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善謙和尙 建寧人 初之京師 謁圓悟 無所省發 後隨玅喜菴于泉南 喜領徑山 謙亦侍行 未幾 喜令往長沙 通紫巗居士張魏公書 謙自惟曰 我參禪二十年 逈無入處 更於此行 決定荒廢 意欲無行 友人竹原菴主宗元者 乃責曰 不可在路參禪不得 吾與汝俱往 謙不得已而往 在路泣 謂元曰 我一生參禪 殊無得力處 今又途路奔走 如何得相應去 元告之曰 但將諸方參得底 悟得底 圓悟玅喜與汝說得底 都不要理會 途中可替底事 我盡替得你 只有五件事替你不得 你自家祇當 謙曰 甚五件事 願聞其說 元曰 著衣 喫飯 屙屎 送尿 拖箇死屍路上行 謙於言下大悟 不覺手舞足蹈曰 非兄 某甲如何得此田地 元乃曰 汝這回方可通紫巗書 吾當回矣 元卽歸建上 謙到長沙留半載 秦國夫人亦因師打發大事 乃還雙徑 玅喜䇿杖倚門而待 一見謙曰 建州子 這回別了也 只管怨老僧 自是你時節未到 於是日益玄奧 後出世玄沙 示衆云 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如何是密付底心 良久 云 八月秋 何處熱 又云 說佛說法 誑惑盲聾 論性論心 自投穽陷 行棒行喝 倚勢欺人 瞬目揚眉 野狐精魅 總不與麽 大似揚聲止響 別有奇特 也是望空啓告 畢竟如何 白雲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
●開善謙; 道謙 宋代楊岐派僧 號密庵 建州(福建建甌)游氏 初謁佛果 後隨妙喜至徑山 一 日妙喜遣往長沙通書紫巖居士 途中大悟 回里住開善寺 聲光大振 [普燈錄十八 五燈會元二十]
●紫巗居士; 張浚(1097-1164) 宋代居士 字德遠 號紫巖居士 綿竹(四川綿陽)人 紹興(1131-1162)初 拜封爲和國公 隆興元年(1163) 封魏國公 高宗孝宗兩朝秉政 問道圓悟克勤 於言下有省 呈偈曰 敎外單傳佛祖機 本來無悟亦無迷 浮雲散盡靑天在 日出東方夜落西 悟可 嘗作虎丘轉輪大藏記 母秦國夫人從徑山大慧得旨 及卒 遺命供大慧一年報恩 浚從之 卒謚忠獻 [朱子文集 佛法金湯編十四 禪林寶訓音義 百度百科]
●宗元; (1100-1176) 宋代楊岐派僧 福建建陽人 俗姓連 號竺原 少時 人譽稱爲儒林秀傑 二十八歲 入西峰道聳門下出家 未久 參徑山大慧宗杲 得宗杲印可而嗣其法 後於西禪寺任分座 應丞相張浚之請 遊歷諸寺弘法 晩年歸返故里隱居 所居茅舍 稱爲衆妙園 淳熙三年示寂 壽七十七 臘五十 著有竹原元菴主語一卷 [聯燈會要十八 普燈錄十八 古尊宿語要五]
●祇當; 又作祗當 承當 應對
●手舞足蹈; 形容人極度高興時的動作狀態 ▲孟子離婁上 不知足之蹈之 手之舞之
●某甲; 一自稱之詞 相當于我 二代替人名 此指一
●秦國夫人; 秦國夫人計氏 嗣法於大慧宗杲 北宋時期邛州臨邛人 張氏南軒族譜記載 計氏守志 節孝兼全 訓以義方 人欽孟母 以子貴封秦國夫人 後改封蜀國太夫人 常敎育其子張浚說 臣寧言而死於斧鉞 不能忍不言以負陛下 [百度百科 禪燈世譜 五燈會元二十]
●打發; 發動精神之義 猶擊發
●大事; 領悟禪法 超脫生死之事 禪家以此爲本分大事 ▲緇門警訓註上 法華以佛知見爲大事 涅槃以佛性爲大事 維摩以不思議爲大事 華嚴以法界爲大事 宗門以一著子爲大事 名雖有別 其義則一也
