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2 초원(楚圓) 자명선사(慈明禪師)-혜월선사(慧月禪師)

태화당 2025. 10. 7. 11:08

五燈會元卷第十二

南嶽下十世

汾陽昭禪師法嗣

潭州石霜楚圓慈明禪師

全州李氏子 少爲書生 年二十二 依湘山隱靜寺出家 其母有賢行 使之遊方 聞汾陽道望 遂往謁焉 陽顧而默器之 經二年 未許入室 每見必罵詬 或毀詆諸方 及有所訓 皆流俗鄙事 一夕訴曰 自至法席已再夏 不蒙指示 但增世俗塵勞念 歲月飄忽 己事不明 失出家之利 語未卒 陽熟視罵曰 是惡知識 敢裨販我 怒擧杖逐之 師擬伸救 陽掩師口 乃大悟曰 是知臨濟道出常情 服役七年 辭去

書生; 儒者在學地者之稱也 生 先生之義

 

담주(潭州) 석상(石霜) 초원(楚圓) 자명선사(慈明禪師)

전주(全州) 이씨의 아들이다. 소년(少年)에 서생(書生)이 되었고 나이 22에 상산(湘山) 은정사(隱靜寺)에 의지해 출가했다. 그 모친이 현행(賢行)이 있었고 그로 하여금 유방하게 했다(使之遊方). 분양(汾陽)의 도망(道望; 禪法聲望)을 듣고 드디어 가서 알현(謁見)했다. 분양이 돌아보고 묵묵히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다. 2년이 지났으나 입실(入室)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양(每樣) 보기만 하면 반드시 욕하고 꾸짖었고 혹은 제방(諸方)을 훼저(毀詆; 헐뜯고 흉보다)했고 및 가르치는 바가 있음이 다 유속비사(流俗鄙事; 流俗凡俗)였다. 어느 날 저녁 하소연하여 가로되 스스로 법석에 이른 지 이미 재하(再夏; 二年)입니다만 지시를 입지 못하고 단지 세속의 진로념(塵勞念)만 더하였습니다. 세월이 표홀(飄忽)하거늘 자기의 일을 밝히지 못했으니 출가의 이익을 잃는가 합니다.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분양이 찬찬히 보더니(熟視) 꾸짖어() 가로되 이 악지식(惡知識)이 감히 나를 비판(裨販)하느냐. 성내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그를 쫓아내었다. 스님이 구제(救濟)를 펼려고 하자 분양이 스님의 입을 막았다. 이에 대오하고 가로되 이로 알지라 임제의 도가 상정(常情)을 초출했도다. 7년 복역(服役)하고 고별하고 떠났다.

書生; 유자(儒者)가 학지(學地)에 있는 자의 호칭임. ()은 선생(先生)의 뜻.

 

依唐明嵩禪師 嵩謂師曰 楊大年內翰知見高 入道穩實 子不可不見 師乃往見大年 年問曰 對面不相識 千里却同風 師曰 近奉山門請 年曰 眞箇脫空 師曰 前月離唐明 年曰 適來悔相問 師曰 作家 年便喝 師曰 恰是 年復喝 師以手劃一劃 年吐舌曰 眞是龍象 師曰 是何言歟 年喚客司 點茶來 元來是屋裏人 師曰 也不消得 茶罷又問 如何是上座爲人一句 師曰 切 年曰 與麽則長裙新婦拖泥走 師曰 誰得似內翰 年曰 作家 作家 師曰 放你二十棒 年拊膝曰 這裏是甚麽所在 師拍掌曰 也不得放過 年大笑 又問 記得唐明當時悟底因緣麽 師曰 唐明問首山 如何是佛法的的大意 山曰 楚王城畔 汝水東流 年曰 祇如此語 意旨如何 師曰 水上挂燈毬 年曰 與麽則孤負古人去也 師曰 內翰疑則別參 年曰 三脚蝦蟇跳上天 師曰 一任𨁝跳 年乃大笑 館於齋中 日夕質疑智證 因聞前言往行 恨見之晩

穩實; 穩當而踏實

屋裏人; 一謂人人本具之心性 蓋以家屋喩身體 主人公喩心性也 二謂參學同一師家之人 此指二

燈毬; 亦作燈球 球形的彩燈

 

당명숭(唐明嵩; 智嵩이니 首山法嗣) 선사에게 의지했다. 지숭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양대년(楊大年; 廣慧元璉法嗣) 내한(內翰)은 지견(知見)이 높고 입도(入道)가 온실(穩實)하니 자네가 보지 않음은 옳지 못하다(不可). 스님이 이에 가서 대년을 보았다. 대년이 문왈(問曰) 대면(對面)하여 서로 알지 못하지만 천 리에서 도리어 동풍(同風)입니다. 사왈 요사이 산문(山門)의 청을 받들었습니다. 년왈(年曰) 진개(眞箇)의 탈공(脫空; 虛脫하고 空虛)이로구나. 사왈 전월(前月)에 당명(唐明)을 떠났습니다. 년왈(年曰) 아까 상문(相問)한 것을 후회합니다. 사왈 작가로다. 대년이 바로 할()했다. 사왈 흡시(恰是). 대년이 다시 할했다. 스님이 손으로써 그어() 한 번 그었다. 대년이 토설(吐舌)하고 가로되 참으로 이 용상(龍象)입니다. 사왈 이 무슨 말입니까. 대년이 객사(客司)를 불러 점다(點茶)하여 오너라, 원래 이 옥리인(屋裏人)이다. 사왈 또한 소득(消得; 需要)하지 않습니다. 다파(茶罷)하자 또 묻되 무엇이 이 상좌의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절(; 懇切). 년왈(年曰) 그러하다면 곧 긴 치마의 신부(新婦)가 진흙을 끌고 달립니다. 사왈 누가 내한(內翰)과 흡사함을 얻겠습니까. 년왈(年曰) 작가(作家), 작가로다. 사왈 그대()에게 20() 놓습는다. 대년이 무릎을 두드리며() 가로되 이 속에 이 무엇이 소재(所在)합니까. 스님이 박장(拍掌)하고 가로되 또한 방과(放過)함을 얻지 못합니다. 대년이 대소(大笑)했다. 우문(又問) 당명(唐明)이 당시에 깨친 인연을 기득(記得)합니까. 사왈 당명이 수산(首山)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적적(的的)한 대의입니까. 산왈(山曰) 초왕(楚王)의 성반(城畔)에 여수(汝水)가 동류(東流)한다. 년왈(年曰) 지여(祇如) 이 말은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수상(水上)에 등구(燈毬)를 걸었습니다. 년왈(年曰) 그러하다면 곧 고인을 고부(孤負)하여 갈 것입니다. 사왈 내한(內翰)이 의심스럽다면 곧 별참(別參)하시오. 년왈 삼각(三脚)의 두꺼비가 하늘에 뛰어오릅니다. 사왈 펄쩍 뛰는 대로 일임합니다(一任𨁝跳). 대년이 이에 크게 웃었다. 집 가운데 묵게 하면서(館於齋中) 일석(日夕)으로 질의(質疑)하며 지혜를 증명했고(智證) 전언(前言)과 왕행(往行)을 들음으로 인해 상견함의 늦음을 한했다(恨見之晩).

穩實; 온당(穩當)하면서 실지(實地)를 밟음.

屋裏人; 1. 이르자면 사람마다 본래 갖춘 심성(心性)이니 대개 가옥은 신체에 비유하고 주인공은 심성에 비유함. 2. 이르자면 동일한 사가(師家)에게 참학한 사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燈毬; 또 등구(燈球)로 지음. 구형(球形)의 채등(彩燈).

 

朝中見駙馬都尉李公遵勗曰 近得一道人 眞西河師子 李曰 我以拘文 不能就謁 奈何 年默然 歸語師曰 李公佛法中人 聞道風遠至 有願見之心 政以法不得與侍從過從 師於是黎明謁李公 公閱謁使童子問曰 道得卽與上座相見 師曰 今日特來相看 又令童子曰 碑文刊白字 當道種靑松 師曰 不因今日節 餘日定難逢 童又出曰 都尉言 與麽則與上座相見去也 師曰 脚頭脚底 公乃出 坐定問曰 我聞西河有金毛獅子 是否 師曰 甚麽處得者消息 公便喝 師曰 野干鳴 公又喝 師曰 恰是 公大笑 師辭 公問 如何是上座臨行一句 師曰 好將息 公曰 何異諸方 師曰 都尉又作麽生 公曰 放上座二十棒 師曰 專爲流通 公又喝 師曰 瞎 公曰 好去 師應喏喏

過從; 指來訪 相互往來

 

조정(朝廷; ) 중에서 부마도위(駙馬都尉) 이공(李公) 준욱(遵勗; 谷隱蘊聰法嗣)을 보자 가로되 요사이 한 도인을 얻었는데 참다운 서하사자(西河師子)입니다. 이왈(李曰) 나는 문서(文書; )에 구속되어 능히 나아가 예알하지 못하니 어찌하겠습니까(奈何). 대년(大年)이 묵연했다. 돌아와 스님에게 말해 가로되 이공(李公)은 불법 중의 사람입니다. 도풍(道風)이 멀리서 이르렀다 함을 듣고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나 법으로써 정사(政事)하는지라(政以法) 시종(侍從)하거나 과종(過從)함을 얻지 못합니다. 스님이 이에 여명(黎明; 저본에 邌明으로 지었음)에 이공(李公)을 예알했다. ()이 열알(閱謁; 名帖을 열람)하고 동자를 시켜 문왈(問曰) 말함을 얻으면 곧 상좌와 상견하겠습니다. 사왈 금일 특별히 와서 상간(相看)합니다. 또 동자를 시켜 가로되 비문(碑文)에 백자(白字)를 새겼고() 당도(當道)에 청송(靑松)을 심었습니다(). 사왈 금일절(今日節)을 인하지 않는다면 여일(餘日)엔 꼭() 만나기 어렵습니다. 동자가 또 나가 가로되 도위(都尉)가 말씀하되 그러하다면 곧 상좌와 상견하겠습니다. 사왈 각두각저(脚頭脚底; 발 위와 발밑). ()이 이에 나왔다. 좌정(坐定)하자 문왈(問曰) 내가 듣기로 서하(西河)에 금모사자(金毛獅子)가 있다던데 그렇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었습니까. ()이 바로 할()했다. 사왈 야간명(野干鳴)입니다. 공이 또 할했다. 사왈 흡시(恰是). 공이 크게 웃었다. 스님이 고별하자 공이 묻되 무엇이 이 상좌의 임행(臨行)1구입니까. 사왈 좋이 다만 쉬시오(好將息). 공왈(公曰) 어찌 제방과 다르겠습니까. 사왈 도위(都尉)는 또 어떻습니까. 공왈(公曰) 상좌에게 20() 놓습니다. 사왈 오로지() 유통(流通)하겠습니다. 공이 또 할했다. 사왈 눈멀었습니까(). 공왈(公曰) 잘 가시오(好去). 스님이 응하되 낙낙(喏喏).

過從; 내방을 가리킴. 상호 왕래함.

 

自是往來楊李之門 以法爲友 久之 辭還河東 年曰 有一語寄與唐明 得麽 師曰 明月照見夜行人 年曰 却不相當 師曰 更深猶自可 午後更愁人 年曰 開寶寺前金剛 近日因甚麽汗出 師曰 知 年曰 上座臨行 豈無爲人底句 師曰 重疊關山路 年曰 與麽則隨上座去也 師噓一聲 年曰 眞師子兒 大師子吼 師曰 放去又收來 年曰 適來失脚踏倒 又得家童扶起 師曰 有甚麽了期 年大笑 師還唐明 李公遣兩僧訊師 師於書尾畵雙足 寫來僧名以寄之 公作偈曰 黑毫千里餘 金槨示雙趺 人天渾莫測 珍重赤鬚胡

關山; 一故鄕之山 故鄕 二關隘山嶺 比喻難關

 

이로부터 양이지문(楊李之門)에 왕래하며 법으로써 벗을 삼았다. 오래되어 고별하고 하동(河東)으로 돌아가자 대년(大年)이 가로되 일어(一語)가 있어 당명(唐明)에게 기여(寄與)하려는데 얻겠습니까. 사왈 명월이 야행인(夜行人)을 비추어 봅니다(照見). 년왈(年曰) 도리어 상당(相當)하지 않습니다. 사왈 경(; 밤 시각)이 깊음은 오히려 스스로 가하거니와 오후(午後)에 다사 사람을 수심케 합니다. 년왈(年曰) 개보사(開寶寺) 앞의 금강(金剛; 金剛神)이 근일 무엇으로 인해 땀을 냅니까. 사왈 아십시오(). 년왈(年曰) 상좌가 임행(臨行)에 어찌 위인(爲人)하는 구()가 없겠습니까. 사왈 관산로(關山)가 중첩(重疊)했습니다. 년왈(年曰) 그러하다면 곧 상좌를 따라가겠습니다. 스님이 일성(一聲) ()했다. 년왈(年曰) 진사자아(眞師子兒)며 대사자후(大師子吼)로다. 사왈 방거(放去)했다가 또 수래(收來)했습니다. 년왈(年曰) 아까 실각(失脚)하여 답도(踏倒; 넘어짐)했다가 또 가동(家童)이 부기(扶起)함을 얻었습니다. 사왈 무슨 마칠 기약(了期)이 있으리오. 대년이 대소(大笑)했다. 스님이 당명(唐明)으로 돌아가자 이공(李公)이 양승(兩僧)을 보내어 스님에게 문신(問訊)했다. 스님이 서미(書尾)에 쌍족(雙足)을 그리고 온 중의 이름(來僧名)을 서사(書寫)하여 기탁(寄託)했다. ()이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흑호(黑毫)가 천 리 남짓인데/ 금곽(金槨)에서 쌍부(雙趺; 두 발)를 보였다/ 인천(人天)이 온통() 헤아리지 못하나니/ 진중(珍重) 적수호(赤鬚胡).

關山; 1. 고향의 산. 고향. 2. 관애(關隘; 국경에 있는 관문과 요새의 높고 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의 산봉우리. 난관에 비유.

 

師以母老 南歸至瑞州 首衆於洞山 時聰禪師居焉 先是汾陽謂師曰 我徧參雲門兒孫 特以未見聰爲恨 故師依止三年 乃遊仰山 楊大年以書抵宜春太守黃宗旦 使請師出世說法 守以南源致師 師不赴 旋特謁守願行 守問其故 對曰 始爲讓 今偶欲之耳 守大賢之

首衆; 首座稱首衆 [象器箋六]

 

스님이 모친이 연로(年老; )했기 때문에 남쪽으로 돌아가 서주(瑞州)에 이르러 동산(洞山)에서 수중(首衆)했는데 때에 총선사(聰禪師)가 거주했다. 이에 앞서 분양(汾陽)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운문의 아손을 편참(徧參)했는데 특히 총()을 보지 못해 한()이 된다. 고로 스님이 3년 동안 의지(依止)하고는 이에 앙산(仰山)을 유람했다. 양대년(楊大年)이 서신을 의춘태수(宜春太守) 황종단(黃宗旦)에게 이르게() 해 스님을 청해 출세하여 설법하게 했다. 태수가 남원(南源)으로써 스님을 불렀으나() 스님이 다다르지() 않았다. 바로() 태수를 특알(特謁)하여 행하기를 원하자 태수가 그 까닭()을 물었다. 대왈(對曰) 처음은 사양(辭讓; )했으나 지금은 우연히 하고 싶을 뿐입니다. 태수가 매우 현명하게 여겼다(大賢之).

首衆; 수좌를 일컬어 수중이라 함 [상기전6].

 

住後 上堂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乃竪起拄杖曰 這箇是南源拄杖子 阿那箇是經 良久曰 向下文長 付在來日 喝一喝 下座 上堂 良久曰 無爲無事人 猶是金鎻難 喝一喝 下座 問 如何是佛 師曰 水出高原 問 如何是南源境 師曰 黃河九曲 水出崑崙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隨流人不顧 斫手望扶桑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anuttarā-samyak-saṃbodhi 略稱阿耨三菩提 阿耨菩提 此云無上正等正覺 無上正等覺 無上正遍知 阿耨多羅譯爲無上 三藐三菩提譯爲正遍知 乃佛陀所覺悟之智慧 含有平等圓滿之意 維摩經佛國品肇註 阿耨多羅秦言無上 三藐三菩提秦言正遍知 道莫之大無上也 其道眞正無法不知正遍知也 法華經玄贊二 阿云無 耨多羅云上 三云正 藐云等 又三云正 菩提云覺 卽是無上正等正覺

崑崙; 崑崙山 又作昆侖山 崑山 乃神祕性之山嶽 爲傳說中之靈山 相傳 或爲黃河之源 或爲阿耨達池 或爲西王母居處 止觀輔行傳弘決助覽二 俗云崑崙者 謂香山耳

斫手; 一同斫額 二與拍手同義 說文 斫 擊也 此指一

 

주후(住後) 상당(上堂) 일체제불 및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 모두 이 경으로 좇아나온다. 이에 주장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남원(拄杖子)의 주장자다. 어느 것(阿那箇)이 이 경인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향하(向下)하면 글이 기니 내일에 맡겨 둔다. ()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무위무사인(無爲無事人)이 오히려 이 금쇄난(金鎻難)이다. ()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물이 고원(高原)에서 나온다. 묻되 무엇이 이 남원경(南源境)입니까. 사왈 황하(黃河) 아홉 굽이(九曲)의 물이 곤륜(崑崙; 崑崙山)에서 나온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흐름을 따르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나니 작수(斫手)하고 부상(扶桑)을 바라본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anuttarā-samyak-saṃbodhi. 약칭이 아뇩삼보리(阿耨三菩提; 奴豆切 內沃切)ㆍ아뇩보리니 여기에선 이르되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ㆍ무상정편지(無上正遍知). 아뇩다라는 무상(無上)으로 번역하고 삼먁삼보리는 정편지(正遍知)로 번역하나니 곧 불타가 각오(覺悟)한 바의 지혜임. 평등원만(平等圓滿)의 뜻을 함유(含有)했음. 유마경 불국품 조주(肇註). 아뇩다라는 진()나라 말로 무상(無上)이며 삼먁삼보리는 진나라 말로 정편지(正遍知). ()가 막대(莫大)하게 큰 것이 무상(無上)이며 그 도가 진정(眞正)하며 알지 못할 법이 없음이 정편지(正遍知). 법화경현찬2. ()는 이르되 무()며 뇩다라(耨多羅)는 이르되 상()이며 삼()은 이르되 정()이며 먁()은 이르되 등()이며 또 삼()은 이르되 정()이며 보리(菩提)는 이르되 각()이니 곧 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

崑崙; 곤륜산(崑崙山)이니 또 곤륜산(昆侖山)ㆍ곤산(崑山)으로 지음. 곧 신비성(神祕性)의 산악임. 전설 중의 영산(靈山)이 됨. 서로 전하기를 혹 황하의 근원이라 하며 혹 아뇩달지(阿耨達池; Anavatapta)라 하며 혹 서왕모의 거처라 함. 지관보행전홍결조람2. 세속에 이르는 곤륜(崑崙)이란 것은 이르자면 향산(香山)이다.

斫手; 1. 작액(斫額)과 같음. 2. 박수와 같은 뜻. 설문 작() ()이다.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上堂 雲收霧卷 杲日當空 不落明暗 如何通信 僧問 山深覓不得時如何 師曰 口能招禍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洞庭湖裏浪滔天 問 東涌西沒時如何 師曰 尋 問 夜靜獨行時如何 師曰 三把茆 問 寶劒未出匣時如何 師曰 響 曰 出匣後如何 師噓一聲 問 閙中取靜時如何 師曰 頭枕布袋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堆堆地 曰 見後如何 師曰 堆堆地 問 一得永得時如何 師曰 抱石投河 問 仗鏌鎁劒 擬取師頭時如何 師曰 斬將去 僧擬議 師便打

洞庭湖; 位於湖南省北部 中國最大湖水

堆堆地; 堆積在一面的樣子 語尾助詞

 

상당(上堂)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니(雲收霧卷) 밝은 해(杲日)가 허공에 당()했다. 명암에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통신(通信)하겠는가. 승문(僧問) 산이 깊어 찾아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입이 능히 화()를 부른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동정호(洞庭湖) 속에 파랑이 하늘에 넘친다. 묻되 동에서 솟아 서에서 잠길(東涌西沒) 때 어떻습니까. 사왈 찾아라(). 묻되 밤은 고요한데 홀로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세 움큼의 띠다(三把茆). 묻되 보검이 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울리는구나(). 가로되 갑()에서 나온 후는 어떻습니까. 스님이 일성(一聲) ()했다. 묻되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함을 취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머리가 포대(布袋)를 베개로 베었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퇴퇴지(堆堆地).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퇴퇴지(堆堆地). 묻되 한 번 얻으면 길이() 얻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돌을 안고 내()에 투신(投身; )한다. 묻되 막야검(鏌鎁劒)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취하려고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베어 가지고 가거라.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洞庭湖; 호남성 북부에 위치하는 중국 최대의 호수.

堆堆地; 퇴적(堆積)하여 한 면에 있는 양자. ()는 어미조사.

 

師住三年 棄去謁神鼎諲禪師 鼎首山高第 望尊一時 衲子非人類精奇 無敢登其門者 住山三十年 門弟子氣呑諸方 師髮長不剪 弊衣楚音 通謁法姪 一衆大笑 鼎遣童子問 長老誰之嗣 師仰視屋曰 親見汾陽來 鼎杖而出 顧見頎然 問曰 汾州有西河師子 是否 師指其後 絕呌曰 屋倒矣 童子返走 鼎回顧相矍鑠 師地坐 脫隻履而視之 鼎老忘所問 又失師所在 師徐起整衣 且行且語曰 見面不如聞名 遂去 鼎遣人追之不可 歎曰 汾州乃有此兒邪 師自是名重叢林 定林沙門本延有道行 雅 爲士大夫所信敬 鼎見延 稱師知見可興臨濟 會道吾虛席 延白郡 請以師主之 法令整肅 亡軀爲法者集焉

精奇; 精彩奇妙

通謁; 通報請求謁見

法姪; 自己的師兄師弟的弟子

矍鑠; 形容老年人很有精神的樣子

且行且語; 一邊走一邊語

 

스님이 거주한 지 3년 만에 버리고 가서 신정인(神鼎諲; 洪諲) 선사를 예알했다. 신정(神鼎; )은 수산(首山)의 고제(高第)며 명망(名望; )이 일시(一時)에 높았다(). 납자에 인류(人類)가 정기(精奇)하지 않으면 감히 그 문에 오르는 자가 없었다. 주산(住山)한 지 30년에 문제자(門弟子)의 기()가 제방을 삼켰다. 스님이 머리카락을 기른() 채로 깎지() 않고 폐의(弊衣)에 초음(楚音)으로 통알(通謁)하되 법질(法姪)이라 일컬었다. 일중(一衆; 衆人)이 대소(大笑)했다. 신정(神鼎)이 동자를 보내어 묻되 장로는 누구의 사(; 法嗣)인가. 스님이 집()을 앙시(仰視)하며 가로되 분양(汾陽)을 친견하고 왔습니다. 신정이 지팡이를 짚고() 나가서 돌아보매 기연(頎然; 헌걸차다)했다. 문왈(問曰) 분주(汾州)에 서하사자(西河師子)가 있다던데 그런가. 스님이 그의 뒤를 가리키며 절규(絕呌)하여 가로되 집이 무너진다(). 동자가 돌이켜 달렸고(返走) 신정이 돌아보며(回顧) 서로 확삭(矍鑠)했다. 스님이 땅에 앉아 외짝신을 벗고 그것을 보았다. 신정이 노쇠(老衰; )하여 물을 바를 잊었는데 또 스님의 소재(所在)를 잃었다. 스님이 천천히 일어나 정의(整衣)하고 차행차어(且行且語)하여 가로되 얼굴을 봄이 이름을 들음만 같지 못합니다. 드디어 떠났다(). 신정이 사람을 보내어 뒤쫓았으나(追之) 불가(不可)했다. 탄식해 가로되 분주(汾州)에 곧() 이런 남아(男兒; )가 있었던가. 스님이 이로부터 명성이 총림에 중대(重大; )했다. 정림사문(定林沙門) 본연(本延)이 도행(道行)이 있어 본디() 사대부가 신경(信敬)하는 바가 되었는데 신정이 본연을 보자 스님의 지견을 일컬으며 가히 임제를 일으킨다() 하였다. 마침() 도오(道吾)가 허석(虛席)이었고 본연이 군수(郡守; )에게 아뢰어() 스님을 청해 주지(主持)하게 했다. 법령(法令)이 정숙(整肅)했고 몸을 잊고 법을 위하는 자(亡軀爲法者)가 모였다.

