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19 승소선사(僧昭禪師)-곡산해(谷山海) 선사

태화당 2025. 10. 8. 09:18

福州玄沙僧昭禪師

上堂 天上無彌勒 地下無彌勒 且道彌勒在甚麽處 良久曰 夜行莫踏白 不是水便是石

 

복주(福州) 현사(玄沙) 승소선사(僧昭禪師)

상당(上堂) 천상에 미륵이 없고 지하에 미륵이 없다. 차도(且道)하라 미륵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야행(夜行)에 흰 것을 밟지 말지니 이 물이 아니면 바로 이 돌이다.

 

平江府南峯雲辯禪師

本郡人 依閩之瑞峯章得度 旋里謁穹窿圓 忽有得 遂通所見 圓曰 子雖得入 未至當也 切宜著鞭 乃辭扣諸席 後參圓悟 値入室 纔踵門 悟曰 看脚下 師打露柱一下 悟曰 何不著實道取一句 師曰 師若搖頭 弟子擺尾 悟曰 你試擺尾看 師飜筋斗而出 悟大笑 由是知名 住後 僧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覇主到烏江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築壇拜將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萬里山河獲太平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龍吟霧起 虎嘯風生 曰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當面蹉過 曰 眞箇作家 師曰 白日鬼迷人 一日入城 與道俗行至十郞巷 有問 巷在這裏 十郞在甚處 師奮臂曰 隨我來

拜將; 拜 授官

 

평강부(平江府) 남봉(南峯) 운변선사(雲辯禪師)

본군(本郡) 사람이다. ()의 서봉장(瑞峯章)에 의지해 득도(得度)했다. 향리(鄕里)로 선회(旋回)하여 궁륭원(穹窿圓; 智圓)을 참알했고 홀연히 얻음이 있었다. 드디어 소견(所見)을 통보하자 원왈(圓曰) 자네가 비록 득입(得入)했지만 지당(至當)함은 아니다. 간절히 의당 채찍을 붙여라(著鞭). 이에 고별하고 여러 법석을 두드렸다(). 후에 원오(圓悟)를 참()해 입실을 만나() 겨우 종문(踵門; 문에 오름)하자 오왈(悟曰) 간각하(看脚下)하라. 스님이 노주(露柱)를 한 번 때렸다. 오왈 왜 착실(著實)1구를 말하지(道取) 않느냐. 사왈 스님이 만약 머리를 흔들면(搖頭) 제자가 꼬리를 흔들겠습니다(擺尾). 오왈 네가 시험 삼아 꼬리를 흔들어 보아라. 스님이 근두(筋斗)를 뒤집고() 나갔다. 원오가 크게 웃었다.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졌다(知名). 주후(住後) 승문 무엇이 이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입니까. 사왈 패주(覇主)가 오강(烏江)에 이르렀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입니까. 사왈 축단(築壇)하고 배장(拜將)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입니까. 사왈 만 리 산하가 태평을 획득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입니까. 용이 읊으면 안개가 일어나고 범이 읊으면 바람이 생겨난다. 가로되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당면(當面)하여 차과(蹉過)했다. 가로되 진개(眞箇)의 작가입니다. 사왈 백일(白日; 대낮)에 귀신이 사람을 혼미(昏迷)하게 한다. 어느 날 입성(入城)하여 도속(道俗)과 더불어 가다가 십랑항(十郞巷)에 이르렀다. 물음이 있되 항()은 이 속에 있거니와 십랑(十郞)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스님이 팔을 휘두르고() 가로되 나를 따라 온다.

拜將; ()는 관직을 줌.

 

臨安府靈隱慧遠佛海禪師

眉山彭氏子 年十三 從藥師院宗辯爲僧 詣大慈聽習 棄依靈巖徽禪師 微有省 會圓悟復領昭覺 師卽之 聞悟普說 擧龐居士問馬祖不與萬法爲侶因緣 師忽頓悟 仆於衆 衆掖之 師乃曰 吾夢覺矣 至夜小參 師出問曰 淨躶躶空無一物 赤骨力貧無一錢 戶破家亡 乞師賑濟 悟曰 七珍八寶一時拏 師曰 禍不入謹家之門 悟曰 機不離位 墮在毒海 師隨聲便喝 悟以拄杖擊禪牀云 喫得棒也未 師又喝 悟連喝兩喝 師便禮拜 自此機鋒峻發 無所抵捂 圓悟順寂 師卽東下 屢遷名刹 由虎丘奉詔住皐亭崇先 復被旨補靈隱 孝廟召對 賜佛海禪師

赤骨力; 一無所有 赤裸裸 多喩蕩盡俗情妄念 明悟本來面目

七珍八寶; 謂多數的珍寶 七或八表示多數

峻發; 迅速開發 很快顯現出來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혜원(慧遠) 불해선사(佛海禪師)

미산(眉山) 팽씨(彭氏)의 아들이다. 나이 13에 약사원(藥師院) 종변(宗辯)을 좇아 승인이 되었다. 대자(大慈)로 나아가 청습(聽習)하다가 버리고 영암휘(靈巖徽) 선사에게 의지하면서 조금() 성찰이 있었다. 마침() 원오(圓悟)가 소각(昭覺)을 다시 거느리자(復領) 스님이 곧 갔다. 원오의 보설(普說)을 들었는데 방거사가 마조에게 물은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다는 인연을 거()했다. 스님이 홀연히 돈오(頓悟)했다. 대중에 넘어지자() 대중이 곁부축했다(掖之). 스님이 이에 가로되 나의 꿈이 깨었다. 밤의 소참(小參)에 이르러 스님이 나가서 물어 가로되 정나라(淨躶躶)하고 공()해 일물(一物)도 없고 적골력(赤骨力)이라 빈곤해 일전(一錢)도 없으며 호파가망(戶破家亡)했으니 스님의 진제(賑濟)를 구걸합니다. 오왈(悟曰) 칠진팔보(七珍八寶)를 일시에 붙잡았다(). 사왈 화()가 삼가는 집의 문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왈(悟曰) ()가 위()를 여의지 못하면 독해(毒海)에 떨어져 있다. 스님이 소리 따라 바로 할했다. 원오가 주장자로써 선상을 치고 이르되 방()을 끽득(喫得)했느냐 또는 아니냐. 스님이 또 할했다. 원오가 양할(兩喝)을 연할(連喝)했다. 스님이 바로 예배했다. 이로부터 기봉(機鋒)이 준발(峻發)하여 저오(抵捂; 抵敵)하는 바가 없었다. 원오가 원적(順寂)하자 스님이 곧 동하(東下)하여 여러번() 명찰(名刹)로 옮겼다. 호구(虎丘)에서 봉조(奉詔)하여 고정(皐亭) 숭선(崇先)에 주()함으로부터 다시 피지(被旨)하여 영은(靈隱)에 보임(補任; )했다. 효묘(孝廟)가 소대(召對)하고 불해선사(佛海禪師)를 주었다.

赤骨力; 하나도 소유한 게 없음. 적나라(赤裸裸). 다분히 속정(俗情)과 망념(妄念)을 탕진하고 본래면목을 환히 깨침에 비유함.

七珍八寶; 다수의 진보를 말함. 7 8은 다수를 표시함.

峻發; 신속히 개발함. 흔쾌(很快)히 현현(顯現)하여 나옴.

 

上堂 新歲有來由 烹茶上酒樓 一雙爲兩脚 半箇有三頭 突出神難辨 相逢鬼見愁 倒吹無孔笛 促拍舞涼州 咄 上堂 好是仲春漸暖 那堪寒食淸明 萬疊雲山聳翠 一天風月良隣 在處華紅柳綠 湖天浪穩風平 山禽枝上語諄諄 再三𤨏𤨏碎碎 囑付叮叮嚀嚀 你且道 他叮嚀囑付箇甚麽 卓拄杖曰 記取明年今日 依舊寒食淸明 上堂 擧 僧問睦州 以一重去一重卽不問 不以一重去一重時如何 州曰 昨日栽茄子 今朝種冬瓜 師曰 問者善問不解答 答者善答不解問 山僧今日 向饑鷹爪下奪肉 猛虎口裏橫身 爲你諸人說箇樣子 登壇道士羽衣輕 呪力雖窮法轉新 拇指破開天地闇 虵頭攧落鬼神驚 僧問 十二時中 敎學人如何用心 師曰 蘸雪喫冬瓜 問 浩浩塵中如何辨主 師曰 木杓頭邊鐮切菜 曰 莫便是和尙爲人處也無 師曰 姸槌撩䬪飥 問 卽心卽佛時如何 師曰 頂分丫角 曰 非心非佛時如何 師曰 耳墜金鐶 曰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又作麽生 師曰 禿頂修羅舞柘枝

鬼見愁; 鬼見乃憂愁 形容極其奇特之物 本草綱目無患子條 共擧出七種別名 卽桓 木患子 噤婁 肥珠子 油珠子 菩提子 鬼見愁

促拍; 敲出節奏 擊拍子

諄諄; 敎誨不倦貌

𤨏𤨏碎碎; 形容輕微的聲音

叮叮嚀嚀; 反復叮嚀貌

 

상당(上堂) 신세(新歲)에 내유(來由)가 있나니/ 팽다(烹茶)하여 주루(酒樓)에 오른다/ 일쌍(一雙)에 양각(兩脚)이 되며/ 반개(半箇)에 삼두(三頭)가 있다/ 돌출신()이 분변하기 어렵고/ 상봉하매 귀견수(鬼見愁)/. 무공적을 거꾸로 불고/ 촉박(促拍; 잦은 장단)하며 양주(涼州; 舞曲名)를 춤춘다. (). 상당(上堂) 좋기로는 이 중춘(仲春)에 점차 따뜻함이니 어찌() 한식(寒食)과 청명(淸明)을 감당하리오. 만첩(萬疊)의 운산(雲山)은 푸름이 솟았고(聳翠) 일천(一天)의 풍월(風月)은 좋은 이웃이다(良隣). 재처(在處)에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며() 호천(湖天)에 파랑은 고요하고 바람도 평온(平穩; )하다. 산새(山禽)가 가지 위에서 지저귐이 순순(諄諄)하나니 재삼 쇄쇄쇄쇄(瑣瑣碎碎)하며 촉부(囑付)함이 정정영녕(叮叮嚀嚀)이다. 너희가 그래 말하라, 그가 정녕(叮嚀)히 저() 무엇을 촉부(囑付)하는가.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기취(記取)할지니 명년의 금일은 의구히 한식ㆍ청명이다. 상당(上堂) ()하다. 중이 목주(睦州)에게 묻되 일중(一重)으로써 일중(一重)을 제거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 일중으로써 일중을 제거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주왈(州曰) 어제 가자(茄子; 가지)를 심었고() 금조(今朝)에 동과(冬瓜)를 심었다(). 사왈 문자(問者)는 묻기는 잘하나 답할 줄 알지 못했고 답자(答者)는 답하기는 잘하나 물을 줄 알지 못했다. 산승이 금일 주린 매(饑鷹)의 발톱() 아래를 향해 탈육(奪肉)하고 맹호(猛虎)의 입 속에 횡신(橫身)하여 너희 제인을 위해 저() 양자(樣子)를 설하겠다. 등단(登壇)한 도사(道士)의 우의(羽衣)가 가볍고/ 주력(呪力)이 비록 궁핍(窮乏; )하나 법은 더욱() 새롭다/ 무지(拇指; 엄지손가락)로 파개(破開)하니 천지가 어둡고()/ 사두(虵頭)가 전락(攧落; 거꾸러져 墜落)하니 귀신이 놀란다. 승문 12시 중에 학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용심(用心)하게 합니까. 사왈 잠설(蘸雪; 눈에 담그다)하여 동과(冬瓜)를 먹어라. 묻되 호호(浩浩)한 진중(塵中)에서 어떻게 변주(辨主)합니까. 사왈 목작두변(木杓頭邊; 나무 구기 가)에서 낫으로 나물을 자른다(鐮切菜).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연추(姸槌; 연마한 망치)로 박탁(䬪飥; 수제비)을 다스린다().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정수리가 아각(丫角)으로 나뉘었다. 가로되 비심비불(非心非佛)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귀에서 금환(金鐶; 금 귀고리)이 떨어졌다. 가로되 이 심이 아니며 이 불이 아니며 이 물이 아님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독정(禿頂) 수라(修羅)가 자지(柘枝)를 춤춘다.

鬼見愁; 귀신이 보면 곧 우수함이니 극히 그 기특한 물건을 형용함. 본초강목 무환자조(無患子條)에 공히 7종의 별명을 거출했으니 곧 환ㆍ목환자ㆍ금루ㆍ비주자ㆍ유주자ㆍ보리자ㆍ귀견수임.

促拍; 절주(節奏; 리듬)를 두드려 냄. 박자를 침.

諄諄; 교회(敎誨)하면서 게으르지 않는 모양.

𤨏𤨏碎碎; 경미(輕微)한 성음(聲音)을 형용.

叮叮嚀嚀; 정녕을 반복하하는 모양.

 

問 東山水上行 意旨如何 師曰 初三十一 不用擇日 問 文殊是七佛之師 爲甚麽出女子定不得 師曰 擔頭不挂針 問 昔有一秀才 作無鬼論 論成有一鬼叱曰 爭奈我何 意作麽生 師以手斫額曰 何似生 曰 祇如五祖以手作鵓鳩觜曰 谷呱呱 又且如何 師曰 自領出去 問 庵內人爲甚麽不知庵外事 師曰 拄杖橫挑鐵蒺䔧 問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師曰 脚踏轆轤 一日鳴皷陞堂 師潛坐帳中 侍僧尋之 師忽撥開帳曰 祇在這裏 因甚麽不見 僧無對 師曰 大斧斫三門 問僧 一大藏敎是惡口 如何是本身盧舍那 僧曰 天台普請 南嶽遊山 師別曰 阿耨達池深四十丈 闊四十丈 乙未秋 示衆曰 淳熙二年閏季秋九月旦 閙處莫出頭 冷地著眼看 明暗不相干 彼此分一半 一種作貴人 敎誰賣柴炭 向你道 不可毀不可讚 體若虛空沒涯岸 相喚相呼歸去來 上元定是正月半 都下喧傳而疑之 明年忽感微疾 果以上元揮偈 安坐而化 偈曰 拗折秤鎚 掀飜露布 突出機先 鵶飛不度 留七日 顔色不異 塔全身於寺之烏峯

擔頭; 卽擔子 頭 後綴

轆轤; 一安在井上絞起汲水斗的器具 二機械上的絞盤

機先; 又作機前 原指事機之先兆 禪林中 形容一念未動 一言不發前之狀態

 

묻되 동산(東山)이 물 위로 간다고 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초()31이니 택일(擇日)을 쓰지 않는다. 묻되 문수는 이 7불의 스승이거늘 무엇 때문에 여자를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했습니까. 사왈 담두(擔頭; 질대)에 바늘을 걸지 않았다. 묻되 옛적에 1수재(秀才)가 있어 무귀론(無鬼論)을 짓는데 논을 이루자 1()가 있어 꾸짖으며 가로되 나는 어찌하겠는가(爭奈我何).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작액(斫額)하고 가로되 하사생(何似生; 어떠한가). 가로되 지여(祇如) 오조(五祖)가 손으로써 발구취(鵓鳩觜; 비둘기 주둥이)를 짓고 가로되 곡고고(谷呱呱; 비둘기 우는 소리)라고 한 것은 우차(又且) 무엇입니까. 사왈 스스로 영회하고 나가거라(自領出去). 묻되 암내인(庵內人)이 무엇 때문에 암외사(庵外事)를 알지 못합니까. 사왈 주장자로 철질려(鐵蒺䔧)를 가로 메었다(橫挑). 묻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발로 녹로(轆轤)를 밟았다. 어느 날 북을 울리고 승당했는데 스님이 장중(帳中)에 몰래() 앉았다. 시승(侍僧)이 찾았다. 스님이 홀연히 장(; 帳幕)을 헤쳐 열고(撥開) 가로되 다만 이 속에 있거늘 무엇으로 인해 보지 못하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큰 도끼로 삼문(三門)을 쪼개어라. 중에게 묻되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이 악구(惡口). 무엇이 이 본신로사나(本身盧舍那)인가. 승왈 천태에서 보청(普請)하고 남악에서 유산(遊山)합니다. 스님이 별왈(別曰) 아뇩달지(阿耨達池)의 깊이가 40()이며 너비()40()이다. 을미(乙未; 1175) 가을 시중(示衆)해 가로되 순희(淳熙) 2(1175) () 계추(季秋) 9월 아침이니 요처(閙處)에 출두하지 말고/ 냉지(冷地)에서 착안하여 보아라/ 명암이 상간(相干)하지 않나니/ 피차(彼此) 일반(一半; 折半)을 나누었다/ 일종(一種)으로 귀인(貴人)이 되었거늘/ 누구로 하여금 시탄(柴炭)을 팔게 하겠는가. 너희를 향해 말하나니 훼방(毁謗; )함도 옳지 못하고 칭찬함도 옳지 못하나니/ ()가 허공과 같아서 애안이 없다(沒涯岸)/ 상환상호(相喚相呼)하며 귀거래(歸去來)하나니/ 상원(上元)은 꼭() 이 정월의 반이다. 도하(都下; 京都)에서 훤전(喧傳)하며 의심했는데 명년 홀연히 미질(微疾)에 감염되었고 과연 상원(上元)에 휘게(揮偈)하고는 안좌(安坐)하여 화()했다. 게왈(偈曰) 칭추(秤鎚)를 요절(拗折)하고/ 노포(露布)를 흔번(掀飜; 번쩍 들어 엎다)하라/ 기선(機先)을 돌출(突出하니/ 까마귀가 날아도 지나지() 못한다. 7일 동안 머물렀는데 안색이 달라지지 않았다. 전신(全身)으로 사원의 오봉(烏峯)에 탑을 세웠다.

