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二十
南嶽下十五世下
龍門遠禪師法嗣
溫州龍翔竹庵士珪禪師
成都史氏子 初依大慈宗雅 心醉楞嚴 逾五秋 南遊謁諸尊宿 始登龍門 卽以平時所得白佛眼 眼曰 汝解心已極 但欠著力開眼耳 遂俾職堂司 一日侍立次 問云 絕對待時如何 眼曰 如汝僧堂中白椎相似 師罔措 眼至晩抵堂司 師理前話 眼曰 閑言語 師於言下大悟 政和末 出世和之天寧 屢遷名刹 紹興間奉詔 開山鴈蕩能仁 時眞歇居江心 聞師至 恐緣法未熟 特過江迎歸方丈 大展九拜 以誘溫人 由是翕然歸敬 未視篆 其徒懼行規法 深夜放火 鞠爲瓦礫之墟 師竟就樹縛屋 陞座示衆云 愛閑不打皷山皷 投老來看鴈蕩山 傑閣危樓渾不見 谿邊茆屋兩三間 還有共相出手者麽 喝一喝 下座 聽法檀施 併力營建 未幾復成寶坊 次補江心
●視篆; 篆 篆文 因印章多用篆文 故轉稱印章寺印爲篆 視篆 於新住持入院時 檢視寺印之謂 禪林於住持退院時 以小軸列記闔山大衆之名 軸尾捺以寺印 又別以片紙貼寺印 納於印籠 託都寺傳予後任之住持 至新住持入寺之日 都寺呈上寺印 新住持開封視閱 稱爲視篆 此法於缺住持之際 可防止盜掛搭等事 蓋仿效官員更替之例 [敕修百丈淸規卷上住持章入院條 象器箋叢軌類]
●投老; 垂老 臨老 投 到 臨
온주(溫州) 용상(龍翔) 죽암(竹庵) 사규선사(士珪禪師)
성도(成都) 사씨(史氏)의 아들이다. 처음 대자종아(大慈宗雅)에게 의지하며 릉엄에 심취(心醉)했다. 5추(秋)를 넘기자(逾) 남유(南遊)하며 여러 존숙을 참알했다. 처음으로 용문(龍門)에 올라 곧 평시에 얻은 바를 불안(佛眼; 淸遠)에게 고백(告白; 白)했다. 안왈(眼曰) 너의 이해(理解; 解)하는 마음은 이미 지극하지만 단지 착력(著力)하여 개안(開眼)함이 모자랄(欠) 따름이다. 드디어 당사(堂司; 維那)를 맡게 했다(俾職). 어느 날 시립(侍立)한 차에 문운(問云) 대대(對待)가 끊어졌을 때 어떻습니까. 안왈(眼曰) 마치 네가 승당(僧堂) 중에서 백추(白椎)함과 상사(相似)하다. 스님이 망조(罔措)했다. 불안이 지만(至晩; 저녁 무렵)에 당사(堂司; 維那寮)에 다다르자 스님이 전화(前話)를 정리(整理)했다. 안왈(眼曰) 쓸데없는(閑) 언어다.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정화(政和; 1111-1117) 말 화(和)의 천녕(天寧)에서 출세했고 여러 차례(屢) 명찰(名刹)로 옮겼다. 소흥(紹興; 1131-1162) 간 봉조(奉詔)하여 안탕(鴈蕩) 능인(能仁)에서 개산(開山)했다. 당시에 진헐(眞歇; 淸了)이 강심(江心)에 거주했는데 스님이 이른다 함을 듣고 연법(緣法)이 미숙(未熟)할까 염려하여 특별히 과강(過江)하여 맞이해 방장으로 돌아와 대전구배(大展九拜; 九拜를 大展)하여 온인(溫人)을 유도(誘導; 誘)했다. 이로 말미암아 흡연(翕然)히 귀경(歸敬)했다. 시전(視篆)하지 아니한 전에 그 도중(徒衆)이 규법(規法)을 행할까 두려워해(懼) 심야에 방화(放火)했고 와력지허(瓦礫之墟)가 되었음을 알렸다(鞠). 스님이 마침내(竟) 나무로 나아가 박옥(縛屋)했다. 승좌하여 시중(示衆)해 이르되 한가함을 좋아해(愛) 고산고(皷山皷)를 치지(打) 않고/ 투로(投老)하여 와서 안탕산(鴈蕩山)을 보았다/ 걸각위루(傑閣危樓; 우뚝한 閣과 높은 樓)는 온통 보이지 않고/ 계변(谿邊)에 모옥(茆屋) 두세 간(間)이다. 도리어 함께 서로 출수(出手)할 자가 있느냐.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청법(聽法)한 단시(檀施; 施主)가 힘을 합쳐(併力) 영건(營建)했고 미기(未幾)에 다시 보방(寶坊; 寺院)을 이루었고 다음 강심(江心)에 보임(補任; 補)했다.
●視篆; 전(篆)은 전문(篆文)이니 인장은 전문을 많이 사용함으로 인해 고로 인장의 사인(寺印)을 전칭(轉稱)하여 전이라 함. 시전(視篆)이란 새 주지가 입원할 때 사인을 검시함을 말함. 선림에서 주지가 퇴원할 때 소축(小軸)으로 합산(闔山; 全山) 대중의 이름을 열기(列記)하고 축미(軸尾)에 사인(寺印)을 날인하고 또 따로 편지(片紙)를 써서 사인을 붙여 인롱(印籠)에 납입하고 도사(都寺)에게 기탁하여 후임 주지에게 전해 줌. 새 주지가 입사하는 날에 이르러 도사가 사인을 정상(呈上)하면 새 주지가 개봉하여 시열(視閱)함을 일컬어 시전(視篆)이라 함. 이 법은 주지가 결(缺)할 즈음에 가히 도괘탑(盜掛搭) 등의 일을 방지함. 대개 관원의 갱체(更替)의 예를 방효(仿效; 모방)했음 [칙수백장청규권상주지장입원조. 상기전총궤류].
●投老; 수로(垂老). 임로(臨老). 투(投)는 도(到)ㆍ림(臨).
上堂曰 萬年一念 一念萬年 和衣泥裏輥 洗脚上牀眠 歷劫來事 祇在如今 大海波濤湧 小人方寸深 拈起拄杖曰 汝等諸人 未得箇入頭 須得箇入頭 旣得箇入頭 須有出身一路始得 大衆 且作麽生是出身一路 良久曰 雪壓難摧㵎底松 風吹不動天邊月 卓拄杖 下座 上堂 萬機不到 眼見色 耳聞聲 一句當堂 頭戴天 脚踏地 你諸人祇知今日是五月初一 殊不知金烏半夜忙忙去 玉兔天明上海東 以拂子擊禪牀 下座 上堂 明明無悟 有法卽迷 諸人向這裏立不得 諸人向這裏住不得 若立則危 若住則瞎 直須意不停玄 句不停意 用不停機 此三者旣明 一切處不須管帶 自然現前 不須照顧 自然明白 雖然如是 更須知有向上事 久雨不晴 咄 上堂 一葉落 天下秋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一塵起 大地收 嘉州打大像 陝府灌鐵牛 明眼漢合作麽生 良久曰 久旱簷頭句 橋流水不流 卓拄杖 下座 上堂 見見之時 見非是見 見猶離見 見不能及 落華有意隨流水 流水無情戀落華 諸可還者 自然非汝 不汝還者 非汝而誰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喝一喝曰 三十年後 莫道能仁敎壞人家男女
상당(上堂)해 가로되 만년(萬年)이 일념(一念)이며 일념이 만년이다. 옷 입은 채(和衣) 진흙 속에 구르고(輥) 발 씻고 침상에 올라 잔다. 역겁(歷劫) 래(來)의 일이 다만 여금에 있다. 대해에 파도가 솟구치고(湧) 소인(小人)의 방촌(方寸)이 깊다. 주장자를 집어 일으켜 가로되 너희 등 제인이 저(箇) 입두(入頭; 悟入)를 얻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저 입두를 얻어야 하고 이미 저 입두를 얻었다면 모름지기 출신(出身; 徹悟)의 일로(始得)가 있어야 비로소 옳다. 대중이여, 그래 무엇이 이 출신의 일로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눈이 눌러도(壓) 간저(㵎底)의 솔을 꺾기(摧) 어렵고 바람이 불어도 천변(天邊)의 달을 움직이기 어렵다.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상당(上堂) 만기(萬機)가 이르지 못하니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다. 일구(一句)가 당(堂; 어떤 책엔 陽으로 지었음)에 당하니 머리로 하늘을 이고 발로 땅을 밟는다. 너희 제인이 다만 금일이 이 5월 초 1인 줄만 알고 금오(金烏)가 반야(半夜)에 망망(忙忙)히 가고 옥토(玉兔)가 천명(天明)에 바다의 동쪽에 오르는 줄 너무 알지 못한다.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밝디밝게 깨침이 없나니 법이 있으면 곧 미(迷)한다. 제인이 이 속을 향해 섬(立)을 얻지 못하고 제인이 이 속을 향해 머묾(住)을 얻지 못한다. 만약 서면 곧 위험하고 만약 머물면 곧 눈먼다. 바로 모름지기 의(意)에 현(玄)을 정류(停留)하지 말고 구(句)에 의(意)를 정류하지 말고 용(用)에 기(機)를 정류하지 말아야 한다. 이 3자(者)를 이미 밝혔다면 일체처에 관대(管帶)를 쓰지(須) 않아도 자연히 현전(現前)하고 조고(照顧)를 쓰지 않아도 자연히 명백하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다시 꼭 향상사(向上事)가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오래 비 오고 개이지 않는구나. 돌(咄). 상당(上堂) 일엽(一葉)이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이니 천 리를 궁구하여 보고자(目) 한다면 다시 일층의 누대(樓臺)에 오르거라. 일진(一塵)이 일어나면 대지를 거두나니 가주(嘉州)에서 대상을 만들었고(打大像) 섬부(陝府)에서 철우를 부었다(灌鐵牛). 명안한(明眼漢)은 합당히 어떠한가. 양구하고 가로되 오랜 가뭄의 첨두구(簷頭句)여,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는다.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상당(上堂) 견(見)을 견(見)할 때 견이 이 견이 아니며 견이 오히려 견을 여의어야 견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릉엄경2). 낙화(落華)는 뜻이 있어 유수(流水)를 따르건만 유수는 낙화를 그리워하는 정(情)이 없다. 모든 가히 돌려주는 것은 자연히 네가 아니거니와 네가 돌려주지 못하는 것은 네가 아니면 누구인가(릉엄경2). 봄이 돌아와도 찾을 곳이 없음을 길이 한탄했더니 차중(此中)에 전입(轉入)하여 온 줄 알지 못했다.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삼십 년 후 능인(能仁; 士珪)이 인가(人家)의 남녀를 무너뜨리게 했다고 말하지 말아라.
上堂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東家點燈 西家暗坐 曰 未審意旨如何 師曰 馬便搭鞍 驢便推磨 僧禮拜 師曰 靈利衲僧 祇消一箇 遂曰 馬搭鞍 驢推磨 靈利衲僧 祇消一箇 縱使東家明點燈 未必西家暗中坐 西來意旨問如何 多口阿師自招禍 僧問 如何是第一義 師曰 你問底是第二義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道無 意旨如何 師曰 一度著虵齩 怕見斷井索 問 鷰子深談實相 善說法要 此理如何 師曰 不及鴈銜蘆 問 如何是佛 師曰 華陽洞口石烏龜 問 魯祖面壁 意旨如何 師曰 金木水火土 羅睺計都星 問 有句無句 如藤倚樹時如何 師曰 作賊人心虛 曰 國師三喚侍者 又作麽生 師曰 打皷弄猢猻 皷破猢猻走 丙寅七月十八日 召法屬長老宗範付後事 次日沐浴 聲鐘集衆 就座 泊然而逝 茶毗日 送者均獲設利 奉靈骨塔于皷山
●羅睺; 指羅睺星 五雜組一曰 今曆家祿命金木水火土五星之外 又有四餘星 一曰紫氣 二曰月孛 三曰羅睺 四曰計都 而羅計二星人多忌之 考歷代天文志 實無此二星也(云云) [五家正宗贊助桀]
●法屬; 同法眷 法門中眷屬之意 或爲共同求道修行者之總稱 又稱同門 同參 道友 道舊 [禪苑淸規六 象器箋稱呼類文疏類]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동가(東家)에서 점등(點燈)하고 서가(西家)에서 암좌(暗坐)했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말은 바로 안장(鞍裝; 鞍)을 싣고(搭) 나귀는 바로 맷돌을 민다(推). 중이 예배했다. 사왈 영리(靈利)한 납승은 다만 일개(一箇)를 소비한다. 드디어 가로되 말은 안장을 싣고 나귀는 맷돌을 민다. 영리한 납승은 다만 일개를 소비한다. 종사(縱使; 設使) 동가에서 밝게 등을 켜더라도 반드시 서가에서 암중(暗中)에 앉지는 않는다. 서래(西來)의 의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구아사(多口阿師)가 스스로 초화(招禍)한다. 승문 무엇이 이 제1의(第一義)입니까. 사왈 네가 물은 것(底)은 이 제2의다. 묻되 구자(狗子)도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말하되 없다(無)고 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한 차례(一度) 뱀에게 물림을 만나면(著虵齩) 끊어진 두레박줄(井索)을 보고 두려워한다. 묻되 연자(鷰子; 제비)가 실상(實相)을 깊이 얘기하고 법요(法要)를 잘 설한다 하니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기러기가 갈대를 묾에 미치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화양동구(華陽洞口)의 석오귀(石烏龜)다. 묻되 노조(魯祖)가 면벽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금(金; 金星)ㆍ목ㆍ수ㆍ화ㆍ토며 라후(羅睺)며 계도성(計都星)이다. 묻되 유구(有句)와 무구(無句)는 등(藤)이 나무에 기댄 것과 같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도적이 되면 인심(人心)이 허전하다(虛). 가로되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북을 치며 호손(猢猻)을 희롱하다가 북이 깨지면 호손이 도주한다. 병인(丙寅) 7월 18일 법속(法屬; 法眷)인 장로 종범(宗範)을 불러 후사를 부촉하고 다음날 목욕하고 종을 소리내어 대중을 소집하고 자리로 나아가 박연(泊然)히 서거했다. 다비일(茶毗日)에 송자(送者)가 균등히 설리(設利)를 획득했고 영골(靈骨)을 받들어 고산(皷山)에 탑을 세웠다.
●羅睺; 라후성(羅睺星)을 가리킴. 오잡조1에 가로되 여금의 역가(曆家)의 녹명(祿命; 사람의 타고난 운명) 금ㆍ목ㆍ수ㆍ화ㆍ토 5성(星) 밖에 또 4여 성이 있다. 1은 가로되 자기(紫氣)며 2는 가로되 월패(月孛)며 3은 가로되 라후(羅睺)며 4는 가로되 계도(計都)인데 라계(羅計) 2성은 사람들이 많이 기피한다. 역대천문지를 상고(詳考)하건대 실로 이 2성이 없다 (운운) [오가정종찬조걸].
●法屬; 법권(法眷)과 같음. 법문 중의 권속의 뜻. 혹은 공동으로 구도하며 수행하는 자의 총칭이 됨. 또 명칭이 동문ㆍ동참ㆍ도우ㆍ도구(道舊) [선원청규6. 상기전칭호류문소류].
南康軍雲居高庵善悟禪師
洋州李氏子 年十一去家 業經得度 有夙慧 聞沖禪師擧武帝問達磨因緣 如獲舊物 遽曰 我旣廓然 何聖之有 冲異其語 勉之南詢 蒙授記於龍門 一日有僧被虵傷足 佛眼問曰 旣是龍門 爲甚麽却被虵齩 師卽應曰 果然現大人相 眼益器之 後傳此語到昭覺 圓悟云 龍門有此僧耶 東山法道未寂寥爾 住後 上堂 少林面壁 懷藏東土西天 歐阜陞堂 充塞四維上下 致使山巍巍而砥掌平 水昏昏而常自淸 華非豔而結空果 風不搖而片葉零 人無法而得咨問 佛無心而更可成 野蔬淡飯延時日 任運隨緣道自靈 畢竟如何 日午打三更
●夙慧; 一早慧 二生來就有的悟性 三佛敎語 指前世所作的善業
●歐阜; 歐山 卽雲居山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고암(高庵) 선오선사(善悟禪師)
양주(洋州)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나이 11에 집을 떠났고(去) 업경(業經; 경전 공부에 종사함)하여 득도(得度)했고 숙혜(夙慧)가 있었다. 충선사(沖禪師)가 무제가 달마에게 물은 인연(武帝問達磨因緣)을 거(擧)함을 듣고 구물(舊物)을 획득함과 같았다. 급히(遽) 가로되 내가 이미 확연(廓然)하거늘 무슨 성(聖)이 있겠는가. 중(冲)이 그 말을 이상히 여겨 남유를 권했고(勉之南詢) 용문(龍門; 淸遠)에서 수기(授記)를 입었다(蒙). 어느 날 어떤 중이 뱀에게 상족(傷足)함을 입었다(被). 불안(佛眼; 淸遠)이 문왈(問曰) 이미 이 용문(龍門)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뱀에게 물림을 입었는가. 스님이 곧 응답(應)해 가로되 과연 대인상(大人相)을 나타내었습니다. 불안이 더욱(益) 법기로 여겼다. 후에 차어(此語)를 전하여 소각(昭覺)에 이르자 원오(圓悟)가 이르되 용문에 이런 중(此僧)이 있었는가. 동산(東山)의 법도(法道)가 적료(寂寥)하지 않을 것이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소림(少林)의 면벽(面壁)은 동토(東土)와 서천(西天)을 회장(懷藏)했고 구부(歐阜; 善悟)의 승당(陞堂)은 사유(四維)와 상하(上下)를 충색(充塞)했다. 산의 외외(巍巍)함으로 하여금 지장(砥掌; 평평한 손바닥)처럼 평평하게 하고 물은 혼혼(昏昏)히 늘 스스로 맑다. 꽃이 아름답지(豔) 않지만 공과(空果)를 맺고(結) 바람은 요동(搖動; 搖)하지 않지만 편엽(片葉)이 떨어진다(零). 사람은 법이 없지만 자문(咨問)함을 얻고 부처는 마음이 없지만 다시 가히 이룬다. 야소(野蔬)와 담반(淡飯)으로 시일을 늘이나니(延) 임운(任運)하여 수연(隨緣)하면서 도가 스스로 신령(神靈; 靈)하다. 필경 어떠한가. 일오에 3경을 친다(日午打三更).
●夙慧; 1. 조혜(早慧; 年少할 때 매우 총명함). 2. 출생하면서 그대로 가진 오성(悟性). 3. 불교어(佛敎語)니 전세에 지은 바의 선업(善業)을 가리킴.
●歐阜; 구산(歐山)이니 곧 운거산(雲居山).