精奇; 정채(精彩)가 기묘함.

通謁; 통보하며 알현(謁見)을 청구(請求).

法姪; 자기의 사형이나 사제의 제자.

矍鑠; 노년인(老年人)이 매우 정신(精神)이 있는 양자(樣子)를 형용.

且行且語; 한편으론 걷고 한편으론 말함.

 

上堂 先寶應曰 第一句薦得 堪與祖佛爲師 第二句薦得 堪與人天爲師 第三句薦得 自救不了 道吾則不然 第一句薦得 和泥合水 第二句薦得 無繩自縛 第三句薦得 四稜著地 所以道 起也海晏河淸 行人避路 住也乾坤失色 日月無光 汝輩向甚麽處出氣 如今還有出氣者麽 有卽出來 對衆出氣看 如無 道吾爲汝出氣去也 乃噓一聲 拄杖下座

和泥合水; 謂爲行慈悲 完全與塵世衆生和合 以化導衆生行善止惡 達到濟度之目的 乃第二義門之施設 慈悲方便之作法 又稱拖泥帶水 此外 師家爲接化不同根機之學人 依第二義門所施之權巧方便 稱爲和麩糶麵 原指於精細之麵粉中 摻雜粗糙之麥麩而賣與人 禪林則以麵比喩精深之佛法 麩比喩第二義門 [正法眼藏三]

無繩自縛; 自我束縛身心

四稜著地; 又稱四楞塌地 楞 同稜 塌 貼也 又作四稜榻地 四隅之脚著地也 喩安心處

海晏河淸; 大海安靜 黃河水淸 形容天下太平無事 禪宗多用以指心中十分寧靜 沒有煩惱

; 建築 二打 擊

 

상당(上堂) 선보응(先寶應; 省念)이 가로되 1구에서 천득(薦得)하면 가히() 조불에게 스승이 되어 주며 제2구에서 천득하면 가히 인천에게 스승이 되어 주며 제3구에서 천득하면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한다. 도오(道吾; 慈明)는 곧 그렇지 않나니 제1구에서 천득하면 화니합수(和泥合水)하고 제2구에서 천득하면 무승자박(無繩自縛)하고 제3구에서 천득하면 사릉착지(四稜著地). 소이로 말하되 일어남엔 해안하청(海晏河淸)하고 머묾엔 건곤이 실색(失色)하고 일월이 빛이 없다. 너희 무리()가 어느 곳을 향해 출기(出氣)하겠는가. 여금에 도리어 출기할 자가 있느냐. 있다면 곧 나와서 대중(對衆)하여 출기해 보아라. 없을 것 같으면 도오(道吾)가 너희를 위해 출기하여 가겠다. 이에 일성(一聲) ()했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和泥合水; 이르자면 자비를 행하기 위해 완전히 진세(塵世)의 중생과 화합하여 중생을 화도(化導)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그치게 하여 제도의 목적에 달도(達到)함이니 곧 제2의문(義門)의 시설이며 자비방편의 작법임. 또 명칭이 타니대수(拖泥帶水). 이 밖에 사가가 부동(不同)의 근기의 학인을 접화(接化)하기 위해 제2의문에 의해 베푸는 바의 권교(權巧)한 방편을 일컬어 화부조면(和麩糶麵)이라 함. 원래는 정세(精細)한 밀가루 속에 조조(粗糙; 거칢)한 맥부(麥麩; 밀기울)를 참잡(摻雜; 混雜)하여 타인에게 매여(賣與)함을 가리킴이나 선림에선 곧 면(; 밀가루)으로 정심(精深)한 불법에 비유하고 부()로 제2의문(第二義門)에 비유함 [정법안장3].

無繩自縛; 자아(自我; 자기 자신)가 몸과 마음을 속박함.

四稜著地; 또 사릉탑지(四楞塌地)로 일컬음. ()은 릉()과 같음. ()은 첩(; 붙다). 또 사릉탑지(四稜榻地)로 지음. 네 모퉁이의 발이 착지함이니 안심처에 비유함.

海晏河淸; 대해가 안정(安靜)되고 황하의 물이 맑음이니 천하가 태평무사함을 형용함. 선종에선 다분히 써서 심중에 십분 영정(寧靜)하고 번뇌가 있지 않음을 가리킴.

; 1. 건축. 2. (). ().

 

上堂 道吾打鼓 四大部洲同參 拄杖橫也挑括乾坤大地 鉢盂覆也葢却恒沙世界 且問諸人向甚麽處安身立命 若也知得 向北俱盧洲喫粥喫飯 若也不知 長連牀上喫粥喫飯

四大部洲; 又稱四大洲 四洲 四天下 住須彌山四方鹹海之四大洲也 一南贍部洲 舊云南閻浮提 或從林立號 或以果立名 二東勝神洲 梵云東毘提訶 舊云東弗婆提 爲身形勝故 名爲勝身 三西牛貨洲 梵云西瞿陀尼 舊云西瞿耶尼 爲貿易牛故 名爲牛貨 四北瞿盧洲 舊云北鬱單越 譯曰勝處 於四洲中國土最勝 故名勝處 [西域記一 俱舍光記八]

 

상당(上堂) 도오(道吾; 慈明)가 북을 치면 사대부주(四大部洲)가 동참(同參)하나니 주장자를 가로()로 하매 건곤과 대지를 도괄(挑括; 들어올리고 동여맴)하고 발우를 엎으매 항사(恒沙) 세계를 덮어버린다. 제인(諸人)에게 차문(且問; 물어 봄)하나니 어느 곳을 향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느냐. 만약에 지득(知得)한다면 북구로주(北俱盧洲)를 향해 끽죽끽반(喫粥喫飯)하고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장련상상(長連牀上)에서 끽죽끽반한다.

四大部洲; 또 명칭이 4대주ㆍ4주ㆍ4천하니 수미산 사방의 함해(鹹海)에 거주하는 4대주임. 1. 남섬부주(南贍部洲; Jambu-dvīpa) 구역에 이르되 남염부제(南閻浮提)니 혹 숲을 좇아 호를 세웠고 혹 과실로 이름을 세웠음. 2. 동승신주(東勝神洲; Pūrva-videha) 범어로 이르되 동비제하(東毘提訶; Videha)며 구역에 이르되 동불바제(東弗婆提)니 신형(身形)이 수승한 연고로 이름이 승신(勝身)이 됨. 3. 서우화주(西牛貨洲; Apara-godānīya) 범어로 이르되 서구다니(西瞿陀尼; godānīya)며 구역에 이르되 서구야니(西瞿耶尼)니 소를 무역하는 연고로 이름이 우화(牛貨)가 됨. 4. 북구로주(北瞿盧洲; Uttara-kuru) 구역에 이르되 북울단월(北鬱單越)이며 번역해 가로되 승처(勝處)4주 중에 국토가 가장 수승한지라 고로 이름이 승처임 [서역기1. 구사광기8].

 

次住石霜 當解夏 謂衆曰 昨日作嬰孩 今朝年已老 未明三八九 難踏古皇道 手鑠黃河乾 脚踢須彌倒 浮生夢幻身 人命夕難保 天堂幷地獄 皆由心所造 南山北嶺松 北嶺南山草 一雨潤無邊 根苗壯枯槁 五湖參學人 但問虛空討 死脫夏天衫 生披冬月襖 分明無事人 特地生煩惱 喝一喝 下座

古皇; 亦稱古皇氏 傳說中的有巢氏之號

 

다음에 석상(石霜)에 거주했다. 해하(解夏)에 당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작일(昨日)은 영해(嬰孩; 어린아이)를 지었고/ 금조(今朝)에 나이가 이미 늙었다/ 삼팔구(三八九)를 밝히지 못하면/ 고황(古皇)의 도()를 밟기 어렵다/ 손으로 황하를 녹여() 말리고()/ 발로 수미(須彌)를 차서() 넘어뜨린다/ 부생(浮生)은 몽환(夢幻)의 몸인지라/ 인명(人命)을 저녁()도 보존하기 어렵다/ 천당과 지옥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다/ 남산(南山)과 북령(北嶺)은 소나무며/ 북령과 남산은 풀이다/ 일우(一雨; 한바탕의 비)에 윤택(潤澤; )이 무변(無邊)하여/ 근묘(根苗)가 고고(枯槁; 마르다)를 장()하게 한다/ 오호(五湖; 전국 각지)의 참학인(參學人)/ 단지 허공에게 물어 찾아라()/ 죽어선 하천(夏天)의 적삼을 벗고/ 살아선 동월(冬月)의 겹옷()을 입는다()/ 분명히 무사인(無事人)이거늘/ 특지(特地) 번뇌를 내는구나. ()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古皇; 또한 명칭이 고황씨(古皇氏)니 전설 중의 유소씨(有巢氏)의 호.

 

上堂 一喝分賓主 照用一時行 要會箇中意 日午打三更 遂喝一喝曰 且道是賓是主 還有分得者麽 若也分得 朝打三千暮打八百 若也未能 老僧失利 因同道相訪上堂 颯颯涼風景 同人訪寂寥 煑茶山上水 燒鼎洞中樵 珍重 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長安夜夜家家月 曰 來後如何 師曰 幾處笙歌幾處愁 問 一物不將來時如何 師曰 槐木成林 曰 四山火來時如何 師曰 物逐人興 曰 步步登高時如何 師曰 雲生足下 問 古人封白紙 意旨如何 師曰 家貧路富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三日風 五日雨 上堂 夫宗師者 奪貧子之衣珠 究達人之見處 若不如是 盡是和泥合水漢 良久曰 路逢劒客須呈劒 不是詩人莫獻詩 喝一喝

日午打三更; 正午時敲打午夜三更的鐘鼓 是禪家所謂之奇特句 是祛除了區別對立妄心的禪悟境界

朝打三千暮打八百; 是禪師對于僧徒參學失誤的斥責

貧子之衣珠; 貧窮者身上自有珠寶 喩指衆生本身具有的佛性 貧子 貧者 貧窮人 子 後綴 按法華經五百弟子授記品 有人至親友家醉酒而臥 此時親友忽有官事當行 以無價寶珠繫其衣裏 與之而去 其人醉臥都不覺知 起已 行至他國 爲求衣食 倍受艱難 若稍有得 便以爲足 後會遇親友 具語前事 其人乃以寶珠購其所需

 

상당(上堂) 1()로 빈주(賓主)를 나누며 조용(照用)을 일시에 행하나니 개중(箇中; 이 중)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일오에 삼경을 친다(日午打三更). 드디어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그래 말하라, 이 빈()이냐 이 주(). 도리어 나눔을 얻을 자가 있느냐. 만약에 나눔을 얻는다면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리겠다(朝打三千暮打八百). 만약에 능하지 못하다면 노승이 실리(失利)했다. 동도(同道)가 상방(相訪)함으로 인해 상당(上堂)했다. 삽삽(颯颯; 바람 소리)한 서늘한 풍경(風景)/ 동인(同人)이 적료(寂寥)를 심방(尋訪; )했다/ 산상(山上)의 물로 차를 끓이고()/ 동중(洞中)의 땔나무()로 솥에 불태웠다(燒鼎). 진중(珍重). 묻되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장안의 밤마다 가가(家家)의 달이다.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몇 곳에선 생가(笙歌)며 몇 곳에선 수심(愁心; )한다. 묻되 일물(一物)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괴목(槐木; 회화나무. 느티나무)이 숲을 이루었다. 가로되 사산(四山)에 불이 올 때(火來時) 어떻습니까. 사왈 만물(萬物; )이 사람을 쫓아() ()한다. 가로되 걸음마다 높은 데 오를 때 어떻습니까. 사왈 구름이 족하(足下)에 생겨난다. 묻되 고인이 백지(白紙)를 봉()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집에선 빈곤하고 길에선 부귀하다(家貧路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사흘에 바람 불고 닷새에 비 온다. 상당(上堂) 무릇() 종사(宗師)란 것은 빈자의 의주(貧子之衣珠)를 빼앗고 달인(達人)의 견처(見處)를 궁구한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모두 이 화니합수한(和泥合水漢)이다.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모름지기 검을 주고() 이 시인이 아니거든 시를 바치지 말아라. ()로 한 번 할했다.

日午打三更; 정오 시 오야(午夜) 3경의 종과 북을 고타(敲打; 치다)함이니 이는 선가에서 이르는 바의 기특구(奇特句). 이는 구별과 대립의 망심(妄心)을 거제(祛除; 消除)한 선오(境界)의 경계.

朝打三千暮打八百; 이것은 이 선사가 승도(僧徒)의 참학의 실오(失誤)에 대한 척책(斥責; 責罵).

貧子之衣珠; 빈궁한 자의 신상에 스스로 주보(珠寶)가 있음. 중생의 본신에 갖추어져 있는 불성을 비유로 가리킴. 빈자(貧子)는 빈자(貧者)니 빈궁인(貧窮人). ()는 후철(後綴). 오백제자수기품을 안험컨대 어떤 사람이 친우의 집에 이르러 술에 취해 누웠는데 이때 친우가 홀연히 관사(官事)가 있어 마땅히 떠나야 했다. 무가보주(無價寶珠)를 그의 옷 속에 묶고는 그에게 주고 갔다. 그 사람은 취해 누운지라 도무지 각지(覺知)하지 못했다. 일어난 다음 유행(遊行)하여 딴 나라에 이르러 의식(衣食)을 구하기 위한 연고로 배()로 간난(艱難)을 받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소득이 있으면 바로 족함을 삼았다. 후에 친우를 회우(會遇)했는데 앞의 일을 갖추어 말하자 그 사람이 이에 보주로 그가 수요(需要)하는 바를 구매했다.

 

上堂 我有一言 絕慮忘緣 巧說不得 祇要心傳 更有一語 無過直擧 且作麽生是直擧一句 良久以拄杖畫一畫 喝一喝 問 己事未明 以何爲驗 師曰 玄沙曾見雪峰來 曰 意旨如何 師曰 一生不出嶺 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馬有垂韁之報 犬有𩥇草之恩 曰 與麽則不別也 師曰 西天東土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打骨出髓 上堂 入水見長人 珍重 上堂 面西行向東 北斗正離宮 道去何曾去 騎牛臥牧童 珍重 上堂 春生夏長卽不問 你諸人脚跟下一句作麽生道 良久曰 華光寺主 便下座 上堂 藥多病甚 網細魚稠 便下座

一生不出嶺; 正法眼藏二云 玄沙和尙欲徧歷諸方 參尋知識 攜囊出嶺 築著脚指流血 痛楚歎曰 是身非有 痛從何來 便回雪峰 峰一日問 那箇是備頭陀 曰 終不敢誑於人 又一日峰召曰 備頭陀 何不徧參去 曰 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 峰然之

馬有垂韁之報; 禪林疏語考證四 異苑曰 符堅爲慕容冲所襲 堅馳騧馬墮而落澗 追兵幾及 計無由出 馬卽踟蹰臨澗垂鞚與堅 堅不能及 馬又跪授焉 堅攀之得岸而走盧江

犬有𩥇草之恩; 搜神後記九 晉太和(366-371)中 廣陵人楊生 養一狗 甚愛憐之 行止與俱 後生飮酒醉 行大澤草中 眠不能動 時方冬月燎原 風勢極盛 狗乃周章號喚 生醉不覺 前有一坑水 狗便走往水中還 以身灑生左右草上 如此數次 周旋跬步 草皆沾濕 火至免焚

入水見長人; 祖庭事苑一 入水見長人 桉耀禪師錄 唐武後召嵩山老安北宗神秀 入禁中供養 因澡浴 以宮姬給侍 獨安怡然無它 后歎曰 入水始知有長人

 

상당(上堂) 나에게 일언(一言)이 있나니 사려가 끊기고 인연을 잊었다(絕慮忘緣). 교설(巧說)을 얻지 못하고 다만 심전(心傳)을 요한다. 다시 일어(一語)가 있나니 직거(直擧)를 지날 게 없다. 그래 무엇이(作麽生) 이 직거의 1구인가. 양구(良久)했다가 주장자로써 그어() 한 번 긋고 할()로 한 번 할했다. 묻되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무엇으로써 시험합니까. 사왈 현사가 일찍이 설봉을 보고 왔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일생에 출령하지 않았다(一生不出嶺).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말은 고삐를 드리우는 보답이 있고(馬有垂韁之報) 개는 풀에 뒹구는 보은이 있다(犬有𩥇草之恩). 가로되 그러하다면 곧 다르지 않습니다. 사왈 서천(西天)과 동토(東土).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뼈를 두드려 수를 낸다(打骨出髓). 상당(上堂) 입수해야 장인을 본다(入水見長人). 진중(珍重)하라. 상당(上堂) 얼굴을 서쪽으로 하여 가면서 동쪽을 향하나니/ 북두(北斗; 北斗七星)가 바로 궁()을 떠났다/ 간다고 말하지만 어찌 일찍이 감이겠는가/ 소를 타고 누운 목동(牧童)이다. 진중(珍重)하라. 상당(上堂) 춘생하장(春生夏長)은 곧 묻지 않나니 너희 제인(諸人)의 발꿈치 아래의 1구를 어떻게(作麽生) 말하겠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화광사주(華光寺主).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약이 많으면 병이 심하고 그물이 세밀하면 고기가 빽빽하다(). 바로 하좌했다.

一生不出嶺; 정법안장2에 이르되 현사화상이 제방을 편력(徧歷)하면서 지식을 참심(參尋)하려고 했다. 행낭(行囊)을 휴대하고 출령(出嶺)하다가 발가락이 부딪혀(築著) 피를 흘렸다. 통초(痛楚: 심히 아프고 괴로움)하다가 탄식하며 가로되 이 몸이 있음이 아니거늘 통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로 설봉으로 회귀했다. 설봉이 어느 날 묻되 어느 것이 이 비두타(備頭陀)인가. 가로되 마침내 감히 남을 속이지 못합니다. 또 어느 날 설봉이 불러 가로되 비두타는 왜 편참(徧參)하러 가지 않느냐. 가로되 달마가 동토에 오지 않았고 2조가 서천에 가지 않았습니다. 설봉이 그렇다고 했다.

馬有垂韁之報; 선림소어고증4. 이원(異苑)에 가로되 부견(符堅), 모용충(慕容冲)이 습격하는 바가 된지라 부견이 왜마(騧馬; 공골말)를 달리다가 떨어져 개울에 추락했다. 추격하는 병사가 거의 닿았는데 계산하매 탈출할 길()이 없었다. 말이 곧 머뭇거리다가 개울에 임해 재갈을 드리워 부견에게 주었다. 부견이 능히 미치지 못하자 말이 또 꿇어앉아 주었다. 부견이 이를 잡고 언덕을 얻어 노강(盧江)으로 도주했다.

犬有𩥇草之恩; 수신후기9. () 태화(3 66-371) 중 광릉 사람 양생(楊生)이 한 마리의 개를 키웠는데 매우 그것을 애련(愛憐)하였고 행지(行止)에 더불어 함께했다. 후에 양생이 음주로 취해서 큰 못의 풀 속을 가다가 잠들어 능히 움직이지 못했다. 시절이 방금 동월(冬月)인데 초원이 불탔고 풍세(風勢)가 극히 성했다. 개가 이에 주장(周章; 허둥지둥함)하며 호환(號喚)했으나 양생은 취해서 깨어나지 못했다. 앞에 한 구덩이의 물이 있었고 개가 곧 달려서 물 속에 갔다가 돌아와 몸으로 양생의 좌우의 풀 위에 뿌렸다. 이와 같이 몇 차례 규보(跬步; 반 걸음. 노력하며 게으르지 않음에 비유)로 주선(周旋)하자 풀이 모두 젖어 축축했다. 불이 이르렀으나 탐을 면했다.

入水見長人; 조정사원1. 입수견장인(入水見長人) 요선사록(耀禪師錄)을 안험하니 당()의 무후(武後; 則天武后)가 숭산노안(嵩山老安)과 북종신수(北宗神秀)를 불러 금중(禁中; 宮中)에 들게 해 공양했고 조욕(澡浴; 목욕)으로 인해 궁희(宮姬)로써 급시(給侍)했는데 유독 안()만 이연(怡然; 는 기쁠 이)하며 다름이 없자 무후가 감탄하며 가로되 입수(入水)하고서야 비로소 장인(長人; 뛰어난 사람)이 있는 줄 알겠다.

