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國禪師昔居龜寺 今在鳳城 觀善財童子參諸知識未有休期 咄直下承當 豁然休歇 大用現前
불국 선사(禪師)가 접때(昔) 귀사(龜寺)에 거주했고 지금(只今)은 봉성(鳳城)에 있다. 선재동자가 여러 지식(知識)을 참하며 휴기(休期)가 있지 않음을 관하다가 돌(咄), 직하(直下)에 승당(承當)하여 활연(豁然)히 휴헐(休歇)했고 대용(大用)이 현전했다.
讚曰
찬왈
時光已是覺蹉跎 嗟爾平生跋涉多
五十餘人皆問訊 百重城郭盡經過
而今到此休分別 直下承當得也麼
忽若更云南北去 分明鷄子過新羅
시광(時光)은 이미 이, 차타(蹉跎)를 깨달았나니
너의 평생에 발섭(跋涉)이 많음을 차탄(嗟歎)한다
50여 인을 모두 문신(問訊)했고
백 겹의 성곽(城郭)을 모두 경과했다.
이금(而今; 여금)에 여기에 이르러 분별을 쉬었나니
직하(直下)에 승당(承當)함을 얻었는가(得也麼)
홀연히 만약 다시 남북으로 감을 이른다면
분명히 계자(鷄子; 子는 조사)가 신라를 지났다.

●선사(禪師); 선정(禪定)을 닦는 스님임. 선사란 명칭은 선종의 명덕(名德)에 한정하여 씀이 아니니 천태종ㆍ정토종ㆍ삼계교(三階敎) 등에서 좌선을 오로지 익히는 자를 또한 선사로 일컬음. 옥편(玉篇) 사(師) 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자의 칭호다. 법언(法言) 사(師)란 것은 사람의 모범이다. △인천보감(人天寶鑑). 당 덕종(德宗)이 담광법사(曇光法師)에게 물어 가로되 승(僧)을 왜 보배라고 이름합니까. 대답해 가로되 승이란 것은 갖추자면 6종이 있어 보배로써 그것을 일컫습니다. 1은 자기 마음을 단박에 깨쳐 범부를 초월해 성인에 들어가므로 선승(禪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2는 해(解)와 행(行)을 쌍으로 운전해 세류(世流)에 들지 않으므로 고승(高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3은 계정혜를 갖추어 큰 변재(辯才)가 있으므로 강승(講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4는 견문이 깊고 진실하여 옛을 들어 지금을 감험(勘驗)하므로 문장승(文章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5는 인을 알고 과를 알아 자비와 위의(威儀)를 병행하므로 주사승(主事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6은 공업(功業)을 정근(精勤)하여 성태(聖胎)를 장양(長養)하므로 상승(常僧)이란 이름을 얻습니다. 제(帝)가 크게 기뻐서 드디어 천하에 조칙하여 도승(度僧; 得度하여 승인이 됨)케 했다. △종통편년8(宗統編年八). 천감(天監) 13년 갑오(514) 선사(禪師) 보지공(寶誌公)이 적(寂)했다. 선사(禪師)를 씀(書)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조정사원8(祖庭事苑八). 선사(禪師) 선주의천자소문경(善住意天子所問經)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묻되 무엇 등의 비구가 선사란 이름을 얻는가. 문수가 가로되 일체법에 일행(一行)으로 사량(思量)하나니 이른 바 불생(不生)이다. 만약 이와 같이 안다면 선사란 이름을 얻는다. 내지 소법(少法)도 가히 취함이 있지 않나니 어떤 법을 취하지 않는가. 이른 바 차세(此世)와 후세(後世)를 취하지 않으며 3세(世)를 취하지 않는다. 일체법을 모두 취하지 않음에 이르나니 이르자면 일체법이 모두 중생이 없음이다. 이와 같이 취하지 않아야 선사란 이름을 얻는다. 조금의 취(取)와 비취(非取)가 없어서 일체법을 취하지 않나니 모두 얻는 바가 없으며 그는 억념(憶念)이 없다. 만약 억념하지 않으면 그는 곧 닦지 않나니 만약 닦지 않는 자라면 그는 곧 증득하지 않으므로 고로 이름이 선사(禪師)다.
●돌(咄); 이 글에선 아래 ②의 뜻. ①가질(呵叱; 꾸짖음)이니 동사. △전등록14 운암담성(雲巖曇晟). 스님이 짚신을 만들던 차에 동산(洞山)이 물었다. 스님에게 나아가 눈동자를 걸구한다면 미심합니다, 도리어 얻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네 것은 누구에게 주었는가. 가로되 양개(良价)는 없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있다 하더라도 네가 어느 곳을 향해 두겠는가. 동산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가로되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은 이 눈인가. 가로되 눈이 아닙니다. 스님이 그를 돌(咄)했다. ②꾸짖으며 물리치는 소리. 마할(嚒喝: 嚒는 語氣詞)하는 소리. △오등회원3(五燈會元三) 염관제안(鹽官齊安). 다음날 아침에 이르자 스님이 사미를 시켜 법공선사(法空禪師)를 굴(屈; 請)했다. 법공이 이르자 스님이 사미를 돌아보고 가로되 돌(咄), 이 사미가 일을 마치지 못했구나, 법공선사를 굴(屈)하게 했거늘 집을 지키는 가인(家人)을 굴득(屈得)했구나. 법공이 말이 없었다. ③자어(咨語; 탄식하는 말). △오종록3(五宗錄三) 운문. 돌돌돌(咄咄咄; 쯧, 쯧, 쯧)/ 기력이 위배해 적구나/ 선자가 놀라나니/ 중간의 눈썹이 처지네(咄咄咄 力韋希 禪子訝 中眉垂).