遂寧府西禪文璉禪師
郡之張氏子 上堂 一向恁麽去 直得凡聖路絕 水泄不通 鐵虵鑽不入 鐵鎚打不破 至於千里萬里 鳥飛不度 一向恁麽來 未免灰頭土面 帶水拖泥 唱九作十 指鹿爲馬 非唯孤負先聖 亦乃埋沒己靈 敢問大衆 且道恁麽去底是 恁麽來底是 芍藥華開菩薩面 椶櫚葉散夜叉頭 上堂 諸方浩浩談玄 每日撞鐘打皷 西禪無法可說 勘破燈籠露柱 門前不置下馬臺 免被傍人來借路 若借路 須照顧 脚下若參差 邯鄲學唐步
수녕부(遂寧府) 서선(西禪) 문련선사(文璉禪師)
군(郡)의 장씨(張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일향(一向) 이렇게(恁麽) 가면 바로(直) 범성(凡聖)의 길이 끊기고 수설불통(水泄不通)함을 얻어 철사(鐵虵)가 뚫어도(鑽) 들어가지 못하고 철추(鐵鎚)로 쳐도 부서지지 않고 내지(至) 천 리 만 리에 새가 날아 지나지(度) 못한다. 일향(一向) 이렇게 오면 회두토면(灰頭土面)하고 대수타니(帶水拖泥)함을 면하지 못하며 9를 창(唱)하여 10을 짓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나니 선성(先聖)을 고부(孤負; 저버림)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에 기령(己靈)을 매몰(埋沒)한다. 감히 대중에게 묻나니 차도(且道)하라, 이렇게 가는 것(底)이 옳으냐, 이렇게 오는 것이 옳으냐. 작약꽃이 피니 보살의 얼굴이며 종려(椶櫚) 잎이 흩어지니 야차(夜叉)의 머리다. 상당(上堂) 제방에서 호호(浩浩)히 담현(談玄)하고 매일 종을 두드리고(撞) 북을 치거니와 서선(西禪)은 법을 가히 설함이 없고 등롱(燈籠)과 노주(露柱)를 감파(勘破)한다. 문 앞에 하마대(下馬臺)를 설치하지 않음은 방인(傍人)이 와서 차로(借路)함을 입음을 면함이다. 만약 차로(借路)한다면 꼭 조고(照顧)하나니 각하(脚下)가 만약 참치(參差)하면 한단(邯鄲)에서 당보(唐步)를 배운다.
上堂 心生種種法生 森羅萬像縱橫 信手拈來便用 日輪午後三更 心滅種種法滅 四句百非路絕 直饒達磨出頭 也是眼中著屑 心生心滅是誰 木人𢹂手同歸 歸到故鄕田地 猶遭頂上一鎚 上堂 正月孟春猶寒 直下言端語端 拈起衲僧鼻孔 穿開祖佛心肝 知有者 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 不知有者 誰知當面蹉過 迢迢十萬八千 山僧爲你重說偈言 大衆莫敎孤負 孟春猶寒 僧問 師子未出窟時如何 師曰 爪牙已露 曰 出窟後如何 師曰 龍頭虵尾 曰 出與未出時如何 師曰 正好喫棒 問 以一重去一重卽不問 不以一重去一重時如何 師曰 闍黎有許多工夫
상당(上堂) 마음이 생(生)하면 갖가지 법이 생하나니/ 삼라만상의 종횡(縱橫)한다/ 손 닿는 대로 집어 와서(信手拈來) 바로 쓰나니/ 일륜(日輪)이 오후(午後)에 3경(更)이다. 마음이 멸(滅)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나니/ 사구백비(四句百非)의 길이 끊어졌다/ 직요(直饒; 가령) 달마가 출두(出頭)하더라도/ 또한 이 안중(眼中)에 가루를 붙임이다(著屑). 마음이 생함과 마음이 멸함이 이 누구인가/ 목인(木人)이 휴수(𢹂手; 손잡다)하고 함께 돌아온다/ 고향의 전지(田地)에 귀도(歸到)하자/ 오히려 정상(頂上)에 일추(一鎚)를 만났다. 상당(上堂) 정월의 맹춘(孟春)에 아직 추우니/ 직하(直下)에 언도 단적(端的)하고 어도 단적하다(言端語端)/ 납승의 비공(鼻孔)을 염기(拈起)하고/ 조불의 심간(心肝)을 천개(穿開)하라. 지유(知有)하는 자는 달마가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2조(祖)가 서천(西天)에 가지 않았거니와 지유(知有)하지 못하는 자는 누가 당면(當面)에 차과(蹉過)하는 줄 알겠는가. 멀고 멀어 십만팔천(十萬八千)이다. 산승이 너희를 위해 게언(偈言)을 거듭 설하겠다. 대중은 고부(孤負)하게 하지 말지니 맹춘에 아직 춥다. 승문 사자가 출굴(出窟)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아(爪牙)가 이미 드러났다. 가로되 출굴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용두사미(龍頭虵尾)다. 가로되 출(出)과 미출(未出)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正) 좋게 끽방(喫棒)한다. 묻되 일중(一重)으로써 일중(一重)을 제거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 일중으로써 일중을 제거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리(闍黎)는 허다한 공부(工夫)가 있구나.
隆興府黃龍牧庵法忠禪師
四明姚氏子 十九試經得度 習台敎 悟一心三觀之旨 未能泯跡 徧參名宿 至龍門觀水磨旋轉 發明心要 乃述偈曰 轉大法輪 目前包裹 更問如何 水推石磨 呈佛眼 眼曰 其中事作麽生 師曰 㵎下水長流 眼曰 我有末後一句 待分付汝 師卽掩耳而去 後至廬山 於同安枯樹中 絕食淸坐 宣和間湘潭大旱 禱而不應 師躍入龍淵 呼曰 業畜 當雨一尺 雨隨至 居南嶽 每跨虎出遊 儒釋望塵而拜 住後 上堂 張公喫酒李公醉 子細思量不思議 李公醉醒問張公 恰使張公無好氣 無好氣 不如歸家且打睡 上堂 今朝正月半 有事爲君斷 切忌兩眼睛 被他燈火換
●業畜; 作惡的畜牲
융흥부(隆興府) 황룡(黃龍) 목암(牧庵) 법충선사(法忠禪師)
사명(四明) 요씨(姚氏)의 아들이다. 19에 시경득도(試經得度)했다. 태교(台敎)를 학습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지취를 깨쳤으나 능히 민적(泯跡; 자취를 없앰)하지 못했다. 명숙(名宿)을 편참(徧參)하다가 용문(龍門)에 이르러 수마(水磨)가 선전(旋轉)함을 보다가(觀) 심요(心要)를 발명(發明)했다. 이에 술게(述偈)하여 가로되 대법륜을 굴리면서/ 목전에 포과(包裹)했다/ 다시 여하(如何)를 묻는다면/ 물이 석마(石磨)를 민다(推). 불안(佛眼)에게 보이자(呈) 안왈(眼曰) 그 가운데의 일(其中事)이 어떠한가. 사왈 개울(㵎) 아래 물이 늘(長) 흐릅니다. 안왈 나에게 말후일구(末後一句)가 있어 너에게 분부(分付)함을 기다린다. 스님이 곧 귀를 막고(掩耳) 떠났다. 후에 여산(廬山)에 이르러 동안(同安)의 고수(枯樹) 중에서 음식을 끊고 청좌(淸坐)했다. 선화(宣和; 1119-1125) 간 상담(湘潭)이 대한(大旱; 큰 가뭄)이었다. 기도해도 응하지 않자 스님이 용연(龍淵)에 뛰어들어가 불러 가로되 업축(業畜)아, 마땅히 1척의 비를 내려라. 비가 따라 이르렀다. 남악(南嶽)에 거주하면서 매번 범을 타고(跨) 출유(出遊)했다. 유석(儒釋)이 망진(望塵)하고 예배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장공(張公)이 끽주(喫酒)하매 이공(李公)이 취하나니/ 자세히 사량하매 부사의(不思議)하다/ 이공이 주취(酒醉; 醉)에서 깨어나(醒) 장공에게 물으니/ 마침 장공으로 하여금 호기(好氣)가 없게 하였다. 호기가 없으니 귀가하여 다만(且) 타수(打睡; 잠을 자다)함만 같지 못하다. 상당(上堂) 금조(今朝)는 정월 반이니/ 유사(有事)하여 그대를 위해 결단(決斷; 斷)하겠다/ 두 눈동자가/ 저(他) 등화(燈火)와 바뀜(換)을 입음을 절기(切忌)하라.
●業畜; 악을 짓는 축생.
上堂 我有一句子 不借諸聖口 不動自己舌 非聲氣呼吸 非情識分別 假使淨名杜口於毗耶 釋迦掩室於摩竭 大似掩耳偸鈴 未免天機漏泄 直饒德山入門便棒 臨濟入門便喝 若向牧庵門下檢點將來 祇得一橛 千種言 萬般說 祇要敎君自家歇 一任大地虛空 七凹八凸 僧問 如何是佛 師曰 莫向外邊覓 曰 如何是心 師曰 莫向外邊尋 曰 如何是道 師曰 莫向外邊討 曰 如何是禪 師曰 莫向外邊傳 曰 畢竟如何 師曰 靜處薩婆訶 問 大衆臨筵 請師擧唱 師竪起拂子 僧曰 乞師再垂方便 師擊禪牀一下 後示寂 塔于香原洞
상당(上堂) 나에게 일구자(一句子)가 있나니 제성(諸聖)의 입을 빌리지 않고 자기의 혀를 움직이지 않고 성기(聲氣)로 호흡하지 않고 정식(情識)으로 분별하지 않는다. 가사(假使) 정명(淨名)이 비야(毗耶)에서 두구(杜口)하고 석가(釋迦)가 마갈(摩竭)에서 엄실(掩室)하더라도 엄이투령(掩耳偸鈴)과 매우 흡사하고(大似) 천기누설(天機漏泄)을 면하지 못한다. 직요(直饒) 덕산은 입문하면 곧 방(棒)하고 임제는 입문하면 바로 할(喝)하더라도 만약 목암문하(牧庵門下)를 향해 검점(檢點)하여 가지고 온다면 다만 한 말뚝을 얻었다. 천종(千種)의 언(言)과 만반(萬般)의 설(說)은 다만 그대로 하여금 자가(自家)가 쉬게(歇) 함을 요함이니 대지허공(大地虛空)이 칠요팔철(七凹八凸)하는 대로 일임한다. 승문 무엇이 이 불(佛)입니까. 사왈 외변(外邊)을 향해 찾지(覓)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심(心)입니까. 사왈 외변을 향애 찾지(尋)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도(道)입니까. 사왈 외변을 향해 찾지 말아라(討). 가로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외변을 향해 전(傳)하지 말아라.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如何). 사왈 정처(靜處)의 살바하(薩婆訶)다. 묻되 대중이 임연(臨筵)했으니 스님의 거창(擧唱)을 청합니다.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 승왈 스님에게 구걸하오니 방편을 다시 내리십시오(再垂). 스님이 선상을 한 번 쳤다. 후에 시적했고 향원동(香原洞)에 탑을 세웠다.
衢州烏巨雪堂道行禪師
處州葉氏子 依泗州普照英禪師得度 去參佛眼 一日聞擧玄沙築著脚指話 遂大悟 住後 上堂 會卽便會 玉本無瑕 若言不會 碓觜生華 試問九年面壁 何如大會拈華 南明恁麽商確 也是順風撒沙 參 上堂 雲籠嶽頂 百鳥無聲 月隱寒潭 龍珠自耀 正當恁麽時 直得石梁忽然大悟 石洞頓爾心休 虛空開口作證 溪北石僧點頭 諸人總在這裏瞌睡 笑殺陝府鐵牛 上堂 佛說三乘十二分 頓漸偏圓 癡人面前 不得說夢 祖師西來 直指人心 見性成佛 癡人面前 不得說夢 臨濟三玄 雲門三句 洞山五位 癡人面前 不得說夢 南明恁麽道 還免得遭人檢責也無 所以古人道 石人機似汝 也解唱巴歌 汝若似石人 雪曲也應和 還有和雪曲底麽 若有 喚來與老僧洗脚
●碓觜; 舂米的杵 末梢略尖如鳥嘴 故名
●商確; 商討 斟酌
●偏圓; 判釋敎理勝劣之用語 偏者 偏僻之理 偏於空乃至中 圓者 圓滿具足一切 就大小乘而言 則小乘爲偏 大乘爲圓 然大乘之中 亦有偏圓之別 如華嚴天台所謂五敎三敎中之圓敎獨爲圓 其他之藏通別三敎(天台) 及終頓二敎(華嚴) 則爲偏敎 [摩訶止觀三下]
구주(衢州) 오거(烏巨) 설당(雪堂) 도행선사(道行禪師)
처주(處州) 섭씨(葉氏)의 아들이다. 사주(泗州) 보조영(普照英) 선사에게 의지해 득도(得度)했다. 가서 불안(佛眼)을 참(參)했다. 어느 날 현사가 발가락을 찔린 화(玄沙築著脚指話)를 거(擧)함을 듣고 드디어 대오(大悟)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알려면(會) 곧바로 알아야 하나니/ 옥은 본래 티가 없다/ 만약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대취(碓觜)에 꽃이 난다/ 시험 삼아 묻나니 구년면벽(九年面壁)이/ 어찌 대회(大會)하여 염화(拈華)함만 같겠는가/ 남명(南明; 道行)의 이러한 상확(商確)은/ 또한 이 순풍에 모래를 뿌림이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구름이 악정(嶽頂)을 덮으니(籠) 백조(百鳥)가 소리가 없고 달이 한담(寒潭)에 숨으니 용주(龍珠)가 저절로 빛난다(耀). 바로(正) 이러한 때를 당해 바로(直) 석량(石梁)이 홀연히 대오(大悟)하고 석동(石洞)이 문득(頓爾) 마음을 쉬고 허공이 개구(開口)하여 작증(作證)하고 계북(溪北)의 석승(石僧)이 점두(點頭)함을 얻는다. 제인이 모두(總) 이 속에 있으면서 갑수(瞌睡)하니 섬부철우(陝府鐵牛)를 너무 웃겼다(笑殺). 상당(上堂) 불타가 삼승(三乘) 십이분(十二分; 십이분교)과 돈점편원(頓漸偏圓)을 설하니 치인(癡人)의 면전에서 설몽(說夢)함을 얻지 못한다. 조사가 서래하여 인심(人心)을 직지(直指)하여 견성하고 성불한다 하니 치인의 면전에서 설몽함을 얻지 못한다. 임제의 3현(玄)과 운문의 3구와 동산(洞山)의 5위(位)는 치인의 면전에서 설몽함을 얻지 못한다. 남명(南明)의 이러한 말은 도리어 사람의 검책(檢責)을 만남(遭)을 면득(免得)하느냐 또는 아니냐. 소이로 고인(古人; 洛浦元安)이 말하되 석인의 기(機)가 너와 같다면/ 또한 파가(巴歌)도 부를 줄 알리라/ 네가 만약 석인과 같다면/ 설곡(雪曲)도 또한 응당 화응하리라. 도리어 설곡에 화응할 이가 있느냐. 만약 있다면 불러 와서 노승을 위해(與) 발을 씻기게 하겠다.
●碓觜; 쌀을 찧는 공이(杵). 말초(末梢)가 조금 뾰족한 게 새부리(鳥嘴)같은지라 고로 이름함.
●商確; 상토(商討; 상의하며 토론함). 짐작.
●偏圓; 교리의 승렬(勝劣)을 판석(判釋)하는 용어임. 편(偏)이란 것은 편벽된 이치며 공(空) 내지 중(中)에 치우침(偏). 원(圓)이란 것은 원만히 일체를 구족함. 대소승으로 나아가 말하면 곧 소승은 편(偏)이 되고 대승은 원(圓)이 됨. 그러나 대승의 가운데 또한 편원의 구별이 있으니 예컨대(如) 화엄과 천태에서 이른 바 5교와 3교 중의 원교(圓敎)만 오직 원(圓)이 되고 기타의 장통별(藏通別) 3교(天台) 및 종돈(終頓)의 2교(華嚴)는 곧 편교가 됨 [마하지관3하].
上堂 通身是口 說得一半 通身是眼 用得一橛 用不到處說有餘 說不到處用無盡 所以道 當用無說 當說無用 用說同時 用說不同時 諸人若也擬議 西峯在你脚底 到國淸 衆請上堂 句亦剗 意亦剗 絕毫絕𣯛處 如山如嶽 句亦到 意亦到 如山如嶽處 絕毫絕𣯛 忽若拶通一線 意句俱到俱不到 俱剗俱不剗 直得三句外絕牢籠 六句外無標的 正當恁麽時 一句作麽生道 傾蓋同途不同轍 相將𢹂手上高臺 上堂 擧 趙州示衆云 老僧除却二時齋粥 是雜用心處 師曰 今朝六月旦 行者擊皷 長老陞堂 你諸人總來這裏雜用心
●傾蓋; 祖庭事苑三曰 傾蓋 駐車也 傾 仄也 ▲祖庭事苑三 家語 孔子之郯 逢程子於塗 傾蓋而語終日 甚相親
상당(上堂) 통신(通身; 온몸)이 이 입이라도 일반(一半; 절반)을 설함을 얻고 통신이 이 눈이라도 일궐(一橛)을 씀(用)을 얻는다. 써서 이르지 못하는 곳에 설하여 나머지가 있고 설하여 이르지 못하는 곳에 써서 다함이 없다. 소이로 말하되 씀에 당해 설함이 없고 설함에 당해 씀이 없고 씀과 설함이 동시(同時)며 씀과 설함이 동시가 아니다. 제인이 만약에 의의(擬議)한다면 서봉(西峯; 道行)이 너희의 발바닥(脚底)에 있다. 국청(國淸)에 이르자 대중의 청으로 상당(上堂)했다. 구(句)도 또한 깎고(剗) 의(意)도 또한 깎아 절호절리처(絕毫絕𣯛處)에 여산여악(如山如嶽)하다. 구(句)도 또한 이르고(到) 의(意)도 또한 이르러 여산여악처(如山如嶽處)에 절호절리(絕毫絕𣯛)다. 홀연히 만약 일선(一線)을 찰통(拶通; 짓눌러 통하다)하면 의구(意句)가 모두(俱) 이르고 모두 이르지 못하고 모두 깎고 모두 깎지 못한다. 3구 밖에 뇌롱(牢籠)을 끊고 6구 밖에 표적(標的)이 없음을 바로 얻으면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경계(傾蓋)하매 동도(同途)에 동철(同轍)이 아니며 상장(相將; 함께)하여 손잡고(𢹂手) 고대(高臺)에 오른다. 상당(上堂) 거(擧)하다. 조주(趙州)가 시중(示衆)해 이르되 노승은 이시재죽(二時齋粥)을 제각(除却)하고는 이 잡용심처(雜用心處)다. 사왈 금조(今朝)는 6월 아침(旦)이니 행자가 격고(擊皷)하고 장로가 승당(陞堂)했고 너희 제인이 모두(總) 이 속에 와서 잡용심(雜用心)한다.
●傾蓋; 조정사원3에 가로되 경개(傾蓋)는 수레를 머묾이니 경(傾)은 기욺이다. ▲조정사원3. 가어(家語) 공자가 담(郯; 나라 이름)으로 가다가 길에서 정자(程子)를 만나 경개(傾蓋)하고 종일 얘기했으며 매우 서로 친했다.