●竺土; 祖庭事苑二 竺土 華梵兼擧也 竺是梵語 土是華言 西域記云 梵語天竺此云月 謂佛日旣沒 諸聖法敎如月也 五天竺國亦名五印土 周九萬餘里 三垂大海 北背雪山 北廣南狹 形如半月 畫野區分七十餘國
●大仙; 祖庭事苑二 大僊(同仙) 般若論(般若燈論釋十)云 聲聞菩薩亦名仙 佛於中最尊上故 已有一切波羅蜜多功德善根彼岸 故名大僊
●瞬目揚眉; 禪家示機應機的特殊動作 亦泛指禪機作略
●精魅; 精靈魑魅 精 靈 神靈 鬼怪 魅 魑魅 ▲法華文句記六 魑魅者 物之精也 通俗文云 山澤之怪謂之魑也 西京賦云 山神虎形曰魑 宅神豬頭人形曰魅
○개선겸(開善謙; 道謙) 화상은 건녕(建寧) 사람이다. 처음 경사(京師)로 가서(之) 원오(圓悟; 克勤)를 참알(參謁; 謁)했으나 성발(省發; 領會)하는 바가 없었다. 후에 묘희(玅喜)를 따라 천남(泉南)에서 암거(菴居; 菴)했다. 희(喜)가 경산(徑山)을 거느리자(領) 겸(謙)도 또한 시행(侍行)했다. 오래지 않아(未幾) 희(喜)가, 장사(長沙)로 가서 자암거사(紫巗居士) 장위공(張魏公)에게 글을 통지(通知; 通)하게 했다. 겸(謙)이 스스로 사유(思惟; 惟)해 가로되 나는 참선한 지 20년에 아득히 멀어(逈) 입처(入處)가 없거늘 다시 여기에서 간다면(行) 결정코 황폐(荒廢)하리라. 뜻에 가지 않으려고(無) 했다. 우인(友人) 죽원암주(竹原菴主) 종원(宗元)이란 자가 이에 책망(責望; 責)해 가로되 재로(在路)하면서 참선(參禪)을 얻지 못한다 함은 옳지 못하다. 내가 너와 함께(俱) 가겠다(往). 겸(謙)이 부득이(不得已)하여 갔다. 재로(在路)하면서 읍(泣)했다. 원(元)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일생 동안 참선했지만 특수히 득력처(得力處)가 없었다. 지금 또 도로(途路)에서 분주(奔走)하니 어찌해야 상응함을 얻어 가겠는가. 원(元)이 그(之)에게 고(告)해 가로되 단지 제방에서 참득(參得)한 것(底)과 오득(悟得)한 것과 원오와 묘희가 너를 위해(與) 설득(說得)한 것을 가져서(將) 모두(都) 이회(理會)를 요하지 않는다. 도중(途中)에 가히 대체할 일(替底事)을 내가 모두 너(你)를 체득(替得; 代替함을 얻음)하겠지만 다만 오건사(五件事)가 있어 너를 대체함을 얻지 못하니 너(你) 자가(自家; 家는 人稱代詞의 後綴)가 지당(祇當; 應對)하라. 겸왈(謙曰) 무엇이(甚) 오건사(五件事)인가, 그 말을 듣기를 원한다. 원왈(元曰) 착의(著衣)ㆍ끽반(喫飯)ㆍ아시(屙屎; 똥을 누다)ㆍ송뇨(送尿; 오줌을 내보내다)와 저(箇) 사시(死屍)를 끌고(拖) 노상(路上)에서 가는 것이다. 겸(謙)이 언하에 대오했다. 불각에 수무족도(手舞足蹈)하며 가로되 형이 아니었다면 모갑(某甲; 나)이 어떻게 이 전지(田地; 境地)를 얻었겠는가. 원(元)이 이에 가로되 네가 이번 회(這回)에 바야흐로 가히 자암(紫巗)에게 글을 통지한다. 나는 마땅히 돌아가겠다(回矣). 원(元)이 곧 건상(建上)으로 돌아갔다(歸). 겸(謙)이 장사(長沙)에 이르러 반재(半載; 반 년) 머물렀다. 진국부인(秦國夫人)도 또한 스님으로 인해 대사(大事)를 타발(打發; 擊發)했다. 