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796쪽

태화당 2019. 12. 10. 10:00

宗寶道獨禪師語錄六卷 淸代曹洞宗僧宗寶道獨說 今釋重編 又稱長慶宗寶獨禪師語錄 宗寶禪師語錄 卷首載有序文二篇 卷一 上堂 示衆 卷二三 示衆 茶話 問答 著語 卷四 頌古 偈 贊 卷五六 書問 雜著 行狀 塔銘 今收錄於龍藏第一五九冊卍續藏第一二六冊

종보도독선사어록(宗寶道獨禪師語錄) 6. 청대 조동종승 종보도독이 설했고 금석이 중편했음. 또 명칭이 장경종보독선사어록ㆍ종보선사어록임. 권수에 서문 2편이 실려 있음. 1은 상당ㆍ시중. 2, 3은 시중ㆍ다화ㆍ문답ㆍ착어. 4는 송고ㆍ게ㆍ찬. 5, 6은 서문(書問)ㆍ잡저ㆍ행장ㆍ탑명. 지금 용장 제159책과 만속장 제126책에 수록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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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寶獨淸代曹洞宗僧道獨 號宗寶 詳見道獨

종보독(宗寶獨) 청대 조동종승 도독의 호가 종보니 상세한 것은 도독(道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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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本】 ①宋代雲門宗僧 雙泉師寬法嗣 住襄州延慶寺 [五燈會元十五] (1020-1099) 北宋雲門宗僧 常州無錫(江蘇無錫)人 俗姓管 字無喆 十九歲 入蘇州承天永安寺道昇禪師門下 苦修十年方剃髮受具足戒 又服勤三年 後拜辭道昇至池州景德寺 參天衣義懷 有所契悟 義懷推擧於蘇州瑞光寺開法 法席日盛 徒衆達五百人 後住淨慈寺 旣而蘇州道俗請師往萬壽龍華二寺弘法 迎者千餘人 元豐五年(1082) 受神宗之詔 爲相國寺慧林禪刹第一祖 開法翌日 帝召至延和殿問道 哲宗詔賜圓照禪師 元祐元年(1086)以老乞歸 出都城 送行者車騎相屬 師臨別敎誨 聞者流涕 晩年住平江靈光寺 閉門修禪 專力淨業 元符二年示寂 壽八十 著有歸元直指集二卷 慧辨錄(別錄)一卷 [五燈會元十六 佛祖統紀二十七 禪林僧寶傳十四 釋氏稽古略四]

종본(宗本) 송대 운문종승. 쌍천사관의 법사며 양주 연경사에 주()했음 [오등회원15]. (1020-1099) 북송 운문종승. 상주 무석(無錫; 江蘇 무석)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관()이며 자()는 무철(無喆). 19세에 소주 승천 영안사(永安寺)의 도승선사(道昇禪師) 문하에 들어가 고되게 수행하기 10년 만에 비로소 머리 깎고 구족계를 받았음. 또 복근(服勤)하기 3년이었음. 후에 도승을 배사(拜辭; 예배하고 고별)하고 지주(池州) 경덕사(景德寺)에 이르러 천의의회(天衣義懷; 운문하 4. 설두중현의 법사)를 참알(參謁)하고 계오(契悟)한 바가 있었음. 의회가 추거(推擧; 推薦)하여 소주 서광사(瑞光寺)에서 개법(開法)했음. 법석이 날로 흥성하여 도중(徒衆)5백 인에 도달했음. 후에 정자사(淨慈寺)에 주지(住持)했음. 이미 그러고선 소주(蘇州)의 도속(道俗)이 스님을 청하는지라 만수(萬壽)ㆍ용화(龍華) 두 절로 가서 홍법(弘法)했는데 영접하는 자가 천여 인이었음. 원풍5(元豐五年; 1082) 신종(神宗)의 조서(詔書)를 받아 상국사혜림선찰(相國寺慧林禪刹)의 제1(第一祖)가 되었음. 개법한 다음날 황제가 불러 연화전(延和殿)에 이르게 하여 도를 물었음. 철종(哲宗)은 조칙으로 원조선사(圓照禪師)란 호를 주었음. 원우원년(元祐元年; 1086) 늙었기 때문에 돌아감을 걸구(乞求)하였는데 도성(都城)을 나오자 송행(送行; 餞送)하는 자의 거기(車騎; 수레와 말)가 서로 이어졌으며 스님이 임별(臨別)에 교회(敎誨)하자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렸음. 만년에 평강(平江)의 영광사(靈光寺)에 주지(住持)하며 문을 닫고 수선(修禪)하며 정업(淨業)에 전력하였음. 원부2(元符二年)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0이며 저서에 귀원직지집(歸元直指集) 2권과 혜변록(慧辨錄; 別錄) 1권이 있음 [오등회원16. 불조통기27. 선림승보전14. 석씨계고략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