하고 선 것과 같다. 종용록 제71. 상서 불학장면(不學牆面) () 면장(面牆; 담벼락을 마주 대하다)하여 보이는 바가 없음이다..

浩然; 1. 정대(正大)하고 호매(豪邁; 기개와 도량이 넓음). 2. 광활하고 성대함.

仍歲; 연년(連年). 다년.

; 오래 누적되어(積久) 치료하기 어려운 병.

神慮; 정신. 심신(心神).

迷恍; 미리황홀(迷離恍惚)이니 모호하면서 청초(淸楚; 명백)를 분변하기 어려움을 형용.

小間; 병이 조금 나음.

見顧; 광고(光顧)와 같음. 나를 간대(看待; 對待). 나를 상식(賞識; 알아줌).

蒿蓬 1. (; )와 봉(; ). 널리 잡초를 가리킴. 2. 초야(草野).

禪伯; 덕이 높고 명망이 큰 선사에 대한 존칭.

長嫡; 정처(正妻) 소생(所生)의 장자 혹 장녀.

請叩; 청문(請問)하고 구문(扣問).

嚗然; ()은 지팡이를 놓는 소리. 장자 지북유 신농이 안석에 기대었다가 지팡이를 안고 일어나더니 박연(嚗然)하며 지팡이를 놓고 웃었다. 또 노한 소리니 집운 박() 노성(怒聲)이다.

廓爾; 개오(開悟)하는 모양. 공활한 모양.

提激; 제시(提撕)하며 격려함.

忻幸; 환희하면서 경행(慶幸).

 

公問廣慧曰 承和尙有言 一切罪業 皆因財寶所生 勸人疎於財利 況南閻浮提衆生 以財爲命 邦國以財聚人 敎中有財法二施 何得勸人疎財乎 慧曰 幡竿尖上鐵龍頭 公曰 海壇馬子似驢大 慧曰 楚鷄不是丹山鳳 公曰 佛滅二千歲 比丘少慚愧 公置一百問 請廣慧答 慧一一答回 公問李都尉曰 釋迦六年苦行 成得甚麽事 尉曰 擔折知柴重 公因微恙 問環大師曰 某今日忽違和 大師慈悲 如何醫療 環曰 丁香湯一盌 公便作吐勢 環曰 恩愛成煩惱 環爲煎藥次 公呌曰 有賊 環下藥於公前 叉手側立 公瞠目眎之曰 少叢林漢 環拂袖而出 又一日問曰 某四大將欲離散 大師如何相救 環乃槌胸三下 公曰 賴遇作家 環曰 幾年學佛法 俗氣猶未除 公曰 禍不單行 環作噓噓聲 公書偈遺李都尉曰 漚生與漚滅 二法本來齊 欲識眞歸處 趙州東院西 尉見遂曰 泰山廟裏賣紙錢 尉卽至 公已逝矣

幡竿; 刹竿 幡柱也 華嚴懸談會玄記七 要覽云 梵語剌瑟致 此云竿 今略名刹 卽幡柱也

海壇; 爲平潭縣的主島 所以也稱平潭島 是全國第五大島 福建第一大島 東西寬約十九公里 南北長約二十九公里 [百度百科]

楚鷄; 尹文子曰 楚人擔山雉者 路人問 何鳥也 擔雉者欺之曰 鳳凰也 路人曰 我聞有鳳凰 今直見之 汝販之乎 曰 然 則十金弗與 請加倍 乃與之 將欲獻楚王 經宿而鳥死 路人不遑惜金 惟恨不得以獻楚王 國人傳之 咸以爲眞鳳凰 貴欲以獻之 遂聞楚王 王感其欲獻於己 召而厚賜之 過於買鳥之金十倍

丹山鳳; 山海經曰 丹穴之山 其上多金玉 丹水出焉 而南流注于渤海 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凰 三才圖會宮室類一有阿閣圖 曰阿閣黃帝造 帝王世紀曰 黃帝時白鳳巢於阿閣 [虛堂錄犂耕]

丁香; 紫丁香 是落葉灌木或小喬木 又稱百結 情客 龍梢子 [百度百科]

少叢林; 謂於禪林中參禪辨道日淺 短期從事參禪修業者 與飽叢林相對

泰山廟裏賣紙錢; 比喩好手面前徒誇好手 去泰山廟者不是皇帝封禪 便是官員百姓朝拜進香 他們携帶衆多的供品祭物 而紙錢只是祭奠鬼魂的最低等級 與泰山廟裏的供品祭物不能比較 所以到泰山廟去賣紙錢 是不知高低貴賤的表現

 

()이 광혜(廣慧)에게 물어 가로되 듣건대() 화상이 말씀이 있어 일체의 죄업은 모두 재보(財寶)로 인해 나는 것이다(所生) 하며 사람들에게 재리(財利)를 소원(疎遠; )하라고 권하셨거니와 하물며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중생은 재물로써 목숨을 삼고 방국(邦國; 국가)은 재물로써 사람을 모음이겠습니까. 교중(敎中)에도 재법(財法) 2()가 있거늘 어찌하여 사람에게 권해 재물을 소원하게 함을 얻겠습니까. 혜왈(慧曰) 번간(幡竿)의 꼭대기() 위의 철룡두(鐵龍頭). 공왈(公曰) 해단(海壇)의 마자(馬子)는 나귀의 크기와 같습니다. 혜왈(慧曰) 초계(楚鷄)는 이 단산봉(丹山鳳)이 아니다. 공왈(公曰) 불멸(佛滅)한 지 2천 세()에 비구가 참괴(慚愧)가 적습니다. ()이 일백문(一百問)을 두어 광혜의 답을 청했는데 광혜가 하나하나 답회(答回)했다. 공이 이도위(李都尉; 李遵勗)에게 물어 가로되 석가가 6년 고행하여 무슨 일을 성득(成得)했습니까. 위왈(尉曰) 멜대()가 부러져야 섶의 무게를 압니다. 공이 미양(微恙)으로 인해 환대사(環大師)에게 물어 가로되 모()가 금일 홀연히 위화(違和; 有病)하니 대사(大師)의 자비로 어떻게 의료(醫療)하겠습니까. 환왈(環曰) 정향탕(丁香) 한 사발()입니다. 공이 바로 토하는 자세를 지었다. 환왈(環曰) 은애(恩愛)가 번뇌를 이루었습니다. ()이 약을 다리던 차에 공이 부르짖으며 가로되 도적이 있다. 환이 공 앞에 하약(下藥)하고 차수(叉手)하고 측립(側立)하자 공이 눈을 부릅뜨고(瞠目) 그것을 보며() 가로되 소총림한(少叢林). 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또 어느 날 물어 가로되 모()4()가 장차 이산(離散)하려고 하는데 대사가 어떻게 상구(相救)하겠습니까. ()이 이에 세 번 가슴을 쳤다. 공왈(公曰) 다행히() 작가를 만났습니다. 환왈(環曰) 몇 년 동안 불법을 배워 속기(俗氣)도 오히려 제()하지 못했구나. 공왈 화가 홑으로 행하지 않습니다(禍不單行). 환이 허허성(噓噓聲)을 지었다. 공이 게를 써서() 이도위(李都尉)에게 남겨 가로되 물거품이 생함과 물거품이 멸함이니/ 두 법이 본래 제등(齊等)하다/ 참다운 귀처(歸處)를 알고자 하느냐/ 조주(趙州) 동원(東院)의 서(西). 도위()가 보고서 드디어 가로되 태산의 묘 속에서 지전을 파는구나(泰山廟裏賣紙錢). 도위가 곧 이르렀는데 공이 이미 서거했다.

幡竿; 찰간(刹竿)이니 번주(幡柱). 화엄현담회현기7 요람에 이르되 범어 랄슬치(剌瑟致)는 여기에선 이르되 간(竿)이니 여금에 약명(略名)이 찰이다. 곧 번주(幡柱).

海壇; 평담현의 주도(主島)가 됨. 소이로 또 호칭이 평담도(平潭島). 이는 전국 제5 대도(大島)며 복건 제1 대도임. 동서의 너비가 약 19며 남북의 길이는 약 29[백도백과].

楚鷄; 윤문자(尹文子)에 가로되 초()나라 사람이 산치(山雉; 산꿩)를 짊어진 자가 (있었다). 노인(路人)이 묻되 무슨 새인가. 꿩을 짊어진 자가 그를 속여 가로되 봉황이다. 노인이 가로되 내가 봉황이 있다 함을 들었지만 여금에 바로 그것을 보았구나. 네가 그것을 판매하겠는가. 가로되 그렇다. 10()엔 주지 않나니 청컨대 배()를 더하라. 이에 그에게 주었다. 장차 초왕(楚王)에게 바치려고 했다. 일숙(一宿)을 경과하자 새가 죽었다. 노인(路人)이 금을 아까워 할 겨를이 없었고 오직 초왕에게 바침을 얻지 못함을 한했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전파하며 모두 진짜 봉황이라 하면서 그것을 바치려고 했다고 했다. 드디어 초왕에게 알려졌고 왕이 그가 자기에게 바치려고 했음에 감동하여 불러서 그에게 후사(厚賜)했는데 새를 구매한 금의 10배가 넘었다.

丹山鳳; 산해경에 가로되 단혈(丹穴)의 산, 그 위에 금옥이 많으며 단수(丹水)가 나오며 남쪽으로 흘러 발해로 흘러들어간다. 새가 있는데 그 형상은 닭과 같고 5()이면서 화려하다(). 이름해 가로되 봉황이다. 삼재도회(三才圖會) 궁실류1에 아각도(阿閣圖)가 있으며 가로되 아각은 황제(黃帝)가 건조했다. 제왕세기에 가로되 황제 때 백봉(白鳳)이 아각에 둥지를 틀었다 [허당록이경].

丁香; 자정향(紫丁香; 라일락)이니 이는 낙엽관목 혹 소교목(小喬木). 또 명칭이 백결ㆍ정객ㆍ용초자 [백도백과].

少叢林; 선림 중에서 참선 변도(辨道)한 날이 얕고 단기(短期)에 참선 수업에 종사한 자니 포총림(飽叢林)과 상대됨.

泰山廟裏賣紙錢; 호수(好手)의 면전에서 도연(徒然)히 호수를 과시함에 비유. 태산묘(泰山廟)에 가는 자는 이 황제의 봉선(封禪)이 아니면 바로 이 관원이나 백성이 조배(朝拜; 참배)하고 진향(進香). 그들은 중다한 공품(供品)과 제물을 휴대하는데 지전(紙錢)은 다만 이 귀혼(鬼魂)에게 제전(祭奠; 제사를 지내어 추모함)하는 가장 낮은 등급이라 태산묘 속의 공품(供品)이나 제물과 능히 비교하지 못함. 소이로 태산묘에 이르러 가서 지전을 팖은 이는 고저와 귀천을 알지 못함의 표현임.

 

南嶽下十一世

石霜圓禪師法嗣

洪州翠巖可眞禪師

福州人也 嘗參慈明 因之金鑾同善侍者坐夏 善乃慈明高第 道吾眞楊岐會皆推伏之 師自負親見慈明 天下無可意者 善與語 知其未徹 笑之 一日山行 擧論鋒發 善拈一片瓦礫 置盤石上曰 若向這裏下得一轉語 許你親見慈明 師左右視 擬對之 善叱曰 竚思停機 情識未透 何曾夢見 師自愧悚 卽還石霜 慈明見來 叱曰 本色行脚人 必知時節 有甚急事 夏未了早已至此 師泣曰 被善兄毒心 終礙塞人 故來見和尙 明遽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明嗔目喝曰 頭白齒豁 猶作這箇見解 如何脫離生死 師悚然 求指示 明曰 汝問我 師理前語問之 明震聲曰 無雲生嶺上 有月落波心 師於言下大悟

坐夏; 亦稱安居 從四月十五日 至七月十五日 佛敎徒應在寺院中坐禪修習 不得外出 稱爲坐夏

推伏; 同推服 贊許信服

竚思停機; 佇思停機 意謂陷於分別思量而難以迅速當機立斷

 

홍주(洪州) 취암(翠巖) 가진선사(可眞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일찍이 자명(慈明)을 참()했다. 인하여 금란(金鑾)으로 가서 선시자(善侍者)와 함께 좌하((坐夏; 安居)했다. ()은 곧() 자명(慈明)의 고제(高第)니 도오진(道吾眞; 悟眞)ㆍ양기회(楊岐會; 方會)가 모두 그를 추복(推伏)했다. 스님이 자명(慈明; 石霜楚圓)을 친견하였다고 자부(自負)하며 천하에 뜻에 맞는 자가 없다 하였다. ()이 더불어 말하고선 그가 사무치지 못했음을 알고 비웃었다(笑之). 어느 날 산행(山行)했는데 거론(擧論)하다가 기봉(機鋒; )이 발동(發動; )했다. 선이 한 조각 와력(瓦礫)을 반석(盤石) 위에 놓고 가로되 만약 이 속을 향해 일전어(一轉語)를 하득(下得)한다면 너에게 자명(慈明)을 친견했다고 허락하리라. 스님이 좌우를 보며 대답하려 하자 선이 꾸짖고 가로되 저사정기(竚思停機)는 정식(情識)을 투과(透過)하지 못한 것이거늘 어찌 일찍이 꿈엔들 보았으리오. 스님이 스스로 괴송(愧悚; 慚愧하며 惶悚)하며 곧 석상(石霜)으로 돌아왔다. 자명(慈明)이 이 옴을 보고 꾸짖어 가로되 본색행각인(本色行脚人)은 반드시 시절을 알아야 하거늘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여름을 마치지도 않고 일찍 이미 여기에 이르렀는가. 스님이 읍()하며 가로되 선형(善兄)이 독심(毒心)으로 마침내 사람을 애색(碍塞)함을 입어 고로 화상(和尙)을 와서 뵈옵니다. 자명이 급히 묻되 무엇이 이 불법(佛法)의 대의(大意)인가. 사왈 구름이 영상(嶺上)에 남이 없으면 달이 파도 가운데 떨어져 있습니다. 자명이 성낸 눈으로 할()하고 가로되 머리가 허옇고 이빨이 성기도록(頭白齒豁) 오히려 저개(這箇; 이런)의 견해를 지으니 어떻게 생사를 탈리(脫離)하리오. 스님이 송연(悚然; 은 두려워할 송)하여 지시(指示)를 구했다. 자명이 가로되 네가 나에게 물어라. 스님이 앞의 말을 정리(整理)하여 묻자 자명이 떨치는() 소리로 가로되 구름이 영상(嶺上)에 남이 없으면 달이 파도 가운데 떨어져 있다.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坐夏; 또한 명칭이 안거니 415일로부터 715일에 이르기까지 불교도는 응당 사원 안에서 좌선하고 수습하면서 외출함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좌하라 함.

推伏; 추복(推服)과 같음. 찬허(贊許; 칭찬하면서 허가)하고 신복(信服).

竚思停機; 저사정기(佇思停機)와 같음. 뜻으로 이르자면 분별과 사량에 빠져 신속한 당기(當機)로 바로 단절하기 어려움.

 

師爽氣逸出 機辯迅捷 叢林憚之 住翠巖日 僧問 如何是佛 師曰 同坑無異土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深耕淺種 問 如何是學人轉身處 師曰 一堵墻 百堵調 曰 如何是學人著力處 師曰 千日斫柴一日燒 曰 如何是學人親切處 師曰 渾家送上渡頭船 問 利人一句 請師垂示 師曰 三脚蝦蟇飛上天 曰 前村深雪裏 昨夜一枝開 師曰 饑逢王膳不能餐 問 如何是道 師曰 出門便見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擔枷過狀 上堂 先德道 此事如爆龜文 爆卽成兆 不爆成鈍 爆與不爆 直下便揑 上藍卽不然 無固無必 虛空走馬 旱地行船 南山起雲 北山下雨 遂拈拄杖曰 拄杖子變作天大將軍 巡歷四天下 有守節不守節 有戒行無戒行 一時奏與天帝釋 乃喝一喝曰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行 卓一下

深耕淺種; 耕地時松土要深 播種時覆土要淺 泛指農業勞動

王膳; 卽以饑餓遇王膳來譬喩小乘蒙佛之授記 法華經授記品 如從饑國來 忽遇大王饍 心猶懷疑懼 未敢卽便食

擔枷過狀; 過 予也 狀 罪狀 卽擔枷自服其罪狀也

無固無必; 卽無固必 固必 固定不變之規

 

스님은 상기(爽氣; 爽快氣槪)가 일출(逸出)했고 기변(機辯)이 신첩(迅捷)하여 총림에서 두려워했다(憚之). 취암(翠巖)에 거주하는 날,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깊게 갈고 얕게 심는다(深耕淺種).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전신처(轉身處)입니까. 사왈 일도(一堵)의 담장()에 백도(百堵)가 조화(調和)롭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의 착력처(著力處)입니까. 사왈 천일(千日) 동안 섶을 쪼개어(斫柴) 하루에 태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의 친절처(親切處)입니까. 사왈 혼가(渾家; 온 집)가 나루(渡頭; 는 조사)의 배에 송상(送上; 보내어 올림)한다. 묻되 사람을 이롭게 하는 1구를 청컨대 스님이 수시(垂示)하십시오. 사왈 삼각(三脚)의 두꺼비가 날아 하늘에 오른다. 가로되 전촌(前村) 심설(深雪) 속에 어젯밤 일지(一枝)가 열렸습니다. 사왈 기아(饑餓)에 왕선(王膳)을 만났으나 능히 먹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출문(出門)하면 바로 본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담가과상(擔枷過狀)이다. 상당(上堂) 선덕(先德)이 말하되 차사(此事)는 귀문(龜文)이 터짐()과 같아서 터져야 곧 짐조(朕兆)를 이루고 터지지 않으면 곧 둔()함을 이룬다. 터짐과 터지지 않음을 직하(直下)에 바로 눌러라(). 상람(上藍; 可眞)은 곧 그렇지 않아 무고무필(無固無必)이니 허공에 말을 달리고 한지(旱地; 가문 땅)에 배를 운행하고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드디어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주장자가 변해 천대장군(天大將軍)이 되어 사천하(四天下)를 순력(巡歷)하나니 수절(守節)함이 있음과 수절하지 않음, 계행이 있음과 계행이 없음을 일시에 천제석(天帝釋)에게 아뢰어 준다. 이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장부는 스스로 충천(衝天)하는 의지(意志)가 있나니 여래가 행한 곳을 향해 행하지 말아라. 한 번 쳤다(卓一下).

