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서장주역(書狀註譯) 조대제(趙待制)〈道夫〉에게 답하다-유통판(劉通判)〈彦冲〉에게 답하다 10

태화당 2025. 10. 5. 09:02

答趙待制道夫

示諭 一一備悉 佛言 有心者皆得作佛 此心非世間塵勞妄想心 謂發無上大菩提心 若有是心 無不成佛者 士大夫學道 多自作障難 爲無決定信故也 佛又言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 斷除疑網出愛流 開示涅槃無上道 又云 信能增長智功德 信能必到如來地 示諭 鈍根未能悟徹 且種佛種子於心田 此語雖淺近 然亦深遠 但辦肯心 必不相賺 今時學道之士 往往緩處却急 急處却放緩 龐公云 一朝蛇入布裩襠 試問宗師甚時節 昨日事今日尙有記不得者 況隔陰事 豈容無忘失耶 決欲今生打敎徹 不疑佛不疑祖 不疑生不疑死 須有決定信具決定志 念念救頭然 如此做將去 打未徹時方始可說根鈍耳 若當下便自謂 我根鈍不能今生打得徹 且種佛種結緣 乃是不行欲到 無有是處 杲每爲信此道者說 漸覺得日用二六時中省力處 便是學佛得力處也 自家得力處 他人知不得 亦拈出與人看不得 盧行者謂道明上座曰 汝若返照自己本來面目 密意盡在汝邊是也 密意者便是日用得力處也 得力處 便是省力處也 世間塵勞事 拈一放一 無窮無盡 四威儀內 未嘗相捨 爲無始時來與之結得緣深故也 般若智慧無始時來與之結得緣淺故也 乍聞知識說著 覺得一似難會 若是無始時來塵勞緣淺 般若緣深者 有甚難會處 但深處放敎淺 淺處放敎深 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纔覺思量塵勞事時 不用著力排遣 只就思量處 輕輕撥轉話頭 省無限力 亦得無限力 請公只如此崖將去 莫存心等悟 忽地自悟去 參政公想日日相會 除圍碁外 還曾與說著這般事否 若只圍碁 不曾說著這般事 只就黑白未分處 掀了盤撒了子 却問他索取那一著 若索不得 是眞箇鈍根漢 姑置是事

愛流; 貪愛之流 貪愛能惑溺人心 譬如暴流也

心田; 指心 心如田圃 能納藏善惡之種子 隨緣滋生善惡之苗 故喩爲田

蛇入布裩襠; 轉倒悤忙之義 [大慧書栲栳珠]

隔陰; 隔中陰之身也 陰指中陰 又云中有 死此生彼 中間所受之陰形也 陰者五陰之陰

救頭然; 同救頭燃 救頭上之燃 喩指拋棄萬事宜急修道 別譯雜阿含經二 人命短促 多諸嬈害 宜急修善 如救頭燃

撥轉; 撥開轉變 [碧巖錄第六十三則種電鈔]

一著; 本爲圍棋用語 猶言一事也 又一回一次也 又稱一著子

 

조대제(趙待制)道夫에게 답하다

시유(示諭; 告知. 曉示)하시니 하나하나 비실(備悉; 상세히 알다)했습니다. 불타가 말씀하되(佛言) 마음이 있는 자는 모두 작불(作佛)함을 얻는다. 이 마음은 세간의 진로(塵勞)의 망상심(妄想心)이 아니니 이르자면 위없는 대보리(大菩提)를 일으키는() 마음입니다. 만약 이 마음이 있다면 성불하지 못하는 자가 없습니다. 사대부가 학도(學道)하면서 다분히 스스로 장난(障難)을 지음은 결정신(決定信)이 없기 때문의 연고입니다. 불타가 또 말씀하되 ()은 도원(道元; 도의 根源)이며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일체 모든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하나니/ 의망(疑網)을 단제(斷除)하고 애류(愛流)에서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도를 개시(開示)한다(화엄14). 우운(又云) ()은 능히 지공덕(智功德)을 증장(增長)하고 신()은 능히 꼭() 여래지(如來地)에 이른다(화엄14). 시유(示諭)하시되 둔근(鈍根)이라 능히 오철(悟徹)하지 못하니 다만() 심전(心田)에 불종자(佛種子)를 심겠다(). 이 말씀은 비록 천근(淺近)하지만 그러나 또 심원(深遠)하나니 단지 긍심(肯心)을 갖춘다면() 반드시 상잠(相賺; 속이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시의 학도지사(學道之士)가 왕왕(往往) 느슨할 곳(緩處)에선 도리어 급()하고 급할 곳(急處)에선 도리어 놓아 느슨합니다(放緩). 방공(龐公)이 이르되 일조(一朝)에 뱀이 베 잠방이에 들어갔다(蛇入布裩襠), 종사에게 시험 삼아 묻나니 무슨 시절인가. 작일(昨日)의 일을 금일(今日)에 오히려 기억함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거늘 하물며 격음(隔陰)의 일이겠습니까. 어찌 망실(忘失)이 없음을 용납하겠습니까. 결정코 금생에 지어 투철하게(打敎徹) 하고 싶다면 불()을 의심하지 말고 조()를 의심하지 말고 생()을 의심하지 말고 사()를 의심하지 말고 모름지기 결정신(決定信)이 있고 결정지(決定志)를 갖추어 염념(念念)에 머리의 연소를 구제함(救頭然)과 같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지어 가지고 가는데도 지어 투철하지 못할(打未徹) 때 비로소(方始) 가히 근둔(根鈍; 근기가 둔함)을 설할 뿐입니다. 만약 당하(當下; 즉시)에 바로 스스로 이르되 나는 근둔(根鈍)이라 능히 금생에 지어 투철함을 얻지 못하니 다만 불종(佛種)을 심어() 결연(結緣)하겠다고 한다면 곧 이는 가지 않고 이르고자 함이니 옳은 곳이 있지 않습니다. 종고(宗杲; )가 매번 차도(此道)를 믿는 자를 위해 설하되 일용(日用)하는 이륙시중(二六時中)에 생력(省力)을 점차 깨달음을 얻는 곳이 바로 이 불법을 배워(學佛) 득력(得力)한 곳이다. 자가(自家)가 득력한 곳은 타인이 앎을 얻지 못하며 또한 염출(拈出)하여 타인에게 주어 보게 함을 얻지 못합니다. 노행자(盧行者)가 도명(道明) 상좌에게 일러 가로되 네가 만약 자기의 본래면목을 반조(返照)한다면 밀의(密意)는 모두 여변(汝邊; 너의 가)에 있다 한 게 이것입니다. 밀의(密意)란 것은 바로 이 일용(日用)하며 득력한 곳이며 득력한 곳은 바로 이 생력(省力)하는 곳입니다. 세간의 진로사(塵勞事)는 염일방일(拈一放一)하면서 무궁무진(無窮無盡)하며 사위의(四威儀) 안에 일찍이 상사(相捨)하지 않습니다. 시작 없는 때로 오면서 그()와 맺음을 얻은 인연이 깊기 때문의 연고입니다. 반야지혜(般若智慧)는 시작 없는 때로 오면서 그와 맺음을 얻은 인연이 얕은 연고입니다. 지식이 설착(說著)함을 잠시 듣고(乍聞) 이회(理會)하기 어려움과 일사(一似; 一如)함을 각득(覺得)하지만 만약 이 시작 없는 때로 오면서 진로(塵勞)의 인연이 얕고 반야의 인연이 깊은 자라면 무슨 이회하기 어려운 곳이 있겠습니까. 단지 깊은 곳은 놓아서 얕게 하고 얕은 곳은 놓아 깊게 하고 생소한 곳은 놓아 익숙하게 하고 익숙은 곳은 놓아 생소하게 하십시오. 겨우 진로사(塵勞事)를 사량함을 깨달을 때 착력(著力)하여 배견(排遣)함을 쓰지 말고 다만 사량하는 곳으로 나아가 경경(輕輕)히 화두(話頭)를 발전(撥轉)한다면 무한한 힘을 덜() 것이며 또 무한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청컨대 공()은 다만 이와 같이 애장거(崖將去)하십시오. 마음을 두어 깨침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홀지(忽地)에 스스로 깨달아 갈 것입니다. 참정공(參政公)이 날마다 서로 만남을 상념하시매 위기(圍碁; 바둑 또는 바둑 두는 일)를 제한 밖에 도리어 일찍이 저반사(這般事)를 더불어 설착(說著)했습니까. 만약 다만 위기(圍碁)만 하고 일찍이 저반사를 설착하지 않았다면 다만 흑백(黑白)이 나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 반(; 바둑판)을 번쩍 들어버리고 자(; 바둑돌)를 흩어버리고 도리어 그에게 물어 나일착(一著; 저 일착)을 색취(索取)하십시오. 만약 찾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진개(眞箇)의 둔근한(鈍根漢)입니다. 이 일을 고치(姑置; 잠시 내버려둠)합니다.

愛流; 탐애의 흐름. 탐애가 능히 인심을 혹닉(惑溺)함이 비유컨대 폭류(暴流)와 같음.

心田; 마음을 가리킴. 마음은 전포(田圃; )와 같아서 능히 선악의 종자를 납장(納藏)하며 인연 따라 선악의 싹을 자생(滋生)하는지라 고로 밭에 비유함.

蛇入布裩襠; 굴러 넘어지면서 총망(悤忙; 바쁨)함의 뜻 [대혜서고로주].

隔陰; 중음(中陰)의 몸에 막힘이니 음()은 중음을 가리키며 또 이르되 중유(中有)라 함.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면서 중간에 받는 바의 음형(陰形). 음이란 것은 5()의 음임.

救頭然; 구두연(救頭燃)과 같음. 두상의 연소(燃燒)를 구제함이니 만사를 포기하고 마땅히 급하게 수도함을 비유로 가리킴. 별역잡아함경2. 인명은 단촉(短促)하고 여러 요해(嬈害; 는 번거로울 요)가 많나니 마땅히 급하게 선업을 닦되 구두연(救頭燃)과 같이 하라.

撥轉; 발개(撥開; 헤쳐 열다)하여 전변(轉變; 바뀌어 달라짐)[벽암록제63칙종전초].

一著; 본래 위기(圍棋; 바둑) 용어가 됨. 1()라고 말함과 같음. 1, 1차임. 또 명칭이 일착자(一著子).

 

答許司理壽源

黃面老子曰 信爲道元功德母 長養一切諸善法 又云 信能增長智功德 信能必到如來地 欲行千里一步爲初 十地菩薩斷障證法門 初從十信而入 然後登法雲地 而成正覺 初歡喜地因信而生歡喜故也 若決定竪起脊梁骨 要做世出世間沒量漢 須是箇生鐵鑄就底方了得 若半明半暗半信半不信 決定了不得 此事無人情 不可傳授 須是自家省發始有趣向分 若取他人口頭辦 永劫無有歇時 千萬十二時中 莫令空過 逐日起來應用處 圓陀陀地與釋迦達磨無少異 自是當人見不徹透不過 全身跳在聲色裏 却向裏許求出頭 轉沒交涉矣 此事亦不在久參知識遍歷叢林而後了得 而今有多少在叢林頭白齒黃了不得底 又有多少乍入叢林一撥便轉千了百當底 發心有先後 悟時無先後 昔李文和都尉參石門慈照 一句下承當 便千了百當 甞有呈慈照云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取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但從脚下崖將去死便休 不要念後思前 亦不要生煩惱 煩惱則障道也 祝祝

司理; 官名 五代以來 諸州皆有馬步獄 宋太祖開寶六年(975)秋 敕改馬步院爲司理院 以新進士及選人爲之 掌獄訟勘鞠之事 元廢 明時用爲對推事的別稱 [百度漢語]

十地; 或曰十住 種種不一 一歡喜地 二離垢地 三發光地 四焰慧地 五難勝地 六現前地 七遠行地 八不動地 九善慧地 十法雲地 [三藏法數]

十信; 菩薩五十二階位中 最初十位應修之十種心 此十種心在信位 能助成信行 全稱十信心 略稱十心 依諸經典所擧 其名稱與順序略異 菩薩瓔珞本業經卷上賢聖名字品所列之十種 一信心 二念心 三精進心 四定心 五慧心 六戒心 七迴向心 八護法心 九捨心 十願心

法雲地; 菩薩修行五十二階位中十地位之第十位 成就智波羅蜜 亦斷修惑 具足無邊功德 出生無邊功德水 如大雲覆虛空出淸淨之衆水 故云法雲地

歡喜地; 華嚴仁王等諸大乘經所明十地之初地 爲菩薩旣滿初阿僧祇劫之行 初得聖性 破見惑 證二空理 生大歡喜 故名歡喜地 菩薩於此位 成就檀波羅蜜

沒量漢; 指超越尋常見識氣度 而難以一般尺寸度量之禪悟者

生鐵; 未受冶工鍛鍊之鐵

口頭; 話語表面

千萬; 表示務必的意思 又作千萬千萬

圓陀陀地; 形容物之圓形 略稱圓陀陀 地 助詞 禪家以此形容心體之圓轉無礙

一撥便轉; 意謂一經啓發 立卽領會

李文和; 李遵勗(988-1038) 宋代臨濟宗居士 祖崇炬 父繼昌 字公武 號和文(或作文和)居士 擧進士 任都尉駙馬 參谷隱蘊聰(臨濟下五世)問宗要 大悟 受其印可 作偈云 參禪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多與禪者交往 天聖年間(1023-1030) 集天聖廣燈錄三十卷進上 揭明禪宗傳燈系譜 寶元元年逝世 著有閒宴集二十卷 外館芳題七卷 [天聖廣燈錄序 聯燈會要十三 居士分燈錄上 宋史四六四]

都尉; 一駙馬都尉之略稱 二武官的總稱 秦時各郡置郡尉 爲補佐郡守 西漢景帝時 以郡尉改稱都尉

慈照; 蘊聰(965-1032) 宋代臨濟宗僧 廣東南海人 俗姓張 出家後 參百丈道常 繼之參首山省念 大悟 後歷參湖北洞山守初 大陽山警延 智門師戒等 景德三年(1006) 住襄州谷隱山石門寺 天禧四年(1020) 移住谷隱山太平興國禪寺 徒衆多達千人 竝交結翰林楊文億 中山劉筠等 天聖十年示寂 壽六十八 諡號慈照禪師 李遵勗爲撰碑文 著有語錄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一卷 [廣燈錄十七 五燈會元十一 釋氏稽古略四 禪林寶訓音義]

; 梵語偈陀(又作伽陀)的簡稱也 譯曰頌 定字數結四句者 不問三言四言乃至多言 要必四句 是佛家常用詩體

 