 

示衆 以拄杖擊禪牀一下云 大衆還會麽 不見道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持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香嚴恁麽悟去 分明悟得如來禪 祖師禪未夢見在 且道祖師禪有甚長處 若向言中取則 悞賺後人 直饒棒下承當 辜負先聖 萬法本閑 唯人自閙 所以山僧居福嚴 祇見福嚴境界 晏起早眠 有時雲生碧嶂 月落寒潭 音聲鳥飛鳴般若臺前 娑羅花香散祝融峰畔 把瘦笻 坐磐石 與五湖衲子時話玄微 灰頭土面住興化 祇見興化家風 迎來送去 門連城市 車馬騈闐 漁唱瀟湘 猿啼嶽麓 絲竹謌謠 時時入耳 復與四海高人 日談禪道 歲月都忘 且道居深山住城郭 還有優劣也無 試道看 良久云 是處是慈氏 無門無善財 問 行脚不逢人時如何 師曰 釣絲絞水 問 尋枝摘葉卽不問 如何是直截根源 師曰 楖栗拄杖 曰 意旨如何 師曰 行卽肩挑雲水衲 坐來安在掌中擎 問 旣是護法善神 爲甚麽張弓架箭 師曰 禮防君子 問 如何是佛 師曰 有錢使錢

娑羅花; 娑羅者堅固之義 慧苑師云高遠之義也

絲竹; 弦樂器和竹制管樂器的統稱 亦泛指音樂 祖庭事苑七 絲竹可以傳心 目擊以之存道

楖栗; 木名 可做拐杖 因以稱杖

張弓架箭; 開弓(拉弓弦)而架設箭子

 

시중(示衆) 주장자로써 선상을 한 번 치고 이르되 대중은 도리어 아느냐.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일격(一擊)에 소지(所知)를 잊어/ 다시() 수지(修持; 수행하고 受持)를 빌리지 않는다/ 제방의 달도자(達道者)/ 다 말하되 상상기(上上機)라 한다. 향엄이 이렇게 깨쳐 갔음은 분명히 여래선을 오득(悟得)했고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그래 말하라, 조사선은 무슨() 장처(長處; 뛰어난 곳)가 있느냐. 만약 언중(言中)을 향해 법칙을 취한다면(取則) 후인을 오잠(悞賺; 그르치고 속임)하고 직요(直饒; 가령) 방하(棒下)에서 승당(承當)하더라도 선성(先聖)을 저버린다(辜負). 만법은 본래 고요한건만 오직 사람이 스스로 시끄럽게 한다. 소이로 산승이 복엄(福嚴)에 거주하면서 다만 복엄의 경계를 본다.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나니 어떤 때는 구름이 벽장(碧嶂)에 생기(生起)하고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진다. 음성조(音聲鳥)는 반야대(般若臺) 앞에 비명(飛鳴)하고 사라화(娑羅花)는 향을 축융봉(祝融峰) 가에 흩는다. 마른 지팡이를 가지고(把瘦笻) 반석(磐石)에 앉아 오호(五湖)의 납자와 더불어 때로 현미(玄微)를 얘기한다. 회두토면(灰頭土面)하고 흥화(興化)에 거주하면서 다만 흥화의 가풍을 보며 영래송거(迎來送去)하면서 문이 성시(城市)에 잇닿았고() 거마(車馬)가 변전(騈闐; 한 곳에 모임)하고 어부(漁夫; )는 소상(瀟湘)에서 노래하고 원숭이는 악록(嶽麓)에서 울부짖고(猿啼) 사죽(絲竹)은 가요(謌謠)하며 시시(時時)로 귀에 든다. 다시 사해(四海)의 고인(高人)과 날로 선도(禪道)를 얘기하나니 세월을 모두 잊었다. 그래 말하라 심산(深山)에 거주()함과 성곽(城郭)에 거주()함이 도리어 우열(優劣)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이곳(是處)은 이 자씨(慈氏)니 문이 없으면(無門) 선재(善財)도 없다. 묻되 행각하여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낙싯줄(釣絲)로 물을 매어라(絞水). 묻되 가지를 찾고 잎을 땀(尋枝摘葉)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근원을 직절(直截)함입니까. 사왈 즐률주장(楖栗拄杖)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다니면 곧 어깨로 운수의 납의(雲水衲)를 메고() 앉으면(坐來) 장중(掌中)에 두어서(安在) 받든다(). 묻되 이미 이 호법선신(護法善神)이거늘 무엇 때문에 장궁가전(張弓架箭)했습니까. 사왈 예의는 군자를 방해한다(禮防君子).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돈이 있어서 돈을 부린다(有錢使錢).

娑羅花; 사라(娑羅; śāla)란 것은 견고의 뜻. 혜원(慧苑) 스님이 이르되 고원(高遠)의 뜻이다.

絲竹; 현악기와 죽제 관악기의 통칭. 또한 널리 악기를 가리킴. 조정사원7. 사죽(絲竹)이 가이 전심하고 목격하매 이로써 존도(存道; 도를 두다)한다.

楖栗; 나무 이름임. 가히 괴장(拐杖; 지팡이. 주장자)을 만들므로 인하여 장()이라 일컬음.

張弓架箭; 개궁(改弓; 활줄을 당김)하여 화살을 가설(架設).

 

上堂 祖師心印 一印印空 一印印水 一印印泥 如今還有印不著者麽 試向脚跟下 道將一句來 設你道得倜儻分明 第一不得行過衲僧門下 且道衲僧有甚麽長處 良久曰 人王三寸鐵 徧地是刀鎗 喝一喝 卓拄杖下座 上堂 天已明 鼓已響 聖衆臻 齊合掌 如今還有不合掌者麽 有卽尼乾歡喜 無則瞿曇惡發 久立 珍重 問 磨礱三尺劒 去化不平人 師意如何 師曰 好去 僧曰 點 師曰 你看 僧拍手一下 歸衆 師曰 了

倜儻分明; 形容明悟禪法 洞察禪機

尼乾; 尼乾子外道 又稱尼犍陀 玄應音義十 尼乾子 應言泥揵連他 此云不繫 其外道拔髮露形 無所貯畜 以手乞食 隨得卽噉者也

 

상당(上堂) 조사의 심인(心印)1()으로 허공에 인()을 치고 1인으로 물에 인을 치고 1인으로 진흙에 인을 친다. 여금에 도리어 인()이 붙지() 않는 것이 있는가. 시험 삼아 발꿈치 아래를 향해 1구 말해 가지고 오너라. 설사(設使; ) 너희가 말함을 얻어 척당분명(倜儻分明)하더라도 첫째(第一) 납승문하(衲僧門下)를 행과(行過)함을 얻지 못한다. 그래 말하라, 납승은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인왕(人王)의 세 치 철()이여, 온 땅(徧地)에 이 도창(刀鎗)이다. 할로 한 번 할하고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하늘이 이미 밝았고 북이 이미 울렸고() 성중(聖衆)이 모였고() 일제히 합장했다. 여금에 도리어 합장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있다면 곧 니건(尼乾)이 환희하고 없다면 곧 구담(瞿曇)이 악발(惡發)한다.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달마가 3척 검으로 가서 불평인(不平人; 공평하지 못한 사람)을 교화한다.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잘 가거라(好去). 승왈(僧曰). (; 점검)하십시오. 사왈 네가 보아라. 중이 한 번 박수하고 귀중(歸衆)했다. 사왈 마쳤다().

倜儻分明; 선법을 환히 깨치고 선기를 환히 살핌을 형용함.

尼乾; 니건자(尼乾子; Nirgrantha-jñātaputra. Nigaṇṭha-put ta) 외도임. 또 명칭이 니건타(尼犍陀). 현응음의10. 니건자(尼乾子) 응당 말하되 니건련타(泥揵連他)니 여기에선 이르되 불계(不繫). 그 외도는 머리카락을 뽑아버리고 몸을 노출시키고 저축하는 바가 없고 손으로써 걸식하고 얻는 대로 바로 먹는 자다.

 

上堂 北山南南山北 日月雙明天地黑 大海江河盡放光 逢著觀音問彌勒 珍重 問 有理難伸時如何 師曰 苦 曰 恁麽則舌拄上齶也 師噓一聲 僧曰 將謂胡鬚赤 師曰 夢見興化脚跟麽 示徒偈曰 黑黑黑 道道道 明明明 得得得 師室中插劒一口 以草鞋一對 水一盆 置在劒邊 每見入室 卽曰 看看 有至劒邊擬議者 師曰 險 喪身失命了也 便喝出 師冬日牓僧堂 作此字 [(**)/]==≡[(@)*(/?)][-?+(-+)] 其下注曰 若人識得 不離四威儀中 首座見曰 和尙今日放參 師聞而笑之

放參; 朝參晩參等爲日常行事 若臨時休止 卽稱放參 後轉而特指休止晩參爲放參 又通知大衆放參所敲之鐘鼓 分別稱爲放參鐘放參鼓 所懸掛之揭示牌 稱爲放參牌 此外 進用晩餐(藥石)之時刻 恰與敲擊放參鐘之時刻相同 故亦稱晩餐爲放參飯 [禪苑淸規一赴粥飯 同二上堂 象器箋叢軌類]

 

상당(上堂) 북산의 남과 남산의 북에/ 일월이 쌍명(雙明)하고 천지(天地)가 어둡다()/ 대해와 강하가 모두 방광하는데/ 관음(觀音)을 봉착(逢著)하여 미륵을 묻는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이치가 있으나 펴기() 어려울 때 어떻습니까. 사왈 괴롭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혀가 상악(上齶)을 버텼습니다. 스님이 일성(一聲) ()했다. 승왈(僧曰) 다만() 이르기를 호수(胡鬚)가 붉습니다. 사왈 꿈에라도 흥화(興化; 慈明)의 발꿈치를 보았느냐. 도중(徒衆)에게 보이는 게에 가로되 흑흑흑(黑黑黑)/ 도도도(道道道)/ 명명명(明明明)/ 득득득(得得得). 스님이 실중(室中)에서 1(; 量詞)의 검()을 꽂고 짚신 일대(一對; 一雙)와 물 한 동이를 검변(劒邊)에 안치했다. 매번 입실함을 보면 곧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검변에 이르러 의의(擬議)하는 자가 있으면 사왈 위험하다(). 상신실명(喪身失命)했다. 바로 할()하고 내쫓았다. 스님이 동일(冬日; 冬至日)에 승당(僧堂)에 방을 붙였는데() [(**)/]==≡[(@)*(/?)][-?+(-+)] 글자를 지었다. 그 아래 주왈(注曰) 어떤 사람이 식득(識得)하면 사위의(四威儀) 가운데를 떠나지 않는다. 수좌가 보고 가로되 화상이 금일 방참(放參)이다. 스님이 듣고 웃었다.

放參; 조참과 만참 등은 일상의 행사가 되는데 만약 임시로 휴지(休止)하면 곧 명칭이 방참(放參). 후에 전()하여 특별히 만참(晩參)을 휴지함을 가리켜 방참으로 삼았음. 또 대중에게 방참을 통지하면서 치는 바의 종고(鐘鼓)를 방참종ㆍ방참고로 분별해 호칭하고 매달아 거는 바의 게시패(揭示牌)를 방참패로 호칭함. 이 밖에 만찬(晩餐; 藥石)을 쓰는 시각에 진입함이 마침 방참종을 고격(敲擊)하는 시각과 서로 같은지라 고로 또한 만찬을 방참반(放參飯)이라 함 [선원청규1부죽반, 2상당. 상기전총궤류].

 

寶元戊寅李都尉遣使邀師曰 海內法友 唯師與楊大年耳 大年棄我而先 僕年來頓覺衰落 忍死以一見公 仍以書抵潭帥敦遣之 師惻然與侍者舟而東下 舟中作偈曰 長江行不盡 帝里到何時 旣得涼風便 休將艣棹施 至京師 與李公會月餘 而李公果歿 臨終畫一圓相 又作偈獻師 世界無依 山河匪礙 大海微塵 須彌納芥 拈起幞頭 解下腰帶 若覓死生 問取皮袋 師曰 如何是本來佛性 公曰 今日熱如昨日 隨聲便問師 臨行一句作麽生 師曰 本來無罣礙 隨處任方圓 公曰 晩來困倦 更不答話 師曰 無佛處作佛 公於是泊然而逝

敦遣; 恭送

 

보원(寶元) 무인(戊寅; 1038) 이도위(李都尉)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스님을 불러() 가로되 해내(海內)의 법우(法友)는 오직 스님과 양대년(楊大年) 뿐인데 대년은 나를 버리고 먼저 갔습니다. (; 謙辭)이 연래(年來)에 쇠락(衰落)을 돈각(頓覺)했고 죽음을 참으며 공()을 일견(一見)코자 합니다. 인하여() 글을 담수(潭帥)에게 다다르며() 도탑게 보내었다(敦遣). 스님이 측연(惻然)하여 시자와 더불어 배()로 동하(東下)했다. 주중(舟中)에서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장강(長江)은 행(; 舟行)하여도 다하지 않으니/ 제리(帝里; 京師)엔 어느 때 이르겠는가/ 이미 양풍(涼風)의 편의를 얻었으니/ 노도(艣棹; )를 가져 베풀지 말아라(). 경사(京師)에 이르러 이공(李公)과 한 달 남짓 만났고() 이공이 과연 죽었다(歿). 임종에 1원상을 그리고 또 작게(作偈)하여 스님에게 바쳤다. 세계는 의지(依支; )함이 없고/ 산하는 장애가 아니다(匪礙)/ 대해가 미진(微塵)이며/ 수미(須彌)가 개자(芥子)를 수납(受納; )한다/ 복두(幞頭)를 집어 일으키고/ 요대(腰帶)를 풀어 내린다(解下)/ 만약 사생(死生)을 찾는다면/ 피대(皮袋; 肉體)에게 문취(問取)하라. 사왈 무엇이 이 본래의 불성입니까. 공왈(公曰) 금일 더위()가 작일(昨日)과 같습니다. 소리 따라 바로 스님에게 묻되 임행(臨行)1구가 무엇입니까(作麽生). 사왈 본래 괘애(罣礙; 저본에 𦊱礙로 지었음)가 없어 곳을 따라 방원(方圓)에 맡깁니다. 공왈(公曰) 만래(晩來; 저녁 무렵)에 곤권(困倦)하여 다시 답화(答話)하지 못합니다. 사왈 부처가 없는 곳에서 부처를 지으시오. ()이 이에 박연(泊然)히 서거했다.

敦遣; 공경히 보냄(恭送).

 

仁宗皇帝尤留神空宗 聞李公之化 與師問答 加歎久之 師哭之慟 臨壙而別 有旨賜官舟南歸 中途謂侍者曰 我忽得風痺疾 視之口吻已喎斜 侍者以足頓地曰 當柰何 平生呵佛罵祖 今乃爾 師曰 無憂 爲汝正之 以手整之如故 曰 而今而後 不鈍置汝 後年正月五日示寂 壽五十四 臘三十二 銘行實於興化 塔全身於石霜續通鑑則平河東 在太平興國己卯 據佛運統紀 則師入滅於康定庚辰 以壽數逆而推之 則雍熈丁亥師始生 僧寶傳所載 恐失考證

風痺; 因風寒濕侵襲而引起的肢節疼痛或麻木的病症

 

인종황제(仁宗皇帝)가 더욱() 공종(空宗)에 유신(留神; 注意)했다. 이공(李公)의 화(; 逝世)를 듣자 스님과 문답하면서 가탄(加歎)함이 오래였다. 스님이 곡()하며 서러워했고() 임광(臨壙)하여 이별했다. 성지(聖旨)가 있어 관주(官舟)를 주어 남귀(南歸)했다. 중도(中途)에 시자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홀연히풍비질(風痺)을 얻었다. 그것을 보매 입술(口吻)이 이미 와사(喎斜)였다. 시자가 발을 땅에 안돈(安頓; )하고 가로되 마땅히 어찌해야 합니까(當柰何). 평생 가불매조(呵佛罵祖)하더니 이제 이에 그러합니다(乃爾). 사왈 근심하지 말아라(無憂). 너를 위해 그것을 바르게 하겠다. 손으로써 그것을 가지런히() 하자 예()와 같았다. 가로되 이금이후(而今而後)에 너를 둔치(鈍置; 괴롭히다)하지 않겠다. 후년(後年) 정월 5일 시적(示寂)했다. 나이는 54녀 납은 32. 행실(行實)을 흥화(興化)에 명()했고 전신을 석상(石霜)에 탑(; 건탑)했다續通鑑은 곧 河東平定함이 太平興國 己卯(979)에 있다. 佛運統紀에 의거하자면 곧 스님이 康定 庚辰(1040)入滅했다. 壽數로써 거슬러 추리하자면 곧 雍熈 丁亥(987)에 스님이 처음 출생했다. 僧寶傳에 실린 바는 考證을 잃었는가 염려된다

風痺; 바람의 한습(寒濕)이 침습(侵襲)함으로 인해 인기(引起)하는 지절(肢節)의 동통(疼痛) 혹 마목(麻木; 麻痹)의 병증(病症).

 

滁州琅邪山慧覺廣照禪師

西洛人也 父爲衡陽太守 因疾傾喪 師扶櫬歸洛 過澧陽藥山古刹 宛若夙居 緣此出家 遊方參問 得法汾陽 應緣滁水 與雪竇明覺同時唱道 四方皆謂二甘露門 逮今淮南遺化如在 僧問 如何是佛 師曰 銅頭鐵額 曰 意旨如何 師曰 鳥觜魚腮 上堂 奇哉十方佛 元是眼中花 欲識眼中花 元是十方佛 欲識十方佛 不是眼中花 欲識眼中花 不是十方佛 於此明得 過在十方佛 於此未明 聲聞起舞 獨覺臨粧 珍重

傾喪; 意謂喪失身命 傾 傷 殘

 

저주(滁州) 낭야산(琅邪山) 혜각(慧覺) 광조선사(廣照禪師)

서락(西洛; 洛陽) 사람이다. 아버지가 형양태수(衡陽太守)가 되었는데 질병으로 인해 경상(傾喪)했다. 스님이 널을 떠받치고(扶櫬) 서락(西洛)으로 돌아오다가 예양(澧陽) 약산고찰(藥山古刹)을 지나는데 완연(宛然)히 예전에 거주한 것 같았다. 이 때문에(緣此) 출가하였고 유방(遊方)하며 참문(參問)했으며 분양(汾陽; 善昭)에게서 법을 얻었다. 저수(滁水)에서 응연(應緣)했고 설두명각(雪竇明覺; 重顯이니 운문하 3)과 동시에 창도(唱道)했으니 사방에서 모두 이르기를 2감로문(甘露門)이라 했다. 지금에 이르도록() 회남(淮南)에선 유화(遺化)가 있는 듯하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동두철액(銅頭鐵額)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조취어시(鳥觜魚腮; 새의 부리와 고기의 뺨). 상당(上堂) 기이하다 시방불(十方佛)이여 원래 이 안중화(眼中花)니 안중화를 알고자 한다면 원래 이 시방불이다. 시방불을 알고자 한다면 이 안중화가 아니며 안중화를 알고자 한다면 이 시방불이 아니다. 여기에서 명득(明得)한다면 허물이 시방불에 있고 여기에서 밝히지 못한다면 성문(聲聞)이 기무(起舞)하고 독각(獨覺)이 임장(臨粧; 丹粧에 임함)한다. 진중(珍重).

傾喪; 뜻으로 이르자면 신명을 상실함. ()은 상(), ().

 

僧問 阿難結集卽不問 迦葉微笑事如何 師曰 尅時尅節 曰 自從靈鷲分燈後 直至支那耀古今 師曰 點朱點漆 問 如何是賓中賓 師曰 手𢹂書劒謁明君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卷起簾來無可覩 曰 如何是主中賓 師曰 三更過孟津 曰 如何是主中主 師曰 獨坐鎭寰宇 問 蓮花未出水時如何 師曰 猫兒戴紙帽 曰 出水後如何 師曰 狗子著靴行 問 拈椎竪拂卽不問 瞬目揚眉事若何 師曰 趙州曾見南泉來 曰 學人未曉 師曰 今冬多雨雪 貧家爭奈何

支那; 又作脂那 至那 翻譯名義集三 脂那 婆沙二音 一云支那 此云文物國 卽讚美此方 是衣冠文物之地也 二云指難 此云邊鄙 卽貶挫此方非中國也 西域記云 摩訶至那 此曰大唐

 

승문(僧問) 아난의 결집(結集)은 곧 묻지 않습니다. 가섭이 미소한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극시극절(尅時尅節; 시절을 참고 견딤)이다. 가로되 영취(靈鷲)에서 분등(分燈)한 후로부터 바로 지나(支那)에 이르기까지 고금(古今)을 빛냅니다(耀). 사왈 점주점칠(點朱點漆; 朱砂를 점 찍고 옻을 점 찍다)했다. 묻되 무엇이 이 빈중빈(賓中賓)입니까. 사왈 손에 서검(書劒)을 가지고(𢹂) 명군(明君)을 알현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발()을 말아 일으켰으나(卷起) 가히 볼() 게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3()에 맹진(孟津)을 지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독좌(獨坐)하여 환우(寰宇)를 진정(鎭定; )한다. 묻되 연화(蓮花)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양이(猫兒)가 지모(紙帽)를 인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개(狗子)가 신을 신고(著靴) 다닌다. 묻되 염추수불(拈椎竪拂)은 곧 묻지 않습니다. 순목양미(瞬目揚眉; 눈을 깜작이고 눈썹을 치켜 세움)하는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조주가 일찍이 남천을 보고 왔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금년 겨울엔 눈 내림이 많으니(今冬多雨雪) 빈가(貧家)는 어찌하겠는가(爭奈何).

支那; 또 지나(脂那)ㆍ지나(至那)로 지음. 번역명의집3. 지나(脂那) 파사이음(婆沙二音)이다. 1() 지나(支那)는 여기에선 이르되 문물국(文物國)이다. 곧 이 지방을 찬미함이니 이는 의관문물(衣冠文物)의 땅이다. 2() 지난(指難)은 여기에선 이르되 변비(邊鄙)이다. 곧 이 지방은 중국이 아님을 폄하(貶下)하여 꺾음이다. 서역기에 이르되 마하지나(摩訶至那)는 여기에선 가로되 대당(大唐)이다.

 

上堂 欲知常住身 當觀爛壞體 欲知常住性 當觀拄杖子 拄杖子呑却須彌 須彌呑却拄杖子 衲僧到這裡 若也擬議 劒梁落膊輸降款 鐵作胸襟到海隅 擊禪牀 下座 上堂 見聞覺知 俱爲生死之因 見聞覺知 正是解脫之本 譬如師子反躑 南北東西且無定止 汝等諸人 若也不會 且莫孤負釋迦老子 吽 上堂 山僧今日 爲諸人說破 明眼衲僧莫去泥裡打坐 珍重 上堂 天高莫測 地厚寧知 白雲片片嶺頭飛 綠水潺潺㵎下急 東湧西沒一句卽不問 你生前殺後一句作麽生道 良久曰 時寒喫茶去

降款; 降服 降書

打坐; 指跏趺而坐 使心入定 卽指坐禪 打 動作行爲之意

 

상당(上堂) 상주신(常住身)을 알고 싶거든 마땅히 난괴체(爛壞體; 문드러져 무너진 몸)를 관()하고 상주성(常住性)을 알고 싶거든 마땅히 주장자를 관하라. 주장자가 수미산을 삼켜버리고 수미산이 주장자를 삼켜버린다. 납승이 이 속에 이르러 만약에 의의(擬議)한다면 검량(劒梁; 칼등)이 팔뚝에 떨어지니 항관(降款)을 보내고() 쇠로 흉금(胸襟)을 지어 해우(海隅; 海邊)에 이른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견문각지(見聞覺知)는 모두() 생사의 인()이 되며 견문각지는 바로() 이 해탈의 본()이다. 비여(譬如) 사자가 반척(反躑; 구르면서 차다)하면 남북동서에 또() 정지(定止)가 없다. 너희 등 제인이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또() 석가노자(釋迦老子)를 고부(孤負; 저버림)하지 말아라. (). 상당(上堂) 산승이 금일 제인을 위해 설파(說破)하겠다. 명안납승(明眼衲僧)은 진흙 속으로 가서 타좌(打坐)하지 말아라. 진중(珍重). 상당(上堂) 하늘은 높아서 헤아리지 못하며 땅은 두껍거늘 어찌() 알겠는가. 백운은 편편(片片)이 영두(嶺頭)에 날고 녹수(綠水)는 잔잔(潺潺)히 간하(㵎下)에 급하다. 동용서몰(東湧西沒)하는 1구는 곧 묻지 않거니와 너희가 생전(生前)과 살후(殺後; 사후)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때가 추우니 끽다하러 가거라(喫茶去).

