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李參政〈漢老〉○〈問書附〉
邴近扣籌室 伏蒙激發蒙滯 忽有省入 顧惟 根識暗鈍 平生學解盡落情見 一取一捨 如衣壞絮行草棘中適自纏繞 今一笑頓釋 欣幸可量 非大宗匠委曲垂慈 何以致此 自到城中 著衣喫飯 抱子弄孫 色色仍舊 旣亡拘滯之情 亦不作奇特之想 其餘夙習舊障 亦稍輕微 臨別叮嚀之語 不敢忘也 重念 始得入門 而大法未明 應機接物觸事未能無礙 更望有以提誨 使卒有所至 庶無玷於法席矣
●參政; 官名 宋代參知政事的省稱 爲宰相的副職 元於中書省行中書省 皆置參政 爲副貳之官 明於布政使下置左右參政 淸初 各部也設參政 後改侍郞 袁世凱統治時期設參政院 所指派的成員亦稱參政 [百度百科] ▲大慧書栲栳珠 參政 宋代官名 宋朝會要曰 乾德二年(964)四月 以薛居正呂餘慶參知政事
●漢老; 李邴(1085-1146) 字漢老 宋代楊岐派居士 號雲龕 任城(山東濟寧)人 崇寧(1102-1106)間登第 紹興(1131-1162)初 官資政殿學士 歸老泉州時 大慧住泉南長樂庵 邴數往叩擊 一日 大慧擧頌趙州庭前柏樹子話 有省 別後報之以書 命畫工圖大慧像 奉之終身 卒謚文敏 [宋史三七五 續指月錄一 居士傳三十一 續傳燈錄三十二]
●籌室; 稱師家之室也 [大慧書栲栳珠] ▲祖庭事苑五 籌室 西竺第四祖優婆毱多 傳法化導得度者甚衆 每度一人以一籌置於石室 其室縱十八肘 廣十二肘 充滿其間 最後一長者子 名曰香至 出家悟道 因夢易名 曰提多迦者 卽五祖也
●色色; 猶謂樣樣 件件
●提誨; 啓發 敎誨
이참정(李參政)〈漢老〉에게 답하다○〈問書 附〉
병(邴; 李邴)이 요사이(近) 주실(籌室)을 두드렸다가 몽체(蒙滯)를 격발(擊發)함을 복몽(伏蒙)하고서 홀연히 성입(省入)함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며 사유하건대(顧惟) 근식(根識)이 암둔(暗鈍)하여 평생의 학해(學解)가 모두 정견(情見)에 떨어져 일취일사(一取一捨)함이 해진 솜옷(壞絮)을 입고(衣) 초극(草棘) 속을 다니매 마침(適) 스스로 전요(纏繞)됨과 같았는데 이제 일소(一笑)하며 문득 풀렸으니(頓釋) 흔행(欣幸)을 가히 헤아릴(量) 만합니다. 대종장(大宗匠)의 위곡(委曲)한 수자(垂慈)가 아니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이르겠습니까(致). 성중(城中)에 도착함으로부터 옷 입고 밥 먹고 아들을 안고 손자를 희롱하면서 색색(色色)이 잉구(仍舊; 예전과 그대로)였지만 이미 구체(拘滯)의 정이 없고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그 나머지 숙습(夙習)과 구장(舊障)도 또한 조금씩(稍) 경미(輕微)해졌습니다. 임별(臨別)하여 정녕(叮嚀)의 말씀은 감히 잊지 않습니다. 거듭 사념하건대 처음(始) 입문(入門)함을 얻어 대법(大法)을 밝히지 못했으니 응기(應機)하여 접물(接物)하고 촉사(觸事)하면서 능히 무애(無礙)하지 못하니 다시 바라건대 제회(提誨)가 있어 마침내(卒) 이를 곳(所至)이 있게 하시면 거의(庶) 법석을 욕되게(玷) 하지 않을 것입니다.
●參政; 벼슬 이름. 송대 참지정사(參知政事)의 생칭(省稱). 재상의 부직(副職)이 됨. 원(元)은 중서성과 행중서성(行中書省)에 모두 참정을 설치했고 부이지관(副貳之官)이 됨. 명(明)은 포정사(布政使) 아래 좌우참정을 설치했음. 청초(淸初) 각부(各部)에 또한 참정을 설치했고 후에 시랑(侍郞)으로 고쳤음. 원세개가 통치하던 시기 참정원을 설치했고 지파(指派; 파견)한 바의 성원(成員)도 또한 일컬어 참정이라 했음 [백도백과]. ▲대혜서고로주. 참정(參政) 송대의 벼슬 이름임. 송조회요(宋朝會要)에 가로되 건덕 2년(964) 4월 설거정과 여여경이 참지정사(參知政事)였다.
●漢老; 이병(李邴; 1085-1146)의 자가 한로(漢老). 송대 양기파 거사. 호는 운감(雲龕)이니 임성(산동 제녕) 사람. 숭녕(1102-1106) 간 등제(登第; 과거에 급제)했고 소흥(1131 -1162) 초 벼슬이 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였음. 천주(泉州)에서 귀로(歸老;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냄)할 때 대혜가 천남 장락암에 거주했으며 이병이 자주 가서 고격(叩擊)했음. 어느 날 조주의 정정백수자화의 송을 들자 깨침이 있었는데 헤어진 후에 서신으로 보고하였음. 화공에게 명하여 대혜상(大慧像)을 그리게 하고 종신토록 그것을 받들었음. 졸한 후의 시호는 문민 [송사375. 속지월록1. 거사전31. 속전등록32].
●籌室; 사가(師家)의 실을 일컬음 [대혜서고로주]. ▲조정사원5. 주실(籌室) 서축(西竺)의 제4조 우바국다(優婆毱多)는 전법하고 화도(化導)하여 득도(得度)한 자가 매우 많았다. 매번 한 사람을 제도하면 1주(籌)를 석실에 두었다. 그 석실은 세로가 18주(肘; 팔꿈치)며 너비가 12주(肘)인데 그 사이에 충만했다. 최후에 한 장자의 아들은 이름해 가로되 향지(香至)였다. 출가해 오도했으며 꿈을 인해 이름을 바꿨으니 가로되 제다가(提多迦)란 자며 곧 5조다.
●色色; 양양(樣樣)ㆍ건건(件件)이라고 이름과 같음.
●提誨; 계발. 교회(敎誨).
