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10권)

선문염송집 권8 제278칙(주석 한글)

태화당 2021. 10. 29. 08:24

第二七八則; 전등록14 삼평의충(三平義忠). 처음 석공(石鞏)을 참했다. 석공은 늘 장궁가전(張弓架箭)하여 학도(學徒)를 접대(接待)했다. 스님이 법석으로 나아가자 석공이 가로되 화살을 보아라. 스님이 곧 가슴을 헤쳐 열고 이르되 이것은 이 살인전(殺人箭)입니다, 활인전(活人箭)은 또 어떻습니까. 석공이 이에 활줄을 세 번 두드렸다. 스님이 곧 작례(作禮)했다. 석공이 이르되 30년 동안 1(; 量詞)의 활과 양척(兩隻)의 화살이었는데 다만 반개성인(半箇聖人)을 쏘아 얻었다. 드디어 궁전()을 요절(拗折)했다. 스님이 후에 대전(大顚)에게 들어 보였다. 대전이 이르되 이미 이 활인전(活人箭)이거늘 무엇 때문에 활줄 위를 향해 분변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전이 이르되 삼십 년 후에 차화(此話)를 드는 사람을 요하더라도 또한 어려우리라.

三平; 복건 장주()漳州) 삼평산이니 또 대전보통(大顚寶通)의 법사 의충(義忠; 781-872)을 가리킴. 이 산에 거주하면서 후학을 접화(接化)했음. 아래 제546칙 의충(義忠)을 보라.

一張弓兩下箭; ()과 하()는 다 양사(量詞).

半箇聖人; 염송설화에 이르되 반개성인(半箇聖人)이란 것은 동파(東坡)가 이르되 부견(符堅)이 형주(荊州)를 격파하여 다만 일인반(一人半)을 얻었으니 이르자면 석도안과 처사 습착치(習鑿齒). 습착치는 절룩거리는 질병이 있었으니 이것이 반인(半人)이다. 불법금탕편(佛法金湯編; 十六卷 明 心泰編) 2. 습착치(習鑿齒) 양양(襄陽)이 부견(苻堅)에게 함락됨에 이르렀다. 부견이 본디 그의 이름을 들은지라 도안(道安)과 더불어 모두 거여(車輿)로 초치(招致)했다. 부견이 그가 건질(蹇疾; 절룩거리는 질병)이기 때문에 제진(諸鎭)에 서신을 주어 가로되 옛적에 진씨(晉氏)가 오()를 평정한 이익이 2(二陸; 陸機陸雲)에 있었거니와 여금에 한남(漢南)을 격파하여 획사(獲士)했는데 겨우 일인반(一人半)일 뿐이다.

大顚; 당대승 보통(寶通)이니 호가 대전(大顚)이며 석두희천을 이었음. 아래 제352칙을 보라.

芭蕉情; 파초청(芭蕉淸)으로 의심됨. 파초혜청(芭蕉慧淸)이니 신라국승. 오대 후량 위앙종 남탑광용(南塔光涌)에게서 득법했고 영주 파초산에서 출세했음 [전등록12. 연등회요11].

靈嵓; 바르게는 영암(靈巖)으로 지음. 송대승. 관주에 거주했고 나산도한(羅山道閑)을 이었음. 도한은 암두전활을 이었음 [전등록23].

寰中; 환내(寰內)니 천자의 기내(畿內).

投款; 항복(降服)과 같은 뜻. ()은 신복(臣服), 귀부(歸附). 또 충심(衷心). 옥편 관() ()이다.

納璧牽羊; 조정사원4. 견양(牽羊) 양을 끌고 벽()을 납부함은 항복을 받는 의식임. 춘추(春秋; 宣公十二年) ()가 정백(鄭伯)을 포위하자 정백이 육단(肉袒; 윗도리를 벗고 육체를 나타냄)으로 양을 끌었음은 복례(僕隸)가 됨을 보인 것이다. 납벽(納璧)은 무릇 약한 즉 항복하고 항복한 즉 벽()을 머금고 귀항(歸降)하는 것임. 벽은 국보니 항복한 자가 친히 군주에게 바치는 것임. 얼굴이 묶이고 손에 잡을 게 없으므로 고로 써서 가로되 함(; 재갈 함. 머금을 함. 과 같음).

