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曾侍郞〈天游〉○〈問書附〉
開頃在長沙 得圜悟老師書 稱公晚歲相從所得甚是奇偉 念之再三 今八年矣 常恨未獲親聞緒餘 惟切景仰 開自幼年發心 參禮知識扣問此事 弱冠之後 卽爲婚宦所役 用工夫不純 因循至今老矣 未有所聞常自愧歎 然而立志發願 實不在淺淺知見之間 以爲不悟則已 悟則須直到古人親證處 方爲大休歇之地 此心雖未嘗一念退屈 自覺工夫終未純一 可謂志願大而力量小也 向者 痛懇圜悟老師 老師示以法語六段 其初直示此事 後擧雲門趙州放下著須彌山兩則因緣 令下鈍工 常自擧覺 久久必有入處 老婆心切如此 其奈鈍滯太甚 今幸私家塵緣都畢 閑居無他事 政在痛自鞭策以償初志 第恨未得親炙敎誨耳 一生敗闕 已一一呈似 必能洞照此心 望委曲提警 日用當如何做工夫 庶幾不涉他途 徑與本地相契也 如此說話 敗闕亦不少 但方投誠自難隱逃 良可愍故 至扣
●侍郞; 官名 秦漢代爲郞中令之屬官 掌握宮門事 唐代爲中書省門下省之長官 後代爲六府次官
●天游; 宋代楊岐派居士曾開 字天游 官內翰侍郞 久參圓悟 並往來大慧宗杲之門 紹興二十一年(1151) 佛海慧遠(嗣圓悟克勤)補三衢光孝 開往參謁 言下悟旨 得印證 [五燈嚴統二十]
●圜悟; 又作圓悟 指克勤(1063-1135) 又作克懃 宋代楊岐派僧 四川崇寧人 俗姓駱 字無著 幼於妙寂院依自省出家 受具足戒後 於成都依圓明學習經論 後至五祖山參法演 蒙其印證 與佛鑑慧懃 佛眼淸遠齊名 世有演門二勤一遠之稱 被譽爲叢林三傑 崇寧(1102-1106)中 於成都昭覺寺開法 政和初年(1111)至荊州 當世名士張無盡禮謁之 與之談論華嚴要旨及禪門宗趣 復受澧州刺史之請 住夾山靈泉禪院 復徙道林 時因樞密鄧子常之奏請 敕賜紫服及佛果禪師之號 政和中 奉詔移住金陵蔣山 次住天寧萬壽 大振宗風 後居於金山 高宗幸揚州時 詔其入對 賜號圜悟 世稱圜悟克勤 後歸成都昭覺寺 紹興五年示寂 壽七十三 諡號眞覺禪師 弟子有大慧宗杲 虎丘紹隆等禪門龍象 曾於夾山之碧巖 集雪竇重顯之頌古百則 編成碧巖錄十卷 世稱禪門第一書 此外有圜悟佛果禪師語錄二十卷 [大慧普覺禪師年譜 僧寶正續傳四 嘉泰普燈錄十一 佛祖歷代通載三十 釋氏稽古略四]
●緒餘; 抽絲後留在蠶繭上的殘絲 借指事物之殘餘或主體之外所剩餘者
●景仰; 景 慕也 仰也
●知識; 朋友之異名 如云知人 我知其心識其貌之人也 又我所知之人也 非多知博識之義 諸經之初有 皆是大阿羅漢 衆所知識 卽就爲人所知而云 其人善 爲善友善知識 惡則爲惡友惡知識 說法引導我於善處者是善友 故曰善知識 又單云知識
●扣問; 詢問 請敎
●此事; 指宗門一大事 宗門一大事者 非類敎家說 直指自己本分事 云一大事也 又人之生死 謂爲大事 善導之臨終正念訣曰 世之大事 莫越生死 一息不來 乃屬後生 一念若錯 便墮輪迴 ▲法華經一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舍利弗 云何名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諸佛世尊 欲令衆生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欲示衆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高峰和尙禪要 生死事大 無常迅速 生不知來處 謂之生大 死不知去處 謂之死大 只者生死一大事 乃是參禪學道之喉襟 成佛作祖之管轄 三世如來 恒沙諸佛 千變萬化 出現世間 蓋爲此生死一大事之本源 西天四七 唐土二三 以至天下老和尙 出沒卷舒 逆行順化 亦爲此一大事之本源
