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珏】 (1091-1162) 宋代曹洞宗僧 和州(安徽和縣)人 俗姓孫 自號大休 十六歲出家 十八歲受具足戒 參長蘆之祖照道和 祖照退隱後 復參眞歇淸了(良价下九世) 得其心印 紹興二年(1132) 開堂於岳林寺 二十五年(1155) 移住雪竇山 二十九年(1159) 遷天童山 大弘法化 故亦稱天童宗珏 三十二年示寂 壽七十二 [普燈錄十三 五燈會元十四 續傳燈錄二十四]
종각(宗珏) (1091-1162) 송대 조동종승. 화주(안휘 화현) 사람. 속성은 손이며 자호(自號)가 대휴(大休). 16세에 출가했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장로(長蘆)의 조조도화(祖照道和)를 참했고 조조가 퇴은한 후 다시 진헐청료(眞歇淸了; 양개하 9세)를 참해 그의 심인을 얻었음. 소흥 2년(1132) 악림사에서 개당했고 25년(1155) 설두산으로 이주했음. 29년(1159) 천동산으로 옮겨 법화(法化)를 대홍(大弘)한지라 고로 또한 칭호가 천동종각(天童宗珏)임. 32 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72 [보등록13. 오등회원14. 속전등록24].
【宗覺禪師】 宋末元初臨濟宗僧兀菴普寧的諡號 詳見普寧
종각선사(宗覺禪師) 송말원초 임제종승 올암보녕의 시호니 상세한 것은 보녕(普寧)을 보라.
【從諫】 (?-1108) 宋代僧 字正夫 松陽(今屬浙江)毛氏 年十九試法華得度 謁上竺辯才 夙夜聽習 依南屛於金山 問辯如流 南屛嘆曰 吾道由子行也 熙寧(1068-1077)中 講於明慶 尋遷淨住 元豐(1078-1085)初 居壽聖三年 辨才主南屛 擧師代之 元祐五年(1090)移上竺 郡守蒲宗孟 奏賜慈辯之號 義天僧統自高麗來求法 郡守以師應命 天學成回國 建刹立像 尊師爲始祖 [泰普燈錄八 新續高僧傳四集三]
종간(從諫) (?-1108) 송대승. 자는 정부며 송양(지금 절강에 속함) 모씨. 나이 19에 법화경을 시험하여 득도했음. 상축변재(上竺辯才)를 참알하여 숙야(夙夜; 조석)로 청습(聽習)했음. 금산에서 남병(南屛)에게 의지했는데 문변(問辯)이 유수와 같았으며 남병이 감탄하며 가로되 나의 도가 자네로 말미암아 행하리라. 희녕(10 68-1077) 중 명경에서 강설했고 이윽고 정주로 옮겼으며 원풍(1078-1085) 초 수성에 3년 동안 거주했음. 변재(辨才)가 남병을 주지(主持)하다가 스님을 천거해 대체하게 했음. 원우 5년(1090) 상축으로 이주했음. 군수 포종맹이 주청하여 자변(慈辯)이란 호를 주었음. 의천승통(義天僧統)이 고려로부터 와서 구법하자 군수가 스님에게 응명(應命)하게 했음. 의천이 학업을 성취하고 회국(回國)하자 사찰을 세우고 입상(立像)하여 스님을 높여 시조(始祖)로 삼았음 [가태보등록8. 신속고승전4집3].
【宗鑑】 宋代楊岐派僧 依大潙月庵善果受法 住潭州石霜 [普燈錄二十一]
종감(宗鑑) 송대 양기파승. 대위 월암선과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담주 석상에 거주했음 [보등록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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