深耕淺種; 땅을 갈 때 송토(松土; 흙을 푹신푹신하게 하다)는 깊음을 요하고 파종 시에 흙을 덮음은 얕게 함을 요함. 널리 농업 노동을 가리킴.

王膳; 곧 기아(饑餓)에 왕선(王膳; 왕이 먹는 음식)이 옴을 만남으로써 소승(小乘)이 불타의 수기를 입음에 비유함. 법화경 수기품. 기국(饑國)으로부터 와서 홀연히 대왕의 음식(大王饍)을 만나면 마음에 오히려 의구(疑懼)를 품어 감히 바로 곧 먹지 못함과 같다.

擔枷過狀; ()는 여(; 주다)며 상()은 죄상임. 곧 칼을 지고 그 죄상을 자복(自服)함임.

無固無必; 곧 무고필(無固必). 고필(固必)은 고정불변의 법규.

 

上堂 擧龍牙頌曰 學道如鑽火 逢煙未可休 直待金星現 歸家始到頭 神鼎曰 學道如鑽火 逢煙卽便休 莫待金星現 燒脚又燒頭 師曰 若論頓也 龍牙正在半途 若論漸也 神鼎猶少悟在 於此復且如何 諸仁者 今年多落葉 幾處掃歸家 上堂 臨陣抗敵 不懼生死者 將軍之勇也 入山不懼虎兕者 獵人之勇也 入水不懼蛟龍者 漁人之勇也 作麽生是衲僧之勇 拈拄杖曰 這箇是拄杖子 拈得把得動得 三千大千世界 一時搖動 若拈不得 把不得 動不得 文殊自文殊 解脫自解脫 參

鑽火; 古代得火之法 摩擦木孔以得

到頭; 同到底 最終 結局 終極之意

 

상당(上堂) 용아(龍牙; 居遁)의 송을 들어 가로되 도를 배움은 찬화(鑽火)와 같아서/ 연기를 만나면 가히 쉬지 못하고/ 바로 금성(金星)이 나타남을 기다려야/ 귀가하여 비로소 도두(到頭)니라. 신정(神鼎; 洪諲)이 가로되 도를 배움은 찬화(鑽火)와 같아서/ 연기를 만나면 곧 바로 쉬어야 한다/ 금성이 나타남을 기다리지 말지니/ 발을 태우고 또 머리를 태우리라. 사왈 만약 돈()을 논하자면 용아는 바로 반도(半途)에 있고 만약 점()을 논하자면 신정(神鼎)은 오히려 깨침이 모자란다(). 여기에서 다시 또 어떠한가. 제인자(諸仁者), 금년에 낙엽이 많으니 몇 곳을 쓸고 귀가(歸家)하자. 상당(上堂) 임진(臨陣)하여 적군(敵軍; )에 항거(抗拒; )하면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장군지용(將軍之勇)이며 입산하여 호시(虎兕)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엽인지용(獵人之勇)이며 입수(入水)하여 교룡(蛟龍)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인지용(漁人之勇)이다. 무엇이 이 납승지용(衲僧之勇)인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저개(這箇; 이것)는 이 주장자다. 염득(拈得)커나 파득(把得)커나 동득(動得)하매 삼천대천세계가 일시에 요동(搖動)한다. 만약 염()함을 얻지 못하거나 파()함을 얻지 못하거나 동()함을 얻지 못한다면 문수(文殊)는 스스로 문수며 해탈(解脫)은 스스로 해탈이다. ()하라.

鑽火; 고대 불을 얻던 방법이니 나무 구멍을 마찰하여 얻었음.

到頭; 도저(到底)와 같음. 최종ㆍ결국ㆍ종극의 뜻.

 

上堂 擧 僧問巴陵 如何是道 陵曰 明眼人落井 又問寶應 如何是道 應曰 五鳳樓前 又問首山 如何是道 山曰 脚下深三尺 此三轉語 一句壁立千仞 一句陸地行船 一句賓主交參 諸人莫有揀得者麽 出來道看 如無 且行羅漢慈 破結賊故 行菩薩慈 安衆生故 行如來慈 得如相故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五通賢聖 曰 學人不會 師曰 舌至梵天 師將入滅 示疾甚勞苦 席藁于地 轉側不少休 喆侍者垂泣曰 平生訶佛罵祖 今何爲乃爾 師熟視 訶曰 汝亦作此見解邪 卽起趺坐 呼侍者燒香 煙起遂示寂

結賊; 結者繫縛之義 煩惱之異名 煩惱害知慧 故以賊爲譬

席藁; 以稿薦爲坐席

垂泣; 一無聲而流淚 二指低聲哭

 

상당(上堂) ()하다. 중이 파릉(巴陵; 顥鑑)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파릉이 가로되 명안인(明眼人)이 낙정(落井)한다. 또 보응(寶應; 風穴延沼)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보응이 가로되 오봉루(五鳳樓) 앞이다. 또 수산(首山; 省念)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수산이 가로되 발 아래 깊이가 3척이다. 3전어(轉語)1구는 벽립(壁立)이 천인(千仞)이며 1구는 육지에서 행선(行船; 배를 운행)함이며 1구는 빈주(賓主)가 교참(交參)한다. 제인(諸人)에 간득(揀得)할 자가 있지 않느냐. 나와서 말해 보아라. 없을 것 같으면, 다만() 라한자(羅漢慈)를 행함은 결적(結賊)을 깨뜨리는 연고며 보살자(菩薩慈)를 행함은 중생을 평안하게 하는 연고며 여래자(如來慈)를 행함은 여상(如相)을 얻는 연고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오통(五通)의 현성(賢聖)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혀가 범천(梵天)에 이른다. 스님이 장자 입멸하려 하자 시질(示疾)하여 심히 노고(勞苦)했고 땅에 석호(席藁)하고 전측(轉側; 輾轉反側)하며 조금도 쉬지 못했다. 철시자(喆侍者; 慕喆)가 수읍(垂泣)하며 가로되 평생 가불매조(訶佛罵祖)하더니 지금 어찌하여 이러합니까. 스님이 숙시(熟視; 자세히 봄)하며 꾸짖어 가로되 너도 또한 이런 견해를 짓느냐. 곧 일어나 부좌(趺坐)하더니 시자를 불러 소향(燒香)하라 했다. 연기가 오르자 드디어 시적(示寂)했다.

結賊; ()이란 것은 계박의 뜻이니 번뇌의 다른 이름임. 번뇌가 지혜를 방해하는지라 고로 적()으로써 비유함.

席藁; 호천(稿薦; 돗자리)을 좌석으로 삼음.

垂泣; 1.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림. 2. 저성(低聲)으로 곡함을 가리킴.

 

蔣山贊元覺海禪師

婺州義烏人 姓傅氏 乃大士之裔也 夙修種智 隨願示生 父母感祥 閭里稱異 三歲出家 七歲爲僧 十五游方 遠造石霜 陞於丈室 慈明一見曰 好好著槽廠 師遂作驢鳴 明曰 眞法器耳 俾爲侍者 二十年中 運水搬柴 不憚寒暑 悉己躬親 求道後出世蘇臺天峯龍華白雲 府帥請居誌公道場 提綱宗要 機鋒迅敏 解行相應 諸方推服 丞相王公安石重師德望 特奏章服師號 公又堅辭鼎席 結廬定林山中 與師蕭散林下 淸談終日 贈師頌曰 不與物違眞道廣 每尋緣起自禪深 舌根已淨誰能壞 足跡如空我得尋 此亦明世希有事也

推服; 贊許信服

章服; 一繡有日月星辰等圖案的古代禮服 每圖爲一章 天子十二章 群臣按品級以九七五三章遞降 二有識別符號的衣服 [百度漢語]

鼎席; 指宰相之位

蕭散; 一猶蕭灑 二蕭條 淒涼

 

장산(蔣山) 찬원(贊元) 각해선사(覺海禪師)

무주(婺州) 의오(義烏) 사람이며 성이 부씨(傅氏)니 곧 대사(大士; 傅大士)의 후예다. 숙세(夙世; )에 종지(種智)를 닦아 원() 따라 시생(示生)했다. 부모가 상서(祥瑞; )를 느꼈고() 여리(閭里)에서 칭이(稱異)했다. 3세에 출가했고 7세에 승()이 되었고 15에 유방(游方)했다. 멀리서 석상(石霜)으로 나아가 장실(丈室)에 올랐다(). 자명(慈明)이 일견(一見)하자 가로되 호호(好好) 조창(槽廠)에 붙거라(). 스님이 드디어 나귀 울음을 지었다. 자명이 가로되 참다운 법기(法器). 시자가 되게 하였다. 20년 중에 운수반시(運水搬柴; 물과 섶을 운반)하면서 한서(寒暑)를 꺼리지 않았고 모두 자기가 몸소 친히 했다(悉己躬親). 구도(求道)한 후 소대(蘇臺)ㆍ천봉(天峯)ㆍ용화(龍華)ㆍ백운(白雲)에서 출세했다. 부수(府帥)가 청해 지공도량(誌公道場)에 거주하며 종요(宗要)를 제강(提綱)했는데 기봉(機鋒)이 신민(迅敏)했고 해행(解行)이 상응하여 제방에서 추복(推服)했다. 승상(丞相) 왕공안석(王公安石)이 스님의 덕망(德望)을 존중하여 장복(章服)과 사호(師號)를 특별히 주청(奏請)했다. ()이 또 정석(鼎席)을 굳세게 사양하고 정림산(定林山) 가운데 오두막을 엮고 스님과 임하(林下)에서 소산(蕭散)하며 종일 청담(淸談)했다. 스님에게 송()을 주어 가로되 만물(萬物; )과 위배되지 않으니 진도(眞道)가 넓고/ 매양 연기(緣起)를 찾으니 자기의 선()이 깊다/ 설근(舌根)이 이미 청정하거늘 누가 능히 무너뜨리겠는가/ 족적(足跡)이 허공과 같거늘 내가 찾음을 얻었다. 이것 또한 세상의 희유사(希有事)를 밝힌 것이다.

推服; 찬허(贊許; 칭찬하면서 허가)하고 신복(信服).

章服; 1. 일월성신 등 도안이 수놓아 있는 고대의 예복. 매도(每圖)1()이 되며 천자는 12, 군신은 품급을 살펴 9, 7, 5, 3장으로 체강(遞降). 2. 식별 부호가 있는 의복 [백도한어].

鼎席; 재상의 자리를 가리킴.

蕭散; 1. 소쇄(蕭灑; 脫俗하여 구속되지 아니함)와 같음. 2. 소조(蕭條; 고요하고 쓸쓸함). 처량(淒涼).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東壁打西壁 曰 客來如何祇待 師曰 山上樵 井中水 問 如何是諸佛出身處 師曰 驢胎馬腹 問 魯祖面壁 意旨如何 師曰 住持事繁 問 如何是大善知識 師曰 屠牛剝羊 曰 爲甚麽如此 師曰 業在其中 上堂 這箇若是 如虎戴角 這箇若不是 喚作甚麽 良久曰 餧驢餧馬 珍重 元祐元年 師乃遷化 丞相王公慟哭于塔 讚師眞曰 賢哉人也 行厲而容寂 知言而能默 譽榮弗喜 辱毀弗戚 弗矜弗克 人自稱德 有緇有白 來自南北 弗順弗逆 弗抗弗抑 弗觀汝華 唯食己實 孰其嗣之 我有遺則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동벽이 서벽을 때린다(東壁打西壁). 가로되 객이 오면 어떻게 지대(祇待)합니까. 사왈 산상(山上)의 땔나무()며 정중(井中)의 물이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出身處)입니까. 사왈 여태마복(驢胎馬腹)이다. 묻되 노조(魯祖)가 면벽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주지사(住持事)가 번다(繁多; )하다. 묻되 무엇이 이 대선지식입니까. 사왈 소를 잡고 양을 벗긴다(屠牛剝羊).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업이 그 가운데 있다. 상당(上堂) 저개(這箇)가 만약 이것이라 하면 범이 뿔은 인 것과 같고 저개가 만약 이것이 아니라 하면 무엇이라고 불러 짓겠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나귀를 먹이고 말을 먹인다(餧驢餧馬). 진중(珍重)하라. 원우(元祐) 원년(1086) 스님이 이에 천화(遷化)했다. 승상 왕공(王公)이 탑에 통곡하면서 스님의 진()을 찬()해 가로되 현명한 사람이니(賢哉人也)/ 행위는 사납고 용모는 고요했고/ 언어를 알면서 능히 침묵했다/ 예영(譽榮)을 기뻐하지 않았고/ 욕훼(辱毀)를 근심()하지 않았다/ 자랑하지 않고 이기지 않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덕을 칭찬했다/ ()가 있고 백()이 있어/ 남북으로부터 왔다/ ()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고/ 항거하지 않고 억압하지 않았다/ 너의 화려함을 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진실을 먹었다/ 누가() 그를 잇는가/ 나에게 유칙(遺則)이 있다.

 

瑞州武泉山政禪師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衣成人 水成田 上堂 黃梅席上 海衆千人 付法傳衣 碓坊行者 是則紅日西昇 非則月輪東上 參

 

서주(瑞州) 무천산(武泉山) 정선사(政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옷이 사람을 이루고 물이 밭을 이룬다. 상당(上堂) 황매(黃梅)의 석상(席上)에 해중(海衆)이 천인이었는데 부법(付法)하고 전의(傳衣)함은 대방(碓坊)의 행자였다. 옳다면 곧 홍일(紅日)이 서쪽에 오르고(西昇) 그르다면 곧 월륜(月輪)이 동쪽에 오른다(東上). ()하라.

 

南嶽雙峯寺省回禪師

上堂 南番人汎船 塞北人搖艣 波斯入大唐 須彌山作舞 是甚麽說話 師元豐六年九月十七日淨髮 沐浴辭衆 偈曰 九十二光陰 分明對衆說 遠洞散寒雲 幽牕度殘月 言訖坐逝 茶毗齒頂不壞 上有五色異光

南番; 指支那南方異民族 番 中國舊時對邊境各少數民族和外國的稱呼 如番邦 西番

塞北; 又作北塞 塞 邊境 與徼(西南)相區別時 特指東北邊境

 

남악(南嶽) 쌍봉사(雙峯寺) 성회선사(省回禪師)

상당(上堂) 남번(南番) 사람이 배를 띄우매 새북(塞北) 사람이 노()를 젓고 파사(波斯; 파사인)가 대당(大唐)에 들어오매 수미산이 작무(作舞)한다. 이 무슨 설화(說話). 스님이 원풍(元豐) 6(1083) 917일 정발(淨髮)하고 목욕하고 대중에게 고별했다. 게왈 아흔둘의 광음(光陰)/ 분명히 대중(對衆)하여 설한다/ 원동(遠洞)엔 한운(寒雲)이 흩어지고/ 유창(幽牕)엔 잔월(殘月)이 지난다(). 말을 마치자 좌서(坐逝)했다. 다비(茶毗)하매 치정(齒頂; 치아와 頂骨)이 파괴되지 않았고 위에 5색의 이광(異光)이 있었다.

南番; 지나 남방의 이민족을 가리킴. ()은 중국에서 옛날에 변경의 각 소수민족과 외국에 대한 칭호였으니 번방(番邦), 서번(西番)과 같은 것.

塞北; 또 북새(北塞)로 지음. ()는 변경이니 요(; 서남)와 서로 구별할 때 특별히 동북의 변경을 가리킴.

 

洪州大寧道寬禪師

僧問 飮光正見 爲甚麽見拈花却微笑 師曰 忍俊不禁 問 丹霞燒木佛 院主爲甚麽眉鬚墮落 師曰 賊不打貧兒家 問 旣是一眞法界 爲甚麽却有千差萬別 師曰 根深葉茂 僧打圓相曰 還出得這箇也無 師曰 弄巧成拙 問 如何是前三三後三三 師曰 數九不到九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點茶須是百沸湯 曰 意旨如何 師曰 喫盡莫留滓 有僧造師之室 問 如何是露地白牛 師以火筯插火爐中 曰 會麽 曰 不會 師曰 頭不欠 尾不剩 師在同安日 時有僧問 旣是同安 爲甚麽却有病僧化去 師曰 布施不如還却債

忍俊不禁; 俊 英俊 俊傑 謂欲忍英俊而不禁也 禪林寶訓順硃三 才勝萬人曰英 智過千人曰俊 慧琳音義十六 毛詩傳曰 特立謂之傑 淮南子云 智過千人曰傑

 

홍주(洪州) 대녕(大寧) 도관선사(道寬禪師)

승문(僧問) 음광(飮光)은 정견(正見)이거늘 무엇 때문에 염화(拈花)함을 보고 도리어 미소했습니까. 사왈 인준불금(忍俊不禁)이다. 묻되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웠거늘 원주가 무엇 때문에 눈썹이 타락(墮落)했습니까. 사왈 도적이 빈아(貧兒; 貧者)의 집은 털지 않는다. 묻되 이미 이 일진(一眞)의 법계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천차만별이 있습니까. 사왈 뿌리가 깊으면 입이 무성하다. 중이 원상을 짓고(打圓相) 가로되 도리어 이것을 벗어남을 얻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교묘를 희롱하다가 졸렬을 이루었다(弄巧成拙). 묻되 무엇이 이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입니까. 사왈 9를 세었으나() 9에 이르지 못했다. 묻되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점다(點茶)는 모름지기 이 백비탕(百沸湯; 백 번 끓는 물)이라야 한다.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먹어 없애고 찌꺼기()를 남기지 말아라. 어떤 중이 스님의 실()에 나아가 묻되 무엇이 이 노지백우(露地白牛)입니까. 스님이 화저(火筯)를 화로(火爐) 속에 꽂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머리는 모자라지() 않고 꼬리는 남지() 않는다. 스님이 동안(同安)에 있던 날, 당시에 어떤 중이 묻되 이미 이 동안(同安)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병승(病僧)이 화거(化去; 死去)합니까. 사왈 보시(布施)가 빚을 갚아버림만 같지 못하다.

