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文原】 元王公 字善之 巴西(四川綿陽東)人 官翰林院待制兼國史館編修 謚康莊 嘗撰石林鞏公塔銘 [佛法金湯編十六]
등문원(鄧文原) 원의 왕공이니 자는 선지며 파서(사천 면양 동) 사람. 벼슬이 한림원대제 겸국사관편수였음. 시(謚)는 강장. 일찍이 석림공탑명(石林鞏公塔銘)을 지었음 [불법금탕편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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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燈法】 明代臨濟宗僧 字惺徹 參四川忠州治平寺鐵壁慧機 得印可 [續燈正統十八]
등법(燈法) 명대 임제종승. 자는 성철이며 사천 충주 치평사 철벽혜기를 참해 인가를 얻었음 [속등정통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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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燈炳】 (1611-1680) 明代臨濟宗僧 字衡山 合江(今屬四川)馮氏 於寶峰依洞然落髮 參聚雲吹萬 疑團未釋 時鐵壁慧機爲首座 叩之 言下恍然 遂師事之 出住吉祥 康熙六年(1667) 遊江浙 二載乃歸 退住忠州福城山慶雲寺 寂後門人性珏分靈骨一半 附葬於高峰祖塔之左 餘皆塔於本寺西岡 [續燈正統十八]
등병(燈炳) (1611-1680) 명대 임제종승. 자는 형산이며 합강(지금 사천에 속함) 풍씨. 보봉에서 동연에게 의지해 낙발(落髮)했음. 취운취만을 참했으나 의단(疑團)이 풀리지 않았음. 때에 철벽혜기(鐵壁慧機)가 수좌가 되었으며 그에게 물어 언하에 황연(恍然)했으며 드디어 그를 사사(師事)했음. 출세해 길상에 거주했음. 강희 6년(1667) 강절(江浙)을 유람하다가 두 해 만에 곧 돌아와 충주 복성산 경운사에 퇴거(退住)했음. 입적한 후에 문인 성각(性珏)이 영골(靈骨)을 일반(一半; 折半) 나누어 고봉조탑(高峰祖塔)의 왼쪽에 부장(附葬)하고 나머지는 모두 본사의 서쪽 언덕에 탑을 세웠음 [속등정통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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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燈甫】 淸代臨濟宗僧 字眉山 彭山(今屬四川)張氏 初以居士身 參西山鑑 後自薙鬚髮 廣參知識 謁鐵壁慧機於平山 問答無滯 傳以衣拂 出住三敎 繼遷靈峰 圓通 石峰 興隆 東明 草堂 開化八席 晩年遊鄂城 訪臥雲 退休於齊安燕雲山雪堂 有草堂規制 金剛大義 析疑略釋 栗園典要 三字經說 內篇詮釋 [續燈正統十七]
등보(燈甫) 청대 임제종승. 자는 미산이며 팽산(지금 사천에 속함) 장씨. 처음에 거사의 몸으로 서산감을 참했고 후에 스스로 수염과 머리를 깎았으며 지식을 널리 참방했음. 철벽혜기(鐵壁慧機)를 평산에서 참알하고 문답하면서 막힘이 없었으며 의불(衣拂)을 전수했음. 출세해 삼교에 거주하다가 이어서 영봉ㆍ원통ㆍ석봉ㆍ흥륭ㆍ동명ㆍ초당으로 옮기며 8석(席)을 개화(開化)했음. 만년에 악성(鄂城)에 노닐다가 와운을 참방했고 제안 연운산 설당에서 퇴휴(退休)했음. 초당규제ㆍ금강대의ㆍ석의약석ㆍ율원전요ㆍ삼자경설ㆍ내편전석이 있음 [속등정통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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