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서장주역(書狀註譯) 진국태부인(秦國太夫人)에게 답하다-왕내한(汪內翰)〈彦章; 언장〉에게 답하다 11

태화당 2025. 10. 5. 09:06

秦國太夫人

謙禪歸 領所賜敎 幷親書數頌 初亦甚疑之 及詢謙子細 方知不自欺 曠劫未明之事 豁爾現前不從人得 始知法喜禪悅之樂 非世間之樂可比 山野爲國太歡喜 累日寢食俱忘 兒子作宰相 身作國夫人 未足爲貴 糞掃堆頭收得無價之寶 百劫千生受用不盡 方始爲眞貴耳 然切不得執著此貴 若執著則墮在尊貴中 不復興悲起智憐愍有情耳 記取記取

秦國太夫人; 秦國夫人計氏 嗣法於大慧宗杲 北宋時期邛州臨邛人 張氏南軒族譜記載 計氏守志 節孝兼全 訓以義方 人欽孟母 以子貴封秦國夫人 後改封蜀國太夫人 常敎育其子張浚說 臣寧言而死於斧鉞 不能忍不言以負陛下 [百度百科 禪燈世譜 五燈會元二十] 國太夫人; 漢制列侯之母稱太夫人 後來凡官僚豪紳的母親 不論在世與否 均稱太夫人 唐代命婦定制一品國夫人 三品以上爲郡夫人 四品爲郡君 五品爲縣君 宋代有國太夫人 國夫人 郡太夫人 郡夫人 郡太君 郡君 縣太君 縣君 孺人等(以上 母加太字) 徽宗時改定封號 又有淑人 恭人等稱號 淸制 凡命婦封號 一品二品稱夫人 三品稱淑人 四品稱恭人 五品稱宜人 六品稱安人 七品以下稱孺人 不分正從 文武職相同 又宮廷中嬪妃 稱內命婦 外廷官員妻母稱外命婦 [百度百科] 夫人; 一古代命婦的封號 [百度漢語] 二尊稱自己及他人的妻子 此指一

曠劫; 曠 久也 遠也 久遠 曠劫卽無限長遠的時間

法喜; 又作法悅 指聽聞佛陀敎法 因起信而心生喜悅

禪悅; 入於禪定者 其心愉悅自適之謂

有情; 無情之對稱 梵語曰薩埵 舊譯曰衆生 新譯曰有情 有情識者 有愛情者 總名動物

 

진국태부인(秦國太夫人; 저본에 로 지었음))에게 답하다

겸선(謙禪; 道謙 禪人)이 돌아오매 주신 바 가르침과 아울러 친서(親書) 수송(數頌)을 영수(領受; )했습니다. 처음엔 또 심히 의심했습니다만 겸()에게 자세히 물음()에 이르러 비로소 스스로 속이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광겁(曠劫)에 밝히지 못한 일이 활이(豁爾; 휑하게) 현전(現前)함은 사람으로 좇아 얻음이 아닙니다. 비로소 알지니 법희선열(法喜禪悅)의 낙은 세간의 낙으로 가히 비교하지 못합니다. 산야(山野)가 국태(國太)를 위해 환희하면서 여러 날(累日) 침식(寢食)을 모두() 잊었습니다. 아자(兒子; 아들. 張浚을 가리킴)는 재상(宰相)이 되었고 자신(自身; )은 국부인(國夫人)이 되었음은 족히 귀()함이 되지 않고 분소퇴두(糞掃堆頭; 쓰레기 무더기 가)에서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수득(收得)하셨으니 백겁천생(百劫千生)에 수용(受用)하여 다하지 않는지라 비로소(方始) 진귀(眞貴)가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이 귀()에 집착함을 얻지 말아야 하나니 만약 집착한다면 곧 존귀(尊貴) 가운데 떨어져 있는지라 다시 흥비기지(興悲起智; 悲智를 일으키다)하여 유정(有情)을 연민(憐愍)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기취(記取)하고 기취하십시오.

秦國太夫人; 진국태부인계씨(秦國夫人計氏)니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법을 이었음. 북송시기 공주 임공 사람. 장씨남헌족보(張氏南軒族譜)의 기재(記載) 계씨(計氏)는 수지(守志)했고 절효(節孝)를 겸전(兼全)했음. 의방(義方)으로 훈육했고 사람들이 맹모(孟母)처럼 흠모했음. 아들이 귀족이라 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으며 후에 촉국태부인(蜀國太夫人)으로 개봉(改封)했음. 항상 그 아들 장준(張浚)을 교육하며 설하기를 신하는 차라리 말하다가 부월(斧鉞; 도끼)에 죽을지언정 말하지 않아서 폐하를 저버림을 능히 참지 말아라 [백도백과. 선등세보. 오등회원20]. 國太夫人; 한나라 제도에 열후의 모친을 일컬어 태부인이라 했음. 후래에 무릇 관료의 우두머리 벼슬아치의 모친을, 재세 여부를 논하지 않고 균일하게 태부인으로 호칭했음. 당대(唐代) 명부(命婦)의 정제(定制)1품은 국부인이며 3품 이상은 군부인이 되며 4품은 군군이 되며 5품은 현군이 됨. 송대엔 국태부인ㆍ국부인ㆍ군태부인ㆍ군부인ㆍ군태군ㆍ군군ㆍ현태군ㆍ현군ㆍ유인(孺人) 등이 있었음 (이상, 모친은 太字를 더했음). 휘종 때 봉호를 개정(改定)했는데 또 숙인ㆍ공인 등의 칭호가 있었음. 청나라 제도는 무릇 명부의 봉호는 1품과 2품은 호칭이 부인이며 3품은 호칭이 숙인이며 4품은 호칭이 공인이며 5품은 호칭이 의인이며 6품은 호칭이 안인이며 7품 이하는 호칭이 유인(孺人)이었음. 정종(正從)을 분별하지 않았으며 문무의 직위도 서로 같았음. 또 궁정 중의 빈비(嬪妃)는 명칭이 내명부(內命婦)며 외정 관원의 처와 모친은 명칭이 외명부(外命婦)[백도백과]. 夫人; 1. 고대 명부(命婦; 封爵을 받은 夫人)의 봉호(封號) [백도한어]. 2. 자기 및 타인의 처자의 존칭.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曠劫; ()은 구()며 원()이니 구원(久遠). 광겁은 곧 무한히 길고 먼 시간.

法喜; 또 법열로 지음. 불타의 교법을 청문(聽聞)하고 인하여 믿음을 일으켜 마음에 희열을 냄을 가리킴.

禪悅; 선정에 든 자가 그 마음이 유쾌하고 자적(自適;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김)함을 이름.

有情; 무정의 대칭. 범어로 가로되 살타(薩埵; sattva)는 구역에 가로되 중생이며 신역에 가로되 유정이니 정식(情識)이 있는 자, 애정이 있는 자임. 총명(總名)이 동물.

 

答張丞相德遠

恭惟 燕居阿練若 與彼上人同會一處 娛戲毘盧藏海 隨宜作佛事 少病少惱 鈞候動止萬福 從上諸聖莫不皆然 所以於念念中 入一切法滅盡三昧 不退菩薩道 不捨菩薩事 不捨大慈悲心 修習波羅蜜 未甞休息 觀察一切佛國土 無有厭倦 不捨度衆生願 不斷轉法輪事 不廢敎化衆生業 乃至所有勝願 皆得圓滿 了知一切國土差別 入佛種性到於彼岸 此大丈夫四威儀中受用家事耳 大居士於此力行無倦 而妙喜於此亦作普州人 又不識 還許外人插手否 聞到長沙卽杜口毘耶深入不二 此亦非分外 法如是故 願居士如是受用 則諸魔外道 定來作護法善神也 其餘種種差別異旨 皆自心現量境界 亦非他物也 不識居士以爲何如

丞相; 官名 一般指皇帝下面的最高行政官 輔佐皇帝總理百政的官員 戰國 秦朝 漢朝 輔佐君主的最高官吏 宰相不一定是丞相 宰相在不同朝代 有不同的官職對應 比如在唐玄宗時期改尙書僕射爲丞相 當時的丞相就不是宰相之職 元朝的行省丞相則爲地方官 亦非宰相 [百度百科]

恭惟; 問候高位 故云恭惟 [大慧書栲栳珠]

燕居; 宴居 燕 安閑 安息 也作宴

阿練若; <> āraṇya <> arañña 又作阿蘭若 阿練茹 阿蘭那 阿蘭攘 阿蘭拏 略稱蘭若 練若 譯爲山林 荒野 指適合於出家人修行與居住之場所 又譯爲遠離處 寂靜處 最閑處 無諍處 卽距離聚落一俱盧舍而適於修行之空閒處 其住處或居住者 卽稱阿蘭若迦 按慧苑音義上 阿蘭若有三種 一達磨阿蘭若 乃求菩提之道場 二摩登伽阿蘭若 卽墳場 或距村落一俱盧舍 卽大牛之吼聲不能聽聞之處 三檀陀伽阿蘭若 卽無人煙之沙磧 至後代 一般之寺院精舍亦稱阿蘭若 此外 比丘爲修行而常居於阿蘭若 稱阿蘭若行 屬於十二頭陀行之一 [大毘婆沙論一三六 有部毘奈耶二十四 薩婆多毘尼毘婆沙五 大日經疏三 俱舍論光記十三 大乘義章十五 玄應音義二十三]

上人; 對智德兼備而可爲衆僧及衆人師者之高僧的尊稱 釋氏要覽上 內有智德 外有勝行 在衆人之上者爲上人 大品般若經十七 若菩薩摩訶薩 能一心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 護持心不散亂 稱爲上人

毘盧藏海 又作毘盧性海 謂毘盧遮那佛之體性廣大無限 猶如大海 又毘盧爲法身如來 故毘盧性海亦通法性界 佛性界

少病少惱; 注維摩詰經八 什曰 不言無而言少者 明身爲病本本宜棄也 肇曰 將示有身不得無患 故致問如來 猶云少病少惱

鈞候; 秉鈞軸故敬言鈞

滅盡三昧; 又曰滅盡定 滅盡六識心心所之禪定

轉法輪; 又作轉梵輪 爲八相成道之一 釋尊一代化儀總有八種相 其中 轉法輪卽指釋尊爲令衆生得道而說法 釋尊成道後 最初在鹿野苑 爲憍陳如等五比丘 宣說四諦法 此爲轉法輪之始 稱爲初轉法輪 [雜阿含經十五 長阿含經一 四分律三十二] 法輪; 爲對於佛法之喩稱 以輪比喩佛法 其義有三 一摧破之義 因佛法能摧破衆生之罪惡 猶如轉輪聖王之輪寶 能輾摧山岳巖石 故喩之爲法輪 二輾轉之義 因佛之說法不停滯於一人一處 猶如車輪輾轉不停 故稱法輪 三圓滿之義 因佛所說之敎法圓滿無缺 故以輪之圓滿喩之 而稱法輪 [大智度論八 雜阿毘曇心論十]

彼岸; 此岸之對稱 迷界爲此方之岸 稱此岸 悟界爲彼方之岸 稱彼岸 卽以業與煩惱爲中流 生死之境界爲此岸 涅槃爲彼岸 [釋禪波羅蜜次第法門一上]

普州人; 普州 今之四川省安岳縣 相傳云 賊人多集居於普州 此指知音之人

杜口毘耶; 文殊在毘耶城 向維摩問不二法門 維摩以沈默對之

現量; 因明用三量之一 又心識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大慧語錄二十二 比量是外境莊嚴所得之法 現量是父母未生前威音那畔事 從現量中得者氣力麁 從比量中得者氣力弱 氣力麁者 能入佛又能入魔 氣力弱者 入得佛境界 往往於魔境界打退鼓 不可勝數

 

장승상(丞相)德遠; 張浚에게 답하다

공유(恭惟)하오니 아련야(阿練若)에 연거(燕居)하면서 거기의 상인(上人)과 한 곳에 동회(同會)하여 비로장해(毘盧藏海)를 오희(娛戲; 娛樂하고 遊戲)하며 수의(隨宜)하여 불사를 지으신다 하니 소병소뇌(少病少惱)하고 균후(鈞候)의 동지(動止)에 만복(萬福)하십시오.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는지라 소이로 염념(念念) 가운데에 일체법 멸진삼매(滅盡三昧)에 들어 보살도(菩薩道)에서 퇴전(退轉; 退)하지 않고 보살사(菩薩事)를 버리지 않고 대자비심(大慈悲心)을 버리지 않고 바라밀(波羅蜜)을 수습(修習)하며 일찍이 휴식(休息)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불국토(佛國土)를 관찰하면서 염권(厭倦)이 있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원()을 버리지 않고 전법륜사(轉法輪)를 끊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업을 버리지() 않고 내지 소유한 승원(勝願)이 모두 원만함을 얻고 일체 국토의 차별을 요지(了知)하여 불종성(佛種性)에 넣어 피안(彼岸)에 이르나니 이것은 대장부가 사위의(四威儀) 중에 수용(受用)하는 가사(家事)일 따름입니다. 대거사(大居士)가 여기에서 힘껏 행하며 게으름이 없고 묘희(妙喜)는 여기에서 또한 보주인(普州人)을 짓습니다. 또 알지 못하나니 도리어 외인(外人)이 삽수(插手)함을 허락합니까. 듣건대 장사(長沙; 湖南省省都)에 이르러 곧 두구비야(杜口毘耶)하고 곧 불이(不二)에 심입(深入)하셨다 하니 이것 또한 분외(分外; 본분 밖)가 아닙니다. 법이 이와 같은 연고로 바라건대 거사도 이와 같이 수용(受用)하신다면 곧 제마(諸魔)와 외도가 꼭() 와서 호법선신(護法善神)이 될 것입니다. 그 나머지 갖가지 차별의 이지(異旨)는 모두 자심(自心)의 현량(現量) 경계니 또한 타물(他物)이 아닙니다. 알지 못하나니 거사는 어떠하다(何如)고 하십니까.

