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鄭公弼 參投子顒禪師 盡弟子禮 謹厚如初學者 後因張比部隱之以勢位陵衲子 公乃與之書曰 禪家者流 凡見說事枝蔓不徑捷者 謂之葛藤 往往鄙誚 遂著葛藤歌(載于集中) 弼因甞思其所以 今試與隱之商確 不知何如 大抵俗士與僧人 性識初無纖毫差別 其事蹟甚有不同處 且僧人自幼出家 早以看經日久 聞見皆是佛事 及剃髮後 結伴行脚 要到處便到 參禪問道之外 羣衆見聞博約 又復無限 耳目薰蒸旣熟 忽遇一明眼人摘掇 立便有箇見處 却將前後凡所見聞 自行證據 豈不明白暢快者哉 吾輩俗士 自幼小 爲俗事浸漬 及長大 又娶妻養子 經營衣食 奔走仕宦 黃卷赤軸未甞入手 雖乘閑翫閱 只是資談柄而已 何甞徹究其理 且士農工商 各爲業資纏縛 知有禪林法席 假使欲去參問 何由去得 何處更有結伴游山參禪問道及衆中博約之多乎 萬一明眼人因事遭際 且無一味工夫 所聞能有多少 所得能有幾何 復無問之所見所聞 自作證據 更不廣行採討 深加鑽仰 才得一言半句 殊未明了 便乃目視雲漢 鼻孔遼天 自謂我超佛越祖 千聖齊立下風 佛經禪冊都不一顧 以避葛藤之誚 弼之愚見 深恐未然也 弼不學則已 若以辯身心學之 須是周旋委曲 深鈎遠索 透頂透底 徹骨徹髓 一切見成 光明潔淨 絶一點塵許凝翳 方敢下隱之 隱之 此之一事不是小小 直要脫却無始以來生死根本 與管生死底閻羅老子作抵敵始得 不可取人閑言長語以當參學 便自瞞去 祝祝 弼啓上比部執事
●富鄭公; 富弼(1004-1083) 宋代雲門宗居士 字彦國 洛陽(今屬河南)人 慶曆三年(1043) 拜樞密副使 與范仲淹一起推行慶歷新政 至和二年(1055) 召拜同中書門下平章事 無所興革 唯務守成 時稱賢相 英宗卽位 召拜樞密使 封鄭國公 後因與王安石政見不合求退 出判亳州 聞修顒禪師主投子山 遂前往參謁 言下省悟 又請修顒至府中 日夜參問 晩年居家日誦楞嚴經 素食禮佛 著作今存富鄭公詩集 [宋史三一三 五燈會元十六]
●投子顒; 修顒 宋代雲門宗僧 字證悟 趙城(山西洪洞)梁氏 參蘇州瑞光圓照宗本得法 初住壽州資聖 富鄭公甚加敬重 請住西京少林招提 末住舒州投子 道譽稱盛 [續燈錄十六 五燈會元十六 無錫南禪寺志二]
●弟子; 禪林寶訓音義 弟子 學於師後曰弟 智從師生曰子
●比部; 官名 魏晉時設 爲尙書列曹之一 職掌稽核簿籍 後世沿之 [百度百科]
●葛藤; 指文字言語 一如葛藤之蔓延交錯 又指公案中難以理解之語句 更轉義作問答工夫 玩弄無用之語句 稱爲閒葛藤 執著於文字言語 而不得眞義之禪 稱爲文字禪 或葛藤禪
●鄙誚; 以輕蔑姿態進行指責
●集中; 集 指富鄭公詩集
●商確; 商討 斟酌
●博約; 指文章內容廣博 言簡意明
●黃卷赤軸; 指佛敎經卷 以經文書於黃紙上而捲之以赤軸 故稱黃卷赤軸 按維摩經略疏垂裕記一 唐代貞觀年間(627-649) 敕制以黃紙書寫 以防蟲害 依此推據 經卷以黃紙書寫 亦在貞觀後 另一傳說 後漢明帝永平十四年(630) 帝應褚善信等之請 以火焚驗佛道經典之優劣 道家書籍盡成灰燼唯佛經卷薰成黃色 軸變爍紅 故有黃卷赤軸之稱 [傳法正宗論下 北史七十二]
●雲漢; 一銀河 天河 二高天 天
●鼻孔遼天; 意謂省悟禪法 超然脫世 遼天沖向天際 飛向天空
●下風; 一放屁 二下方 此指二
●始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執事; 指掌管事務的官吏或僕役
○부정공필(富鄭公弼; 富弼)이 투자옹(投子顒; 修顒) 선사를 참(參)하여 제자(弟子)의 예(禮)를 다했으며 근후(謹厚; 謹愼하며 篤厚함)하기가 초학자(初學者)와 같았다. 후에 장비부(張比部) 은지(隱之)가 세위(勢位)로써 납자(衲子)를 업신여김으로(陵) 인해 공(公)이 이에 그(之)에게 준 글에 가로되 선가자류(禪家者流; 선종 僧人에 대한 泛稱)가 무릇(凡) 설사(說事)가 지만(枝蔓)이라 경첩(徑捷)하지 못한 자를 보면 이를 일러 갈등(葛藤)이라 하며 왕왕(往往) 비초(鄙誚)하는지라 드디어 갈등가(葛藤歌)(集中에 실렸다)를 지었습니다(著). 