●弱冠; 祖庭事苑六 弱冠 音貫 冠束也 男子二十曰弱冠 ▲禪林寶訓音義 弱冠 古者二十歲方冠 此十五六 未冠之稱也
●婚宦; 結婚與作官
●工夫; 或作功夫 謂參禪也
●因循; 一踏襲 隨順舊習而不改 二猶豫不決 三就這麽過日子
●法語; 卽說示正法之言語 又指佛陀之敎說
●擧; 擧起公案也 但此爲擧起公案而記載時所用之詞 在座上正唱其公案時 但言記得
●雲門趙州放下著須彌山; 五燈會元四新興嚴陽 初參趙州 問 一物不將來時如何 州曰 放下著 師曰 旣是一物不將來 放下箇甚麽 州曰 放不下 擔取去 師於言下大悟 從容錄第十九則雲門須彌 僧問雲門 不起一念還有過也無 門云 須彌山 ◆雲門; 文偃(864-949)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911)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918)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923)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948)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966)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眞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趙州; 從諗(778-897) 唐代僧 曹州郝鄕(一說靑州臨淄)人 俗姓郝 法號從諗 幼年於曹州扈通院(一說靑州龍興院)出家 受具足戒前 卽往池陽參南泉普願 南泉深器之 復往嵩山琉璃壇受戒 尋返南泉 依止二十年 其後 歷參黃檗 寶壽 鹽官 夾山 五臺等諸大德 八十歲時 衆請住趙州城東觀音院 四十年間 大揚禪風 師夙居北地 振南宗禪 其玄言法語遍布天下 世稱趙州古佛 昭宗乾寧四年示寂 壽一百二十 敕諡眞際大師 著有眞際大師語錄三卷 [傳燈錄十 宋高僧傳十一 聯燈會要六 五燈會元四 佛祖歷代通載十七] ◆放下著; 謂拋下手中之物 又拋棄一切邪念妄執 著 助詞 ◆須彌山; <梵> sumeru 又作蘇迷盧山 須彌盧山 須彌留山 修迷樓山 略作彌樓山 此云妙高山 好光山 好高山 善高山 善積山 妙光山 安明由山 原爲印度神話中之山名 佛敎之宇宙觀沿用之 謂其爲聳立於一小世界中央之高山 以此山爲中心 周圍有八山八海環繞 而形成一世界(須彌世界) [雜阿含經十六 大毘婆沙論六十九 大智度論九 華嚴經疏十七]
●兩則; 祖庭事苑七 一則 宗門因緣不言一節一段 而言一則者 蓋則以制字 从貝从刀 貝 人所寶也 刀 人所利也 所發之語 若刀之制物 以有則也 故人皆寶之 以爲終身之利焉 是知謂一則者 不無深意也
●因緣; 禪家把機語或示機應機的行爲動作等 稱爲因緣 意同公案
●擧覺; 祖庭事苑一 擧覺 當作搉 博雅云 掦搉 都凡也 搉音角
●入處; 悟入的端緖
●老婆心; 老婆者 稱慈悲之語 取親切叮嚀之義
●私家; 一古代特指大夫以下的家 二私人家裏 與王朝公家相對﹐泛指私人家室 亦指私人住宅
●塵緣; 指色聲香味觸法六塵 因六塵乃心之所緣 能染汚心性 故稱塵緣
●敗闕; 失敗缺陷之義 又受挫 挫敗
●呈似; 示與 呈 示也 見也 似 相當于與
●委曲; 仔細之事情或曲折 委 曲也 曲 委曲 周全 普遍
●本地; 指人的本心本性
●至扣; 至極扣首 [大慧書栲栳珠]
증시랑(曾侍郞)〈天游〉에게 답하다○〈問書 附〉
