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十一
臨濟宗
南嶽下四世
黃檗運禪師法嗣
鎭州臨濟義玄禪師
曹州南華邢氏子 幼負出塵之志 及落髮進具 便慕禪宗 初在黃檗會中 行業純一 時睦州爲第一座 乃問 上座在此多少時 師曰 三年 州曰 曾參問否 師曰 不曾參問 不知問箇甚麽 州曰 何不問堂頭和尙 如何是佛法的的大意 師便去 問聲未絕 檗便打 師下來 州曰 問話作麽生 師曰 某甲問聲未絕 和尙便打 某甲不會 州曰 但更去問 師又問 檗又打 如是三度問 三度被打 師白州曰 早承激勸問法 累蒙和尙賜棒 自恨障緣 不領深旨 今且辭去 州曰 汝若去 須辭和尙了去 師禮拜退 州先到黃檗處曰 問話上座 雖是後生 却甚奇特 若來辭 方便接伊 已後爲一株大樹 覆蔭天下人去在 師來日辭黃檗 檗曰 不須他去 祇往高安灘頭參大愚 必爲汝說
●出塵; 出離塵俗 卽出離煩惱之塵垢 轉義爲出家之意 與遠塵 離塵 出俗 離俗等同意
●大愚; 唐代洪州高安大愚禪師 嗣歸宗智常 常嗣馬祖道一 大愚 山號 [傳燈錄十]
●臨濟; 臨濟寺 位于河北省正定縣 原名臨濟院 創建于東魏興和二年(540) 唐大中(847-859)年間 義玄住此寺 大揚禪風 創臨濟宗 四方學僧雲集 寺原在正定城外臨濟村 咸通八年(867) 義玄入寂 弟子于正定城內建塔藏其衣鉢 稱臨濟禪師塔 寺亦遷入城內 金元之世 多次重修 寺後毁 現已修復一新
진주(鎭州) 임제(臨濟) 의현선사(義玄禪師)
조주(曹州) 남화(南華) 형씨(邢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출진(出塵)의 의지(意志)를 졌고(負) 및 낙발(落髮)하고 진구(進具)하자 바로 선종(禪宗)을 흠모했다. 처음 황벽회중(黃蘗會中)에 있으면서 행업(行業)이 순일(純一)했다. 때에 목주(睦州; 陳尊宿)가 제1좌(第一座)가 되었는데 이에 묻되 상좌는 여기에 있은 지 다소(多少)의 시일(時日; 時)인가. 사왈 3년입니다. 주왈(州曰) 일찍이 참문(參問)했는가. 사왈 일찍이 참문하지 못했으니 저(箇)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주왈(州曰) 왜 당두화상(堂頭和尙)에게 무엇이 이 불법의 적적(的的; 확실. 명백)한 대의(大意)입니까 하고 묻지 않느냐. 스님이 바로 가서 묻는 소리가 끊어지지도 않았는데 황벽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내려오자 주왈(州曰) 문화(問話)는 어떠한가. 사왈 모갑의 묻는 소리가 끊어지지도 않았는데 화상이 바로 때렸습니다. 모갑이 알지 못합니다. 주왈(州曰) 단지 다시 가서 물어라. 스님이 또 묻자 황벽이 또 때렸다. 이와 같이 세 차례(度) 물었고 세 차례 때림을 입었다. 스님이 목주(睦州)에게 사뢰어 가로되 일찍 격권(激勸; 격려하며 권함)하여 문법(問法)함을 받들었으나(承) 거듭(累) 화상의 사방(賜棒)을 입었으니(蒙) 스스로 장연(障緣)으로 심지(深旨)를 영회(領會)하지 못함을 한(恨)합니다. 이제 다만(且) 고별하고 떠나겠습니다. 주왈(州曰) 네가 만약 가려거든 꼭 화상에게 고별하고 가거라. 스님이 예배하고 물러났다. 목주가 먼저 황벽의 처소에 이르러 가로되 문화(問話)한 상좌는 비록 이 후생(後生; 후배)이긴 하나 도리어 매우 기특합니다. 만약 와서 고별하거든 방편으로 그를 접인(接引)하십시오. 이후(已後)에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을 덮어 그늘지게(覆蔭) 하여 갈 것입니다. 스님이 내일(來日) 황벽에게 고별하자 벽왈(檗曰) 다른 데로 감을 쓰지(須) 말고 다만 고안(高安) 탄두(灘頭; 여울)로 가서 대우(大愚)를 참(參)하거라. 반드시 너를 위해 설하리라.
●臨濟; 임제사(臨濟寺)니 하북성 정정현(正定縣)에 위치하며 원래 이름은 임제원(臨濟院)이었음. 동위(東魏) 흥화 2년(540)에 창건했고 당 대중(847- 859)년 간 의현이 이 절에 거주하며 선풍을 크게 날리며 임제종을 창설했으며 사방의 학승이 운집했음. 절이 원래 정정성(正定城) 밖의 임제촌(臨濟村)에 있었는데 함통 8년(867)에 의현이 입적(入寂)하자 제자들이 정정성 안에 탑을 세우고 그의 의발(衣鉢)을 저장하고 임제선사탑이라 일컬었음. 절도 또한 옮겨 성내에 들였음. 금원(金元)의 시대에 여러 차례 중수했지만 절이 뒤에 훼손(毁損)되었고 현재는 이미 수복(修復)하여 일신(一新)했음.
●出塵; 진속(塵俗)을 출리(出離)함이니 곧 번뇌의 진구(塵垢)를 출리함. 전의(轉義)하여 출가의 뜻이 됨. 원진(遠塵)ㆍ이진(離塵)ㆍ출속(出俗)ㆍ이속(離俗) 등과 같은 뜻.
●大愚; 당대 홍주 고안(高安)의 대우선사니 귀종지상(歸宗智常)을 이었음. 지상은 마조도일을 이었음. 대우는 산호(山號) [전등록10].
師到大愚 愚曰 甚處來 師曰 黃檗來 愚曰 黃檗有何言句 師曰 某甲三度問佛法的的大意 三度被打 不知某甲有過無過 愚曰 黃檗與麽老婆心切 爲汝得徹困 更來這裏問有過無過 師於言下大悟 乃曰 元來黃檗佛法無多子 愚搊住曰 這尿牀鬼子 適來道有過無過 如今却道黃檗佛法無多子 你見箇甚麽道理 速道速道 師於大愚肋下築三拳 愚拓開曰 汝師黃檗 非干我事 師辭大愚 却回黃檗 檗見便問 這漢來來去去 有甚了期 師曰 祇爲老婆心切 便人事了侍立 檗問 甚處去來 師曰 昨蒙和尙慈旨 令參大愚去來 檗曰 大愚有何言句 師擧前話 檗曰 大愚老漢饒舌 待來痛與一頓 師曰 說甚待來 卽今便打 隨後便掌 檗曰 這風顚漢來這裏捋虎鬚 師便喝 檗喚侍者曰 引這風顚漢參堂去〈潙山擧問仰山 臨濟當時得大愚力 得黃檗力 仰云 非但騎虎頭 亦解把虎尾〉
●無多子; 沒多少 很少 子 助詞
●尿牀鬼子; 痛罵人之稱 猶言小便之餓鬼也 又對于言行荒唐可笑者的斥罵語 子 後綴
스님이 대우(大愚)에 이르자 우왈(愚曰)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황벽에서 옵니다. 우왈(愚曰) 황벽이 어떤 언구(言句)가 있었는가. 사왈 모갑이 세 차례 불법의 적적(的的)한 대의(大意)를 물었는데 세 차례 때림을 입었습니다. 모갑이 허물이 있는지 허물이 없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왈(愚曰) 황벽이 그렇게 노파심이 간절하여 너를 위해 철저히 피곤함을 얻었거늘 다시 이 속에 와서 허물 있음과 허물 없음을 묻느냐. 스님이 언하에 대오하고 이에 가로되 원래 황벽의 불법이 무다자(無多子)로구나. 대우가 붙들어(搊) 머물게 하고 가로되 이 요상귀자(尿牀鬼子)가 아까는 허물 있음과 허물 없음을 말하더니 여금에 도리어 황벽의 불법이 무다자(無多子)라고 말하느냐. 네가 저(箇)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스님이 대우의 갈빗대(肋) 아래 세 주먹 찔렀다(築). 대우가 밀어젖히며 가로되 너의 스승은 황벽이니 나의 일에 상간(相干)하지 않는다. 스님이 대우를 고별하고 도리어 황벽으로 돌아왔다. 황벽이 보고 바로 묻되 이 자가 오락가락(來來去去)하니 무슨 마칠 기약이 있으리오. 사왈 다만 노파심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곧 인사를 마치고 시립(侍立)했다. 황벽이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사왈 지난날(昨)에 화상의 자지(慈旨)를 입어(蒙) 대우에게 참문하러 갔다 오게 하셨습니다. 벽왈(檗曰) 대우가 무슨 언구가 있었느냐. 스님이 앞의 얘기를 들었다. 벽왈(檗曰) 대우 늙은이(老漢)가 요설(饒舌)이구나. 오기를 기다렸다가 통렬히 1돈(頓)을 주리라. 사왈 무슨 오기를 기다림을 설하십니까. 즉금 바로 때리겠습니다. 뒤따라 바로 손바닥으로 갈겼다. 벽왈(檗曰) 이 미친놈(風顚漢)이 이 속에 와서 범의 수염을 만지는구나.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황벽이 시자를 불러 가로되 이 미친놈을 인출(引出; 引)하여 참당(參堂)하러 가게 하여라〈潙山이 들어 앙산에게 묻되 임제가 당시에 대우의 힘을 얻었는가 황벽의 힘을 얻었는가. 앙산이 이르되 단지 범의 머리를 탔음만이 아니라 또한 범의 꼬리를 잡을 줄 알았습니다〉.
●無多子; 얼마 없음. 매우 적음. 자는 조사.
●尿牀鬼子; 통렬히 사람을 욕하는 명칭임. 소변의 아귀라고 말함과 같음. 또 언행이 황당(荒唐)하여 가소로운 자에 대한 척매어(斥罵語; 가리키며 욕하는 말)임. 자는 후철.
黃檗一日普請次 師隨後行 檗回頭見師空手 乃問 钁在何處 師曰 有一人將去了也 檗曰 近前來 共汝商量箇事 師便近前 檗竪起钁曰 祇這箇天下人拈掇不起 師就手掣得 竪起曰 爲甚麽却在某甲手裏 檗曰 今日自有人普請 便回寺〈仰山侍潙山次 潙擧此話未了 仰便問 钁在黃檗手裏 爲甚麽却被臨濟奪却 潙云 賊是小人 智過君子〉
●拈掇; 一擧說 議論公案機語 二提 此指二
황벽(黃蘗)이 어느 날 보청(普請)하는 차에 스님이 뒤따라 갔다. 황벽이 회두(回頭)하여 보매 스님이 빈손이라 이에 묻되 괭이(钁)는 어느 곳에 있느냐. 사왈 한 사람이 있어 가지고 갔습니다. 벽왈(檗曰) 앞으로 다가오너라, 너와 함께 개사(箇事; 此事)를 상량(商量)하겠다. 스님이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황벽이 괭이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다만 이것(這箇)은 천하인이 들어(拈掇) 일으키지 못한다. 스님이 손으로 나아가 체득(掣得; 끌어당겨 얻다)하여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모갑의 손안에 있습니까. 벽왈(檗曰) 금일 스스로 어떤 사람이 보청(普請)한다. 바로 회사(回寺)했다〈仰山이 潙山을 侍立하던 차에 위산이 此話를 들어 마치지도 않았는데 앙산이 바로 묻되 괭이가 황벽의 손안에 있다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임제가 뺏아버림을 입었습니까. 위산이 이르되 도적이 이 小人이지만 지혜가 군자를 초과한다〉.
●拈掇; 1. 거설(擧說)이니 공안의 기어(公案)를 의논함. 2. 제(提; 들어올리다. 들다).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師普請鉏地次 見黃檗來 拄钁而立 檗曰 這漢困那 師曰 钁也未擧 困箇甚麽 檗便打 師接住棒一送送倒 檗呼維那 扶起我來 維那扶起曰 和尙爭容得這風顚漢無禮 檗纔起便打維那 師钁地曰 諸方火塟 我這裏活埋〈潙山問仰山 黃檗打維那意作麽生 仰云 正賊走却 邏贓人喫棒〉
●正賊; 主賊 正 作爲主體者 如副支等相對
●邏贓; 邏 巡也 巡行非違也 贓 盜所取物 凡非理所得財賄皆曰贓 ▲明史一 太祖本紀 命官吏犯贓者罪勿貸(減免也)
스님이 보청(普請)하여 땅을 김매던 차에 황벽이 옴을 보고 괭이에 버티고(拄) 섰다. 벽왈(檗曰) 저한(這漢; 이 자)이 피곤한가. 사왈 괭이도 들지 않았거늘 저(箇) 무엇이 피곤합니까. 황벽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방(棒)을 접주(接住; 접수해 머묾)하여 일송(一送)으로 보내어(送) 넘어뜨렸다. 황벽이 유나(維那)를 부르며 나를 부축(扶)해 일으키거라. 유나가 부축해 일으키고 가로되 화상은 어찌하여 이 풍전한(風顚漢)의 무례를 용납함을 얻습니까. 황벽이 겨우 일어나자 바로 유나를 때렸다. 스님이 땅에 괭이질(钁)하고 가로되 제방에선 곧 화장(火塟)하지만 나의 이 속에선 활매(活埋)한다〈潙山이 仰山에게 묻되 황벽이 유나를 때린 뜻이 무엇인가. 앙산이 이르되 正賊은 도주해버렸고 邏贓人이 喫棒했습니다〉.
●正賊; 주적(主賊)임. 정(正)은 주체를 짓는 자니 예컨대(如) 부(副)ㆍ지(支) 등과 상대됨.
●邏贓; 라(邏)는 순(巡)임. 비위(非違)를 순행함임. 장(贓)은 도둑이 취한 바의 물건이니 무릇 비리로 소득한 재회(財賄; 賄는 재물 회)는 다 가로되 장(贓)임. ▲명사(明史) 태조본기. 관리에게 명령해 장물을 범한 자의 죄는 감면하지 말라(貸; 減免).
師一日在僧堂裏睡 檗入堂見 以拄杖打板頭一下 師擧首見是檗 却又睡 檗又打板頭一下 却往上間 見首座坐禪 乃曰 下間後生却坐禪 汝在這裏妄想作麽 座曰 這老漢作甚麽 檗又打板頭一下 便出去〈潙山擧問仰山 祇如黃檗意作麽生 仰云 兩彩一賽〉
●板頭; 此指僧堂內之床椽
●上間; 禪院之上位 人面向堂時 以己身之右爲上間 法堂方丈(南向)則以東爲上間 僧堂(東向)則以北爲上間 庫司(西向)則以南爲上間 [百丈淸規一祝釐章 象器箋二]
●下間; 指寺堂僧房中之下等房間 面對堂宇 己身之左方爲下間 法堂方丈之西 僧堂之南 庫司之北 皆爲下間 [百丈淸規二住持日用章 象器箋二]
●兩彩一賽; 彩卽賭博得勝 賽卽競爭較量 兩彩一賽 原指一場競賽之後 竟有兩人得彩 意謂雙方棋逢對手 難分勝負 於禪林中 轉指禪者之間 相互勘辨挨拶 其參禪修學之境界 兩俱優勝而不分高下
스님이 어느 날 승당(僧堂) 속에서 졸았다(睡). 황벽이 입당(入堂)하여 보고는 주장자로써 판두(板頭)에 한 번(三下) 때렸다. 스님이 머리를 들어 보매 이 황벽인지라 도리어 또 졸았다. 황벽이 또 판두를 한 번 때렸다. 도리어 상간(上間)으로 가서 수좌가 좌선함을 보고서 이에 가로되 하간(下間)의 후생(後生)은 도리어 좌선하거늘 너는 이 속에 있으면서 망상하여 무엇하리오. 수좌가 가로되 이 노한(老漢)이 무엇이라 하는가. 황벽이 또 판두를 한 번 때리고 바로 나갔다〈潙山이 들어 앙산에게 묻되 祇如 황벽의 뜻이 무엇인가. 앙산이 이르되 양채일새(兩彩一賽)입니다〉.
●板頭; 여기에선 승당 안의 상연(床椽)을 가리킴.
●上間; 선원의 상위(上位)니 사람의 얼굴이 승당을 향할 때 자기 몸의 오른쪽이 상간이 됨. 법당과 방장(方丈; 南向)은 곧 동쪽으로써 상간을 삼고 승당(僧堂; 東向)은 곧 북쪽으로써 상간을 삼고 고사(庫司; 西向)는 곧 남쪽으로써 상간을 삼음 [백장청규1 축희장. 상기전2].
●下間; 사당(寺堂) 승방 중의 하등 방간(房間)이니 당우(堂宇)를 면대(面對)하여 자기 몸의 좌방(左方)을 하간으로 삼음. 법당 방장의 서쪽ㆍ승당의 남쪽ㆍ고사(庫司)의 북쪽을 모두 하간으로 삼음 [백장청규2 주지일용장. 상기전2].
●兩彩一賽; 채(彩)는 곧 도박하여 승리를 얻음이며 새(賽)는 곧 경쟁하며 교량(較量)함임. 양채일새는 원래 한마당의 경새(競賽)의 뒤에 마침내 두 사람이 득채(得彩)함이 있음을 가리킴. 뜻으로 이르자면 쌍방의 기사(棋士)가 대수(對手; 敵手)를 만나 승부를 가르기 어려움임.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선자(禪者)의 사이에 상호 감변(勘辨)하고 애찰(挨拶)하매 그 참선 수학(修學)의 경계가 둘 다 모두 우승하여 고하를 나누지 못함을 가리킴.
師栽松次 檗曰 深山裏栽許多松作甚麽 師曰 一與山門作境致 二與後人作標牓 道了 將钁頭𡎺地三下 檗曰 雖然如是 子已喫吾三十棒了也 師又𡎺地三下 噓一噓 檗曰 吾宗到汝 大興於世〈潙山擧問仰山 黃檗當時祇囑臨濟一人 更有人在 仰云 有 祇是年代深遠 不欲擧似和尙 潙云 雖然如是 吾亦要知 汝但擧看 仰云 一人指南 吳越令行 遇大風卽止〉
●標牓; 同標榜 標準 榜樣 法式
●𡎺; 打 擊
●噓; 噓 吹也 吹噓也 出氣急曰吹 緩曰嘘
스님이 소나무를 심던 차에 황벽(黃檗)이 가로되 깊은 산 속에 허다한 소나무를 심어 무엇하겠는가. 사왈(師曰) 하나는 산문(山門)에 경치(境致)를 지어 주고 둘은 후인에게 표방(標牓)을 지어 줍니다. 말해 마치자 괭이(钁頭)를 가지고 땅을 세 번 쳤다(𡎺). 벽왈(檗曰)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자네는 이미 나의 30방(棒)을 먹었다. 스님이 또 세 번 땅을 치고(𡎺) 허(噓)하며 일허(一噓)했다. 벽왈(檗曰) 오종(吾宗)이 너에 이르러 세상에 대흥(大興)하리라〈潙山이 들어 仰山에게 묻되 황벽이 당시에 다만 임제 1인에게 부촉했는가, 다시 사람이 있느냐. 앙산이 이르되 있지만 다만 이 年代가 深遠하여 화상에게 擧似하고 싶지 않습니다. 潙云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더라도 내가 또한 알고자 하나니 너는 단지 들어 보아라. 仰云 一人이 指南하매 吳越에서 令이 行할 것이며 大風을 만나면 곧 멈출 것입니다(止)〉.
