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
公處身富貴 而不爲富貴所折困 非夙植般若種智 焉能如是 但恐中忘此意 爲利根聰明所障 以有所得心在前頓放 故不能於古人直截徑要處一刀兩段直下休歇 此病非獨賢士大夫 久參衲子亦然 多不肯退步就省力處做工夫 只以聰明意識計較思量 向外馳求 乍聞知識向聰明意識思量計較外示以本分草料 多是當面蹉過 將謂從上古德 有實法與人 如趙州放下著雲門須彌山之類是也 巖頭曰 却物爲上 逐物爲下 又曰 大統綱宗 要須識句 甚麽是句 百不思時喚作正句 亦云居頂 亦云得住 亦云歷歷 亦云惺惺 亦云恁麽時 將恁麽時等破一切是非 纔恁麽便不恁麽 是句亦剗 非句亦剗 如一團火相似 觸著便燒 有甚麽向傍處 今時士大夫 多以思量計較爲窟宅 聞恁麽說話 便道莫落空否 喻似舟未翻先自跳下水去 此深可憐愍 近至江西見呂居仁 居仁留心此段因緣甚久 亦深有此病 渠豈不是聰明 宗杲嘗問之曰 公怕落空 能知怕者是空耶 是不空耶 試道看 渠佇思欲計較祗對 當時便與一喝 至今茫然 討巴鼻不著 此蓋以求悟證之心 在前頓放 自作障難 非干別事 公試如此做工夫 日久月深 自然築著磕著 若欲將心待悟 將心待休歇 從脚下參 到彌勒下生 亦不能得悟 亦不能得休歇 轉加迷悶耳 平田和尙曰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來 莫存知解 又古德曰 此事不可以有心求 不可以無心得 不可以語言造 不可以寂默通 此是第一等入泥入水 老婆說話 往往參禪人 只恁麽念過 殊不子細看是甚道理 若是箇有筋骨底 聊聞擧著 直下將金剛王寶劍 一截截斷此四路葛藤 則生死路頭亦斷 凡聖路頭亦斷 計較思量亦斷 得失是非亦斷 當人脚跟下 淨裸裸赤灑灑沒可把 豈不快哉 豈不暢哉 不見昔日灌谿和尙初參臨濟 濟見來便下繩床 驀胸擒住 灌谿便云 領領 濟知其已徹 卽便推出 更無言句與之商量 當恁麽時 灌谿如何思量計較祗對得 古來幸有如此牓樣 如今人總不將爲事 只爲麁心 灌谿當初若有一點待悟待證待休歇底心在前時 莫道被擒住便悟 便是縛却手脚 遶四天下拕一遭 也不能得悟 也不能得休歇 尋常計較安排底是識情 隨生死遷流底亦是識情 怕怖慞惶底亦是識情 而今參學之人 不知是病 只管在裏許 頭出頭沒 敎中所謂隨識而行不隨智 以故昧却本地風光本來面目 若或一時放得下 百不思量計較 忽然失脚蹋著鼻孔 卽此識情 便是眞空妙智 更無別智可得 若別有所得 別有所證 則又却不是也 如人迷時喚東作西 及至悟時卽西便是東 無別有東 此眞空妙智 與太虛空齊壽 只這太虛空中 還有一物礙得他否 雖不受一物礙 而不妨諸物於空中往來 此眞空妙智亦然 生死凡聖垢染 著一點不得 雖著不得 而不礙生死凡聖於中往來 如此信得及見得徹 方是箇出生入死得大自在底漢 始與趙州放下著雲門須彌山 有少分相應 若信不及放不下 却請擔取一座須彌山 到處行脚 遇明眼人 分明擧似 一笑
●折困; 折挫困辱
●頓放; 頓亦放義
●士大夫; 舊時指官吏或較有聲望地位的知識人
●久參; 謂長久參習
●衲子; 指禪僧 又作衲者 衲僧
●本分草料; 草料 牛馬之飼料也 其味淡淡無味 喩天眞本分也 禪林卽指師家接學人手段峻嚴 日本無著道忠云 本分者 本來當己之分量也 草料者 馬所啖物料 其一日所啖豆麥等當已定分 是馬之本分草料也
●蹉過; 同錯過 蹉 跌也
●古德; 乃對古昔有德高僧之尊稱 或尊稱古佛
●巖頭; 全豁(828-887) 又作全奯 唐代僧 泉州(今屬福建)人 俗姓柯 出家於靈泉寺 受具足戒於長安西明寺 與雪峰義存 欽山文邃同修互勉 竝參訪仰山慧寂 又參學於德山宣鑑 承其法嗣 出居鄂州(今湖北武昌)巖頭院 大振宗風 故又稱巖頭全豁 唐光啓三年四月 賊亂 臨刃仍泰然自若 大喝一聲而終 壽六十 諡號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呂居仁; 宋代人 姓呂 名本中 字居仁 問道於妙喜杲 官至翰林 [禪林寶訓音義]
●渠; 一他 第三人稱代詞 二指本來面目 眞如法身 此指一
●祗對; 回答 應對 同祇對
