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玅道道人 延平黃氏女也 徧見尊宿 後謁玅喜于徑山 因玅喜室中問僧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是什麽 僧罔措 道立門外聞之 豁然明契 乃告喜 喜曰 桑樹著箭 楮樹出汁 因印其所解 後開堂於洪福 示衆曰 禪非意想 立意乖宗 道絶功勛 建功失分 聲外句不向意中求 持照用機關 握佛祖鉗鎚 有佛處互爲賓主 無佛處風颯颯地 心寧意泰 響順聲和 似恁麽人 且道向什麽處安著 良久曰 披簑側立千峰外 引水澆蔬五老前 又曰 貶上眉毛蹉過 大似開眼尿牀 現成公案放行 正是黠兒落節 恁麽不恁麽總不得 曳尾靈龜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虛空釘橛 離得許多閑門破戶 猶是死水裏藏龍 傾湫倒嶽一句作麽生道 巨靈擡手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後水菴見僧擧似 以手加額曰 箇事可謂非男女等相 多少丈夫漢十年五年在衆中討頭不著 他雖是箇女人 宛有丈夫之作 勝却多少杜撰長老也
●玅道; 宋代楊岐派尼僧 延平(福建南平)黃氏 住溫州淨居寺 參大慧宗杲得法 深通禪旨 機辯無礙 [續比丘尼傳二 普燈錄十八]
●機關; 指師家爲令學人得悟 而順應其根機所設之機法 禪門之師家 常以古則公案 一喝一棒 接化學人 稱爲機關
●放行; 禪家接化中下根機 慈悲爲懷 施以言句敎說 是方便法門 與把斷把住把定相對
●落節; 失利損害之義 多謂言句作略受挫
●曳尾靈龜; 祖庭事苑五 靈龜曳尾 凡龜之行 常曳尾以掃其迹 而尾迹猶存 莊子所謂吾將曳尾於塗中 ▲祖庭事苑六 莊子釣於濮水 楚王使二大夫往召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曰 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笥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於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矣(出莊子秋水)
●巨靈; 銷釋金剛科儀會要註解八 言巨靈者 乃太華山之神 巨靈卽乃名也 因母昔有染緣之業 受罪於斯山底 巨靈欲救母罪 力所不能 後入華山西 恭禮鏡月峰光照禪師處 拜告曰 吾母受罪於此山未出 今欲請師求救 師卽書一唵字 與神斧上 於是持斧于山頂 用斧一劈 山卽兩開 其母承斯總持神呪之力 卽生忉利天 巨靈求道三年 立化於華山之頂 後爲金剛密跡大神也 所以云 劈開華嶽連天色 放出黃河至海聲
●討頭; 同討頭鼻 尋覓事理的關鍵處 討 尋覓 頭鼻 比喩領悟事理的著手處或端緖
●杜撰; 原指在詩文或其他著作中 妄作論述而毫無根據之情形 其語由來下列諸說 一漢代之田何精通易學 遷居杜陵 世稱杜田生 然或謂其易學實無師承之處 故世人多以杜田 或杜園 譏之 後訛稱爲杜撰 二據傳 道家五千餘卷之書中 除道德經二卷外 其餘均爲唐末文人杜光庭所撰述 多屬虛誕之說 故後人多稱僅憑臆造而無所本之說爲杜撰 三宋代文人杜默作詩時 常不合律 時人遂以行事不合法式者 謂之杜撰