擔頭; 즉 담자(擔子; 질대). 두는 후철.

轆轤; 1. 우물 위에 안치해 놓고 교기(絞起; 죄어 일으키다)하며 물을 긷는 두()의 기구. 2. 기계 위의 교반(絞盤; 밧줄을 죄는 장치).

機先; 또 기전(機前)으로 지음. 원래는 사기(事機)의 선조(先兆; 전조. 조짐)를 가리킴. 선림 중에선 1()이 움직이지 않고 1()이 나오지 않은 상태를 형용함.

 

台州鴻福子文禪師

上堂 不昧不落作麽會 會得依前墮野狐 一夜涼風生畫角 滿船明月泛江湖

畫角; 軍用樂器 角 古樂器名 多用于軍隊中 畫 謂繪畫於角也

 

태주(台州) 홍복(鴻福) 자문선사(子文禪師)

상당(上堂) 불매(不昧)와 불락(不落)을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회득(會得)해도 의전(依前)히 야호(野狐)에 떨어진다/ 일야(一夜)에 양풍(涼風)이 화각(畫角)에서 생겨나니/ 만선(滿船)한 명월을 강호(江湖)에 띄운다.

畫角; 군용 악기. ()은 옛 악기의 이름이니 다분히 군대 중에서 사용함. ()는 각()에 회화(繪畫)했음임.

 

成都府正法建禪師

上堂 兔馬有角 牛羊無角 絕毫絕氂 如山如嶽 針鋒上師子飜身 藕竅中大鵬展翼 等閑突過北俱盧 日月星辰一時黑

 

성도부(成都府) 정법건(正法建) 선사

상당(上堂) 토마(兔馬)는 뿔이 있으나/ 우양(牛羊)은 뿔이 없다/ 절호절리(絕毫絕氂)했고/ 여산여악(如山如嶽)이다. 침봉(針鋒) 위에서 사자(師子)가 번신(飜身)하고/ 우규(藕竅) 가운데에서 대붕(大鵬) 전익(展翼)한다/ 등한히 북구로(北俱盧)를 돌과(突過; 돌연히 지나가다)하니/ 일월성신이 일시에 암흑(暗黑; )이다.

 

建康府華藏密印安民禪師

嘉定府朱氏子 初講楞嚴於成都 爲義學所歸 時圓悟居昭覺 師與勝禪師爲友 因造焉 聞悟小參 擧國師三喚侍者因緣 趙州拈云 如人暗中書字 字雖不成 文彩已彰 那裏是文彩已彰處 師心疑之 告香入室 悟問 座主講何經 師曰 楞嚴 悟曰 楞嚴有七處徵心 八還辨見 畢竟心在甚麽處 師多呈藝解 悟皆不肯 師復請益 悟令一切處作文彩已彰會 偶僧請益十玄談 方擧問君心印作何顔 悟厲聲曰 文彩已彰 師聞而有省 遂求印證 悟示以本色鉗鎚 師則罔措 一日白悟曰 和尙休擧話 待某說看 悟諾 師曰 尋常拈槌竪拂 豈不是經中道 一切世界諸所有相 皆卽菩提妙明眞心 悟笑曰 你元來在這裏作活計 師又曰 下喝敲牀時 豈不是返聞聞自性 性成無上道 悟曰 你豈不見經中道 妙性圓明 離諸名相 師於言下釋然

七處徵心; 佛於楞嚴會上徵詰阿難心目所在之處 阿難先後以七處回答之 均爲佛所論破 稱爲七處徵心 一在內 二在外 三潛根 四在闇內 五隨所合處 六在中間 七無著

藝解; 對佛法的理解

十玄談; 一卷 唐代同安常察撰 收於傳燈錄二十九 聯燈會要三十 凡分十玄 心印 祖意 玄機 塵異 佛敎 還鄕曲 破還鄕曲 回機 轉位 正位前 各付以七言律之頌 自心印至佛敎五首 乃敘述宗門之要旨 自還鄕曲至正位前五首 指示學人履踐之要路 然十玄之名稱諸書有不同 本書之注釋 有朝鮮雪岑之十玄談註 指月慧印之十玄談假名註等

 

건강부(建康府) 화장(華藏) 밀인(密印) 안민선사(安民禪師)

가정부(嘉定府) 주씨(朱氏)의 아들이다. 처음 성도(成都)에서 릉엄을 강설했고 의학(義學)이 귀부(歸附;)하는 바가 되었다. 당시에 원오(圓悟)가 소각(昭覺)에 거주했다. 스님이 승선사(勝禪師)와 벗이 되었고 인하여 나아갔다(造焉). 원오의 소참(小參)를 들었는데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인연을 거()했다. 조주(趙州)가 염운(拈云) 예컨대() 사람이 암중(暗中)에 글자를 쓰면 글자는 비록 이루지 못해도 문채는 이미 드러난다(). 나리(那裏)가 이 문채가 이미 드러난 곳인가. 스님이 마음에 이를 의심했다. 고향(告香)하고 입실하자 원오가 묻되 좌주는 어떤 경을 강설하는가. 사왈 릉엄입니다. 오왈(悟曰) 릉엄에 칠처징심(七處徵心)과 팔환변견(八還辨見)이 있거니와 필경 심()이 어느 곳에 있느냐. 스님이 많이 예해(藝解 )를 보였으나() 원오가 모두 긍정하지 않았다. 스님이 다시 청익하자 원오가 일체처(一切處)에 문채가 이미 드러났다는 이회를 짓게 했다. 우연히 중이 십현담(十玄談)을 청익했는데 바야흐로 문군심인작하안(問君心印作何顔)을 들자 원오가 여성(厲聲; 猛烈한 소리)으로 가로되 문채가 이미 드러났다. 스님이 듣고서 성찰이 있었다. 드디어 인증(印證)을 구하자 원오가 본색겸추(本色鉗鎚)를 보였다. 스님이 곧 망조(罔措))했다. 어느 날 원오에게 사뢰어() 가로되 화상은 거화(擧話)를 그만두고() ()가 설함을 기다려 보십시오. 원오가 허락(許諾; )했다. 사왈 심상(尋常)에 염추수불(拈槌竪拂)함이 어찌 이 경중(經中)에 말한 일체세계(一切世界)의 모든 소유상(所有相)이 모두 곧 보리(菩提)의 묘명진심(妙明眞心)이 아니겠습니까. 원오가 웃으며 가로되 네가 원래 이 속에 있으면서 활계(活計)를 지었구나. 스님이 우왈(又曰) 하할(下喝)하거나 고상(敲牀)할 때 어찌 이 반문(返聞)하여 자성(自性)을 듣고() ()이 무상도(無上道)를 이룸이 아니겠습니까. 오왈(悟曰) 네가 어찌 보지 못했는가. 경중에 말하되 묘성(妙性)이 원명(圓明)하여 모든 명상(名相)을 여의었다. 스님이 언하에 석연(釋然)했다.

七處徵心; 불타가 릉엄회상에서 아난의 심목(心目)의 소재(所在)하는 곳을 징힐하매 아난이 선후 7처로써 회답했고 균일하게 불타가 논파(論破)하는 바가 되었는데 일컬어 칠처징심이라 함. 1은 재내(在內)2는 재외(在外)3은 잠근(潛根)이며 4는 재암내(在闇內)5는 수소합처(隨所合處)6은 재중간(在中間)이며 7은 무착(無著).

藝解; 불법에 대한 이해.

十玄談; 1. 당대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지었고 전등록29ㆍ연등회요31에 수록되었음. 무릇 10현으로 분류했으니 심인ㆍ조의ㆍ현기ㆍ진이ㆍ불교ㆍ환향곡ㆍ파환향곡ㆍ회기ㆍ전위ㆍ정위전이며 각기 7언율의 송을 붙였음. 심인으로부터 불교에 이르기까지 5수는 곧 종문의 요지를 서술했고 환향곡으로부터 정위전에 이르기까지 5수는 학인이 이천(履踐)할 요로(要路)를 지시했음. 그러나 10현의 명칭이 여러 서책에 부동(不同)함이 있음. 본서의 주석으론 조선 설잠(雪岑)의 십현담주와 지월혜인(指月慧印)의 십현담가명주(十玄談假名註) 등이 있음.

 

悟出蜀 居夾山 師罷講侍行 悟爲衆夜參 擧古帆未挂因緣 師聞未領 遂求決 悟曰 你問我 師擧前話 悟曰 庭前柏樹子 師卽洞明 謂悟曰 古人道 如一滴投於巨壑 殊不知大海投於一滴 悟笑曰 柰這漢何 未幾 令分座 悟說偈曰 休誇四分罷楞嚴 按下雲頭徹底參 莫學亮公親馬祖 還如德嶠訪龍潭 七年往返遊昭覺 三載翱翔上碧巖 今日煩充第一座 百華叢裏現優曇 後謁佛鑑於蔣山 鑑問 佛果有不曾亂爲人說底句 曾與你說麽 師曰 合取狗口 鑑震聲曰 不是這箇道理 師曰 無人奪你鹽茶袋 叫作甚麽 鑑曰 佛果若不爲你說 我爲你說 師曰 和尙疑時 退院別參去 鑑呵呵大笑 師未幾 開法保寧 遷華藏 旋里領中峯

按下雲頭; 指假借名言而設立之方便法門

 

원오가 촉()에서 나와 협산(夾山)에 거주했다. 스님이 파강(罷講)하고 시행(侍行)했다. 원오가 대중을 위해 야참(夜參)하면서 고범미괘(古帆未挂) 인연을 거()했다. 스님이 듣고서 영회(領會; )하지 못했다. 드디어 해결(解決; )을 구했다. 오왈(悟曰) 네가 나에게 물어라. 스님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오왈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스님이 곧 통명(洞明; 환히 밝힘)했다. 원오에게 일러 가로되 고인(古人)이 말하되 일적(一滴)을 거학(巨壑)에 던짐과 같다 했거니와 너무 알지 못했나니 대해를 일적(一滴)에 던집니다. 원오가 웃으며 가로되 저한을 어찌하겠는가(柰這漢何). 미기(未幾)에 분좌(分座)하게 했다. 원오가 설게(說偈)하여 가로되 사분(四分; 四分律)을 자랑함을 쉬고 릉엄을 파()하고/ 안하운두(按下雲頭)하여 철저히 참()하라/ 양공(亮公)이 마조(馬祖)를 친근한 것을 배우지 말지니/ 도리어 덕교(德嶠; 德山)가 용담(龍潭)을 방문함과 같다/ 7년 동안 왕반(往返)하며 소각(昭覺)에 노닐었고/ 3() 동안 고상(翱翔)하며 벽암(碧巖)에 올랐다/ 금일 번거롭게 제1좌에 충임(充任; )하나니/ 백화(百華)의 총리(叢裏)에 우담(優曇)이 나타났다. 후에 장산(蔣山)에서 불감(佛鑑; 慧懃)을 참알했다. 불감이 묻되 불과(佛果; 克勤)가 일찍이 어지럽지 않게 위인(爲人)하여 설한 구가 있는데 일찍이 너에게 설해 주었는가. 사왈 개 아가리 닫으십시오(合取狗口). 불감이 떨치는 소리(震聲)로 가로되 이는 저개(這箇) 도리가 아니다. 사왈 너의 염다대(鹽茶袋)를 뺏은 사람이 없거늘 부르짖어() 무엇하겠습니까. 감왈(鑑曰) 불과가 만약 너를 위해 설하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위해 설하겠다. 사왈 화상이 의심스러울 땐 퇴원(退院)하여 별참(別參)하러 가십시오. 불감이 하하대소했다. 스님이 미기(未幾)에 보녕(保寧)에서 개법(開法)했고 화장(華藏)으로 옮겼다가 향리(鄕里)로 선회(旋回)하여 중봉(中峯)을 거느렸다().

按下雲頭; 명언(名言)을 가차하여 설립한 방편법문을 가리킴.

 

上堂 衆賣華兮獨賣松 靑靑顔色不如紅 算來終不與時合 歸去來兮翠藹中 可笑古人恁麽道 大似逃峯赴壑 避溺投火 爭如隨分 到尺八五分钁頭邊 討一箇半箇 雖然如是 保寧半箇也不要 何故 富嫌千口少 貧恨一身多 冬至 上堂 擧玉泉皓和尙云 雪雪片片不別 下到臘月 再從來年正月二月三月四月五月六月七月八月九月十月 依前不歇 凍殺餓殺 免敎胡說亂說 師曰 不是罵人 亦非贊歎 高出臨濟德山 不似雲居羅漢 且道玉泉意作麽生 良久曰 但得雪消去 自然春到來 師後示寂於本山 闍維設利頗賸 細民穴地尺許 皆得之 尤光明瑩潔 心舌亦不壞

雲居羅漢; 形容傲慢自負之狀 以雲居山上安置有五百羅漢 其下數百公尺之道路上 行人惟覺仰之彌高 羅漢則以傲慢自負之狀睥睨其下之往來行人 故有以雲居羅漢稱自負之人 此外 或依其字義 解爲居於雲上之羅漢 形容超脫世俗者

 

상당(上堂) 중인(衆人; )은 꽃을 파는데 홀로 솔을 파나니/ 청청(靑靑)한 안색이 붉음과 같지 못하다/ 산래(算來)하매 마침내 시절과 합하지 않으니/ 귀거래하자 취애(翠藹; 푸름이 우거지다) 가운데로. 가히 우습나니 고인의 이러한 말은 봉우리에서 도주해 골에 다다르고(逃峯赴壑) 빠짐을 피해 불에 투입함(避溺投火)과 대사(大似)하다. 어찌 분한 따라 척팔오분(尺八五分)의 곽두변(钁頭邊)에 이르러 일개반개(一箇半箇)를 찾음()과 같겠는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보녕(保寧; 安民)은 반개(半箇)도 또한 요하지 않나니 무슨 연고냐. 부유하면 천구(千口)도 적다고 혐의하지만 빈곤하면 일신(一身)의 많음을 한탄한다. 동지(冬至) 상당(上堂) ()하다. 옥천호(玉泉皓; 承皓) 화상이 이르되 설설(雪雪)이 편편(片片) 불별(不別)하나니 내려 납월(臘月)에 이르렀다. 다시 내년 정월 2345678910월로 좇아 의전(依前)히 불헐(不歇)하여 동살아살(凍殺餓殺)하니 호설난설(胡說亂說)함을 면하게 한다. 사왈 이 매인(罵人)함이 아니며 또한 찬탄함도 아니다. 임제와 덕산을 높이 벗어났지만 운거라한(雲居羅漢)과 같지 못하다. 차도(且道)하라, 옥천의 뜻이 무엇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단지 눈이 녹음을 얻으면 자연히 봄이 도래한다. 스님이 후에 본산에서 시적(示寂)했다. 사유(闍維)하매 설리(設利)가 자못 더해져() 세민(細民; 平民)이 땅을 척허(尺許) 파서 모두 이를 얻었는데 더욱 광명이 영결(瑩潔; 빛나고 맑음)했다. 심장과 혀가 또한 무너지지 않았다.