허사리(司理)壽源에게 답하다

황면노자(黃面老子)가 가로되 신()은 도원(道元;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일체의 모든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한다(화엄14). 우운(又云) ()은 능히 지공덕(智功德)을 증장(增長)하고 신()은 능히 꼭() 여래지(如來地)에 이른다(화엄14). 천 리를 가고자 한다면 일보(一步)가 시초(始初; )가 됩니다. 십지(十地) 보살의 단장증법문(斷障證法門; 장애를 끊고 법을 증하는 문)은 처음 십신(十信)으로 좇아 들어간 연후에 법운지(法雲地)에 올라 정각을 이루는데 처음 환희지(歡喜地)는 신()으로 인해 환희를 내는 연고입니다. 만약 결정코 척량골(脊梁骨)을 세워 일으켜 세출세간(世出世間; 세간과 출세간)의 몰량한(沒量漢)을 짓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시개(是箇; 는 조사) 생철(生鐵)로 부어 만든 이()라야 바야흐로 요득(了得; 마치다)합니다. 만약 반명반암(半明半暗)하고 반신반불신(半信半不信)한다면 결정코 마침()을 얻지 못합니다. 차사(此事)는 인정(人情)이 없어서 가히 전수(傳授)하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이는 자가(自家)가 성발(省發; 領會)해야 비로소 취향(趣向)할 분한(分限; )이 있습니다. 만약 타인의 구두(口頭)를 취하여 판별(判別; )한다면 영겁토록 쉴 때가 있지 않습니다. 천만(千萬) 12시 중에 공과(空過)하게 하지 마십시오. 축일(逐日; 날마다)하여 일어나서(起來) 응용하는 곳에 원타타지(圓陀陀地)라 석가ㆍ달마와 조금의 다름도 없지만 스스로 이 당인(當人)이 보아 투철하지 못하고(見不徹) 뚫어 통과하지 못하여(透不過) 전신이 뛰어 성색 속에 있으면서 도리어 이허(裏許; 內裏. 裏邊)를 향해 출두(出頭)를 구하니 더욱() 교섭이 없습니다. 차사(此事)는 또한 지식을 구참(久參)하고 총림을 편력(遍歷)한 후에 요득(了得)함에 있지 않습니다. 이금(而今; 여금)에 총림에 있으면서 두백치황(頭白齒黃; 늙은 모양)하고도 얻지 못하는 이()가 다소(多少) 있고 또 처음() 총림에 들어와 일발편전(一撥便轉; 한 번 건드리자 바로 돎)하여 천료백당(千了百當)하는 이가 다소 있습니다. 발심(發心)엔 선후가 있지만 오시(悟時)엔 선후가 없습니다. 옛적() 이문화(李文和) 도위(都尉)가 석문(石門) 자조(慈照)를 참()해 일구(一句) 아래 승당(承當)하고 바로 천료백당(千了百當)했으며 일찍이 게()가 있어 자조(慈照)에게 보여() 이르되 도를 배움엔 모름지기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 心上)에 손을 대면 곧 판단하여/ 바로 위없는 보리를 취하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하지 말아라. 단지 각하(脚下)로 좇아 애장거(崖將去)하여 죽어야 바로 쉬나니 염후사전(念後思前)함을 요하지 않으며 또 번뇌를 냄을 요하지 않나니 번뇌는 곧 도를 장애합니다. 축복(祝福; )하고 축복합니다.

司理; 벼슬 이름. 오대 이래 제주(諸州)에 모두 마보옥(馬步獄)이 있었는데 송 태조 개보 6(975) 가을 칙명으로 마보원을 고쳐 사리원(司理院)으로 삼았으며 새로운 진사 및 사람을 선택해 이를 다스리게 했음. 옥송(獄訟)의 감국(勘鞠; 審問)을 관장했음. ()에서 폐했고 명 때 추사(推事)에 대한 별칭으로 사용했음 [백도한어].

十地; 혹 가로되 십주(十住)니 갖가지라 일치하지 않음. 1은 환희지며 2는 이구지며 3은 발광지며 4는 염혜지며 5는 난승지며 6은 현전지며 7은 원행지며 8은 부동지며 9는 선혜지며 10은 법운지임 [삼장법수].

十信; 보살 52계위(階位) 중 최초 10위가 응당 닦아야 하는 10종의 심(). 10종 심은 신위(信位)에 있으며 능히 신행(信行)을 조성(助成). 전칭이 십신심(十信心)이며 약칭이 십심(十心). 여러 경전에서 든 바에 의하면 그 명칭과 순서가 조금 다름. 보살영락본업경권상 현성명자품(賢聖名字品)에서 열거한 바의 10종은 1은 신심(信心)이며 2는 염심(念心)이며 3은 정진심이며 4는 정심(定心)이며 5는 혜심(慧心)이며 6은 계심(戒心)이며 7은 회향심이며 8은 호법심이며 9는 사심(捨心)이며 10은 원심(願心).

法雲地; 보살의 수행 52계위 중 10지위의 제10. 지바라밀(智波羅蜜)을 성취하고 또한 수혹(修惑)을 끊었으며 무변한 공덕을 구족하고 무변한 공덕수(功德水)를 출생함이 마치 대운(大雲)이 허공을 덮어 청정한 중수(衆水)를 출생함과 같은지라 고로 이르되 법운지임.

歡喜地; 화엄ㆍ인왕 등 여러 대승경에서 밝힌 바 10지의 초지니 보살이 이미 초아승기겁(初阿僧祇劫)의 수행을 만족하여 처음으로 성성(聖性)을 얻고 견혹(見惑)을 타파하고 2공리(空理)를 증득했기 때문에 대환희를 내는지라 고로 이름이 환희지임. 보살이 이 위()에서 단바라밀(檀波羅蜜)을 성취함.

沒量漢; 심상(尋常)의 견식(見識)과 기도(氣度)를 초월하는지라 일반의 척촌(尺寸)으로 도량(度量)하기 어려운 선오자(禪悟者)를 가리킴.

生鐵; 야공(冶工)의 단련을 받지 아니한 철.

口頭; 화어(話語; 어화)의 표면.

千萬; 무필(務必; 반드시. 必須)의 의사를 표시함. 또 천만천만(千萬千萬)으로 지음.

圓陀陀地; 물건의 원형을 형용함. 약칭이 원타타(圓陀陀)니 지는 조사. 선가(禪家)에서 이로써 심체의 원전무애(圓轉無礙)를 형용함.

一撥便轉; 뜻으로 이르자면 한 번 계발(啓發)을 겪으면 입즉(立卽; 즉각) 영회(領會).

李文和; 이준욱(李遵勗; 988-1038)이니 송대 임제종 거사. ()는 숭거며 부()는 계창이며 자는 공무(公武)며 호는 화문(和文. 혹은 文和로 지음)거사. 진사(進士)에 선발()되었고 도위부마(都尉駙馬)에 임명되었음. 곡은온총(谷隱蘊聰; 임제하 5)을 참알(參謁)해 종요(宗要)를 묻고 대오했으며 그의 인가(印可)를 받았음. ()를 지어 가로되 참선은 반드시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착수(著手)하면 곧 판단한다/ 바로 무상보리(無上菩提)로 나아가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하지 말아라. 다분히 선자(禪者)와 교왕(交往)하였음. 천성년(1023-1030) 간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30권을 모아 진상(進上)했는데 선종의 전등계보(傳燈系譜)를 게명(揭明)했음. 보원 원년에 서세(逝世)했으며 저서에 한연집 20권과 외관방제 7권이 있음 [천성광등록서. 연등회요13. 거사분등록상. 송사464].

都尉; 1. 부마도위의 약칭. 2. 무관의 총칭. ()나라 때 각 군에 군위(郡尉)를 두어 군수를 보좌하게 했는데 서한 경제 시 군위를 도위로 개칭했음.

慈照; 온총(蘊聰; 965-1032)이니 송대 임제종승. 광동 남해 사람이니 속성은 장. 출가한 후 백장도상을 참했고 이어서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참해 대오했음. 후에 호북 동산수초ㆍ대양산 경연ㆍ지문사계 등을 역참(歷參)했음. 경덕 3(1006) 양주 곡은산 석문사에 주()했고 천희 4(1020) 곡은산 태평흥국선사로 이주했음. 도중이 많을 적엔 천 인에 달했음. 아울러 한림 양문억, 중산 유균 등과 교결(交結)했음. 천성 10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68. 시호는 자조선사(慈照禪師)며 이준욱이 비문을 지었음. 저서에 어록인 석문산자조선사봉암집 1권이 있음 [광등록17. 오등회원11. 석씨계고략4. 선림보훈음의]. 송대 법안종승. 항주 영은사 자제문승에게서 득법했고 스승에게 의지하며 영은에 거주했음 [속전등록13].

; 범어 게타(偈陀; 伽陀로 지음)의 간칭이니 번역해 가로되 송(). 글자 수를 정해 4구를 결성한 것이니 34언 내지 다언을 불문하고 반드시 4구를 요함. 이것은 불가에서 상용하는 시체임.

 

左右具正信立正志 此乃成佛作祖基本也 山野因以湛然名公道號 如水之湛然不動 則虛明自照 不勞心力 世間出世間法 不離湛然 無纖毫透漏 只以此印 於一切處印定 無是無不是 一一解脫一一明妙一一實頭 用時亦湛然 不用時亦湛然 祖師云 但有心分別計較 自心見量者 悉皆是夢 若心識寂滅無一動念處 是名正覺 覺旣正 則於日用二六時中 見色聞聲 嗅香了味 覺觸知法 行住坐臥 語默動靜 無不湛然 亦自不作顚倒想 有想無想悉皆淸淨 旣得淸淨 動時顯湛然之用 不動時歸湛然之體 體用雖殊 而湛然則一也 如析栴檀片片皆栴檀 今時有一種杜撰漢 自己脚跟下不實 只管敎人攝心靜坐 坐敎絕氣息 此輩名爲眞可憐愍 請公只恁麽做工夫 山野雖然如此指示公 眞不得已耳 若實有恁麽做工夫底事 卽是污染公矣 此心無有實體 如何硬收攝得住 擬收攝向甚處安著 旣無安著處 則無時無節 無古無今 無凡無聖 無得無失 無靜無亂 無生無死 亦無湛然之名 亦無湛然之體 亦無湛然之用 亦無恁麽說湛然者 亦無恁麽受湛然說者 若如是見得徹去 徑山亦不虛作此號 左右亦不虛受此號 如何如何

道號; 僧爲表示其自身之願望 或自身悟道之機緣 或以所居之地名 所住之庵堂 或徒弟爲避免直呼師祖之諱 遂另取一道號 又稱表德號 [叢林盛事(道融) 象器箋稱呼類]

透漏; 穿透漏泄

實頭; 老實 如實 頭 助詞 常指答問時據實應對

氣息; 原意爲出息入息之氣 卽呼吸之氣 轉義爲某種氣質給人的感覺

 

()

좌우(左右)는 정신(正信)을 갖추고 정지(正志)를 세웠으니 이것은 곧 성불작조(成佛作祖)의 기본(基本)입니다. 산야(山野)가 인하여 담연(湛然)으로써 공()의 도호(道號)를 이름했습니다. 물이 담연하여 부동(不動)함과 같으며 허명(虛明)하여 자조(自照)하는지라 심력(心力)을 노고롭게 하지 않아도 세간과 출세간법이 담연을 여의지 않으며 섬호(纖毫)의 투루(透漏)도 없습니다. 다만 이 인()으로써 일체처(一切處)에 인정(印定; 을 쳐 정함)하면 시()도 없고 불시(不是)도 없고 하나하나 해탈이며 하나하나 명묘(明妙)하며 하나하나 실두(實頭)며 쓸 때도 또한 담연하고 쓰지 않을 때도 또한 담연합니다. 조사가 이르되 단지 마음이 있어 분별하고 계교(計較)한다면 자심(自心)으로 보고 헤아리는 것이 모두 이 꿈이다. 만약 심식(心識)이 적멸하여 하나의 동념처(動念處)도 없다면 이 이름이 정각(正覺)이며 각()이 이미 바르니() 곧 일용(日用)하는 이륙시중(二六時中)에 견색문성(見色聞聲)하고 후향요미(嗅香了味; 향기를 냄새 맡고 맛을 깨닫다)하고 각촉지법(覺觸知法; 감촉을 느끼고 법을 알다)하고 행주좌와하고 어묵동정(語默動靜)하면서 담연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 전도상(顚倒想)을 짓지 않고 유상무상(有想無想)이 모두 다 청정하고 이미 청정을 얻었으니 동시(動時)에 담연의 용()을 나타내고() 부동시(不動時)에 담연의 체()로 돌아가나니 체용이 비록 다르지만() 담연은 곧 하나입니다. 전단(栴檀)을 쪼개매() 편편(片片)이 모두 전단임과 같습니다. 금시에 일종의 두찬한(杜撰漢)이 있어 자기의 각근하(脚跟下)도 실답지 못하면서 다만 관대(管帶)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섭심(攝心)하여 정좌(靜坐)케 하고 앉아 기식(氣息)이 끊어지게 합니다. 차배(此輩)를 이름하여 참으로 가히 연민(憐愍)스럽다 합니다. 청컨대 공()은 다만 이렇게 공부를 지으십시오. 산야(山野)가 비록 그렇게 이와 같이 공()에게 지시하지만 참으로 부득이할 따름입니다. 만약 실로 이렇게 공부를 짓는 일이 있다면 즉시(卽是) ()을 오염(污染)함입니다. 차심(此心)은 실체가 있지 않거늘 어떻게 강경(强硬; )하게 수섭(收攝)하여 머묾을 얻겠습니까. 수섭하여 어느 곳을 향해 안착(安著)하려고 하겠습니까. 이미 안착할 곳이 없으니 곧 무시무절(無時無節)이며 무고무금(無古無今)이며 무범무성(無凡無聖)이며 무득무실(無得無失)이며 무정무란(無靜無亂)이며 무생무사(無生無死)며 또한 담연이란 이름도 없으며 또한 담연의 체()도 없으며 또한 담연의 용()도 없으며 또한 이렇게 담연을 설하는 자도 없으며 또한 이렇게 담연을 설함을 받을 자도 없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견득(見得)하여 투철해 간다면 경산(徑山; 대혜)도 또한 헛되이 차호(此號)를 지은 게 아니며 좌우(左右)도 또한 헛되이 차호(此號)를 받음이 아닙니다. 어떻습니까(如何), 어떻습니까.

道號; 승인이 그 자신의 원망(願望)이나 혹 자신의 오도의 기연을 표시하기 위해서, 혹 거주하는 바의 지명이나 혹 거주하는 바의 암당으로써, 혹 도제(徒弟)가 사조(師祖)의 휘를 바로 호칭함을 피면(避免)하기 위해 드디어 따로 하나의 도호(道號)를 취함. 또 덕호(德號)를 일컬어 표시함임 [총림성사(도융). 상기전칭호류].

透漏; 천투(穿透)하여 누설함.

實頭; 노실(老實; 誠實)ㆍ여실. 두는 조사. 늘 답문 시 사실에 의거하여 응대함을 가리킴.

