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20권)

선문염송집 권17 제687칙(한글)

태화당 2022. 1. 11. 08:24

六八七동산이 시중해 이르되 형제여, 가을 초 여름 끝(秋初夏末)에 동으로 가고 서로 가려니와 바로 모름지기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야 비로소 옳다. 또 이르되 지여(只如)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느냐. 후에 누가 석상(石霜)에게 들어 보였다. 석상이 이르되 문을 나서면 곧 이 풀이다. 스님이 듣고 이에 이르되 대당국 안에 능히 몇 사람이 있는가. 대양연(大陽延)이 이르되 바로 말하노니 문을 나서지 않아도 역시 풀이 만만(漫漫)하다.

 

장산천(蔣山泉)이 송하되 출문(出門)하면 곧 이 매우 망연(忙然)하지만/ 만 리에 옴이 없어도 원만함을 얻지 못한다/ 가향(家鄕)의 돌아가는 길을 알고자 하느냐/ 모운(暮雲)이 가볍게 에웠고 푸름이 면면(綿綿)하다.

 

단하순(丹霞淳)이 송하되 귀가(歸家)하매 어찌 벽운상(碧雲床)에 앉을 것인가/ 출호(出戶)하매 청초지(靑草地)를 다니지 않는다/ 남북동서에 본래 자유(自由)로우니/ ()는 배면(背面)이 없거늘 어찌 회피하랴.

 

석문이(石門易)가 송하되 만 리의 풍연(風煙)에 초목이 성기고()/ 목전에 가히 서로 따를() 법이 없다/ 백운 깊은 곳의 생애로(生涯路)/ 오히려 어옹(漁翁)이 그()를 냉소함을 입는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풀이 만만(漫漫)하나니/ 문 안과 문 밖을 그대가 스스로 보아라/ 형극림(荊棘林) 속에 발을 내리기 쉽지만/ 야명렴(夜明簾) 밖에 몸을 돌리기 어렵다/ 보아라, 보아라/ 몇 종류더냐(幾何般)/ 다만 노목(老木) 따라 함께 한척(寒瘠)하고/ 이에() 춘풍을 쫓아 소반(燒瘢)에 들어간다.

 

원오근(圜悟勤)이 송하되 신풍로(*新豐)가 탄연하거늘/ 어찌 정편(正偏)의 원만(圓滿)에 종사하리오/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거늘/ 어떤 사람이 가히 앞을 향하겠는가/ ()가 돌지 않으면 진연(塵緣)에 떨어지고/ 투득(透得)하여 벗어나면 풍연(風煙)을 범한다/ 유양(*瀏陽)이 단적(端的)하게 중변(中邊)을 깨뜨렸나니/ 출문하매 이미 이는 풀이 무성하고 면면(綿綿)하다/ 투기(投機)하매 만약 내맥(來脉)을 잘 안다면/ 양안(兩岸)이 다 현묘해 하나도 완전하지 않다. 다시 이르되 발 아래를 보아라.

 

불안원(佛眼遠)이 송하되 출문하면 바로 이 풀이라 하니/ 용문로(龍門老)를 너무 한가하게 한다/ 북으로 가서 문수를 참례하고/ 남으로 와서 오로(*五老)에 오른다/ 빈발(鬢髮)이 이미 창랑(*蒼浪)이거늘/ 회귀를 말하려니 이르지() 않음이 한스럽다/ 추풍 앞에 홀로 서서/ 상사(相思)하며 강도(江島)를 바라본다/ 호호(好好) 다시 심토(尋討)를 쓰지 않으리라.

 

운문고(雲門杲)가 송하되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나니/ 단지 청컨대 이렇게 가라/ 출문하면 곧 이 풀이니/ 각자 공거(*公據)가 있다/ 공거가 있거늘/ 어찌 구속(抅束)되리오/ 청풍의 달 아래 수주(守株)하는 사람이여(*淸風月下守株人)/ 양토(*)는 점차 멀어지고 춘초는 푸르다.