●標牓; 표방(標榜)과 같음. 표준. 방양(榜樣). 법식.
●𡎺; 타(打). 격(擊).
●噓; 허(噓)는 취(吹)임. 취허(吹噓)임. 출기(出氣)가 급함을 가로되 취(吹)며 느림을 가로되 허(嘘)임.
黃檗因入厨下 問飯頭 作甚麽 頭曰 揀衆僧飯米 檗曰 一頓喫多少 頭曰 三石五 檗曰 莫大多麽 頭曰 猶恐少在 檗便打 頭擧似師 師曰 我與汝勘這老漢 纔到侍立 檗擧前話 師曰 飯頭不會 請和尙代一轉語 檗曰 汝但擧 師曰 莫太多麽 檗曰 來日更喫一頓 師曰 說甚麽來日 卽今便喫 隨後打一掌 檗曰 這風顚漢又來這裏捋虎鬚 師喝一喝 便出去〈潙山擧問仰山 此二尊宿意作麽生 仰山云 和尙作麽生 潙山云 養子方知父慈 仰山云 不然 潙山云 子又作麽生 仰山云 大似勾賊破家〉
●養子方知父慈; 自己養育兒子 始知父母慈愛
●勾賊破家; 勾賊 招待盜賊 勾 招也
황벽(黃檗)이 부엌 아래로 들어감으로 인해 반두(飯頭)에게 묻되 무엇하느냐. 두왈(頭曰) 중승(衆僧)의 반미(飯米)를 가립니다(揀). 벽왈(檗曰) 1돈(頓)에 얼마를 먹는가. 두왈(頭曰) 3석(石; 섬) 5(五; 五斗)입니다. 벽왈(檗曰) 너무 많은 게 아닌가(莫大多麽). 두왈(頭曰) 오히려 적을까 염려합니다. 황벽이 바로 때렸다. 반두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내가 너를 위해(與) 이 노한을 감험(勘驗; 勘)하겠다. 겨우 이르러 시립(侍立)하자 황벽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사왈 반두가 알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화상이 1전어(轉語)을 대(代)하십시오. 벽왈(檗曰) 네가 단지 들어라(擧). 사왈 너무 많은 게 아닌가. 벽왈(檗曰) 내일 다시 1돈(頓)을 먹습니다. 사왈 무슨 내일을 말합니까. 즉금 바로 먹습니다. 뒤따라 1장(掌) 때렸다. 벽왈(檗曰) 이 풍전한(風顚漢)이 또 이 속에 와서 범의 수염을 만지는구나. 스님이 할(喝)로 한 번 할하고 바로 나갔다〈潙山이 들어 仰山에게 묻되 이 二尊宿의 뜻이 무엇인가. 仰山云 화상은 어떻습니까. 潙山云 자식을 키워야 비로소 아비의 사랑을 안다(養子方知父慈) 仰山云 그렇지 않습니다. 潙山云 자네는 또 어떠한가. 山云 勾賊破家와 大似합니다〉
●養子方知父慈; 자기가 아자(兒子; 아이)를 양육해야 비로소 부모의 자애를 앎.
●勾賊破家; 구적(勾賊)은 도적을 초대함임. 구(勾)는 초(招)임.
師半夏上黃檗山 見檗看經 師曰 我將謂是箇人 元來是唵〈或作揞〉黑豆老和尙 住數日 乃辭 檗曰 汝破夏來 何不終夏去 師曰 某甲暫來禮拜和尙 檗便打趂令去 師行數里疑此事 却回終夏 後又辭檗 檗曰 甚處去 師曰 不是河南 便歸河北 檗便打 師約住與一掌 檗大笑 乃喚侍者 將百丈先師禪板几案來 師曰 侍者將火來 檗曰 不然 子但將去 已後坐斷天下人舌頭去在
●半夏; 卽禪林夏安居時 結夏至解夏三個月間之中間日 夏安居始於四月十五日 稱爲結夏 終於七月十五日 稱爲解夏 故其半夏之日爲六月一日 此日以前稱前半夏 以後稱後半夏
●唵黑豆; 唵 含也 浸漬也 又通掩 掩 捕取也 又用手進食也 唵黑豆 謂弄經卷文字 猶數黑豆也
●破夏; 在夏安居期內改變安居場所稱爲破夏
●河南; 黃河以南地域
●約住; 約 纏束也 束也
●禪板; 又作禪版 倚版 僧衆坐禪時 爲消除疲勞 用以安手或靠身之板 一般長五十四公分 寬六公分 厚約一公分 上穿小圓孔 用繩貫穿小圓孔 縛於繩床後背之橫繩 使板面稍斜 可以倚身安手時 則把禪板橫放在兩膝上 [碧巖錄第二十則 洞上伽藍雜記禪版 象器箋器物類] ▲釋氏要覽下 倚版 今呼禪版 毘奈耶攝頌曰 倚版爲除勞 僧私皆許畜(僧卽衆 私卽己)
●几案; 案 亦几屬 床也
●坐斷; 截除 截斷 多用于禪機施設 謂截除語言知解 區別妄念 斷字 主眼也 坐者 平坐之義
스님이 반하(半夏)에 황벽산(黃檗山)에 올라 황벽이 간경(看經)함을 보고 사왈(師曰) 내가 장차 이러한 사람(是箇人)이라고 이르려 하였더니 원래 이 흑두를 어루만지는(唵)〈或作揞〉黑豆) 노화상입니다. 며칠 머물다가 이에 고별하자 벽왈(檗曰) 네가 파하(破夏)하고 왔다가 종하(終夏; 하안거를 마침)하지 않고 가느냐. 사왈 모갑이 잠시 와서 화상에게 예배했습니다. 황벽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어 떠나게 했다. 스님이 몇 리를 가다가 차사(此事)를 의심해 돌아가(却迴) 종하(終夏)했다. 후에 또 황벽에게 고별하자 벽왈(檗曰) 어느 곳으로 가느냐. 사왈 이 하남(河南)이 아니며 바로 하북(河北)으로 돌아갑니다. 황벽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약주(約住)하고 1장(掌) 주었다. 황벽이 크게 웃고 이에 시자를 불러 백장선사(百丈先師)의 선판(禪板)과 궤안(几案)을 가지고 오라 했다. 사왈 시자야, 불을 가지고 오너라. 벽왈(檗曰) 그렇지 않나니 자네는 단지 가지고 가게나. 이후(已後)에 천하인의 설두(舌頭)를 좌단(坐斷)할 것이다.
●半夏; 곧 선림에서 하안거 때 결하(結夏)에서 해하(解夏)에 이르기까지 3개월 간의 중간일임. 하안거는 4월 15일에 시작하나니 일컬어 결하라 하고 7월 15일에 마치나니 일컬어 해하라 함. 고로 그 반하의 날은 6월 1일이 됨. 이날 이전을 전반하(前半夏)라고 일컫고 이후를 후반하(後半夏)라고 일컬음.
●唵黑豆; 암(唵)은 함(含)임. 침지(浸漬; 적시어 담금)임. 또 엄(掩)과 통함. 엄(掩)은 포취(捕取)임. 또 손을 써서 밥을 진입함임. 암흑두(唵黑豆)는 이르자면 경권의 문자를 희롱함이니 마치 흑두를 셈과 같음.
●破夏; 하안거 기간 내에 안거 장소를 개변(改變)함을 일컬어 파하(破夏)라 함.
●河南; 황하 이남 지역.
●約住; 약(約)은 전속(纏束; 감아서 묶다)임. 속(束)임.
●禪板; 또 선판(禪版)ㆍ의판(倚版)으로 지음. 승중이 좌선할 때 피로를 소제(消除)하기 위해 손을 편안히 하는 데 쓰거나 혹은 몸을 기대는 판임. 일반으로 길이는 54㎝, 너비는 6㎝, 두께는 약 1㎝임. 위에 소원공(小圓孔; 작고 둥근 구멍)을 뚫고 끈을 써서 소원공에 뀀. 승상(繩床) 후배(後背)의 횡승(橫繩)에 묶고 판면(板面)이 조금 기울게 하여 가이(可以) 몸을 기대고 손을 편안히 할 때 곧 선판을 잡아 양쪽 무릎 위에 가로 놓음 [벽암록제20칙. 동상가람잡기선판. 상기전기물류]. ▲석씨요람하. 의판(倚版) 여금에 선판(禪版)으로 호칭한다. 비나야섭송(毘奈耶攝頌)에 가로되 의판(倚版)은 피로를 제거하기 위해서며 승사(僧私)에게 모두 축(畜; 受容)함을 허락한다(僧은 곧 衆이며 私는 곧 己임).
●几案; 안(案)도 또한 궤(几)의 무리니 상(床)임.
●坐斷; 절제(截除). 절단. 다분히 선기의 시설에 사용함. 이르자면 어언과 지해, 구별과 망념(妄念)을 절제함. 단자(斷字)는 주안(主眼; 주된 목표)이며 좌(坐)란 것은 평좌(平坐)의 뜻.
師到達磨塔頭 塔主問 先禮佛 先禮祖 師曰 祖佛俱不禮 主曰 祖佛與長老有甚冤家 師拂袖便出 師爲黃檗馳書至潙山 與仰山語次 仰曰 老兄向後北去 有箇住處 師曰 豈有與麽事 仰曰 但去 已後有一人佐輔汝 此人祇是有頭無尾 有始無終〈懸記普化〉
●塔頭; 一大寺德高之住僧入寂後 其徒弟 慕師德 不去塔頭 構房而住 稱爲某大德之塔頭何院 必別有院號 其後只爲寺中別坊之名 二卽塔 頭後綴 此指二
●冤家; 怨讐 寃與怨通 家 助詞
●懸記; 懸者懸曠 懸遠也 遙記未來之事 謂之懸記 卽豫言也
스님이 달마탑두(達磨塔頭)에 이르렀다. 탑주(塔主)가 묻되 먼저 예불(禮佛)하겠습니까, 먼저 예조(禮祖)하겠습니까. 사왈 조불(祖佛)에게 모두(俱) 예배하지 않겠습니다. 탑주가 가로되 조불과 장로가 무슨 원가(冤家)가 있습니까.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스님이 황벽을 위해 치서(馳書)하여 위산(潙山)에 이르러 앙산(仰山)과 말하던 차에 앙왈(仰曰) 노형이 향후에 북쪽으로 간다면 저(箇) 주처(住處)가 있을 것이다. 사왈 어찌 그러한 일이 있으리오. 앙왈(仰曰) 단지 갈지니 이후에 한 사람이 있어 너를 좌보(佐輔)할 것이다. 이 사람은 다만 이 유두무미(有頭無尾)하고 유종무시(有始無終)하다〈普化를 懸記했다〉
●塔頭; 1. 큰 사원의 덕이 높은 주승(住僧)이 입적한 후 그 도제(徒弟)가 스승의 덕을 흠모해 탑두에서 떠나지 않고 방을 만들어 거주하는데 일컫기를 모대덕(某大德)의 탑두(塔頭) 하원(何院)이라 일컬음. 반드시 따로 원호(院號)가 있음. 그 후 다만 사중(寺中)의 별방(別坊)의 이름이 되었음. 2. 곧 탑이니 두(頭)는 후철(後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冤家; 원수(怨讐). 원(寃)과 원(怨)은 통하며 가(家)는 조사.
●懸記; 현(懸)이란 것은 현광(懸曠)이니 현원(懸遠; 아주 멂)임. 미래의 일을 요기(遙記)함을 일러 현기(懸記)라 함. 곧 예언(豫言)임.
師後住鎭州臨濟 學侶雲集 一日 謂普化克符二上座曰 我欲於此建立黃檗宗旨 汝且成褫我 二人珍重下去 三日後 普化却上來問 和尙三日前說甚麽 師便打 三日後克符上來問 和尙前日打普化作甚麽 師亦打 至晩小參曰 有時奪人不奪境 有時奪境不奪人 有時人境兩俱奪 有時人境俱不奪〈問答語具克符章〉
●成褫; 禪林寶訓順硃一 褫 音池 成就之也 ▲從容錄五第八十則 成褫猶成就 結裹也
스님이 후에 진주(鎭州) 임제(臨濟)에 거주했고 학려(學侶)가 운집했다. 어느 날 보화(普化)ㆍ극부(克符) 두 상좌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여기에서 황벽종지(黃檗宗旨)를 건립하고 싶으니 너희는 다만 나를 성치(成褫)하라. 2인(人)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내려갔다. 3일 후 보화가 도리어 올라와 묻되 화상이 3일 전에 무엇을 설했는가. 스님이 바로 때렸다. 3일 후 극부가 올라와 묻되 화상이 전날 보화를 때려 무엇하겠습니까. 스님이 또한 때렸다. 저녁에 이르러 소참(小參)에 가로되 어떤 때는 인(人)을 뺏고 경(境)을 뺏지 않으며 어떤 때엔 경을 뺏고 인을 뺏지 않으며 어떤 때는 인과 경을 다 뺏으며 어떤 때는 인과 경을 다 뺏지 않는다〈問答語는 克符章에 갖췄다〉.
●成褫; 선림보훈순주1. 치(褫) 음이 지(池)니 이것을 성취함이다. ▲종용록5 제80칙. 성치(成褫)는 성취와 같으며 결과(結裹; 싸서 동여맴)다.
僧問 如何是眞佛眞法眞道 乞師開示 師曰 佛者心淸淨是 法者心光明是 道者處處無礙淨光是 三卽一 皆是空名而無實有 如眞正作道人 念念心不間斷 自達磨大師從西土來 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 後遇二祖 一言便了 始知從前虛用工夫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薦得 堪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薦得 堪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薦得 自救不了 僧便問 如何是第一句 師曰 三要印開朱點窄 未容擬議主賓分 曰 如何是第二句 師曰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曰 如何是第三句 師曰 但看棚頭弄傀儡 抽牽全藉裏頭人 乃曰 大凡演唱宗乘 一句中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實 有照有用 汝等諸人作麽生會 師謂僧曰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劒 有時一喝如踞地師子 有時一喝如探竿影草 有時一喝不作一喝用 汝作麽生會 僧擬議 師便喝
●空名; 萬事萬物皆虛幻非實 則其稱名幷無實體 故稱空名
●妙解; 言詮不及之義 不可思議之解會也 碧巖錄第三十八則種電鈔 妙解 指文殊根本智
●漚和; <梵> upāya 慧琳音義三十 漚和 上阿侯反 梵語 慧琳音義七十九 漚和 上嘔候反 梵語 唐云方便波羅蜜也 ▲祖庭事苑五 漚和 梵云漚和俱舍羅 此言方便
●截流機; 截斷衆流之機 卽指斷滅煩惱而得解脫之機
●棚頭; 卽棚上 棚 樓閣也 板閣曰棧 連閣曰棚 又簡陋的小屋
승문(僧問) 무엇이 이 진불(眞佛)ㆍ진법(眞法)ㆍ진도(眞道)입니까. 스님의 개시(開示)를 구걸합니다. 사왈 부처란 것은 마음의 청정이 이것이며 법이란 것은 마음의 광명이 이것이며 도란 것은 처처에 무애한 정광(淨光)이 이것이다. 셋이 곧 하나며 다 이 공명(空名)이며 실유(實有)가 없다. 예컨대(如) 진정(眞正)으로 도인(道人)이 되려면 염념(念念)에 심(心)이 간단(間斷)하지 않아야 한다. 달마대사가 서토(西土)로 좇아옴으로부터 다만 이, 저(箇) 타인의 혹란(惑亂)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았다. 후에 2조를 만나매 일언(一言)에 바로 깨쳐(了) 비로소(始) 종전(從前)에 공부(工夫)를 헛되이 썼음을 알았다. 산승의 금일의 견처(見處)는 조불(祖佛)과 다르지 않다. 만약 제1구 중에서 천득(薦得)하면 가히(堪) 조불에게 스승이 되어 주며 만약 제2구 중에서 천득하면 가히 인천(人天)에게 스승이 되어 주거니와 만약 제3구 중에서 천득하면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한다. 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제1구입니까. 사왈(師曰) 삼요인(三要印)을 열어 붉은 점이 찍히매 의의(擬議)를 용납하지 아니한 전에 주빈(主賓)이 나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2구입니까. 사왈 묘해(妙解)가 어찌 무착(無著)의 물음을 용납하리오만 구화(漚和)로는 어찌 절류기(截流機)를 저버리리오. 가로되 무엇이 이 제3구입니까. 사왈 단지 붕두(棚頭)의 괴뢰(傀儡) 희롱함을 간취(看取)하라, 잡아당김(抽牽)이 전부 안쪽(裏頭) 사람을 의뢰(藉)한다. 이에 가로되 대범(大凡) 종승(宗乘)을 연창(演唱)하려면 1구 중에 반드시 3현문(玄門)을 갖춰야 하고 1현문에 반드시 3요(要)를 갖춰 권(權)도 있고 실(實)도 있고 조(照)도 있고 용(用)도 있어야 하나니 너희 등 제인은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空名; 만사와 만물이 모두 허환(虛幻)하여 실답지 못하며 곧 그 칭명(稱名)도 아울러 실체가 없는지라 고로 명칭이 공명(空名)임.
●妙解; 언전(言詮)이 미치지 못함의 뜻. 불가사의한 해회(解會)임. 벽암록 제38칙 종전초. 묘해(妙解) 문수의 근본지(根本智)를 가리킨다.
●漚和; <梵> upāya. 혜림음의30. 구화(漚和) 상은 아후반(阿侯反; 우)이니 범어다. 혜림음의79 구화(漚和) 상은 구후반(嘔候反; 구)이니 범어다. 당에서는 이르되 방편바라밀이다. ▲조정사원5. 구화(漚和) 범어로 이르되 구화구사라(漚和俱舍羅)는 여기 말로는 방편이다.
●截流機; 중류(衆流)를 절단하는 기(機)니 곧 번뇌를 단멸하여 해탈을 얻는 기를 가리킴.
●棚頭; 곧 붕상(棚上). 붕(棚)은 누각임. 판각(板閣)을 가로되 잔(棧)이며 연각(連閣)을 가로되 붕(棚)임. 또 간단하고 누추한 작은 가옥임.
