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照衣】 (1605-1673) 明末臨濟宗僧 四川綦江人 俗姓熊 號慧覺 三十歲於華銀山參禮普賢大士 値遇常白 乃依之剃髮受具足戒 半年後 常白示寂 遂繼主院務 後參禮破山海明(楊岐下二十三世) 遊峨嵋山 連坐七刹 順治元年(1644) 値甲申之變 隱於四川夜郞八年 順治十年 聞破山住四川金城寺 遂前往禮謁 後隨侍破山至雙桂寺 機緣成熟 爲其法嗣 未久辭歸渝州(四川) 住重慶崇因寺 其後歷住湖山治平寺 太公山石寶寺 江津圓通寺 珠林洪福寺 巴縣寶蓮院 康熙十二年九月示寂 壽六十九 有慧覺衣禪師語錄三卷行世 [五燈全書七十]
조의(照衣) (1605-1673) 명말 임제종승. 사천 기강 사람이며 속성은 웅이며 호는 혜각. 30세에 화은산에서 보현대사를 참례했다가 상백(常白)을 만났고(値遇) 이에 의지하며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았음. 반년 후 상백이 시적하자 드디어 원무(院務)를 계주(繼主)했음. 후에 파산해명(破山海明; 양기하 23세)을 참례했음. 아미산에 노닐었고 7찰(七刹)에 연좌(連坐)했음. 순치 원년(1644) 갑신지변(甲申之變)을 만나 사천 야랑에 은거하기가 8년이었음. 순치 10년 파산이 사천 금성사에 거주한다 함을 듣고 드디어 앞으로 가서 예알했고 후에 파산을 수시(隨侍)하며 쌍계사에 이르렀음. 기연이 성숙하여 그의 법사가 되었음. 오래지 않아 고별하고 투주(渝州; 사천)로 회귀하여 중경 숭인사에 거주했음. 그 후 호산 치평사ㆍ태공산 석보사ㆍ강진 원통사ㆍ주림 홍복사ㆍ파현 보련원을 역주(歷住)했음. 강희 12년 9월 시적했고 나이는 69. 혜각의선사어록 3권이 있어 행세함 [오등전서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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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意】 ①祖師西來意之略稱 歷代禪門祖師所傳佛法之意 因祖祖相傳 直指心印 故稱祖意 又以敎禪相對 故天台眞言等諸家之意 稱爲敎意 敎外別傳之禪旨 則稱爲祖意 ▲汾陽語錄上 問 祖意敎意是同是別 師云 巖高松冷健 澗曲水流遲 ②明代臨濟宗僧 字海珠 楚山紹琦法嗣 後住安慶石經山 [續燈存稾九 五燈嚴統二十三]
조의(祖意) ①조사서래의의 약칭. 역대 선문조사가 전한 바 불법의 뜻이니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하며 심인을 직지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조의(祖意)임. 또 교선(敎禪)이 상대하는지라 고로 천태와 진언 등 제가(諸家)의 뜻은 일컬어 교의라 하고 교외별전의 선지는 곧 일컬어 조의라 함. ▲분양어록상.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스님이 이르되 바위가 높으니 솔이 냉건(冷健)하고 개울이 굽으니 물 흐름이 느리다. ②명대 임제종승. 자는 해주며 초산소기의 법사니 후에 안경 석경산에 거주했음 [속등존고9. 오등엄통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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