개(開; 曾開)가 지난날(頃; 往昔) 장사(長沙)에 있으면서 원오노사(圜悟老師)의 서(書)를 얻었습니다. 일컫되 공(公; 대혜를 가리킴)을 만세(晚歲)에 상종(相從)했거니와 소득(所得)이 심(甚)히 이 기위(奇偉)하다. 재삼(再三) 이를 사념하매(念之) 지금(至今; 今) 8년입니다. 늘 한탄함은 서여(緒餘)를 친문(親聞)함을 얻지(獲) 못했음이니 오직 간절히 경앙(景仰)합니다. 개(開)가 유년(幼年)으로부터 발심하여 지식(知識)을 참례(參禮)하며 차사(此事)를 구문(扣問)했고 약관(弱冠)의 후엔 곧 혼환(婚宦)에 부리는(役) 바가 되어 공부(工夫)를 씀이 불순(不純)했습니다. 인순(因循)하며 지금(至今; 今) 늙었거늘 듣는 바가 있지 않아 늘 스스로 괴탄(愧歎; 慚愧하며 한탄)합니다. 그러하여 입지(立志)하고 발원(發願)함은 실로 얕디얕은(淺淺) 지견의 사이(間; 저본에 問으로 지었음)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깨치지 못함으로 삼으면 곧 그만(已)이지만 깨친다면 곧 모름지기 고인(古人)의 친증처(親證處)에 직도(直到)해야 비로소(方) 대휴헐지지(大休歇之地)가 될 것입니다. 이 마음은 비록 일찍이 일념도 퇴굴(退屈)하지 않았으나 공부가 마침내 순일(純一)하지 못함을 자각(自覺)하니 가히 지원(志願)은 크지만 역량(力量)이 작다고 이를 만합니다. 향자(向者; 從前)에 원오노사(圜悟老師)에게 통간(痛懇; 통렬히 懇求)하자 노사가 법어(法語) 육단(六段)을 보이셨습니다. 그 초(初)는 차사(此事)를 직시(直示)하셨고 후에 운문과 조주의 방하착과 수미산(雲門趙州放下著須彌山) 양칙(兩則) 인연(因緣)을 거(擧)하여 둔공(鈍工; 둔한 공부)을 방하(放下; 下)하게 하면서 늘 스스로 거각(擧覺)하여 구구(久久; 매우 오램)하면 반드시 입처(入處)가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노파심(老婆心)이 간절함이 이와 같았습니다만 둔체(鈍滯)가 너무 심함(太甚)을 그 어찌하겠습니까(其奈). 지금(只今) 다행히 사가(私家)에서 진연(塵緣)을 모두(都) 마치고(畢) 한거(閑居)하면서 타사(他事)가 없으니 바로(政; 正과 통함) 통렬히 스스로 편책(鞭策)하면서 초지(初志)에 보상(補償; 償)해야 함에 있습니다만 단지(第) 한탄함은 친자(親炙; 친히 가르침을 받음)하며 교회(敎誨)함을 얻지 못해 일생에 패궐(敗闕)함입니다. 이미(已; 저본에 己로 지었음) 하나하나 정사(呈似)했으니 반드시 능히 이 마음을 통조(洞照; 환히 비추다)하고 위곡(委曲)히 제경(提警; 提醒. 警戒)하시기를 바랍니다(望). 일용(日用)하면서 마땅히 어떻게 공부를 지어야 서기(庶幾; 거의) 타도(他途)에 건너지 않고 지름길(徑)로 본지(本地)와 상계(相契; 서로 계합)합니까. 이와 같은 설화(說話)도 패궐(敗闕)이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바야흐로 투성(投誠)함은 스스로 은도(隱逃)하기 어려워서이니 참으로(良) 가히 근심하는(愍) 연고입니다. 지구(至扣)합니다.
●侍郞; 벼슬 이름. 진한대(秦漢代)에 낭중령의 속관(屬官)이 되어 궁문사(宮門事)를 장악했음. 당대(唐代)에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이 되었으며 후대에 6부(府)의 차관이 되었음.