雲居羅漢; 오만하게 자부하는 형상(形狀)을 형용함. 운거산 위에 5백 라한을 안치해 있는데 그 아래 수백 미터의 도로 위에서 행인이 오직 그것을 우러러보면 더욱 높음을 깨닫고 라한은 곧 오만하게 자부하는 형상으로 그 아래의 왕래하는 행인을 비예(睥睨; 흘겨보다)하는지라 고로 운거라한을 자부하는 사람으로 일컬음이 있음. 이 밖에 혹 그 자의(字義)에 의해 구름 위에 거처하는 라한으로 해석하여 세속을 초탈한 자를 형용함.

 

成都府昭覺徹庵道元禪師

綿州鄧氏子 幼於降寂寺圓具 東遊謁大別道禪師 因看廓然無聖之語 忽爾失笑曰 達磨元來在這裏 道譽之 往參佛鑑佛眼 蒙賞識 依圓悟於金山 以所見告 悟弗之許 悟被詔往雲居 師從之 雖有信入 終以鯁胷之物未去爲疑 會悟問參徒 生死到來時如何 僧曰 香臺子笑和尙 次問師 汝作麽生 師曰 草賊大敗 悟曰 有人問你時如何 師擬答 悟憑陵曰 草賊大敗 師卽徹證 圓悟以拳擊之 師拊掌大笑 悟曰 汝見甚麽便如此 師曰 毒拳未報 永劫不忘 悟歸昭覺 命首衆 悟將順世 以師繼席焉

 

성도부(成都府) 소각(昭覺) 철암(徹庵) 도원선사(道元禪師)

면주(綿州) 등씨(鄧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강적사(降寂寺)에서 원구(圓具)했다. 동유(東遊)하다가 대별도(大別道) 선사를 참알했다. 확연무성지어(廓然無聖之語)를 간()함으로 인해 홀이(忽爾; 홀연히) 실소(失笑)하고 가로되 달마가 원재 이 속에 있었구나. (; 大別道)가 찬양했다(譽之). 불감(佛鑑)과 불안(佛眼)을 왕참(往參)했는데 상식(賞識; 중시하다. 찬양하다)을 입었다(). 금산(金山)에서 원오(圓悟)에게 의지하며 소견(所見)을 고()하자 원오가 허가하지 않았다. 원오가 피조(被詔)하여 운거(雲居)로 가자 스님이 수종(隨從; 從之)했다. 비록 신입(信入)함이 있었으나 마침내 가슴에 박힌(鯁胷) 물건을 제거하지 못해 의심이 되었다. 마침() 원오가 참도(參徒)에게 묻되 생사가 도래할 때 어떠한가. 승왈 향대자(香臺子; 는 조사)가 화상을 웃습니다. 다음 스님에게 묻되 너는 어떠한가. 사왈 초적이 대패했습니다(草賊大敗). 오왈(悟曰) 어떤 사람이 너에게 물을 때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답하려고 하는데 원오가 빙릉(憑陵; 憑借)하여 가로되 초적이 대패했다. 스님이 곧 철증(徹證)했다. 원오가 주먹으로써 쳤다. 스님이 부장(拊掌)하며 크게 웃었다. 오왈 네가 무엇을 보았기에 바로 이와 같은가. 사왈 독권(毒拳)에 보답하지 못해 영겁토록 잊지 못합니다. 원오가 소각(昭覺)으로 돌아오자 수중(首衆; 수좌)을 명했다. 원오가 장차 순세(順世)하려고 하자 스님을 계석(繼席)케 했다.

 

臨安府中天竺㑃堂中仁禪師

洛陽人也 少依東京奉先院出家 宣和初 賜牒於慶基殿 落髮進具後 往來三藏譯經所 諦窮經論 特於宗門未之信 時圓悟居天寧 凌晨謁之 悟方爲衆入室 師見敬服 奮然造前 悟曰 依經解義 三世佛冤 離經一字 卽同魔說 速道速道 師擬對 悟劈口擊之 因墜一齒 卽大悟 留天寧 由是師資契合 請問無間 後開法大覺 遷中天竺 次徙靈峯 上堂 九十春光已過半 養華天氣正融和 海棠枝上鶯聲好 道與時流見得麽 然雖如是 且透聲透色一句作麽生道 金勒馬嘶芳草地 玉樓人醉杏華天 上堂 擧狗子無佛性話 乃曰 二八佳人刺繡遲 紫荊華下囀黃鸝 可憐無限傷春意 盡在停鍼不語時 淳熙甲午四月八日 孝宗皇帝詔入 賜座說法 帝擧不與萬法爲侶因緣 俾拈提 師拈罷 頌曰 秤鎚搦出油 閑言長語休 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 癸亥中陞堂 告衆而逝

賜牒; 賜度牒 度牒 許出家之公驗也 又云祠部牒 以從尙書省之祠部司出之故也 隆興編年通論十六云 天寶五年(746)五月制 天下度僧尼 並令祠部給牒 今謂之祠部者 自是而始 唐書食貨志云 安祿山反 楊國忠遣御史崔衆至太原納錢 度僧尼道士 旬日 得百萬緡 明年御史鄭叔淸與宰相裴冕 又議度僧道收貲 按此是鬻度牒之始

傷春; 因春天到來而引起憂傷 苦悶

拈提; 擧說 議論公案機語

腰纏十萬貫; 欽定四庫全書花木鳥獸集類上 新說 有客相從各言所志 有云願爲揚州刺史 或云願多貲財 或願騎鶴上昇 其一人曰 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

 

임안부(臨安府) 중천축(中天竺) 요당(㑃堂) 중인선사(中仁禪師)

낙양(洛陽) 사람이다. 소년(少年; )에 동경(東京) 봉선원(奉先院)에 의지해 출가했다. 선화(宣和; 1119-1125) 초 경기전(慶基殿)에서 사첩(賜牒; 度牒을 줌)했다. 낙발(落髮)하고 진구(進具)한 후에 삼장역경소(三藏譯經所)에 왕래하며 경론을 체궁(諦窮; 자세히 궁구)했다. 특별히 종문(宗門)엔 믿지 않았다. 당시에 원오(圓悟)가 천녕(天寧)에 거주했는데 능신(凌晨)에 참알했다. 원오가 바야흐로 대중을 위해 입실했다. 스님이 보고 경복(敬服)했고 분연(奮然)히 앞으로 나아갔다(). 오왈(悟曰) 경에 의해 뜻을 해석하면 삼세불(三世佛)의 원수(怨讎; )며 경의 한 글자라도 여의면 곧 마설(魔說)과 같다.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스님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원오가 입에다(劈口) 쳤다. 인하여 1()가 떨어졌다. 곧 대오했고 천녕(天寧)에 머물렀다. 이로 말미암아 사자(師資)가 계합(契合)했고 청문(請問)하며 간헐(間歇; )이 없었다. 후에 대각(大覺)에서 개법했고 중천축(中天竺)으로 옮겼고 다음 영봉(靈峯)으로 옮겼다(). 상당(上堂) 구십 춘광(春光)에 이미 반은 지났고/ 양화(養華)하는 천기(天氣)가 바로() 융화(融和)하다/ 해당(海棠)의 지상(枝上)에 앵성(鶯聲)이 좋나나()/ ()와 시류(時流)를 견득(見得)하느냐.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다만() 투성투색(透聲透色)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금륵(金勒; 금의 굴레)의 말이 방초지(芳草地)에 울고 옥루(玉樓)의 사람은 행화천(杏華天)에 취했다. 상당(上堂)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들고 이에 가로되 이팔 가인(佳人)의 자수(刺繡)가 더딘데()/ 자형화(紫荊華; 붉은 가시나무 꽃) 아래 황리(黃鸝; 누런 꾀꼬리)가 지저귄다()/ 가련하다 무한한 상춘(傷春)의 뜻이여/ 모두() 정침(停鍼)하고 말하지 않을 때에 있다. 순희(淳熙) 갑오(甲午; 1174) 48일 효종황제가 불러들여 사좌(賜座)하고 설법하게 했다. 황제가 불여만법위려(不與萬法爲侶) 인연을 들고 염제하게 했다(拈提). 스님이 염()을 마치고() 송왈 칭추(秤鎚)를 눌러() 기름을 내나니/ 한언장어(閑言長語; 閑言語)를 그만두어라/ 허리에 십만 관을 두르고(腰纏十萬貫)/ 학을 타고 양주(楊州)에 오른다. 계해(癸亥; 1203) 중 승당하여 고중(告衆)하고 서거했다.

賜牒; 도첩(度牒)을 줌. 도첩은 출가를 허락하는 공험(公驗; 관청에서 발행하는 증명서). 또 이르되 사부첩(祠部牒)이니 상서성의 사부사(祠部司)로부터 나오는 연고임. 융흥편년통론16에 이르되 천보 5(746) 5월에 제(; 制誥니 제왕의 명령)하되 천하에서 승니를 득도하면 모두 사부(祠部)에서 급첩(給牒)하게 했다. 여금에 이를 일러 사부라 하는 것은 이로부터 시작했다. 당서 식화지에 이르되 안녹산이 반란하자 양국충이 어사 최중을 보내 태원에 이르러 돈을 받아들이고 승니와 도사를 득도시켰는데 열흘 만에 백만 민(; 돈꿰미)을 얻었다. 명년에 어사 정숙청이 재상 배면과 더불어 또 의논하여 승도(僧道)를 득도시키면서 재물을 걷었다. 이것을 안험컨대 이는 도첩을 판 시초다.

傷春; 춘천(春天)이 도래함으로 인해 인기(引起)하는 우상(憂傷), 고민(苦悶).

拈提; 거설(擧說)이니 공안의 기어를 의논함.

腰纏十萬貫;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화목조수집류상. 신설(新說) 어떤 객들이 상종(相從)하며 각기 뜻한 바를 말했다. 어떤 이가 이르되 양주자사가 되기를 원한다. 혹은 이르되 시재(貲財; 재물)가 많기를 원한다. 혹은 학을 타고 상승하기를 원한다. 그 한 사람이 가로되 허리에 10만 관을 두르고(腰纏十萬貫) 학을 타고 양주에 오르겠다.

 

眉州象耳山袁覺禪師

郡之袁氏子 出家傳燈 試經得度 本名圓覺 郡守塡祠牒 誤作袁字 疑師慊然 戲謂之曰 一字名可乎 師笑曰 一字已多 郡守異之 旣受具出蜀 徧謁有道尊宿 後往大潙 依佛性 頃之 入室陳所見 性曰 汝忒煞遠在 然知其爲法器 俾充侍者 掌賓客 師每侍性 性必擧法華開示悟入四字 令下語 又曰 直待我竪點頭時 汝方是也 偶不職被斥 制中無依 寓俗士家 一日誦法華 至亦復不知 何者是火 何者爲舍 乃豁然 制罷歸省 性見首肯之 圓悟再得旨住雲居 師至彼 以所得白悟 悟呵云 本是淨地 屙屎作麽 師所疑頓釋 紹興丁巳 眉之象耳虛席 郡守謂此道場久爲蟊螣囊槖 非名流勝士 莫能起廢 諸禪擧師應聘 甞語客曰 東坡云 我持此石歸 袖中有東海 山谷云 惠崇煙雨蘆鴈 坐我瀟湘洞庭 欲喚扁舟歸去 傍人謂是丹靑 此禪髓也 又曰 我敲牀竪拂時 釋迦老子孔夫子都齊立在下風 有擧此語似佛海遠禪師 遠曰 此覺老語也 我此間卽不恁麽

; 忒殺 同太殺 副詞 表示程度過分 忒 太 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미주(眉州) 상이산(象耳山) 원각선사(袁覺禪師)

()의 원씨(袁氏)의 아들이다. 전등(傳燈)에서 출가했고 시경(試經)하여 득도(得度)했다. 본명은 원각(圓覺)이었는데 군수(郡守)가 사첩(祠牒; 祠部牒)을 전사(塡寫; 빈 칸에 써서 채워 넣음)하다가 잘못하여 원자(袁字)로 짓고는 스님의 겸연(慊然; 불만족의 뜻)을 의심하며 희롱으로 일러 가로되 1()의 이름도 옳겠습니까.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1자도 이미 많습니다. 군수가 이상히 여겼다. 이미 수구(受具)하고는 촉()에서 나와 도가 있는 존숙을 두루 참알했다. 후에 대위(大潙)로 가서 불성(佛性; 法泰賜號)에게 의지했고 잠시 만에(頃之) 입실하여 소견(所見)을 진술하자 불성이 가로되 너는 특쇄(忒煞) 멀었다(遠在). 그러나 그가 법기(法器)가 됨을 알았고 시자에 충당(充當)하게 했다가(俾充侍者) 빈객(賓客)을 장관(掌管)했다. 스님이 매양 불성을 시종(侍從)했는데 불성이 반드시 법화의 개시오입(開示悟入) 4자를 들고 하어하게 했다(令下語). 우왈(又曰) 바로() 내가 서서() 점두(點頭)할 때를 기다려야 네가 비로소 옳다(是也). 우연히 부직(不職)하여 배척(排斥; )을 입었는데 결제(結制; ) 중이라 의탁할 데가 없어 속사가(俗士家)에 우거(寓居)했다. 어느 날 법화를 외우다가 또한 다시 알지 못하나니 무엇이(何者) 이 화()며 무엇이 사()가 되는가에 이르러 이에 활연(豁然)했다. 결제를 마치고(制罷) 귀성(歸省)하자 불성이 보고서 수긍했다. 원오(圓悟)가 다시 성지(聖旨; )를 얻어 운거(雲居)에 주()했다. 스님이 거기에 이르러 소득(所得)으로써 원오에게 사뢰자() 원오가 꾸짖으며() 이르되 본래 이 정지(淨地)거늘 똥을 누어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의심하던 바가 문득 풀렸다(). 소흥(紹興) 정사(丁巳; 1137) ()의 상이(象耳)가 허석(虛席)이었다. 군수가 이르기를 이 도량(道場)은 모등(蟊螣; 가뢰와 풀무치)의 낭탁(囊槖; 주머니)이다. 명류승사(名流勝士)가 아니면 능히 기폐(起廢; 頹廢를 일으킴)하지 못한다. 여러 선사(諸禪)가 스님을 천거(薦擧)하여 초빙(招聘; )에 응하게 했다. 일찍이 객에게 말해 가로되 동파(東坡; 蘇軾)가 이르되 내가 이 돌을 가지고 돌아가면 소매 속에 동해(東海)가 있다. 산곡(山谷; 黃庭堅의 호)이 이르되 혜주(惠州; )에선 연우(煙雨)와 노안(蘆鴈)을 숭상(崇尙; )/ 나를 소상(瀟湘)과 동정(洞庭)에 앉혔다/ 편주(扁舟)를 불러 돌아가려고 했더니/ 방인(傍人)이 이르되 이 단청(丹靑)이라 한다(이는 東坡의 시임). 이것은 선수(禪髓). 또 가로되 내가 고상수불(敲牀竪拂)할 때 석가노자와 공부자(孔夫子)가 모두 일제히 하풍(下風; 下位)에 서 있다. 차어(此語)를 들어 불해원(佛海遠; 慧遠) 선사에게 줌()이 있었다. 원왈(遠曰) 이것은 각로(覺老)의 말이다. 나의 차간(此間)은 곧 이러하지(恁麽) 않다.

; 특쇄(忒殺)와 같음. 태쇄(太殺)와 같음. 부사니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함. ()은 태()며 쇄()는 소팔절(所八切; )이며 소배절(所拜切; )이니 정도의 깊음을 표시.