●직하(直下); 이 글에선 아래 ①을 가리킴. ①즉시ㆍ즉각의 뜻을 가리킴. 합하(合下)ㆍ당하(當下)와 같은 뜻. △원오어록17(圓悟語錄十七). 운문대사가 기특함에 방애(妨礙)되지 않아 직하(直下)에 가히 측탁(測度)치 못할 기륜(機輪)으로써 천성(千聖)의 정녕(頂?; ?은 이마) 위를 향해 발전(撥轉)했다. ②향하(向下)니 바로 아래로 내려감. △오등회원3 마조도일(馬祖道一). 방거사(龐居士)가 묻되 본래인을 암매(暗昧)하지 말고 스님의 높은 착안(著眼)을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아래(直下)를 보았다. 거사가 가로되 일등(一等; 한 모양으로 평등)의 몰현금(沒弦琴)은 오직 스님이라야 퉁겨 묘함을 얻습니다. 스님이 바로 위(直上)를 쳐다보았다. ③직계하(直系下)로 전함. △허당어록9(虛堂語錄九). 해하소참(解夏小參) 대각세존(大覺世尊)의 직하(直下) 53 세 적손(嫡孫) 비구모갑(比丘某甲)이 현재 경산(徑山) 흥성만수선사(興聖萬壽禪寺)에 거주한다.
●승당(承當); 기연(機緣)을 승수(承受)하여 선법(禪法)을 영오(領悟)함.
●활연(豁然); 흔쾌(很快; 매우 빠름). 돌연간. 일하자(一下子; 갑자기).
●대용(大用); 선법(禪法)의 실천ㆍ선법의 운용ㆍ선법의 수수(授受)를 가리킴. 위에 이미 나왔음.
●시광(時光); 시절광음(時節光陰). 곧 시간. 시후(時候).
●차타(蹉跎); 이 글에선 아래 ②를 가리킴. ①실오(失誤; 差錯). 고착(搞錯; 착오를 지음). △선림소어고증1(禪林疏語考證一). 한문(韓文)이 가로되 오호(嗚呼)라, 나의 뜻이 그 차타(蹉跎)했다. 말하자면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다. △전등록29 십현담(十玄談). 고목암(枯木巖) 앞에서 길 어긋남이 많나니 행인이 이에 이르러 모두 차타(蹉跎)한다. ②시일을 헛되이 보냄임 [潙山警策句釋記上]. △위산경책(潙山警策). 시광(時光)이 엄몰(淹沒; 침몰)하고 세월이 차타(歲月蹉跎)하다.
●발섭(跋涉); 선림소어고증2(禪林疏語考證二). 발섭지로(跋涉之勞) 시(詩; 召南) 재치(載馳)에 가로되 대부가 발섭(跋涉)하니 내 마음이 곧 근심한다(大夫跋涉 我心則憂). 주(註) 초행(草行)을 가로되 발(跋)이며 수행(水行)을 가로되 섭(涉)이다.
●50여 인을 운운; 오십삼참(五十三參)을 가리킴. 또 선재동자오십삼참으로 지음. 화엄경입법계품을 안험(按驗)컨대 선재동자가 법문의 요의(要義)를 두루 구하면서 처음에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을 참(參)하고 다시 남방으로 유행(遊行)하며 먼저 덕운비구(德雲比丘)를 참하고 차제로 전전(輾轉)히 지시하여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참해 곧 일체의 불찰미진수(佛刹微塵數三昧門) 삼매문(三昧門)을 얻었음. 선재가 이와 같이 110성(城)을 경력하며 53위 선지식을 참한지라 고로 호칭하여 53참(參)임.
●문신(問訊); 합장하면서 입으로 안부(安否)를 물음임. 다만 경읍(敬揖)하면서 안부를 표문(表問)하는 마음도 또 이르되 문신임. 설문(說文) 신(訊) 문(問)이다.
●백 겹의 성곽(城郭); 110성(城)을 가리킴이니 바로 위 각주 50여 인을 운운을 보라.
●계자(鷄子)가 신라를 지났다; 鷄는 鷂로 의심됨. 선록(禪錄)에 용례가 거의 없음. 요과신라(鷂過新羅)는 전과신라(箭過新羅), 전과서천(箭過西天)과 같은 뜻. 선기(禪機)를 조금만 놓쳐도 곧 가버림을 형용함이니 마치 요자(鷂子; 새매)가 빠르게 날아 눈을 깜작이는 사이에 이미 신라를 비과(飛過)함과 같음. 어떤 때는 언구의 문답에 사용하나니 상대방이 지둔(遲鈍)하여 실기(失機)함을 가리켜 냄. 기자(譏刺; 헐뜯음)의 뜻을 함유했음. 혹은 낙처를 알지 못함, 종적이 없음의 뜻.
佛國禪師文殊指南圖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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