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978쪽

태화당 2019. 12. 12. 09:01

重顯(980-1052) 宋代雲門宗僧 遂寧(四川蓬溪縣之西)人 俗姓李 字隱之 以妙齡離俗入道 投益州普安院仁詵出家 得法於復州北塔智門光祚 依止五年 盡得其道 後隱於錢塘靈隱寺三年 乃出住蘇州翠峰寺 次年轉徙明州雪竇山資聖寺 海衆雲集 大揚宗風 乃中興雲門宗 又以師久住雪竇山 後世多以雪竇禪師稱之 於皇祐四年入寂 壽七十三 諡號明覺大師 遺有明覺禪師語錄六卷 碧巖集百則頌 及詩集瀑泉集行世 [淨慈寺志 五燈會元十五 續傳燈錄二]

중현(重顯) (980-1052) 송대 운문종승. 수녕(遂寧; 사천 봉계현의 서)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이()며 자()는 은지(隱之). 묘령(妙齡; 20 안팎의 젊은 나이)에 세속을 떠나 입도(入道)하여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詵)에게 투신하여 출가했음. 복주(復州) 북탑(北塔)의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5년 동안 의지(依止)하며 그 도를 다 얻었음. 후에 전당(錢塘) 영은사(靈隱寺)에 은거하기 3년 만에 곧 출세해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에 주()했음. 다음해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옮겼으며 해중(海衆)이 운집하여 종풍을 크게 날렸으니 곧 운문종을 중흥했음. 또 스님이 설두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후세에 많이 설두선사(雪竇禪師)로 그를 일컬음. 황우(皇祐) 4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3. 시호가 명각대사(明覺大師)며 유작(遺作)에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6권과 벽암집백칙송(碧巖集百則頌) 및 시집인 폭천집(瀑泉集)이 있어 세상에 행함 [정자사지. 오등회원15. 속전등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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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和理無偏頗 事無緩急 又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禪林寶訓音義] 禪林寶訓三 今不能施慘怛之憂 垂撫循之恩 用中和之敎

중화(中和) ()에 편파가 없고 사()에 완급이 없음. 또 희노애락이 발하지 아니한 전을 일러 중()이며 발하면 모두 중절(中節; 節度에 맞음)함을 일러 화()[선림보훈음의]. 선림보훈3. 여금은 능히 참달(慘怛; 애처럽게 슬퍼함)의 근심을 베풂과 무순(撫循)의 은혜를 드리움과 중화(中和)의 가르침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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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和宋代臨濟宗僧 依金山曇穎受法 住太平州瑞竹院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九]

중화(仲和) 송대 임제종승. 금산담영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태평주 서죽원에 주()했음 [오등회원12. 속전등록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