丞相; 벼슬 이름. 일반으로 황제 하면(下面)의 최고 행정관을 가리킴. 황제를 보좌하며 백정(百政)을 총리(總理)하는 관원임. 전국(戰國)ㆍ진조(秦朝)ㆍ한조(漢朝)에선 군주를 보좌하는 최고 괸리였음. 재상(宰相)은 일정한 이 승상이 아니었음. 재상은 부동(不同)의 조대(朝代)에 부동의 관직의 대응이 있었으니 비여(比如) 당 현종 시기엔 상서복야(尙書僕射)를 고쳐 승상(丞相)이라 했고 당시의 승상은 그대로 이 재상의 직이 아니었음. 원조(元朝)의 행성(行省)의 승상은 지방관이 되었으며 또한 재상이 아니었음 [백도백과].

恭惟; 고위(高位)에게 문후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공유임 [대혜서고로주].

阿練若; <> āraṇya <> arañña 또 아란야(阿蘭若)ㆍ아련여(阿練茹)ㆍ아란나(阿蘭那)ㆍ아란양(阿蘭攘)ㆍ아란나(阿蘭拏)로 지으며 약칭이 란야(蘭若)ㆍ련야(練若). 산림ㆍ황야로 번역함. 출가인이 수행과 거주에 적합한 장소를 가리킴. 또 원리처(遠離處)ㆍ적정처(寂靜處)ㆍ최한처(最閑處)ㆍ무쟁처(無諍處)로 번역함. 곧 취락과의 거리가 1구로사(俱盧舍)이면서 수행하기에 적합한 공간처(空閒處). 그 주처(住處)나 혹 거주자를 곧 일컬어 아란야가(阿蘭若迦; āraṇyaka)라 함. 혜원음의상을 안험컨대 아란야에 3종이 있음. 1은 달마아란야(達磨阿蘭若)니 곧 보리를 구하는 도량임. 2는 마등가아란야(摩登伽阿蘭若)니 곧 분장(墳場)이며 혹 촌락과의 거리가 1구로사며 곧 대우(大牛)의 부르짖는 소리를 능히 청문(聽聞)하지 못하는 곳임. 3은 단타가아란야(檀陀伽阿蘭若)니 곧 인연(人煙)이 없는 사적(沙磧). 후대에 이르러 일반의 사원과 정사도 또한 아란야로 일컬었음. 이 밖에 비구가 수행하면서 늘 아란야에 거주함을 일컬어 아란야행이라 하며 12두타행의 하나에 속함 [대비바사론136. 유부비나야24. 살바다비니비바사5. 대일경소3. 구사론광기13. 대승의장15. 현응음의23].

燕居; 연거(宴居). ()은 안한(安閑)ㆍ안식이니 또 연()으로 지음.

上人; 지덕을 겸비하여 가히 중승 및 중인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 대한 존칭. 석씨요람상. 안으로 지덕(智德)을 갖추고 밖으로 승행(勝行)이 있으며 중인의 위에 있는 자를 상인이라 한다. 대품반야경17. 만약 보살마하살이 능히 일심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고 호지하는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일컬어 상인(上人)이라 한다.

毘盧藏海 또 비로성해(毘盧性海)로 지음. 이르자면 비로자나불의 체성이 광대하고 무한함이 마치 대해와 같음. 또 비로는 법신여래가 되므로 고로 비로성해는 또한 법성계ㆍ불성계와 통함.

少病少惱; 주유마힐경8. (; 라집)이 가로되 무()를 말하지 않고 소()를 말하는 것은 몸은 병본(病本; 병의 근본)이 되므로 병본은 마땅히 버려야 함을 밝힘이다. (; 승조)가 가로되 몸이 있으면 병환이 없음을 얻지 못함을 가져 보임이니 고로 여래에게 치문(致問; 질문을 드림)하면서 오히려 이르되 소병소뇌(少病少惱)라 했다.

鈞候; 균축(鈞軸)을 잡은 고로 공경하여 균이라고 말함.

滅盡三昧; 또 가로되 멸진정이니 6()ㆍ심()ㆍ심소(心所)를 멸해 없앤 선정.

轉法輪; 또 전범륜(轉梵輪)으로 지음. 팔상성도의 하나가 됨. 석존의 일대(一代)의 화의(化儀)에 모두 8종상(八種相)이 있고 그 가운데 전법륜은 곧 석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득도(得道)하게 하기 위해 설법함을 가리킴. 석존이 성도한 후 최초에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5비구를 위해 4제법(四諦法)을 선설(宣說)했는데 이것이 전법륜의 시작이 되며 일컬어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함 [잡아함경15. 장아함경1. 사분율32].

法輪; 불법에 대한 유칭(喩稱)이니 륜()으로 불법에 비유함. 그 뜻에 셋이 있음. 1. 최파(摧破)의 뜻이니 불법이 능히 중생의 죄악을 최파함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능히 굴러 산악과 암석을 최파함과 같음으로 인해 고로 이에 비유해 법륜으로 삼음. 2. 전전(輾轉)의 뜻이니 불타의 설법이 11(一人一處)에 정체(停滯)되지 않음이 마치 거륜(車輪)이 전전(輾轉)하여 멈추지 않음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법륜임. 3. 원만의 뜻이니 불타가 설하는 바 교법(敎法)이 원만하여 무결(無缺)하기 때문에 고로 륜()의 원만함으로써 이에 비유하여 법륜이라 일컬음 [대지도론8. 잡아비담심론10].

彼岸; 차안(此岸)의 대칭. 미계(迷界)는 차방(此方)의 언덕()이 되며 일컬어 차안이라 하고 오계(悟界)는 피방(彼方)의 언덕이 되며 일컬어 피안이라 함. 곧 업()과 번뇌를 중류(中流)로 삼아 생사의 경계는 차안이 되고 열반은 피안이 됨 [석선바라밀차제법문1].

普州人; 보주(普州)는 지금의 사천성 안악현이니 서로 전해 이르기를 적인(賊人)이 보주에 많이 모여 거주한다 함. 여기에선 지음지인(知音之人)을 가리킴.

杜口毘耶; 문수가 비야성에 있으면서 유마를 향해 불이법문을 묻자 유마가 침묵으로 그에 응대했음.

現量; 인명용(因明用) 3()의 하나며 또 심식(心識) 3량의 하나니 현실을 양지(量知)함임. 색 등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자상(自相)을 양지하여 터럭만큼도 분별하며 추구하는 사념이 없는 것. 대혜어록22. 비량(比量)은 이 외경(外境)의 장엄으로 얻는 바의 법이며 현량(現量)은 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과 위음나반(威音那畔)의 일이다. 현량 가운데로 좇아 얻는 자는 기력이 크고 비량 가운데로 좇아 얻는 자는 기력이 약하다. 기력이 큰 자는 능히 입불(入佛)하고 또 능히 입마(入魔)하지만 기력이 약한 자는 불경계(佛境界)엔 들어가지만 왕왕 마경계(魔境界)에서 퇴고(退鼓)를 치나니 가히 다 세지 못한다.

 

答張提刑暘叔

老居士所作所爲 冥與道合 但未能得㘞地一下耳 若日用應緣 不失故步 雖未得㘞地一下 臘月三十日 閻家老子亦須拱手歸降 況一念相應耶 妙喜老漢 雖未目擊觀其行事 小大折中過不及 只此便是道所合處 到這裏不用作塵勞想 亦不用作佛法想 佛法塵勞都是外事 然亦不得作外事想 但回光返照 作如是想者從甚麽處得來 所作所爲時 有何形段 所作旣辦 隨我心意無不周旋 無有少剩 正恁麽時 承誰恩力 如此做工夫 日久月深 如人學射自然中的矣 衆生顚倒 迷己逐物 耽少欲味 甘心受無量苦 逐日未開眼時 未下床時 半惺半覺時 心識已紛飛 隨妄想流蕩矣 作善作惡 雖未發露 未下床時 天堂地獄在方寸中 已一時成就矣 及待發時 已落在第八 佛不云乎 一切諸根自心現 器身等藏自妄想相施設顯示 如河流如種子 如燈如風如雲 刹那展轉壞 躁動如猿猴 樂不淨處如飛蠅 無厭足如風火 無始虛僞習氣因 如汲水輪等事 於此識得破 便喚作無人無我知 天堂地獄不在別處 只在當人半惺半覺未下床時方寸中 並不從外來 發未發覺未覺時 切須照顧 照顧時亦不得與之用力爭 爭著則費力矣 祖不云乎 止動歸止 止更彌動 纔覺日用塵勞中漸漸省力時 便是當人得力之處 便是當人成佛作祖之處 便是當人變地獄作天堂之處 便是當人穩坐之處 便是當人出生死之處 便是當人致君於堯舜之上之處 便是當人起疲氓於凋瘵之際之處 便是當人覆蔭子孫之處 到這裏說佛說祖 說心說性 說玄說妙 說理說事 說好說惡 亦是外邊事 如是等事 尙屬外矣 況更作塵勞中先聖所訶之事耶 作好事尙不肯 豈肯作不好事耶 若信得此說及 永嘉所謂行亦禪坐亦禪 語默動靜體安然 不是虛語 請依此行履 始終不變易 則雖未徹證自己本地風光 雖未明見自己本來面目 生處已熟 熟處已生矣 切切記取 纔覺省力處 便是得力處也 妙喜老漢 每與箇中人說此話 往往見說得頻了多忽之 不肯將爲事 居士試如此做工夫看 只十餘日便自見得省力不省力 得力不得力矣 如人飮水冷煖自知 說與人不得 呈似人不得 先德云 語證則不可示人 說理則非證不了 自證自得自信自悟處 除曾證曾得已信已悟者 方默默相契 未證未得未信未悟者 不唯自不信 亦不信他人有如此境界 老居士天資近道 現定所作所爲 不著更易 以他人較之 萬分中已省得九千九百九十九分 只欠噴地一發便了 士大夫學道 多不著實理會 除却口議心思 便茫然無所措手足 不信無措手足處正是好處 只管心裏要思量得到 口裏要說得分曉 殊不知錯了也 佛言 如來以一切譬喻 說種種事 無有譬喻能說此法 何以故 心智路絕不思議故 信知思量分別障道必矣 若得前後際斷 心智路自絕矣 若得心智路絕 說種種事 皆此法也 此法旣明 卽此明處便是不思議大解脫境界 只此境界亦不可思議 境界旣不可思議 一切譬喻亦不可思議 種種事亦不可思議 只這不可思議底 亦不可思議 此語亦無著處 只這無著處底 亦不可思議 如是展轉窮詰 若事若法 若譬喻若境界 如環之無端 無起處無盡處 皆不可思議之法也 所以云 菩薩住是不思議 於中思議不可盡 入此不可思議處 思與非思皆寂滅 然亦不得住在寂滅處 若住在寂滅處 則被法界量之所管攝 敎中謂之法塵煩惱 滅却法界量 種種殊勝一時蕩盡了 方始好看庭前柏樹子 麻三斤 乾屎橛 狗子無佛性 一口吸盡西江水 東山水上行之類 忽然一句下透得 方始謂之法界無量回向 如實而見 如實而行 如實而用 便能於一毛端現寶王刹 坐微塵裏轉大法輪 成就種種法 破壞種種法 一切由我 如壯士展臂 不借他力 師子遊行 不求伴侶 種種勝妙境界現前 心不驚異 種種惡業境界現前 心不怕怖 日用四威儀中 隨緣放曠 任性逍遙 到得這箇田地 方可說無天堂無地獄等事 永嘉云 亦無人亦無佛 大千沙界海中漚 一切聖賢如電拂 此老若不到這箇田地 如何說得出來 此語錯會者甚多 苟未徹根源 不免依語生解 便道一切皆無撥無因果 將諸佛諸祖所說言敎 盡以爲虛 謂之誑惑人 此病不除 乃莽莽蕩蕩招殃禍者也 佛言 虛妄浮心多諸巧見 若不著有便著無 若不著此二種 種於有無之間摶量卜度 縱識得此病 定在非有非無處著到 故先聖苦口叮嚀 離四句絕百非 直下一刀兩段 更不念後思前 坐斷千聖頂𩕳 四句者 乃有 無 非有非無 亦有亦無是也 若透得此四句了 見說一切諸法實有 我亦隨順與之說有 且不被此實有所礙 見說一切諸法實無 我亦隨順與之說無 且非世間虛豁之無 見說一切諸法亦有亦無 我亦隨順與之說亦有亦無 且非戲論 見說一切諸法非有非無 我亦隨順與之說非有非無 且非相違 淨名云 外道六師所墮 汝亦隨墮 是也 士大夫學道 多不肯虛却心聽善知識指示 善知識纔開口 渠已在言前一時領會了也 及至敎渠吐露盡 一時錯會 正好在言前領略底 又却滯在言語上 又有一種 一向作聰明說道理 世間種種事藝 我無不會者 只有禪一般我未會 在當官處 呼幾枚杜撰長老來 與一頓飯喫却了 敎渠恣意亂說 便將心意識 記取這杜撰說底 却去勘人 一句來一句去 謂之廝禪 末後我多一句 爾無語時 便是我得便宜了也 及至撞著箇眞實明眼漢 又却不識 縱然識得 又無決定信 不肯四楞塌地放下 就師家理會 依舊要求印可 及至師家於逆順境中示以本分鉗鎚 又却怕懼不敢親近 此等名爲可憐愍者 老居士妙年高第起家 所在之處隨時作利益事 文章事業皆過人而未甞自矜 一心一意 只要退步著實理會此段大事因緣 見其至誠 不覺忉怛如許 非獨要居士識得這般病痛 亦作勸發初心菩薩 入道之資糧也

