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艸堂淸禪師 見晦堂有所得 後遍游江淛 歸居廬山 去見眞淨於泐潭 淨問 甚麽處來 淸曰 下江 淨曰 將得什麽來 淸曰 和尙要什麽 淨曰 一切盡要 淸乃提起坐具 淨曰 閑家具 淸曰 莫要急切底麽 淨曰 試拈出看 淸摵一坐具便行 淨大駭之 後出世黃龍 上堂曰 昨日林間爲野客 今朝堂上住持人 放開揑聚都由我 萬象之中獨露身 越明年 卽退院事 結茆於寺之東隅 久之再住 上堂云 掩息茅堂過六冬 心忘境寂萬緣空 不知定業從何起 依舊令敎繼祖宗 後居曹山踈山 殆居泐潭已八十三矣 諸方龐鴻絶物之士皆歸焉
●艸堂淸; 善淸(1057-1142) 宋代黃龍派僧 字草堂 南雄保昌(廣東)人 俗姓何 自幼參香雲寺法思禪師 神宗元豐四年(1081) 試經得度 禮謁大潙慕喆 後入晦堂祖心(嗣黃龍)門下 竝嗣其法 政和五年(1115) 於江西黃龍山闡揚大法 歷住曹山 疏山 隆興(江西)泐潭寺 紹興十二年 示寂於泐潭寺 壽八十六 臘六十二 遺有草堂淸和尙語要一卷 或謂師卽越南佛敎草堂禪派之初祖 [聯燈會要十五 普燈錄六 釋氏稽古略四]
●晦堂; 祖心(1025-1100) 宋代黃龍派僧 廣東始興人 俗姓鄔 號晦堂 年十九依龍山寺惠全 翌年試經得度 住受業院奉持戒律 後參雲峰文悅 隨侍三年 未久參黃檗山慧南 留侍四年 後還文悅 時文悅示寂 乃依止石霜楚圓 一日 閱傳燈錄 讀多福禪師之語大悟 後隨慧南移黃龍山 慧南示寂 遂繼黃龍之席 居十二年 後入京師 駙馬都尉王詵盡禮迎之 然師僅菴居國門之外 晩年移菴深入 棧絶學者二十餘年 宋元符三年十一月示寂 壽七十六 諡號寶覺禪師 遺有寶覺祖心禪師語錄一卷 冥樞會要三卷等 [禪林僧寶傳二十三 續傳燈錄十五 五燈會元十七 釋氏稽古略四]
●江淛; 同江浙 位於長江下流的江蘇浙江兩省 在古代 狹義上的江浙地區 指長江和錢塘江之間的地區
●坐具; 比丘六物之一 坐臥時敷於地上或臥具上之長方形布 禮拜時先敷坐具 就其上作之 是甚爲不法 南山義淨皆痛斥之 釋門歸敬儀下曰 坐具之目 本是坐時之具 所以禮拜之中 無文敷者也 ▲釋氏要覽一 梵云尼師壇 此云隨坐衣 根本毘奈耶云 尼師但那 唐言坐具 淨法師註云 文言坐具 此乃敷具 坐臥皆得 佛制者 本爲儭替臥具 恐有所損 不擬餘用也 五分律云 爲護身護衣護僧床褥故著坐具
●住持; (一)安住於世而保持法也 (二)一寺之主僧名住持 此由禪門起 百丈淸規二住持章曰 佛敎入中國四百年而達磨至 又八傳而至百丈 唯以道相授受 或岩居穴處 或寄律寺 未有住持之名 百丈以禪宗寖盛 上而君相王公 下而儒老百氏 皆嚮風問道 有徒實蕃 非崇其位則師法不嚴 始奉其師爲住持 而尊之曰長老 如天竺之稱舍利弗須菩提 以齒德俱尊也
●放開; 解除某種束縛 開放
●祖宗; 原指爲始祖的祖上 禪林中 指祖師之宗旨宗風 又指祖師
●龐鴻; 渾然宏大 古人以天體未形成之前 宇宙渾沌一體稱爲龐鴻
●絶物; 一謂斷絕人事交往 二絕無僅有之物
○초당청(艸堂淸; 善淸) 선사가 회당(晦堂; 祖心)을 참견(參見; 見)하여 소득이 있었다. 후에 강절(江淛)을 두루 유행(游行; 游)했고 여산(廬山)으로 귀거(歸居)했다. 가서 진정(眞淨; 克文)을 늑담(泐潭; 늑담사)에서 뵙자 정문(淨問) 어느 곳(甚麽處)에서 오느냐. 청왈(淸曰) 하강(下江; 長江下流)입니다. 정왈(淨曰) 무엇을 가지고(將得) 왔는가. 청왈(淸曰) 화상은 무엇을(什麽) 요(要)하십니까. 정왈(淨曰) 일체를 모두 요한다. 청(淸)이 이에 좌구(坐具)를 제기(提起; 집어 일으킴)했다. 정왈(淨曰) 한가구(閑家具; 쓸데없는 가구)다. 청왈(淸曰) 급절한 것(急切底)을 요하지 않습니까. 정왈(淨曰) 시험 삼아 염출(拈出)해 보아라. 