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심사암(深巳菴; 巳 當作已)

태화당 2026. 2. 3. 08:32

深巳菴 永和人 嗣玅癡禪 甞有頌送之 曰 送君還憶深師叔 兩眼依前聽轆轤 後住溫州報恩 有冬至小參云 一二三四五 五四三二一 寒風劈面來 籬頭吹觱栗 下座 余時在旦過中聞其擧揚 便知其得雲門向上之旨 惜無人嗣續之 韶陽之道 遂湮沒於此人焉

深巳菴; 叢林盛事作深巳菴 巳 當作已 已菴深 南宋雲門宗僧 溫州(浙江)人 入中天竺寺 參癡禪元妙(雲門下九世) 竝嗣其法 後住溫州光孝寺 著有已菴深和尙語要一卷 刊行於南宋理宗嘉熙二年(1238) 收於續古尊宿語要二(卍續藏第一一九冊) [五燈會元十六]

玅癡禪; 元妙(1111-1164) 南宋雲門宗僧 雙溪(浙江)東陽人 俗姓王 號癡禪 年十二出家 嗣寂室慧光(雲門下八世)之法 曾弘法於靈石 中天竺寺等四處道場 故世人又稱師爲中竺元妙 孝宗隆興元年(1163)退隱欈李之李氏庵 次年示寂 壽五十四 [普燈錄十七]

轆轤; 一安在井上絞起汲水斗的器具 二機械上的絞盤

小參; 謂非時之說法也 上堂稱爲大參 其規則校大參爲小 故曰小參

觱栗; 又作觱篥 篳篥 笛子的一種

擧揚; 擧說 闡揚

韶陽; 廣東韶陽 指雲門文偃 佛祖歷代通載十七曰 師居靈樹 久之遷韶陽(廣東)雲門

 

심사암(深巳菴)은 영화(永和) 사람이며 묘치선(玅癡禪; 元妙)을 이었다(). 일찍이 송()이 있어 전송(餞送)했으니 가로되 송군(送君)하면서 도리어 심사숙(深師叔)을 추억하나니 양안(兩眼)이 의전(依前)히 녹로(轆轤)를 듣는다. 후에 온주(溫州) 보은(報恩)에 주()했다. 동지(冬至) 소참(小參)이 있어 이르되 일이삼사오/ 오사삼이일/ 한풍(寒風)이 얼굴에 닥쳐(劈面) 오니/ 이두(籬頭; 울타리 가)에서 필률(觱栗; 피리의 일종)을 분다. 하좌(下座)했다. (; 道融)가 당시에 단과(旦過; 旦過寮) 가운데 있으면서 그 거양(擧揚)을 들었는데 그가 운문의 향상지지(向上之旨)를 얻었음을 바로 알았다. 애석하게도 사속(嗣續)한 사람이 없었으니 소양(韶陽; 운문)의 도가 드디어 이 사람에서 인몰(湮沒)했다.

深巳菴; 총림성사에 심사암(深巳菴)으로 지었음. ()는 마땅히 이()로 지어야 함. 이암심(已菴深) 남송 운문종승. 온주(절강) 사람. 중천축사에 들어가 치선원묘(癡禪元妙; 운문하 9)를 참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광효사에 주()했음. 저서에 이암심화상어요 1권이 있고 남송 이종 가희 2(1238)에 간행했으며 속고존숙어요2(만속장 제119)에 수록되었음 [오등회원16].

玅癡禪; 원묘(元妙; 1111-1164)니 남송 운문종승. 쌍계(절강) 동양 사람이니 속성은 왕이며 호는 치선(癡禪). 나이 12에 출가했고 적실혜광(寂室慧光; 운문하 8)의 법을 이었음. 일찍이 영석ㆍ중천축사 등 네 곳의 도량에서 홍법(弘法)한지라 고로 세인이 또 스님을 호칭하여 중축원묘(中竺元妙)라 했음. 효종 융흥 원년(1163) 취리의 이씨암(李氏庵)에 퇴은(退隱)했고 다음해 시적했음. 나이는 54 [보등록17].

轆轤; 1. 우물 위에 안치해 놓고 교기(絞起; 죄어 일으키다)하며 물을 긷는 두()의 기구. 2. 기계 위의 교반(絞盤; 밧줄을 죄는 장치).

小參; 이르자면 비시(非時)의 설법임. 상당을 일컬어 대참(大參)이라 하고 그 규칙이 곧 대참에 비교하면 작음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소참임.

觱栗; 또 필률(觱篥), 필률(篳篥)로 지음. 피리의 일종.

擧揚; 들어 설함. 천양(闡揚).

韶陽; 광동 소양이니 운문문언을 가리킴. 불조역대통재17에 가로되 스님이 영수(靈樹)에 거주하다가 오래되자 소양(韶陽; 廣東) 운문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