氣息; 원래의 뜻은 날숨과 들숨의 기()가 됨. 곧 호흡의 기. 전의(轉義)하여 모종의 기질을 사람에게 준 감각이 됨.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六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七

宋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慧日禪師臣蘊聞 上進

答劉寶學彦脩

卽日烝溽 不審燕處悠然 放曠自如 無諸魔撓否 日用四威儀內 與狗子無佛性話一如否 於動靜二邊能不分別否 夢與覺合否 理與事會否 心與境皆否 老龐云 心如境亦如 無實亦無虛 有亦不管 無亦不拘 不是聖賢 了事凡夫 若眞箇作得箇了事凡夫 釋迦達磨是甚麽泥團土塊 三乘十二分敎是甚麽熱盌鳴聲 公旣於此箇門中 自信不疑 不是小事 要須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始與此事少分相應耳 往往士大夫 多於不意中 得箇瞥地處 却於如意中打失了 不可不使公知 在如意中 須時時以不如意中時節在念 切不可暫忘也 但得本莫愁末 但知作佛 莫愁佛不解語 這一著子 得易守難 切不可忽 須敎頭正尾正 擴而充之 然後推己之餘以及物 左右所得 旣不滯在一隅 想於日用中 不著起心管帶 枯心忘懷也 近年已來禪道佛法衰弊之甚 有般杜撰長老 根本自無所悟 業識茫茫無本可據 無實頭伎倆 收攝學者 敎一切人如渠相似 黑漆漆地緊閉却眼 喚作默而常照 彦沖被此輩敎壞了 苦哉苦哉 這箇話 若不是左右悟得狗子無佛性 徑山亦無說處 千萬捋下面皮 痛與手段救取這箇人 至禱至禱 然有一事 亦不可不知 此公淸淨自居 世味澹薄 積有年矣 定執此爲奇特 若欲救之 當與之同事令其歡喜心不生疑 庶幾信得及 肯轉頭來 淨名所謂先以欲鉤牽 後令入佛智 是也 黃面老子云 觀法先後以智分別 是非審定不違法印 次第建立無邊行門 令諸衆生斷一切疑(화엄18) 此乃爲物作則 萬世楷模也 況此公根性與左右逈不同 生天定在靈運前 成佛定在靈運後者也 此公決定不可以智慧攝 當隨所好攝 以日月磨之 恐自知非 忽然肯捨 亦不可定 若肯轉頭來 却是箇有力量底漢 左右亦須退步讓渠出一頭始得 比暐禪歸 錄得渠答紫巖老子一書 山僧隨喜讀一遍 讚歎歡喜累日 直是好一段文章 又似一篇大義 末後與之下箇謹對 不識左右以謂如何 昔達磨謂二祖曰 汝但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二祖種種說心說性俱不契 一日忽然省得達磨所示要門 遽白達磨曰 弟子此回始息諸緣也 達磨知其已悟 更不窮詰 只曰 莫成斷滅去否 曰無 達磨曰 子作麽生 曰了了常知故 言之不可及 達磨曰 此乃從上諸佛諸祖所傳心體 汝今旣得 更勿疑也 彦冲云 夜夢晝思十年之間 未能全克 或端坐靜默一空其心 使慮無所緣 事無所託 頗覺輕安 讀至此不覺失笑 何故 旣慮無所緣 豈非達磨所謂內心無喘乎 事無所託 豈非達磨所謂外息諸緣乎 二祖初不識達磨所示方便 將謂外息諸緣內心無喘 可以說心說性說道說理 引文字證據 欲求印可 所以達磨一一列下 無處用心 方始退步思量 心如牆壁之語 非達磨實法 忽然於牆壁上 頓息諸緣 卽時見月亡指 便道 了了常知故 言之不可及 此語亦是臨時被達磨拶出底消息 亦非二祖實法也 杜撰長老輩 旣自無所證 便逐旋揑合 雖敎他人歇 渠自心火熠熠 晝夜不停 如缺二稅百姓相似 彦冲却無許多勞攘 只是中得毒深 只管外邊亂走 說動說靜 說語說默 說得說失 更引周易內典 硬差排和會 眞是爲他閑事長無明 殊不思量一段生死公案 未曾結絕 臘月三十日 作麽生折合去 不可眼光欲落未落時 且向閻家老子道 待我澄神定慮少時 却去相見得麽 當此之時 縱橫無礙之說 亦使不著 心如木石亦使不著 須是當人生死心破始得 若得生死心破 更說甚麽澄神定慮 更說甚麽縱橫放蕩 更說甚麽內典外典 一了一切了 一悟一切悟 一證一切證 如斬一結絲 一斬一時斷 證無邊法門亦然 更無次第 左右旣悟狗子無佛性話 還得如此也未 若未得如此 直須到恁麽田地始得 若已到恁麽田地 當以此法門興起大悲心 於逆順境中和泥合水 不惜身命不怕口業 拯拔一切以報佛恩 方是大丈夫所爲 若不如是 無有是處 彦冲引孔子稱易之爲道也屢遷 和會佛書中應無所住而生其心爲一貫 又引寂然不動 與土木無殊 此尤可笑也 向渠道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故經云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謂此廣大寂滅妙心 不可以色見聲求 應無所住 謂此心無實體也 而生其心 謂此心非離眞而立處 立處卽眞也 孔子稱易之爲道也屢遷 非謂此也 屢者荐也 遷者革也 吉凶悔吝生乎動 屢遷之旨 返常合道也 如何與應無所住而生其心 合得成一塊 彦冲非但不識佛意 亦不識孔子意 左右於孔子之敎出沒如遊園觀 又於吾敎深入閫域 山野如此杜撰 還是也無 故圭峯元亨利貞乾之德也 始於一氣 常樂我淨佛之德也 本乎一心 專一氣而致柔 修一心而成道 此老如此和會 始於儒釋二敎 無偏枯無遺恨 彦冲以應無所住而生其心 與易之屢遷 大旨同貫未敢相許 若依彦冲差排 則孔夫子與釋迦老子 殺著買草鞋始得 何故 一人屢遷 一人無所住 想讀至此 必絕倒也

寶學; 事物紀原四曰 寶文 英宗治平(1064-1067)初 以寶文閣藏仁宗御書御製 置寶文閣學士直學士及待制之官 [大慧書栲栳珠]

; 又作如如 眞如 如實 卽一切萬物眞實不變之本性 蓋一切法雖有其各各不同之屬性 如地有堅性 水有濕性等 然此各別之屬性非爲實有 而一一皆以空爲實體 故稱實性爲如 又如爲諸法之本性 故稱法性 而法性爲眞實究竟之至極邊際 故又稱實際 由此可知 如法性實際三者 皆爲諸法實相之異名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十二分敎; 與十二部經 十二分經同 三藏法數三十四 十二分經[亦名十二部經出大智度論] 一修多羅 梵語修多羅 華言契經 契者 上契諸佛之理 下契衆生之機 經者 法也常也 十界同遵曰法 三世不易曰常 此聖敎之總名也 又修多羅卽是長行 直說法相 隨其義理長短 不以字數爲拘也 二祇夜 梵語祇夜 華言應頌 又云重頌 謂應前長行之文 重宣其義 或六句四句三句二句 皆名頌也 三伽陀 梵語伽陀 華言諷頌 謂不頌長行 直說偈句 如金光明經中空品等是也 四尼陀羅 梵語尼陀羅 華言因緣 如經中有人問故爲說是事 如律中有人犯是事故制是戒 如來所說一切根本緣起之事 皆名因緣 如法華經中化城喩品說宿世因緣等是也 五伊帝目多 梵語伊帝目多 華言本事 謂說諸菩薩弟子因地所行之事 如法華經中本事品云 藥王菩薩於日月淨明德佛所 得法歡喜 卽然身臂 以爲供養 修諸苦行 求菩提道等是也 六闍多伽 梵語闍多伽 華言本生 謂說佛菩薩本地受生之事 如涅槃經云 比丘當知 我於過去作鹿羆麞兔龍 及作金翅鳥粟散王轉輪聖王之類是也 七阿浮達磨 梵語阿浮達磨 華言未曾有 亦云希有 謂如佛初生時 卽行七步 足迹之處 皆有蓮華 放大光明 遍照十方世界 而發是言 我是度一切衆生生老病死者 地大震動 天雨衆華 樹出音聲 作天妓樂 如是等無量希有之事是也 八婆陀 梵語婆陀 具云阿波陀那 華言譬喩 謂如來說法 爲鈍根者 假譬喩以曉示之 令其開解 如法華經中火宅藥草等喩是也 九優婆提舍 梵語優婆提舍 華言論議 謂諸經中問答辯論諸法之事 如法華經提婆達多品中 智積菩薩與文殊師利 論說妙法等是也 十優陀那 梵語優陀那 華言自說 謂無有人問 如來以他心智 觀衆生機 而自宣說 如楞嚴會上說五十種魔事 不待阿難請問 又如彌陀經無有緣起 自告舍利弗等是也 五十種魔者 謂色受想行識五陰 各有十種也 十一毘佛略 梵語毘佛略 華言方廣 方者法也 廣者大也 又正理曰方 包富曰廣 謂大乘方等經典 其義廣大 猶如虛空也 十二和伽羅 梵語和伽羅 華言授記 謂如來爲諸菩薩辟支佛聲聞 授作佛記 如法華經云 汝阿逸多 於當來世 而成佛道 號曰彌勒等是也

熱盌鳴聲; 盛熱湯的盌子作聲 喩無意義的言語音聲

管帶; 管理携帶

長老; 指年齡長而法臘高 智德俱優之大比丘 又稱上座 上首 耆宿 耆舊 老宿 具壽 長阿含八衆集經 列擧三種長老 一年耆長老 指入佛道經年之僧 二法長老 指精通敎法之高僧 三作長老 爲世俗假名之長老 長老雖對年臘高者之敬稱 然未必爲年老者 增一阿含經二十二 我今謂長老 未必先出家 修其善本業 分別於正行 設有年幼少 諸根無漏缺 正謂名長老 分別正法行 此外 禪林中 多稱接引學人之師家爲長老 又禪宗稱寺院住持僧人爲長老

黑漆漆地; 形容黑暗 地 助詞

捋下面皮; 不順人情之義 葛藤語箋 捋下面皮 面皮者面具也 捋下面具露眞面也

法印; 妙法之印璽也 妙法眞實 不動不變 故稱爲印 又妙法如王印通達無礙 謂之印 又爲證明佛之正法者 故曰印 又爲諸佛諸祖互相印可 心心相傳之法 故曰法印 法華義疏六 通言印者 印定諸法不可移改 又釋以文爲印 將文定理 謂理與此文相應者乃爲實理 故名法印

楷模; 法式模範

生天定在靈運前; 名公法喜志一 孟顗 仕宋爲會稽太守 奉佛精懇 謝靈運嘲之曰 得道應須慧業文人 生天當在靈運前 成佛必在靈運後 顗深恨此語 然而事佛彌加抗厲

紫巖; 宋代張浚 字德遠 號紫巖居士 紹興(1131-1162)初 拜封爲和國公 問道於圓悟勤 [禪林寶訓音義] 張浚; (1097 -1164) 宋代居士 字德遠 號紫巖居士 綿竹(四川綿陽)人 紹興(1131-1162)初 拜封爲和國公 隆興元年(1163) 封魏國公 高宗孝宗兩朝秉政 問道圓悟克勤 於言下有省 呈偈曰 敎外單傳佛祖機 本來無悟亦無迷 浮雲散盡靑天在 日出東方夜落西 悟可 嘗作虎丘轉輪大藏記 母秦國夫人從徑山大慧得旨 及卒 遺命供大慧一年報恩 浚從之 卒謚忠獻 [朱子文集 佛法金湯編十四 禪林寶訓音義 百度百科]

隨喜; 謂見他人行善 隨之心生歡喜

二祖; 慧可(487-593) 又作惠可 亦作僧可 東土禪宗二祖 南北朝之僧 河南洛陽人 俗姓姬 初名神光 幼時於洛陽龍門香山 依寶靜出家 於永穆寺受具足戒 早年周遊聽講 精硏孔老之學與玄理 北魏正光元年(520) 參達磨祖師於嵩山少林寺 從學六年 達磨乃傳大法竝衣鉢 師於北齊天保三年(552) 傳法僧璨 其後赴河南鄴都 演說楞伽經意 凡三十餘年 韜光晦跡 人莫能識 後於筦城縣匡救寺三門下 談無上道 聽者林會 時有辯和法師者 於寺中講涅槃經 學徒聞師闡法 稍稍引去 辯和不勝其憤 興謗于邑宰翟仲侃 仲侃惑其邪說 加師以非法 師怡然委順 時年一百七歲 卽隋文帝開皇十三(一說十二)年癸丑歲三月十六日也 唐德宗諡大祖禪師 [傳燈錄三 寶林傳八 傳法正宗記六]

弟子; 梵語室灑 此云所敎 卽從師受敎者 佛陀在世時之聲聞等 乃至佛陀入滅後之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等 皆稱爲佛弟子 弟子之語義 據慧遠維摩經義記二本載 學於佛陀之後 故稱弟 聞佛法之敎化而生解 故稱子 就佛而言 聲聞菩薩雖皆爲弟子 但因聲聞人之形儀最親順於佛 故特稱爲弟子 此外 一般稱門人爲門弟 徒弟

印可; 指印證認可 卽弟子修道成就時 爲師者加以印證而承認許可其所悟境界之意 此詞屢見於維摩經上之經文 禪宗密敎亦常用之

二稅; 麥年貢米年貢也 [大慧書栲栳珠]

勞攘; 煩擾

周易; 卽易經 相傳是周文王姬昌所作 內容包括經和傳兩個部分 經主要是六十四卦和三百八十四爻 卦和爻各有說明 卽卦辭和爻辭 作爲占卜之用 周易沒有提出陰陽與太極等槪念 講陰陽與太極的是被道家與陰陽家所影響的易傳 傳包含解釋卦辭和爻辭的七種文辭共十篇 統稱十翼 [百度百科]

內典; 指佛敎之經論書籍 反之 佛敎以外之典籍稱外典 大智度論有習外典如以刀割泥 無所成而刀自損之語

和會; 調和異說異義以會通也

折合; 一了結 結果 畢竟 二應對 對處

和泥合水; 謂爲行慈悲 完全與塵世衆生和合 以化導衆生行善止惡 達到濟度之目的 乃第二義門之施設 慈悲方便之作法 又稱拖泥帶水 此外 師家爲接化不同根機之學人 依第二義門所施之權巧方便 稱爲和麩糶麵 原指於精細之麵粉中 摻雜粗糙之麥麩而賣與人 禪林則以麵比喩精深之佛法 麩比喩第二義門 [正法眼藏三]

