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鼓山佛心才禪師 閩人 初參死心 心問 鄕里甚處 才云 福州 心云 玄沙不出嶺 保壽不渡河 因甚到這裏 才云 因行不妨掉臂 心云 左手掉 右手掉 才放下兩手掉出 心大喜 及許挂搭已 被侍僧所擠云 才到處吵人叢林 和尙不得留之 於是心遂不納云 聞汝到處吵人叢林 且往他處 才云 大善知識眼在甚麽處 拂袖而出 見昭默 昭默納之 未幾 遂契黃龍之道 昭默以大法任之
●佛心才; 本才 宋代黃龍派僧 福州(福建)長溪人 俗姓姚 號佛心 世稱佛心本才 受具足戒後 遊歷諸方 先後參大中寺海印隆 東林常總 死心悟新 靈源惟淸等諸師 嗣靈源惟淸(黃龍下二世)之法 其後 住持潭州(湖南)上封寺 復住道林寺 後返福建宣揚大法 歷住大乘 乾元 靈石 鼓山等諸刹 紹興年間(1131- 1162)示寂 遺有佛心才和尙語要一卷 收於續古尊宿語要四 [普燈錄十 五燈會元十八 大明高僧傳七]
●死心; 悟新(1044-1115) 宋代黃龍派僧 王氏 韶州曲江人 稍長穎脫 壯依佛陀院德修祝髮 進具已 熙寧八年(1075) 至黃龍謁晦堂祖心 竝嗣其法 元祐七年(1092) 出住雲岩 紹聖四年 徙翠岩 政和初 居黃龍 政和五年 十二月十三日晩小參說偈 十五日泊然坐逝 悟新自是號死心叟 榜其居曰死心室 有語錄一卷 [續傳燈錄二十二 普燈錄六]
●玄沙不出嶺; 正法眼藏二云 玄沙和尙欲徧歷諸方 參尋知識 攜囊出嶺 築著脚指流血 痛楚歎曰 是身非有 痛從何來 便回雪峰 峰一日問 那箇是備頭陀 曰 終不敢誑於人 又一日峰召曰 備頭陀 何不徧參去 曰 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 峰然之 ◆玄沙; 師備(835-908) 唐末五代僧 福州(今屬福建)閩縣人 俗姓謝 幼好垂釣 汎小艇於南臺江 狎諸漁者 唐咸通(86 0-873)初 年屆三十 始脫塵志 投芙蓉山靈訓禪師落髮 受具足戒後 行頭陀法 終日宴坐 人稱備頭陀 與法兄雪峰義存 親近若師徒(嗣法雪峰) 同力締構 參學者衆 偶閱楞嚴經 發明心地 諸方請益者如水歸海 初住梅谿普應院 遷福州玄沙山 應機接物凡三十餘載 學侶八百餘人 時有閩帥王審知 事以師禮 曲盡殷勤 竝奏賜紫衣 號宗一大師 梁開平二年示寂 壽七十四(一說七十或七十五) 有語錄三卷傳世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保壽不渡河; 保壽 又作寶壽 祖庭事苑七 寶壽 沼和上 參臨濟領旨 更不它游 住寶壽 爲第一世 師將示寂 謂門人曰 汝等知我履踐處否 對曰 和上一生長坐不臥 師曰 非吾眷屬 言訖長往 世謂寶壽不渡河者 卽師也
●挂搭; 又作掛搭 掛 懸也 搭 附也挂也 禪僧止住 云掛搭 懸衣缽袋於僧堂之鉤也 因之住持許行脚人依住 謂爲許掛搭 與掛錫掛缽等亦同
●拂袖而出; 又作拂袖而去 因不滿不肯而用動衣袖離去
●昭默; 指惟淸(?-1117) 宋代黃龍派僧 字覺天 自號靈源叟 南州武寧人 族陳氏 年十七爲大僧 印心於晦堂祖心(嗣黃龍) 初住舒之太平 次遷黃龍靈源寺 黃魯直 程伊川皆與爲友 師旣託疾告閑 居昭默堂十有五年 宋徽宗政和七年九月 安坐趨寂 [普燈錄六 續傳燈錄二十二]