示諭 自到城中 著衣喫飯 抱子弄孫 色色仍舊 旣亡拘滯之情 亦不作奇特之想 宿習舊障亦稍輕微 三復斯語 歡喜躍躍 此乃學佛之驗也 儻非過量大人於一笑中百了千當 則不能知吾家果有不傳之妙 若不爾者 疑怒二字法門 盡未來際終不能壞 使太虛空爲雲門口 草木瓦石皆放光明助說道理 亦不柰何 方信此段因緣不可傳不可學 須是自證自悟自肯自休方始徹頭 公今一笑 頓亡所得 夫復何言 黃面老子曰 不取衆生所言說 一切有爲虛妄事 雖復不依言語道 亦復不著無言說 來書所說 旣亡拘滯之情 亦不作奇特之想 暗與黃面老子所言契合 卽是說者名爲佛說 離是說者卽波旬說 山野平昔有大誓願 寧以此身代一切衆生受地獄苦 終不以此口將佛法以爲人情瞎一切人眼 公旣到恁麽田地 自知此事不從人得 但且仍舊更不須問 大法明未明 應機礙不礙 若作是念 則不仍舊矣 承過夏後方可復出 甚愜病僧意 若更熱荒馳求不歇 則不相當也 前日見公歡喜之甚 以故不敢說破 恐傷言語 今歡喜旣定 方敢指出此事 極不容易 須生慚愧始得 往往利根上智者 得之不費力 遂生容易心 便不修行 多被目前境界奪將去 作主宰不得 日久月深迷而不返 道力不能勝業力 魔得其便 定爲魔所攝持 臨命終時亦不得力 千萬記取 前日之語 理則頓悟乘悟併銷 事則漸除因次第盡 行住坐臥切不可忘了 其餘古人種種差別言句 皆不可以爲實 然亦不可以爲虛 久久純熟 自然默默契自本心矣 不必別求殊勝奇特也 昔水潦和尙於採藤處問馬祖 如何是祖師西來意 祖云 近前來向爾道 水潦纔近前 馬祖攔胸一蹋蹋倒 水潦不覺起來拍手呵呵大笑 祖曰 汝見箇甚麽道理便笑 水潦曰 百千法門無量妙義 今日於一毛頭上 盡底識得根源去 馬祖便不管他 雪峯知皷山緣熟 一日忽然驀胸擒住曰 是甚麽 皷山釋然了悟 了心便亡 唯微笑擧手搖曳而已 雪峯曰 子作道理耶 皷山復搖手曰 和尙何道理之有 雪峯便休去 蒙山道明禪師 趁盧行者至大庾嶺奪衣鉢 盧公擲於石上曰 此衣表信 可力爭耶 任公將去 明擧之不動 乃曰 我求法 非爲衣鉢也 願行者開示 盧公曰 不思善不思惡正當恁麽時 那箇是上座本來面目 明當時大悟 通身汗流 泣淚作禮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意旨否 盧公曰 我今爲汝說者 卽非密意 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却在汝邊 我若說得 卽不密也 以三尊宿三段因緣 較公於一笑中釋然 優劣何如 請自斷看 還更別有奇特道理麽 若更別有 則却似不曾釋然也 但知作佛 莫愁佛不解語 古來得道之士 自己旣充足 推己之餘 應機接物 如明鏡當臺明珠在掌 胡來胡現漢來漢現 非著意也 若著意則有實法與人矣 公欲大法明應機無滯 但且仍舊 不必問人 久久自點頭矣 臨行面稟之語 請書於座右 此外別無說 縱有說 於公分上盡成剩語矣 葛藤太多 姑置是事
●示諭; 告知 曉示 常用於上對下或書劄中
●過量; 超越數量 無數
●大人; 對長輩身分高的人的尊稱 大 敬詞 如大人大夫 有人君之德 故稱大人 又對非凡之人 上等根器者的稱呼
●百了千當; 亦作千了百當 意謂參禪悟道之事妥貼了結 完全成功
●黃面老子; 指釋迦牟尼佛 又稱黃面瞿曇 黃面老人 黃面老漢 黃面老 黃面 黃頭大士 黃頭老 黃頭 黃老等 如來爲金色身 故有黃面之稱
●有爲; 謂有所作爲造作之意 無爲的對稱
●波旬; <梵> Pāpiyas 或 Pāpiman 又作波卑夜 波旬踰 波俾掾 波鞞 注維摩經四 什曰 波旬 秦言殺者 常欲斷人慧命 故名殺者 義林章六本曰 波卑夜 此云惡者 天魔別名 波旬 訛也 成就惡法 懷惡意故 玄應音義八曰 言波旬者 訛也 正言波卑夜 是其名也 此云惡者 常有惡意 成就惡法 成就惡慧 故名波旬 俱舍光記八曰 釋迦文佛魔王名波旬
●田地; 一田土 二程度 境界
●熱荒; 熱悶慌忙 荒通慌
●始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業力; 謂不可抗拒的善惡報應之力
●理則頓悟下; 首楞嚴經十 理則頓悟乘悟併銷 事非頓除因次第盡
●水潦; 又作水老 唐代僧 洪州(江西南昌)人 馬祖道一法嗣 [傳燈錄八 五燈會元三]
●馬祖; 道一(709-788)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713-741)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769)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祖師西來意; 初祖達磨自西天來此土傳禪法 究竟意思如何 究此意思者 卽究佛祖之心印也
●攔胸; 對著胸 攔 表示方式方向 相當于當 對著 用同劈
●雪峯; 義存(822-908) 唐代僧 泉州(福建)南安人 俗姓曾 號雪峰 十二歲從父遊蒲田玉潤寺 拜慶玄律師爲師 留爲童侍 十七歲落髮 謁芙蓉山恆照大師 唐宣宗中興佛敎後 歷遊吳楚梁宋燕秦 於幽州寶刹寺受具足戒 後至武陵德山(湖南常德) 參宣鑒 承其法系 唐懿宗咸通六年(865)歸芙蓉山 十一年登福州象骨山 立庵興法 其山爲閩越之勝景 未冬先雪 盛夏尙寒 故有雪峰之稱 師亦以之爲號 寺初成 緇素雲集 衆每逾千五百人 僖宗賜號眞覺大師 竝紫袈裟一襲 大順(890-891)年中 遊丹丘 四明之地 竝宣法於軍旅之中 後還閩 備受閩王禮遇 開平二年五月入寂 壽八十七 其法嗣有雲門文偃玄沙師備等 文偃乃雲門宗之祖 師備下有桂琛 琛下有法眼文益 乃法眼宗之祖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六 五燈會元七]
●皷山; 神晏(?-943) 五代僧 俗姓李 大梁(今河南開封)人 少習儒業 以慧敏稱 十六歲出家 便慕禪法 後謁雪峰義存 問答之下 機緣相契 釋然了悟 得其法印 閩主王審知常詢法要 創鼓山湧泉禪院 請師擧揚宗旨 居之三十餘年 求法之徒四集 常逾千數 後晉天福八年(943)寂 卒年七十餘 贈號興聖國師 有鼓山先興聖國師和尙法堂玄要廣集一卷行世 [傳燈錄十八 祖堂集十]
●道明; 唐代僧 鄱陽(江西)人 俗姓陳 陳宣帝之裔 國亡落於民間 以其王孫 曾受四品將軍之爵 因有將軍之號 幼年於永昌寺出家 於高宗之世 投黃梅山五祖弘忍 初無證悟 後聞大鑑慧能得五祖衣鉢 乃躡迹急追 而於大庾嶺會之 因六祖慧能之開示 言下大悟 遂獨往廬山布水臺 經三載後 始往袁州蒙山 大唱玄化 初名慧明或惠明 以避六祖上字 故名道明 弟子等盡遣過嶺南 參禮六祖 [五燈會元二 六祖壇經 祖堂集二 宋高僧傳八 傳燈錄四]