提刑; 古代官職名 各朝代正式官名有別 但一般均簡稱提刑 宋朝開始設立提點刑獄公事 設於各路(行政單位) 主管所屬各州的司法 刑獄和監察 兼管農桑 其官署稱憲司 [百度百科]

㘞地一下; 同㘞地一聲 形容猛然開悟 㘞 用同咄 表示用力之聲 正字通 㘞 一說梵言 㘞之一聲 㘞同咄 玉篇 㘞 牽船聲 正字通 㘞 進船聲 廬山蓮宗寶鑑十 此箇㘞字 一切世人 口中未嘗不說 喩如失物人忽然尋見 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宗門多言此字者 蓋尋師訪道之人 參究三二十年 忽然心花發現 會得此事 不覺㘞地一聲 如失物得見 慶快平生 是其字義也

老漢; 對禪師的稱呼 或禪師自稱

折中; 謂事理有不同者 執其兩端而折其中也 [大慧書栲栳珠]

過不及; 論語先進 子貢問 師(子張)與商(子夏)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迷己逐物; 迷失自心佛性 却向外尋覓佛法 楞嚴經二 一切衆生 從無始來 迷己爲物 失於本心 爲物所轉 故於是中觀大觀小 若能轉物則同如來

第八; 指第八識 阿賴耶識之異名 阿賴耶識; <> ālaya 八識(眼 耳 鼻 舌 身 意 末那 阿賴耶識)之一 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 又作阿梨耶識 略稱賴耶 梨耶 舊譯作無沒識 新譯作藏識 或作第八識 本識 無沒識 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 以其爲諸法之根本 故亦稱本識 此識爲宇宙萬有之本 含藏萬有 使之存而不失 故稱藏識 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 故亦稱種子識 [入楞伽經二 同七 法華經玄義五下 大乘義章三末 華嚴孔目章一 唯識了義燈四本]

器身等藏; 楞伽阿跋多羅寶經註解一 器身藏者 器卽依報 謂世間如器 身卽正報 藏卽藏識

永嘉; 玄覺(665-713) 唐代僧 溫州永嘉(位於浙江)人 俗姓戴 字明道 號永嘉玄覺 八歲出家 博探三藏 尤通天台止觀 後於溫州龍興寺側巖下自構禪庵 獨居硏學 常修禪觀 偶因左溪玄朗之激勵 遂起遊方之志 與東陽玄策共遊方尋道 至韻陽時 謁曹溪慧能 與慧能相問答而得其印可 慧能留之一宿 翌日卽歸龍興寺 時人稱之一宿覺 其後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玄朗贈書招之山棲 師覆書辭退 先天二年(七一三 一說開元二年 或先天元年)十月十七日 趺坐入寂 壽四十九 賜諡無相大師 塔曰淨光 著證道歌一篇 梵僧傳歸天竺 彼皆欽仰目爲東土大乘經 又著禪宗悟修圓旨十篇 及觀心十門 永嘉集十卷 並盛傳于世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行履; 行者進退 履者實踐 指日常一切行爲 衲僧行履 佛祖不能窺 外魔不能亂 頭頭物物 擧足下足 都是道之現成

前後際斷; 截斷前際與後際 前際指過去 後際指未來 謂截斷過去與未來相對立之見解

法塵; 六塵之一 謂意根對前五塵 分別好醜 而起善惡諸法 是名法塵

庭前柏樹子; 五燈會元四趙州從諗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柏樹子 曰 和尙莫將境示人 師曰 我不將境示人 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柏樹子

麻三斤; 空谷集第八十八則 僧問襄州洞山(洞山守初 嗣雲門文偃)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乾屎橛; 雲門廣錄上 問 如何是釋迦身 師云 乾屎橛 乾屎橛; 拭人糞之橛之乾者 取至穢之意 屎橛又作廁籌 淨籌 淨木 廁簡子等

一口吸盡西江水; 祖庭事苑三 西江水 龐蘊居士初參馬祖 問云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祖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東山水上行; 雲門廣錄上 問如何是諸佛出身處 師云 東山水上行

回向; 一回心歸向 回轉趣向 二將自己所修善業功德 施給他人 期望衆生皆獲福報 稱作回向 此指二

撥無因果; 撥卽否定排除之意 撥無因果卽否定因果之道理 釋詁 撥 除也 廣雅 撥 絶也

莽莽蕩蕩; 迂闊貌

摶量; 又作搏量 或疑是搏量之誤

著到; 黏著執著于虛妄之事物 不能脫離和超越 稱爲著到

苦口; 反復懇切地說

叮嚀; 同丁寧 一叮囑 申申當付 二仔細 分明 三對人之態度言辭親切慇懃 此指一

離四句百非; 禪門拈頌集第一六四則 拈頌說話云 四句百非者 海照頌云 强計眞常起有無 飜成十六性情麁 已起未起幷三世 根本四句百不孤 筆削(起信論疏筆削記四)云 百非者 一異有無等四句明之 則一 非一 亦一 亦非一 異 非異 亦異 亦非異 有 非有 亦有 亦非有 無 非無 亦無 亦非無等 共成十六 過現未三世 各有十六 則共成四十八 已起未起亦各有四十八 則共成九十六 幷根本四句 則却成百非也

坐斷; 截除 截斷 多用于禪機施設 謂截除語言知解 區別妄念 斷字 主眼也 坐者 平坐之義

外道六師; 古印度佛陀時代 中印度(恒河中流一帶)勢力較大之六種外道 一富蘭那迦葉 富蘭那其字 迦葉其姓 立一切之法 斷滅性空 無君臣父子忠孝之道者 二末伽梨拘賖梨子 末伽梨 其字 拘賖梨 其母名 計衆生之苦樂 非由因緣 惟爲自然者 三刪闍夜毘羅胝子 刪闍夜其字 毘羅胝其母名 計不求道 但經生死劫數間 自盡苦際 如縷丸轉於高山 縷盡自止者 四阿耆多翅舍欽婆羅 阿耆多翅舍其字 欽婆羅者麤衣也 身著弊衣 五熱灸身 以苦行爲道者 五迦羅鳩馱迦旃延 迦羅鳩馱其字 迦旃延其姓 計諸法亦有相亦無相 應物而起見者 若人問爲有耶 則答爲無 爲無耶 則答爲有 六尼犍陀若提子 尼健陀爲出家總名 若提爲母名 計苦樂罪福 盡由前世 必當償之 非今行道所能斷者 已上六師與佛同世 自稱爲一切智者 [維摩經弟子品 涅槃經十九 止觀十上]

正好; 正應當 正當其時

一頓;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心意識; 心爲集起之義 意爲思量之義 識爲了別之義 唯識論於其名雖許互通 然其實體各別 如其次第配之於第八識與第七識及餘六識 俱舍論以之爲一體之異名 唯識論五 薄伽梵處處經中說 心意識三種別義 集起名心 思量名意 了別名識 是三別義 如是三義雖通八識而隨勝顯第八名心 集諸種法起諸法故 第七名意 緣藏識等恒審思量爲我等故 餘六名識 於六別境麤動間斷了別轉故

廝禪; 問答往來 謂之廝禪 廝者相也

四楞塌地; 又稱四稜著地 楞 同稜 塌 貼也 又作四稜榻地 四隅之脚著地也 喩安心處

師家; 學家的相對語 有學德之禪師 可擔當修行僧之指導者 日本禪宗對於適合爲衆僧之師 經其師之印可 始可成爲師家

本分鉗鎚; 禪師接引學人的本分施設 鉗鎚 鐵匠之工具 喩指接人施設 鉗鎚; 鉗 鐵鋏 鎚 鐵鎚 兩者皆爲鍛鍊金屬所必使用之器具 禪宗用以比喩師家敎導弟子之嚴格

妙年; 少年 妙 年少 幼少

高第; 一經過考核 成績優秀 名列前茅 二常指科擧中式

勸發; 勸人使發佛道之心也

 

