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20 도안선사(道顔禪師)-무구거사(無垢居士) 장구성(張九成)

태화당 2025. 10. 8. 09:32

江州東林卍庵道顔禪師

潼川人 族鮮于氏 久參圓悟 微有省發 洎悟還蜀 囑依妙喜 仍以書致喜曰 顔用彩繪已畢 但欠點眼耳 他日嗣其後 未可量也 喜居雲門及洋嶼 師皆在焉 朝夕質疑 方大悟 住後 上堂 一葉落 天下秋 一塵起 大地收 鳥窠吹布毛 便有人悟去 今時學者 爲甚麽却不識自己 良久曰 莫錯怪人好 上堂 欲識諸佛心 但向衆生心行中識取 欲識常住不凋性 但向萬物遷變處會取 還識得麽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上堂 諸人知處 良遂總知 良遂知處 諸人不知 作麽生是良遂知處 乃曰 鸕鷀語鶴 上堂 仲冬嚴寒 三界無安 富者快樂 貧者饑寒 不識玄旨 錯認定盤 何也 牛頭安尾上 北斗面南看 上堂 一滴滴水 一滴滴凍 天寒人寒 風動幡動 雲門扇子 𨁝跳上三十三天 築著帝釋鼻孔 東海鯉魚 打一棒雨似盆傾 不出諸人十二時中尋常受用

 

강주(江州) 동림(東林) 만암(卍庵) 도안선사(道顔禪師)

동천(潼川) 사람이며 족()은 선우씨(鮮于氏). 오래 원오(圓悟)를 참()해 조금() 성발(省發; 領會)함이 있었다. 원오가 환촉(還蜀)함에 이르러() 묘희(妙喜)에게 의지하라고 부촉했다. 인하여() 글을 묘희에게 이르게() 하여 가로되 도안(道顔)은 채회(彩繪)를 씀()은 이미 마쳤고() 단지 점안(點眼)이 모자랄() 뿐이다. 타일(他日)에 기후(其後)를 이음()은 가히 헤아리지 못한다. 묘희가 운문(雲門) 및 양서(洋嶼)에 거주하매 스님이 모두 있으면서 조석(朝夕)으로 질의(質疑)했고 비로소() 대오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일엽(一葉)이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이며 일진(一塵)이 일어나면 대지를 거둔다. 조과(鳥窠)가 포모(布毛)를 불매() 바로 어떤 사람이 오거(悟去)했거늘 금시의 학자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자기를 알지 못하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사람을 잘못 괴이히 여기지 말아야 좋다. 상당(上堂) 제불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단지 중생의 심행(心行) 가운데를 향해 식취(識取)하고 상주(常住)하여 시들지() 않는 성()을 알고 싶다면 단지 만물이 천변(遷變)하는 곳을 향해 회취(會取)하라. 도리어 식득(識得)하느냐, 무간업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제인이 아는 곳은 양수(良遂)가 모두 알지만 양수가 아는 곳은 제인이 알지 못한다. 무엇이(作麽生) 이 양수가 아는 곳인가. 이에 가로되 노자(鸕鷀; 가마우지)가 학에게 말한다(). 상당(上堂) 중동(仲冬)은 엄한(嚴寒)하고/ 3()는 무안(無安)하다/ 부자는 쾌락하고/ 빈자는 기한(饑寒)한다/ 현지(玄旨)를 알지 못하면/ 정반(定盤; 定盤星)을 착인(錯認)한다. 왜냐, 우두(牛頭)를 미상(尾上)에 안치하고 북두를 면남(面南)해서 본다. 상당(上堂) 일적(一滴)의 적수(滴水)가 일적(一滴)의 적동(滴凍; 한 방울의 얼음)이다. 날씨가 추우니(天寒) 사람이 춥고 바람이 동()하니 깃발도 동한다. 운문(雲門)의 부채(扇子)가 펄쩍 뛰어 삼심삼천(三十三天)에 올라 제석(帝釋)의 비공(鼻孔)을 축착(築著; 치다)하고 동해의 이어(鯉魚)를 한 방 때리매 비가 동이를 기운 듯하다. 제인이 12시 중 심상(尋常)에 수용(受用)함을 벗어나지 않는다.

 

上堂云 圓通門戶 八字打開 若是從門入得 不堪共語 須是入得無門之門 方可坐登堂奧 所以道 過去諸如來 斯門已成就 現在諸菩薩 今各入圓明 未來參學人 當依如是法 從上諸聖 幸有如此廣大門風 不能繼紹 甘自鄙棄 穿窬墻壁 好不丈夫 敢問大衆 無門之門作麽生入 良久云 非唯觀世音 我亦從中證 上堂 元宵已過 化主出門 六羣比丘 各從其類 此衆無復枝葉 純有貞實 如是增上慢人 退亦佳矣 麒麟不爲瑞 鸑鷟不爲榮 麥秀兩岐 禾登九穗 總不消得 但願官中無事 林下棲禪 水牯牛飽臥斜陽 擔板漢淸貧長樂 粥足飯足 俯仰隨時 箸籠不亂攙匙 老鼠不咬甑箄 山家活計 淡薄長情 不敬功德天 誰嫌黑暗女 有智主人 二俱不受 良久曰 君子愛財 取之以道

六羣比丘; 三藏法數二十 六群比丘[出十住毘婆沙論] 謂此等比丘於佛世時 聚集成衆 作諸非威儀事 群出隊入 故名六群比丘 一闡陀 又云闡那 卽車匿 車匿又云闡釋迦(無翻) 是釋種也 二迦留陀夷 梵語迦留陀夷 華言麤黑 三三文陀達多 又云難陀 四摩醯沙達多 又云跋難陀 五馬師 又云馬宿 六滿宿

貞實; 其心誠實而無諂曲 堪受法者

麥秀兩岐; 禪林疏語考證一 後漢張堪傳曰 堪爲漁陽太守 勸民農桑以致殷富 民歌曰 桑無附枝 麥秀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

九穗; 象徵豐收和繁榮

甑箄; 甑底的竹箄

 

상당(上堂)하여 이르되 원통문호(圓通門戶)를 팔자(八字)로 타개(打開)했거니와 만약 이, 문으로 좇아 들어옴을 얻으면 차마 함께 말하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이 무문지문(無門之門)에 듦()을 얻어야 바야흐로 가히 당오(堂奧)에 좌등(坐登)한다. 소이로 말하되 과거 제여래가 사문(斯門)을 이미 성취했고 현재 제보살이 지금 각기 원명(圓明)에 들고 미래 참학인(參學人)이 마땅히 이와 같은 법에 의한다.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다행히 이와 같은 광대한 문풍(門風)이 있거늘 능히 계소(繼紹)하지 못하고 달게 스스로 비기(鄙棄; 厭惡. 輕視)하고 장벽(墻壁)을 천유(穿窬; 뚫다)하니 호부장부(好不丈夫). 감히 대중에게 묻노니 무문지문(無門之門)을 어떻게 들어가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관세음 뿐만이 아니라 나 또한 가운데로 좇아 증()한다. 상당(上堂) 원소(元宵; 정월 15)는 이미 지났고 화주(化主)가 출문(出門)했나니 육군비구(六羣比丘)가 각자 그 무리()를 좇는다. 차중(此衆)은 다시 지엽(枝葉)이 없고 순전히 정실(貞實)만 있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증상만인(增上慢人)은 물러나도 또한 아름답다(佳矣). 기린(麒麟)이 상서(祥瑞; )가 되지 않고 악작(鸑鷟)이 영화(榮華; )가 되지 않나니 보리는 빼어나 두 갈래(麥秀兩岐)며 벼는 여물어 구수(九穗)일지라도 모두 소득(消得)하지 못한다. 단지 관중(官中)에 무사(無事)하고 임하(林下)에 서선(棲禪; 쉬면서 참선함)하고 수고우(水牯牛)는 배부르게 사양(斜陽)에 누웠고 담판한(擔板漢)은 청빈(淸貧)하게 장락(長樂)하고 죽족반족(粥足飯足)하여 부앙(俯仰)하며 수시(隨時)하기를 원한다. 젓가락 상자(箸籠)엔 숟가락을 어지럽게 섞지(亂攙) 말아야 하나니 늙은 쥐는 증폐(甑箄)를 물지 않는다. 산가(山家)의 활계(活計)가 담박(淡薄)하고 장정(長情; 感情長久)하나니 공덕천(功德天)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누가 흑암녀(黑暗女)를 싫어하겠는가. 유지주인(有智主人)은 둘 다 받지 않는다. 양구하고 가로되 군자도 애재(愛財)하지만 도로써 그것을 취한다.

六羣比丘; 삼장법수20. 육군비구(六群比丘) [출십주비바사론] 이르자면 이런 등의 비구가 불세(佛世)의 시대에 취집(聚集)하여 무리를 이루어 여러 비위의사(非威儀事)를 지었는데 군출대입(群出隊入; 무리지어 출입함)한지라 고로 이름이 육군비구(六群比丘). 1은 천타(闡陀; chanda)며 또 이르되 천나(闡那)니 곧 차닉(車匿)이다. 차닉은 또 이르되 천석가(闡釋迦; 無翻)니 이는 석종(釋種)이다. 2는 가루다이(迦留陀夷; kāḷudāyī)니 범어로 가루다이는 화언(華言)으론 추흑(麤黑)이다. 3은 삼문다달다(三文陀達多)니 또 이르되 난타(難陀; Nanda). 4는 마혜사달다(摩醯沙達多)니 또 이르되 발난타(跋難陀; Upanan da). 5는 마사(馬師; Aśvaka)니 또 이르되 마수(馬宿). 6은 만수(滿宿; Punarvasu).

貞實; 그 마음이 성실해 첨곡(諂曲)이 없으며 수법(受法)을 감내할 자.

麥秀兩岐; 선림소어고증1. 후한 장감전(張堪傳)에 가로되 장감이 어양태수가 되어 백성에게 농상(農桑)을 권해 은부(殷富; 풍성하고 넉넉함)에 이르게 하였다. 백성이 노래해 가로되 뽕은 곁가지가 없고/ 보리는 빼어나 두 갈래다(麥秀兩岐)/ 장군(張君)의 위정(爲政)/ 즐거워서 가히 버티지() 못한다.

九穗; 풍수(豐收)와 번영을 상징.

甑箄; 시루 밑의 죽폐(竹箄; 는 시루 깔개).

 

上堂 去年寒食後 今年寒食前 日日是好日 不是正中偏 上堂 客舍久留連 家鄕夕照邊 簷懸三月雨 水沒兩湖蓮 鑊漏燒燈盞 柴生滿竈煙 已忘南北念 入望盡平川 上堂 旃檀林無雜樹 鬱密深沉師子住 所以旃檀叢林 旃檀圍繞 荊棘叢林 荊棘圍繞 一人爲主 兩人爲伴 成就萬億國土 士農工商 若夜叉 若羅刹 見行魔業 優哉游哉 聊以卒歲 僧問 香嚴上樹話 意旨如何 師曰 描不成 畫不就 曰 李陵雖好手 爭奈陷番何 師曰 甚麽處去來 問 如何是佛 師曰 汝是元固 僧近前曰 喏喏 師曰 裩無襠 袴無口 問 如何是佛 師曰 誌公和尙 曰 學人問佛 何故答誌公和尙 師曰 誌公不是閑和尙 曰 如何是法 師曰 黃絹幼婦外孫韲臼 曰 是甚麽章句 師曰 絕妙好辭 曰 如何是僧 師曰 釣魚船上謝三郞 曰 何不直說 師曰 玄沙和尙 曰 三寶已蒙師指示 向上宗乘事若何 師曰 王喬詐仙得仙 僧呵呵大笑 師乃叩齒

優哉游哉; 意爲悠閑的樣子 指生活悠閑自在

卒歲; 度過年終 度過歲月

陷番; 番 支那舊時對邊境各少數民族和外國的稱呼 如番邦西番

黃絹幼婦外孫韲臼; 肇論疏上 漢時會稽人曾肝 能撫節安歌 度浙江溺死 肝女曹娥 年十二 求肝屍不得 自投浙江而死 經宿抱父屍而出 度尙爲作碑 置於會稽上虞山 漢末議郞蔡邕 夜至碑所求火不得 以手摸之而讀 歎其能文 乃鎸碑背 作八字云 黃絹幼婦外孫韲臼 後曹操共揚脩 讀此語 問修解不 答云解 操令修勿語 待吾思之 行三十里方解 乃嗟曰 有智無智校三十里 後乃殺修 操諸子皆救 操曰 此人中之龍 恐非汝力之所駕馭 遂殺之 黃絹者 絲邊著色 此是絶字 幼婦少女也 女邊著少 妙字也 外孫女子也 女邊著子 此是好字也 韲臼者受辛也 受邊著辛 此是辭字也 今謂絶妙好辭 竭盡此論之中也

釣魚船上謝三郞; 指玄沙師備 師福州閩縣人 姓謝氏 謝家三男之意而稱謝三郞 幼好垂釣 泛小艇於南臺江狎諸漁者 玄沙廣錄中 問 如何是三世諸佛一時現前 師云 我是釣魚船上謝三郞

 

지난해 한식(寒食) 후와/ 금년 한식 전에/ 날마다 이 호일(好日)이며/ 이 정중편(正中偏)이 아니다. 상당(上堂) 객사(客舍)에 구류(久留)하며 연이었고()/ 가향(家鄕)이 석조(夕照; 夕陽) 가다/ 처마엔 3월의 비가 매달렸고/ 물엔 양호(兩湖)의 연()이 잠기었다()/ 솥이 새면서 등잔을 태우고()/ 섶은 만조(滿竈)의 연기를 낸다()/ 이미 남북의 사념을 잊고/ 입망(入望)하매 평천(平川)을 다했다. 상당(上堂) 전단림(旃檀林)엔 잡수(雜樹)가 없나니 울밀(鬱密)하고 심침(深沉)하여 사자가 머문다. 소이로 천단총림(旃檀叢林)엔 전단이 위요()圍繞하고 형극총림(荊棘叢林)엔 형극이 위요한다. 한 사람은 주()가 되고 두 사람은 반()이 되어 만억국토(萬億國土)를 성취하나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이나 야차나(若夜叉) 라찰이거나(若羅刹) 현행(見行)의 마업(魔業)우재유재(優哉游哉)니 애오라지 졸세(卒歲; 세월을 보냄)하리라. 승문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는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如何). 사왈 묘사함을 이루지 못하고(描不成) 그림을 이루지 못한다(畫不就). 가로되 이릉(李陵)이 비록 호수(好手)지만 함번(陷番)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甚麽處去來).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너는 이 원고(元固)인가. 중이 앞으로 다가가 가로되 낙낙(喏喏; , ). 사왈 (; 잠방이)에 당(; 잠방이. 등거리)이 없고 바지에 입구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불()입니까. 사왈 지공화상(誌公和尙)이다. 가로되 학인이 부처를 물었거늘 무슨 연고로 지공화상이라고 답합니까. 사왈 지공은 이 한화상(閑和尙)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韲臼). 가로되 이 무슨 장구(章句)입니까. 사왈 절묘호사(絕妙好辭). 가로되 무엇이 이 승입니까. 사왈 조어선상사삼랑(釣魚船上謝三郞)이다. 가로되 왜 직설(直說)하지 않습니까. 사왈 현사화상(玄沙和尙)이다. 가로되 삼보(三寶)는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만() 향상종승사(向上宗乘事)는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왕교(王喬)는 사선(詐仙; 神仙假裝)으로 득선(得仙)했다. 중이 하하대소했다. 스님이 이에 이를 두드렸다(叩齒).

優哉游哉; 뜻이 유한(悠閑)의 양자(樣子)가 됨. 생활이 유한하고 자재함을 가리킴.

卒歲; 해를 지내며 마침. 세월을 지냄.

陷番; ()은 지나에서 구시에 변경 각 소수민족과 외국에 대한 칭호니 예컨대() 번방(番邦)ㆍ서번(西番).

黃絹幼婦外孫韲臼; 조론소상(肇論疏上) ()나라 때 회계(會稽) 사람 증간(曾肝)은 능히 절안가(節安歌)를 안무(按撫)했는데 절강(浙江)을 건너다 익사했다. 증간의 딸 조아(曹娥)는 나이가 12이었는데 증간의 시체를 얻지 못해 스스로 절강에 투신해 죽었다. 한 밤을 지나 아버지의 시체를 안고 나왔는데 도상(度尙)이 위해 비()를 만들어 회계(會稽) 상우산(上虞山)에 놓았다. 한말(漢末)에 의랑(議郞) 채옹(蔡邕)이 밤에 비소(碑所)에 이르러 불을 구하지 못해 손으로써 그것을 더듬어 읽었는데 그 능문(能文)에 감탄했다. 이에 비배(碑背)에 새겨 8자를 지었는데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韲臼)였다. 후에 조조(曹操)가 양수(揚脩)와 함께 이 말을 읽었는데 양수에게 묻되 아느냐. 답해 이르되 압니다. 조조가 양수에게 명령해 말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이를 사유함을 기다려라 했다. 30리를 가다가 비로소 알았다. 이에 차탄(嗟歎)하며 가로되 유지무지(有智無智)30리가 어긋난다. 뒤에 양수를 죽이려 하자 조조의 여러 아들들이 다 구제하려 했지만 조조가 가로되 이 사람은 인중(人中)의 용()이다. 너희의 힘으로 부릴 바가 아닌가 염려된다. 드디어 그를 죽였다. 황견(黃絹)이란 것은 사변(絲邊)에 색()을 붙임이니 이는 이 절자(絶字). 유부(幼婦)는 소녀(少女)며 녀변(女邊)에 소()가 붙으니 묘자(妙字). 외손(外孫)은 여자(女子)며 녀변(女邊)에 자()가 붙으니 이는 이 호자(好字). 제구(韲臼)란 것은 수신(受辛)이며 수변(受邊)에 신()이 붙으니 이는 이 사자(辭字). 지금 이르노니 절묘호사(絶妙好辭). 이 논의 가운데를 갈진(竭盡)했다.

釣魚船上謝三郞; 현사사비(玄沙師備)를 가리킴. 스님은 복주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은 사씨(謝氏)였고 사가(謝家) 3남의 뜻으로 사삼랑(謝三郞)이라 호칭했음. 어릴 적에 수조(垂釣)를 좋아해 작은 배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어부)를 친압(親狎)하던 자였음. 현사광록중. 묻되 무엇이 이 삼세제불이 일시에 현전함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나는 이 조어선상사삼랑(釣魚船上謝三郞)이다.