●喝; 許葛切 (一)叱咤之聲音 唐代以後 禪師常以大喝破除學人之謬見邪執 或發於言語思慮所不及之際 按古尊宿語錄一 百丈曾受馬祖大寂禪師一喝 或卽爲用喝之起源 按臨濟錄 臨濟之喝有四種作用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截破名相言句之執著拘礙) 有時一喝如踞地金毛獅子(破小機小見) 有時一喝如探竿影草(驗定學人或勘辨師家) 有時一喝則不作一喝用(指收歸一切 具有各種作用而未作用之向上一喝) 此卽所謂臨濟四喝 但若不知其用而喝 則稱爲胡喝亂喝 此種應機接物之法 其後成爲臨濟宗風 [宗門統要續集九臨濟條 人天眼目三] (二)卽唱之意 禪林中用之 喝參卽告知自己已來到 喝散卽宣告解散大衆 喝火指就寢前點檢各寮 以防火災
●巴鼻; 又作把鼻 巴臂 把臂 巴卽把 鼻指牛鼻 卽穿繩於牛鼻 以牽制之 其後轉爲可把持之處 猶言根據把柄 又領悟禪法的著手處 悟入處 亦指禪機機鋒 ▲類書纂要十二 沒巴臂 作事無根據也
●築著磕著; 同𡎺著磕著 (突然地)撞著碰著 觸此觸彼 事事上物物上 契當本分也 築 刺也 廣韻 磕 苦盍切 又苦蓋切 說文 磕 石聲 正字通 磕 兩石相擊聲
●平田; 普岸(770-843) 唐代僧 俗姓蔡 洪州(今江西南昌)人 少出家 於百丈山謁懷海而嗣其法 日隨衆僧施役 夜獨執燭誦經 不辭勞苦 後遊天台 宴居林下 苦行淸修 衆仰其德 建平田院以安之 [宋高僧傳二十七 傳燈錄九 祖庭事苑七]
●和尙; <梵> upādhyāya 指德高望重之出家人 又作和上 和闍 和社等 梵云鄔波馱耶 優婆陀訶 郁波第耶夜 此云親敎師 力生 近誦 ▲翻譯名義集一 和尙 或和闍 羯磨疏云 自古翻譯多雜蕃胡 胡傳天語不得聲實 故有訛僻 傳云 和尙梵本正名鄔波遮迦 傳至于闐 翻爲和尙 傳到此土 什師翻名力生
●徽猷; 美善之道 指玄妙的禪道 徽 美也 善也 猷 道也 ▲禪林疏語考證一 詩角弓曰 君子有徽猷 小人與屬 註 徽 美 猷 道也
●入泥入水; 喩指禪師苦口婆心 啓發引導學人 與拖泥帶水等語同意
●金剛王; 金剛中之最勝者云金剛王 猶言牛中之最勝者 爲牛王也 ▲楞嚴經四曰 淸淨圓滿 體性堅凝 如金剛王 常住不壞
●葛藤; 指文字言語 一如葛藤之蔓延交錯 又指公案中難以理解之語句 更轉義作問答工夫 玩弄無用之語句 稱爲閒葛藤 執著於文字言語 而不得眞義之禪 稱爲文字禪 或葛藤禪
●脚跟下; 喩指目前眼下 本人身邊 禪家認爲禪法卽在目前 卽在身邊
●淨裸裸赤灑灑; 全體裸露 空寂淸淨 是禪悟境界
●灌谿; 志閑(?-895) 唐代臨濟宗僧 俗姓史 館陶(今屬河北)人 幼年從柏巖禪師披剃受具 長參臨濟義玄 竝嗣其法 後往末山 與了然尼語 言下服膺 遂充園頭三年以報之 出住灌溪 禪侶四集 師上堂曰 我在臨濟爺爺處得半杓 末山孃孃處得半杓 共成一杓 喫了 直至如今飽不飢 有僧問如何是灌溪 答曰劈箭急 唐昭宗乾寧乙卯 五月二十九日 問侍者曰 坐死者誰 曰 僧伽 師曰 立死者誰 曰 僧會 師乃行七步 垂手而逝 [傳燈錄十二 五燈會元十一]
●臨濟; 義玄(?-867) 臨濟宗之祖 唐代曹州(河南)南華人 俗姓邢 幼負出塵之志 及落髮受具足戒後 便慕禪宗 初到江西參黃蘗希運 又禮謁高安大愚 潙山靈祐等 後還黃蘗 受印可 宣宗大中八年(854) 至河北鎭州 住於臨濟院 適丁兵革 師卽棄去 太尉默君和 於城中捨宅爲寺 亦以臨濟爲額 迎師居焉 後拂衣南邁至河府 府主王常侍 延以師禮 住未幾卽來大名府興化寺 居于東堂 師無疾忽一日攝衣據坐 與三聖問答畢 寂然而逝 時唐咸通八年丁亥 孟陬月十日也 門人以師全身 建塔于大名府西北隅 勅諡慧照禪師 塔號澄靈 師設三玄三要四料簡等機法 接引徒衆 更以機鋒峭峻著名於世 別成一家 遂成臨濟宗 師接化學人 每以叱喝顯大機用 世有德山棒臨濟喝之稱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二 臨濟語錄]
●繩床; 又作坐床 坐禪床 爲繩製之座具 比丘坐臥用之
●驀胸; 驀 當 正對著
●商量; 原指商賈買賣物品時之互相議價 於禪林中 轉指學人參禪辨道時之問答審議 ▲祖庭事苑一 商量 如商賈之量度 使不失於中平 以各得其意也
●牓樣; 同榜樣 標榜也 法式也