降款; 항복(降服). 항서(降書).

打坐; 가부(跏趺)하고 앉아서 마음으로 하여금 입정(入定)하게 함이니 곧 좌선을 가리킴. ()는 동작과 행위의 뜻.

 

上堂 阿呵呵 是甚麽 開口是 合口過 輕舟短棹汎波心 簑衣箬笠從他破 上堂 十方諸佛是箇爛木橛 三賢十聖是箇茅溷頭籌子 汝等諸人來到這裏作麽 良久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上堂 剪除狂宼 掃蕩攙搶 猶是功勳邊事 君臣道合 海晏河淸 猶是法身邊事 作麽生是衲僧本分事 良久曰 透網金鱗猶滯水 回途石馬出紗籠 上堂 承言須會宗 勿自立規矩 若人下得通方句 我當刎頸而謝之

阿呵呵; 禪錄中常用的嘆詞 呵 虎何切 笑聲

; 發笑語 或當師家敎化學人之際 於某些難以表達之事物 皆說此字 略具嘲笑之意味

三賢十聖; 祖庭事苑八 三賢十聖 華嚴明十住十行十回向爲賢 十地爲聖 妙覺爲佛 十聖者 卽十地聖人 一歡喜 二離垢 三發光 四焰慧 五難勝 六見前 七遠行 八不動 九善慧 十法雲 涅槃()云 菩薩位階十地 尙不能了了知見佛性 何況聲聞緣覺之人能得見邪 譬如醉人欲涉遠路 矇聾見道 十地菩薩於如來知見少分 亦復如是

茅溷頭; 茅溷 厠所 頭 後綴

攙搶; 祖庭事苑六 攙搶 天文志云 攙搶 棓彗 其殃一也 爲有破國亂軍 伏死其辜 餘殃不盡 爲旱 凶 飢 暴 疾 又漢書音義曰 妖星曰孛星 彗星 長星 亦曰攙搶 絶跡而去曰飛星 光跡相連曰流星

功勳邊事; 謂屬于積累功德 引來福報之事 在禪家看來 因果報應之說只是佛的方便法門 功勳邊事竝不能使人徹悟心地超越生死

海晏河淸; 大海安靜 黃河水淸 形容天下太平無事 禪宗多用以指心中十分寧靜 沒有煩惱

規矩; 禪林寶訓音義 規矩 圓器曰規 方器曰矩 乃叢林之模範也

 

상당(上堂) 아하하(阿呵呵) 이 뭣고. 입 열면 옳지만() 입 닫으면 허물이다. 경주(輕舟)와 단도(短棹)를 파도 가운데(波心) 띄우고 사의(簑衣)와 약립(箬笠; 대나무 삿갓)은 그 해진 대로 좇는다(從他破). (). 상당(上堂) 시방제불은 시개(是箇; 는 조사) 썩은 나무 말뚝(爛木橛)이며 삼현십성(三賢十聖)은 시개(是箇) 모혼두(茅溷頭)의 주자(籌子; 뒷간에서 쓰는 댓조각). 너희 등 제인이 이 속에 내도(來到)하여 무엇하겠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광구(狂宼; 미친 도적떼)를 전제(剪除)하고 참창(攙搶)을 소탕(掃蕩)함은 오히려 이 공훈변사(功勳邊事)며 군신(君臣)의 도가 합하고 해안하청(海晏河淸)함은 오히려 이 법신변사(法身邊事). 무엇이(作麽生) 이 납승의 본분사인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물을 뚫은 금린(金鱗)은 오히려 물에 체재하고 길을 돌린 석마가 사롱(紗籠; 紗燈籠이니 여러 빛깔의 깁으로 거죽을 씌운 등롱)을 탈출한다. 상당(上堂) 말씀 받들자 모름지기 종()임을 알고 스스로 규구(規矩)를 세우지 말아라. 만약 사람이 통방구(通方句)를 하득(下得)한다면 내가 마땅히 목을 베어(刎頸) 감사(感謝)하리라.

阿呵呵; 선록 중 상용하는 탄사(嘆詞). ()는 호하절(虎何切; )이니 웃는 소리.

; 웃음을 발하는 말. 혹 사가가 학인을 교화하는 즈음에 당해서 모사(某些; 몇몇), 표달(表達)하기 어려운 사물에 모두 이 글자를 설함. 조금 조소(嘲笑)의 의미를 갖춤.

三賢十聖; 조정사원8. 삼현십성(三賢十聖) 화엄경에 밝히기를 10주ㆍ10행ㆍ10회향은 현()이 되고 10지는 성()이 되고 모각(妙覺)은 불()이 된다. 10성이란 것은 곧 10지의 성인이니 1은 환희(歡喜)2는 이구(離垢)3은 발광(發光)이며 4는 염혜(焰慧)5는 난승(難勝)이며 6은 현전(見前)이며7은 원행(遠行)이며 8은 부동(不動)이며 9는 선혜(善慧)10은 법운(法雲)이다. 열반경()에 이르되 보살의 위계(位階)10지라도 오히려 능히 요료(了了)히 불성을 지견(知見)하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성문과 연각의 사람이 능히 득견하겠는가. 비유컨대 취한 사람이 먼 길을 발섭(跋涉;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감.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님)하려다가 몽롱(矇聾; 은 눈 어둘 몽. 은 귀머거리 롱)히 길을 봄과 같나니 십지보살이 여래의 지견에 소분(少分)임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茅溷頭; 모혼(茅溷)은 측소(厠所; 뒷간). ()는 후철(後綴).

攙搶; 조정사원6. 참창(攙搶) 천문지(天文志; 한서26)에 이르되 참창(攙搶)과 부혜(棓彗; 는 별 이름)는 그 재앙이 하나다. 나라가 깨어지고 군()이 어지러움이 있으며 그 재난(災難; )에 복사(伏死; 엎드려 죽음)하고 여앙(餘殃)이 다하지 않아 한흉기폭질(旱凶飢暴疾; 가뭄ㆍ흉년ㆍ기근ㆍ폭풍ㆍ질병)이 된다. 또 한서음의(漢書音義)에 가로되 요성(妖星)을 가로되 패성(孛星; 彗星)ㆍ혜성(彗星)ㆍ장성(長星)이며 또한 가로되 참창(攙搶)이다. 자취를 끊고 감을 가로되 비성(飛星)이며 광적(光跡)이 서로 이음을 가로되 유성(流星)이다.

功勳邊事; 이르자면 적루(積累)한 공덕에 속하며 복보(福報)의 일을 당겨 옴. 선가가 보아 옴에 있어선 인과보응의 설은 다만 이 부처의 방편법문임. 공훈변사는 모두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심지를 철오하거나 생사를 초월하게 하지 못함.

海晏河淸; 대해가 안정(安靜)되고 황하의 물이 맑음이니 천하가 태평무사함을 형용함. 선종에선 다분히 써서 심중에 십분 영정(寧靜)하고 번뇌가 있지 않음을 가리킴.

規矩; 선림보훈음의. 규구(規矩) 둥근 기구를 가로되 규()며 모난 기구를 가로되 구()니 곧 총림의 모범임.

 

上堂 拈起拄杖曰 山僧有時一棒作箇漫天網 打俊鷹快鷂 有時一棒作箇布絲網 摝蜆撈蝦 有時一棒作金毛師子 有時一棒作蝦蟇蚯蚓 山僧打你一棒 且作麽生商量 你若緇素得出 不妨拄杖頭上眼 開照四天下 若也未然 從敎立在古屛畔 待使丹靑入畵圖 上堂 擊水魚頭痛 穿林宿鳥驚 黃昏不擊皷 日午打三更 諸禪德旣是日午 爲甚却打三更 良久曰 昨見垂楊綠 今逢落葉黃

布絲網; 蜘蛛網

 

상당(上堂)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산승이 어떤 때는 한 방()으로 저() 만천망(漫天網)을 지어 준응쾌요(俊鷹快鷂; 俊快한 새매)를 잡고() 어떤 때는 한 방으로 저 포사망(布絲網)을 지어 녹현노하(摝蜆撈蝦; 바지락을 흔들고 새우를 건짐)한다. 어떤 때의 한 방은 금모사자(金毛師子)를 짓고 어떤 때의 한 방은 하마구인(蝦蟇蚯蚓; 두꺼비와 지렁이)을 짓는다. 산승이 너희를 한 방 때리면 그래 어떻게 상량(商量)하겠는가. 너희가 만약 치소(緇素; 分辨)하여 냄을 얻는다면 주장두상(拄杖頭上)의 눈이 사천하(四天下)를 개조(開照)함에 방애(妨礙)되지 않으려니와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옛 병풍 가에 있는 대로 좇나니 단청(丹靑; 丹靑手)을 시켜 화도(畵圖)에 넣음을 기다리겠다. 상당(上堂) 격수(擊水)하면 물고기의 머리가 아프고 천림(穿林; 숲을 뚫고 지나감)하면 자던 새(宿鳥)가 놀란다. 황혼에 격고(擊皷)하지 않고 일오(日午)3()을 친다. 제선덕(諸禪德)이여 이미 이 일오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3경을 치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어제() 수양(垂楊)의 푸름을 보았는데 금일() 낙엽의 누럼을 만났다.

布絲網; 지주망(蜘蛛網; 거미줄의 그물).

 

上堂 拈起拄杖 更無上上 放下拄杖 是何模樣 髑髏峰後卽不問汝諸人 馬鐙裏藏身一句作麽生道 若道不得 拄杖子道去也 卓一下 便歸方丈 上堂 進前卽死 退後卽亡 不進不退 又落在無事之鄕 何故 長安雖樂 不是久居 上堂 汝等諸人在我這裏過夏 與你點出五般病 一不得向萬里無寸草處去 二不得孤峰獨宿 三不得張弓架箭 四不得物外安身 五不得滯於生殺 何故 一處有滯 自救難爲 五處若通 方名導師 汝等諸人若到諸方 遇明眼作者 與我通箇消息 得祖風不墜 若是常徒 卽便寢息 何故 躶形國裏誇服飾 想君太煞不知時

; 一希望 貴 欲也 二使 使得 此指二

 

상당(上堂) 주장자를 염기(拈起)하면 다시 상상(上上)이 없거니와 주장자를 방하(放下)하면 이 어떤 모양(模樣)인가. 촉루(髑髏)의 봉우리 뒤는 곧 너희 제인(諸人)에게 묻지 않거니와 마등(馬鐙; 馬鐙子) 속에 장신(藏身)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주장자가 말하여 갈 것이다. 한 번 치고(卓一下)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상당(上堂) 진전(進前)하면 곧 죽고 퇴후(退後)하면 곧 망하고 부진불퇴(不進不退)하면 또 무사지향(無事之鄕)에 떨어져 있다. 무슨 연고냐. 장안이 비록 즐겁지만 이 오래 거주할 만하지 않다. 상당(上堂) 너희 등 제인(諸人)이 나의 이 속에 있으면서 과하(過夏)하니 너희를 위해() 다섯 가지 병(五般病)을 점검해 내겠다(點出). 1은 만 리에 촌초(寸草)도 없는 곳을 향해 감을 얻지 말아라. 2는 고봉(孤峰)에 독숙(獨宿)함을 얻지 말아라. 3은 장궁가전(張弓架箭; 활줄을 당겨 화살을 架設)함을 얻지 말아라. 4는 물외(物外)에 안신(安身)함을 얻지 말아라. 5는 생살(生殺)에 체재(滯在)함을 얻지 말아라. 무슨 연고냐, 한 곳에 체재함이 있으면 자기를 구제하기 어렵나니 다섯 곳을 만약 통한다면 바야흐로 이름이 도사(導師). 너희 등 제인이 만약 제방에 이르러 명안작자(明眼作者)를 만나거든 나에게 () 소식을 통지하여 주어서 조풍(祖風)이 추락하지 않음을 얻게() 하라. 만약 이 상도(常徒)일진대 곧바로(卽便) 침식(寢息)하리니 무슨 연고냐, 나형국(躶形國) 속에서 복식(服飾)을 자랑한다면 생각건대 그대는 너무(太煞) 시절을 알지 못한다 하노라.

; 1. 희망이니 귀()는 욕(). 2. (使)임 사득(使得).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上堂 山僧因看華嚴金師子章第九由心回轉善成門 又釋曰 如一尺之鏡 納重重之影象 若然者道有也得 道無也得 道非亦得 道是亦得 雖然如是 更須知有拄杖頭上一竅 若也不會 拄杖子穿燈籠 入佛殿 撞著釋迦 磕倒彌勒 露柱拊掌 呵呵大笑 你且道笑箇甚麽 卓拄杖下座 上堂 拈拄杖曰 盤山道向上一路滑 南院道壁立千仞嶮 臨濟道石火電光鈍 琅邪有定乾坤底句 各各高著眼 高著眼 卓拄杖下座

華嚴金師子章; 略稱金師子章 一卷 華嚴宗之法藏 對唐則天武后 借庭前金師子爲喩 以十門顯華嚴之敎觀者 收於大正藏第四十五冊

 

상당(上堂) 산승이 인하여 화엄금사자장(華嚴金師子章) 9 유심회전선성문(由心回轉善成門)을 보았는데 또 해석해 가로되 1척의 거울이 중중한 영상(影象)을 수납함과 같다 하였다. 만약 그러할진대(若然者) ()라고 말해도 옳고() ()라고 말해도 옳고 비()라고 말해도 또한 옳고 시()라고 말해도 또한 옳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다시 꼭 주장두상(拄杖頭上; 저본에 挂杖頭上으로 지었음)에 일규(一竅; 한 구멍)가 있음을 알야야 하나니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주장자가 등롱(燈籠)을 뚫고(穿) 불전(佛殿)에 들고 석가를 당착(撞著; 치다)하고 미륵을 개도(磕倒; 부딪쳐 넘어뜨림)하매 노주(露柱)가 부장(拊掌)하며 하하대소(呵呵大笑)한다. 너희가 그래 말하라 저() 무엇을 웃느냐. 주장자를 치고(卓拄杖) 하좌했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집어 가로되 반산(盤山; 寶積)이 말한 향상일로(向上一路)는 미끄럽고() 남원(南院; 慧顒)이 말한 벽립천인(壁立千仞)은 위험하고() 임제가 말한 석화전광(石火電光)은 둔하다(). 낭야(琅邪)가 건곤을 정()하는 구()가 있나니 각각 높이 착안(著眼)하라. 높이 착안하라.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華嚴金師子章; 약칭이 금사자장(金師子章). 1. 화엄종의 법장(法藏)이 당 측천무후을 상대해 뜰 앞의 금사자를 빌려 비유로 삼아 10()으로써 화엄의 교관을 밝힌 것. 대정장 제45책에 수록되었음.

 

瑞州大愚山守芝禪師

纔陞座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言出口 駟馬難追 問 如何是城裏佛 師曰 十字街頭石幢子 問 不落三寸時如何 師曰 乾三長坤六短 曰 意旨如何 師曰 切忌地盈虛 問 昔日靈山分半座 二師相見事如何 師曰 記得麽 僧良久 師打禪牀一下曰 多年忘却也 乃曰 且住且住 若向言中取則 句裏明機 也似迷頭認影 若也擧唱宗乘 大似一場寐語 雖然如是 官不容針 私通車馬 放一線道 有箇葛藤處 遂敲禪牀一下曰 三世諸佛 盡皆頭痛 且道大衆 還有免得底麽 若一人免得 無有是處 若免不得 海印發光 師乃竪起拂子曰 這箇是印 那箇是光 這箇是光 那箇是印 掣電之機 徒勞佇思 會麽 老僧說夢 且道夢見箇甚麽 南柯十更若不會 聽取一頌 北斗挂須彌 杖頭挑日月 林泉好商量 夏末秋風切 珍重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天寒日短 問 心法無形 如何雕琢 師曰 一丁兩丁 曰 未曉者如何領會 師曰 透七透八

石幢子; 石幢 子 後綴 幢 爲竿柱高出 以種種之絲帛莊嚴者

乾三長坤六短; 象形乾卦()與坤卦()

分半座; 同分座 祖庭事苑五 分半座 雜阿含四十一云 尊者迦葉 長須髮 著弊衲衣 來詣佛所 爾時世尊 無數大衆圍繞說法 時諸比丘 起輕慢心言 此何等比丘 衣服麤陋 無有容儀 佯佯而來 爾時世尊 知諸比丘心之所念 告摩訶迦葉 善來迦葉 於此半坐 我今竟知誰先出家 汝邪我邪 彼諸比丘心生恐怖 身毛皆竪 竝相謂言 奇哉 尊者迦葉 大德大力 大師弟子 請以半座 爾時迦葉 合掌白佛 佛是我師 我是弟子 佛告迦葉 如是如是 我爲大師 汝是弟子 今且坐 隨其所安 迦葉 此云飮光 以身光隱伏諸天故

迷頭認影; 意謂愚癡者迷失自己眞性 却認假相爲眞

南柯; 唐代東平淳于芬 吳楚游浹之士 恃酒不撿 家住郡東 有大槐樹 枝葉扶疏 一日 過飮致疾 扶歸臥于東序之下 夢中忽然見二紫衣使者跪曰 槐安國王遣臣奉迎 扶芬登車出戶 指古穴而去 入大城門 門樓榜曰大槐安國 未幾 見一女 号金枝公主 容貌姣好 芬交之 頗甚歡娛 王一日謂芬曰 吾南柯郡事不理 太守黜廢 欲藉卿典之 可與小女同行 行至城門 榜曰南柯郡 芬典之二十餘年 芬妻遘疾 旬日而死 諡順義公主 葬于國東盤龍崗 王謂芬曰 卿辭家日久 可歸 芬方大覺 因出戶尋槐樹下穴 尋究穴下 可袤丈尺 有太穴 夷坦洞然 可容一榻 有積壤如臺榭 群螘輔之 此卽螘王槐安國之都 又一穴 有一腐龜 殻大如斗 有小墳高尺餘 卽芬葬妻之墓 芬追前事 感嘆無已 見靈怪集 [祖庭事苑五]

 

서주(瑞州) 대우산(大愚山) 수지선사(守芝禪師)

겨우 승좌(陞座)하자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언(一言)이 입에서 나가면 사마(駟馬)라도 쫓기() 어렵다. 묻되 무엇이 이 성리(城裏)의 부처입니까.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의 석당자(石幢子; 는 조사). 묻되 삼촌(三寸; )에 떨어지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건삼장곤육단(乾三長坤六短)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땅이 영허(盈虛)함을 절기(切忌)한다. 묻되 지난날(昔日) 영산(靈山)에서 반좌를나누어(分半座) 2()가 상견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왈 기득(記得)하느냐. 중이 양구(良久)했다. 스님이 한 번 선상을 때리고 가로되 다년(多年)에 망각했다 이에 가로되 다만 멈추어라(且住), 다만 멈추어라. 만약 언중(言中)을 향해 취칙(取則)하거나 구리(句裏)에서 명기(明機; 기를 밝히다)하면 또한 머리를 미혹해 영상(影像; )을 인정함(迷頭認影)과 같고 만약에 종승(宗乘)을 거창(擧唱)한다면 한바탕(一場)의 매어(寐語; 잠꼬대)와 매우 흡사(大似)하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관가(官家)에선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私的)으론 거마도 통하나니 일선도(一線道)를 놓아 저() 갈등(葛藤)할 곳이 있다. 드디어 선상을 한 번 두드리고 가로되 삼세제불이 모두 다 두통(頭痛)이거늘 그래 말하라 대중에 도리어 면득(免得)할 이가 있느냐. 만약 한 사람이라도 면득한다면 옳은 곳이 있지 않고 만약 면함을 얻지 못한다면 해인(海印)이 발광(發光)한다. 스님이 이에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인()이니 어느 것(那箇)이 이 광()인가. 이것은 이 광()이니 어느 것이 이 인()인가. 체전(掣電; 閃電)의 기()인지라 저사(佇思)는 헛수고(徒勞). 아느냐, 노승이 설몽(說夢)했나니 그래 말하라 꿈에 본 것이 무엇인가. 남가(南柯)의 십경(十更)을 만약 알지 못한다면 1송을 청취(聽取)하라. 북두(北斗)에 수미(須彌)가 걸렸고()/ 장두(杖頭)로 일월(日月)을 메었다()/ 임천(林泉)에서 잘() 상량(商量)할지니/ 하말(夏末)에 추풍이 절박(切迫; )하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날이 추우니(天寒) 해가 짧다. 묻되 심법(心法)은 무형(無形)이거늘 어떻게 조탁(雕琢)합니까. 사왈 일정양정(一丁兩丁)이다. 가로되 깨닫지 못하는(未曉) 자는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칠을 투과하고 팔을 투과하라(透七透八).

石幢子; 석당이니 자는 후철. ()은 간주(竿柱)가 고출(高出)했고 갖가지 사백(絲帛)으로 장엄한 것.

乾三長坤六短; 건괘()와 곤괘()를 상형(象形).

分半座; 분좌(分座)와 같음. 조정사원5. 분반좌(分半座) 잡아함41에 이르되 존자가섭이 긴 수염과 머리카락에 해진 납의를 입고 불타의 처소에 내예(來詣)했다. 이때 세존이 무수한 대중이 위요(圍繞)하며 설법했다. 때에 여러 비구가 경만심을 일으켜 말하되 이 무엇 등의 비구가 의복이 추루(麤陋; 거칠고 더러움)하여 용의(容儀)가 있지 않으면서 양양(佯佯; 은 득의한 모양)하게 오는가. 이때 세존이 모든 비구의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알고 마하가섭에게 고하시되 선래(善來)로다 가섭이여. 이 반좌(半坐)에 의지하라(依支할 어). 내가 지금 필경 아노니 누가 먼저 출가했는가. 너인가. 나인가. 그 모든 비구가 마음에 공포를 내어 신모(身毛)가 다 일어났다. 아울러 서로 일러 말하되 기이하구나. 존자가섭은 덕이 크고 힘이 큰 대사(大師)의 제자인지라 반좌(半座)로써 청하셨도다. 이때 가섭이 합장하고 불타에게 사뢰되 불타는 이 나의 스승이시며 나는 이 제자입니다. 불타가 가섭에게 고하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나는 대사가 되고 너는 이 제자니라. 이제 다만() 앉아서 그 편안한 바를 따르라. 가섭은 여기에선 이르되 음광(飮光)이니 그 신광(身光)이 제천(諸天)을 은복(隱伏; 은 감출 복. 곧 숨기어 감춤)하는 연고임.

迷頭認影; 뜻으로 이르자면 우치한 자가 자기의 진성을 미실(迷失)하고 도리어 가상(假相)을 인정해 진실로 삼음.