 

福州西禪懶庵鼎需禪師

本郡林氏子 幼擧進士有聲 年二十五 因讀遺敎經 忽曰 幾爲儒冠誤 欲去家 母難之 以親迎在期 師乃絕之曰 夭桃紅杏 一時分付春風 翠竹黃華 此去永爲道伴 竟依保壽樂禪師爲比丘 一錫湖湘 徧參名宿 法無異味 歸里結庵 於羗峯絕頂 不下山者三年 佛心才禪師挽出 首衆於大乘 甞問學者卽心卽佛因緣 時妙喜庵于洋嶼 師之友彌光與師書云 庵主手段 與諸方別 可來少欵如何 師不答 光以計邀師飯 師往赴之 會妙喜爲諸徒入室 師隨喜焉 妙喜擧 僧問馬祖 如何是佛 祖云 卽心是佛 作麽生 師下語 妙喜詬之曰 你見解如此 敢妄爲人師耶 鳴皷普說 訐其平生珍重得力處 排爲邪解 師淚交頤 不敢仰視 默計曰 我之所得 旣爲所排 西來不傳之旨 豈止此耶 遂歸心弟子之列 一日喜問曰 內不放出 外不放入 正恁麽時如何 師擬開口 喜拈竹篦 劈脊連打三下 師於此大悟 厲聲曰 和尙已多了也 喜又打一下 師禮拜 喜笑云 今日方知吾不汝欺也 遂印以偈云 頂門竪亞摩醯眼 肘後斜懸奪命符 瞎却眼卸却符 趙州東壁挂葫蘆 於是聲名喧動叢林

遺敎經; 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 一卷 後秦鳩摩羅什譯 又稱遺敎經 佛遺敎經 收於大正藏第十二冊 內容敘述釋尊在拘尸那羅之沙羅雙樹間入涅槃前最後垂敎之事蹟 禪門尤重此經 與四十二章經 潙山警策 合稱佛祖三經

親迎; 又稱迎娶 舊俗結婚時新郞到女家迎娶新娘

少欵; 稍稍款洽 指交談漸投機

 

복주(福州) 서선(西禪) 나암(懶庵) 정수선사(鼎需禪師)

본군(本郡)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진사(進士)로 거천(擧薦; )되어 명성이 있었다. 나이 25에 유교경(遺敎經)을 읽음으로 인해 홀연히 가로되 거의() 유관(儒冠)으로 잘못될 뻔했다. 집을 떠나려고 하자 모친이 꺼리면서(難之) 친영(親迎)을 기약해 두었다고(在期) 하자 스님이 이에 거절(拒絶; )하며 가로되 요도홍행(夭桃紅杏; 아름다운 도화와 붉은 살구)은 일시에 춘풍에게 분부하고 취죽황화(翠竹黃華)는 여기에서 떠나 길이 도반(道伴)이 될 것입니다. 마침내() 보수락(保壽樂) 선사에게 의지해 비구가 되었다. 한 석장(錫杖; )으로 호상(湖湘)에서 명숙(名宿)을 편참(徧參)했다. 법에 이미(異味)가 없다고 여겨 귀리(歸里)하여 결암(結庵)했으니 강봉(羗峯)의 절정(絕頂)에서 하산(下山)하지 않은 게 3년이었다. 불심재(佛心才; 本才) 선사가 만출(挽出)하였고 대승(大乘)에서 수중(首衆)이었고 일찍이 학자에게 즉심즉불(卽心卽佛)의 인연을 물었다. 당시에 묘희(妙喜)가 양서(洋嶼)에서 암거(庵居; )했다. 스님의 벗인 미광(彌光)이 스님에게 서신을 주어 이르되 암주(庵主)의 수단은 제방과 다르니 가히 와서 소관(少欵)함이 어떻겠는가. 스님이 답하지 않았다. 미광이 계책(計策; )으로써 스님을 불러() 밥을 먹자() 하였다. 스님이 가서 다다랐는데 마침() 묘희가 제도(諸徒)를 위해 입실했고 스님이 수희(隨喜)했다. 묘희가 거()했다. 중이 마조(馬祖)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불()입니까. 조운(祖云)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어떠한가(作麽生). 스님이 하어(下語)하자 묘희가 꾸짖으며() 가로되 너의 견해가 이와 같으면서 감히 허망하게 사람의 스승 노릇을 했느냐. 북을 울리고 보설(普說)하면서 그 평생에 진중(珍重)히 여기는 득력처(得力處)를 들추어내고() 배척(排斥; )하며 사해(邪解)라 했다. 스님이 눈물이 턱에 교차하며 감히 앙시(仰視)하지 못했다. 묵묵히() 계탁(計度; )해 가로되 내가 얻은 바가 이미 배척되는 바가 되었으니 서래(西來)의 부전지지(不傳之旨)가 어찌 여기에 그치겠는가(). 드디어 제자의 대열(隊列)로 귀심(歸心)했다. 어느 날 묘희가 물어 가로되 안으로는 방출(放出)하지 않고 밖으로는 방입(放入)하지 않나니 바로() 이러한 때 어떠한가. 스님이 개구(開口)하려고 하자 묘희가 죽비(竹篦)를 집어() 등에다가(劈脊) 세 번 연타(連打)했다. 스님이 이에서 대오했다. 맹렬한 소리(厲聲)로 가로되 화상, 이미 많았습니다(多了也). 묘희가 또 한 번 때렸다. 스님이 예배했다. 묘희가 웃으며 이르되 금일에야 비로소 내가 너를 속이지 못할 줄 알았다. 드디어 게로써 인가해 이르되 정문(頂門)에 마혜안(摩醯眼)수압(竪亞; 세로로 배치함)하고/ 주후(肘後)에 탈명부(奪命符)를 사현(斜懸; 비스듬히 매달다)했다/ 눈을 멀게 해버리고(瞎却) ()를 내려버려라(卸却)/ 조주(趙州)의 동벽(東壁)에 호로(葫蘆)가 걸렸다(). 이에 성명(聲名)이 총림을 훤동(喧動)했다.

遺敎經;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이니 1. 후진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했음. 또 명칭이 유교경(遺敎經)ㆍ불유교경이니 대정장 제12책에 수록되었음. 내용은 석존이 구시나라(拘尸那羅)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 있으면서 열반에 들기 전 최후에 수교(垂敎)한 사적(事蹟)을 서술했음. 선문에서 더욱 이 경을 중시하며 사십이장경ㆍ위산경책과 합칭하여 불조 3()이라 함.

親迎; 또 명칭이 영취(迎娶)니 구속(舊俗)에 결혼 시 신랑(新郞)이 여가(女家)에 이르러 신랑(新娘)을 영취(迎娶)했음.

少欵; 조금씩 관흡(款洽; 말이 친절하고 정성스러움). 교담(交談)하며 점차 투기(投機)함을 가리킴.

 

住後 上堂曰 句中意 意中句 須彌聳于巨川 句剗意 意剗句 烈士發乎狂矢 任待牙如劍樹 口似血盆 徒逞詞鋒 虛張意氣 所以淨名杜口 早涉繁詞 摩竭掩關 已揚家醜 自餘瓦棺老漢巖頭大師 向羗峯頂上 拏風鼓浪 翫弄神變 脚跟下好與三十 且道過在甚麽處 良久云 機關不是韓光作 莫把胸襟當等閑 至節 上堂云 二十五日已前 羣陰消伏 泥龍閉戶 二十五日已後 一陽來復 鐵樹開華 正當二十五日 塵中醉客 騎驢騎馬 前街後街 遞相慶賀 物外閑人 衲帔蒙頭 圍爐打坐 風蕭蕭 雨蕭蕭 冷湫湫 誰管你張先生 李道士 胡達磨 上堂 懶翁懶中懶 是懶懶說禪 亦不重自己 亦不重先賢 又誰管你地 又誰管你天 物外翛然無箇事 日上三竿猶更眠 上堂 擧 僧問趙州 如何是古人言 州云 諦聽諦聽 師曰 諦聽卽不無 切忌喚鐘作甕 室中問僧 萬法歸一 一歸何處 曰 新羅國裏 師曰 我在靑州作一領布衫 重七斤聻 曰 今日親見趙州 師曰 前頭見 後頭見 僧乃作斫額勢 師曰 上座甚處人 曰 江西 師曰 因甚麽却來這裏納敗缺 僧擬議 師便打

一陽來復; 月令廣義十一月令曰 十一月一陽生 其卦復 復者反也 陽動于下以順上行之義 自十月純坤積體 始成一陽而來復 又自五月姤卦一陰始生 至此七反而一陽來復 [五家正宗贊助桀]

 

주후(住後) 상당해 가로되 구중(句中)의 의()며 의중(意中)의 구()니 수미(須彌)가 거천(巨川)에 솟았다(). ()가 의()를 베고() 의가 구를 베나니 열사(烈士)가 광시(狂矢)를 발사했다. 어금니가 검수(劍樹)와 같고 입이 혈분(血盆)과 같음()에 맡기고 기다리더라도任待) 도연히 사봉(詞鋒)을 자랑함이며 헛되이 의기(意氣)를 베풂()이다. 소이로 정명(淨名)이 두구(杜口)함은 벌써 번사(繁詞)에 건넜고 마갈(摩竭)에서 엄관(掩關)함은 이미 가추(家醜)를 드날렸다. 자여(自餘; 以外. 此外)의 와관노한(瓦棺老漢)이나 암두대사(巖頭大師)가 강봉정상(羗峯頂上)을 향해 바람을 잡고 파도를 두드리며(拏風鼓浪) 신변(神變)을 완롱(翫弄; 戲弄)한다면 각근하(脚跟下)에 좋게 30 주겠다. 차도(且道)하라,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기관(機關)을 이 한광(韓光)이 짓지 않았다면 흉금을 가지고() 등한(等閑)에 당하지 말아라. 지절(至節; 冬至 夏至) 상당해 이르되 25일 이전엔 군음(羣陰)이 소복(消伏)하고 이룡(泥龍)이 폐호(閉戶)하더니 25일 이후는 일양이 내복하여(一陽來復) 철수(鐵樹)가 개화(開華)한다. 바로() 25일에 당해서 진중(塵中)의 취객(醉客)이 기려기마(騎驢騎馬)하고 전가후가(前街後街)에서 체상(遞相; 互相) 경하(慶賀)하고 물외(物外)의 한인(閑人)은 납피(衲帔)를 머리에 덮고(蒙頭) 위로(圍爐)하여 타좌(打坐; 앉다)한다. 바람은 소소(蕭蕭; 바람이나 빗소리 따위가 쓸쓸함)하고 비도 소소(蕭蕭)하고 냉추추(冷湫湫)하거늘 누가 너 장선생(張先生)ㆍ이도사(李道士)ㆍ호달마(胡達磨)에 상관하겠는가. 상당(上堂) 나옹(懶翁; 게으른 늙은이)이 게으른 중에 게으르나니/ 이 게으름으로 선()을 설함에 게으르다/ 또한 자기(自己)를 존중하지 않고/ 또한 선현(先賢)을 존중하지 않는다/ 또 누가 너의 지()에 상관하며/ 또 누가 너의 천()에 상관하겠는가/ 물외(物外)에 소연(翛然)하여 개사(箇事)가 없나니/ 해가 삼간(三竿)에 올랐거늘 아직 다시 잔다. 상당(上堂) ()하다.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무엇이 이 고인의 말입니까. 주운(州云) 체청체청(諦聽諦聽)하라. 사왈 체청(諦聽)은 곧 없지 않으나 종을 일러 독으로 지음(喚鐘作甕)을 절기(切忌)한다. 실중(室中)에서 중에게 묻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가로되 신라국 속입니다. 사왈 내가 청주(靑州)에 있으면서 한 벌의 포삼(布衫)을 지었는데 무게가 7근은(七斤聻). 가로되 금일 조주를 친견했습니다. 사왈 전두(前頭; 전면)에서 보았느냐, 후두(後頭)에서 보았느냐. 중이 이에 작액세(斫額勢)를 지었다. 사왈 상좌는 어느 곳 사람이냐. 가로되 강서(江西)입니다. 사왈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이 속에 와서 패결(敗缺)을 받아들이느냐().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一陽來復; 월령광의 11월령에 가로되 11월에 1()이 생기(生起)한다. 그 괘()는 복()이다. 복이란 것은 반()이다. 양이 아래에서 동하여 위를 따라 행함의 뜻이다. 10월 순곤(純坤)이 적체(積體)함으로부터 비로소 1양을 이루어 내복(來復)한다. 5월 구괘(姤卦) 1()이 처음 생기함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7()하여 1양이 내복한다 [오가정종찬조걸].

 

福州東禪蒙庵思岳禪師

上堂 蛾羊蟻子說一切法 墻壁瓦礫現無邊身 見處旣精明 聞中必透脫 所以雪峯和尙凡見僧來 輥出三箇木毬 如弄雜劇相似 玄沙便作斫牌勢 卑末謾道將來 普賢今日謗古人 千佛出世 不通懺悔 這裏有人謗普賢 定入㧞舌地獄 且道謗與不謗者是誰 心不負人 面無慚色 上堂 達磨來時 此土皆知梵語 及乎去後 西天悉會唐言 若論直指人心 見性成佛 大似羚羊挂角 獵犬尋蹤 一意乖疎 萬言無用 可謂來時他笑我 不知去後我笑他 唐言梵語親分付 自古齋僧怕夜茶 上堂 臘月初 歲云徂 黃河凍已合 深處有嘉魚 活鱍鱍 跳不脫 又不能相煦以濕 相濡以沫 慚愧菩薩摩訶薩 春風幾時來 解此黃河凍 令魚化作龍 直透桃華浪 會卽便會 癡人面前且莫說夢

卑末; 一低級的官吏或職位 二男子謙稱自身

菩薩摩訶薩; 具名菩提薩埵摩訶薩埵 菩提薩埵作道衆生 新譯曰覺有情 摩訶薩埵作大衆生 新譯曰大有情 求道果之衆生 故云道衆生 求道果者通於聲聞緣覺 故爲簡別於彼 更曰大衆生也 又菩薩有中高下之諸位 但爲示地上之菩薩 更曰摩訶薩 [佛地論二 法華義疏一] 妙法蓮華經文句二上 氣類者 卽是菩薩摩訶薩也 若具存 應言菩提薩埵摩訶薩埵 什師嫌煩 略提埵二字

 

복주(福州) 동선(東禪) 몽암(蒙庵) 사악선사(思岳禪師)

상당(上堂) 나방()ㆍ양()ㆍ개미(蟻子)가 일체법을 설하고 장벽(墻壁)과 와력(瓦礫)이 무변신(無邊身)을 나타낸다. 견처(見處)가 이미 정명(精明)하므로 문중(聞中)에 반드시 투탈(透脫)한다. 소이로 설봉화상(雪峯和尙)은 무릇 중이 옴을 보면 세 개의 목구(木毬)를 굴려() 내었으니 마치 잡극(雜劇)을 희롱함과 상사(相似)했고 현사(玄沙)가 바로 작패세(斫牌勢)를 지었다. 비말(卑末)이 도연히() 말해 가져 왔으니 보현(普賢; 思岳)이 금일 고인을 비방했고 천불이 출세하더라도 참회가 통하지 않겠지만 이 속에 어떤 사람이 보현을 비방한다면 꼭() 발설지옥(㧞舌地獄)에 들어갈 것이다. 차도(且道)하라, 비방함과 비방하지 않는 자가 이 누구인가. 마음에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상당(上堂) 달마가 왔을 때 차토(此土)에서 모두 범어(梵語)를 알았고() 간 후에 이르러선(及乎) 서천(西天)에서 모두() 당언(唐言)을 알았다(). 만약 인심을 직지하여 견성하고 성불함을 논하자면 영양(羚羊)이 뿔을 걸매(挂角) 엽견(獵犬)이 발자취를 찾음(尋蹤)과 매우 흡사하나니 일의(一意)가 괴소(乖疎; 疏遠)하면 만언(萬言)이 무용(無用)하다. 가히 이르나니 내시(來時)엔 그가 나를 비웃더니/ 거후(去後)에 내가 그를 비웃는 줄 알지 못한다/ 당언과 범어를 친히 분부하나니/ 자고로 재승(齋僧)하면서 야다(夜茶)를 두려워한다(). 상당(上堂) 납월 초니 해가 갔다고 이른다(歲云徂). 황하가 얼어() 이미 합했고 심처(深處)에 가어(嘉魚)가 있다. 활발발(活鱍鱍)하지만 뛰어도 벗어나지 못한다. 능히 습기로써 서로 따뜻하게(相煦以濕) 하지 못하고 물거품으로써 서로 적시지(相濡以沫) 못한다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에게 참괴(慚愧; 부끄러워하다)해야 한다. 춘풍이 어느 때(幾時)에 와서 이 황하의 얼음을 녹여 물고기로 하여금 변화해 용이 되어 도화랑(桃華浪)을 직투(直透)하게 하겠는가. 알려면() 곧바로 알아야 하나니 치인(癡人)의 면전에서 설몽(說夢)하지 못한다.

卑末; 1. 저급(低級)한 관리 혹 직위. 2. 남자가 자신을 겸칭(謙稱)함임.

菩薩摩訶薩; 갖춘 이름은 보리살타마하살타(菩提薩埵摩訶薩埵; bodhi-sattva mahā-sattva). 보리살타는 도중생(道衆生)으로 지으며 신역엔 가로되 각유정(覺有情). 마하살타는 대중생(大衆生)으로 지으며 신역엔 가로되 대유정(大有情)이니 도과(道果)를 구하는 중생이므로 고로 이르되 도중생이며 도과를 구하는 자는 성문과 연각에도 통하는지라 고로 그들과 간별(簡別)하여 다시 가로되 대중생임. 또 보살은 중고하(中高下)의 제위(諸位)가 있으므로 다만 지상(地上. 十地上)의 보살이 됨을 보이는지라 다시 가로되 마하살임 [불지론2. 법화의소1]. 묘법연화경문구2(妙法蓮華經文句二上). 기류(氣類)란 것은 곧 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다. 만약 갖추어 둔다면 응당 말하되 보리살타마하살타(菩提薩埵摩訶薩埵). 집사(什師; 구마라집)가 번거로움을 싫어해 리타(提埵) 2자를 줄였다.

 

上堂 僧問 如何是初日分 以恒河沙等身布施 師曰 從苗辨地 因語識人 曰 如何是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布施 師曰 築著磕著 曰 如何是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布施 師曰 向下文長 付在來日 復曰 一轉語如天普蓋 似地普擎 一轉語 舌頭不出口 一轉語 且喜沒交涉 要會麽 慚愧世尊 面赤不如語直 大小岳上座 口似磉盤 今日爲這問話僧講經 不覺和注脚一時說破 便下座 上堂 啞却我口 直須要道 塞却你耳 切忌蹉過 昨日有人從天台來 却道泗洲大聖在洪州打坐 十字街頭賣行貨 是甚麽 斷跟草鞋 尖簷席帽

初日分; 金剛經註正訛云 初日分者早晨 中日分者日午 後日分者晚間 日有六時 擧此以該終日耳 金剛經 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 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後日分亦以恒河沙等身布施

口似磉盤; 形容杜口無言之樣子 口重不動以比礎石 磉盤卽柱下石

行貨; 商品也 行 胡郞切 買賣交易的營業處

尖簷席帽; 形似尖簷的席帽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초일분(初日分)에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함입니까. 사왈 묘(; )를 좇아 땅을 분변하고 언어로 인해 사람을 인식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중일분(中日分)에 다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함입니까. 사왈 축착개착(築著磕著)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후일분(後日分)에 또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함입니까. 사왈 향하(向下)하면 글이 길어지니 내일에 분부(分付)하여 둔다. 다시 가로되 일전어(一轉語)는 하늘이 널리 덮음과 같고 땅이 널리 받듦과 같다. 일전어는 설두(舌頭)가 입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전어는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且喜沒交涉). 알고자 하느냐, 세존에게 참괴(慚愧)하나니 얼굴 붉힘이 말 정직함만 같지 못하다. 대소(大小) 악상좌(岳上座)가 입이 상반과 같지만(口似磉盤) 금일 이 문화승(問話僧)을 위해 강경(講經)하다가 불각에 주각까지(和注脚) 일시에 설파(說破)했다.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나의 입을 벙어리가 되게 해버렸지만(啞却) 바로 모름지기 말하고자 하며 너의 귀를 막아버렸지만 차과(蹉過)함을 절기(切忌)한다. 어제 어떤 사람이 천태(天台)로 좇아와서 도리어 말하되 사주대성(泗洲大聖)이 홍주(洪州)에 있으면서 타좌(打坐)하고 십자가두에서 항화(行貨)를 판다. 이 무엇인가 하면 굽이 끊어진(斷跟) 짚신이며 뾰족한 처마의 석모(尖簷席帽).

初日分; 금강경주정와에 이르되 초일분(初日分)이란 것은 조신(早晨; 이른 새벽)이며 중일분(中日分)이란 것은 일오(日午; 正午)며 후일분(後日分)이란 것은 만간(晚間)이다. 하루에 6()가 있으니 이를 들어 종일을 해라(該羅)한다. 금강경. 초일분(後日分)에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하고 중일분에 다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하고 후일분에 또한 항하사 등의 몸으로써 보시한다.

口似磉盤; 입을 닫고 말이 없는 양자(樣子; 모양) 형용. 입이 무거워 움직이지 않음을 초석에 비교함이니 상반은 곧 기둥 아래의 돌임.

行貨; 상품임. ()은 호랑절(胡郞切; )이니 매매하며 교역하는 영업처.

尖簷席帽; 형상이 첨첨(尖簷; 뾰족한 처마)과 비슷한 석모(席帽).

 

福州西禪此庵守淨禪師

上堂 談玄說妙 撒屎撒尿 行棒行喝 將鹽止渴 立主立賓 華擘宗乘 設或總不恁麽 又是鬼窟裏坐 到這裏 山僧已是打退皷 且道諸人 尋常心憤憤 口悱悱 合作麽生 莫將閑學解 埋沒祖師心 上堂 若也單明自己 不悟目前 此人有眼無足 若也祇悟目前 不明自己 此人有足無眼 直得眼足相資 如車二輪 如鳥二翼 正好勘過了打 上堂 九夏炎炎大熱 木人汗流不輟 夜來一雨便涼 莫道山僧不說 以拂子擊禪牀 下座 上堂 若欲正提綱 直須大地荒 欲來衝雪刃 未免露鋒鋩 當恁麽時 釋迦老子出頭不得卽不問 你諸人祇如馬鐙裏藏身 又作麽生話會

華擘; 分割 同花擘 華 當中剖開

 

복주(福州) 서선(西禪) 차암(此庵) 수정선사(守淨禪師)

상당(上堂) 담현설묘(談玄說妙)는 똥을 뿌리고 오줌을 뿌림이며행방행할(行棒行喝)은 소금을 가지고 갈증을 그치게 함이며 입주입빈(立主立賓)은 종승을 화벽(華擘)함이다. 설혹(設或) 모두() 이러하지 않더라도 또 이는 귀굴(鬼窟) 속에 앉았음이니 이 속에 이르러 산승이 이미 이, 퇴고(退皷)를 쳤다. 차도(且道)하라, 제인이 심상(尋常)에 마음이 분분하고(心憤憤) 입이 비비하나니(口悱悱) 합당히 어떠한가. 쓸데없이 배워 안 것을 가지고 조사의 마음을 매몰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만약에 홑으로() 자기만 밝히고 목전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유안무족(有眼無足)이며 만약에 다만 목전만 깨닫고 자기를 밝히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유족무안(有足無眼)이다. 바로() 안족(眼足)이 상자(相資)하되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새의 두 날개와 같음을 얻더라도 정호(正好) 감과(勘過)하고는 때려야 한다. 상당(上堂) 구하(九夏)에 염염(炎炎; 이글이글할 정도로 더움)하여 매우 더워서 목인(木人)이 땀 흘리며 그치지() 않더니 야래(夜來)의 일우(一雨)로 바로 서늘하다. 산승이 설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라.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만약 바로() 제강(提綱)하려고 한다면/ 바로 꼭 대지가 황폐(荒廢; )하다/ 와서 설인(雪刃)에 충돌(衝突)하려고 한다면/ 봉망(鋒鋩)을 드러냄을 면하지 못한다. 이러한 때를 당해 석가노자(釋迦老子)가 출두함을 얻지 못함은 곧 묻지 않거니와 너희 제인이 다만 마등(馬鐙; 말의 鐙子) 속에 장신(藏身)함은 또 어떻게 화회(話會)하겠는가.