○묘도도인(玅道道人)은 연평(延平) 황씨의 딸이다. 두루 존숙을 참견(參見; 見)했고 후에 묘희(玅喜)를 경산(徑山)에서 참알했다. 인하여 묘희가 실중(室中)에서 중에게 묻되 불시심(不是心)이며 불시불(不是佛)이며 불시물(不是物)이니 이 무엇인가(是什麽). 중이 망조(罔措)했다. 묘도가 문밖에 섰다가 이(之)를 듣고 활연(豁然)히 명계(明契)했다. 이에 묘희에게 알리자(告) 희왈(喜曰) 상수(桑樹; 뽕나무)가 화살을 맞았는데(著箭) 저수(楮樹; 닥나무)가 즙(汁)을 내었구나. 인하여 그의 소해(所解)를 인가(印可; 印)했다. 후에 홍복(洪福)에서 개당했다. 시중(示衆)해 가로되 선(禪)은 의상(意想)이 아니니 입의(立意)하면 종지(宗旨; 宗)에 어긋나고(乖) 도(道)는 공훈(絶功勛)이 끊겼나니 건공(建功)하면 본분(本分; 分)을 잃는다. 성외(聲外)의 구(句)를 의중(意中)을 향해 구(求)하지 못하나니 조용(照用)의 기관(機關)을 가지고(持) 불조(佛祖)의 겸추(鉗鎚)를 쥐어(握) 유불처(有佛處)에 서로(互) 빈주(賓主)가 되고 무불처(無佛處)에 풍삽삽지(風颯颯地; 바람이 솨솨 부는 소리. 地는 조사)라야 한다. 심녕의태(心寧意泰; 마음이 안녕하고 뜻이 泰然함)하고 향순성화(響順聲和; 음향이 順하고 소리가 和함)하는 이러함(恁麽)과 같은 사람은 차도(且道)하라 어느 곳(什麽處)을 향해 안착(安著)하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도롱이(簑; 음이 사)를 입고 천봉(千峰) 밖에 측립(側立)하여 물을 당겨와(引) 오로(五老; 五老峰이니 廬山에 있음) 앞에서 채소(菜蔬; 蔬)에 물을 댄다(澆). 우왈(又曰) 눈썹을 깜작하면(貶上; 上은 조사) 차과(蹉過; 錯過)했나니 눈뜨고 상(牀)에 오줌 눔(尿)과 매우 흡사하고(大似) 현성공안(現成公案)을 방행(放行)하면 바로(正) 이 힐아(黠兒; 兒는 後綴)가 낙절(落節)했음이다. 이러하거나(恁麽) 이러하지 않음을 모두(總) 얻지 못함은 꼬리를 끌어당기는 영귀(曳尾靈龜)며 불시심(不是心)ㆍ불시불(不是佛)ㆍ불시물(不是物)은 허공에 말뚝을 박음이다(釘橛). 허다한 한문파호(閑門破戶)를 이득(離得)해도 오히려 이는 사수(死水; 靜止하여 流動하지 않는 물) 속에 용(龍)을 감춤이다. 경추도악(傾湫倒嶽)하는 1구를 어떻게(作麽生) 말하겠는가. 거령(巨靈)이 손을 들어올리매(擡手) 무다자(無多子)지만 화산(華山) 천만 겹을 분파(分破)했다. 후에 수암(水菴; 師一)이, 중이 거사(擧似; 들어 보임)함을 보자 손으로써 가액(加額)하고 가로되 개사(箇事; 此事)는 가위(可謂) 남녀 등의 상(相)이 아니라 할 만하다. 다소(多少)의 장부한(丈夫漢)이 10년, 5년 동안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토두(討頭)함을 얻지 못하거늘(不著) 그는 비록 시개(是箇; 箇는 조사)의 여인이건만 완연(宛然; 宛)히 장부(丈夫)의 작략(作略; 作)이 있어 다소의 두찬(杜撰) 장로(長老)에게 이겨버렸다(勝却).
●玅道; 송대 양기파 니승. 연평(복건 남평) 황씨. 온주 정거사에 거주했고 대혜종고를 참해 득법했음. 선지를 깊이 통달했고 기변(機辯)이 무애했음 [속비구니전2. 보등록18].
●機關; 사가(師家)가 학인으로 하여금 득오하게 하려고 그 근기에 순응하여 베푸는 바의 기법을 가리킴. 선문의 사가가 늘 고칙의 공안이나 1할1방(一喝一棒)으로 학인을 접화함을 일컬어 기관이라 함.
●放行; 선가에서 중하근기를 접화하면서 자비로 회포를 삼아 언구의 교설을 베풂이니 이는 방편법문임. 파단(把斷)ㆍ파주(把住)ㆍ파정(把定)과 상대됨.
●落節; 실리ㆍ손해의 뜻. 다분히 이르기를 언구의 작략이 좌절을 받음.