忍俊不禁; ()은 영준(英俊). 준걸. 이르자면 영준(英俊)을 참으려고 하나 금하지 못함임. 선림보훈순주3. 재능이 만 인을 이김을 가로되 영()이며 지혜가 천인을 초과함을 가로되 준()이다. 혜림음의16. 모시 전()에 가로되 특립(特立)을 일러 걸()이다. 회남자에 이르되 지혜가 천인을 초과함을 가로되 걸()이다.

 

上堂 少林妙訣 古佛家風 應用隨機 卷舒自在 如拳作掌 開合有時 似水成漚 起滅無定 動靜俱顯 語默全彰 萬用自然 不勞心力 到這裏喚作順水放船 且道逆風擧棹 誰是好手 良久曰 弄潮須是弄潮人 喝一喝曰 珍重 上堂 無念爲宗 無住爲本 眞空爲體 妙有爲用 所以道 盡大地是眞空 徧法界是妙有 且道是甚麽人用得 四時運用 日月長明 法本不遷 道無方所 隨緣自在 逐物昇沈 此土他方 入凡入聖 雖然如是 且道入鄕隨俗一句作麽生道 良久曰 西天梵語 此土唐言

弄潮須是弄潮人; 比喩做某類事情 必須具有做該事情的素質或能力

入鄕隨俗; 若入他鄕 隨其風俗

梵語; 天竺之言語 由梵天稟承 故云梵語

 

상당(上堂) 소림의 묘결(妙訣)과 고불의 가풍은 응용하며 수기(隨機)하고 권서(卷舒)에 자재하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이룸과 같아서 개합(開合)에 때가 있고 물이 물거품을 이룸과 같아서 기멸(起滅)에 정()함이 없다. 동정(動靜)에 모두 나타나고(俱顯) 어묵(語默)에 전부 나타나나니(全彰) 만용(萬用)해도 자연인지라 심력을 노고롭게 하지 않는다. 이 속에 이르면 순수(順水)에 방선(放船)함이라고 불러 짓거니와 그래 말하라, 역풍(逆風)에 거도(擧棹)함은 누가 이 호수(好手)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조수(潮水; )를 희롱함은 꼭 이 조수를 희롱하는 사람이라야 한다(弄潮須是弄潮人).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진중(珍重)하라. 상당(上堂) 무념(無念)으로 종()을 삼고 무주(無住)로 본()을 삼고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을 삼는다. 소이로 말하되 온() 대지가 이 진공이며 온() 법계가 이 묘유니 그래 말하라, 이 어떤 사람이 용득(用得)하느냐. 사시(四時)가 운용(運用)하고 일월이 장명(長明)하고 법이 본래 옮기지 않고 도가 방소(方所)가 없고 수연(隨緣)하여 자재하고 축물(逐物; 만물을 쫓다)하여 승침(昇沈)하고 차토(此土)와 타방(他方)에서 입범(入凡)하고 입성(入聖)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그래 말하라, 입향수속(入鄕隨俗)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서천(西天)은 범어(梵語)며 차토(此土)는 당언(唐言)이다.

弄潮須是弄潮人; 어떤 종류의 사정을 지으려면 필수(必須)로 그 사정을 지을 소질 혹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에 비유.

入鄕隨俗; 만약 타향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라야 함.

梵語; 천축의 언어는 범천으로부터 품승(稟承)한지라 고로 이르되 범어임.

 

潭州道吾悟眞禪師

上堂 古今日月 依舊山河 若明得去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若明不得 謗斯經故 獲罪如是 上堂 師子兒哮吼 龍馬駒𨁝跳 古佛鏡中明 三山孤月皎 遂作舞 下座 上堂 擧 洞山道 五臺山上雲蒸飯 佛殿堦前狗尿天 刹竿頭上煎䭔子 三箇猢猻夜簸錢 老僧卽不然 三面狸奴脚踏月 兩頭白牯手拏煙 戴冠碧兔立庭栢 脫殻烏龜飛上天 老僧葛藤盡被汝諸人覷破了也 洞山老人 甚是奇特 雖然如是 祇行得三步四步 且不過七跳八跳 且道誵訛在甚麽處 老僧今日不惜眉毛 一時布施 良久曰 叮嚀損君德 無言眞有功 任從滄海變 終不爲君通 問 凝然便會時如何 師曰 老鼠尾上帶姸槌 問 如何是眞如體 師曰 夜叉屈膝眼睛黑 曰 如何是眞如用 師曰 金剛杵打鐵山摧 問 如何是常照 師曰 針鋒上須彌 曰 如何是寂照 師曰 眉毛裏海水 曰 如何是本來照 師曰 草鞋裏𨁝跳 僧退 師曰 寂照常照本來照 草鞋底下常𨁝跳 更會針鋒上須彌 眉毛中水常渺渺 問 如何是佛 師曰 洞庭無葢

䭔子; 餠類食品 蜀人號烝餠爲䭔 子 助詞

 

담주(潭州) 도오(道吾) 오진선사(悟眞禪師)

상당(上堂) 고금의 일월이며 의구한 산하다. 만약 밝힘을 얻는다면 시방(十方)의 박가범(薄伽梵)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이려니와 만약 밝힘을 얻지 못한다면 이 경을 비방한 연고로 획죄(獲罪)가 이와 같다. 상당(上堂) 사자아(師子兒)가 효후(哮吼)하고 용마구(龍馬駒; 好馬駒)가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고 고불이 경중(鏡中)에 환하고() 삼산(三山)이 고월(孤月)에 밝다(). 드디어 춤추며(作舞) 하좌했다. 상당(上堂) ()하다. 동산(洞山; 守初)이 말하되 오대산 위에서 구름으로 밥을 찌는데/ 불전(佛殿)의 섬돌 앞에서 개가 하늘에 오줌 눈다/ 찰간(刹竿)의 꼭대기 위에서 퇴자(䭔子; 저본에 甚子로 지었음)를 지지는데/ 세 개의 호손(猢猻; 원숭이)이 밤에 동전을 까부른다. 노승은 곧 그렇지 않나니 세 얼굴의 고양이가 발로 달을 밟고/ 두 머리의 흰 소(白牯)가 손으로 아지랑이를 잡는다/ 갓을 쓴 푸른 토끼가 뜰의 잣나무에 섰고/ 껍질 벗겨진 오귀(烏龜)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노승의 갈등(葛藤)이 모두 너희 제인(諸人)이 처파(覷破)하여 마침을 입었다. 동산 노인이 심히 이 기특하나니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다만 3()4()를 행함을 얻었고 또 7()8()를 넘지 못했다. 그래 말하라, 효와(誵訛)가 어느 곳에 있느냐. 노승이 금일 눈썹을 아끼지 않고 일시에 보시하겠다.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정녕(叮嚀)은 그대의 덕을 손상하나니/ 무언(無言)이 참으로 공()이 있다/ 창해가 변하는 대로 맡기더라도(任從; 聽任)/ 마침내 그대를 위해 통하게 하지 못한다. 묻되 응연(凝然)히 바로 이회(理會)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늙은 쥐의 꼬리 위에 벼루()와 망치()를 찼다(). 묻되 무엇이 이 진여의 체()입니까. 사왈 야차(夜叉)가 무릎을 굽히니 눈동자가 검다. 가로되 무엇이 이 진여의 용()입니까. 사왈 금강저(金剛杵)로 철산(鐵山)을 쳐서 꺾는다. 묻되 무엇이 이 상조(常照)입니까. 사왈 침봉(針鋒; 바늘 끝) 위의 수미(須彌). 가로되 무엇이 이 적조(寂照)입니까. 사왈 미모(眉毛) 속의 해수(海水). 가로되 무엇이 이 본래조(本來照)입니까. 사왈 초혜(草鞋) 속에서 발도(𨁝跳)한다. 중이 물러났다. 사왈 적조(寂照)ㆍ상조(常照)ㆍ본래조(本來照)/ 초혜(草鞋)의 바닥 아래에서 늘 발도(𨁝跳)한다/ 짐봉 위의 수미를 다시 안다면/ 미모(眉毛) 중의 물이 늘 묘묘(渺渺; 넓고 아득함)하리라.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동정(洞庭; 동정호)은 덮개가 없다.

䭔子; 떡 종류의 식품이니 촉인(蜀人)은 찐떡을 호하여 퇴()라 함. 자는 조사.

 

上堂 山前麥熟 廬陵米價 鎭州蘿蔔 更有一般 良久曰 時挑野菜和根煑 旋斫生柴帶葉燒 上堂 古人道 認著依前還不是 實難會 土宿頷下髭鬚多 波斯眼深鼻孔大 甚奇怪 歘然透過新羅界 問僧 甚處來 曰 堂中來 師曰 聖僧道甚麽 僧近前不審 師曰 東家作驢 西家作馬 曰 過在甚麽處 師曰 萬里崖州 師不安 僧問 和尙近日尊位如何 師曰 粥飯頭不了事 僧無語 師鳴指一下

粥飯頭; 又作粥飯主人 指寺院住持和尙 謂唯提供粥飯的無能住持 謙辭

 

상당(上堂) 산 앞에 보리가 익었고 여릉(廬陵)의 쌀값이며 진주(鎭州)의 나복(蘿蔔; )이다. 다시 일반(一般)이 있나니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때로 야채를 뽑아 뿌리째 삶고 생 장작(生柴)을 휙 쪼개어(旋斫) 잎까지(帶葉) 태운다. 상당(上堂) 고인이 말하되 인착(認著; 인정하다)하면 의전(依前)하여 도리어 옳지 못하다 하니 실로 알기() 어렵다. 토수(土宿; 土星)의 턱 아래 자수(髭鬚)가 많고 파사(波斯; 파사인)의 눈이 깊고 콧구멍이 크니 심히 기괴하다. 훌연(歘然; 갑자기)히 신라의 경계를 투과한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당중(堂中)에서 옵니다. 사왈 성승(聖僧)이 무엇이라고 말하더냐. 중이 근전(近前)하여 불심(不審)이라 했다. 사왈 동가(東家)에서 나귀가 되고 서가(西家)에서 말이 되는구나. 가로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만리애주(萬里崖州). 스님이 불안(不安; 有病)하자 중이 묻되 화상은 근일(近日) 존위(尊位)가 어떻습니까. 사왈 죽반두(粥飯頭)가 사(; 大事)를 마치지 못했다.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한 번 손가락을 울렸다.

粥飯頭; 또 죽반주인(粥飯主人)으로 지음. 사원의 주지화상을 가리킴. 이르자면 오직 죽반을 제공하는 무능한 주지니 겸사(謙辭).

 

上堂 普化明打暗打 布袋橫撒竪撒 石室行者踏碓 因甚忘却下脚 問 如何是第一玄 師曰 釋尊光射阿難肩 曰 如何是第二玄 師曰 孤輪衆象攢 曰 如何是第三玄 師曰 泣向枯桑淚漣漣 曰 如何是第一要 師曰 最好精麤照 曰 如何是第二要 師曰 閃電乾坤光晃耀 曰 如何是第三要 師曰 路夾靑松老 上堂 擧 僧問首山 如何是佛 山曰 新婦騎驢阿家牽 師曰 手提巴鼻脚踏尾 仰面看天聽流水 天明送出路傍邊 夜靜還歸茅屋裏

明打暗打; 明頭來 明頭打 暗頭來 暗頭打 見上四普化章

孤輪; 輪 似輪的物體 多指日月

 

상당(上堂) 보화(普化)는 명타암타(明打暗打)하고 포대(布袋)는 횡살수살(橫撒竪撒)했거니와 석실행자(石室行者; 善道)는 답대(踏碓; 디딜방아를 밟다)하면서 무엇 때문에(因甚) 발을 내림을 망각했는가. 묻되 무엇이 이 제1(第一玄)입니까. 사왈 석존(釋尊)의 빛이 아난의 어깨를 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2현입니까. 사왈 고륜(孤輪)에 중상(衆象)이 모인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3현입니까. 사왈 고상(枯桑)을 향해 읍()하며 눈물이 줄줄 흐른다(漣漣). 가로되 무엇이 이 제1(第一要)입니까. 사왈 가장 좋기로는 정추(精麤)를 비춤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2요입니까. 사왈 섬전(閃電)의 건곤(乾坤)에 빛이 황요(晃耀; 밝고 환함)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3요입니까. 사왈 길이 좁고() 청송(靑松)이 늙었다. 상당(上堂) ()하다. 중이 수산(首山)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수산이 가로되 신부(新婦)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 시어머니)가 이끈다(). 사왈 손으로 파비(巴鼻)를 잡고() 발로 꼬리를 밟았는데/ 앙면(仰面)하여 하늘을 보면서 유수(流水)를 듣는다/ 천명(天明)에 길의 방변(傍邊)으로 송출(送出)하고/ 야정(夜靜)에 모옥(茅屋) 속으로 환귀(還歸)한다.

明打暗打; 명두(明頭)가 오면 명두로 때리고 암두(暗頭)가 오면 암두로 때린다. 4 보화장(普化章)을 보라.

孤輪; ()은 바퀴와 같은 물체니 다분히 해와 달을 가리킴.

 

蔣山保心禪師

僧問 月未圓時如何 師曰 順數將去 曰 圓後如何 師曰 倒數將來 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黑漆露柱 問 聲色兩字如何透得 師曰 一手吹 一手拍

順數; 順著先後次序計數

倒數; 逆數 從後往前數

 

장산(蔣山) 보심선사(保心禪師)

승문 달이 둥글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순수(順數)로 가지고 간다. 가로되 둥근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도수(倒數)로 가지고 온다.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입니까. 사왈 흑칠(黑漆)의 노주(露柱). 묻되 성색(聲色) 양자(兩字)를 어떻게 투득(透得)합니까. 사왈 한 손으로 불고 한 손으로 두드린다.

順數; 선후의 차서(次序)에 순한(順著) 계수(計數).

倒數; 역수(逆數)니 뒤로 좇아 앞으로 가는 수.

 

洪州百丈惟政禪師

上堂 巖頭和尙用三文錢索得箇妻 祇解撈鰕摝蜆 要且不解生男育女 直至如今 門風斷絕 大衆要識奯公妻麽 百丈今日不惜唇吻 與你諸人注破 蓬𩯭荊釵世所稀 布裙猶是嫁時衣 僧問 牛頭未見四祖時 爲甚麽百鳥銜花獻 師曰 有錢千里通 曰 見後爲甚麽不銜花 師曰 無錢隔壁聾 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六六三十六 曰 來後如何 師曰 九九八十一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木耳樹頭生 問 一切法是佛法 意旨如何 師曰 一重山下一重人 問 上行下斆 未是作家 背楚投吳 方爲達士 豈不是和尙語 師曰 是 曰 父財子用也 師曰 汝試用看 僧擬議 師便打 上堂 天台普請 人人知有 南嶽遊山 又作麽生 會則燈籠笑你 不會有眼如盲

撈鰕摝蜆; 鰕同蝦 捕撈蝦蜆 多喩禪家接引學人 蝦蜆 有時喩小根器者

生男育女; 生育兒女 指繁衍後代 禪家比喩門派要有繼承人

荊釵; 一荊枝制作的髻釵 二借指貧家婦女

布裙; 粗布做的裙子 形容婦女裝束朴素

上行下斆; 上行下效 强調上位或上輩人的表率作用

背楚投吳; 背反楚國 投降吳國 比喩離煩惱而入菩提等

 

홍주(洪州) 백장(百丈) 유정선사(惟政禪師)

상당(上堂) 암두화상(巖頭和尙)3문전(三文錢)을 써서 저() ()를 색득(索得)해 다만 노하녹현(撈鰕摝蜆)할 줄만 알았지 요차(要且; 종내. 도리어) 생남육녀(生男育女)할 줄을 알지 못해 바로 여금에 이르도록 문풍(門風)이 단절되었다. 대중이여 활공(奯公; 全奯)의 처()을 알고자 하느냐. 백장(百丈)이 금일 순문(唇吻; 입술)을 아끼지 않고 너희 제인을 위해() 주파(注破)하겠다. 봉빈(蓬𩯭)과 형차(荊釵)는 세상에서 드문() 바며 포군(布裙)은 오히려 이 시집갈 때의 옷이다. 승문(僧問)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무엇 때문에 백조(百鳥)가 꽃을 물어() 바쳤습니까. 사왈 돈이 있으면 천 리에서도 통한다. 가로되 뵌 후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지 않았습니까. 사왈 돈이 없으면 벽 너머에서도 귀머거리다. 묻되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육육은 삼십육이다.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구구는 팔십일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목이(木耳)가 수두(樹頭)에 난다. 묻되 일체법이 이 불법이라 하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일중(一重; 한 겹)의 산 아래 일중(一重)의 사람이다. 묻되 상행하효(上行下斆)는 이 작가가 아니며 배초투오(背楚投吳)해야 비로소 달사(達士)가 된다. 어찌 이 화상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가로되 부재(父財)를 자식이 씁니다. 사왈 네가 시험삼아 써 보아라.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상당(上堂) 천태(天台)에서 보청(普請)함은 사람마다 지유(知有)하거니와 남악에서 유산(遊山)함은 또 어떠한가. 안다면 곧 등롱(燈籠)이 너희를 웃고 알지 못한다면 눈이 있어도 맹인과 같다.

