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寂夢昇】 禪苑蒙求拾遺 慧寂夢昇 會元曰 仰山慧寂禪師臥次 夢入彌勒內院 衆堂中諸位皆足 惟第二位空 師遂就座 有一尊者白槌曰 今當第二座說法 師起白槌曰 摩訶衍法 離四句 絶百非 諦聽諦聽 衆皆散去 及覺擧似潙山 潙山曰 子已入聖位 師便禮拜
혜적몽승(慧寂夢昇) 선원몽구습유. 혜적몽승(慧寂夢昇) 회원(會元)에 가로되 앙산 혜적선사가 누운 차, 꿈에 미륵 내원(內院)에 들어갔다. 중당(衆堂) 중에 제위(諸位)가 모두 충족했는데 오직 제2위가 비어 스님이 드디어 취좌(就座)했다. 한 존자가 있어 백추(白槌)하고 이르되 여금에 마땅히 제2좌가 설법하십시오. 스님이 일어나 백추하고 가로되 마하연법(摩訶衍法)은 4구(句)를 여의고 백비(百非)가 끊겼으니 체청(諦聽)하고 체청하십시오. 대중이 모두 흩어져 떠났다. 깸에 이르러 위산에게 들어 보이자 위산이 가로되 자네는 이미 성위(聖位)에 들었다. 스님이 곧 예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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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寂插鍬】 見仰山插鍬
혜적삽초(慧寂插鍬) 앙산삽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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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濟禪師】 五代法眼宗僧法安 署號慧濟禪師 詳見法安
혜제선사(慧濟禪師) 오대 법안종승 법안의 서호(署號)가 혜제선사니 상세한 것은 법안(法安)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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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濟舟】 淸代臨濟宗僧行舟 字慧濟 詳見行舟
혜제주(慧濟舟) 청대 임제종승 행주의 자가 혜제니 상세한 것은 행주(行舟)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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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照】 ①(1049-1119) 北宋黃龍派僧 亦作惠照 嗣法隆興兜率院從悅 南安軍郭氏子 從悅去世後 嗣居兜率二十七年 宣和元年休夏日 沐浴更衣 禮觀音大士三拜 退居丈室 端然而逝 壽七十一 臈四十七 [五燈會元十八 僧寶正續傳一] ②(1289-1373) 又作慧炤 元代臨濟宗僧 俗姓麻 字大千 號夢世叟 永嘉(今浙江溫州)人 十五歲于瑞光寺依從兄了定出家 後至蘇州薦嚴寺 禮東嶼德海 留爲執事 東嶼遷淨慈寺 命慧照分座說法 元致和元年(1328) 住持樂淸(今屬浙江)明慶寺 至正十五年(1355) 遷四明寶陀寺 不久移居阿育王寺 九年後退居妙喜夢庵 著有慧照語錄 [淨慈寺志十 補續高僧傳十五 增集續傳燈錄六]
혜조(慧照) ①(1049-1119) 북송 황룡파승. 또한 혜조(惠照)로 지으며 융흥 도솔원(兜率院) 종열(從悅)의 법을 이었고 남안군 곽씨의 아들임. 종열이 세상을 떠난 후 도솔에 사거(嗣居)하기 27년이었음. 선화 원년 휴하일(休夏日)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고 관음대사에게 3배(拜)로 예배하고 장실(丈室)에 퇴거하여 단연(端然)히 떠났으니 나이는 71, 납(臈; 臘과 같음)은 47 [오등회원18. 승보정속전1]. ②(1289-1373) 또 혜조(慧炤)로 지으며 원대 임제종승. 속성은 마며 자는 대천(大千)이며 호는 몽세수(夢世叟)니 영가(지금의 절강 온주) 사람. 15세에 서광사에서 종형(從兄) 요정(了定)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후에 소주 천엄사에 이르러 동서덕해(東嶼德海)를 참례하여 머무르며 집사(執事)했음. 동서가 정자사로 옮기자 혜조에게 명해 분좌설법(分座說法)하게 했음. 원 치화 원년(1328) 낙청(지금 절강에 속함) 명경사에 주지했고 지정 15년(1355) 사명 보타사로 옮겼고 오래지 않아 아육왕사에 이거(阿育王寺)했고 9년 후 묘희몽암으로 퇴거했음. 저서에 혜조어록이 있음 [정자사지10. 보속고승전15. 증집속전등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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