○고산(鼓山; 福建 福州에 위치함) 불심재(佛心才; 本才) 선사는 민(閩) 사람이다. 사심(死心; 悟新)을 초참(初參)하자 심(心)이 묻되 향리(鄕里)가 어느 곳인가(甚處). 재운(才云) 복주(福州)입니다. 심운(心云) 현사는 출령하지 않았고(玄沙不出嶺) 보수는 도하하지 않았거늘(保壽不渡河) 무엇으로 인해 이 속에 이르렀는가. 재운 다님으로 인해 팔을 흔듦에 방애(妨礙)되지 않습니다(因行不妨掉臂). 심운 좌수(左手)를 흔드는가, 우수(右手)를 흔드는가. 재(才)가 양수(兩手)를 방하(放下)하고 흔들며 나갔다. 심(心)이 크게 기뻐했고 및 괘탑(挂搭)을 허락해 마쳤는데 시승(侍僧)이 배척(排斥; 擠)하는 바를 입었으니 이르되 재(才)는 도처(到處)에서 총림을 사람에게 떠들어대니(吵) 화상은 그(之)를 머물게 함을 얻지 마십시오. 이에 심(心)이 드디어 용납하지 않고 이르되 듣건대 너는 도처에서 총림을 사람에게 떠들어댄다 하니 다만(且) 다른 곳으로 가거라. 재운(才云) 대선지식의 눈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拂袖而出). 소묵(昭默; 惟淸)을 뵙자 소묵이 용납했다. 오래지 않아 드디어 황룡(黃龍; 惟淸)의 도에 계합했고 소묵이 대법(大法)을 그(之)에게 맡겼다.
●佛心才; 본재(本才)니 송대 황룡파승. 복주(복건) 장계 사람이며 속성은 요며 호는 불심이니 세칭이 불심본재(佛心本才). 구족계를 받은 후 제방을 유력(遊歷)했는데 먼저 대중사 해인륭ㆍ동림상총ㆍ사심오신ㆍ영원유청 등 여러 스님을 참방했고 영원유청(靈源惟淸; 황룡하 2세)의 법을 이었음. 그 후에 담주(호남) 상봉사(上封寺)에 주지했고 다시 도림사에 주(住)했음. 후에 복건으로 돌아가 대법을 선양했음. 대승ㆍ건원ㆍ영석ㆍ고산 등 여러 사찰을 역주(歷住)했고 소흥년 간(1131-1162) 시적했음. 유저(遺著)에 불심재화상어요 1권이 있어 속고존숙어요4에 수록되었음 [보등록10. 오등회원18. 대명고승전7].
●死心; 오신(悟新; 1044-1115)이니 송대 황룡파승. 왕씨며 소주 곡강 사람. 조금 자라자 영탈(穎脫)했으며 장성하자 불타원 덕수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았음. 진구(進具; 전진하여 구족계를 받음)하고는 희녕 8년(1075) 황룡에 이르러 회당조심(晦堂祖心; 황룡혜남의 법사)을 참알(參謁)하고 아울러 그 법을 이었음. 원우 7년(1092) 출세하여 운암(雲岩)에 주지했고 소성 4년(1097) 취암(翠岩)으로 옮겼고 정화 초 황룡에 거주했고 정화 5년 12월 13일 저녁 소참(小參)에 게를 설하더니 15일에 조용히(泊然) 좌서(坐逝)했음. 오신(悟新)은 스스로 이 호(號)가 사심수(死心叟; 叟는 늙은이)며 그 거실에 방(榜)을 붙여 사심실(死心室)이라 했음. 어록 1권이 있음 [속전등록22. 보등록6].