●天游; 송대 양기파거사 증개(曾開)의 자가 천유(天游)며 벼슬이 내한시랑이었음. 오래 원오를 참했고 아울러 대혜종고의 문에 왕래했음. 소흥 21년(1151) 불해혜원(佛海慧遠; 원오극근을 이었음)이 삼구 광효에 보임(補任)하자 증개가 가서 참알했고 언하에 오지(悟旨)했고 인증을 얻었음 [오등엄통20].
●圜悟; 또 원오(圓悟)로 지음. 극근(克勤; 1063-1135)을 가리킴. 또 극근(克懃)으로 지음. 송대 양기파승. 사천 숭녕(崇寧) 사람이며 속성은 낙이며 자는 무착. 어릴 적에 묘적원에서 자성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성도(成都)에서 원명에게 의지해 경론을 학습했음. 후에 오조산에 이르러 법연(法演)을 참알해 그의 인증을 받았음. 불감혜근(佛鑑慧懃)ㆍ불안청원(佛眼淸遠)과 더불어 이름이 가지런해 세상에 연문(演門; 法演門下)의 이근일원(二勤一遠)의 칭호가 있으며 총림의 삼걸(三傑)이란 명예를 입었음. 숭녕(1102-1106) 중 성도 소각사(昭覺寺)에서 개법했음. 정화 초년(1111) 형주에 이르러 당세(當世)의 명사(名士)인 장무진을 예알해 그와 더불어 화엄의 요지(要旨) 및 선문의 종취(宗趣)를 담론했음. 다시 예주자사의 청을 받아 협산의 영천선원에 주지하다가 다시 도림으로 이사했음. 때에 추밀(樞密) 등자상의 주청(奏請)으로 인해 자복(紫服)과 및 불과선사(佛果禪師)란 호를 칙령으로 주었음. 정화(1111-1117) 중에 조칙(詔勅)을 받들어 금릉의 장산(蔣山)으로 이주했고 다음에 천녕의 만수(萬壽)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음. 후에 금산에 거주했는데 고종이 양주에 거둥했을 때 그를 불러 입대(入對. 궁에 들어가 마주함)했으며 원오(圜悟)란 호를 주었으니 세칭이 원오극근(圜悟克勤)임. 후에 성도 소각사로 돌아갔으며 소흥 5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3이며 시호는 진각선사(眞覺禪師). 제자에 대혜종고ㆍ호구소륭 등의 선문의 용상(龍象)이 있음. 일찍이 협산의 벽암(碧巖)에서 설두중현의 송고(頌古) 100칙을 모아 벽암록 10권을 편성했는데 세칭이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임. 이 밖에 원오불과선사어록 20권이 있음 [대혜보각선사년보. 승보정속전4. 가태보등록11. 불조역대통재30. 석씨계고략4].
●緒餘; 실을 뽑은 후 잠견상(蠶繭上)에 남아 있는 잔사(殘絲)니 가차(假借)하여 사물의 잔여(殘餘) 혹 주체(主體)의 밖, 잉여의 것을 가리킴.
●景仰; 경(景)은 모(慕)임. 앙(仰)임.
●知識; 붕우의 다른 이름이니 지인(知人)이라고 말함과 같음. 내가 그의 심식과 그의 형모(形貌)를 앎임. 또 내가 아는 바의 사람이니 다지박식(多知博識)의 뜻이 아님. 여러 경의 처음에 있는, 모두 이는 대아라한이며 대중이 지식(知識)하는 바이다 함은 곧 바로 사람들이 소지(所知)함을 말함임. 그 사람이 선하면 선우와 선지식이 되고 악하면 곧 악우와 악지식이 됨. 설법하여 나를 선처(善處)로 인도하는 자는 이 선우인지라 고로 가로되 선지식이며 또 단운(單云)하되 지식임.