拯拔; 從困境中拯救或解脫

孔子; (551-479) 宗統編年四 周靈王庚戌二十一年(551) 儒敎聖人孔子生於魯 夾注云 十一月初四日 生于魯國兗州鄒邑縣平鄕晉昌里 按殷本紀 孔子父姓叔梁 名紇 爲鄒邑縣宰 先娶鄒氏女 生子孟皮 不才 後娶顔氏女曰徵在 禱于尼邱山神 而生孔子 生而有髮 身長九尺六寸 腰帶十圍 垂手過膝 河眸海口 龍顔方顙 鳳顒燕頷 虬髭虎視 有中和之德 衣莊而嚴 色溫而厲 有四十二表 自易姓曰孔 名丘 字仲尼 先祖殷之後裔 穎考叔弗何 至紇移居魯 易姓叔梁 孔子追昔殷宋之後 以子配一 更姓孔氏 佛祖統紀五十四 周靈王二十一年(551) 十一月庚子 孔子生魯陬邑 景王十年(535) 孔子朝周 問禮於老子 敬王十九年(501) 爲魯中都宰 二十一年爲司空 二十二年爲大司寇 誅少正卯墮三都 魯定公受齊女樂 三日不聽政 孔子遂適衛 三十六年(484)自衛反魯 刪詩定書繫周易作春秋 以曾參孝爲作孝經 三十九年 哀公西狩獲麟 孔子傷麟出非時 遂絶筆於春秋 四十一年(479)四月乙丑 孔子卒 葬泗水上 弟子三千人 身通六藝者七十二人

屢遷; 多次變易 易 系辭下 易之爲書也不可遠 爲道也屢遷

寂然不動; 易繫辭上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無間業; 有五種之大惡業 此惡業決定受極苦之果 更無餘業餘果之間隔 故名無間業

返常合道; 從凡常中返回 合于直道

圭峯; 宗密(780-841) 華嚴宗第五祖 唐代果州(四川西充)人 俗姓何 世稱圭峰禪師 圭山大師 諡號定慧禪師 元和二年(807)赴京師應貢擧 途經遂州 聽聞道圓和尙說法 乃隨其出家 竝受具足戒 又依道圓之勸 參淨衆寺神會之弟子益州南印禪師 再謁洛陽報國寺之神照 元和五年 入澄觀座下 受持華嚴敎學 元和十一年正月 止於終南山智炬寺 自誓不下山 於此遍覽藏經三年 撰有圓覺經科文二卷 後入終南山草堂寺 潛心修學 著圓覺經大疏三卷 再遷寺南之圭峰蘭若 專事誦經修禪 太和二年(828)徵入宮中講經 帝賜紫方袍 相國裴休與朝野之士多受其敎 未久請歸山 會昌元年正月六日 坐化於興福塔院 壽六十二 臘三十四 著禪源諸詮集一百卷(現僅存序) 原人論一卷 盂蘭盆經疏二卷 華嚴經綸貫十五卷 圓覺經大疏釋義抄十三卷 金剛般若經疏論纂要二卷 起信論疏注四卷 注華嚴法界觀門一卷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一卷等三十餘部 [宋高僧傳六 傳燈錄十三 禪宗正脈一 佛祖統紀二十九 五燈會元二 全唐文七四三圭峰禪師塔銘幷序]

元亨利貞; 首楞嚴經指掌疏事義 乾之四德 周易乾卦象辭云 乾元亨利貞 文言曰 元者善之長也 亨者嘉之會也 利者義之和也 貞者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乾元亨利貞

一氣; 爲道之所宗 陰陽天地之根本 以喩自性淸淨之心

常樂我淨; 謂不遷不變名常 離生死苦名樂 八大自在名我 離諸惑染名淨 卽佛之四德也

一心; 一卽一乘 二特指敎外別傳的禪法

孔夫子; 夫子 孔子也 以嘗爲魯大夫 故云夫子 弟子連官稱尊之 以別餘人也 後之尊師者 因例曰夫子

殺著買草鞋; 殺 所拜切 疾也 甚也 著 助詞

 

유보학(寶學)彦脩; 언수에게 답하다

즉일(卽日; 當日) 증욕(烝溽; 찌는 듯한 무더위)인데 불심(不審; 未審)하나니 연처(燕處; 居處. 閑居)가 유연(悠然; 悠閑)하고 방광(放曠)하며 자여(自如; 自若)하고 제마(諸魔)가 어지럽힘()이 없습니까. 일용(日用)하는 사위의내(四威儀內)에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와 일여(一如)합니까. 동정(動靜) 이변(二邊)에 능히 분별하지 않습니까. ()과 교()가 합합니까. ()와 사()가 모입니까(會否). ()과 경()이 모두 여()입니까. 노방(老龐)이 이르되 심()이 여()며 경()도 또한 여()니 실()도 없고 또한 허()도 없다. ()도 또한 상관(相管; )하지 않고 무()도 또한 구애(拘礙; )되지 않나니 이 성현(聖賢)이 아니라 요사(了事)한 범부다. 만약 진개(眞箇; 는 조사)로 저() 요사(了事)한 범부를 작득(作得)했다면 석가와 달마가 이 무슨(甚麽) 니단토괴(泥團土塊)이겠습니까. 3(三乘) 12분교(十二分敎)는 이 무슨 뜨거운 사발 울리는 소리(熱盌鳴聲)입니까. ()이 이미 차개(此箇; 는 조사) 문중(門中)에 스스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 소사(小事)가 아닙니다. 요컨대 꼭 생소한 곳은 놓아서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놓아 생소하게 해야 비로소 차사(此事)와 소분(少分) 상응합니다. 왕왕(往往) 사대부가 다분히 불의(不意; 뜻하지 않음) 중에 저() 별지처(瞥地處)를 얻고는 도리어 여의(如意) 중에 잃어버리나니(打失了) ()으로 하여금 알게 하지 않음은 불가합니다. 여의(如意) 중에 있으면서 모름지기 시시로 불여의(不如意) 중의 시절을 상념(想念; )에 두고 간절히, 가히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단지 본()을 얻고 말()을 수심(愁心)하지 말아야 하며 단지 작불(作佛)할 줄만 알고 부처가 말할 줄 알지 못할까 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착자(一著子)는 얻기는 쉬우나 지키기가 어려우니 간절히, 가히 소홀(疏忽;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두정미정(頭正尾正)하게 하고 확이충지(擴而充之)한 연후에 자기를 미룬 나머지로 물(; )에 미쳐야 합니다. 좌우(左右)가 얻은 바는 이미 일우(一隅)에 체재(滯在)하지 않으니 상념(想念; )하건대 일용(用中) 중에 기심(起心)하여 관대(管帶)하고 고심(枯心; 마음을 메마르게 함)하여 망회(忘懷; 忘記)함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년(近年) 이래(已來)로 선도(禪道)와 불법이 쇠폐(衰弊)함이 심합니다. 어떤(有般) 두찬(杜撰) 장로(長老)는 근본(根本)이 스스로 깨친 바가 없고 업식이 망망(茫茫)하여 가히 의거(依據)할 근본이 없고 실두(實頭)의 기량(伎倆)이 없으면서 학자를 수섭(收攝)하여 일체인으로 하여금 거(; 杜撰 장로)와 같이 상사(相似)하게 하나니 흑칠칠지(黑漆漆地)에 긴급히 눈을 감아버리게 하고는 불러 짓기를 묵묵히 상조(常照)한다 합니다. 언충(彦沖), 이런 무리()가 무너뜨리게 함을 입었으니 고재(苦哉)며 고재(苦哉)입니다. 저개화(這箇話)는 만약 이 좌우(左右)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오득(悟得)하지 않았다면 경산(徑山; 대혜)도 또한 설할 곳이 없으니 천만(千萬) 면피를 날하하고(捋下面皮; 은 집어 딸 랄) 통렬히 수단(手段)을 주어 저개인(這箇人; 이 사람)을 구취(救取)해야 하리니 지도(至禱)하고 지도(至禱)합니다. 그러나 일사(一事)가 있나니 또한 알지 못함은 옳지 못합니다. 이 공(; 彦沖)은 청정히 자거(自居)하면서 세미(世味; 세상맛)가 담박(澹薄)함을 여러 해(有年) 쌓았으며 결정코 이에 집착해 기특(奇特)으로 삼습니다. 만약 그()를 구제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그()와 더불어 동사(同事)하여 그()로 하여금 환희하고 마음에 의혹을 내지 않게 해야 거의(庶幾) 믿어 미침을 얻고 수긍하며 전두(轉頭)하여 올 것입니다. 정명(淨名)에 이른 바 욕()으로써 구견(鉤牽; 끌어당김)하고 후에 불지(佛智)에 들게 한다 한 게 이것입니다. 황면노자(黃面老子)가 이르되 법의 선후(先後)를 보아 지()로써 분별하고 시비를 심정(審定; 살펴 정함)해야 법인(法印)에 위배되지 않는다. 차제(次第)로 무변한 행문(行門)을 건립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의혹을 끊게 한다(화엄18). 이것이 곧 물(; )을 위하여 법칙을 지음이며 만세(萬世)의 해모(楷模)입니다. 하물며 이 공()은 근성이 좌우(左右)와 멀어 부동(不同)하나니 천계(天界)에 태어남은 결정코 영운의 앞에 있지만(生天定在靈運前) 성불은 결정코 영운의 뒤에 있는(成佛定在靈運後) 자입니다. 이 공()은 결정코 가히 지혜로써 거두지 못하나니 마땅히 좋아하는 바를 따르며 거두어야 합니다. 일월(日月; 세월)로써 그()를 연마(練磨; )하면 스스로 그름을 알지 염려스럽고 홀연히 긍사(肯捨)할지는 또한 가히 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수긍해 전두(轉頭)하여 오면 도리어 시개(是箇) 역량(力量)이 있는 자()니 좌우도 또한 모름지기 퇴보(退步)하여 거()에게 양보하고 일두(一頭; 一端)를 내어야 비로소 옳습니다. 요사이(; 近來) 위선(暐禪; 暐禪人)이 돌아왔는데 거()가 자암노자(紫巖老子)에게 답한 일서(一書)를 녹득(錄得)했습니다. 산승이 수희(隨喜)하며 1(; . ) 읽고서 찬탄하고 환희한 지 여러 날(累日)입니다. 바로() 이 좋은 일단(一段)의 문장이었고 또 일편(一篇)의 대의(大義) 같았습니다. 말후에 저() 근대(謹對)를 내려 주었는데 알지 못하나니 좌우는 어떻다고(如何) 이릅니까(以謂). 옛적()에 달마가 2(二祖; 慧可)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단지 밖으로 제연(諸緣)을 쉬고() 안으로 헐떡임()이 없어야 하나니 마음이 장벽(牆壁)과 같아야 가이(可以; 는 조사) 입도(入道)한다. 2조가 갖가지로 설심설성(說心說性)했으나 모두() 계합하지 못했다. 어느 날 홀연히 달마가 보인 바 요문(要門)을 성득(省得)하고 급히() 달마에게 사뢰어() 가로되 제자(弟子)가 차회(此回)에 비로소 제연(諸緣)을 쉬었습니다. 달마가 그가 이미 깨쳤음을 알고 다시 궁힐(窮詰; 追問)하지 않고 다만 가로되 단멸(斷滅)을 이루어 간 게 아니냐. 가로되 아닙니다(). 달마가 가로되 자네()가 어떠한가. 가로되 요료(了了; 또렷또렷)히 상지(常知)하는 연고로 언어가 가히 미치지 못합니다(言之不可及). 달마가 가로되 이것이 곧 종상(從上)의 제불제조(諸佛諸祖)가 전한 바의 심체(心體). 네가 이제 이미 얻었으니 다시 의심하지 말아라. 언충(彦冲)이 이르되 야몽주사(夜夢晝思; 밤에 꿈꾸고 낮에 사유하다)하는 10년 사이에 능히 전극(全克; 완전히 이기다)하지 못했나니 혹 단좌(端坐)하여 정묵(靜默)하면서 그 마음을 한결같이 비우고(一空) 사려(思慮; )로 하여금 반연(攀緣; )하는 바 없게 하고 만사(萬事; )는 의탁(依託; )하는 바 없으니 자못 경안(輕安)함을 깨닫습니다. 읽다가 여기에 이르러 불각에 실소(失笑)했습니다. 무슨 연고냐, 이미 사려는 반연하는 바가 없으니 어찌 달마가 이른 바 안으론 마음이 헐떡임이 없음이 아니겠으며 만사는 의탁하는 바가 없으니 어찌 달마가 이른 바 밖으론 제연(諸緣)을 쉼이 아니겠습니까. 2조가 처음 달마가 보인 바 방편을 알지 못해 다만() 이르되 밖으론 제연을 쉬고 안으론 헐떡임이 없어야 가이(可以) 설심설성(說心說性)하고 설도설리(說道說理)한다 하고는 문자를 인용해 증거(證據)하면서 인가(印可)를 구하려고 한지라 소이로 달마가 하나하나 열하(列下; 羅列해 내림)하매 용심(用心)할 곳이 없었고 비로소(方始) 퇴보하여 사량하매 마음이 장벽과 같다는 말은 달마의 실법(實法)이 아니었다. 홀연히 장벽상(牆壁上)에서 제연(諸緣)을 문득 쉬었으니 즉시(卽時) 달을 보고 손가락을 잊었고(見月亡指) 바로 말하되 요료(了了)히 상지(常知)하는 연고로 언어가 가히 미치지 못한다 했습니다. 차어(此語) 역시(亦是) 임시(臨時)하여 달마에게 찰출(拶出; 핍박하며 쫓아냄)을 입은 소식이며 또한 2조의 실법(實法)이 아닙니다. 두찬(杜撰) 장로배(長老輩)가 이미 스스로 소증(所證)이 없으니 바로 선회(旋回; )를 쫓아() 날합(揑合; 주워 모아 합침)하면서 비록 타인으로 하여금 쉬게() 하지만 거()의 자심(自心)의 불()은 습습(熠熠; 밝게 빛남)하면서 주야로 멈추지() 않음이 마치 이세(二稅)를 결()한 백성과 상사(相似)합니다. 언충(彦冲)은 도리어 허다한 노양(勞攘)이 없고 다만 이 가운데 독()에 중독됨을 얻음이 깊어 다만 관대(管帶)하여 외변(外邊)으로 난주(亂走)합니다. 설동설정(說動說靜)하고 설어설묵(說語說默)하고 설득설실(說得說失)하고 다시 주역(周易)과 내전(內典)을 인용하여 강경(强硬; )하게 차배(差排; 차별하여 安排)하고 화회(和會)하니 참으로 이는 저() 한사(閑事)를 위해 무명(無明)을 증장(增長; )합니다. 특수히 일단(一段)의 생사공안(生死公案)을 사량하지 못하고 일찍이 결절(結絕; 結束. 了結)하지 못했으니 납월 30일에 어떻게 절합(折合)하여 가겠습니까. 안광(眼光)이 떨어지려다가 떨어지지 않을 때(臨終을 가리킴) () 염가노자(閻家老子)를 향해 말하되 내가 징신정려(澄神定慮; 정신을 맑히고 사려를 안정함)할 소시(少時; 잠시)를 기다렸다가 도리어 가서 상견함을 얻겠습니까 함은 불가합니다. 이를 당한 때 종횡무애(縱橫無礙)의 설()을 또한 사용하지 못할 것이며(亦使不著) 마음이 목석과 같음도 또한 사용하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이는 당인(當人)의 생사심(生死心)이 깨어져야 비로소 옳나니 만약 생사심이 깨어짐을 얻는다면 다시 무슨(甚麽) 징신정려(澄神定慮)를 설하며 다시 무슨 종횡방탕(縱橫放蕩)을 설하며 다시 무슨 내전외전(內典外典)을 설하겠습니까. 일료(一了)면 일체를 료()하고 일오(一悟)면 일체를 오()하고 일증(一證)이면 일체를 증()하나니 한 묶음(一結)의 실을 벰과 같아서 한 번 베면 일시에 끊어집니다. 무변법문(無邊法門)을 증()함도 또한 그러하여 다시 차제(次第)가 없습니다. 좌우가 이미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깨쳤다면 도리어 이와 같음을 얻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만약 이와 같음을 얻지 못했다면 바로() 모름지기 이러한(恁麽) 전지(田地)에 이르러야 비로소 옳습니다. 만약 이미 이러한 전지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이 법문(法門)으로써 대비심(大悲心)을 흥기(興起)하여 역순(逆順) 경계 중에 화니합수(和泥合水)하여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체를 증발(拯拔)하여 불은(佛恩)에 보답해야 바야흐로 이 대장부의 소위(所爲)니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옳은 곳이 있지 않습니다. 언충(彦冲)이 공자(孔子)가 일컬은 역()의 도()가 됨은 누천(屢遷; 거듭 變遷)이다 한 것을 인용해 불서(佛書) 중의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 한 것과 화회(和會)하여 일관(一貫; 한 꿰미)으로 삼고 또 적연부동(寂然不動)을 인용해 토목(土木)과 다름()이 없다 했으니 이것은 더욱() 가소롭습니다(可笑也). ()를 향해 말하나니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자 한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고로 경(금강경)에 이르되 응당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아라. 이르자면 이 광대한 적멸묘심(寂滅妙心)은 가히 색으로써 보거나 소리로 구하지 못합니다. 응당 머무는 바가 없다(應無所住)는 것은 이르자면 이 마음은 실체가 없음이며 그 마음을 낸다(而生其心)는 것은 이르자면 이 마음은 진()을 여읜 입처(立處)가 아니라 입처가 곧 진()입니다. 공자가 일컫되 역()의 도가 됨은 누천(屢遷)이다는 이것을 이른 게 아닙니다. ()란 것은 천(; 거듭. 再次)이며 천()이란 것은 혁(; )입니다. 길흉(吉凶)과 회린(悔吝; 뉘우치고 아낌)은 동()에서 생겨납니다. 누천(屢遷)의 지취(旨趣; )는 반상합도(返常合道)입니다. 어떻게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냄(應無所住而生其心)과 합함을 얻어 일괴(一塊)를 이루겠습니까. 언충(彦冲)은 단지 불의(佛意)를 알지 못함만이 아니라 또한 공자의 뜻도 알지 못했습니다. 좌우는 공자지교(孔子之敎)에 출몰(出沒)함이 유원(遊園)하며 관람(觀覽; )함과 같고 또 오교(吾敎), 곤역(閫域)에 심입(深入)했으니 산야(山野)의 이와 같은 두찬(杜撰)이 도리어 옳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고로 규봉(圭峯)이 이르되 원형리정(元亨利貞)은 건()의 덕이니 일기(一氣)에서 비롯하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은 불()의 덕이니 일심(一心)을 근본으로 한다. 일기(一氣)에 전념(專念; )하여 치유(致柔; 柔順을 이룸)하고 일심(一心)을 닦아 성도(成道)한다. 차로(此老)가 이와 같이 화회(和會)했다면 비로소 유석(儒釋; 유교와 釋敎) 이교(二敎)에 편고(偏枯)가 없고 유한(遺恨)이 없을 것입니다. 언충(彦冲)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과 역()의 누천(屢遷)을 쓴() 대지(大旨)는 동관(同貫; 같은 꿰미)이지만 감히 상허(相許)하지는 못합니다. 만약 언충(彦冲)의 차배(差排)에 의하자면 공부자(孔夫子)와 석가노자가 속히 짚신을 사야(殺著買草鞋) 비로소 옳나니 무슨 연고냐, 1인은 누천(屢遷)이며 1인은 무소주(無所住)입니다. 상상하건대 읽다가 여기에 이르면 반드시 절도(絕倒)하시리라.

