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今以禪林正寢爲方丈 蓋取則毘耶離城維摩之室 以一丈之室 能容三萬二千師子之座 有不可思議之妙事故也 唐王玄策爲使西域 過其居 以手版縱橫量之 得十笏 因以爲名 〖祖庭事苑六〗
여금에 선림(禪林; 禪寺. 禪院)의 정침(正寢; 거처하는 곳이 아닌 주로 일을 보는 곳으로 쓰는 몸채의 방)을 방장(方丈)으로 삼음은 대개 비야리성(毗耶離城)의 유마(維摩)의 방에서 궤칙(軌則)을 취했다. 일장(一丈; 사방 一丈)의 실내에 능히 3만2천의 사자(師子)의 좌(座)를 용수(容受)했음은 불가사의의 묘사(妙事)가 있는 연고이다. 당(唐)나라의 왕현책(王玄策)이 서역(西域)에 사신(使臣)이 되어 그 거처를 지나다가 수판(手版; 笏을 일컬음. 手板)으로 종횡(縱橫)을 재었는데 10홀(笏; 笏은 관원이 임금을 만날 때 朝服에 갖추어 손에 쥐던 물건. 길이 한 자쯤 너비 두 치쯤이며 얄팍하고 길쭉히 생겼음)을 얻었으므로 인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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