●四天下; 四洲 古代印度人之世界觀 謂於須彌山四方 七金山與大鐵圍山間之鹹海中 有四個大洲 又稱四大部洲 四大洲 四天下 須彌四洲
●一遭; 遭 量詞 一周 轉 二次 回
●識情 同情識 俗情妄識
●慞惶; 彷徨疑惧貌
●裏許; 內裏 裏邊 許 表示處所
●本地風光; 喩指人的本心本性 亦卽衆生本自具備的佛性
●鼻孔; 喩指人人自有的 平常自然的本來面目 卽本性佛性 又指修行佛道者最重要之物 意卽佛道之根本 與頂門眼睛 爲同類用語
●太虛空; 謂浩浩宇宙之虛空
●行脚; 又作游方 遊方 遊行 與禪宗參禪學道之雲水同義
●明眼人; 比喩有見識的人
●擧似; 擧示 擧說言句告訴某人 似 相當于與 向
우(又)
공(公)은 부귀(富貴)에 처신(處身)하면서 부귀에 절곤(折困)되는 바가 되지 않으니 예로부터(夙) 반야종지(般若種智)를 심지 않았다면 어찌(焉) 능히 이와 같겠습니까. 단지 중간에 이 뜻을 망각하고 이근(利根)의 총명(聰明)이 장애하는 바가 되어 소득이 있는 마음을 앞에 돈방(頓放; 放置)해 두는지라 고로 능히 고인의 직절(直截)의 경요처(徑要處; 要領處)에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직하(直下; 즉시. 當下)에 휴헐(休歇)하지 못할까 염려합니다(恐). 이 병(病)은 현사대부(賢士大夫) 뿐만(獨) 아니라 구참(久參)의 납자(衲子)도 또한 그러합니다. 다분히 퇴보(退步)하여 생력처(省力處)로 나아가(就) 공부를 지음을 수긍하지 않고 다만 총명한 의식(意識)과 계교(計較)하는 사량(思量)으로써 밖을 향해 치구(馳求)합니다. 지식(知識)이 총명한 의식과 사량하는 계교 밖을 향해 본분초료(本分草料)를 보임을 잠시 들으면(乍聞) 다분히 이 당면(當面)에서 차과(蹉過)하고 다만(將) 이르기를 종상(從上; 從前. 以前)의 고덕(古德)이 실법(實法)이 있어 사람에게 준다 하나니 조주(趙州)의 방하착(放下著)과 운문(雲門)의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종류가 이것입니다. 암두(巖頭)가 가로되 사물을 물리침(却)은 상(上)이 되고 사물을 뒤쫓음(逐)은 하(下)가 된다. 우왈(又曰) 강종(綱宗; 선종 綱要)을 대통(大統; 크게 거느림)하려면 요컨대 꼭 구(句)를 알아야 하나니 무엇이(甚麽) 이 구(句)인가. 모두(百) 사유하지 않을 때 정구(正句)라고 불러 지으며 또 이르되 거정(居頂)이며 또 이르되 득주(得住)며 또 이르되 역력(歷歷)이며 또 이르되 성성(惺惺)이며 또 이르되 임마시(恁麽時; 이러한 때)다. 임마시(恁麽時)를 가지고 일체의 시비를 가지런히(等) 깨뜨리지만 겨우 이러하면(恁麽) 바로(便) 이러하지 않다. 시구(是句)도 또한 베고(剗) 비구(非句)도 또한 베나니 마치 한 덩이(一團)의 불과 상사(相似)하여 촉착(觸著)하면 바로 타거늘 무슨 향방(向傍; 곁으로 향해 감)할 곳이 있으리오(以上 巖頭語). 금시(今時)의 사대부(士大夫)가 다분히 사량(思量)과 계교(計較)로써 굴택(窟宅)을 삼나니 이러한(恁麽) 설화(說話)를 들으면 바로 말하되 낙공(落空)함이 아닐까 하거니와 비유컨대 배가 뒤집히지 아니한 전에 먼저 스스로 뛰어 물에 떨어져(下) 감과 흡사하다 하리니 이것이 깊이 가히 연민(憐愍)스럽습니다. 요즘(近) 강서(江西)에 이르러 여거인(呂居仁)을 보았는데 거인(居仁)은 차단(此段)의 인연에 유심(留心)한 지 심히 오래되었지만 또한 깊이 이 병이 있습니다. 거(渠; 그)가 어찌 이 총명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종고(宗杲; 대혜)가 일찍이 그(之)에게 물어 가로되 공(公)이 낙공(落空)을 두려워하거니와(怕) 두려워함(怕)을 능히 아는 자는 이 공(空)인가, 이 불공(不空)인가.