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771쪽

태화당 2019. 12. 10. 09:43

宗鏡書明代曹洞宗僧宗書 曾住宗鏡菴 詳見宗書

종경서(宗鏡書) 명대 조동종승 종서가 일찍이 종경암에 주()했으니 상세한 것은 종서(宗書)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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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宗書明代曹洞宗僧宗書 久住京師宗鏡菴 詳見宗書

종경종서(宗鏡宗書) 명대 조동종승 종서가 경사 종경암에 오래 주()했으니 상세한 것은 종서(宗書)를 보라.


宗系宗門世系 五燈全書五十一中峰明本 所以深明宗系者 大法源委 不可誣也

종계(宗系) 종문의 세계(世系). 오등전서51 중봉명본. 소이로 깊이 종계(宗系)를 밝힌 자는 대법원(大法)의 원위(源委; 처음과 끝)라 가히 속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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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古久遠 往昔 爲霖旅泊菴稿四 師道無方 歷萬劫而不壞 法恩有在 畢終古以無違

종고(終古) 구원(久遠). 지난 옛날. 위림여박암고4. 사도(師道)는 방위가 없나니 만 겁을 지나도 파괴되지 않으며 법은(法恩)이 존재해 있나니 종고(終古)를 마쳐도 위배함이 없다.


宗杲(1089-1163) 宋代僧 字曇晦寧國(安徽宣州)奚氏 年十七出家 登寶峰謁湛堂文準 準指以入道要徑 準卒 趨謁無盡居士求塔銘 無盡一見奇之 名其庵曰妙喜 後往參圓悟克勤得法 右丞相呂舜奏賜紫衣 及佛日大師之號 後於雲居山創庵以居 久之 入閩結茅於長樂洋嶼 又徙小溪雲門庵 應丞相張浚之命 住徑山 道法之盛 冠於一時 侍郞張九成亦從之遊 因議朝政 被秦檜所忌 流於嶺南 檜死召還 翌年春復僧伽梨 奉命住育王 逾年有旨改徑山 道俗歆慕如初 孝宗卽位 召對稱旨 賜號大慧禪師 御書妙喜庵三字賜之 隆興元年八月微恙 十日親書遺奏 又書遺偈 擲筆委然而入寂 壽七十五 臘五十八 謚曰普覺禪師 有大慧語錄等 [統要續集二十二 聯燈會要十七 嘉泰普燈錄十五 五燈會元十九 佛祖通載二十]

종고(宗杲) (1089-1163) 송대승. ()가 담회(曇晦)며 영국(寧國; 安徽 宣州) 해씨(奚氏). 나이 17에 출가했음. 보봉(寶峰)에 올라 담당문준(湛堂文準)을 알현(謁見)했는데 문준이 입도(入道)의 요경(要徑)을 지도하였음. 문준이 죽자 무진거사(無盡居士; 張商英이니 황룡하 3)에게 달려가 참알(參謁)하고 탑명(塔銘)을 구했는데 무진이 한 번 보고 그를 기이하게 여겼으며 그 암자를 이름해 묘희(妙喜)라 했음. 후에 원오극근(圓悟克勤; 양기하 3)을 참알해 법을 얻었음. 우승상(右丞相) 여순(呂舜)이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와 및 불일대사(佛日大師)란 호를 주었음. 후에 운거산(雲居山)에 암자를 창건해 거처했으며 오래되자 민()에 들어가 장락(長樂)의 양서(洋嶼)에 결모(結茅; 띠로 암자를 엮음)했고 또 소계(小溪)의 운문암(雲門庵)으로 이사했음. 승상(丞相) 장준(張浚)의 명에 응해 경산(徑山)에 머물렀는데 도법(道法)의 성함이 한 때에 으뜸()이었음. 시랑(侍郞) 장구성(張九成; 宗杲法嗣)도 또한 좇아 교유(交遊)했음. 조정(朝政)을 논의함으로 인해 진회(秦檜)의 시기(猜忌)를 입어 영남(嶺南)에 유배(流配)되었다가 진회가 죽자 소환(召還)되었고 다음해 봄 승가리(僧伽梨)를 회복(回復)했으며 칙명을 받들어 육왕(育王)에 주지(住持)했는데 해를 넘겨 성지(聖旨)가 있어 경산(徑山)으로 개명했음. 도속(道俗; 僧俗)이 흠모(歆慕; 心服할 흠)하기가 처음과 같았음.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불러 대화하고는 뜻에 맞는지라 대혜선사(大慧禪師)란 호를 주었으며 묘희암(妙喜庵) 3자를 어서(御書)하여 주었음. 융흥원년(隆興元年) 8월에 조금 병들었는데 10일에 유주(遺奏)를 친히 쓰고 또 유게(遺偈)를 쓰고는 붓을 던지고 의젓하게(委然) 입적했으니 나이는 75, 승랍은 58. 시호(諡號)를 가로되 보각선사(普覺禪師)며 대혜어록(大慧語錄) 등이 있음 [통요속집22. 연등회요17. 가태보등록15. 오등회원19. 불조통재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