師謂僧曰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劒 有時一喝如踞地師子 有時一喝如探竿影草 有時一喝不作一喝用 汝作麽生會 僧擬議 師便喝
●金剛王寶劒; 臨濟四喝之一 極爲堅硬鋒利的寶劍 多喩禪悟者自在運用 毫無障礙的機鋒
●探竿影草; 臨濟四喝之一 臨濟四喝之一 略稱探草 因其作用與目的 有不同解釋 一指探竿影草 皆爲漁者之工具 探竿 是束鵜羽於竿頭 探於水中 誘聚群魚於一處 然後以網漉之 影草 是刈草浸水中 則群魚潛影 然後以網漉之 此皆漁者聚魚之方便法 二指探竿影草爲盜者之道具 探竿 盜者將之 從窗壁等洞穴揷入 以探測室內動靜之竹竿 影草 爲可隱身之蓑衣 被著則便於竊盜 又探竿影草 於禪家 引用爲師家探測學人 以試其器量
스님이 중에게 일러 가로되 어떤 때의 1할(喝)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劒)과 같고 어떤 때의 1할은 땅에 웅크린 사자와 같고 어떤 때의 1할은 탐간영초(探竿影草)와 같고 어떤 때의 1할은 1할의 씀을 짓지 않는다.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곧 할했다.
●金剛王寶劒; 임제 4할(喝)의 하나. 극히 견경(堅硬; 견고)한 봉리(鋒利; 칼날이 예리함)의 보검이니 다분히 선오자(禪悟者)의 자재한 운용으로, 터럭만큼의 장애가 없는 기봉에 비유함.
●探竿影草; 임제 4할(喝)의 하나. 약칭이 탐초(探草). 그 작용과 목적으로 인해 해석이 같지 않음이 있음. 1은 탐간영초(探竿影草)가 다 어자(漁者; 어부)의 공구(工具)가 됨을 가리킴. 탐간(探竿)은 곧 사다새의 깃털을 낚싯대 끝에 묶어서 수중을 탐색하며 뭇 고기를 한 곳으로 유인해 모이게 한 연후에 어망으로 그것을 걸러냄. 영초(影草)는 곧 풀을 베어서 수중에 담그면 곧 뭇 고기가 그림자에 숨는데 그런 후에 어망으로 그것을 걸러냄. 이것은 다 어자(漁者)가 고기를 모으는 방편법임. 2는 탐간영초가 도자(盜者; 도둑)의 도구가 됨을 가리킴. 탐간은 도자가 이것을 가지고 창이나 벽 등의 빈 구멍으로부터 삽입하여 실내의 동정을 탐측하는 죽간임. 영초는 가히 은신하는 도롱이가 됨이니 입으면 곧 절도에 편리함. 또 탐간영초는 선가에서 인용하여 사가(師家)가 학인을 탐측하여 그 기량(器量)을 시험함임.
示衆 參學之人 大須子細 如賓主相見 便有言論往來 或應物現形 或全體作用 或把機權喜怒 或現半身 或乘師子 或乘象王 如有眞正學人便喝 先拈出一箇膠盆子 善知識不辯是境 便上他境上作模作樣 便被學人又喝 前人不肯放下 此是膏肓之病 不堪醫治 喚作賓看主 或是善知識 不拈出物 祇隨學人問處卽奪 學人被奪 抵死不肯放 此是主看賓 或有學人應一箇淸淨境 出善知識前 知識辯得是境 把得拋向坑裏 學人言 大好善知識 知識卽云 咄哉 不識好惡 學人便禮拜 此喚作主看主 或有學人 披枷帶鎻 出善知識前 知識更與安一重枷鎻 學人歡喜 彼此不辯 喚作賓看賓 大德 山僧所擧 皆是辯魔揀異 知其邪正
●膏肓; 禪林疏語考證二 膏肓 左(左典)成(成公)十年(前581) 晉公疾病 求醫於秦 秦伯使醫緩爲之 未至 公夢疾爲二竪子曰 彼良醫也 懼傷我 我焉逃之 其一曰 居肓之上膏之下 若我何 醫至曰 疾不可爲也
시중(示衆) 참학(參學)하는 사람은 매우 자세함을 써야 한다. 빈주(賓主)가 상견할 것 같으면 곧 언론이 왕래함이 있으리니 혹은 사람(物)에 응해 형상을 나타내며 혹은 전체로 작용하며 혹은 기권(機權)과 희로(喜怒)를 잡으며 혹은 반신(半身)을 나타내며 혹은 사자를 타며 혹은 상왕(象王)을 탄다. 예컨대(如) 어떤 진정(眞正)한 학인이 바로 할(喝)하여 먼저 한 개의 아교 동이(膠盆子; 子는 조사)를 집어내매 선지식이 이 경계인 줄 분변(分辨; 辯)하지 못하여 곧 그의 경계상에 올라 작모작양(作模作樣)한다. 바로 학인이 또 할함을 입는다. 앞의 사람이 놓기(放下)를 긍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이 고황(膏肓; 저본에 膏盲으로 지었음)의 병인지라 의치(醫治; 치료)를 감당하지 못하나니 빈이 주를 본다(賓看主) 라고 불러 짓는다. 혹은 이 선지식이 물건을 집어내지 않고 다만 학인의 묻는 곳을 따라 곧 뺏는다. 학인이 빼앗김을 입으면 죽음에 이르더라도 놓음을 수긍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주가 빈을 봄(主看賓)이다. 혹은 어떤 학인이 한 개의 청정한 경계에 응하여 선지식 앞에 내어 놓으매 지식이 이 경계임을 분변해 얻고는 잡아(把得) 구덩이 속을 향해 던진다. 학인이 말하되 매우 훌륭하신(大好) 선지식입니다. 지식이 곧 이르되 못났구나(咄哉), 좋고 나쁨을 알지 못하는구나. 학인이 곧 예배하면 이것을 주가 주를 본다(主看主) 라고 불러 짓는다. 혹은 어떤 학인이 칼을 쓰고 차꼬를 가지고(披枷帶鎻) 선지식 앞에 나온다. 지식이 다시, 한 번 거듭된 칼과 차꼬를 안치하여 주매 학인이 환희하면 피차 분변하지 못함이니 빈이 빈을 본다(賓看賓) 라고 불러 짓는다. 대덕이여 산승이 든 바는 모두 이 변마간이(辯魔揀異)하여 그 사정(邪正)을 아는 것이다.
●膏肓; 선림소어고증2. 고황(膏肓) 좌(左典) 성(成公) 10년(前 581) 진공(晋公)이 질병에 걸려 진(秦)에 의원을 구하자 진백(秦伯)이 의원으로 하여금 그것을 완화하게 하였다. 이르지 아니해서 진공의 꿈에 질병이 두 수자(竪子. 더벅머리. 子는 조사)가 되어 가로되 그는 양의(良醫)이므로 나를 다치게 할까 두렵나니 내가 어찌 그에게서 도망하리오. 그 하나가 가로되 황(肓. 명치 황)의 위와 고(膏. 명치 끝 고)의 아래에 거처한다면 나를 어찌 하겠는가. 의원이 이르러 가로되 질병을 가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였다.
師問洛浦 從上來 一人行棒 一人行喝 阿那箇親 曰 總不親 師曰 親處作麽生 浦便喝 師乃打 上堂 有一人論劫在途中 不離家舍 有一人離家舍 不在途中 那箇合受人天供養 師問院主 甚處去來 曰 州中糶黃米來 師曰 糶得盡麽 主曰 糶得盡 師以拄杖畫一畫曰 還糶得這箇麽 主便喝 師便打 典座至 師擧前話 座曰 院主不會和尙意 師曰 你又作麽生 座禮拜 師亦打
●黃米; 又稱黍 糜子 新修本草云 今楚人謂之稷 關中謂之糜 呼其米爲黃米
스님이 낙포(洛浦)에게 묻되 종상래(從上來)로 1인은 행방(行棒)하고 1인은 행할(行喝)했다. 어느 것(阿那箇)이 친한가. 가로되 모두(總) 친하지 않습니다. 사왈 친처(親處)는 어떠한가. 낙포가 바로 할했다. 스님이 이에 때렸다. 상당(上堂) 어떤 한 사람은 논겁(論劫)토록 도중(途中)에 있으면서 가사(家舍)를 떠나지 않고 어떤 한 사람은 가사를 떠났으되 도중에 있지 않나니 어느 것(那箇)이 합당히 인천(人天; 인과 천)의 공양을 받겠는가. 스님이 원주(院主)에게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가로되 고을(州) 가운데에서 황미(黃米)를 팔고(糶) 왔습니다. 사왈 팔아 없앰을 얻었느냐. 원주가 가로되 팔아 없앰을 얻었습니다. 스님이 주장자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도리어 이것(這箇)을 팔겠는가(糶得). 원주가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전좌(典座)가 이르자 스님이 앞의 화(話)를 들었다. 전좌가 가로되 원주가 화상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왈 너는 또 어떠한가. 전좌가 예배했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
●黃米; 또 명칭이 서(黍; 기장), 미자(糜子; 메기장). 신수본초에 이르되 여금에 초인(楚人)이 이를 일러 직(稷; 기장)이라 하고 관중(關中)에선 이를 일러 미(糜; 糜子)라 하고 그 미(米)를 일러 황미(黃米)라 한다.
上堂 一人在孤峰頂上 無出身路 一人在十字街頭 亦無向背 且道那箇在前 那箇在後 不作維摩詰 不作傅大士 珍重 有一老宿參 便問 禮拜卽是 不禮拜卽是 師便喝 宿便拜 師曰 好箇草賊 宿曰 賊賊 便出去 師曰 莫道無事好 時首座侍立 師曰 還有過也無 座曰 有 師曰 賓家有過 主家有過 曰 二俱有過 師曰 過在甚麽處 座便出去 師曰 莫道無事好〈南泉聞云 官馬相踏〉
●官馬相踏; 形容兩者機鋒雄壯 官馬 官府供給或飼養的馬 指善調練之馬
상당(上堂) 한 사람은 고봉정상(孤峰頂上)에 있으면서 출신할 길이 없고 한 사람은 십자가두(十字街頭)에 있으면서 또한 향배가 없나니 그래 말하라, 어느 것(那箇)이 앞에 있으며 어느 것이 뒤에 있는가. 유마힐(維摩詰)을 짓지 말고 부대사(傅大士)를 짓지 말아라. 진중(珍重). 한 노숙(老宿)이 있어 참(參)했다. 바로 묻되 예배함이 곧 옳습니까, 예배하지 않음이 곧 옳습니까.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노숙이 바로 예배했다. 사왈 호개(好箇)의 초적(草賊)이다. 노숙이 가로되 도적아, 도적아. 바로 나갔다. 사왈 무사(無事)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다. 때에 수좌가 시립(侍立)했다. 사왈 도리어 허물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수좌가 가로되 있습니다. 사왈 빈가(賓家)가 허물이 있는가, 주가(有過)가 허물이 있는가. 가로되 둘 모두 허물이 있습니다. 사왈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수좌가 바로 나갔다. 사왈 무사(無事)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다〈南泉이 듣고 이르되 관마가 서로 밟았다(官馬相踏)〉.
●官馬相踏; 양자(兩者)의 기봉이 웅장함을 형용함. 관마는 관부에서 공급하거나 혹은 사양(飼養)한 말. 잘 조련된 말을 가리킴.
師到京行化 至一家門首曰 家常添鉢 有婆曰 太無厭生 師曰 飯也未曾得 何言大無厭生 婆便閉却門 師陞堂 有僧出 師便喝 僧亦喝 便禮拜 師便打 趙州游方到院 在後架洗脚次 師便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州曰 恰遇山僧洗脚 師近前作聽勢 州曰 會卽便會 啗啄作什麽 師便歸方丈 州曰 三十年行脚 今日錯爲人下註脚
●啗啄; 喩指思量卜度 施呈言句機巧
스님이 경사(京師)에 이르러 행화(行化)하다가 한 집의 문수(門首)에 이르러 가로되 가상(家常)을 발우에 더하십시오. 어떤 노파가 가로되 태무염생(太無厭生; 매우 만족이 없음)입니다. 사왈 밥도 또한 일찍이 얻지 못했거늘 왜 태무염생이라고 말합니까. 노파가 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스님이 승당(陞堂)하자 어떤 중이 나왔다.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중도 또한 할하고 바로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조주(趙州)가 유방(游方)하다 사원에 이르러 후가(後架)에 있으면서 발을 씻던 차에 스님이 바로 묻되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주왈(州曰) 마침 산승이 발을 씻음을 만났습니다. 스님이 근전(近前)하여 듣는 자세를 지었다. 주왈(州曰) 알려면(會) 곧바로 알 것이지 담탁(啗啄; 먹고 쪼다)하여 무엇하리오.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주왈(州曰) 30년 행각하면서 금일 잘못 사람을 위해 주각(註脚)을 내렸다.
●啗啄; 사량하고 복탁함을 비유로 가리킴. 언구의 기교(機巧)를 베풀어 보임.
問僧 甚處來 曰 定州來 師拈棒 僧擬議 師便打 僧不肯 師曰 已後遇明眼人去在 僧後參三聖 纔擧前話 三聖便打 僧擬議 聖又打 師應機多用喝 會下參徒亦學師喝 師曰 汝等總學我喝 我今問汝 有一人從東堂出 一人從西堂出 兩人齊喝一聲 這裏分得賓主麽 汝且作麽生分 若分不得 已後不得學老僧喝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정주(定州)에서 옵니다. 스님이 방(棒)을 집었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중이 불긍(不肯)했다. 사왈 이후에 명안인(明眼人)을 만날 것이다. 중이 후에 삼성(三聖)을 참해 겨우 전화(前話)를 들자 삼성이 바로 때렸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삼성이 또 때렸다. 스님이 응기(應機)하면서 많이 할(喝)을 썼다. 회하(會下)의 참도(參徒)도 또한 스님의 할을 배웠다. 사왈 너희 등이 모두 나의 할을 배우거니와 내가 이제 너희에게 묻는다. 어떤 한 사람은 동당(東堂)으로 좇아나오고 한 사람은 서당(西堂)으로 좇아나와 두 사람이 일제히 일성(一聲) 할한다. 이 속에서 빈주(賓主)를 분변함을 얻겠는가. 너희가 또 어떻게 분변하겠는가. 만약 분변함을 얻지 못하거든 이후론 노승의 할을 배움을 얻지 말아라.
示衆 我有時先照後用 有時先用後照 有時照用同時 有時照用不同時 先照後用有人在 先用後照有法在 照用同時 駈耕夫之牛奪饑人之食 敲骨取髓 痛下針錐 照用不同時 有問有答 立賓立主 合水和泥 應機接物 若是過量人 向未擧已前 撩起便行 猶較些子
●駈耕夫之牛奪饑人之食; 喩指禪師徹底淸除學人的俗情妄念知識見解等等 使空無所有 空無所倚 毫無執著
●合水和泥; 同和泥合水 謂爲行慈悲 與塵世衆生和合 以化導衆生 達到濟度之目的 乃第二義門之施設 慈悲方便之作法 又稱拖泥帶水
●撩起便行; 形容接機敏捷 當下領會 撩 用手取物
시중(示衆) 내가 어떤 때엔 먼저 조(照)하고 후에 용(用)하며 어떤 때엔 먼저 용(用)하고 후에 조(照)하며 어떤 때엔 조와 용이 동시이며 어떤 때엔 조와 용이 동시가 아니다. 먼저 조하고 후에 용함은 사람이 존재해 있음이다. 먼저 용하고 후에 조함은 법이 존재해 있음이다. 조와 용이 동시임은 경부(耕夫; 농부)의 소를 뺏고 주린 사람의 밥을 뺏음이며(駈耕夫之牛奪饑人之食) 뼈를 두드려 골수를 취함이며 통렬하게 침과 송곳을 내림이다. 조와 용이 동시가 아님은 문(問)이 있고 답(答)이 있음이며 빈(賓)을 세우고 주(主)를 세움이며 물에 합하고 진흙에 섞음이며(合水和泥) 근기에 응하고 사람(物)을 접인함이다. 만약 곧 헤아림을 초과하는 사람(過量人)이라면 들지 아니한 이전을 향해 잡아 일으켜 바로 가리니(撩起便行)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
●駈耕夫之牛奪饑人之食; 선사가 철저히 학인의 속정ㆍ망념ㆍ지식ㆍ견해 등등을 깨끗이 소제하여 비워서 가진 바가 없고 비워서 의지할 바가 없으며 터럭만큼도 집착이 없게 함을 비유로 가리킴.
●合水和泥; 화니합수(和泥合水)와 같음. 이르자면 자비를 행해 진세(塵世)의 중생과 화합하면서 중생을 화도(化導)하여 제도(濟度)의 목적에 달도(達到)함이니 곧 제2의문(義門)의 시설이며 자비방편의 작법임. 또 명칭이 타니대수(拖泥帶水).
●撩起便行; 접기(接機)가 민첩하여 당하에 영회(領會)함을 형용. 료(撩)는 손을 사용하여 물건을 취함.
師行脚時到龍光 値上堂 師出問 不展鋒鋩 如何得勝 光據坐 師曰 大善知識 豈無方便 光瞪目曰 嗄 師以手指曰 這老漢今日敗缺也 次到三峰平和尙處 平問 甚處來 師曰 黃檗來 平曰 黃檗有何言句 師曰 金牛昨夜遭塗炭 直至如今不見蹤 平曰 金風吹玉管 那箇是知音 師曰 直透萬重關 不住靑霄內 平曰 子這一問太高生 師曰 龍生金鳳子 衝破碧琉璃 平曰 且坐喫茶 又問 近離甚處 師曰 龍光 平曰 龍光近日如何 師便出去
●敗缺; 與敗闕同義 受挫 挫敗
●塗炭; 尙書 仲虺之誥第二 民墜塗炭 注 夏桀昏亂 不恤下民 民之危險 若陷泥墜火無救
스님이 행각할 때 용광(龍光)에 이르렀다. 상당(上堂)을 만나(値) 스님이 나가서 묻되 봉망(鋒鋩)을 펴지 않고 어떻게 이김을 얻겠습니까. 용광이 거좌(據坐)했다. 사왈 대선지식이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용광이 징목(瞪目; 노한 눈으로 바라보다)하고 가로되 사(嗄). 스님이 손으로써 가리키며 가로되 이 늙은이(老漢)가 오늘 패결(敗缺)했다. 다음에 삼봉평(三峰平) 화상의 처소에 이르렀다. 평(平)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황벽에서 옵니다. 평왈(平曰) 황벽이 어떤 언구가 있었는가. 사왈 금우(金牛)가 어젯밤에 도탄(塗炭)을 만나 바로 여금에 이르도록 종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평왈(平曰) 금풍(金風; 秋風)이 옥관(玉管)에 부니 어느 것(那箇)이 이 지음(知音)인가. 사왈 바로 만 겹의 관문을 뚫고 푸른 하늘(靑霄)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평왈(平曰) 자네의 이 한 물음은 너무 높다(太高生). 사왈 용이 낳았거나 금봉(金鳳)의 새끼라면 푸른 유리(碧琉璃)를 부딪쳐 깨뜨립니다. 평왈(平曰) 다만 앉아서 차나 마시자. 또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사왈 용광(龍光)입니다. 평왈(平曰) 용광이 요즈음 어떠한가. 스님이 바로 나갔다.