華擘; 분할이니 화벽(花擘)과 같음. ()는 당중(當中)하여 부개(剖開; 쪼개 엶).

 

上堂 道是常道 心是常心 汝等諸人 聞山僧恁麽道 便道我會也 大盡三十日 小盡二十九 頭上是天 脚下是地 耳裏聞聲 鼻裏出氣 忽若四大海水在汝頭上 毒虵穿你眼睛 蝦蟆入你鼻孔 又作麽生 上堂 文殊普賢談理事 臨濟德山行棒喝 東禪一覺到天明 偏愛風從涼處發 咄 上堂 善鬬者不顧其首 善戰者必獲其功 其功旣獲 坐致太平 太平旣致 高枕無憂 罷拈三尺劍 休弄一張弓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風以時而雨以時 漁父歌而樵人舞 雖然如是 堯舜之君 猶有化在 爭似乾坤收不得 堯舜不知名 渾家不管興亡事 偏愛和雲占洞庭 上堂 閉却口 時時說 截却舌 無間歇 無間歇 最奇絕 最奇絕 眼中屑 旣是奇絕 爲甚麽却成眼中屑 了了了時無可了 玄玄玄處亦須呵

歸馬于華山之陽下; 祖庭事苑二 休牛歸馬 尙書 武成曰 武王伐殷 乃偃武修文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示天下弗服(服 使用) 說者曰 山南曰陽 桃林在華山東 皆非長養牛馬之地 欲使自生自死 示天下不復乘用也

 

상당(上堂) ()는 이 상도(常道)며 심()은 이 상심(常心)이다. 너희 등 제인이 산승의 이러한 말을 듣고 바로 말하되 내가 알았나니 대진(大盡)30일이며 소진(小盡)29며 두상(頭上)은 이 하늘이며 각하(脚下)는 이 땅이며 이리(耳裏)에서 문성(聞聲)하고 비리(鼻裏)에서 출기(出氣)한다. 홀연히 만약 사대해수(四大海水)가 너희의 두상(頭上)에 있고 독사(毒虵)가 너희의 안정(眼睛)을 뚫고(穿) 하마(蝦蟆; 두꺼비. 청개구리)가 너희의 비공(鼻孔)에 들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상당(上堂) 문수와 보현은 이사(理事)를 담설(談說; )하고/ 임제와 덕산은 방할(棒喝)을 행한다/ 동선(東禪; 守淨)은 한 번 깨자 천명(天明)에 이르러/ 바람이 서늘한 곳으로 좇아 일어남()을 편애(偏愛)한다. (). 상당(上堂) 선투자(善鬬者)는 그 머리를 돌아보지 않고 선전자(善戰者)는 그 공()을 반드시 얻는다(必獲). 그 공을 이미 얻었으니 앉아서 태평을 이루고() 태평을 이미 이루었으니 고침(高枕;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자다)하여 근심이 없다. 삼척(三尺)의 검을 잡음()을 마치고() 일장(一張; 은 양사)의 활을 희롱함을 그치고() 말을 화산지양에 돌려보내고(歸馬于華山之陽) 소를 도림지야에 방목하나니(放牛于桃林之野) 바람은 시기(時期)를 쓰고 비도 시기를 쓰고(風以時而雨以時; 풍우가 순조로움) 어부(漁父)는 노래하고 초인(樵人)은 춤춘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요순지군(堯舜之君)도 오히려 교화가 있나니 건곤이 거둠을 얻지 못하고 요순(堯舜)을 이름도 알지 못함만 같겠는가. 혼가(渾家; 全家)가 흥망사(興亡事)에 상관하지 않나니 구름에 섞여(和雲) 동정(洞庭)을 점거함을 편애(偏愛)하노라. 상당(上堂) 입을 닫아버려도(閉却) 시시로 설하고 혀를 잘라버려도(截却) 간헐(間歇)이 없다. 간헐이 없으니 가장 기절(奇絕; 비할 데 없이 奇異)하고 가장 기절해도 안중(眼中)의 가루다. 이미 이 기절이거늘 무엇 때문에 안중의 가루를 이루는가. 또렷 또렷 또렷할 때 가히 또렷함이 없나니 가물 가물 가물거리는 곳에 또한 꾸짖음을 써라.

歸馬于華山之陽下; 조정사원2. 휴우귀마(休牛歸馬) 상서(尙書) 무성(武成; 상서의 篇名)에 가로되 무왕(武王)이 은()을 정벌해 이에 무()를 눕히고 문()을 닦아 말을 화산(華山)의 양()에 돌려보내고 소를 도림(桃林)의 들에 방목해 천하에 불복(弗服; 은 사용)을 보였다. 설자(說者)가 가로되 산남(山南)을 가로되 양()이며 도림(桃林)은 화산(華山)의 동쪽에 있는데 다 우마(牛馬)를 장양(長養)할 땅이 아니니 자생자사(自生自死)케 하려 함이며 천하에 다시는 승용(乘用)이 아님을 보임이다.

 

上堂 祖佛頂𩕳上 有潑天大路 未透生死關 如何敢進步 不進步 大千沒遮護 一句絕言詮 那吒擎鐵柱 開堂 拈香罷 就座 南堂和尙白槌曰 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師隨聲便喝曰 此是第幾義 久參先德 已辨來端 後學有疑 不妨請問 僧問 阿難問迦葉 世尊傳金襴外 別傳何物 迦葉喚阿難 阿難應諾 未審此意如何 師曰 切忌動著 曰 祇如迦葉道倒却門前刹竿著 又作麽生 師曰 石牛橫古路 曰 祇如和尙於佛日處 還有這箇消息也無 師曰 無這箇消息 曰 爭奈定光金地遙招手 智者江陵暗點頭 師曰 莫將庭際柏 輕比路傍蒿 僧禮拜 師乃曰 定光金地遙招手 智者江陵暗點頭 已是白雲千萬里 那堪於此未知休 設或於此便休去 一場狼籍不少 還有檢點得出者麽 如無 山僧今日失利 僧問 佛佛授手 祖祖相傳 未審傳箇甚麽 師曰 速禮三拜 問 不施寸刃 請師相見 師曰 逢强卽弱 曰 何得埋兵掉鬬 師曰 祇爲闍黎寸刃不施 曰 未審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敗將不斬 問 古佛堂前 甚麽人先到 師曰 無眼村翁 曰 未審如何趣向 師曰 楖栗橫擔

潑天; 猶滿天 形容極大

定光金地遙招手; 祖庭事苑五 定光招手 智者顗禪師 十五時 禮佛像 怳然如夢 見大山臨海際 峰頂有僧招手 接入一伽藍 汝當居此 汝當終此 天台佛隴有定光禪師 先居此峰 謂弟子曰 不久當有善知識領徒至此 俄爾智者至 光曰 還憶疇昔擧手招引時否 金地; 爲佛閣道場之通稱 或稱金田 銀地 琉璃地 佛閣卽指佛寺 佛刹 梵刹 梵閣 或伽藍 又印度舍衛國給孤獨長者 曾以黃金布地 購得祇陀太子之園 爲釋尊建造精舍 故稱金地 釋氏要覽上 金地 或云金田 卽舍衛國給孤長者 側布黃金 買祇陀太子園 建精舍 請佛居之

江陵; 今湖北省江陵縣

 

상당(上堂) 조불의 정녕상(頂𩕳上)에 발천(潑天)의 대로(大路)가 있나니 생사관(生死關)을 투과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감히 진보(進步)하겠는가. 진보하지 못하면 대천(大千)이 차호(遮護)하지 못한다. 1()가 언전(言詮)을 끊었나니 나타(那吒)가 철주(鐵柱)를 받들었다(). 개당(開堂) 염향(拈香)을 마치고() 취좌(就座)했다. 남당화상(南堂和尙)이 백추(白槌)하고 가로되 법연(法筵)의 용상중(龍象衆)이여, 마땅히 제1(第一義)를 관하라. 스님이 소리 따라 바로 할하고 가로되 이것은 이 제기의(第幾義; 몇 째의 뜻)인가. 구참(久參)의 선덕(先德)은 이미 내단(來端)을 분변하겠지만 후학이 의심이 있다면 청문(請問)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승문 아난이 가섭에게 묻되 세존이 금란(金襴)을 전한 밖에 달리 무슨 물건을 전했습니까. 가섭이 아난을 부르자 아난이 응낙했다. 미심하오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동착(動著)함을 절기(切忌)한다. 지여(祇如) 가섭이 말하되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버려라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석우(石牛)가 고로(古路)에 가로놓였다. 가로되 지여(祇如) 화상이 불일(佛日; 宗杲賜號)의 처소에서 도리어 저개(這箇) 소식이 있었습니까 또는 없었습니까. 사왈 저개 소식이 없었다. 가로되 정광이 금지에서 불러 손짓하매(定光金地遙招手) 지자(智者)가 강릉(江陵)에서 몰래 머리를 끄덕였음(點頭)을 어찌하겠습니까(爭奈). 사왈 정제(庭際)의 측백()을 가지고 가볍게 노방(路傍)의 쑥()과 비교하지 말아라.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정광이 금지에서 불러 손짓하매 지자가 강릉에서 몰래 머리를 끄덕이더라도 이미 이는 백운이 천만 리거늘 어찌() 여기에서 쉴 줄 알지 못함을 감내하겠는가. 설혹(設或) 여기에서 바로 휴거(休去)하더라도 한바탕 낭자(狼籍)가 적지 않다. 도리어 검점(檢點)하여 냄을 얻을 자가 있느냐. 없을 것 같으면 산승이 금일 실리(失利)했다. 승문 불불(佛佛)이 수수(授手)하고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합니다. 미심하나니 저() 무엇을 전합니까. 사왈 속히 삼배 예배하라. 묻되 촌인(寸刃)도 베풀지 않고 스님에게 상견을 청합니다. 사왈 강()을 만나면 곧 약해진다. 가로되 어찌해야 매병(埋兵; 兵士를 숨김)하여 도투(掉鬬)함을 얻습니까. 사왈 다만 사리(闍黎)가 촌인(寸刃)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입니까. 사왈 패장은 베지 않는다. 묻되 고불당(古佛堂) 앞에 어떤 사람이 먼저 이릅니까. 사왈 눈 없는 촌옹(村翁)이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떻게 취향(趣向)합니까. 사왈 즐률(楖栗)을 가로 메었다.

潑天; 만천(滿天)과 같음. 극대(極大)를 형용.

定光金地遙招手; 조정사원5. 정광초수(定光招手) 지자의선사(智者顗禪師)15세 때 불상에 예배하는데 어슴푸레(怳然; 은 어슴푸레할 황) 꿈과 같았다. 보니 대산(大山)이 바닷가에 임했는데 봉정(峰頂)에서 어떤 승인이 초수(招手; 손짓하여 부름)하고 접인(接引)해 한 가람에 들어갔다. 너는 마땅히 여기에 거주할 것이며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마치리라. 천태의 불롱(佛隴)에 정광선사(定光禪師)가 있어 먼저 이 봉우리에 거주했다. 제자에게 일러 가로되 오래지 않아 마땅히 선지식이 있어 도중을 거느리고 여기에 이를 것이다. 이윽고(는 잠시 아) 지자(智者)가 이르자 정광이 가로되 도리어 주석(疇昔; 는 지난번 주. 곧 옛적)에 손을 들어 초인(招引)한 때를 기억하느냐. 金地; 불각도량(佛閣道場)의 통칭이 됨. 혹은 명칭이 금전ㆍ은지ㆍ유리지. 불각(佛閣)은 곧 불사ㆍ불찰ㆍ범찰ㆍ범각 혹은 가람을 가리킴. 또 인도 사위국 급고독장자가 일찍이 황금을 땅에 펴서 기타태자의 동산을 매입해 석존을 위해 정사를 건조하였으므로 고로 명칭이 금지임. 석씨요람상. 금지(金地) 혹은 이르되 금전(金田)이다. 곧 사위국 급고장자가 황금을 기울여 펴서 기타태자의 동산을 매입해 정사를 건립하고 불타에게 청해 거기에 거주하게 했다.

江陵; 지금의 호북성 강릉현.

 

建寧府開善道謙禪師

本郡人 初之京師依圓悟 無所省發 後隨妙喜庵居泉南 及喜領徑山 師亦侍行 未幾 令師往長沙通紫巖居士張公書 師自謂 我參禪二十年 無入頭處 更作此行 決定荒廢 意欲無行 友人宗元者叱曰 不可在路便參禪不得也 去 吾與汝俱往 師不得已而行 在路泣語元曰 我一生參禪 殊無得力處 今又途路奔波 如何得相應去 元告之曰 你但將諸方參得底 悟得底 圓悟妙喜爲你說得底 都不要理會 途中可替底事 我盡替你 只有五件事替你不得 你須自家支當 師曰 五件者何事 願聞其要 元曰 著衣喫飯 屙屎放尿 䭾箇死屍路上行 師於言下領旨 不覺手舞足蹈 元曰 你此回方可通書 宜前進 吾先歸矣 元卽回徑山 師半載方返 妙喜一見而喜曰 建州子 你這回別也

奔波; 辛苦地往來奔走

支當; 應付 承受 承當

 

건녕부(建寧府) 개선(開善) 도겸선사(道謙禪師)

본군(本郡) 사람이다. 처음 경사(京師)로 가서() 원오(圓悟)에게 의지했는데 성발(省發; 領會)하는 바가 없었다. 후에 묘희(妙喜)를 따라 천남(泉南)에서 암거(庵居)했고 및 묘희가 경산(徑山)을 거느리자() 스님도 또한 시행(侍行)했다. 미기(未幾)에 스님으로 하여금 장사(長沙)로 가서 자암거사(紫巖居士) 장공(張公)에게 서신(書信; )을 통지(通知; )하게 했다. 스님이 스스로 이르되 내가 참선한 지 20년에 입두처(入頭處)가 없었는데 다시 차행(此行)을 지으면 결정코 황폐(荒廢)하리라. 뜻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意欲無行). 우인(友人) 종원(宗元)이란 자가 꾸짖으며() 가로되 길에 있으면서 곧(便) 참선함을 얻지 못한다 함은 옳지 못하다. 가거라, 내가 너와 더불어 가겠다. 스님이 부득이하여 갔다. 길에서 읍()하며 종원에게 말해 가로되 내가 일생에 참선하면서 특수히 득력처(得力處)가 없었는데 지금 또 도로에서 분파(奔波)하니 어찌해야 상응함을 얻어 가겠는가. 종원이 고해 가로되 네가 단지 제방에서 참득한 것(參得底)과 오득한 것(悟得底)과 원오와 묘희가 너를 위해 설득한 것(說得底)을 가지고서 모두() 이회(理會)함을 요하지 말아라(不要). 도중(途中)에 가히 대체할 일(替底事)을 내가 모두 너를 대체하겠지만 다만 오건사(五件事)가 있어 너를 대체함을 얻지 못하나니 너는 모름지기 자가(自家)가 지당(支當)하라. 사왈 오건(五件)이란 게 무슨 일인가. 그 요점(要點; )을 듣기를 원한다. 원왈(元曰) 착의(著衣)ㆍ끽반(喫飯)ㆍ아시(屙屎)ㆍ송뇨(放尿)와 이() 사시(死屍)를 싣고() 노상(路上)에서 다님이다. 스님이 언하에 영지(領旨)했고 불각에 수무족도(手舞足蹈)했다. 원왈(元曰) 네가 차회(此回; 이번 회)에 바야흐로 가히 통서(通書)하리니 의당 전진(前進)하라 나는 먼저 돌아가겠다. 종원이 곧 경산으로 돌아갔다. 스님이 반재(半載) 만에 비로소 돌아왔다. 묘희가 일견(一見)하지 기뻐하며 가로되 건주자(建州子; 건주의 남자), 네가 저회(這回)에 다르구나.

奔波; 신고(辛苦)하며 왕래하면서 분주함.

支當; 응부(應付; 요구에 응하여 내어 줌). 승수(承受). 승당(承當).

 

住後 上堂 竺土大僊心 東西密相付 如何是密付底心 良久云 八月秋 何處熱 上堂 壁立千仞 三世諸佛 措足無門 是則是 太殺不近人情 放一線道 十方刹海 放光動地 是則是 爭奈和泥合水 須知通一線道處壁立千仞 壁立千仞處通一線道 橫拈倒用 正按傍提 電激雷奔 崖頹石裂 是則是 猶落化門 到這裏 壁立千仞也沒交涉 通一線道也沒交涉 不近人情 和泥合水 總沒交涉 只這沒交涉 也則沒交涉 是則是 又無佛法道理 若也出得這四路頭 管取乾坤獨步 且獨步一句作麽生道 莫怪從前多意氣 他家曾踏上頭關

上頭關; 向上玄奧禪關 禪悟之關

 

주후(住後) 상당(上堂) 축토(竺土)의 대선(大僊)의 마음이 동서(東西)에서 비밀히 상부(相付)한다 하니 무엇이 이 밀부(密付)한 마음인가.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8월 가을이거늘 어느 곳이 덥겠는가(). 상당(上堂) 벽립천인(壁立千仞)하니 삼세제불이 발을 둘 문이 없다. 옳기야 곧 옳지만(是則是) 태쇄(太殺) 인정(人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일선도(一線道)를 놓으니 시방찰해가 방광하며 동지(動地)한다. 옳기야 곧 옳지만 화니합수(和泥合水)함을 어찌하겠는가. 모름지기 알지니 일선도(一線道)를 통하는 곳에 벽립천인(壁立千仞)하며 벽립천인한 곳에 일선도를 통한다. 횡념도용(橫拈倒用)하고 정안방제(正按傍提)하면서 전격뇌분(電激雷奔)하고 애퇴석렬(崖頹石裂)한다. 옳기는 곧 옳지만 오히려 화문(化門)에 떨어진다. 이 속에 이르러선 벽립천인(壁立千仞)도 또한 교섭이 없고(沒交涉) 일선도를 통함도 또한 교섭이 없고 인정을 가까이 하지 않거나 화니합수함도 모두() 교섭이 없고 다만 이(只這) 교섭이 없음도 또한 곧 교섭이 없다. 옳기야 곧 옳지만 또 불법도리가 없다. 만약에 이 사로두(四路頭)를 벗어남을 얻는다면 건곤에 독보(獨步)함을 관취(管取)하리라. 다만() 독보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종전(從前)에 의기(意氣)가 많았음을 괴이히 여기지 말지니 타가(他家)는 일찍이 상두관(上頭關)을 밟았다.

上頭關; 향상의 현오(玄奧)의 선관(禪關). 선오(禪悟)의 관.

 

上堂 去年也有箇六月十五 今年也有箇六月十五 去年六月十五 少却今年六月十五 今年六月十五 多却去年六月十五 多處不用減 少處不用添 旣不用添 又不用減 則多處多用 少處少用 乃喝一喝曰 是多是少 良久曰 箇中消息子 能有幾人知 上堂 洞山麻三斤 將去無星秤子上定過 每一斤恰有一十六兩 二百錢重 更不少一氂 正與趙州殿裏底一般 祇不合被大愚鋸解秤鎚 却敎人理會不得 如今若要理會得 但問取雲門乾屎橛 上堂 有句無句 如藤倚樹 撞倒燈籠 打破露柱 佛殿奔忙 僧堂回顧 子細看來 是甚家具 咄 祇堪打老鼠 上堂 諸人從僧堂裏恁麽上來 少間 從法堂頭恁麽下去 竝不曾差了一步 因甚麽却不會 良久曰 祇爲分明極 飜令所得遲

 

상당(上堂) 거년(去年)에도 이() 615가 있었고 금년에도 이 615가 있다. 거년 615는 금년 615 보다 적고(少却) 금년 615는 거년 615 보다 많다(多却). 다처(多處)엔 감()함을 쓰지 않고 소처(少處)엔 첨()함을 쓰지 않는다. 이미 첨()을 쓰지 않고 또 감()을 쓰지 않으니 곧 다처(多處)엔 다용(多用)하고 소처(少處)엔 소용(少用)한다. 이에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이 다()인가, 이 소()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개중(箇中)의 소식자(消息子; 는 조사)를 능히 몇 사람이 아는 이 있는가. 상당(上堂)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은 이에() 무성칭자상(無星秤子上; 눈금 없는 저울 상)으로 가서 정과(定過; 는 조사)하면 매 1근에 마침() 일십육량(一十六兩)이 있으니 이백전(二百錢)의 무게다. 다시 1()도 모자라지() 않으니 바로() 조주(趙州)의 전리의 것(殿裏底)과 일반(一般)이다. 다만() 대우(大愚)의 거해칭추(鋸解秤鎚)를 입음에 합당하지 않아서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이회(理會)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 여금에 만약 이회함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 운문의 건시궐(乾屎橛)에게 문취(問取)하라. 상당(上堂)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이 나무에 기댐과 같다/ 등롱(燈籠)을 당도(撞倒)하고 노주(露柱)를 타파(打破)한다/ 불전(佛殿)이 분망(奔忙)하고/ 승당(僧堂)이 회고(回顧; 돌아보다)한다/ 자세히 간래(看來)하매/ 이 무슨 가구(家具)인가. (). 다만 가히() 노서(老鼠)를 때린다. 상당(上堂) 제인이 승당 속으로 좇아 이렇게 올라와서 소간(少間; 조금 후)에 법당두(法堂頭)로 좇아 이렇게 내려가면서 모두() 일찍이 일보(一步)도 어긋나지(差了) 않거늘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알지 못하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다만 분명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도리어() 소득(所得)을 더디게 한다.