南柯; 당대 동평(東平)의 순우분(淳于芬)은 오초(吳楚)의 유협(游浹)의 사내다. 술을 믿고 검교(撿校; 살펴서 바르게 함)하지 않았다. 집이 군의 동쪽에 거주했는데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가지와 잎이 부지하며 성기었다. 어느 날 과음이 질병이 되어 부축해 돌아와 동서(東序; 는 담장 서. 곧 동쪽의 담장)의 아래에 누웠다. 몽중에 홀연히 두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를 보았는데 꿇어앉아 가로되 괴안국(槐安國)의 왕께서 신을 보내 봉영(奉迎)하라 하셨습니다. 분을 부축해 수레에 오르게 하고 문호를 나서매 고혈(古穴; 오래된 움)을 가리키며 떠났다. 큰 성문에 들어갔는데 문루의 방에 가로되 대괴안국이라 했다. 얼마 안되어 한 여자를 보았는데 호가 금지공주(金枝公主)였다. 용모가 예쁘고 아름다웠으며 분이 그와 교접했는데 자못 매우 기쁘고 즐거웠다. 왕이 어느 날 분에게 일러 가로되 나의 남가군(南柯郡)이 일을 다스리지 못해 태수를 쫓아내 그만두게 하고 경에게 자뢰(藉賴; 는 빌릴 자. 곧 빙자하여 의뢰)하여 그것을 맡길까() 하노라. 가히 소녀와 동행하라. 가서 성문에 이르니 방()에 가로되 남가군(南柯郡)이었다. 분이 거기를 맡은 지 20여 년에 분의 처가 질병을 만나 열흘 만에 죽었다. 시호가 순의공주였으며 나라의 동쪽 반룡강(盤龍崗; 은 언덕 강)에 장사 지냈다. 왕이 분에게 일러 가로되 경이 집을 떠난 날이 오래니 돌아감이 옳다. 분이 비로소 크게 깨었다. 인하여 문호를 나서서 느티나무 아래의 움을 찾았다. 찾아서 움 아래를 궁구하니 가히 길이(는 길이 무)가 장여(丈尺; 10)이었고 큰 구덩이가 있는데 평평하고 휑덩그렁했다(洞然). 가히 한 걸상()을 수용할 만했다. 쌓인 흙이 있었는데 대사(臺榭; 는 정자 사)와 같았으며 뭇 개미가 그를 보필했으며 이것이 곧 개미왕이며 괴안국의 수도였다. 또 한 움에 한 썩은 거북이 있었고 껍데기의 크기가 말()과 같았다. 작은 봉분이 있었는데 높이가 한 자 가량이었다. 곧 분이 처를 안장한 묘였다. 분이 앞의 일을 추억하며 감탄하여 말지 않았다. 영괴집(靈怪集)을 보라 [조정사원5].

 

上堂 一擊響玲瓏 喧轟宇宙通 知音纔側耳 項羽江東 與麽會 恰認得驢鞍橋作阿爺下頷 上堂 大愚相接大雄孫 五湖雲水競頭奔 競頭奔有何門 擊箭寧知枯木存 枯木存 一年還會兩度春 兩度春 帳裏眞珠撒與人 撒與人 思量也是慕西秦 上堂 竪窮三際 橫徧十方 拈起也帝釋心驚 放下也地神膽戰 不拈不放 喚作甚麽 自云 蝦䗫 上堂 三世諸佛不知有 狸奴白牯却知有 乃拈起拂子云 狸奴白牯總在這裏放光動地 何謂如此兩段不同 問 如何是佛 師曰 鋸解秤錘 上堂 大衆集定 乃曰 現成公案 也是打揲不辦 便下座

項羽; (232-202) 名籍 字羽 楚國下相(今江蘇宿遷)人 楚國名將項燕之孫 項羽早年跟隨叔父項梁在吳中(今江蘇蘇州) 起義反秦 項梁陣亡後他率軍渡河救趙王歇 於巨鹿之戰擊破章邯 秦亡後稱西楚霸王 定都彭城(今江蘇徐州) 實行分封制 封滅秦功臣及六國貴族爲王 而後漢王劉邦從漢中出兵進攻項羽 項羽與其展開了歷時四年的楚漢戰爭 期間雖然屢屢大破劉邦 但項羽始終沒有固定的後方補給 糧草殆盡 又猜疑亞父范增 最後反被劉邦所滅 公元前二百二年 項羽戰敗於垓下(今安徽靈璧縣南) 突圍至烏江(今安徽和縣烏江鎭)邊 自刎而死 [百度百科]

江東; 古時指長江下流蕪湖 南京以下的南岸地區 也泛指長江下流地區 據有江東 [漢語詞典]

大雄; 爲偉大之英雄之意 爲佛之德號 因佛具有大智力 能降伏魔障 故稱大雄 法華經從地踊出品 善哉善哉 大雄世尊

鋸解秤錘; 猶鋸解秤鎚 形容至難成就之樣子

現成公案; 不借造作安排現成就之公案也

打揲不辦; 謂處置不好 弄不好 同打疊不辦 打揲 收拾 掃除 整理之義

 

상당(上堂) 일격(一擊)에 음향이 영롱(玲瓏)하고/ 훤굉(喧轟; 떠들썩함)하며 우주(宇宙)와 통한다/ 지음(知音)이 겨우 측이(側耳)하매/ 항우(項羽)가 강동(江東)을 지난다. 이렇게 안다면(與麽會) 흡사 여안교(驢鞍橋)를 인득(認得)해 아야(阿爺)의 아래턱으로 삼음이다(). 상당(上堂) 대우(大愚)가 대웅손(大雄; 대웅의 兒孫)을 상접(相接)하매 오호(五湖)의 운수(雲水)가 경두(競頭)하여 분주(奔走; )하다. 경두하여 분주하니 무슨 문()이 있느냐, 격전(擊箭)이 어찌() 고목(枯木)의 존재(存在; )를 알겠는가. 고목이 존재하니 1년에 도리어 두 차례(兩度; , )의 봄을 안다. 장리(帳裏)의 진주(眞珠)를 사람에게 뿌려() 주나니 사람에게 뿌려 줌이여, 사량(思量)하매 또() , 서진(西秦)을 그리워한다(). 상당(上堂) 세로()로는 3()를 다하고() 가로()로는 시방에 두루한다. 염기(拈起)하매 제석(帝釋)의 심장(心臟; )이 놀라고 방하(放下)하매 지신(地神)의 담()이 떨리거니와() 불념불방(不拈不放)하면 무엇이라고 불러 짓겠는가. 스스로 이르되 두꺼비(蝦䗫). 상당(上堂) 삼세제불은 지유(知有)하지 못하고 이노백고(狸奴白牯; 고양이와 흰 소)가 도리어 지유한다. 이에 불자를 집어 일으키고 이르되 이노백고가 모두() 이 속에 있으면서 방광동지(放光動地)하거늘 왜 이와 같이 양단(兩段)이 부동(不同)함을 이르는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톱으로 저울추를 가른다(鋸解秤錘). 상당(上堂) 대중이 집정(集定)하자 이에 가로되 현성공안(現成公案)이다. 또한 이 타접불판(打揲不辦)이다. 바로 하좌했다.

項羽; (232-202) 이름은 적()이며 자()는 우()며 초국(楚國) 하상(下相; 지금의 江蘇 宿遷) 사람이며 초국의 명장(名將) 항연(項燕)의 손자임. 항우는 젊은 나이에 숙부인 항량(項梁)을 따라 오중(吳中; 지금의 江蘇 蘇州)에 있으면서 기의(起義)하여 진()에 반역(反逆)했으며 항량이 진중(陣中)에서 사망한 후 그가 군대를 인솔하여 도하(渡河)하여 조왕(趙王) ()을 구제(救濟)하고 거록(巨鹿)의 전투에서 장감(章邯)을 격파했음. ()이 망한 후

)이라 일컬으며 도읍을 팽성(彭城; 지금의 江蘇 徐州)으로 정했음. 분봉제(分封制)를 실행했으니 진()을 멸한 공신(功臣)과 및 6()의 귀족을 봉()하여 왕으로 삼았음. 이후(而後)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한중(漢中)으로 좇아 출병하여 항우를 진공(進攻)하자 항우가 그와 더불어 4년의 시절을 경과하는 초한전쟁(楚漢戰爭)을 전개(展開)했음. 기간에 비록 그렇게 여러 차례 유방을 대파했지만 단지 항우는 시종 고정적(固定的)인 후방보급(後方補給)이 있지 않아서 양초(糧草)가 거의 다했으며 또 아부(亞父)인 범증(范增)을 시기(猜忌)하고 의심해 최후에 도리어 유방에게 멸망되는 바를 입었음. 공원전(公元前) 202년 항우가 해하(垓下; 지금의 安徽 靈璧縣 南)에서 전패(戰敗)하자 포위를 뚫고 오강(烏江; 지금의 安徽 和縣 烏江鎭) 가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음 [백도백과].

江東; 고시(古時) 장강 하류의 무호(蕪湖)와 남경 이하의 남안지구(南岸地區)를 가리켰음. 또한 널리 장강 하류지구를 가리킴이니 강동(江東)에 의거해 있음 [漢語詞典].

大雄; 위대한 영웅의 뜻이 됨. 불타의 덕호가 됨. 부처가 대지력을 갖추어 있으며 능히 마장을 항복함으로 인해 고로 대웅으로 호칭함. 법화경 종지용출품. 선재 선재라, 대웅세존이시여.

鋸解秤錘; 거해칭추(鋸解秤鎚)와 같음. 지극히 성취하기 어려운 양자(樣子; 모양) 형용.

現成公案; 조작과 안배를 빌리지 않는 현재 성취한 공안.

打揲不辦; 이르자면 처치가 좋지 않음. 희롱이 좋지 못함. 타첩불판(打疊不辦)과 같음. 타첩(打揲)은 수습ㆍ소제(掃除)ㆍ정리(整理)의 뜻.

 

上堂 大洋海底排班從頭第二𩯭毛斑 爲甚麽不道第一𩯭毛斑 要會麽 金蘂銀絲成玉露 高僧不坐鳳凰臺 上堂 衆集 乃曰 爲衆竭力 禍出私門 便下座 上堂 翠巖路嶮𡾟 擧步涉千溪 更有洪源水 滔滔在嶺西 擊禪牀 下座 示衆 擎起香合云 明頭合 暗頭合 道得天下橫行 若道不得且合却 下座 問 如何是爲人一句 師曰 四角六張 曰 意旨如何 師曰 八凹九凸 上堂 沙裏無油事可哀 翠巖嚼飯餧嬰孩 他時好惡知端的 始覺從前滿面埃 擊禪牀下座

從頭; 從最初

金蘂; 金色花蕊.

嚼飯餧嬰孩; 嚼爛飯粒餧給嬰孩 喩指慈婦心腸 禪家稱作老婆心

 

상당(上堂) 대양해저(大洋海底)에 배반(排班)하여 서니 최초로 좇아(從頭) 2의 빈모(𩯭毛; 살쩍)가 아롱졌다(). 무엇 때문에 제1의 빈모가 아롱졌다고 말하지 않느냐. 알고자 하느냐, 금예(金蘂)의 은사(銀絲)가 옥로(玉露)를 이루고 고승은 봉황대(鳳凰臺)에 앉지 않는다. 상당(上堂) 대중이 모이자 이에 가로되 대중을 위해 힘을 다했나니() ()가 사문(私門)에서 나온다.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취암로(翠巖路; 守芝가 후에 翠巖에 거주했음)가 험희(嶮𡾟; 險峻)하여 발을 들면(擧步) 천계(千溪)에 건넌다. 다시 홍원(洪源)의 물이 있나니 도도(滔滔)히 영서(嶺西)에 있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시중(示衆) 향합(香合; 香盒)을 받들어() 일으키고 이르되 명두(明頭)와 합()하느냐, 암두(暗頭)와 합하느냐. 말함을 얻으면 천하에 횡행(橫行)하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다만() 닫아버리겠다(合却). 하좌했다. 묻되 무엇이 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사각육장(四角六張)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팔요구철(八凹九凸)이다. 상당(上堂) 모래 속에 기름이 없는 일이 가애(可哀)하다. 취암(翠巖)이 밥알을 씹어 영해에게 먹이나니(嚼飯餧嬰孩) 다른 때 호오(好惡)의 단적(端的)을 안다면 비로소 종전(從前)에 얼굴 가득 티끌이었음을 깨달으리라.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從頭; 최초로 좇아.

金蘂; 금색 화예(花蕊; 꽃술).

嚼飯餧嬰孩; 밥알을 씹어 파쇄하여 영해(嬰孩; 어린아이)에게 먹여 공급함이니 자부(慈婦)의 심장에 비유함. 선가에서 호칭하기를 노파심이라 함.

 

潭州石霜法永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臂長衫袖短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布袴膝頭穿

 

담주(潭州) 석상(石霜) 법영선사(法永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팔이 길면 삼수(衫袖; 적삼의 소매)가 짧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포고(布袴; 베 바지)가 무릎(膝頭; 는 조사)을 뚫는다(穿).

 

舒州法華院全擧禪師

到公安遠和尙處 安問 作麽生是伽藍 師曰 深山藏獨虎 淺草露羣蛇 曰 作麽生是伽藍中人 師曰 靑松蓋不得 黃葉豈能遮 曰 道甚麽 師曰 少年翫盡天邊月 潦倒扶桑沒日頭 曰 一句兩句 雲開月露 作麽生 師曰 照破佛祖 到大愚芝和尙處 愚問 古人見桃花意作麽生 師曰 曲不藏直 曰 那箇且從 這箇作麽生 師曰 大街拾得金 四隣爭得知 曰 上座還知麽 師曰 路逢劒客須呈劒 不是詩人不獻詩 曰 作家詩客 師曰 一條紅線兩人牽 曰 玄沙道 諦當甚諦當 敢保老兄未徹在 又作麽生 師曰 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 曰 却是 師曰 樓閣凌雲勢 峰巒疊翠層

潦倒; 老衰之貌 潦 老之貌也

凌雲; 直上雲霄 多形容志向崇高或意氣高超

 

서주(舒州) 법화원(法華院) 전거선사(全擧禪師)

공안원(公安遠) 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공안이 묻되 무엇이(作麽生) 이 가람(伽藍)인가. 사왈 심산(深山)은 독호(獨虎)를 감추고 천초(淺草)엔 군사(羣蛇)가 드러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가람 중의 사람인가. 사왈 청송이 덮음을 얻지 못하거늘 황엽이 어찌 능히 가리겠는가(). 가로되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사왈 소년(少年)에 하늘 가의 달을 구경해 다했고(翫盡) 요도(潦倒)에 부상(扶桑)에 일두(日頭; )가 잠긴다(). 가로되 일구양구(一句兩句)에 구름이 열리고 달이 나타나나니() 어떠한가. 사왈 불조(佛祖)를 조파(照破)한다. 대우지(大愚芝; 守芝) 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대우가 묻되 고인(古人; 靈雲志勤)이 도화(桃花)를 본 뜻이 어떠한가(作麽生). 사왈 곡()이 직()을 감추지 못한다. 가로되 저것(那箇)은 다만 좇거니와 이것(這箇)은 어떠한가. 사왈 대가(大街)에서 금()을 습득(拾得)하매 사린(四隣)이 어찌 득지(得知)하겠는가. 가로되 상좌는 도리어 아느냐. 사왈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꼭 검을 주고() 이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않는다. 가로되 작가(作家)인 시객(詩客)이로구나. 사왈 한 가닥 홍선(紅線)을 두 사람이 끌어당긴다(). 가로되 현사가 말하되 체당(諦當)하고 심히 체당하지만 감히 보증컨대 노형이 철저하지 못하여 있다 한 것은 또 어떠한가. 사왈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 바닥을 보지만 사람은 죽어도 마음을 알지 못한다. 가로되 도리어 옳다(却是). 사왈 누각(樓閣)은 능운(凌雲)의 기세(氣勢; )며 봉만(峰巒; 산봉우리)은 첩취(疊翠; 짙푸름)의 층계(層階; ).

潦倒; 노쇠한 모양. ()는 늙은 모양임.

凌雲; 운소(雲霄; 高天)에 직상(直上)함이니 다분히 지향(志向)이 숭고(崇高)하거나 혹 의기(意氣)가 고초(高超)함을 형용.

 

到琅邪覺和尙處 邪問 近離甚處 師曰 兩浙 曰 船來陸來 師曰 船來 曰 船在甚處 師曰 步下 曰 不涉程途一句 作麽生道 師以坐具摵一摵曰 杜撰長老 如麻似粟 拂袖而出 邪問侍者 此是甚麽人 者曰 擧上座 邪曰 莫是擧師叔麽 先師敎我尋見伊 遂下 旦過問上座 莫是擧師叔麽 莫怪適來相觸忤 師便喝 復問 長老何時到汾陽 邪曰 某時到 師曰 我在浙江早聞你名 元來見解祇如此 何得名播寰宇 邪遂作禮曰 某甲罪過 師到杭州西菴 菴主曾見明招 主擧頌曰 絕頂西峯上 峻機誰敢當 超然凡聖外 瞥起兩重光 師曰 如何是兩重光 主曰 月從東出 日向西沒 師曰 菴主未見明招時如何 主曰 滿盞油難盡 師曰 見後如何 主曰 多心易得乾

兩浙; 浙東(金塘江以南)與浙西(金塘江以北)

步下; 步 埠也

杜撰長老; 指參習多年 未眞實明了佛法之禪師 杜撰; 原指在詩文或其他著作中 妄作論述而毫無根據之情形 其語由來下列諸說 一漢代之田何精通易學 遷居杜陵 世稱杜田生 然或謂其易學實無師承之處 故世人多以杜田 或杜園 譏之 後訛稱爲杜撰 二據傳 道家五千餘卷之書中 除道德經二卷外 其餘均爲唐末文人杜光庭所撰述 多屬虛誕之說 故後人多稱僅憑臆造而無所本之說爲杜撰 三宋代文人杜默作詩時 常不合律 時人遂以行事不合法式者 謂之杜撰

旦過; 行脚僧夕來寺院掛單 僅宿一夜 旦朝卽離去 取其夕來宿 過旦去之意 故稱旦過 此等行脚僧宿泊止住之寮舍 稱爲旦過寮 旦過堂 又志願掛搭叢林之僧 於正式入堂前 止宿於旦過寮 [百丈淸規下大衆章遊方參請條 幻住淸規延納條 象器箋殿堂類]

 

낭야각(琅邪覺; 慧覺) 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낭야가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습니까. 사왈 양절(兩浙)입니다. 가로되 배로 왔습니까, 육로로 왔습니까. 사왈 배로 왔습니다. 가로되 배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부두 아래(步下). 가로되 정도(程途)에 건너지 않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스님이 좌구(坐具)로 쳐서() 한 번 치고 가로되 두찬장로(杜撰長老)가 여마사속(如麻似粟)이다.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낭야가 시자에게 묻되 이는 이 어떤 사람이냐. 시자가 가로되 거상좌(擧上座)입니다. 야왈(邪曰) 이 거사숙(擧師叔)이 아닌가. 선사(先師)가 나로 하여금 그()를 찾아 보라 하셨다. 드디어 단과(旦過)에 내려가 상좌에게 묻되 이 거사숙(擧師叔)이 아니십니까. 아까 서로 촉오(觸忤)하였음을 괴이히 여기지 마십시오. 스님이 바로 할()했다. 다시 묻되 장로는 어느 때 분양(汾陽)에 이르렀는가. 야왈(邪曰) 모시(某時)에 이르렀습니다. 사왈 내가 절강(浙江)에 있으면서 일찍 너의 이름을 들었다. 원래 견해가 다만 이와 같으면서 어찌하여 명성이 환우(寰宇)에 전파(傳播; )됨을 얻었는가. 낭야가 드디어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모갑의 죄과(罪過)입니다. 스님이 항주(杭州) 서암(西菴)에 이르렀는데 암주는 일찍이 명초(明招; 德謙)를 친견했다. 암주가 송을 들어 가로되 절정(絕頂)의 서봉상(西峯上)/ 준기峻機)이거늘 누가 감히 당하겠는가/ 초연(超然)하여 범성(凡聖)의 밖이니/ 갑자기() 일으키매 양중광(兩重)이다. 사왈 무엇이 이 양중광(兩重光)인가. 주왈(主曰) 달이 동으로 좇아 나오고 해가 서를 향해 잠긴다. 사왈 암주가 명초를 친견하지 않았을 때 어떠한가. 주왈(主曰) ()에 가득한 기름은 다하기 어렵다. 사왈 친견한 후는 어떠한가. 주왈(主曰) 심지()가 많으면 쉽게 마름()을 얻는다.

兩浙; 절동(浙東; 金塘江 이남)과 절서(금당강 이북).

步下; ()는 부(; 埠頭).

杜撰長老; (參習)하기 여러 해에 불법을 진실로 밝게 깨치지 못한 선사를 가리킴. 杜撰; 원래 시문(詩文)이나 혹은 기타의 저작 가운데 있어 망령(妄靈)되이 논술을 지어 터럭만큼도 근거가 없는 정형(情形)을 가리킴. 그 말의 유래는 아래에 여러 설을 나열하겠음. 1. 한대(漢代)의 전하(田何)가 역학(易學)을 정통하였으며 두릉(杜陵)에 옮겨 거주했는데 세칭이 두전생(杜田生). 그러나 혹은 이르기를 그 역학이 실은 사승(師承)한 곳이 없는지라 고로 세인이 많이 두전(杜田) 혹은 두원(杜園)이라 하여 그를 비웃었음. 후에 잘못 호칭하여 두찬(杜撰)이라 했음. 2. ()에 의거하건대 도가(道家)5천여 권의 책 중에 도덕경 2(道經德經)을 제한 밖에 그 나머지는 균일하게 당말(唐末)의 문인인 두광정(杜光庭)이 찬술한 것이며 많이 허탄(虛誕)의 설에 속한지라 고로 후인이 많이들 겨우 억설(臆說)에 의빙하여 조작하고 근본할 바의 설이 없는 것을 일컬어 두찬(杜撰)이라 하였음. 3. 송대(宋代)의 문인 두묵(杜默)이 시를 지을 때 늘 율()에 맞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사람이 드디어 행사(行事)가 법식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杜撰)이라고 말했음.

旦過; 행각승이 저녁에 사원에 와서 괘단(掛單)하고 겨우 하룻밤을 숙박하고는 다음날 아침(旦朝)에 곧 떠남. 그 저녁에 와서 숙박하고 아침이 지나면 떠남의 뜻을 취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단과(旦過). 이런 등의 행각승이 숙박하며 머무는 요사를 일컬어 단과료ㆍ단과당이라 함. 또 뜻에 총림에 괘탑하기를 원하는 승인이 정식으로 입당하기 전 단과료에 머물며 숙박함 [백장청규하대중장유방참청조. 환주청규연납조. 상기전전당류].