●曳尾靈龜; 조정사원5. 영귀예미(靈龜曳尾) 무릇 거북의 행동은 늘 꼬리를 끌며 그 자취를 쓸거니와 꼬리의 자취는 오히려 존재함. 장자(莊子)에 이른 바 내가 장차 도중(塗中; 塗는 진흙)에서 꼬리를 끌겠다 한 것임. ▲조정사원6. 장자가 복수(濮水; 濮은 물 이름)에서 낚시질했는데 초왕(楚王; 釋文에 楚威王이라 함)이 두 대부(大夫)를 시켜 가서 부르게 했다. 가로되 원컨대 경내(境內; 國政을 말함)로써 누(累)를 끼칠까 합니다(국정을 맡겨 心勞를 끼칠까 한다는 뜻). 장자가 가로되 초(楚)에 신귀(神龜)가 있어 죽은 지 이미 3천 세며 왕이 건사(巾笥; 巾은 巾箱이니 상자. 笥는 상자 사. 곧 상자에 넣음)하여 묘당(廟堂)의 위에 그것을 감춰 두었다는데 이 거북이란 것이 차라리 그 죽어서 뼈를 남김이 소중하겠습니까. 차라리 그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까. 두 대부가 가로되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다. 장자가 가로되 가십시오. 나는 장차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다(莊子 秋水에 나옴).
●巨靈; 소석금강과의회요주해8. 말한 거령(巨靈)이란 것은 곧 태화산(太華山)의 신(神)이다. 거령은 곧 이름이다. 모친이 옛적에 염연(染緣)의 업이 있음으로 인해 이 산의 바닥에서 죄를 받았다. 거령이 모친의 죄를 구제하고자 하였으나 힘이 가능하지 않는 바이었다. 후에 화산의 서쪽에 들어가 경월봉(鏡月峰)의 광조선사(光照禪師)의 처소에 공경하며 예배했다. 절하며 고백해 가로되 나의 모친이 이 산에서 죄를 받으면서 나오지 못합니다. 이제 스님에게 청하여 구제를 구하려 합니다. 스님이 1옴자(唵字)를 써서 신(神)의 도끼 위에 주었다. 이에 도끼를 가지고 산정에서 도끼를 사용해 한 번 쪼개매 산이 곧 양쪽으로 열리고 그의 모친이 이 총지신주(總持神呪)의 힘을 받아 곧 도리천에 태어났다. 거령이 구도한 지 3년에 화산의 꼭대기에서 입화(立化)했고 후에 금강밀적대신(金剛密跡大神)이 되었다. 소이로 이르되 화악을 쪼개 여니 하늘에 연이은 색이며 황하를 방출하니 바다에 이르는 소리(劈開華嶽連天色 放出黃河至海聲)다 했음.
●討頭; 토두비(討頭鼻)와 같음. 사리(事理)의 관건처(關鍵處)를 심멱(尋覓)함. 토(討)는 심멱이며 두비(頭鼻)는 사리를 영오할 착수처 혹 단서에 비유함.
●杜撰; 원래 시문(詩文)이나 혹은 기타의 저작 가운데 있어 망령(妄靈)되이 논술을 지어 터럭만큼도 근거가 없는 정형(情形)을 가리킴. 그 말의 유래는 아래에 여러 설을 나열하겠음. 1. 한대(漢代)의 전하(田何)가 역학(易學)을 정통하였으며 두릉(杜陵)에 옮겨 거주했는데 세칭이 두전생(杜田生)임. 그러나 혹은 이르기를 그 역학이 실은 사승(師承)한 곳이 없는지라 고로 세인이 많이 두전(杜田) 혹은 두원(杜園)이라 하여 그를 비웃었음. 후에 잘못 호칭하여 두찬(杜撰)이라 했음. 2. 전(傳)에 의거하건대 도가(道家)의 5천여 권의 책 중에 도덕경 2권(道經ㆍ德經)을 제한 밖에 그 나머지는 균일하게 당말(唐末)의 문인인 두광정(杜光庭)이 찬술한 것이며 많이 허탄(虛誕)의 설에 속한지라 고로 후인이 많이들 겨우 억설(臆說)에 의빙하여 조작하고 근본할 바의 설이 없는 것을 일컬어 두찬(杜撰)이라 하였음. 3. 송대(宋代)의 문인 두묵(杜默)이 시를 지을 때 늘 율(律)에 맞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사람이 드디어 행사(行事)가 법식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杜撰)이라고 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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