장제형(提刑)暘叔; 양숙에게 답하다

노거사(老居士)의 소작소위(所作所爲)는 가만히() 도와 합하지만 단지 능히 화지일하(㘞地一下)를 얻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만약 일용(日用)의 응언(應緣)에 고보(故步)를 잃지 않는다면 비록 화지일하(㘞地一下)를 얻지 못하더라도 납월 30일에 염가노자(閻家老子)가 또한 모름지기 공수(拱手)하고 귀항(歸降)하겠거늘 하물며 일념에 상응함이겠습니까. 묘희(妙喜) 노한(老漢)이 비록 목격(目擊)하여 그 행사(行事)를 보지() 못했지만 소대(小大)를 절중(折中)하면 과불급(過不及)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바로 이 도가 합하는 바의 곳이니 이 속에 이르러 진로(塵勞)란 상념(想念; )을 지음을 쓰지 말고 또한 불법(佛法)이란 상념을 지음을 쓰지 마십시오. 불법과 진로는 모두() 이 외사(外事)입니다. 그러나 또한 외사(外事)란 상념을 지음을 얻지 말고 단지 회광반조(回光返照)하되 이와 같은 상념을 짓는 것은 어느 곳으로 좇아 얻어 왔느냐, 소작소위(所作所爲) 시에 어떤 형단(形段)이 있느냐, 소작(所作)을 이미 판별(判別; )했다면 나의 심의(心意)를 따라 주선(周旋)하지 않음이 없으며 소잉(少剩; 모자라거나 남음)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 누구의 은력(恩力)을 승수(承受)했는가.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사람이 사술(射術; )을 배움과 같아서 자연히 표적을 맞힐 것입니다. 중생이 전도(顚倒)하여 미기축물(迷己逐物)하여 조금()의 욕미(欲味)를 즐기면서() 감심(甘心)으로 무량한 고()를 받나니 축일(逐日)하여 개안(開眼)하지 못할 때, 하상(下床)하지 못할 때, 반성반교(半惺半覺覺; 는 꿈깰 교)할 때 심식(心識)이 이미 분비(紛飛)하여 망상 따라 유탕(流蕩; 流動)합니다. 작선작악(作善作惡)하여 비록 발로(發露; 드러냄)하지 않아도 하상(下床)하지 못할 때 천당과 지옥이 방촌(方寸) 중에 있으면서 이미 일시에 성취합니다. 및 드러냄()을 기다릴 때는 이미 제팔(第八)에 떨어져 있습니다. 불타가 이르지 않았습니까, 일체 제근(諸根)은 자심(自心)이 나타났음이며 기신등장(器身等藏)도 스스로 망상이 서로 시설(施設)하여 현시(顯示)했음이니 하류(河流)와 같고 종자(種子)와 같고 등()과 같고 바람과 같고 구름과 같아서 찰나에 전전(展轉)하다가 무너진다. 조동(躁動)은 원후(猿猴)와 같고 부정처(不淨處)를 즐김()은 비승(飛蠅)과 같고 염족(厭足; 만족)이 없음은 풍화(風火)와 같고 무시(無始)의 허위(虛僞)의 습기인(習氣因)은 급수륜(汲水輪) 등의 일과 같다(楞伽阿跋多羅寶經一). 여기에서 식득(識得)하여 깨뜨리면 바로 무인무아지(無人無我知)라고 불러 짓나니 천당과 지옥이 다른 곳에 있음이 아니라 다만 당인(當人)의 반성반교(半惺半覺), 하상(下床)하지 못할 때의 방촌(方寸) 중에 있는지라 모두() 밖으로 좇아온 게 아닙니다. (; 發露)하려다 발()하지 않고 교(; 꿈깰 교)하려다 교()하지 않을 때 간절히 꼭 조고(照顧; 注意)해야 하거니와 조고(照顧)할 때 또한 그()와 용력(用力)하여 다툼()을 얻지 말아야 합니다. 쟁착(爭著)하면 힘을 허비합니다(費力). (; 3)가 이르지 않았습니까. ()을 지()하여 지()로 돌아가면 지()가 다시 더욱() ()한다(信心銘). 겨우 일용(日用)의 진로(塵勞) 중에 점점 생력(省力)을 깨달을 때 바로 이 당인(當人)이 득력(得力)하는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성불작조하는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지옥을 변화해 천당을 짓는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온좌(穩坐)할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생사를 벗어나는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주군(主君)을 요순(堯舜)의 위에 이르게() 할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조채지제(凋瘵之際; 시들어 앓는 지경)에서 피맹(疲氓; 피곤한 백성)을 일으킬 곳이며 바로 이 당인이 자손을 부음(覆蔭; 庇護)할 곳입니다. 이 속에 이르면 설불설조(說佛說祖)하고 설심설성(說心說性)하고 설현설묘(說玄說妙)하고 설리설사(說理說事)하고 설호설악(說好說惡)함도 역시(亦是) 외변사(外邊事)입니다. 이와 같은 등의 일도 오히려 밖에 속하거늘 하물며 다시 진로(塵勞) 중에 선성(先聖)이 꾸짖는() 바의 일을 지음이겠습니까. 호사(好事)를 지음도 오히려() 불긍(不肯)하거늘 어찌 수긍하며 불호사(不好事)를 지음이겠습니까. 만약 차설(此說)을 믿어 미침을 얻는다면 영가(永嘉)가 이른 바 행()도 또한 선()이며 좌()도 또한 선()이니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체()가 안연(安然)하다 함이 이 허어(虛語)가 아닐 것입니다. 청컨대 이에 의해 행리(行履)하며 시종 변역(變易)하지 않는다면 곧 비록 자기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철증(徹證)하지 못하고 비록 자기의 본래면목을 명견(明見)하지 못하더라도 생소한 곳은 이미 익숙해졌고 익숙한 곳은 이미 생소해졌습니다. 절절(切切; 매우 간절)히 기취(記取)할지니 겨우 생력(省力)을 깨닫는 곳이 바로 이 득력한 곳입니다. 묘희(妙喜) 노한(老漢)이 매번 개중(箇中; 此中)의 사람을 위해() 차화(此話)를 설하면 왕왕(往往) 설함(說得)이 자주()임을 보고는 많이 소홀히 여기면서 수긍하여 가져다 일을 삼지 않습니다. 거사가 시험 삼아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 보십시오. 다만 십여 일이면 곧(便) 스스로, 생력(省力)하는지 생력하지 못하는지 득력(得力)하는지 득력하지 못하는지 봄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물을 마시매 냉난(冷煖)을 스스로 앎과 같이 사람에게 설해 줌을 얻지 못하고 사람에게 보여 줌(呈似)을 얻지 못합니다. 선덕(先德; 淸凉國師 澄觀)이 이르되 증(; 證悟)을 말하려면 곧 사람에게 보임이 불가하지만 리(; 이치)를 설하려면 곧 증이 아니면 마치지 못한다 했습니다. 자증(自證)ㆍ자득(自得)ㆍ자신(自信)ㆍ자오(自悟)한 곳은 오직() 증증(曾證; 일찍이 하다)ㆍ증득(曾得)ㆍ이신(已信)ㆍ이오(已悟)한 자라야 비로소 묵묵히 상계(相契)하고 미증(未證)ㆍ미득(未得)ㆍ미신(未信)ㆍ미오(未悟)한 자는 스스로 불신(不信)할 뿐만 아니라 또한 타인이 이와 같은 경계가 있음을 불신(不信)합니다. 노거사(老居士)는 천자(天資)가 도를 가까이하는지라 현재 소작소위(所作所爲)를 정()하여 경역(更易; 고쳐 바꿈)을 붙이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자면 만분(萬分) 중에 이미 구천구백구십구분(九千九百九十九分)을 생득(省得)하셨지만 다만 분지(噴地)를 일발(一發)하여 바로 마침이 모자랍니다. 사대부가 학도(學道)하면서 다분히 착실(著實; 實在. 確實)히 이회(理會)하지 않는지라 구의심사(口議心思)를 제각(除却)하면 바로 망연(茫然)하여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습니다. 수족을 둘 곳이 없음이 바로() 이 호처(好處)임을 불신(不信)하고 다만 관대(管帶)하기를 심리(心裏)엔 사량하여 득도(得到)함을 요하고 구리(口裏)엔 설득(說得)하여 분효(分曉; 分明)함을 요하거니와 틀려버렸음을 너무 알지 못합니다. 불언(佛言)하시되 여래가 일체의 비유로써 갖가지 일을 설하지만 이 법을 능히 설할 비유가 있지 않다. 무슨 연고냐, 심지(心智)의 길이 끊어져 부사의(不思議)한 연고다(화엄경52). 사량분별(思量分別)은 도를 장애하는 줄 확실히() 알 것입니다. 만약 전후제가 끊김(前後際斷)을 얻는다면 심지(心智)의 길이 저절로 끊어질 것이며 만약 심지의 길이 끊어짐을 얻는다면 갖가지 일을 설함이 모두 이 법일 것이며 이 법이 이미 밝으면 곧 이 밝은 곳이 바로 이 부사의(不思議)한 대해탈(大解脫) 경계입니다. 다만 이 경계도 또한 불가사의(不可思議)며 경계가 이미 불가사의니 일체의 비유도 또한 불가사의며 갖가지 일도 또한 불가사의입니다. 다만 이 불사가의한 것()도 또한 불가사의니 이 말도 또한 붙일 곳이 없으며 다만 이 붙일 곳이 없는 것()도 또한 불가사의입니다. 이와 같이 전전(展轉)히 궁힐(窮詰; 궁구해 묻다)하면 사나 법이나(若事若法) 비유나 경계(若譬喻若境界)가 고리()가 단(; 실마리. )이 없음과 같이 기처(起處)도 없고 진처(盡處)도 없어서 모두 불가사의한 법입니다. 소이로 이르되 보살이 이 부사의(不思議)에 주()하나니/ 어중(於中)에 사의(思議)를 가히 다하지 못한다/ 이 불가사의한 곳에 드니/ ()와 비사(非思)가 모두 적멸(寂滅)이다(화엄경30). 그러나 또한 적멸한 곳에 주재(住在)함을 얻지 말아야 하나니 만약 적멸한 곳에 주재(住在)하면 곧 법계량(法界量)의 관섭(管攝)하는 바를 입습니다. 교중(敎中)에 이를 일러 법진(法塵)의 번뇌라고 합니다. 법계량(法界量)을 멸각(滅却)하여 갖가지 수승(殊勝)을 일시에 탕진(蕩盡)해 마쳐야 비로소(方始)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ㆍ마삼근(麻三斤)ㆍ건시궐(乾屎橛)ㆍ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ㆍ일구흡진서강수(一口吸盡西江水)ㆍ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의 무리()를 호간(好看)합니다. 홀연히 일구하(一句下)에 투득하면 비로소(方始) 이를 일러 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回向)이라 하나니 여실(如實)히 보고 여실이 행하고 여실히 써서 바로 능히 일모단(一毛端)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고 미진리(微塵裏)에 앉아 대법륜을 굴리며 갖가지 법을 성취하고 갖가지 법을 파괴하나니 일체가 나를 말미암음이 장사(壯士)가 팔을 펴면서 타력(他力)을 빌리지 않고 사자가 유행(遊行)하면서 반려(伴侶)를 구하지 않음과 같습니다. 갖가지 승묘(勝妙)한 경계가 현전(現前)하더라도 마음이 경이(驚異)하지 않고 갖가지 악업의 경계가 현전하더라도 마음이 파포(怕怖)하지 않고 일용(日用)하는 사위의(四威儀) 중에 수연(隨緣)하여 방광(放曠)하면서 임성(任性)하여 소요(逍遙)하나니 저개(這箇) 전지(田地)에 도득(到得)하면 바야흐로 가히 천당이 없고 지옥이 없는 등의 일을 설합니다. 영가(永嘉)가 이르되 또한 인()이 없고 또한 불()이 없나니 대천사계(大千沙界; 大千世界와 같음)가 해중(海中)의 거품이며 일체의 성현이 번개의 떨침()과 같다. 차로(此老; 老漢)가 만약 저개(這箇) 전지(田地)에 이르지 못했다면 어떻게 설해 냄을 얻어 왔겠습니까. 이 말을 착회(錯會; 잘못 理會)하는 자가 심히 많나니 참으로() 근원에 투철(透徹; )하지 못했다면 말에 의해 이해를 냄을 면하지 못합니다. 바로 말하되 일체는 모두 발무인과(撥無因果)라 하나니 제불제조(諸佛諸祖)가 설한 바 언교(言敎)를 가지고 모두 공허(空虛; )함으로 삼습니다. 이를 일러 광혹인(誑惑人)이라 하나니 이 병은 제하지 못합니다. () 망망탕탕(莽莽蕩蕩)하여 앙화(殃禍)를 초래하는 자입니다. 불언(佛言)하시되 허망한 부심(浮心; 浮動하는 마음)은 여러 교견(巧見)이 많다(원각경). 만약 유()에 붙지 않으면 바로 무()에 붙나니 만약 이 2()에 붙지 않으면 유무의 사이에 단량(摶量)하고 복탁(卜度)함을 심습니다(). 비록() 이 병()을 식득(識得)했더라도 꼭() 비유비무처(非有非無處)에 착도(著到)하여 있는지라 고로 선성(先聖)이 고구(苦口)로 정녕(叮嚀)4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고(離四句絕百非) 직하(直下)에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다시 염후사전(念後思前;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천성(千聖)의 정녕(頂𩕳; 頭頂)을 좌단(坐斷; 截斷)하게 했습니다. 4()란 것은 곧() ()()ㆍ비유비무(非有非無)ㆍ역유역무(亦有亦無)가 이것입니다. 만약 이 4구를 투득(透得)해 마치면 일체 제법(諸法)이 실유(實有)라고 설함을 보면 나도 또한 수순(隨順)하여 그와 더불어(與之) ()를 설하거니와 또() 이 실유(實有)에 막히는() 바를 입지 않으며 일체 제법이 실무(實無)라고 설함을 보면 나도 또한 수순(隨順)하여 그와 더불어 무()를 설하거니와 또() 세간의 허활(虛豁; 허공)한 무()가 아니며 일체 제법이 역유역무(亦有亦無)라고 설함을 보면 나도 또한 수순하여 그와 더불어 역유역무(亦有亦無)를 설하거니와 또() 희론(戲論)이 아니며 일체 제법이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설함을 보면 나도 또한 수순하여 그와 더불어 비유비무(非有非無)를 설하거니와 또() 상위(相違)가 아닙니다. 정명(淨名)에 이르되 외도육사(外道六師)가 떨어지는 곳(所墮)에 너도 또한 수타(隨墮)한다 함이 이것입니다. 사대부가 학도(學道)하면서 다분히 마음을 비워버리고(虛却) 선지식의 지시를 들음을 수긍하지 않고 선지식이 겨우 입을 열면 거()가 이미 언전(言前)에 있으면서 일시에 영회(領會)해 마칩니다. ()로 하여금 토로(吐露)하여 다하게 함에 이르러선(及至) 일시에 착회(錯會)하고 정호(正好) 언전(言前)에 있으면서 영략(領略; 領悟)한 것()이 또 도리어 언어상(言語上; 은 방면을 표시)에 체재(滯在)합니다. 또 일종(一種)이 있어 일향(一向) 총명(聰明)을 짓고 도리를 설하고 세간의 갖가지 사예(事藝)를 내가 이회(理會; )하지 못하는 게 없지만 다만 선() 한 가지(一般)가 있어 내가 이회하지 못함이 있다. 당관(當官; 做官)의 처소에 있으면서 몇 매(; 量詞니 낱)의 두찬장로(杜撰長老)를 불러 와서 더불어 일돈(一頓)의 밥을 끽각(喫却)하고 나서 거()로 하여금 자의(恣意)로 난설(亂說)하게 하고는 바로 심의식(心意識)을 가지고 이 두찬(杜撰)이 설한 것(說底)을 기취(記取)하여 도리어 가서 사람을 감험(勘驗; )하되 1()가 오고 1구가 감을 이를 일러 시전(廝禪)이라 하고는 말후(末後)에 나는 1구가 많으니 네()가 말이 없을 때 바로 이 내가 편의(便宜)를 얻었음이다. () 진실한 명안한(明眼漢)을 당착(撞著)함에 이르러선(及至) 또 도리어 알지 못하며 비록 그렇게(縱然) 식득(識得)하더라도 또 결정신(決定信)이 없어 사릉탑지(四楞塌地)를 방하(放下)함을 긍정하지 않고 사가(師家)에게 나아가 이회(理會)하고는 의구히 인가(印可)를 요구(要求)합니다. 사가(師家)가 역순경(逆順境)에서 본분겸추(本分鉗鎚)를 보임에 이르러선(及至) 또 도리어 파구(怕懼)하며 감히 친근(親近)하지 못하나니 이런 등을 이름하여 가히 연민(憐愍)스러운 자라 합니다. 노거사(老居士)가 묘년(妙年)에 고제(高第)에 올라() 기가(起家)하셨고 소재지처(所在之處)에 수시(隨時)하여 이익사(利益事)를 짓고 문장사업(文章事業)이 모두 타인(他人; )을 초과하지만 일찍이 자긍(自矜)하지 않고 일심일의(一心一意)에 다만 퇴보(退步)하여 착실(著實)히 차단(此段)의 대사인연(大事因緣)을 이회(理會)하려고 하십니다. 그 지성(至誠)을 보았기에 도달(忉怛)이 여허(如許; 許多. 如此)했으니 유독(惟獨) 거사가 저반(這般)의 병통(病痛)을 식득(識得)함을 요함만이 아니라 또한 초심보살(初心菩薩)을 권발(勸發)하여 입도(入道)의 자량(資糧)을 지음입니다.

提刑; 고대 관직의 이름. 각 조대(朝代)의 정식 관명(官名)에 다름이 있으나 다만 일반으로 균일하게 간칭이 제형임. 송조(宋朝)에서 개시(開始)하여 제점형옥공사(提點刑獄公事)를 설립했고 각로(各路; 행정단위)에도 설립했음. 주관(主管)의 소속은 각주(各州)의 사법(司法)이며 형옥(刑獄)과 감찰, 농상(農桑)을 겸관(兼管)했음. 그 관서는 명칭이 헌사(憲司)[백도백과].

㘞地一下; 화지일성(㘞地一聲)과 같음. 맹연(猛然)히 개오(開悟)함을 형용. ()는 용()이 돌()과 같음.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정자통 화() 일설에 범언(梵言)이다. 화지일성(㘞之一聲) ()는 돌()과 같다. 옥편. ()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 화()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여산연종보감10(廬山蓮宗寶鑑十).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喩如; 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히 심화(心花)가 발명하여 이 일을 회득(會得)하매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잃었던 물건을 득견함과 같아서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자의(字義).

老漢; 선사에 대한 칭호. 혹 선사의 자칭.

折中; 이르자면 사리(事理)에 부동(不同)한 것이 있으면 그 양단을 잡아 그 중간을 자름임 [대혜서고로주].

過不及; 논어 선진. 자공이 묻되 사(; 자장)와 상(; 자하)에 누가 현명합니까. 공자가 가로되 사는 과()하고 상은 불급(不及)이다. 가로되 그러하다면 곧 사가 나은 것입니까. 공자가 가로되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다.

迷己逐物; 자심의 불성을 미실(迷失)하고 도리어 밖을 향해 불성을 심멱(尋覓). 릉엄경2. 일체중생이 무시로부터 오면서 미기(迷己)하여 사물로 삼아 본심을 잃고 사물에 굴리는 바가 되므로 고로 이 가운데 대()도 보고 소()도 보거니와 만약 능히 전물(轉物)한다면 곧 여래와 동등하다.