寶學; 사물기원4에 가로되 보문(寶文) 영종 치평 초(1064-1067) 보문각에 인종의 어서(御書)와 어제(御製)를 수장하면서 보문각학사ㆍ직학사 및 대제(待制)의 관직을 설치했다 [대혜서고로주].

; 또 여여ㆍ진여ㆍ여실로 지음. 곧 일체 만물의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본성임. 대개 일체법은 비록 그 각각 부동(不同)의 속성(屬性)이 있어 예컨대() 땅은 견성(堅性)이 있고 물은 습성(濕性)이 있는 등이나 그러나 이것은 각별(各別)의 속성이며 실유(實有)가 되지 않고 하나하나가 모두 공()으로 실체를 삼는지라 고로 실성(實性)을 일컬어 여()라 함. 또 여()는 제법의 본성이 되므로 고로 명칭이 법성(法性)이며 법성이 진실로 구경(究竟)의 지극한 변제(邊際)가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실제(實際). 이로 말미암아 가히 아나니 여()ㆍ법성ㆍ실제(實際) 3자는 모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다른 이름이 됨.

三乘; 삼장법수7. 3() [출법화경]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를 알고 집()을 끊고 멸()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로써 승()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로써 승()을 삼는다.

十二分敎; 12부경(十二部經)12분경(十二分經)과 같음. 삼장법수34 십이분경(十二分經) [또한 이름이 12부경. 출대지도론] 1. 수다라(修多羅; sūtra) 범어 수다라는 화언(華言; 中華의 말)으론 계경(契經)이다. ()란 것은 위로 제불의 이치에 계합(契合)하고 아래로 중생의 근기(根機)에 계합함이다. ()이란 것은 법()이며 상()이다. 10()가 한가지로 준수(遵守)함을 가로되 법이며 3()에 바뀌지 않음을 가로되 상()이니 이는 성교(聖敎)의 총명(總名)이다. 또 수다라는 곧 이 장행(長行)이니 바로 법상(法相)을 설해 그 의리(義理)의 장단(長短)을 따르고 글자 수로써 구애되지 않는다. 2. 기야(祇夜; geya) 범어 기야는 화언으론 응송(應頌)이며 또 이르되 중송(重頌)이니 이르자면 앞의 장행의 문()에 응하여 거듭 그 뜻을 선포(宣布)함이다. 혹은 6()4구ㆍ3구ㆍ2구를 다 송()이라고 이름한다. 3. 가타(伽陀; gāthā) 범어 가타는 화언으론 풍송(諷頌)이다. 이르자면 장행을 송()하지 않고 바로 게구(偈句)를 설함이니 예컨대() 금광명경(金光明經) 중의 공품(空品) 등이 이것이다. 4. 니다라(尼陀羅; nidāna) 범어 니다라는 화언으론 인연이다. 예컨대() 경중(經中)에 어떤 사람이 묻는 고로 이 일을 설하나니 예컨대() 율중(律中)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범하는 고로 이 계를 제정(制定)함이다. 여래가 설하는 바 일체의 근본 연기(緣起)의 일을 다 인연이라고 이름한다. 예컨대() 법화경 중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숙세(宿世)의 인연을 설하는 등이 이것이다. 5. 이제목다(伊帝目多; itivṛtt aka) 범어 이제목다는 화언으론 본사(本事)니 이르자면 모든 보살과 제자의 인지(因地)에서 행한 바의 일을 설함이니 예컨대() 법화경 중 본사품(本事品)에 이르되 약왕보살(藥王菩薩)이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의 처소에서 법을 얻어 환희하여 곧 몸과 팔을 태워 공양으로 삼아 모든 고행을 닦아 보리도(菩提道)를 구하는 등이 이것이다. 6. 사다가(闍多伽; jātaka) 범어 사다가는 화언으론 본생(本生)이니 이르자면 부처와 보살의 본지(本地)의 수생(受生)의 일을 설함이다. 예컨대() 열반경에 이르되 비구여 마땅히 알라, 내가 과거에 사슴ㆍ큰 곰ㆍ노루ㆍ토끼ㆍ용을 지었으며 및 금시조(金翅鳥)ㆍ속산왕(粟散王)ㆍ전륜성왕을 지었다 한 종류가 이것이다. 7. 아부달마(阿浮達磨; adbhuta -dharma) 범어 아부달마는 화언으론 미증유(未曾有)며 또는 이르되 희유(希有)니 이르자면 예컨대() 부처가 처음 탄생할 때 곧 일곱 걸음를 행하고 족적(足迹)의 곳에 다 연화(蓮華)가 있어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면서 이 말씀을 발하되 나는 곧 일체중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제도하는 자이니라. 땅이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 뭇 꽃을 내리고 나무들이 음성을 내어 천기(天妓)의 음악을 짓는 이와 같은 등의 무량한 희유(希有)의 일이 이것이다. 8. 바타(婆陀) 범어 바타는 갖추어 이르자면 아바다나(阿波陀那; avadāna)니 화언으론 비유(譬喩). 이르자면 여래가 설법하면서 둔근(鈍根)인 자를 위해 비유를 빌려 타일러서 그에게 보여 그로 하여금 개해(開解)케 함이다. 예컨대() 법화경(法華經) 중 화택(火宅)ㆍ약초(藥草) 등의 비유가 이것이다. 9. 우바제사(優婆提舍; upadeśa) 범어 우바제사는 화언으론 논의(論議)니 이르자면 제경(諸經) 중에 제법(諸法)의 일을 문답하고 변론(辯論)함이다. 예컨대() 법화경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중 지적보살(智積菩薩)과 문수사리가 묘법(妙法)을 논설하는 등이 이것이다. 10. 우다나(優陀那; udāna) 범어 우다나는 화언으로 자설(自說)이니 이르자면 묻는 사람이 있지 않는데 여래가 타심지(他心智)로 중생의 근기를 관하여 스스로 선설(宣說)함이다. 예컨대() 릉엄회상(楞嚴會上)에서 50종 마사(魔事)를 설했는데 아난의 청문(請問)을 기다리지 않았다. 또 예컨대() 미타경은 연기(緣起)가 있지 않는데 스스로 사리불(舍利弗) 등에게 고한 등이 이것이다. 50종 마()란 것은 이르자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5()에 각기 10종이 있다. 11. 비불략(毗佛略; vaipulya) 범어 비불략은 화언으로 방광(方廣)이니 방()이란 것은 법()이며 광()이란 것은 대(). 또 바른 이치를 가로되 방()이며 포괄(包括)함이 풍부함을 가로되 광()이다. 이르자면 대승방등경전(大乘方等經典)은 그 뜻이 광대하여 마치 허공과 같음이다. 12. 화가라(和伽羅; vyākaraṇa) 범어 화가라는 화언으론 수기(授記). 이르자면 여래가 모든 보살ㆍ벽지불(辟支佛)ㆍ성문(聲聞)을 위해 작불(作佛)의 기()를 줌이니 예컨대() 법화경에 이르되 너 아일다(阿逸多)는 당래세(當來世)에 불도를 이루리니 호하여 가로되 미륵이니라 한 등이 이것이다.

熱盌鳴聲; 열탕을 채운 사발이 소리를 지음이니 의의가 없는 언어의 음성에 비유함.

管帶; 관리하고 휴대함.

長老; 연령이 어른이면서 법랍이 높으며 지덕(智德)이 모두 우수한 대비구를 가리킴. 또 명칭이 상좌(上座)ㆍ상수(上首)ㆍ기숙(耆宿)ㆍ기구(耆舊)ㆍ노숙(老宿)ㆍ구수(具壽). 장아함8 중집경에 3종 장로를 열거했음. 1. 연기장로(年耆長老) 불도에 들어와 경년(經年)한 승인을 가리킴. 2. 법장로(法長老) 교법에 정통한 고승을 가리킴. 3. 작장로(作長老) 세속의 가명(假名)의 장로가 됨. 장로는 비록 연랍(年臘)이 높은 자에 대한 경칭이지만 그러나 꼭 연로자가 됨은 아님. 증일아함경22 내가 이제 장로를 말함음/ 꼭 먼저 출가함은 아니다/ 그 선()의 본업을 닦고/ 정행(正行)을 분별해야 한다/ 설사 나이가 유소(幼少)함이 있더라도/ 제근(諸根)에 누결(漏缺)이 없으면/ 바로 이르되 이름이 장로니/ 바른 정법의 행을 분별한다. 이 밖에 선림 중에선 다분히 학인을 접인하는 사가를 일컬어 장로라 함. 또 선종은 사원의 주지승인(住持僧人)을 일컬어 장로라 함.

黑漆漆地; 흑암(黑暗)을 형용. 지는 조사.

捋下面皮; 인정을 따르지 않음의 뜻. 갈등어전. 날하면피(捋下面皮) 면피란 것은 면구(面具; 假面). 면구를 집어 내려서 진짜 얼굴을 드러냄이다.

法印; 묘법의 인새(印璽; 印章이니 특히 제왕의 인장을 가리킴)니 묘법은 진실하며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므로 고로 명칭이 인()이 되고 또 묘법은 왕인(王印)과 같아서 통달하여 무애(無礙)한지라 이를 일러 인()이라 함. 또 불타의 정법임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고로 가로되 인(). 또 제불제조가 호상 인가(印可)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하는 법인지라 고로 가로되 법인(法印). 법화의소6. 통상(通常) 말하는 인()이란 것은 제법을 가히 이개(移改)하지 못함을 인정(印定)함이다. 또 해석하기를 문()으로 인()을 삼나니 문()을 가지고 이()를 정함이다. 이르자면 이()와 이 문()이 상응하는 것이 곧 실리(實理)가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법인(法印)이다.

楷模; 법식과 모범.

生天定在靈運前; 명공법희지1 맹의(孟顗) ()에서 벼슬해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었다. 봉불(奉佛)하는 정성(精誠)이 간절했다. 사영운(謝靈運)이 그()를 조롱하며 가로되 득도(得道)는 응당 꼭 혜업(慧業)의 문인(文人)이라야 하나니 천계(天界)에 태어남은 영운(靈運)의 앞에 있겠지만 성불은 반드시 영운의 뒤에 있다. 맹의가 이 말을 깊이 한()했다. 그러하여 부처를 모시면서 더욱() 항려(抗厲; 振奮)를 더했다.

紫巖; 송대 장준(張浚)은 자가 덕원(德遠)이며 호가 자암거사(紫巖居士)니 소흥(1131-1162) 초 화국공(和國公)으로 배봉(拜封)되었고 원오극근에게 도를 물었음 [선림보훈음의]. 張浚; (1097-1164) 송대 거사. 자는 덕원(德遠)이며 호는 자암거사(紫巖居士)니 면죽(사천 면양) 사람. 소흥(1131-1162) 초 제배(除拜)하여 화국공에 봉해졌고 융흥 원년(1 163) 위국공에 봉해졌음. 고종과 효종 양조(兩朝)에 병정(秉政)했음. 원오극근(圓悟克勤)에게 도를 물어 언하에 성찰이 있었고 게를 보여 가로되 교외 단전(單傳)하는 불조기(佛祖機)/ 본래 오()도 없고 또한 미()도 없다/ 부운이 흩어 없어져도 청천은 있나니/ 해는 동방에서 나와 밤에 서쪽에 진다. 원오가 인가했음. 일찍이 호구(虎丘)에 전륜대장경(轉輪大藏記)을 만들었음. 모친 진국부인(秦國夫人)은 경산 대혜(大慧)로부터 득지(得旨)했는데 죽음에 이르러 유명(遺命)으로 대혜에게 1년 동안 공양해 보은하라 했고 장준이 이에 따랐음. 졸시(卒謚)는 충헌 [주자문집. 불법금탕편14. 선림보훈음의. 백도백과].