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거(渠)가 저사(佇思; 우두커니 서서 생각함)하며 계교(計較)하여 지대(祗對)하려고 하자 당시에 바로 1할(喝)을 주었는데 지금(至今)토록 망연(茫然)하여 파비를 찾지 못했습니다(討巴鼻不著). 이것은 대개(大蓋; 蓋) 오증(悟證)을 구하는 마음을 앞에 돈방(頓放)하여 두어 스스로 장난(障難)을 지음인지라 별사(別事)에 상간(相干; 干)되지 않습니다. 공(公)이 시험 삼아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 일구월심(日久月深)한다면 자연히 축착개착(築著磕著)할 것입니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마음을 가지고 휴헐(休歇)하기를 기다리려고 한다면 각하(脚下)로 좇아 참(參)해 미륵이 하생(下生)함에 이르더라도 또한 능히 득오(得悟)하지 못하며 또한 능히 휴헐(休歇)을 얻지 못하고 더욱(轉) 미민(迷悶; 昏迷)을 더할 뿐입니다. 평전(平田) 화상(和尙)이 가로되 신광(神光)이 불매(不昧)하여/ 만고(萬古)에 휘유(徽猷)니/ 이 문에 들어왔거든/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또 고덕(古德)이 가로되 차사(此事)는 가히 유심(有心)으로써 구하지 못하고 가히 무심(無心)으로써 얻지 못하고 가히 어언(語言)으로써 짓지(造) 못하고 가히 적묵(寂默)으로써 통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 제일등(第一等)의 입니입수(入泥入水)하는 노파(老婆; 노파심)의 설화(說話)입니다. 왕왕(往往) 참선인(參禪人)이 다만 이렇게(恁麽) 사념하여 지나가고 특수하게, 자세(子細)히 이 무슨 도리인지 간(看)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것(是箇; 箇는 조사)이 근골(筋骨)이 있는 것(底; 的)이라면 애오라지 거착(擧著)함을 들으면 직하(直下)에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을 가지고 한 번 자르매(截) 이 사로(四路; 有心ㆍ無心ㆍ語言ㆍ寂默)의 갈등(葛藤)을 절단하리니 곧 생사로두(生死路頭; 頭는 조사)도 또한 끊어지고 범성로두(凡聖路頭)도 또한 끊어지고 계교사량(計較思量)도 또한 끊어지고 득실시비(得失是非)도 또한 끊어지고 당인(當人)의 발꿈치 아래(脚跟下)가 정나라적쇄쇄(淨裸裸赤灑灑)하여 가히 잡을 데가 없으리니 어찌 쾌재(快哉)가 아니며 어찌 창재(暢哉; 화창함. 통쾌함)가 아니겠습니까. 보지 못합니까, 석일(昔日)에 관계화상(灌谿和尙)이 임제(臨濟)를 초참(初參)하자 임제가 오는 것을 보고 바로 승상(繩床)에서 내려와 가슴을(驀胸) 금주(擒住; 꼼짝 못하게 잡아 머물게 함)하자 관계가 바로 이르되 알았습니다(領), 알았습니다(領). 임제가, 그가 이미 통철(洞徹; 徹)했음을 알고 곧바로 밀어내었고(推出) 다시 언구를 그(之)와 더불어 상량(商量)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해 관계가 어떻게(如何) 사량계교(思量計較)하여 지대(祗對)함을 얻겠습니까. 