第八; 8식을 가리킴.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다른 이름. 阿賴耶識; <> ālaya. 8(八識;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ㆍ말나ㆍ아뢰야식)의 하나. 9(九識; 8식 및 아마라식)의 하나. 또 아리야식(阿梨耶識)으로 지으며 약칭이 뢰야(賴耶)ㆍ리야(梨耶). 구역에 무몰식(無沒識)으로 지었고 신역에 장식(藏識)으로 지었음. 혹은 제8식ㆍ본식ㆍ무몰식으로 지음. 뜻으로 이르자면 제법을 집지(執持)하여 심성(心性)을 미실(迷失)하지 않음임. 그것이 제법의 근본이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본식(本識)이며 이 식이 우주 만유의 근본이 되어 만유를 함장(含藏)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존재해 잃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장식(藏識). 또 그것이 능히 만유를 함장하고 생장하는 종자임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종자식(種子識)[입릉가경2, 7. 법화경현의5. 대승의장3. 화엄공목장1. 유식요의등4].

器身等藏; 릉가아발다라보경주해1 기신장(器身藏)이란 것은 기()는 곧 의보(依報)니 이르자면 세간이 기()와 같다. ()은 곧 정보(正報)며 장()은 곧 장식(藏識)이다.

永嘉; 현각(玄覺; 665-713)이니 당대승. 온주(溫州) 영가(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대(), ()는 명도(明道), 호는 영가현각(永嘉玄覺). 8세에 출가하여 3()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先天) 2(713. 一說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1017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49.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1()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10() 및 관심십문(觀心十門)ㆍ영가집(永嘉集)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송고승전8. 불조역대통재13. 불조통기10. 전등록5. 오등회원2].

行履; ()이란 것은 진퇴며 리()란 것은 실천이니 일상의 일체 행위를 가리킴. 납승의 행리(行履)는 불조라도 능히 엿보지 못하고 마외(外魔)도 능히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거족하족(擧足下足)이 모두 이 도의 현성(現成).

前後際斷; 전제(前際)와 후제(後際)를 절단함이니 전제는 과거를 가리키며 후제는 미래를 가리킴. 이르자면 과거와 미래의 서로 대립된 견해를 절단함.

法塵; 6진의 하나. 이르자면 의근(意根)이 앞 5()에 대해 호추(好醜)를 분별하고 선악의 제법을 일으키나니 이 이름이 법진임.

庭前柏樹子; 오등회원4 조주종심.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가로되 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스님이 가로되 나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뜰 앞의 잣나무다.

麻三斤; 공곡집 제88칙 중이 양주 동산(동산수초니 운문문언을 이었음)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이르되 마가 3(麻三斤)이다.

乾屎橛; 운문광록상. 묻되 무엇이 이 석가의 몸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마른 똥막대(乾屎橛). 乾屎橛; 인분을 닦는 막대의 마른 것. 지극히 더러움의 뜻을 취함. 시궐은 또 측주(廁籌)ㆍ정주(淨籌)ㆍ정목(淨木)ㆍ측간자(廁簡子) 등으로 지음.

一口吸盡西江水; 조정사원3. 서강수(西江水) 방온거사가 처음 마조를 참례해 물어 이르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가로되 네가 한 입에 서강수를 마셔 없앰(一口吸盡西江水)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東山水上行; 운문광록상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입니까. 사운 동산이 수상으로 간다(東山水上行).

回向; 1. 회심하여 귀향(歸向). 회전하여 취향함. 2. 자기가 닦은 바 선업의 공덕을 가지고 타인에게 시급(施給)하여 중생이 모두 복보(福報)를 얻음을 기망(期望)함을 일컬어 회향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撥無因果; ()은 곧 부정하고 배제함의 뜻. 발무인과는 곧 인과의 도리를 부정함. 석고(釋詁) () (). 광아 발() ()이다.

莽莽蕩蕩; 우활(迂闊; 곧바르지 아니하고 에돌아서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한 모양.

摶量; 또 박량(搏量; 헤아림)으로 지음. 혹 이는 박량의 오류로 의심됨.

著到; 허망한 사물에 점착(黏著)하고 집착하여 능히 탈리(脫離)함과 초월하지 못함을 일컬어 착도(著到)라 함.

苦口; 반복하며 간절하게 설함.

叮嚀; 정녕(丁寧)과 같음. 1. 정촉(叮囑). 신신당부(申申當付). 2. 자세함. 분명함. 3.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언사가 친절하고 은근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離四句百非; 선문염송집 제164칙 염송설화에 이르되 사구백비(四句百非)란 것은 해조(海照; 未詳)의 송()에 이르되 진상(眞常)을 억지로 계산해 유무(有無)를 일으켜/ 도리어 16을 이루니 성정(性情)이 거칠다/ 이기(已起)ㆍ미기(未起)와 아울러 3()/ 근본사구(根本四句)니 백()이라 외롭지 않다. 필삭(筆削; 기신론소필삭기4)에 이르되 백비(百非)란 것은 일()ㆍ이()ㆍ유()ㆍ무() 4구로 이를 밝히자면 곧 일()ㆍ비일(非一)ㆍ역일(亦一)ㆍ역비일(亦非一)과 이()ㆍ비이(非異)ㆍ역이(亦異)ㆍ역비이(亦非異)와 유()ㆍ비유(非有)ㆍ역유(亦有)ㆍ역비유(亦非有)와 무()ㆍ비무(非無)ㆍ역무(亦無)ㆍ역비무(亦非無) 등 모두 16을 이루고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에 각기 16이 있으니 곧 모두 48을 이루고 이기(已起)와 미기(未起)에 또한 각기 48이 있으니 곧 모두 96을 이루고 근본사구(根本四句; 一異有無)를 아우르니 곧 도리어 백비(百非)를 이룬다.

坐斷; 절제(截除). 절단(截斷). 다분히 선기의 시설에 사용함. 이르자면 어언과 지해, 구별과 망념(妄念)을 절제함. 단자(斷字)는 주안(主眼; 주된 목표)이며 좌()란 것은 평좌(平坐)의 뜻.

外道六師; 고인도(古印度) 불타시대 중인도(恒河 중류 일대)에서 세력이 조금 컸던 6종의 외도임. 1.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Pūraṇakāśyapa). 부란나는 그의 자며 가섭은 그의 성. 일체법은 단멸했고 자성이 공했으며 군신부자와 충효의 도가 없음을 세운 자임. 2.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賖梨子; Maskarī-Gośālīputra) 말가리는 그의 자며 구사리는 그 모친의 이름임. 헤아리기를 중생의 고락은 인연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오직 자연으로 된다고 하는 자임. 3. 산사야비라지자(刪闍夜毘羅胝子; Sanjayī-vairaṭīputra) 산사야는 그 자며 비라지는 그 모친의 이름임. 헤아리기를 구도하지 않아도 단지 생사의 겁수를 지나는 사이에 저절로 고제(苦際)가 없어짐이 누환(縷丸)을 고산에서 굴리매 누()가 다하면 자연히 멈춤과 같다 함. 4.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Kesakambala) 아기다시사는 그 자()며 흠바라란 것은 추의(麤衣). 몸에 낡은 옷을 입고 5()로 몸을 지지면서 고행을 도로 삼는 자임. 5.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 Pakudha-Kaccāyan) 가라구타는 그의 자며 가전연은 그의 성임. 제법이 역유상역무상(亦有相亦無相)이라고 계착(計著)하여 사물에 응해 견해를 일으키는 자임. 어떤 사람이 묻되 유()가 되는가 하면 곧 답하기를 무()가 된다. 무가 되는가 하면 곧 답하기를 유가 된다. 6. 니건타야제자(尼犍陀若提子; Nigaṇṭha-nāeaputta) 니건타는 출가의 총명(總名)이며 야제는 모친의 이름임. 헤아리기를 고락과 죄복은 모두 전세를 말미암으며 꼭 마땅히 그것을 갚아야 하며 지금의 행도로 능히 끊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의 6사는 불타와 동세(同世)였고 자칭 일체지자(一切智者)라 했음 [유마경제자품. 열반경19. 지관10].

正好; 바로 응당(正應當). 바로 그 때를 당해(正當其時).

一頓; () 양사니 명량(名量)으론 밥의 먹는 수()에 쓰이고 동량(動量)으론 끽반(喫飯)ㆍ척책(斥責)ㆍ권설(勸說)ㆍ타매(打罵) 등의 행위의 차수(次數; 次例의 수)에 쓰임. 혹은 설하기를 당토(唐土)의 형벌은 죄인을 때리면서 20()1()으로 삼는다 함.

心意識; ()은 집기(集起)의 뜻이 되며 의()는 사량의 뜻이 되며 식()은 요별(了別)의 뜻이 됨. 유식론에선 그 명칭에 비록 호통(互通)함을 허락하지만 그러나 그 실체는 각기 다름. 그 차제와 같이 제8식과 제7식 및 나머지 6식에 배합함. 구사론은 이로써 1()의 이명(異名)으로 삼음. 유식론5. 박가범(薄伽梵)이 처처의 경중에서 심의식(心意識) 3종의 다른 뜻을 설했다. 집기(集起)는 이름이 심()이며 사량(思量)은 이름이 의()며 요별(了別)은 이름이 식()이니 이것이 3()의 뜻이다. 이와 같이 3()가 비록 8식에 통하지만 승현(勝顯)을 따라 제8은 이름이 심()이니 모든 종법(種法)을 모아 제법을 일으키는 연고며 제7은 이름이 의()니 장식(藏識) 등을 반연하여 항상 살피고 사량하면서 아등(我等)으로 삼는 연고며 나머지 6을 이름해 식()이니 6별경(別境)에 추동(麤動)하고 간단(間斷)하면서 요별(了別)하며 운전하는 연고다.

廝禪; 문답이 왕래함을 이를 일러 시선이라 함. ()란 것은 상().

四楞塌地; 또 명칭이 사릉착지(四稜著地). ()은 릉()과 같음. ()은 첩(; 붙다). 또 사릉탑지(四稜榻地)로 지음. 네 모퉁이의 발이 착지함이니 안심처에 비유함.

師家; 학가(學家)의 상대어. 학덕이 있는 선사니 가히 수행승의 지도를 담당할 만한 자. 일본의 선종에선 중승의 스승이 되기에 적합하고 그 스승의 인가를 겪은 이에 대해 비로소 가히 사가라 함을 이룸.

本分鉗鎚; 선사가 학인을 접인하는 본분시설. 겸추는 철장(鐵匠)의 공구니 비유로 접인(接人)의 시설을 가리킴. 鉗鎚; ()은 쇠집게며 추()는 쇠망치. 양자는 다 금속을 단련하는 곳에서 반드시 사용하는 기구. 선종에서 사가가 제자를 교도하면서의 엄격함의 바유로 씀.

妙年; 소년. ()는 연소ㆍ유소(幼少).

高第; 1. 고핵(考核; 審査)을 경과하여 성적이 우수하여 이름이 전모(前茅; 前列)에 나열됨. 2. 늘 과거(科擧) 중의 시험을 가리킴.

勸發; 사람에게 권하여 불도의 마음을 일으키게 함.

 

答汪內翰彦章

承 杜門壁觀 此息心良藥也 若更鑽故紙 定引起藏識中無始時來生死根苗 作善根難 作障道難無疑 得息心且息心已 過去底事 或善或惡 或逆或順 都莫思量 現在事得省便省 一刀兩段不要遲疑 未來事自然不相續矣 釋迦老子云 心不妄取過去法 亦不貪著未來事 不於現在有所住 了達三世悉空寂 但看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請只把閑思量底心 回在無字上 試思量看 忽然向思量不及處 得這一念破 便是了達三世處也 了達時安排不得 計較不得 引證不得 何以故 了達處不容安排 不容計較 不容引證 縱然引證得 計較得 安排得 與了達底 了沒交涉 但放敎蕩蕩地 善惡都莫思量 亦莫著意 亦莫忘懷 著意則流蕩 忘懷則昏沈 不著意不忘懷 善不是善 惡不是惡 若如此了達 生死魔何處摸𢱢 一箇汪彦章 聲名滿天下 平生安排得 計較得 引證得底 是文章 是名譽 是官職 晚年收因結果處 那箇是實 做了無限之乎者也 那一句得力 名譽旣彰 與匿德藏光者 相去幾何 官職已做到大兩制 與作秀才時 相去多少 而今已近七十歲 儘公伎倆 待要如何 臘月三十日 作麽生折合去 無常殺鬼念念不停 雪峯眞覺云 光陰倏忽暫須臾 浮世那能得久居 出嶺年登三十二 入閩早是四旬餘 他非不用頻頻擧 己過還須旋旋除 爲報滿城朱紫閻王不怕佩金魚 古人苦口叮嚀爲甚麽事 世間愚庸之人 飢寒所迫 日用無他念 只得身上稍煖肚裏不飢 便了 只是這兩事 生死魔却不能爲惱 以受富貴者較之 輕重大不等 受富貴底 身上旣常煖 肚裏又常飽 旣不被這兩事所迫 又却多一件不可說底無狀 以故常在生死魔網中 無由出離 除宿有靈骨方見得徹識得破 先聖云 瞥起是病 不續是藥 不怕念起 唯恐覺遲 佛者覺也 爲其常覺故 謂之大覺 亦謂之覺王 然皆從凡夫中做得出來 彼旣丈夫 我寧不爾 百年光景能得幾時 念念如救頭然 做好事尙恐做不辦 況念念在塵勞中而不覺也 可畏可畏 近收呂居仁四月初書 報曾叔夏劉彦禮死 居仁云 交遊中 時復抽了一兩人 直是可畏 渠邇來爲此事甚切 亦以瞥地回頭稍遲爲恨 比已作書答之云 只以末後知非底一念爲正 不問遲速也 知非底一念 便是成佛作祖底基本 破魔網底利器 出生死底路頭也 願公亦只如此做工夫 做得工夫漸熟 則日用二六時中便覺省力矣 覺得省力時 不要放緩 只就省力處崖將去 崖來崖去和這省力處 亦不知有時不爭多也 但只看箇無宇 莫管得不得 至禱至禱