隨喜; 이르자면 타인의 행선(行善; 선을 행함)을 보고 따라서 마음에 환희를 냄.

二祖; 혜가(慧可; 487-593)니 또 혜가(惠可)로 지으며 또한 승가(僧可)로 지음. 동토선종(東土禪宗)2(). 남북조(南北朝)의 승인이며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희()며 처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었음. 어릴 때 낙양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서 보정(寶靜)을 의지(依止)해 출가하였고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젊은 나이에 돌아다니며 청강(聽講)하였으며 공로(孔老; 孔子老子)의 학문과 현리(玄理)를 정밀하게 연구했음. 북위(北魏) 정광(正光) 원년(520)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달마조사(達磨祖師)를 참알(參謁)해 좇아 배우기가 6년이었으며 달마가 이에 대법(大法)과 아울러 의발(衣鉢)을 전수(傳授)했음. 스님이 북제(北齊) 천보(天保) 3(552)에 승찬(僧璨)에게 전법(傳法)했고 그 후에 하남의 업도(鄴都)에 다다라 릉가경(楞伽經)의 뜻을 연설했음. 무릇 30여 년 동안 도광회적(韜光晦跡; 빛을 감추고 자취를 어둡게 함)하여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뒤에 관성현(筦城縣)의 광구사(匡救寺) 3() 아래에서 무상도(無上道)를 얘기하자 듣는 자가 숲처럼 모였음. 때에 변화법사(辯和法師)란 자가 있어 사중(寺中)에서 열반경을 강설했는데 배우는 무리가 스님의 법 여심을 듣고 조금씩 인도(引導)해 떠나자 변화가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읍재(邑宰)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비방을 일으켰으며 적중간이 그 삿된 설에 현혹(眩惑)되어 스님에게 비법(非法)을 가했음. 스님이 기쁜 듯(怡然) 위순(委順; 세상을 떠남)했으며 당시의 나이가 107세였으니 곧 수() 문제(文帝) 개황(開皇) 13(一說12) 계축세(癸丑歲) 316일임. () 덕종(德宗)이 시호(諡號)하여 대조선사(大祖禪師)라 했음 [전등록3. 보림전8. 전법정종기6].

弟子; 범어 실쇄(室灑; śiṣya)는 여기에선 이르되 소교(所敎)니 곧 스승을 좇아 수교(受敎)하는 자임. 불타가 재세할 때의 성문 등, 내지 불타가 입멸한 후의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을 모두 일컬어 불제자라 함. 제자의 어의(語義)는 혜원(慧遠)의 유마경의기2본의 기재에 의거하면 불타의 뒤에서 배우므로 고로 명칭이 제()며 불법의 교화를 듣고 이해를 내므로 고로 명칭이 자(). 불타로 나아가 말하면 성문과 보살이 비록 모두 제자가 되지만 단지 성문인(聲聞人)의 형의(形儀)가 가장 불타에 친순(親順)하므로 고로 특칭하여 제자라 함. 이 밖에 일반으로 문인을 일컬어 문제(門弟), 도제(徒弟)라 함.

印可; 인증(印證)하여 인가(認可)함을 가리킴. 곧 제자가 수도를 성취했을 때 스승 된 자가 인증을 가하여 그의 깨친 바 경계를 승인하여 허가함의 뜻. 이 사()는 유마경상(維摩經上)의 경문에 여러 차례 보임. 선종과 밀교에서도 또한 이를 상용함.

二稅; 보리의 연공(年貢; 매년 토지의 領主를 향해 납부하는 조세)과 쌀의 연공임 [대혜서고로주].

勞攘; 번요(煩擾; 번거롭고 요란함).

周易; 곧 역경(易經). 서로 전하기를 이는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이 지은 것이라 함. 내용은 경()과 전() 두 개 부분을 포괄함. 경의 주요(主要)는 이 64()384()며 괘와 효에 각기 설명이 있으니 곧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며 점복(占卜)의 용도로 작성했음. 주역은 음양(陰陽)과 태극(太極) 등의 개념을 제출함이 있지 않음. 음양과 태극을 강설하는 것은 이는 도가(道家)와 음양가(陰陽家)의 처소에서 영향을 입은 역전(易傳). ()은 괘사와 효사를 해석한 7종의 문사(文辭)를 포함하여 공히 10()이니 통칭이 십익(十翼)[백도백과].

內典; 불교의 경론서적을 가리킴. 이와 반()하여 불교 이외의 전적을 외전이라 일컬음. 대지도론에 외전을 학습함은 마치 칼로 진흙을 자름과 같아서 성취하는 바가 없고 칼만 스스로 손상한다는 말이 있음.

和會; 이설(異說)과 이의(異義)를 조화하여 회통(會通).

折合; 1. 요결(了結). 결과. 필경. 2. 응대. 대처.

和泥合水; 이르자면 자비를 행하기 위해 완전히 진세(塵世)의 중생과 화합하여 중생을 화도(化導)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그치게 하여 제도의 목적에 달도(達到)함이니 곧 제2의문(義門)의 시설이며 자비방편의 작법임. 또 명칭이 타니대수(拖泥帶水). 이 밖에 사가가 부동(不同)의 근기의 학인을 접화(接化)하기 위해 제2의문에 의해 베푸는 바의 권교(權巧)한 방편을 일컬어 화부조면(和麩糶麵)이라 함. 원래는 정세(精細)한 밀가루 속에 조조(粗糙; 거칢)한 맥부(麥麩; 밀기울)를 참잡(摻雜; 混雜)하여 타인에게 매여(賣與)함을 가리킴이나 선림에선 곧 면(; 밀가루)으로 정심(精深)한 불법에 비유하고 부()로 제2의문(第二義門)에 비유함 [정법안장3].

拯拔; 곤경 중으로부터 증구(拯救)하거나 혹 해탈시킴.

孔子; (551-479) 종통편년4. () 영왕(靈王) 경술 21(551유교 성인 공자가 노나라에 탄생했다. 협주(夾注)에 이르되 11월 초 4일에 노나라 연주 추읍현 평향 진창리에 탄생했다. 은본기(殷本紀)를 살펴보니 공자 아버지의 성은 숙량(叔梁)이며 이름은 흘()이며 추읍의 현재(縣宰). 먼저 추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맹피(孟皮)를 낳았으나 부재(不才)였다. 후에 안씨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가로되 징재(徵在)였다. 이구산(尼邱山)의 신에게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태어나자 머리카락이 있었으며 신장이 96촌이며 허리 둘레가 열 아름이었다.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났고 강의 눈에 바다의 입이며 용의 얼굴에 네모진 이마였으며 봉의 머리통에 제비의 턱이며 규룡의 수염에 범의 눈초리였다. 중화(中和)의 덕이 있으며 옷은 장식하여 위엄스러웠고 안색은 온화하면서 맑았다. 마흔둘의 표시가 있었다. 스스로 성을 바꾸어 가로되 공()이며 이름은 구()며 자는 중니(仲尼). 선조는 은나라의 후예인 영고숙불하(穎考叔弗何)이다. ()에 이르러 노나라로 이거(移居)했으며 성을 바꾸어 숙량(叔梁)이라 했다. 공자가 옛적에 은나라와 송나라의 후예임을 추억해 자()에 일()을 배합해 성을 바꾸어 공씨(孔氏)라 했다. 불조통기54. 주 영왕 21(551) 11월 경자(庚子)에 공자가 노나라 추읍(陬邑)에서 탄생했으며 경왕 10(535) 공자가 주나라를 방문해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경왕 19(501) 노나라의 중도재(中都宰)가 되었고 21년에 사공(司空)이 되었고 22년에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소정묘(少正卯)를 죽이고 삼도(三都)를 무너뜨렸다. 노 정공이 제나라의 여악(女樂)을 받아들여 3일 동안 정무를 듣지 않자 공자가 드디어 위나라로 갔다. 36(484) 위나라로부터 노()로 돌아와 시를 산취(刪取)하고 서()를 정하고 주역을 계사(繫辭)하고 춘추를 지었다. 증삼이 효자라 위하여 효경을 지었다. 39년에 애공(哀公)이 서쪽으로 사냥하다 기린을 잡았는데 공자가 기린이 비시(非時)에 출현함에 상심하여 드디어 춘추에서 절필했다. 41(479) 4월 을축(乙丑)에 공자가 졸했으며 사수상(泗水上)에 장사 지냈다. 제자가 3천 인이며 몸이 6()를 통달한 자 72인이다.

屢遷; 다차(多次) 변역(變易). () 계사하(系辭下) ()의 서()가 됨은 가히 멀리하지 못하고 도()가 됨은 거듭() 변천(變遷; )한다.

寂然不動; () 계사상(繫辭上). ()은 무사(無思)며 무위(無爲)니 적연(寂然)하여 부동(不動)하면서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고(. . 萬事)에 통한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하겠는가.

無間業; 5종의 대악업이 있으며 이 악업은 결정코 극고(極苦)의 과보를 받고 다시 여업여과(餘業餘果)의 간격이 없는지라 고로 명칭이 무간업임.

返常合道; 범상(凡常) 가운데로부터 반회하여 직도(直道)에 합함.

圭峯; 종밀(宗密; 780-841)이니 화엄종 제5. 당대 과주(사천 서충) 사람이니 속성은 하()며 세칭이 규봉선사(圭峰禪師)ㆍ규산대사(圭山大師)며 시호는 정혜선사(定慧禪師). 원화 2(807)경사(京師)에 다다라 공거(貢擧)에 응하는데 길이 수주(遂州)를 경유했으며 도원화상(道圓和尙)의 설법을 청문(聽聞)하고 이에 그를 따라 출가했고 아울러 구족계를 받았음. 또 도원의 권유에 의해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의 제자 익주 남인선사(南印禪師)를 참했고 다시 낙양 보국사의 신조(神照)를 참알했음. 원화 5년 징관(澄觀)의 좌하(座下)에 들어가 화엄교학을 수지(受持)했음. 원화 11 년 정월 종남산 지거사(智炬寺)에 머물면서 스스로 맹세하기를 하산하지 않겠다 했음. 여기에서 장경을 3년 동안 편람(遍覽)했고 찬술(撰述)에 원각경과문(圓覺經科文) 2권이 있음. 후에 종남산 초당사(草堂寺)에 들어가 잠심(潛心; 마음을 가라앉힘)하고 수학하면서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 3권을 지었음. 다시 사원 남쪽의 규봉란야(圭峰蘭若)로 옮겨 오로지 송경수선(誦經修禪)에 종사했음. 태화(太和) 2(828) 불러 궁중에 들어가 강경했는데 제()가 자방포(紫方袍)를 주었음. 상국(相國) 배휴(裴休)와 조야지사(朝野之士)가 다분히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래지 않아 귀산(歸山)을 청했음. 회창(會昌) 원년 정월 6일 흥복탑원(興福塔院)에서 좌화(坐化)했으니 나이는 62며 납은 34. 선원제전집 100(현재 겨우 만 남았음)ㆍ원인론 1권ㆍ우란분경소 2권ㆍ화엄경윤관 15권ㆍ원각경대소석의초 13권ㆍ금강반야경소론찬요 2권ㆍ기신론소주 4권ㆍ주화엄법계관문 1권ㆍ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 1권 등 30여 부를 지었음 [송고승전6. 전등록13. 선종정맥1. 불조통기29. 오등회원2. 전당문743규봉선사탑명병서].

元亨利貞; 수릉엄경지장소사의. 건지사덕(乾之四德) 주역 건괘 상사(象辭)에 이르되 건()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이다. 문언(文言)에 가로되 원()이란 것은 선()의 장()이며 형()이란 것은 가()의 회()며 리()란 것은 의()의 화()며 정()이란 것은 사()의 간()이다. 군자는 인()을 체달해야 족히 사람들의 장()이 되고 가()가 모여야() 족히 예()에 합하고 사람()을 이롭게 해야 족히 뜻()을 조화하고 정고(貞固; 곧고 견고)해야 족히 일을 맡는다(). 군자는 이 4덕을 행하는 자이므로 고로 가로되 건()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이다.

一氣; 도의 소종(所宗;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음양과 천지의 근본이 됨. 자성의 청정한 마음에 비유함.

常樂我淨; 이르자면 불천불변(不遷不變)을 이름해 상()이며 생사고를 여읨을 이름해 락()이며 팔대자재(八大自在)를 이름해 아()며 모든 혹염(惑染)을 여읨을 이름해 정()이니 곧 불타의 4덕임.

一心; 1. 곧 일승(一乘). 2. 특별히 교외별전의 선법을 가리킴.

孔夫子; 부자는 공자임. 일찍이 노나라 대부가 되었으므로 고로 이르되 부자(夫子). 제자들이 관칭(官稱)에 연결하여 그를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했음. 후에 스승을 존경하는 자들이 인례(因例)하여 가로되 부자라 했음.

殺著買草鞋; ()는 소배절(所拜切; )이니 질(; 빠름). (). ()은 조사.