고래(古來)에 다행히 이와 같은 방양(牓樣)이 있었지만 여금의 사람은 모두(總) 가져다 일을 삼지 않음은 다만 추심(麁心; 거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당초(當初)에 만약 일점(一點)의 대오(待悟)ㆍ대증(待證)ㆍ대휴헐(待休歇)하는 마음이 있어 앞에 두었을 때면 금주(擒住)를 입으매 바로 깨침을 말하지 말지니 바로 이는 수각(手脚)을 묶어버리고 사천하(四天下)를 돌면서(遶) 일조(一遭; 1회) 끌더라도(拕) 또 능히 깨침을 얻지 못하고 또 능히 휴헐(休歇)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상(尋常)에 계교(計較)하고 안배(安排)하는 것(底)은 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천류(遷流)하는 것도 역시(亦是) 식정이며 파포(怕怖)하고 장황(慞惶)하는 것도 역시 식정입니다. 이금(而今; 여금)에 참학(參學; 參禪學道)하는 사람이 이 병(病)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관대(管帶)하여 이허(裏許)에 있으면서 두출두몰(頭出頭沒)하나니 교중(敎中; 經敎中)에 이른 바 식(識)을 따르며 행하고 지(智)를 따르지 않는다입니다. 연고로써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매각(昧却)하거니와 약혹(若或; 만일) 일시에 놓아서 내림을 얻어 모두(百) 사량계교(思量計較)하지 않으면 홀연히 실각(失脚)하면서 비공(鼻孔)을 답착(蹋著)하리니 곧 이 식정(識情)이 바로 이 진공묘지(眞空妙智)며 다시 별지(別智; 별다른 지)를 가히 얻음이 없습니다. 만약 달리 소득(所得)이 있고 달리 소증(所證)이 있다 하면 곧 또 도리어 이것(是)이 아닙니다. 예컨대(如; 例擧를 표시) 사람이 미시(迷時)에 동(東)을 일러 서(西)로 짓다가 오시(悟時)에 이르러선(及至) 곧 서(西)가 바로 이 동(東)이며 별다른 동(東)이 없습니다. 이 진공묘지는 태허공(太虛空)과 제등(齊等; 齊)한 수명(壽命; 壽)이거니와 다만 이 태허공 가운데 도리어 일물(一物)이 그를 장애함을 얻음이 있습니까. 비록 일물의 장애를 받지 않지만 제물(諸物)이 공중에 왕래함을 방애(妨礙; 妨)하지 않습니다. 이 진공묘지도 또한 그러하여 생사와 범성(凡聖)의 구염(垢染)이 일점(一點)도 붙임(著)을 얻지 못합니다. 비록 붙임을 얻지 못하지만 생사와 범성이 어중(於中)에 왕래함을 장애(障礙; 礙)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믿어 미침을 얻고 보아 사무침을 얻어야 바야흐로 시개(是箇; 箇는 조사) 출생입사(出生入死)하며 대자재(大自在)를 얻은 한(漢; 者)이며 비로소(始) 조주의 방하착과 운문의 수미산과 더불어 소분(少分) 상응함이 있습니다. 만약 믿음이 미치지 못하고 놓아 내리지 못한다면 도리어 청컨대 1좌(座; 量詞)의 수미산을 담취(擔取; 취는 조사)하고 도처(到處)에 행각(行脚)하면서 명안인(明眼人)을 만나거든 분명히 거사(擧似)하십시오. 일소(一笑)합니다.
●折困; 절좌(折挫)되고 곤욕(困辱)스러움.
●頓放; 돈(頓)도 또한 방(放)의 뜻.
●士大夫; 구시에 관리 혹 비교적 성망(聲望)과 지위가 있는 지식인을 가리켰음.
●久參; 이르자면 장구하게 참습(參習)함.
●衲子; 선승을 가리킴. 또 납자ㆍ납승으로 지음.
●本分草料; 초료(草料)는 소나 말의 사료(飼料)임. 그 맛이 담담(淡淡)하고 무미(無味)하여 천진(天眞)의 본분에 비유함. 선림에선 곧 사가가 학인을 접인하는 수단의 준엄(峻嚴)함을 가리킴. 일본의 무착도충(無著道忠)이 이르되 본분이란 것은 본래 자기에게 할당(割當)된 분량이다. 초료란 것은 말이 먹는 바의 물료(物料; 飼料)다. 그것은 하루에 먹는 바의 콩과 보리 등 자기에게 할당된 정분(定分; 定量)이니 이것이 말의 본분초료(本分草料)다.
●蹉過; 착과(錯過; 놓침)와 같음. 차(蹉)는 질(跌; 지나치다)임.