청(淸)이 한 번 좌구(坐具)를 내던지고(摵; 털어낼 색, 내던질 미) 바로 갔다(行). 정(淨)이 크게 놀랐다(駭之). 후에 황룡(黃龍; 황룡산)에서 출세했다. 상당(上堂)해 가로되 작일(昨日) 임간(林間)에서 야객(野客)이 되었는데/ 금조(今朝)에 당상(堂上)의 주지인(住持人)이다/ 방개(放開; 開放)와 날취(揑聚; 주워 모음)가 모두(都) 나를 말미암나니/ 만상지중(萬象之中)에 독로(獨露)한 몸이다. 명년(明年)을 넘기자(越) 곧 원사(院事)에서 물러나 사(寺)의 동우(東隅)에 결모(結茆; 띠집을 엮음. 茆는 茅와 통함)했고 오래되자(久之) 재주(再住)했다. 상당(上堂)해 이르되 모당(茅堂)에서 엄식(掩息; 休息)하며 육동(六冬; 6년)을 지났나니/ 심망경적(心忘境寂)하여 만연(萬緣)이 공(空)했다/ 정업(定業)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지만/ 의구히 조종을 잇게 한다(令敎繼祖宗). 후에 조산(曹山)ㆍ소산(踈山)에 거주했고 늑담(泐潭)에 태거(殆居; 退居로 의심됨)하였으니 이미 83이었다. 제방(諸方)의 방홍절물지사(龐鴻絶物之士)가 모두 귀의(歸依; 歸)했다.
●艸堂淸; 선청(善淸; 1057-1142)이니 송대 황룡파승. 자는 초당(草堂)이며 남웅 보창(광동) 사람이며 속성은 하. 어릴 적부터 향운사 법사선사를 참했고 신종 원풍 4년(1081) 시경득도(試經得度)했음. 대위모철을 예알했고 후에 회당조심(晦堂祖心; 황룡을 이었음)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정화 5년(1115) 강서 황룡산에서 대법을 천양(闡揚)했음. 조산ㆍ소산ㆍ융흥(강서) 늑담사를 역주(歷住)했고 소흥 12년 늑담사에서 시적했음. 나이는 86, 납(臘)은 62. 유저(遺著)에 초당청화상어요 1권이 있음. 혹 이르기를 스님은 월남불교 초당선파(草堂禪派)의 초조라 함 [연등회요15. 보등록6. 석씨계고략4].
●晦堂; 조심(祖心; 1025-1100)이니 송대 황룡파승. 광동 시흥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오(鄔)며 호는 회당(晦堂). 나이 19에 용산사 혜전에게 의지했고 다음해에 시경득도(試經得度)했음. 수업원(受業院)에 머물며 계율을 봉지(奉持)하다가 뒤에 운봉문열(雲峰文悅)을 참알(參謁)해 수시(隨侍)하기 3년이었으며 오래지 않아 황벽산(黃檗山)의 혜남(慧南)을 참알해 머물며 시봉하기 4년이었음. 뒤에 문열에게 돌아갔는데 때에 문열은 시적(示寂)한지라 이에 석상초원(石霜楚圓)에게 의지했음. 어느 날 전등록을 열람했는데 다복선사(多福禪師)의 말을 읽다가 대오했음. 후에 혜남을 따라 황룡산(黃龍山)으로 이주했고 혜남이 시적하자 드디어 황룡의 법석을 승계했으며 거주하기 12년이었음. 후에 경사(京師)에 들어갔더니 부마도위(駙馬都尉) 왕선(王詵)이 예(禮)를 다해 환영했지만 그러나 스님은 근근(僅僅)히 국문(國門)의 밖에 암거(菴居)하였음. 만년에 암자를 옮겨 깊이 들어가 잔도(棧道)로 학자를 사절(辭絶)하기 20여년이었음. 송(宋) 원부(元符) 3년 11월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6이며 시호는 보각선사(寶覺禪師). 유작(遺作)에 보각조심선사어록(寶覺祖心禪師語錄) 1권과 명추회요(冥樞會要) 3권 등이 있음 [선림승보전23. 속전등록15. 오등회원17. 석씨계고략4].