●此事; 종문의 일대사를 가리킴. 종문(宗門)의 일대사란 것은 교가(敎家)의 설에 비류(類比)하지 못하나니 단지 자기의 본분사를 가리켜 일대사라고 말함. 또 사람의 생사를 대사(大事)가 된다고 일컬음. 선도(善導; 唐代僧)의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에 가로되 세상의 대사에 생사를 초월할 게 없나니 한숨이 돌아오지 못하면 곧 후생에 속하고 한 생각이 만약 어긋나면 곧 윤회에 떨어진다. ▲법화경1.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나니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해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연고로 세상에 출현함인가, 제불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 청정을 얻게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자(示)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의 도에 들게(入)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한다.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하다. 출생(出生)하되 온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생대(生大)라 하고 죽어서 가는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사대(死大)라 한다. 단지 이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는 곧 이 참선학도(參禪學道)의 후금(喉襟; 喉는 목구멍 후. 襟은 가슴 금)이며 성불작조(成佛作祖)의 관할(管轄; 管은 열쇠. 轄은 빗장. 쐐기)이다. 삼세여래와 항사제불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며 세간에 출현함은 대개 이 생사 일대사(一大事)의 본원(本源) 때문이며 서천사칠(西天四七)과 당토이삼(唐土二三)과 이지(以至; 내지) 천하의 노화상이 출몰권서(出沒卷舒)하고 역행순화(逆行順化)함도 또한 이 일대사의 본원 때문이다.
●扣問; 순문(詢問). 가르침을 청함.
●弱冠; 조정사원6. 약관(弱冠) 음이 관이니 관속(冠束)이다. 남자 20을 가로되 약관이다. ▲선림보훈음의. 약관 옛 사람은 20세에 비로소 관(冠)을 썼다. 여기의 십오륙은 미관(未冠)의 호칭이다.
●婚宦; 결혼과 작관(作官; 관리가 됨).
●工夫; 혹 공부(功夫)로 지음. 참선을 말함.
●因循; 1. 답습이니 구습(舊習)을 수순(隨順)하며 고치지 않음. 2. 유예하며 결정하지 못함. 3. 그대로 이렇게 일자(日子)를 지냄.
●法語; 곧 정법의 언어를 설해 보임. 또 불타의 교설(敎說)를 가리킴.
●雲門趙州放下著須彌山; 오등회원4 신흥엄양. 처음 조주를 참방해 묻되 한 물건(一物)도 가져오지 않은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가 가로되 방하착(放下著)하라. 스님이 가로되 이미 이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거늘 이 무엇을 방하하라 하십니까. 조주가 가로되 놓아 내리지 못하겠거든 짊어지고 가거라.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종용록 제19칙 운문수미(雲門須彌). 중이 운문에게 묻되 일념도 일으키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수미산(須彌山)이다. ◆雲門; 문언(文偃; 864-949)이니 당말(唐末) 오대승(五代僧).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 가흥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張)이며 법명은 문언(文偃)임.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절강성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黃檗希運의 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3년을 의지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을 받았음. 후에 제방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하였고 명성이 점차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 원년(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가 되었음. 정명 4년(918) 여민이 시적하자 스님이 그 법석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 원년(923) 운문산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 원년(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2년 4월 10일에 표(表)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6이며 승랍은 66. 북송 건덕 4년(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이 운문문언(雲門文偃)임.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 3권과 어록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고존숙어록18. 