●盧行者; 指六祖慧能禪師 俗姓盧 初在蘄州(湖北)黃梅憑茂山五祖弘忍門下 稱爲盧行者 或盧居士 行者 謂帶髮之修行者 ◆行者; 乃指觀行者 或泛指一般佛道之修行者 又稱行人修行人 禪林中 行者乃指未出家而住於寺內幇忙雜務者 行者之居所稱爲行堂 行堂之主首稱行堂主 或單稱堂主 行者有剃髮者 亦有未剃髮而攜帶家眷者 種類繁多 例如 參頭行者 副參行者 執局行者(方丈行者 六局行者等之總稱) 庫司行者(隨從都寺) 堂司行者(隨從維那) 庫子(副寺寮之行者) 客頭行者 茶頭行者 喝食行者(飮食時 唱報飯食湯等名稱者 喝卽唱之意) 供頭行者(又作供過行者 卽分配飯食者) 直殿行者 衆寮行者 門頭行者等 年少之行者 稱爲童行 道者 童侍 僧童 或稱驅烏沙彌 沙喝(飯食時之嚮導 相當於充任喝食沙彌之意) 聽叫 類同於行者 有所謂淨人(又作苦行) 指不剃髮而專爲僧衆服務者 蓋禪林職位之繁多 猶如朝廷之文武兩班 以共維繫寺院之法命 然此職位制度 自宋代以降 諸宗融合 於一般較大之寺院皆循此制 而小寺院則無此細分 [百丈淸規四大衆章 禪苑淸規二 三 四 八 百丈淸規證義記六 象器箋職位類]
●大庾嶺; 爲通往嶺南的五條要道之一 位於江西大庾縣南 廣東南雄縣北 古稱塞上 漢武帝遣庾勝兄弟征伐南越 庾勝據守此嶺 遂稱大庾 又稱庾嶺 臺嶺山
●衣鉢; (一)又稱衣盂 指三衣及一鉢 三衣 謂九條衣 七條衣 五條衣三種袈裟 鉢 乃修行僧之食器 衣鉢 亦爲袈裟鉢盂之總稱 [增一阿含經四十四 大毘婆沙論一三五 大智度論三 敕修百丈淸規三遷化條] (二)亦有用以稱僧家之錢財 蓋以錢財非僧家應持之物 故以婉曲之詞稱之
●上座; 參禪僧中的首座稱爲上座 多用作對禪僧的尊稱
●尊宿; 德尊年長者 ▲觀無量壽佛經疏二 德高曰尊 耆年曰宿
●應機接物; 按學人根機之不同 採取相應的接引施設 物 人也
●胡來胡現漢來漢現; 胡人來則現胡人面 漢人來則現漢人面 謂悟道者 隨緣任運平常作爲 心如明鏡機用無礙 亦謂按來機之不同 采取不同的應機作略或接引施設
●點頭; 點 向下微動
●臨行; 將要離開 將要離別
●面稟; 當面稟告
시유(示諭)하되 성중(城中)에 도착(到著; 到)함으로부터 옷 입고 밥 먹고 아들을 안고 손자를 희롱하면서 색색(色色)이 잉구(仍舊; 예전과 그대로)였지만 이미 구체(拘滯)의 정이 없고(亡)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숙습(夙習)과 구장(舊障)도 또한 조금씩(稍) 경미(輕微)해졌다 하시니 이(斯) 말씀을 세 번 반복하며 환희하며 약약(躍躍; 빨리 뛰는 모양)했습니다. 이것은 이에 학불(學佛; 불법을 배우다)하는 증험(證驗; 驗)입니다. 만일(儻) 과량대인(過量大人)이 일소(一笑) 중에 백료천당(百了千當)함이 아니라면 곧 오가(吾家)에 과연 부전지묘(不傳之妙)가 있음을 능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爾) 못할진대 의노(疑怒) 이자(二字) 법문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마침내 능히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태허공(太虛空)으로 하여금 운문(雲門; 대혜)의 입이 되게 하고 초목와석(草木瓦石)이 모두 광명을 놓아 도리(道理)를 설함을 도우더라도 또한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不柰何). 바야흐로 믿을지니 차단(此段)의 인연은 가히 전하지 못하고 가히 배우지 못하며 모름지기 이는 자증자오(自證自悟)하고 자긍자휴(自肯自休)해야 비로소(方始) 철두(徹頭)입니다. 공(公)이 이제 일소(一笑)하며 문득 소득(所得)을 잊었다(亡) 하니 무릇(夫; 發辭)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황면노자(黃面老子)가 가로되 중생이 언설(言說)하는 바/ 일체(一切) 유위(有爲)의 허망사(虛妄事)를 취하지 않는다/ 비록 다시 언어의 도에 의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언설이 없음에 집착하지 않는다(화엄경24). 내서(來書)에서 설한 바 이미 구체(拘滯)의 정(情)이 없어지고(亡)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다 하니 가만히(暗) 황면노자의 소언(所言; 말씀한 바)과 계합(契合)합니다. 곧 이 설하는 것(說者)은 이름하여 불설(佛說)이며 이 설하는 것을 여의면 곧 파순(波旬)의 설입니다. 산야(山野)가 평석(平昔)에 대서원(大誓願)이 있으니 차라리(寧) 차신(此身)으로써 일체중생을 대신(代身)해 지옥고(地獄苦)를 받을지언정 마침내 차구(此口)로써 불법(佛法)을 가져다 인정(人情)으로 삼아 일체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으리라. 공(公)이 이미 이러한(恁麽) 전지(田地)에 이르러 차사(此事)는 사람으로 좇아 얻는 게 아님을 스스로 아셨으니 단지 또 잉구(仍舊)히 다시 물음을 쓰지(須) 않을 것입니다. 대법(大法; 불법. 禪法)을 밝혔다 밝히지 못했다, 응기(應機)하며 막혔다(礙) 막히지 않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짓는다면 곧 잉구(仍舊)가 아닙니다. 듣건대(承) 과하(過夏)한 후에 바야흐로 가히 다시 나왔다 하니 심히 병승(病僧)의 뜻에 맞습니다(愜). 만약 다시 열황(熱荒)하며 치구(馳求)를 쉬지 못한다면 곧 상당(相當)하지 않습니다. 전일(前日) 공(公)의 환희가 심함을 본지라 연고로써 감히 설파(說破)하지 못했음은 언어에 상심(傷心; 傷)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이제 환희가 이미 안정(安定; 定)된지라 비로소 감히 차사(此事)를 가리켜 내겠습니다. 지극히 용이(容易)하지 않으므로 모름지기 참괴(慚愧)를 내어야 비로소 옳습니다(始得). 