이에 쌍경(雙徑; 雙徑寺)으로 귀환(歸還; 還)하자 묘희가 지팡이를 짚고(䇿杖; 䇿은 策과 같음. 拄임) 문에 기대어 기다렸다가 겸을 한 번 보자 가로되 건주자(建州子; 子는 남자의 通稱)가 이번 회(這回)엔 특별했구나(別了也). 다만 관대(管帶; 管)하여 노승(老僧)을 원망했겠지만 스스로 이 너의 시절이 이르지 못했음이다. 이에 날로 현오(玄奧)을 더했다(益). 후에 현사(玄沙; 현사산)에서 출세했다. 시중(示衆)해 이르되 축토(竺土) 대선(大仙)의 마음이 동서(東西)에 비밀히 상부(相付; 서로 付囑)한다(參同契). 무엇이 이 밀부(密付)의 마음인가. 양구(良久)했다. 이르되 8월의 가을이거늘 어느 곳이 더운가(熱). 우운(又云) 설불설법(說佛說法)함은 맹롱(盲聾)을 광혹(誑惑; 속여 迷惑하게 함)함이며 논성논심(論性論心)함은 스스로 정함(穽陷; 陷穽)에 투입함이며 행방행할(行棒行喝)함은 세력에 기대어 사람을 속임(欺)이며 순목양미(瞬目揚眉)는 야호(野狐)의 정매(精魅)다. 모두 이러하지 않는다면(不與麽) 양성지향(揚聲止響;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그치게 함)과 대사(大似; 매우 비슷함)하며 달리 기특(奇特)함이 있다면 또 이는 허공을 바라보며 계고(啓告; 알려서 고함)함이다. 필경 어떠한가. 백운이 다한 곳이 이 청산이지만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더라.
●開善謙; 도겸(道謙)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는 밀암이며 건주(복건 건구) 유씨. 처음엔 불과를 예알하고 후에 묘희를 따라 경산에 이르렀음. 어느 날 묘희가 보내어 장사로 가서 자암거사에게 통서(通書; 서신으로 통지함)하게 했는데 도중에서 대오했음. 향리로 돌아가 개선사(開善寺)에 주(住)했으며 성광(聲光)을 크게 떨쳤음 [보등록18. 오등회원20].
●紫巗居士; 장준(張浚; 1097-1164)이니 송대 거사. 자는 덕원(德遠)이며 호는 자암거사(紫巖居士)니 면죽(사천 면양) 사람. 소흥(1131-1162) 초 제배(除拜)하여 화국공에 봉해졌고 융흥 원년(1163)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음. 고종과 효종 양조(兩朝)에 병정(秉政)했음. 원오극근(圓悟克勤)에게 도를 물어 언하에 성찰이 있었고 게를 보여 가로되 교외 단전(單傳)하는 불조기(佛祖機)는/ 본래 오(悟)도 없고 또한 미(迷)도 없다/ 부운이 흩어 없어져도 청천은 있나니/ 해는 동방에서 나와 밤에 서쪽에 진다. 원오가 인가했음. 일찍이 호구(虎丘)에 전륜대장기(轉輪大藏記)를 만들었음. 모친 진국부인(秦國夫人)은 경산 대혜(大慧)로부터 득지(得旨)했는데 죽음에 이르러 유명(遺命)으로 대혜에게 1년 동안 공양해 보은하라 했고 장준이 이에 따랐음. 졸시(卒謚)는 충헌 [주자문집. 불법금탕편14. 선림보훈음의. 백도백과].