●敗缺; 패궐(敗闕)과 같은 뜻. 수좌(受挫; 좌절을 받음). 좌패(挫敗; 꺾여 패함).
●塗炭; 상서 중훼지고 제2. 백성이 도탄(塗炭)에 추락했다. 주(注) 하걸(夏桀)이 혼란하여 하민(下民; 백성)의 위험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음이 마치 진흙탕에 빠지고 불에 추락해도 구제하지 않음과 같다.
又往鳳林 路逢一婆子 婆問 甚處去 師曰 鳳林去 婆曰 恰値鳳林不在 師曰 甚處去 婆便行 師召婆 婆回首 師便行〈一作師曰 誰道不在〉 到鳳林 林曰 有事相借問 得麽 師曰 何得剜肉作瘡 林曰 海月澄無影 游魚獨自迷 師曰 海月旣無影 游魚何得迷 林曰 觀風知浪起 翫水野帆飄 師曰 孤蟾獨耀江山靜 長嘯一聲天地秋 林曰 任張三寸揮天地 一句臨機試道看 師曰 路逢劒客須呈劒 不是詩人不獻詩 林便休 師乃有頌曰 大道絕同 任向西東 石火莫及 電光罔通〈潙山問仰山 石火莫及 電光罔通 從上諸聖 以何爲人 仰云 和尙意作麽生 潙云 但有言說 都無實義 仰云 不然 潙云 子又作麽生 仰云 官不容針私通車馬〉
●剜肉作瘡; 本來無瘡 剜好肉做成瘡 譏刺禪人無事生事 虛妄徒勞
●官不容針私通車馬; 意謂法律嚴密 不容絲毫寬宥 然以私下人情却大可融通 故禪林每以此語 形容師家接引學人時自在方便之機法 或謂官不容針 私通車馬二語 原是唐人之俗諺 後爲禪林所引用 二語合之 卽謂表裏互用而竝行無礙
또 봉림(鳳林)으로 가다가 길에서 한 파자(婆子; 노파)를 만났다. 노파가 묻되 어디로 갑니까. 사왈 봉림으로 갑니다. 노파가 가로되 마침 봉림이 있지 않음을 만났습니다. 사왈 어디로 갔습니까. 노파가 바로 떠났다. 스님이 노파를 불렀다. 노파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이 바로 떠났다〈한편으론 사왈 누가 있지 않다고 말합니까로 지었다〉. 봉림에 이르니 봉림이 가로되 일이 있어 서로 차문(借問; 물어봄)하려는데 얻겠습니까. 사왈 왜 살갗을 깎아 부스럼 이룸(剜肉作瘡)을 얻습니까. 봉림이 가로되 해월(海月)은 맑아 그림자가 없거늘 유어(游魚)가 홀로 스스로 미혹하는구나. 사왈 해월이 이미 그림자가 없거늘 유어가 왜 미혹함을 얻습니까. 봉림이 가로되 바람을 보면 파랑이 일어남을 알고 물을 구경하면 야범(野帆)이 나부낍니다. 사왈 외로운 달(孤蟾)은 홀로 비추고(耀) 강산은 고요한데 긴 휘파람 한 소리에 천지가 가을이다. 봉림이 가로되 삼촌(三寸)을 벌려(張) 천지를 휘두르는 대로 맡기거니와 1구(句)를 기(機)에 임하여 시험 삼아 말해 보시오. 사왈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반드시 검을 주고 이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않습니다. 봉림이 바로 그쳤다(休). 스님이 이에 송(頌)이 있어 가로되 대도(大道)는 동류(同類; 同)가 끊긴지라/ 마음대로 서동(西東)을 향하나니/ 석화(石火)도 미치지 못하고/ 전광(電光)도 통하지 못한다(罔)〈潙山이 仰山에게 묻되 석화도 미치지 못하고 전광도 통하지 못하거늘 종상의 諸聖이 무엇으로써 사람을 위하는가. 仰云 화상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潙云 단지 언설이 있으면 모두 實義가 없다. 仰云 그렇지 않습니다. 潙云 자네는 또 어떠한가. 仰云 관가에선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으론 거마도 통합니다(官不容針私通車馬)〉.
●剜肉作瘡; 본래 종기가 없는데 호육(好肉)을 도려내어 종기를 만들어 이룸이니 선인(禪人)의, 무사생사(無事生事)하는 허망한 도로(徒勞; 헛수고)를 기자(譏刺; 헐뜯음)함.
●官不容針私通車馬; 뜻으로 이르자면 법률이 엄밀하여 실터럭만큼의 관유(寬宥; 寬恕)도 용납하지 않으나 그러나 사하(私下; 암암리. 비공식으로)의 인정으론 도리어 대가(大可; 매우 그럴 만함)로 융통함. 고로 선림에서 매번 이 말로써 사가가 학인을 접인할 때 자재한 방편의 기법을 형용함. 혹 이르기를 관불용침과 사통거마의 2어(語)는 원래 당나라 사람의 속언(俗諺; 속담)이라 함. 후에 선림에서 인용하는 바가 되었으며 2어를 합하면 곧 표리가 호용하며 병행하매 무애함을 일컬음임.
麻谷問 十二面觀音 那箇是正面 師下禪牀擒住曰 十二面觀音 甚處去也 速道速道 谷轉身擬坐 師便打 谷接住棒 相捉歸方丈 師問一尼 善來惡來 尼便喝 師拈棒曰 更道更道 尼又喝 師便打 師一日拈餬餠示洛浦曰 萬種千般 不離這箇 其理不二 浦曰 如何是不二之理 師再拈起餠示之 浦曰 與麽則萬種千般也 師曰 屙屎見解 浦曰 羅公照鏡
마곡(麻谷; 第二世)이 묻되 십이면관음(十二面觀音)은 어느 것(那箇)이 이 정면(正面)인가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금주(擒住)하고 가로되 십이면관음이 어느 곳으로 갔는가.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마곡이 전신(轉身)하며 앉으려고 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마곡이 방(棒)을 접주(接住; 접수해 머물게 함)하고는 서로 붙잡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스님이 1니(尼)에게 묻되 선이 왔는가(善來), 악이 왔는가(惡來) 니(尼)가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방을 집어 가로되 다시 말하라, 다시 말하라. 니(尼)가 또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어느 날 호병(餬餠)을 집어 낙포(洛浦)에게 보이며 가로되 만 종류 천 가지가 이것을 여의지 않나니 그 이치가 둘이 아니다. 포왈(浦曰) 무엇이 이 둘이 아닌 이치입니까. 스님이 다시 호병을 집어 일으켜 보였다. 포왈(浦曰) 그러하시다면 곧 만 종류 천 가지입니다. 사왈 똥을 누는(屙屎; 저본에 屙尿로 지었음) 견해다. 포왈(浦曰) 나공이 거울에 비춤입니다(羅公照鏡).
師見僧來 擧起拂子 僧禮拜 師便打 又有僧來 師亦擧拂子 僧不顧 師亦打 又有僧來參 師擧拂子 僧曰 謝和尙指示 師亦打〈雲門代云 祇宜老漢 大覺云 得卽得 猶未見臨濟機在〉 麻谷問 大悲千手眼 那箇是正眼 師搊住曰 大悲千手眼 作麽生是正眼 速道速道 谷拽師下禪牀 却坐 師問訊曰 不審 谷擬議 師便喝 拽谷下禪牀 却坐 谷便出
스님이 중이 옴을 보고 불자를 들어 일으켰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또 어떤 중이 오자 스님이 또한 불자를 들었다. 중이 돌아보지 않았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 또 어떤 중이 내참(來參)하자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승왈(僧曰) 화상의 지시(指示)에 감사합니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雲門이 代云 다만 老漢이라야 마땅하다. 大覺云 옳기는 곧 옳지만 오히려 임제의 機를 보지 못하여 있다〉. 마곡(麻谷; 第二世)이 묻되 대비천수안(大悲千手眼)에 어느 것이 이 정안(正眼)인가. 스님이 추주(搊住; 잡아 머물게 하다)하고 가로되 대비천수안에 어떤 것(作麽生)이 이 정안인가.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마곡이 스님을 끌어 선상에서 내려오게 하고 도리어 앉았다. 스님이 문신(問訊)하며 가로되 불심(不審). 마곡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할(喝)하고 마곡을 끌어 선상에서 내려오게 하고 도리어 앉았다. 마곡이 바로 나갔다.
上堂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竪起拂子 僧便喝 師便打 又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亦竪拂子 僧便喝 師亦喝 僧擬議 師便打 乃曰 大衆 夫爲法者 不避喪身失命 我於黃檗先師處 三度問佛法的的大意 三度被打 如蒿枝拂相似 如今更思一頓 誰爲下手 時有僧出曰 某甲下手 師度與拄杖 僧擬接 師便打
상당(上堂)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중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또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스님이 또한 불자를 세웠다.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도 또한 할했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이에 가로되 대중이여, 무릇 법을 위하는 자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황벽선사(黃檗先師)의 처소에서 세 차례(三度) 불법의 적적(的的)한 대의(大意)를 물었다가 세 차례 피타(被打)했는데 마치 호지불(蒿枝拂)과 상사(相似)했다. 여금에 다시 1돈(頓)을 생각하노니 누가 하수(下手; 착수)하겠는가.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모갑이 하수하겠습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건네 주자 중이 접수하려고 하는데 스님이 바로 때렸다.
同普化赴施主齋次 師問 毛呑巨海 芥納須彌 爲復是神通妙用 爲復是法爾如然 化趯倒飯牀 師曰 太麤生 曰 這裏是甚麽所在 說麤說細 次日又同赴齋 師復問 今日供養 何似昨日 化又趯倒飯牀 師曰 得卽得 太麤生 化喝曰 瞎漢 佛法說甚麽麤細 師乃吐舌
보화(普化)와 함께 시주(施主)의 재(齋)에 다다른 차에 스님이 묻되 터럭이 거해(巨海)를 삼키고 개자(芥子)가 수미(須彌; 須彌山)를 납입한다 하니 다시 이는 신통묘용(神通妙用)이 되는가, 다시 이는 법이 그러함이 되는가. 보화가 밥상을 차서 뒤엎었다. 사왈 태추생(太麤生)이로다. 가로되 이 속에 무엇이 소재(所在)하기에 추(麤)를 설하고 세(細)를 설하는가. 다음날 또 함께 재(齋)에 다다랐다. 스님이 다시 묻되 금일의 공양(供養)이 작일(昨日)과 어떠한가(何似). 보화가 또 밥상을 차서 뒤엎었다. 사왈 얻기야 곧 얻었지만 태추생(太麤生)이로다. 보화가 할(喝)하고 가로되 눈먼 놈아, 불법에 무슨 추세(麤細)를 설하는가. 스님이 이에 혀를 토했다(吐舌; 매우 놀라는 모양).
師與王常侍到僧堂 王問 這一堂僧還看經麽 師曰 不看經 曰 還習禪麽 師曰 不習禪 曰 旣不看經 又不習禪 畢竟作箇甚麽 師曰 總敎伊成佛作祖去 曰 金屑雖貴 落眼成翳 師曰 我將謂你是箇俗漢 師上堂次 兩堂首座相見 同時下喝 僧問師 還有賓主也無 師曰 賓主歷然 師召衆曰 要會臨濟賓主句 問取堂中二首座
스님이 왕상시(王常侍)와 승당에 이르렀다. 왕이 묻되 이 일당(一堂)의 승인은 도리어 간경(看經)합니까. 사왈 간경하지 않습니다. 가로되 도리어 습선(習禪)합니까. 사왈 습선하지 않습니다. 가로되 이미 간경하지 않고 또 습선(習禪)하지 않는다면 필경 저(箇) 무엇을 짓습니까. 사왈 모두(總) 그들로 하여금 성불작조(成佛作祖)하여 가게 합니다. 가로되 금설(金屑; 금가루)이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가림(翳)을 이룹니다. 사왈 내가 어찌(將은 豈) 그대를 시개(是箇; 이) 속한(俗漢)이라 이르겠는가. 스님이 상당하던 차에 양당(兩堂)의 수좌가 상견하여 동시에 하할(下喝)했다. 중이 스님에게 묻되 도리어 빈주(賓主)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빈주가 역연(歷然)하다. 스님이 대중을 부르며 가로되 임제의 빈주구(賓主句)를 알고자 하거든 당중(堂中)의 두 수좌에게 문취(問取)하라.
師後居大名府興化寺東堂 咸通八年丁亥四月十日 將示滅 說傳法偈曰 㳂流不止問如何 眞照無邊說似他 離相離名人不稟 吹毛用了急須磨 復謂衆曰 吾滅後 不得滅却吾正法眼藏 三聖出曰 爭敢滅却和尙正法眼藏 師曰 已後有人問 你向他道甚麽 聖便喝 師曰 誰知吾正法眼藏 向這瞎驢邊滅却 言訖 端坐而逝 塔全身于府西北隅 諡慧照禪師 塔曰澄靈
●大名府; 或稱北京大名府 舊址在今河北省邯鄲市大名縣東南部 [百度百科]
●吹毛; 吹毛劍 指利劍 禪家多用以比喩銳利的機鋒 碧巖錄第百則曰 劍刃上吹毛試之 其毛自斷 乃利劍 謂之吹毛也
스님이 후에 대명부(大名府) 흥화사(興化寺) 동당(東堂)에 거주했다. 당 함통(咸通) 8년(867) 4월 10일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면서 전법게(傳法偈)를 설해 가로되 흐름을 따라 멈추지 않음을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진조(眞照)가 무변하다고 그에게 설해 주리라/ 형상(形相)을 여의고 이름을 여읜 사람은 받지 않나니/ 취모(吹毛)를 쓰고는 급히 갊을 쓸지어다. 다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멸후(滅後) 나의 정법안장을 멸해버림을 얻지 말아라. 삼성(三聖)이 나와 가로되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해버리겠습니까. 사왈 이후에 어떤 사람이 물으면 네가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삼성이 바로 할했다. 사왈 누가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 가를 향해 멸해버릴 줄 알았으리오. 말을 마치자 단좌(端坐)하여 서거했다. 부(府)의 서북 모퉁이에 전신(全身)으로 탑을 세웠다. 시호가 혜조선사(慧照禪師)며 탑왈 징령(澄靈)이다.
●大名府; 혹은 명칭이 북경대명부니 옛터는 지금의 하북성 한단시 대명현 동남부에 있었음 [백도백과].
●吹毛; 취모검(吹毛劍)이니 예리(銳利)한 검을 가리킴. 선가(禪家)에서 많이 예리한 기봉(機鋒)에 비유함에 씀. 벽암록 제100칙에 가로되 칼날 위에 털을 불어 그것을 시험해 그 털이 저절로 끊어져야 곧 예리한 검이니 이를 일러 취모(吹毛)라 한다.
南嶽下五世
臨濟玄禪師法嗣
魏府興化存獎禪師
在三聖會裏爲首座 常曰 我向南方行脚一遭 拄杖頭不曾撥著一箇會佛法底人 三聖聞得 問曰 你具箇甚麽眼 便恁麽道 師便喝 聖曰 須是你始得 後大覺聞擧 遂曰 作麽生得風吹到大覺門裏來 師後到大覺爲院主 一日覺喚院主 我聞你道 向南方行脚一遭 拄杖頭不曾撥著一箇會佛法底 你憑箇甚麽道理與麽道 師便喝 覺便打 師又喝 覺又打 師來日從法堂過 覺召院主 我直下疑你昨日這兩喝 師又喝 覺又打 師再喝 覺又打 師曰 某甲於三聖師兄處 學得箇賓主句 總被師兄折倒了也 願與某甲箇安樂法門 覺曰 這瞎漢來這裏納敗缺 脫下衲衣 痛打一頓 師於言下薦得臨濟先師於黃檗處喫棒底道理 師後開堂日 拈香曰 此一炷香本 爲三聖師兄 三聖於我大孤 本爲大覺師兄 大覺於我太賖 不如供養臨濟先師
●拈香; 拈起香而燒之也 [象器箋九]
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선사(存獎禪師)
삼성회리(三聖會裏)에 있으면서 수좌가 되었다. 늘 가로되 내가 남방을 향해 1조(遭; 양사니 次, 回) 행각하다가 주장두(拄杖頭)에 일찍이 불법을 아는 자를 1개도 건드리지(撥著) 못했다. 삼성(三聖) 듣고서(聞得) 물어 가로되 네가 저(箇) 무슨 눈을 갖추었기에 바로 이렇게 말하느냐.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성왈(聖曰) 모름지기 이는 너라야 비로소 옳다. 후에 대각(大覺)이 듦을 듣고 드디어 가로되 어떻게 해야 바람이 불어 대각의 문 안에 이르러 옴을 얻겠는가. 스님이 후에 대각(大覺)에 이르러 원주(院主)가 되었다. 어느 날 대각이 원주를 불렀다. 내가 듣기로 네가 말하기를 남방을 향해 1조(遭) 행각하다가 주장두(拄杖頭)에 일찍이 불법을 아는 자를 1개도 건드리지 못했다 하니 네가 저(箇) 무슨 도리에 의빙하여 이렇게 말하는가.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대각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또 할했다. 대각이 또 때렸다. 스님이 다음날 법당을 좇아 지나가는데 대각이 원주를 불렀다. 내가 직하(直下)에 너의 어제의 이 양할(兩喝)을 의심한다. 스님이 또 할했다. 대각이 또 때렸다. 스님이 다시 할했다. 대각이 또 때렸다. 사왈 모갑이 삼성(三聖) 사형의 처소에서 저(箇) 빈주구(賓主句)를 배워 얻었는데 모두 사형에게 절도(折倒)됨을 입었습니다. 원컨대 모갑에게 저(箇) 안락법문을 주십시오. 대각이 가로되 이 할한(瞎漢)이 이 속에 와서 패결(敗缺)을 납입하는구나. 납의(衲衣)를 벗기고(脫下) 1돈(頓)을 통타(痛打)하리라. 스님이 언하에 임제 선사(先師)가 황벽의 처소에서 끽방한 도리를 천득(薦得)했다. 스님이 후에 개당일(開堂日)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이 1주(炷; 자루)의 향은 삼성 사형을 위하려니 삼성은 나에게 너무 특출하고(大孤; 孤는 特出的) 본래 대각 사형을 위하려니 대각은 나에게 너무 먼지라(太賖). 임제 선사(先師)에게 공양함만 같지 못하다.
●拈香; 향을 집어 일으켜 그것을 태움임 [상기전9].