上堂 擧 僧問雲門 如何是驚人句 門曰 響 師曰 雲門答這僧話 不得便休 却皷粥飯氣 以當平生 上堂 黃梅雨 麥秋寒 恁麽會 太無端 時節因緣佛性義 大都須是髑髏乾 示衆 擧 璣和尙問僧 禪以何爲義 衆下語皆不契理 僧請益璣 璣代云 以謗爲義 師曰 三世諸佛是謗 西天二十八祖是謗 唐土六祖是謗 天下老和尙是謗 諸人是謗 山僧是謗 於中還有不謗者也無 談玄說妙河沙數 爭似雙峯謗得親 師示疾 門弟子敎授汪公喬年至 省候 師以後事委之 示以偈曰 識則識自本心 見則見自本性 識得本心本性 正是宗門大病 註曰 爛泥中有刺 莫道不疑好 黎明沐浴更服 加趺而逝 闍維五色設利 煙所至處纍然 齒舌不壞 塔于寺之西
●黃梅雨; 長江中下流域春末夏初黃梅季節下的雨 也稱梅雨
●麥秋; 麥子成熟後的收割季節 一般在孟夏 但具體日期各地不一
●敎授; 事物紀原六曰 隋有州博士 潘徽嘗爲之 唐武德(618-626)初 府郡亦置經學博士 掌以五經敎授 德宗卽位改爲文學 元和(806-820)中廢 宋朝神宗元豐(1078-1085)中 興大學三舍 以經術養天下之才 又於諸大郡府 始各置敎授一人 掌敎導諸生 如大學博士 亦隋州博士之職也 [大慧書栲栳珠]
●省候; 探望問候
상당(上堂) 거(擧)하다. 중이 운문(雲門)에게 묻되 무엇이 이 경인구(驚人句)입니까. 문왈(門曰) 향(響). 사왈 운문이 저승(這僧)에게 답한 화(話)는 편휴(便休)함을 얻지 않고 도리어 죽반기(粥飯氣)를 두드려(皷) 평생에 당하였다. 상당(上堂) 황매우(黃梅雨)의/ 맥추(麥秋)에 춥다/ 이렇게 이회한다면/ 너무 무단하다(太無端)/ 시절인연의 불성의 뜻은/ 대도(大都; 대개) 꼭 이 촉루(髑髏)가 말라야(乾) 한다. 시중(示衆) 거(擧)하다. 기화상(璣和尙)이 중에게 묻되 선(禪)은 무엇으로써 뜻을 삼느냐. 대중이 하어(下語)했으나 모두 이치에 계합하지 못했다. 중이 기(璣)에게 청익하자 기가 대운(代云) 방(謗; 誹謗)으로써 뜻을 삼는다. 사왈 삼세제불도 이 방(謗)이며 서천 28조도 이 방이며 당토 6조도 이 방이며 천하 노화상도 이 방이며 제인도 이 방이며 산승도 이 방이다. 어중(於中)에 도리어 방(謗)이 아닌 자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담현설묘(談玄說妙)가 하사수(河沙數)지만 쌍봉(雙峯; 道行)의 방(謗)이 친(親)함을 얻음과 어찌 같겠는가(爭似). 스님이 시질(示疾)하자 문제자(門弟子)와 교수(敎授) 왕공(汪公) 교년(喬年)이 이르러 성후(省候)했다. 스님이 후사(後事)를 맡기고(委之) 게를 보여 가로되 아는 것(識)은 곧 본심을 앎이며/ 보는 것(見)은 곧 자기의 본성을 봄이다/ 본심과 본성을 식득(識得)함이/ 바로(正) 이 종문의 대병(大病)이다. 주왈(註曰) 문드러진(爛) 진흙 속에 가시가 있나니 의심하지 않음이 좋다고 말하지 말아라. 여명(黎明)에 목욕하고 경의(更服)하고 가부(加趺)하고 서거했다. 사유(闍維)하매 오색 설리(設利)가 연기가 이르는 곳에 누연(纍然; 얽히다)했고 치설(齒舌)이 무너지지 않았다. 사원의 서쪽에 탑을 세웠다.
●黃梅雨; 장강 중하류(中下流) 지역에 춘말하초(春末夏初) 황매계절(黃梅季節)에 내리는 비니 또 명칭이 매우(梅雨).
●麥秋; 보리가 성숙한 후의 거두고 베는 계절이니 일반으로 맹하(孟夏)에 있음. 다만 구체적인 일기(日期)는 각 지역이 일치하지 않음.
●敎授; 사물기원6에 가로되 수(隋)의 유주박사(有州博士)는 반휘가 일찍이 이것이 되었고 당 무덕(618 -626) 초 부군(府郡)에 또한 경학박사를 두어 5경(經)으로써 교수(敎授)함을 관장했다. 덕종이 즉위하자 고쳐 문학이라 했으며 원화(806 -820) 중에 폐했다. 송조는 신종 원풍(1078-1085) 중에 대학 3사(舍)를 일으켜 경술(經術)로써 천하의 인재를 양성했으며 또 여러 큰 군부(郡府)에 비로소 각기 교수 1인을 두어 제생(諸生)의 교도를 장악했으니 대학박사 또 수주박사 같은 직(職)이다 [대혜서고로주].
●省候; 탐망(探望)하며 문후(問候)함.
撫州白楊法順禪師
綿州文氏子 依止佛眼 聞普說 擧 傅大士心王銘云 水中鹽味 色裏膠靑 決定是有 不見其形 師於言下有省 後觀寶藏迅轉 頓明大法 趨丈室作禮 呈偈曰 頂有異峯雲冉冉 源無別派水泠泠 遊山未到山窮處 終被靑山礙眼睛 眼笑而可之 住後 上堂 好事堆堆疊疊來 不須造作與安排 落林黃葉水推去 橫谷白雲風卷回 寒鴈一聲情念斷 霜鐘纔動我山摧 白楊更有過人處 盡夜寒爐撥死灰 忽有箇衲僧出來道 長老少賣弄 得恁麽窮乞相 山僧祇向他道 却被你道著 上堂 我手何似佛手 天上南星北斗 我脚何似驢脚 往事都來忘却 人人盡有生緣 箇箇足方頂圓 大愚灘頭立處 孤月影射深灣 會不得 見還難 一曲漁歌過遠灘 示衆 染緣易就 道業難成 不了目前 萬緣差別 祇見境風浩浩 凋殘功德之林 心火炎炎 燒盡菩提之樹 道念若同情念 成佛多時 爲衆一似爲己 彼此事辦 不見他非我是 自然上敬下恭 佛法時時現前 煩惱塵塵解脫
●冉冉; 一悠長纏綿貌 二漸進地 緩慢地 此指二
●寒鴈; 亦作寒雁 寒天的雁 詩文中常以襯托淒涼的氣氛
●霜鐘; 猶霜鍾 指鐘或鐘聲
무주(撫州) 백양(白楊) 법순선사(法順禪師)
면주(綿州) 문씨(文氏)의 아들이다. 불안(佛眼)에게 의지했다. 보설(普說)을 들었는데 거(擧)하되 부대사(傅大士)의 심왕명(心王銘)에 이르되 수중(水中)의 염미(鹽味; 소금 맛)와/ 색리(色裏)의 교청(膠靑; 아교 중의 청색)은/ 결정코 이 있음이로되/ 그 형상(形相)을 보지 못한다. 스님이 언하에 살핌이 있었다. 후에 보장(寶藏)이 신속히 돎을 관(觀)하다가 대법(大法)을 돈명(頓明)했다. 장실(丈室)로 달려가 작례(作禮)하고 정게(呈偈)해 가로되 산정(山頂; 頂)엔 이봉(異峯)이 있어 구름이 염염(冉冉)하고/ 수원(水源; 源)엔 별파(別派)가 없어 물이 냉랭하다/ 유산(遊山)하면서 산이 다한 곳에 이르지 못하면/ 마침내 청산이 눈동자를 가림을 입으리라. 불안이 웃으며 인가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호사(好事)가 퇴퇴(堆堆)하고 첩첩(疊疊)히 오나니/ 조작(造作)과 안배(安排)를 쓰지(須) 말아라/ 숲에서 떨어진(落林) 황엽(黃葉)은 물이 밀어 가고(推去)/ 골(谷)에 가로놓인 백운은 바람이 말아 돌아온다(卷回)/ 한안(寒鴈)의 일성(一聲)에 정념(情念)이 끊어지고/ 상종(霜鐘)이 겨우 동(動)하매 아산(我山)이 꺾인다(摧)/ 백양(白楊; 法順)이 다시 사람을 초과하는 곳이 있나니/ 밤이 다하도록(盡夜) 한로(寒爐)에서 사회(死灰; 꺼진 재)를 헤친다(撥). 홀연히 어떤(有箇) 납승이 나와 말하되 장로의 소매롱(少賣弄)은 이렇게 궁걸상(窮乞相; 빈궁해 구걸하는 상)을 얻느냐. 산승이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도리어 네가 말해버림(道著)을 입었다. 상당(上堂) 내 손이 불수(佛手)와 어찌 같은가(何似) 하니 천상의 남성(南星)과 북두(北斗)다. 내 다리가 여각(驢脚)과 어찌 같은가 하니 지난 일(往事)을 도래(都來; 전부) 망각했다. 사람마다 모두 생연(生緣)이 있다 하니 개개(箇箇)가 발은 모나고 정수리는 둥글다. 대우(大愚)의 탄두(灘頭; 여울 가)에 선 곳에 고월(孤月)의 그림자가 심만(深灣; 깊은 물굽이)을 쏜다(射). 이회함을 얻지 못하고 보기에도 도리어 어렵나니 일곡(一曲) 어가(漁歌)가 먼 여울(灘)을 지난다. 시중(示衆) 염연(染緣)은 이루기 쉽고(易就) 도업(道業)은 이루기 어렵나니 목전의 만연(萬緣)의 차별을 깨치지 못하면 다만 경풍(境風)이 호호(浩浩)하여 공덕의 숲을 조잔(凋殘; 빼빼 말라 시들어 떨어짐)하고 심화(心火)가 염염(炎炎)하여 보리(菩提)의 나무를 소진(燒盡)함을 보리라. 도념(道念)이 만약 정념(情念)과 같다면 성불(成佛)한 지 다시(多時)며 중인(衆人; 衆)을 위함이 자기를 위함과 일사(一似; 一如)하다면 피차(彼此)의 일을 판비(辦備; 辦)하리라. 남은 그르고 나는 옳다고 보지 않으면 자연히 상경하공(上敬下恭)할 것이며 불법이 시시(時時)로 현전(現前)하여 번뇌의 진진(塵塵)에서 해탈하리라.
●冉冉; 1. 유장(悠長; 길고 오램)하면서 전면(纏綿; 칭칭 얽힘)한 모양. 2. 점진지(漸進地; 점점 나아감). 완만지(緩慢地; 완만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寒鴈; 또 한안(寒雁)으로 지음 추운 날씨의 기러기. 시문(詩文) 중에선 늘 처량(淒涼)한 기분(氣氛)을 친탁(襯托; 돋보이게 하다)함.
●霜鐘; 상종(霜鍾)과 같음. 종 혹은 종소리를 가리킴.
上堂 鷄啼曉月 狗吠枯樁 只可默會 難入思量 看不見處 動地放光 說不到處 天地玄黃 撫城尺六狀紙 元來出在淸江 大衆 分明話出人難見 昨夜三更月到窻 上堂 風吹茆茨屋脊漏 雨打闍黎眼睛濕 恁麽分明却不知 却來這裏低頭立〈時紹燈上座聞之有省 後住婺之廣敎〉 因病示衆 久病未甞推木枕 人來多是問如何 山僧據問隨緣對 窻外黃鸝口更多 只如七尺之軀甚處受病 衆中具眼者 試爲山僧指出病源 衆下語 皆不契 師自拊掌一下 作嘔吐聲 又云 好箇木枕子 師律身淸苦 出入唯杖笠獨行 後示寂 闍維收舍利目睛齒舌數珠 同靈骨塔于寺西
상당(上堂) 닭은 효월(曉月)을 울고/ 개는 고장(枯樁)을 짖나니/ 다만 묵회(默會; 묵묵히 이회)함이 옳고(可)/ 사량(思量)에 들기 어렵다/ 보아도(看) 보지 못하는 곳에/ 땅을 진동(震動; 動)하며 방광(放光)하고/ 설(說)함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천지(天地)가 현황(玄黃)이다/ 무성(撫城)의 척육(尺六)의 장지(狀紙)가/ 원래 청강(淸江)에서 나와 있다. 대중이여 분명히 말해 내지만(話出) 사람이 보기 어렵나니 어젯밤 3경에 달이 창(窻)에 이르렀다. 상당(上堂) 바람이 모자(茆茨; 띠로 이은 지붕)에 부니 옥척(屋脊)이 새고(漏)/ 비가 사리(闍黎)를 때리니 눈동자가 젖었다/ 이렇게 분명하거늘 도리어 알지 못해/ 도리어 이 속에 와서 머리 숙이고 섰구나〈時에 紹燈上座가 이를 듣고 성찰이 있었고 후에 婺의 廣敎에 住했다〉. 병(病)으로 인해 시중(示衆)했다. 오랜 병으로 일찍이 목침(木枕)을 밀지도 못했는데/ 사람이 와서 다분히 이, 어떠하냐고 묻는구나/ 산승이 질문에 의거해 수연(隨緣)하여 대답하는데/ 창 밖의 황리(黃鸝)가 말(口)이 다시 많구나. 지여(只如) 7척(尺)의 몸(軀), 어느 곳이 병을 받는가(受病). 중중(衆中)에 구안자(具眼者)는 시험 삼아 산승을 위해 병원(病源)을 가리켜 내어라. 대중이 하어(下語)했으나 모두 계합하지 못했다. 스님이 스스로 한 번 부장(拊掌)하고 구토성(嘔吐聲)을 지었다. 우운(又云) 호개(好箇)의 목침자(木枕子)다. 스님은 율신(律身; 律己)이 청고(淸苦)했고 출입하면서 오직 장립(杖笠)으로 독행(獨行)했다. 후에 시적(示寂)하자 사유(闍維)하여 사리(舍利)ㆍ목정(目睛)ㆍ치설(齒舌)ㆍ수주(數珠)를 거두어 영골(靈骨)과 함께 사원의 서쪽에 탑을 세웠다.
南康軍雲居法如禪師
丹丘胡氏子 依護國瑞禪師 祝髮登具 徧參淛右諸宗匠 晩至龍門 以平日所證白佛眼 眼曰 此皆學解 非究竟事 欲了生死 當求妙悟 師駭然諦信 一日命主香積 以道業未辦 固辭 眼勉曰 姑就職其中 大有人爲汝說法 未幾晨興開廚門 望見聖僧 契所未證 卽白佛眼 眼曰 這裏還見聖僧麽 師詣前問訊 叉手而立 眼曰 向汝道大有人爲汝說法 住後 上堂 一法若有 毗盧墮在凡夫 萬法若無 普賢失其境界 向這裏有無俱遣 得失兩亡 直得十方諸佛不見 諸人且道 十二時中向甚麽處安身立命 披蓑側立千峯外 引水澆蔬五老前 上堂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秘在形山 雲居又且不然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擲下拄杖云 大衆也須識取
●香積; 一住於上方衆香世界之佛名 參香積國 二指僧道的飯食 此指二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법여선사(法如禪師)
단구(丹丘) 호씨(胡氏)의 아들이다. 호국서(護國瑞) 선사에게 의지해 축발(祝髮)하고 등구(登具)했다. 절우(淛右)의 여러 종장(宗匠)을 편참(徧參)했고 만년에 용문(龍門)에 이르러 평일에 증(證)한 바를 불안(佛眼)에게 고백했다. 안왈(眼曰) 이것은 모두 학해(學解)며 구경사(究竟事)가 아니다. 생사를 깨치려고(欲了) 한다면 마땅히 묘오(妙悟)를 구해야 한다. 스님이 놀라면서(駭然) 체신(諦信; 確信)했다. 어느 날 향적(香積)을 주관(主管; 主)하라고 명하자 도업(道業)을 갖추지(辦) 못하다고 하여 고사(固辭)하자 불안이 권하며(勉) 가로되 잠시(姑) 그 가운데에 취직(就職)하면 대유인(大有人)이 너를 위해 설법하리라. 미기(未幾)에 새벽에 일어나 주문(廚門)을 열고 성승(聖僧)을 바라보다가(望見) 증(證)하지 못한 바를 계증(契證; 契)했다. 곧 불안에게 사뢰었다(白). 안왈(眼曰) 이 속에서 도리어 성승(聖僧)을 보느냐. 스님이 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문신(問訊)하고 차수(叉手)하고 섰다. 안왈(眼曰) 너를 향해 말하되 대유인(大有人)이 너를 위해 설법하리라 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일법(一法)이 만약 있으면 비로(毗盧)가 범부에 떨어져 있고 만법이 만약 없으면 보현이 그 경계를 잃는다. 이 속을 향해 유무(有無)를 모두 보내고 득실(得失)을 양망(兩亡)하면 바로(直) 시방제불이 보이지 않음을 얻는다. 제인은 차도(且道)하라, 12시 중에 어느 곳을 향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느냐. 도롱이를 입고(披蓑) 천봉(千峯) 밖에 측립(側立)하여 물을 당겨 오로(五老; 五老峰) 앞에서 요소(澆蔬; 채소에 물을 대다)한다. 상당(上堂) 건곤의 안과 우주의 사이, 가운데 일보(一寶)가 있어 형산(形山)에 숨겨져 있다(寶藏論). 운거(雲居) 우차(又且) 그렇지 않다. 건곤의 안과 우주의 사이, 가운데 일보가 있다. 주장자를 척하()하고 이르되 대중은 또한 꼭 식취(識取)하라.