 

住後 僧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白菊乍開重日暖 百年公子不逢春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大地絕消息 翛然獨任眞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草荒人變色 凡聖兩齊空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淸風與明月 野老笑相親 上堂 釋迦不出世 達磨不西來 佛法徧天下 談玄口不開 上堂 鐘鳴鼓響 鵲噪鴉鳴 爲你諸人說般若講涅槃了也 諸人還信得及麽 觀音菩薩向諸人面前作大神通 若信不及 却往他方救苦利生去也 上堂 開口又成增語 不開口又成剩語 乃曰 金輪天子勑 草店家風別

重日; 在中國傳統節日中 有半數以上是重日 卽月份與日期相同 比如一月初一的春節 二月二的春龍節 三月三上巳節 五月五的端午節 六月六天貺節 七月七的七夕節 九月九的重陽節 十月十的十成節等 [百度百科]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인()을 뺏고 경()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백국(白菊)이 처음() 열리니 중일(重日)이 따뜻하고 백년(百年) 공자(公子)가 봄을 만나지 못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을 뺏고 인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대지에 소식이 끊어져 소연(翛然)히 홀로 진()에 맡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둘 다 뺏음입니까. 사왈 풀은 거칠고() 사람은 변색(變色)되고 범성(凡聖) 둘이 일제히 공()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모두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청풍과 명월에 야로(野老)가 웃으며 상친(相親)한다. 상당(上堂) 석가가 출세하지 않고/ 달마가 서래(西來)하지 않아도/ 불법이 천하에 두루해/ 담현(談玄)하는 입을 열지 않는다. 상당(上堂) 종이 울리고 북이 울리고(鐘鳴鼓響) 까치는 지저귀고 까마귀는 울어 너희 제인(諸人)을 위해 반야를 설하고 열반을 강()했다. 제인은 도리어 믿어 미침을 얻느냐. 관음보살이 제인의 면전을 향해 대신통을 짓나니 만약 믿어 미치지 못하면 도리어 타방(他方)으로 가서 구고(救苦)하며 이생(利生)하여 가리라. 상당(上堂) 입을 열면 또 증어(增語)를 이루고 입을 열지 않으면 또 잉어(剩語)를 이룬다. 이에 가로되 금륜천자(金輪天子)의 칙령(勑令)과 초점(草店)의 가풍이 다르다.

重日; 중국 전통 절일(節日) 중에 있어서 반수(半數) 이상이 이 중일(重日)이 있으니 곧 월분(月份)과 일기(日期)가 상동(相同). 비여(比如) 1월 초1의 춘절(春節)22의 춘룡절(春龍節)33 상사절(上巳節)55의 단오절(端午節)66 천황절(天貺節)77의 칠석절(七夕節)99의 중양절(重陽節)1010의 십성절(十成節) [백도백과].

 

上堂 三世諸佛 口挂壁上 天下老和尙作麽生措手 你諸人到諸方作麽生擧 山僧恁麽道 也是久日樺來唇 喝一喝 上堂 古者道 我若一向擧揚宗敎 法堂裏草深一丈 不可爲闍黎鎻却僧堂門去也 雖然如是 也是烏龜陸地弄塵行 上堂 語漸也返常合道 論頓也不留朕迹 直饒論其頓返其常 也是抑而爲之 問 牛頭未見四祖時 爲甚麽百鳥銜花獻 師曰 果熟猿兼重 曰 見後爲甚麽不銜花 師曰 林疎鳥不過 問 七星光彩天將曉 不犯皇風試道看 師曰 將軍馬蹄紅 曰 錯 師便打 僧禮拜 展坐具始收 師曰 一展一收 法法皆周 擬欲更問 著甚來由 遂問 會麽 僧曰 不會 師便打

口挂壁上; 形容杜口之貌 引申爲言語道斷 心行處滅

措手; 著手 應對 或處置 常指應對禪機 處置參習中的問題

樺來唇; 禪門拈頌集第一三九二則 拈頌說話曰 樺來唇者 樺來唇狗來腮等 盖古人俚語耳 義則也大無端也 葛藤語箋 樺來脣 脣開而不得合也

返常合道; 從凡常中返回 合于直道

 

상당(上堂) 삼세제불이 입을 벽 위에 걸었거늘(口挂壁上) 천하 노화상이 어떻게 조수(措手)하느냐. 너희 제인이 제방에 이르러 어떻게 거()하느냐. 산승의 이러한 말은 또한 이 구일(久日)의 화래순(樺來唇)이다. ()로 한 번 할했다.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내가 만약 한결같이(一向) 종교(宗敎)를 거양(擧揚)한다면 법당 속에 풀의 깊이가 1()이라서 가히 사리(闍黎)를 위해 승당문(僧堂門)을 잠궈버리지(鎻却) 못할 것이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또한 이는 오귀(烏龜)가 육지에서 티끌을 희롱하며 감이다. 상당(上堂) ()을 말하자면 반상합도(返常合道)하고 돈()을 말하자면 짐적(朕迹)을 남기지 않는다. 직요(直饒; 가령) 그 돈()을 논하고 그 상()을 돌이키더라도() 또한 이는 억눌러 하였음이다(抑而爲之).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무엇 때문에 백조(百鳥)가 꽃을 물어 바쳤습니까. 사왈 과실(果實)이 익으면 원숭이도 겸해 무겁다. 가로되 뵌 후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지 않았습니까. 사왈 숲이 성기면() 새가 이르지() 않는다. 묻되 칠성(七星)의 광채(光彩)로 하늘이 장차 밝으려() 하나니 황풍(皇風)을 범하지 말고 시험 삼아 말해 보십시오. 사왈 장군의 말발굽이 붉다. 가로되 틀렸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중이 예배했다. 좌구를 펴고 막() 거두는데 사왈 일전일수(一展一收)하니 법법마다 모두 두루하다() 다시 물으려고 한다면 무슨 내유를 이루겠는가(著甚來由). 드디어 묻되 아느냐.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口挂壁上; 입을 닫은 모양을 형용. 인신(引申; 轉義)하여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음이 됨.

措手; 착수. 응대. 혹 처치. 선기에 응대하면서 참습(參習) 중의 문제를 처치함을 늘 가리킴.

樺來唇; 선문염송집 제1392. 염송설화에 가로되 화래순(樺來唇)이란 것은 화래순ㆍ구래시(狗來腮) 등이니 대개 고인의 이어(俚語)일 뿐이다. 뜻은 곧 대무단(大無端). 갈등어전. 화래순(樺來脣) 입술을 열고는 닫음을 얻지 못함임.

返常合道; 범상(凡常) 가운데로부터 반회(返回)하여 직도(直道)에 합함.

 

南嶽芭蕉菴大道谷泉禪師

泉州人也 受法汾陽 放蕩湖湘 後省同參慈明禪師 明問 白雲橫谷口 道人何處來 師左右顧視曰 夜來何處火 燒出古人墳 明曰 未在更道 師作虎聲 明以坐具便摵 師接住 推明置禪牀上 明却作虎聲 師大笑曰 我見七十餘員善知識 今日始遇作家 師因倚遇上座來參遇後住法昌問 菴主在麽 師曰 誰 曰 行脚僧 師曰 作甚麽 曰 禮拜菴主 師曰 恰値菴主不在 曰 你聻 師曰 向道不在 說甚麽你我 拽棒趂出 遇次日再來 師又趂出 遇一日又來 問 菴主在麽 師曰 誰 曰 行脚僧 揭簾便入 師攔胷搊住曰 我這裏狼虎縱橫 尿牀鬼子 三回兩度來討甚麽 曰 人言菴主親見汾陽來 師解衣抖擻曰 你道我見汾陽有多少奇特 曰 如何是菴中主 師曰 入門須辯取 曰 莫祇這便是麽 師曰 賺却幾多人 曰 前言何在 師曰 聽事不眞 喚鐘作甕 曰 萬法泯時全體現 君臣合處正中邪去也 師曰 驢漢不會便休 亂統作麽 曰 未審客來將何祇待 師曰 雲門餬餠趙州茶 曰 恁麽則謝師供養去也 師叱曰 我這裏火種也未有 早言謝供養 師因大雪 作偈曰 今朝甚好雪 紛紛如秋月 文殊不出頭 普賢呈醜拙 慈明遷住福嚴 師又往省之 少留而還 作偈寄之曰 相別而今又半年 不知誰共對談禪 一般秀色湘山裏 汝自匡徒我自眠 明覧笑而已

湖湘; 湖南省洞庭湖與湘江地帶 常用來代指湖南 位於長江中流 大部分地域在洞庭湖之南 故名湖南 [百度百科]

亂統; 胡亂法統 統 法 綱領

匡徒; 指扶助或提攜學徒成長的意思

 

남악(南嶽) 파초암(芭蕉菴) 대도(大道) 곡천선사(谷泉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분양(汾陽)에서 수법(受法)하고 호상(湖湘)에서 방탕(放蕩; 放縱)했다. 후에 동참(同參) 자명선사(慈明禪師)를 성회(省會; 相見)했다. 자명이 묻되 백운이 골 입구에 가로 놓였거늘 도인(道人)이 어느 곳에서 오는가. 스님이 좌우를 돌아보며 가로되 야래(夜來)에 어느 곳의 불이 고인의 분묘(墳墓; )를 태워 내었다. 명왈(明曰) 미재(未在; 不然)니 다시 말하라. 스님이 호성(虎聲)을 지었다. 자명이 좌구로써 바로 쳤다(). 스님이 접주(接住)하여 자명을 밀어 선상 위에 안치했다. 자명이 도리어 호성(虎聲)을 지었다. 스님이 대소(大笑)하고 가로되 내가 70여 원()의 선지식을 보았는데 금일 비로소 작가를 만났다. 스님이 의우(倚遇) 상좌가 내참(來參)하여는 후에 法昌했다 묻되 암주가 있는가 함으로 인해 사왈 누구인가. 가로되 행각승이다. 사왈 무엇하려는가. 가로되 암주에게 예배하려고 한다. 사왈 마침() 암주가 있지 않음을 만났다(). 가로되 너는(你聻). 사왈 향해 말하되 있지 않다 했거늘 무슨 니아(你我; 너와 나)를 말하는가. ()을 끌어() 쫓아내었다(趂出). 의우가 다음날 다시 오자 스님이 또 쫓아내었다. 의우가 어느 날 또 와서 묻되 암주가 있는가. 사왈 누구인가. 가로되 행각승이다. 발을 들어(揭簾) 바로 들어가자 스님이 가슴을(攔胷) 추주(搊住; 붙잡아 머물게 함)하고 가로되 나의 이 속엔 이리와 범이 종횡(縱橫)하거늘 요상귀자(尿牀鬼子)3, 양도(兩度; 두 차례) 와서 무엇을 찾는가. 가로되 사람들이 말하되 암주가 분양(汾陽)을 친견하고 왔다 하더라. 스님이 옷을 벗어() 두수(抖擻; 털다)하고 가로되 네가 말하라, 내가 분양을 친견하여 다소(多少)의 기특이 있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암중주(菴中主)인가. 사왈 입문(入門)했거든 모름지기 변취(辯取; 辨取와 같음)해야 하리라. 가로되 다만 이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사왈 얼마나 많은(幾多) 사람을 속였는가(賺却). 가로되 전언(前言)이 어디에 있는가. 사왈 청사(聽事)가 진실()이 아나면 종()을 일러 옹(; )이라 한다. 가로되 만법(萬法)이 망할() 때 전체가 나타나고 군신(君臣)이 합하는 곳에 정중(正中)의 사(). 사왈 여한(驢漢)이 알지() 못하거든 바로 쉴 것이지 난통(亂統)하여 무엇하리오. 가로되 미심하나니 객이 오면 무엇을 가지고 지대(祇待; 응대)하는가. 사왈 운문(雲門)의 호병(餬餠)과 조주(趙州)의 차().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공양에 감사한다.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나의 이 속엔 화종(火種; 불씨)도 있지 않거늘 벌써 공양에 감사함을 말하는가. 스님이 대설(大雪)로 인해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금조(今朝)에 심히 좋은 눈이니/ 분분(紛紛)히 추월(秋月)과 같구나/ 문수가 출두하지 못하고/ 보현이 추졸(醜拙)을 보이네(). 자명(慈明)이 복엄(福嚴)으로 천주(遷住)하자 스님이 또 가서 성회(省會; 相見)했다. 조금 머물렀다가 돌아가며 작게(作偈)하여 기탁해 가로되 상별(相別)했다가 이금(而今)에 또 반년(半年)이니/ 누구와 함께 선()을 대담(對談)할지 알지 못하겠네/ 일반(一般)의 수색(秀色)이 상산(湘山) 속인데/ 너는 스스로 광도(匡徒)하고 나는 스스로 수면(睡眠; )한다. 자명이 열람하고 웃을 따름이었다.

湖湘;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와 상강(湘江) 지대(地帶)니 늘 써서 호남을 대지(代指). 장강 중류에 위치하며 대부분 지역이 동정호의 남쪽에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호남임 [백도백과].

亂統; 법통(法統)을 호란(胡亂; ). ()은 법ㆍ강령(綱領).

匡徒; 학도(學徒)를 부조(扶助)하거나 혹 제휴(提攜)하여 성장케 하는 의사(意思)를 가리킴.

 

蘄州黃梅龍華寺曉愚禪師

到五祖戒和尙處 祖問曰 不落唇吻一句 作麽生道 師曰 老老大大 話頭也不照顧 祖便喝 師亦喝 祖拈棒 師拍手便出 祖召曰 闍黎且住 話在 師將坐具搭在肩上 更不回首 上堂 摩騰入漢 已涉繁詞 達磨西來 不守己分 山僧今日與麽道 也是爲他閑事長無明

 

기주(蘄州) 황매(黃梅) 용화사(龍華寺) 효우선사(曉愚禪師)

오조계(五祖戒; 師戒) 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오조가 물어 가로되 순문(唇吻; 입술)에 떨어지지 않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왈 노로대대(老老大大)가 화두(話頭)도 조고(照顧; 注意)하지 못하는가. 오조가 바로 할()했다. 스님도 또한 할했다. 오조가 방()을 집자 스님이 박수(拍手)하고 바로 나갔다. 오조가 부르며 가로되 사리(闍黎), 다만() 머물러라(), 말씀()이 있다. 스님이 좌구를 가지고 어깨 위에 싣고는(搭在肩上) 다시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상당(上堂) 마등(摩騰)이 입한(入漢)함은 이미 번사(繁詞)에 건넜고 달마가 서래함은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 산승이 금일 이렇게 말함도 또한 이, () 한사(閑事)를 위해 무명(無明)을 키웠다().

 

安吉州天聖皓泰禪師

到琅邪 邪問 埋兵掉鬬 未是作家 匹馬單鎗 便請相見 師指邪曰 將頭不猛帶累三軍 邪打師一坐具 師亦打邪一坐具 邪接住曰 適來一坐具 是山僧令行 上座一坐具 落在甚麽處 師曰 伏惟尙饗 邪拓開曰 五更侵早起 更有夜行人 師曰 賊過後張弓 邪曰 且坐喫茶 住後 僧問 如何是佛 師曰 黑漆聖僧 曰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看墻似土色

將頭不猛帶累三軍; 頭領的將軍如果不勇猛 帶累得整箇軍隊都軟弱

 

안길주(安吉州) 천성(天聖) 호태선사(皓泰禪師)

낭야(琅邪)에 이르자 낭야가 묻되 병사를 매복시켜 도투(掉鬬)함은 이 작가가 아니다. 필마단창(匹馬單鎗)으로 상견하기를 바로 청한다. 스님이 낭야를 가리키며 가로되 장두가 용맹하지 못하여 누를 삼군에게 끼쳤다(將頭不猛帶累三軍). 낭야가 한 번 좌구(一坐具)로 스님을 쳤다. 스님도 또한 한 번 좌구로 낭야를 쳤다. 낭야가 접주(接住)하고 가로되 아까 1좌구는 이 산승이 영()을 행했다. 상좌의 1좌구는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가. 사왈 복유상향(伏惟尙饗). 낭야가 밀어젖히며(拓開) 가로되 5()의 침조(侵早)에 일어났다 하였더니 다시 야행(夜行)하는 사람이 있구나. 사왈 도적이 지나간 후 장궁(張弓; 활줄을 당김)하는구나. 야왈(邪曰) 다만 앉아 끽다(喫茶)하라.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흑칠(黑漆)의 성승(聖僧)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담장()을 보매 토색(土色)과 같다.

將頭不猛帶累三軍; 두령의 장군이 과연 용맹하지 못할 것 같음면 누()를 정개부대(整箇軍隊)에게 끼쳐 모두 연약해짐.

 

唐州龍潭智圓禪師

辭汾陽 陽曰 別無送路 與子一枝拄杖 一條手巾 師曰 手巾和尙受用 拄杖卽不消得 陽曰 汝但將去 有用處在 師便収 陽曰 又道不用 師便喝 陽曰 已後不讓臨濟 師曰 正令已行 陽來日送出三門 乃問 汝介山逢尉遲時如何 師曰 一刀兩段 陽曰 彼現那吒 又作麽生 師便拽拄杖 陽喝曰 這回全體分付 住後 僧問 承敎有言 是眞精進 是名眞法 供養如來 如何是眞法 師曰 夜聚曉散 問 如何是龍潭劒 師曰 觸不得 曰 用者如何 師曰 白骨連山 問 昔日窮經 今日參禪 此理如何 師曰 兩彩一賽 曰 作麽生領會 師曰 去後不留蹤 曰 如何是佛 師曰 火燒不燃 問 古殿無佛時如何 師曰 三門前合掌

介山; 山名 在山西省介休縣東南 春秋 晉 介之推 隱居此山 故名 [百度百科]

 

당주(唐州) 용담(龍潭) 지원선사(智圓禪師)

분양(汾陽)에게 고별하자 양왈(陽曰) 달리 송로(送路; 送行. 餞送)가 없고 자네에게 일지(一枝)의 주장자와 일조(一條)의 수건(手巾)을 준다. 사왈 수건은 화상이 수용(受用)하십시오. 주장자도 곧 소득(消得; 需要)하지 않습니다. 양왈(陽曰) 너는 단지 가지고 가거라, 용처(用處)가 있으리라. 스님이 바로 거두었다(). 양왈(陽曰) 또 쓰이지 않는다고 말하라. 스님이 바로 할()했다. 양왈(陽曰) 이후에 임제에게도 양보(讓步; )하지 않으리라. 사왈 정령(正令)을 이미 행했습니다. 분양이 내일 삼문(三門)에 송출(送出)하면서 이에 묻되 네가 개산(介山)에서 울지(尉遲; 尉遲敬德)를 만났을 때 어찌하겠는가. 사왈 일도(一刀)에 양단(兩段)입니다. 양왈(陽曰) 그가 나타(那吒; 저본에 那叱로 지었음)를 나타내면 또 어떠한가(作麽生). 스님이 바로 주장자를 끌었다(). 분양이 할()하고 가로되 저희(這回; 此回)에 전체를 분부한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듣건대() (; 法華經 藥王品)에 말씀이 있어 이것이 참 정진이며(是眞精進) 이 이름이 진법(眞法)이니 여래에게 공양한다. 무엇이 이 진법입니까. 사왈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진다. 묻되 무엇이 이 용담검(龍潭劒)입니까. 사왈 접촉()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백골이 산에 잇는다(連山). 묻되 석일(昔日)에 경을 궁구했고(窮經) 금일 참선한다.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양채일새(兩彩一賽). 가로되 어떻게(作麽生)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간 후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불로 태워도 타지 않는다(火燒不燃). 묻되 고전(古殿)에 부처가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삼문(三門) 앞에서 합장한다.

介山; 산 이름. 산서성 개휴현(介休縣) 동남에 있음. 춘추(春秋) ()의 개지추(介之推)가 이 산에 은거한지라 고로 이름함 [백도백과].

 

舒州投子圓修禪師

僧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出口入耳 曰 來後如何 師曰 叉手竝足

 

서주(舒州) 투자(投子) 원수선사(圓修禪師)

승문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입에서 나와 귀로 들어간다(出口入耳).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차수(叉手)하고 병족(竝足; 발을 竝合)한다.

 

汾州太子院道一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賣扇老婆手遮日 問 紅輪未出時如何 師曰 照燭分明 曰 出後如何 師曰 撈天摸地 問 如何是學人親切處 師曰 慈母抱嬰兒 曰 如何是學人轉身處 師曰 街頭巷尾 曰 如何是學人著力處 師曰 千斤擔子兩頭搖 問 古曲無音韻 如[>]和得齊 師曰 三九二十七 籬頭觱栗 曰 宮商角徵非關妙 石人拊掌笑呵呵 師曰 同道方知

擔子; 扁擔 子 後綴

籬頭; 籬笆 頭 後綴

觱栗; 卽觱篥 又作篳篥 笛子的一種

 

분주(汾州) 태자원(太子院) 도일선사(道一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부채를 파는 노파가 손으로 해를 가린다. 묻되 홍륜(紅輪; )이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촉(照燭; 비추어 밝힘)이 분명하다. 가로되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하늘을 잡고 땅을 더듬는다(撈天摸地).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친절처(親切處)입니까. 사왈 자모(慈母)가 영아(嬰兒)를 안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의 전신처(轉身處)입니까. 사왈 가두항미(街頭巷尾).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의 착력처(著力處)입니까. 사왈 천 근의 담자(擔子; 멜대)가 양두(兩頭)가 흔들린다. 묻되 고곡(古曲)이 음운(音韻)이 없는데 어떻게 화()해야 제등(齊等)함을 얻습니까. 사왈 3, 927이니 이두(籬頭)에서 필률(觱栗)을 분다. 가로되 궁상각치(宮商角徵; 五音 중의 四音)는 묘함과 상관(相關)되지 않고 석인(石人)이 부장(拊掌)하며 하하(呵呵) 웃습니다. 사왈 동도(同道)라야 비로소 안다.

擔子; 편담(扁擔; 멜대). 자는 후철.

籬頭; 이파(籬笆; 대나 나뭇가지로 엮은 울타리). 두는 후철.

觱栗; 곧 필률(觱篥)이니 또 필률(篳篥)로 지음. 피리(笛子)의 일종.