 

答劉通判彦冲

令兄寶學公 初未嘗知管帶忘懷之事 信手摸著鼻孔 雖未盡識得諸方邪正 而基本堅實 邪毒不能侵 忘懷管帶在其中矣 若一向忘懷管帶 生死心不破 陰魔得其便 未免把虛空隔截作兩處 處靜時受無量樂 處鬧時受無量苦 要得苦樂均平 但莫起心管帶 將心忘懷 十二時中放敎蕩蕩地 忽爾舊習瞥起 亦不著用心按捺 只就瞥起處 看箇話頭 狗子還有佛性也無 無 正恁麽時 如紅鑪上一點雪相似 眼辦手親一逴逴得 方知懶融道 恰恰用心時 恰恰無心用 曲談名相勞 直說無繁重 無心恰恰用 常用恰恰無 今說無心處 不與有心殊 不是誑人語 昔婆修盤頭 一食不臥 六時禮佛 淸淨無欲 爲衆所歸 二十祖闍夜多 將欲度之 問其徒曰 此遍行頭陀 能修梵行 可得佛道乎 其徒曰 我師精進如此 何故不可 闍夜多曰 汝師與道遠矣 設苦行歷於塵劫 皆虛妄之本也 其徒不勝憤 皆作色厲聲 謂闍夜多曰 尊者蘊何德行 而譏我師 闍夜多曰 我不求道 亦不顚倒 我不禮佛 亦不輕慢 我不長坐 亦不懈怠 我不一食 亦不雜食 我不知足 亦不貪欲 心無所希 名之曰道 婆修聞已發無漏智 所謂先以定動 後以智拔也 杜撰長老輩 敎左右靜坐等作佛 豈非虛妄之本乎 又言 靜處無失 鬧處有失 豈非壞世間相而求實相乎 若如此修行 如何契得懶融所謂今說無心處不與有心殊 請公於此諦當思量看 婆修初亦將謂 長坐不臥可以成佛 纔被闍夜多點破 便於言下知歸 發無漏智 眞是良馬見鞭影而行也 衆生狂亂是病 佛以寂靜波羅蜜藥治之 病去藥存 其病愈甚 拈一放一 何時是了 生死到來 靜鬧兩邊都用一點不得 莫道鬧處失者多 靜處失者少 不如少與多得與失 靜與鬧 縛作一束 送放他方世界 却好就日用非多非少 非靜非鬧 非得非失處 略提撕看 是箇甚麽 無常迅速 百歲光陰 一彈指頃便過也 更有甚麽閑工夫 理會得理會失 理會靜理會鬧 理會多理會少 理會忘懷理會管帶 石頭和尙云 謹白參玄人 光陰莫虛度 這一句子 開眼也著 合眼也著 忘懷也著 管帶也著 狂亂也著 寂靜也著 此是徑山如此差排 想杜撰長老輩 別有差排處也 咄且置是事

通判; 山堂肆考商集二十六曰 通判秦置御以佐狩在邊 爲長史兵馬 漢因之 (中略)宋太祖懲五代藩鎭之弊 乾德(963-967)初 始置諸州通判

令兄; 對方的哥哥

陰魔; 五陰能害衆生佛性 故譬之魔 四魔之一 註心賦二 四魔者 一天魔 二陰魔 三死魔 四煩惱魔

蕩蕩地; 落落廣大之貌 地 助詞

眼辦手親; 又作眼辨手親 眼親手辨 眼光動作正確而迅速 指禪人法眼明銳 機鋒迅疾

一逴逴得; 逴 乃超越之意 謂一躍而超越煩惱妄想 又轉指直下承當之意

懶融; 法融(594-657) 唐代僧 爲牛頭宗之開祖 世稱牛頭法融 懶融 潤州延陵(江蘇鎭江)人 俗姓韋 十九歲卽盡通經史 偶閱般若經 遂歸信佛法 更入茅山依炅法師出家 二十年中 專精匪懈 貞觀十七年(643) 於牛頭山幽棲寺北巖下別立禪室 潛修禪觀 淨侶四至 百有餘人 道信聞之 往付所受僧璨之頓敎法門 此後 以此山爲中心之法系稱爲牛頭宗 至慧忠爲止 稱牛頭六祖 其勢盛極一時 至宋代以後漸衰 [唐高僧傳二十六 傳燈錄四 五燈會元二]

婆修盤頭; <> Vasubandhu 此云遍行 羅閱城人 姓毘舍佉 父光蓋 母嚴一 禪宗第二十一祖 [佛祖歷代通載四 傳燈錄二]

一食; 摩訶僧祇律十七 爾時佛告諸比丘 如來以一食故 身體輕便 得安樂住 汝等亦應一食 一食故身體輕便 得安樂住 爾時尊者跋陀利白佛言 世尊 我不堪一食 何以故 我朝暮食者乃得安樂 佛告跋陀利 汝不能一食者 晨起持二鉢入村乞食 一鉢朝食 一鉢中食 故是二食 如是第二第三敎 猶言不堪 爾時諸弟子 盡受世尊敎 唯除跋陀利 跋陀利慚愧故 三月不到佛所

六時; 指晝夜六時 乃將一晝夜分爲六時 卽晨朝 日中 日沒(以上爲晝三時) 初夜 中夜 後夜(以上爲夜三時)

闍夜多; 北天竺人 西天第二十祖 父母素信三寶 然坎坷多疾 師遂生不平之疑 後於中天竺遇鳩摩羅多尊者 尊者釋以因果罪福之說 師頓釋所疑 遂出家受具足戒 竝嗣其法 後至羅閱城(王舍城) 敷揚頓敎 當時學衆唯尙辯論 爲首者名爲婆修盤頭(世親) 常日僅一食 晝夜不臥 六時禮佛 淸淨無欲 爲衆所歸 師遂度化之 臨入滅時 卽付法於婆修盤頭 [寶林傳四 祖堂集二 傳燈錄二]

頭陀; <> dhuta 梵語也 又作杜荼(同茶) 杜多 投多 偸多 謂去除塵垢煩惱 苦行之一 此翻爲抖擻 修治 棄除 沙汰 浣洗 搖振 意卽對衣食住等棄其貪著 以修鍊身心 有十二頭陀行 迦葉爲頭陀行第一 故有迦葉頭陀 金色頭陀之名

梵行; 梵者淸淨之義 斷婬欲之法爲梵行 卽梵天之行法也 故稱梵行

塵劫; 謂長遠之時劫 法華經三 如人以力磨三千大千土 盡此諸地種 皆悉以爲墨 過於千國土 乃下一塵點 如是展轉點 盡此諸塵墨 如是諸國土 點與不點等 復盡末爲塵 一塵爲一劫 此諸微塵數 其劫復過是 彼佛滅度來 如是無量劫

作色; 臉上變色 指神情變嚴肅或發怒

尊者; 梵語阿梨耶 譯作聖者 尊者 謂智德具尊者 蓋羅漢之尊稱 或有禪師亦稱尊者之例 如趙州法嗣嚴陽尊者 覺範號寂音尊者 紫柏稱紫柏尊者等 資持記下一 尊者 臘高德重 爲人所尊 行事鈔下一 下座稱上座爲尊者 上座稱下座爲慧命

無漏智; 謂三乘之人 離煩惱無染之淸淨智也 斷惑證理 卽此智之用

先以定動; 涅槃經三十一曰 如拔堅木 先以手動 後則易出 菩薩定慧亦復如是 先以定動 後以智拔

點破; 點檢 破 助詞 相當于得 了 著

良馬見鞭影而行; 良馬不須鞭打 只要瞥見鞭影便向前馳行 比喩參學者有靈悟之性

波羅蜜; <> pāramitā 又作波羅蜜多 波囉弭多 播囉弭多 譯言究竟 到彼岸 度無極 又單譯曰度

石頭; 希遷(700-790) 唐代僧 又稱無際大師 端州高要(廣東高要)人 俗姓陳 曾禮六祖慧能 靑原行思爲師 得靑原行思之印可 天寶(742-755)初年 居衡山南寺 寺之東有石狀如臺 乃結庵其上 時號石頭和尙 時江西以馬祖爲主 湖南以石頭爲主 四方學徒多輻湊於二師之門 唐貞元六年十二月示寂 壽九十一 臘六十三 諡無際大師 著有參同契 草庵歌各一篇行世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參玄; 參究玄義 亦卽參禪

開眼也著; 著 接觸 受到

 

유통판(通判)彦冲에게 답하다

영형(令兄) 보학공(寶學公)은 처음에 일찍이 관대(管帶)와 망회(忘懷; 忘記)의 일을 알지 못했으나 손 닿는 대로(信手) 비공(鼻孔)을 모착(摸著)했습니다. 비록 제방(諸方)의 사정(邪正)을 다 식득(識得)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본(基本)은 견실(堅實)하여 사독(邪毒)이 능히 침범(侵犯; )하지 못하니 망회(忘懷)와 관대(管帶)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만약 일향(一向) 망회관대(忘懷管帶)한다면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해 음마(陰魔)가 그 편의(便宜; 便)를 얻나니 허공을 잡아 격절(隔截)하여 양처(兩處)를 지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처정(處靜)할 때 무량락(無量樂)을 받고 처뇨(處鬧)할 때 무량고(無量苦)를 받나니 고락이 균평(均平)함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 마음을 일으켜 관대(管帶)하거나 마음을 가지고 망회(忘懷)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시 중에 놓아 탕탕지(蕩蕩地)하게 할지니 홀연히(忽爾) 구습(舊習)이 갑자기() 일어나더라도 또한 용심(用心)을 붙여 안날(按捺; 抑止)하지 말고 다만 갑자기 일어나는 곳으로 나아가 저() 화두를 간()하되 구자(狗子)는 도리어 불성이 있는가 또는 없는가. 없다(). 바로 이러한 때 마치 홍로(紅鑪) 위의 일점(一點) 눈과 상사(相似)합니다. 안판수친(眼辦手親)하는 자는 일탁탁득(一逴逴得)하여 바야흐로 나융(懶融)이 말한 것을 압니다. 흡흡(恰恰; 正好) 용심(用心)할 때 흡흡 무심(無心)을 쓸지니 곡담(曲談; 曲說)은 명상(名相)이 노고롭고 직설(直說)은 번중(繁重)이 없다. 무심(無心)을 흡흡 쓰면 상용(常用)해도 흡흡 없나니 지금 설하는 무심(無心)한 곳은 유심(有心)과 다르지() 않다(이상 나융의 말). 이 광인(誑人)의 말이 아닙니다. 옛적()에 바수반두(婆修盤頭)가 늘 일식(一食)하며 눕지 않았고 6(六時)에 예불하고 청정히 욕심이 없어 대중이 귀의하는 바가 되었다. 20조 사야다(闍夜多)가 장차 그()를 제도하고자 하여 그 도중(徒衆)에게 물어 가로되 이 편행두타(遍行頭陀)는 능히 범행(梵行)을 닦으니 가히 불도(佛道)를 얻겠는가. 그 도중이 가로되 나의 스승은 정진(精進)함이 이와 같거늘 무슨 연고로 불가(不可)하겠습니까. 사야다가 가로되 너희 스승은 도와 멀다. 설사(設使; ) 고행(苦行)하며 진겁(塵劫)을 겪더라도 모두 허망의 근본이다. 그 도중이 분()을 이기지 못해 모두 작색(作色)하고 여성(厲聲; 嚴厲한 소리)으로 사야다에게 일러 가로되 존자(尊者)는 무슨 덕행(德行)을 쌓았기에() 나의 스승을 나무랍니까(). 사야다가 가로되 나는 도를 구하지 않지만 또한 전도(顚倒)되지 않고 나는 예불하지 않지만 또한 경만(輕慢)하지 않고 나는 장좌(長坐)하지 않지만 또만 해태(懈怠)하지 않고 나는 일식(一食)하지 않지만 또한 잡식(雜食)하지 않고 나는 지족(知足)하지 않지만 또한 탐욕(貪欲)하지 않고 마음에 바라는() 바가 없으니 이를 이름해 가로되 도()라 한다. 바수(婆修)가 듣고 나서 무루지(無漏智)를 발()했으니 이른 바 먼저 정()으로써 움직이고(先以定動) 뒤에 지()로써 뽑음(後以智拔)입니다. 두찬(杜撰) 장로배(長老輩)가 좌우(左右)로 하여금 정좌(靜坐) 등을 하게 하면서 부처를 짓는다 함이 어찌 허망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또 말하되 정처(靜處)에선 잃음이 없고 요처(鬧處)에선 잃음이 있다 하니 어찌 세간상(世間相)을 무너뜨리고 실상(實相)을 구함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어떻게 나융(懶融)이 이른 바 지금 무심(無心)한 곳을 설함은 유심(有心)과 다르지() 않다와 계합함을 얻겠습니까. 청컨대 공()은 여기에서 체당(諦當; 穩當. 適合)히 사량해 보십시오. 바수(婆修)가 처음에 다만() 이르기를 장좌불와(長坐不臥)해야 가이(可以) 성불한다 했다가 겨우 사야다(闍夜多)의 점파(點破)를 입자 바로 언하(言下)에 지귀(知歸)하고 무루지(無漏智)를 발()했으니 참으로 이는 양마가 채찍 그림자를 보고 주행(走行)하는 것입니다(良馬見鞭影而行). 중생이 이 병()으로 광란(狂亂)하니 부처가 적정바라밀(寂靜波羅蜜)의 약로써 이()를 치료하거니와 병이 제거되었는데 약을 둔다면 그 병은 더욱() 심합니다. 염일방일(拈一放一)한다면 어느 때 이를 마치겠습니까. 생사가 도래하면 정요(靜鬧) 양변(兩邊)을 모두() 일점(一點)도 씀을 얻지 못합니다. 요처(鬧處)에서 잃는 자가 많고 정처(靜處)에서 잃는 자가 적다고 말하지 말지니 소()와 다()ㆍ득()과 실()ㆍ정()과 요()를 동여() 한 묶음()으로 만들어 타방세계(他方世界)로 송방(送放)함만 같지 못합니다. 도리어 좋게(), 일용(日用)의 비다비소(非多非少)ㆍ비정비요(非靜非鬧)ㆍ비득비실(非得非失)의 곳으로 나아가() 간략히 제시(提撕; 참구)하여 보십시오. 시개(是箇; 이것)가 무엇인가. 무상(無常)이 신속하여 백세(百歲)의 광음(光陰)이 한 번 탄지(彈指)하는 경각(頃刻)에 문득(便) 지나가거늘 다시 무슨(甚麽) 한공부(閑工夫)가 있어 득()을 이회(理會; 理解. 領會)하고 실()을 이회하고 정()을 이회하고 요()를 이회하고 다()를 이회하고 소()를 이회하고 망회(忘懷)를 이회하고 관대(管帶)를 이회하겠습니까. 석두화상(石頭和尙)이 이르되 참현(參玄)하는 사람에게 근백(謹白)하나니 광음(光陰)을 헛되이 지내지() 말아라(參同契). 1구자(句子; 는 조사)는 눈 뜨고도 착(開眼也著)하고 눈 감아도 착(; 접촉)하고 망회(忘懷)하여도 착하고 관대(管帶)하여도 착하고 광란(狂亂)하여도 착하고 적정(寂靜)하여도 착합니다. 이것은 이 경산(徑山; 대혜)이 이와 같이 차배(差排)함이거니와 상념하건대 두찬(杜撰) 장로배(長老輩)는 달리 차배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 시사(是事)를 차치(且置)합니다.

通判; 산당사고상집26에 가로되 통판은 진()에서 설치했고 변방에서 좌수(佐狩)하여 제어(制御)했고 장사병마(長史兵馬)로 삼았다. ()도 이를 따랐다 (중략) 송태조가 오대(五代) 번진(藩鎭)의 폐단을 징치(懲治)하여 건덕(963-967) 초 비로소 제주통판(諸州通判)을 설치했다.

令兄; 대방(對方)의 가가(哥哥; 1. . 오빠. 2. 친척 중의 동년배로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陰魔; 5()이 능히 중생의 불성을 해하는지라 고로 마()에 비유함. 4마의 하나. 주심부2. 4마란 것은 1은 천마며 2는 음마(陰魔)3은 사마며 4는 번뇌마다.

蕩蕩地; 낙락(落落; 뜻하는 바가 크고 뛰어남)하고 광대한 모양. 지는 조사.

眼辦手親; 또 안변수친(眼辨手親)ㆍ안친수변(眼親手辨)으로 지음. 안광과 동작이 정확하면서 신속함이니 선인의 법안이 명예(明銳)하고 기봉이 신질(迅疾)함을 가리킴.

