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墨觀音像 自唐吳道子 李伯時後 惟吳僧梵隆茂宗者尤爲玅絶 故孝宗甞贊之曰 水波不動 火光不興 梵隆玅絶 授之德明 葢賜中官黃德明也 隆有小師至叶 亦善作此 近有閩僧德源 筆猶臻玅 故當時鉅公如謝丞相 趙大師彦逾 皆有贊其像曰 收視返聽 結跏趺坐 邈出筆端 以色見我 千百億身 無可不可 重說偈言 依然話墮 趙曰 出意作觀音 筆間造玄玅 會得眞面目 慧光應徧耀 若以相貌求 覩相生善念 念念旣純全 眞相縱斯現
●吳道子; (約686-760前後) 名道玄 字道子 唐代畫家 開封陽翟(河南禹縣)人 少孤貧 及長 遊洛陽 與張旭 賀知章習書法而無成就 後專心習畫 深究其妙 寫蜀道山水 創一家之體 又其佛像 鬼神 人物 禽獸 山水 臺閣等 皆爲當時之冠 其筆法超妙 人稱百代畫聖 初嘗仕袞州瑕邱尉 更召入宮中授內敎博士 帝不詔則不畫 早年行筆稍細 中年則磊落渾厚 曾於開封景公寺繪地獄變相 不著鬼怪而陰森襲人 久操屠沽漁罟之徒 見而懼罪 改業者甚多 後不知所終 [佛祖統紀四十 歷代名畫記九 萬寶全書四 太平廣記二一二 酉陽雜俎續集五 琅琊代醉編十八]
●李伯時; 李公麟(1049-1134) 宋代安徽舒州人 字伯時 號龍眠居士 元祐(1086-1094) 進士 元符年間(1098-1100) 拜御史大夫 博學好古 長於詩 多識奇字 自夏商以來之鐘鼎尊彝 皆能考定 辨別款式 尤善畫馬 山水 佛像 人物 得吳道子心法 山水似李思訓 晩年歸佛受戒 能通禪法 而雅好淨土 隱居龍眠山莊 時與高僧談論 竝結社念佛 紹興四年預知時至 施財 書偈 念佛而化 享年八十六 遺墨傳世頗多 畫家奉爲典則 [名公法喜志四 東林十八高賢傳]
●跏趺坐; 僧人修行時之一種坐姿 兩足交叉置于另側大腿上 佛經中認爲這種坐法 最安穩不疲倦 宜于坐禪 又稱交一足爲半跏趺坐 半跏坐 半跏 稱交二足爲全跏坐 全跏
○수묵관음상(水墨觀音像)은 당(唐) 오도자(吳道子)와 이백시(李伯時) 후로부터 오직(惟) 오승(吳僧) 범륭무종(梵隆茂宗)이란 자가 더욱(尤) 묘절(玅絶; 絶妙)했다. 고로 효종(孝宗)이 일찍이 그것(之; 水墨觀音像)을 찬(贊)해 가로되 수파(水波)가 부동(不動)하고/ 화광(火光)이 불흥(不興)한다/ 범륭(梵隆)이 묘절(玅絶)하니/ 덕명(德明)에게 이를 준다(授之). 대개 중관(中官; 官名) 황덕명(黃德明)에게 하사(下賜; 賜)하였다. 륭(隆)에게 소사(小師) 지협(至叶)이 있었는데 또한 이것(此)을 잘 지었다. 근래(近來; 近) 민승(閩僧) 덕원(德源)이 있어 필(筆; 필법)이 오히려 묘에 이르렀다(臻玅). 고로 당시의 거공(鉅公; 巨公) 예컨대 사승상(謝丞相)ㆍ조사대(趙大師) 언유(彦逾)가 모두 그 상(像)에 찬(贊)이 있으니 가로되 수시(收視; 봄을 거두다)하여 반청(返聽; 도리어 듣다)하고 가부좌(跏趺坐)를 결속(結束; 結)했다. 붓 끝(筆端)에서 묘사해 내어(邈出) 색으로써 나를 본다. 천백억신(千百億身)이 가(可)도 불가(不可)도 없다. 게언(偈言)을 중설(重說)하니 의연(依然)히 화타(話墮)했다. 조왈(趙曰) 뜻을 내어 관음을 지으니 붓 사이에 현묘(玄玅)를 지었다. 진면목을 회득(會得)한다면 혜광(慧光)이 응당 두루 빛나리라(耀). 만약 상모(相貌)로써 구한다면 상을 보고(覩相) 선념(善念)을 내리라. 염념(念念)이 이미 순전(純全)하니 진상(眞相)을 놓아(縱) 이에 나타난다(斯現).