僧問 多子塔前 共談何事 師曰 一人傳虛萬人傳實 師有時喚僧 僧應諾 師曰 點卽不到 又喚一僧 僧應諾 師曰 到卽不點 僧問 四方八面來時如何 師曰 打中間底 僧便禮拜 師曰 昨日赴箇村齋 中途遇一陣卒風暴雨 却向古廟裏軃避得過 問僧 甚處來 曰 崔禪處來 師曰 將得崔禪喝來否 曰 不將得來 師曰 恁麽則不從崔禪處來 僧便喝 師便打
●一人傳虛萬人傳實; 蓋眞理乃各人所自悟自得 一涉及語言文字 則失其實
●點卽不到; 僧衆集會時 缺席者其名之上 卽被記以一點 稱點卽不到 到席者之名上 則不作記號 稱到卽不點 轉義於宗門要旨有所領會者 則少有言說 反之 少有領會者 則噪聒多言 此外 或謂到卽不點 意指對已有悟境之學人 毋須多作指點
●到卽不點; 見上點卽不到
승문(僧問)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함께 무슨 일을 얘기했습니까. 사왈 한 사람이 허를 전하매 만 사람이 실을 전한다(一人傳虛萬人傳實). 스님이 어떤 때 중을 불렀다. 중이 응낙하자 사왈 점즉부도(點卽不到)다. 또 1승을 부르자 중이 응낙했다. 사왈 도즉부점(到卽不點)이다. 승문(僧問) 사방팔면에서 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중간의 것을 때린다(打中間底). 중이 바로 예배했다. 사왈 어제 촌재(村齋)에 다다랐다가 중도에 일진의 졸풍폭우(卒風暴雨)를 만나 도리어 고묘(古廟) 속을 향해 타피(軃避; 피하다)하여 지남을 얻었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최선(崔禪)의 처소에서 옵니다. 사왈 최선의 할(喝)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최선의 처소로 좇아오지 않았다.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一人傳虛萬人傳實; 대개 진리는 곧 각인이 자오자득(自悟自得)하는 것이며 한 번 어언문자에 섭급(涉及)하면 곧 그 실(實)을 잃음.
●點卽不到; 승중이 집회할 때 결석자는 그 이름의 위에 곧 일점으로 기재됨을 입는데 일컬어 점즉부도(點卽不到)라 하고 도석자(到席者)의 이름 위엔 곧 기호를 쓰지 않는지라 일컬어 도즉부점(到卽不點)임. 전의(轉義)하여 종문의 요지에 영회(領會)하는 바가 있는 자는 곧 언설이 적게 있고 이에 반해서 영회가 적게 있는 자는 곧 조괄(噪聒; 떠들썩함)하며 말이 많음. 이 밖에 혹 이르되 도즉부점은 뜻이 이미 오경(悟境)이 있는 학인에 대해서는 지점(指點)을 다작(多作)함이 쓰이지 않음을 가리킴.
●到卽不點; 위 점즉부도(點卽不到)를 보라.
示衆 我聞前廊下也喝 後架裏也喝 諸子汝莫盲喝亂喝 直饒喝得興化向虛空裏 却撲下來一點氣也無 待我蘇息起來 向汝道未在 何故 我未曾向紫羅帳裏撒眞珠與汝諸人去在 胡喝亂喝作麽 雲居住三峰庵時 師問 權借一問 以爲影草時如何 居無對 師云 想和尙答這話不得 不如禮拜了退 二十年後 居云 如今思量 當時不消道箇何必 後遣化主到師處 師問 和尙住三峰庵時 老僧問伊話 對不得 如今道得也未 主擧前話 師云 雲居二十年祇道得箇何必 興化卽不然 爭如道箇不必
●紫羅帳裏撒眞珠; 方語盡情揭示 ◆紫羅帳; 原指用紫色薄絹所作之羅帳 垂掛於高官貴人之居處 於禪林中 轉指向上之一關 用以表示主人公 君主之所在
시중(示衆). 내가 듣건대 전랑(前廊) 아래에서도 할(喝)하고 후가(後架) 속에도 할(喝)한다. 제자(諸子; 여러 남자)여, 너희는 맹할난할(盲喝亂喝)하지 말아라. 직요(直饒; 가령. 卽使) 흥화를 할득(喝得; 得은 조사)하여 허공 속을 향했다가 도리어 박하(撲下; 거꾸로 떨어짐)하여 일점의 기(氣)가 없더라도 내가 소식(蘇息)하여 일어남을 기다린다면 너희를 향해 미재(未在; 不然. 계합하지 못함)라고 말한다. 무슨 연고인가. 내가 일찍이 자라장 속을 향해 진주를 뿌려(向紫羅帳裏撒眞珠) 너희 제인에게 주지 않았다. 호할난할(胡喝亂喝)하여 무엇하리오. 운거(雲居; 道膺)가 삼봉암(三峰庵)에 거주할 때 스님이 묻되 잠시(權) 1문(問)을 빌려 영초(影草)로 삼을 때는 어떠합니까. 운거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이르되 예상하건대 화상은 이 화(話)에 답함을 얻지 못합니다. 예배하고 물러남만 같지 못합니다. 20년 후 운거가 이르되 여금에 사량하건대 당시에 저(箇) 하필(何必)이라고 말함도 쓰이지 않았다. 후에 화주를 보내어 스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스님이 묻되 화상이 삼봉암에 거주할 때 노승이 그에게 화(話)를 묻자 대답을 얻지 못했는데 여금에 도득(道得)하는가 아닌가. 화주가 앞의 화(話)를 들었다. 사운(師云) 운거는 20년 만에 다만 저(箇) 하필을 말해 얻었지만 흥화는 곧
●紫羅帳裏撒眞珠; 방어(方語)니 진정(盡情)으로 게시(揭示)함. ◆紫羅帳; 원래는 자색의 박견(薄絹)을 써서 만든 바의 나장(羅帳)을 가리킴이니 고관이나 귀인의 거처에 수괘(垂掛)함.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향상의 1관(關)을 가리킴이니 써서 주인공이나 군주의 소재를 표시함.
師謂克賓維那曰 汝不久爲唱導之師 賓曰 不入這保社 師曰 會了不入 不會了不入 曰 總不與麽 師便打曰 克賓維那法戰不勝 罰錢五貫 設饡飯一堂 次日 師自白椎曰 克賓維那法戰不勝 不得喫飯 卽便出院 僧問 國師喚侍者 意作麽生 師曰 一盲引衆盲
●保社; 指道場 寺院 保 舊時戶籍編制單位 隋唐五家爲保 宋十家爲保 社 古代地方基層行政單位 一二十五家爲社 二方六里爲社 三元代五十家爲社
●法戰; 禪林師家以法義問答 針鋒相對 互相勘驗 猶如世間戰爭 故稱法戰
스님이 극빈(克賓) 유나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오래지 않아 창도지사(唱導之師)가 되리라. 극빈이 가로되 이 보사(保社)에 들지 않겠습니다. 사왈 알고서 들지 않음이냐, 알지 못하고서 들지 않음이냐. 가로되 모두 그러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극빈 유나는 법전(法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벌전(罸錢) 5관(貫; 동전 1천 개가 1관)으로 일당(一堂)에 찬반(饡飯; 국밥)을 베풀어라. 다음날 스님이 스스로 백추(白椎)하고 가로되 극빈 유나는 법전에서 이기지 못하였으니 끽반(喫飯)함을 얻지 못한다. 곧바로 출원(出院)하라. 승문(僧問)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한 맹인이 뭇 맹인을 인도한다.
●保社; 指도량ㆍ사원을 가리킴. 보(保)는 구시에 호적의 편제단위(編制單位)니 수ㆍ당은 5가(家)로 보(保)를 삼았고 송은 10가로 보를 삼았음. 사(社)는 고대 지방 기층(基層) 행정단위니 1. 25가(家)가 사(社)가 됨. 2. 사방 6리가 사가 됨. 3. 원대에 50가를 사로 삼았음.
●法戰; 선림의 사가(師家)가 법의(法義)로 문답하면서 침봉(針鋒)을 상대하고 호상 감험함이 마치 세간의 전쟁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법전(法戰)임.
師在臨濟爲侍者 洛浦來參 濟問 甚處來 浦曰 鑾城來 濟曰 有事相借問 得麽 浦曰 新戒不會 濟曰 打破大唐國 覓箇不會底人也無 參堂去 師隨後請問曰 適來新到 是成褫他 不成褫他 濟曰 我誰管你成褫不成褫 師曰 和尙祇解將死雀就地彈 不解將一轉語蓋覆却 濟曰 你又作麽生 師曰 請和尙作新到 濟遂曰 新戒不會 師曰 却是老僧罪過 濟曰 你語藏鋒 師擬議 濟便打 至晩濟又曰 我今日問新到 是將死雀就地彈 就窠子裏打 及至你出得語 又喝起了 向靑雲裏打 師曰 草賊大敗 濟便打
●新戒; 指新近受戒之僧 亦指受沙彌戒爲日尙淺之幼年僧 [百丈淸規證義記七上 象器箋稱呼類]
스님이 임제(臨濟)에 있으면서 시자가 되었다. 낙포(洛浦)가 내참(來參)하자 임제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포왈(浦曰) 난성(鑾城)에서 옵니다. 제왈(濟曰) 일이 있어 서로 차문(借問)하려는데 얻겠는가. 포왈(浦曰) 신계(新戒)인지라 알지 못합니다. 제왈(濟曰) 대당국(大唐國)을 타파하여 저(箇)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더라도 또한 없다. 참당(參堂)하러 가거라. 스님이 뒤따라 청문(請問)해 가로되 아까 신도(新到)는 이 그(他)를 성치(成褫; 成就)했습니까. 그를 성치하지 못했습니까. 제왈(濟曰) 내가 무슨(誰) 너(你)의 성치와 성치하지 못함을 상관(相管)하겠는가. 사왈 화상은 다만 죽은 참새를 가져다 땅에 나아가 칠(彈) 줄 만 알고 1전어(轉語)를 가져다 개부(蓋覆)해버릴 줄 알지 못합니다. 제왈(濟曰) 너는 또 어떠한가. 사왈 청컨대 화상이 신도(新到)를 지으십시오. 임제가 드디어 가로되 신계(新戒)인지라 알지 못합니다. 사왈 도리어 이 노승의 죄과(罪過)다. 제왈(濟曰) 너의 말은 장봉(藏鋒)했다.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임제가 바로 때렸다. 저녁에 이르자 임제가 또 가로되 내가 금일 신도(新到)에게 물음은 이 죽은 참새를 가지고 땅에 나아가 치는(彈) 것이며 둥지(窠子; 子는 조사) 속으로 나아가 치는 것이다. 네가 말을 냄을 얻고 또 할(喝)을 일으켜 마침에 이르러선(及至) 청운(靑雲) 속을 향해 치는(打) 것이다. 사왈 초적(草賊)이 대패했습니다. 임제가 바로 때렸다.
●新戒; 새로 최근에 수계한 승인을 가리킴. 또한 사미계를 받은 날이 아직 짧은 유년승(幼年僧)을 가리킴 [백장청규증의기7상. 상기전칭호류].
師見同參來 纔上法堂 師便喝 僧亦喝 師又喝 僧亦喝 師近前拈棒 僧又喝 師曰 你看這瞎漢猶作主在 僧擬議 師直打下法堂 侍者請問 適來那僧有甚觸忤和尙 師曰 他適來也有權 也有實 也有照 也有用 及乎我將手向伊面前橫兩橫 到這裏却去不得 似這般瞎漢 不打更待何時 僧禮拜問 寶劒知師藏已久 今日當場略借看 師曰 不借 曰 爲甚麽不借 師曰 不是張華眼 徒窺射斗光 曰 用者如何 師曰 橫身當宇宙 誰是出頭人 僧便作引頸勢 師曰 嗄 僧曰 喏 便歸衆
●張華; (232-300) 西晉大臣 文學家 方城人 字茂先 著有博物志 ▲祖庭事苑三 射斗牛 晉書(36) 雷煥善天文 張華因望斗牛間 常有異氣 乃邀煥夜登樓仰視 煥曰 僕察之久矣 乃寶劍之精上於天 在豫章酆城縣界 華乃薦煥爲酆城令 煥至 修獄 掘基得石匣 有雙劍 光甚艶發 使送一與張公 一留自佩 華後被誅 劍遂失 煥卒 子爲州從事 佩父劍之延平 於腰間忽躍墮水 使人投之 但見兩龍長數丈 燔瑩有文章 投者懼而返
스님이 동참(同參)이 와서 겨우 법당에 오르는 것을 보자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중도 또한 할했다. 스님이 또 할하자 중도 또한 할했다. 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방(棒)을 집었다. 중이 또 할했다. 사왈 네가 보아라, 이 할한(瞎漢)이 오히려 주(主)를 짓는구나.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直) 때리고 법당에서 내려갔다. 시자가 청문(請問)하되 아까 그 중(那僧)은 화상을 무슨 촉오(觸忤)함이 있었습니까. 사왈 그는 아까 또한 권(權)도 있고 또한 실(實)도 있고 또한 조(照)도 있고 또한 용(用)도 있었다. 내가 손을 가지고 그의 면전을 향해 가로 놓아 두 번 가로 놓음에 이르러선(及乎) 이 속에 이르러 도리어 떠남을 얻지 못했나니 저반(這般; 이런 종류)과 같은 할한(瞎漢)을 때리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중이 예배하고 묻되 보검을 스님이 감춘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압니다. 금일 당장(當場)하여 조금(略) 빌려 볼까(借看) 합니다. 사왈 빌리지 못한다(不借). 가로되 무엇 때문에 빌리지 못합니까. 사왈 이 장화(張華)의 눈이 아니면서 도연히 두우(斗牛)를 쏘는 빛을 엿보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횡신(橫身)하여 우주에 당하거늘 누가 이 출두하는 사람인가. 중이 바로 목을 늘어뜨리는(引頸) 자세를 지었다. 사왈 사(嗄). 승왈(僧曰) 낙(喏). 바로 대중에 돌아갔다.
●張華; (232-300) 서진의 대신이며 문학가. 방성 사람이며 자는 무선(茂先)이니 저서에 박물지가 있음. ▲조정사원3. 사우두(射斗牛) 사두우(射斗牛) 진서(36) 뇌환(雷煥)은 천문(天文)을 잘했다. 장화(張華)가 두우(斗牛; 北斗星과 牽牛星) 사이를 보매 늘 이기(異氣)가 있음으로 인하여 이에 뇌환을 불러 밤에 등루(登樓)하여 앙시(仰視)했다. 뇌환이 가로되 제(僕은 自謙辭)가 그것을 살핀 지 오래되었습니다. 곧 보검의 정기(精氣)가 하늘에 오른 것인데 예장(豫章)의 풍성현(酆城縣) 경계에 있습니다. 장화가 이에 뇌환을 천거해 풍성령(酆城令)이 되게 했다. 뇌환이 이르러 뇌옥(牢獄)을 수리하면서 기저(基底)를 파다가 석갑(石匣)을 얻었는데 쌍검이 있었고 빛이 매우 곱게 빛났다. 시켜 보내어 한 개는 장공(張公)에게 주고 한 개는 스스로 찼다. 장화가 뒤에 주살(誅殺)을 입었고 검은 드디어 잃어버렸다. 뇌환이 죽고 아들이 주(州)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아버지의 검을 차고 연평(延平)으로 가는데 허리 사이에서 홀연히 도약해 물에 떨어졌다. 사람을 시켜 그곳에 투입했는데 단지 두 마리의 용의 길이가 몇 장(丈)이며 번쩍거리며(燔은 사를 번. 瑩은 밝을 형) 문장(文章; 무늬)이 있음이 보였다. 투입된 자가 두려워하며 돌아왔다.
後唐莊宗車駕幸河北 回至魏府行宮 詔師問曰 朕收中原 獲得一寶 未曾有人酬價 師曰 請陛下寶看 帝以兩手舒幞頭脚 師曰 君王之寶 誰敢酬價〈玄覺徵云 且道興化肯莊宗 不肯莊宗 若肯莊宗 興化眼在甚麽處 若不肯莊宗 過在甚麽處〉 龍顔大悅 賜紫衣師號 師皆不受 乃賜馬與師乘騎 馬忽驚 師墜傷足 帝復賜藥救療 師喚院主 與我做箇木柺子 主做了將來 師接得 遶院行 問僧曰 汝等還識老僧麽 曰 爭得不識和尙 師曰 𨁸脚法師 說得行不得 又至法堂 令維那聲鐘集衆 師曰 還識老僧麽 衆無對 師擲下柺子 端然而逝 諡廣濟禪師
●酬價; 給出價錢 估價 酬 報也 答也
후당(後唐) 장종(莊宗)의 거가(車駕)가 하북(河北)으로 거둥했다가(幸) 돌아오면서 위부(魏府)의 행궁(行宮)에 이르렀다. 스님을 불러 물어 가로되 짐이 중원을 수복(收復)하다가 한 보배를 얻었지만 일찍이 값을 매기는(酬價)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사왈 폐하의 보배를 청해 볼까 합니다. 황제가 두 손으로써 복두각(幞頭脚)을 폈다(舒). 사왈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玄覺이 徵云 且道하라, 興化가 莊宗을 수긍했는가, 장종을 수긍하지 않았는가. 만약 장종을 수긍했다면 흥화의 눈이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장종을 긍정하지 않았다면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용안(龍顔)이 대열(大悅)했다. 자의(紫衣)와 사호(師號)를 주었으나 스님이 모두 받지 않았다. 이에 말을 주어 스님이 승기(乘騎)하게 해 주었는데 말이 홀연히 놀라 스님이 추락해 발을 다쳤다. 황제가 다시 약을 주어 구료(救療)했다. 스님이 원주를 불러 나를 위해(與) 저(箇) 목괘자(木柺子;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라 하자 원주가 만들어 가지고 왔다. 스님이 접득(接得; 접수)하여 사원을 돌며 다니다가 중에게 물어 가로되 너희 등이 도리어 노승을 알겠는가. 가로되 어찌 화상을 알지 못함을 얻겠습니까. 사왈 여각법사(𨁸脚法師; 절름발이 법사)가 설함을 얻으나 행함을 얻지 못한다. 또 법당에 이르자 유나로 하여금 종을 울려(聲鐘) 집중(集衆)하게 했다. 사왈 도리어 노승을 알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지팡이(柺子)를 던져 떨어뜨리고 단연(端然)히 서거했다. 시호가 광제선사(廣濟禪師)다.
●酬價; 가전(價錢; 값)ㆍ고가(估價; 가격)를 급출(給出; 제때에 대다)함. 수(酬)는 보(報)임. 답임.