內翰; 翰林學士爲內相亦曰內翰 唐宋稱翰林爲內翰 淸代稱內閣中書爲內翰

鑽故紙; 謂看讀經典祖錄

藏識; 八識十名之一

遲疑; 猶豫不決 遲 猶豫

三世; 又云三際 過去現在未來 又前世現世來世 世者遷流之義 有爲之事物 一刹那之間亦不止 生了直滅 因之謂來生爲未來世 生了爲現在世 滅了爲過去世 此於事物遷流上 假立三種之世 離事物別無世之實體 [寶積經九十四]

生死魔; 又作死魔 三藏法數十二云 死者謂四大分散 天喪殞沒也 修行之人 爲此天喪 不能續延慧命 是名死魔 新華嚴經論三十三 所謂四魔 陰魔 煩惱魔 天魔 生死魔

收因結果; 謂諸事成就時也

之乎者也; 一指文章言句 二詩偈中揷入句子 無實義

大兩制; 翰林學士爲內制 中書舍人爲外制 五代後晉時最初設置

秀才; 秀才是中國古代選拔官吏的科目 亦曾作爲學校生員的專稱 漢武帝改革選官制度 令地方官府考察和推擧人才 卽爲察擧 元封四年(107) 命公卿 諸州每年各擧薦秀才一名 意爲優秀人才 東漢因避光武帝名諱 遂改稱茂才 三國曹魏時沿襲察擧 復改稱秀才 至南北朝時 擧薦秀才尤爲重視 隋代始行科擧制 設秀才科 唐初沿置此科 及第者稱秀才 後廢秀才科 秀才遂作爲一般讀書人的泛稱 宋代爲士子和應擧者的統稱 明代曾一度采用薦擧之法 亦有擧秀才 明淸時期 秀才亦專用以稱府州縣學生員 [百度百科]

無常殺鬼; 無常猶如殺人之幽鬼 由於無常之理 令生者 不分貴賤 不擇豪賢 必有一死 故以殺鬼比喩之

須臾; 慧琳音義二十五 玉篇曰 須臾俄頃也 按俱舍論本行集等 云時中最少名一刹那 一百二十刹那名一怛刹那 六十怛刹那名一羅婆 三十羅婆名一牟呼栗多 三十牟呼栗多名一晝夜 准大集經一日一夜有三十須臾 卽牟呼栗多是也

浮世; 又作浮生 謂人生在世 如天上浮雲 水上浮萍 難以常在 故曰浮生 莊子刻意 其生若浮 其死若休

朱紫; 古代高級官員的服色或服飾 謂紅色紫色官服

閻王; 卽閻魔王 又稱閻羅王 爲鬼世界之始祖 冥界之總司 地獄之主神

金魚; 禪林疏語考證二 唐書曰 高宗給五品已上隨身銀魚袋 以防召命之詐 出內必合之 三品以上金飾袋 垂拱(685-688)中 都督刺史始賜魚 天授二年(691)改佩魚皆爲龜 其後三品以上龜袋飾以金 四品以銀 五品以銅 中宗初罷龜袋 復給以魚

光景; 指光陰 時光 景 同影

知有; 知有此事 又知道 知曉

 

왕내한(內翰)彦章; 언장에게 답하다

(; 承受. 接受)했습니다. 두문(杜門; 문을 닫다)하고 벽관(壁觀)하신다 하니 이것은 식심(息心)하는 양약(良藥)입니다. 만약 다시 고지를 뚫는다면(鑽故紙) 결정코 장식(藏識) 중의 무시시래(無始時來)의 생사의 근묘(根苗)를 인기(引起)하여 선근난(善根難; 선근의 난)을 짓고 장도난(障道難)을 지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無疑). 식심(息心)을 얻었다면 또() 식심하고 나서 과거의 일, 혹 선()이거나 혹 악()이거나 혹 역()이거나 혹 순()이거나 모두() 사량(思量)하지 마십시오. 현재사(現在事)를 줄임()을 얻으려면 바로 줄이고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지의(遲疑)를 요()하지 않으면 미래사(未來事)가 자연히 상속(相續)하지 않습니다. 석가노자(釋迦老子)가 이르되 마음이 과거법(過去法)을 허망하게 취하지 않고/ 또한 미래사(未來事)에 탐착(貪著)하지 않고/ 현재에 머무는 바가 있지 않아야/ 삼세(三世)가 모두() 공적(空寂)함을 요달(了達)한다(화엄28). 단지 간()하되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구자(狗子)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주운(州云) 없다(). 청컨대 다만 한가히 사량(思量)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이켜() 무자상(無字上)에 두고() 시험 삼아 사량해 보십시오. 홀연히 사량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향해 이 일념(一念)이 깨어짐을 얻으면 바로 이, 삼세(三世)를 요달(了達)하는 곳입니다. 요달할 때 안배(安排)를 얻지 못하고 계교(計較)를 얻지 못하고 인증(引證)을 얻지 못합니다. 무슨 연고냐, 요달한 곳엔 안배를 용납하지 않고 계교를 용납하지 않고 인증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러히(縱然) 인증을 얻고 계교를 얻고 안배를 얻더라도 요달하는 것()과 마침내 교섭이 없습니다(了沒交涉). 단지 놓아() 탕탕지(蕩蕩地)하게 하고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말고 또한 착의(著意)하지 말고 또한 망회(忘懷)하지 마십시오. 착의하면 곧 유탕(流蕩; 流動)하고 망회하면 곧 혼침(昏沈)합니다. 착의(著意)하지 않고 망회(忘懷)하지 않으면 선()이 이 선이 아니며 악()이 이 악이 아니니 만약 이와 같이 요달한다면 생사마(生死魔)가 어느 곳에서 모색(摸𢱢)하겠습니까. 일개(一箇) 왕언장(汪彦章)의 성명(聲名)이 천하에 가득하거니와 평생에 안배(安排)하여 얻고 계교(計較)하여 얻고 인증(引證)하여 얻은 것()이 이 문장(文章)이며 이 명예(名譽)며 이 관직(官職)입니다. 만년에 수인결과(收因結果)한 곳의 나개(那箇; 어느 것)가 이 실()입니까. 무한한 지호자야(之乎者也)를 지었거니와(做了) 어느() 1구에서 득력했습니까. 명예가 이미 드러났거니와() 덕을 숨기고 광을 감추는(匿德藏光) 것과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관직은 이미 대양제(大兩制)를 지어 이르렀거니와(做到) 수재(秀才)가 되었을 때와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多少). 이금(而今)에 이미 70세에 가까워 공()의 기량(伎倆)이 다했거늘() 무엇을 대요(待要; 기다리고 요구함)합니까. 납월 30일에 어떻게 절합(折合)하여 가겠습니까.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염념(念念)에 멈추지 않습니다. 설봉(雪峯) 진각(眞覺; 義存賜號)이 이르되 광음(光陰)은 숙홀(倏忽; 忽然)이라 잠시인 수유(須臾)/ 부세(浮世)에 어찌 능히 오래 거주함을 얻으랴/ 고개를 나서면서(出嶺) 나이가 32에 올랐는데/ 민지(閩地)에 들어오매 벌써 이 4순여(四旬餘)/ 남의 그름은 자주자주 듦()을 쓰지 말고/ 자기의 과오는 도리어 꼭 선선(旋旋; 陸續. 逐漸)히 제거하라/ 만성(滿城)의 주자(朱紫)에게 알리어 말하노니/ 염왕(閻王; 염라왕)은 금어(金魚; 金魚袋) 찬 것을 두려워 않는다. 고인(古人)이 고구(苦口)로 정녕(叮嚀)함은 무슨 일 때문인가(). 세간의 우용(愚庸; 우둔하고 平庸)한 사람이 기한(飢寒)에 핍박되는 바라 일용(日用)에 딴 생각이 없고 다만 신상(身上)에 조금 따뜻하고(稍煖) 두리(肚裏)에 주리지 않음을 얻으면 바로 마치나니() 다만 이, () 양사(兩事)라 생사마(生死魔)가 도리어 능히 뇌란(惱亂)하지 못합니다. 부귀를 받는 자로써 비교하자면 경중(輕重)이 크게 제등(齊等; )하지 않습니다. 부귀를 받는 이()는 신상(身上)은 이미 늘 따뜻하고 두리(肚裏)는 또 늘 배부른지라 이미 이 양사(兩事)의 소핍(所迫)을 입지 않지만 또 도리어 일건(一件)의 불가설(不可說)한 무상(無狀; 形狀이 없는 것)이 많습니다. 연고로써 늘 생사마(生死魔)의 그물 속에 있으면서 출리(出離)할 연유(緣由)가 없습니다. 오직() 숙세(宿世; 宿)에 영골(靈骨)이 있어야 바야흐로 보아 투철함을 얻고 알아 깨뜨림을 얻습니다. 선성(先聖)이 이르되 갑자기 일으킴은 이 병이지만 잇지 않음은 이 약이니 생각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침()이 더딤을 염려하라. ()이란 것은 각()이며 그것을 상각(常覺)하는 연고로 이를 일러 대각(大覺)이라 하며 또한 이를 일러 각왕(覺王)이라 합니다. 그러나 모두 범부 가운데로 좇아 주득(做得; 짓다)하여 나왔습니다. ()가 이미 장부(丈夫)이거늘 난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백 년 광영(光景)에 능히 얼마의 시일(幾時)을 얻겠습니까. 염념(念念)에 머리가 탐을 구제함과 같아야(如救頭然) 할 것입니다. 호사(好事)를 지음()도 오히려() 지어 판비(辦備; )하지 못할까 염려스럽거늘 하물며 염념(念念)이 진로(塵勞) 중에 있으면서 깨닫지 못함이겠습니까. 가히 두렵고(可畏) 가히 두렵습니다. 근래(近來; ) 여거인(呂居仁)4월 초의 글을 접수(接收; )했는데 알리기를 증숙하(曾叔夏)와 유언례(劉彦禮)가 죽었다 했습니다. 거인(居仁)이 이르되 교유(交遊)하는 중, 때에 다시 한두 사람을 없애버렸나니(抽了) 바로 이 가외(可畏). (; 여거인)는 이래(邇來; 요즈음) 차사(此事)를 위함이 심히 간절합니다. 또한 별지(瞥地)로써 회두(回頭)함이 조금() 더딤()을 한()합니다. 요즈음() 이미 작서(作書)하여 답해 이르되 다만 말후에 그름을 안(知非) 일념(一念)을 바름()으로 삼고 지속(遲速)을 묻지 마십시오. 그름을 아는 일념이 바로 이 성불작조하는 기본이며 마망(魔網)을 깨뜨리는 이기(利器)며 생사를 벗어나는 노두(路頭)라 했습니다. 바라건대 공()도 또한 다만 이와 같이 공부를 지으십시오. 공부를 주득(做得)하여 점차 익숙하면 곧 일용의 이륙시(二六時) 중에 바로 생력(省力)을 깨달을 것입니다. 생력을 각득(覺得)할 때 방난(放緩; 놓아 느슨함)을 요하지 않나니 다만 생력처(省力處)로 나아가 애장거(崖將去)하십시오. 애래애거(崖來崖去)와 이 생력처(省力處)가 또한 지유(知有)하지 않은 때와 많음을 다투지 않습니다. 단지(但只) () 무자(無宇)를 간()하되 득()과 부득(不得)에 상관하지 마십시오. 지도(至禱)하고 지도(至禱)합니다.

內翰; 한림학사는 내상(內相)이 되며 또한 가로되 내한(內翰). 당송은 한림을 일컬어 내한이라 했고 청대엔 내각중서를 일컬어 내한이라 했음.

鑽故紙; 경전이나 조록(祖錄)을 간독(看讀)함을 말함.

藏識; 8(八識) 10()의 하나.

遲疑; 유예(猶豫)하며 결정하지 못함. ()는 예()와 같음.

三世; 또 이르되 3()니 과거ㆍ현재ㆍ미래임. 또 전세ㆍ현세ㆍ내세임. ()란 것은 천류(遷流)의 뜻. 유위의 사물은 1찰나의 사이에도 또한 멈추지 않고 생하면 바로 멸하나니 이로 인해 이르기를 내생은 미래세가 되고 생료(生了)하면 현재세가 되고 멸료(滅了)하면 과거세가 됨. 이것은 사물의 천류상(遷流上)에서 3종의 세()를 가립(假立)했음. 사물을 여의면 달리 세의 실체가 없음 [보적경94].

生死魔; 또 사마(死魔)로 지음. 삼장법수12에 이르되 사()란 것은 이르자면 4()가 분산함이니 천상운몰(天喪殞沒; 天運을 상실해 죽음)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 천상(天喪) 때문에 능히 혜명(慧命)을 속연(續延)하지 못하나니 이 이름이 사마다. 신화엄경론33. 이른 바 4()란 음마ㆍ번뇌마ㆍ천마ㆍ생사마(生死魔).

收因結果; 이르자면 모든 일을 성취할 때임.

之乎者也; 1. 문장언구(文章言句)를 가리킴. 2. 시게(詩偈) 가운데 삽입(揷入)하는 구자(句子; 助詞)며 실의(實義)가 없음.

大兩制; 한림학사는 내제(內制)가 되고 중서사인은 외제(外制)가 됨. 오대 후진 때 최초로 설치했음.