●宗元; (1100-1176) 송대 양기파승. 복건 건양 사람이며 속성은 연(連)이며 호는 축원(竺原). 소시(少時)에 사람들이 예칭(譽稱)하기를 유림의 수걸(秀傑)이라 했음. 28세에 서봉도용 문하에 들어가 출가했고 오래지 않아 경산 대혜종고(大慧宗杲)를 참해 종고의 인가를 얻고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서선사에서 분좌(分座)에 임명되었음. 승상 장준(張浚)의 청에 응해 여러 사원을 유력(遊歷)하며 홍법했음. 만년에 고리(故里)로 귀반(歸返)하여 은거했는데 거주하는 바의 띳집을 일컬어 중묘원이라 했음. 순희 3년 시적했고 나이는 77, 납은 50. 저서에 죽원원암주어(竹原元菴主語) 1권이 있음 [연등회요18. 보등록18. 고존숙어요5].
●祇當; 또 지당(祗當)으로 지음. 승당(承當). 응대.
●手舞足蹈; 사람이 극도로 고흥(高興)일 때의 동작의 상태를 형용함. ▲맹자 이루상. 발이 밟는지 손이 춤추는지를 알지 못하다.
●某甲; 1. 자칭의 말이니 아(我)에 상당(相當)함. 2. 인명(人名)을 대체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秦國夫人; 진국부인계씨(秦國夫人計氏)니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법을 이었음. 북송시기 공주 임공 사람. 장씨남헌족보(張氏南軒族譜)의 기재(記載) 계씨는 수지(守志)했고 절효(節孝)를 겸전(兼全)했음. 의방(義方)으로 훈육했고 사람들이 맹모(孟母)처럼 흠모했음. 아들이 귀족이라 진국부인에 봉해졌으며 후에 촉국태부인으로 개봉(改封)했음. 항상 그 아들 장준(張浚)을 교육하며 설하기를 신하는 차라리 말하다가 부월(斧鉞; 도끼)에 죽을지언정 말하지 않아서 폐하를 저버림을 능히 참지 말아라 [백도백과. 선등세보. 오등회원20].
●大事; 선법을 영오(領悟)하여 생사를 초탈하는 일. 선가에서 이것으로써 본분대사로 삼음. ▲치문경훈주상. 법화는 불지견으로써 대사(大事)로 삼고 열반은 불성으로써 대사로 삼고 유마는 부사의로써 대사로 삼고 화엄은 법계로써 대사로 삼고 종문은 일착자(一著子)로써 대사를 삼나니 이름은 비록 다름이 있지만 그 뜻은 곧 하나다.
●打發; 정신을 발동함의 뜻. 격발(擊發)과 같음.
●竺土; 조정사원2. 축토(竺土) 화범(華梵)을 겸거(兼擧)했으니 축(竺)은 이 범어며 토(土)는 이 화언(華言)임. 서역기(2)에 이르되 범어로 천축은 여기에선 이르되 월(月)이니 이르자면 불일(佛日)이 이미 몰락(沒落)하매 제성(諸聖)의 법교(法敎)가 월(月)과 같다. 5천축국(五天竺國)은 또한 이름이 5인토(五印土)니 둘레가 9만여 리며 삼면이 대해에 드리웠고 북쪽은 설산을 등졌다.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며 형상이 반월(半月)과 같다. 들판을 그어 70여 국(國)으로 나뉘었다.
●大仙; 조정사원2. 대선(大僊; 仙과 같음) 반야론(반야등론석10)에 이르되 성문과 보살도 또한 이름이 선(仙)이나 불타가 가운데에 가장 존상(尊上)인 연고며 이미 일체 바라밀다의 공덕과 선근과 피안이 있으므로 고로 이름이 대선(大僊)이다.
●瞬目揚眉; 선가가 시기응기(示機應機)하는 특수한 동작. 또한 널리 선기의 작략(作略)을 가리킴.
●精魅; 정령이매(精靈魑魅)니 정(精)은 령(靈)이며 신령이며 귀괴(鬼怪)며 매(魅)는 이매(魑魅)임. ▲법화문구기6. 이매(魑魅)란 것은 물건의 정(精)이다. 통속문에 이르되 산택(山澤)의 괴물을 리(魑)라고 일컫는다. 서경부(西京賦; 후한 張衡의 시)에 이르되 산신이면서 범의 형상을 가로되 리(魑)며 택신(宅神)이면서 돼지머리에 사람의 형상을 가로되 매(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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