 

천복일(薦福逸)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이 두 존숙을 만약 이 궁구(窮究)할진대 멀리 입리심담(入理深談)에 상당하고 해공제일(解空第一)을 관취(管取; 보증)한다. 홀약(忽若) 운문화상이 말하되(*雲門和尙道) 정토상(淨土上)에 죽는 사람이 무수하나니 형극림(荊棘林)을 과득(過得)해야 이 호수(好手)다 했으니 또 어떻게 이 허물을 면득(免得)하겠는가. 양구하고 이르되 천복(薦福)은 곧 그렇지 않다. 너희 등 제인이 초추하말(初秋夏末)에 천태와 남악이 의연(依然)히 있으니 반환(*盤桓)을 얻은 곳에 또 반환하라. 눈이 있는 이는 시험삼아 분변해 보아라.

 

단하순(丹霞淳)이 차화를 들고 이르되 출문하면 곧 이 풀임은 곧 그래 두고 감히 제인에게 묻노니 어느 것(那个)이 이 출문하지 않아도 역시 풀이 만만(漫漫)한 곳이냐. 제인이 이륙시(二六時) 중에 도리어 일찍이 이 속을 향해 체구(體究)함을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에 체구함을 얻었다면 바로 곧 수시(隨時)하여 음탁(飮啄)하면서 성태(聖胎)를 장양(長養)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출가하여 무슨 이익이겠는가. 산승이 오늘밤 양편피(兩片皮)를 두드려 제2의문(第二義門)을 향해 제인을 위해 중설(重說)함을 면하지 못한다. 양구하고 이르되 철우(䥫牛)가 효후(哮吼)하니 건곤이 진동(震動)하고/ 옥마(玉馬)가 시풍(嘶風)하니 해악(海岳)이 달린다/ 어젯방 3경에 일륜(日輪)이 오(; 午夜)/ 유휘(流輝; 빛을 흘리다)하여 백운촌(白雲村)을 높이 비추었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어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으로 가라. 스님이 이르되 천동(天童)이 말하노니 형제여,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지만(不東不西) 또한 꼭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라. 이미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는가. 도리어 아느냐, 가더라도 감이 아니니 동풍(同風)이 천리(千里)며 머물러도 머묾이 아니니 일념이 만년(*一念萬年)이다. 이러하여 머물러도 머묾이 없는 공()이며 가도 감이 없는 상()이니 공곡(空谷)은 정신이 고요함이 있어 응하고 고운(孤雲)은 마음이 동함이 없어 한가하다. 소이로 말하되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여(*佛身充滿於法界)/ 일체 군생(群生)의 앞에 널리 나타나나니/ 인연 따라 이르러 감응하며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되/ 항상 이 보리좌에 거처한다. 어찌해야 이렇게 온밀(穩密)함을 얻어 가는가, 편정(偏正)이 일찍이 본위(本位)를 여의지 않거늘 무생(無生)이 어찌 언어의 인연에 교섭하리오.

 

또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양구하고 이르되 지여(只如)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또 어떻게 가느냐. 후에 중이 들어() 석상(石霜)에게 묻자 석상이 이르되 출문하면 바로 이 풀이다. 명안(明安)이 이르되 바로 이 출문하지 않아도 역시 풀이 만만(漫漫)하다. 스님이 이르되 출문하면 이 풀이니 천천망망(*芊芊莽莽)의 사이에 건너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인 줄 아나니 암암청청(黯黯靑靑)한 곳에 떨어진다. 이 속에 이르러선 모름지기 기(; 베틀)는 비록 전뉴(轉紐)하더라도 인()은 문채를 이루지 아니한 곳을 체취(體取)해야 비로소 옳다. 도리어 단적(端的; 진실)한가. 양구하고 이르되 물이 환하여 노방(老蚌; 늙은 방합)이 태를 품은 후에 구름이 중첩하여 창룡(蒼龍)이 뼈를 물릴 때다.

 

또 시중하여 차화를 들어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가라. 스님이 이르되 제인이 도리어 체실(體悉; 체험해 알다)함을 얻느냐. 일색은 곧 전()함을 써야 하고 대공(大功)엔 내가 거처하지 않는다. 구슬이 푸른 쟁반에 달리고 쟁반이 구슬에 달리나니 창명(滄溟)에 직하하여 명월을 취해야 하거니와 우리 집에 스스로 곤륜노(崑崙奴)가 있다. 그래 말하라, 어떻게 행리(行履)하겠는가. 천우(*天宇; 하늘. 천하)가 허공에 휑하여 구름이 비를 걷었고 개울은 징철(澄澈; 맑음)을 용납해 물이 가을을 품었다.