왕왕(往往) 이근(利根)의 상지자(上智者)가 이(之)를 얻으매 힘을 소비(消費; 費)하지 않는다 하며 드디어 용이하다는 마음을 내고는 바로 수행하지 않고 다분히 목전의 경계가 빼앗아 가져 감을 입어 주재(主宰)를 지음을 얻지 못하고 일구월심(日久月深)하매 미(迷)하여 돌이키지(返) 못합니다. 도력(道力)이 업력(業力)을 능히 이기지 못합니다. 마(魔)가 그 편의(便宜; 便)를 얻어 결정코 마(魔)가 섭지(攝持)하는 바가 되어 명종(命終)에 임한 때 또한 득력(得力)하지 못하니 천만(千萬) 번 기취(記取)하십시오. 전일(前日)의 말씀인 리(理)는 곧 돈오(理則頓悟)라서 승오(乘悟)하여 아울러 녹이지만(銷) 사(事)는 곧 점제(漸除)니 차제(次第)로 인해 없어진다를 행주좌와에 간절히 가히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 나머지 고인의 갖가지 차별의 언구는 모두 가히 실(實)로 삼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또한 가히 허(虛)로 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구구(久久)하여 순숙(純熟)하면 자연히 묵묵히 자기의 본심에 계합하는지라 수승(殊勝)과 기특(奇特)을 별구(別求)함이 필요치 않습니다. 옛적(昔)에 수료화상(水潦和尙)이 등(藤)을 캐는 곳에서 마조(馬祖)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조운(祖云) 앞으로 다가온다면 너를 향해 말하겠다. 수료가 겨우 앞으로 다가가자 마조가 가슴에다(攔胸) 한 번 밟아, 밟아 넘어뜨렸다. 수료가 불각에 일어나(起來) 박수(拍手)하며 하하대소(呵大笑; 呵는 원음이 하)했다. 조왈(祖曰) 네가 저(箇; 這. 那)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바로 웃는가. 수료가 가로되 백천법문(百千法門)과 무량묘의(無量妙義)를 금일 일모두상(一毛頭上; 頭는 조사)에서 모두(盡底) 근원(根源)을 식득(識得)했습니다. 마조가 바로 그에 상관하지 않았다. 설봉(雪峯)이, 고산(皷山)이 인연히 익었음을 알았다. 어느 날 홀연히 가슴에다(驀胸) 금주(擒住)하고 가로되 시심마(是甚麽; 이 뭣고). 고산이 석연(釋然)하여 요오(了悟; 깨닫다)했고 요심(了心)도 바로 망(亡)했다. 오직 미소하며 거수(擧手)하여 요예(搖曳; 흔들다)할 따름이었다. 설봉이 가로되 자네가 도리를 짓는가. 고산이 다시 손을 흔들며 가로되 화상,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설봉이 바로 휴거(休去)했다. 몽산(蒙山) 도명선사(道明禪師)가 노행자(盧行者; 혜능)를 쫓아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러 의발(衣鉢)을 뺏으려고 했다. 노공(盧公)이 석상(石上)에 던지고 가로되 이 옷은 표신(表信; 믿음을 표함)이거늘 가히 힘으로 다투겠습니까. 공(公)이 가져가는 대로 일임합니다. 도명이 이를 들었으나(擧)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가로되 나는 구법(求法)함이며 의발을 위함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행자는 개시(開示)하십시오. 노공이 가로되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지니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나개(那箇; 어느 것)가 이 상좌(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까. 도명이 당시에 대오했고 온몸(通身)에 땀을 흘렸다. 읍루(泣淚: 울며 눈물을 흘림)하며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상래(上來)의 밀어밀의(密語密意) 밖에 도리어 다시 의지(意旨)가 있습니까. 노공이 가로되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설한 것은 곧 밀의(密意)가 아니다. 네가 만약 자기의 면목을 반조(返照)한다면 비밀(密)은 도리어 너의 가에 있나니 내가 만약 설함을 얻는다면 곧 비밀이 아니다. 세 존숙(尊宿)의 삼단(三段)인연으로써 공(公)의 일소(一笑) 중의 석연(釋然)에 비교하자면 우열(優劣)이 어떻습니까(何如). 청컨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도리어 다시 따로 기특한 도리가 있습니까. 만약 다시 따로 있다고 하면 곧 도리어 일찍이 석연(釋然)하지 않음과 흡사할 것입니다. 단지 작불(作佛)할 줄만 알고 부처가 말할 줄 알지 못할까 수심(愁心)하지 마십시오. 고래(古來)로 득도지사(得道之士)는 자기는 이미 충족한지라 자기의 나머지를 미루어 응기접물(應機接物)하나니 마치 명경(明鏡)이 대(臺)에 당하고 명주(明珠)가 손바닥에 있음과 같아서 호래호현하고 한래한현(胡來胡現漢來漢現)하거니와 착의(著意; 뜻을 둠)함이 아닙니다. 만약 착의하면 곧 실법(實法)을 타인에게 줌이 있습니다. 공(公)이 대법(大法)을 밝혀 응기(應機)하매 막힘(滯)이 없으려고 한다면 단지 또(且) 잉구(仍舊)라야 하나니 사람에게 물음이 필요치 않습니다. 구구(久久)하면 스스로 머리를 끄덕일(點頭) 것입니다. 임행(臨行)에 면품(面稟)한 말씀을 청컨대 좌우(座右)에 쓰십시오(書). 이 밖에 따로 설할 게 없나니 비록(縱) 설함이 있더라도 공(公)의 분상(分上)엔 모두(盡) 잉어(剩語)를 이룰 것입니다. 갈등(葛藤)이 태다(太多)했습니다. 시사(是事)를 고치(姑置; 잠시 내버려둠)합니다.