鎭州寶壽沼禪師〈第一世〉
僧問 萬境來侵時如何 師曰 莫管他 僧禮拜 師曰 不要動著 動著卽打折汝腰 師在方丈坐 因僧問訊次 師曰 百千諸聖 盡不出此方丈內 曰 祇如古人道 大千沙界海中漚 未審此方丈向甚麽處著 師曰 千聖現在 曰 阿誰證明 師便擲下拂子 僧從西過東立 師便打 僧曰 若不久參 焉知端的 師曰 三十年後 此話大行 趙州來 師在禪牀背面而坐 州展坐具禮拜 師起入方丈 州收坐具而出 師問僧 甚處來 曰 西山來 師曰 見獼猴麽 曰 見 師曰 作甚麽伎倆 曰 見某甲一箇伎倆也作不得 師便打
진주(鎭州) 보수소(寶壽沼) 선사〈第一世〉
승문(僧問) 만경(萬境)이 내침(來侵)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그에 상관(相管)하지 않는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동착(動著)함을 요하지 않나니 동착하면 곧 너의 허리를 타절(打折)할 것이다. 스님이 방장에 있으면서 앉았는데 중이 문신(問訊)하던 차로 인해 사왈 백천(百千) 제성(諸聖)이 모두 이 방장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로되 지여(祇如) 고인이 말하되 대천사계(大千沙界)가 해중(海中)의 물거품이다. 미심하오니 이 방장은 어느 곳을 향해 둡니까(著). 사왈 천성(千聖)이 현재(現在)한다. 가로되 누가(阿誰) 증명합니까. 스님이 바로 불자를 던져 떨어뜨렸다. 중이 서쪽으로 좇아 동쪽에 이르러 섰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僧曰) 만약 구참(久參)이 아니라면 어찌(焉) 단적(端的)을 알겠습니까. 사왈 30년 후에 차화(此話)가 대행(大行)하리라. 조주(趙州)가 왔다. 스님이 선상에 있으면서 배면(背面)하고 앉았다. 조주가 좌구(坐具)를 펴고 예배하자 스님이 일어나 방장으로 들어갔다. 조주가 좌구를 거두고 나갔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서산(西山)에서 옵니다. 사왈 미후(獼猴)를 보았느냐. 가로되 보았습니다. 사왈 어떤(甚麽) 기량(伎倆)을 짓더냐. 가로되 모갑을 보더니 일개(一箇)의 기량도 지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胡釘鉸參 師問 汝莫是胡釘鉸麽 曰 不敢 師曰 還釘得虛空麽 曰 請和尙打破 師便打 胡曰 和尙莫錯打某甲 師曰 向後有多口阿師 與你點破在 胡後到趙州 擧前話 州曰 汝因甚麽被他打 胡曰 不知過在甚麽處 州曰 祇這一縫尙不奈何 胡於此有省 趙州曰 且釘這一縫 僧問 萬里無雲時如何 師曰 靑天也須喫棒 曰 未審靑天有甚麽過 師便打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面黑眼睛白 西院來參 問 踏倒化城來時如何 師曰 不斬死漢 院曰 斬 師便打 院連道 斬斬 師又隨聲打 師却回方丈曰 適來這僧 將赤肉抵他乾棒 有甚死急
●胡釘鉸; 祖庭事苑一 胡釘鉸 唐之散人 世不以名顯 嘗與保福趙州問答 語流叢席 嘗一夕夢呑五色毬 旣覺 遂能作句語 鱠炙人口 至今稱誦不已 ▲禪門拈頌集第七四九則 拈頌說話曰 釘鉸者 江湖散人 家住白蘋洲 以釘鉸爲業也
●點破; 點檢 破 助詞 相當于得 了 著
호정교(胡釘鉸)가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너는 이 호정교가 아니냐. 가로되 불감(不敢)입니다. 사왈 도리어 허공에 못질함(釘)을 얻겠는가. 가로되 화상이 타파하기를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호(胡)가 가로되 화상은 모갑을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사왈 향후에 다구아사(多口阿師; 말 많은 스님)가 있어 너에게 점파(點破)하여 주리라. 호(胡)가 후에 조주(趙州)에 이르러 전화(前話)를 들자 주왈(州曰) 너는 무엇으로 인해 그의 때림을 입었느냐. 호가 가로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주왈(州曰) 다만 이 1봉(縫; 옷 솔기)도 오히려 어찌하지 못하느냐. 호가 이에서 성찰이 있었다. 조주가 가로되 다만 이 일봉(一縫)을 못질한다. 승문(僧問) 만 리에 구름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청천(靑天)도 반드시(須) 끽방(喫棒)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청천이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얼굴은 검고 눈동자는 희다. 서원(西院)이 내참(來參)하여 묻되 화성(化城)을 답도(踏倒)하고 왔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한(死漢)을 베지 않는다. 원왈(院曰) 베십시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서원이 연달아 말하되 베십시오, 베십시오. 스님이 또 소리 따라 때렸다. 스님이 방장으로 돌아가서(却回) 가로되 아까 이 중은 적육(赤肉)을 가져다 저 건방(乾棒)에 다닥치니(抵) 무슨 사급(死急)함이 있는가.
●胡釘鉸; 조정사원1. 호정교(胡釘鉸) 당(唐)의 산인(散人; 벼슬을 하지 않고 민간에 한가히 있는 사람)이니 세상에 이름을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보복(保福; 從展이니 설봉의 法嗣) 조주와 문답했으며 어(語)가 총석(叢席)에 유행(流行)한다. 일찍이 일석(一夕)의 꿈에 오색구(五色毬)를 삼켰는데 이미 깨매 드디어 능히 구어(句語)를 지었으며 인구(人口)에 회자(鱠炙;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되어 지금껏 칭송(稱誦)해 그치지 않는다. ▲선문염송집 제749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정교(釘鉸)란 것은 강호의 산인(散人)이며 백빈주(白蘋洲)에 가주(家住)했고 정교(釘鉸; 못으로 박고 가위로 재단함)로 업을 삼았음.
●點破; 점검. 파(破)는 조사니 득(得)ㆍ료(了)ㆍ착(著)에 상당함.
鎭州三聖院慧然禪師
自臨濟受訣 遍歷叢林 至仰山 山問 汝名甚麽 師曰 慧寂 山曰 慧寂是我名 師曰 我名慧然 山大笑而已 仰山因有官人相訪 山問 官居何位 曰 推官 山竪起拂子曰 還推得這箇麽 官人無對 山令衆下語 皆不契 時師不安 在涅槃堂內將息 山令侍者去請下語 師曰 但道和尙今日有事 山又令侍者問 未審有甚麽事 師曰 再犯不容 到香嚴 嚴問 甚處來 師曰 臨濟 嚴曰 將得臨濟喝來麽 師以坐具驀口打 又到德山 纔展坐具 山曰 莫展炊巾 這裏無殘羹餿飯 師曰 縱有也無著處 山便打 師接住棒 推向禪牀上 山大笑 師哭蒼天 便下參堂 堂中首座號踢天泰 問 行脚高士 須得本道公驗 作麽生是本道公驗 師曰 道甚麽 座再問 師打一坐具曰 這漆桶前後觸忤多少賢良 座擬人事 師便過第二座人事 又到道吾 吾預知 以緋抹額 持神杖於門下立 師曰 小心祇候 吾應喏 師參堂了 再上人事 吾具威儀 方丈內坐 師纔近前 吾曰 有事相借問 得麽 師曰 也是適來野狐精 便出去
●受訣; 領受禪旨 得法
●推官; 官名 唐朝始置 節度使 觀察使 團練使 防禦使 采訪處置使下 皆設一員 位次於判官 掌書記 掌推勾獄訟之事 五代沿襲唐制 宋朝時三司下各部每部設一員 主管各案公事 [百度百科]
●下語; 給出機語
●炊巾; 又作炊單 坐具的貶語
●高士; 高尙之士 又菩薩之舊譯 三敎指歸二曰 菩薩 古維摩經翻高士
진주(鎭州) 삼성원(三聖院) 혜연선사(慧然禪師)
임제로부터 수결(受訣)하고는 총림을 편력(遍歷)하다가 앙산(仰山)에 이르렀다. 앙산이 묻되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사왈(師曰) 혜적(慧寂)입니다. 앙산이 가로되 혜적은 이 나의 이름이다. 사왈 나의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앙산이 대소(大笑)할 따름이었다. 앙산이, 어떤 관인(官人)이 상방(相訪)함으로 인해 앙산이 묻되 관직이 어떤 위치에 거처하는가. 가로되 추관(推官)입니다. 앙산이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도리어 이것(這箇)을 추득(推得)하겠는가. 관인이 대답이 없었다. 앙산이 대중으로 하여금 하어(下語)하게 했는데 모두 계합하지 못했다. 때에 스님이 불안(不安; 得病)하여 열반당(涅槃堂) 안에 있으면 이에(將) 쉬었는데 앙산이 시자를 시켜 가서 하어(下語)를 청하게 했다. 사왈 단지 말하나니 화상이 금일 일이 있다(有事). 앙산이 또 시자를 시켜 묻게 하되 미심하나니 무슨 일이 있는가. 사왈 다시 범(犯)함은 용납하지 않는다. 향엄(香嚴)에 이르자 향엄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임제입니다. 향엄이 가로되 임제할(臨濟喝)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스님이 좌구로써 입에다(驀口) 때렸다. 또 덕산(德山)에 이르러 겨우 좌구를 펴자 덕산이 가로되 취건(炊巾)을 펴지 말아라, 이 속엔 잔갱수반(殘羹餿飯; 남은 국과 쉰 밥)이 없다. 사왈 비록(縱) 있더라도 둘 곳(著處)이 없습니다. 덕산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방(棒)을 접주(接住)하여 밀어 선상 위로 향하게 했다. 덕산이 대소(大笑)했다. 스님이 창천(蒼天)을 곡(哭)하고 바로 내려가 참당(參堂)했다. 당중(堂中)의 수좌는 호가 척천태(踢天泰)였는데 묻되 행각하는 고사(高士)는 모름지기 본도(本道)의 공험(公驗)을 얻어야 하나니 무엇이(作麽生) 이 본도의 공험인가. 사왈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수좌가 재문(再問)하자 스님이 한 번 좌구로 때리고 가로되 이 칠통(漆桶)이 전후(前後)로 다소(多少)의 현량(賢良)을 촉오(觸忤)했는가. 수좌가 인사(人事)하려고 하자 스님이 바로 제2좌에 이르러(過) 인사(人事)했다. 또 도오(道吾)에 이르자 도오가 미리 알고서 비단으로써 이마를 두르고(以緋抹額) 신장(神杖)을 가지고 문 아래에 섰다. 사왈 소심(小心; 주의)하여 지후(祇候; 祗候와 같음)하라. 도오가 응낙(應喏)했다. 스님이 참당(參堂)하고 나서 다시 올라가 인사했다. 도오가 위의를 갖추고 방장 안에 앉았다. 스님이 겨우 앞으로 다가가자 도오가 가로되 일이 있어 서로 차문(借問)하려는데 얻겠는가. 사왈 또 이는 아까의 야호정(野狐精)이다. 바로 나갔다.
●受訣; 선지(禪旨)를 영수(領受)함. 득법.
●推官; 벼슬 이름이니 당조(唐朝)에 처음 설치했음. 절도사ㆍ관찰사ㆍ단련사ㆍ방어사ㆍ채방처치사 아래 모두 1원(員)을 설치했음. 지위는 판관(判官) 다음이며 서기(書記)를 관장했고 옥송(獄訟)의 일을 추구(推勾; 推斷하여 처리함)했음. 오대(五代)에 당제(唐制)를 연습(沿襲; 전례를 따라서 함)했고 송조 때 3사(司) 아래 각부(各部)의 매부(每部)에 1원(員)을 설치했고 각안(各案)의 공사(公事)를 주관했음 [백도백과].
●下語; 기어(機語)를 급출(給出)함.
●炊巾; 또 취단(炊單)으로 지음. 좌구의 폄어(貶語).
●高士; 고상한 사내. 또 보살의 구역임. 삼교지귀2에 가로되 보살 고유마경에선 고사(高士)로 번역했다.
住後 上堂 我逢人卽出 出則不爲人 便下座〈興化云 我逢人則不出 出則便爲人〉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臭肉來蠅〈興化云 破驢脊上足蒼蠅〉 問僧 近離甚處 僧便喝 師亦喝 僧又喝 師又喝 僧曰 行棒卽瞎 便喝 師拈棒 僧乃轉身作受棒勢 師曰 下坡不走快便難逢 便棒 僧曰 這賊 便出去 師遂拋下棒 次有僧問 適來爭容得這僧 師曰 是伊見先師來
주후(住後) 상당(上堂) 나는 사람을 만나면 곧 내어놓고 내어놓으면 곧 사람을 위하지 않는다. 바로 하좌했다〈興化云 나는 사람을 만나면 곧 내어놓지 않고 내어놓으면 곧 사람을 위한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취육(臭肉)이 파리를 부른다(來)〈興化云 해진 나귀 등마루 위에 쉬파리(蒼蠅)가 많다(足)〉.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중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도 또한 할했다. 중이 또 할했다. 스님이 또 할했다. 승왈(僧曰) 행방(行棒)하면 곧 눈멀었습니다 하고 바로 할했다. 스님이 방(棒)을 잡자 중이 이에 몸을 돌려 수방(受棒)하는 자세를 지었다. 사왈 언덕을 내려가며 달리지 않으면 쾌편(快便)을 만나기 어렵다. 바로 방(棒; 주장자로 때림)했다. 승왈(僧曰) 이 도적아 하고 바로 나갔다. 스님이 드디어 방(棒)을 던져 떨어뜨렸다(拋下). 다음에 어떤 중이 묻되 아까 어찌하여 이 중을 용득(容得; 용납)했습니까. 사왈 이 그는 선사(先師)를 친견하고 왔다.
魏府大覺和尙
參臨濟 濟纔見 竪起拂子 師展坐具 濟擲下拂子 師收坐具 參堂去 時僧衆曰 此僧莫是和尙親故 不禮拜又不喫棒 濟聞說 令侍者喚適來新到上來 師隨侍者到方丈 濟曰 大衆道汝來參長老 又不禮拜 又不喫棒 莫是長老親故 師乃珍重下去 師住後 僧問 如何是本來身 師曰 頭枕衡山 脚踏北嶽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良馬不窺鞭 側耳知人意 問 如何是鎭國寶 師曰 穿耳賣不售 問 香草未生時如何 師曰 齅著腦裂 曰 生後如何 師曰 腦裂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十字街頭 望空啓告 問 如何是大覺 師曰 惡覺 曰 乖極 師便打 問 忽來忽去時如何 師曰 風吹柳絮毛毬走 曰 不來不去時如何 師曰 華嶽三峰頭指天 問 一飽忘百饑時如何 師曰 縱遇臨岐食 隨分納些些 臨終時謂衆曰 我有一隻箭 要付與人 時有一僧出曰 請和尙箭 師曰 汝喚甚麽作箭 僧喝 師打數下 便歸方丈 却喚其僧入來 問曰 汝適來會麽 曰 不會 師又打數下 擲却拄杖 曰 已後遇明眼人 分明擧似 便乃告寂
●親故; 故 舊交 舊知 親故卽親密舊知 ▲晉書四十三 列傳十三山濤章云 祿賜俸秩 散之親故
●鎭國; 使國家安定
●臨岐; 本爲面臨歧路 後亦用爲贈別之辭
위부(魏府) 대각화상(大覺和尙)
임제(臨濟)를 참(參)했다. 임제가 겨우 보자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스님이 좌구(坐具)를 폈다. 임제가 불자를 던져 떨어뜨렸다. 스님이 좌구를 거두고 참당(參堂)하러 갔다. 때에 승중(僧衆)이 가로되 이 중은 이 화상과 친고(親故)라 예배도 하지 않고 또 끽방(喫棒)하지 않은 게 아닐까. 임제가 설함을 듣고 시자를 시켜 적래(適來)의 신도(新到)를 불러 올라오게 했다. 스님이 시자를 따라 방장에 이르자 제왈(濟曰) 대중이 말하되 너는 장로(長老; 임제를 가리킴)를 내참(來參)하여 또 예배하지 않고 또 끽방(喫棒)하지 않았으니 이 장로의 친고(親故)가 아닐까. 스님이 이에 진중(珍重)이라 하고 내려갔다. 스님이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본래신(本來身)입니까. 사왈 머리는 형산(衡山; 南嶽)을 베개로 하고 발은 북악(北嶽; 恒山)을 밟았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양마(良馬)는 채찍을 엿보지 않고 귀를 기울여 사람의 뜻을 안다. 묻되 무엇이 이 진국(鎭國)의 보배입니까. 사왈 천이(穿耳)가 팔면 사지(售) 않는다. 묻되 향초(香草)가 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후착(齅著; 냄새 맡다)하면 뇌(腦)가 찢어진다. 가로되 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뇌가 찢어진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계고(啓告; 告知)한다. 묻되 무엇이 이 대각(大覺)입니까. 사왈 악각(惡覺)이다. 가로되 어긋남(乖)이 지극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홀래홀거(忽來忽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바람이 유서(柳絮; 버들개지)에 부니 모구(毛毬)가 달아난다. 가로되 불래불거(不來不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화악(華嶽; 華山) 삼봉(三峰)의 꼭대기가 하늘을 가리킨다. 묻되 일포(一飽)하매 백기(百饑)를 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비록 임기(臨岐)의 음식을 만나더라도 분한 따라 조금(些些) 수납(受納)하라. 임종 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나에게 1척(隻)의 화살이 있어 사람에게 부여(付與)하려고 한다. 때에 어떤 1승(僧)이 나와 가로되 화상의 화살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무엇을 일러 화살이라 하느냐. 중이 할(喝)했다. 스님이 몇 번(數下) 때렸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가서 도리어 그 중을 불러 들어오라 하고는 물어 가로되 네가 적래(適來)에 알았는가(會麽). 가로되 알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또 몇 번(數下) 때리고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가로되 이후(已後)에 명안인(明眼人)을 만나면 분명히 들어 보여라. 바로 곧 고적(告寂)했다.
●親故; 고(故)는 구교(舊交)임. 구지(舊知)임. 친고는 곧 친밀하게 예전부터 알던 사람. ▲진서43 열전13 산도장(山濤章)에 이르되 녹(祿)으로 봉질(俸秩; 秩은 祿俸)을 하사하자 친고(親故)에게 흩었다.
●鎭國; 국가를 안정시킴.
●臨岐; 본래 기로(歧路)를 면림(面臨)함이나 후에 또한 증별지사(贈別之辭)로 사용했음.