 

眉州中巖華嚴祖覺禪師

嘉州楊氏子 幼聰慧 書史過目成誦 著書排釋氏 惡境忽現 悔過出家 依慧目能禪師 未幾 疽發膝上 五年醫莫愈 因書華嚴合論畢 夜感異夢 旦卽捨杖步趨 一日誦至現相品曰 佛身無有生 而能示出生 法性如虛空 諸佛於中住 無住亦無去 處處皆見佛 遂悟華嚴宗旨 洎登僧籍 府帥請講于千部堂 詞辯宏放 衆所歎服 適南堂靜禪師過門 謂師曰 觀公講說 獨步西南 惜未解離文字相耳 儻問道方外 卽今之周金剛也 師欣然罷講 南遊依圓悟於鍾阜 一日入室 悟擧 羅山道 有言時 踞虎頭 收虎尾 第一句下明宗旨 無言時 覿露機鋒 如同電拂 作麽生會 師莫能對 夙夜參究 忽然有省 作偈呈悟曰 家住孤峯頂 長年半掩門 自嗟身已老 活計付兒孫 悟見許可 次日入室 悟又問 昨日公案作麽生 師擬對 悟便喝曰 佛法不是這箇道理 師復留五年 愈更迷悶 後於廬山棲賢閱浮山遠禪師削執論云 若道悟有親疎 豈有旃檀林中却生臭草 豁然契悟 作偈寄圓悟曰 出林依舊入蓬蒿 天網恢恢不可逃 誰信業緣無避處 歸來不怕語聲高 悟大喜 持以示衆曰 覺華嚴徹矣

書史; 典籍 指經史一類書籍

僧籍; 又稱僧帳 供帳 卽記僧尼名稱及出家得度等事之簿冊 僧史略中置僧籍弛張二科 論曰 周隋之世無得知 …… 文宗大和四年(830)正月 祠部請天下僧尼冒名而非正度者 具名申省 各省給牒 以憑入籍 時入申名者七十萬 造帳入籍自大和五年始 仁王經囑累品 國王大臣太子王子 自恃高貴滅破吾法 明作制法 …… 立統官制衆 安籍記僧 …… 當知爾時正法將滅不久

宏放; 宏偉曠達 開闊奔放

覿露; 覿面(當面)顯露

夙夜; 朝夕 日夜 原意早夜 卽夜未盡天未明的時候

業緣; 謂善業爲招樂果之因緣 惡業爲招苦果之因緣 一切有情皆由業緣而生 維摩經方便品 是身如影 從業緣現

 

미주(眉州) 중암(中巖) 화엄(華嚴) 조각선사(祖覺禪師)

가주(嘉州) 양씨(楊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총혜(聰慧)했고 서사(書史)를 눈에 스쳐 지나가면(過目) 외움을 이루었다. 글을 지어(著書) 석씨(釋氏)를 배척했더니 악경(惡境)이 홀연히 나타났다. 회과(悔過)하고 출가하여 혜목능(慧目能) 선사에게 의지했다. 미기(未幾)에 무릎 위에 악창(惡瘡; )이 발생했는데 5년 동안 치료(治療; )했으나 낫지() 않았다. 인하여 화엄합론(華嚴合論)을 서사(書寫)해 마치자 밤에 이몽(異夢)을 감득(感得)했고 아침에 곧 지팡이를 버리고 보추(步趨; 行走)했다. 어느 날 외워 현상품(現相品)에 이르렀는데 가로되 불신(佛身)은 생()이 있지 않으면서 능히 출생(出生)을 보이고 법성은 허공과 같아서 제불이 가운데에 머문다. 머묾도 없고 또한 감도 없나니 곳곳에서 모두 견불(見佛)한다. 드디어 화엄종지(華嚴宗旨)를 깨달았다. 승적(僧籍)에 오름에 이르러() 부수(府帥)의 청으로 천부당(千部堂)에서 강설했는데 사변(詞辯)이 굉방(宏放)했고 대중이 탄복(歎服)하는 바였다. 마침() 남당정(南堂靜; 元靜) 선사가 문에 이르러()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공()의 강설을 관()하건대 서남(西南)에서 독보(獨步)지만 가석하게도 문자상(文字相)을 여읨을 알지 못했다. 만일() 방외(方外)에서 문도(問道)한다면 즉금의 주금강(周金剛; 덕산)이리라. 스님이 흔연(欣然)히 파강(罷講)하고 남유(南遊)하여 종부(鍾阜)에서 원오(圓悟)에게 의지했다. 어느 날 입실하자 원오가 거()했다. 나산(羅山; 道閑)이 말하되 유언(有言)일 때는 호두(虎頭)에 걸터앉아 호미(虎尾)를 거두어 제1(第一句) 아래 종지를 밝힌다. 무언(無言)일 때는 기봉(機鋒)을 적로(覿露)함이 마치 전불(電拂; 번개가 치다)과 같다. 어떻게 이회하느냐. 스님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숙야(夙夜)로 참구했고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작게(作偈)하여 원오에게 보여() 가로되 집이 고봉정(孤峯頂)에 머무는데/ 장년(長年; 오랜 해)에 문을 반쯤 닫았다()/ 스스로 몸이 이미 늙었음을 차탄(嗟歎; )하나니/ 활계(活計)를 아손에게 부촉한다. 원오가 보고 허가했다. 다음날 입실하자 원오가 또 묻되 어제의 공안(公案)은 어떠한가. 스님이 대답하려고 하자 원오가 바로 할()하며 가로되 불법이 이 저개(這箇) 도리가 아니다. 스님이 다시 5년을 머물렀고 더욱() 다시 미민(迷悶)했다. 후에 여산(廬山) 서현(棲賢)에서 부산원(浮山遠; 法遠) 선사의 삭집론(削執論)을 읽었는데 이르되 만약 말하되 오()에 친소(親疎)가 있다고 하면 어찌 전단림(旃檀林) 중에 도리어 취초(臭草)가 생겨남이 있으리오. 활연(豁然)히 계오(契悟)했다. 작게(作偈)하여 원오에게 기탁해 가로되 출림(出林)하매 의구히 봉호(蓬蒿; )에 드나니/ 천망(天網)이 회회(恢恢; 큰 모양)하여 가히 도피하지 못한다/ 누가 업연(業緣)은 피할 곳이 없다 함을 믿겠는가/ 돌아오매 말 소리의 높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오가 대희(大喜)했다. 가지고 시중(示衆)해 가로되 각화엄(覺華嚴)이 철()했다.

書史; 전적(典籍). 경사(經史) 일류(一類)의 서적을 가리킴.

僧籍; 또 명칭이 승장(僧帳)ㆍ공장(供帳)이니 곧 승니의 명칭 및 출가 득도 등의 일을 기록한 부책(簿冊). 승사략중(僧史略中)에 승적(僧籍)ㆍ이장(弛張) 2()를 두었음. 논해 가로되 주수(周隋)의 시대엔 득지(得知)함이 없다 …… 문종 대화 4(830) 정월 사부(祠部)에서 청하여 천하 승니가 모명(冒名; 남의 이름을 詐稱)하여 정도(正度)가 아닌 자는 이름을 갖추어 성()에 신청했고 각 성에서 급첩(給牒)하고 입적(入籍)의 증빙으로 삼았다. 때에 이름을 입신(入申)한 자가 70만이다. 조장(造帳)하여 입적함은 대화 5년으로부터 시작했다. 인왕경 촉루품. 국왕ㆍ대신ㆍ태자ㆍ왕자가 스스로 고귀(高貴)를 믿고 나의 법을 멸파(滅破; 파멸)하여 밝게 제법(制法)을 짓는다 …… 통관(統官)을 세워 승중을 억제(抑制)하여 안적(安籍; 승적을 둠)하여 기승(記僧)한다 …… 마땅히 알지니 이때가 정법이 장차 멸함이 오래지 않다.

宏放; 굉위(宏偉)하고 광달(曠達). 개활(開闊)하고 분방(奔放).

覿露; 적면(覿面; 당면)에 환히 드러남.

夙夜; 조석. 일야. 원래 뜻은 조야(早夜)니 곧 밤이 다하지 않았고 하늘이 밝지 아니한 시후(時候; 시각).

業緣; 이르자면 선업은 낙과(樂果)를 초래하는 인연이 되고 악업은 고과(苦果)를 초래하는 인연이 됨. 일체 유정은 모두 업연으로 말미암아 살아감. 유마경방편품. 이 몸은 그림자와 같으며 업연(業緣)을 좇아 나타난다.

 

住後 僧問 最初威音王 末後婁至佛 未審參見甚麽人 師曰 家住大梁城 更問長安路 曰 只如德山擔疏鈔行脚 意在甚麽處 師曰 拶破你眼睛 曰 與和尙悟華嚴宗旨相去幾何 師曰 同途不同轍 曰 昔日德山 今朝和尙 師曰 夕陽西去水東流 上堂 擧石霜和尙遷化 衆請首座繼踵住持 䖍侍者所問公案 師曰 宗師行處 如火消冰 透過是非關 全機亡得喪 盡道首座滯在一色 侍者知見超師 可謂體妙失宗 全迷向背 殊不知首座如鷺鷥立雪 品類不齊 侍者似鳳翥丹霄 不縈金網 一人高高山頂立 一人深深海底行 各自隨方而來 同會九重城裏 而今要識此二人麽 竪起拂子曰 龍臥碧潭風凜凜 垂下拂子曰 鶴歸霄漢背摩天 僧問 如何是一喝如金剛王寶劍 師曰 血濺梵天 曰 如何是一喝如踞地師子 師曰 驚殺野狐狸 曰 如何是一喝如探竿影草 師曰 驗得你骨出 曰 如何是一喝不作一喝用 師曰 直須識取把鍼人 莫道鴛鴦好毛羽

 

주후(住後) 승문 최초의 위음왕(威音王)과 말후의 루지불(婁至佛)은 미심하오니 어떤 사람을 참견(參見)합니까. 사왈 집이 대량성(大梁城)에 거주하거늘 다시 장안로(長安路)를 묻는구나. 가로되 지여(只如) 덕산(德山)이 소초(疏鈔)를 지고 행각한 뜻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너의 눈동자를 찰파(拶破)한다. 가로되 화상의 깨침과 화엄종지는 서로의 거리가 얼마입니까(幾何). 사왈 같은 길에 같은 궤철(軌轍)이 아니다. 가로되 석일(昔日)의 덕산이 금조(今朝)의 화상입니다. 사왈 석양(夕陽)은 서쪽으로 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른다. 상당(上堂) 석상화상(石霜和尙; 慶諸)이 천화(遷化)하자 대중이 수좌에게 주지(住持)를 계종(繼踵)하기를 청하매 건시자(䖍侍者; 道虔)가 물은 바의 공안을 거()하고 사왈 종사(宗師)의 행처(行處)는 불이 얼음을 녹임과 같나니 투과(透過)함은 이 관()이 아니며 전기(全機)가 망해야 상(; 죽다)을 얻는다. 모두 말하되 수좌가 일색(一色)에 체재(滯在)했고 시자는 지견이 스승을 초월했다 하거니와 가히 이르나니 묘()를 체달(體達)하면 종()을 잃고 전부 향배(向背)를 미()한다. 너무 알지 못하나니 수좌는 해오라기(鷺鷥)가 눈에 섬과 같아서 품류(品類)가 제등(齊等)하지 않고 시자는 봉()이 단소(丹霄)에 날아오름()과 같아서() 금망(金網)에 얽히지() 않았다. 1인은 고고(高高)한 산정(山頂)에 섰고 1인은 심심(深深)한 해저(海底)로 다니면서 각자 수방(隨方)하여 왔다가 구중성(九重城) 속에서 함께 만났다. 이금(而今)에 이 두 사람을 알고자 하느냐.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용은 벽담(碧潭)에 누웠고 바람은 늠름(凜凜)하다. 불자를 아래로 드리우고 가로되 학은 소한(霄漢)에 돌아가 등으로 하늘을 어루만진다(). 승문 무엇이 이 1()이 금강왕보검과 같음입니까. 사왈 피를 범천에 뿌린다(血濺梵天).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거지사자(踞地師子)와 같음입니까. 사왈 야호(野狐)와 삵을 경살(驚殺; 너무 놀라게 함)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탐간영초(探竿影草)와 같음입니까. 사왈 너의 뼈를 시험하여(驗得) 낸다. 가로되 무엇이 이 1할이 1할의 용()을 짓지 않음입니까. 사왈 바로() 바늘을 잡은 사람을 식취(須識)하고 원앙의 아름다운 모우(毛羽)를 말하지 말아라.

 

潭州福嚴文演禪師

成都府楊氏子 僧問 如何是定林正主 師曰 坐斷天下人舌頭 曰 未審如何親近 師曰 覷著則瞎 上堂 當陽坐斷 凡聖跡絕 隨手放開 天回地轉 直得日月交互 虎嘯龍吟 頭頭物物 耳聞目眎 安立諦上是甚麽 還委悉麽 阿斯吒

安立諦; 成唯識論述記九 有差別名言者名安立 無差別離名言者非安立也 安立者施設義

阿斯吒; <> 梵語阿私多 又作阿夷 阿私陀 阿斯吒 阿斯陀等 義爲不白 無比 或端嚴 [慧琳音義二十六 翻譯名義集二]

 

담주(潭州) 복엄(福嚴) 문연선사(文演禪師)

성도부(成都府) 양씨(楊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정림(定林; 文演)의 정주(正主)입니까. 사왈 천하인의 설두(舌頭)를 좌단(坐斷)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떻게 친근합니까. 사왈 처착(覷著)하면 곧 눈이 먼다(). 상당(上堂) 당양(當陽)하여 좌단(坐斷)하면 범성(凡聖)의 자취()가 끊어지고 수수(隨手)하여 방개(放開)하면 천회지전(天回地轉)한다. 바로() 일월이 교호(交互; 交替)함을 얻으면 호소용음(虎嘯龍吟)하고 두두물물(頭頭物物)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 안립제상(安立諦)은 이 무엇인가. 도리어 위실(委悉)하느냐. 아사타(阿斯吒). ().

安立諦; 성유식론술기9 차별의 명언(名言)이 있는 것은 이름이 안립(安立)이며 차별이 없고 명언을 여읜 것은 비안립(非安立)이다. 안립이란 것은 시설(施設)의 뜻이다.

阿斯吒; <> asita. 범어 아사다(阿私多)는 또 아이(阿夷)ㆍ아사타(阿私陀)ㆍ아사타(阿斯吒)ㆍ아사타(阿斯陀) 등으로 지음. 뜻이 불백(不白)ㆍ무비(無比) 혹 단엄(端嚴)이 됨 [혜림음의26. 번역명의집2].

 

平江府西山明因曇玩禪師

溫州黃氏子 徧參叢席 宣和庚子 回抵鍾阜 適朝廷改僧爲德士 師與同志數人 入頭陀巖食松自處 久之 圓悟被旨居是山 親至巖所 令去鬚髮 及悟詔補京師天寧 與師俱往 命掌香水海 未幾 因擧枹擊皷 頓明大法 凡有所問 皆對曰 莫理會 故流輩咸以莫理會稱之 住後 上堂 汝有一對眼 我也有一對眼 汝若瞞還自瞞 汝若成佛作祖 老僧無汝底分 汝若做驢做馬 老僧救汝不得 衆檀越入山 請上堂 說偈曰 我無長處名虛出 謝汝殷勤特地來 明因無法堪分付 謾把山門爲汝開

 

평강부(平江府) 서산(西山) 명인(明因) 담완선사(曇玩禪師)

온주(溫州) 황씨(黃氏)의 아들이다. 총석(叢席)을 편참(徧參)했다. 선화(宣和) 경자(庚子; 1120) 종부(鍾阜)로 회저(回抵; 돌아와 다다르다)했다. 마침() 조정(朝廷)에서 승()을 고쳐 덕사(德士)라 하자 스님이 동지(同志) 몇 사람과 더불어 두타암(頭陀巖)에 들어가 솔을 먹으며 자처(自處)한 지 오래되었다. 원오(圓悟)가 피지(被旨)하여 이 산에 거주했는데 친히 암소(巖所)에 이르러 수발(鬚髮)을 제거하게 했다. 원오가 조칙으로 경사(京師) 천녕(天寧)에 보임(補任)함에 이르러() 스님과 함께 갔다. 명하여 향수해(香水海)를 관장(管掌)하게 했다. 미기(未幾)에 북채(; 음이 부)를 들어 북을 침으로 인해 문득 대법을 밝혔다. 무릇 묻는 바가 있으면 모두 대답해 가로되 이회하지 말아라(莫理會). 고로 유배(流輩; 同輩)가 모두() 막이회(莫理會)로써 호칭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너희가 일대(一對; 한 쌍)의 눈이 있으면 나도 일대의 눈이 있고 너희가 만약 속이면() 도리어 스스로 속는다(). 너희가 만약 성불작조(成佛作祖)하면 노승은 너희의 분한이 없고(無汝底分) 너희가 만약 주려주마(做驢做馬)하면 노승이 너희를 구제함을 얻지 못한다. 뭇 단월(檀越)이 입산하여 상당을 청했다. 게를 설해 가로되 나는 장처(長處)가 없으니 이름이 허출(虛出; 헛되이 출세함)인데/ 너희가 은근(殷勤)히 특지(特地) 옴에 감사한다/ 명인(明因)은 가히() 분부할 법이 없나니/ 헛되이() 산문(山門)을 잡아() 너희를 의해 열었다.