전등록19. 선림승보전2. 석씨계고략3. 석씨의년록5]. ◆趙州; 종심(從諗; 778-897)이니 당대승. 조주(曹州) 학향(郝鄕; 일설엔 청주 임치)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학(郝)이며 법호(法號)는 종심(從諗). 어린 나이에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 일설엔 靑州 龍興院)에서 출가하였음. 구족계를 받기 전에 곧 지양(池陽)으로 가서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參謁)했으며 남천이 깊이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음.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으로 가서 수계하고는 이윽고 남천으로 돌아와 의지하기가 20년이었음. 그 후 황벽(黃檗)ㆍ보수(寶壽)ㆍ염관(鹽官)ㆍ협산(夾山)ㆍ오대(五臺) 등의 여러 대덕을 역참(歷參; 다니면서 참알)하였음. 80세 때 대중이 청하여 조주성(趙州城) 동쪽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40년 간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음. 스님이 일찍 북지(北地)에 거주하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振作)하였으며 그 현언(玄言)과 법어가 천하에 두루 분포하였음. 세칭 조주고불(趙州古佛)임.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120.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며 저서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 3권이 있음 [전등록10. 송고승전11. 연등회요6. 오등회원4. 불조역대통재17]. ◆放下著; 이르자면 수중의 물건을 던져 떨어뜨림이며 또 일체의 사념(邪念)과 망집(妄執)을 포기함임. 착(著)은 조사. ◆須彌山; <범> sumeru. 또 소미로산(蘇迷盧山)ㆍ수미로산(須彌盧山)ㆍ수미류산(須彌留山)ㆍ수미루산(修迷樓山)으로 지으며 간략히 미루산(彌樓山)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묘고산(妙高山)ㆍ호광산(好光山)ㆍ호고산(好高山)ㆍ선고산(善高山)ㆍ선적산(善積山)ㆍ묘광산(妙光山)ㆍ안명유산(安明由山)임. 원래는 인도의 신화 중의 산 이름이 되는데 불교의 우주관(宇宙觀)에서 이를 따라서 썼음. 이르자면 그것은 1소세계(一小世界) 중앙에 용립(聳立; 높이 솟아 섰음)한 높은 산임. 이 산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에 8산8해(八山八海)가 고리처럼 둘러서 1세계(世界; 須彌世界)를 형성함 [잡아함경16. 대비바사론69. 대지도론9 화엄경소17].
●兩則; 조정사원7. 일칙(一則) 종문의 인연을 1절(節)이나 1단(段)이라고 말하지 않고 1칙(則)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개 칙(則)은 제자(制字)가 패(貝)를 좇고 도(刀)를 좇기 때문임. 패(貝)는 사람이 보배로 여기는 것이며 도(刀)는 사람에게 이익되는 것이니 발하는 바의 말이 도(刀)가 물건을 만듦과 같아서 법칙이 있기 때문임. 고로 사람들이 다 이를 보배로 여겨 종신(終身)의 이익을 삼음. 이로 알지니 1칙이라고 이르는 것이 깊은 뜻이 없지 않음.
●因緣; 선가에선 기어(機語)나 혹은 시기응기(示機應機)의 행위동작(行爲動作) 등을 잡아서 인연이라 호칭함. 뜻이 공안(公案)과 같음.
●擧; 공안을 들어 일으킴. 단지 이것은 공안을 들어 일으켜 기재할 때 쓰이는 바의 말이 됨. 좌상(座上)에 있으면서 바로 그 공안을 제창할 때는 다만 기득(記得)컨대 라고 말함.
●擧覺; 조정사원1. 거각(擧覺) 마땅히 각(搉; 敲擊)으로 지어야 함. 박아에 이르되 양각(掦搉) 도범(都凡)이다 했음. 각(搉)은 음이 각임.
●入處; 오입(悟入)의 단서(端緖).
●老婆心; 노파란 것은 자비의 말을 일컬음이니 친절하고 정녕(叮嚀)함의 뜻을 취함.
●私家; 1. 고대(古代)에 특히 대부(大夫) 이하의 집을 가리켰음. 2. 사인(私人)의 가리(家裏)니 왕조(王朝)ㆍ공가(公家)와 상대하여 널리 사인의 가실(家室)을 가리킴. 또한 사인의 주택읅 가리킴.
●塵緣;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6진을 가라킴. 6진은 곧 마음의 소연(所緣)이며 능히 심성을 염오하기 때문에 고로 명칭이 진연임.
●敗闕; 실패결함(失敗缺陷)의 뜻. 또 수좌(受挫; 좌절을 받음). 좌패(挫敗; 꺾여 패함).
●呈似; 보여줌. 정(呈)은 시(示)임. 현(見)임. 사(似)는 여(與)에 상당함.
●委曲; 자세한 사정 혹 곡절. 위(委)는 곡(曲)이며 곡(曲)은 위곡(委曲)이니 주전(周全)ㆍ보편(普遍).
●本地; 사람의 본심ㆍ본성을 가리킴.
●至扣; 지극으로 구수(扣首; 叩首)함 [대혜서고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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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주역(書狀註譯)
2025. 02. 번역필. 594쪽 本註와 補註 총 1078 目. 110권 초판.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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