撈鰕摝蜆; ()는 하()와 같음 새우와 바지락을 잡아 건짐. 다분히 선가가 학인을 접인함에 비유함. 새우와 바지락은 어떤 때엔 소근기자(小根器者)에 비유함.

生男育女; 아녀(兒女; 아들과 딸)를 생육함이니 후대를 번연(繁衍; 번식)함을 가리킴. 선가에선 문파에 계승인이 있음을 요함에 비유함.

荊釵; 1. 가시나무 가지로 제작한 계차(髻釵; 비녀). 2. 빈가(貧家)의 부녀를 차지(借指).

布裙; 조포(粗布)로 만든 치마. 부녀(婦女)의 장속(裝束)이 박소(朴素)함을 형용.

上行下斆; 상행하효(上行下效)와 같음. 상위 혹 상배인(上輩人)의 표수(表率; 본보기)의 작용을 강조함.

背楚投吳; 초국을 배반하고 오국에 투항함이니 번뇌를 여의고 보리에 드는 등에 비유함.

 

明州香山蘊良禪師

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刹竿頭上舞三臺 曰 如何是接初機句 師曰 上大人 曰 如何是末後句 師曰 雙林樹下 問 如何是學人轉身處 師曰 磨坊裏 上堂 良久 呵呵大笑曰 笑箇甚麽 笑他鴻鵠冲天飛 烏龜水底逐魚兒 三箇老婆六隻嬭 金剛背上爛如泥 阿呵呵知不知 東村陳大耆 參

三臺; 唐代敎坊曲名稱 按樂苑 唐天寶(742-755)中 羽調曲有三臺 又有急三臺

磨坊; 磨作米麵豆腐等坊

 

명주(明州) 향산(香山) 온량선사(蘊良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투법신구(透法身句; 법신을 투과하는 구)입니까. 사왈 찰간두상(刹竿頭上)에서 삼대(三臺)를 춤춘다. 묻되 무엇이 이 접초기구(接初機句; 초기를 接引하는 구)입니까. 사왈 상대인(上大人)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말후구(末後句)입니까. 사왈 쌍림수하(雙林樹下).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전신처(轉身處)입니까. 사왈 마방(磨坊) 속이다. 상당(上堂) 양구(良久)하고는 하하대소(呵呵大笑)하고 가로되 저() 무엇을 웃었느냐. () 홍곡(鴻鵠; 큰 기러기와 고니)이 충천(冲天)하여 낢을 웃었나니/ 오귀(烏龜)가 물밑에서 어아(魚兒; 물고기)를 쫓는다/ 세 개의 노파가 6()의 젖()이며/ 금강(金剛; 金剛神)의 배상(背上)이 진흙 같이 문드러졌다()/ 아하하(阿呵呵)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동촌(東村)의 진대기(陳大耆; 陳老人). ()하라.

三臺; 당대 교방곡(敎坊曲; 고대의 官方音樂)의 명칭. 악원(樂苑)을 안험하니 당 천보(742-755) 중 우조곡(羽調曲)에 삼대(三臺)가 있고 또 급삼대(急三臺)가 있음.

磨坊; 갈아서 쌀ㆍ밀가루ㆍ두부 등을 만드는 방().

 

蘇州南峯惟廣禪師

上堂 一問一答 如鐘含響 似谷應聲 葢爲事不獲已 且於建化門中 放一線道 若據衲僧門下 天地懸殊 且道衲僧有甚麽長處 良久曰 盡日覓不得 有時還自來 咄

 

소주(蘇州) 남봉(南峯) 유광선사(惟廣禪師)

상당(上堂) 일문일답은 종이 음향을 머금음과 같고() ()이 소리에 응함과 같다(). 대개 일이 불획이(不獲已; 不得已)하기 때문이며 또() 건화문중(建化門中)에서 일선도(一線道)를 방개(放開; )함이다. 만약 납승문하(衲僧門下)에 의거하자면 천지현수(天地懸殊)니 그래 말하라, 납승이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진일(盡日; 終日) 찾음을 얻지 못했는데 어떤 때(有時)엔 도리어 스스로 오더라. ().

 

潭州大潙德乾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水從山上出 曰 意旨如何 師曰 溪㵎豈能留 乃曰 山花似錦 文殊撞著眼睛 幽鳥綿蠻 觀音塞却耳際 諸仁者更思量箇甚麽 昨夜三更睡不著 飜身捉得普賢 貶向無生國裏 一覺直至天明 今朝又得與諸人相見說夢 噫 是甚麽說話 卓拄杖 下座

綿蠻; 泛指鳥語

 

담주(潭州) 대위(大潙) 덕건선사(德乾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물이 산상(山上)으로 좇아나온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계간(溪㵎; 산골짜기의 물)에 어찌 능히 머물겠는가. 이에 가로되 산화(山花)가 비단과 같으니 문수(文殊)가 눈동자에 당착(撞著; 부딪히다)하고 유조(幽鳥)가 면만(綿蠻; 새가 지저귀는 소리)하니 관음(觀音)이 이제(耳際; 귓가)를 색각(塞却)한다. 제인자(諸仁者)야 다시 사량하는 것(思量箇)이 무엇이냐. 어젯밤 3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몸을 돌이켜(飜身) 보현(普賢)을 착득(捉得)하여 물리쳐() 무생국(無生國) 속을 향하게 했다. 한 번 깨매(一覺) 바로 천명(天明)에 이르렀다가 금조(今朝)에 또 제인과 상견하여 설몽(說夢)함을 얻었다. (), 이 무슨 설화냐.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綿蠻; 널리 조어(鳥語)를 가리킴.

 

全州靈山本言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誰敎汝恁麽問 曰 今日起動和尙也 師曰 謝訪及

 

전주(全州) 영산(靈山) 본언선사(本言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누가 너로 하여금 이렇게 묻게 했는가. 가로되 금일 화상을 기동(起動)케 했습니다. 사왈 방급(訪及; 방문해 이르다)에 감사한다.

 

安吉州廣法院源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甎頭瓦片 問 閙中取靜時如何 師曰 冤不可結 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眉毛下 曰 便與麽會時如何 師曰 瞳兒笑點頭 問 如何是向上事 師曰 日月星辰 曰 如何是向下事 師曰 地獄鑊湯 問 萬里無雲時如何 師曰 猢猻忍餓 曰 乞師拯濟 師曰 甚麽火色 問 古人拈槌擧拂 意旨如何 師曰 白日無閑人 曰 如何承當 師曰 如風過耳 問 握劒當胸時如何 師曰 老鴉成隊 曰 正是和尙見處 師曰 蛇穿鼻孔 僧拂袖便出 師曰 大衆相逢 問 從上諸聖向甚麽處行履 師曰 十字街頭 曰 與麽則敗缺也 師曰 知你不到這田地 曰 到後如何 師曰 家常茶飯 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乾薑附子 曰 與麽則不同也 師曰 冰片雪團

家常茶飯; 日常之茶水飯菜 喩禪家日常機用

 

안길주(安吉州) 광법원(廣法院) 원선사(源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전두(甎頭; 벽돌)와 와편(瓦片)이다. 묻되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함을 취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원수(怨讐; )를 가히 맺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눈썹 아래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與麽) 이회(理會)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동아(瞳兒)가 웃으며 머리를 끄덕인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하사(向下事)입니까. 사왈 지옥확탕(地獄鑊湯)이다. 묻되 만 리에 구름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호손(猢猻)이 굶주림()을 참는다. 가로되 스님의 증제(拯濟)를 구걸합니다. 사왈 무슨 화색(火色)이냐. 묻되 고인이 염추거불(拈槌擧拂)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백일(白日; 대낮)에 한인(閑人)이 없다. 가로되 어떻게 승당(承當)해야 합니까. 사왈 바람이 귀에 스침()과 같다. 묻되 검을 쥐고() 당흉(當胸)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늙은 갈까마귀(老鴉)가 무리()를 이루었다.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의 견처(見處)입니까. 사왈 뱀이 콧구멍을 뚫었다. 중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사왈 대중(大衆)이 상봉(相逢)한다. 묻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어느 곳을 향해 행리(行履)합니까.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 가로되 그러하다면(與麽) 곧 패결(敗缺)입니다. 사왈 네가 이 전지(田地; 境地)에 이르지 않았음을 안다. 가로되 이른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가상다반(家常茶飯)이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건강(乾薑; 마른 生薑)과 부자(附子). 가로되 그렇다면(與麽) 곧 같지 않습니까. 사왈 얼음 조각과 눈덩이다.

家常茶飯; 일상의 차ㆍ물ㆍ밥ㆍ채소니 선가의 일상의 기용(機用)에 비유.

 

上堂 春雨微微 簷頭水滴 聞聲不悟 歸堂面壁 上堂 若論大道 直敎杼山無開口處 你諸人試開口看 僧便問 如何是大道 師曰 擔不起 曰 爲甚麽擔不起 師曰 大道 上堂 若論此事 切莫道著 道著卽頭角生 有僧出曰 頭角生也 師曰 禍事 曰 某甲罪過 師曰 龍頭蛇尾 伏惟珍重 師元豐八年十月十二晩 忽書偈曰 雪𩯭霜髭九九年 半肩毳衲盡諸緣 廓然笑指浮雲散 玉兔流光照大千 擲筆而寂

毳衲; 僧服 常借指僧人

 

상당(上堂) 춘우(春雨)가 미미(微微)하니 첨두(簷頭; 처마)에 수적(水滴)이다. 소리를 듣고 깨치지 못하거든 귀당(歸堂)하여 면벽(面壁)하라. 상당(上堂) 만약 대도(大道)를 논하자면 바로 서산(杼山)으로 하여금 입 열 곳이 없게 하나니 너희 제인이 시험 삼아 입을 열어 보아라. 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대도입니까. 사왈 짊어지고 일어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짊어지고 일어나지 못합니까. 사왈 대도다.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간절히(), 도착(道著; 말하다)하지 말아라. 만약 도착(道著)하면 곧 두각(頭角)이 생겨난다.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두각이 생겨났습니다. 사왈 화사(禍事). 가로되 모갑의 죄과(罪過)입니다. 사왈 용두사미로구나, 복유(伏惟)컨대 진중(珍重)하라. 스님이 원풍(元豐) 8(1085) 1012일 저녁 홀연히 서게(書偈)하여 가로되 설빈상자(雪𩯭霜髭; 老貌)의 구구년(九九年; 81)이니/ 반견(半肩)의 취납(毳衲)으로 제연(諸緣)을 다했다()/ 확연(廓然)히 웃으며 가리키매 부운(浮雲)이 흩어지고/ 옥토(玉兔)의 유광(流光)이 대천(大千)을 비추네. 붓을 던지고 적(; 입적)했다.

毳衲; 승복. 늘 가차(假借)하여 승인을 가리킴.

 

靈隱德章禪師

初住大相國寺西經藏院 慶曆八年九月一日 仁宗皇帝詔師於延春閣下齋 宣普照大師問 如何是當機一句 師曰 一言逈出靑霄外 萬仞峰前嶮處行 曰 作麽生是嶮處行 師便喝 曰 皇帝面前 何得如此 師曰 也不得放過 明年又宣入內齋 復宣普照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雷驚細草萌芽發 高山進步莫遲遲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戴角披毛異 來往任縱橫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出門天外迥 流光影不眞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寒林無宿客 大海聽龍吟 後再宣入化成殿齋 宣守賢問 齋筵大啓 如何報答聖君 師曰 空中求鳥跡 曰 意旨如何 師曰 水內覓魚踪 師進心珠歌曰 心如意心如意 任運隨緣不相離 但知莫向外邊求 外邊求終不是 枉用工夫隱眞理 識心珠光耀日 秘藏深密無形質 拈來掌內衆人驚 二乘精進爭能測 碧眼胡須指出 臨機妙用何曾失 尋常切忌與人看 大地山河動岌岌 師皇祐二年乞歸山林養老 御批杭州靈隱寺住持 賜號明覺

 

영은(靈隱) 덕장선사(德章禪師)

대상국사(大相國寺) 서경장원(西經藏院)에 초주(初住)했다. 경력(慶曆) 8(1048) 91일 인종황제(仁宗皇帝)가 스님을 불러 연춘각(延春閣) 아래에서 재()하고는 보조대사(普照大師)에게 하교(下敎; )하여 묻게 했다. 무엇이 이 당기(當機)1구입니까. 사왈 일언(一言)이 청소(靑霄) 밖으로 형출(逈出)하니 만인(萬仞)의 봉전(峰前)의 험처(嶮處)를 다닙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험처(嶮處)를 다님입니까. 스님이 바로 할()했다. 가로되 황제의 면전에서 어찌하여 이와 같음을 얻습니까. 사왈 또한 방과(放過)함을 얻지 못합니다. 명년(明年)에 또 하교하여 입내(入內)케 하여 재()하고 다시 보조(普照)에게 하교하여 묻게 했다. 무엇이 이 인()을 뺏고 경()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우레가 세초(細草)를 경동(驚動; )하여 맹아(萌芽)가 발생하니 고산(高山)에서 진보(進步)하며 지지(遲遲)하지 마시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을 뺏고 인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대각피모(戴角披毛)하여 다르나니() 내왕하면서 마음대로 종횡합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둘 다 뺏음입니까. 사왈 출문(出門)하니 천외(天外)가 멀고() 유광(流光)의 그림자가 진()이 아닙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모두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한림(寒林)에 숙객(宿客)이 없고 대해(大海)에서 용음(龍吟)을 듣습니다. 후에 재선(再宣)하여 화성전(化成殿)에 들게 해 재()하고 수현(守賢)에게 하교하여 묻게 했다. 재연(齋筵)을 크게 열었으니() 어떻게 성군(聖君)에게 보답하겠습니까. 사왈 공중에서 조적(鳥跡)을 구합니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수내(水內)에서 어종(魚踪)을 찾습니다. 스님이 심주가(心珠歌)를 진상(進上)하였으니 가로되 심()은 여의(如意)니 심은 여의여/ 임운(任運)하여 수연(隨緣)하면서 서로 여의지 않나니/ 단지 외변(外邊)을 향해 구하지 말 줄 알아라/ 외변(外邊)으로 구함은 마침내 옳지 않나니/ 공부(工夫)를 헛되이() 쓰면 진리가 숨는다/ 심주(心珠)를 알면 빛이 해를 비추나니(耀)/ 비장(秘藏)이 심밀(深密)하여 형질(形質)이 없다/ 장내(掌內)로 염래(拈來)하매 중인(衆人)이 놀라거늘/ 이승(二乘)이 정진(精進)하여 어찌 능히 헤아리겠는가/ 벽안호(碧眼胡)가 지출(指出)함을 썼으니()/ 임기(臨機)하여 묘용(妙用)하면서 어찌 일찍이 잃겠는가/ 심상(尋常)에 사람에게 보여 줌을 절기(切忌)하나니/ 대지산하가 동()하여 급급(岌岌)하다. 스님이 황우(皇祐) 2(1047) 산림(山林)으로 돌아가 양로(養老)함을 구걸했다.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 주지로 어비(御批; 황제의 批示)하고 사호(賜號)하여 명각(明覺)이라 했다.

 

琅邪覺禪師法嗣

蘇州定慧院超信海印禪師

僧問 如何是佛法的的大意 師曰 湘源斑竹杖 曰 意旨如何 師曰 枝枝帶淚痕 問 如何是第一句 師曰 那吒忿怒 曰 如何是第二句 師曰 衲僧罔措 曰 如何是第三句 師曰 西天此土 上堂 泥蛇齩石鼈 露柱啾啾呌 須彌打一棒 閻老呵呵笑 參 上堂 若識般若 卽被般若縛 若不識般若 亦被般若縛 識與不識 拈放一邊 却問諸人 如何是般若體 參堂去 上堂 鶯聲闌蟬聲急 入水烏龜頭不濕 鷺鶿飛入蘆花叢 雪月交輝俱不及 吽

 

소주(蘇州) 정혜원(定慧院) 초신(超信) 해인선사(海印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적적(的的)한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상원(湘源)의 반죽장(斑竹杖; 아롱무늬의 죽장)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가지마다 눈물의 흔적을 띠었다. 묻되 무엇이 이 제1구입니까. 사왈 나타(那吒)가 분노(忿怒)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2구입니까. 사왈 납승이 망조(罔措)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3구입니까. 사왈 서천(西天)과 차토(此土). 상당(上堂) 진흙 뱀이 돌 자라를 깨물매 노주(露柱)가 추추(啾啾)하며 부르짖고 수미(須彌)를 한 방 때리니 염로(閻老)가 하하(呵呵)하며 웃는다. ()하라. 상당(上堂) 만약 반야를 알면 곧 반야에 묶임을 입고 만약 반야를 알지 못하면 또한 반야에게 묶임을 입는다. 앎과 알지 못함을 집어서 일변(一邊)에 놓고 도리어 제인에게 묻나니 무엇이 이 반야의 체()인가.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상당(上堂) 꾀꼬리 소리는 느리고() 매미 소리는 급하고/ 입수(入水)한 오귀(烏龜)의 머리가 젖지() 않았다/ 노자(鷺鶿; 해오라기)가 날아 노화(蘆花)의 떨기에 들어가매/ 설월(雪月)이 교휘(交輝)해도 모두 미치지 못한다. ().

 

洪州泐潭曉月禪師

僧問 修多羅敎 如標月指 未審指箇甚麽 師曰 請高著眼 曰 曙色未分人盡望 及乎天曉也尋常 師曰 年衰鬼弄人

 

홍주(洪州) 늑담(泐潭) 효월선사(曉月禪師)

승문(僧問) 수다라교(修多羅敎)달을 표시(標示)하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미심하오니 손가락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사왈 청컨대 높이 착안하라. 가로되 새벽 빛이 나뉘지 않아서는 사람들이 다 바라보지만 하늘이 밝아짐에 이르러선 또한 심상(尋常)합니다. 스님이 가로되 연쇠(年衰; 年老)하니 귀신이 사람을 희롱하는구나.