 

平江府虎丘雪庭元淨禪師

雙溪人也 上堂 知有底人 過萬年如同一日 不知有者 過一日如同萬年 不見死心和尙道 山僧行脚三十餘年 以九十日爲一夏 增一日也不得 減一日也不得 取不得 捨不得 不可得中祇麽得 翠雲見處又且不然 山僧行脚三十來年 誰管他一日九十日 也無得 也無不得 處處當來見彌勒 且道彌勒在甚麽處 金風吹渭水 落葉滿長安 上堂 說得須是見得 見得又須說得 見得說不得 落在陰界 見解偏枯 說得見不得 落在時機 墮在毒海 若是翠雲門下 直饒說得見得 好與三十棒 說不得見不得 也好與三十棒 翠雲恁麽道 也好與三十棒 遂高聲召大衆曰 嶮

 

평강부(平江府) 호구(虎丘) 설정(雪庭) 원정선사(元淨禪師)

쌍계(雙溪) 사람이다. 상당(上堂) 지유하는 사람(知有底人)은 만 년을 경과함이 마치() 하루와 같으려니와() 지유(知有)하지 못하는 자는 하루를 경과함이 마치 만 년과 같으리라. 보지 못하느냐, 사심화상(死心和尙; 悟新)이 말하되 산승이 행각한 지 30여 년에 90일로써 1()를 삼았다. 하루를 더함()도 또한 얻지 못하고 하루를 감()함도 또한 얻지 못하고 취()함도 얻지 못하고 사()함도 얻지 못하나니 불가득 중에 지마(祇麽; 다만) 얻는다. 취운(翠雲; 元淨)의 견처는 우차(又且) 그렇지 않다. 산승이 행각한 지 삼심래년(三十來年; 30여 년)이지만 누가 저() 1일과 90일에 상관(相管)하겠는가. 또한 얻음도 없고 또한 얻지 못함도 없다. 처처(處處)에서 당래(當來)에 미륵을 보나니 차도(且道)하라 미륵이 어느 곳에 있느냐. 금풍(金風; 서풍)이 위수(渭水)에 부니 낙엽이 장안에 가득하다. 상당(上堂) 설함을 얻으면(說得) 모름지기 이 봄을 얻어야(見得) 하고 봄을 얻으면 또 모름지기 설함을 얻어야 한다. 봄을 얻고 설함을 얻지 못하면 음계(陰界)에 떨어져 있고 견해가 편고(偏枯). 설함을 얻고 봄을 얻지 못하면 시기(時機)에 떨어져() 있고 독해(毒海)에 떨어져() 있다. 만약 이 취운문하(翠雲門下)일진대 직요(直饒) 설함을 얻고 봄을 얻더라도 좋게 30방 주고 설함을 얻지 못하고 봄을 얻지 못해도 또한 좋게 30방 준다. 취운의 이러한 말도 또한 좋게 30방 주어야 한다. 드디어 고성(高聲)으로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위험하다().

 

上堂 日日日東出 日日日西沒 是時人知有 自古自今 如麻似粟 忽然捩轉話頭 亦不從東出 亦不從西沒 且道從甚處出沒 若是透關底人 聞恁麽道 定知五里牌在郭門外 若是透不過者 往往道半山熱瞞人 僧問 如何是到家一句 師曰 坐觀成敗 問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師曰 遠親不如近隣 曰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又作麽生 師曰 近隣不如遠親 問 亡僧遷化向甚麽處去 師曰 糞堆頭 曰 意旨如何 師曰 築著磕著

熱瞞; 著實地欺瞞 亦作熱謾

 

상당(上堂) 날마다 해가 동방에서 나오고 날마다 해가 서방으로 잠긴다. 이를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함이 자고자금(自古自今)으로 여마사속(如麻似粟)이다. 홀연히 화두(話頭)를 열전(捩轉; 비틀어 돌리다)하면 또한 동방으로 좇아나오지 않고 또한 서방으로 좇아 잠기지 않는다. 차도(且道)하라, 어느 곳으로 좇아 출몰하느냐. 만약 이 투관한 사람(透關底人)이 이러한 말을 들으면 오리패(五里牌)가 곽문(郭門) 밖에 있음을 꼭() 알겠지만 만약 이 투과해 지나지 못한 자는 왕왕(往往) 말하되 반산(半山)이 사람을 열만(熱瞞)한다. 승문 무엇이 이 도가(到家)1()입니까. 사왈 앉아 성패를 본다. 묻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원친(遠親)이 근린(近隣)만 같지 못하다. 가로되 네가 한입에 서강수(西江水)를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근린이 원친만 같지 못하다.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똥 무더기(糞堆頭). 가로되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축착개착(築著磕著)이다.

熱瞞; 착실(著實)한 기만. 또 열만(熱謾)으로 지음.

 

衢州天寧訥堂梵思禪師

蘇臺朱氏子 上堂 趯飜生死海 踏倒涅槃岸 世上無活人 黃泉無死漢 遂拈拄杖曰 訥堂今日拄杖子有分付處 也還有承當得者麽 試出來擔荷看 有麽有麽 良久 擲拄杖 下座 上堂 知有底 也喫粥喫飯 不知有底 也喫粥喫飯 如何直下驗得他有之與無 是之與非 邪之與正 若驗不出 參學事大遠在 喝一喝 下座 上堂 山僧是楊歧四世孫 這老漢有箇三脚驢子弄蹄行公案 雖人人擧得 祇是不知落處 山僧不惜眉毛 爲諸人下箇注脚 乃曰 八角磨盤空裏走

 

구주(衢州) 천녕(天寧) 눌당(訥堂) 범사선사(梵思禪師)

소대(蘇臺) 주씨(朱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생사해(生死海)를 적번(趯飜; 차서 뒤엎다)하고/ 열반안(涅槃岸)을 답도(踏倒)하라/ 세상에 활인(活人)이 없고/ 황천(黃泉)에 사한(死漢)이 없다. 드디어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눌당(訥堂)이 금일 주장자를 분부(分付)할 곳이 있나니 또한 도리어 승당(承當)함을 얻을 자가 있느냐. 시험 삼아 나와서 담하(擔荷)해 보아라. 있느냐 있느냐. 양구했다가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지유하는 이(知有底)도 또한 끽죽끽반(喫粥喫飯)하고 지유하지 못하는 이도 또한 끽죽끽반한다. 어찌해야 직하(直下)에 그() 유와 무(有之與無), 시와 비(是之與非), 사와 정(邪之與正)을 험득(驗得)하겠는가. 만약 시험해 내지 못한다면 참학사(參學事)가 너무 멀다(大遠在).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산승은 이 양기(楊歧)4() ()이다. 이 노한(老漢; 양기)이 저() 삼각려자롱제행(三脚驢子弄蹄行; 세 다리의 나귀가 발굽을 희롱하며 간다)의 공안이 있어 비록 사람마다 거득(擧得)하지만 다만 이, 낙처(落處)를 알지 못한다. 산승이 눈썹을 아끼지 않고 제인을 위해 저() 주각(注脚)을 내리겠다. 이에 가로되 팔각마반(八角磨盤)이 허공 속을 달린다.

 

岳州君山佛照覺禪師

上堂 擧 古者道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諸人還識得麽 若也不識 爲你註破 仰之彌高 不隔絲毫 要津把斷 佛祖難逃 鑽之彌堅 眞體自然 鳥啼華笑 在碧巖前 瞻之在前 非正非偏 十方坐斷 威鎭大千 忽焉在後 一場漏逗 堪笑雲門 藏身北斗 咄

彌高; 彌 副詞 表示程度加深 廣韻 彌 益也 論語子罕 顏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漏逗; 逗 透也 露也 漏逗 泄露 泄漏 禪錄用例常指泄露禪法玄旨 按禪旨强不可言說 然高手宗師本分示人 自可直指心地 泄露禪旨的說法 帶有詼諧意味 或云老衰雜亂之義

 

악주(岳州) 군산(君山) 불조각(佛照覺) 선사

상당(上堂) ()하다. 고자(古者; 顏淵)가 말하되 그를 우러르면 더욱 높아지고(彌高) 그를 뚫으면 더욱 견고해 지고 그를 쳐다보면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더라. 제인이 도리어 식득(識得)하느냐.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너희를 위해 주파(註破)하겠다. 그를 우러르면 더욱 높아진다 하니/ 사호(絲毫)도 막히지 않았다/ 요진(要津)을 파단(把斷)하면/ 불조도 도피하기 어렵다. 그를 뚫으면 더욱 견고해 진다 하니/ 진체(眞體)는 자연(自然)이다/ 새가 울고 꽃은 웃으면서/ 벽암(碧巖) 앞에 있다. 그를 쳐다보면 앞에 있다 하니/ ()도 아니고 편()도 아니다/ 시방을 좌단(坐斷)하니/ 위풍(威風; )이 대천(大千)을 진압(鎭壓; )한다. 홀연히 뒤에 있더라 하니/ 한바탕 누두(漏逗)/ 가히 우습나니(堪笑) 운문(雲門)/ 북두(北斗)에 몸을 감췄다. ().

彌高; ()는 부사니 정도의 가심(加深)을 표시함. 광운 미() ()이다. 논어 자한. 안연(顔淵)이 한숨 쉬며 탄식해 가로되 그를 우러르면 더욱 높아지고 그를 뚫으면 더욱 견고해 지고 그를 쳐다보면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더라. 부자(夫子)는 차근차근히(循循然) 잘 사람을 가르치시니 문()으로써 나를 박식하게 하고 예()로써 나를 단속(團束; )케 하셨다.

漏逗; ()는 투(). (). 누두(漏逗)는 설로(泄露. 누설하여 노출함). 설루(泄漏. 漏泄). 선록(禪錄)의 용례는 늘 선법의 현지(玄旨)를 설로(泄露)함을 가리킴. 안험컨대 선지(禪旨)는 강력히 언설을 옳지 않다 함. 그리하여 고수종사(高手宗師)는 본분을 사람에게 보이므로 심지(心地)를 직지하여 선지를 설로(泄露)하는 설법을 스스로 옳다 함. 회해(詼諧. 조롱하며 농담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 혹은 이르기를 노쇠하여 잡란(雜亂)하다 란 뜻.

 

平江府寶華顯禪師

本郡人也 上堂曰 喫粥了也 頭上安頭 洗鉢盂去 爲虵畫足 更問如何 自納敗闕 良久 高聲召大衆 衆擧首 師曰 歸堂喫茶 上堂 禪莫參道休學 歇意忘機常廓落 現成公案早周遮 祇箇無心已穿鑿 直饒坐斷未生前 難透山僧錯錯錯

 

평강부(平江府) 보화현(寶華顯) 선사

본군(本郡) 사람이다. 상당해 가로되 끽죽(喫粥)했느냐 하니 두상안두(頭上安頭)며 발우를 씻으러 가거라 하니 뱀을 위해 발을 그렸다(爲虵畫足). 어떠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스스로 패궐(敗闕)을 용납(容納; )함이다. 양구했다가 고성(高聲)으로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머리를 들었다. 사왈 귀당(歸堂)하여 끽다(喫茶)하라. 상당(上堂) ()을 참구(參究; )하지 말고 도()를 배움을 그만둘지니/ 헐의(歇意)하고 망기(忘機)해야 늘 확락(廓落; 空寂)하다/ 현성공안(現成公案)도 벌써 주차(周遮)했고/ 다만 이() 무심이라도 이미 천착(穿鑿)했다/ 직요(直饒) 미생전(未生前)을 좌단(坐斷)하더라도/ 산승의 착착착(錯錯錯)을 투과하기 어렵다.

 

紹興府東山覺禪師

後住因聖 上堂 三通皷罷 諸人各各上來 擬待理會祖師西來意 還知劒去久矣麽 設使直下悟去 也是斬頭覓活 東山事不獲已 且向第二頭鞠拶看 以手拍禪牀 下座 上堂 花爛熳 景暄姸 休說壺中別有天 百草頭邊如薦得 東高三丈 西闊八寸 上堂 擧 昔廣額屠兒 一日至佛所 颺下屠刀曰 我是千佛一數 世尊曰 如是如是 今時叢林 將謂廣額過去是一佛 權現屠兒 如此見廣額 且喜沒交涉 又曰 廣額正是箇殺人不眨眼底漢 颺下屠刀 立地成佛 且喜沒交涉 又道 廣額颺下屠刀曰 我是千佛一數 這一佛多少分明 且喜沒交涉 要識廣額麽 夾路桃華風雨後 馬蹄何處避殘紅

三通皷; 百丈淸規八法器章法鼓條曰 凡住持上堂 小參普說入室 並擊之 擊鼓之法上堂時三通 入衆須知鍾鼓法則 集衆堂前殿上等處 各一通 上堂鼓三通

暄姸; 天氣和暖 景物明媚

廣額屠兒; 祖庭事苑五 廣額 涅槃經(19)云 波羅奈國有屠兒 名曰廣額 於日日中 殺無量羊 見舍利弗卽受八戒 經一日夜 以是因緣 命終得北方天王毘沙門子 又迦葉言 拘尸那城有旃陀羅 名曰歡喜 佛記此人 由一發心 當於此界千佛數中 速成無上正眞之道 以何等故 如來不記舍利弗目犍連等速成佛道 佛言 善男子 或有聲聞緣覺菩薩 作誓願言 我當久久護持正法 然後乃成無上佛道 以發願速故 與速記 詳觀此經 卽無我是千佛之語 恐傳言誤耳

 

소흥부(紹興府) 동산각(東山覺) 선사

후에 인성(因聖)에 주()했다. 상당(上堂) 삼통고(三通皷)를 마치자 제인(諸人)이 각각 올라왔다. 조사서래의를 이회(理會)하기를 기다리려고 한다면 검이 떠난 지 오래되었음을 도리어 아느냐. 설사(設使) 직하(直下)에 깨달아 가더라도 또한 이 머리를 베고 삶을 찾음이다. 동산(東山)이 사불획이(事不獲已)하여 다만() 2(第二頭)를 향해 국찰(鞠拶; 審問逼迫)해 보겠다. 손으로써 선상을 두드리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꽃은 난만(爛熳)하고 경색(景色; )이 훤연(暄姸)하니 호중(壺中)에 달리 하늘이 있다고 설하지 말아라(). 백초두변(百草頭邊)에서 천득(薦得)할 것 같으면 동쪽은 높이가 3()이며 서쪽은 넓이가 8()이다. 상당(上堂) ()하다. 옛적에 광액도아(廣額屠兒)가 어느 날 불소(佛所)에 이르러 도도(屠刀)를 양하(颺下; 날려 떨어뜨리다)하고 가로되 나도 이 천불(千佛)의 일수(一數)입니다. 세존이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금시의 총림에서 이에() 이르기를 광액(廣額)은 과거에 이 일불(一佛)인데 권(; 방편)으로 도아(屠兒)를 나타내었다 하거니와 이와 같이 광액을 본다면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喜沒交涉). 또 가로되 광액은 바로() 시개(是箇) 살인하고도 눈을 깜작이지 않는 자인지라 도도(屠刀)를 양하(颺下)하고 입지(立地; 즉시)에 성불했다 하거니와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 또 말하되 광액이 도도를 양하하고 가로되 나도 이(; 저본에 로 지었음) 천불의 일수(一數)라 하니 이(; 저본에 으로 지었음) 일불(一佛)이 다소(多少) 분명하다 하거니와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 광액을 알고자 하느냐, 협로(夾路; 저본에 來路로 지었음)의 도화(桃華)가 풍우(風雨) 후에 마제(馬蹄; 말발굽)가 어느 곳에서 잔홍(殘紅)을 회피(回避; )할까.