 

慶元府育王佛照德光禪師

臨江軍彭氏子 志學之年 依本郡東山光化寺吉禪師落髮 一日入室 吉問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是甚麽 師罔措 遂致疑 通夕不寐 次日 詣方丈請益 昨日蒙和尙垂問 旣不是心 又不是佛 又不是物 畢竟是甚麽 望和尙慈悲指示 吉震威一喝曰 這沙彌 更要我與你下注脚在 拈棒劈脊打出 師於是有省 後謁月庵杲應庵華百丈震 終不自肯 適大慧領育王 四海英材鱗集 師亦與焉 大慧室中問師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下語 不得無語 師擬對 慧便棒 師豁然大悟 從前所得 瓦解冰消

 

경원부(慶元府) 육왕(育王) 불조(佛照) 덕광선사(德光禪師)

임강군(臨江軍) 팽씨(彭氏)의 아들이다. 지학(志學)의 나이(15)에 본군(本郡) 동산(東山) 광화사(光化寺) 길선사(吉禪師)에게 의지해 낙발(落髮)했다. 어느 날 입실하자 길()이 묻되 이 마음이 아니며 이 부처가 아니며 이 물건이 아니니 이 뭣고. 스님이 망조(罔措)했고 드디어 의심을 이루었다(致疑). 통석(通夕; 밤을 새움)에 자지() 못했다. 다음날 방장으로 나아가 청익하되 어제 화상의 수문(垂問)을 입었으니() 이미 이 마음이 아니고 이 부처가 아니고 또 이 물건이 아니라면 필경 이 무엇입니까. 화상이 자비로 지시하심을 바랍니다(). ()이 위엄을 떨치며 1할하고 가로되 이 사미가 다시 내가 너를 위해() 주각(注脚)을 내리기를 요하는구나. ()을 집어 등에다(劈脊) 때리고 쫓아내었다. 스님이 이에서 살핌이 있었다. 후에 월암고(月庵杲)ㆍ응암화(應庵華)ㆍ백장진(百丈震)을 참알했으나 마침내 자긍(自肯)하지 못했다. 마침() 대혜(大慧)가 육왕(育王)을 거느렸고() 사해(四海)의 영재(英材)가 인집(鱗集; 群集)했는데 스님도 또한 참여(參與)했다. 대혜가 실중에서 스님에게 묻되 죽비라고 불러 지으면 곧 촉()이며 죽비라고 불러 짓지 않으면 곧 배(). 하어(下語)를 얻지 말고 무어(無語)를 얻지 말아라. 스님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대혜가 바로 방()했다. 스님이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종전(從前)에 얻은 바가 와해빙소(瓦解冰消)했다.

 

初住台之光孝 僧問 浩浩塵中 如何辨主 師曰 中峯頂上塔心尖 上堂 臨濟三遭痛棒 大愚言下知歸 興化於大覺棒頭 明得黃檗意旨 若作棒會 入地獄如箭射 若不作棒會 入地獄如箭射 衆中商量 盡道赤心片片 恩大難酧 總是識情卜度 未出陰界 且如臨濟悟去 是得黃檗力 是得大愚力 若也見得 許你頂門眼正 肘後符靈 其或未然 鴻福更爲諸人通箇消息 丈夫氣宇衝牛斗 一踏鴻門兩扇開 上堂 七手八脚 三頭兩面 耳聽不聞 眼覷不見 苦樂逆順 打成一片 且道是甚麽 路逢死虵莫打殺 無底籃子盛將歸 上堂 聞聲悟道 落二落三 見色明心 錯七錯八 生機一路 猶在半途 且道透金剛圈呑栗棘蓬底是甚麽人 披蓑側立千峯外 引水澆蔬五老前 師住靈隱日 孝宗皇帝甞詔問道 留宿內觀堂 奏對機緣 備于本錄 後示寂 塔全身於鄮峯東庵

鴻門; 地名也 位於今之陝西省臨潼縣 今改稱項羽營 祖庭事苑五 鴻門 項羽與沛公 爲鴻門之會 亞父謀欲殺沛公 令項莊拔劍舞坐中 欲擊沛公 項伯常屛蔽之 時獨沛公與張良得入坐 樊噲居營門外 事急 直撞入立帳下 沛公如廁 走還霸上

 

처음 태()의 광효(光孝)에 주()했다. 승문 호호(浩浩)한 진중(塵中)에 어떻게 변주(辨主)합니까. 사왈 중봉(中峯)의 정상(頂上)에 탑심(塔心; 탑의 중심)이 뾰족하다. 상당(上堂) 임제는 세 번 통방(痛棒)을 만났고() 대우(大愚)의 언하에 지귀(知歸)했으며 흥화(興化)는 대각(大覺)의 방두(棒頭)에서 황벽의 의지를 명득(明得)했다. 만약 방이란 이회를 지으면(作棒會) 지옥에 들기가 화살을 쏨과 같을 것이며 만약 방이란 이회를 짓지 않아도 지옥에 들기가 화살을 쏨과 같을 것이다. 중중(衆中)에서 상량(商量)하며 모두 말하기를 적심(赤心)이 편편(片片)이라 은혜가 커서 갚기() 어렵다 하거니와 모두() 이는 식정(識情)으로 복탁(卜度)함이며 음계(陰界)를 벗어나지 못했다. 차여(且如) 임제가 오거(悟去)함은 이 황벽의 힘을 얻었는가, 이 대우의 힘을 얻었는가. 만약에 견득(見得)한다면 너의 정문안(頂門眼)이 바르고() 주후부(肘後符)가 신령하다고 허락하겠다.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홍복(鴻福; 德光)이 다시 제인을 위해 저() 소식을 통하겠다. 장부의 기우(氣宇; 기개와 風度)가 우두(牛斗)를 찌르나니() 홍문(鴻門)을 일답(一踏)하자 양선(兩扇; 양쪽 문짝)이 열렸다. 상당(上堂) 칠수팔각(七手八脚)이며/ 삼두양면(三頭兩面)이다/ 귀로 들으려고() 해도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 고락과 역순(逆順)/ 일편으로 타성한다(打成一片). 차도하라, 이 뭣고. 길에서 죽음 뱀을 만나면 타살(打殺)하지 말고 밑이 없는 광주리(籃子)에 담아 기지고 돌아오너라. 상당(上堂) 소리를 듣고 오도함은 낙이낙삼(落二落三)이며 색을 보고 명심(明心)함은 착칠착팔(錯七錯八)이니 생기(生機)의 일로(一路)는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다. 차도하라, 금강권(金剛圈)을 투과하고 율극봉(栗棘蓬)을 삼키는 이는 이 어떤 사람인가. 도롱이를 입고(披莎) 천봉(千峯) 밖에서 비스듬히 섰고 물을 당겨(引水) 오로(五老; 五老峰) 앞에서 채소에 물을 댄다(澆蔬). 스님이 영은(靈隱)에 주()하던 날 효종황제가 일찍이 불러 문도(問道)했다. 내관당(內觀堂)에 유숙(留宿)하면서 기연(機緣)을 주대(奏對)했는데 본록(本錄)에 갖췄다. 후에 시적하자 전신(全身)으로 무봉(鄮峯) 동암(東庵)에 탑을 세웠다.

鴻門; 지명이니 지금의 섬서성 임동현에 위치했고 지금은 항우영(項羽營)으로 개칭했음. 조정사원5. 홍문(鴻門) 항우(項羽)와 패공(沛公; 劉邦이니 . 沛縣에서 일어났으므로 沛公이라 함)이 홍문(鴻門)의 연회(宴會)를 했다. 아부(亞父; 范增이니 의 항우가 범증을 존경해 부르던 말)가 음모로 패공을 죽이려고 항장(項莊; 항우의 사촌동생)으로 하여금 검을 뽑아 좌중(坐中)에서 춤을 추게 하면서 패공을 격살(擊殺)하려 했지만 항백(項伯; 항우의 叔父)이 늘 그를 가렸다. 때에 유독 패공(沛公)과 장량(張良)만이 들어감을 얻어 앉았는데 번쾌(樊噲)가 영문(營門) 밖에 거처하다가 일이 급하자 바로 치고 들어가 장막 아래 섰다. 패공이 측간에 가는 척하며(는 갈 여) 도주해 패상(霸上)으로 돌아갔다.

 

常州華藏遯庵宗演禪師

福州鄭氏子 上堂 拈起拄杖曰 識得這箇 一生參學事畢 古人恁麽道 華藏則不然 識得這箇 更須買草鞋行脚 何也 到江吳地盡 隔岸越山多 臘旦 上堂 一九與二九 相逢不出手 世間出世間 無剩亦無少 遂出手曰 華藏不惜性命 爲諸人出手去也 劈面三拳 攔腮一掌 靈利衲僧 自知痛痒 且轉身一句作麽生道 巡堂喫茶去 上堂 擧 南泉和尙道 我十八上便解作活計 趙州和尙道 我十八上便解破家散宅 師云 南泉趙州也是徐六擔板 祇見一邊 華藏也無活計可作 亦無家宅可破 逢人突出老拳 要伊直下便到 且道到後如何 三十六峯觀不足 却來平地倒騎驢

 

상주(常州) 화장(華藏) 둔암(遯庵) 종연선사(宗演禪師)

복주(福州) 정씨(鄭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식득(識得)하면 일생의 참학사를 마친다. 고인은 이렇게 말했지만 화장(華藏)은 곧 그렇지 않다. 저개를 식득하면 다시 꼭 짚신을 사서 행각해야 한다. 왜냐, 도강(到江)하여 오지(吳地)가 다했는가 했더니 격안(隔岸)하여 월산(越山)이 많더라. 납단(臘旦) 상당(上堂) 일구(一九)와 이구(二九), 상봉하여 출수(出手)하지 않는다. 세간과 출세간이여, 나머지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드디어 출수(出手)하고 가로되 화장(華藏)이 성명(性命)을 아끼지 않고 제인(諸人)을 위해 출수하여 가겠다. 얼굴에다(劈面) 3()이며 뺨에다(攔腮) 1()이다. 영리(靈利)한 납승은 스스로 통양(痛痒)을 알 것이다. 다만() 전신(轉身)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순당(巡堂)하고 끽다하겠다(喫茶去). 상당(上堂) ()하다. 남천화상(南泉和尙)이 말하되 나는 18(; )에 바로 활계(活計)를 지을 줄 알았다. 조주화상(趙州和尙)이 말하되 나는 18()에 바로 파가산택(破家散宅)할 줄 알았다. 사운 남천과 조주는 또한 이 서륙담판(徐六擔板)인지라 다만 일변(一邊)만 보았다. 화장은 또한 활계를 가히 지음이 없고 또한 가택(家宅)을 가히 깨뜨림이 없다. 사람을 만나면 노권(老拳; 노련한 주먹)을 돌출(突出)하나니 그()가 직하(直下)에 바로 이름()을 요한다. 차도(且道)하라, 이른 후에 어떠한가. 삼십육봉(三十六峯)을 관람함이 부족하여 평지로 돌아와서도(却來) 나귀를 거꾸로 탔다.

 

慶元府天童無用淨全禪師

越州翁氏子 上堂 學佛止言眞不立 參禪多與道相違 忘機忘境急回首 無地無錐轉步歸 佛不是心亦非 覿體承當絕所依 萬古碧潭空界月 再三撈摝始應知 上堂 良久召衆曰 還知麽 復曰 敗缺不少 上堂 擧 長沙示衆曰 百尺竿頭坐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現全身 大慧先師道 要見長沙麽 更進一步 保寧則不然 要見長沙麽 更退一步 畢竟如何 換骨洗腸重整頓 通身是眼更須參

覿體; 祖庭事苑一 覿體 覿 當作敵 對也

 

경원부(慶元府) 천동(天童) 무용(無用) 정전선사(淨全禪師)

월주(越州) 옹씨(翁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학불(學佛; 불법을 배움)은 다만() 말하나니 진()을 세우지 않음이며/ 참선은 많이 도와 상위(相違)한다/ 망기망경(忘機忘境)하고 급히 회수(回首)하라/ 무지무추(無地無錐)니 걸음을 돌려 돌아가라/ 부처도 옳지 않고 마음도 또한 그르나니/ 적체(覿體)하여 승당(承當)해야 소의(所依)가 끊긴다/ 만고(萬古) 벽담(碧潭)의 공계(空界)의 달을/ 재삼(再三) 노록(撈摝)하고서야 비로소 응당 알려나. 상당(上堂) 양구(良久)하고 대중을 불러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다시 가로되 패결(敗缺)이 적지 않다. 상당(上堂) ()하다. 장사(長沙)가 시중(示衆)해 가로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앉은 사람이여/ 비록 그러히 득입(得入)했으나 진()이 되지 않는다/ 백척간두에서 걸음을 나아감을 써야/ 시방세계에 전신을 나타낸다. 대혜선사(大慧先師)가 말하되 장사(長沙)를 보고자 하느냐, 다시 일보(一步) 나아가라. 보녕(保寧; 淨全)은 곧 그렇지 않나니 장사를 보고자 하느냐, 다시 일보 물러나라. 필경 어떠한가. 환골세장(換骨洗腸)하고 거듭 정돈(整頓)할지니 통신(通身; 온몸)이 이 눈일지라도 다시 꼭 참()해야 한다.

覿體; 조정사원1. 적체(覿體) (覿)은 마땅히 적()으로 지어야 함. ().

 

師到靈隱 請上堂 靈山正派 達者猶迷 明來暗來 誰當辨的 雙收雙放 孰辨端倪 直饒千聖出來 也祇結舌有分 何故 人歸大國方爲貴 水到瀟湘始是淸 復曰 適來松源和尙擧竹篦話 令天童納敗缺 諸人要知麽 聽取一頌 黑漆竹篦握起 迅雷不及掩耳 德山臨濟茫然 懵底如何插觜 大慧甞擧靈雲悟桃華問師 師曰 靈雲一見兩眉橫 引得漁翁良計生 白浪起時拋一釣 任敎魚鼈競頭爭 師自贊曰 匙挑不上箇村夫 文墨胸中一點無 曾把虛空揣出骨 惡聲嬴得滿江湖 後示寂 塔于本山

文墨胸中一點無; 謂沒有文化 不識文字 文墨; 指文書辭章 亦指寫文章 從事文字工作

 

스님이 영은(靈隱)에 이르자 상당(上堂)을 청했다. 영산(靈山)의 정파(正派)는 달자(達者)라도 오히려 미()한다. 명래암래(明來暗來)하매 누가 마땅히 변적(辨的)하는가. 쌍수쌍방(雙收雙放)하매 누가() 단예(端倪; 始末. 端緖)를 분변하는가. 직요(直饒) 천성(千聖)이 나오더라도 또 다만 결설(結舌)할 분한이 있다. 무슨 연고냐, 사람은 대국(大國)으로 돌아가야 바야흐로 귀해지고 물은 소상(瀟湘)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 청정하다. 다시 가로되 아까 송원화상(松源和尙)이 죽비화(松源和尙)를 들어() 천동(天童; 淨全)으로 하여금 패결(敗缺)을 받아들이게 했다. 제인이 알고자 하느냐. 1송을 청취(聽取)하라. 흑칠(黑漆) 죽비(竹篦)를 움켜쥐어 일으키니/ 신뢰(迅雷), 엄이(掩耳)가 미치지 못한다/ 덕산과 임제도 망연(茫然)하거늘/ 몽지(懵底)가 어떻게 삽취(插觜)하겠는가. 대혜가 일찍이 영운이 도화를 깨친 것(靈雲悟桃華)을 들어 스님에게 물었다. 사왈 영운이 일견하자 두 눈썹이 가로놓였고/ 어옹(漁翁)을 인득(引得)해 양계(良計)가 생겼다/ 백랑(白浪)이 일어날 때 일조(一釣) 던지니/ 어별(魚鼈)이 경두(競頭)하여 다투는 대로 맡긴다(任敎). 스님이 자찬(自贊)해 가로되 시도불상(匙挑不上; 숟가락으로 들어올리지 못함. 軟滑을 말함)하는 촌부(村夫)/ 문묵이 흉중에 일점도 없다(文墨胸中一點無)/ 일찍이 허공을 잡아 뼈를 추려내니(揣出)/ 악성(惡聲)이 강호에 가득함을 더해() 얻었다. 후에 시적하자 본산에 탑을 세웠다.

文墨胸中一點無; 이르자면 문화가 있지 않음. 문자를 알지 못함. 文墨; 문서의 사장(辭章)을 가리킴. 또 문장을 서사하며 문자의 공작에 종사함을 가리킴.

 

大潙法寶禪師

福州人也 上堂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直須師子咬人 莫學韓獹逐塊 阿呵呵 會不會 金剛脚下鐵崑崙 捉得明州憨布袋 上堂 千般言萬種喻 祇要敎君早回去 夜來一片黑雲生 莫敎錯却山前路 咄

 

대위(大潙) 법보선사(法寶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죽비라고 불러 지으면 곧 촉()이며/ 죽비라고 불러 짓지 않으면 곧 배()/ 바로() 사자가 사람을 묾을 쓰고()/ 한로(韓獹)가 흙덩이를 쫓음을 배우지 말아라/ 아하하(阿呵呵)/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금강각하(金剛脚下)의 철곤륜(鐵崑崙)/ 명주(明州) 감포대(憨布袋; 어리석은 포대화상)를 착득()했다. 상당(上堂) 천 가지() 말과 만 가지() 비유는/ 다만 그대로 하여금 일찍 돌아가게 하고자 함이다/ 야래(夜來)에 일편(一片) 흑운(黑雲)이 생기(生起)했으니/ 산 앞의 길을 착각(錯却)하게 하지 말아라. ().

 

福州玉泉曇懿禪師

久依圓悟 自謂不疑 紹興初 出住興化祥雲 法席頗盛 大慧入閩 知其所見未諦 致書令來 師遲遲 慧小參 且痛斥 仍榜告四衆 師不得已 破夏謁之 慧鞫其所證 旣而曰 汝恁麽見解 敢嗣圓悟老人邪 師退院親之 一日入室 慧問 我要箇不會禪底做國師 師曰 我做得國師去也 慧喝出 居無何 語之曰 香嚴悟處不在擊竹邊 俱胝得處不在指頭上 師乃頓明

無何; 不久 很短時間之後

 

복주(福州) 옥천(玉泉) 담의선사(曇懿禪師)

오래 원오(圓悟)에게 의지했고 스스로 이르되 의심이 없다(不疑). 소흥(紹興; 1131-1162) 초 출세해 흥화(興化) 상운(祥雲)에 주()했는데 법석이 자못 성()했다. 대혜(大慧)가 입민(入閩)하여 그의 소견(所見)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다. 치서(致書; 寄信)하여 오게 했으나 스님이 머뭇거렸다(遲遲). 대혜가 소참(小參)에 또() 통렬히 배척했고(痛斥) 인하여() ()으로 사중(四衆)에게 고했다. 스님이 부득이하여 파하(破夏)하고 예알했다. 대혜가 그의 소증(所證)을 심문(審問; )했다 이미 그러고는 가로되 네가 이러한 견해로 감히 원오노인(圓悟老人)을 이었느냐(). 스님이 퇴원(退院)하여 친근(親近; )했다. 어느 날 입실하자 대혜가 묻되 내가 저(), 선을 알지 못하는 이(不會禪底)를 국사(國師)로 만들려고() 한다. 사왈 내가 국사를 지어(做得) 가겠습니다. 대혜가 꾸짖고 쫓아내었다(喝出). 거무하(無何; 있은 지 얼마 안됨)에 말해 가로되 향엄(香嚴)이 깨친 곳은 격죽변(擊竹邊)에 있지 않고 구지(俱胝)가 얻은 곳은 지두상(指頭上)에 있지 않다. 스님이 이에 문득 밝혔다.

無何; 오래지 않아. 매우 짧은 시간 뒤에.