필(弼)이 인하여 일찍이 그 소이(所以)를 사유(思惟)했는데 여금에 시험 삼아 은지(隱之)와 더불어 상확(商確)하리니 어떠할지(何如)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저(大抵; 무릇) 속사(俗士)와 승인(僧人)이 성식(性識; 根性과 心識)은 애초에 섬호(纖毫)의 차별이 없습니다만 그 사적(事蹟)은 심히 같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또(且) 승인은 어릴 적부터 출가하여 일찍 간경(看經)한 날이 오래고 문견(聞見)한 게 모두 이 불사(佛事)입니다. 및 체발(剃髮)한 후에 결반(結伴)하여 행각(行脚)하면서 이르고자(到) 하는 곳에 바로 이르며 참선(參禪)하고 문도(問道)하는 외에 군중(羣衆)의 견문(見聞)이 박약(博約)하고 또 다시 무한(無限)합니다. 이목(耳目)의 훈증(薰蒸)이 이미 익고(熟) 홀연히 한 명안인(明眼人)의 적철(摘掇; 采摘)을 만나면 입편(立便; 바로 즉시) 저(箇) 견처(見處)가 있어집니다. 도리어 전후(前後)로 무릇 견문(見聞)한 바를 가지고 스스로 증거(證據)를 행하니 어찌 명백하고 창쾌(暢快)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오배(吾輩) 속사(俗士)는 유소(幼小)함으로부터 속사(俗事)에 침지(浸漬; 잠기고 젖음)되고 및 장대(長大)하면 또 취처(娶妻; 장가를 들어 아내를 얻음)하고 양자(養子)하고 의식(衣食)을 경영(經營)하고 사환(仕宦; 벼슬살이)에 분주(奔走)하나니 황권적축(黃卷赤軸)은 일찍이 입수(入手)하지 못하고 비록 승한(乘閑)하여 완열(翫閱)하더라도 다만 이는 담병(談柄; 이야기거리)을 도울(資) 따름이거늘 어찌 일찍이 그 이치를 철구(徹究)하겠습니까. 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자 업자(業資; 産業資財)에 전박(纏縛; 묶임)되어 선림의 법석(法席)이 있음을 알고 가사(假使) 가서 참문(參問)하고 싶더라도 무슨 인유(因由; 由)로 감을 얻겠습니까. 어느 곳에 다시 결반(結伴)ㆍ유산(游山)ㆍ참선ㆍ문도(問道) 및 중중(衆中)의 박약(博約)의 많음이 있겠습니까. 만일(萬一) 명안인(明眼人)을 인사(因事)하여 만날 즈음(際)에 또(且) 일미(一味)의 공부(工夫)가 없거늘 소문(所聞)이 능히 다소(多少)가 있을 것이며 소득(所得)이 능히 기하(幾何)가 있겠습니까. 다시(復) 소견소문(所見所聞)을 묻거나 스스로 증거를 지음이 없고 다시(更) 널리 채토(採討)를 행하거나 깊이 찬앙(鑽仰; 深入하여 硏究함)을 가(加)함이 없으며 겨우(才) 일언반구(言半句)를 얻더라도 달리(殊) 명료(明了)함이 없으면서 바로 곧(便乃) 눈으로 운한(雲漢; 하늘)을 바라보고 비공이 요천(鼻孔遼天)하여 스스로 이르되 나는 초불월조(超佛越祖)했고 천성(千聖)이 일제(一齊; 齊)히 하풍(下風; 下位)에 선다고 하면서 불경선책(佛經禪冊)은 모두(都) 일고(一顧)하지 않고 갈등(葛藤)의 꾸짖음(誚)을 피하려고 한다면 필(弼)의 우견(愚見)으론 깊이 그렇지 않다고 염려합니다(恐). 필(弼)이 배우지 않았다면 곧 그만이지만(已) 만약 신심(身心)으로 그것(之)을 배웠음을 변설(辯說; 辯)하자면 모름지기 이 주선(周旋)하며 위곡(委曲)했고 심구원색(深鈎遠索; 깊이 갈구리를 담그고 멀리 찾다)했고 투정투저(透頂透底)했고 철골철수(徹骨徹髓)했고 일체(一切)에 현성(見成; 現前成就)했고 광명이 결정(潔淨)하고 일점(一點) 티끌 가량(塵許)의 응예(凝翳; 엉기어 가림)도 끊어졌으니 바야흐로 감히 은지(隱之)를 하시(下視; 下)합니다. 은지(隱之)여, 이 일사(一事)는 이 소소(小小)하지 않습니다. 바로(直) 무시이래(無始以來)의 생사근본(生死根本)을 탈각(脫却)함을 요하나니 생사를 주관(主管; 管)하는 염라노자(閻羅老子; 閻羅老漢)와 저적(抵敵; 對抗)을 지어야 비로소 옳습니다(始得). 타인의 한언장어(閑言長語; 閑言語)를 취하여 참학(參學)에 당(當)하려고 함은 불가(不可)하나니 바로 스스로 속아 갈 것입니다. 축축(祝祝)합니다. 필(弼)이 비부집사(比部執事)에게 계상(啓上; 禀呈. 奉呈)합니다.