●江淛; 강절(江浙)과 같음. 장강(長江) 하류(下流)의 강소(江蘇)ㆍ절강(浙江) 양성(兩省)에 위치함. 고대(古代)에 있어선 협의상(狹義上)의 강절지구(江浙地區)는 장강과 전당강(錢塘江)의 사이의 지구를 가리켰음.
●坐具; 비구 6물의 하나. 좌와(坐臥) 시 지상이나 혹 와구(臥具) 위에 펴는 장방형의 포(布). 예배할 때 먼저 좌구를 펴고 그 위에 나아가 이를 지음은 이는 심히 불법(不法)이 됨. 남산과 의정이 모두 통렬히 그것을 배척했음. 석문귀경의하(釋門歸敬儀下)에 가로되 좌구의 명목은 본시 앉을 때의 도구다. 소이로 예배하는 중에 편다(敷)는 글이 없다. ▲석씨요람1. 범어로 이르되 니사단(尼師壇)은 여기에선 이르되 수좌의(隨坐衣)다. 근본비나야(根本毘奈耶)에 이르되 니사단나(尼師但那)는 당나라 말로 좌구다. 의정법사의 주(註)에 이르되 문(文)에 좌구라고 말한 것은 이는 곧 부구(敷具; 敷는 펼 부)니 앉거나 눕는데 다 합당하다. 불타가 제정한 것은 본래 깔개(儭; 襯과 같음. 藉임)가 되었는데 와구(臥具)로 대체했음은 손상하는 바가 있을까 염려했음이니 여타의 용도로 향하지(擬는 向임) 못하게 했음이다. 오분율에 이르되 몸을 보호하고 옷을 보호하고 승상(僧床)의 요를 보호하기 위한 연고로 좌구를 두었다.
●住持; (1). 세간에 안주하며 법을 보지(保持)함임. (2). 1사(寺)의 주승(主僧)을 이름해 주지니 이는 선문(禪門)으로부터 일어났음. 백장청규2 주지장(住持章)에 가로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4백 년에 달마가 이르렀고 또 8전(傳)하여 백장에 이르렀다. 오직 도상(道相)을 주고 받았으며 혹은 바위에 거처커나 동굴에 거처커나 혹은 율사(律寺)에 기탁하면서 주지란 명칭이 있지 않았다. 백장이, 선종이 점점 성대해지자 위로는 군상왕공(君相王公)과 아래론 유로백씨(儒老百氏)가 다 도풍을 향해 도를 물었으며 도중이 실로 번성함이 있었는데 그 지위를 숭상하지 않으면 사법(師法)이 엄하지 않으므로 비로소 그 스승을 받들어 주지로 삼고 존중해 가로되 장로라 했다. 천축의 사리불과 수보리를 일컬음과 같나니 나이와 덕이 다 높기 때문이다.
●放開; 모종(某種)의 속박을 해제함. 개방.
●祖宗; 원래는 시조의 조상을 가리킴이나 선림 중에서 조사의 종지와 종풍을 가리킴. 또 조사를 가리킴.
●龐鴻; 혼연(渾然)히 굉대(宏大)함. 고인은 천체(天體)가 형성되지 아니한 전, 우주가 혼돈(渾沌)하여 일체(一體)를 일컬어 방홍(龐鴻)이라 했음.
●絶物; 1. 이르자면 인사(人事)와 교왕(交往)을 단절함. 2. 단절되어 없거나 겨우 있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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