●香積; 1. 상방 중향세계(衆香世界)에 거주하는 불명(佛名). 2. 승도(僧道)의 반식(飯食)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南康軍歸宗眞牧正賢禪師
潼川陳氏子 世爲名儒 幼從三聖海澄爲苾蒭 具滿分戒 遊成都 依大慈秀公習經論 凡典籍過目成誦 義亦頓曉 秀稱爲經藏子 出蜀謁諸尊宿 後扣佛眼 一日入室 眼擧殷勤抱得旃檀樹 語聲未絕 師頓悟 眼曰 經藏子漏逗了也 自是與師商確淵奧 亹亹無盡 眼稱善 因手書眞牧二字授之 紹興己巳 歸宗虛席 郡侯以禮請 堅臥不應 寶文李公懋甞問道於師 同屬官强之 乃就 上堂 且第一句如何道 汝等若向世界未成時父母未生時佛未出世時祖師未西來時道得 已是第二句 且第一句如何道 直饒你十成道得 未免左之右之 卓拄杖 下座
●亹亹; 循環不絶貌 又不倦之意
남강군(南康軍) 귀종(歸宗) 진목(眞牧) 정현선사(正賢禪師)
동천(潼川)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대대로(世) 명유(名儒)가 되었다. 어릴 적에 삼성해징(三聖海澄)을 좇아 필추(苾蒭)가 되었고 만분계(滿分戒; 具足戒)를 갖추자(具) 성도(成都)로 유행(遊行)하다가 대자(大慈) 수공(秀公)에게 의지하며 경론을 학습했다. 무릇 경적(典籍)을 과목(過目)하면 외움을 이루었고 뜻(義)도 또한 돈효(頓曉)했다. 수(秀)가 일컫되 경장자(經藏子)라 했다. 촉(蜀)에서 나와 여러 존숙을 참알했고 후에 불안(佛眼)에게 구문(扣問; 扣)했다. 어느 날 입실하자 불안이 거(擧)하되 은근(殷勤)히 전단수(旃檀樹)를 포득(抱得)한다. 어성(語聲)이 단절되지 아니하여서 스님이 돈오했다. 안왈(眼曰) 경장자(經藏子)가 누두(漏逗)하여 마쳤다. 이로부터 스님과 연오(淵奧; 深奥)를 상확(商確; 商討)했고 미미(亹亹)하며 다함이 없었다. 불안이 훌륭하다고(善) 칭찬했고 인하여 진목(眞牧) 2자를 수서(手書)하여 주었다. 소흥(紹興) 기사(己巳; 1149) 귀종(歸宗)이 허석(虛席)이었고 군후(郡侯)가 예(禮)로써 청했으나 견와(堅臥)하여 응하지 않았다. 보문(寶文; 寶文閣) 이공(李公) 무(懋)가 일찍이 스님에게 문도(問道)했는데 속관(屬官)과 함께 강권(强勸; 强)하자 이에 취임(就任; 就)했다. 상당(上堂) 다만(且) 제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너희 등이 만약 세계미성시(世界未成時)ㆍ부모미생시(父母未生時)ㆍ불미출세시(佛未出世時)ㆍ조사미서래시(祖師未西來時)를 향해 말함을 얻더라도 이미 이 제2구다. 다만(且) 제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직요(直饒) 너희가 십성(十成)을 말함을 얻더라도 좌지우지(左之右之)를 면하지 못하다.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亹亹; 순환하면서 단절되지 않는 모양. 또 게으르지 않음의 뜻.
上堂 良久召大衆曰 作麽生 若也擬議 賢上座謾你諸人去也 打地和尙 瞋他秘魔巖主擎箇叉兒 胡說亂道 遂將一摑成虀粉 散在十方世界 還知麽 擧拂子曰 而今却在拂子頭上 說一切智智淸淨 無二無二分 無別無斷故 還聞麽 閻老子知得 乃曰 賢上座 你若相當去 不妨奇特 或不相當 總在我手裏 祇向他道 閻老子你也退步 摸索鼻孔看 擊禪牀 下座 僧問 久默斯要 已泄眞機 學人上來 請師開示 師曰 耳朵在甚麽處 曰 一句分明該萬象 師曰 分明底事作麽生 曰 台星照臨 枯木回春 師曰 換却你眼睛
●台星; 指三台星 共六星 屬太微垣 分上台中台下台 按上中下三台各二星順次爲大熊座 [百度百科]
상당(上堂) 양구하고 대중을 불러 가로되 어떠한가(作麽生). 만약 의의(擬議)한다면 현상좌(賢上座)가 너희 제인을 속여(謾) 가겠다. 타지화상(打地和尙)이, 저(他) 비마암주(秘魔巖主)가 저(箇) 차아(叉兒; 작살)를 받들고(擎) 호설난도(胡說亂道)함을 성내어(瞋) 드디어 이에(將) 한 번 후려갈겨(摑) 양념 가루(虀粉)를 만들어(成) 시방세계에 흩어 놓았으니(散在) 도리어 아느냐. 불자를 들고 가로되 이금(而今)에 도리어 불자두상(拂子頭上)에 있으면서 설하되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청정하여 둘도 없고 둘로 나눔도 없나니 별(別)도 없고 단(斷)도 없는 연고이다. 도리어 듣느냐. 염로자(閻老子)가 지득(知得)하고 이에 가로되 현상좌(賢上座)야, 네가 만약 상당(相當)하여 간다면 기특함에 불방(不妨)하겠지만 혹 상당하지 못하다면 모두(總) 나의 손안에 있다. 다만(祇) 그를 향해 말하되 염로자야, 너도 또한 퇴보(退步)하여 비공(鼻孔)을 모색하여 보아라.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승문 오랫동안 사요(斯要)를 침묵했다가 이미 진기(眞機)를 누설(漏泄; 泄)했습니다.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개시(開示)를 청합니다. 사왈 이타(耳朵; 귓불)가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1구가 분명하여 만상(萬象)을 해라(該羅; 該)합니다. 사왈 분명한 일이 어떠한가. 가로되 태성(台星; 三台星)이 조림(照臨)하니 고목(枯木)이 회춘(回春)했습니다. 사왈 너의 눈동자를 바꾸어버렸다.
●台星; 삼태성(三台星)을 가리킴. 공히 6성(星)이니 태미원(太微垣)에 속했고 상태ㆍ중태ㆍ하태로 구분함. 안험컨대 상중하 3태에 각기 2성(星)이 순차로 대웅좌(大熊座)를 지었음 [백도백과].
安吉州道場正堂明辯禪師
本郡兪氏子 幼事報本蘊禪師 圓顱受具後 謁諸名宿 至西京少林 聞僧擧佛眼以古詩發明罽賓王斬師子尊者話 曰 楊子江頭楊柳春 楊華愁殺渡江人 一聲羗笛離亭晩 君向瀟湘我向秦 師默有所契 卽趨龍門 求入室 佛眼問 從上祖師方冊因緣 許你會得 忽擧拳曰 這箇因何喚作拳 師擬對 眼築其口曰 不得作道理 於是頓去知見 住後 上堂 猛虎口邊拾得 毒虵頭上安排 更不釘樁搖艣 回頭別有生涯 婆子被我勘破了 大悲院裏有村齋
●方冊; 方 古代書寫用的木板 正字通 方 策 版也 大曰策 小曰方 冊 同册 書簡 古代文書用竹簡 編簡名爲冊 後凡簿籍均可稱冊
안길주(安吉州) 도량(道場) 정당(正堂) 명변선사(明辯禪師)
본군(本郡) 유씨(兪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보본온(報本蘊) 선사를 모셨고 원로(圓顱)하여 수구(受具)한 후에 여러 명숙(名宿)을 참알했다. 서경(西京) 소림(少林)에 이르러 중이, 불안(佛眼)이 고시(古詩)로써 계빈왕(罽賓王)이 사자존자(師子尊者)를 참(斬)한 화(話)를 발명(發明)한 것을 거(擧)함을 들었으니(聞) 가로되 양자강두(楊子江頭)의 양류(楊柳)의 봄이여/ 양화(楊華)가 도강인(渡江人)을 수살(愁殺; 너무 근심케 함)한다/ 일성(一聲) 강적(羗笛)이 정자(亭子; 亭)를 떠나는 저녁에/ 그대는 소상(瀟湘)을 향하고 나는 진(秦)을 향한다. 스님이 묵묵히 계합하는 바가 있었다. 곧 용문(龍門)으로 달려가(趨) 입실을 구했다. 불안이 묻되 종상(從上)의 조사의 방책(方冊)의 인연은 네가 회득(會得)함을 허락한다. 홀연히 주먹을 들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무엇으로 인해 주먹이라고 불러 짓느냐. 스님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불안이 그 입을 때리고(築) 가로되 도리를 지음을 얻지 말아라. 이에 지견(知見)을 문득 제거했다(頓去). 주후(住後) 상당(上堂) 맹호의 구변(口邊)에서 습득하고/ 독사의 두상(頭上)에 안배하라/ 다시 정장요로(釘樁搖艣; 말뚝을 박고 노를 젓다)하지 말지니/ 희두(回頭)하매 달리 생애가 있다/ 파자(婆子)가 나의 감파(勘破)를 입고 나서/ 대비원(大悲院) 속에 촌재(村齋)가 있다.
●方冊; 방(方)은 고대 서사용의 목판. 정자통 방(方) 책(策)이다. 판(版)이다. 큰 것을 가로되 책(策)이며 작은 것을 가로되 방(方)이다. 책(冊)은 책(册)과 같음. 서간(書簡)이니 고대 문서용 죽간(竹簡)임. 편간(編簡)을 이름해 책(冊)이니 후에 무릇 부적(簿籍)을 균일하게 가히 책(冊)으로 일컬었음.
上堂 淨五眼 湧金春色晩 得五力 吹落碧桃華 唯證乃知難可測 卓拄杖曰 一片何人得 流經十萬家 上堂 三祖道 但莫憎愛 洞然明白 當時老僧若見 便與一摑 且道是憎邪是愛邪 近來經界稍嚴 不許詭名挾佃 解夏 上堂 十五日已前不得去 少林隻履無藏處 十五日已後不得住 桂子天香和雨露 正當十五日 又且如何 阿呵呵 風流不在著衣多 上堂 擧 僧問投子 大死底人却活時如何 子曰 不許夜行 投明須到 師曰 我疑千年蒼玉精 化爲一片秋水骨 海神欲護護不得 一旦鰲頭忽擎出
●五力; 三十七道品之一 信 精進 勤念 定 慧之五根增長 有治五障之勢力者 一信力 信根增長 破諸邪信者 二精進力 精進根增長 能破身之懈怠者 三念力 念根增長 能破諸邪念者 四定力 定根增長 能破諸亂想者 五慧力 慧根增長 能破三界諸惑者 [法界次第中之下] ▲祖庭事苑七 五力 謂信 精進 念 定 慧 …… 力者 能破煩惱 度衆生 得無生法忍 是名爲力 又天魔外道不能沮壞 故名爲力
●天香; 天上之香 又人中之妙香亦云天香 如人中之好華曰天華
상당(上堂) 5안(眼)을 깨끗이 한다 하니 용금(湧金)하는 춘색이 저물었다(晩). 5력(五力)을 얻는다 하니 벽도화(碧桃華)를 불어 떨어뜨렸다. 오직 증(證)해야 이에 알고 가히 헤아리기 어렵다 하니 주장자를 치고(卓) 가로되 일편(一片)을 어떤(何) 사람이 얻는가, 흘러 십만가(十萬家)를 지난다(經). 상당(上堂) 3조가 말하되 단지 증애(憎愛)하지 않으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다. 당시에 노승이 만약 보았더라면 바로 한 번 후려갈겨 주었겠다. 차도(且道)하라, 이 증인가(憎邪) 이 애인가(愛邪). 근래에 경계(經界)가 조금(稍) 삼엄(森嚴; 嚴)하니 궤명(詭名; 이름을 속이다)하여 협전(挾佃)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하(解夏)에 상당(上堂) 15일 이전(已前)은 거(去)함을 얻지 못하나니 소림(少林)의 척리(隻履; 외짝 신)를 숨길 곳이 없다. 15일 이후는 주(住)함을 얻지 못하나니 계자(桂子) 천향(天香)과 우로(雨露)다. 바로(正) 15일에 당하여선 우차(又且) 어떠한가. 아하하(阿呵呵), 풍류는 착의(著衣; 옷을 입다)가 많음에 있지 않다. 상당(上堂) 거(擧)하다. 중이 투자(投子; 大同)에게 묻되 거의 죽은 사람(大死底人)이 도리어 살아날 때 어떻습니까. 투자가 가로되 야행(夜行)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새거든(投明) 이름을 써라(須到). 사왈 나는 의심하나니 천 년 묵은 창옥정(蒼玉精)이/ 일편(一片)의 추수골(秋水骨)로 변화했다/ 해신(海神)이 보호하고 싶어도 보호함을 얻지 못하고/ 일단(一旦)에 오두(鰲頭)가 홀연히 떠받들고(擎) 나온다.
●五力; 37도품(道品)의 하나. 신(信)ㆍ정진ㆍ근념(勤念)ㆍ정ㆍ혜의 5근(根)이 증장하여 5장(障)에 대치(對治)하는 세력이 있는 것임. 1. 신력(信力) 신근이 증장하여 모든 사신(邪信)을 파괴하는 것. 2. 정진력(精進力) 정진근이 증장하여 능히 몸의 해태를 파괴하는 것. 3. 염력(念力) 염근이 증장하여 능히 모든 사념(邪念)을 파괴하는 것. 4. 정력(定力) 정근이 증장하여 능히 모든 난상(亂想)을 파괴하는 것. 5. 혜력(慧力) 혜근이 증장하여 능히 모든 혹(惑)을 파괴하는 것 [법계차제중지하]. ▲조정사원7. 5력(力) 이르자면 신(信)ㆍ정진ㆍ염(念)ㆍ정(定)ㆍ혜(慧)이다 …… 역(力)이란 것은 능히 번뇌를 깨뜨리고 중생을 제도하며 무생법인을 얻음이니 이를 이름하여 역(力)임. 또 천마와 외도가 능히 저괴(沮壞; 沮는 막을 저. 무너질 저)하지 못하므로 고로 이름하여 역(力)임.
●天香; 천상의 향. 또 인중의 묘향도 또한 이르되 천향이니 인중의 호화(好華)를 가로되 천화(天華)라 함과 같음.
上堂 華開隴上 柳綻堤邊 黃鸎調叔夜之琴 芳草入謝公之句 何必聞聲悟道 見色明心 非唯水上覓漚 已是眼中著屑 擘開胸曰 汝等當觀吾紫磨金色之身 今日則有 明日則無 大似無風起浪 全不知羞 且道今日事作麽生 好箇迷逢達磨 不知誰解承當 僧問 如何是佛 師乃鳴指三下 問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 師曰 橫身三界外 獨脫萬機前 曰 祇如風穴道 長憶江南三月裏 鷓鴣啼處百華香 又作麽生 師曰 說這箇不唧𠺕漢作麽 曰 嫰竹搖金風細細 百華鋪地日遲遲 師曰 你向甚麽處見風穴 曰 眼裏耳裏絕瀟灑 師曰 料掉無交涉
●叔夜; 嵆康(224-263 一作224-262) 字叔夜
상당(上堂) 농상(隴上; 두둑 위)에 꽃이 피고 제변(堤邊; 둑 가)에 버들이 터지고(綻) 황앵(黃鸎; 누런 꾀꼬리)이 숙야(叔夜)의 거문고를 조절하고 방초(芳草)가 사공(謝公)의 구(句)에 든다. 하필이면 소리를 듣다가 오도(悟道)하고 색을 보다가 명심(明心)하겠는가. 수상(水上)에서 물거품을 찾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는 안중(眼中)에 가루를 붙였다. 가슴을 벽개(擘開; 헤쳐 열다)하고 가로되 너희 등은 마땅히 나의 자마금색(紫磨金色)의 몸을 관(觀)하라, 금일은 곧 있지만 명일은 곧 없다 하니 무풍기랑(無風起浪)과 매우 흡사(大似)하고 전혀 수치(羞恥; 羞)를 알지 못했다. 차도(且道)하라, 금일사(今日事)는 어떠한가. 호개(好箇)의 미봉달마(迷逢達磨; 혼미했다가 달마를 만나다)니 누가 이해하여 승당(承當)할지 알지 못하겠네.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이에 세 번 손가락을 울렸다. 묻되 어묵(語默)은 이미(離微)에 건너나니 어떻게 통해야 범하지 않습니까. 사왈 3계(界) 밖에 횡신(橫身)하고 만기(萬機) 전에 독탈(獨脫)하라. 가로되 지여(祇如) 풍혈(風穴)이 말하되 늘 강남의 3월 속을 추억하나니 자고(鷓鴣)가 우는 곳에 백화(百華)가 향기롭다라고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저개(這箇) 부즉류한(不唧𠺕漢)을 설해 무엇하리오. 가로되 눈죽(嫰竹; 고운 대)은 요금(搖金)하고 바람은 세세(細細)하고 백화(百華)는 포지(鋪地; 땅에 깔리다)하고 해는 지지(遲遲)합니다. 사왈 너는 어느 곳을 향해 풍혈을 보느냐. 가로되 안리(眼裏)ㆍ이리(耳裏)에 소쇄(瀟灑; 맑고 깨끗함)가 끊겼습니다. 사왈 요도(料掉)라 교섭이 없다.
●叔夜; 혜강(嵆康; 224-263. 한편으론 224-262로 지음)의 자가 숙야(叔夜)임.
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未過冬至莫道寒 曰 出水後如何 師曰 未過夏至莫道熱 曰 出與未出時如何 師曰 三十年後 不要錯擧 問 如何是佛 師曰 無柴猛燒火 曰 如何是法 師曰 貧做富裝裹 曰 如何是僧 師曰 賣扇老婆手遮日 曰 如何是和尙栗棘蓬 師曰 不答此話 曰 爲甚麽不答 師大笑曰 呑不進 吐不出 問 如何是一喝如金剛王寶劍 師曰 古墓毒虵頭戴角 曰 如何是一喝如踞地師子 師曰 虛空笑點頭 曰 如何是一喝如探竿影草 師曰 石人拍手笑呵呵 曰 如何是一喝不作一喝用 師曰 布袋裏豬頭 曰 四喝已蒙師指示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鋸解秤鎚 隨聲便喝 佛眼忌拈香 龍門和尙闡提潦倒 不信佛法滅除禪道 拶破毗盧向上關 猫兒洗面自道好 一炷沈香爐上然 換手槌胸空懊惱 遂搖手曰 休懊惱 以坐具搭肩上 作女人拜曰 莫怪下房媳婦觸忤大人好 室中垂問曰 猫兒爲甚麽愛捉老鼠 又曰 板鳴因甚麽狗吠
묻되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동지(冬至)를 지나지 않았거든 추위를 말하지 말아라.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하지(夏至)를 지나지 않았거든 더위를 말하지 말아라. 가로되 나옴과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30년 후에 착거(錯擧)함을 요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불(佛)입니까. 사왈 섶이 없이 맹렬히 소화(燒火)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빈자(貧者; 貧)는 만들고(做) 부자(富者; 富)는 장과(裝裹; 裝飾)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승(僧)입니까. 사왈 매선(賣扇)하는 노파가 손으로 해를 가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화상의 율극봉(栗棘蓬)입니까. 사왈 차화(此話)에 답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답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크게 웃고 가로되 삼켜 진입하지 못하고 토해 내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1할(喝)이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같음입니까. 사왈 고묘(古墓)의 독사가 머리에 뿔을 이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거지사자(踞地師子)와 같음입니까. 사왈 허공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인다(點頭).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탐간영초(探竿影草)와 같음입니까. 사왈 석인(石人)이 박수(拍手)하며 하하 웃는다(笑呵呵).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1할의 용(用)을 짓지 않음입니까. 사왈 포대(布袋) 속의 돼지(豬) 머리다. 가로되 4할은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蒙).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입니까. 사왈 톱으로 칭추를 분해한다(鋸解秤鎚). 소리 따라 바로 할(喝)했다. 불안(佛眼)의 기(忌)에 염향(拈香)했다. 용문화상(龍門和尙)은 천제(闡提)의 요도(潦倒)니 불법(佛法)을 불신(不信)하고 선도(禪道)를 멸제(滅除)했다. 비로(毗盧)의 향상관(向上關)을 찰파(拶破)하니 묘아(猫兒)가 세면(洗面)하고 스스로 말하되 좋다(好) 한다. 일주(一炷)의 침향(沈香)을 노상(爐上)에 사르나니(然) 환수(換手)하며 가슴을 치고(槌) 공연히 오뇌(懊惱)한다. 드디어 손을 흔들며 가로되 오뇌하지 말아라(休). 좌구를 어깨 위에 싣고 여인배(女人拜)를 짓고 가로되 하방(下房)의 식부(媳婦)가 대인(大人)을 촉오(觸忤; 觸犯)함을 괴이히 여기지 말아야 좋습니다. 실중(室中)에서 수문(垂問)해 가로되 묘아(猫兒)는 무엇 때문에 노서(老鼠)를 잡는 것을 좋아하느냐. 우왈(又曰) 판(板)이 울면 무엇으로 인해 개가 짖느냐.