 

後住玉泉 爲慧拈香 繼省慧於小溪 慧陞座 擧 雲門一日拈拄杖示衆曰 凡夫實謂之有 二乘析謂之無 緣覺謂之幻有 菩薩當體卽空 衲僧見拄杖子但喚作拄杖子 行但行 坐但坐 總不得動著 慧曰 我不似雲門老人 將虛空剜窟竉 驀拈拄杖曰 拄杖子不屬有 不屬無 不屬幻 不屬空 卓一下曰 凡夫二乘緣覺菩薩 盡向這裏 各隨根性 悉得受用 唯於衲僧分上 爲害爲冤 要行不得行 要坐不得坐 進一步 則被拄杖子迷却路頭 退一步 則被拄杖子穿却鼻孔 卽今莫有不甘底麽 試出來與拄杖子相見 如無 來年更有新條在 惱亂春風卒未休 正恁麽時合作麽生 下座煩玉泉 爲衆拈出 師登座 敘謝畢 遂擧前話曰 適來堂頭和尙恁麽批判 大似困魚止濼 病鳥棲蘆 若是玉泉則不然 拈拄杖曰 拄杖子能有能無能幻能空 凡夫二乘緣覺菩薩 卓一下曰 向這裏百雜碎 唯於衲僧分上 如龍得水 似虎靠山 要行便行 要坐便坐 進一步則乾坤震動 退一步則草偃風行 且道不進不退一句作麽生道 良久曰 閑持經卷倚松立 笑問客從何處來

 

후에 옥천(玉泉)에 주()했는데 대혜를 위해 염향(拈香)했다. 이어서() 소계(小溪)에서 대혜를 살폈다(). 대혜가 승좌하여 거()했다. 운문이 어느 날 주장자를 가지고 시중(示衆)해 가로되 범부는 실답다 하여 있음()이라고 이르고 2()은 분석하여 없다()고 이르고 연각은 환유(幻有)라고 이르고 보살은 당체(當體)가 곧 공이라 한다. 납승은 주장자를 보면 단지 주장자라고 불러 짓고 가려면 단지 가고 앉으려면 단지 앉나니 모두() 동착(動著)함을 얻지 않는다. 혜왈(慧曰) 나는 운문 노인과 흡사하지 않나니 허공을 가지고 굴롱(窟竉; 구멍)을 도려낸다(). 갑자기 주장자를 가지고 가로되 주장자는 유()에 속하지 않고 무()에 속하지 않고 환()에 속하지 않고 공()에 속하지 않는다. 한 번 치고() 가로되 범부ㆍ이승(二乘)ㆍ연각ㆍ보살이 모두 이 속을 향해 각기 근성을 따라 모두() 수용(受用)함을 얻거니와 오직 납승의 분상(分上)에선 해()가 되고 원()이 되고 가려고 해도 감을 얻지 못하고 앉으려고 해도 앉음을 얻지 못한다. 진일보(進一步)하면 곧 주장자가 노두(路頭)를 미각(迷却)함을 입고 퇴일보(退一步)하면 곧 주장자가 비공(鼻孔)을 천각(穿却)함을 입는다. 즉금 달게 여기지 않는 이가 있느냐, 시험 삼아 나와서 주장자와 상견하라. 없을 것 같으면 내년에 다시 새로운 가지가 있어 춘풍에 뇌란(惱亂)하며 마침내 쉬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때 합당히 어떠한가. 하좌하여 옥천(玉泉)을 번거롭게 해 대중을 위해 염출(拈出)하게 하겠다. 스님이 등좌(登座)하여 감사를 베풀어 마치자(敘謝畢) 드디어 전화(前話)를 들고 가로되 아까 당두화상(堂頭和尙)의 이러한 비판(批判)곤궁한 고기가 못에 머물고(困魚止濼) 병든 새가 갈대에 깃듦과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다. 만약 이 옥천일진대 곧 그렇지 않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주장자가 능유(能有)ㆍ능무(能無)ㆍ능환(能幻)ㆍ능공(能空)한다. 범부ㆍ이승ㆍ연각ㆍ보살이, 한 번 치고() 가로되 이 속을 향해 백잡쇄(百雜碎). 오직 납승의 분상(分上)에선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에 기댐()과 같고() 가려면 바로 가고 앉으려면 바로 앉는다. 진일보(進一步)하면 곧 건곤이 진동(震動)하고 퇴일보(退一步)하면 곧 풀이 눕고 바람이 행한다(草偃風行). 차도하라, 부진불퇴(不進不退)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한가히 경권(經卷)을 가지고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객이 어느 곳으로 좇아오느냐고 웃으며 묻는다.

 

饒州薦福悟本禪師

江州人也 自江西雲門參侍妙喜 至泉南小谿 于時英俊畢集 受印可者多矣 師私謂其棄己 且欲發去 妙喜知而語之曰 汝但專意參究 如有所得 不待開口 吾已識也 旣而有聞師入室者 故謂師曰 本侍者參禪許多年 逐日只道得箇不會 師詬之曰 這小鬼你未生時 我已三度霍山廟裏退牙了 好敎你知 由是益銳志 以狗子無佛性話 擧無字而提撕 一夕將三皷 倚殿柱昏寐間 不覺無字出口吻 忽爾頓悟 後三日 妙喜歸自郡城 師趨丈室 足纔越閫 未及吐詞 妙喜曰 本鬍子這回方是徹頭也

霍山廟; 位於河東道晉州趙城縣東南三十里霍山上 [百度文庫]

鬍子; 胡子 卽胡人

 

요주(饒州) 천복(薦福) 오본선사(悟本禪師)

강주(江州) 사람이다. 강서 운문에서 묘희(妙喜)를 참시(參侍)함으로부터 천남(泉南) 소계(小谿)에 이르렀다. 우시(于時)에 영준(英俊)이 모두 모였고(畢集) 인가(印可)를 받은 자가 많았다. 스님이 사위(私謂)하되 그(묘희)가 자기(; 저본에 로 지었음)를 버린다 하여 다만() 발거(發去; 떠나다)하려고 했다. 묘희가 알고서 말해 가로되 너는 단지 전의(專意)로 참구(參究)할지니 소득(所得)이 있을 것 같으면 개구(開口)를 기다리지 않고도 내가 이미 안다. 이미 그러고선 스님이 입실했다 함을 들은 자가 있어 짐짓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본시자(本侍者)는 참선한 지 허다한 해이거늘 축일(逐日; 매일)하여 다만 저() 불회(不會; 알지 못하다)라고 말함을 얻는다. 스님이 꾸짖으며(詬之) 가로되 이 소귀(小鬼), 네가 출생하지 않았을 때 나는 이미 세 차례() 곽산묘(霍山廟) 속에서 퇴아(退牙; 이를 갈다)했나니 좋게 너로 하여금 알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더욱() 의지(意志; )를 예리(銳利; )하게 했다.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쓰되() 무자(無字)를 들어 제시(提撕; 探究)했다. 일석(一夕)에 거의() 3()였는데 전주(殿柱)에 기대어 혼매(昏寐)하다가 불각에 무자(無字)가 구문(口吻; 입술)에서 나오면서 홀이(忽爾) 돈오(頓悟)했다. 3일 후 묘희가 군성(郡城)으로부터 돌아오자 스님이 장실(丈室)로 달려갔는데() 발이 겨우 문지방을 넘어 토사(吐詞)에 미치지 아니한 전에 묘희가 가로되 본호자(鬍子)가 이번 회(這回)에 비로소 이 철두(徹頭)했구나.

霍山廟; 하동도(河東道) 진주 조성현 동남 30리 곽산 위에 위치함 [백도문고].

鬍子; 호자(胡子)를 가리킴. 곧 호인(胡人).

 

住後 上堂 高揖釋迦不拜彌勒者 與三十拄杖 何故 爲他祇會步步登高 不會從空放下 東家牽犂西家拽耙者 與三十拄杖 何故 爲他祇會從空放下 不會步步登高 山僧恁麽道 還有過也無 衆中莫有點檢得出者麽 若點檢得出 須彌南畔 把手共行 若點檢不出 布袋裏老鵶 雖活如死 上堂 釋迦掩室於摩竭 淨名杜口於毗耶 須菩提唱無說而顯道 釋梵絕眎聽而雨華 大衆 這一隊不唧𠺕漢 無端將祖父田園私地結契 各據四至界分 方圓長短 一時花擘了也 致令後代兒孫 千載之下 上無片瓦蓋頭 下無卓錐之地 博山當時若見 十字路頭掘箇無底深坑 喚來一時埋却 免見遞相鈍置 何謂如此 不見道 家肥生孝子 國霸有謀臣 上堂 乾闥婆王曾奏樂 山河大地皆作舞 爭如跛脚老雲門 解道臘月二十五 博山今日有條攀條 無條攀例 也要應箇時節 驀拈拄杖 橫按膝上 作撫琴勢云 還有聞絃賞音者麽 良久云 直饒便作鳳凰鳴 畢竟有誰知指法 卓一下 下座

四至界分; 又作四至界畔 田畓或宅地的四方境界

花擘; 分割 花 同華 當中剖開

跛脚老雲門; 釋氏稽古略三曰 雲門往參睦州陳尊宿 拶門而入 州擒住云 道道 師擬議 州推之出曰 秦時𨍏轢鑽 遂掩門 損師一足 師從悟入

 

주후(住後) 상당(上堂) 석가에게 고읍(高揖)하고 미륵에게 불배(不拜)하는 자에게 30주장(拄杖) 준다. 무슨 연고인가 하면 그가 다만 걸음걸음 등고(登高)할 줄만 알고 허공으로 좇아 방하(放下)할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가(東家)에서 쟁기를 끌고(牽犂) 서가(西家)에서 써레를 끄는(拽耙) 자에게 30주장 준다. 무슨 연고인가 하면 그가 다만 허공으로 좇아 방하할 줄만 알고 걸음걸음 등고(登高)할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승이 이렇게 말하매 도리어 허물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중중(衆中)에 점검하여 냄을 얻을 자가 있느냐. 만약 점검해 냄을 얻는다면 수미(須彌) 남반(南畔)에서 손잡고 함께 가려니와 만약 점검해 내지 못한다면 포대(布袋) 속의 노아(老鵶)인지라 비록 살았더라도 죽은 것과 같다. 상당(上堂) 석가가 마갈(摩竭)에서 엄실(掩室)하고 정명(淨名)이 비야(毗耶)에서 두구(杜口)하고 수보리가 무설(無說)을 창()하며 도를 나타내고 석범(釋梵)이 시청(眎聽)을 끊으면서 꽃을 비 내렸다. 대중이여 이 일대(一隊)의 부즉류한(不唧𠺕漢)이 무단(無端)히 조부(祖父)의 전원(田園)을 가지고 사지(私地)에서 결계(結契)해 각기 사지계분(四至界分)에 기대어() 방원장단(方圓長短)을 일시에 화벽(花擘)했다. 후대의 아손으로 하여금 천재지하(千載之下)에 위로는 머리를 덮을 편와(片瓦)도 없고 아래론 송곳 세울 땅도 없게 함에 이르렀다(). 박산(博山; 悟本)이 당시에 만약 보았더라면 십자로두(十字路頭)에 저() 바닥 없는 심갱(深坑)을 파서() 불러와 일시에 매각(埋却)해 체상(遞相; 호상) 둔치(鈍置)함을 봄을 면했겠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이르느냐 하면 보지 못하느냐, 집이 기름지면() 효자가 나고 나라가 패자(霸者)가 되면 모신(謀臣)이 있다. 상당(上堂) 건달바왕(乾闥婆王)이 일찍이 주악(奏樂)하매 산하대지가 모두 작무(作舞)했거니와 어찌() 절름발이 노운문(跛脚老雲門)이 납월 25라고 말할 줄 앎과 같겠는가. 박산(博山)이 금일 조문이 있으면 조문을 당기고(有條攀條) 조문이 없으면 예문을 당기나니(無條攀例) 또한 저() 시절에 응하고자 함이다. 갑자기() 주장자를 잡아 슬상(膝上)에 횡안(橫按)하고 무금세(撫琴勢)를 짓고 이르되 도리어 문현(聞絃; 거문고줄을 퉁기는 소리를 듣다)하고 상음(賞音)할 자가 있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직요(直饒) 바로 봉황의 울음을 짓더라도 필경 누가 있어 지법(指法)을 알겠는가. 한 번 치고 하좌했다.

四至界分; 또 사지계반(四至界畔)으로 지음. 전답이나 혹 택지의 사방의 경계.

花擘; 분할이니 화()는 화()와 같음. 당중(當中)하여 부개(剖開; 쪼개 엶).

跛脚老雲門; 석씨계고략3에 가로되 운문이 목주 진존숙(陳尊宿)을 왕참(往參)하여 찰문(拶門; 문을 핍박)하여 들어가자 목주가 잡아 머물게 하고 이르되 말하라, 말하라.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목주가 그를 밀쳐 내면서 가로되 진시(秦時)의 탁력찬(𨍏轢鑽)이로구나. 드디어 문을 닫았는데 스님이 한 발이 손상되었고 스님이 좇아 오입(悟入)했다.

 

慶元府育王大圓遵璞禪師

福州人 幼同玉泉懿問道圓悟 數載後還里 佐懿於莆中祥雲 紹興甲寅 大慧居洋嶼 師往訊之 入室次 慧問三聖興化出不出 爲人不爲人話 你道這兩箇老漢 還有出身處也無 師於慧膝上打一拳 慧曰 祇你這一拳 爲三聖出氣 爲興化出氣 速道速道 師擬議 慧便打 復謂曰 你第一不得忘了這一棒 後因慧室中問僧曰 德山見僧入門便棒 臨濟見僧入門便喝 雪峯見僧入門便道是甚麽 睦州見僧便道現成公案 放你三十棒 你道這四箇老漢 還有爲人處也無 僧曰 有 慧曰 劄 僧擬議 慧便喝 師聞遽領微旨 大慧欣然許之

 

경원부(慶元府) 육왕(育王) 대원(大圓) 준박선사(遵璞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어릴 적에 옥천의(玉泉懿; 曇懿)와 함께 원오(圓悟)에게 도를 물었다. 몇 해 후 향리(鄕里)로 돌아와 보중(莆中) 상운(祥雲)에서 의()를 보좌(輔佐)했다. 소흥(紹興) 갑인(甲寅; 1134) 대혜(大慧)가 양서(洋嶼)에 거주하자 스님이 가서 문신(問訊; 訊之)했다. 입실한 차에 대혜가, 삼성(三聖)과 흥화(興化), ()과 불출(不出), 위인(爲人)과 불위인(不爲人) ()를 물었다. 네가 말하라, 이 양개(兩箇)의 노한이 도리어 출신(出身)할 곳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스님이 대혜의 무릎 위에 한 주먹 쳤다. 혜왈(慧曰) 다만 너의 이 한 주먹은 삼성을 위해 출기(出氣)했느냐, 흥화를 위해 출기했느냐. 속도(速道)하라, 속도하라.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대혜가 바로 때렸다. 다시 일러 가로되 너는 첫째 이 1()을 잊어버림(忘了)을 얻지 말아라. 후에 인하여 대혜가 실중에서 중에게 물어 가로되 덕산은 중이 입문함을 보면 바로 방()했고 임제는 중이 입문함을 보면 바로 할()했고 설봉은 중이 입문함을 보면 바로 말하되 이 뭣고, 목주(睦州)는 중을 보면 바로 말하되 현성공안(現成公案)이니 너에게 30방 놓는다. 네가 말하라, 4개 노한이 도리어 위인(爲人)하는 곳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승왈 있습니다. 혜왈(慧曰) 찌르는구나(). 중이 의의(擬議)하자 대혜가 바로 할했다. 스님이 급히() 미지(微旨)를 영회(領會; )했다. 대혜가 흔연(欣然)하며 허가했다.

 

溫州鴈山能仁枯木祖元禪師

七閩林氏子 初謁雪峯預 次依佛心才 皆已機契 及依大慧於雲門庵 夜坐次 睹僧剔燈 始徹證 有偈曰 剔起燈來是火 歷劫無明照破 歸堂撞見聖僧 幾乎當面蹉過 不蹉過 是甚麽 十五年前奇特 依前祇是這箇 慧以偈贈之曰 萬仞崖頭解放身 起來依舊却惺惺 饑餐渴飮渾無事 那論昔人非昔人 紹興乙巳春 出住能仁 上堂 有佛處不得住 踏著秤鎚硬似鐵 無佛處急走過 脚下草深三尺 三千里外 逢人不得錯擧 北斗挂須彌 恁麽則不去也 棒頭挑日月 摘楊華 摘楊華 眼裏瞳人著繡鞋 卓拄杖 下座 上堂 鴈山枯木實頭禪 不在尖新語句邊 背手忽然摸得著 長鯨呑月浪滔天

 

온주(溫州) 안산(鴈山) 능인(能仁) 고목(枯木) 조원선사(祖元禪師)

칠민(七閩)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처음 설봉예(雪峯預)를 참알했고 다음 불심재(佛心才)에게 의지했는데 모두 이미 기계(機契)했다. 및 운문암(雲門庵)에서 대혜(大慧)에게 의지했다. 밤에 좌차(坐次)에 중이 척등(剔燈; 등을 돋우다)함을 보다가() 비로소 철증(徹證)했다. 게가 있어 가로되 등()을 척기(剔起)하매 이 화()/ 역겁의 무명을 조파(照破)했다/ 귀당(歸堂)하여 성승(聖僧)을 당견(撞見)하고서/ 하마터면(幾乎) 당면(當面)에서 차과(蹉過)할 뻔했다/ 차과하지 않으면/ 이 뭣고/ 15년 전에 기특하더니/ 의전(依前)히 다만 이 저개(這箇). 대혜가 게()를 주어() 가로되 만인(萬仞)의 낭떠러지(崖頭)에서 방신(放身)할 줄 알았나니/ 기래(起來)하매 의구히 도리어 성성(惺惺)하다/ 주리면 먹고(饑餐) 목마르면 마시면서 온통() 무사(無事)하나니/ 어찌() 석인(昔人)이 석인이 아님을 논하겠는가. 소흥(紹興) 을사(乙巳; 1149) 봄 출세해 능인(能仁)에 주()했다. 상당(上堂) 유불처(有佛處)엔 머묾을 얻지 말라 하니 칭추(秤鎚)를 답착(踏著)하매 단단하기가 쇠와 같다. 무불처(無佛處)엔 급히 달려 지나가라 하니 각하(脚下)에 풀의 깊이가 3척이다. 3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라 하니 북두(北斗)가 수미(須彌)에 걸렸다. 이러하다면 곧 가지 않는다 하니 방두(棒頭)에 일월을 메었다(). 양화를 따세(摘楊華) 양화를 따세 하니 안리(眼裏)의 동인(瞳人)이 수혜(繡鞋)를 신었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안산(鴈山)의 고목(枯木)의 실두선(實頭禪; 如實한 선)/ 첨신(尖新)한 어구변(語句邊)에 있지 않다/ 배수(背手)로 홀연히 더듬음을 얻으니(摸得著)/ 장경(長鯨)이 달을 삼키고 파랑이 하늘에 넘친다.

 

眞州靈巖東庵了性禪師

上堂 勘破了也 放過一著 是衲僧破草鞋 現修羅相 作女人拜 是野狐精魅 打箇圓相 虛空裏下一點 是小兒伎倆 攔腮贈掌 拂袖便行 正是業識茫茫 無本可據 直饒向黑豆未生已前 一時坐斷 未有喫靈巖拄杖分 敢問大衆 且道爲人節文在甚麽處 還相委悉麽 自從春色來嵩少 三十六峯靑至今 上堂 一葦江頭楊柳春 波心不見昔時人 雪庭要識安心士 鼻孔依然搭上脣 竪起拂子曰 祖師來也 還見麽 若也見得 卽今薦取 其或未然 此去西天路 迢迢十萬餘 僧問 人天交接 如何開示 師曰 金剛手裏八稜棒 曰 忽被學人橫穿凡聖 擊透玄關時 又作麽生 師曰 海門橫鐵柱 問 如何是獨露身 師曰 牡丹華下睡猫兒

 

진주(眞州) 영암(靈巖) 동암(東庵) 요성선사(了性禪師)

상당(上堂) 감파(勘破)했더라도 일착(一著)을 방과(放過)했나니 이는 납승의 해진 짚신이다. 수라상(修羅相)을 나타내고 여인배(女人拜)를 지음은 이 야호(野狐)의 정매(精魅). 저 원상을 짓고(打箇圓相) 허공 속에 일점(一點)을 내림은 이 소아(小兒)의 기량(伎倆)이다. 뺨에다(攔腮) 장을 주고(贈掌) 소매를 떨치고 바로 가더라도 바로() 이 업식이 망망(茫茫)하여 가히 의거할 근본이 없다. 직요(直饒) 흑두(黑豆)가 생기지 아니한 이전(已前)을 향하여 일시에 좌단(坐斷)하더라도 영암(靈巖)의 주장자를 먹을() 분한이 있지 않다. 감히 대중에게 묻나니 그래 말하라, 위인(爲人)하는 절문(節文)이 어느 곳에 있느냐. 도리어 서로 위실(委悉)하느냐. 춘색이 숭소(嵩少)에 옴으로부터 삼십육봉(三十六峯)의 푸름이 여금에 이른다(至今). 상당(上堂) 일위(一葦)의 강두(江頭; 강변)에 양류(楊柳)의 봄이니/ 파도 가운데(波心) 석시(昔時)의 사람이 보이지 않네/ 설정(雪庭)에서 안심(安心)의 사내(; 저본에 로 지었음)를 알고자 한다면/ 비공(鼻孔)이 의연(依然)히 윗입술(上脣)에 실렸다(). 불자를 수기(竪起)하고 가로되 조사가 왔다. 도리어 보느냐. 만약에 견득(見得)했다면 즉금 천취(薦取)하고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여기에서 서천(西天)으로 가는 길이 멀고 멀어 십만여(十萬餘). 승문 인천(人天)이 교접(交接)했으니 어떻게 개시(開示)하시렵니까. 사왈 금강의 손안에 여덟 모의 방이다(八稜棒)이다. 가로되 홀연히 학인이 성범(凡聖)을 횡천(橫穿)하고 현관(玄關)을 격투(擊透)함을 입을 때 또 어떻습니까. 사왈 해문(海門)에 철주(鐵柱)가 가로놓였다. 묻되 무엇이 이 독로(獨露)한 몸입니까. 사왈 모란화(牡丹華) 아래 자는 고양이(猫兒).