●示諭; 고지(告知). 효시(曉示; 깨우쳐 보임). 상(上)이 하(下)에 대하거나 혹 서차(書劄; 書信) 가운데에 상용(常用)함.
●過量; 수량을 초월함. 무수.
●大人; 장배(長輩; 나이와 지위 등이 높은 사람)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 대한 존칭. 대(大)는 경사(敬詞)니 대인ㆍ대부 같은 것. 인군(人君)의 덕이 있는지라 고로 대인으로 호칭함. 또 비범한 사람이나 상등근기자에 대한 칭호.
●百了千當; 또 천료백당으로 지음. 뜻으로 이르자면 참선오도의 일을 타첩(妥貼; 收拾. 정리)하여 요결(了結)함, 완전히 성공함.
●黃面老子; 석가모니불을 가리킴. 또 호칭이 황면구담(黃面瞿曇)ㆍ황면노인(黃面老人)ㆍ황면노한(黃面老漢)ㆍ황면로(黃面老)ㆍ황면(黃面)ㆍ황두대사(黃頭大士)ㆍ황두로(黃頭老)ㆍ황두(黃頭)ㆍ황로(黃老) 등. 여래는 금색의 몸이 되는지라 고로 황면의 칭호가 있음.
●有爲; 이르자면 작위(作爲)하여 조작하는 바가 있음의 뜻이니 무위의 대칭.
●波旬; <범> Pāpiyas 혹 Pāpiman. 또 파비야(波卑夜)ㆍ파순유(波旬踰)ㆍ파비연(波俾掾)ㆍ파비(波鞞)로 지음. 주유마경4 집(什; 라집)이 가로되 파순(波旬) 진(秦)나라 말로 살자(殺者)다. 늘 사람의 혜명(慧命)을 끊으려고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살자다. 의림장6본에 가로되 파비야(波卑夜) 여기에선 이르되 악자(惡者)니 천마(天魔)의 별명이다. 파순(波旬)은 와류(訛謬)다. 악법을 성취하고 악의를 품은 연고다. 현응음의8에 가로되 말한 파순(波旬)이란 것은 와류다. 바른 말로는 파비야(波卑夜)니 이는 그의 이름이다. 여기에선 이르되 악자(惡者)다. 늘 악의가 있고 악법을 성취하고 악혜(惡慧)를 성취하므로 고로 이름이 파순이다. 구사광기8에 가로되 석가문불의 마왕의 이름이 파순이다.
●田地; 1. 전토(田土). 2. 정도(程度). 경계.
●熱荒; 뜨겁게 번민하며 황망(慌忙; 허둥지둥하다)함. 황(荒)은 황(慌)과 통함.
●始得; 득(得)은 적합. 적당. 정호(正好). 가(可).
●業力; 이르자면 가히 항거하지 못할 선악의 보응지력(報應之力).
●理則頓悟下; 수릉엄경10 리(理)는 곧 돈오(頓悟)인지라 승오(乘悟)하여 아울러 녹이지만(銷) 사(事)는 돈제(頓除)하지 못하고 차제(次第)로 인해 없앤다.
●水潦; 또 수로(水老)로 지음. 당대승. 홍주(강서 남창) 사람이며 마조도일의 법사 [전등록8. 오등회원3].
●馬祖; 도일(道一; 709-788)이니 당대승. 남악회양의 법사. 한주(사천 광한) 사람이며 속성은 마(馬)니 세칭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 용모가 기이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 당화상(唐和尙; 곧 처적)에게 의지해 체염(剃染)하고 유주의 원율사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개원(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의 불적령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의 남강과 공공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 4년(769) 종릉(강서 진현)의 개원사에 주석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 4년 2월 4일에 시적했음. 나이 80. 당헌종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했음. 그 파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의 홍양(弘揚)에 2자(者)를 병칭함.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송고승전10. 경덕전등록6. 전법정종기. 오등회원3].
●祖師西來意; 초조 달마가 서천(西天; 인도)으로부터 차토(此土; 중국)로 와서 선법(禪法)을 전했거니와 구경(究竟; 畢竟) 의사(意思)가 어떠한가. 이 의사를 궁구하는 것이 곧 불조의 심인(心印)을 궁구하는 것임.
●攔胸; 가슴을 대착(對著). 란(攔)은 방식과 방향을 표시함. 당(當)ㆍ대착(對著)에 상당함. 용이 벽(劈)과 같음.
●雪峯; 의존(義存; 822-908)이니 당대승. 천주(泉州; 복건) 남안(南安) 사람이니 속성은 증(曾)이며 호가 설봉. 12세에 아버지를 따라 포전(蒲田) 옥윤사(玉潤寺)에 놀러갔다가 경현율사를 배알(拜謁)하고 스승으로 삼았으며 머물며 동시(童侍)가 되었는데 17세에 낙발(落髮)하였고 부용산(芙蓉山)의 항조대사를 알현(謁見)했음. 당 선종(宣宗)이 불교를 중흥한 후 오(吳)ㆍ초(楚)ㆍ양(梁)ㆍ송(宋)ㆍ연(燕)ㆍ진(秦)을 지나며 노닐다가 유주(幽州) 보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후에 무릉(武陵) 덕산(德山; 湖南 常德)에 이르러 선감(宣鑒)을 참알하고 그 법계(法系)를 이었음. 당 의종(懿宗) 함통 6년(865) 부용산에 돌아왔고 11년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에 올라 암자를 세우고 흥법(興法)했음. 그 산이 민월(閩越)의 승경(勝景)이 되며 겨울 전에 먼저 눈 오고 성하(盛夏)에도 오히려 서늘한지라 고로 설봉(雪峰)의 명칭이 있으며 스님도 또한 이로써 호를 삼았음. 절이 처음 이루어지자 치소(緇素; 僧俗)가 운집하여 대중이 매양(每樣) 천오백 인을 넘었음. 희종(僖宗)이 진각대사(眞覺大師)란 호와 아울러 자가사(紫袈裟) 한 벌을 주었음. 대순(大順; 8 90-891)년 중에 단구(丹丘)ㆍ사명(四明)의 땅에 노닐었으며 아울러 군려(軍旅; 軍隊)의 가운데서 선법(宣法)했고 후에 민(閩)으로 돌아와 민왕(閩王)의 예우(禮遇)를 갖춰 받았음. 개평 2년 5월에 입적했으니 나이는 87. 그의 법사(法嗣)에 운문문언(雲門文偃)ㆍ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이 있음. 문언(文偃)은 곧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며 사비하(師備下)에 계침(桂琛)이 있으며 침하(琛下)에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있으니 곧 법안종의 개조임 [송고승전12. 전등록16. 오등회원7].
