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圓智禪師 四明人 嗣道林一 一見祐山𡨢 𡨢見黃龍南 故其親得黃龍宗旨 有三關頌幷拈古盛行叢林 初 玅喜聞其坦率 不事事 不甚樂之 及觀其拈古 乃撫几稱賞善曰 眞黃龍正傳也 掇筆大書四句於後曰 七佛命脈 諸祖眼睛 但看此錄 一切現成 由是學者方知二師用處初無二致 然智甞謂人曰 杲玅喜作用 不減巖頭死心 可謂百世之師也 但未與老僧商確那事 若見老僧一回 定敎他光前絶後 然二師竟不相見 智終于石霜 預旬日受弟子生祭 就法座上端然化去 方知玅喜不輕肯人也
●大圓智; 宋代黃龍派僧 四明(浙江寧波)人 嗣道林了一(黃龍下二世) 親得黃龍宗旨 有三關頌並拈古盛行叢林 妙喜閱拈古稱賞曰 眞黃龍正傳也 住潭州大潙山 終石霜 [五燈會元十八 普燈錄十]
●道林一; 了一(?-1114) 宋代黃龍派僧 四明(浙江寧波)臧氏 嗣祐聖法𡨢(嗣黃龍慧南) 大觀初(1107) 出住南嶽大明 遷智度 及潭州道林 [普燈錄七 續傳燈錄二十]
●祐山𡨢; 疑祐聖𡨢 法𡨢 宋代僧 潮陽(今屬廣東)鄭氏 見黃龍慧南 蒙印可 住隆興府祐聖寺 [五燈會元十七 普燈錄七]
●拈古; 擧出前人公案機語 加以評議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也是禪宗語錄的一種類型
●巖頭; 全豁(828-887)이니 又作全奯 唐代僧 泉州(今屬福建)人 俗姓柯 出家於靈泉寺 受具足戒於長安西明寺 與雪峰義存 欽山文邃同修互勉 竝參訪仰山慧寂 又參學於德山宣鑑 承其法嗣 出居鄂州(今湖北武昌)巖頭院 大振宗風 故又稱巖頭全豁 唐光啓三年四月 賊亂 臨刃仍泰然自若 大喝一聲而終 壽六十 諡號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那事; 隱指悟道成佛之事
●光前絶後; 亦曰絶後光前 前後無類比之義 後生無如是賢者 故曰絶後 其賢德光於前世 故曰光前 形容功業偉大或成就卓著
●生祭; 爲赴死或將死的人擧行祭禮
○대원지(大圓智) 선사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도림일(道林一; 了一)을 이었고 일(一)은 우산거(祐山𡨢; 法𡨢)를 참견했고 거(𡨢)는 황룡남(黃龍南; 혜남)을 참견했으니 고로 그는 황룡종지(黃龍宗旨)를 친득(親得)했다. 삼관송(三關頌)과 아울러 염고(拈古)가 있어 총림에 성행(盛行)한다. 처음 묘희(玅喜)가 그의 탄솔(坦率; 直率)함과 불사사(不事事; 事務를 처리하지 않음)하다 함을 듣고 심히 그(之)를 좋아하지(樂) 않았는데 및 그의 염고(拈古)를 보고 이에 무궤(撫几; 案席을 어루만짐)하며 좋음(善)을 칭상(稱賞; 칭찬)해 가로되 참다운(眞) 황룡의 정전(正傳)이다. 붓을 가려(掇) 4구를 뒤에 대서(大書)해 가로되 칠불(七佛)의 명맥(命脈)이며/ 제조(諸祖)의 안정(眼睛)이다/ 단지 차록(此錄)을 간(看)한다면/ 일체(一切)가 현성(現成)했다. 이로 말미암아 학자가 비로소 이사(二師; 대원지와 묘희)의 용처(用處)가 애초에 이치(二致)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지(智)가 일찍이 사람에게 일러 가로되 고묘희(杲玅喜; 宗杲玅喜)의 작용은 암두(巖頭; 全豁)와 사심(死心; 悟新)에 감(減)하지 않아 가위(可謂) 백세(百世)의 스승이다. 단지 노승과 더불어 나사(那事)를 상확(商確; 商討)하지 못했다. 만약 노승을 일회(一回) 상견(相見; 見)했다면 꼭(定) 그로 하여금 광전절후(光前絶後)하게 했으리라. 그러나 이사(二師)는 마침내(竟) 상견(相見)하지 못했다. 지(智)는 마침내 석상(石霜)에서 마쳤다. 미리(預) 열흘(旬日) 전에 제자의 생제(生祭)를 받았는데 법좌상(法座上)으로 나아가 단연(端然)히 화거(化去; 逝世)했으니 바야흐로 묘희가 가볍게 사람을 긍정하지 않았음을 알겠다.
●大圓智; 송대 황룡파승. 사명(절강 영파) 사람. 도림요일(道林了一; 황룡하 2세)을 이었음. 황룡의 종지를 친히 얻었으며 삼관송(三關頌)과 아울러 염고가 있어 총림에 성행함. 묘희가 염고를 보고 칭상(稱賞; 칭찬)하며 가로되 참다운 황룡의 정전(正傳)이다. 담주 대위산에 거주했고 석상에서 마쳤음 [오등회원18. 보등록10].
●道林一; 요일(了一; ?-1114)이니 송대 황룡파승. 사명(절강 영파) 장씨. 우성법거(祐聖法𡨢; 황룡혜남을 이었음)를 이었음. 대관 초(1107) 출세해 남악 대명에 거주했고 지도 및 담주 도림으로 옮겼음 [보등록7. 속전등록20].
●祐山𡨢; 우성거(祐聖𡨢)로 의심됨. 법거(法𡨢)니 송대승. 조양(지금 광동에 속함) 정씨니 황룡혜남을 참견하고 인가를 받았으며 융흥부 우성사(祐聖寺)에 주(住)했음 [오등회원17. 보등록7].
●拈古; 전인의 공안의 기어(機語)를 거출하여 평의를 가함이니 이는 선가 설법의 1종 형식임. 또 이는 선종어록의 1종 유형임.
●巖頭; 전활(全豁; 828-887)이니 또 전활(全奯)로 지음. 당대승이며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은 가(柯). 영천사에서 출가하였고 장안의 서명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설봉의존(雪峰義存)ㆍ흠산문수(欽山文邃)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음.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을 참방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음. 출세하여 악주(鄂州; 지금의 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임. 당 광계 3년 4월에 도적이 난입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으며 대갈일성(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60이며 시호는 청엄대사(淸儼大師) [송고승전23. 조당집7. 경덕전등록16].
●那事; 오도하고 성불하는 일을 은유로 가리킴.
●光前絶後; 또한 가로되 절후광전이니 앞뒤로 유비(類比; 비교)할 이가 없음의 뜻. 후생에 이와 같은 현자가 없으므로 고로 가로되 절후(絶後)며 그 현덕(賢德)이 전세를 빛냈으므로 고로 가로되 광전(光前)임. 공업(功業)이 위대하거나 혹 성취가 탁저(卓著; 탁월하고 현저함)함을 형용함.
●生祭; 죽음에 다다랐거나 혹 장차 죽을 사람을 위해 거행하는 제례(祭禮).
'총림성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기간당(機簡堂) (0) | 2026.03.19 |
|---|---|
|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묘도도인(玅道道人) (0) | 2026.03.19 |
|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조광록형(晁光祿逈) (0) | 2026.03.10 |
|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소자유(蘇子由) (0) | 2026.03.10 |
|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철암일대(鐵菴一大) (0) | 2026.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