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125쪽

태화당 2019. 12. 13. 10:34

志學指男子十五歲 孔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論語爲政) 所以後代稱十五歲爲志學之年 五燈會元七鼓山神晏 年甫志學 遘疾甚亟

지학(志學) 남자 15세를 가리킴. 공자가 가로되 나는 15에 학습에 입지(立志)했다(논어 위정). 소이로 후대에 15세를 일컬어 지학지년(志學之年)이라 했음. 오등회원7 고산신안. 나이 겨우 지학(志學)에 질병을 만나 매우 긴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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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閑(?-898) 唐代僧 靑州(山東益都)人 初從百丈懷海出家 後謁潙山靈祐禪師 不契 泣涕辭去 偶於山中芟草 瓦礫擊竹作聲 廓然有省 乃悟潙山祕旨 因嗣其法 住於鄧州香嚴山 化法大行 淨侶千餘人 後世稱之爲香嚴禪師 師生性嚴謹 語喜簡直 有偈頌二百餘首 諸方盛行 後敕諡襲燈大師 [傳燈錄十一 宋高僧傳十三]

지한(智閑) (?-898) 당대승. 청주(산동 익도) 사람. 처음엔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좇아 출가했고 뒤에 위산영우(潙山靈祐)를 참알(參謁)했으나 계합(契合)치 못했음. 읍제(泣涕; 울며 눈물 흘림)하며 고별하고 떠나 우연히 산중에서 풀을 베다가 와력(瓦礫)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소리를 짓자 휑하게 깨침이 있었음. 이에 위산(潙山)의 비지(秘旨)를 깨쳤고 인하여 그의 법을 이었음. 등주(鄧州) 향엄산(香嚴山)에 거주하면서 교화의 법을 크게 행했으며 정려(淨侶)가 천여 인이었으며 후세에 그를 일컬어 향엄선사(香嚴禪師)라 했음.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엄근(嚴謹)하고 말은 간직(簡直)을 좋아했음. 게송 2백여 수()가 있어 제방에 성행(盛行). 후에 칙시(敕諡)하여 습등대사(襲燈大師)라 했음 [전등록11. 송고승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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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閑(?-895) 唐代臨濟宗僧 俗姓史 館陶(今屬河北)人 幼年從柏巖禪師披剃受具 長參臨濟義玄 竝嗣其法 後往末山 與了然尼語 言下服膺 遂充園頭三年以報之 出住灌溪 禪侶四集 師上堂曰 我在臨濟爺爺處得半杓 末山孃孃處得半杓 共成一杓 喫了 直至如今飽不飢 有僧問如何是灌溪 答曰劈箭急 唐昭宗乾寧乙卯 五月二十九日 問侍者曰 坐死者誰 曰 僧伽 師曰 立死者誰 曰 僧會 師乃行七步 垂手而逝 [傳燈錄十二 五燈會元十一]

지한(志閑) (?-895) 당대 임제종승. 속성은 사며 관도(지금 하북에 속함) 사람. 유년에 백암선사를 좇아 피체(披剃)하고 수구(受具)했음. 장성하자 임제의현(臨濟義玄)을 참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말산(末山)에 가서 요연니(了然尼)와 논란(論難; )하고 언하에 복응(服膺)했고 드디어 3년 동안 원두(園頭)를 맡아() 보답했음. 출세해 관계에 주()하자 선려(禪侶)가 사방에서 모였음. 스님이 상당해 가로되 나는 임제 야야(爺爺)의 처소에 있으면서 반 구기()를 얻었고 말산 양양(孃孃)의 처소에서 반 구기를 얻어 공히 한 구기를 이루었다. 먹고 나서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배불러 주리지 않는다.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관계(灌溪)입니까. 답해 가로되 벽전급(劈箭急)이다. 당 소종 건녕 을묘 529일 시자에게 물어 가로되 좌사(坐死)한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가(僧伽)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입사(立死)한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회(僧會)입니다. 스님이 이에 7()를 행하고는 손을 내리고 서거했음 [전등록12. 오등회원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