●皷山; 신안(神晏; ?-943)이니 오대승(五代僧). 속성은 이(李)며 대량(지금의 하남 개봉) 사람. 어릴 적에 유업을 익혔고 혜민(慧敏; 지혜롭고 민첩함)으로 칭찬 받았음. 16세에 출가했고 바로 선종을 흠모했으며 후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참알하여 문답하던 아래 기연이 상계(相契)하고 석연(釋然)히 요오(了悟)하여 그의 법인(法印)을 얻었음. 민주(閩主) 왕심지가 늘 법요를 물었고 고산 용천선원(湧泉禪院)을 창건하여 스님에게 종지를 거향하기를 청했음. 거기에 거주한 지 30여 년이었고 구법하는 무리가 사방에서 모였는데 늘 천수(千數)가 넘었음. 후진 천복 8년(943)에 적(寂)했고 졸년(卒年)은 70여. 증시(贈號)가 흥성국사(興聖國師)며 고산선흥성국사화상법당현요광집 1권이 있어 세상에 유행함 [전등록18. 조당집10].
●道明; 당대승. 파양(강서) 사람. 속성은 진(陳)이니 진선제의 후예임. 나라가 망하자 민간에 추락하였으나 그가 왕손이기 때문에 일찍이 사품장군의 작위를 받았고 인해 장군이란 명칭이 있음. 유년에 영창사에서 출가하였고 고종의 시대에 황매산 5조 홍인에게 투신해 처음엔 증오(證悟)가 없었음. 뒤에 대감혜능이 5조의 의발을 얻었다 함을 듣고 이에 자취를 밟아 급히 추격하여 대유령에서 그를 만났으며 6조 혜능의 개시(開示)로 인하여 언하에 대오하고 드디어 홀로 여산 포수대로 갔으며 3재(載)가 지난 후 비로소 원주 몽산(蒙山)으로 가서 현화(玄化)를 대창(大唱)했음. 처음 이름은 혜명(慧明) 혹 혜명(惠明)이었으나 6조의 위의 글자를 피한지라 고로 도명으로 이름했음. 제자 등을 모두 보내어 영남에 이르게 하고 6조를 참례하게 했음 [오등회원2. 육조단경. 조당집2. 송고승전8. 전등록4].
●盧行者; 6조 혜능선사를 가리킴. 속성이 노(盧)임. 처음 기주(蘄州; 호북) 황매의 빙무산 5조 홍인의 문하에 있었는데 호칭이 노행자(盧行者) 혹 노거사(盧居士)였음. 행자는 이르자면 머리카락을 지닌 수행자. ◆行者; 곧 관행(觀行)하는 자를 가리킴. 혹은 널리 일반(一般)의 불도(佛道)의 수행자를 가리킴. 또 호칭이 행인(行人)ㆍ수행인임. 선림 중에서의 행자는 곧 출가하지 않고 사내(寺內)에 거주하면서 바쁜 잡무(雜務)를 도우는 자를 가리킴. 행자의 거소(居所)를 일컬어 행당(行堂)이라 하고 행당의 주수(主首)를 일컬어 행당주(行堂主), 혹 단칭(單稱)이 당주(堂主)임. 행자는 머리를 깎은 자도 있고 또한 머리를 깎지 않고 가권(家眷; 가족)을 휴대한 자도 있음. 종류가 번다(繁多)하나니 예여(例如) 참두행자(參頭行者)ㆍ부참행자(副參行者)ㆍ집국행자(執局行者; 方丈行者와 六局行者 등의 總稱)ㆍ고사행자(庫司行者; 都寺를 隨從함)ㆍ당사행자(堂司行者; 維那를 隨從함)ㆍ고자(庫子ㆍ副寺寮의 행자)ㆍ객두행자(客頭行者)ㆍ다두행자(茶頭行者)ㆍ할식행자(喝食行者; 飮食 시 飯食湯 등의 명칭을 唱報하는 자니 喝은 곧 唱의 뜻)ㆍ공두행자(供頭行者; 또 供過行者로 지음. 곧 飯食을 분배하는 자)ㆍ직전행자(直殿行者)ㆍ중료행자(衆寮行者)ㆍ문두행자(門頭行者) 등임. 연소(年少)한 행자는 일컬어 동행(童行)ㆍ도자(道者)ㆍ동시(童侍)ㆍ시동(僧童)이라 하고 혹 명칭이 구오사미(驅烏沙彌)ㆍ사할(沙喝; 飯食 시의 嚮導니 喝食을 充任하는 沙彌의 뜻에 상당함)ㆍ청규(聽叫)임. 행자와 종류가 같은 것은 이른 바 정인(淨人; 또 苦行으로 지음)이 있으며 머리를 깎지 않고 오로지 승중을 위해 복무하는 자를 가리킴. 대개 선림 직위의 번다함은 마치 조정의 문무양반(文武兩班)과 같아서 사원의 법명(法命)을 한가지로 유계(維繫; 유지하며 聯系)함. 그러나 이런 직위 제도는 송대(宋代) 이강(以降; 이후)으로부터 제종(諸宗)에서 융합하여 일반의 조금 큰 사원에선 모두 이 제도를 따랐지만 작은 사원은 곧 이런 세분(細分)이 없었음 [백장청규4대중장. 선원청규2, 3, 4, 8. 백장청규증의기6. 상기전직위류].
●大庾嶺; 영남으로 통왕(通往)하는 다섯 줄기의 요됴(要道)의 하나가 됨. 강서성 대유현 남쪽과 광동성 남웅현 북쪽에 위치함. 옛 호칭은 세상(塞上)이었음. 한무제가 유승(庾勝) 형제를 파견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했는데 유승이 이 고개에 기대어 지켰으므로 드디어 대유(大庾)라고 일컬었음. 또 호칭이 유령(庾嶺)ㆍ대령산임.
●衣鉢; (1). 또 명칭이 의우(衣盂)니 3의(衣)와 1발(鉢)을 가리킴. 3의(衣) 이르자면 9조의(九條衣)ㆍ7조의(七條衣)ㆍ5조의(五條衣)의 세 가지 가사임. 발(鉢) 곧 수행승의 식기임. 의발은 또한 가사와 발우의 총칭(總稱)이 됨 [증일아함경44. 대비바사론135. 대지도론3. 칙수백장청규3천화조]. (2). 또한 승가의 돈과 재물을 일컬음에 쓰임이 있음. 대개 돈과 재물은 승가가 응당 지녀야 할 물건이 아니므로 고로 완곡한 말로써 이를 일컬음임.