灌谿志閑禪師
魏府館陶史氏子 幼從栢巖禪師披剃受具 後見臨濟 濟驀胸搊住 師曰 領領 濟拓開曰 且放汝一頓 師離臨濟至末山〈語見末山章〉 師住後 上堂曰 我在臨濟爺爺處得半杓 末山孃孃處得半杓 共成一杓 喫了 直至如今飽不飢 僧問 請師不借借 師曰 滿口道不得 師又曰 大庾嶺頭佛不會 黃梅路上沒衆生 師會下一僧 去參石霜 霜問 甚處來 曰 灌谿來 霜曰 我南山不如他北山 僧無對 僧回擧似師 師曰 何不道灌谿修涅槃堂了也 問 久嚮灌谿 到來祇見漚麻池 師曰 汝祇見漚麻池 且不見灌谿 曰 如何是灌谿 師曰 劈箭急〈後人擧似玄沙 沙云 更學三十年未會禪〉 問 如何是古人骨 師曰 安置不得 曰 爲甚麽安置不得 師曰 金烏那敎下碧天 問 金鎻斷後如何 師曰 正是法汝處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鉢裏盛飯 鐼裏盛羹 曰 學人不會 師曰 飢則食 飽則休
●魏府; 河北魏府 釋氏稽古略三云 魏府 今大名路也
●爺爺; 對男性老人的尊稱
●孃孃; 對長輩婦女的尊稱
●漚麻池; 麻 表面不平 不光滑 如這種紙一面光一面麻 麻又面部痘瘢 ●劈箭; 謂急如劈破某物之箭
●鐼; 鐼子 鉢中之小鉢 卽淺鐵鉢 乃應量器內鍵𨩲 小鉢 次鉢等大小三器之總稱 ▲四分律名義標釋二十六 鍵𨩲 或作揵茨 或作建鎡 皆梵音輕重也 母經 譯爲淺鐵鉢 經音疏云 鉢中之小鉢 今呼爲鐼子 律云 鍵𨩲 入小鉢 小鉢入次鉢 次鉢入大鉢
관계지한(灌谿志閑) 선사
위부(魏府) 관도(館陶) 사씨(史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백암선사(栢巖禪師)를 좇아 피체(披剃)하고 수구(受具)했다. 후에 임제를 뵙자 임제가 가슴에다(驀胸) 추주(搊住)했다 사왈(師曰) 영회(領會)했습니다. 영회했습니다. 임제가 밀어젖히고(拓開) 가로되 다만(且) 너에게 1돈(頓)을 놓는다. 스님이 임제를 떠나 말산(末山)에 이르렀다〈語는 末山章을 보라〉. 스님이 주후(住後)에 상당(上堂)하여 가로되 나는 임제 야야(爺爺)의 처소에 있으면서 반 구기(杓)를 얻었고 말산 양양(孃孃)의 처소에서 반 구기를 얻어 공히 한 구기를 이루었다. 먹고 나서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배불러 주리지 않는다. 승문(僧問) 스님의 불차차(不借借)를 청합니다. 사왈 입에 가득하지만(滿口) 말함을 얻지 못한다. 스님이 또 가로되 대유령두(大庾嶺頭)에서 부처가 알지 못하고(不會) 황매로상(黃梅路上)에 중생이 없다. 스님의 회하(會下)의 1승이 가서 석상(石霜)을 참했다. 석상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관계에서 옵니다. 석상이 가로되 나의 남산이 그의 북산만 같지 못하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 중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관계가 열반당(涅槃堂)을 수리(修理)해 마쳤다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 묻되 관계(灌谿)를 구향(久嚮)했더니 도래하매 다만 구마지(漚麻池)만 보입니다. 사왈 너는 다만 구마지만 보고 또 관계를 보지 못하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관계입니까. 사왈 벽전(劈箭)처럼 급하다〈後人이 玄沙에게 들어 보이자 현사가 이르되 다시 30년을 배워도 禪을 알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고인의 골(古人骨)입니까. 사왈 안치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안치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금오(金烏; 해)를 어찌(那) 벽천(碧天)에서 내려오게 하겠는가. 묻되 금쇄(金鎻)가 끊어진 후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 이는 네가 본받을(法) 곳이다(法汝處).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발리(鉢裏)에 가득한 밥이며 분리(鐼裏; 저본에 饙裏로 지었음)에 가득한 국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주리면 곧 식사(食事)하고 배부르면 곧 휴식한다.
●魏府; 하북 위부.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위부(魏府) 여금의 대명로(大名路)다.
●爺爺; 남성 노인에 대한 존칭.
●孃孃; 장배(長輩) 부녀에 대한 존칭.
●漚麻池; 마(麻)는 표면이 평평하지 않음임. 광활(光滑; 빛나면서 매끄러움)하지 않음임. 예컨대(如) 이러한 종류의 종이는 한 면은 빛나고 한 면은 마(麻)다. 마(麻)는 또 얼굴 부분의 두반(痘瘢; 두창의 흉터)임.
●劈箭; 이르자면 급하기가 어떤 물건을 벽파(劈破)함과 같은 화살.
●鐼; 분자(鐼子)임. 발중(鉢中)의 소발(小鉢)이니 곧 천철발(淺鐵鉢)임. 곧 응량기 내의 건자(鍵𨩲)ㆍ소발(小鉢)ㆍ차발(次鉢) 등 대소(大小) 3기(器)의 총칭임. ▲사분율명의표석26. 건자(鍵𨩲) 혹 건자(揵茨)로 지으며 혹 건자(建鎡)로 짓나니 모두 범음의 경중(輕重)이다. 모경(母經)에 천철발(淺鐵鉢)로 번역했다. 경음소(經音疏)에 이르되 발중(鉢中)의 소발(小鉢)을 지금 분자(鐼子)로 호칭한다. 율에 이르되 건자(鍵𨩲)는 소발(小鉢)에 들어가고 소발은 차발(次鉢)에 들어가고 차발은 대발(大鉢)에 들어간다.
上堂 十方無壁落 四畔亦無門 露裸裸赤灑灑無可把 便下座 問 如何是一色 師曰 不隨 曰 一色後如何 師曰 有闍黎承當分也無 問 今日一會 祇敵何人 師曰 不爲凡聖 問 一句如何 師曰 不落千聖機 問 如何是洞中水 師曰 不洗人 唐乾寧二年乙卯五月二十九日 問侍者曰 坐死者誰 曰 僧伽 師曰 立死者誰 曰 僧會 師乃行七步 垂手而逝
●露裸裸赤灑灑無可把; 坦露空寂 淸淨無汚 沒有相狀 超越空間 是禪悟境界 ◆露裸裸; 裸露貌 ◆赤灑灑; 同於赤裸裸 灑灑者 物爽而不留一點汚物之貌
상당(上堂) 시방에 벽락(壁落; 벽 울타리)이 없고 사반(四畔; 사방)에 또한 문이 없나니 노나라(露裸裸)하고 적쇄쇄(赤灑灑)하여 가히 잡을 데가 없다(露裸裸赤灑灑無可把). 바로 하좌했다. 묻되 무엇이 이 일색(一色)입니까. 사왈 따르지 앟는다(不隨). 가로되 일색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승당(承當)할 분한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묻되 금일의 일회(一會)는 다만 어떤 사람을 대적(對敵)합니까. 사왈 범성(凡聖)을 위함이 아니다. 묻되 1구는 무엇입니까. 사왈 천성기(千聖機)에 떨어지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동중수(洞中水)입니까. 사왈 사람을 씻지 않는다. 당 건녕(乾寧) 2년 을묘(895) 5월 29일 시자에게 물어 가로되 앉아 죽은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가(僧伽)입니다. 서서 죽은 자는 누구인가. 가로되 승회(僧會)입니다. 스님이 이에 7보를 걷다가 손을 내리고 서거했다.
●露裸裸赤灑灑無可把; 공적(空寂)을 탄로(坦露; 드러내다)하여 청정하여 오염이 없으며 상상(相狀)이 있지 않으며 공간을 초월함이니 이는 선을 깨친 경계. ◆露裸裸; 발가벗어 드러내는 모양. ◆赤灑灑; 적나라(赤裸裸)와 같음. 쇄쇄(灑灑)란 것은 물건이 상쾌하여 일점의 오물도 머물러두지 않는 모양.
𣵠州紙衣和尙〈卽克符道者〉
初問臨濟 如何是奪人不奪境 濟曰 煦日發生鋪地錦 嬰兒垂髮白如絲 師曰 如何是奪境不奪人 濟曰 王令已行天下遍 將軍塞外絕煙塵 師曰 如何是人境俱奪 濟曰 幷汾絕信 獨處一方 師曰 如何是人境俱不奪 濟曰 王登寶殿 野老謳謌 師於言下領旨 後有頌曰 奪人不奪境 緣自帶誵訛 擬欲求玄旨 思量反責麽 驪珠光燦爛 蟾桂影婆娑 覿面無差互 還應滯網羅 奪境不奪人 尋言何處眞 問禪禪是妄 究理理非親 日照寒光澹 山搖翠色新 直饒玄會得 也是眼中塵 人境兩俱奪 從來正令行 不論佛與祖 那說聖凡情 擬犯吹毛劍 還如値木盲 進前求妙會 特地斬精靈 人境俱不奪 思量意不偏 主賓言少異 問答理俱全 踏破澄潭月 穿開碧落天 不能明妙用 淪溺在無緣
●幷汾; 二州名 舊說唐吳元濟 據蔡州城 押取幷汾二州 不隨天下 而不通信 此城高聳空 人難到故不能攻破 時天大雪 與城齊 此時李愬破之 資治通鑑二百四十 唐憲宗元和十二年(817)編曰 冬十月 李愬夜襲蔡州 擒吳元濟 檻送京師 ▲人天眼目一 大慧云 吾初讀諸家禪錄 見幷汾絶信之語 深以爲疑 雖詰諸老 皆含糊不辨 旣閱臨濟語 則知絶信二字 蓋幷汾二州名也
●野老謳謌; 帝王世紀 帝堯之世 天下太和 百姓無事 有老人擊壤而歌曰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誵訛; 混淆訛誤 又作誵譌 淆訛 殽訛 聱訛 肴訛 譊訛 詨訛 從容錄音義云 誵訛 不謹也 同事略云 言辭不平易貌
●蟾桂; 月裏的丹桂 傳說月中有蟾蜍 故以蟾爲月的代稱
●婆娑; 一形容盤旋和舞動的樣子 二枝葉紛披的樣子
탁주(𣵠州) 지의화상(紙衣和尙)〈곧 克符道者〉
처음 임제(臨濟)에게 묻되 무엇이 이 인(人)을 뺏고 경(境)을 뺏지 않음입니까. 제왈(濟曰) 따뜻한 해가 발생하니(온갖 꽃을 피게 하니) 땅에 비단을 편 듯하고 어린아이가 머리카락을 드리우니 희기가 실과 같다. 사왈 무엇이 이 경을 뺏고 인을 뺏지 않음입니까. 제왈(濟曰) 왕의 칙령을 이미 행하니 천하에 두루하고 장군이 새외(塞外)에서 연진(煙塵)을 끊었다. 사왈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모두 뺏음입니까. 제왈(濟曰) 병분(幷汾)이 소식이 끊겨 한 방면에 홀로 거처한다. 사왈 무엇이 이 인과 경을 모두 뺏지 않음입니까. 제왈(濟曰) 왕이 보전(寶殿)에 오르니 야로가 구가한다(野老謳謌). 스님이 언하에 지취를 영회(領會)했다. 후에 송(頌)이 있어 가로되 인(人)을 뺏고 경(境)을 뺏지 않음이여/ 인연이 스스로 효와(誵訛)를 띠었다/ 현지(玄旨)를 구하고자 한다면/ 사량(思量)하여 반책(反責)하겠는가/ 이주(驪珠)는 빛이 찬란(燦爛)하고/ 섬계(蟾桂)의 그림자는 파사(婆娑)하다/ 적면(覿面; 當面)하여 차호(差互; 交錯)가 없더라도/ 도리어 응당 망라(網羅)에 체류(滯留; 滯)한다. 경을 빼앗고 인을 뺏지 않음이여/ 언어에서 찾으면 어느 곳이 진(眞)인가/ 선(禪)을 물으면 선(禪)은 이 망(妄)이며/ 이치를 궁구하면 이치가 친하지 않다/ 해가 한광(寒光)을 비추어 맑고(澹)/ 산이 취색(翠色)을 흔들어 새롭다/ 직요(直饒; 가령) 현묘(玄妙)하게 회득(會得)하더라도/ 또 이는 안중(眼中)의 티끌이다/ 인과 경을 둘 다 뺏음이여/ 종래(從來)로 정령(正令)을 행했다/ 불(佛)과 조(祖)를 논하지 않으면/ 어찌(那) 성범(聖凡)의 정(情)을 설하겠는가/ 취모검을 범하려고 한다면/ 도리어 나무를 만난(値木) 맹귀(盲龜; 盲)와 같다/ 진전(進前)하며 묘한 이회(理會)를 구하면서/ 특지(特地) 정령(精靈)을 벤다(斬). 인과 경을 모두 뺏지 않음이여/ 사량(思量)하는 뜻이 편벽되지 않다/ 주빈(主賓)의 말이 조금 다르지만/ 문답하는 이치가 모두(俱) 완전하다/ 징담(澄潭)의 달을 답파(踏破)하고/ 벽락(碧落)의 하늘을 천개(穿開)했다/ 능히 묘용(妙用)을 밝히지 못하면/ 윤닉(淪溺)하여 무연(無緣)에 있다.
●幷汾; 2주(州)의 이름. 구설(舊說)에 당나라의 오원제(吳元濟)가 채주성(蔡州城)을 근거지로 병분(幷汾) 2주를 압취해 천하를 따르지 않아 통신이 되지 않았음. 이 성은 허공에 높이 솟아 사람이 이르기 어려운 고로 능히 공격해 깨뜨리지 못했음. 때에 하늘이 대설인지라 성과 제등하자 이때 이소(李愬)가 이를 깨뜨렸음. 자치통감240. 당 헌종 원화12년(817)편에 가로되 동(冬) 10월 이소(李愬)가 채주를 야습하여 오원제를 사로잡아 경사(京師)로 함송(檻送; 함거에 실어 보냄)했다. ▲인천안목1. 대혜가 이르되 내가 처음 제가(諸家)의 선록을 읽다가 병분절신(幷汾絶信)이란 어구를 보고 깊이 의심이 되었는데 비록 여러 노숙에게 힐문하였으나 다 함호(含糊; 말을 입 안에서 우물우물하고 模糊하게 함)하여 분변하지 못했다. 이미 임제의 말을 열람하다가 곧 절신(絶信) 두 글자를 알았다. 대개 병분(幷汾)은 2주의 이름이다.
●野老謳謌; 제왕세기(帝王世紀). 제요(帝堯)의 시대엔 천하가 태화(太和)하고 백성이 무사했다. 어떤 노인이 땅을 두드리며(擊壤) 노래해 가로되 해가 나오면 일하고 해가 들어가면 쉬며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나니 제력(帝力)이 어찌 나에게 있으리오.
●誵訛; 어지럽게 섞여 그릇되고 잘못된 것(混淆訛誤). 또 효와(誵譌)ㆍ효와(淆訛)ㆍ효와(殽訛)ㆍ오와(聱訛)ㆍ효와(肴訛)ㆍ요와(譊訛)ㆍ효와(詨訛)로 지음. 종용록음의(從容錄音義)에 이르되 효와(誵訛) 불근(不謹; 삼가지 않음)이다. 동(同) 사략(事略)에 이르되 언사(言辭)가 평이하지 아니한 모양이다.
●蟾桂; 달 속의 단계(丹桂). 전설에 달 속에는 두꺼비가 있다 함. 고로 섬(蟾; 두꺼비)을 달의 대칭(代稱)으로 삼음.
●婆娑; 1. 반선(盤旋; 꾸불꾸불하게 빙빙 돎)하고 아울러 무동(舞動)하는 양자(樣子)를 형용. 2. 지엽(枝葉)이 분피(紛披; 흩어져 어지러움)하는 양자.
僧問 如何是賓中賓 師曰 倚門傍戶猶如醉 出言吐氣不慚惶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口念彌陀雙拄杖 目瞽瞳人不出頭 曰 如何是主中賓 師曰 高提祖印當機用 利物應知語帶悲 曰 如何是主中主 師曰 橫按鏌鎁全正令 太平寰宇斬癡頑 曰 旣是太平寰宇 爲甚麽却斬癡頑 師曰 不許夜行剛把火 直須當道與人看
●賓中賓; 濟宗四賓主之一 五家宗旨纂要上濟宗四賓主 賓中賓 克符云 倚門傍戶猶如醉 出言吐氣不慚惶 此是學人無鼻孔也
●賓中主; 濟宗四賓主之一 五家宗旨纂要上濟宗四賓主 賓中主 汾陽云 識得衣中寶 端坐解區分 此是學人有鼻孔也
●瞳人; 瞳孔 也作瞳仁 瞳孔中有看它的人的像 故稱瞳孔爲瞳人
●主中賓; 濟宗四賓主之一 五家宗旨纂要上濟宗四賓主 主中賓 磐山云 不解當風提祖印 臨機應物自乖張 此是師家無鼻孔也
●主中主; 臨濟義玄所創四賓主之一 賓 指學人徒弟 主 指師家 主中主 謂師家接引學人時 立於其本分之立場 展開獨立活潑不拘常格之方法 故禪林有師家有鼻孔之稱 反之 若師家一心欲接得學人 然不善於破除學人之執著 以令其返回本分立場 則稱主中賓 對此類情形 則有師家無鼻孔之稱 [五家宗旨纂要上] ▲五家宗旨纂要上 主中主 克符云 橫按鏌鎁全正令 太平寰宇斬癡頑 問 旣是太平寰宇 爲甚却斬癡頑 符云 不許夜行剛把火 直須當道與人看 風穴云 磨礲三尺劍 待斬不平人 此是師家有鼻孔也
승문(僧問) 무엇이 이 빈중빈(賓中賓)입니까. 사왈 의문방호(倚門傍戶; 門戶에 기댐. 傍은 靠)함이 마치 취(醉)한 것과 같고 출언토기(出言吐氣)하면서 참황(慚惶)하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입으론 미타(彌陀)를 외우고 쌍주장(雙拄杖; 저본에 隻拄杖으로 지었음)이니 눈먼 동인(瞳人)이 출두하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조인(祖印)을 높이 들어 기용(機用)에 당하나니 사람(物)을 이롭게 하매 응당 말에 자비를 띤 줄 알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막야(鏌鎁; 막야검)를 가로 어루만지며 정령(正令)을 바르게 해 태평의 환우(寰宇; 천하)에 치완(癡頑)을 베리라. 가로되 이미 이 태평의 환우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치완을 벱니까. 사왈 야행에 굳세게 햇불을 잡음을 허락하지 않나니 바로 모름지기 당도(當道)에서 사람과 상간(相看)하라.
●賓中賓; 제종(濟宗) 4빈주(賓主)의 하나. 오가종지찬요상 제종사빈주. 빈중빈(賓中賓) 극부가 이르되 문에 기대고 지게문에 기댄 게 마치 취한 것 같고, 말을 내뱉고 기를 토하면서 참황(慚惶)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학인이 콧구멍이 없음임.
四之一 五家宗旨纂要上濟宗四賓主 賓中賓 克符云 倚門傍戶猶如醉 出言吐氣不慚惶 此是學人無鼻孔也
●賓中主; 제종 4빈주의 하나. 오가종지찬요상 제종사빈주. 빈중주(賓中主) 분양이 이르되 의중보(衣中寶)를 알면 단좌(端坐)하여 구분할 줄 안다. 이것은 이 학인이 콧구멍이 있음임.
●瞳人; 동공(瞳孔)임. 또 동인(瞳仁)으로 지음. 동공 중에 타인을 보는 사람의 형상이 있는지라 고로 동공을 일컬어 동인(瞳人)이라 함.