師家風嚴冷 初機多憚之 因贊達磨曰 昇元閣前懡㦬 洛陽峯畔乖張 皮髓傳成話霸 隻履無處埋藏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華撲鼻香 雪堂行一見 大稱賞曰 先師猶有此人在 只消此贊 可以坐斷天下人舌頭 由是衲子奔湊 臨終登座 拈拄杖於左邊卓一下曰 三十二相無此相 於右邊卓一下曰 八十種好無此好 僧繇一筆畫成 誌公露出草藁 又卓一下 顧大衆曰 莫懊惱 直下承當休更討 下座歸方丈 儼然趺坐而逝 火後收靈骨設利 藏所建之塔曰僊人山
●話霸; 話柄 多指禪家公案 亦作話靶 話把
●草藁; 同草稿 卽起草 草本(原稿的底本)
스님은 가풍이 엄랭(嚴冷)하여 초기(初機)는 많이 꺼렸다(憚之). 인하여 달마를 찬(贊)해 가로되 승원각(昇元閣; 양무제가 건립) 앞에서 마라(懡㦬)했고/ 낙양봉(洛陽峯) 가에서(畔) 괴장(乖張; 違背)했다/ 피수(皮髓)를 전함은 화패(話霸)를 이루었나니/ 척리(隻履)를 매장(埋藏)할 곳이 없다/ 이 한 번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爭) 매화가 코를 때리는 향기를 얻겠는가. 설당행(雪堂行; 道行)이 일견(一見)하고 크게 칭상(稱賞)해 가로되 선사(先師; 佛眼)에게 오히려 차인(此人)이 있나니 다만 차찬(此贊)을 써서(消) 가이(可以) 천하인의 설두(舌頭)를 좌단(坐斷)하리라. 이로 말미암아 납자가 분주(奔湊)했다. 임종에 등좌(登座)하여 주장자를 집어 좌변(左邊)에 한 번 치고(卓) 가로되 32상(相)에 이 상(相)이 없다. 우변(右邊)에 한 번 치고 가로되 80종호(種好)에 이 호(好)가 없다. 승요(僧繇)가 일필(一筆)로 그림을 이루었고 지공(誌公)이 초고(草藁)를 노출(露出)했다. 또 한 번 치고 대중을 돌아보고 가로되 오뇌(懊惱)하지 말지니 직하(直下)에 승당(承當)하고 다시 찾음(討)을 그만두어라(休). 하좌하여 방장으로 돌아가 엄연(儼然)히 부좌(趺坐)하고 서거했다. 화장한 후(火後)에 영골(靈骨)과 설리(設利)를 거두어 건립한 바의 탑에 감추었으니 가로되 선인산(僊人山)이다.
●話霸; 화병(話柄; 이야깃거리)니 다분히 선가의 공안을 가리킴. 또 화파(話靶), 화파(話把)로 지음.
●草藁; 초고(草稿)와 같음. 곧 기초(起草), 초본(원고의 저본).
潭州方廣深禪師
僧問 一法若有 毗盧墮在凡夫 萬法若無 普賢失其境界 未審意旨如何 師曰 富嫌千口少 貧恨一身多
담주(潭州) 방광심(方廣深) 선사
승문 일법(一法)이 만약 있으면 비로(毗盧)가 범부에 떨어져 있고 만법이 만약 없으면 보현이 그 경계를 잃는다. 미심하오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부유하면 천구(千口)도 적다고 혐의하고 빈곤하면 일신(一身)의 많음을 한탄한다.
世奇首座者
成都人也 徧依師席 晩造龍門 一日燕坐 瞌睡間羣蛙忽鳴 誤聽爲淨髮版響 亟趨往 有曉之者曰 蛙鳴非版也 師恍然 詣方丈剖露 佛眼曰 豈不見羅睺羅 師遽止曰 和尙不必擧 待去自看 未幾有省 乃占偈曰 夢中聞版響 覺後蝦蟇啼 蝦蟇與版響 山嶽一時齊 由是益加參究 洞臻玄奧 眼命分座 師固辭曰 此非細事也 如金針刺眼 毫髮若差 睛則破矣 願生生居學地 而自煅煉 眼因以偈美之曰 有道只因頻退步 謙和元自慣回光 不知已在靑雲上 猶更將身入衆藏 暮年學者力請 不容辭 後因說偈曰 諸法空故我心空 我心空故諸法同 諸法我心無別體 祇在而今一念中 且道是那一念 衆罔措 師喝一喝而終
●燕坐; 又作宴坐 乃安禪坐禪之異名 燕 安閑 安息 也作宴
●剖露; 剖析顯露禪法意旨
세기(世奇) 수좌란 자는
성도(成都) 사람이다. 사석(師席)에 두루 의지했고 만년에 용문(龍門)으로 나아갔다(造). 어느 날 연좌(燕坐)하여 갑수(瞌睡; 졸다)하는 사이에 뭇 개구리(蛙)가 홀연히 울었다. 오청(誤聽)하여 정발판(淨髮版; 淨髮板과 같음) 소리로 삼아 급히(亟) 달려갔는데(趨往) 그것을 깨우치는(曉) 자가 있어 가로되 개구리 울음이며 판(版)이 아니다. 스님이 황연(恍然)하여 방장으로 나아가(詣) 부로(剖露)했다. 불안(佛眼)이 가로되 어찌 라후라(羅睺羅)를 보지 못하느냐. 스님이 급히(遽) 중지(中止; 止)시키며 가로되 화상은 거(擧)하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서 자간(自看)함을 기다리십시오. 미기(未幾)에 성찰이 있었다. 이에 점게(占偈)하여 가로되 몽중(夢中)에 판향(版響)으로 듣다가/ 교후(覺後; 깬 후)엔 하마(蝦蟇; 두꺼비. 靑蛙)의 울움(啼)이다/ 하마(蝦蟇)와 판향(版響)이여/ 산악(山嶽)이 일시에 제등(齊等; 齊)하다. 이로 말미암아 더욱(益) 참구를 더했고(加) 환히(洞) 현오(玄奧)에 이르렀다(臻). 불안이 분좌(分座)를 명했으나 스님이 고사(固辭)하며 가로되 이것은 세사(細事)가 아닙니다. 금침(金針)으로 눈을 찌름과 같아서 호발(毫髮)이라도 만약 어긋나면 눈동자가 곧 깨어집니다. 원컨대 생생(生生)에 학지(學地)에 거처하면서 스스로 단련(煅煉)하겠습니다. 불안이 인하여 게로써 찬미해 가로되 도가 있음이란 다만 자주 퇴보(退步)함을 인하나니/ 겸화(謙和)하면서 원래 스스로 회광(回光)에 익숙하다(慣)/ 이미 청운(靑雲) 위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몸을 가지고 입중(入衆)하여 감췄네. 모년(暮年)에 학자가 힘껏 청하며 사양(辭讓; 辭)함을 용납하지 않자 후에 인하여 게를 설해 가로되 제법(諸法)이 공(空)한 고로 아심(我心)도 공했고/ 아심이 공한 고로 제법도 한가지다/ 제법과 아심이 별체(別體)가 없나니/ 다만 이금(而今)의 일념 중에 있다. 차도(且道)하라, 이는 어느(那) 일념이냐. 대중이 망조(罔措)했다. 스님이 할로 한 번 할하고 마쳤다.
●燕坐; 또 연좌(宴坐)로 지음. 곧 안선(安禪)ㆍ좌선의 다른 이름. 연(燕)은 안한(安閑)ㆍ안식이니 또 연(宴)으로 지음.
●剖露; 쪼개어서 선법의 의지를 환히 드러냄.
溫州淨居尼慧溫禪師
上堂 擧 法眼示衆曰 三通皷罷 簇簇上來 佛法人事 一時周畢 師曰 山僧道 三通皷罷 簇簇上來 拄杖不在 苕帚柄聊與三十
온주(溫州) 정거니(淨居尼) 혜온선사(慧溫禪師)
상당(上堂) 거(擧)하다. 법안(法眼)이 시중(示衆)해 가로되 삼통고(三通皷; 通은 量詞)를 마치자 족족(簇簇) 올라온다. 불법의 인사(人事)를 일시에 두루 마쳤다(周畢). 사왈 산승은 말하나니 삼통고를 마치자 족족 올라온다. 주장자가 있지 않으니 초추병(苕帚柄)으로 애오라지 30 준다.
給事馮楫濟川居士
自壯扣諸名宿 最後居龍門 從佛眼遠禪師 再歲 一日同遠經行法堂 偶童子趨庭 吟曰 萬象之中獨露身 遠拊公背曰 好聻 公於是契入 紹興丁巳 除給事 會大慧禪師就明慶開堂 慧下座 公挽之曰 和尙每言於士大夫前曰 此生決不作這蟲豸 今日因甚却納敗缺 慧曰 盡大地是箇杲上座 你向甚處見他 公擬對 慧便掌 公曰 是我招得 越月 特丐祠坐夏徑山 榜其室曰不動軒 一日 慧陞座 擧 藥山問石頭曰 三乘十二分敎 某甲粗知 承聞南方直指人心 見性成佛 實未明了 伏望慈悲示誨 頭曰 恁麽也不得 不恁麽也不得 恁麽不恁麽總不得 你作麽生 山罔措 頭曰 子緣不在此 可往江西見馬大師去 山至馬祖處 亦如前問 祖曰 有時敎伊揚眉瞬目 有時不敎伊揚眉瞬目 有時敎伊揚眉瞬目者是 有時敎伊揚眉瞬目者不是 山大悟 慧拈罷 公隨至方丈曰 適來和尙所擧底因緣 某理會得了 慧曰 你如何會 公曰 恁麽也不得囌嚧娑婆訶 不恁麽也不得㗭唎娑婆訶 恁麽不恁麽總不得囌嚧㗭唎娑婆訶 慧印之以偈曰 梵語唐言 打成一塊 咄哉俗人 得此三昧
●給事; 古代官職名 給事中的省稱 唐代最初設置
●蟲豸; 有足曰蟲 無足曰豸 [禪林寶訓音義]
●丐祠; 請求奉祠
급사(給事) 풍즙(馮楫) 제천거사(濟川居士)
장성(壯盛)함으로부터 여러 명숙(名宿)에게 구문(扣問; 扣)했다. 최후에 용문(龍門)에 거주하면서 불안원(佛眼遠; 淸遠) 선사를 좇았다. 두 해가 되었다. 어느 날 청원(淸遠; 遠)과 함께 법당을 경행(經行)했는데 우연히 동자(童子)가 뜰을 걸으면서(趨; 步. 行) 읊어 가로되 만상(萬象) 가운데 독로(獨露)한 몸이여. 청원이 공(公)의 등을 두드리며 가로되 좋지(好聻). 공(公)이 이에서 계입(契入)했다. 소흥(紹興) 정사(丁巳; 1137) 급사(給事)에 제수(除授; 除)했다. 마침(會) 대혜선사(大慧禪師)가 명경(明慶)으로 나아가 개당(開堂)했다. 대혜가 하좌하자 공(公)이 당기며 가로되 화상은 매번 사대부(士大夫) 앞에서 말해 가로되 차생(此生)에 결정코 이 충치(蟲豸)를 짓지 않겠다 했거늘 금일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패결(敗缺)를 받아들입니까(納). 혜왈(慧曰) 온 대지가 시개(是箇) 고상좌(杲上座)거늘 네가 어느 곳을 향해 그를 보느냐. 공(公)이 대답하려고 하자 대혜가 바로 장(掌)했다. 공왈(公曰) 이는 내가 초득(招得)했다. 달을 넘겨 특별히 개사(丐祠)하여 경산(徑山)에서 좌하(坐夏)했다. 그 실(室)을 방(榜)해 가로되 부동헌(不動軒)이라 했다. 어느 날 대혜가 승좌(陞座)하여 거(擧)했다. 약산(藥山)이 석두(石頭)에게 물어 가로되 3승 12분교는 모갑이 대략(粗) 압니다만 승문(承聞)컨대 남방에선 인심을 직지하여 견성하고 성불한다 하니 실로 환히 깨닫지(明了) 못했습니다. 복망(伏望)하오니 자비로 시회(示誨)하십시오. 두왈(頭曰) 이러해도(恁麽也) 얻지 못하고 이러하지 않아도 얻지 못하고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얻지 못하나니 너는 어떠한가(作麽生). 약산이 망조(罔措)했다. 두왈(頭曰) 자네의 인연이 여기에 있지 않나니 가히 강서로 가서 마대사(馬大師)를 보러 가거라. 약산이 마조(馬祖)의 처소에 이르러 또한 전문(前問)과 같았다. 조왈(祖曰) 어떤 때는 그(伊)로 하여금 양미순목(揚眉瞬目;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작임)하게 하고 어떤 때는 그로 하여금 양미순목하지 못하게 하고 어떤 때는 그로 하여금 양미순목하게 하는 자를 옳다고 하고 어떤 때는 그로 하여금 양미순목하게 하는 자를 옳지 않다고 한다. 약산이 대오했다. 대혜가 염해 마치자(拈罷) 공(公)이 따라가 방장에 이르러 가로되 아까 화상이 든 바의 인연을 모(某)가 이회(理會)함을 얻었습니다. 혜왈(慧曰)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공왈(公曰) 이러함도 얻지 못하고 소로사바하(囌嚧娑婆訶) 이러하지 않음도 얻지 못하고 실리사바하(㗭唎娑婆訶) 이러하거나 이러하지 않거나 모두 얻지 못한다. 소로실리사바하. 대혜가 게로써 인가하며 가로되 범어(梵語)와 당언(唐言)이/ 일괴를 이루었다(打成一塊)/ 돌재(咄哉) 속인이/ 이 삼매를 얻었구나.
●給事; 고대 관직명(官職名)인 급사중(給事中)의 생칭. 당대에 최초로 설치했음.
●蟲豸; 발이 있음을 가로되 충(蟲)이며 발이 없음을 가로되 치(豸)임 [선림보훈음의].
●丐祠; 봉사(奉祠)를 청구(請求)함.
公後知卭州 所至宴晦無倦 甞自詠曰 公事之餘喜坐禪 少曾將脇到牀眠 雖然現出宰官相 長老之名四海傳 至二十三年秋 乞休致 預報親知 期以十月三日報終 至日 令後廳置高座 見客如平時 至辰巳間 降堦望闕肅拜 請漕使攝卭事 著僧衣履 踞高座 囑諸官吏及道俗 各宜向道 扶持敎門 建立法幢 遂拈拄杖按膝 蛻然而化 漕使請曰 安撫去住如此自由 何不留一頌以表罕聞 公張目 索筆書曰 初三十一 中九下七 老人言盡 龜哥眼赤 竟爾長往 建炎後名山巨刹 敎藏多不存 公累以己俸印施 凡一百二十八藏 用祝君壽 以康兆民 門人蒲大聘甞誌其事 有語錄頌古行於世
●宴晦; 淸齋佛門 淸淨之持齋也 由下午至明旦不食 謂之齋
●休致; 一官吏年老去職 二泛指辭官
●安撫; 安撫使 官名 爲由中央派遣處理地方事務的官員 隋代曾設安撫大使 爲行軍主帥兼職 唐代前期派大臣巡視經過戰爭或受災地區 稱安撫使 宋初沿之 後漸成爲各路負責軍務治安的長官 以知州知府兼任 [百度百科]
공(公)이 후에 공주(卭州)를 지(知; 主宰)했다. 이르는 곳에 연회(宴晦)하며 게으름이 없었다. 일찍이 자영(自詠)해 가로되 공사(公事)의 여가(餘暇; 餘)에 좌선을 좋아하나니/ 일찍이 옆구리를 가지고 상(牀)에 이르러 잠이 적었다/ 비록 그렇게 재관(宰官; 널리 官吏를 가리킴)의 상(相; 形相)을 현출(現出)했지만/ 장로란 이름이 사해(四海)에 전한다. 23년(1153) 가을에 이르자 휴치(休致)를 구걸했다. 친지(親知)에게 예보(預報)하되 10월 3일을 기한(期限; 期)으로 보종(報終; 報緣을 마침)한다. 날에 이르자 후청(後廳)에 고좌(高座)를 안치하게 하고 견객(見客)함이 평시와 같았다. 진사(辰巳) 간에 이르러 섬돌로 내려와(降堦) 대궐을 바라보며 숙배(肅拜)했다. 조사(漕使) 섭공사(攝卭事)를 청했다. 승의(僧衣)와 신을 입고(著) 고좌(高座)에 걸터앉아 여러 관리 및 도속(道俗)에게 부촉하되 각자 의당 향도(向道)하여 교문(敎門)을 부지(扶持)하고 법당(法幢)을 건립하라. 드디어 주장자를 집어 무릎을 어루만지더니 세연(蛻然; 허물을 벗음과 같이)히 화(化)했다. 조사(漕使)가 청왈(請曰) 안무(安撫)가 거주(去住)에 이와 같이 자유(自由)거늘 왜 1송(頌)을 머물러 한문(罕聞)을 표(表)하지 않습니까. 공(公)이 눈을 벌리더니(張目) 붓을 찾아 서사해 가로되 초는 31이며/ 중은 9며 하는 7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盡)/ 귀가(龜哥)의 눈이 붉다. 마침내(竟爾) 장왕(長往)했다. 건염(建炎; 1127-1130) 후에 명산거찰(名山巨刹)에서 장교(敎藏)가 다분히 존재하지 않았는데 공(公)이 여러 번(累) 자기의 봉록(俸祿; 俸)으로 인시(印施)했으니 무릇 1백28장(藏)이다. 써서(用) 군수(君壽)를 축원하고 조민(兆民; 모든 백성)을 안강(安康; 康)하게 했다. 문인(門人) 포대빙(蒲大聘)이 일찍이 그 사실을 기록했다(誌). 어록과 송고(頌古)가 있어 세상에 행한다.
●宴晦; 불문(佛門)에 청재(淸齋)함. 청정한 지재(持齋)임. 하오(下午)로부터 명단(明旦)에 이르기까지 불식(不食)함을 일러 재(齋)라 함.
●休致; 1. 관리가 연로하여 관직을 떠남. 2. 널리 사관(辭官)을 가리킴.