●富鄭公; 부필(富弼; 1004-1083)이니 송대 운문종 거사. 자는 언국(彦國)이며 낙양(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 경력(慶曆) 3년(1043) 추밀부사에 제배(除拜)되었고 범중엄(范仲淹)과 경력신정(慶歷新政)을 한 번 일으켜 추행(推行)했음. 지화 2년(1055) 불러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제배(除拜)했는데 개혁을 일으키는 바가 없었고 오직 수성(守成)에 힘썼으며 당시에 현상(賢相)으로 일컬었음. 영종이 즉위하자 불러 추밀사에 제배(除拜)하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했음. 후에 왕안석과 정견(政見)이 맞지 않음으로 인해 물러남을 구해 나가서 박주(亳州)를 맡았음. 수옹선사(修顒禪師)가 투자산을 주지(主持)한다 함을 듣고 드디어 앞으로 나아가 참알했고 언하에 성오(省悟)했음. 또 수옹을 초청해 부중(府中)에 이르게 하고 일야로 참문했음. 만년에 거가(居家)하면서 날마다 릉엄경을 외웠고 소식(素食)하며 예불했음. 저작은 여금에 부정공시집이 남았음 [송사313. 오등회원16].
●投子顒; 수옹(修顒)이니 송대 운문종승. 자는 증오며 조성(산서 홍동) 양씨. 소주 서광 원조종본(圓照宗本)을 참해 득법했고 처음엔 수주 자성에 거주했음. 부정공(富鄭公)이 심히 경중(敬重)을 더했고 청하여 서경 소림초제에 주(住)했음. 마지막에 서주 투자(投子)에 주(住)했으며 도예(道譽)를 칭성(稱盛)했음 [속등록16. 오등회원16. 무석남선사지2].
●弟子; 선림보훈음의. 제자(弟子) 스승의 뒤에서 배움을 가로되 제(弟)며 지(智)가 스승으로부터 남을 가로되 자(子)다.
●比部; 벼슬 이름. 위진(魏晉) 시 설치했고 상서 열조(列曹)의 하나가 됨. 부적(簿籍)의 계핵(稽核; 검사. 감사)을 직장(職掌; 관장. 담당)했음. 후세에 이를 따랐음 [백도백과].
●葛藤; 문자와 언어를 가리킴이니 갈등의, 만연하여 교착(交錯)함과 똑 같음. 또 공안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를 가리킴. 다시 전의(轉義)하여 문답의 공부가 됨. 무용한 어구를 완롱(玩弄)함을 일컬어 한갈등(閒葛藤)이라 하며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참 뜻의 선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문자선, 혹은 갈등선이라 함.
●鄙誚; 경멸하는 자세로써 지책(指責)을 진행함.
●集中; 집(集)은 부정공시집(富鄭公詩集)을 가리킴.
●商確; 상토(商討; 상의하며 토론함). 짐작(斟酌).
●博約; 문장 내용이 광박(廣博)하고 말은 간단하고 뜻은 명료함을 가리킴.
●黃卷赤軸; 불교의 경권을 가리킴. 경문은 황지 위에 써서 붉은 축으로 그것을 말았기 때문에 고로 일컬어 황권적축임. 유마경약소수유기1을 안험컨대 당대(唐代) 정관년 간(627-649) 칙명으로 제정(制定)하되 황지로 서사하여 벌레의 해를 방지하라 했으니 이에 의해 추거(推據)하자면 경권을 황지로 서사한 것은 또한 정관 후에 있었음. 다른 하나의 전설은 후한 명제 영평 14년(630) 명제가 저선신(褚善信) 등의 청에 응해 불로 태워 불도(佛道) 경전의 우열을 시험했는데 도가의 서적은 모두 회신(灰燼; 재와 불탄 끄트러기)을 이루었으나 오직 불경권(佛經卷)은 황색을 훈성(薰成)하고 축(軸)은 삭홍(爍紅; 빛나는 홍색)으로 변한지라 고로 황권적축의 명칭이 있음 [전법정종론하. 북사72].
●雲漢; 1. 은하. 천하(天河). 2. 고천(高天). 천.
●鼻孔遼天;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요천(遼天)에서 천제(天際)를 향해 올라 천공을 향해 비행함.
●下風; 1. 방비(放屁; 방귀를 뀌다). 2. 하방(下方).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始得; 득(得)은 적합. 적당. 정호(正好). 가(可).
●執事; 사무를 관장하는 관리 혹 복역(僕役)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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