●古德; 오랜 옛날의 유덕한 고승에 대한 존칭. 혹 존칭이 고불임.
●巖頭; 전활(全豁; 828-887) 또 전활(全奯)로 지음. 당대승이며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은 가(柯). 영천사에서 출가하였고 장안의 서명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설봉의존(雪峰義存)ㆍ흠산문수(欽山文邃)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음.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을 참방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음. 출세하여 악주(鄂州; 지금의 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임. 당 광계 3년 4월에 도적이 난입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으며 대갈일성(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60이며 시호는 청엄대사(淸儼大師) [송고승전23. 조당집7. 경덕전등록16].
●呂居仁; 송대 사람. 성은 여(呂)며 이름은 본중(本中)이며 자는 거인. 묘회고(妙喜杲)에게 도를 물었고 벼슬이 한림에 이르렀음 [선림보훈음의].
●渠; 1. 타(他)니 제3인칭대사. 2. 본래면목ㆍ진여법신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祗對; 회답. 응대. 지대(祇對)와 같음.
●喝; 허갈절(許葛切; 할). (1). 질타(叱咤)의 성음(聲音)이니 당대 이후 선사들이 늘 대할(大喝)로 학인의 유견사집(謬見邪執)을 파제(破除)하거나 혹 언어와 사려가 미치지 않는 바의 제애(際涯)를 계발(啓發)했음. 고존숙어록1을 안험컨대 백장이 일찍이 마조대적선사(馬祖大寂禪師)의 1할(喝)을 받았는데 혹 곧 용할(用喝)의 기원(起源)이 됨. 임제록을 안험컨대 임제의 할(喝)에 4종의 작용이 있으니 어떤 때의 1할(喝)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같고(名相言句의 집착과 拘礙를 截破함) 어떤 때의 1할은 거지금모사자(踞地金毛獅子)와 같고(小機小見을 타파함) 어떤 때의 1할은 탐간영초(探竿影草)와 같고(학인을 驗定하거나 혹 師家를 勘辨함) 어떤 때의 1할은 곧 부작일할용(不作一喝用; 1할의 용을 짓지 않음)이다(일체를 收歸함이니 각종 작용을 갖추고 있으되 작용하지 않는 향상의 1할을 가리킴). 이것이 소위 임제의 4할임. 다만 그 용을 알지 못하고 할하면 곧 일컬어 호할난할(胡喝亂喝)이라 함. 이런 종류의 응기접물(應機接物)의 법은 그 후에 임제종풍을 이루었음 [종문통요속집9임제조. 인천안목3]. (2). 곧 창(唱)의 뜻이니 선림 중에서 이를 씀. 할참(喝參)은 자기가 이미 내도(來到)했음을 고지함이며 할산(喝散)은 곧 대중을 해산함을 선고함이며 할화(喝火)는 취침 전 각료(各寮)를 점검하며 화재를 방지함을 가리킴.
●巴鼻; 또 파비(把鼻)ㆍ파비(巴臂)ㆍ파비(把臂)로 지음. 파(巴)는 곧 파(把)며 비(鼻)는 우비(牛鼻)를 가리킴. 곧 소의 코에 줄로 꿰어 끌면서 그것을 제지(制止)함임. 그 후 전(轉)하여 가히 파지(把持)할 곳이 되었음. 근거ㆍ파병(把柄)이라 말함과 같음. 또 선법을 영오(領悟)할 착수처ㆍ오입처(悟入處)며 또 선기(禪機)ㆍ기봉(機鋒)을 가리킴. ▲유서찬요12. 몰파비(沒巴臂) 일을 짓되 근거가 없음이다.
●築著磕著; 축착개착(𡎺著磕著)과 같음. (突然地)에서 당착팽착(撞著碰著; 부딪침)하고 촉차촉피(觸此觸彼; 여기저기 부딪침)하여 사사상(事事上) 물물상(物物上) 본분에 계당(契當; 계합)함. 축(築)은 자(刺)임. 광운 개(磕) 고합절(苦盍切; 갑)이며 또 고개절(苦蓋切; 개)이다. 설문 개(磕) 석성(石聲)이다. 정자통 개(磕) 두 돌이 서로 치는 소리다.
●平田; 보안(普岸; 770-843)이니 당대승. 속성은 채며 홍주(지금의 강서 남창) 사람. 어릴 적에 출가했으며 백장산(百丈山)에서 회해(懷海)를 알현(謁見)하고 그 법을 이었음. 낮에는 중승(衆僧)을 따라 시역(施役)하고 밤에는 홀로 촛불을 잡고 송경(誦經)하며 노고를 사양하지 않았음. 후에 천태(天台)에 노닐다가 임하(林下)에 연거(宴居)하며 고행하면서 청수(淸修)했음. 대중이 그 덕을 흠앙(欽仰)하여 평전원(平田院)을 건립해 그를 편안히 하였음 [송고승전27. 전등록9. 조정사원7].