 

葉縣省禪師法嗣

舒州浮山法遠圓鑒禪師

鄭州人也 投三交嵩和尙出家 幼爲沙彌 見僧入室請問趙州庭栢因緣 嵩詰其僧 師傍有省 進具後 謁汾陽葉縣 皆蒙印可 嘗與達觀頴薛大頭七八輩遊蜀 幾遭橫逆 師以智脫之 衆以師曉吏事 故號遠錄公 開堂拈香曰 汝海枯木上生花 別迎春色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八十翁翁輥繡毬 曰 恁麽則一句迥然開祖胄 三玄戈甲振叢林 師曰 李陵元是漢朝臣 問 如何是佛 師曰 大者如兄 小者如弟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平地起骨堆 問 祖師門下 壁立千仞 正令當行 十方坐斷 和尙將何表示 師曰 寒貓不捉鼠 曰 莫便是爲人處也無 師曰 波斯不繫腰 問 新歲已臨 舊歲何往 師曰 目前無異怪 不用貼鍾馗 曰 畢竟如何 師曰 將謂目前無 僧以手畫曰 爭奈這箇何 師便打

橫逆; 强暴無理的擧動

汝海; 汝水的別稱

繡毬; 有繡紋的毬子

李陵; (134-74) 前漢武將 字少卿 李廣之孫 武帝天漢二年(99) 率步兵五千人 出居延北 與單于戰 斬首虜萬餘級 陵兵敗 降匈奴 單于乃貴陵 以其女妻之 居彼二十年 病死 與親舊蘇武唱和之詩 爲五言古詩之起源矣 [漢書六]

平地起骨堆; 意謂做沒有埋死人的假墳 譏刺禪人做作多事 虛妄徒勞 骨堆 墳墓

寒貓; 一種於冬季出現的怪貓

鍾馗; 又作鐘馗 鍾馗 支那民間流傳之辟邪神 禪門拈頌集第六一則 拈頌說話曰 鐘馗者 唐逸史 明皇因瘊疾 晝夢有鬼藍袍曰 臣終南山進士鐘馗 除天下虛耗之孽 詔吳道子圖之 賜二府

 

서주(舒州) 부산(浮山) 법원(法遠) 원감선사(圓鑒禪師)

정주(鄭州) 사람이다. 삼교숭(三交嵩; 智嵩) 화상에게 투신하여 출가했고 어릴 적에 사미가 되었다. 중이 입실하여 조주의 정백인연(庭栢因緣)을 청문(請問)함을 보았는데 숭()이 그 중을 힐난(詰難; )했고 스님이 곁에서 성찰이 있었다. 진구(進具)한 후 분양(汾陽)과 섭현(葉縣)을 참알하여 모두 인가(印可)를 입었다(). 일찍이 달관영(達觀頴) 설대두(薛大頭) 7, 8()와 더불어 촉()을 유행(遊行)하다가 거의 횡역(橫逆)을 만날() 뻔했으나 스님이 기지(機智)로써 그것을 벗어났다. 중인(衆人)이 스님이 이사(吏事)를 환히 아는지라() 고로 호하여 원록공(遠錄公)이라 했다. 개당(開堂)하여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여해(汝海; 汝水)의 고목(枯木) 위에 꽃이 피어나니() 달리 춘색을 맞이한다.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팔십 옹옹(翁翁; 老翁. 老人)이 수구(繡毬)를 굴린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1구가 형연(迥然)하여 조사의 갑주(甲冑; )를 열고 3()의 과갑(戈甲; 창과 갑옷)이 총림을 떨칩니다. 사왈 이릉(李陵)은 원래 이 한조(漢朝)의 신하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큰 자는 형과 같고 작은 자는 동생과 같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평지에 골퇴를 일으킨다(平地起骨堆). 묻되 조사문하(祖師門下)는 벽립(壁立)이 천인(千仞)이며 정령(正令)을 마땅히 행하매 시방(十方)이 좌단(坐斷; 截斷)되거늘 화상이 무엇을 가지고 표시(表示)하겠습니까. 사왈 한묘(寒貓)는 쥐를 잡지 않는다. 가로되 바로 이것이 위인처(爲人處)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파사(波斯; 파사인)는 허리를 묶지() 않는다. 묻되 신세(新歲)가 이미 임()했으니 구세(舊歲)는 어디로 갔습니까. 사왈 목전에 이괴(異怪)가 없으니 종규(鍾馗)를 붙임()을 쓰지 말아라.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 이르나니 목전에 없다. 중이 손으로써 긋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어찌하겠습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橫逆; 강포(强暴)하고 무리(無理)한 거동(擧動).

汝海; 여수(汝水)의 별칭(別稱).

繡毬; 수문(繡紋; 자수의 무늬)이 있는 공(毬子).

李陵; (134-74) 전한(前漢)의 무장이며 자가 소경(少卿)이며 이광(李廣)의 손자임. 무제 천한 2(99) 보병 5천인을 데리고 나가서 연북(延北)에 거처하면서 선우(單于)와 전투해 참수한 오랑캐 수급이 1만여였으나 이릉의 병사가 패했으며 흉노에게 항복했음. 선우가 이에 이릉을 귀하게 여겨 그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음. 그곳에 20년 거주하다가 병사했음. 친구인 소무(蘇武)와 부르고 화답한 시는 5언고시의 기원이 됨 [한서6].

平地起骨堆; 뜻으로 이르자면 죽은 사람을 매장함이 있지 아니한 가분(假墳)을 만듦이니 선인(禪人)이 다사(多事)를 주작(做作)하면서 허망하게 헛수고함을 기자(譏刺; 헐뜯고 비꼬아서 말함)함임. 골퇴(骨堆)는 분묘.

寒貓; 일종의 동계(冬季)에 출현하는 괴묘(怪貓).

鍾馗; 또 종규(鐘馗)로 지음. 종규는 지나(支那) 민간에 유전(流傳)하는 벽사신(辟邪神). 선문염송집 제61책 염송설화에 가로되 종규(鐘馗)란 것은 당() 일사(逸史) 명황(明皇; 唐玄宗)이 후질(瘊疾; 는 무사마귀)로 인해 낮 꿈에 남포(藍袍)란 귀신이 있어 가로되 신()은 종남산 진사(進士) 종규(鐘馗)입니다. 천하의 허모(虛耗; 空竭)의 얼(; 재앙)을 제거하겠습니다. 오도자(吳道子)를 불러 그것을 그려 2()에 하사했다.

 

師與王質待制論道 畫一圓相 問曰 一不得匹馬單鎗 二不得衣錦還鄕 鵲不得喜 鴉不得殃 速道速道 王罔措 師曰 勘破了也 上堂 更莫論古話今 祇據目前事與你諸人定奪區分 僧便問 如何是目前事 師曰 鼻孔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眼睛 歐陽文忠公聞師奇逸 造其室 未有以異之 與客碁 師坐其旁 文忠遽收局 請因碁說法 師卽令撾鼓陞座曰 若論此事 如兩家著碁相似 何謂也 敵手知音 當機不讓 若是綴五饒三 又通一路始得 有一般底 祇解閉門作活 不會奪角衝關 硬節與虎口齊彰 局破後徒勞綽斡 所以道 肥邊易得瘦肚難求 思行則往往失粘 心麤而時時頭撞 休誇國手 謾說神仙 贏局輸籌卽不問 且道黑白未分時 一著落在甚麽處 良久曰 從來十九路 迷悟幾多人 文忠嘉歎 從容謂同僚曰 脩初疑禪語爲虛誕 今日見此老機緣 所得所造 非悟明於心地 安能有此妙旨哉

待制; 事物紀原四曰 唐永徽五年(654) 十二月五日 詔許敬宗每日待制於武德殿 此始有待制之名 [大慧書栲栳珠]

定奪; 決定事情的可否或取舍

歐陽文忠公; 北宋歐陽修 諡號文忠

綴五饒三; 圍棋用語 綴五 置五目 饒三 置三目 弱者對强者時 先置二三石或三五石 可知其技拙

硬節與虎口齊彰; 圍棋用語 下手但守自全 不求活路 則敵旣硬節虎口之勢成而不得出 自亦不得全也 硬節虎口蓋不可破可畏之子勢耳 看齊彰之兩字 卽形容下手也 言敵子已成圍了 始覺知之也 [五家正宗贊助桀]

綽斡; 圍棋用語 圍棋義例曰 斡 間也 謂以子間之曰斡 又曰 綽 侵也 以我子斜侵彼子之路 而欲出之曰綽 [五家正宗贊助桀]

肥邊易得瘦肚難求; 圍棋用語 局四邊占地雖肥大而易得 肥 闊大也 局中央占地雖瘦小而難得 瘦 狹小也 [五家正宗贊助桀]

國手; 天下名碁也

贏局輸籌; 圍碁用語 贏輸 勝負 棋經曰 勝而路多名曰贏局 敗而無路名曰輸籌

十九路; 指碁盤的橫豎各十九路

老機緣; 對精細機鋒之老禪師的稱呼 機緣 禪家臨機應緣的問答語句 擧止作略

 

스님이 왕질(王質) 대제(待制)와 더불어 논도(論道 )했다. 1원상(圓相)을 그리고 물어 가로되 1은 필마단창(匹馬單鎗)을 얻지 못하며 2는 의금환향(衣錦還鄕)을 얻지 못합니다. 까치가 기쁨을 얻지 않고 까마귀가 앙화(殃禍)를 얻지 않나니 속히 말하시오, 속히 말하시오. 왕질이 망조(罔措)했다. 사왈 감파(勘破)했습니다. 상당(上堂) 다시 논고화금(論古話今)하지 말지니 다만 목전사(目前事)에 의거해 너희 제인에게 정탈(定奪)하여 구분(區分)해 주겠다. 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목전사입니까. 사왈 콧구멍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눈동자다.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 스님이 기일(奇逸; 奇異하고 뛰어남)하다 함을 듣고 그의 실()로 나아갔으나() 기이히 여김이 있지 않았다. 객과 바둑을 두는데 스님이 그 곁()에 앉았다. 문충(文忠)이 급히 판()을 거두고 바둑으로 인한 설법을 청했다. 스님이 바로 북을 치게() 하고 승좌(陞座)해 가로되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마치 양가(兩家)가 착기(著碁; 바둑을 두다)함과 상사하다. 무엇을 말함이냐(何謂也), 적수(敵手)가 지음(知音)이니 당기(當機)하여 사양하지 않는다. 만약 이 철오요삼(綴五饒三)이면 또 1()를 통해야 비로소 옳다. 일반의 것(一般底)이 있어 다만 문을 닫고 생활을 지을 줄만 알고 탈각(奪角; 號角을 뺐음)하여 충관(衝關)할 줄 알지 못한다. 경절과 호구를 제창하여(硬節與虎口齊彰) 판국이 깨어진 후에야 헛수고하며 작알(綽斡; 바둑을 둘 때 우회하여 알선하면서 화해를 구함)한다. 소이로 말하되 비변은 쉽게 얻지만 수두는 구하기 어렵다(肥邊易得瘦肚難求). ()를 행하면 곧 왕왕 실점(失粘)하고 심()이 추()하면 시시로 두당(頭撞)한다.국수(國手)를 자랑함을 그치고 신선(神仙)을 설함을 그쳐라(; . 不要). 영국수주(贏局輸籌)는 곧 묻지 않는다. 그래 말하라, 흑백이 나뉘지 아니한 때 1()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종래(從來) 십구로(十九路)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오(迷悟)했던가. 문충(文忠)가탄(嘉歎; 嘉尙히 여기어 감탄함)하고 종용(從容)히 동료에게 일러 가로되 수(; 구양수)가 처음엔 선어(禪語)가 허탄(虗誕; 허망)하다고 의심했는데 금일 이 노기연(老機緣; 法遠을 가리킴)의 소득소조(所得所造; 얻은 바와 지은 바)를 보매 심지를 오명(悟明)하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이러한 묘지(妙旨)가 있겠는가.

待制; 사물기원4에 가로되 당 영휘 5(654) 125일 조칙으로 경종(敬宗)에게 매일 무덕전에서 대제(待制)함을 허락했다. 이것이 대제의 명칭이 있게 된 시초다 [대혜서고로주].

定奪; 사정(事情)의 가부 혹 취사를 결정함.

歐陽文忠公; 북송 구양수(歐陽修)의 시호가 문충(文忠).

綴五饒三; 위기(圍棋; 바둑)의 용어임. 철오(綴五)5()을 놓음이며 요삼(饒三)3목을 놓음. 약자가 강자를 상대했을 때 2, 3() 3, 5석을 먼저 놓음이니 그 기졸(技拙)을 가히 앎.

硬節與虎口齊彰; 위기(圍棋; 바둑) 용어임. 하수(下手)가 단지 자기의 온전만 지키고 활로를 구하지 않으면 곧 적이 이미 경절호구지세(硬節虎口之勢)를 이루어 벗어남을 얻지 못하는지라 자기도 또한 온전함을 얻지 못함. 경절호구는 대개 가히 깨뜨리지 못할 가히 두려운 자(; 바둑 알을 가리킴)의 형세임. 제창이란 두 글자를 보매 곧 하수를 형용함. 말하자면 적자(敵子; 적의 바둑 알)가 이미 포위를 이루고서야 비로소 이를 깨달아 아는 것임 [오가정종찬조걸].

綽斡; 위기(圍棋; 바둑) 용어니 위기의례에 가로되 알() ()이다. 이르자면 자간(子間; 바둑돌 사이)을 가로되 알(). 또 가로되 작() ()이다. 나의 자(; 바둑돌)로 그의 자()의 길을 침입하여 벗어나려고 함을 가로되 작()[오가정종찬조걸].

肥邊易得瘦肚難求; 위기(圍棋; 바둑)의 용어임. ()4()에 점지(占地)가 비록 비대하지만 쉽게 얻음. ()는 넓고 큼임. ()의 중앙의 점지(占地)는 비록 마르고 작지만 얻기 어려움. ()는 협소임 [오가정종찬조걸].

國手; 천하의 유명한 기사(碁士).

贏局輸籌; 위기(圍碁; 바둑) 용어임. 영수(贏輸)는 승부. 기경(棋經)에 가로되 이기면 길이 많고 이름해 가로되 영국(贏局)이며 지면 길이 없고 이름해 가로되 수주(輸籌).

十九路; 바둑판의 가로ㆍ세로의 각 19로를 가리킴.

老機緣; 정세(精細)한 기봉의 노선사에 대한 칭호. 기연(機緣)은 선가가 임기응연(臨機應緣)하는 문답의 어구와 거지(擧止)의 작략(作略).

 

上堂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君王得一以治天下 衲僧得一 禍患臨身 擊禪牀 下座 上堂 諸佛出世 建立化門 不離三身智眼 亦如摩醯首羅三目 何故 一隻水泄不通 緇素難辯 一隻大地全開 十方通暢 一隻高低一顧 萬類齊瞻 雖然若是 本分衲僧陌路相逢 別具通天正眼始得 所以道 三世諸佛不知有 狸奴白牯却知有 且道狸奴白牯知有箇甚麽事 要會麽 深秋簾幙千家雨 落日樓臺一笛風

天得一; 道德經第三十九得一章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水泄不通; 比喩禪法固密玄妙 言語不能授受 俗智不能理解

通暢; 一洞達 二通行無阻 此指二

 

상당(上堂) 하늘이 일()을 얻어 청()하며(天得一以淸) 땅이 일을 얻어 녕()하며 군왕(君王)이 일을 얻어 천하를 다스리며 납승이 일을 얻어 화한(禍患)이 몸에 임()한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제불이 출세하여 화문(化門)을 건립하매 3()의 지안(智眼)을 여의지 않나니 또한 마혜수라(摩醯首羅)의 삼목(三目)과 같다. 무슨 연고냐, 1()수설불통(水泄不通; 물이 샐 틈이 없음)하여 치소(緇素)를 분변(分辨; )하기 어렵다. 1척은 대지(大地)를 전개(全開)하니 시방에 통창(通暢)한다. 1척은 고저(高低)를 일고(一顧)하니 만류(萬類)를 제첨(齊瞻; 齊等히 쳐다봄)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본분납승(本分衲僧)이 맥로(陌路)에서 상봉하면 달리 통천(通天)의 정안(正眼)을 갖추어야 비로소 옳다. 소이로 말하되 삼세제불은 지유(知有)하지 못하고 이노백고(狸奴白牯)가 도리어 지유한다. 그래 말하라, 이노백고가 저() 무슨 일을 지유(知有)하느냐. 알고자 하느냐, 깊은 가을 염막(簾幙; 가림막)엔 천가(千家)의 비며 떨어지는 해의 누대(樓臺)엔 일적(一笛)의 바람이다.

天得一; 도덕경 제39 득일장(得一章). 옛적에 일()을 얻은 자는 하늘이 일을 얻어 청()하며 땅이 일을 얻어 녕()하며 신()이 일을 얻어 령()하며 곡()이 일을 얻어 영()하며 만물이 일을 얻어 생()하며 후왕(侯王)이 일을 얻어 천하의 정()으로 삼는다.

水泄不通; 선법은 고밀(固密)하고 현묘해 언어로는 능히 수수(授受)하지 못하고 속지(俗智)로는 능히 이해하지 못함에 비유함.

通暢; 1. 통달(洞達). 2. 통행에 막힘이 없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師暮年休於會聖巖 敘佛祖奧義 作九帶曰 佛正法眼帶 佛法藏帶 理貫帶 事貫帶 理事縱橫帶 屈曲垂帶 妙叶兼帶 金針雙鎻帶 平懷常實帶 學者旣已傳誦 師曰 若據圓極法門 本具十數 今此九帶 已爲諸人說了 更有一帶 還見得麽 若也見得親切分明 却請出來 對衆說看 說得分明 許汝通前九帶圓明道眼 若見不親切 說不相應 唯依吾語而爲己解 則名謗法 諸人到此如何 衆無語 師叱之而去

九帶; 宋代臨濟宗僧浮山法遠(991-1067) 提示學人之宗門語句 由學人編集之 名爲佛禪宗敎義九帶集 略稱浮山九帶 一佛正法眼藏帶 謂帶貫一切理脈 直截佛之正法 二佛法藏帶 謂佛法乃敎外別傳 爲方便之故 聖人以之示衆 三理貫帶 謂至理佛法爲言詮所不及 揚眉瞬目之間盡是佛法 四事貫帶 謂山河國土大地無非佛法 五理事縱橫帶 謂理事融通 行於佛世界 六屈曲垂帶 謂雖證悟成佛卻甘爲菩薩而不安住佛位 以亟力濟度衆生 七妙叶兼帶 謂不執著則大用現前 八金鍼雙鎖帶 謂自理事縱橫帶之立場更進一步 不執著於佛世界而自由自在 九平懷常實帶 謂佛法無特別處 日常著衣喫飯皆屬眞實佛法 [人天眼目二]

 

스님이 모년(暮年)에 회성암(會聖巖; 저본에 會聖嚴으로 지었음)에서 쉬었다. 불조의 오의(奧義)를 서술해 구대(九帶)를 지었으니 가로되 불정법안대(佛正法眼帶)ㆍ불법장대(佛法藏帶)ㆍ이관대(理貫帶)ㆍ사관대(事貫帶)ㆍ이사종횡대(理事縱橫帶)ㆍ굴곡수대(屈曲垂帶)ㆍ묘협겸대(妙叶兼帶)ㆍ금침쌍쇄대(金針雙鎻帶)ㆍ평회상실대(平懷常實帶). 학자가 기이(旣已; 이미) 전송(傳誦)하자 사왈 만약 원극법문(圓極法門)에 의거하자면 본래 십수(十數)를 갖춘다. 이제 이 구대(九帶)는 이미 제인(諸人)을 위해 설해 마쳤거니와 다시 일대(一帶)가 있나니 도리어 견득(見得)하느냐. 만약에 견득했다면 친절하고 분명하리니 도리어 청컨대 나와서 대중(對衆)하여 설해 보아라. 설득(說得)함이 분명하다면 너희가 앞 구대(九帶)를 통달(通達; )한 원명(圓明)한 도안(道眼)임을 허락하려니와 만약 견()이 친절하지 못하고 설()이 상응하지 못하고 오직 나의 말에 의해 기(; 자기. 저본에 로 지었음)의 견해로 삼는다면 곧 이름이 방법(謗法)이다. 제인이 여기에 이르러 어떠한가(如何). 대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꾸짖고 갔다.

九帶; 송대 임제종승 부산법원(浮山法遠; 991-1067)이 학인에게 제시한 종문의 어구(語句). 학인이 이를 편집함으로 말미암았으며 이름하여 불선종교의구대집(佛禪宗敎義九帶集)이니 약칭이 부산구대임. 1. 불정법안장대(佛正法眼藏帶) 이르자면 일체의 이맥(理脈)을 대관(帶貫)하여 불타의 정법을 직절(直截). 2. 불법장대(佛法藏帶) 이르자면 불법은 곧 교외별전이며 방편이 되는 고로 성인이 이를 시중(示衆). 3. 이관대(理貫帶) 이르자면 지리(至理)의 불법은 언전(言詮)이 미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작이는 사이가 모두 이 불법임. 4사관대(事貫帶) 이르자면 산하ㆍ국토ㆍ대지가 불법이 아님이 없음. 5. 이사종횡대(理事縱橫帶) 이르자면 이사가 융통하여 불세계에 행함. 6. 굴곡수대(屈曲垂帶) 이르자면 비록 증오(證悟)하여 성불했더라도 도리어 보살이 됨을 달게 여겨 불위(佛位)에 안주하지 않고 극력(亟力)으로 중생을 제도함. 7. 묘협겸대(妙叶兼帶) 이르자면 집착하지 않으면 대용이 현전함. 8. 금침쌍쇄대(金鍼雙鎖帶) 이르자면 이사종횡대의 입장으로부터 다시 1보 전진하여 불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자재함. 9. 평회상실대(平懷常實帶) 이르자면 불법은 특별한 곳이 없고 일상의 착의끽반이 모두 진실한 불법에 속함 [인천안목2].

 

汝州寶應院法昭演敎禪師

僧問 一言合道時如何 師曰 七顚八倒 曰 學人禮拜 師曰 敎休不肯休 直待雨淋頭 問 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不得成佛道 爲甚麽不得成佛道 師曰 赤脚騎鐵驢 直至海南居 上堂 十二時中 許你一時絕學 卽是學佛法 不見阿難多聞第一 却被迦葉擯出 不得結集 方知聰明博學 記持憶想 向外馳求 與靈覺心轉沒交涉 五蘊殻中透脫不過 順情生喜 違情生怒 蓋覆深厚 自纏自縛 無有解脫 流浪生死 六根爲患 衆苦所逼 無自由分 而被妄心於中主宰 大丈夫兒早搆取好 喝一喝曰 參 上堂 寶應門風險 入者喪全身 作麽生是出身一句 若道不得 三十年後

敎休不肯休 直待雨淋頭; 天氣不好 敎他停止勞作 他却不肯 直到大雨淋頭 纔肯罷休 禪家用來批評 學人不能抓住時機當下悟入

 

여주(汝州) 보응원(寶應院) 법소(法昭) 연교선사(演敎禪師)

승문(僧問) 일언이 도에 합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칠전팔도(七顚八倒). 가로되 학인이 예배하겠습니다. 사왈 사왈 쉬게 할 적엔 쉼을 수긍하지 않더니 바로 비가 머리에 쏟아짐을 기다리는구나(敎休不肯休 直待雨淋頭). 묻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10겁 동안 도량에 앉았으나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 불도를 이룸을 얻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불도를 이룸을 얻지 못했습니까. 사왈 맨발(赤脚)로 철려(鐵驢)를 타고 바로 해남(海南)에 이르러 거주한다. 상당(上堂) 12시 중에 너희가 일시에 절학(絕學)함을 허락하나니 즉시(卽是) 불법을 배움이다. 보지 못하느냐, 아난이 다문제일(多聞第一)이지만 도리어 가섭이 빈출(擯出)함을 입어 결집(結集)을 얻지 못했다. 비로소 알지니 총명과 박학(博學), 기지(記持)와 억상(憶想)으로 밖을 향해 치구(馳求)함은 영각심(靈覺心)과 더욱() 교섭이 없다(沒交涉). 5()의 껍질 속을 투탈(透脫)해 지나지 못하고 순정(順情)엔 기쁨을 내고 위정(違情)엔 성냄()을 내어서 개부(蓋覆)가 심후(深厚)하고 자전자박(自纏自縛)하여 해탈함이 있지 않고 생사에 유랑한다. 6()이 우환이 되나니 중고(衆苦)가 핍박하는 바며 자유의 분한이 없어 망심(妄心)이 어중(於中)에 주재(主宰)함을 입는다. 대장부아(大丈夫兒)가 일찍 구취(搆取; 領會)해야 좋으니라. ()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참()하라. 상당(上堂) 보응(寶應)의 문풍(門風)은 위험하나니 들어오는 자는 전신(全身)을 잃는다(). 무엇이 이 출신(出身)하는 1구인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30년 후다.