 

越州姜山方禪師

僧問 如何是不動尊 師曰 單著布衫穿市過 曰 學人未曉 師曰 騎驢踏破洞庭波 曰 透過三級浪 專聽一聲雷 師曰 伸手不見掌 曰 還許學人進向也無 師曰 踏地告虛空 曰 雷門之下 布鼓難鳴 師曰 八花毬子上 不用繡紅旗 曰 三十年後 此話大行 師便打 問 蓮花未出水時如何 師曰 穿針嫌眼小 曰 出水後如何 師曰 盡日展愁眉 問 如何是一塵入正受 師曰 蛇銜老鼠尾 曰 如何是諸塵三昧起 師曰 鼈齩釣魚竿 曰 恁麽則東西不辯 南北不分去也 師曰 堂前一盌夜明燈 簾外數莖靑瘦竹 問 諸佛未出世時如何 師曰 不識酒望子 曰 出世後如何 師曰 釣魚船上贈三椎

雷門; 祖庭事苑三 布鼓 漢 王尊爲東平相 謂王之太傅曰 毋持布鼓向雷門 說者曰 雷門 越之會稽城門也 有大鼓 越擊之 聲聞洛陽 布鼓 以布爲鼓 無聲也 毋 音無

八花毬子; 有八花紋的毬子

愁眉; 發愁時皺著的眉頭

酒望子; 酒簾 指酒旗 子 助詞

 

월주(越州) 강산방(姜山方)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포삼(布衫)을 홑으로 입고(單著) 시가(市街; ) 뚫고 지나간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나귀를 타고 동정(洞庭; 동정호)의 파도를 답파(踏破)한다. 가로되 삼급(三級)의 파랑을 투과하니 오로지() 일성(一聲)의 우레를 듣습니다. 사왈 손을 펴도(伸手) 손바닥을 보지 못한다. 가로되 학인이 진향(進向)함을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땅을 밟고 허공에 고하라. 가로되 뇌문(雷門)의 아래에선 포고(布鼓)를 울리기 어렵습니다. 사왈 팔화구자상(八花毬子)엔 홍기(紅旗)를 수놓음을 쓰지 않는다. 가로되 삼십 년 후에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할 것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연화(蓮花)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바늘을 꿰면서 눈이 작음을 혐오(嫌惡; )한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진일(盡日; 종일) 수미(愁眉)를 편다(). 묻되 무엇이 이 일진(一塵)이 정수(正受; 三昧)에 들어감입니까. 사왈 뱀이 늙은 쥐의 꼬리를 물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진(諸塵)이 삼매에서 일어남입니까. 사왈 자라가 고기를 낚는 장대(釣魚竿)를 물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동서를 분변하지 못하고 남북을 분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왈 당전(堂前)엔 한 사발(一盌)의 야명등(夜明燈)이며 염외(簾外)엔 몇 줄기의 청수죽(靑瘦竹; 푸르고 야윈 대)이다. 묻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주망자(酒望子)를 알지 못했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조어선상(釣魚船上)에 세 망치 준다(贈三椎).

雷門; 조정사원3. 포고(布鼓) ()의 왕존(王尊)이 동평(東平)의 재상이 되었다. 왕의 태부에게 가로되 포고(布鼓)를 가지고 뇌문(雷門)을 향하지 말라. 설자(說者)가 가로되 뇌문은 월()의 회계성문(會稽城門)이다. 대고(大鼓)가 있는데 월()이 그것을 치면 소리가 낙양에 들렸다. 포고는 포()로써 북을 만든 것이니 소리가 없음. ()는 음이 무임.

八花毬子; 팔화문(八花紋)이 있는 구자(毬子; ).

愁眉; 수심을 발할 때 찌푸리는 눈썹.

酒望子; 주렴(酒簾)이니 주기(酒旗)를 가리킴. 자는 조사.

 

問 如何是佛 師曰 留髭表丈夫 問 奔流度刃 疾𦦨過風 未審姜山門下還許借借也無 師曰 天寒日短夜更長 曰 錦帳繡鴛鴦 行人難得見 師曰 髑髏裏面氣衝天 僧召和尙 師曰 鷄頭鳳尾 曰 諸方泥裏洗 姜山畫將來 師曰 姜山今日爲客 且望闍黎善傳 雖然如是 不得放過 便打 上堂 穿雲不渡水 渡水不穿雲 乾坤把定不把定 虛空放行不放行 橫三竪四 乍離乍合 將長補短 卽不問汝諸人 飯是米做一句 要且難道 良久曰 私事不得官酬 上堂 不是道得道不得 諸方盡把爲奇特 寒山燒火滿頭灰 笑罵豐干這老賊

奔流度刃; 形容機鋒迅疾法眼明亮

𦦨過風; 形容禪機迅疾

把定; 與把斷把住同義 謂截斷言句敎說知識情解 是禪家本分施設 與放行(禪家方便施設)相對

放行; 禪家接化中下根機 慈悲爲懷 施以言句敎說 是方便法門 與把斷把住把定相對

橫三竪四; 形用人或物品錯雜而無秩序 禪宗指特立獨行 不受成規約束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윗수염()을 머물러 둠은 장부(丈夫)를 표시(表示; )함이다. 묻되 빠른 유수에 칼날을 통과시키고(奔流度刃) 빠른 화염에 바람을 통과시킵니다(疾𦦨過風). 미심하나니 강산문하(姜山門下)에선 도리어 차차(借借)를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날이 추우니 해가 짧고 밤이 다시 길다. 가로되 금장(錦帳)에 원앙(鴛鴦)을 수놓으니() 행인이 득견(得見)하기 어렵습니다. 사왈 촉루(髑髏)의 이면(裏面)에 기()가 충천(衝天)한다. 중이 부르되 화상, 사왈 계두봉미(鷄頭鳳尾). 가로되 제방에선 진흙 속에서 씻거니와 강산(姜山)은 그려서 가지고 옵니다. 사왈 강산(姜山)이 금일 객()이 되었나니 다만() 바라건대 사리(闍黎)가 잘 전하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방과(放過)함을 얻지 못한다. 바로 때렸다. 상당(上堂) 구름은 뚫으나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을 건너지만 구름을 뚫지 않나니 건곤이 파정(把定)하기도 하고 파정하지 않기도 하며 허공이 방행(放行)하기도 하고 방행하지 않기도 하면서 횡삼수사(橫三竪四)하고 사리사합(乍離乍合; 금방 떨어졌다가 금방 합함)한다. 장장보단(將長補短)함은 곧 너희 제인에게 묻지 않거니와 밥은 이 쌀로 짓는 1구를 요차(要且; 마침내. 終乃) 말하기 어렵다.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사사(私事)관수(官酬; 관의 酬對)를 얻지 못한다. 상당(上堂) 이 말함을 얻거나 말함을 얻지 못함이 아니거늘/ 제방에서 모두 잡아(奇特) 기특으로 삼는다/ 한산(寒山)이 불을 때며 머리 가득 재인데/ 웃으며 풍간(豐干) 이 늙은 도적아 라고 욕한다.

奔流度刃; 기봉이 신질(迅疾)하고 법안이 명량(明亮)함을 형용.

𦦨過風; 선기의 신질(迅疾)을 형용.

把定; 파단(把斷)ㆍ파주(把住)와 같은 뜻. 이르자면 언구ㆍ교설(敎說)ㆍ지식ㆍ정해를 절단함이니 이는 선가의 본분시설. 방행(放行; 선가의 방편시설)과 상대됨.

放行; 선가에서 중하근기를 접화하면서 자비로 회포를 삼아 언구의 교설을 베풂이니 이는 방편법문임. 파단(把斷)ㆍ파주(把住)ㆍ파정(把定)과 상대됨.

橫三竪四; 사람 혹 물품이 착잡(錯雜; 섞임)하여 질서가 없음을 형용함. 선종에선 특립(特立)하고 독행(獨行)하여 성규(成規)와 약속을 받지 않음을 가리킴.

 

福州白鹿山顯端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九州百粵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乘肥衣錦 問 如何是大善知識 師曰 持刀按劒 曰 爲甚麽如此 師曰 禮防君子 問 如何是異類 師曰 鴉巢生鳳 上堂 摩騰入漢 肉上剜瘡 僧會來吳 眼中添屑 達磨九年面壁 鬼魅之由 二祖立雪求心 飜成不肖 汝等諸人到這裏 如何吐露 若也道得 海上橫行 若道不得 林間獨臥 以拄杖擊禪牀一下 問 如何是無相佛 師曰 灘頭石師子 曰 意旨如何 師曰 有心江上住 不怕浪淘沙 問 凝然湛寂時如何 師曰 不是闍黎安身立命處 曰 如何是學人安身立命處 師曰 雲有出山勢 水無投㵎聲 問 如何是敎意 師曰 楞伽會上 曰 如何是祖意 師曰 熊耳山前 曰 敎意祖意 相去幾何 師曰 寒松連翠竹 秋水對紅蓮

九州; 指中國全土 又作九洲 字彙 洲 本作州 華嚴懸談會玄記一 九州者 尙書禹貢中云 禹別九州 爾雅云 兩河之間曰冀州(自河東至河西) 河南曰豫州(自河南至漢) 河西曰雝州(自河至西黑水) 漢南曰荊州(自漢南至衡山之陽) 江南曰楊州(自江南至海) 濟河間曰兗州(自河東至濟) 濟東曰徐州(自濟東至海) 燕曰幽州(自易水至北狄) 齊曰營州亦名靑州(自岱東至海)

百粵; 百粤 又作百越 廣東廣西 古爲百粤之地 故稱兩粤 後專用爲廣東省的別稱 粤 中國古代南方的部族名 百越; 先秦古籍對長江中下流 及以南地區的民族 常統稱爲越 實際上這些越 並不是一個民族 而是眾多族群的泛稱 或稱吳越(蘇南 浙北) 或稱東甌越(浙南 閩北) 或稱閩越(閩南) 或稱揚越(江西 湖南) 或稱南越(廣東) 或稱西甌越(廣西) 或稱駱越(越南北部 廣西南部)等等 故而又稱百越 [百度百科] 祖庭事苑三 百越 越圖經 百越 越之別名 百 以種類不一之稱 亦名越絶 猶破吳之惡越惡絶也 或謂靈越 言山海靈異所出

肉上剜瘡; 卽好肉上剜瘡 剜割好肉 反成瘡傷 多喩禪法明白現成 不須宣說解釋 若陷于言語知識 反成悟道之障

僧會; 康僧會(?-280) 三國時代譯經僧 交趾(越南北部)人 其先世出自康居國(今新疆北部) 世居印度 至其父因經商始移居交趾 十餘歲卽喪雙親 服喪畢而出家 精通經律論三藏 三國吳赤烏十年(247)至建業 設像行道 後應孫權之請 於三七日內感得舍利 孫權感其威神 遂歸依之 竝爲之建立建初寺 傳道譯經 其地稱佛陀里 此爲佛敎傳入中國南方之嚆矢 晉太康元年示寂 號爲超化禪師 [梁高僧傳一 元金陵新志]

鬼魅; 喩指做陰謀害人

 

복주(福州) 백록산(白鹿山) 현단선사(顯端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구주백월(九州百粵)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승비의금(乘肥衣錦; 肥馬를 타고 錦衣를 입다)이다. 묻되 무엇이 이 대선지식입니까. 사왈 지도안검(持刀按劒; 칼을 갖고 검을 어루만짐)이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예절은 군자를 방애(妨礙)한다. 묻되 무엇이 이 이류(異類)입니까. 사왈 갈까마귀 둥지에서 봉()을 낳았다. 상당(上堂) 마등(摩騰)이 입한(入漢)함은 육상완창(肉上剜瘡)이며 승회(僧會)가 내오(來吳)은 안중(眼中)에 가루()를 더함이며 달마가 9년 면벽함은 귀매(鬼魅)로 말미암음이며 2조가 눈에 서서 구심(求心)함은 도리어() 불초(不肖)를 이루었다. 너희 등 제인이 이 속에 이르러 어떻게 토로(吐露)하겠는가. 만약에 말함을 얻는다면 해상(海上)에 횡행(橫行)하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임간(林間)에 홀로 누워라. 주장자로써 한 번 선상을 쳤다. 묻되 무엇이 이 무상불(無相佛)입니까. 사왈 탄두(灘頭; 여울 가)의 석사자(石師子).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유심(有心)히 강상(江上)에 머물면서 파랑이 모래를 씻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묻되 응연(凝然)히 담적(湛寂)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사리(闍黎)가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이 안신입명할 곳입니까. 사왈 구름은 출산(出山)할 형세가 있거늘 물은 투간(投㵎)하는 소리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교의(敎意)입니까. 사왈 릉가회상(楞伽會上)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의(祖意)입니까. 사왈 웅이산(熊耳山) 앞이다. 가로되 교의(敎意)와 조의(祖意)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사왈 한송(寒松)이 취죽(翠竹)과 이어졌고 추수(秋水)가 홍련(紅蓮)을 대했다.

九州; 중국 전토를 가리킴. 또 구주(九洲)로 지음. 자휘 주() 본래 주()로 짓는다. 화엄현담회현기1. 구주(九州)란 것은 상서 우공(禹貢) 중에 이르되 우()가 구주로 나누었다. 이아에 이르되 양하(兩河)의 사이를 가로되 기주(冀州; 하동으로부터 하서에 이르기까지)며 하남을 가로되 예주(豫州; 하남으로부터 에 이르기까지)며 하서를 가로되 옹주(雝州; 로부터 흑수에 이르기까지)며 한남(漢南)을 가로되 형주(荊州; 한남으로부터 형산의 에 이르기까지)며 강남을 가로되 양주(楊州; 강남으로부터 에 이르기까지)며 제하(濟河) 사이를 가로되 연주(兗州; 하동으로부터 에 이르기까지)며 제동(濟東)을 가로되 서주(徐州; 제동으로부터 에 이르기까지)며 연()을 가로되 유주(幽州; 역수로부터 북적에 이르기까지)며 제()를 가로되 영주(營州), 또 이름이 청주(靑州; 岱東으로부터 에 이르기까지).

百粵; 백월(百粤)과 같음. 또 백월(百越)로 지음. 광동과 광서가 옛적에 백월의 땅이 됨. 고로 양월(兩粤)로 일컬었음. 후에 광동성의 별칭으로 전용되었음. ()은 중국 고대 남방의 부족 이름. 百越; 선진(先秦; 통일 이전) 고적(古籍)에서 장강 중하류 및 이남지구의 민족에 대해 늘 통칭하기를 월()이라 했음. 실제상으로 위의 이 월은 모두 이 1개 민족이 아니라 이는 중다(眾多)한 족군(族群)의 범칭(泛稱). 혹 호칭이 오월(吳越; 蘇南 浙北), 혹 호칭이 동구월(東甌越; 浙南 閩北), 혹 호칭이 민월(閩越; 閩南), 혹 호칭이 양월(揚越; 江西 湖南), 혹 호칭이 남월(南越; 廣東), 혹 호칭이 서구월(西甌越; 廣西), 혹 호칭이 낙월(駱越; 越南北部 廣西南部) 등등. 고로 또 호칭이 백월(百越)[백도백과]. 조정사원3. 백월(百越) ()의 도경(圖經) 백월은 월의 별명이다. ()은 종류가 하나가 아님을 일컬음이다. 또한 이름이 월절(越絶)이니 마치 월()을 증오하는 오()를 깨뜨려 증오가 끊어짐과 같다. 혹은 일컬어 영월(靈越)이니 말하자면 산과 바다에 신령스런 이물(異物)이 나는 곳이다.

肉上剜瘡; 곧 호육상완창(好肉上剜瘡)이니 좋은 살갗을 완할(剜割; 도려냄)하여 도리어 창상(瘡傷)을 이룸. 다분히 선법이 명백하게 현성(現成)했으므로 선설(宣說)하여 해석함을 수요(需要; )하지 않음에 비유함. 만약 언어와 지식에 빠지면 도리어 오도의 장애를 이룸.

僧會; 강승회(康僧會; ?-280)니 삼국시대의 역경승. 교지(交趾; 월남 북부) 사람이며 그의 선세(先世; 선조)가 강거국(康居國; 지금의 신강 북부)으로부터 나왔음. 대대로 인도에 거주했는데 그의 부친에 이르자 경상(經商; 상업을 경영)함으로 인해 비로소 교지로 이사해 거주했음. 10여 세에 곧 쌍친을 잃었는데 복상(服喪)을 마치자 출가했으며 경률론 3()에 정통했음. 삼국 오 적오 10(247) 건업에 이르러 불상을 세우고 행도했는데 후에 손권의 청에 응해 삼칠일(三七日; 21) 내에 사리를 감득(感得)하자 손권이 그의 위신(威神)에 감동하여 드디어 그에게 귀의했음. 아울러 그를 위해 건초사(建初寺)를 건립했으며 전도하고 역경했으니 그 땅을 일컬어 불타리(佛陀里)라 했음. 이것이 불교가 중국 남방에 전입한 효시가 됨. 진 태강 원년에 시적했으며 호하여 초화선사라 했음 [양고승전1. 원금릉신지].

鬼魅; 음모를 지어 사람을 해침을 비유로 가리킴.

 

滁州琅邪山智遊禪師

僧問 如何是琅邪境 師曰 松因有限蕭踈老 花爲無情取次開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髮長僧貌醜 問 如何是和尙爲人句 師曰 眼前三尺雪 曰 莫便是也無 師曰 腦後一枝花

蕭踈; 蕭疏 凄凉的 孤寂的

 

저주(滁州) 낭야산(琅邪山) 지유선사(智遊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낭야경(琅邪境)입니까. 사왈 솔은 유한(有限)으로 인해 소소(蕭踈)하게 늙고 꽃은 무정하기 때문에 취차(取次; 任意)하여 핀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머리카락이 길면 승모(僧貌)가 추()하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구()입니까. 사왈 안전(眼前)3()의 눈이다. 가로되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뇌후(腦後)에 일지(一枝)의 꽃이다.