●和尙; <범> upādhyāya. 덕이 높고 신망(信望)이 두터운 출가인을 가리킴. 또 화상(和上)ㆍ화사(和闍)ㆍ화사(和社) 등으로 지음. 범어로는 이르되 오파타야(鄔波馱耶)ㆍ우파타하(優婆陀訶)ㆍ욱파제야야(郁波第耶夜)니 여기에선 이르되 친교사(親敎師)ㆍ역생(力生)ㆍ근송(近誦)임. ▲번역명의집1. 화상(和尙) 혹은 화사(和闍)임. 갈마소(羯磨疏)에 이르되 자고로 번역이 번호(蕃胡; 蕃은 중국에서 옛적에 서방 변경의 각 소수민족과 외국에 대한 통칭. 뒤에 番으로 지었음)가 많이 섞여 호인(胡人)이 천축국 말을 전하면서 소리의 진실을 얻지 못해 고로 그릇되고 치우침이 있었다. 전(傳)에 이르되 화상의 범본(梵本)의 바른 이름은 오파자가(鄔波遮迦)이다. 전해 우전(于闐)에 이르러 화상으로 번역되었고 전하여 이 국토에 이르러선 집사(什師; 구마라집)가 번역해 역생(力生)으로 이름했다.
●徽猷; 미선(美善)의 도니 현묘한 선도(禪道)를 가리킴. 휘(徽)는 미(美)며 선(善)이며 유(猷)는 도임. ▲선림소어고증1. 시 각궁(角弓)에 가로되 군자가 휘유(徽猷)가 있으면 소인이 여속(與屬; 더불어 連屬)한다. 주(註) 휘(徽)는 미(美)며 유(猷)는 도(道)다.
●入泥入水; 선사가 고구파심(苦口婆心)으로 학인을 계발하고 인도함을 비유로 가리킴. 타니대수(拖泥帶水) 등의 말과 같은 뜻.
●金剛王; 금강 중의 최승자를 이르되 금강왕이니 소 중의 최승자를 임컬어 우왕이라 함과 같음. ▲릉엄경4에 가로되 청정하고 원만하며 체성이 견응(堅凝)함이 금강왕(金剛王)과 같아서 상주하고 파괴되지 않는다.
●葛藤; 문자와 언어를 가리킴이니 갈등의, 만연하여 교착(交錯)함과 똑 같음. 또 공안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를 가리킴. 다시 전의(轉義)하여 문답의 공부가 됨. 무용한 어구를 완롱(玩弄)함을 일컬어 한갈등(閒葛藤)이라 하며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참 뜻의 선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문자선, 혹은 갈등선이라 함.
●脚跟下; 목전ㆍ눈 아래ㆍ본인의 신변을 비유로 가리킴. 선가에서 인식하기를 선법은 곧 목전에 있으며 곧 신변에 있다.
●淨裸裸赤灑灑; 전체가 나로(裸露)하여 공적(空寂)하고 청정함. 이는 선오(禪悟)의 경계.
●灌谿; 지한(志閑; ?-895)이니 당대 임제종승. 속성은 사며 관도(지금 하북에 속함) 사람. 유년에 백암선사를 좇아 피체(披剃)하고 수구(受具)했음. 장성하자 임제의현(臨濟義玄)을 참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말산(末山)에 가서 요연니(了然尼)와 논란(論難; 語)하고 언하에 복응(服膺)했고 드디어 3년 동안 원두(園頭)를 맡아(充) 보답했음. 출세해 관계에 주(住)하자 선려(禪侶)가 사방에서 모였음. 스님이 상당해 가로되 나는 임제 야야(爺爺)의 처소에 있으면서 반 구기(杓)를 얻었고 말산 양양(孃孃)의 처소에서 반 구기를 얻어 공히 한 구기를 이루었다. 먹고 나서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배불러 주리지 않는다.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관계(灌溪)입니까. 답해 가로되 벽전급(劈箭急)이다. 당 소종 건녕 을묘 5월 29일 시자에게 물어 가로되 좌사(坐死)한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가(僧伽)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입사(立死)한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회(僧會)입니다. 스님이 이에 7보(步)를 행하고는 손을 내리고 서거했음 [전등록12. 오등회원11].
