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塗毒老人居鑑湖日 與放翁最厚 紹興壬午七月二十七日示寂 放翁以詩哭之曰 岌岌龍門萬仞傾 翩翩隻影又西行 塵侵白拂繩牀冷 露滴靑松卵塔成 遙想再來非四大 應當相見是三生 放翁大欠修行在 未免人間愴別情 又贊其眞云 骨格璝奇 精神瀟灑 貌肅而和 語盡而簡 畫得者 英氣逼人 畫不得者 頂門上一隻眼
●放翁; 陸游(1125-1210) 宋代楊岐派居士 字務觀 自號放翁 山陰(浙江紹興)人 官待制 封渭南伯 謁松源崇嶽於靈隱 得悟 [五燈全書四十八]
●卵塔; 無縫塔之一 塔身無縫稜級層等而呈現卵形者 卽用一碑石造成似鳥卵之橢圓形塔 作爲僧侶之墓碑 浙江鄞縣天童寺東谷庵之宋代宏智正覺禪師墓塔卽爲卵塔 又或以卵塔卽稱無縫塔 [林間錄上 象器箋殿堂類]
○도독(塗毒; 智策) 노인이 감호(鑑湖)에 거주하던 날 방옹(放翁)과 가장 친했다(厚). 소흥(紹興) 임오(壬午; 1162) 7월 27일 시적(示寂)했다. 방옹이 시로써 그(之)를 곡(哭)해 가로되 급급(岌岌; 산이 높고 깎아지른 듯 가파름)한 용문(龍門)이 만 길 기울어졌는데/ 편편(翩翩)히 척영(隻影)으로 또 서행(西行)하는구나/ 티끌(塵)에 백불(白拂; 백색 拂子)이 잠기고(侵) 승상(繩牀)은 차가운데/ 이슬이 청송(靑松)에 떨어져(滴) 난탑(卵塔)을 이루었다/ 요상(遙想; 回想)컨대 재래(再來)함은 4대(大)가 아니며/ 응당 상견함은 이 삼생(三生)이다/ 방옹(放翁)이 매우(大) 수행이 모자라(欠)/ 인간의 창별(愴別; 슬프게 이별함)의 정(情)을 면하지 못한다. 또 그 진(眞; 肖像)에 찬(贊)해 이르되 골격(骨格)이 괴기(璝奇; 불구슬처럼 기이함)하고 정신은 소쇄(瀟灑)하고 모습은 엄숙(嚴肅; 肅)하면서 온화(溫和; 和)하고 말씀은 진심(盡心; 盡)이면서 간명(簡明; 簡)했다. 그림(畫)을 얻는 자는 영기(英氣)가 핍인(逼人)하거니와 그림을 얻지 못하는 자는 정문상(頂門上)의 일척안(一隻眼)이다.
●放翁; 육유(陸游; 1125-1210)니 송대 양기파 거사. 자는 무관이며 자호(自號)가 방옹(放翁). 산음(절강 소흥) 사람. 벼슬이 대제(待制)였고 위남백에 봉해졌음. 영은에서 송원숭악(松源崇嶽)을 참알하여 깨침을 얻었음 [오등전서48].
●卵塔; 무봉탑(無縫塔)의 하나. 탑신이 솔기ㆍ모서리ㆍ급층(級層; 層階) 등이 없이 난형(卵形)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 곧 하나의 비석을 써서 새알 같이 조성한 타원형의 탑. 만들어 승려의 묘비로 삼음. 절강 은현 천동사 동곡암의 송대 굉지정각선사의 묘탑(墓塔)이 곧 난탑이 됨. 또 혹 난탑을 곧 무봉탑으로 호칭함 [임간록상. 상기전전당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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