 

建康府蔣山一庵善直禪師

德安雲夢人 初參妙喜於回鴈峯下 一日喜問之曰 上座甚處人 師曰 安州人 喜曰 我聞你安州人會廝撲 是否 師便作相撲勢 喜曰 湖南人喫魚 因甚湖北人著鯁 師打筋斗而出 喜曰 誰知冷灰裏 有粒豆爆出 住保寧 上堂 諸佛不曾出世 人人鼻孔遼天 祖師不曾西來 箇箇壁立千仞 高揖釋迦 不拜彌勒 理合如斯 坐斷千聖路頭 獨步大千沙界 不爲分外 若向諸佛出世處會得 祖師西來處承當 自救不了 一生受屈 莫有大丈夫承當大丈夫事者麽 出來與保寧爭交 其或未然 不如拽破好 便下座 一日留守陣丞相俊卿會諸山茶話次 擧有句無句 如藤倚樹公案 令諸山批判 皆以奇語取奉 師最後曰 張打油 李打油 不打渾身只打頭 陳大喜

諸山; 指鄰近諸山住持

打油; 從油缸或其他儲油容器中舀油

 

건강부(建康府) 장산(蔣山) 일암(一庵) 선직선사(善直禪師)

덕안(德安) 운몽(雲夢) 사람이다. 처음 회안봉(回鴈峯) 아래에서 묘희(妙喜)를 참()했다. 어느 날 묘희가 물어 가로되 상좌는 어느 곳(甚處) 사람이냐. 사왈 안주(安州) 사람입니다. 희왈(喜曰) 내가 듣기로 너희 안주 사람은 시박(廝撲; 相撲이니 씨름)할 줄 안다고 하던데 그런가. 스님이 바로 상박세(相撲勢)를 지었다. 희왈 호남 사람이 물고기를 먹었는데 무엇으로 인해 호북 사람이 가시가 박혔는가(著鯁). 스님이 근두를 짓고(打筋斗) 나갔다. 희왈 누가 찬 재 속에 입두(粒豆; 알콩)가 터져 나옴이 있는 줄 알겠는가. 보녕(保寧)에 주()했다. 상당(上堂) 제불이 일찍이 출세하지 않아도 사람마다 비공(鼻孔)이 요천(遼天)하고 조사가 일찍이 서래하지 않아도 개개가 벽립천인(壁立千仞)이니 석가에게 고읍(高揖)하고 미륵에게 불배(不拜)함은 이치가 합당히 여사(如斯)하며 천성(千聖)의 노두(路頭)를 좌단(坐斷)하고 대천사계(大千沙界)에 독보(獨步)함이 분외(分外)가 되지 않는다. 만약 제불이 출세한 곳을 향해 회득(會得)하고 조사가 서래한 곳에서 승당(承當)한다면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하고 일생 동안 수굴(受屈)하리라. 대장부가 대장부사(大丈夫事)를 승당(承當)할 자가 있지 않느냐. 나와서 보녕(保寧)과 쟁교(爭交; 相撲)하라.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예파(拽破; 끌어 깨뜨림)함의 좋음만 같지 못하다. 바로 하좌했다. 어느 날 유수(留守) 진승상(陣丞相) 준경(俊卿)이 제산(諸山)과 회합(會合; )하여 다화(茶話)하던 차에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이 나무에 기댐과 같다는 공안을 들어 제산으로 하여금 비판(批判)하게 했다. 모두 기어(奇語)를 취해 받들었다. 스님이 최후에 가로되 장이 타유하고(打油) 이가 타유하나니(李打油) 혼신(渾身)을 타()하지 않고 다만 타두(打頭)한다. ()이 크게 기뻐했다.

諸山; 인근 제산의 주지를 가리킴.

打油; 기름 항아리 혹 기타의 기름을 저축하는 용기 가운데로부터 기름을 퍼냄().

 

劒州萬壽自護禪師

上堂 古者道 若人識得心 大地無寸土 萬壽卽不然 若人識得心 未是究竟處 且那裏是究竟處 拈拄杖卓一下曰 甜瓜徹蔕甜 苦瓠連根苦

 

검주(劒州) 만수(萬壽) 자호선사(自護禪師)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만약 사람이 마음을 식득(識得)하면 대지에 촌토(寸土)도 없다. 만수(萬壽)는 곧 그렇지 않나니 만약 사람이 마음을 식득하면 이 구경처(究竟處)가 아니다. 다만() 나리(那裏)가 이 구경처냐. 주장자를 잡아 한 번 치고() 가로되 단 오이는 꼭지까지 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다.

 

潭州大潙了庵景暈禪師

上堂 雲門一曲 臘月二十五 瑞雪飄空 積滿江山塢 峻嶺寒梅華正吐 手把須彌槌 笑打虛空皷 驚起憍梵鉢提 冷汗透身如雨 忿怒阿脩羅王 握拳當胸問云 畢竟是何宗旨 咄 少室峯前 亦曾錯擧

 

담주(潭州) 대위(大潙) 요암(了庵) 경훈선사(景暈禪師)

상당 운문(雲門)의 일곡(一曲)은 납월 25니 서설(瑞雪)이 표공(飄空; 허공에 나부끼다)하고 강산(江山)의 평지()에 적만(積滿)했고 준령(峻嶺)의 차가운 매화(梅華)가 바로 토()한다. 손에 수미추(須彌槌)를 잡아 웃으며 허공고(虛空皷)를 친다. 교범발제(憍梵鉢提)를 경기(驚起)하니 냉한(冷汗)이 비와 같이 투신(透身)하고 분노(忿怒)의 아수라왕이 주먹을 움켜쥐어 당흉(當胸)하고 물어 이르되 필경 이 무슨 종지(宗旨)인가. (). 소실봉전(少室峯前)에서 또한 일찍이 착거(錯擧)했다.

 

臨安府靈隱誰庵了演禪師

上堂 面門拶破 天地懸殊 打透牢關 白雲萬里 饒伊兩頭坐斷 別有轉身 三生六十劫 也未夢見在 喝一喝 下座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수암(誰庵) 요연선사(了演禪師)

상당(上堂) 면문(面門)을 찰파(拶破; 핍박해 깨뜨리다)해도 천지현수(天地懸殊)며 뇌관(牢關)을 타투(打透)해도 백운만리(白雲萬里). 가령() ()가 양두(兩頭; 兩邊)를 좌단(坐斷)하고 달리 전신(轉身)함이 있더라도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이며 또한 꿈에도 보지 못하여 있다.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泰州光孝寺致遠禪師

上堂 擧女子出定話 乃曰 從來打皷弄琵琶 須是相逢兩會家 佩玉鳴鸞歌舞罷 門前依舊夕陽斜

兩會家; 二大家會同

 

태주(泰州) 광효사(光孝寺) 치원선사(致遠禪師)

상당(上堂)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를 들고 이에 가로되 종래(從來)로 타고(打皷)하고 비파(琵琶)를 희롱함은/ 모름지기 이 상봉하여 두 대가가 모여야 한다(兩會家)/ 패옥(佩玉)과 명란(鳴鸞; 우는 방울)으로 가무(歌舞)를 마치자/ 문 안에 의구히 석양이 비꼈다().

兩會家; 두 대가가 회동(會同).

 

福州雪峯崇聖普慈蘊聞禪師

洪州沈氏子 示衆云 旃檀叢林 旃檀圍繞 師子叢林 師子圍繞 虎狼叢林 虎狼圍繞 荊棘叢林 荊棘圍繞 大衆 四種叢林 合向那一種叢林安居好 若也明得 九十日內 管取箇箇成佛作祖 其或未然 般若叢林歲歲凋 無明荒草年年長

 

복주(福州) 설봉(雪峯) 숭성(崇聖) 보자(普慈) 온문선사(蘊聞禪師)

홍주(洪州) 심씨(沈氏)의 아들이다. 시중(示衆)해 이르되 전단총림(旃檀叢林)에 전단이 위요(圍繞)하고 사자총림에 사자가 위요하고 호랑총림(虎狼叢林)에 호랑이 위요하고 형극총림에 형극이 위요한다. 대중이여 4종 총림에 합당히 어느() 1종의 총림을 향해 안거해야 좋으냐. 만약에 명득(明得)한다면 90일 내 개개가 성불작조함을 관취(管取)하겠지만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반야총림은 세세(歲歲)에 시들고 무명황초(無明荒草)는 연년(年年)에 자라리라.

 

處州連雲道能禪師

漢州人 姓何氏 僧問 鏡淸六刮 意旨如何 師曰 穿却你鼻孔 曰 學人有鼻孔卽穿 無鼻孔又穿箇甚麽 師曰 抱贓叫屈 曰 如何是就毛刮塵 師曰 筠袁䖍吉 頭上插筆 曰 如何是就皮刮毛 師曰 石城虔化 說話廝罵 曰 如何是就肉刮皮 師曰 嘉眉果閬 懷裏有狀 曰 如何是就骨刮肉 師曰 漳泉福建 頭匾如扇 曰 如何是就髓刮骨 師曰 洋瀾左蠡 無風浪起 曰 髓又如何刮 師曰 十八十九 癡人夜走 曰 六刮已蒙師指示 一言直截意如何 師曰 結舌有分

鏡淸六刮; 鏡淸問風穴六刮 一如何是就毛刮塵 二如何是就皮刮毛 三如何是就肉刮皮 四如何是就骨刮肉 五如何是就髓刮骨 六只如髓又如何刮 見人天眼目六

虔化; 南朝宋大明五年(461) 析寧都虔化(今東山壩鎭大布村) 置虔化縣 [百度百科]

頭匾如扇; 器之薄者曰匾 又不圓貌 通作扁 三韓生兒 欲其頭匾 壓之以石 [禪關策進註]

洋瀾; 洋瀾湖 位於湖北省鄂州市

 

처주(處州) 연운(連雲) 도능선사(道能禪師)

한주(漢州) 사람이며 성이 하씨(何氏). 승문 경청육괄(鏡淸六刮)은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너의 비공(鼻孔)을 천각(穿却)한다. 가로되 학인이 비공이 있다면 곧 천(穿)하겠지만 비공이 없거늘 또 저() 무엇을 천(穿)합니까. 사왈 장물을 안고 원굴(冤屈; )하다고 부르짖는구나. 가로되 무엇이 이 취모괄진(就毛刮塵; 털로 나아가 티끌을 깎음)입니까. 사왈 균원건길(筠袁䖍吉; 넉 자는 모두 땅 이름)은 두상(頭上)에 삽필(插筆)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취피괄모(就皮刮毛; 가죽으로 나아가 털을 깎음)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석성(石城)과 건화(虔化)에서 설화하며 서로 욕한다(廝罵). 가로되 무엇이 이 취육괄피(就肉刮皮; 살로 나아가 가죽을 깎음)입니까. 사왈 가미과랑(嘉眉果閬; 넉 자는 모두 地名)가슴 속에 문서(文書; )가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취골괄육(就骨刮肉; 뼈로 나아가 살을 깎음)입니까. 사왈 장천(漳泉)과 복건에선 두편여선(頭匾如扇)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취수괄골(就髓刮骨; 수로 나아가 뼈를 깎음)입니까. 사왈 양란(洋瀾)과 좌리(左蠡; 左里地名)엔 바람 없이 파랑이 일어난다. 가로되 수()를 또 어떻게 깎습니까(). 사왈 십팔십구(十八十九) 치인(癡人)이 야주(夜走)한다. 가로되 육괄(六刮)은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만 일언(一言)으로 직절(直截)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결설할 분한이 있다(結舌有分).

鏡淸六刮; 경청이 풍혈에게 6()을 물었음. 1. 무엇이 이 취모괄진(就毛刮塵)입니까. 2. 무엇이 이 취피괄모(就皮刮毛)입니까. 3. 무엇이 이 취육괄피)就肉刮皮)입니까. 4. 무엇이 이 취골괄육(就骨刮肉)입니까. 5. 무엇이 이 취수괄골(就髓刮骨)입니까. 6. 지여(只如) ()를 또 어떻게 괄()합니까. 인천안목6을 보라.

虔化; 남조 송 대명 5(461) 영도 건화(지금의 동산 패진의 대포촌)를 쪼개어 건화현을 두었음 [백도백과].

頭匾如扇; 그릇이 얇은 것을 가로되 편()이며 또 둥글지 않은 모양임. ()으로 지음과 통함. 삼한(三韓)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머리를 편()하게 하고자 돌로 그것을 압박함 [선관책진주].

洋瀾; 양란호(洋瀾湖)니 호북성 악주시에 위치함.

 

臨安府靈隱最庵道印禪師

漢州人 上堂 大雄山下虎 南山鼈鼻虵 等閑撞著 抱賞歸家 若也不惜好手 便與拔出重牙 有麽有麽 上堂 五五二十五 擊碎虛空皷 大地不容針 十方無寸土 春生夏長復何云 甜者甜兮苦者苦 中秋 上堂 擧馬大師與西堂百丈南泉翫月公案 師云 馬大師垂絲千尺 意在深潭 西堂振鬣 百丈擺尾 雖則衝波激浪 未免上他鉤線 南泉自謂躍過禹門 誰知依前落在巨網 卽今莫有絕羅籠出窠臼底麽 也好出來露箇消息 貴知華藏門下 不致寂寥 其或未然 此夜一輪滿 淸光何處無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최암(最庵) 도인선사(道印禪師)

한주(漢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대웅산(大雄山) 아래의 범과 남산의 별비사(鼈鼻虵)를 등한히 당착(撞著)하여 상을 안고(抱賞) 귀가한다. 만약에 호수(好手)를 아끼지 않는다면 바로 중아(重牙)를 발출(拔出)해 주겠다. 있느냐, 있느냐. 상당(上堂) 오오는 이십오니/ 허공고(虛空皷)를 격쇄(擊碎)했다/ 대지에 바늘도 용납하지 않고/ 시방에 촌토(寸土)도 없다/ 춘생하장(春生夏長)하거늘 다시 무엇을 이르겠는가/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중추(中秋) 상당(上堂) 마대사(馬大師)가 서당(西堂)ㆍ백장(百丈)ㆍ남천(南泉)과 더불어 완월(翫月)한 공안을 거()했다. 사운 마대사가 낚싯줄()을 천척(千尺) 드리웠으니 뜻이 심담(深潭)에 있다. 서당은 지느러미를 떨쳤고 백장은 꼬리를 흔들면서() 비록 곧 충파격랑(衝波激浪; 파랑에 부딪치다)했지만 저 구선(鉤線; 낚싯줄)에 오름을 면하지 못했다. 남천은 스스로 이르되 우문(禹門)을 뛰어 지났다 했지만 의전히 거망(巨網)에 떨어져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 즉금 나롱(羅籠)을 끊고 과구(窠臼)를 벗어날 이가 있지 않느냐. 또한 좋게 나와서 저() 소식을 드러내어라. 화장(華藏; 道印)의 문하(門下)가 적료(寂寥)에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자 한다(貴知).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이날 밤 일륜(一輪; 달을 가리킴)이 가득하거늘 청광(淸光)이 어느 곳엔들 없겠는가.

 

建寧府竹原宗元庵主

本郡連氏子 久依大慧 分座西禪 丞相張公浚帥三山 以數院迎之 不就 歸舊里 結茆號衆妙園 宿衲士夫 交請開法 示衆曰 若究此事 如失却鏁匙相似 祇管尋來尋去 忽然撞著 在這裏 開箇鏁了 便見自家庫藏 一切受用 無不具足 不假他求 別有甚麽事 示衆曰 諸方爲人 抽釘㧞楔 解黏去縛 我這裏爲人 添釘著楔 加繩加縛了 送向深潭裏 待他自去理會 示衆曰 主法之人 氣呑宇宙 爲大法王 若是釋迦老子達磨大師出來 也敎伊叉手 向我背後立地 直得寒毛卓竪 亦未爲分外 一日 擧 世尊生下 一手指天 一手指地云 天上天下 唯我獨尊 師乃曰 見怪不怪 其怪自壞 垂語云 這一些子 恰如撞著殺人漢相似 你若不殺了他 他便殺了你

宿衲; 宿德之衲子

; 嘆詞 表示突然明白

 

건녕부(建寧府) 죽원(竹原) 종원암주(宗元庵主)

본군(本郡) 연씨(連氏)의 아들이다. 오래 대혜(大慧)에게 의지했고 서선(西禪)에서 분좌(分座)했다. 승상(丞相) 장공(張公) ()이 삼산(三山)을 통수(統帥; )하면서 몇 사원으로써 맞이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구리(舊里)로 돌아가 결모(結茆)하고 호를 묘원(妙園)이라 했다. 숙납(宿衲)과 사부(士夫)가 교청(交請)하여 개법했다. 시중(示衆)해 가로되 만약 차사(此事)를 궁구(窮究; )하면 마치 쇄시(鏁匙; 열쇠)를 잃어버린 것과 상사(相似)하나니 다만 관대(管帶; )하여 심래심거(尋來尋去)하다가 홀연히 당착(撞著)하매 오(), 이 속에 있었구나. () 자물쇠()를 열고 나서 바로 자가(自家)의 고장(庫藏)을 보매 일체를 수용(受用)하여 구족하지 않음이 없어 남에게 구함을 빌리지 않나니 달리 무슨 일이 있겠는가. 시중(示衆)해 가로되 제방에선 위인(爲人)함이 추정발설(抽釘㧞楔)하고 해점거박(解黏去縛; 붙은 것을 떼고 묶인 것을 제거함)하거니와 나의 이 속에선 위인(爲人)함이 첨정착설(添釘著楔; 못을 더하고 쐐기를 붙임)하고 가승가박(加繩加縛)하고 나서 심담(深潭) 속을 향해 보내어 그가 스스로 이회(理會)를 제거함을 기다린다. 시중(示衆)해 가로되 주법지인(主法之人)은 기()가 우주를 삼키고 대법왕이 되나니 만약 이 석가노자나 달마대사가 나오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차수(叉手)하고 나의 배후(背後)를 향해 입지(立地)하여 바로() 한모(寒毛)가 탁수(卓竪)함을 얻게 하더라도 또한 분외(分外)가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거()했다. 세존이 탄생해 내리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이르되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괴이를 보고 괴이히 여기지 않으면 그 괴이가 저절로 무너진다. 수어(垂語)해 이르되 이 일사자(一些子)는 흡여(恰如) 살인한(殺人漢; 살인자)을 당착(撞著)한 것과 상사()相似하나니 네가 만약 그를 죽여버리지(殺了) 못하면 그가 바로 너를 죽여버린다.

宿衲; 숙덕(宿德)의 납자.

; 탄사(嘆詞)니 돌연히 명백함을 표시.

 

近禮侍者

三山人 久侍大慧 甞默究竹篦話 無所入 一日入室罷 求指示 慧曰 你是福州人 我說箇喻向你 如將名品茘枝 和皮殻一時剝了 以手送在你口裏 祇是你不解呑 師不覺失笑曰 和尙 呑却卽禍事 慧後問師曰 前日呑了底茘枝 祇是你不知滋味 師曰 若知滋味 轉見禍事

 

근례시자(近禮侍者)

삼산(三山) 사람이다. 오래 대혜(大慧)를 시봉했다. 일찍이 죽비화(竹篦話)를 묵구(默究)했으나 소입(所入)이 없었다. 어느 날 입실해 마치자 지시를 구했다. 혜왈(慧曰) 너는 이 복주(福州) 사람이니 내가 저() 비유를 설해 너를 향하겠다. 예컨대() 명품(名品) 여지(茘枝)를 가지고 피각(皮殻; 껍질)까지 일시에 벗기고 나서 손으로써 너의 입속에 보내어 두었으나 다만 이 네가 삼킬 줄 알지 못한다. 스님이 불각에 실소(失笑)하며 가로되 화상, 삼켜버리면 곧 화사(禍事)입니다. 대혜가 후에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전일(前日) 삼킨 여지를 다만 이 네가 자미(滋味)를 알지 못한다. 사왈 만약 자미를 안다면 더욱() 화사(禍事)를 봅니다.