秀才; 수재는 이 중국 고대 관리를 선발하는 과목이며 또한 일찍이 학교 생원(生員)의 전칭(專稱)으로 지었음. 한무제(漢武帝)가 선관제도(選官制度)를 개혁해 지방 관부(官府)에 인재를 고찰(考察)하고 그리고 추거(推擧; 추천)하게 했으니 곧 찰거(察擧)가 됨. 원봉 4(107) 공경(公卿)과 제주(諸州)에 명해 매년 각기 수재 1명을 거천(擧薦; 천거)하게 했으니 뜻이 우수한 인재가 됨. 동한(東漢)은 광무제의 명휘(名諱)를 피함으로 인해 드디어 무재(茂才)로 개칭했음. 삼국 조위(曹魏) 때 연습(沿襲; 전례를 따라서 함)하여 찰거(察擧; 선발)하면서 다시 수재로 개칭했음. 남북조 때에 이르러 수재를 거천(擧薦)함을 더욱 중시했음. 수대(隋代)에 과거제(科擧制)를 시행(始行)했고 수재과(秀才科)를 설치했음. 당초(唐初) 이 과()를 따라서 설치했고 급제한 자를 일컬어 수재라 했음. 후에 수재과를 폐지했으며 수재는 드디어 일반 독서인의 범칭(泛稱)이 되었음. 송대엔 사자(士子; 지식인)와 응거자(應擧者; 과거에 응시하는 자)의 통칭(統稱)이 되었음. 명대에 일찍이 천거(薦擧)의 법을 한 차례 채용했고 또한 수재를 천거함이 있었음. 명ㆍ청 시기 수재는 또한 부주현(府州縣)의 학생원(學生員)의 명칭으로 전용했음 [백도백과].

無常殺鬼; 무상은 마치 살인하는 유귀(幽鬼; 유령)와 같음. 무상의 이치로 말미암아 살게 된 자는 귀천을 분별하지 않고 호현(豪賢)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한 번 죽음이 있으므로 고로 살귀로 이에 비유함.

須臾; 혜림음의25. 옥편에 가로되 수유(須臾)는 아경(俄頃; 少時. 잠시)이다. 구사론과 본행집 등을 살펴보니 이르기를 시간 중에 최소를 이름해 1찰나며 120찰나를 이름해 달찰나(怛刹那)60달찰나를 이름해 1라바(羅婆)30라바를 이름해 1모호률다(牟呼栗多)30모호률다를 이름해 1주야이다. 대집경을 준거(準據)하자면 11야에 30수유가 있다 하니 곧 모호률다가 이것이다.

浮世; 또 부생(浮生)으로 지음. 이르자면 인생이 세상에 있음이 천상의 부운, 수상의 부평과 같아서 항상 존재하기 어려운지라 고로 가로되 부생임. 장자 각의. 그 생은 부()와 같고 그 사는 휴()와 같다.

朱紫; 고대 고급 관원의 복색 혹 복식이니 이르자면 홍색과 자색의 관복.

閻王; 곧 염마왕(閻魔王)이니 또 명칭이 염라왕임. 귀세계(鬼世界)의 시조며 명계(冥界)의 총사(總司)며 지옥의 주신(主神)이 됨.

金魚; 선림소어고증2. 당서에 가로되 고종이 5품 이상에게 수신(隨身)의 은어대(銀魚袋)를 주어 소명(召命)의 사기(詐欺)를 예방하고 출납에 반드시 이와 합하게 했다. 3품 이상은 금식대(金飾袋)였다. 수공(68 5-688) 중에 도독과 자사에게 처음으로 어()를 주었다. 천수 2(69 1) 패어(佩魚)를 고쳐 다 거북으로 하였다. 그 후 3품 이상은 귀대(龜袋)에 금으로 장식하고 4품은 은을 썼고 5품은 동을 썼다. 중종 초에 귀대를 파하고 다시 어()를 주었다.

光景; 광음(光陰), 시광(時光)을 가리킴. ()은 영()과 같음.

知有; 차사(此事)가 있음을 앎. 또 지도(知道; 알다. 이해하다). 지효(知曉; 알아서 깨달음. 또는 환히 앎).

 

伏承 杜門息交 世事一切闊略 唯朝夕以某向所擧話頭提撕 甚善甚善 旣辦此心 當以悟爲則 若自生退屈 謂根性陋劣 更求入頭處 正是含元殿裏問長安在甚處爾 正提撕時是阿誰 能知根性陋劣底又是阿誰 求入頭處底又是阿誰 妙喜不避口業 分明爲居士說破 只是箇汪彦章 更無兩箇 只有一箇汪彦章 更那裏得箇提撕底知根性陋劣底求入頭處底來 當知皆是汪彦章影子 並不干他汪彦章事 若是眞箇汪彦章 根性必不陋劣 必不求入頭處 但只信得自家主人公及 並不消得許多勞攘 昔有僧問仰山 禪宗頓悟畢竟入門的意如何 山曰 此意極難 若是祖宗門下上根上智 一聞千悟 得大總持 此根人難得 其有根微智劣 所以古德道 若不安禪靜慮 到這裏總須茫然 僧曰 除此格外 還別有方便令學人得入也無 山曰 別有別無 令汝心不安 我今問汝 汝是甚處人 曰幽州人 山曰 汝還思彼處否 曰常思 山曰 彼處樓臺林苑人馬駢闐 汝返思思底 還有許多般也無 曰某甲到這裏一切不見有 山曰 汝解猶在境 信位卽是 人位卽不是 妙喜已是老婆心切 須著更下箇注脚 人位卽是汪彦章 信位卽是知根性陋劣 求入頭處底 若於正提撕話頭時 返思能提撕底 還是汪彦章否 到這裏間不容髮 若佇思停機 則被影子惑矣 請快著精彩 不可忽不可忽 記得前書中嘗寫去 得息心 且息心已 過去底事 或善或惡 或逆或順 都莫理會 現在事得省便省 一刀兩段不要遲疑 未來事自然不相續矣 不識曾如此覷捕否 這箇便是第一省力做工夫處也 至禱至禱

含元殿; 屬於長安大明宮的第一正殿 本名蓬萊宮 建成於唐高宗龍朔三年(663) 毀於唐僖宗光啓二年(886) 遺址在今陝西省西安市 [百度詞典]

影子; 一物體遮住光線而投下的暗影 子 後綴 二傳說的故事 此指一

主人公; 禪家提倡自心是佛 自我爲主 因稱自心爲主人公

勞攘; 煩擾

仰山; 慧寂(807-883) 唐代僧 爲潙仰宗開山祖師之一 韶州(廣東韶關)葉氏 初生頗有異蹟 爲童穉 依番禺安和寺不語通出家 年十四 父母欲奪其志 遂斷二指以爲誓 因從剃落 通累加接引 而師無所啓發 年十八 通卒 因往謁乳源 洎筠州處微 吉州性空 鵶山躭源 皆不契 至大和三年(829) 參大潙靈祐 擧性空如人在井之緣 因而有省 山指令請戒於襄陽之大悲 師曰 慧寂平生不妄語 山云 你但依沙門法 師從之 時年三十三矣 復還潙山作直歲 尋領衆居郴州之王莽山 旣而移錫居袁州仰山 衆盈數百 一日 有梵僧負貝葉造師 師問 近離甚處 曰 早別西天 師曰 太遲生 曰 游山翫水 師曰 神通不無你 佛法未夢見 曰 來此禮文殊 却遇小釋迦 語訖隱去 大中十三年(859) 韋宙中丞 爲師創洪州觀音院居之 咸通(860-873)中 歸韶州之東平山 至中和三年二月十三日 集衆說偈 以兩手抱屈膝 儼然而終 歸葬於仰山 師行道於世 蒙寵賜者三 懿宗賜號知宗 僖宗賜澄虛 昭宗諡智通 [祖庭事苑七 宋高僧傳十二]

祖宗; 原指爲始祖的祖上 禪林中 指祖師之宗旨宗風 又指祖師

總持; 梵語陀羅尼的譯語 卽能總攝憶持無量佛法而不忘失之念慧力 有法義咒忍等四種總持 然密敎所稱者 乃特指第三之咒總持 [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一]

安禪; 安住於坐禪之意

靜慮; 梵語馱那演那 又稱禪那 略稱禪 譯爲靜慮

格外; 超越通常的分別理念與知識見解

幽州; 今北京市 河北北部 遼寧南部 及朝鮮西北部

某甲; 一自稱之詞 相當于我 二代替人名 此指一

信位人位; 宗範下云 及信位卽得 人位未在語 此僧返照能思心無境 落比量(已知之事 量知未知之事也 如見煙比知於彼有火是也 因而因明法者 以因與喩比知主義之軌式也 總稱爲比量者 是八識中唯意識之用也 因明入正理論曰 言比量者 謂藉衆相而觀義) 祇成信解 若獲親證現量(因明用語 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契入鏡智 人位顯矣

注脚; 同註脚 註釋(注釋) 註解(注解) 禪門拈頌集第一四一八則 拈頌說話曰 凡書註云 皆歧分而作脚書之 故云注脚 或云脚注 又云測注

佇思停機; 意謂陷於分別思量而難以迅速當機立斷

覷捕; 謂專心探尋幷努力抓住悟道之機

 

()

복승(伏承; 엎드려 承受)컨대 두문(杜門)하고 식교(息交; 交遊를 쉼)하여 세사(世事)를 일체 활략(闊略; 等閑視)하고 오직 조석(朝夕)으로 모()가 접때() 든 바의 화두(話頭)를 제시(提撕)한다 하시니 매우 좋고(甚善) 매우 좋습니다. 이미 이 마음을 판비(辦備; )했으니 마땅히 깨침()으로써 극칙(極則; )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 퇴굴(退屈)를 내어 이르되 근성(根性)이 누열(陋劣)하여 다시 입두처(入頭處: 悟入處)를 구한다고 하면 바로 이 함원전(含元殿) 속에서 장안(長安)이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물음일 따름입니다. 바로() 제시(提撕: 참구)할 때 이 누구(阿誰)며 근성이 누열(陋劣)함을 능지(能知)하는 것은 또 이 누구며 입두처를 구하는 것은 또 이 누구입니까. 묘희(妙喜)가 구업(口業)을 피하지 않고 분명히 거사를 위해 설파(說破)하겠습니다. 다만 시개(是箇) 왕언장(汪彦章)이며 다시 양개(兩箇)가 없습니다. 다만 일개(一箇)의 왕언장이 있거늘 다시 나리(那裏)에서 저() 제시(提撕)하는 것(), 근성이 누열(陋劣)함을 아는 것(), 입두처(入頭處)를 구하는 것()을 얻어 오겠습니까. 마땅히 알지니 모두 이 왕언장의 영자(影子)라서 모두() () 왕언장의 일에 상간(相干; )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진개(眞箇)의 왕언장이라면 근성이 반드시 누열하지 않고 반드시 입두처를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但只) 자가(自家)의 주인공(主人公)을 믿어 미침을 얻는다면 모두() 허다한 노양(勞攘)을 소득(消得; 소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적에 어떤 중이 앙산(仰山)에게 묻되 선종의 돈오(頓悟)는 필경 입문하는 뜻이 어떠합니까. 산왈(山曰) 이 뜻이 극히 어렵나니 만약 이 조종문하(祖宗門下)의 상근상지(上根上智)일진댄 일문천오(一聞千悟)하여 대총지(總持)를 얻겠지만 이 근기(根機; )의 사람을 얻기 어렵다. ,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열등한 이가 있나니 소이로 고덕(古德)이 말하되 만약 안선(安禪)하고 정려(靜慮)하지 않는다면 이 속에 이르러선 모두() 꼭 망연(茫然)하리라. 승왈(僧曰) 이 격외(格外)를 제하고 도리어 달리 방편이 있어 바로 학인(學人)으로 하여금 득입(得入)하게 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산왈(山曰) 달리 있거나 달리 없음은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한다. 내가 이제 너에게 묻나니 너는 이 어느 곳의 사람인가. 가로되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산왈(山曰) 너는 도리어 그곳을 생각하느냐. 가로되 늘 생각합니다. 산왈 그곳의 누대(樓臺)ㆍ임원(林苑)과 인마(人馬)의 변전(駢闐; 한 곳에 聚集), 네가 생각하는 것(思底)을 돌이켜 생각하매(返思) 도리어 허다한 종류(種類; )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가로되 모갑(某甲)이 이 속에 이르러선 일체를 있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산왈 너의 앎()은 아직 경()에 있다. 신위(信位)는 곧 이것이지만 인위(人位)는 곧 이것이 아니다. 묘희(妙喜)이미 이 노파심이 간절한지라 다시 이() 주각(注脚) 내림을 쓰리라(須著). 인위(人位)는 곧 이 왕언장(汪彦章)이며 신위(信位)는 곧 이 근성(根性)이 누열(陋劣)함을 알아서 입두처(入頭處)를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바로 화두를 제시(提撕; 참구)할 때 능히 제시하는 것을 반사(返思)함은 도리어 이 왕언장입니까. 이 속에 이르러선 사이에 머리카락만큼도 용납하지 않나니 만약 저사정기(佇思停機)하면 곧 영자(影子)의 혹란을 입나니 청컨대 정채(精彩)를 쾌히 붙이고 가히 소홀하지 마십시오, 가히 소홀하지 마십시오. 기득(記得)하건대 전서(前書) 중에 일찍이 서사(書寫)하여 가되 식심(息心)을 얻었거든 다만() 식심하고 나서 과거의 일에 혹선혹악(或善或惡)ㆍ혹역혹순(或逆或順)을 모두() 이회(理會)하지 마시고 현재사(現在事)는 줄임()을 얻으려면 바로 줄이고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지의(遲疑)를 쓰지 않으면 미래사(未來事)가 자연히 상속(相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알지 못하나니 일찍이 이와 같이 처포(覷捕)하셨습니까. 저개(這箇)가 바로 이 첫째(第一)의 생력(省力)하여 공부를 짓는 곳입니다. 지도(至禱)하고 지도(至禱)합니다.