三通皷; 백장청규8 법기장 법고조(法鼓條)에 가로되 무릇 주지가 상당하여 소참ㆍ보설하거나 입실(入室)에 모두 이를 친다. 격고(擊鼓)의 법은 상당할 때 3(; 量詞)이다. 입중수지 종고법칙. 당전(堂前)이나 전상(殿上) 등의 곳으로 대중을 소집함엔 각기 1()이며 상당고(上堂鼓)3통이다.

暄姸; 천기(天氣)가 난화(暖和)하고 경색(景色)이 명미(明媚; 맑고 아름다움).

廣額屠兒; 조정사원5. 광액(廣額) 열반경(19)에 이르되 바라나국에 도아(屠兒; 는 죽일 도. 는 조사. 白丁)가 있었으니 이름해 가로되 광액이다. 날마다의 가운데에 무량한 양을 도살했다. 사리불을 뵙고 곧 8()를 받아 한 낮과 밤을 경과했다. 이 인연으로써 목숨을 마쳐 북방의 천왕인 비사문(毘沙門; 4천왕 중의 하나)의 아들이 되었다. 또 가섭이 말하되 구시나성에 전다라(旃陀羅)가 있었으니 이름해 가로되 환희입니다. 불타가 이 사람에게 수기(授記)하시되 한 번 발심함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이 세계의 천불의 수 가운데라 속히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얻는다 하시고 무엇 등의 연고로써 여래가 사리불과 목건련 등에게는 속히 불도를 이룬다고 수기하지 않으십니까. 불타가 말씀하시되 선남자여, 혹은 성문ㆍ연각ㆍ보살이 있어 서원을 지어 말하되 나는 마땅히 오래오래 정법을 호지한 연후에 이에 위없는 불도를 이루리라 하나니 발원이 신속함을 쓰는 연고로 속기(速記)를 주느니라(또 가섭이 말하되 이하는 열반경10에 나오는 말). 상세히 이 경을 보건대 곧 나도 이 천불이란 말이 없나니 전언(傳言)의 오류인가 염려됨.

 

台州天封覺禪師

上堂 無生國裏 未是安居 萬仞崖頭 豈容駐足 且望空撒手 直下飜身一句作麽生道 人逢好事精神爽 入火眞金色轉鮮

 

태주(台州) 천봉각(天封覺) 선사

상당(上堂) 무생국(無生國) 속에서 이 안거하지 않거늘 만인(萬仞)의 애두(崖頭; 낭떠러지)에 어찌 주족(駐足)을 용납()하겠는가. 다만() 허공을 바라보며 손을 놓고(撒手) 직하(直下)에 번신(飜身)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람이 호사(好事)를 만나면 정신이 상쾌(爽快; )하고 불에 든 진금은 색이 더욱() 선명(鮮明; )하다.

 

成都府昭覺道祖首座

初見圓悟 於卽心是佛語下發明 久之 悟命分座 一日爲衆入室 餘二十許人 師忽問曰 生死到來 如何回避 僧無對 師擲下拂子 奄然而逝 衆皆愕眙 亟以聞悟 悟至 召曰 祖首座 師張目眎之 悟曰 抖擻精神透關去 師點頭 竟爾趨寂

 

성도부(成都府) 소각(昭覺) 도조수좌(道祖首座)

처음 원오를 뵙고 즉심시불(卽心是佛) 어하(語下)에서 발명했다. 오래되자 원오가 분좌(分座)를 명했다. 어느 날 대중을 위해 입실했는데 이십허 남짓(餘二十許)의 사람이었다. 스님이 홀연히 물어 가로되 생사가 도래하면 어떻게 회피하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불자를 척하(擲下)하고 엄연(奄然; 홀연)히 서거했다. 대중이 모두 악치(愕眙; 놀라며 휘둥그래져서 보는 모양)했다. 급히() 원오에게 알리자() 원오가 이르러 불러 가로되 조수좌(祖首座). 스님이 눈을 벌려 보았다. 원오가 가로되 정신을 두수(抖擻)하여 투관(透關)하여 가거라. 스님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마침내(竟爾) 추적(趨寂; 逝世)했다.

 

南康軍雲居宗振首座

丹丘人也 依圜悟於雲居 一日 仰瞻鐘閣 倐然契證 有詰之者 座酧以三偈 其後曰 我有一機 直下示伊 靑天霹靂 電卷星馳 德山臨濟 棒喝徒施 不傳之妙 於汝何虧 悟見大悅 竟以節操自高 道望愈重 甞書壁曰 住在千峯最上層 年將耳順任騰騰 免敎名字挂人齒 甘作今朝百拙僧

耳順; 緇門警訓註下 論語 六十耳順 言聲入心通 無所違逆 事理皆通 入耳無不順

 

남강군(南康軍) 운거(雲居) 종진수좌(宗振首座)

단구(丹丘) 사람이다. 운거(雲居)에서 원오에게 의지했는데 어느 날 종각(鐘閣)을 앙첨(仰瞻)하다가 숙연(倐然)히 계증(契證)했다. 힐문(詰問; )하는 자가 있자 수좌가 3게로써 응수(應酬; )했다. 기후(其後)에 가로되 나에게 일기(一機)가 있나니/ 직하(直下)에 그()에게 보인다/ 청천(靑天)의 벽력이며/ 전권(電卷; 번개가 걷힘)하고 성치(星馳)한다/ 덕산과 임제가/ 방할(棒喝)을 도연히 베풀었다/ 부전(不傳)의 묘()/ 너에게 어찌 모자라겠는가(). 원오가 보고 대열(大悅)했다. 마침내() 절조(節操)로써 자고(自高; 스스로 높은 체함)했고 도망(道望; 禪法聲望)이 더욱() 무거웠다. 일찍이 벽에 써 가로되 천봉(千峯)의 최상층(最上層)에 주재(住在)하나니/ 나이가 거의() 이순(耳順)인데 마음대로 등등(騰騰)한다/ 명자(名字)가 사람의 이빨에 걸리게 됨을 면하고서/ 달게 금조(今朝)에 백졸승(百拙僧)을 지었다.

耳順; 치문경훈주하. 논어 육십이순(六十耳順) 말하자면 소리가 마음에 들어가 통하여 위역(違逆)하는 바가 없으며 사리(事理)가 모두 통하여 입이(入耳)하매 순()하지 않음이 없다.

 

樞密徐俯

字師川 號東湖居士 每侍先龍圖謁法昌及靈源 語論終日 公聞之 藐如也 及法昌歸寂在笑談間 公異之 始篤信此道 後丁父憂 念無以報罔極 命靈源歸孝址說法 源登座 問答已 乃曰 諸仁者 祇如龍圖平日讀萬卷書 如水傳器 涓滴不遺 且道尋常著在甚麽處 而今捨識之後 這著萬卷書底 又却向甚麽處著 公聞 灑然有得 遂曰 吾無憾矣 源下座 問曰 學士適來見箇甚麽 便恁麽道 公曰 若有所見 則鈍置和尙去也 源曰 恁麽則老僧不如 公曰 和尙是何心行 源大笑 靖康初 爲尙書外郞 與朝士同志者挂鉢於天寧寺之擇木堂 力參圓悟 悟亦喜其見地超邁 一日至書記寮 指悟頂相曰 這老漢脚跟猶未點地在 悟䫌面曰 甕裏何曾走却鼈 公曰 且喜老漢脚跟點地 悟曰 莫謗他好 公休去

超邁; 超越 卓越高超

 

추밀(樞密) 서부(徐俯)

자가 사천(師川)이며 호가 동호거사(東湖居士). 매번 선용도(先龍圖; 부친을 가리킴)를 모시고 법창(法昌; 倚遇) 및 영원(靈源; 惟淸)을 참알해 종일(終日) 어론(語論)했는데 공()이 듣고서 막여(藐如; 아마득함)했다. 및 법창이 소담(笑談)하는 사이에 있으면서 귀적(歸寂)하자 공()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비로소 차도(此道)를 독신(篤信)했다. 후에 부우(父憂; 부친의 )를 당하자() 망극(罔極; 罔極之恩)에 보은할 게 없음을 생각하고 영원(靈源)에게 명해 효지(孝址)로 돌아와 설법하게 했다. 영원이 등좌(登座)하여 문답을 마치자 이에 가로되 제인자(諸仁者), 지여(祇如) 용도(龍圖)가 평일 만권서(萬卷書)를 읽으면서 물을 그릇에 전함과 같이 연적(涓滴)도 유실(遺失)하지 않았거니와 차도(且道)하라, 심상(尋常)에 어느 곳에 놓아두었는가(著在). 이금(而今)에 사식(捨識)한 후 이 둔(這著) 만권서(萬卷書)의 것은 또 도리어 어느 곳을 향해 두었는가(). ()이 듣고서 쇄연(灑然)히 얻음이 있었다. 드디어 가로되 내가 유감(遺憾; )이 없습니다. 영원이 하좌하여 문왈 학사(學士)가 아까 저() 무엇을 보았기에 바로 이렇게 말합니까. 공왈(公曰) 만약 본 바가 있다면 곧 화상을 둔치(鈍置)하여 갈 것입니다. 영원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노승이 불여(不如; 같지 못함)합니다. 공왈 화상은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영원이 크게 웃었다. 정강(1126-1127) 초 상서외랑(尙書外郞)이 되었다. 조사(朝士; 조정의 관원)의 동지(同志)인 자와 더불어 천녕사(天寧寺)의 택목당(擇木堂)에 괘발(挂鉢)하고 원오(圓悟)에게 역참(力參)했다. 원오도 또한 그의 견지(見地)가 초매(超邁)함을 기뻐했다. 어느 날 서기료(書記寮)에 이르러 원오의 정상(頂相; 저본에 項相으로 지었음)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 노한은 각근(脚跟)이 아직 점지(點地)하지 않았다. 원오가 얼굴을 기울이며() 가로되 독 속에서 어찌 일찍이 자라가 달리겠는가(走却). 공왈(公曰) 다만 노한이 각근이 점지했음을 기뻐합니다. 오왈(悟曰) 그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공이 쉬러 갔다.

超邁; 초월. 탁월하고 고초(高超).

 

郡王趙令衿

字表之 號超然居士 任南康 政成事簡 多與禪衲遊 公堂間爲摩詰丈室 適圓悟居甌阜 公欣然就其鑪錘 悟不少假 公固請 悟曰 此事要得相應 直須是死一回始得 公默契 甞自疏之 其略曰 家貧遭劫 誰知盡底不存 空屋無人 幾度賊來亦打 悟見 囑令加護 紹興庚申冬 公與汪內翰藻李參政邴曾侍郞開詣徑山 謁大慧 慧聞至 乃令擊皷入室 公欣然袖香趨之 慧曰 趙州洗鉢盂話 居士作麽生會 公曰 討甚麽碗 拂袖便出 慧起搊住曰 古人向這裏悟去 你因甚麽却不悟 公擬對 慧𢮁之曰 討甚麽碗 公曰 還這老漢始得

郡王; 爵位名 其名始於西晉 唐宋以後 郡王皆爲次於親王一等的爵號 除皇室外 臣下亦得封郡王 [百度百科]

鑪錘; 又作爐鎚 指法會

 

군왕(郡王) 조령금(趙令衿)

자가 표지(表之)며 호가 초연거사(超然居士). 남강(南康)에 부임(赴任; )했는데 정무(政務)로 이루는 일이 간명(簡明)했고 많이 선납(禪衲)과 노닐었다. 공당(公堂) 사이를 마힐장실(摩詰丈室)로 삼았다. 마침(適圓) 원오가 구부(甌阜)에 거주하자 공()이 흔연(欣然)히 그 노추(鑪錘)로 나아갔다. 원오가 조금도 가자(假藉; 借助)하여 주지 않았다(悟不少假). ()이 고청(固請)하자 원오가 가로되 이 일은 요컨대 상응을 얻어야 하나니 바로() 이 죽음을 1() 써야 비로소 옳습니다. 공이 묵계(默契)했다. 일찍이 스스로 이를 소()했으니 기략(其略)에 가로되 집이 빈곤한데 겁탈을 만났으니 모든 것(盡底)이 존재()하지 않음을 누가 아느냐. 공옥(空屋)에 사람이 없는데 몇 차례나 도적이 와서 또 털었던가(). 원오가 보고 부촉하며 가호(加護)하게 했다. 소흥(紹興) 경신(庚申; 1140) 겨울 공()이 왕내한(汪內翰) (), 이참정(李參政) (), 증시랑(曾侍郞) ()와 더불어 경산(徑山)으로 나아가 대혜(大慧)를 참알했다. 대혜가 이름()을 듣고 이에 격고(擊皷)하고 입실케 했다. 공이 흔연(欣然)히 수향(袖香)하고 나아갔다(趨之). 혜왈(慧曰) 조주의 세발우화(洗鉢盂話)를 거사가 어떻게 이회합니까. 공왈(公曰) 무슨 사발(甚麽碗)을 찾습니까 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대혜가 일어나 추주(搊住; 붙들어 머물게 함)하고 가로되 고인이 이 속을 향해 깨쳐 갔거늘 너는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깨치지 못하는가. 공이 대답하려고 하자 대혜가 치고(𢮁) 가로되 무슨 사발을 찾는가. 공왈 도리어 이 노한이라야 비로소 옳다.

郡王; 작위의 이름이니 그 명칭은 서진에서 비롯했음. 당ㆍ송 이후에 군왕은 다 친왕보다 1등급 다음의 작호(爵號). 황실을 제한 밖에 신하도 또한 군왕에 봉해짐을 얻었음 [백도백과].

鑪錘; 또 노추(爐鎚)로 지음. 법회를 가리킴.

 

侍郞李彌遜

號普現居士 少時讀書 五行俱下 年十八 中鄕擧 登第京師 旋歷華要 至二十八歲 爲中書舍人 常入圓悟室 一日早朝回至天津橋馬躍 忽有省 通身汗流 直造天寧 適悟出門 遙見便喚曰 居士且喜大事了畢 公厲聲曰 和尙眼華作甚麽 悟便喝 公亦喝 於是機鋒迅捷 凡與悟問答 當機不讓 公後遷吏部 乞祠祿歸閩連江 築庵自娛 忽一日示微恙 遽索湯 沐浴畢 遂趺坐 作偈曰 謾說從來牧護 今日分明呈露 虛空拶倒須彌 說甚向上一路 擲筆而逝

登第; 又稱登科 及第於任官登庸試驗

華要; 指顯貴淸要的職位

中書舍人; 官名 舍人始於先秦 本爲國君太子親近屬官 魏晉時於中書省內置中書通事舍人 掌傳宣詔命 南朝沿置 至梁 除通事二字 稱中書舍人 隋唐時 中書舍人在中書省掌制誥 隋煬帝時曾改稱內書舍人 武則天時稱鳳閣舍人 簡稱舍人 宋初亦設此官 實不任職 另置知制誥及直舍人院 起草詔令 明淸時於內閣中的中書科 亦設有中書舍人 [百度百科]

祠祿; 官名 宋制 大臣罷職 令管理道敎宮觀 以示優禮 無職事 但借名食俸 謂之祠祿 [百度百科]

 

시랑(侍郞) 이미손(李彌遜)

호가 보현거사(普現居士). 소시(少時)에 독서하면서 5()을 구하(俱下)했다. 나이 18에 향거(鄕擧; 지방에서 실시하던 科擧初試)에 합격했고() 경사(京師)에서 등제(登第)했고 화요(華要)를 선력(旋歷)하다가 28세에 이르러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늘 원오(圓悟)의 실()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조조(早朝)에 돌아오다 천진교(天津橋)에 이르러 말이 뛰었고() 홀연히 성찰이 있었고 통신(通身)에 땀이 흘렀다. 바로() 천녕(天寧)으로 나아가자() 마침() 원오가 출문(出門)하여 멀리서 보고 바로 불러 가로되 거사(居士), 대사(大事)를 요필(了畢)했음을 다만 기뻐한다. ()이 여성(厲聲; 猛烈한 소리)으로 가로되 화상(和尙), 안화(眼華)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원오가 바로 할했다. 공도 또한 할했다. 이에 기봉(機鋒)이 신첩(迅捷)했고 무릇 원오와 문답하면서 당기(當機)하여 사양하지 않았다. ()이 후에 이부(吏部)로 옮겼고 사록(祠祿)을 구걸해 민()의 연강(連江)으로 돌아가 축암(築庵)하여 자오(自娛)했다. 홀연히 어느 날 미양(微恙)을 보이더니 급히() 끓인 물을 찾아(索湯) 목욕해 마치자 드디어 부좌(趺坐)하여 작게(作偈)해 가로되 도연히 종래에 목호(牧護)했다고 설했거니와/ 금일 분명히 정로(呈露)한다/ 허공이 수미(須彌)를 압박해() 넘어뜨렸나니/ 무슨 향상의 일로(一路)를 설하리오. 붓을 던지고 서거했다.