●臨濟; 의현(義玄; ?-867)이니 임제종의 개조(開祖). 당대 조주(曹州; 하남) 남화(南華)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형(邢).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졌으며(負) 그리고 낙발(落髮)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선종을 흠모했음. 처음엔 강서(江西)에 이르러 황벽희운(黃蘗希運; 百丈懷海의 法嗣)을 참알(參謁)하고 또 고안대우(高安大愚; 歸宗智常의 法嗣)ㆍ위산영우(潙山靈祐; 百丈懷海의 法嗣) 등을 예알(禮謁)했다가 뒤에 황벽으로 돌아가 인가(印可)를 받았음. 선종(宣宗) 대중 8년(854) 하북의 진주(鎭州)에 이르러 임제원에 거주했는데 마침 병혁(兵革; 전쟁)을 당해 스님이 곧 버리고 떠났음. 태위(太尉) 묵군화(默君和)가 성 안에 집을 희사(喜捨)해 절을 만들고 또한 임제로써 편액(扁額)을 삼았으며 스님을 영접해 거처케 했음. 후에 옷을 떨치고 남쪽으로 떠나 하부(河府)에 이르자 부주(府主)인 왕상시(王常侍)가 스승의 예로써 연청(延請)했음.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대명부(大名府)의 흥화사(興化寺)에 와서 동당(東堂)에 거처했음. 스님이 질병이 없었는데 홀연히 어느 날 옷을 거두고 자리에 기대어 삼성(三聖)과 문답을 마치고는 고요히 떠났으니 때는 당 함통 8년 정해(丁亥) 맹추월(孟陬月; 정월) 10일임. 문인들이 스님의 전신(全身)으로써 대명부(大名府) 서북 모퉁이에 탑을 세웠음. 칙시(勅諡)가 혜조선사(慧照禪師)며 탑호가 징령(澄靈)임. 스님이 3현3요(三玄三要)ㆍ사료간(四料簡) 등의 기법(機法)을 시설하여 도중(徒衆)을 접인(接引)하였음. 다시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하여 세상에 저명하며 따로 일가(一家)를 이루어 드디어 임제종을 이룸. 스님이 학인들을 접화(接化; 接引해 교화)하면서 매양 질할(叱喝)로써 큰 기용(機用)을 나타내어 세상에 덕산방(德山棒)ㆍ임제할(臨濟喝)의 칭호가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2. 임제어록].
●繩床; 또 좌상(坐床)ㆍ좌선상(坐禪床)으로 지으며 노끈으로 제작한 좌구임. 비구가 좌와(坐臥)에 이를 사용함.
●驀胸; 맥(驀)은 당(當). 정대착(正對著).
●商量; 원래 상인이 물품을 매매할 때 호상 값을 의논함을 가리킴임.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학인이 참선하거나 변도(辨道)할 때의 문답이나 심의를 가리킴. ▲조정사원1. 상량(商量) 상고(商賈; 賈는 장사 고. 장수 고)의 양탁(量度; 度은 헤아릴 탁. 잴 도)과 같이 중평(中平)을 잃지 않고 각기 그 뜻을 얻게 함.
●牓樣; 방양(榜樣)과 같음. 표방(標榜)임. 법식임.
●四天下; 4주(洲)임.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 이르기를 수미산의 사방에 7금산과 대철위산의 함해(鹹海) 중에 4개의 대주(大洲)가 있다. 또 명칭이 4대부주ㆍ4대주ㆍ4천하ㆍ수미4주.
●一遭; 조(遭)는 양사니 1. 주(周), 전(轉). 2. 차, 회.
●識情 정식(情識)과 같음. 속정(俗情)의 망식(妄識)임.
●慞惶; 방황하며 의구(疑惧; 의심하고 두려워함)하는 모양.
●裏許; 내리(內裏). 이변(裏邊). 허는 처소를 표시함.
●本地風光; 사람의 본심ㆍ본성 또 곧 중생이 스스로 구비한 불성을 비유로 가리킴.
●鼻孔; 사람마다 스스로 있는 것, 평상의 자연적인 본래면목, 곧 본성의 불성을 비유로 가리킴. 또 불도를 수행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물건을 가리킴. 뜻이 곧 불도의 근본임. 정문(頂門)ㆍ안정(眼睛; 눈동자)과 동류(同類)의 용어가 됨.
●太虛空; 이르자면 호호(浩浩; 가없이 드넓음)한 우주의 허공.
●行脚; 또 유방(游方)ㆍ유방(遊方)ㆍ유행(遊行)으로 지음. 선종의 참선학도하는 운수(雲水)와 같은 뜻.
●明眼人; 견식(見識)이 있는 사람에 비유.
●擧似; 들어 보임(擧示). 언구를 들어 설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알림. 사(似)는 주다ㆍ향하다에 상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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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주역(書狀註譯)
2025. 02. 번역필. 594쪽 本註와 補註 총 1078 目. 110권 초판.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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