●安撫; 안무사(安撫使)니 벼슬 이름. 중앙으로 말미암아 파견되어 지방 사무를 처리하는 관원. 수대(隋代)에 일찍이 안무대사(安撫大使)를 설치하여 행군(行軍)과 주수(主帥)를 겸직했음 당대 전기(前期)에 대신을 파견해 전쟁 혹 수재지구(受災地區)를 순시하고 경과했는데 명칭이 안무사였음. 송초에 이를 따랐고 후에 점차 각로(各路)에 군무(軍務)와 치안을 부책(負責)하는 장관이 되었고 지주지부(知州知府)를 겸임했음 [백도백과].
開福寧禪師法嗣
潭州大潙月庵善果禪師
信州余氏子 上堂 奚仲造車一百輻 拈却兩頭除却軸 以拄杖打一圓相曰 且莫錯認定盤星 卓一卓 下座 謝供頭 上堂 解猛虎頷下金鈴 驚羣動衆 取蒼龍穴裏明珠 光天照地 山僧今日到此 讚歎不及 汝等諸人 合作麽生 竪起拂子曰 眨上眉毛 速須薦取 擲拂子 下座 上堂 心生法亦生 心滅法亦滅 心法兩俱忘 烏龜喚作鼈 諸禪德 道得也未 若道得 道林與你拄杖子 其或未然 歸堂喫茶去 僧問 達磨九年面壁時如何 師曰 魚行水濁 曰 二祖禮三拜 爲甚麽却得其髓 師曰 地肥茄子大 曰 祇如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明甚麽邊事 師曰 賊以贓爲驗 曰 有時乘好月 不覺過滄洲 師曰 闍黎無分 問 有句無句 如藤倚樹時如何 師曰 驗盡當行家 曰 樹倒藤枯 句歸何處 又作麽生 師曰 風吹日炙 曰 潙山呵呵大笑聻 師曰 波斯讀梵字 曰 道吾推倒泥裏 潙山不管 此意又且如何 師曰 有理不在高聲 曰 羅山道 道吾是撮馬糞漢 又作麽生 師曰 多口阿師 曰 今日足見老師七通八達 師曰 仰面哭蒼天 僧禮拜 師曰 過 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乾坤無異色 曰 出水後如何 師曰 徧界有淸香
●奚仲; 東夷薛國(今山東滕州)人 夏朝時期工匠 相傳其發明了兩輪馬車 奚仲因造車有功 被夏王禹封爲車服大夫(亦稱車正) [百度百科] ▲釋氏稽古略一 帝禹 昔黃帝作車 少皡加牛 奚仲加馬 禹命奚仲爲車 正建旌旗斿旐 以別尊卑等級
●供頭; 指供頭行者 又作供過行者 或略稱供頭 供司 爲禪林行者之一 職司粥齋之時 分配飯羹茶果 及掌管僧堂內點燈裝香打鐘 或於佛堂祠堂 負責粥飯 茶湯 燈燭 香花 洗米等事 又供過一詞源於過堂之行事 [百丈淸規四兩序進退條 同五坐禪條 禪苑淸規四 僧堂淸規五 象器箋職位類]
●當行家; 在行的人 行家
담주(潭州) 대위(大潙) 월암(月庵) 선과선사(善果禪師)
신주(信州) 여씨(余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해중(奚仲)이 일백복(一百輻)의 수레를 만들었거니와 양두(兩頭; 兩輪)를 집어서 버리고(拈却) 굴대를 제거해 버려라. 주장자로써 1원상을 짓고 가로되 다만(且) 정반성(定盤星)을 착인(錯認)하지 말아라. 쳐서(卓) 한 번 치고 하좌했다. 공두(供頭)에게 감사(感謝; 謝)하며 상당했다. 맹호의 턱 아래 금령(金鈴)을 푸니(解) 경군동중(驚羣動衆)하고 창룡(蒼龍)의 굴 속의 명주(明珠)를 취하니 광천조지(光天照地; 천지를 비추다)한다. 산승이 금일 여기에 이르러 찬탄(讚歎)이 미치지 못하나니 너희 등 제인은 합당히 어떠한가.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눈썹을 깜작이며(眨上; 上은 조사) 속히 천취(薦取)함을 써라(須). 불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마음이 생하면 법도 또한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법도 또한 멸한다/ 마음과 법을 둘 다 잊으면/ 오귀(烏龜)를 자라(鼈)로 불러 짓는다. 제선덕(諸禪德)이여, 말함을 얻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도림(道林; 善果)이 너희에게 주장자를 주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귀당(歸堂)하여 끽다하라(喫茶去). 승문 달마가 9년 면벽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물고기가 다니면 물이 탁해진다. 가로되 2조가 삼배(三拜) 예배하고 무엇 때문에 도리어 그 수(髓)를 얻었습니까. 사왈 땅이 기름지면(肥) 가자(茄子; 가지)가 크다. 가로되 지여(祇如) 1화(華)에 5엽(葉)이 열리어 결과를 자연히 이룬다 함은 무슨 일을 밝혔습니까. 사왈 도적은 장물(贓物; 贓)로써 감험(勘驗; 驗)한다. 가로되 어떤 때는 호월(好月)을 타고(乘) 불각에 창주(滄洲)를 지납니다. 사왈 사리(闍黎)는 분한이 없다. 묻되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藤)이 나무에 기댐과 같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당행가(當行家)를 감험해 마친다. 가로되 나무가 넘어지고 등이 마르면 구(句)가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가라고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바람이 불고 해가 말린다(炙). 가로되 위산(潙山)이 하하대소한 것은요(呵呵大笑聻). 사왈 파사(波斯; 파사인)가 범자(梵字)를 읽는다. 가로되 도오(道吾)가 진흙 속으로 밀어 넘어뜨렸으나 위산이 상관(相管)하지 않았으니 이 뜻은 우차(又且) 어떻습니까. 사왈 이치가 있으면 고성(高聲)에 있지 않다. 가로되 나산(羅山)이 말하되 도오(道吾)는 이 말똥을 집은 자다(撮馬糞漢)라고 했음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다구아사(多口阿師)다. 가로되 금일 노사(老師)의 칠통팔달(七通八達)을 족히 보았습니다. 사왈 앙면(仰面)하고 창천(蒼天)이라고 곡(哭)하는구나. 중이 예배했다. 사왈 지나갔다(過). 묻되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건곤이 이색(異色)이 없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편계(徧界)에 청향(淸香)이 있다.
●奚仲; 동이(東夷)의 설국(薛國; 지금의 山東 滕州) 사람이며 하조시기(夏朝時期)의 공장(工匠)임. 상전(相傳)하기를 그가 양륜(兩輪)의 마차(馬車)를 발명했다 함. 해중이 수레를 만드는데 공이 있음으로 인하여 하왕(夏王)인 우(禹)에게 거복대부(車服大夫; 또 명칭이 車正)로 봉(封)해짐을 입었음 [백도백과]. ▲석씨계고략1. 제우(帝禹). 옛적에 황제(黃帝)가 수레를 만들었고 소호(少皡)가 소(牛)를 더했으며 해중(奚仲)이 말(馬)을 더했다. 우(禹)가 해중에게 명령해 수레를 만들었는데 정기유조(旌旗斿旐; 넷 다 깃발)를 바르게 세워 존비(尊卑)의 등급(等級)을 구별했다.
●供頭; 공두행자(供頭行者)를 가리킴. 또 공과행자(供過行者)로 지음. 혹 약칭이 공두(供頭)ㆍ공사(供司)니 선림의 행자의 하나가 됨. 직무는 죽재의 때에 밥ㆍ국ㆍ다ㆍ과를 분배함을 맡음. 그리고 승당 내의 점등ㆍ장향(裝香)ㆍ타종과 혹은 불당과 사당(祠堂)의 죽반ㆍ다탕ㆍ등촉ㆍ향화ㆍ세미(洗米) 등의 일을 장관(掌管)함. 또 공과(供過) 1사(詞)는 과당(過堂; 승당에 올라 밥을 먹음)의 행사에 기원(起源)함 [백장청규4양서진퇴조, 동5좌선조. 선원청규4. 승당청규5. 상기전직위류].
●當行家; 재행(在行)의 사람. 행가.
大隨靜禪師法嗣
台州釣魚臺石頭自回禪師
本郡人也 世爲石工 雖不識字 志慕空宗 每求人口授法華 能誦之 棄家投大隨 供掃灑 寺中令取崖石 師手不釋鎚鑿 而誦經不輟口 隨見而語曰 今日硿磕 明日硿磕 死生到來 作甚折合 師愕然 釋其器 設禮 願聞究竟法 因隨至方丈 隨令且罷誦經 看趙州勘婆因緣 師念念不去心 久之 因鑿石石稍堅 盡力一鎚 瞥見火光 忽然省徹 走至方丈 禮拜呈頌曰 用盡工夫 渾無巴鼻 火光迸散 元在這裏 隨忻然曰 子徹也 復獻趙州勘婆頌曰 三軍不動旗閃爍 老婆正是魔王脚 趙州無柄鐵掃帚 掃蕩煙塵空索索 隨可之 遂授以僧服 人以其爲石工 故有回石頭之稱也
●硿磕; 鑿石聲
●空索索; 空無一物的樣子 指悟道者之空寂境界
태주(台州) 조어대(釣魚臺) 석두(石頭) 자회선사(自回禪師)
본군(本郡) 사람이다. 대대로(世) 석공(石工)이 되었다. 비록 글자를 알지 못했으나 의지(意志)가 공종(空宗)을 흠모했다. 매번 사람에게 구해 입으로 법화를 전수(傳授)했으며 능히 이것을 외웠다. 기가(棄家)하고 대수(大隨)에게 투신하여 소쇄(掃灑)에 이바지했다. 사중(寺中)에서 애석(崖石)을 취하게 했고 스님이 손에서 추착(鎚鑿; 망치와 끌)을 놓지(釋) 않았고 송경(誦經)하며 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수(大隨)가 보고서 말해 가로되 금일도 공개(硿磕)하고 명일도 공개하니 사생(死生)이 도래하면 무슨 절합(折合; 了結)을 짓겠느냐. 스님이 놀랐다(愕然). 그 기구(器具)를 놓고(釋) 예배를 베풀고는 구경법(究竟法)을 듣기를 희망했다(願). 인하여 따라가 방장에 이르자 대수가 다만(且) 송경(誦經)을 그만두고(罷) 조주감파인연(趙州勘婆因緣)을 간(看)하게 했다. 스님이 염념(念念)에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不去心) 오래되었다. 착석(鑿石)하는데 돌이 조금 단단함(稍堅)으로 인해 힘을 다해 한 번 망치질했다(鎚). 갑자기(瞥) 화광(火光)을 보았고 홀연히 성철(省徹)했다. 달려가 방장에 이르러 예배하고 정송(呈頌)해 가로되 공부(工夫)를 써 다하매/ 온통(渾) 파비(巴鼻)가 없다/ 화광(火光)이 병산(迸散)하니/ 원래 저리(這裏)에 있었다. 대수가 흔연(忻然)히 가로되 자네는 사무쳤다. 다시 조주감파송(趙州勘婆頌)을 바쳐 가로되 삼군(三軍)이 부동(不動)한데 깃발이 섬삭(閃爍; 번쩍거리며 빛남)하니/ 노파가 바로(正) 이 마왕(魔王)의 다리(脚)다/ 조주(趙州)가 자루가 없는 철소추(鐵掃帚)로/ 연진(煙塵)을 소탕(掃蕩)하니 공삭삭(空索索)하다. 대수가 인가하고 드디어 승복을 주었다. 사람들이 그가 석공이라 하여 고로 회석두(回石頭)의 호칭이 있었다.
●硿磕; 돌을 뚫는 소리.
●空索索; 비어서 한 물건도 없는 양자(樣子; 모양). 오도한 자의 공적한 경계를 가리킴.
上堂 參禪學道 大似井底叫渴相似 殊不知塞耳塞眼 回避不及 且如十二時中 行住坐臥 動轉施爲 是甚麽人使作 眼見耳聞 何處不是路頭 若識得路頭 便是大解脫路 方知老漢與你證明 山河大地與你證明 所以道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諸仁者 大凡有一物當途 要見一物之根源 一物無處 要見一物之根源 見得根源 源無所源 所源旣非 何處不圓 諸禪德 你看老漢有甚麽勝你處 諸人有甚麽不如老漢處 還會麽 太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상당(上堂) 참선학도(參禪學道)는 대사(大似; 매우 흡사) 우물 밑에서 목마르다고 부르짖음과 상사(相似)하다. 귀에 가득하고 눈에 가득하여(塞耳塞眼) 회피함이 미치지 못하는 줄 너무 알지 못한다. 차여(且如) 12시 중 행주좌와하고 동전시위(動轉施爲)함이 이 어떤 사람이 사작(使作; 行爲. 作爲)함이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어느 곳이 이 노두(路頭)가 아니냐. 만약 노두를 식득(識得)한다면 바로 이 대해탈로(大解脫路)다. 바야흐로 알지니 노한(老漢)이 너희에게 증명해 주고 산하대지가 너희에게 증명해 준다. 소이로 말하되 시방의 박가범(薄伽梵)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이다. 제인자(諸仁者)여, 대범(大凡) 일물(一物)이 있어 당도(當途)했나니 일물의 근원을 보고자 한다면 일물은 거처가 없다. 일물의 근원을 보고자 하여 근원을 견득(見得)하면 원(源)은 소원(所源)이 없다. 소원(所源)이 이미 아니거늘 어느 곳이 원(圓)이 아니겠는가. 제선덕이여, 너희가 노한을 보아라 무엇이(甚麽) 너희보다 수승한 곳이 있느냐. 제인이 무엇이 노한만 같지 못한 곳이 있느냐. 도리어 아느냐, 태호(太湖) 6만6천 경(頃)에 달이 파도 가운데 있음을 누굴 향해 설할까.
潼川府護聖愚丘居靜禪師
成都楊氏子 年十四 禮白馬安慧爲師 聞南堂道望 遂往依焉 堂擧香嚴枯木裏龍吟話 往返酧詰 師於言下大悟 一日堂問曰 莫守寒巖異草靑 坐却白雲宗不妙 汝作麽生 師曰 直須揮劒 若不揮劒 漁父棲巢 堂矍然曰 這小廝兒 師珍重便行 出住東巖 上堂 月生一 東巖乍住增愁寂 紅塵世路有多端 米麫倉儲無顆粒 崖爲伴泉爲匹 颯颯淸風來入室 山王土地暗中忙 雲版鐘魚偸淚滴 世人莫道守空巖 亦有東籬打西壁 甞謂衆曰 參學至要 不出先南堂道 最初句及末後句 透得過者 一生事畢 儻或未然 更與你分作十門 各各印證自心 還得穩當也未 一須信有敎外別傳 二須知有敎外別傳 三須會無情說法與有情說法無二 四須見性如觀掌中之物 了了分明 一一田地穩密 五須具擇法眼 六須行鳥道玄路 七須文武兼濟 八須摧邪顯正 九須大機大用 十須向異類中行 凡欲紹隆法種 須盡此綱要 方坐得這曲彔牀子 受得天下人禮拜 敢與佛祖爲師 若不到恁麽田地 祇一向虛頭 他時異日 閻老子未放你在 間有學者各門頌出呈師 師以頌示曰 十門綱要掌中施 機會來時自有爲 作者不須排位次 大都首末是根基
●倉儲; 一用倉庫儲存 二倉庫儲存的物資
●雲版; 禪門中報粥飯時刻等 用以擊打之器具 又作雲板 大版 掛於庫裏 齋堂之前 以其版(板)形如雲 故稱雲版 而於早午飯前 連打雲版三十六響 稱爲長版 此時衆僧卽可取下鉢盂至規定之處集合 故又稱爲下鉢版 [瑩山淸規上日中行事第一 象器箋唄器類]
동천부(潼川府) 호성(護聖) 우구(愚丘) 거정선사(居靜禪師)
성도(成都) 양씨(楊氏)의 아들이다. 나이 14에 백마안혜(白馬安慧)를 예알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남당(南堂; 元靜)의 도망(道望)을 듣고 드디어 가서 의지했다. 남당이 향엄의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린다는 화(香嚴枯木裏龍吟話)를 거(擧)하여 왕반(往返)하며 수힐(酧詰; 酬詰과 같음. 問答)했고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어느 날 남당이 문왈(問曰) 한암(寒巖)의 이초(異草) 푸름을 지키지 말지니 백운에 앉아버리면 종(宗)이 묘하지 않다고 했거니와 너는 어떠한가. 사왈 바로(直) 꼭 휘검(揮劒)해야 하나니 만약 휘검하지 않으면 어부(漁父)가 서소(棲巢)합니다. 남당이 확연(矍然)하며 가로되 이 소시아(小廝兒)가. 스님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바로 갔다. 출세해 동암(東巖)에 주(住)했다. 상당(上堂) 달이 일을 내니(月生一) 동암(東巖)이 잠깐(乍) 머물며 수적(愁寂; 憂愁와 寂寞)을 더했다(增). 홍진(紅塵)의 세로(世路)에 많은 단서(端緖; 端)가 있나니 미면(米麫)의 창저(倉儲)에 과립(顆粒)이 없다. 언덕(崖)은 반(伴)이 되고 샘은 필(匹)이 되나니 삽삽(颯颯)한 청풍이 와서 입실(入室)한다. 산왕(山王)과 토지(土地; 토지신)는 암중(暗中)에 바쁘고 운판(雲版)과 종어(鐘魚; 종과 魚板)는 누적(淚滴; 눈물)을 훔친다. 세인(世人)은 공암(空巖)을 지킨다고 말하지 말지니 또한 동리(東籬)가 서벽(西壁)을 때림이 있다. 일찍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참학(參學)의 지요(至要; 지극한 要領)는 선남당(先南堂; 元靜)이 말한 최초구(最初句) 및 말후구(末後句)를 벗어나지 않는다. 투과하여 지남을 얻은 자는 일생사(一生事)를 마치거니와(畢) 당혹(儻或; 만일 혹) 그렇지 못할진대 다시 너희를 위해(與) 분별해 십문(十門)을 지으리니 각각 자심(自心)을 인증(印證)하라. 도리어 온당(穩當)을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1. 모름지기 교외별전(敎外別傳)이 있음을 믿어라. 2. 모름지기 교외별전이 있음을 알아라. 3. 모름지기 무정설법(無情說法)과 유정설법(有情說法)이 둘이 없음을 알아라(會). 4. 모름지기 견성(見性)이 장중(掌中)의 물건을 봄과 같아서 요료(了了)히 분명하고 하나하나 전지(田地)가 온밀(穩密)하다. 5. 모름지기 택법(擇法)하는 눈을 갖추어라. 6. 모름지기 조도(鳥道)와 현로(玄路)를 행하라. 7. 모름지기 문무를 겸비하라. 8. 모름지기 최사현정(摧邪顯正)하라. 9.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써라(須). 10. 모름지기 이류(異類) 가운데를 향해 행하라. 무릇(凡) 법종(法種)을 소륭(紹隆)하고 싶으면 모름지기 이 강요(綱要)를 다해야 바야흐로 이 곡록상자(曲彔牀子)에 좌득(坐得)하여 천하인의 예배를 수득(受得)하고 감히 불조(佛祖)에게 스승이 되어 준다. 만약 이러한(恁麽) 전지(田地)에 이르지 못했다면 다만(祇) 한결같이(一向) 허두(虛頭)니 타시이일(他時異日)에 염로자(閻老子)가 너희를 놓아주지(放) 않을 것이다. 간혹(間或; 間) 학자가 있어 각문(各門)을 송출(頌出)하여 스님에게 보였다(呈). 스님이 송으로써 보여 가로되 십문(十門)의 강요(綱要)를 장중(掌中)에 베풀매/ 기회(機會)가 올 때 스스로 유위(有爲)다/ 작자(作者)는 위차(位次)를 안배(按排; 排)함을 쓰지(須) 말지니/ 대도(大都; 大槪) 수말(首末)이 이 근기(根基)다.