登第; 또 명칭이 등과(登科) 임관(任官)의 등용시험에 급제함.

華要; 현귀(顯貴)하고 청요(淸要; 淸宦要職)한 직위를 가리킴.

中書舍人; 벼슬 이름이니 사인(舍人)은 선진(先秦; 통일 이전. 주로 춘추전국 시대를 가리킴)에서 비롯했고 본래 국군(國君)ㆍ태자와 친근한 속관(屬官)이었음. 위진(魏晉) 시 중서성 안에 중서통사사인(中書通事舍人)을 설치하여 조령(詔命)의 전선(傳宣)을 관장했음. 남조(南朝)도 따라 설치했고 양()에 이르러 통사(通事) 2자를 삭제하고 일컬어 중서사인(中書舍人)이라 했음. 수ㆍ당 시 중서사인은 중서성 안에서 제고(制誥)를 관장했고 수양제 시 일찍이 내서사인(內書舍人)으로 개칭했음. 무측천 시 일컬어 봉각사인(鳳閣舍人)이라 했고 간칭이 사인(舍人)이었음. 송초(宋初) 또한 이 관직을 설치했으나 실로 직책을 맡지는 않았음. 따로 지제고(知制誥) 및 직사인원(直舍人院)을 설치하여 조령(詔令)을 기초(起草)했음. 명ㆍ청 시 내각(內閣) 중의 중서과(中書科)에 또한 중서사인을 설치해 있었음 [백도백과].

祠祿; 관명(官名). 송제(宋制)니 대신이 관직을 마치매 도교(道敎)의 궁관(宮觀)을 관리하게 하여 우례(優禮)를 보였음. 직사(職事)는 없고 단지 식봉(食俸)을 차명(借名)했으니 이를 일러 사록(祠祿)이라 함 [백도백과].

 

覺庵道人祖氏

建寧游察院之姪女也 幼志不出適 留心祖道 於圓悟示衆語下 了然明白 悟曰 更須颺却所見 始得自由 祖答偈曰 露柱抽橫骨 虛空弄爪牙 直饒玄會得 猶是眼中沙

察院; 是古代官署 唐宋御史台所屬有台院 殿院 察院 御史台成員有侍御史 殿中侍御史 監察御史三種 監察御史屬察院 [百度百科] 事物紀原五 唐憲府故事 侍御殿中監察呼三院 故今亦斥殿中曰殿院 監察曰察院 自唐室始也

橫骨; 在下腹部 當臍下五寸

 

각암도인(覺庵道人) 조씨(祖氏)

건녕(建寧) 유찰원(察院)의 질녀(姪女). 유지(幼志)로 시집가지(出適) 않았고 조도(祖道)에 유심(留心)했다. 원오(圓悟)의 시중(示衆) 어하(語下)에서 요연(了然)히 명백했다. 원오가 가로되 다시 소견(所見)을 날려버림(颺却)을 써야()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의 답게(答偈)에 가로되 노주(露柱)가 횡골(橫骨)을 뽑고()/ 허공이 조아(爪牙)를 희롱한다/ 직요(直饒) 현묘하게 희득(會得)하더라도/ 오히려 이는 안중의 모래다.

察院; 이는 고대의 관서(官署)니 당ㆍ송 어사대(御史台) 소속(所屬)에 대원(台院)ㆍ전원(殿院)ㆍ찰원(察院)이 있었고 어사대 성원(成員)에 시어사(侍御史)ㆍ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ㆍ감찰어사(監察御史) 3종이 있었음. 감찰어사가 찰원(察院)에 속했음 [백도백과] 사물기원5 당헌부고사(唐憲府故事) 시어전(侍御殿) 중의 감찰을 호칭해 3()이라 한다. 고로 여금에도 또한 전중(殿中)을 가리켜() 가로되 전원(殿院)이며 감찰을 가로되 찰원(察院)이라 함은 당실(唐室)로부터 비롯했다.

橫骨; 하복부에 있음. 배꼽 아래 5()에 당함.

 

令人本明

號明室 自機契圓悟 徧參名宿 皆蒙印可 紹興庚申二月望 親書三偈寄呈草堂淸 微露謝世之意 至旬末 別親里而終 草堂䟦其偈 後爲刊行 大慧亦甞垂語發揚 偈曰 不識煩惱是菩提 若隨煩惱是愚癡 起滅之時須要會 鷂過新羅人不知 不識煩惱是菩提 淨華生淤泥 人來問我若何爲 喫粥喫飯了洗鉢盂 莫管他莫管他 終日癡憨弄海沙 要識本來眞面目 便是祖師一木叉 道不得底叉下死 道得底也叉下死 畢竟如何 不許夜行 投明須到

令人; 一品德美好的人 二古代命婦的封號 此指二

旬末; 每旬最後幾天

 

영인(令人) 본명(本明)

호가 명실(明室)이다. ()가 원오(圓悟)와 계합함으로부터 명숙(名宿)을 편참(徧參)했고 모두 인가를 받았다(). 소흥(紹興) 경신(庚申; 1140) 2월 보름() 3게를 친서(親書)하여 초당청(草堂淸; 善淸)에게 기정(寄呈)하여 사세(謝世; 逝世)의 뜻을 조금() 드러냈다. 순말(旬末)에 이르러 친리(親里; 親屬鄰里)에게 고별하고 마쳤다. 초당(草堂)이 그 게()에 발()하고 후에 간행했다. 대혜(大慧)도 또한 일찍이 수어(垂語)하여 발양(發揚; 宣揚)했다. 게왈(偈曰) 번뇌를 알지 못함이 이 보리(菩提)/ 만약 번뇌를 따른다면 이 우치(愚癡)/ 기멸(起滅)할 때 모름지기 이회(理會)함을 요하지만/ 새매()가 신라를 지난 줄 사람이 알지 못한다. 번뇌를 알지 못함이 이 보리니/ 정화(淨華)가 어니(淤泥)에서 난다/ 사람이 와서 나에게 묻되 어찌해야 하는가(若何爲)/ 끽죽끽반(喫粥喫飯)하고 나서 발우를 씻어라. 그에 상관하지 말아라(莫管他), 그에 상관하지 말아라/ 종일 치감(癡憨)하며 해사(海沙)를 희롱한다/ 본래의 진면목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이 조사의 하나의 목차(木叉)/ 말함을 얻지 못하는 이는 차하(叉下)에 죽고/ 말함을 얻는 이도 차하(叉下)에 죽는다/ 필경 어떠한가/ 야행(夜行)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밝음에 이르러 이름을 써라(投明須到).

令人; 1. 품덕(品德)이 미호(美好)한 사람. 2. 고대 명부(命婦)의 봉호(封號).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旬末; 매순(每旬)의 최후의 며칠.

 

成都府范縣君

嫠居歲久 常坐而不臥 聞圓悟住昭覺 往禮拜 請示入道因緣 悟令看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是箇甚麽 久無所契 范泣告悟曰 和尙有何方便 令某易會 悟曰 却有箇方便 遂令祇看是箇甚麽 後有省曰 元來恁麽地近那

縣君; 古代婦人封號 晉已有此稱 命婦的通稱

 

성도구(成都府) 범현군(縣君)이란 자는

과부(寡婦; )로 거처한 세월이 오래되었는데 상좌(常坐)하고 눕지 않았다. 원오가 소각(昭覺)에 거주한다 함을 듣고 가서 예배하고 입도인연(入道因緣)을 보이기를 청했다. 원오가 불시심(不是心)ㆍ불시불(不是佛)ㆍ불시물(不是物)이니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를 간()하게 하였다. 오랫동안 계합하는 바가 없었다. ()이 원오에게 읍고(泣告)하여 가로되 화상이 어떤 방편이 있어 모()로 하여금 쉽게 이회하게 하겠습니까. 원오가 가로되 도리어 저() 방편이 있다. 드디어 다만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를 간()하게 하였다. 후에 성찰이 있어 가로되 원래 이렇게(恁麽地) 가깝습니까.

縣君; 고대 부인(婦人)의 봉호(封號). ()에 이미 차칭(此稱)이 있었음. 명부(命婦)의 통칭(通稱).

 

太平懃禪師法嗣

常德府文殊心道禪師

眉州徐氏子 年三十得度 詣成都習唯識 自以爲至 同舍詰之曰 三界唯心 萬法唯識 今目前萬象摐然 心識安在 師茫然不知對 遂出關 周流江淮 旣抵舒之太平 聞佛鑑禪師夜參 擧趙州栢樹子話 至覺鐵觜云 先師無此語 莫謗先師好 因大疑 提撕旣久 一夕豁然 卽趨丈室 擬敘所悟 鑑見來便閉門 師曰 和尙莫謾某甲 鑑云 十方無壁落 何不入門來 師以拳擉破窻紙 鑑卽開門搊住云 道道 師以兩手捧鑑頭 作口啐而出 遂呈偈曰 趙州有箇栢樹話 禪客相傳徧天下 多是摘葉與尋枝 不能直向根源會 覺公說道無此語 正是惡言當面罵 禪人若具通方眼 好向此中辨眞假 鑑深然之 每對客稱賞 後命分座 襄守請開法天寧 未幾擢大別文殊

摐然; (衆多事物)紛然存在的樣子 摐 紛錯 高聳

 

상덕부(常德府) 문수(文殊) 심도선사(心道禪師)

미주(眉州) 서씨(徐氏)의 아들이다. 나이 30에 득도(得度)했고 성도(成都)로 나아가() 유식(唯識)을 학습하며 스스로 지극(至極; )함으로 삼았다. 동사(同舍; 同僚)가 힐문(詰問)해 가로되 3계가 유심(唯心)이며 만법이 유식이라 하니 지금 목전에 만상(萬象)이 창연(摐然)하거늘 심식(心識)이 어디에 있는가(安在). 스님이 망연(茫然)하여 대답을 알지 못했다. 드디어 출관(出關)하여 강회(江淮; 揚子江淮水)를 주류(周流)했다. 이미 서()의 태평(太平)에 다다라 불감선사(佛鑑禪師)의 야참(夜參)을 들었다. 조주의 백수자화(栢樹子話)를 들었는데() 각철취(覺鐵觜)가 이르되 선사(先師)는 차어(此語)가 없었으니 선사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다 함에 이르렀고() 인하여 크게 의심했다. 제시(提撕; 探究)한 지 이미 오래되자 어느 날 저녁 활연(豁然)했다. 곧 장실(丈室)로 가서() 소오(所悟)를 말하려고(擬敘) 하는데 불감이 오는 것을 보고 바로 문을 닫았다. 사왈 화상은 모갑을 속이지 마십시오. 감운(鑑云) 시방에 벽락(壁落)이 없거늘 왜 문에 들어오지 못하는가. 스님이 주먹으로써 창지(窻紙)를 착파(擉破; 찔러 깨뜨리다)했다. 불감이 곧 개문(開門)하고 추주(搊住)하여 이르되 말하라, 말하라. 스님이 양손으로써 불감의 머리를 받들어() 구줄(口啐; 입으로 빠는 소리)을 짓고 나갔다. 드디어 정게(呈偈)하여 가로되 조주(趙州)가 저() 백수화(栢樹話)가 있나니/ 선객이 상전(相傳)하여 천하에 두루하다/ 많이들 이 잎을 따고 더불어 가지를 찾으면서/ 능히 근원(根源)으로 직향(直向)하여 알지 못한다/ 각공(覺公)이 설해 말하되 차어(此語)가 없었다 하니/ 바로() 이 악언(惡言)으로 당면하여 욕했다()/ 선인(禪人)이 만약 통방안(通方眼)을 갖추었다면/ 좋게 차중(此中)을 향해 진가(眞假)를 분변하리라. 불감이 깊이 그렇다 하였고 매번 대객(對客)하여 칭상(稱賞)하더니 후에 분좌(分座)를 명()했다. 양수(襄守)의 청으로 천녕(天寧)에서 개법했고 미기(未幾)에 대별(大別)의 문수(文殊)에 발탁(拔擢; )했다.

摐然; (중다한 사물)이 분연(紛然)히 존재하는 양자. ()은 어지럽게 섞임. 높이 솟음.

 

上堂曰 師子嚬呻 象王哮吼 雲門北斗裏藏身 白雲因何喚作手 三世諸佛不能知 狸奴白牯却知有 且道 作麽生是他知有底事 雨打棃華峽蝶飛 風吹柳絮毛毬走 上堂 拈拄杖直上指曰 恁麽時 刺破憍尸迦脚跟 卓一下曰 恁麽時 卓碎閻羅王頂骨 乃指東畔曰 恁麽時 穿過東海鯉魚眼睛 指西畔曰 恁麽時 塞却西王母鼻孔 且道總不恁麽時如何 今年雨水多 各宜頻曬㫰

西王母; 傳說上居崑崙山的上古女神 姓楊或侯 名回

 

상당(上堂)하여 가로되 사자(師子)가 빈신(嚬呻)하고 상왕(象王)이 효후(哮吼)한다. 운문(雲門)이 북두(北斗) 속에 몸을 감추는데 백운(白雲)이 무엇으로 인해 수()라고 불러 짓느냐. 삼세제불이 능히 알지 못하거늘 이노백고(狸奴白牯)는 도리어 지유(知有)한다. 차도(且道)하라, 무엇이 이 그가 지유하는 일인가. 비가 배꽃을 때리니 나비(峽蝶)가 날고 바람이 버들개지(柳絮)를 부니 모구(毛毬)가 달린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아 바로 위(直上)를 가리키며 가로되 이러한 때 교시가(憍尸迦; 帝釋天)의 각근(脚跟; 발꿈치)을 자파(刺破)한다. 한 번 치고(卓一下) 가로되 이러한 때 염라왕(閻羅王)의 정골(頂骨)을 쳐서 부순다(卓碎). 이에 동반(東畔)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러한 때 동해의 이어(鯉魚; 잉어)의 눈동자를 천과(穿過)한다. 서반(西畔)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러한 때 서왕모(西王母)의 콧구멍을 색각(塞却)한다. 차도(且道)하라, 모두 이러하지 않을 때 어떠한가. 금년에 빗물이 많으니 각자 의당 자주 쇄랑(曬㫰; 젖은 것을 볕에 말림)하라.

西王母; 전설상 곤륜산에 거주한다는 상고의 여신이니 성은 양() 혹은 후()며 이름은 회().

