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庸子】 宋代僧智圓(976-1022)的號 爲天台宗山外派大師 錢塘(杭州)人 俗姓徐 字無外 又號潛夫 八歲於錢塘龍興寺出家 初習儒學 能詩文 後依奉先寺源淸習天台敎觀 源淸示寂後 師離群索居 硏考經論 探索義觀 竝與同門慶昭晤恩等 闡述山外派學說 與山家派代表四明知禮展開論辯 然一般以知禮之說爲天台正統 貶抑山外派 後隱居於西湖孤山瑪瑙坡養疾 從學者衆 自此遂勤加著述 撰閑居編六十卷(現存五十一卷) 金光明經玄義表徵記一卷 遺敎經疏 四十二章經注 首楞嚴經疏等多數 師又通周 孔 荀 孟 揚雄 王通之書 乾興元年二月作祭文挽詩 泊然示寂 世壽四十七 又以師隱居孤山 世稱孤山智圓 徽宗崇寧三年(1104) 敕諡法慧大師 [閑居編序 閑居編十二至十六 十九 三十四 佛祖統紀十 二十五] ▲緇門警訓一 中庸子曰 世有求之而或不得者也 世有求之而必得者也 求之而或不得者利也 求之而必得者道也 小人之於利也 雖或萬求而萬不得 而求之彌勇 君子之於道也 求之必得 而望塗懷怯自念力不足者 此求利小人之罪耳
중용자(中庸子) 송대승 지원(智圓; 976 –1022)의 호. 천태종 산외파(山外派) 대사(大師)가 됨. 전당(항주) 사람이며 속성은 서며 자는 무외(無外)며 또 호가 잠부(潛夫). 8세에 전당 용흥사에서 출가했고 처음엔 유학을 학습했음. 시문에 능했고 후에 봉선사 원청(源淸)에게 의지해 천태교관을 학습했음. 원청이 시적한 후 스님이 무리를 떠나 거처를 찾아 경론을 연고(硏考)하고 의관(義觀)을 탐색했으며 아울러 동문 경소ㆍ오은 등과 산외파의 학설을 천술(闡述)했음. 산가파(山家派) 대표 사명지례(四明知禮)와 논변을 전개했음. 그러나 일반으로 지례의 설을 천태의 정통으로 삼고 산외파를 폄억(貶抑)함. 후에 서호(西湖) 고산(孤山) 마노파(瑪瑙坡)에 은거하며 양질(養疾)했는데 따르는 학자가 많았음. 이로부터 드디어 부지런히 저술을 가하여 한거편 60권(현존 51권)ㆍ금광명경현의표징기 1권ㆍ유교경소ㆍ사십이장경주ㆍ수릉엄경소 등 다수를 찬(撰)했음. 스님은 또 주(周)ㆍ공(孔)ㆍ순(荀)ㆍ맹(孟)ㆍ양웅(揚雄)ㆍ왕통(王通)의 서적에도 통달했음. 건흥 원년 2월 제문과 만시(挽詩)를 짓고 박연(泊然; 고요하고 담담하며 욕심이 없는 모양)히 시적했으니 세수는 47. 또 스님이 고산에 은거한지라 세칭이 고산지원(孤山智圓)임. 휘종 숭녕 3년(1104) 칙시(敕諡)하여 법혜대사라 했음 [한거편서. 한거편12지16, 19, 34. 불조통기10, 25]. ▲치문경훈1. 중용자(中庸子)가 가로되 세상에는 이를 구하매 혹 얻지 못할 것이 있고 세상에는 이를 구하매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 이를 구하매 혹 얻지 못할 것은 이(利)며 이를 구하매 반드시 얻는 것은 도(道)다. 소인은 이(利)에 비록 혹 만 번 구하여 만 번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구함이 더욱 용맹하다. 군자는 도에 이를 구하면 받드시 얻건마는 길을 바라보고는 겁(怯)을 품고 스스로 생각하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자는 이것은 구리(求利)하는 소인의 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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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惲】 宋代僧 婺州(浙江金華)人 未詳法嗣 初謁雪峰義存 次依石霜慶諸開悟 旋里隱居 蔽形一衲 住州之雲幽寺 [普燈錄二十一 五燈會元六]
중운(重惲) 송대승. 무주(절강 금화) 사람이며 법사가 미상. 처음 설봉의존을 예알했고 다음 석상경제에게 의지해 개오(開悟)했음. 향리로 돌아가 은거했는데 1납(衲)으로 폐형(蔽形)했고 주(州)의 운유사에 주(住)했음 [보등록21. 오등회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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