蕭踈; 소소(蕭疏)와 같음. 처량한 것. 고적(孤寂)한 것.

 

泉州涼峰洞淵禪師

僧問 如何是涅槃 師曰 刀斫斧劈 曰 如何是解脫 師曰 衫長袴短 問 諸聖不到處 師還知也無 師曰 老來無力下禪牀 問 離四句絕百非時如何 師曰 柴門草自深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曰 松直棘曲 問 如何是佛 師曰 金沙照影 曰 如何是道 師曰 玉女拋梭 曰 佛與道相去幾何 師曰 龜毛長二丈 兔角長八尺

 

천주(泉州) 양봉(涼峰) 동연선사(洞淵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열반입니까. 사왈 칼로 쪼개고 도끼로 가른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해탈입니까. 사왈 적삼은 길고 바지는 짧다. 묻되 제성(諸聖)이 이르지 못하는 곳을 스님이 도리어 아십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늙어지니(老來) 선상에서 내려올 힘이 없다. 묻되 사구를 여의고 백비가 끊어졌을(離四句絕百非) 때 어떻습니까. 사왈 시문(柴門)에 풀이 저절로 깊다. 묻되 구자(狗子; )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금사(金沙)가 그림자를 비춘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옥녀(玉女)가 포저(拋梭; 북을 던지다)한다. 가로되 불()과 도()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사왈 귀모(龜毛)의 길이가 2()이며 토각(兔角)의 길이가 8()이다.

 

眞州眞如院方禪師

參琅邪 唯看栢樹子話 每入室 陳其所見 不容措詞 常被喝出 忽一日大悟 直入方丈曰 我會也 琅邪曰 汝作麽生會 師曰 夜來牀薦暖 一覺到天明 琅邪可之

 

진주(眞州) 진여원(眞如院) 방선사(方禪師)

낭야(琅邪)를 참()해 오직 백수자화(栢樹子話)를 간()했다. 매번 입실하여 그 소견(所見)을 진술(陳述)하매 언사(言詞)를 둠()을 용납하지 않았고 늘 꾸짓으며 쫓아냄을 입었다. 홀연히 어느 날 대오하여 방장에 직입(直入)하여 가로되 내가 알았습니다. 낭야가 가로되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사왈 야래(夜來)에 상천(牀薦; 의 자리)이 따뜻했고 한 번 깨매 천명(天明)에 이르렀습니다. 낭야가 인가(印可)했다.

 

宣州興敎院坦禪師

永嘉牛氏子 業打銀 因淬礪甁器有省 卽出家 參琅邪 機語頓契 後依天衣懷禪師 時住興敎 擢爲第一座 衣受他請 欲聞州乞師繼之 時刁景純學士守宛陵 衣恐刁涉外議 乃於觀音前祝曰 若坦首座道眼明白 堪任住持 願示夢於刁學士 刁夜夢牛在興敎法座上 衣凌晨辭州 刁擧所夢 衣大笑 刁問其故 衣曰 坦首座姓牛 又屬牛 刁就座出帖請之 師受請陞座 有雪竇化主省宗出問 諸佛未出世 人人鼻孔遼天 出世後 爲甚麽杳無消息 師曰 鷄足峰前風悄然 宗曰 未在更道 師曰 大雪滿長安 宗曰 誰人知此意 令我憶南泉 拂袖歸衆 更不禮拜 師曰 新興敎今日失利 便歸方丈 令人請宗至 師曰 適來錯祇對一轉語 人天衆前何不禮拜葢覆却 宗曰 大丈夫膝下有黃金 爭肯禮拜無眼長老 師曰 我別有語在 宗乃理前語 至未在更道處 師曰 我有三十棒寄你打雪竇 宗乃禮拜

打銀; 用手工鍛造銀器

鼻孔遼天; 意謂省悟禪法 超然脫世 遼天沖向天際 飛向天空 祖庭事苑一 鼻孔遼天 遼 當作撩 撩取也 昂視之貌 遼 遠也 非義

大丈夫膝下有黃金; 謂大丈夫不輕易向人下跪

 

선주(宣州) 흥교원(興敎院) 탄선사(坦禪師)

영가(永嘉) 우씨(牛氏)의 아들이다. 타은(打銀)에 종사(從事; )했다. 병기(甁器)를 쉬려(淬礪; 날을 달구어서 물에 담궜다가 숫돌에 갊)하다가 살핌이 있었다. 곧 출가하여 낭야(琅邪)를 참()했고 기어(機語)가 돈계(頓契)했다. 후에 천의회(天衣懷; 義懷) 선사에게 의지했는데 때에 흥교(興敎)에 주()했고 발탁(拔擢)되어 제1좌가 되었다. 천의(天衣)가 딴 데()의 청을 받자 주()에 알려() 스님이 계승함을 구걸하고 싶어 했다. 당시에 조경순(刁景純) 학사(學士)가 완릉(宛陵)을 지켰는데 천의가, ()가 외의(外議)에 건널까 염려했다. 이에 관음(觀音) 앞에서 축원하여 가로되 만약 탄수좌(坦首座)가 도안(道眼)이 명백하여 주지를 감임(堪任)한다면 원컨대 조학사(刁學士)에게 꿈을 보이십시오. ()가 야몽(夜夢)에 우(; )가 흥교(興敎)의 법좌상(法座上)에 있었다. 천의가 능신(凌晨)에 주()에 고별하자 조()가 꿈꾼 바를 들었다(). 천의가 대소(大笑)했다. ()가 그 연고를 묻자 천의가 가로되 탄수좌의 성이 우()며 또 우(; 소띠)에 속합니다. ()가 좌석으로 나아가 출첩(出帖; 문서를 내어 줌)하고 청했다. 스님이 수청(受請)하고 승좌(陞座)했다. 설두(雪竇)의 화주(化主) 성종(省宗)이 있어 나와 묻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아도 사람마다 비공요천(鼻孔遼天)이더니 출세한 후엔 무엇 때문에(爲甚麽) 아득히() 소식이 없습니까. 사왈 계족봉(鷄足峰) 앞에 바람이 초연(悄然)하다. 종왈(宗曰) 미재(未在; 不然)니 다시 말하십시오. 사왈 대설(大雪)이 장안에 가득하다. 종왈(宗曰) 어떤 사람(誰人)이 이 뜻을 아는가, 나로 하여금 남천(南泉)을 추억케 합니다. 소매를 떨치고 귀중(歸衆)하면서 다시 예배하지 않았다. 사왈 신흥교(新興敎)가 금일 실리(失利)했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사람을 시켜 성종(省宗)을 청해 이르게 했다. 사왈 아까 일전어(一轉語)를 잘못 지대(祇對)했다 하더라도 인천중(人天衆) 앞에서 왜 예배하지 않고 덮어버렸는가(葢覆却). 종왈(宗曰) 대장부의 무릎 아래 황금이 있거늘(大丈夫膝下有黃金) 무안장로(無眼長老)에게 예배함을 어찌 수긍하겠습니까. 사왈 나에게 따로 말이 있다. 성종이 이에 전어(前語)를 정리(整理)하여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십시오 한 곳에 이르자 사왈 나에게 30()이 있어 너에게 기탁하니 설두를 때려라. 성종이 이에 예배했다.

打銀; 수공(手工; 손으로 만들다)을 사용하여 은기(銀器)를 단조(鍛造).

鼻孔遼天;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요천(遼天)에서 천제(天際)를 향해 올라 천공(天空)을 향해 비행함. 조정사원1. 비공요천(鼻孔遼天) ()는 마땅히 료(; 취할 료)로 지어야 하나니 요취(撩取)며 앙시(昂視; 은 높을 앙)하는 모양임. ()는 원()이니 뜻이 아님.

大丈夫膝下有黃金; 이르자면 대장부는 경이(輕易)하게 사람을 향해 하궤(下跪; 무릎을 꿇다)하지 않음.

 

江州歸宗可宣禪師

漢州人也 壯爲僧 卽出峽依琅邪 一語忽投 群疑頓息 琅邪可之 未幾令分座 淨空居士郭功甫過門問道與厚 及師領歸宗 時功甫任南昌尉 俄郡守恚師不爲禮 捃甚 遂作書寄功甫曰 某世緣尙有六年 奈州主抑逼 當棄餘喘 託生公家 願無見阻 功甫閱書驚喜頷之 中夜其妻夢間見師入其寢 失聲曰 此不是和尙來處 功甫撼而問之 妻詳以告 呼燈取書示之 相笑不已 遂孕及生 乃名宣老 期年記問如昔 至三歲 白雲端禪師抵其家 始見之曰 吾姪來也 雲曰 與和尙相別幾年 宣倒指曰 四年矣蓋與相別一年方死 雲曰 甚處相別 曰 白蓮莊上 雲曰 以何爲驗 曰 爹爹媽媽 明日請和尙齋 忽聞推車聲 雲問 門外是甚麽聲 宣以手作推車勢 雲曰 過後如何 曰 平地兩條溝 果六周無疾而逝

餘喘; 垂死時僅餘的喘息 二引申指餘生 殘生

 

강주(江州) 귀종(歸宗) 가선선사(可宣禪師)

한주(漢州) 사람이며 장성(壯盛)하자 승인이 되었다. 곧 출협(出峽)하여 낭야(琅邪)에게 의지했고 일어(一語)에 홀연히 투합(投合; )했고 군의(群疑)를 문득 쉬었다. 낭야가 인가했고 오래지 않아(未幾) 분좌(分座)하게 했다. 정공거사(淨空居士) 곽공보(郭功甫; 郭祥正功甫白雲守端法嗣)가 문에 이르러 문도(問道)했고 더불어 후(; 厚善이니 두터운 친분으로 잘 지냄)했다. 및 스님이 귀종(歸宗)을 영도(領導; )했고 당시에 공보(功甫)는 남창위(南昌尉)를 담임(擔任)했다. 갑자기() 군수(郡守), 스님이 예()하지 않음에 성내어() 탄핵(彈劾; )이 심했다. 드디어 글을 지어 공보(功甫)에게 기탁해 가로되 모()가 세연(世緣)이 아직() 6년이 있건만 주주(州主)가 억핍(抑逼)함을 어찌하리오. 마땅히 여천(餘喘; 餘生)을 버리고 공()의 집에 탁생(託生)할까 하니 현조(見阻; 막음을 보이다)가 없기를 바랍니다. 공보가 글을 열람하고 경희(驚喜)했고 또() 고개를 끄덕였다(頷之). 중야(中夜)에 그 처()가 몽간(夢間)에 스님이 그 침실(寢室; )에 들어옴을 보았다. 실성(失聲)하며 가로되 여기는 이 화상이 올 곳이 아닙니다. 공보가 흔들어() 그것을 물었고 처가 상세히 고했다. ()을 부르고 글을 취해 그에게 보이매 서로 웃으며 말지 않았다. 드디어 잉태했고 태어남에 이르러서는 이에 선로(宣老)라고 이름했다. 기년(期年; 1)에 기억하고 묻는 것이 옛과 같았다. 3세에 이르자 백운단(白雲端; 白雲守端) 선사가 그 집에 다다랐다. 처음 그를 보자 가로되 나의 사질(師姪; )이 왔구나. 운왈(雲曰) 화상과 서로 헤어진 지가 몇 년인가. ()이 손가락을 꼽더니(倒指) 가로되 4년이구나대개 더불어 相別한 지 1년 만에 바야흐로 죽었다. 운왈(雲曰) 어느 곳에서 상별(相別)했는가. 가로되 백련장상(白蓮莊上)이다. 운왈(雲曰) 무엇으로써 증험(證驗)하겠는가. 가로되 다다마마(爹爹媽媽; 는 아버지. 는 어머니. 곧 아빠 아빠 엄마 엄마). 다음날에 화상(和尙)을 청해 재()하는데 홀연히 수레를 미는 소리가 들렸다. 백운이 묻되 문밖에 이 무슨 소리인가. ()이 손으로써 수레를 미는 자세를 지었다. 운왈(雲曰) 과후(過後)에 어떤가. 가로되 평지에 양조구(兩條溝; 두 가닥의 구덩이). 과연 6()에 질병 없이 서거했다.

餘喘; 1. 수사(垂死; 죽을 즈음) 시 겨우 남은 천식(喘息). 2. 인신(引申; 轉義)하여 여생(餘生)ㆍ잔생(殘生)을 가리킴.

 

秀州長水子璿講師

郡之嘉興人也 自落髮誦楞嚴不輟 從洪敏法師講至動靜二相 了然不生 有省 謂敏曰 敲空擊木木一作竹 尙落筌蹄 擧目揚眉 已成擬議 去此二途 方契斯旨 敏拊而證之 然欲探禪源 罔知攸往 聞琅邪道重當世 卽趨其席 値上堂次 出問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琅邪憑陵答曰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師領悟 禮謝曰 願侍巾甁 琅邪謂曰 汝宗不振久矣 宜厲志扶持 報佛恩德 勿以殊宗爲介也 乃如敎再拜以辭 後住長水 承稟日顧衆曰 道非言象得 禪非擬議知 會意通宗 曾無別致 由是二宗仰之 甞疏楞嚴等經 盛行於世

淸淨本然; 首楞嚴經四 富樓那白佛言 世尊若復世間一切根塵陰處界等 皆如來藏 淸淨本然 云何忽生山河大地 諸有爲相次第遷流 終而復始

巾甁; 指僧徒侍奉住持禪師 按大型禪院侍者有多人 其中管理禪師巾布淨甁者 稱爲巾甁侍者 因以巾甁代指侍奉

厲志; 激勵意志 磨練意志

 

수주(秀州) 장수(長水) 자선강사(子璿講師)

()의 가흥(嘉興) 사람이다. 낙발(落髮)함으로부터 릉엄(楞嚴)을 외워 그치지() 않았다. 홍민법사(洪敏法師)의 강()으로 좇아 동정(動靜) 이상(二相)이 요연(了然)히 불생(不生)한다에 이르러 성찰이 있었다. 홍민에게 일러 가로되 고공격목(敲空擊木)一本으로 지었다하여도 오히려 전제(筌蹄; 통발과 올무)에 떨어지고 거목양미(擧目揚眉)하여도 이미 의의(擬議)를 이루나니 이 이도(二途)를 떠나야 바야흐로 사지(斯旨)에 계합합니다. 홍민이 어루만지며() 인증(認證)했다. 그러나 선원(禪源)을 탐지(探知; )하고 싶었으나 가는 바(攸往)를 알지 못했다(罔知). 낭야()의 도가 당세(當世)막중(莫重; )하다 함을 듣고 곧 그 법석(法席)으로 달려갔는데 상당(上堂)을 만난() 차라, 나가서 묻되 청정본연(淸淨本然)이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겨났습니까. 낭야가 빙릉(憑陵; 憑借의 뜻. 勇暴貌)하여 답해 가로되 청정본연이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겨났는가. 스님이 영오(領悟)했다. 예사(禮謝)하며 가로되 원컨대 건병(巾甁)으로 시봉하겠습니다. 낭야가 일러 가로되 너희 종(; 敎宗을 가리킴)이 부진(不振)한 지 오래되었다. 의당 뜻을 갈아(厲志) 부지(扶持)하여 부처의 은덕을 갚을지니 수종(殊宗)으로써 개의(介意; )하지 말아라. 이에 가르침과 같이 재배(再拜)하고 고별했고 후에 장수(長水)에 거주했다. 승품일(承稟日; 주지직을 받들던 날)에 대중을 돌아보고 가로되 도()는 언상(言象)으로 얻는 게 아니며 선()은 의의(擬議; 헤아려 의논함)하여 알 게 아니다. 뜻을 모아 종()을 통하면 일찍이 별다른 이치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이종(二宗. 禪敎二宗)이 그를 숭앙(崇仰)했다. 일찍이 릉엄(楞嚴) 등의 경을 소()했는데 세상에 성행(盛行)했다.

淸淨本然; 수릉엄경4. 부루나가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세간의 일체의 근진음처계(根塵陰處界) 등이 다 여래장(如來藏)이라면 청정본연(淸淨本然)이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기(生起)했으며 모든 유위상(有爲相)이 차제로 천류(遷流)하면서 마치면 다시 시작합니까.

巾甁; 승도(僧徒)가 주지선사를 시봉함을 가리킴. 안험컨대 대형 선원엔 시자가 여러 사람 있으며 그 중에 선사의 건포(巾布; 수건을 가리킴)와 정병(淨甁)을 관리하는 자를 일컬어 건병시자라 함. 인하여 건병으로써 시봉을 대신해 가리킴.

厲志; 의지(意志)를 격려(激勵). 의지를 마련(磨練).