●主中賓; 제종(濟宗) 4빈주의 하나. 오가종지찬요상 제종사빈주. 주중빈(主中賓) 반산이 이르되 당풍(當風)하여 조인(祖印)을 제기할 줄 알지 못하고 임기응물(臨機應物)하며 스스로 괴장(乖張; 어그러지다)한다. 이것은 이 사가(師家)가 콧구멍이 없음임.
●主中主; 임제의현이 창립한 바 4빈주의 하나. 빈(賓)은 학인이나 도제(徒弟)를 가리키고 주(主)는 사가(師家)를 가리킴. 주중주는 이르자면 사가가 학인을 접인할 때 그 본분의 입장에 서서 독립활발(獨立活潑)한, 상격(常格)에 구애되지 않는 방법을 전개함. 고로 선림에서 사가가 콧구멍이 있다는 칭호가 있음. 이와 반대로 만약 사가가 일심으로 학인을 접득(接得)하려고 하나 그러나 학인의 집착을 파제(破除)하여 그로 하여금 본분으로 반회하게 함을 잘하지 못하는 입장을 곧 일컬어 주중빈(主中賓)이니 이런 종류의 정형(情形)에 대해 곧 사가가 콧구멍이 없다는 칭호가 있음 [오가종지찬요상]. ▲오가종지찬요상. 주중주(主中主) 극부(克符)가 이르되 막야(鏌鎁)를 가로 어루만지며 정령(正令)을 바르게 해 태평의 환우(寰宇)에 치완(癡頑)을 베리라. 묻되 이미 이 태평의 환우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치완을 베는가. 극부가 이르되 야행에 굳세게 햇불을 잡음을 허락하지 않나니 바로 모름지기 당도(當道)에서 사람과 상간(相看)하라. 풍혈이 이르되 3척의 검을 마롱(磨礲; 갈다)하여 불평인(不平人)을 기다렸다가 벤다. 이것이 이 사가가 콧구멍이 있음임.
定州善崔禪師
州將王令公於衙署張座 請師說法 師陞座 拈拄杖曰 出來也打 不出來也打 僧出曰 崔禪聻 師擲下拄杖曰 久立令公 伏惟珍重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定州瓷器似鍾鳴 曰 學人不會意旨如何 師曰 口口分明沒喎斜
●久立; 禪師上堂說法結束時 對大衆說的禮貌語 含有安慰的意思
●喎斜; 歪斜不正
정주(定州) 선최선사(善崔禪師)
주장(州將) 왕영공(王令公)이 아서(衙署; 官署)에 법좌(法座)를 벌이고 스님의 설법을 청했다. 스님이 승좌(陞座)하여 주장자를 집어 가로되 나와도 때리고 나오지 않아도 때린다. 중이 나와 가로되 최선(崔禪)은(聻). 스님이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리고 가로되 구립(久立)했습니다, 영공(令公), 복유(伏惟)컨대 진중(珍重)하십시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정주(定州)의 자기(瓷器)는 종이 우는 것과 같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오니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구구(口口; 言言)가 분명하여 와사(喎斜)가 없다.
●久立; 선사가 상당하여 설법을 결속할 때 대중을 상대해 설하는 예모(禮貌)의 말이니 안위의 의사를 함유함.
●喎斜; 왜사(歪斜; 비뚤다)하여 바르지 않음.
鎭州萬壽和尙
僧問 如何是迦葉上行衣 師曰 鶴飛千點雪 雲鎻萬重山 問 如何是丈六金身 師曰 袖頭打領 腋下剜襟 曰 學人不會 師曰 不會請人裁 師訪寶壽 壽坐不起 師展坐具 壽下禪牀 師却坐 壽驟入方丈 閉却門 知事見師坐不起曰 請和尙庫下喫茶 師乃歸院 翌日 寶壽來復謁 師踞禪牀 壽展坐具 師亦下禪牀 壽却坐 師歸方丈閉却門 壽入侍者寮 取灰圍却方丈門 便]歸去 師遂開門見曰 我不恁麽 他却恁麽
●袖頭打領 腋下剜襟; 方語尋常剪裁 得裁衣之法者 袖幅之中打出領 而於腋下斜裁出襟也 裁長補短得其妙也 [碧巖錄第四十三則不二鈔] ◆打領; 縫製衣領
진주(鎭州) 만수화상(萬壽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가섭의 상행의(上行衣)입니까. 사왈 학이 나니(飛) 천점(千點)의 눈이며 구름이 만 겹의 산을 에워쌌다. 묻되 무엇이 이 장륙금신(丈六金身)입니까. 사왈 수두에 타령(袖頭打領)하고 액하에 완금(腋下剜襟)했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알지 못하거든 사람을 청해 재단(裁斷; 裁)하라. 스님이 보수(寶壽)를 방문했다. 보수가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스님이 좌구를 폈다. 보수가 선상에서 내려왔다. 스님이 도리어 앉았다. 보수가 빠르게(驟) 방장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지사(知事)가 스님이 앉아 일어나지 않음을 보고 가로되 청컨대 화상은 고하(庫下)에서 끽다(喫茶)하십시오. 스님이 이에 귀원(歸院)했다. 익일(翌日) 보수가 와서 다시 예알(禮謁)했다. 스님이 선상에 기대었다(踞). 보수가 좌구를 폈다. 스님도 또한 선상에서 내려왔다. 보수가 도리어 앉았다. 스님이 방장으로 돌아가 문을 닫아버렸다. 보수가 시자료(侍者寮)에 들어가 재를 취해 방장문을 둘러버리고(圍却) 바로 돌아갔다. 스님이 드디어 개문(開門)하여 보고 가로되 나는 이러하지 않았거늘 그는 도리어 이러했다.
●袖頭打領 腋下剜襟; 방어(方語) 심상(尋常)에 전재(剪裁; 마름질함)하여 옷을 재단하는 법을 얻는 것. 소매의 가장자리(幅) 중에 옷깃(領)을 내고 겨드랑이 아래 비스듬히 앞섶(襟)을 마름질해 내는 것이니 긴 것을 재단하여 짧음을 보충하여 그 묘를 얻음임 [벽암록제43칙불이초]. ◆打領; 옷깃을 봉제(縫製)함.
幽州譚空和尙
鎭州牧有姑爲尼 行脚回 欲開堂爲人 牧令師勘過 師問曰 見說汝欲開堂爲人 是否 尼曰 是 師曰 尼是五障之身 汝作麽生爲人 尼曰 龍女八歲 南方無垢世界成等正覺又作麽生 師曰 龍女有十八變 你試一變看 尼曰 設使變得 也祇是箇野狐精 師便打 牧聞擧乃曰 和尙棒折那 僧問 德山棒 臨濟喝 未審那箇最親 師曰 已前在衆裏 老僧也曾商量來 僧便喝 師曰 却是汝會 僧曰 錯 師便打
●五障; 法華經四提婆達多品 又女人身猶有五障 一者不得作梵天王 二者帝釋 三者魔王 四者轉輪聖王 五者佛身
유주(幽州) 담공화상(譚空和尙)
진주목(鎭州牧)에게 고모가 있었는데 니(尼)가 되었다. 행각(行脚)하고 돌아와 개당(開堂)하여 사람을 위하려고 하자 목사(牧司; 牧)가 스님으로 하여금 감과(勘過; 過는 助字)하게 했다. 스님이 물어 가로되 말함을 보건대 네가 개당하여 사람을 위하려고 한다 하니 그런가. 니왈(尼曰) 그렇습니다. 사왈 니(尼)는 이 오장(五障)의 몸이거늘 네가 어떻게 사람을 위할 것인가. 니왈(尼曰) 용녀(龍女)가 여덟 살에 남방의 무구세계(無垢世界)에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룸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용녀는 십팔변(十八變)이 있었으니 네가 시험 삼아 일변(一變)하여 보아라. 니왈(尼曰) 설사(設使) 변함을 얻더라도 또 다만 이것(是箇)은 야호정(野狐精; 들여우 精靈)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목사가 거(擧)를 듣고 이에 가로되 화상의 방(棒)이 부러졌습니까. 승문(僧問) 덕산방(德山棒)과 임제할(臨濟喝)은 미심하오니 어느 것(那箇)이 가장 친합니까. 사왈 이전(已前)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 노승도 일찍이 상량(商量)하여 왔다. 중이 바로 할(喝)했다. 사왈 도리어 이 네가 알았다. 승왈(僧曰) 틀렸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五障; 법화경4 제바달다품. 또 여인의 몸은 오히려 5장(障)이 있다. 1자는 범천왕이 됨을 얻지 못한다. 2는 제석이며 3자는 마왕이며 4자는 전륜성왕이며 5자는 불신(佛身)이다.
上堂 衆集 有僧出曰 擬問不問時如何 師曰 嗄 僧便喝 師曰 㘞 僧又喝 師拈拄杖 僧曰 瞎 師拋下拄杖曰 今日失利 僧曰 草賊大敗 便歸衆 師以手向空點一點曰 大衆 還有人辯得麽 若有辯得者 出來對衆道看 師良久曰 頂門上眼 也鑒不破 便下座 寶壽和尙問 除却中上二根人來時 師兄作麽生 師曰 汝適來擧早錯也 壽曰 師兄也不得無過 師曰 汝却與我作師兄 壽側掌曰 這老賊
상당(上堂) 대중이 모였다.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물으려 하다가 묻지 않을 시 어떻습니까. 사왈 사(嗄). 중이 바로 할(喝)했다. 사왈 화(㘞). 중이 또 할했다. 스님이 주장자를 집었다. 승왈(僧曰) 눈멀었습니다(瞎). 스님이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리고 가로되 금일 실리(失利)했다. 승왈(僧曰) 초적(草賊)이 대패(大敗)했습니다 하고 바로 대중으로 돌아갔다. 스님이 손으로써 허공을 향해 일점(一點)을 점 찍고 가로되 대중이여 도리어 변득(辯得; 分辨함을 얻다)할 사람이 있느냐. 만약 변득할 자가 있다면 나와서 대중(對衆)하여 말해 보아라.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정문상(頂門上)의 눈일지라도 또한 감별(鑒別; 鑒)하여 깨뜨리지 못한다. 바로 하좌했다. 보수화상(寶壽和尙)이 묻되 중상(中上) 2근(根)의 사람을 제각(除却)하고 올 때 사형은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아까 든 것은 벌써 틀렸다. 수왈(壽曰) 사형도 허물 없음을 얻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도리어 나를 위해(與) 사형을 지어라. 보수가 측장(側掌)하고 가로되 이 노적(老賊)아.
襄州歷村和尙
僧問 如何是觀其音聲而得解脫 師將火筯敲柴曰 汝還聞麽 曰 聞 師曰 誰不解脫 師煎茶次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擧起茶匙 僧曰 莫祇這便當否 師擲向火中
●茶匙; 調製茶飮用的小匙
양주(襄州) 역촌화상(歷村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그 음성을 보면 해탈을 얻음입니까. 스님이 화저(火筯)를 가지고 섶을 두드리고 가로되 네가 도리어 듣느냐. 가로되 듣습니다. 사왈(師曰) 누가 해탈하지 못했느냐. 스님이 전다(煎茶)하던 차에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다시(茶匙)를 들어 일으켰다. 승왈(僧曰) 다만 이것이(這) 바로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스님이 불 속을 향해 던졌다.
●茶匙; 조제(調製)한 차를 마시는 데 쓰는 작은 숟가락.
滄州米倉和尙
州牧請師與寶壽入廳供養 令人傳語 請二長老譚論佛法 壽曰 請師兄答話 師便喝 壽曰 某甲話也未問 喝作麽 師曰 猶嫌少在 壽却與一喝
●滄州; 今河北省滄州市 地處河北省東南 東臨渤海 北靠天津 與山東半島及遼東半島隔海相望 [百度百科]
창주(滄州) 미창화상(米倉和尙)
주목(州牧)이 스님과 보수(寶壽)를 청해 입청(入廳)하여 공양하려고 사람을 시켜 전어(傳語)하되 2장로(長老)에게 불법을 담론(譚論)하기를 청합니다. 수왈(壽曰) 사형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수왈(壽曰) 모갑이 화(話)도 묻지 않았는데 할(喝)해 무엇합니까. 사왈(師曰) 오히려 흠소(欠少)하여 있다. 보수가 도리어 1할(喝)을 주었다.
●滄州; 지금의 하북성 창주시니 땅이 하북성 동남에 처했고 동쪽으로는 발해에 임했고 북쪽은 천진에 기대었음.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격해(隔海)하여 상망(相望)함 [백도백과].
新羅國智異山和尙
一日示衆曰 冬不寒臘後看 便下座
●冬不寒臘後看; 原爲氣候諺語 冬天到底冷還足不冷 要到臘月之後 始知寒冷
신라국(新羅國) 지리산(智異山) 화상
어느 날 시중해 가로되 겨울에 춥지 않거든 납후에 보아라(冬不寒臘後看). 바로 하좌했다.
●冬不寒臘後看; 원래는 기후의 언어(諺語; 속담)가 됨. 겨울철은 도저히 한랭하지만 도리어 족히 한랭하지 않다면 요컨대 납월 후에 이르러야 비로소 한랭을 안다 함임.
常州善權山徹禪師
僧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冬寒夏熱 曰 此意如何 師曰 炎天宜散袒 冬後更深藏
●散袒; 逍遙自在
상주(常州) 선권산(善權山) 철선사(徹禪師)
승문(僧問)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가로되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염천(炎天)엔 의당 산단(散袒)하고 동후(冬後)엔 다시 심장(深藏)한다.
●散袒; 소요(逍遙)하며 자재함.
金沙和尙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聽 曰 恁麽則大衆側聆 師曰 十萬八千
●側聆; 側耳而聽
금사화상(金沙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들어라(聽).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측령(側聆)할 것입니다. 사왈 십만팔천(十萬八千)이다.
●側聆; 귀를 기울여 들음.
齊聳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老僧竝不知 曰 和尙是大善知識 爲甚麽不知 師曰 老僧不曾接下機 問 如何是道 師曰 往來無障礙 復曰 忽遇大海 作麽生過 僧擬議 師便打
제용선사(齊聳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노승은 모두(竝) 알지 못한다. 가로되 화상은 이 대선지식이거늘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사왈 노승은 일찍이 하기(下機)를 접인(接引)하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왕래하매 장애가 없다. 다시 가로되 홀연히 대해(大海)를 만나면 어떻게 지나가느냐.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雲山和尙
有僧從西京來 師問 還將得西京主人書來否 曰 不敢妄通消息 師曰 作家師僧 天然有在 曰 殘羹餿飯誰喫 師曰 獨有闍黎不甘喫 其僧乃作吐勢 師喚侍者曰 扶出這病僧著 僧便出去 師見僧來 便作起勢 僧便出去 師曰 得恁麽靈利 僧便喝曰 作這箇眼目 承嗣臨濟 也太屈哉 師曰 且望闍黎善傳 僧回首 師喝曰 作這箇眼目 錯判諸方名言 隨後便打
운산화상(雲山和尙)
어떤 중이 서경(西京)으로 좇아왔다. 스님이 묻되 도리어 서경 주인의 서(書; 서신)를 기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감히 소식을 허망하게 통보(通報)하지 않습니다. 사왈(師曰) 작가사승(作家師僧)이 천연(天然)으로 있구나. 가로되 잔갱수반(殘羹餿飯; 남은 국과 쉰 밥)을 누가 먹겠습니까. 사왈 유독 사리(闍黎)가 있어 달게 먹지 않는다. 그 중이 이에 토하는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시자를 불러 가로되 이 병승(病僧)을 부축해 내보내어라(扶出). 중이 바로 나갔다(出去). 스님이 중이 오는 것을 보고 바로 일어나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바로 나갔다. 사왈 이렇게 영리(靈利)함을 얻느냐. 중이 바로 할(喝)하고 가로되 이런(這箇) 안목을 지으면서 임제를 승사(承嗣)했다니 또한 너무(太) 왕굴(枉屈; 屈)하구나. 사왈 다만(且) 바라건대(望) 사리(闍黎)가 잘 전傳)하거라. 중이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할(喝)하고 가로되 이런 안목을 지으면서 제방의 명언(名言; 名字와 언어)을 착판(錯判)하느냐. 뒤따라 바로 때렸다.
虎谿庵主
僧問 庵主在這裏多少年也 師曰 祗見冬凋夏長 年代總不記得 曰 大好不記得 師曰 汝道我在這裏得多少年也 曰 冬凋夏長聻 師曰 閙市裏虎 僧到相看 師不顧 僧曰 知道庵主有此機鋒 師鳴指一下 僧曰 是何宗旨 師便打 僧曰 知道今日落人便宜 師曰 猶要棒喫在 有僧纔入門 師便喝 僧默然 師便打 僧却喝 師曰 好箇草賊 有僧到 近前曰 不審庵主 師曰 阿誰 僧便喝 師曰 得恁麽無賓主 曰 猶要第二喝在 師便喝 有僧問 和尙何處人事 師曰 隴西人 曰 承聞隴西出鸚鵡 是否 師曰 是 曰 和尙莫不是否 師便作鸚鵡聲 僧曰 好箇鸚鵡 師便打
호계암주(虎谿庵主)
승문(僧問) 암주는 이 속에 있은 지 다소(多少)의 해입니까. 사왈 다만(祗) 겨울에 시들고 여름에 자람을 보나니 연대(年代)를 모두(總) 기득(記得)하지 못한다. 가로되 대호(大好) 기득하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말하라, 내가 이 속에 있은 지 다소의 해를 지났느냐(得). 가로되 겨울에 시들고 여름에 자람은(冬凋夏長聻). 사왈 요시(閙市) 속의 범이구나. 중이 이르러 상간(相看)했다. 스님이 돌아보지 않았다. 승왈(僧曰) 암주가 이 기봉(機鋒)이 있다고 말할 줄 압니다. 스님이 한 번(一下) 명지(鳴指)했다. 승왈(僧曰) 이것이 무슨 종지(宗旨)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 금일 타인의 편의(便宜)에 떨어졌다고(落) 말할 줄 압니다. 사왈(師曰) 오히려 방끽(棒喫; 棒을 먹다)을 요하느냐. 어떤 중이 겨우 입문(入門)하자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중이 묵연했다. 스님이 바로 때리자 중이 도리어 할(喝)했다. 사왈 호개(好箇)의 초적(草賊)이로구나. 어떤 중이 이르러 근전(近前)하며 가로되 불심(不審)입니다, 암주(庵主)님. 사왈 누구(阿誰)인가. 중이 바로 할(喝)했다. 사왈 이렇게 빈주(賓主) 없음을 얻는가. 가로되 오히려 둘째의 할을 요합니까. 스님이 바로 할했다.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어느 곳 인사(人事)입니까. 사왈 농서(隴西) 사람이다. 가로되 승문(承聞)하건대 농서에 앵무(鸚鵡)가 나온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사왈 그렇다. 가로되 화상이 이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스님이 바로 앵무 소리를 지었다. 승왈(僧曰) 호개(好箇)의 앵무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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