 

자수(慈受)가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동산 노자가 입은 있으나 혀가 없어 말을 내면 곧 조도(鳥道)와 현로(玄路)였다. 유양수(*瀏陽叟)는 격탁양청(激濁揚淸; 탁과 청을 격양함)하여 오로지 구()가 없는 가운데를 향해 구()가 있음을 사랑했다. 자수수(慈受叟)가 말한다. 너희 등 제인이 초추하말(初秋夏末)6()의 길이 있나니 1()는 가히 다니지만 5조는 가히 다니지 못한다. 첫째 성묘지상(聖妙地上)을 향해 날목생화(捏目生花)함을 얻지 못한다. 둘째 평실지상(平實地上)을 향해 인노작랑(認奴作郞)함을 얻지 못한다. 셋째 광경문두(光境門頭)를 향해 죽반기(粥飯氣)를 희롱함을 얻지 못한다. 넷째 무사갑중(無事甲中)을 향해 외도피전(*隈刀避箭)함을 얻지 못한다. 다섯째 갈등과리(葛藤窠裏)를 향해 설황도흑(說黃道黑)함을 얻지 못한다. 제육조로(第六條路)는 비로소 제인의 다님을 허락하나니 그래 말하라, 1조의 길을 어떻게 다니느냐. 도리어 아느냐, 짚신이 해어짐을 인하지 않으면 어찌 노기(路岐)의 멂을 깨닫겠는가.

 

상방익(上方益)이 시중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만약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면 바로 이는 평지상에서 끽교(喫交; 넘어짐)하며 만약 출문하면 이 풀인 곳을 향해 가면 혼신(渾身)이 극자(棘刺; 가시)를 면하지 못한다. 직요(直饒) 양두(兩頭)를 절단(截斷)하더라도 법운(法雲; 上方益)의 문하에 이르면 발꿈치가 일찍이 땅에 닿지 않음을 관취(管取; 보증)한다. 뛰어 벗어남을 얻을 이가 있지 않느냐. (*).

 

운문고(雲門杲)가 염하되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사자의 한 방울 젖이 10(; )의 나귀 젖을 흩어져 달아나게(逬散) 한다.

 

목암충(牧庵忠)이 염하되 그래 말하라, 합당히 어느 곳을 향해 행리(行履)해야 하는가. 양구하고 이르되 한암의 이초 푸름을 지키지 말지니(*莫守寒嵓異草靑) 백운에 앉아버리면 종()이 묘하지 않다. 대중이여, 두세 노인이 대사(大事)를 발명(發明)하여 비록 그러히 온밀(穩密)하지만 각자 이 일가(一家). 홀연히 어떤 사람이 위산(*潙山)에게 물어 말하되 지여(只如)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느냐. 단지 향해 말하되 거농(渠儂)은 자유를 얻었다.

 

第六八七則; 차화는 연등회요20에 나옴. 오등회원5 석상경제(石霜慶諸). 스님이 후에 세상을 피해 장사(長沙) 유양(瀏陽)의 도가방(陶家坊)에서 혼속(混俗)했다. 아침에 다니고 저녁에 거처하는지라 사람이 능히 알지 못했다. 후에 중이 동산(洞山)으로부터 옴으로 인해 스님이 묻되 화상이 어떤 언구가 있어 시도(示徒)합니까. 가로되 해하(解夏)에 상당해 이르되 추조하말(秋初夏末)에 형제들이 혹 동으로 가고 서로 가려니와 바로 모름지기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야 한다. 양구하고 가로되 지여(秖如)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느냐. 스님이 가로되 하어(下語)한 사람이 있습니까. 가로되 없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왜 출문하면 곧 이 풀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중이 돌아가 동산에게 들어 보였다. 동산이 가로되 이것은 이 15백 인의 선지식의 말이다. 이로 인해 낭추(囊錐)가 비로소 드러났고 과일이 익고 향이 나부꼈으며 대중이 주지(住持)로 임명(任命)했다.

新豐; 전등록15 동산양개(洞山良价) 스님이 당 대중(847-859) 말에 이르러 신풍산(新豐山)에서 학도(學徒)를 접유(接誘)했으며 그 후에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지금의 균주(筠州)에서 교화가 왕성했다.