 

溫州淨居尼妙道禪師

延平尙書黃公裳之女 開堂日 乃曰 問話且止 直饒有傾湫之辯倒嶽之機 衲僧門下一點用不著 且佛未出世時 一事全無 我祖西來 便有許多建立 列刹相望 星分派列 以至今日 累及兒孫 遂使山僧於人天大衆前無風起浪 向第二義門通箇消息 語默該不盡底 彌亘大方 言詮說不及處 徧周沙界 通身是眼 覿面當機 電卷星馳 如何湊泊 有時一喝 生殺全威 有時一喝 佛祖莫辨 有時一喝 八面受敵 有時一喝 自救不了 且道那一喝是生殺全威 那一喝是佛祖莫辨 那一喝是八面受敵 那一喝是自救不了 若向這裏薦得 堪報不報之恩 脫或未然 山僧無夢說夢去也 拈起拂子曰 還見麽 若見 被見刺所障 擊禪牀曰 還聞麽 若聞 被聲塵所惑 直饒離見絕聞 正是二乘小果 跳出一步 蓋色騎聲 全放全收 主賓互換 所以道 欲知佛性義 當觀時節因緣 敢問諸人 卽今是甚麽時節 蕩蕩仁風扶聖化 熈熈和氣助昇平 擲拂子 下座 尼問 如何是佛 師曰 非佛 曰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骨底骨董 問 言無展事 語不投機時如何 師曰 未屙已前 墮坑落壍

 

온주(溫州) 정거(淨居) 니묘도(尼妙道) 선사

연평(延平) 상서(尙書) 황공(黃公) ()의 딸이다. 개당일(開堂日) 이에 가로되 문화(問話)는 차지(且止)하고 직요(直饒; 가령) 경추지변(傾湫之辯)과 도악지기(倒嶽之機)가 있더라도 납승문하에선 일점도 쓰지 못한다(用不著). () 부처가 출세하지 아니한 때 일사(一事)도 전무(全無)하거늘 아조(我祖)가 서래하여 바로 허다한 건립이 있어 열찰(列刹)이 상망(相望)하고 성분파열(星分派列)하여 이지(以至; 내지) 금일에 누()가 아손에게 미쳤다. 드디어 산승으로 하여금 인천(人天) 대중 앞에서 무풍기랑(無風起浪)하여 제2의문(第二義門)을 향해 저() 소식을 통하게 했다. 어묵(語默)이 해라(該羅; )하여 다하지 못하는 것()이 두루() 대방(大方)에 뻗쳤고() 언전(言詮)으로 설하여 미치지 못하는 곳에 사계(沙界)에 편주(徧周)했다. 온몸(通身)이 이 눈일지라도 적면(覿面)한 당기(當機)는 전권성치(電卷星馳)이거늘 어떻게 주박(湊泊)하겠는가. 어떤 때의 1()은 생살(生殺)하는 전위(全威)며 어떤 때의 1할은 불조도 분변하지 못하며 어떤 때의 1할은 팔면에서 수적(受敵)하며 어떤 때의 1할은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한다. 차도하라, 어느() 1할이 생살하는 전위(全威)며 어느 1할이 이 불조도 분변하지 못함이며 어느 1할이 이 팔면에서 수적(受敵)함이며 어느 1할이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함이냐. 만약 저리(這裏)를 향해 천득(薦得)한다면 가히() 갚지 못한 은혜를 갚으리라. 탈혹(脫或; 或是)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무몽(無夢)에 설몽(說夢)하여 가겠다. 불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만약 본다면 견자(見刺)의 소장(所障)을 입었다. 선상을 치고 가로되 도리어 듣느냐, 만약 듣는다면 성진(聲塵)의 소혹(所惑)을 입었다. 직요(直饒) 이견절문(離見絕聞)하더라도 바로() 2()의 소과(小果). 일보(一步)를 뛰어 벗어나야 개색개성(蓋色騎聲)하고 전방전수(全放全收)하고 주빈(主賓)이 호환(互換)한다. 소이로 말하되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하라.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즉금은 이 무슨 시절인가. 탕탕(蕩蕩)한 인풍(仁風)은 성화(聖化)를 도우고() 희희(熈熈)한 화기(和氣)는 승평(昇平)을 도운다(). 불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니문(尼問) 무엇이 이 불()입니까. 사왈 비불(非佛)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골저골동(骨底骨董; 骨董과 같음)이다. 묻되 언()은 전사(展事)함이 없고 어()는 투기(投機)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똥 누지 아니한 이전에 타갱낙참(墮坑落壍)했다.

 

平江府資壽尼無著妙總禪師

丞相蘇公頌之孫女也 年三十許 厭世浮休 脫去緣飾 咨參諸老 已入正信 作夏徑山 大慧陞堂 擧藥山初參石頭 後見馬祖因緣 師聞豁然省悟 慧下座 不動居士馮公檝隨至方丈曰 某理會得和尙適來所擧公案 慧曰 居士如何 曰 恁麽也不得囌嚧娑婆訶 不恁麽也不得㗭哩娑婆訶 恁麽不恁麽總不得 囌嚧㗭哩娑婆訶 慧擧似師 師曰 曾見郭象註莊子 識者曰 却是莊子註郭象 慧見其語異 復擧巖頭婆子話問之 師答偈曰 一葉扁舟泛渺茫 呈橈舞棹別宮商 雲山海月都拋却 贏得莊周蝶夢長 慧休去 馮公疑其所悟不根 後過無錫 招至舟中 問曰 婆生七子 六箇不遇知音 祇這一箇 也不消得 便棄水中 大慧老師言 道人理會得 且如何會 師曰 已上供通 竝是詣實 馮公大驚 慧挂牌次 師入室 慧問 古人不出方丈 爲甚麽却去莊上喫油餈 師曰 和尙放妙總過 妙總方敢通箇消息 慧曰 我放你過 你試道看 師曰 妙總亦放和尙過 慧曰 爭奈油餈何 師喝一喝而出 於是聲聞四方

浮休; 莊子刻意 其生若浮 其死若休 謂人生短暫或世情無常

緣飾; 一文飾 二鑲邊加飾 繪飾

郭象; (252 ?-312) 西晉思想家 河南人 字子玄 早歲卽精通老莊 結交王衍等淸談之士 辯才無礙 人稱魏之王弼再世 歷任司徒掾 司空掾 太學博士 黃門侍郞等職 晉惠帝永安元年(304)之後 專致於政治而權勢大振 著有莊子注三十三卷

供通; 供述 陳述

 

평강부(平江府) 자수(資壽) 니무착(尼無著) 묘총선사(妙總禪師)

승상(丞相) 소공(蘇公) ()의 손녀다. 나이 30 가량()세상의 부휴(浮休)에 싫증을 내어 연식(緣飾)을 벗어버리고 제로(諸老)를 자참(咨參)했고 이미 정신(正信)에 들었다. 경산(徑山)에서 작하(作夏; 하안거를 짓다)했다. 대혜(大慧)가 승당(陞堂)하여 약산(藥山)이 처음 석두(石頭)를 참하고 후에 마조를 참견한 인연을 거()했다. 스님이 듣고서 활연(豁然)히 성오(省悟)했다. 대혜가 하좌하자 부동거사(不動居士) 풍공(馮公) ()이 따라 방장에 이르러 가로되 모()가 화상이 아까 든 바 공안을 이회함을 얻었습니다. 혜왈(慧曰) 거사는 어떠한가. 가로되 이러해도 얻지 못하고 소로사바하(囌嚧娑婆訶), 이러하지 않아도 얻지 못하고 실리사바하(㗭哩娑婆訶),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얻지 못한다. 소리실리사바하(囌嚧㗭哩娑婆訶). 대혜가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사왈 일찍이 곽상(郭象)이 장자(莊子)를 주()한 것을 보았는데 식자(識者)가 가로되 도리어 이 장자가 곽상을 주()했다 하더이다. 대혜가 그의 말이 이상함을 보고 다시 암두파자화(巖頭婆子話)를 들어 물었다. 스님이 게로 답해(答偈) 가로되 일엽(一葉) 편주(扁舟)를 묘망(渺茫)에 띄워/ 정요무도(呈橈舞棹)하니 별다른 궁상(宮商)이다/ 운산(雲山)과 해월(海月)을 모두 던져버리고/ 덤으로() 장주(莊周)의 접몽(蝶夢) 장구(長久; )함을 얻었다. 대혜가 휴거(休去)했다. 풍공(馮公)이 그의 소오(所悟)가 불근(不根; 根據가 없음)이라고 의심했다. 후에 무석(無錫)에 이르러() 불러 주중(舟中)에 이르게 하고 문왈 노파가 7()를 낳아 6개는 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했고 다만 이 1개도 또한 소득(消得)하지 못한다 하고 바로 수중(水中)으로 던졌다. 대혜 노사(老師)가 말씀하되 도인(道人)이 이회함을 얻었다 하니 그래 어떻게 이회합니까. 사왈 이상(已上)의 공통(供通)모두() 이 진실로 나아간 것입니다. 풍공이 대경(大驚)했다. 대혜가 괘패(挂牌)한 차에 스님이 입실했다. 혜문(慧問) 고인이 방장을 나가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장상(莊上)으로 가서 유자(油餈)를 먹었는가. 사왈 화상이 묘총(妙總)의 허물을 방면하신다면 묘총이 바야흐로 감히 저() 소식을 통하겠습니다. 혜왈 내가 너의 허물을 방면한다. 네가 시험 삼아 말해 보아라. 사왈 묘총도 또한 화상의 허물을 방면합니다. 혜왈 유자를 어찌하겠는가(爭奈油餈何). 스님이 할로 한 번 할하고 나갔다. 이에 명성이 사방에 알려졌다.

浮休; 장자 각의. 그 생은 부()와 같고 그 사는 휴()와 같다. 인생의 단잠(短暫) 혹 세정(世情)의 무상(無常)을 말함.

緣飾; 1. 문식(文飾). 2. 양변(鑲邊; 거푸집 가)의 가식(加飾). 회식(繪飾).

郭象; (252 ?-312) 서진의 사상가. 하남 사람이며 자가 자현. 젊은 나이에 곧 노장에 정통하였으며 왕연 등 청담지사(淸談之士)와 결교하였으며 변재가 무애했음. 사람들이 일컫기를 위()의 왕필이 재세(再世; 부활)했다 했음. 사도연ㆍ사공연ㆍ태학박사ㆍ황문시랑 등의 직책을 역임했음. 진 혜제 영안 원년(304)의 후에 정치를 마음대로 다하여 권세를 크게 떨쳤음. 저서에 장자주(莊子注) 33권이 있음.

供通; 공술(供述; 진술). 진술.

 

隆興改元 舍人張公孝祥來守是郡 以資壽挽開法 入院 上堂 宗乘一唱 三藏絕詮 祖令當行 十方坐斷 二乘聞之怖走 十地到此猶疑 若是俊流 未言而諭 設使用移星換斗底手段 施攙旗奪皷底機關 猶是空拳 豈有實義 向上一路 千聖不傳 學者勞形 如猿捉影 靈山付囑 俯狥時機 演唱三乘 各隨根器 始於鹿野苑轉四諦法輪 度百千萬衆 山僧今日 與此界他方 乃佛乃祖 山河大地 草木叢林 現前四衆 各轉大法輪 交光相羅 如寶絲網 若一草一木 不轉法輪 則不得名爲轉大法輪 所以道 於一毫端現寶王刹 坐微塵裏轉大法輪 乘時於其中間 作無量無邊廣大佛事 周徧法界 一爲無量 無量爲一 小中現大 大中現小 不動步遊彌勒樓閣 不返聞入觀音普門 情與無情 性相平等 不是神通妙用 亦非法爾如然 於此倜儻分明 皇恩佛恩 一時報足 且道如何是報恩一句 天高羣象正 海闊百川朝

 

융흥(隆興) 개원(改元; 1163) 사인(舍人) 장공(張公) 효상(孝祥)이 이 군()에 와서 다스렸는데() 자수(資壽)로써 당겨() 개법했다. 입원(入院) 상당(上堂) 종승(宗乘)을 일창(一唱)하매 삼장(三藏)이 절전(絕詮)하고 조령(祖令)을 당행(當行)하매 시방을 좌단(坐斷)하나니 2()이 이를 듣고 포주(怖走)하고 10()가 여기에 이르러 오히려 의심하거니와 만약 이 준류(俊流)일진대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다(). 설사(設使) 이성환두(移星換斗)하는 수단을 쓰고() 참기탈고(攙旗奪皷)하는 기관(機關)을 베풀더라도 오히려 이는 공권(空拳)이거늘 어찌 실의(實義)가 있겠는가. 향상(向上)의 일로(一路)는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거늘 학자가 노고하는 형상이 원숭이가 그림자를 잡으려고 함과 같다. 영산(靈山)의 부촉(付囑)은 시기(時機)를 부순(俯狥; 구부려 따름)함이며 3()을 연창(演唱)함은 각기 근기(根器)를 따름이다. 처음()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제법륜(四諦法輪)을 굴려 백천만중(百千萬衆)을 제도했거니와 산승은 금일 차계(此界)와 타방(他方)의 내불내조(乃佛乃祖)ㆍ산하대지ㆍ초목총림과 현전(現前)한 사중(四衆)과 더불어 각기 대법륜을 굴리나니 교광(交光)이 서로 펼쳐() 보사망(寶絲網)과 같다. 만약 일초일목(一草一木)이라도 법륜을 굴리지 못한다면 곧 이름하여 전대법륜(轉大法輪)이라 함을 얻지 못한다. 소이로 말하되 일호단(一毫端)에서 보왕찰(寶王刹)를 나타내고 미진 속에 앉아 대법륜을 굴린다. 탈 때(乘時) 그 중간에 무량무변의 광대한 불사를 지어 법계에 주편(周徧)하나니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어 소중(小中)에 대()를 나타내고 대중(大中)에 소()를 나타낸다. 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미륵누각(彌勒樓閣)에 유희(遊戲; )하고 들음()을 돌이키지() 않고 관음보문(觀音普門)에 든다. ()과 무정(無情)의 성상(性相)이 평등하하나니 이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아니며 또한 법이여연(法爾如然)이 아니다. 여기에서 척당(倜儻; 明悟)하여 분명해야 황은(皇恩)과 불은을 일시에 보은(報恩; )함이 족하다. 차도하라 무엇이 이 보은의 1구인가. 하늘이 높으니 군상(羣象)이 바르고() 바다가 넓으니 백천(百川)이 조종(朝宗; )한다.

 

上堂 擧 雲門示衆云 十五日已前則不問 十五日已後 道將一句來 自代云 日日是好日 師曰 日日是好日 佛法世法盡周畢 不須特地覓幽玄 祇管鉢盂兩度濕 上堂 黃面老人 橫說竪說 權說實說 法說喻說 建法幢 立宗旨 與後人作榜樣 爲甚麽却道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甞說一字 點檢將來 大似抱贓叫屈 山僧今日人事忙冗 且放過一著 便下座 尼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野華開滿路 徧地是淸香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茫茫宇宙人無數 幾箇男兒是丈夫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處處綠楊堪繫馬 家家門首透長安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雪覆蘆華 舟橫斷岸 曰 人境已蒙師指示 向上宗乘事若何 師便打

 

상당(上堂) ()하다. 운문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15일 이전은 곧 묻지 않나니 15일 이후를 1구 말해 가져 오너라. 스스로 대운(代云) 날마다 이 좋은 날이다. 사왈 날마다 이 좋은 날이여, 불법과 세법(世法)을 모두 두루 마쳤다(周畢). 특지(特地) 유현(幽玄)을 찾음을 쓰지() 않고 다만 발우가 두 차례() 젖음()을 상관(相管; )한다. 상당(上堂) 황면노인(黃面老人)이 가로로 설하고 세로로 설하고(橫說竪說) 권을 설하고 실을 설하고(權說實說) 법을 설하고 비유를 설하면서(法說喻說) 법당을 세우고(建法幢) 종지를 세워(立宗旨) 후인을 위해() 방양(榜樣)을 지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처음 녹야원으로 좇아 마침인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두 중간에 일찍이 한 글자(一字)도 설하지 않았다 했는가. 점검하여 가지고 오매 장물을 안고 원굴(冤屈)하다고 부르짖음과 대사(大似)하다. 산승이 금일 인사(人事)가 망용忙冗; 바쁨)하여 다만() 일착(一著)를 방과(放過)했다. 바로 하좌했다. ()가 묻되 무엇이 이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입니까. 사왈 야화(野華)가 피어 길에 가득하니 온 땅(徧地)이 이 청향(淸香)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입니까. 사왈 망망한 우주에 사람이 무수하거니와 몇 개의 남아가 이 장부이더냐.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입니까. 사왈 곳곳의 녹양(綠楊)은 가히() 말을 맬 만하고 집집마다 문수(門首)가 장안을 투과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입니까. 사왈 눈이 노화(蘆華)를 덮었고() 배가 단안(斷岸)에 가로놓였다. 가로되 인경(人境)은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만() 향상종승사(向上宗乘事)는 어떻습니까(若何). 스님이 바로 때렸다.

 

侍郞無垢居士張九成

未第時 因客談楊文公呂微仲諸名儒 所造精妙 皆由禪學而至也 於是心慕之 聞寶印楚明禪師道傳大通 居淨慈 卽之 請問入道之要 明曰 此事唯念念不捨 久久純熟 時節到來 自然證入 復擧趙州栢樹子話 令時時提撕 公久之無省 辭謁善權淸禪師 公問 此事人人有分 箇箇圓成 是否 淸曰 然 公曰 爲甚麽某無箇入處 淸於袖中出數珠 示之曰 此是誰底 公俛仰無對 淸復袖之曰 是汝底 則拈取去 纔涉思惟 卽不是汝底 公悚然 未幾 留蘇氏館 一夕如廁 以栢樹子話究之 聞蛙鳴 釋然契入 有偈曰 春天月夜一聲蛙 撞破乾坤共一家 正恁麽時誰會得 嶺頭脚痛有玄沙 屆明 謁法印一禪師 機語頗契 適私忌 就明靜庵供雲水 主僧惟尙禪師 纔見乃展手 公便喝 尙批公頰 公趨前 尙曰 張學錄何得謗大般若 公曰 某見處祇如此 和尙又作麽生 尙擧馬祖陞堂 百丈卷席話詰之 敘語未終 公推倒卓子 尙大呼 張學錄殺人 公躍起 問傍僧曰 汝又作麽生 僧罔措 公毆之 顧尙曰 祖禰不了 殃及兒孫 尙大笑 公獻偈曰 卷席因緣也大奇 諸方聞擧盡攢眉 臺盤趯倒人星散 直漢從來不受欺 尙答曰 從來高價不饒伊 百戰場中奮兩眉 奪角衝關君會也 叢林誰敢更相欺

學錄; 國子監所屬學官

私忌; 一個人的仇怨 二私家的忌日 指父母及祖父母曾祖父母死日 此指二

 

시랑(侍郞) 무구거사(無垢居士) 장구성(張九成)

등제(登第; )하지 않았을 때 양문공(楊文公; 楊億)ㆍ여미중(呂微仲; 呂大防의 자가 微仲) 여러 명유(名儒)와 객담(客談)함으로 인해 소조(所造; 나아간 바)가 정묘(精妙)했으니 모두 선학(禪學)으로 말미암아 이른지라() 이에 그것을 심모(心慕)했다. 보인(寶印; 楚明) 초명(楚明) 선사가 도를 대통(大通; 善本)에게서 전수(傳受)했고 정자(淨慈)에 거주한다 함을 듣고 곧 가서() 입도지요(入道之要)를 청문(請問)했다. 명왈(明曰) 차사(此事)는 오직 염념(念念)에 불사(不捨)하여 오래오래 순숙(純熟)해야 하나니 시절이 도래하면 자연히 증입(證入)한다. 다시 조주백수자화(趙州栢樹子話)를 들고 시시로 제시(提撕; 參究)하게 했다. ()이 오랫동안 성오(省悟; )가 없었다. 고별하고 선권청(善權淸) 선사를 참알했다. 공문(公問) 차사(此事)는 사람마다 분한이 있고 개개(箇箇)가 원성(圓成)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청왈(淸曰) 그렇다. 공왈(公曰) 무엇 때문에 모()는 저() 입처(入處)가 없습니까. ()이 수중(袖中)에서 수주(數珠)를 내어 보이며 가로되 이것이 이 누구의 것()인가. ()이 면앙(俛仰; 머리를 숙였다가 들다)하며 대답이 없었다. ()이 다시 소매에 넣고(袖之) 가로되 이것은 너의 것()이니 곧 염취(拈取)해 가거라. 겨우 사유에 건너면 곧 이 너의 것이 아니다. ()이 송연(悚然)했다. 미기(未幾)에 소씨관(蘇氏館)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저녁(一夕) 측간에 가서() 백수자화(栢樹子話)를 참구하다가 개구리 울음을 듣고 석연(釋然)히 계입(契入)했다. 게가 있어 가로되 춘천(春天)의 월야(月夜)에 일성(一聲)의 개구리여/ 건곤을 당파(撞破)하니 한가지로() 일가(一家)로다/ 바로 이러한 때 누가 회득(會得)하는가/ 영두(嶺頭)에 발이 아픈(脚痛) 현사(玄沙)가 있다. 천명(天明; )에 이르러() 법인일(法印一) 선사를 참알했는데 기어(機語)가 자못 계합했다. 마침() 사기(私忌)라 명정암(明靜庵)에 나아가 운수(雲水)에게 공양했다. 주승(主僧) 유상선사(惟尙禪師; 雲門宗僧)가 겨우 보자 이에 전수(展手)했다. ()이 바로 할()했다. 유상이 공의 뺨을 쳤다(). 공이 앞으로 나아갔다(). 상왈(尙曰) 장학록(學錄)은 왜 대반야를 비방함을 얻는가. 공왈 모()는 견처가 다만 이와 같습니다만 화상은 또 어떻습니까. 유상이, 마조가 승당하자 백장이 권석(卷席)한 화()를 들어 힐문했다. 서어(敘語)가 마치지도 아니한 전에 공이 탁자(卓子)를 퇴도(推倒)했다. 유상이 크게 부르되 장학록이 살인한다. 공이 뛰어 일어나 방승(傍僧)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또 어떠한가. 중이 망조(罔措)했다. 공이 때리고(毆之) 유상을 돌아보며 가로되 조니(祖禰; 조부와 부)가 마치치() 못해 재앙이 아손에게 미쳤다. 유상이 대소(大笑)했다. 공이 헌게(獻偈)하여 가로되 권석(卷席)의 인연이 또한 대기(大奇)하나니/ 제방에서 문거(聞擧)하고 모두 눈썹을 찌푸린다(攢眉)/ 대반(臺盤)을 적도(趯倒; 차서 넘어뜨림)하매 사람이 별처럼 흩어지는데/ 직한(直漢)은 종래로 속임()을 받지 않는다. 유상이 답왈 종래로 고가(高價)라 그()를 용납하지() 않나니/ 백전장중(百戰場中)에 두 눈썹을 떨쳤다()/ 탈각(奪角; 號角을 뺏다)하고 충관(衝關)함을 그대가 알았나니/ 총림에서 누가 감히 다시 상기(相欺)하겠는가.