●玄沙不出嶺; 정법안장2에 이르되 현사화상이 제방을 편력(徧歷)하면서 지식을 참심(參尋)하려고 했다. 행낭(行囊)을 휴대하고 출령(出嶺)하다가 발가락이 부딪혀(築著) 피를 흘렸다. 통초(痛楚: 심히 아프고 괴로움)하다가 탄식하며 가로되 이 몸이 있음이 아니거늘 통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로 설봉으로 회귀했다. 설봉이 어느 날 묻되 어느 것이 이 비두타(備頭陀)인가. 가로되 마침내 감히 남을 속이지 못합니다. 또 어느 날 설봉이 불러 가로되 비두타는 왜 편참(徧參)하러 가지 않느냐. 가로되 달마가 동토에 오지 않았고 2조가 서천에 가지 않았습니다. 설봉이 그렇다고 했다. ◆玄沙; 사비(師備; 835-908)니 당말 오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민현(閩縣) 사람이며 속성은 사(謝). 어릴 적에 낚시질을 좋아해 작은 배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어부)를 친압(親狎)하던 자였음. 당 함통(860-873) 초(初) 나이가 30에 이르자 비로소 탈진(脫塵)의 뜻을 세우고 부용산(芙蓉山) 영훈선사(靈訓禪師)에게 투신해 낙발(落髮)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 두타법(頭陀法)을 행해 종일 연좌(宴坐)한지라 사람들이 비두타(備頭陀)로 일컬었음. 법형(法兄)인 설봉의존(雪峰義存)과 친근하기가 마치 사도(師徒; 스승과 제자) 같았으며(설봉의 법을 이었음) 힘을 합쳐 체구(締構)하여 참학자(參學者)가 많았음. 우연히 릉엄경을 열람하다가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으며 제방에서 청익하는 자가 마치 물이 바다로 돌아감과 같았음. 처음엔 매계(梅谿) 보응원(普應院)에 거주하다가 복주(福州)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겼음. 응기접물(應機接物)하기 무릇 30여 재(載; 年)며 학려(學侶)가 8백여 인이었음. 때에 민수(閩帥) 왕심지(王審知)가 스승의 예(禮)로 모시면서 은근(殷勤)을 곡진(曲盡)함이 있었으며 아울러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와 종일대사(宗一大師)란 호를 주었음. 양(梁) 개평 2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4(일설엔 70 혹은 75). 어록 3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송고승전13. 전등록18].
●保壽不渡河; 보수(保壽)는 또 보수(寶壽)로 지음. 조정사원7. 보수(寶壽) 소화상(沼和上)이니 임제를 참하고 지취를 영오(領悟)했다. 다시 딴 곳을 노닐지 않고 보수에 거주했으며 제1세가 된다. 스님이 장차 시적하면서 문인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이 나의 이천(履踐; 이행)한 곳을 아느냐. 대답해 가로되 화상은 일생 동안 장좌불와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나의 권속이 아니다. 말을 마치자 장왕(長往)했다. 세상에서 이르되 보수는 내를 건너지 않았다(寶壽不渡河) 하는 것이 곧 스님임.
●挂搭; 또 괘탑(掛搭)으로 지음. 괘(掛)는 현(懸; 매달다. 걸다)이며 탑(搭)은 부(附)며 괘(挂)임. 선승의 지주(止住)를 괘탑이라 이르나니 옷과 발대(缽袋; 缽은 鉢과 같음)를 승당의 갈고리에 걺임. 이로 인해 주지가 행각인의 의주(依住)를 허락함을 일컬어 허괘탑(許掛搭)이라 함. 괘석(掛錫)과 괘발(掛缽) 등도 또한 같음.
●拂袖而出; 또 불수이거(拂袖而去)로 지음. 만족하지 않고 긍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옷소매를 움직임을 쓰며 떠남임.
●昭默; 유청(惟淸; ?-1117)을 가리킴. 송대 황룡파승. 자는 각천이며 자호(自號)가 영원수(靈源叟)니 남주 무녕 사람이며 족(族)은 진씨. 나이 17에 대승(大僧)이 되었고 회당조심(晦堂祖心; 황룡을 이었음)에게서 인심(印心)했음. 처음은 서(舒)의 태평에 거주했고 다음은 황룡 영원사로 옮겼음. 황로직(黃魯直)과 정이천(程伊川)이 모두 더불어 벗이 되었음. 스님이 이미 탁질(託疾)하여 고한(告閑)하고는 소묵당(昭默堂)에 거주하기 15년이었음. 송 휘종 정화 7년 9월에 안좌하여 취적(趨寂)했음 [보등록6. 속전등록22].
'총림성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설당이 부모를 뵙다(雪堂見父母) (0) | 2025.12.23 |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장안도가 릉가를 보다(張安道見楞伽) (0) | 2025.12.23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정인성고목(淨因成枯木) (0) | 2025.12.20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부용이 투자의 전좌가 되다(芙蓉爲投子典座) (0) | 2025.12.20 |
|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원통수(圓通秀) (0) | 2025.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