瀏陽; 호남의 유양(瀏陽)이니 석상경제(石霜慶諸)를 가리킴. 혹 호칭이 유양수(瀏陽叟). 오등회원5 석상경제. 스님이 후에 세상을 피해 장사(長沙) 유양(瀏陽)의 도가방(陶家坊)에서 혼속(混俗)했다. 아침에 다니고 저녁에 거처하는지라 사람이 능히 알지 못했다.

五老; 오로봉(五老峯)이니 여산(廬山) 가운데 오로(五老)ㆍ향로ㆍ한양ㆍ백운ㆍ쌍검 등 수십 봉()이 있음.

蒼浪; ()은 회백색(灰白色)이니 다분히 두발의 반백(斑白)을 가리킴. 당대(唐代) 두보 증위팔처사(贈衛八處士) 소장(少壯)이 능히 얼마의 시절이겠는가 빈발(鬢髮)이 각기 이미 창()했다.

公據; 관부(官府)의 빙거(憑據; 증거).

淸風月下守株人; 동산오본어록(洞山悟本語錄). 신풍음(新豐吟) 고로(古路)가 탄연(坦然)커늘 누가 발을 디디겠는가/ 환향곡(還鄕曲)을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청풍의 달 아래 수주하는 사람(淸風月下守株人)이여/ 양토(凉兎)가 점차 멀어지매 춘초가 푸르다

.; 1. 한토(寒兔)니 한동(寒冬)의 산토끼. 2. 가을의 달을 가리킴.

雲門和尙道; 운문록상(雲門錄上). 스님이 어떤 때 이르되 평지 위에서 죽는 사람이 무수하나니 형극의 숲을 투과해야 이 호수(好手). 중이 이르되 이러하시다면 당중(堂中)의 제일좌가 장처(長處)가 있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소로소로(蘇嚕蘇嚕).

盤桓; 배회(徘徊). 체류(滯留). ()은 반환(盤桓)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정자통 환() 반환하며 나아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또 반()은 반(; 머뭇거림)과 통하나니 역 둔괘(屯卦) 상사(象辭)에 가로되 비록 반환(磐桓)하더라도 지행(志行)은 바르다. 후한서36. 전에 자주 징명(徵命; 부르다. 명령하다)했으나 반환(盤桓)하며 이르지 않았다.

一念萬年; 신심명. ()은 짧거나 긺이 아니라서/ 일념이 만년(一念萬年)이며/ ()와 부재(不在)가 없어/ 시방이 목전이다.

佛身充滿於法界; 화엄경6.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중생의 앞에 널리 나타나나니/ 인연 따라 이르러 감응하며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되/ 항상 이 보리좌에 거처한다.

芊芊莽莽; 초목이 무성한 모양.

天宇; (). 천하. 세상.

瀏陽叟; 석상경제(石霜慶諸)를 가리킴. 위 유양(瀏陽)을 보라.

光境; ()은 능히 비추는 주체가 되며 경()은 비추는 바의 대상이 됨. 만약 능소(能所; 주객)가 하나로 합치면 일컬어 광경일여(光境一如)라 하고 만약 사물을 비추는 마음과 비추는 바의 경계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서로 건너 호융(互融)하여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면 곧 일컬어 광경구망(光境俱亡)ㆍ광경민절(光境泯絶)이라 함. 전등록7 반산보적(盤山寶積). 무릇 심월이 고원(孤圓)하여/ 빛이 만상을 삼켰다/ 빛이 경계를 비추지 않으면/ 경계도 또한 존재하지 않나니/ 광경(光境)이 다 망하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隈刀避箭; 도전(刀箭)을 회피(回避). ()는 회피의 뜻.

; 마땅히 차()로 지어야 함. 집운(集韻) () (). 옥편 차() 침으로써 찌름이다.

莫守寒嵓異草靑; 연등회요20. 대양연(大陽延)이 이르되 여금에 바로 말하노니 출문하지 않아도 또한 풀이 만만지(漫漫地). 그래 말하라, 합당히 어느 곳을 향해 행리(行履)해야 하는가. 양구하고 이르되 한암의 이초 푸름을 지키지 말지니(莫守寒巖異草靑) 백운에 앉아버리면 종이 묘하지 않다(坐著白雲宗不妙).

潙山; 목암법충(牧庵法忠) 자신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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