學錄; 국자감(國子監) 소속의 학관(學官).

私忌; 1. 개인의 구원(仇怨). 2. 사가(私家)의 기일(忌日). 부모 및 조부모ㆍ증조모의 사일(死日)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紹興癸丑 魁多士 復謁尙於東庵 尙曰 浮山圓鑑云 饒你入得汾陽室 始到浮山門 亦未見老僧在 公作麽生 公叱侍僧曰 何不祇對 僧罔措 公打僧一掌曰 蝦蟆窟裏 果沒蛟龍 丁巳秋 大慧禪師董徑山 學者仰如星斗 公閱其語要 歎曰 是知宗門有人 持以語尙 恨未一見 及爲禮部侍郞 偶參政劉公請慧說法于天竺 公三往不値 暨慧報謁 公見但寒暄而已 慧亦默識之 尋奉祠還里 至徑山 與馮給事諸公議格物 慧曰 公祇知有格物 而不知有物格 公茫然 慧大笑 公曰 師能開諭乎 慧曰 不見小說載 唐人有與安祿山謀叛者 其人先爲閬守 有畫像在焉 明皇幸蜀 見之怒 令侍臣以劒擊其像首 時閬守居陝西 首忽墮地 公聞頓領深旨 題不動軒壁曰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慧始許可

寒暄; 與寒溫意同 指問候冷暖起居等寒溫

奉祠; 一祭祀 二宋代設宮觀使 判官 都監 提擧 提點 主管等職 以安置五品以上不能任事或年老退休的官員等 他們只領官俸而無職事 因宮觀使等職原主祭祀 故亦稱奉祠 見宋史職官志十 [百度敎育漢語] 此指二

格物; 格 至也 大學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소흥(紹興) 계축(癸丑; 1133) 다사(多士)에서 으뜸(; 狀元)이었다. 다시 동암(東庵)에서 유상(惟尙; )을 참알했다. 상왈(尙曰) 부산(浮山) 원감(圓鑑; 法遠의 시호)이 이르되 가령() 네가 분양실(汾陽室)에 입득(入得)한다면 비로소() 부산문(浮山門)에 이르거니와 또한 노승을 보지 못하여 있다. ()은 어떠한가. 공이 시승(侍僧)을 꾸짖으며() 가로되 왜 지대(祇對)하지 않느냐. 중이 망조(罔措)했다. 공이 중을 1() 때리고 가로되 하마(蝦蟆; 청개구리. 두꺼비)의 굴 속인지라 과연 교룡(蛟龍)이 없구나(). 정사(丁巳; 1137) 가을 대혜선사(大慧禪師)가 경산(徑山)을 통솔(統率; )했고 학자가 우러러봄()이 성두(星斗)와 같았다. 공이 그의 어요(語要)를 읽고() 탄왈(歎曰) 이로 알지니 종문에 사람이 있다. 가지고 유상에게 말하되 일견(一見)하지 못했음이 한()입니다. 및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는데 우연히 참정(參政) 유공(劉公)이 대혜를 청해 천축(天竺)에서 설법했다. 공이 세 번 갔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대혜가 보알(報謁; 禮謁을 알림)함에 이르렀다(). 공이 보고서 단지 한훤(寒暄)할 따름이었고 대혜도 또한 묵묵히 인식(認識; )했다. 이윽고 봉사(奉祠)하고 환리(還里; 鄕里로 돌아감)하다가 경산(徑山)에 이르렀다. 풍급사(馮給事)ㆍ여러 공()과 더불어 격물(格物)을 의논했다. 혜왈(慧曰) ()은 격물(格物)이 있는 줄만 알지 물격(物格)이 있는 줄 알지 못합니다. 공이 망연(茫然)했다. 대혜가 크게 웃었다. 공왈(公曰) 스님이 능히 개유(開諭)하시겠습니까. 혜왈 소설(小說)에 실린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당인(唐人)에 안녹산(安祿山)과 모반한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먼저 낭수(閬守; 地名 )가 되었으며 화상(畵像)이 잔재(殘在)해 있었습니다. 명황(明皇; 唐玄宗)이 행촉(幸蜀; 天子車駕가 이르는 곳을 臣民僥倖으로 여겼으므로 이라고 말함)하였다가 이(畵像)를 보고 노해 시신(侍臣)을 시켜 검으로써 그 상수(像首)를 치게 했는데 때에 낭수(閬守)는 섬서(陝西)에 거주했으나 머리가 홀연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공이 듣고서 단박에 심지(深旨)를 깨닫고() 부동헌(不動軒)의 벽에 제()하여 가로되 자소(子韶; 張九成)는 격물(格物)이요/ 묘희(妙喜; 大慧)는 물격(物格)이다/ 1(; 量嗣. 동전을 노끈으로 꿰었는데 동전 1천 개가 1)을 알고자 하느냐/ 양개(兩箇)5백이다. 대혜가 비로소 허가했다.

寒暄; 한온(寒溫)과 뜻이 같음. 냉난과 기거(起居)를 문후(問候)하는 한온을 가리킴.

奉祠; 1. 제사(祭祀). 2. 송대(宋代) 궁관사ㆍ판관ㆍ도감ㆍ제거ㆍ제점ㆍ주관(主管) 등의 직()이니 5품 이상에 능히 임사(任事)하지 못하거나 혹 연로하여 퇴휴(官員)한 관원 등에게 안치함. 그들은 다만 관봉(官俸)을 영수(領受)하지만 직사(職事)는 없음. 궁관사 등의 직은 원래 제사를 주관함으로 인해 고로 또한 명칭이 봉사(奉祠). 송사 직관지10을 보라 [백도교육한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格物; ()은 지(). 대학. 옛의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집을 정제(整齊; )하고 그 집을 정제코자 한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뜻을 정성(精誠; )되게 하고 그 뜻을 정성되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지()를 치()하나니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다.

 

後守邵陽 丁父難 過徑山飯僧 秉鈞者意慧議及朝政 遂竄慧於衡陽 令公居家守服 服除 安置南安 丙子春 蒙恩北還 道次新淦而慧適至 與聯舟劇談宗要 未甞語往事 于氏心傳錄曰 憲自嶺下侍舅氏歸新淦 因會大慧 舅氏令拜之 憲曰 素不拜僧 舅氏曰 汝姑扣之 憲知其甞執卷 遂擧子思中庸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三句以問 慧曰 凡人旣不知本命元辰下落處 又要牽好人入火坑 如何聖賢於打頭一著不鑿破 憲曰 吾師能爲聖賢鑿破否 慧曰 天命之謂性 便是淸淨法身 率性之謂道 便是圓滿報身 修道之謂敎 便是千百億化身 憲得以告 舅氏曰 子拜何辭

丁父難; 丁父憂 父憂 父喪

飯僧; 猶齋僧 設齋食供養僧衆 又作僧齋 施僧 略稱齋 兼指入寺供養或延僧至俗家供養 依受供養僧侶之數目多寡 又有五百僧齋 千僧齋 萬僧齋之別 齋僧且須依僧次延請 禪苑淸規十齋僧儀 齋僧之法 以敬爲宗 但依僧次延迎 不得妄生輕重

秉鈞; 鈞 一制作陶器所用的轉輪 二喩國政 此指二

守服; 服喪 守孝

服除; 守喪期滿

道次; 道路的邊上

舅氏; 舅父 母親的弟兄

中庸; 是一篇論述儒家人性修養的散文 原是小戴禮記第三十一篇 相傳爲子思所作 是一部中國古代討論敎育理論的重要論著 經北宋程顥程頤極力尊崇 南宋朱熹作中庸集注 最終和大學論語孟子 並稱爲四書 [百度百科]

天命之謂性下; 命 猶令也 性 卽理也 率 循也 道 猶路也 [中庸章句大全]

打頭; 起初 開頭 最初之義

 

후에 소양(邵陽)을 다스렸다(). 부난을 당하자(丁父難) 경산(徑山)에 이르러() 반승(飯僧)했다. 병균(秉鈞)한 자의 뜻에 대혜가 의논이 조정(朝政)에 미쳤다 하여 드디어 대혜를 형양(衡陽)으로 내쫓았고() ()으로 하여금 거가(居家)하며 수복(守服)하게 했고 복제(服除)하자 남안(南安)에 안치(安置)했다. 병자(丙子; 1156) 봄 몽은(蒙恩)하여 북으로 귀환했다. 신감(新淦)의 도차(道次)에 대혜가 마침() 이르렀다. 더불어 연주(聯舟)해 종요를 극담(劇談; 暢談)하면서 일찍이 왕사(往事)를 말하지 않았다. 우씨심전록(于氏心傳錄)에 가로되 헌()이 영하(嶺下)로부터 구씨(舅氏; 외삼촌. 張九成)를 모시고 신감(新淦)으로 돌아왔다. 대혜를 만남으로 인해 구씨가 예배하게 했다. 헌왈(憲曰) 본디() 배승(拜僧)하지 않습니다. 구씨가 가로되 너의 고모()도 구문(扣問; )했다. ()이 그()가 일찍이 집권(執卷)한 줄 안지라 드디어 자사(子思) 중용(中庸)의 천명을 일러 성(天命之謂性)이라 하고 솔성을 일러 도(率性之謂道)라 하고 수도를 일러 교(修道之謂敎)라 한다의 3구를 들어() 물었다. 혜왈(慧曰) 범인(凡人)은 이미 본명원신(本命元辰; 본성)의 떨어지는 곳(下落處)을 알지 못하고 또 호인(好人)을 당겨() 화갱(火坑)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하거늘 어찌하여 성현(聖賢)이 타두(打頭)의 일착(一著)을 착파(鑿破)하지 못하는가. 헌왈(憲曰) 오사(吾師)가 능히 성현을 위해 착파하시겠습니까. 혜왈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바로 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며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는 바로 이 원만보신(圓滿報身)이며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는 바로 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이 얻어 고하자 구씨(舅氏)가 가로되 자네가 예배를 왜 사양(辭讓)하는가.

丁父難; 부우(父憂)를 당함. 부우(父憂)는 부상(父喪).

飯僧; 재승(齋僧)과 같음. 재식(齋食)을 베풀어 승중에게 공양함. 또 승재(僧齋)ㆍ시승(施僧)으로 지으며 약칭이 재()니 겸하여 입사하여 공양하거나 혹 승인을 맞아들여 속가에 이르러 공양함을 가리킴. 공양을 받는 승려의 수목(數目)의 다과(多寡)에 의해 또 오백승재(五百僧齋)ㆍ천승재(千僧齋)ㆍ만승재(萬僧齋)의 구별이 있음. 재승은 또 반드시 승차(僧次)에 의해 연청(延請). 선원청규10 재승의. 재승의 법은 경()으로 종()을 삼나니 다만 승차(僧次)에 의해 연영(延迎)하고 망령되이 경중(輕重)을 생기(生起)함을 얻지 못한다.

秉鈞; ()1. 도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바의 전륜(轉輪; 물레). 2. 국정에 비유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守服; 복상(服喪; 喪中 喪服을 입음). 수효(守孝).

服除; 수상(守喪)의 기일이 참(滿).

道次; 도로의 변상(邊上).

舅氏; 구부(舅父)니 모친의 제형(弟兄).

中庸; 이는 1(), 유가(儒家)의 인성(人性)과 수양(修養)을 논술한 산문(散文). 원래 이는 소대예기(小戴禮記) 31편이었고 상전(相傳)하기를 자사(子思)가 지은 것이라 함. 이는 1(), 중국 고대 교육이론을 토론한 중요한 논저(論著). 북송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극력(極力)으로 존숭(尊崇)함을 거쳐 남송 주희가 중용집주(中庸集注)를 지었음. 최종엔 대학ㆍ논어ㆍ맹자와 함께 병칭하여 4()라 했음 [백도백과].

天命之謂性下; ()은 령()과 같고 성()은 곧 리(). ()은 순()이며 도()는 로()와 같음 [중용장구대전].

打頭; 기초(起初)ㆍ개두(開頭)ㆍ최초의 뜻.

 

繼鎭永嘉 丁丑秋丐祠 枉道訪慧於育王 越明年 慧得旨復領徑山 謁公於慶善院曰 某每於夢中必誦語孟 何如 慧擧圓覺曰 由寂靜故 十方世界諸如來心 於中顯現 如鏡中像 公曰 非老師莫聞此論也 其頌黃龍三關曰 我手何似佛手 天下衲僧無口 縱饒撩起便行 也是鬼窟裏走諱不得 我脚何似驢脚 又被黐膠粘著 飜身直上兜率天 已是遭他老鼠藥吐不出 人人有箇生緣處 鐵圍山下幾千年 三灾直到四禪天 這驢猶自在旁邊煞得工夫

三灾; 三災 又作三災劫 慧琳音義二云 三灾有二種 大小各別 皆在減劫 小三灾者 飢饉疫病刀兵 大三灾者 火風水灾 竝在劫末 亦名劫灾

 

이어서() 영가(永嘉)를 진수(鎭守; )했다. 정축(丁丑; 1157) 가을 개사(丐祠; 奉祠請求)하고 왕도(枉道; 繞道)로 육왕(育王)에서 대혜를 심방(尋訪; )했다. 명년(明年)으로 넘어가자() 대혜가 성지(聖旨; )를 얻어 다시 경산(徑山)을 거느렸다. 경선원(慶善院)에서 알공(謁公)하자 가로되 모()가 매번 몽중에 반드시 어맹(語孟; 논어와 맹자)을 외우는데 어떻습니까(何如). 대혜가 거()했다. 원각(圓覺; 원각경)에 가로되 적정(寂靜)을 말미암는 연고로 시방세계의 제여래심(諸如來心)이 가운데에(於中) 현현(顯現)함이 경중(鏡中)의 상()과 같다. 공왈(公曰) 노사(老師)가 아니라면 차론(此論)을 듣지 못합니다. 그가 황룡삼관(黃龍三關)을 송해 가로되 내 손이 불수(佛手)와 어찌 같은가/ 천하 납승이 입이 없다/ 종요(縱饒; 가령) 잡아 일으켜 바로 가더라도(撩起便行)/ 또한 이는 귀굴(鬼窟) 속을 다님이다()함을 얻지 못한다. 내 다리가 여각(驢脚)과 어찌 같으냐/ 이교(黐膠; 끈끈이 풀. 는 끈끈이 리)에 점착(粘著; 붙다)함을 입었다/ 번신(飜身)하여 도솔천에 직상(直上)하더라도/ 이미 이는 저() 노서약(老鼠藥; 늙은 쥐를 죽이는 약)을 만났다()해 내지 못한다. 사람마다 저() 생연처(生緣處)가 있다/ 철위산(鐵圍山) 아래에서 몇 천 년이던가/ 삼재(三灾; 三災)가 사선천(四禪天)에 직도(直到)하나니/ 이 나귀가 아직 스스로 방변(旁邊)에 있다공부를 매우 얻었다(煞得工夫).

三灾; 삼재(三災)와 같음. 3재겁(三災劫)으로 지음. 혜림음의2에 이르되 3재에 2종이 있다. 대소가 각기 다르며 모두 감겁(減劫)에 있다. 소삼재란 것은 기근(飢饉)ㆍ역병(疫病)ㆍ도병(刀兵)이며 대삼재란 것은 화ㆍ풍ㆍ수재다. 모두 겁말에 있으며 또한 이름이 겁재(劫灾).

 

公設心六度 不爲子孫計 因取華嚴善知識 日供其二回食 以飯緇流 又甞供十六大天 而諸位茶杯悉變爲乳 書偈曰 稽首十方佛法僧 稽首一切護法天 我今供養三寶天 如海一滴牛一毛 有何妙術能感格 試借意識爲汝說 我心與佛天無異 一塵纔起大地隔 儻或塵銷覺圓淨 是故佛天來降臨 我欲供佛佛卽現 我欲供天天亦現 佛子若或生狐疑 試問此乳何處來 狐疑卽塵塵卽疑 終與佛天不相似 我今爲汝掃狐疑 如湯沃雪火銷冰 汝今微有疑與惑 鷂子便到新羅國

六度; 六波羅蜜也 波羅蜜 舊譯爲度 三藏法數十九 六度[出六度集經] 一檀那 梵語檀那 華言布施 二尸羅 梵語尸羅 華言性善 謂好行善道 不自放逸 此據義而譯也 正翻止得 謂止惡得善也 又翻爲戒 謂戒能防止身口所作之惡也 三羼提 梵語羼提 華言忍辱 四毘梨耶 梵語毘梨耶 華言精進 五禪那 梵語禪那 華言靜慮 六般若 梵語般若 華言智慧

佛天; 一佛卽天也 佛之德號 二佛與天神也

 

()6(六度)에 마음을 베풀었고 자손을 위해 계산하지 않았다. 인하여 화엄의 선지식을 취해 날마다 그()에게 2회의 음식을 공양하고 치류(緇流; 僧徒)에게 반(; )했다. 또 일찍이 16대천(大天)에게 공양했는데 제위(諸位)의 다배(茶杯)가 모두 젖으로 변화했다. 서게(書偈)해 가로되 시방의 불법승에게 계수(稽首)하고/ 일체의 호법천(護法天)에게 계수합니다/ 내가 이제 삼보천(三寶天)에 공양하나니/ 바다의 일적(一滴)과 소의 일우(一毛)와 같습니다/ 어떤 묘술(妙術)이 있어야 능히 감격(感格; 感動)하는가/ 시험 삼아 의식(意識)을 빌려 너희를 위해 설하리라/ 아심(我心)과 불천(佛天)이 다름이 없나니/ 일진(一塵)이 재기(纔起)하면 대지처럼 격()한다/ 당혹(儻或; 만일 혹) ()이 사라지고() ()이 원정(圓淨)하다면/ 이런 고로 불천(佛天)이 와서 강림(降臨)한다/ 내가 공불(供佛)하려고 하면 불이 곧 나타나고/ 내가 공천(供天)하려고 하면 천이 또한 나타난다/ 불자(佛子)가 만약 혹 호의(狐疑)를 낸다면/ 시문(試問)하나니 이 젖이 어느 곳에서 왔느냐/ 호의(狐疑)하면 곧 진진(塵塵)이 곧 의심하나니/ 마침내 불천(佛天)과 상사하지 않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해 호의(狐疑)를 소제(掃除; )하리니/ (; 熱湯)이 옥설(沃雪; 눈에 대다)하고 불이 소빙(銷冰)함과 같다/ 너희가 이제 조금() ()와 혹()이 있다면/ 새매(鷂子)가 바로 신라국에 이르렀다.

六度; 육바라밀(六波羅蜜; śaḍ-pāramitā). 바라밀은 구역에 도()라 했음. 삼장법수19. 육도(六度) [출육도집경] 1. 단나(檀那; dāna) 범어 단나는 화언(華言)으론 보시임. 2. 시라(尸羅; śīla) 범어 시라는 화언으론 성선(性善)이니 이르자면 선도(善道)를 행하기를 좋아해 스스로 방일하지 않음임. 이것은 뜻에 의거해 번역했음이며 바로 번역하면 지득(止得)이니 이르자면 악을 그치고 선을 얻음임. 또 계()로 번역함. 이르자면 계는 능히 몸과 입으로 짓는 바의 악을 방지함. 3. 찬제(羼提; kṣānti) 범어 찬제는 화언으론 인욕임. 4. 비리야(毗梨耶; vīrya) 범어 비리야는 화언으론 정진임. 5. 선나(禪那; dhyāna) 범어 선나는 화언으론 정려(靜慮). 6. 반야(般若; prajñā) 범어 반야는 화언으론 지혜임.

佛天; 1. 불타가 곧 천이니 불타의 덕호(德號). 2. 불타와 천신.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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