一逴逴得; ()은 곧 초월의 뜻. 이르자면 일약(一躍)하여 번뇌망상을 초월함. 또 전()하여 직하에 승당(承當)함의 뜻을 가리킴.

懶融; 法融(594-657)이니 당대승. 우두종(牛頭宗)의 개조(開祖)가 되며 세칭이 우두법융(牛頭法融), 나융(懶融). 윤주(潤州)의 연릉(강소 진강) 사람이며 속성은 위(). 19세에 곧 경사(經史)를 다 통했음. 우연히 반야경을 열람하다가 드디어 불법에 귀의하고 믿었음. 다시 모산(茅山)에 들어가 경법사(炅法師)에게 의지해 출가하였고 20년 중에 오로지 정진하며 게으르지 않았음. 정관 17(643) 우두산 유서사(幽棲寺)의 북쪽 바위 아래 따로 선실(禪室)을 세워 가만히 선관(禪觀)을 닦았는데 청정한 벗들이 사방에서 이르렀으며 백여 사람이었음. 도신(道信)이 이를 듣고 가서 받은 바 승찬(僧璨)의 돈교법문(頓敎法門)을 부촉하였음. 차후에 이 산을 중심으로 한 법계(法系)를 우두종으로 일컬었으며 혜충(慧忠)에 이르러 그치게 되었으니 호칭이 우두(牛頭) 6(). 그 세력이 한 시대에 성()함이 지극하다가 송대(宋代)에 이른 이후에 점차 쇠미해 졌음 [당고승전26. 전등록4. 오등회원2].

婆修盤頭; <> Vasubandhu. 여기에선 이르되 편행(遍行)이며 라열성(羅閱城) 사람이며 성은 비사가(毘舍佉)며 부친은 광개며 모친은 엄일이니 선종 제21[불조역대통재4. 전등록2].

一食; 마하승기율17. 이때 불타가 모든 비구에게 고하시되 여래는 한 번 식사를 하는 고로 신체가 가볍고 편안하며 안락하게 머묾을 얻는다. 너희 등도 또한 응당 1()하라. 1식하는 고로 신체가 가볍고 편안하며 안락하게 머무리라. 이때 존자 발타리(跋陀利)가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나는 1식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무슨 연고인가 하오면 나는 아침 저녁으로 먹어야 이에 안락을 얻습니다. 불타가 발타리에게 고하시되 네가 능히 일식하지 못한다면 새벽에 일어나 두 발우를 가지고 촌에 들어가 걸식하라. 한 발우는 조식이며 한 발우는 중식이니 고로 이는 두 번의 식사다.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가르쳤으나 오히려 말하되 감당하지 못한다 했다. 이때 모든 제자가 다 세존의 가르침을 수용했으나 오직 발타리만 제했다. 발타리가 부끄러운 고로 석 달 동안 불타의 처소에 이르지 못했다.

六時; 주야 6시를 가리킴. 1주야를 가지고 6시로 분리하나니 곧 신조(晨朝)ㆍ일중(日中)ㆍ일몰(日沒) (이상은 晝三時가 됨)ㆍ초야ㆍ중야ㆍ후야 (이상은 夜三時가 됨).

闍夜多; 북천축 사람이며 서천 제20. 부모가 본디 3()를 믿었지만 그러나 감가(坎坷; 不遇)하고 질병이 많았음. 스님이 드디어 평등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내었음. 후에 중천축에서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를 만났는데 존자가 인과죄복(因果罪福)의 설()로써 해석하자 스님이 문득 의심했던 바가 풀렸고 드디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라열성(羅閱城; 王舍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부양(敷揚)했는데 당시의 학중(學衆)은 오직 변론(辯論)을 숭상했음. 우두머리가 되는 자의 이름이 바수반두(婆修盤頭; 世親)였는데 늘 하루에 겨우 1()하고 주야로 눕지 않았으며 육시(六時)에 예불했으며 청정하여 무욕(無欲)이라 대중이 귀의하는 바였음. 스님이 드디어 그를 도화(度化)하였고 입멸에 임한 때 곧 바수반두에게 부법했음 [보림전4. 조당집2. 전등록2].

頭陀; <> dhuta. 범어임. 또 두다(杜荼; 와 같음)ㆍ두다(杜多)ㆍ투다(投多)ㆍ투다(偸多)로 지음. 이르자면 진구(塵垢)와 번뇌를 제거하는 고행의 하나임. 여기에서 번역하면 두수(抖擻)ㆍ수치(修治)ㆍ기제(棄除)ㆍ사태(沙汰)ㆍ완세(浣洗)ㆍ요진(搖振)이 됨. 뜻으로는 곧 의식주(衣食住) 등에 대해서 그 탐착을 버리고 신심(身心)을 수련함. 12두타행(頭陀行)이 있으며 가섭이 두타행의 제일이 됨. 고로 가섭두타ㆍ금색두타의 명칭이 있음.

梵行; 범이란 것은 청정의 뜻이니 음욕의 법을 끊음이 범행임. 곧 범천의 행법인지라 고로 일컬어 범행임.

塵劫; 장원(長遠)의 시겁(時劫)을 말함. 법화경3. 어떤 사람이 힘으로써 삼천대천의 흙을 갈아 이 모든 지종(地種; 四大種의 하나니 大種. 사물상의 견고한 성품을 일러 지라 하며 이 견고한 성품이 일체의 물질에 두루하여 능히 만드는 이 되므로 고로 이르되 大種)을 다하여 모두 다 먹으로 삼아서 1천 국토를 지나면 이에 1()을 떨어뜨려 점 찍는다. 이와 같이 전전(展轉)히 점 찍어 이 모든 진묵(塵墨)을 다하고는 이와 같은 모든 국토, 점 찍거나 점 찍지 않은 등을 다시 모두 가루로 만들어 진()을 삼으면 1()1()이 된다. 이 모든 미진(微塵)의 수에 그 겁은 다시 이를 초과하나니 그 부처가 멸도하여 온 게 이와 같이 무량한 겁이다.

作色; 뺨 위가 변색함. 신정(神情; 표정. 기색)이 엄숙하게 변하거나 혹 성을 냄을 가리킴.

尊者; 범어 아리야(阿梨耶; ār ya)는 번역해 성자ㆍ존자로 지음. 이르자면 지덕(智德)이 존엄(尊嚴)을 갖춘 자니 대개 라한(羅漢)의 존칭임. 혹은 선사(禪師)도 또한 존자로 일컫는 예()가 있음. 예컨대() 조주(趙州)의 법사(法嗣)인 엄양존자(嚴陽尊者)며 각범(覺範)의 호가 적음존자(寂音尊者)며 자백(紫柏)을 자백존자(紫柏尊者)라고 일컫는 등임. 자지기하1. 존자(尊者) 납고덕중(臘高德重)하여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가 된다. 행사초하1. 하좌(下座)는 상좌(上座)를 존자(尊者)라고 일컫고 상좌는 하좌를 혜명(慧命)이라고 일컫는다.

無漏智; 이르자면 3()의 사람이 번뇌를 여읜 무염(無染)의 청정한 지혜임. 미혹을 단절하고 이치를 증득함은 곧 이 지혜의 씀().

先以定動; 열반경31에 가로되 견고한 나무를 뽑으면서 먼저 손으로 움직이면 뒤에 곧 쉽게 나옴과 같이 보살의 정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먼저 정()으로써 움직이고 후에 지()로써 뽑는다.

點破; 점검. 파는 조사니 득()ㆍ료()ㆍ착()에 상당함.

良馬見鞭影而行; 우량한 말은 채찍으로 때림을 쓰지 않고 다만 요컨대 채찍 그림자를 언뜻 보면 바로 앞을 향해 달려감. 참학하는 자가 영오(靈悟)의 성질이 있음에 비유.

波羅蜜; <> pāramitā. 또 바라밀다(波羅蜜多)ㆍ바라미다(波囉弭多)ㆍ파라미다(播囉弭多)로 지으며 번역해 말하면 구경(究竟)ㆍ도피안(到彼岸)ㆍ도무극(度無極)이며 또 단역(單譯)해 가로되 도().

石頭; 희천(希遷; 700-790) 당대승. 또 호칭이 무제대사(無際大師). 단주(端州) 고요(高要; 광동 고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 일찍이 6조 혜능을 참례했고 청원행사(靑原行思)를 스승으로 삼아 청원행사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천보(天寶; 742-755) 초년(初年)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거주했는데 사원의 동쪽에 암석이 있어 형상(形狀)이 돈대()와 같았으며 이에 암자를 그 위에 엮은지라 당시에 호하기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했음. 당시(當時)에 강서(江西)는 마조(馬祖)를 주체(主體)로 삼았고 호남(湖南)에선 석두(石頭)를 주체로 삼았는데 사방의 학도(學徒)가 많이 두 스님의 문으로 복주(輻湊)하였음. 당 정원(貞元) 612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91이며 승랍은 63. 시호(諡號)가 무제대사(無際大師)며 저서에 참동계(參同契)ㆍ초암가(草庵歌) 1()이 있어 세상에 행함 [송고승전9. 전등록14. 오등회원5].

參玄; 현의(玄義)를 참구함. 또한 곧 참선임.

開眼也著; ()은 접촉이며 수도(受到; 받음).

 

左右做靜勝工夫 積有年矣 不識於開眼應物處 得心地安閑否 若未得安閑 是靜勝工夫未得力也 若許久猶未得力 當求箇徑截得力處 方始不辜負平昔許多工夫也 平昔做靜勝工夫 只爲要支遣箇鬧底 正鬧時却被鬧底聒擾自家方寸 却似平昔不曾做靜勝工夫一般耳 這箇道理 只爲太近 遠不出自家眼睛裏 開眼便刺著 合眼處亦不缺少 開口便道著 合口處亦自現成 擬欲起心動念承當 渠早已蹉過十萬八千了也 直是無爾用心處 這箇最是省力 而今學此道者 多是要用力求 求之轉失 向之愈背 那堪墮在得失解路上 謂鬧處失者多 靜處失者少 左右在靜勝處 住了二十餘年 試將些子得力底來看則箇 若將樁樁地底 做靜中得力處 何故却向鬧處失却 而今要得省力靜鬧一如 但只透取趙州無字 忽然透得 方知靜鬧兩不相妨 亦不著用力支撐 亦不作無支撐解矣

心地; 心爲萬法之本 能生一切諸法 故曰心地 又修行者依心而近行 故曰心地 又三業中 心業最勝 故曰心地 宗鏡錄十一 衆生之心 猶如大地 五穀五果 從大地生 如是心法 生世出世 善惡五趣 有學無學 獨覺菩薩 及於如來 以是因緣 三界唯心 心名爲地

辜負; 辜 通孤 孤 假借爲辜 孤 負也 爾雅 辜 辟 戾也

平昔; 往常 往日

支遣; 應對 對處

聒擾; 猶打擾(擾亂)

十萬八千; 意謂相距禪法十萬八千里 形容距離極遠 差別極大 是禪家習用批評語

則箇; 語的餘聲

()

좌우(左右)가 정승공부(靜勝工夫)를 지은 지 여러 해(有年)를 쌓았습니다. 알지 못하나니 눈 뜨고 응물(應物; )하는 곳에 심지(心地)가 안한(安閑)함을 얻습니까. 만약 안한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정승공부(靜勝工夫)에서 득력(得力)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허구(許久; 매우 오램)히 아직 득력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저() 경절(徑截; 捷徑)의 득력처(得力處)를 구해야 비로소(方始) 평석(平昔)의 허다한 공부를 저버리지(辜負) 않을 것입니다. 평석에 정승공부(靜勝工夫)를 지음은 다만 저() 시끄러운 것(鬧底)에 지견(支遣; 對處)하고자 함이거늘 바로() 요시(鬧時)에 도리어 요지(鬧底; 시끄러운 것)가 자가(自家)의 방촌(方寸)을 괄요(聒擾)함을 입는다면 도리어 평석(平昔)에 일찍이 정승공부를 짓지 않음과 일반(一般)일 것입니다. 저개(這箇; 는 조사) 도리는 다만 너무() 가깝기 때문에, 멀어도 자가(自家)의 눈동자 속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개안(開眼)해도 바로 자착(刺著)하고 합안(合眼)하는 곳에도 또한 결소(缺少)하지 않고 개구(開口)하매 바로 도착(道著; 말하다)하고 합구(合口)하는 곳에도 또한 스스로 현성(現成)합니다. 기심동념(起心動念)하여 승당(承當)하려고 한다면 거()는 벌써 이미 십만팔천(十萬八千)을 차과해버립니다(蹉過了也). 바로() 이는 네가 용심(用心)할 곳이 없다고 한 저개(這箇)가 가장 이 생력(省力)입니다. 이금(而今)에 이 도를 배우는 자가 다분히 이, 역구(力求)함을 요용(要用)하려고 하지만 구할수록 더욱() 잃고 향할수록 더욱 위배됩니다. 어찌() (; )히 득실의 해로상(解路上)에 떨어져 있으면서 이르되 요처(鬧處)에서 잃는 자가 많고 정처(靜處)에서 잃는 자가 적다고 하겠습니까. 좌우가 정승(靜勝)한 곳에 있으면서 20여 년 머물렀으니(住了) 시험 삼아 사자(些子; 些少)의 득력지(得力底; 는 조사)를 가지고 와 보십시오(則箇). 만약 땅에 말뚝을 박고 박은 것(樁樁地底)을 가지고 정중(靜中)에서 득력한 곳으로 짓는다면 무슨 연고로 도리어 요처(鬧處)를 향해 잃어버립니까. 이금(而今)에 생력(省力)하여 정뇨(靜鬧)가 일여(一如)함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但只) 조주무자(趙州無字)를 투취(透取)하십시오. 홀연히 투득(透得)한다면 비로소 알지니 정뇨(靜鬧) 둘이 서로 방애(妨礙)되지 않으며 또한 용력(用力)을 붙여 지탱(支撐)하지 않으며 또한 지탱이 없다는 이해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心地; 심은 만법의 근본이며 능히 일체의 제법을 내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임. 또 수행자가 심에 의해 행에 접근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며 또 3업 중에 심업이 가장 수승하므로 고로 가로되 심지임. 종경록11. 중생의 마음이 마치 대지와 같아서 5곡과 5()가 대지를 좇아 난다. 이와 같이 심법이 세간과 출세간ㆍ선악과 5()ㆍ유학과 무학ㆍ독각과 보살 및 여래를 낸다. 이 인연으로 3계가 유심이며 마음을 지()라고 이름한다.

平昔; 왕상(往常; 과거의 一般的日子). 왕일(往日).

辜負; ()는 고()와 통하며 고()는 가차하여 고()로 지음. ()는 부(). 이아 고() (; 물리칠 벽)이다. (; 어그러질 려).

支遣; 응대. 대처(對處).

聒擾; 타요(打擾; 擾亂)와 같음.

十萬八千;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과 서로 떨어짐이 십만팔천 리니 거리의 극히 멂과 차별이 극히 큼을 형용함. 이는 선가에서 습관으로 쓰는 비평어임.

則箇; ()의 여성(餘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