●倉儲; 1. 창고를 써서 저존(儲存)함. 1. 창고에 저존(儲存)한 물자(物資).
●雲版; 선문 중 죽반(粥飯)의 시각 등을 알리면서 격타(擊打)에 사용하는 기구(器具)임. 또 운판(雲板), 대판(大版)으로 지으며 고사(庫舍) 속이나 재당(齋堂) 앞에 걺. 그 판(版; 板)의 형상이 구름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운판이며 조오반(早午飯) 전에 운판을 36향(響; 量詞) 연타함을 일컬어 장판(長版)이라 함. 이때 중승이 곧 가히 발우를 취하(取下)하여 규정된 곳에 이르러 집합하므로 고로 또 일컬어 하발판(下鉢版)이라 함 [영산청규상일중행사제일. 상기전패기류].
簡州南巖勝禪師
上堂召大衆曰 護生須是殺 殺盡始安居 會得箇中意 分明在半途 且道到家一句又作麽生 釋迦彌勒沒量大 看來猶祇是他奴 僧問 放行五位卽不問 把定三關事若何 師曰 橫按鏌鎁全正令 曰 把定三關蒙指示 放行五位事如何 師曰 太平寰宇斬癡頑 曰 恁麽則南巖門下 土曠人稀 師曰 靈利衲僧 祇消一點 曰 自古自今 同生同死時如何 師曰 家賊難防 曰 今日學人小出大遇去也 師便打曰 須是老僧打你始得 僧禮拜 師曰 切忌詐明頭
간주(簡州) 남암승(南巖勝) 선사
상당(上堂)하여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호생(護生)하려면 모름지기 이 죽여야 하나니 죽여 없애야 비로소 안거(安居)한다. 개중(箇中)의 뜻을 회득(會得)하여도 분명히 반도(半途)에 있다. 차도(且道)하라, 도가(到家)의 1구는 또 어떠한가(作麽生). 석가와 미륵이 헤아릴 수 없이(沒量) 크지만 보아 오매 오히려 다만 이는 그의 노(奴)다. 승문 5위(位)를 방행(放行)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 3관(關)을 파정(把定)하는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막야(鏌鎁)를 횡안(橫按)하며 정령(正令)을 온전히 한다. 가로되 3관을 파정함은 지시를 입었습니다만(蒙) 5위를 방행하는 일은 어떻습니까(如何). 사왈 태평의 환우(寰宇)에 치완(癡頑)을 참(斬)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남암문하南(巖門下)에 땅은 넓고 사람은 드뭅니다(土曠人稀). 사왈 영리(靈利)한 납승은 다만 일점(一點)을 소비한다. 가로되 자고자금(自古自今)에 동생동사(同生同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가적(家賊)은 방비하기 어렵다. 가로되 금일 학인이 작은 것을 내어 큰 것을 만나고(小出大遇) 갑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모름지기 이 노승이 너를 때려야 비로소 옳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명두인 척함(詐明頭)을 절기(切忌)한다.
常德府梁山廓庵師遠禪師
合川魯氏子 上堂 擧楊岐三脚驢子話 乃召大衆曰 揚其湯者 莫若撲其火 壅其流者 莫若杜其源 此乃智人之明鑒 佛法之至論 正在斯焉 這因緣 如今叢林中提唱者甚多 商量者不少 有般底 祇道宗師家無固必 凡有所問 隨口便答 似則也似 是卽未是 若恁麽 祇作箇乾無事會 不見楊岐用處 乃至祖師 千差萬別 方便門庭 如何消遣 又有般底 祇向佛邊會 却與自己沒交涉 古人道 凡有言句 須是一一消歸自己 又作麽生 又有般底 一向祇作自己會 棄却古人用處 唯知道明自己事 古人方便却如何消遣 旣消遣不下 却似抱橋柱澡洗 要且放手不得 此亦是一病 又有般底 却去脚多少處會 若恁麽會 此病最難醫也 所以他語有巧妙處 參學人卒難摸索 纔擬心則差了也 前輩謂之楊岐宗旨 須是他屋裏人 到恁麽田地 方堪傳授 若不然者 則守死善道之謂也 這公案直須還他透頂徹底漢 方能了得 此非止禪和子會不得 而今天下叢林中 出世爲人底 亦少有會得者 若要會去 直須向威音那畔 空劫已前 輕輕覷著 提起便行 捺著便轉 却向萬仞峯前進一步 可以籠罩古今 坐斷天下人舌頭 如今還有恁麽者麽 有則出來道看 如無 更聽一頌 三脚驢子弄蹄行 直透威音萬丈坑 雲在嶺頭閑不徹 水流㵎下太忙生 湖南長老誰解會 行人更在靑山外
상덕부(常德府) 양산(梁山) 곽암(廓庵) 사원선사(師遠禪師)
합천(合川) 노씨(魯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양기(楊岐)의 삼각려자화(三脚驢子話)를 거(擧)했다. 이에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그 탕(湯)을 날리는(揚) 것이 그 화(火)를 침(撲)만 같지(若) 못하고 그 흐름을 막는(壅) 것이 그 근원을 막음(杜)만 같지 못하다. 이것은 곧(乃) 지인(智人)의 명감(明鑒)이며 불법의 지론(至論)이니 바로(正) 여기(斯)에 있다. 이 인연을 여금에 총림 중에서 제창(提唱)하는 자가 심다(甚多)하고 상량(商量)하는 자가 불소(不少)하다. 일반(一般; 般)의 것(底)이 있어 다만 말하되 종사가(宗師家)는 고필(固必; 固定不變의 법규)이 없어 무릇 묻는 바가 있으면 수구(隨口)하여 바로 답하나니 비슷하기야 곧 또한 비슷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않다. 만약 이러하다면 다만 저 (箇) 건무사회(乾無事會; 乾燥하여 無事하다는 이회)를 지음이니 양기(楊岐)의 용처(用處) 내지 조사를 보지 못했거늘 천차만별(千差萬別)의 방편문정(方便門庭)을 어떻게(如何) 소견(消遣; 消除)하겠는가. 또 일반(一般; 般)의 것(底)이 있어 다만 불변(佛邊)을 향해 이회하니 도리어 자기와 교섭이 없다. 고인이 말하되 무릇 언구가 있으면 모름지기 이 하나하나 자기에게로 소귀(消歸; 써서 돌아옴)해야 한다고 한 것은 또 어떠한가. 또 또 일반(一般; 般)의 것(底)이 있어 일향(一向) 다만 자기라는 이회를 짓고 고인의 용처(用處)를 기각(棄却)하여 오직(唯) 자기사(自己事)를 밝힘을 말할 줄 만 아니 고인의 방편을 도리어 어떻게 소견(消遣)하겠는가. 이미 소견하지 못하고(消遣不下) 도리어 교주(橋柱)를 안고 조세(澡洗)함과 흡사하여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방수(放手)함을 얻지 못하니 이것 역시 일병(一病)이다. 또 일반(一般; 般)의 것(底)이 있어 도리어 다리(脚)의 다소처(多少處)로 가서 이회하거니와 만약 이렇게 이회한다면 이 병은 가장 치료(醫)하기 어렵다. 소이로 그(양기)의 말에 교묘한 곳이 있어 참학인(參學人)이 마침내(卒) 모색하기 어렵나니 겨우 의심(擬心)하면 곧 어긋나버린다(差了也). 전배(前輩)가 이를 일러 양기종지(楊岐宗旨)라 하나니 모름지기 이는 그의 옥리(屋裏) 사람이라야 이러한 전지(田地)에 이르며 바야흐로 전수(傳授)를 감당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자는 곧 선도(善道)를 수사(守死; 지키며 죽다)한다고 이르는 것이다. 이 공안은 바로 꼭 도리어 저 투정철저한(透頂徹底漢)이라야 바야흐로 능히 요득(了得)한다. 이것은 선화자(禪和子)가 이회함을 얻지 못함에 그침(止)만이 아니라 이금(而今)의 천하 총림 중에 출세하여 위인(爲人)하는 이도 또한 회득(會得)하는 자가 적게 있다. 만약 이회하여 가려거든 바로 꼭 위음나반(威音那畔)ㆍ공겁이전(空劫已前)을 향해 경경(輕輕)히 처착(覷著)하고 제기(提起)하여 편행(便行)하고 누르면(捺著) 바로 돌아서(轉) 도리어 만인봉전(萬仞峯前)을 향해 진일보(進一步)해야 가이(可以) 고금을 농조(籠罩)하고 천하인의 설두(舌頭)를 좌단(坐斷)하리라. 여금에 도리어 이러한 자가 있느냐, 있다면 곧 나와서 말해 보아라. 없을 것 같으면 다시 1송을 들어라. 삼각려자(三脚驢子)가 발굽을 희롱하며 가니/ 바로(直) 위음(威音)의 만장(萬丈)의 구덩이를 투출(透出; 透)한다/ 구름은 영두(嶺頭)에 있으면서 한가함이 그치지(徹) 않거늘/ 물은 간하(㵎下)로 흐르며 매우 바빠한다(太忙生)/ 호남(湖南) 장로를 누가 해회(解會)하느냐,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더라.
上堂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君王得一以治天下 這箇說話 是家常茶飯 須知衲僧家 別有奇特處始得 且道衲僧門下有甚奇特處 天得一 斗牛女虛危室壁 地得一 萬象森羅及瓦礫 君王得一 上下四維無等匹 且道衲僧得一時如何 要見客從何處來 閑持經卷倚松立 浴佛上堂 擧藥山浴佛公案 拈云 這僧問處 依稀越國 髣髴楊州 藥山答來 眼似流星 機如掣電 點檢將來 二俱不了 若是山僧卽不然 當是時 纔見他問 只浴得這箇 且不浴得那箇 但轉木杓柄與伊 待他擬議之間 攔面便潑 假饒這僧有大神通 具大智慧 也無施展處 敢問大衆 這箇卽且置 喚甚麽作那箇 下座 佛殿燒香 爲你說破 師有十牛圖幷頌行于世
●斗牛女虛危室壁; 二十八宿中北方七星宿名 宿 息救切 玉篇 宿 星宿也 二十八宿 此爲區劃日月之運行 以平常目見之群星爲標據 而爲天之分野者 其區分諸國小異 中國爲區分者 東 角亢氐房心尾箕 西 奎婁胃昻畢觜參 南 井鬼柳星張翼軫 北 斗牛女虛危室壁
●無等匹; 無匹敵
●藥山浴佛; 上五藥山惟儼章 遵布衲浴佛 師曰 這箇從汝浴 還浴得那箇麼 遵曰 把將那箇來 師乃休
상당(上堂) 하늘이 일(一)을 얻어 청정하고 땅이 일을 얻어 안녕하고 군왕이 일을 얻어 천하를 다스린다. 저개(這箇) 설화(說話)는 이 가상다반(家常茶飯)이니 납승가(衲僧家)는 따로 기특처(奇特處)가 있음을 수지(須知)해야 비로소 옳다. 차도(且道)하라, 납승문하(衲僧門下)에 무슨 기특처가 있느냐. 하늘이 일(一)을 얻으니 두(斗)ㆍ우(牛)ㆍ녀(女)ㆍ허(虛)ㆍ위(危)ㆍ실(室)ㆍ벽(壁)이며 땅이 일을 얻으니 만상삼라 및 와력(瓦礫)이며 군왕이 일을 얻으니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무등필(無等匹)이다. 차도(且道)하라 납승이 일을 얻을 때 어떠한가. 객이 어느 곳으로 좇아오는지 보고자 하여 한가히 경권(經卷)을 가지고 소나무에 기대어 섰다. 욕불상당(浴佛上堂) 약산의 욕불공안(藥山浴佛公案)을 거(擧)하고 염운(拈云) 저승(這僧)의 문처(問處)는 월국(越國)과 의희(依稀)하고 양주(楊州)와 방불(髣髴)하다. 약산의 답래(答來)는 눈은 유성(流星)과 비슷하고 기(機)는 체전(掣電; 閃電)과 같다. 점검하여 가지고 오매 둘 다 명료(明了; 了)하지 못하다. 만약 이 산승이라면 곧 그렇지 않다. 이때를 당해 그가 묻되 다만 저개(這箇)를 욕득(浴得)했으나 다만(且) 나개(那箇)를 욕득하지 못했다라고 함을 겨우 보았다면 단지 목작(木杓) 자루를 돌려(轉) 그에게 주고 그가 의의(擬議)하는 사이를 기다렸다가 얼굴에다(攔面) 바로 뿌렸겠다. 가요(假饒; 가령) 저승(這僧)이 대신통이 있고 대지혜를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또한 시전(施展)할 곳이 없다 하리라. 감히 대중에게 묻나니 저개(這箇)는 곧 차지(且置)하고 무엇을 일러 나개(那箇)라 하느냐. 하좌하여 불전(佛殿)에 소향(燒香)하여 너희를 위해 설파(說破)하겠다. 스님이 십우도병송(十牛圖幷頌)이 있어 세상에 행한다.
●斗牛女虛危室壁; 28수(宿) 중 북방 7성수(星宿)의 이름. 수(宿)는 식구절(息救切; 수). 옥편 수(宿) 성수(星宿)다. 28수(宿) 이것은 일월의 운행을 구획함임. 평상의 눈으로 보는 뭇 별을 표거(標據)로 삼아 하늘의 분야를 삼는 것임. 그 구분은 여러 나라에서 조금씩 다름. 중국에서 구분하는 것은 동(東)은 각ㆍ항ㆍ저ㆍ방ㆍ심ㆍ미ㆍ기며 서(西)는 규ㆍ루(婁)ㆍ위ㆍ앙ㆍ필ㆍ자ㆍ삼(參)이며 남(南)은 정ㆍ귀ㆍ류(柳)ㆍ성ㆍ장ㆍ익ㆍ진이며 북(北)은 두ㆍ우ㆍ녀(女)ㆍ허ㆍ위ㆍ실ㆍ벽임.
●無等匹; 필적(匹敵)할 이가 없음. .
●藥山浴佛; 위 5 약산유엄장(藥山惟儼章) 준포납(遵布衲)이 욕불(浴佛)하자 사왈 저개(這箇; 이것)는 너의 세욕(洗浴; 浴)을 좇지만 도리어 나개(那箇; 저것)를 욕득(浴得)하겠는가. 준(遵)이 가로되 나개(那箇)를 가지고(把將) 오십시오. 스님이 이에 쉬었다.
嘉州能仁默堂紹悟禪師
結夏上堂 最初一步 十方世界現全身 末後一言 一微塵中深鎻斷 有時提起 如倚天長劒 光耀乾坤 有時放下 似紅爐點雪 虛含萬象 得到恁麽田地 天魔外道 拱手歸降 三世諸佛 一時稽首 便可以大圓覺爲我伽藍 於一毫端現寶王刹 如是則朝往西天 暮歸東土 亦是禁足 百華叢裏坐 婬坊酒肆行 亦是禁足 雖然如是 不曾動著這裏一步 恁麽則九旬無虛棄之功 百劫有今時之用 堪報不報之恩 以助無爲之化 此卽是涅槃妙心 金剛王寶劒 敢問大衆 作麽生得到這田地去 如人上山 各自努力 上堂 擧趙州訪二庵主公案 頌曰 一重山盡一重山 坐斷孤峯子細看 霧捲雲收山嶽靜 楚天空闊一輪寒
가주(嘉州) 능인(能仁) 묵당(默堂) 소오선사(紹悟禪師)
결하상당(結夏上堂) 최초의 일보(一步)여, 시방세계에 전신을 나타내고 말후의 일언(一言)이여, 일미진중(一微塵中)에 깊이 쇄단(鎻斷)한다. 어떤 때는 제기(提起)하나니 하늘에 기댄 장검과 같아 빛이 건곤을 비추고(耀) 어떤 때는 방하(放下)하나니 홍로(紅爐)의 점설(點雪)과 같아(似) 비어서(虛) 만상(萬象)을 머금는다. 이러한 전지(田地)에 득도(得到)하면 천마(天魔)와 외도(外道)가 공수(拱手)하며 귀항(歸降)하고 삼세제불이 일시에 계수(稽首)한다. 바로(便) 가히 대원각(大圓覺)으로써 나의 가람(伽藍)으로 삼고 일호단(一毫端)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낸다. 이와 같으면 곧 아침에 서천(西天)에 갔다가 저녁에 동토(東土)로 돌아와도 역시 금족(禁足)이며 백화총리(百華叢裏)에 앉거나 음방주사(婬坊酒肆)로 다녀도(行) 역시 금족이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일찍이 저리(這裏)에서 일보(一步)도 동착(動著)하지 않았다. 이러하다면 곧 구순(九旬)에 허기지공(虛棄之功)이 없고 백겁(百劫)에 금시지용(今時之用)이 있어 가히(堪) 갚지 못한 은혜를 갚고 무위(無爲)의 교화에 일조(一助; 助)한다. 이것이 곧 이 열반묘심(涅槃妙心)이며 금강왕보검이다. 감히 대중에게 묻나니 어떻게 해야(作麽生) 이 전지(田地)에 득도(得到)하여 가느냐. 사람이 산에 오름과 같나니 각자 노력하라. 상당(上堂) 조주가 두 암주를 방문한 공안(趙州訪二庵主公案)을 거(擧)하고 송왈(頌曰) 일중(一重)의 산이 다하매 일중의 산이니/ 고봉(孤峯)을 좌단(坐斷)하고 자세히 보아라/ 무권운수(霧捲雲收; 안개와 구름이 걷힘)하니 산악이 고요하고/ 초천(楚天)이 공활(空闊)하니 일륜(一輪)이 차갑다.