敎休不肯休 直待雨淋頭; 천기가 좋지 않아 그로 하여금 노작(勞作; 근로의 작업)을 정지하게 하여도 그가 도리어 긍정하지 않고 바로 큰 비가 머리에 쏟아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쳐서 쉼을 긍정함이니 선가에서 학인이 능히 시기를 잡아 당하에 오입하지 못함을 비평함에 사용함.

 

唐州大乘山慧果禪師

僧問 如何是從上來傳底意 師曰 金盤拓出衆人看 問 撥塵見佛時如何 師曰 撥塵卽乖 見佛卽錯 曰 總不如是時如何 師曰 錯 問 如何是道 師曰 寬處寬 窄處窄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苦處苦 樂處樂 曰 道與道中人相去多少 師曰 十萬八千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天晴日出 曰 學人不會 師曰 雨下泥生

 

당주(唐州) 대승산(大乘山) 혜과선사(慧果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종상래(從上來)로 전하는 뜻입니까. 사왈 금반(金盤)을 밀쳐 내니 중인(衆人)이 본다. 묻되 티끌을 헤쳐 부처를 볼 때 어떻습니까. 사왈 티끌을 헤치면 곧 어긋나고() 부처를 보면 곧 틀린다(). 가로되 모두 이와 같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틀렸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넓은() 곳은 넓고 좁은() 곳은 좁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괴로운 곳은 괴롭고 즐거운 곳은 즐겁다. 가로되 도와 도중인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십만팔천(十萬八千)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하늘이 맑으면() 해가 나온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비가 내리면 진흙이 생긴다.

 

鼎諲禪師法嗣(鼎諲神鼎洪諲)

荊南府開聖寶情山主

僧問 如何是開聖境 師曰 三烏引路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二虎巡山

 

형남부(荊南府) 개성(開聖) 실정산주(寶情山主)

승문 무엇이 이 개성경(開聖境)입니까. 사왈 두 까마귀가 길을 인도(引導)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두 범이 산을 순행(巡行)한다.

 

天台山妙智寺光雲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東籬黃菊 曰 意旨如何 師曰 九日重陽

 

천태산(天台山) 묘지사(妙智寺) 광운선사(光雲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동리(東籬)의 황국(黃菊)이다.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9일의 중양(重陽)이다.

 

谷隱聰禪師法嗣

潤州金山曇穎達觀禪師

首謁大陽玄禪師 遂問 洞山特設偏正君臣 意明何事 陽曰 父母未生時事 師曰 如何體會 陽曰 夜半正明 天曉不露 師罔然 遂謁谷隱 擧前話 隱曰 大陽不道不是 祇是口門窄 滿口說未盡 老僧卽不然 師問 如何是父母未生時事 隱曰 糞墼子 師曰 如何是夜半正明 天曉不露 隱曰 牡丹花下睡猫兒 師愈疑駭 一日普請 隱問 今日運薪邪 師曰 然 隱曰 雲門問僧 人般柴柴般人 如何會 師無對 隱曰 此事如人學書 點畫可効者工 否者拙 葢未能忘法耳 當筆忘手 手忘心 乃可也 師於是默契 良久曰 如石頭云 執事元是迷 契理亦非悟 隱曰 汝以爲藥語爲病語 師曰 是藥語 隱呵曰 汝以病爲藥 又安可哉 師曰 事如函得葢 理如箭直鋒妙 寧有加者 而猶以爲病 實未喻旨 隱曰 妙至是 亦祇名理事 祖師意旨 智識所不能到 矧事理能盡乎 故世尊云 理障礙正見知 事障續諸生死 師恍如夢覺 曰 如何受用 隱曰 語不離窠臼 安能出葢纏 師歎曰 纔涉唇吻 便落意思 盡是死門 終非活路

糞墼子; 猶糞塊子 子 後綴

窠臼; 臼 臼狀物 又作臼窠 與窠窟同義 於禪林中 喩指執著拘泥之義

葢纏; 蓋纏 蓋與纏皆爲煩惱之異名 蓋 覆障之義 因煩惱可覆障善心 故稱蓋 纏 纏縛之義 因煩惱可纏縛修善之心 故稱纏 有五蓋與十纏 皆煩惱之數

 

윤주(潤州) 금산(金山) 담영(曇穎) 달관선사(達觀禪師)

처음() 대양현(大陽玄) 선사를 참알했다. 드디어 묻되 동산(洞山)이 편정군신(偏正君臣)을 특설(特設)했거니와 뜻이 어떤 일을 밝혔습니까. 양왈(陽曰) 부모미생시(父母未生時)의 일이다. 사왈 어떻게 체회(體會)해야 합니까. 양왈(陽曰) 야반(夜半)에 바로 밝고 천효(天曉)에 드러나지 않는다. 스님이 망연(罔然)했다. 드디어 곡은(谷隱)을 참알하여 전화(前話)를 들자 은왈(隱曰) 대양(大陽)이 옳지 않다고 말하진 않겠으나 다만 이 구문(口門)이 좁아() 입 가득히 설해 다하지 못했다. 노승은 곧 그렇지 않다. 스님이 묻되 무엇이 이 부모미생시의 일입니까. 은왈(隱曰) 분격자(糞墼子). 사왈 무엇이 이 야반에 바로 밝고 천효에 드러나지 않음입니까. 은왈(隱曰) 모란화(牡丹花) 아래 자는 고양이다. 스님이 더욱() 의해(疑駭)했다. 어느 날 보청(普請)하는데 곡은(谷隱)이 묻되 금일 섶을 운반하는가. 사왈 그렇습니다. 은왈(隱曰) 운문이 중에게 묻되 사람이 섶을 운반(運搬; )하는가 섶이 사람을 운반하는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은왈(隱曰) 차사(此事)는 사람이 학서(學書)함과 같아서 점획(點畫)을 가히 본받는 자는 공교(工巧; )하고 않는 자(否者)는 졸렬(拙劣; )하거니와 대개 능히 법(; 書法)을 잊지 못했을 뿐이다. 당필(當筆)하여 손을 잊고 손이 마음을 잊어야 이에 가()하다. 스님이 이에 묵계(默契)했다.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석두(石頭)가 이른 것과 같나니 집사(執事)하면 원래 이 미()며 계리(契理)하여도 또한 오()가 아니다. 은왈(隱曰) 너는 약어(藥語)로 삼느냐, 병어(病語)로 삼느냐. 사왈 이 약어(藥語)입니다. 곡은이 꾸짖으며 가로되 네가 병을 약으로 삼으니 또 어찌() ()하겠는가. 사왈 사()는 함()이 개(; 덮개)를 얻음과 같고 리()는 화살이 직봉(直鋒)과 같아야 묘하거늘 어찌()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만 오히려 병으로 삼으니 실로 의지(意旨)를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은왈(隱曰) 묘함이 이에 이르러도 또한 다만 이름이 이사(理事). 조사의 의지(意旨)는 지식(智識)이 능히 이르지 못하는 바이거늘 하물며() 사리(事理)로 능히 다하겠는가. 고로 세존이 이르되 이장(理障)은 정견지(正見知)를 방애(妨礙; )하고 사장(事障)은 제생사(諸生死)를 잇는다. 스님이 황홀(恍惚; )함이 꿈에서 깸과 같았다. 가로되 어떻게 수용(受用)해야 합니까. 은왈(隱曰) ()가 과구(窠臼)를 여의지 못하면 어찌() 능히 개전(葢纏)을 벗어나겠는가. 스님이 탄식하며 가로되 겨우 순문(唇吻; 입술)에 건너면 바로 의사(意思)에 떨어져 모두() 이 사문(死門)이며 마침내 활로(活路)가 아니다.

糞墼子; 분괴자(糞塊子; 똥덩어리)와 같음. 자는 후철.

窠臼; ()는 구상(臼狀)의 물건. 또 구과(臼窠)로 지음. 과굴(窠窟)과 같은 뜻. 선림 중에선 집착ㆍ구니(拘泥)의 뜻을 비유로 가리킴.

葢纏; 개전(蓋纏)과 같음. ()와 전()은 다 번뇌의 다른 이름이 됨. ()는 부장(覆障)의 뜻이니 번뇌가 가히 선심을 부장하기 때문에 고로 명칭이 개임. ()은 전박(纏縛)의 뜻이니 번뇌가 가히 선()을 닦는 마음을 전박하기 때문에 고로 명칭이 전임. 5()10()이 있으며 다 번뇌의 수().

 

住後 示衆曰 纔涉唇吻 便落意思 盡是死門 俱非活路 直饒透脫 猶在沉淪 莫敎孤負平生 虛度此世 要得不孤負平生麽 拈拄杖卓一下曰 須是莫被拄杖瞞始得 看看 拄杖子穿過你諸人髑髏 𨁝跳入你鼻孔裏去也 又卓一下 僧問 經文最初兩字是甚麽字 師曰 以字 曰 有甚麽交涉 師曰 八字 曰 好賺人 師曰 謗此經故獲罪如是 問 一百二十斤鐵枷 敎阿誰擔 師曰 老僧 曰 自作自受 師曰 苦苦 問 和尙還曾念佛也無 師曰 不曾念佛 曰 爲甚麽不念佛 師曰 怕污人口 上堂 衆集定 首座出禮拜 師曰 好好問著 座低頭 問話次 師曰 今日不答話 便歸方丈 上堂 山僧門庭別 已改諸方轍 爲文殊㧞出眼裏楔 敎普賢休嚼口中鐵 勸人放開髂蛇手 與汝斫却繫驢橛 駐意擬思量 喝曰 揑揑參

 

주후(住後) 시중(示衆)해 가로되 겨우 순문(唇吻; 입술)에 건너면 바로 의사(意思)에 떨어져 모두() 이 사문(死門)이며 모두() 활로(活路)가 아니다. 직요(直饒; 가령) 투탈(透脫)하더라도 오히려 침륜(沉淪)에 있나니 평생을 고부(孤負; 저버리다)해 차세(此世)를 헛되이 지나게 하지 말아라. 평생을 고부(孤負)하지 않음을 얻고자 하느냐. 주장자를 집어 한 번 치고 가로되 모름지기 이는 주장자의 속임()을 입지 말아야 비로소 옳다. 보아라, 보아라, 주장자가 너희 제인의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하고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여 너희의 비공(鼻孔) 속으로 들어간다. 또 한 번 쳤다. 승문(僧問) 경문의 최초의 양자(兩字)는 이 무슨 글자입니까. 사왈 이자(以字). 가로되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사왈 팔자(八字). 가로되 좋게 사람을 속입니다(好賺人). 사왈 이 경을 비방하는 연고로 획죄(獲罪)가 이와 같다. 묻되 120() 철가(鐵枷; 쇠칼)는 누구(阿誰)로 하여금 지게 합니까. 사왈 가로되 노승이다. 가로되 자작자수(自作自受)입니다. 사왈 괴롭다, 괴롭다. 묻되 화상은 도리어 일찍이 염불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일찍이 염불하지 않았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염불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사람의 입을 더럽힐까 두려워한다(). 상당(上堂) 대중이 집정(集定)하자 수좌가 나와 예배했다. 사왈 호호(好好) 문착(問著)하라. 수좌가 머리를 숙였다. 문화(問話)하던 차에 사왈 금일은 답화(答話)하지 않겠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상당(上堂) 산승의 문정(門庭)은 특별하여 이미 제방의 궤철(軌轍)을 고쳤다. 문수(文殊)를 위해 안리(眼裏)의 말뚝을 발출(㧞出)했고 보현(普賢)으로 하여금 구중(口中)의 쇠를 휴작(休嚼; 씹음을 그치다)하게 했다. 사람에게 가사수(髂蛇手; 는 허리뼈 가)를 방개(放開)하기를 권하나니 너희를 위해() 계려궐(繫驢橛)을 작각(斫却)한다. 주의(駐意; 뜻을 머물다)하여 사량하려고 하느냐. ()하고 가로되 붙잡아라(; 과 통함), 붙잡아라. ()하라.

 

上堂 山僧平生 意好相撲 祇是無人搭對 今日且共首座搭對 捲起袈裟 下座索首座相撲 座纔出 師曰 平地上喫交 便歸方丈 上堂 三世諸佛是奴婢 一大藏敎是涕唾 良久曰 且道三世諸佛是誰奴婢 乃將拂子畫一畫曰 三世諸佛過這邊 且道一大藏敎是誰涕唾 師乃自唾一唾 上堂 秤錘井底忽然浮 老鼠多年變作牛 慧空見了拍手笑 三脚猢猻差異猴 上堂 五千敎典 諸佛常談 八萬塵勞 衆生妙用 猶未是金剛眼睛在 如何是金剛眼睛 良久曰 瞎 上堂 大衆集定 有僧纔出禮拜 師曰 欲識佛性義 當觀時節因緣 僧便問 如何是時節因緣 師便下座

搭對; 配對(進行某種活動)

平地上喫交; 謂平白無故地摔跤 譏刺禪人做作多事 其施爲作略不契禪法 徒勞且有害 喫交 跌倒也 交 脚脛相交 說文 交 交脛也

五千敎典; 佛祖歷代通載十三 是歲(722) 沙門智昇 上釋敎經律論目錄凡二十卷 銓次大藏經典及聖賢論譔 凡五千四十八卷 自是遂爲定數

八萬塵勞; 八萬四千乃數量極多之形容詞 略作八萬 煩惱種類極多 喩稱八萬四千煩惱 八萬四千塵勞 佛所說之敎法及其意義至爲繁複 故亦總稱八萬四千法門(八萬法門) 八萬四千法藏(八萬法藏) 八萬四千法蘊(八萬法蘊) [往生要集上]

 

상당(上堂) 산승은 평생에 뜻이 상박(相撲)을 좋아했거니와 다만 이 탑대(搭對)할 사람이 없었다. 금일 다만() 수좌와 함께 탑대(搭對)하겠다. 가사(袈裟)를 걷어 올리고(捲起) 하좌하여 수자를 찾아 상박하려고 했다. 수좌가 겨우 나오자 사왈 평지상에서 끽교(平地上喫交)했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상당(上堂) 삼세제불은 이 노비(奴婢)며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이 체타(涕唾; 눈물과 침).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그래 말하라 삼세제불이 이 누구의 노비인가. 이에 불자를 가지고 그어서() 한 번 긋고() 가로되 삼세제불이 저변(這邊)에 이르렀다(). 그래 말하라, 일대장교는 이 누구의 체타(涕唾)인가. 스님이 이에 스스로 침을 한 번 뱉었다. 상당(上堂) 저울추(秤錘)가 우물 밑에서 홀연히 떠오르고/ 노서(老鼠)가 여러 해에 변해 소가 되었다/ 혜공(慧空)이 보고 나서 박수(拍手)하며 웃고/ 삼각(三脚)의 호손(猢猻)은 후()와 차이(差異)하다. 상당(上堂) 오천교전(五千敎典)은 제불의 상담(常談)이며 팔만진로(八萬塵勞)는 중생의 묘용(妙用)이거니와 오히려 이 금강안정(金剛眼睛)이 아니다. 무엇이 이 금강안정인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눈멀었다(). 상당(上堂) 대중이 집정(集定)했다. 어떤 중이 겨우 나와 예배하자 사왈 불성의 뜻()을 알고 싶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보아라. 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시절인연입니까. 스님이 바로 하좌했다.

搭對; (진행하는 모종의 활동)에 배대(配對).

平地上喫交; 이르자면 평백무고지(平白無故地; 조금의 이유도 없음. 공연히)에서 솔교(摔跤; 넘어지다. 씨름)함이니 선인(禪人)이 많은 일을 지어 그 시위와 작략이 선법에 맞지 않으며 헛수고에 또 해가 있음을 기자(譏刺; 헐뜯고 비꼼). 끽교(喫交)는 미끄러져 거꾸러짐임. ()는 다리 정강이가 서로 꼬임임. 설문(說文) () 정강이가 꼬임이다.

五千敎典; 불조역대통재13. 이 해(722) 사문 지승(智昇)이 석교경률론목록(釋敎經律論目錄) 무릇 20권을 올렸는데 대장경전 및 성현논찬(聖賢論譔)을 전차(銓次; 次序編排)하였다. 무릇 548권이니 이로부터 드디어 정수(定數)가 되었다.

八萬塵勞; 팔만사천은 곧 수량의 극다(極多)의 형용사(形容詞). 간략히 팔만(八萬)으로 지음. 번뇌의 종류가 극다하여 비유로 일컬어 팔만사천번뇌ㆍ팔만사천진로(八萬四千塵勞)라 하고 부처가 설한 바의 교법(敎法) 및 그 의의(意義)가 지극히 번복(繁複)한지라 고로 또한 총칭(總稱)하여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八萬法門)ㆍ팔반사천법장(八萬四千法藏; 八萬法藏)ㆍ팔만사천법온(八萬四千法蘊; 八萬法蘊)이라 함 [왕생요집상].

 

問 如何是向去底人 師曰 從歸靑嶂裏 不出白雲來 曰 如何是却來底人 師曰 自從遊紫陌 誰肯隱靑山 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家裏已無回日信 路邊空有望鄕牌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滄海盡敎枯到底 靑山直得碾爲塵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天地尙空秦日月 山河不見漢君臣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鶯囀千林華滿地 客遊三月草侵天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伸手不見掌 曰 忽遇仙陀客來 又作麽生 師曰 對面千里 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臨濟 曰 恁麽則谷隱的子也 師曰 德山 問 如何是長法身 師曰 拄杖六尺 曰 如何是短法身 師曰 筭子三寸 曰 恁麽則法身有二也 師曰 更有方圓在 上堂 諸方鉤又曲 餌又香 奔凑猶如蜂抱王 因聖這裏 鉤又直 餌又無 猶如水底捺葫蘆 擧拄杖作釣魚勢曰 深水取魚長信命 不曾將酒祭江神 擲拄杖 下座

向去; 洞宗之擧唱謂向於正位爲向去 自正位來於偏位爲卻來 [象器箋六]

却來; 見上向去

紫陌; 都城大路 都城郊外大路

筭子; 一同算子 竹製的籌 二籌板

葫蘆; 一年生蔓草 葉如心形 互生 花白色 果實如大小二球重疊 除其果肉 可充器皿

信命; 相信天命

 

묻되 무엇이 이 향거(向去)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청장(靑嶂) 속으로 좇아 돌아오고 백운을 벗어나지 않고 온다. 가로되 무엇이 이 각래(却來)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자맥(紫陌)을 노닒으로부터 누가 청산에 은거함을 긍정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인()을 뺏고 경()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가리(家裏)엔 이미 회일(回日)의 소식(消息; )이 없거늘 노변(路邊)에 공연히 망향패(望鄕牌)가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을 뺏고 인을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창해는 모두 바닥까지 고갈시켜야 하고 청산은 갈아서 티끌이 됨을 바로 얻어야 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둘 다 뺏음입니까. 천지는 오히려 진()나라의 일월을 비우고 산하는 한()나라의 군신을 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다 뺏지 않음입니까. 사왈 꾀꼬리는 천림(千林)에서 지저귀고 꽃은 땅에 가득한데 객이 노니는 3월에 풀이 하늘을 침범한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손을 펴도() 손바닥을 보지 못한다. 가로되 홀연히 선타객(仙陀客)이 옴을 만나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대면(對面)해도 천 리다. 묻되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임제(臨濟).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곡은(谷隱; 蘊聰)의 적자(的子)입니다. 사왈 덕산(德山)이다. 묻되 무엇이 이 장법신(長法身)입니까. 사왈 주장자가 6척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단법신(短法身)입니까. 사왈 산자(筭子)3촌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법신이 둘이 있습니까. 사왈 다시 방원(方圓)이 있다. 상당(上堂) 제방에선 갈고리가 또 굽었고 미끼()가 또 향기롭나니 분주(奔凑)함이 마치 벌이 왕(; 蜂王)을 안음과 같다. 인성(因聖)의 이 속은 갈고리가 또 곧고 미끼가 또 없나니 마치 물밑에서 호로(葫蘆; 표주박)를 누름()과 같다. 주장자를 들어 조어(釣魚)하는 자세를 짓고 가로되 심수(深水)에서 취어(取魚)하여 신명(信命)을 길게 하였고 일찍이 술을 가져 강신(江神)에게 제사(祭祀)하지 않았다.

向去; 동종(洞宗)의 거창(擧唱)에서 이르기를 정위(正位)를 향함을 향거(向去)라 하고 정위로부터 편위(偏位)에 옴을 각래(卻來)라 함 [상기전6].

却來; 위 향거(向去)를 보라.

紫陌; 도성의 대로니 도성 교외의 대로임.

筭子; 산자(算子)와 같음. 죽제의 산가지. 2. 주판(籌板).

葫蘆; 1년생 만초(蔓草; 덩굴풀)니 잎은 심형(心形; 심장처럼 생긴 모양)과 같고 호생(互生; 잎이 서로 어긋맞게 나는 것)하며 꽃은 백색이며 과실은 크고 작은 두 공과 같은 게 중첩하고 그 과육(果肉)을 제거하면 가히 기명(器皿)에 충당함.

信命; 천명(天命)을 상신(相信).

 

蘇州洞庭翠峯慧月禪師

僧問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時如何 師曰 脫却籠頭 卸却角䭾 曰 拶出虛空去 處處盡聞香 師曰 雲愁聞鬼哭 雪壓髑髏吟 問 和尙未見谷隱時一句作麽生道 師曰 步步登山遠 曰 見後如何 師曰 驅驅信馬蹄

驅驅; 一策馬奔馳 二奔走辛勞 三努力追求貌

 

소주(蘇州) 동정(洞庭) 취봉(翠峯) 혜월선사(慧月禪師)

승문(僧問) 일화(一花)에 오엽(五葉)이 열려 결과를 자연히 이룰 때 어떻습니까. 사왈 농두(籠頭)를 벗기고(脫却) 각타(角䭾)를 내려놓는다(卸却). 가로되 허공을 짓눌러 내니(拶出) 곳곳마다 모두 향기를 맡습니다. 사왈 구름이 수심(愁心)하니 귀곡(鬼哭)을 듣고 눈이 압박하니 촉루(髑髏)가 신음(呻吟; )한다. 묻되 화상이 곡은(谷隱)을 뵙지 아니한 때의 1구를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왈 걸음마다 산의 먼 데를 올랐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구구(驅驅)하며 말발굽에 맡겼다(信馬蹄).

驅驅; 1. 말에 채찍질해 분치(奔馳). 2. 분주(奔走)하며 신로(辛勞). 3. 노력하며 추구하는 모양.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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