 

大愚芝禪師法嗣

南嶽雲峯文悅禪師

南昌徐氏子 初造大愚 聞示衆曰 大家相聚喫莖虀 若喚作一莖虀 入地獄如箭射 便下座 師大駭 夜造方丈 愚問 來何所求 師曰 求心法 愚曰 法輪未轉 食輪先轉 後生趂色力健 何不爲衆乞食 我忍飢不暇 何暇爲汝說禪乎 師不敢違 未幾愚移翠巖 師納疏罷 復過翠巖求指示 巖曰 佛法未到爛却 雪寒宜爲衆乞炭 師亦奉命 能事罷復造方丈 巖曰 堂司闕人 今以煩汝 師受之不樂 恨巖不去心 地坐後架 桶箍忽散 自架墮落 師忽然開悟 頓見巖用處 走搭伽棃 上寢堂 巖迎笑曰 維那且喜太事了畢 師再拜 不及吐一辭而去 服勤八年

堂司; 禪林六知事之一 又作維那 負責僧堂指導之僧 維那之居室 稱爲維那寮 亦稱堂司 維那之下 掌諸雜役之事 稱爲堂司行者 略稱堂行 又戒臘牌乃記載僧衆戒臘 堂司戒臘之牌 稱堂司牌 [百丈淸規四堂司特爲新舊侍者茶湯條 禪苑淸規一掛搭條 象器箋職位類]

 

남악(南嶽) 운봉문열(雲峯文悅) 선사

남창(南昌) 서씨(徐氏)의 아들이다. 처음 대우(大愚; 守芝汾陽善昭法嗣)에 나아가서 시중(示衆)함을 들었는데 가로되 여러분(大家)이 서로 모여 경제(莖齏; 나물과 양념)를 먹거니와 만약 일경제(一莖齏)라고 불러 짓는다면 지옥에 들어가기가 화살을 쏜 듯할 것이다. 바로 하좌(下座)했다. 스님이 크게 놀라 밤에 방장(方丈)으로 나아가니 대우가 묻되 와서 무엇을 구하는 바인가. 사왈 심법(心法)을 구합니다. 우왈(愚曰) 법륜이 돌지 아니하여서 식륜(食輪)이 먼저 도나니 후생(後生; 후배)이 색신(色身)을 쫓아 힘이 강건(强健; )하거늘 왜 대중을 위해 걸식(乞食)하지 않는가. 나는 배고픔을 참기에도 여가(餘暇)가 없거늘 무슨 여가에 너를 위해 선()을 설하랴. 스님이 감히 위배(違背)하지 못했다. 얼마되지 않아 대우가 취암(翠巖)으로 이주(移駐)했다. 스님이 납소(納疏)를 마치자 다시 취암에 이르러() 지시를 구하자 취암(翠巖; 守芝)이 가로되 불법이 썩어 문드러져버림에 이르지 않았다. 눈 오고 추우니 마땅히 대중을 위해 걸탄(乞炭)해야 하리라. 스님이 또 봉명(奉命)하고 능히 일을 마치자 다시 방장으로 나아가자 취암이 가로되 당사(堂司)에 사람이 모자라니() 여금(如今)에 너를 번거롭게 해야 겠다(維那職을 맡아 달라는 말). 스님이 그것을 용수(容受)하긴 했으나 즐겁지 않았으며 취암을 한()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가(後架; 의 뜻)의 땅에 앉았는데 통의 테(桶箍)가 홀연히 파산(破散)하여 시렁으로부터 떨어지자(墮落) 스님이 홀연히 개오(開悟)했고 문득 취암의 용처(用處)를 보았다. 달려가 가리(伽棃; 僧伽棃; 三衣의 하나. 大衣)를 걸치고 침당(寢堂)에 오르니 취암이 맞이해 웃으며 가로되 유나(維那), 또한 기쁘구나, 태사(太事)를 마쳤도다(了畢). 스님이 재배(再拜)했고 한 말씀도 언급해 토로(吐露)하지 않고 갔는데 8년을 복근(服勤)했다.

堂司; 선림 6지사의 하나. 또 유나로 지음. 승당에서 지도의 책무를 진 승인. 유나의 거실을 일컬어 유나료라 하고 또 당사(堂司)로 일컬음. 유나의 아래 여러 잡역의 일을 관장하는 이를 일컬어 당사행자라 하며 약칭이 당행임. 또 계랍패에 곧 승중의 계랍을 기재한 당사 계랍의 패를 당사패로 일컬음 [백장청규4당사특위신구시자다탕조. 선원청규1괘탑조. 상기전직위류].

 

後出世翠巖 時首座領衆出迎 問曰 德山宗乘卽不問 如何是臨濟大用 師曰 你甚處去來 座擬議 師便掌 座擬對 師喝曰 領衆歸去 自是一衆畏服 僧問 如何是道 師曰 路不拾遺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草賊大敗 僧禮拜 師噓一聲 問 萬法歸一 一歸何所 師曰 黃河九曲 曰 如何是第一句 師曰 垂手過膝 曰 如何是第二句 師曰 萬里崖州 曰 如何是第三句 師曰 糞箕掃帚 問 如何是深山巖崖佛法 師曰 猢猻倒上樹 問 如何是衲衣下事 師曰 皮裏骨 問 不涉廉纖 請師速道 師曰 須彌山 問 如何是淸淨法身 師曰 柴場荻草

路不拾遺; 路上不拾取他人的遺失物 形容社會風氣好 孔子家語一相魯篇曰 孔子初仕爲中都宰 …… 路無拾遺 器不彫僞

糞箕; 盛垃圾穢物的器具 形狀像簸箕

廉纖; 卽綿密而微細之義 意卽師家接化學人之方法 親切而微細綿密

 

후에 취암(翠巖)에서 출세했다. 당시에 수좌가 대중을 거느리고 출영(出迎)했다가 물어 가로되 덕산의 종승(宗乘)은 곧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이 임제의 대용(大用)입니까. 사왈 네가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甚處去來). 수좌가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장(; 손바닥으로 침)했다. 수좌가 대답하려고 하자 스님이 할()하며 가로되 대중을 거느리고 돌아가거라. 이로부터 일중(一衆)이 외복(畏服)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길에서 유실물을 줍지 않는다(路不拾遺).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초적(草賊)이 대패(大敗)했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허()를 일성(一聲)했다. 묻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거니와(萬法歸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황화가 아홉 굽이다(黃河九曲). 가로되 무엇이 이 제1구입니까. 사왈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난다(垂手過膝). 가로되 무엇이 이 제2구입니까. 사왈 만리애주(萬里崖州). 가로되 무엇이 이 제3구입니까. 사왈 분기(糞箕)와 소추(掃帚). 묻되 무엇이 이 심산암애(深山巖崖)의 불법입니까. 사왈 호손(猢猻)이 거꾸로 나무에 오른다. 묻되 무엇이 이 납의하사(衲衣下事)입니까. 사왈 살가죽 속의 뼈다(皮裏骨). 묻되 염섬(廉纖)에 건너지 않고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십시오. 사왈 수미산이다. 묻되 무엇이 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사왈 시장(柴場)의 적초(荻草; 은 물억새. ).

路不拾遺; 노상에서 타인의 유실물을 습취하지 않음이니 사회의 풍기가 아름다움을 형용. 공자가어1 상로편(相魯篇)에 가로되 공자가 처음 벼슬하여 중도재(中都宰)가 되었다 …… 길에서는 습유함이 없었고(路無拾遺) 용기(容器)는 조위(彫僞)가 없었다.

糞箕; 날급(垃圾; 쓰레기)이나 더러운 물건을 담는 기구. 형상이 파기(簸箕; )를 닮았음.

廉纖; 곧 면밀하여 미세함의 뜻. 뜻으로는 곧 사가(師家)가 학인을 접화(接化)하는 방법이 친절하면서도 미세하고 면밀함임.

 

上堂 語不離窠道 焉能出葢纏 片雲橫谷口 迷却幾人源 所以道 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汝等諸人 到這裏憑何話會 良久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上堂 過去諸佛已滅 未來諸佛未生 正當今日 佛法委在翠巖 放行則隨機利物 把住則瓦解冰消 且道把住好 放行好 良久曰 咄 這野狐精 擊禪牀下座 上堂 汝等諸人 與麽上來 大似刺腦入膠盆 與麽下去 也是平地喫交 直饒不來不去 朝打三千暮打八百

窠道; 窠巢與道路 喩指形式規矩等束縛

刺腦入膠盆; 把腦鑽入膠水盆裏 喩指糊塗愚癡

平地喫交; 又作平地上喫交 謂平白無故地摔跤 譏刺禪人做作多事 其施爲作略不契禪法 徒勞且有害 喫交 跌倒也 交 脚脛相交 說文 交 交脛也

朝打三千暮打八百; 是禪師對于僧徒參學失誤的斥責

 

상당(上堂) 언어가 과도(窠道)를 여의지 못하면 어찌() 능히 개전(葢纏; 번뇌)을 벗어나겠는가. 편운(片雲)이 곡구(谷口; 골의 입구)에 가로놓이매 몇 사람의 근원을 혼미하게 해버렸는가. 소이로 말하되 언()은 전사(展事)함이 없고 어()는 투기()하지 않나니 승언자(承言者)는 상()하고 체구자(滯句者)는 미()한다. 너희 등 제인이 이 속에 이르러 무엇에 의빙하여 화회(話會)하겠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과거제불은 이미 멸()했고 미래제불은 생()하지 않았다. 바로() 금일에 당해서 불법이 취암(翠巖)에게 맡겨져 있다(委在). 방행(放行)하면 곧 수기이물(隨機利物; 근기 따라 사람을 이롭게 함)하고 파주(把住)하면 곧 와해빙소(瓦解冰消). 그래 말하라, 파주가 좋으냐, 방행이 좋으냐. 양구하고 가로되 돌(), 이 야호정(野狐精).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너희 등 제인이 이렇게(與麽) 올라옴은 아교 동이에 뇌를 처넣음(刺腦入膠盆)과 매우 흡사하고 이렇게 내려감은 또한 이 평지에서 끽교(平地喫交)함이다. 직요(直饒; 가령) 오지 않고 가지 않더라도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다(朝打三千暮打八百).

窠道; 과소(窠巢; 둥지)와 도로. 형식과 규구 등의 속박을 비유로 가리킴.

刺腦入膠盆; 뇌를 잡아 교수분(膠水盆; 아교 동이) 속에 처넣음이니 호도(糊塗)하고 우치함을 비유로 가리킴.

平地喫交; 또 평지상끽교(平地上喫交)로 지음. 이르자면 평백무고지(平白無故地; 조금의 이유도 없음. 공연히)에서 솔교(摔跤; 넘어지다. 씨름)함이니 선인(禪人)이 많은 일을 지어 그 시위와 작략이 선법에 맞지 않으며 헛수고에 또 해가 있음을 기자(譏刺; 헐뜯고 비꼼). 끽교(喫交)는 미끄러져 거꾸러짐임. ()는 다리 정강이가 서로 꼬임임. 설문(說文) () 정강이가 꼬임이다.

朝打三千暮打八百; 이것은 이 선사가 승도(僧徒)의 참학의 실오(失誤)에 대한 척책(斥責; 責罵).

 

上堂 道遠乎哉 觸事而眞 聖遠乎哉 體之則神 所以娑婆世界 以音聲爲佛事 香積世界 以香飯爲佛事 翠巖這裏 祇於出入息內供養承事 過現未來 塵沙諸佛 無一空過者 過現未來 塵沙諸佛 是翠巖侍者 無一不到 如一不到 三十拄杖 諸上座還會麽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上堂 有情之本 依智海以爲源 含識之流 總法身而爲體 祇爲情生智隔 想變體殊 達本情忘 知心體合 諸禪德會麽 古佛與露柱相交 佛殿與燈籠鬬額 若也不會 單重交折 上堂 竿木隨身 逢場作戲 然雖如是 一手不獨拍 衆中莫有作家禪客 本分衲僧 出來共相唱和 有麽 時有僧出禮拜 師曰 依稀似曲纔堪聽 又被風吹別調中 便下座

香積世界; 東方香積世界阿閦佛 南方歡喜世界寶相佛 西方安樂世界無量壽佛 北方蓮華莊嚴世界微妙聲佛之稱 又香積 衆香世界之佛名 玄應音義三曰 香積 梵言乾陀羅耶 維摩經香積佛品曰 上方界分 過四十二恒河沙佛土 有國名衆香 佛號香積 今現在 其國香氣 比於十方諸佛世界人天之香 最爲第一 翻譯名義集三 乾陀羅耶 正言健達 此云香

 

상당(上堂) 도가 멀다고 하는가/ 일에 부딪치매 진()이며/ ()이 멀다고 하는가/ 이를 체득하면 곧 신()이다(肇論의 글). 소이로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불사로 삼고 향적세계(香積世界)는 향반(香飯)으로써 불사로 삼는다. 취암(翠巖)의 저리(這裏)는 다만 출입식(出入息) 안에서 공양하고 승사(承事)하나니 과현미래(過現未來)의 진사제불(塵沙諸佛)에 하나라도 공과(空過; 공연히 경과)한 자가 없다. 과현미래의 진사제불이 이 취암의 시자(侍者)라서 하나라도 이르지() 않음이 없나니 하나라도 이르지 않을 것 같으면 30주장(拄杖)이다. 제상좌(諸上座)는 도리어 아느냐. 이 심심(深心)을 가지고 진찰(塵刹)을 받들어야 이를 곧 이름하여 불은에 보답함이다. 상당(上堂) 유정(有情)의 근본은 지해(智海)에 의해 원()을 삼고 함식(含識)의 무리는 법신을 총괄해 체()를 삼거니와 다만 정()이 생기기 때문에 지()가 막히고 상()이 변하므로 체()가 달라지거니와 근본을 통달하면 정이 망하고 마음임을 알면 체가 합한다(신화엄경론1의 글). 제선덕(諸禪德)이여 아느냐, 고불과 노주(露柱)가 상교(相交)하고 불전(佛殿)과 등롱(燈籠)이 투액(鬬額; 박치기)한다.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단중(單重; 單複)을 교절(交折; 교차하며 折中)하라. 상당(上堂) 간목(竿木)이 수신(隨身)하여 장소를 만나면 희롱을 짓는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일수(一手)로는 홀로 두드리지 못하나니 중중(衆中)에 작가선객(作家禪客)이나 본분납승(本分衲僧)이 있지 않느냐. 나와서 함께 서로 창화(唱和)하라. 있느냐. 때에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했다. 사왈 어슴푸시(依稀) 곡조와 같아서 겨우 들을 만하더니 또 바람 붊을 입어 별다른 곡조 가운데로다. 바로 하좌했다.

香積世界; 동방 향적세계(香積世界)는 아축불이며 남방 환희세계는 보상불이며 서방 안락세계는 무량수불이며 북방 연화장엄세계는 미묘성불이라 일컬음. 또 향적은 중향세계(衆香世界)의 불타의 이름이니 현응음의3에 가로되 향적은 범언(梵言)으로 건타라야(乾陀羅耶). 유마경 향적불품에 가로되 상방의 계분(界分;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3계임. 의 뜻이 되므로 심상에 말하여 계분이라 함)에서 42항하사 불토를 지나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중향(衆香)이며 불호는 향적이다. 지금 현재한다. 그 나라의 향기는 시방의 제불세계의 인천의 향에 비하면 가장 제일이 된다. 번역명의집3. 건다라야(乾陀羅耶) 바른 말로는 건달(健達)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향()이다.

 

上堂 天明平旦 萬事成辦 北俱盧洲長粳米飯 下座 上堂 有佛處不得住 無佛處急走過 你等諸人 橫擔拄杖 向甚麽處行脚 良久曰 東勝身洲持鉢 西瞿耶尼喫飯 上堂 假使心通無量時 歷劫何曾異今日 且道今日事作麽生 良久曰 烏龜鑽破壁 上堂 見聞覺知無障礙 聲香味觸常三昧 衲僧道 會也 山是山 水是水 飢來喫飯 困來打睡 忽然須彌山𨁝跳入你鼻孔裏 摩竭魚穿你眼睛中 作麽生商量 良久曰 參堂去

成辦; 成功 完成 辨 辯 辦 竝通

東勝身洲; 四洲之一 舊稱東弗婆提 東毘提訶 或東弗于逮 以其身形殊勝 故稱勝身 地形如半月 人面亦如半月 [俱舍論光記八]

西瞿耶尼; 佛經中所稱四大洲之一 位于須彌山西方鹹海中 翻譯名義集三 西瞿耶尼 此云牛貨 亦翻取與 藏疏云 以彼多牛以牛爲貨 俱舍鈔云 劫初時 因高樹下有一寶牛 爲貨易故 西域記云 西瞿陀尼洲 舊曰瞿那尼 又云劬伽尼訛 俱舍云 西牛貨洲壽五百歲 相圓無缺 長十六肘

摩竭魚; 又作摩伽羅魚 麽迦羅魚 此云大體魚 鯨魚 巨鼇 爲經論中多處記載之大魚 或爲假想中之魚 印度神話中 以之爲水神之坐騎 愛神所執之旗上亦附有摩竭魚圖 [舊華嚴經五十九 大智度論七 十住毘婆沙論七 慧苑音義下 翻譯名義集六] 祖庭事苑五 摩竭 此云大身 般若論云 昔有商人入海 見一白山 有三日出 水入赤海 船師曰 此摩竭魚也 白山 身也 兩眼如日 與日爲三也 水入其中如赤海也 應高聲念佛 商人命侶 共擧佛聲 魚卽隱也 以魚昔爲比丘 破戒爲魚 心尙慈故(此話出雜譬喩經)

 

상당(上堂) 천명(天明)과 평단(平旦; 淸晨)에 만사를 성판(成辦)했나니 북구로주(北俱盧洲)길쭉한 갱미(粳米; 메벼에서 나온 차지지 않은 쌀)의 밥이다. 하좌했다. 상당(上堂) 부처가 있는 곳엔 머묾을 얻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은 급히 달려 지나가라. 너희 등 제인이 주장자를 가로 메고 어느 곳을 향해 행각하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동승신주(東勝身洲)에서 지발(持鉢; 托鉢)하고 서구야니(西瞿耶尼)에서 끽반(喫飯)한다. 상당(上堂) 가사(假使) 마음이 무량시(無量時)와 통하더라도 역겁(歷劫)이 어찌 일찍이 금일과 다르겠는가. 그래 말하라, 금일사(今日事)가 어떠한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오귀(烏龜)가 벽을 뚫어 깨뜨린다(鑽破). 상당(上堂) 견문각지(見聞覺知)하매 장애가 없고 성향미촉(聲香味觸)이 늘 삼매다. 납승이 말하되 알았나니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며 배고프면 끽반(喫飯)하고 피곤하면 타수(打睡; 睡眠)한다. 홀연히 수미산이 펄쩍 뛰어(𨁝跳) 너희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마갈어(摩竭魚)가 너희 눈동자 가운데를 뚫는다(穿). 어떻게 상량(商量)하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成辦; 성공. 완성. ()ㆍ변()ㆍ판()은 모두 통함.