●吳道子; (약 686-760 전후) 이름은 도현(道玄)이며 자는 도자(道子)니 당대의 화가며 개봉 양적(하남 우현) 사람. 어릴 적에 고빈(孤貧)했고 장성함에 이르자 낙양에 노닐면서 장욱(張旭)ㆍ하지장(賀知章)과 더불어 서법을 익혔으나 성취가 없었음. 후에 전심(專心)으로 습화(習畫)하면서 그 묘를 깊이 연구하여 촉도산수(蜀道山水)를 그려 1가(家)의 체를 창작했음. 또 그의 불화ㆍ귀신ㆍ인물ㆍ금수ㆍ산수ㆍ대각(臺閣) 등은 모두 당시의 으뜸이 되었음. 그의 필법은 초묘(超妙)하여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백대화성(百代畫聖)이라 했음. 처음에 일찍이 곤주 하구위(瑕邱尉)로 출사(出仕)했고 다시 불러 궁중에 들어가 내교박사(內敎博士)에 제수(除授)되었음. 제(帝)가 조칙하지 않으면 그리지 않았음. 젊은 나이엔 행필(行筆)이 조금 세밀했고 중년엔 곧 뇌락(磊落; 壯大)하고 혼후(渾厚; 朴實하고 雄厚)했음. 일찍이 개봉 경공사(景公寺)에 지옥변상(地獄變相)을 그렸는데 귀괴(鬼怪)에 붙지 않아도 음삼(陰森; 우거져 어두움)이 습인(襲人; 사람에게 掩襲)했음. 오래 도고어고(屠沽漁罟; 도축ㆍ沽酒ㆍ어망)를 가진 무리가 이를 보고 죄가 두려워 개업(改業)하는 자가 많았음. 후에 마친 곳을 알지 못함 [불조통기40. 역대명화기9. 만보전서4. 태평광기212. 유양잡조속집5. 낭야대주편18].
●李伯時; 이공린(李公麟; 1049-1134)이니 송대 안휘 서주 사람. 자는 백시(伯時)며 호는 용면거사(龍眠居士). 원우(1086-1094) 진사(進士). 원부년 간(1098-1100) 어사대부에 제배(除拜)되었음. 박학하고 호고(好古; 고풍을 좋아함)했으며 시에 뛰어났음. 기자(奇字)를 많이 알아 하상(夏商) 이래로부터의 종정(鐘鼎)과 준이(尊彝; 尊과 彝는 균일하게 고대의 酒器)를 모두 능히 고정(考定; 고찰하여 정함)했고 관식(款式; 樣式)을 변별했음. 더욱이 말ㆍ산수ㆍ불상ㆍ인물을 잘 그렸는데 오도자(吳道子)의 심법을 얻었고 산수는 이사훈과 흡사했음. 만년에 불타에게 귀의하고 수계했으며 선법에 능통했고 정토를 아호(雅好; 애호)했음. 용면산장(龍眠山莊)에 은거하며 때때로 고승과 담론했으며 아울러 염불을 결사(竝結)했음. 소흥 4년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시재(施財)하고 게를 쓰고 염불하면서 화(化; 죽음)했음. 향년(享年)은 86. 유묵(遺墨)이 세상에 전한 게 파다하며 화가들이 받들어 전칙(典則; 법칙)을 삼았음 [명공법희지4. 동림십팔고현전].
●跏趺坐; 승인이 수행할 때의 일종의 앉는 모습. 두 발을 교차해 따로 곁의 넓적다리 위에 둠. 불경 중에 인정하기를 이런 종류의 좌법은 가장 안온(安穩)하여 피권(疲倦)하지 않으므로 좌선에 마땅하다 함. 또 한 발을 교차함을 일컬어 반가부좌ㆍ반가좌ㆍ반가(半跏)라 하고 두 발을 교차함을 일컬어 전가좌ㆍ전가(全跏)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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