●上座; 참선승(參禪僧) 중에 수좌(首座)를 상좌(上座)라고 호칭함. 다분히 선승(禪僧)에 대한 존칭으로 쓰임. 參
●尊宿; 덕이 높은 연장자. ▲관무량수불경소2. 덕고(德高)를 가로되 존(尊)이며 기년(耆年)을 가로되 숙(宿)이다.
●應機接物; 학인의 근기의 같지 않음을 살펴서 상응하는 접인(接引) 시설을 채취함. 물(物)은 사람임.
●胡來胡現漢來漢現; 호인이 오면 곧 호인의 얼굴을 나타내고 한인이 오면 곧 한인의 얼굴을 나타냄이니 이르자면 오도한 자가 수연(隨緣)하며 임운(任運)하는 평상의 작위(作爲)임. 마음은 명경과 같아서 기용(機用)이 무애함. 또 이르자면 내기(來機)의 부동(不同)을 살펴서 부동(不同)의 응기작략(應機作略) 혹 접인시설(接引施設)을 채취(采取)함.
●點頭; 점(點)은 아래를 향해 조금 움직임.
●臨行; 장차 이개(離開; 떠나다)하려고 함. 장차 이별하려고 함.
●面稟; 당면하여 품고(稟告; 고함을 받다)함.
又
邴比蒙誨答 備悉深旨 邴自有驗者三 一事無逆順 隨緣卽應 不留胸中 二宿習濃厚 不加排遣 自爾輕微 三古人公案 舊所茫然 時復瞥地 此非自昧者 前書大法未明之語 蓋恐得少爲足 當擴而充之 豈別求勝解耶 淨除現流 理則不無 敢不銘佩
●比; 副詞 近 近來
●公案; 禪家應於佛祖所化之機緣 而提起越格之言語動作之垂示也 後人稱之名爲公案 又曰因緣 公案者 公府之公文 卽律令也 至嚴而不可犯者 可以爲法 可以斷是非 從上佛祖之垂示 是宗門之正令 以判迷悟者類之 故彼擬名公案 碧巖集 三敎老人序曰 祖敎之書謂之公案者 唱於唐而盛於宋 其來尙矣 二字乃世間法中吏牘語
●瞥地; 速急之意 猶言一瞥 瞥然 瞥 倏忽 疾視 暫見之意 地 助詞
●擴而充之; 孟子集注一 王見牛之觳觫而不忍殺 卽所謂惻隱之心 仁之端也 擴而充之 則可以保四海矣 故孟子指而言之 欲王察識於此而擴充之也
●現流; 現行流注 楞伽經心印二曰 自心現流者 現 現行 流 流注 謂八識現行流注也
우(又)
병(邴; 李邴)이 요사이(比) 회답(誨答; 敎導의 답)을 받고(蒙) 심지(深旨)를 갖추어 알았습니다. 병(邴)이 스스로 증험(證驗; 驗)함이 있는 것이 셋입니다. 1. 사(事)는 역순(逆順)이 없으미 수연(隨緣)하여 곧 응하고 흉중에 머물러 두지(留) 않음입니다. 2. 숙습(宿習)이 농후(濃厚)하지만 배견(排遣)을 더하지 않아도 저절로(自爾) 경미(輕微)해졌습니다. 3. 고인의 공안(公案)에 예전(舊)엔 망연(茫然)한 바이었지만 때로 다시 별지(瞥地)니 이것은 스스로 매(昧)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서(前書)에 대법을 밝히지 못함이란 말씀은 대개(大蓋; 蓋) 적은 것을 얻고 만족을 삼음인가 염려스러우니 마땅히 확이충지(擴而充之)할 것이며 어찌 따로 승해(勝解)를 구하겠습니까. 현류(現流)를 정제(淨除)하는 이치가 곧 없지 않거늘 감히 명패(銘佩; 銘心해 가짐)하지 않겠습니까.
●比; 부사(副詞)니 근(近) 근래(近來).
●公案; 선가에서 불조의 소화(所化)의 기연에 응해 격식을 초월한 언어와 동작을 제기하여 수시함임. 후인이 이를 일컬어 공안이라고 이름했음. 또 가로되 인연(因緣)임. 공안이란 것은 공부(公府)의 공문이니 곧 율령임. 지엄하여 가히 범하지 못하는 것이며 가이(可以) 법이 되며 가이 시비를 끊음. 종상의 불조의 수시는 이 종문의 정령(正令)이니 미오자(迷悟者)를 판단함이 이와 유사한지라 고로 그 이름을 본떠 공안이라 함. 벽암집 삼교노인의 서에 가로되 조교(祖敎)의 글을 일컬어 공안이라 하는 것은 당나라에서 창(唱)하고 송나라에서 성했으니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두 글자는 곧 세간법 중의 이독(吏牘; 公文)의 말이다.
●瞥地; 속급(速急; 급속)의 뜻. 일별(一瞥)ㆍ별연(瞥然)이라고 말함과 같음. 별(瞥)은 숙홀(倏忽; 갑자기)ㆍ질시(疾視; 빨리 보다)ㆍ잠견(暫見; 잠시 보다)의 뜻이며 지는 조사.
●擴而充之; 맹자집주1. 왕이 소의 곡속(觳觫; 무서워서 벌벌 떪)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함은 곧 이른 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다. 확이충지(擴而充之; 넓혀 충실하게 함)하면 곧 가이(可以) 사해를 보전한다. 고로 맹자가 이를 가리키며 말하되 왕이 여기에서 찰식(察識)하려고 한다면 이를 확충(擴充)하라 함이다.