東勝身洲; 4()의 하나. 구칭은 동불바제ㆍ동비제하 혹 동불우체니 그 신형(身形)이 수승하기 때문에 고로 승신(勝身)으로 일컬음. 땅의 형상은 반월과 같고 사람의 얼굴도 또한 반월과 같음 [구사론광기8].

西瞿耶尼; 불경 중에서 일컫는 바 4대주(大洲)의 하나. 수미산 서방 함해(鹹海) 중에 위치함. 번역명의집3. 서구야니(西瞿耶尼) 여기에선 이르되 우화(牛貨)니 또한 취여(取與)로 번역한다. 장소(藏疏)에 이르되 그곳엔 소가 많아 소를 화폐로 삼는다. 구사초(俱舍鈔)에 이르되 겁초 시 높은 나무 아래 1보우(寶牛)가 있음으로 인해 화역(貨易; 交易)한 연고다. 서역기에 이르되 서구다니주(西瞿陀尼洲; godānīya) 구역에 가로되 구나니(瞿那尼) 또 이르되 구가니(劬伽尼)는 잘못이다. 구사에 이르되 서우화주(西牛貨洲)는 수명이 5백 세며 형상이 둥글고 무결하며 신장은 16().

摩竭魚; 또 마가라어(摩伽羅魚; makara)ㆍ마가라어(麽迦羅魚)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대체어(大體魚)ㆍ경어(鯨魚)ㆍ거오(巨鼇)니 경론 중에 여러 곳에 기재된 대어가 됨. 혹은 가상(假想) 중의 고기가 됨. 인도의 신화 중에 이로써 수신(水神)의 좌기(坐騎)로 삼음. 애신(愛神)이 가진 바 기() 위에도 또한 마갈어도(摩竭魚圖)가 첨부되어 있음 [구화엄경59. 대지도론7. 십주비바사론7. 혜원음의하. 번역명의집6]. 조정사원5. 마갈(摩竭) 여기에선 이르되 대신(大身). 반야론에 이르되 옛적에 어떤 상인이 바다에 들어가 한 백산(白山)을 보았으며 세 개의 해가 나옴이 있었고 물이 적해(赤海)에 들어갔다. 선사(船師)가 가로되 이것은 마갈어(摩竭魚). 백산은 몸이며 양안(兩眼)이 해와 같고 해와 더불어 셋이 됨이며 물이 그 가운데 들어가매 마치 적해와 같음이다. 응당 고성으로 염불해야 한다. 상인이 벗들에게 명령해 함께 불성(佛聲)을 들자 물고기가 곧 숨었다. 물고기가 옛적에 비구가 되었는데 파계하여 물고기가 되었으므로 마음이 오히려 자비한 연고였다(이 얘기는 잡비유경에 나옴).

 

上堂 一刀兩段 未稱宗師 就下平高 固非作者 翠巖到這裏 口似匾擔 你等諸人作麽生商量 良久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上堂 若見諸相非相 卽山河大地 竝無過咎 諸上座終日著衣喫飯 未曾齩著一粒米 未曾挂著一縷絲 便能變大地作黃金 攪長河爲酥酪 然雖如是 著衣喫飯卽不無 衲僧門下汗臭氣也未夢見在 上堂 普賢行文殊智 補陀巖上淸風起 瞎驢趂隊過新羅 吉獠舌頭三千里

就下平高; 下 指第二義門 高 指向上尊貴

補陀巖; 寶陀山 又稱補陀洛山 補陀洛 此云小花樹 小白華 小樹蔓莊嚴 海島 光明 又稱布呾洛迦山 寶陀洛迦山 逋多羅山 寶陀羅山 卽在南印度秣羅矩吒國秣剌耶山之東 傳爲觀世音菩薩之住處 中有觀世音菩薩往來之石天宮 [西域記十 華嚴經疏五十七 慧琳音義四十 翻譯名義集三 祖庭事苑七]

 

상당(上堂) 일도양단(一刀兩段)하더라도 종사라고 일컫지 못하며 취하평고(就下平高)하더라도 참으로() 작자가 아니다. 취암(翠巖)이 이 속에 이르러 입이 편담과 같거늘(口似匾擔) 너희 등 제인이 어떻게 상량(商量)하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만약 제상(諸相)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산하대지가 모두() 과구(過咎)가 없나니 제상좌(諸上座)가 종일 착의끽반(著衣喫飯)해도 일찍이 한 알()의 쌀을 씹지(齩著) 않았고 일찍이 한 올()의 실을 걸치지(挂著) 않았다. 바로 능히 대지(大地)를 변화해 황금으로 만들고() 장하(長河)를 저어 소락(酥酪)을 만든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착의끽반은 곧 없지 않으나 납승문하(衲僧門下)의 땀냄새(汗臭氣)도 또한 꿈에라도 보지 못했다. 상당(上堂) 보현행(普賢行) 문수지(文殊智)/ 보타암상(補陀巖)에 청풍이 일어난다/ 눈먼 나귀가 무리를 쫓아(趂隊) 신라를 지나가고/ 길료설두(吉獠舌頭)3천 리다.

就下平高; ()는 제2의문(第二義門)을 가리키며 고()는 향상존귀(向上尊貴)를 가리킴.

補陀巖; 보타산(寶陀山)이니 또 명칭이 보타락산(補陀洛山). 보타락(補陀洛; Pota laka Potala, Potaraka)은 여기에선 이르되 소화수(小花樹)ㆍ소백화(小白華)ㆍ소수만장엄(小樹蔓莊嚴)ㆍ해도(海島)ㆍ광명임. 또 명칭이 포달락가산(布呾洛迦山)ㆍ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ㆍ포다라산(逋多羅山)ㆍ보타라산(寶陀羅山)이니 곧 남인도 말라구타국(秣羅矩吒國) 말랄야산(秣剌耶山; Malaya)의 동쪽에 있으며 전하기를 관세음보살의 주처(住處)라 함. 가운데 관세음보살이 왕래하는 석천궁(石天宮)이 있음 [서역기10. 화엄경소57. 혜림음의40. 번역명의집3. 조정사원7].

 

上堂 拈起拄杖曰 掌鉢盂向香積世界 爲甚麽出身無路 挑日月於拄杖頭上 爲甚麽有眼如盲 直得風行草偃 響順聲和 無纖芥可留 猶是交爭底法 作麽生是不交爭底法 卓拄杖下座 上堂 臨濟先鋒 放過一著 德山後令 且在一邊 獨露無私一句作麽生道 良久曰 堪嗟楚下鍾離昧音抹 以拂子擊禪牀 下座 上堂 敎中道 種種取捨 皆是輪回 未出輪回而辯圓覺 彼圓覺性卽同流轉 若免輪回 無有是處 你等諸人 到這裏且作麽生辯圓覺 良久曰 荷葉團團團似鏡 菱角尖尖尖似錐 以拂擊禪牀 上堂 古人道 山河石壁 不礙眼光 師曰 作麽生是眼 拈拄杖打禪牀一下曰 須彌山百雜碎卽不問 你且道娑竭羅龍王年多少 俗士問 如何是佛 師曰 著衣喫飯量家道 曰 恁麽則退身三步 叉手當胷去也 師曰 醉後添杯不如無

風行草偃; 論語顔淵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鍾離眜; (-201) 楚漢之際項羽手下將領 項羽敗亡後 最後鍾離眜被逼自刎 [百度百科]

菱角; 菱科菱屬植物 是一種水生植物菱的果實

 

상당(上堂)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발우를 장악(掌握; )하여 향적세계(香積世界)로 향하거늘 무엇 때문에(爲甚麽) 출신(出身)할 길이 없으며 주장두상(拄杖頭上)에 일월(日月)을 가졌거늘() 무엇 때문에 눈이 있으나 맹인과 같은가. 풍행초언(風行草偃)하고 향순성화(響順聲和; 음향이 순하고 소리가 화함)함을 바로 얻어 섬개(纖芥)도 가히 머묾이 없더라도 오히려 이는 교쟁(交爭)하는 법이다. 무엇이(作麽生) 이 교쟁하지 않는 법인가.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임제의 선봉(先鋒)은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고 덕산의 후령(後令)은 다만() 일변(一邊)에 있다. 독로하여 무사(無私)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가히 슬프구나(堪嗟), 초하(楚下)의 종리매(鍾離昧)音抹,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 원각경) 중에 말하되 갖가지 취사(取捨)가 모두 이 윤회(輪回)니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圓覺)을 분변(分辨; )한다면 그 원각성(圓覺性)이 곧 유전(流轉)함과 같아서 만약 윤회를 면하려고 한다면 옳은 곳이 있지 않다. 너희 등 제인이 이 속에 이르러 또() 어떻게 원각을 분변하겠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하엽(荷葉; 의 잎)은 둥글둥글 둥글기가 거울과 같고 능각(菱角)은 뾰족뾰족 뾰족하기가 송곳과 같다. 불자로써 선상을 쳤다. 상당(上堂) 고인이 말하되 산하와 석벽이 안광(眼光)을 장애하지 않는다. 사왈 무엇이(作麽生) 이 안()인가. 주장자를 집어 선상을 한 번 치고 가로되 수미산이 백잡쇄(百雜碎)됨은 곧 묻지 않거니와 너희가 그래 말하라, 사갈라용왕(娑竭羅龍王)의 나이가 얼마인가. 속사(俗士)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착의끽반(著衣喫飯)하면서 가도(家道)를 헤아린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3() 퇴신(退身)하고 차수(叉手)하여 당흉(當胷)하고 가겠습니다. 사왈 취한 후에 첨배(添杯)함은 없음만 같지 못하다.

風行草偃; 논어 안연. 군자는 덕풍(德風)이며 소인(小人)은 덕초(德草)니 풀 위에 바람 불면 반드시 눕는다.

鍾離眜; (-201) 초한지제(楚漢之際)에 항우 수하(手下)의 장령(將領; 將軍). 항우가 패망한 후 최후에 종리매가 핍박을 입어 자문(自刎)[백도백과].

菱角; 능과(菱科) 능속(菱屬)의 식물. 이는 일종의 수생식물(水生植物) (; 마름)의 과실(果實)

 

小參 擧百丈歲夜示衆曰 你這一隊後生 經律論固是不知 入衆參禪禪又不會 臘月三十日 且作麽生折合去 師曰 灼然諸禪德 去聖時遙 人心澹泊 看却今時叢林 更是不得所在之處 或聚徒三百五百 浩浩地祇以飯食豐濃寮舍穩便爲旺化 中間孜孜 爲道者無一人 設有十箇五箇 走上走下 半靑半黃 會卽總道我會 各各自謂握靈蛇之珠 孰肯知非 及乎挨拶鞭逼將來 直是萬中無一 苦哉苦哉 所謂般若叢林歲歲凋 無明荒草年年長 就中今時後生 纔入衆來 便自端然拱手 受他別人供養 到處菜不擇一莖 柴不搬一束 十指不沾水 百事不干懷 雖則一期快意 爭奈三塗累身 豈不見敎中道 寧以熱鐵纏身 不受信心人衣 寧以洋銅灌口 不受信心人食 上座若也是去 直饒變大地作黃金 攪長河爲酥酪 供養上座 未爲分外 若也未是 至於滴水寸絲 便須披毛戴角 牽犂拽耙 償他始得 不見祖師道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此是決定底事 終不虛也 諸上座 光陰可惜 時不待人 莫待一朝眼光落地 緇田無一簣之功 鐵圍陷百刑之痛 莫言不道 珍重

歲夜; 除夜 除夕

入衆; 一僧人出衆發言之後 退入僧衆之列 二進入叢林 與僧衆共同參禪學道 此指二

臘月三十日; 本義爲十二月最後一日 禪家多用來喩指人生終了 死期到來

折合; 一了結 結果 畢竟 二應對 對處 此指二

浩浩; 廣闊宏大 水勢很大

靈蛇之珠; 謂夜光珠 祖庭事苑三 夜光 史記 隋侯祝元暢 因之齊 道上見一蛇將死 遂以水洒摩 傅之神藥而去 忽一夜 中庭皎然有光 意謂有賊 遂案劍視之 廼見一蛇啣珠在地而往 故知前蛇之感報也 以珠光能照夜 故曰夜光

眼光落地; 指臨終時也

緇田; 緇者緇衣 僧衣也 緇田猶言僧園

 

소참(小參) ()하다. 백장(百丈)이 세야(歲夜)에 시중(示衆)해 가로되 너희 이 일대(一隊)의 후생(後生; 후배)이 경률론(經律論)은 참으로() 이 알지() 못하고 입중(入衆)하여 참선(參禪)하지만 선()을 또 알지() 못하니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에 또() 어떻게(作麽生) 절합(折合)해 가겠는가. 사왈 작연(灼然)하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성인의 시절과 떨어짐이 멀고 인심이 담박(澹泊)하여 금시의 총림을 보매(看却) 다시 이, 소재지처(所在之處)를 얻지 못하나니 혹 3, 5백 취도(聚徒)하여 호호지(浩浩; 는 조사) 다만 반식(飯食)이 풍농(豐濃)하고 요사(寮舍)가 온편(穩便)함을 왕화(旺化; 旺盛한 교화)로 삼고 중간은 자자(孜孜; 勤勉)하면서 도를 하는 자는 1인도 없다. 설사 10개나 5개가 있더라도 주상주하(走上走下)하고 반청반황(半靑半黃)이니 안 즉 모두() 말하되 내가 안다 하면서 각각 스스로 이르기를 영사지주(靈蛇之珠)를 움켜쥐었다 하거늘 누가() 수긍하며 그른 줄 알겠는가. 애찰(挨拶)하고 편핍(鞭逼)하여 가지고 옴에 이르러선(及乎) 바로 이 만중무일(萬中無一)이니 고재(苦哉)로다, 고재(苦哉)로다. 이른 바 반야의 총림은 세세(歲歲)에 시들고 무명의 황초(荒草)는 연년(年年)에 자란다. 취중(就中; 그 중)에 금시(今時)의 후생(後生)은 겨우 입중하면(入衆來) 바로(便) 스스로 단연(端然)히 공수(拱手)하여 저 다른 사람(別人)의 공양을 받으면서 도처(到處)에 나물()은 한 줄기()도 가리지() 않고 섶은 한 묶음()도 운반하지 않고 십지(十指)가 물에 젖지() 않고 백사(百事)가 회포(懷抱; )에 상간(相干; )하지 않나니 비록 곧 일기(一期)의 쾌의(快意)지만 삼도(三塗)가 몸을 묶음()을 어찌하겠는가. 어찌 보지 못하는가, 교중(敎中)에 말하되 차라리() 열철(熱鐵)로써 몸을 얽더라도() 신심인(信心人)의 옷을 받지 않으며 차라리 양동(洋銅)으로써 입에 붓더라도 신심인의 밥을 받지 않는다. 상좌가 만약에 옳다면(是去) 직요(直饒; 가령) 대지(大地)를 변화해 황금으로 만들고 장하(長河)를 저어() 소락(酥酪)으로 삼아서 상좌에게 공양하더라도 분외(分外; 分限 )가 되지 않으려니와 만약에 옳지 못하다면 적수(滴水)와 촌사(寸絲)에 이르기까지 바로 모름지기 피모대각(披毛戴角)하고 견리예파(牽犂拽耙)하여 그에게 갚아야() 비로소 옳다. 보지 못하는가, 조사(祖師; 15迦那提婆)가 말하되 입도(入道)하여 도리를 통하지 못하면 복신(復身; 몸을 회복)하여 신시(信施)를 상환(償還)한다. 이것은 이 결정의 일(決定底事)이니 마침내 헛되지 않다. 제상좌여 광음(光陰)을 가히 아낄지니 시절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일조(一朝)에 안광낙지(眼光落地)함을 기다리지 말지니 치전(緇田)한 삼태기()의 공이 없어 철위(鐵圍)에서 온갖 형벌의 괴로움에 빠진다.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라(莫言不道). 진중(珍重).

歲夜; 제야(除夜; 섣달 그믐날 밤). 제석(除夕).

入衆; 1. 승인이 대중에서 나와 발언한 후 승중의 대열로 퇴입(退入). 2. 총림에 진입하여 승중과 공동으로 참선학도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臘月三十日; 본래의 뜻은 12월 최후의 1일이 됨. 선가에선 다분히 써서 인생의 종료ㆍ사기(死期)의 도래를 비유로 가리킴.

折合; 1. 요결(了結). 결과. 필경. 2. 응대. 대처.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浩浩; 광활하고 굉대(宏大). 수세(水勢)가 매우 큼.

靈蛇之珠; 야광주를 말함. 조정사원3. 야광(夜光) 사기(史記) 수후(隋侯)인 축원창(祝元暢)이 제()로 감으로 인해 길 위에서 한 마리 뱀이 장차 죽으려 함을 보고 드디어 물로 씻고 문지르고 신약(神藥)을 붙이고 떠났다. 홀연히 어느날 밤 중정(中庭)이 교연(皎然)히 빛이 있는지라 뜻에 이르기를 도적이 있음이라 하여 드디어 검을 어루만지며 그것을 보니 이에 한 마리 뱀이 구슬을 머금었다가 땅에 두고 감을 보았으며 고로 전일의 뱀의 감보(感報)임을 알았다. 주광(珠光)이 능히 밤을 밝혔으므로 고로 가로되 야광(夜光).

眼光落地; 임종 시를 가리킴.

緇田; ()란 것은 치의(緇衣)니 승인의 옷임. 치전(緇田)은 승원(僧園)이라고 말함과 같음.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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