含元殿; 장안 대명궁(大明宮)에 속한 제1 정전(正殿)이니 본명은 봉래궁이었음. 당 고종 용삭 3(663)에 건립해 이루었고 당 희종 광계 2(886)에 헐어졌음. 유지(遺址)는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에 있음 [백도사전].

影子; 1. 물체가 광선을 차주(遮住)하여 투하한 어두운 그림자임. 자는 후철. 2. 전설적인 고사(故事).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主人公; 선가에선 자기의 마음이 이 부처라고 제창(提倡; 提唱)하며 자아(自我)를 주()로 삼는지라 인하여 자기의 마음을 일컬어 주인공이라 함.

勞攘; 번요(煩擾; 번거롭고 요란함).

仰山; 혜적(慧寂; 807-883)이니 당대승. 위앙종(潙仰宗)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의 하나가 됨. 소주(韶州; 광동 소관) 섭씨(葉氏)며 처음 출생하자 자못 이적(異蹟)이 있었음. 어린이(童穉)가 되자 번옹(番禺) 안화사(安和寺)의 불어통(不語通)에 의지(依止)해 출가하였음. 나이 14에 부모가 그 뜻을 뺏으려 하자 드디어 두 손가락을 잘라 맹서(盟誓)를 삼았으며 인하여 체락(剃落)을 좇았음. ()이 누차(屢次) 접인(接引)을 가했으나 스님은 계발(啓發)한 바가 없었음. 나이 18에 통이 죽자 인해 유원(乳源)에게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균주(筠州)의 처미(處微)ㆍ길주(吉州)의 성공(性空)ㆍ아산(鵶山)의 탐원(躭源)에 이르렀으나 다 계합(契合)치 못했음. 대화(大和) 3(829)에 이르러 대위영우(大潙靈祐)를 참알해 성공(性空), 마치 어떤 사람이 우물에 있음과 같다는 인연을 들어 인해 살핌이 있었음. 위산(潙山)이 양양(襄陽)의 대비원(大悲院)에 청계(請戒; 곧 수계)를 지령(指令)하자 스님이 가로되 혜적(慧寂)은 평생에 망어(妄語)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너는 단지 사문법(沙門法)에 의지(依止)하라. 스님이 이를 좇았는데 때의 나이는 33이었음. 다시 위산으로 돌아와 직세(直歲)가 되었으며 이윽고 대중을 거느리고 침주(郴州)의 왕망산(王莽山)에 거주하였음. 그러고는 이석(移錫)하여 원주(袁州)의 앙산(仰山)에 거주했는데 대중이 수백(數百)을 채웠음. 어느 날 어떤 범승(梵僧)이 패엽(貝葉; 佛經을 가리킴)을 지고 스님에게 나아가자 스님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아침에 서천(西天)을 떠났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너무 느리다. 가로되 유산완수(游山翫水)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신통은 너에게 없지 않으나 불법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여기에 와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려 했더니 도리어 소석가(小釋迦)를 만났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몰(隱沒)했음. 대중 13(859) 위주중승(韋宙中丞)이 스님을 위해 홍주(洪州)에 관음원(觀音院)을 창건하고 거쳐하게 했음. 함통(咸通. 860-873) 중에 소주(韶州)의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갔다가 중화(中和) 3213일에 이르자 대중을 모아 게()를 설하고 두 손으로 무릎을 안아 구부러지게 하고는 엄연(儼然; 의젓이)히 마쳤음. 앙산으로 귀장(歸葬)했음. 스님이 세상에 도를 행해 총사(寵賜)를 입은 게 세 번이니 의종(懿宗)이 호()를 주어 지종(知宗)이라 했고 희종(僖宗)이 징허(澄虛)를 주었고 소종(昭宗)이 지통(智通)이라 시호(諡號)했음 [조정사원7. 송고승전12].

祖宗; 원래는 시조의 조상을 가리킴이나 선림 중에서 조사의 종지와 종풍을 가리킴. 또 조사를 가리킴.

總持; 범어 다라니(陀羅尼; dhāraṇī)의 역어(譯語)니 곧 능히 무량한 불법을 총섭억지(總攝憶持)하여 망실(忘失)하지 않는 염혜력(念慧力). 법의주인(法義咒忍) 4종 총지가 있음. 그러나 밀교에서 소칭(所稱)하는 것은 곧 제3의 주총지(咒總持)를 특지(特指)[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1].

安禪; 좌선에 안주함의 뜻.

靜慮; 범어 다나연나(馱那演那)는 또 호칭이 선나(禪那; dhyana jhana)며 약칭이 선()이니 번역하면 정려(靜慮).

格外; 통상적 분별과 이념, 지식과 견해를 초월함.

幽州; 지금의 북경시ㆍ하북 북부ㆍ요녕 남부 및 조선 서북부임.

某甲; 1. 자칭의 말이니 아()에 상당(相當). 2. 인명(人名)을 대체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信位人位; 종범하에 이르되 및 신위(信位)는 곧 얻으나 인위(人位)는 얻지 못한다는 말은 이 중이 능사(能思)의 마음엔 경계가 없음을 반조하였으니 비량(比量; 이미 안 일로 알지 못한 일을 헤아려 아는 것임. 例如 연기를 보매 그곳에 불이 있음을 비교하여 아는 것이 이것임. 이로 인해 因明의 법이란 것은 과 비유로 비교해서 아는 主義軌式이니 모두 일컬어 比量이라 하는 것임. 이는 八識 중에 오직 意識의 씀임. 因明入正理論에 가로되 말한 비량이란 것은 이르자면 衆相을 빌려 뜻을 관찰함이다)에 떨어져 단지 신해(信解)를 이루었다. 만약 현량(現量; 因明의 용어니 3의 하나. 현실로 헤아려 아는 것이니 색 등의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自相을 헤아려 알되 터럭만큼의 분별하여 추구하는 생각이 없는 것임)을 친히 증득함을 얻었다면 경지(鏡智)에 계합해 들어 인위가 환했을 것이다.

注脚; 주각(註脚)과 같음. 주석(註釋; 注釋), 주해(註解; 注解). 선문염송집 제1418. 염송설화에 가로되 무릇 서책(書冊)의 주()를 말함이다. 다 갈래로 나누어 다리()를 지어 그것을 쓰는지라 고로 이르되 주각(注脚)이며 혹은 이르되 각주(脚注)며 또 이르되 측주(測注).

佇思停機; 뜻으로 이르자면 분별과 사량에 빠져 신속한 당기(當機)로 바로 단절하기 어려움.

覷捕; 이르자면 전심(專心)으로 탐심(探尋)하고 아울러 노력하여 오도지기(悟道之機)를 조주(抓住; 움켜쥠).

 

伏承 第五令嗣 以疾不起 父子之情 千生百劫恩愛習氣之所流注 想當此境界 無有是處 五濁世中種種虛幻 無一眞實 請行住坐臥常作是觀 則日久月深 漸漸消磨矣 然正煩惱時 子細揣摩窮詰 從甚麽處起 若窮起處不得 現今煩惱底 却從甚麽處得來 正煩惱時 是有是無 是虛是實 窮來窮去 心無所之 要思量但思量 要哭但哭 哭來哭去 思量來思量去 抖擻得藏識中許多恩愛習氣盡時 自然如水歸水 還我箇本來無煩惱無思量無憂無喜底去耳 入得世間 出世無餘 世間法則佛法 佛法則世間法也 父子天性一而已 若子喪而父不煩惱不思量 如父喪而子不煩惱不思量 還得也無 若硬止遏 哭時又不敢哭 思量時又不敢思量 是特欲逆天理滅天性 揚聲止響潑油救火耳 正當煩惱時 總不是外事 且不得作外邊想 永嘉云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眞語實語不誑不妄等語 恁麽見得了 要思量要煩惱 亦不可得 作是觀者名爲正觀 若他觀者名爲邪觀 邪正未分 正好著力 此是妙喜決定義 無智人前莫說

令嗣; 令 對他人親屬的敬稱

五濁; 又作五滓 減劫(人類壽命次第減短之時代)中所起之五種滓濁 一衆生濁 二見濁 三煩惱濁 四命濁 五劫濁 [悲華經五 法苑珠林九十八 三藏法數]

揣摩; 反復思考推求

抖擻; 梵語頭陀 杜多 譯曰抖擻 抖揀 洮汰 浣洗等 謂抖擻衣服飮食住處三種貪著之行法也

揚聲止響; 比喩手段和目的互相矛盾

法身; 佛三身之一 謂證得清淨自性 成就一切功德之身

眞語實語不誑不妄; 金剛經 如來是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誑語者 不異語者

無智人前莫說; 傳燈錄二十九寶誌大乘讚 無智人前莫說 打爾色身星散

 

()

복승(伏承; 엎드려 접수)하건대 제오(第五) 영사(令嗣)가 질병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하니 부자(父子)의 정()은 천생백겁(千生百劫)에 은애(恩愛)와 습기(習氣)가 유주(流注)하는 바입니다. 상념(想念; )하건대 이 경계를 당하여 옳은 곳(是處)이 있지 않나니 오탁(五濁)의 세중(世中)에 갖가지 허환(虛幻)은 하나도 진실이 없습니다. 청컨대 행주좌와에 늘 이 관()을 지어 곧 일구월심(日久月深)하매 점점 소마(消磨; 磨滅)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번뇌할 때 자세히 췌마(揣摩)하고 궁힐(窮詰; 追問. 深究)하되 어느 곳으로 좇아 일어났는가. 만약 일어나는 곳을 궁구(窮究; )해 얻지 못하면 현금(現今)에 번뇌하는 것(煩惱底)은 도리어 어느 곳으로 좇아 얻어 왔느냐. 바로 번뇌할 때 이 유()인가 이 무()인가, 이 허()인가 이 실()인가. 궁래궁거(窮來窮去)하매 심()은 가()는 바가 없습니다. 사량(思量)하려고 한다면 단지 사량하고 곡()하려고 한다면 단지 곡하고 곡래곡거(哭來哭去)하고 사량래사량거(思量來思量去)하다가 장식(藏識) 중의 허다한 은애(恩愛)와 습기(習氣)를 두수(抖擻)함을 얻어서 없어질 때 자연히 물이 물로 돌아감과 같이 저() 본래 무번뇌(無煩惱)ㆍ무사량(無思量)ㆍ무우무희(無憂無喜)한 것()을 나에게 송환(送還)해 갈 따름입니다. 세간(世間)에 들어감을 얻으면 출세(出世; 출세간)의 무여(無餘; 殘餘가 없음)니 세간법이 곧 불법이며 불법이 곧 세간법입니다. 부자(父子)는 천성(天性)이 하나일 따름입니다. 만약 자()가 죽었는데() ()가 번뇌하지 않고 사량하지 않으면 부()가 죽었는데 자()가 번뇌하지 않고 사량하지 않음과 같거늘 도리어 얻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만약 강경(强硬; )히 지알(止遏; 막다)한다면 곡()해야 할 때 또 감히 곡하지 못하고 사량(思量)해야 할 때 또 감히 사량하지 못하리니 이는 특히 천리(天理)를 거스르고 천성(天性)을 없앰()인지라 소리를 질러 울림을 그치게 하고(揚聲止響) 기름을 뿌려 불을 끄려고(潑油救火) 함일 따름입니다. 바로 번뇌에 당했을 때 모두() 이 외사(外事)가 아니니 또() 외변(外邊)이란 상념을 지음을 얻지 마십시오. 영가(永嘉)가 이르되 무명(無明)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며 환화(幻化)의 공신(空身)이 곧 법신(法身)이다. 이는 진어(眞語)ㆍ실어(實語)ㆍ불광(不誑)ㆍ불망(不妄) 등의 말입니다. 이렇게 견득(見得)하여 마치면 사량하려고 하거나 번뇌하려고 함을 또한 불가득(不可得)입니다. 이 관()을 짓는 자는 이름하여 정관(正觀)이며 딴 것을 관()하는 자는 이름하여 사관(邪觀)이거니와 사정(邪正)이 나뉘지 아니한 전에 정호(正好) 착력(著力)하십시오. 이것이 이 묘희(妙喜)의 결정의(決定義)니 지혜가 없는 사람 앞에서 설하지 마십시오(無智人前莫說).

令嗣; ()은 타인의 친속(親屬; 친족)에 대한 경칭.

五濁; 5()로 지음. 감겁(減劫; 인류의 수명이 차제로 減短하는 시대) 중 일어나는 바의 5종의 재탁(滓濁)이니 1은 중생탁이며 2는 견탁(見濁)이며 3은 번뇌탁이며 4는 명탁(命濁)이며 5는 겁탁임 [비화경5. 법원주림98. 삼장법수].

揣摩; 반복하여 사고(思考)하면서 추구(推求).

抖擻; 범어 두타(頭陀; dhuta)ㆍ두다(杜多)를 번역해 가로되 두수(抖擻)ㆍ두간(抖揀)ㆍ도태(洮汰)ㆍ완세(浣洗) 등이니 이르자면 의복ㆍ음식ㆍ주처 3종의 탐착을 두수(抖擻; 떨어버림)하는 행법임.

揚聲止響; 수단과 목적이 호상 모순됨에 비유함.

法身; 불타의 3신의 하나. 이르자면 청정한 자성을 증득하여 일체 공덕을 성취한 몸. 삼신(三身)을 참조하라.

眞語實語不誑不妄; 금강경 여래는 이 참다운 말을 하는 자(語者)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實語者)며 같아지는 말을 하는 자(如語者)먀 속이는 말을 하지 않는 자(不誑語者)며 달라지는 말을 하지 않는 자(不異語者)이니라.

無智人前莫說; 전등록29 보지 대승찬. 지혜가 없는 사람 앞에서 설하지 말아라(無智人前莫說). 너를 때려 색신이 별처럼 흩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