凌煙; 장안의 능연각임. 정관 17(642) 당태종이 명하여 장손무기(長孫無忌) 24공신을 능연각에 도화(圖畫)하게 했음.

羿; 후한서28. 옛적에 궁후예(窮後羿)가 있었는데 그 잘 쏨을 믿고 환난(患難)을 생각하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석씨계고략1. (羿)가 전가(田家)에 달아나자 군중이 예를 죽여서 삶았으며 그 자식에게 먹이자 그 자식이 차마 먹지 못했는데 궁문(窮門)에서 죽였다. 예는 재위가 8년이다. 논어 헌문(憲問). (羿)는 잘 쏘았다. 회남자6 남명훈. (羿)가 불사의 약을 서왕모에게 청했는데 항아(姮娥)가 훔쳐 달로 달아났다.

昇平; 승평(升平)과 같음. 공양전(公羊傳) 1 승평소(升平疏)에 가로되 해석해 이르되 승()은 진()이다. 조금씩 위로 나아가(上進) 태평(太平)에 이른다. 전한기(前漢紀) 효문황제기하(孝文皇帝紀下). 고로 왕자(王者; 왕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3()에 고적(考績; 관리의 성적을 詳考)하고 3()에 출척(黜陟; 관직의 강등과 승진)한다. 9년 동안 경작하여 3년의 식량이 남아야 진업(進業)이 날로 오르나니() 이를 일러 승평(升平)이라 한다. 3()을 가로되 태()27년에 9년의 식량이 남아야 한다. 이를 일러 대평(大平)이라 하며 왕업(王業)이 대성(大成)한다.

降款; 항복과 같은 뜻. ()은 신복(臣服), 귀부(歸附).

藍田石; 남전(藍田)은 산 이름이니 섬서성에 위치함. 사기109를 안험하니 전한의 이광(李廣)이 풀 속의 돌을 보고 호랑이로 삼아 그것을 쏘았는데 돌에 적중하여 화살촉이 잠겼다. 그것을 보매 돌이었다. 원오어록2. 만약 남전에서 석호를 쏘지(藍田射石虎) 않았다면 거의 이장군을 오살(誤殺)했으리라.

首山; 수산성념(首山省念). 풍혈연소(風穴延沼)를 이었으니 임제하 4. 아래 제1320칙을 보라.

韓光; 한신(韓信)과 곽광(霍光)이니 한신은 위 제185칙 한후(韓侯)를 보라. 곽광(霍光; -68) 전한의 무장이며 또한 정치가. 자는 자맹(子孟)이며 표기장군(票騎將軍) 거병(去病)의 동생임. 하동 평양(지금의 산서 임분) 사람. 무제 말에 대사마ㆍ대장군이 되었으며 소제(昭帝) 시에 박륙후(博陸侯)가 되었음. 소제가 붕어하자 형의 아들인 창읍왕을 세우고 즉위 27일 만에 곽광이 그를 폐위시켰음. 후에 선제를 세웠는데 선제 지절 2(68) 대장군 곽광이 훙서(薨逝)하였으며 2년 후에 가()가 이멸(夷滅; 멸망시킴. 三族을 멸함)[한서68곽광전. 광홍명집11].

當等閑; ()은 향착(向着)이니 대()와 같음.

姜山愛; 어떤 사람인지 미상.

射虎不眞 徒勞沒羽; 사기109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이광이 사냥을 나가서 풀 속의 돌을 보았는데 범이라고 하여 그것을 쏘았다. 돌에 적중하여 화살깃마저 잠겼다. 그것을 보니 돌이었다. 인하여 다시 그것을 쏘았는데 마침내 능히 다시 돌에 들어가지 않았다.

石佛; 승천전종(承天傳宗) 자신을 가리킴.

相席打令; 본래는 연석(筵席)의 주빈의 구체적인 정황을 보아 주령(酒令)을 행함을 일컬음. 다분히 선가의 언구와 작략의 수기변응(隨機變應)에 비유함.

以己方人; 자기로써 타인에 방비(方比; 비교). 광운 방() ().

東林照覺; 동림조각상총선사(東林照覺常總禪師)니 황룡혜남을 이었음. 위 제5칙 동림총(東林惣)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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