彭州土溪智陀子言庵主
綿州人也 初至大隨 聞擧石頭和尙示衆偈 倐然領旨 歸隱土溪 懸崖絕壑間有石若蹲異獸 師鑿以爲室 中發異泉 無涸溢 四衆訝之 居三十年 化風盛播 室成日 作偈曰 一擊石庵全 縱橫得自然 淸涼無暑氣 涓潔有甘泉 寬廓含沙界 寂寥絕衆緣 箇中無限意 風月一牀眠
팽주(彭州) 토계(土溪) 지타(智陀) 자언암주(子言庵主)
면주(綿州) 사람이다. 처음 대수(大隨)에 이르러 석두화상시중게(石頭和尙示衆偈)를 거(擧)함을 듣고 숙연(倐然)히 영지(領旨; 意旨를 領會)하고는 토계(土溪)로 귀은(歸隱)했다. 현애절학(懸崖絕壑) 사이에 돌이 있었는데 쭈그린(蹲) 이수(異獸)와 같았다(若). 스님이 뚫어(鑿) 실(室)로 삼았다. 가운데 이천(異泉)이 발생했고 후일(涸溢; 마르거나 넘침)함이 없었으니 사중(四衆)이 의아(疑訝; 訝)하게 여겼다. 거주한 지 30년에 화풍(化風)이 성파(盛播)했다. 실(室)을 이루던 날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일착(一擊)하매 석암(石庵)이 완전하고/ 종횡으로 자연을 얻었다/ 청량하여 서기(暑氣)가 없고/ 연결(涓潔; 淸潔)하여 감천(甘泉)이 있다/ 관확(寬廓; 寬闊)하여 사계(沙界)를 머금었고/ 적료(寂寥)하여 중연(衆緣)이 끊겼다/ 개중(箇中)의 무한한 뜻이여/ 풍월에 일상(一牀)에 수면(睡眠; 眠)한다.
劍門南修道者
淳厚之士也 自大隨一語契投 服勤不怠 歸謁崇化贇禪師 坐次 贇以宗門三印問之 南曰 印空印泥印水 平地寒濤競起 假饒去就十分 也是靈龜曳尾
●靈龜曳尾; 祖庭事苑五 靈龜曳尾 凡龜之行 常曳尾以掃其迹 而尾迹猶存 莊子所謂吾將曳尾於塗中 ▲祖庭事苑六 莊子釣於濮水 楚王使二大夫往召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曰 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笥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於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矣(出莊子秋水)
검문(劍門) 남수(南修) 도자(道者)
순후지사(淳厚之士)다. 대수(大隨)의 일어(一語)에 계투(契投; 契合投合)함으로부터 복근(服勤)하며 게으르지 않았다. 돌아가 숭산빈(崇化贇) 선사를 참알했다. 좌좌(坐次)에 빈(贇; 또 음이 윤)이 종문삼인(宗門三印)을 물었다. 남왈(南曰) 인공(印空)ㆍ인니(印泥)ㆍ인수(印水)여/ 평지에서 한도(寒濤)가 경기(競起)한다/ 가요(假饒; 가령) 거취(去就)가 십분(十分)이라도/ 또한 이는 영귀예미(靈龜曳尾)다.
●靈龜曳尾; 조정사원5. 영귀예미(靈龜曳尾) 무릇 거북의 행동은 늘 꼬리를 끌며 그 자취를 쓸거니와 꼬리의 자취는 오히려 존재함. 장자(莊子)에 이른 바 내가 장차 도중(塗中; 塗는 진흙)에서 꼬리를 끌겠다 한 것임. ▲조정사원6. 장자가 복수(濮水; 濮은 물 이름)에서 낚시질했는데 초왕(楚王; 釋文에 楚威王이라 함)이 두 대부(大夫)를 시켜 가서 부르게 했다. 가로되 원컨대 경내(境內; 國政을 말함)로써 누(累)를 끼칠까 합니다(국정을 맡겨 心勞를 끼칠까 한다는 뜻). 장자가 가로되 초(楚)에 신귀(神龜)가 있어 죽은 지 이미 3천 세며 왕이 건사(巾笥; 巾은 巾箱이니 상자. 笥는 상자 사. 곧 상자에 넣음)하여 묘당(廟堂)의 위에 그것을 감춰 두었다는데 이 거북이란 것이 차라리 그 죽어서 뼈를 남김이 소중하겠습니까. 차라리 그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까. 두 대부가 가로되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다. 장자가 가로되 가십시오. 나는 장차 진흙 속에 꼬리를 끌겠습니다(莊子 秋水에 나옴).
莫將尙書
字少虛 家世豫章分寧 因官西蜀 謁南堂靜禪師咨決心要 堂使其向好處提撕 適如廁 俄聞穢氣 急以手掩鼻 遂有省 卽呈以偈曰 從來姿韻愛風流 幾笑時人向外求 萬別千差無覓處 得來元在鼻尖頭 南堂答曰 一法纔通法法周 縱橫妙用更何求 靑虵出匣魔軍伏 碧眼胡僧笑點頭
●靑虵; 寶劍名 金剛經石注曰 儒有龍泉寶劍 安邦定國 道有靑蛇寶劍 斷絶情慾 佛有金剛寶杵 降伏魔王
막장상서(莫將尙書)
자가 소허(少虛)며 가세(家世; 家庭의 世系)가 예장(豫章) 분녕(分寧)이었고 인하여 서촉(西蜀)에서 벼슬했다. 남당정(南堂靜; 元靜) 선사를 참알해 심요(心要)를 자결(咨決)했다. 남당이 그로 하여금 호처(好處)를 향해 제시(提撕; 參究)하게 했다. 마침(適) 뒷간에 갔는데(如廁) 갑자기(俄) 더러운 냄새(穢氣)를 맡고(聞) 급히 손으로써 코를 가리다가 드디어 성찰이 있었다. 곧 게를 보여(呈) 가로되 종래로 멋진 운치(姿韻)로 풍류를 사랑했나니/ 얼마나 시인(時人)이 밖을 향해 구함을 웃었던가/ 만별과 천차를 찾을 곳이 없더니/ 얻어 오매 원래 코끝(鼻尖頭; 頭는 後綴)에 있더라. 남당이 답왈 일법(一法)을 겨우 통하매 법법에 두루하나니(周)/ 종횡으로 묘용(妙用)이거늘 다시 어찌 구하겠는가/ 청사(靑虵)가 출갑(出匣)하매 마군(魔軍)이 항복(降伏)하나니/ 벽안호승(碧眼胡僧)이 웃으며 점두(點頭)한다.
●靑虵; 보검의 이름임. 금강경석주(金剛經石注)에 가로되 유(儒)는 용천보검(龍泉寶劍)이 있어 안방정국(安邦定國)하고 도(道)는 청사보검(靑蛇寶劍)이 있어 정욕을 단절하고 불(佛)은 금강보저(金剛寶杵)가 있어 마왕을 항복시킨다.
龍圖王蕭居士
字觀復 留昭覺日 聞開靜板聲 有省 問南堂曰 某有箇見處 纔被人問 却開口不得 未審過在甚處 堂曰 過在有箇見處 堂却問 朝斾幾時到任 公曰 去年八月四日 堂曰 自按察幾時離衙 公曰 前月二十 堂曰 爲甚麽道開口不得 公乃契悟
●朝斾; 猶朝旆 對朝廷官員的尊稱
용도(龍圖) 왕소거사(王蕭居士)
자가 관복(觀復)이다. 소각(昭覺)에 머물던 날 개정판(開靜板) 소리를 듣고 성찰이 있었다. 남당(南堂)에게 물어 가로되 모(某)가 이(箇) 견처(見處)가 있습니다만 겨우 사람들의 물음을 입으면 도리어 입 엶을 얻지 못하니 미심(未審)합니다,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당왈(堂曰) 허물이 이 견처가 있음에 있다. 남당이 도리어 묻되 조패(朝斾)가 어느 때에 도임(到任)했는가. 공왈(公曰) 지난해 8월 4일입니다. 당왈 안찰(按察)함으로부터 어느 때에 관아(官衙)를 떠났는가. 공왈 지난달 20입니다. 당왈 무엇 때문에 입 엶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리오. 공이 이에 계오(契悟)했다.
●朝斾; 조패(朝旆)와 같음. 조정 관원에 대한 존칭.
五祖自禪師法嗣
蘄州龍華高禪師
上堂 象王行師子住 赤脚崑崙眉卓竪 寒山拾得笑呵呵 指點門前老松樹 且道他指點箇甚麽 忽然風吹倒時 好一堆柴
기주(蘄州) 용화고(龍華高) 선사
상당(上堂) 상왕(象王)이 가고 사자가 머물고/ 맨발의 곤륜(崑崙)이 눈썹을 쭈삣 세웠다(卓竪)/ 한산과 습득이 하하 웃으며/ 문 앞의 늙은 소나무를 지점(指點; 指示)한다. 차도(且道)하라, 그가 저(箇) 무엇을 지점하느냐. 홀연히 바람이 불어 넘어질 때 좋은 한 무더기의 섶이다.
南嶽下十六世
徑山杲禪師法嗣
泉州敎忠晦庵彌光禪師
閩之李氏子 兒時寡言笑 聞梵唄則喜 十五依幽巖文慧禪師圓頂 猶喜閱羣書 一日曰 旣剃髮染衣 當期悟徹 豈醉於俗典邪 遂出嶺 謁圓悟禪師於雲居 次參黃檗祥高庵悟 機語皆契 以淮楚盜起 歸謁佛心 會大慧寓廣 因往從之 慧謂曰 汝在佛心處所得者 試擧一二看 師擧佛心上堂拈普化公案曰 佛心卽不然 總不恁麽來時如何 劈脊便打 從敎徧界分身 慧曰 汝意如何 師曰 某不肯他後頭下箇注脚 慧曰 此正是以病爲法 師毅然無信可意 慧曰 汝但揣摩看 師竟以爲不然 經旬 因記海印信禪師拈曰 雷聲浩大 雨點全無 始無滯 趨告慧 慧以擧道者見琅邪幷玄沙未徹語詰之 師對已 慧笑曰 雖進得一步 祇是不著所在 如人斫樹 根下一刀 則命根斷矣 汝向枝上斫 其能斷命根乎 今諸方浩浩說禪者 見處總如此 何益於事 其楊岐正傳 三四人而已 師慍而去
●揣摩; 反復思考推求
천주(泉州) 교충(敎忠) 회암(晦庵) 미광선사(彌光禪師)
민(閩)의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아시(兒時)에 언소(言笑)가 적었고(寡) 범패(梵唄)를 들으면 곧 기뻐했다. 15에 유암(幽巖) 문혜선사(文慧禪師)에게 의지해 원정(圓頂)했는데 오히려 군서(羣書)를 읽기를 좋아했다(喜). 어느 날 가로되 이미 체발(剃髮)하고 염의(染衣)했으니 마땅히 오철(悟徹)를 기약해야 하거늘 어찌 속전(俗典)에 취(醉)하겠는가. 드디어 출령(出嶺)하여 운거(雲居)에서 원오선사(圓悟禪師)를 참알했고 다음 황벽상(黃檗祥)ㆍ고암오(高庵悟; 善悟)를 참(參)해 기어(機語)가 모두 계합했다. 회초(淮楚)에 도적이 일어났으므로 불심(佛心)에게 귀알(歸謁)했다. 마침(會) 대혜(大慧)가 광(廣)에 우거(寓居; 寓)하였고 인하여 가서 그를 좇았다. 대혜가 일러 가로되 네가 불심(佛心)의 처소에 있으면서 얻은 바의 것을 시험 삼아 한둘 들어(擧) 보아라. 스님이 거(擧)했다. 불심이 상당하여 보화공안(普化公案)을 염(拈)해 가로되 불심은 곧 그렇지 않나니 모두(總) 이렇게 오지 않을 때 어떠한가라고 한다면 등에다가 바로 때려(劈脊便打) 편계(徧界)에 분신(分身)하는 대로 좇았겠다. 혜왈(慧曰) 너의 뜻은 어떠한가. 사왈 모(某)는 그의 후두(後頭; 후면)의 저(箇) 주각(注脚)을 내린 것을 불긍(不肯)합니다. 혜왈 이것은 바로(正) 이 병(病)을 법으로 삼았다. 스님이 의연(毅然)하여 가의(可意; 適意)한 믿음이 없었다. 혜왈 네가 단지 췌마(揣摩)해 보아라. 스님이 마침내(竟)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열흘이 지났다(經旬). 인하여 기억하였으니 해인신(海印信) 선사가 염왈(拈曰) 뇌성(雷聲)은 호대(浩大; 巨大)나 우점(雨點; 빗방울)은 전무(全無)하다. 비로소 막힘(滯)이 없었다. 달려가 대혜에게 고하자 대혜가 거도자(擧道者)가 낭야(琅邪; 慧覺)를 본 것과 아울러 현사미철어(玄沙未徹語)로써 힐문했다. 스님이 대답해 마치자 대혜가 웃으며 가로되 비록 일보(一步) 나아감을 얻었으나 다만 이 소재(所在)에 안착(安著; 著)하지 못했다. 사람이 나무를 자름(斫)과 같아서 뿌리에 일도 내려쳐야(下一刀) 곧 명근(命根)이 끊어지거늘 너는 지상(枝上)을 향해 자르니 그 능히 명근을 끊겠는가. 여금에 제방에서 호호(浩浩) 설선(說禪)하는 자의 견처(見處)가 모두 이와 같나니 차사(此事; 事)에 무슨 이익이겠는가. 그 양기(楊岐)의 정전(正傳)은 서넛 사람일 따름이다. 스님이 성내고(慍) 갔다.
●揣摩; 반복하여 사고(思考)하고 추구함.
翌日 慧問 汝還疑否 師曰 無可疑者 慧曰 祇如古人相見 未開口時已知虛實 或聞其語 便識淺深 此理如何 師悚然汗下 莫知所詣 慧令究有句無句 慧過雲門庵 師侍行 一日問曰 某到這裏 不能得徹 病在甚處 慧曰 汝病最癖 世醫拱手 何也 別人死了活不得 汝今活了未曾死 要到大安樂田地 須是死一回始得 師疑情愈深 後入室 慧問 喫粥了也 洗鉢盂了也 去却藥忌 道將一句來 師曰 裂破 慧震威喝曰 你又說禪也 師卽大悟 慧撾皷告衆曰 龜毛拈得笑咍咍 一擊萬重關鏁開 慶快平生在今日 孰云千堂賺吾來 師亦以頌呈之曰 一拶當機怒雷吼 驚起須彌藏北斗 洪波浩渺浪滔天 拈得鼻孔失却口
●咍咍; 指歡笑貌
익일(翌日) 대혜가 묻되 네가 도리어 의심하느냐. 사왈 가히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혜왈(慧曰) 지여(祇如) 고인은 상견하면 입을 열지 않았을 때 이미 허실(虛實)을 알았고 혹 그의 말을 들으면 바로 천심(淺深)을 알았다. 이 이치가 어떠한가(如何). 스님이 송연(悚然)하며 땀을 흘리며(汗下) 나아갈(詣) 바를 알지 못했다. 대혜가 유구무구(有句無句)를 참구(參究; 究)하게 했다. 대혜가 운문암(雲門庵)에 이르자(過) 스님이 시행(侍行)했다. 어느 날 문왈(問曰) 모(某)가 저리(這裏)에 이르러 능히 득철(得徹)하지 못함은 병(病)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혜왈 너의 병은 최벽(最癖; 가장 怪癖함)인지라 세의(世醫)가 공수(拱手)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別人)은 죽고 나서(死了) 삶을 얻지 못하지만 너는 지금 살고 나서 일찍이 죽지 못했다. 대안락전지(大安樂田地)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는 1회 죽어야(死一回) 비로소 옳다. 스님이 의정(疑情)이 더욱(愈) 깊었다. 후에 입실하자 대혜가 묻되 끽죽해 마쳤고(喫粥了也) 발우를 씻어 마쳤거든(洗鉢盂了也) 약기(藥忌; 語言)를 제거해버리고 1구 말해 가지고 오너라. 사왈 열파(裂破)했습니다. 대혜가 위엄을 떨치며 할(喝)해 가로되 네가 또 설선(說禪)하느냐. 스님이 곧 대오했다. 대혜가 북을 치고(撾) 고중(告衆)해 가로되 귀모(龜毛)를 염득(拈得)하고 웃으며 해해(咍咍)하나니/ 일격(一擊)에 만 겹의 관쇄()關鏁가 열렸다/ 경쾌(慶快)한 평생이 금일에 있나니/ 누가(孰) 천당(千堂)이 나를 속여 왔다고(賺吾來) 이르느냐. 스님도 또한 송을 드려(呈之) 가로되 일찰(一拶)하는 당기(當機)가 노(怒)한 뇌후(雷吼)니/ 수미(須彌)를 경기(驚起)하여 북두(北斗)에 숨었다/ 홍파(洪波)가 호묘(浩渺)하여 파랑이 하늘에 넘치나니/ 비공(鼻孔)을 염득(拈得)하고 입을 실각(失却)했다.
●咍咍; 기뻐서 웃는 모양.
住後 上堂 有句無句 如藤倚樹 放憨作麽 及乎樹倒藤枯 句歸何處 情知汝等諸人 卒討頭鼻不著 爲甚如此 祇爲分明極 飜令所得遲 上堂 夢幻空華 何勞把捉 得失是非 一時放却 擲拂子曰 山僧今日已是放下了也 汝等諸人 又作麽生 復曰 侍者收取拂子 僧問 文殊爲甚麽出女子定不得 師曰 山僧今日困 曰 罔明爲甚麽却出得 師曰 令人疑著 曰 恁麽則擘開華嶽千峯秀 放出黃河一派淸 師曰 一任卜度
주후(住後) 상당(上堂)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藤)이 나무에 기댐과 같다 하니 방감(放憨)하여 무엇하랴. 나무가 넘어져 등이 마르면 구(句)가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함에 이르러선(及乎) 정지(情知; 豫想. 思料)하노니 너희 등 제인이 마침내(卒) 두비(頭鼻)를 찾지 못한다(討頭鼻不著).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다만 분명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도리어(飜) 소득(所得)을 더디게 한다. 상당(上堂) 몽환공화(夢幻空華)를/ 어찌 노고롭게 파착(把捉)하겠는가/ 득실시비(得失是非)를/ 일시에 방각(放却)하라. 불자를 던지고 가로되 산승은 금일 이미 이 방하해 마쳤거니와(放下了也) 너희 등 제인은 또 어떠한가. 다시 가로되 시자야 불자를 수취(收取)하라. 승문 문수(文殊)는 무엇 때문에 여자에게 정(定)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했습니까. 사왈 산승은 금일 피곤하다. 가로되 망명(罔明)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나오게 함을 얻었습니까. 사왈 사람으로 하여금 의착(疑著)하게 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화악(華嶽)을 벽개(擘開)하니 천봉(千峯)이 빼어나고 황하(黃河)를 방출(放出)하니 일파(一派)가 맑습니다. 사왈 복탁(卜度)하는 대로 일임한다.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pyungsimsa.tistory.com
'오등회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등회원20 이병거사(李邴居士)-혜온선사(慧溫禪師) (0) | 2025.10.08 |
---|---|
오등회원20 도안선사(道顔禪師)-무구거사(無垢居士) 장구성(張九成) (0) | 2025.10.08 |
오등회원19 승소선사(僧昭禪師)-곡산해(谷山海) 선사 (0) | 2025.10.08 |
오등회원19 종태선사(宗泰禪師)-경원선사(景元禪師) (0) | 2025.10.08 |
오등회원19 영기선사(永起禪師)-원정선사(元靜禪師) (0) | 2025.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