●現流; 현행의 유주(流注)니 릉가경심인2에 가로되 자심(自心)이 현류(現流)한다는 것은 현(現)은 현행(現行)이며 류(流)는 유주(流注)다. 이르자면 8식이 현행하며 유주함이다. 現行流注 楞伽經心印二曰 自心現流者 現 現行 流 流注 謂八識現行流注也
信後益增瞻仰 不識日來隨緣放曠如意自在否 四威儀中不爲塵勞所勝否 寤寐二邊得一如否 於仍舊處無走作否 於生死心不相續否 但盡凡情別無聖解 公旣一笑 豁開正眼 消息頓亡 得力不得力 如人飮水冷煖自知矣 然日用之間 當依黃面老子所言 刳其正性 除其助因 違其現業 此乃了事漢 無方便中眞方便 無修證中眞修證 無取捨中眞取捨也 古德云 皮膚脫落盡 唯一眞實在 又如栴檀繁柯脫落盡 唯眞栴檀在 斯違現業除助因 刳正性之極致也 公試思之 如此說話 於了事漢分上 大似一柄臘月扇子 恐南地寒暄不常 也少不得 一笑
●走作; 謂心神浮盪不定 走來走去 又指超出本來之規範
●凡情; 一凡俗情識 二凡俗之人 此指一
●現業; 業 梵語羯磨 身口意善惡無記之所作也 其善性惡性 必感苦樂之果 故謂之業因 其在過去者 謂爲宿業 現在者謂爲現業
●了事; 一明事理 會辦事 二禪家謂了悟眞如本性 了結生死大事爲了事 三禪家又將善於通過語言來表說 或獲取知識見解稱作了事 幷非眞正了却參禪大事 此指二
●栴檀; <梵> candana 祖庭事苑七 栴檀林 此云與樂 以白檀能治熱病 赤檀能去風腫 皆除疾身安之藥 故名與樂 或云此土無故不飜 慈恩三藏傳云 秣羅矩吒國有秣剌耶山 崖谷崇深 中有栴檀香樹 樹類白楊 其質凉冷 蛇多附之 至冬方蟄 用之別檀也
●臘月扇子; 臘月不必扇子 喩指都無所用的物件
신후(信後; 서신을 받은 후)에 첨앙(瞻仰)을 더욱 더합니다(益增). 알지 못하나니 일래(日來; 近來)에 인연 따라 방광(放曠)하며 뜻과 같이 자재(自在)합니까. 사위의((四威儀) 중에 진로(塵勞)가 이기는 바가 되지 않습니까. 오매(寤寐) 이변(二邊)에 일여(一如)함을 얻습니까. 잉구처(仍舊處)에 주작(走作)이 없습니까. 생사심(生死心)이 상속(相續)하지 않습니까. 단지 범정(凡情)을 없애면 달리 성해(聖解; 聖人의 이해)가 없습니다. 공(公)이 이미 일소(一笑)하며 정안(正眼)을 활개(豁開; 활짝 열다)하고 소식(消息)이 문득 망했다 하니 득력(得力)과 득력하지 못함은 사람이 음수(飮水)하매 냉난(冷煖)을 스스로 앎과 같습니다. 그러나 일용(日用)하는 사이에 마땅히 황면노자(黃面老子)가 말씀한 바에 의해 그 정성(正性)을 쪼개고(刳) 그 조인(助因)을 제거하고 그 현업(現業)을 위배해야 이것이 곧(乃) 요사한(了事漢)입니다. 방편이 없는 가운데 참다운 방편(眞方便)이며 수증(修證)이 없는 가운데 참다운 수증이며 취사(取捨)가 없는 가운데 참다운 취사입니다. 고덕(古德; 藥山惟儼)이 이르되 피부(皮膚)가 탈락(脫落)하여 없어지고 유일(唯一)한 진실이 있다 했으며 또 전단(栴檀)의 번가(繁柯)가 탈락하여 없어지고 오직 참 전단만 있다 함과 같습니다. 이것(斯)이 현업을 위배하고 조인(助因)을 제거하고 정성(正性)을 쪼개는 극치(極致)니 공(公)이 시험 삼아 이를 사유하십시오. 이와 같은 설화는 요사한(了事漢)의 분상(分上)엔 한 자루의 납월선자(臘月扇子)와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거니와 남지(南地)엔 환훤(寒暄)이 불상(不常)함을 염려하나니 또한 적음(少)을 얻지 못합니다. 일소(一笑)합니다.
●走作; 이르자면 심신(心神)이 부탕(浮盪; 떠서 흔들림)하여 안정하지 못하고 주래주거(走來走去)함. 또 본래의 규범을 초출함을 가리킴.
●凡情; 1. 범속(凡俗)한 정식(情識). 2. 범속한 사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現業; 업(業) 범어는 갈마(羯磨; 梵 karma)니 신구의(身口意)ㆍ선악(善惡)ㆍ무기(無記)의 소작(所作)임. 그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반드시 고락(苦樂)의 결과를 감응(感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업인(業因)이라 함. 그것이 과거에 있는 것은 숙업(宿業)이라고 이르고 현재의 것은 현업(現業)이라고 이름.
●了事; 1. 사리를 밝힘. 판사(辦事; 공무를 처리함)를 앎. 2. 선가에서 이르기를 진여의 본성을 요오(了悟)하여 생사대사를 요결(了結)함을 요사(了事)라 함. 3. 선가가 또 어언을 통과하여 표설(表說)함을 잘하거나 혹 지식의 견해를 획취(獲取)함을 가지고 요사(了事)라고 호칭함. 모두 진정으로 참선의 대사를 요각(了却; 끝을 맺다)함이 아님.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栴檀; <범> candana. 조정사원7. 전단림(栴檀林) 여기에선 이르되 여락(與樂; 즐거움을 줌)임. 백단(白檀)으로써 능히 열병(熱病)을 치료하고 적단(赤檀)은 능히 풍종(風腫; 浮腫의 하나. 産後에 바람을 맞아서 바람을 싫어하므로 바람을 맞거나 차게 하면 더 붓는 症狀의 病症)을 제거함. 모두 질병을 다스려(除는 다스릴 제) 몸을 편안하게 하는 약이므로 고로 이름이 여락(與樂)임. 혹은 이르되 이 땅에는 없는 고로 번역하지 못한다. 자은삼장전(慈恩三藏傳; 大慈恩寺三藏法師傳四)에 이르되 말라구타국(秣羅矩吒國)에 말랄야산(秣剌耶山; 梵 Malaya)이 있는데 벼랑과 계곡이 높고 깊으며 가운데 전단향수(栴檀香樹)가 있으며 나무가 백양(白楊)과 유사하다. 그 성질이 양랭(凉冷)하므로 뱀이 많이 이에 붙는다. 겨울에 이르면 비로소 칩거(蟄居; 蟄은 숨을 칩)하므로 이를 써서 전단(栴檀)을 분별한다.
●臘月扇子; 납월에 부채가 필요하지 않음. 도대체 소용 없는 물건을 비유로 가리킴.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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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주역(書狀註譯) 증시랑(曾侍郞)〈天游〉에게 답하다○〈問書 附〉 07 (0) | 2025.03.12 |
| 서장주역(書狀註譯) 증시랑(曾侍郞)〈天游〉에게 답하다○〈問書 附〉 06 (0) | 2025.03.12 |
| 서장주역(書狀註譯) 증시랑(曾侍郞)〈天游〉에게 답하다○〈問書 附〉 05 (0) | 2025.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