 

宣和改元 下詔改僧爲德士 上堂 祖意西來事 今朝特地新 昔爲比丘相 今作老君形 鶴氅披銀褐 頭包蕉葉巾 林泉無事客 兩度受君恩 所以道 欲識佛性義 當觀時節因緣 且道卽今是甚麽時節 毗盧遮那 頂戴寶冠 爲顯眞中有俗 文殊老叟 身披鶴氅 且要俯順時宜 一人旣爾 衆人亦然 大家成立叢林 喜得羣僊聚會 共酌迷僊酎 同唱步虛詞 或看靈寶度人經 或說長生不死藥 琴彈月下 指端發太古之音 棊布軒前 妙著出神機之外 進一步便到大羅天上 退一步却入九幽城中 祇如不進不退一句 又作麽生道 直饒羽化三淸路 終是輪迴一幻身

鶴氅; 鳥羽制成的裘 用作外套 又指道袍

步虛; 道士在醮壇上諷誦詞章采用的曲調 傳說其旋律宛如衆仙飄渺步行虛空 故得名步虛聲 [百度百科]

靈寶度人經; 全稱太上洞玄靈寶無量度人上品妙經 是一部包含象數易學內容的道敎神學作品 共六十一卷 卷一爲本經 餘卷爲敷衍經文 作者不詳 [百度百科]

大羅天; 佛祖統紀四十三 凡釋道二家之言天 名可不同而體不可不同也 如來聖人如實知見三界 不可謂不盡也 而道家諸書淺繆無識 故名與體皆不同 如度人經諸道書 或云三十六天 謂欲界六天色界十八天無色界四天 此二十八爲三界內有生死 其上更有四梵天爲三界外 斷生死一災 又其上有三淸天 最上爲大羅天

九幽; 指地底最深幽暗之處

羽化; 羽化登仙

三淸; 道敎三淸大殿中 通常供奉著神態莊嚴的三位尊神 這就是道敎的最高神三清 卽玉淸元始天尊 上淸靈寶天尊 太淸道德天尊 [百度百科]

 

선화(宣和) 개원(改元; 1119) 하조(下詔)하여 승()을 고쳐 덕사(德士)라 했다. 상당(上堂) 조의(祖意)의 서래사(西來事)가 금조(今朝)에 특지(特地) 새롭다. 지난날() 비구(比丘)의 형상(形相; )이 되었다가 여금에 노군(老君; 老子)의 형상()을 지었다. 학창(鶴氅)에 은갈(銀褐; 은색 베옷)을 입고() 머리는 초엽(蕉葉; 芭蕉의 잎)의 두건(頭巾)으로 쌌다(). 임천(林泉)의 무사객(無事客)이 두 차례(兩度) 군왕(君王)의 은혜를 받았다. 소이로 말하되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관()하라. 차도(且道)하라, 즉금은 이 어떤 시절인가. 비로자나(毗盧遮那)가 정수리에 보관(寶冠)을 이었으니() 진중(眞中)에 속()이 있음을 나타냄이며() 문수노수(文殊老叟; 문수 노인)가 몸에 학창(鶴氅)을 입었으니 다만() 요컨대 시의(時宜)에 부순(俯順)한다. 한 사람이 이미 이러하니() 뭇 사람도 또한 그러하다. 대가(大家; 대중)가 총림을 성립했고 기쁘게 뭇() 선인(仙人; )이 취회(聚會)함을 얻었다. 함께() 미선주(迷僊酎; 미혹한 신선의 술)를 따르고() 함께() 보허사(步虛)를 창()하면서 혹 영보도인경(靈寶度人經)을 간()하고 혹 장생불사약(長生不死藥)을 설한다. 거문고를 달 아래 퉁기며 손가락 끝(指端)에 태고(太古)의 음()을 발()하고 바둑()을 집() 앞에 펼쳐() 묘착(妙著)으로 신기(神機)의 밖을 벗어난다(). 1()를 전진하면 곧 대라천상(大羅天)에 이르고 1보를 후퇴하면 도리어 구유성중(九幽城中)에 들어간다. 지여(祇如) 부진불퇴(不進不退)하는 1구를 또 어떻게 말하겠는가. 직요(直饒) 삼청로(三淸)에 우화(羽化)했더라도 마침내 이 윤회의 한 환신(幻身)이다.

鶴氅; 새털로 제작해 이룬 갖옷. 외투로 지어 씀. 또 도포(道袍)를 가리킴.

步虛; 도사가 초단(醮壇; 醮祀를 행하는 단) 위에서 사장(詞章)을 풍송(諷誦)하며 채용하는 곡조. 전설에 그 선율은 완연히 중선(衆仙)이 표묘(飄渺; 縹緲와 같음. 어렴풋함)하며 허공을 보행함과 같은지라 고로 보허성(步虛聲)이란 이름을 얻음 [백도백과].

靈寶度人經; 전칭이 태상동현영보무량도인상품묘경이니 이것은 1부의 상수(象數)와 역학(易學)의 내용을 포함한 도교의 신학(神學) 작품. 공히 61. 1은 본경이 되고 나머지 권은 경문을 부연(敷衍)한 것. 작자는 상세하지 않음 [백도백과].

大羅天; 불조통기43. 무릇 석()ㆍ도() 2가에서 말하는 천은 이름은 가히 같지 않지만 체는 가히 같지 아니하지 않다. 여래는 성인이니 삼계를 여실하게 보고 아는지라 가히 다하지 아니하다고 이르지 못하지만 도가의 제서는 천무(淺繆; 천박하고 엉클어짐)하면서 무식한지라 고로 이름과 체가 모두 같지 못하다. 예컨대() 도인경(度人經)과 여러 도서(道書)에 혹은 이르기를 36천이라 했으니 이르자면 욕계 6천ㆍ색계 18천ㆍ무색계 4, 283계 안이 되고 생사가 있으며 그 위에 다시 4범천이 있어 3계 밖이 되고 생사의 1()를 끊으며 또 그 위에 3청천(淸天)이 있고 최상이 대라천(大羅天)이 된다.

九幽; 땅이 낮아 가장 깊고 유암(幽暗)한 곳을 가리킴.

羽化;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三淸; 도교 삼청대전(三淸大殿) 가운데 통상(通常) 신태(神態)가 장엄한 3()의 존신(尊神)을 공봉(供奉). 이것이 곧 이 도교의 최고의 신 삼청이니 곧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ㆍ상청영보천존(上淸靈寶天尊)ㆍ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백도백과].

 

二年九月 復僧 上堂 不挂田衣羽衣 老君形相頗相宜 一年半內閑思想 大底興衰各有時 我佛如來預讖法之有難 敎中明載 無不委知 較量年代 正在于茲 魔得其便 惑亂正宗 僧改俗形 佛更名字 妄生邪解 刪削經文 鐃鈸停音 鉢盂添足 多般矯詐 欺罔聖君 賴我皇帝陛下 聖德聖明 不忘付囑 不廢其敎 特賜宸章 頒行天下 仍許僧尼 重新披削 實謂寒灰再焰 枯木重榮 不離俗形而作僧形 不出魔界而入佛界 重鳴法皷 再整頹綱 迷僊酎變爲甘露瓊漿 步虛詞飜作還鄕曲子 放下銀木簡 拈起尼師壇 昨朝稽首擎拳 今日和南不審 祇改舊時相 不改舊時人 敢問大衆 舊時人是一箇 是兩箇 良久曰 秋風也解嫌狼籍 吹盡當年道敎灰 建炎三年春 示衆 擧臨濟入滅囑三聖因緣 師曰 正法眼藏瞎驢滅 臨濟何曾有是說 今古時人皆妄傳 不信但看後三月 至閏三月 賊鍾相叛 其徒欲擧師南奔者 師曰 學道所以了生死 何避之有 賊至 師曰 速見殺 以快汝心 賊卽擧槊殘之 血皆白乳 賊駭 引席覆之而去

田衣; 袈裟之異名 以袈裟割截作田畔之相也

羽衣; 以羽毛織成的衣服 常稱道士或神仙所著衣爲羽衣

瓊漿; 傳說中神仙飮的仙水 代指好酒

尼師壇; <> niṣīdana niṣada na 又作尼師但那 譯言坐具 一曰隨坐衣 亦爲臥具 長四廣三 坐臥時 敷地護身 又布於臥具上護臥具之具也 以爲禮拜之具者謬也 [寄歸傳二 行事鈔下一 慧琳音義一]

道敎; 佛陀所說之敎 謂之道敎 指佛道佛敎而言 增壹阿含經三 善分別義 敷演道敎 所謂大迦旃延比丘是 法華經五安樂行品 晝夜常說 無上道敎 以老莊思想爲中心 加上神仙信仰 通俗之民間信仰 復受儒家與佛敎影響而形成之宗敎 佛說四十二章經 題焚經臺詩 唐太宗文皇帝製 門徑蕭蕭長綠苔 一回登此一徘徊 靑牛謾說函關去 白馬親從印土來 確定是非憑烈焰 要分眞僞築高臺 春風也解嫌狼藉 吹盡當年道敎灰

鍾相; 紹興五年(1135) 洞庭湖賊 鍾相作亂 傷殘人民 得張俊官兵 鍾相敗死 不數日客商來往 居民耕植 鍾相 號天皇大王 [禪林寶訓音義] 禪林寶訓 建炎己酉(1129)上巳日 鍾相叛於澧陽 文殊導禪師厄於難

 

2(1120) 9월 복승(復僧)했다. 상당(上堂) 전의(田衣)를 걸치지 않고 우의(羽衣)를 입었으니()/ 노군(老君)의 형상이 자못 상의(相宜)하다/ 1년 반 안에 한가히 사상(思想)하니/ 대저(大底; 대개) 흥쇠(興衰)는 각기 시절이 있다. 우리 불여래(佛如來)가 불법의 유난(有難)을 예참(預讖)했으니 교중(敎中)에 분명히 실렸고 자세히() 알지 못함이 없으며 연대(年代)를 교량(較量)하매 바로() 여기()에 있다. ()가 그 편의를 얻어 정종(正宗)을 혹란(惑亂)하여 승()을 속형(俗形)으로 고치고 불()을 명자(名字)를 바꾸고(大覺金仙으로 바꾸었음) 허망하게 사해(邪解)를 내고 경문(經文)을 산삭(刪削)하고 요발(鐃鈸; 바라)은 음을 멈추고(停音) 발우에 발을 더했다(添足). 다반(多般)의 교사(矯詐; 속이거나 기만함)로 성군(聖君)을 기망(欺罔; 속여 넘김)했지만 다행히() 우리의 황제폐하가 성덕(聖德)과 성명(聖明)으로 부촉을 잊지 않아 그 교()를 폐()하지 않고 특별히 신장(宸章; 帝王의 문장)을 하사하여 천하에 반행(頒行)하시어 그대로() 승니(僧尼)를 허락하고 거듭 새롭게 피삭(披削)하게 하셨다. 실로 이르나니 한회(寒灰)가 재염(再焰)하고 고목(枯木)이 중영(重榮)하여 속형(俗形)을 여의지 않으면서 승형(僧形)을 짓고 마계(魔界)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불계(佛界)에 들었다. 법고(法皷)를 중명(重鳴)하고 퇴강(頹綱)을 재정(再整)하니 미선주(迷僊酎)가 변해 감로와 경장(瓊漿)이 되고 보허사(步虛詞)가 도리어() 환향곡자(還鄕曲子)가 되었다. 은목간(銀木簡)을 방하(放下)하고 니사단(尼師壇)을 염기(拈起)하고 작조(昨朝)에 계수(稽首)하며 경권(擎拳)했다가 금일 화남(和南)하며 불심(不審)이라 한다. 다만 구시(舊時)의 상()을 고쳤고 구시의 인()을 고치지 않았다. 감히 대중에게 묻노니 구시인(舊時人)이 이 1개인가 이 두 개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추풍(秋風)도 또한 낭자(狼籍; 狼藉와 같음)를 싫어할 줄 알아 당년(當年)의 도교(道敎)의 회(; )를 불어 없앴다. 건염(建炎) 3(1129) 봄 시중(示衆) 임제가 입멸하면서 삼성(三聖)에게 부촉한 인연을 들고 사왈 정법안장을 할려(瞎驢)가 멸했다 하니/ 임제가 어찌 일찍이 이 설()이 있었겠는가/ 금고(今古)에 시인(時人)이 모두 허망하게 전하나니/ 믿지 못하겠거든 단지 후() 3월을 보아라. 3월에 이르러 도적 종상(鍾相)이 모반(謀叛)했다. 그 문도(門徒)에 스님을 받들고 남분(南奔)하려는 자가 있었다. 사왈 학도(學道)는 생사를 요득(了得; )하는 소이(所以)이거늘 무슨 도피가 있으리오. 도적이 이르자 사왈 속히 죽임을 보여(見殺) 너의 마음을 쾌()하게 하라. 도적이 곧 삭(; )을 들어 해쳤다(殘之). 피가 모두 백유(白乳)였다. 도적이 놀랐고 돗자리를 당겨 그것을 덮고 떠났다.

田衣; 가사의 다른 이름. 가사를 할절(割截)하여 전반(田畔; 논두렁)의 형상(形相)으로 지음.

羽衣; 우모(羽毛)로 짜 이룬 의복이니 늘 도사 혹 신선이 입는 바의 옷을 우의로 호칭했음.

瓊漿; 전설 중 신선이 마시는 물. 좋은 술을 대지(代指).

尼師壇; <> niṣīdana niṣadana. 또 니사단나(尼師但那)로 지음. 번역해 말하면 좌구(坐具)니 한편으론 가로되 수좌의(隨坐衣)며 또 와구가 됨. 길이가 4며 너비가 3이니 앉고 누울 때 땅에 펴서 몸을 보호함. 또 와구 위에 펴서 와구를 보호하는 도구임. 예배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오류임 [기귀전2. 행사초하1. 혜림음의1].

道敎; 불타가 설한 바의 교를 일러 도교라 함. 불도ㆍ불교를 가리켜 말함. 증일아함경3. 뜻을 잘 분별하여 도교(道敎)를 부연함은 이른 바 대가전연비구가 이것이다. 법화경5 안락행품. 주야로 늘 위없는 도교(道敎)를 설하다. 노장사상을 중심으로 삼고 위에 신선신앙을 가한 통속의 민간신앙이며 다시 유가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종교. 불설사십이장경. 제분경대시(題焚經臺詩; 분경대를 한 시) 당태종 문황제가 지었음. 문 앞 길은 소소하고 푸른 이끼 자라나니/ 1회 여기에 오르면 1회 배회한다/ 청우는 도연히(; 과 통함) 함관(函關)으로 갔다고 말하고/ 백마는 친히 인토로부터 왔다/ 시비를 확정함은 열염(烈焰)에 의빙함이니/ 진위를 분별코자 하여 고대(高臺)를 쌓았다/ 춘풍도 또한 낭자(狼藉)함을 싫어할 줄 알아/ 당년의 도교(道敎)의 재를 불어 없앴다.

鍾相; 소흥 5(1135) 동정호(洞庭湖) 도적 종상(鍾相)이 작란(作亂)하여 인민을 상잔(傷殘; 해침)했는데 장준(張俊)의 관병을 얻자 종상은 패사(敗死)하고 며칠도 되지 않아 객상(來往)이 내왕했고 거민(居民)이 경식(耕植)했음. 종상은 호가 천황대왕 [선림보훈음의]. 선림보훈. 건염 기유(1129) 상사일(上巳日; 33) 종상(鍾相)이 예양에서 반란했다. 문수도선사가 재난에 액()을 당했다.

 

韶州南華知昺禪師

蜀之永康人也 上堂 此事最希奇 不礙當頭說 東鄰田舍翁 隨例得一橛 非唯貫聲色 亦乃應時節 若問是何宗 八字不著人 擊禪牀 下座 上堂 日日說時時擧 似地擎山爭幾許 隴西鸚鵡得人憐 大都祇爲能言語 休思惟帶伴侶 智者聊聞猛提取 更有一般也大奇 猫兒偏解捉老鼠 上堂 以拄杖向空中攪曰 攪長河爲酥酪 鰕蟹猶自眼搭眵 卓一下曰 變大地作黃金 窮漢依前赤骨力 爲復自家無分 爲復不肯承當 可中有箇漢荷負得行 多少人失錢遭罪 再卓一下曰 還會麽 寶山到也須開眼 勿使忙忙空手回 上堂 春光爛熳華爭發 子規啼落西山月 僑梵鉢提長吐舌 底事分明向誰說 嗄 上堂 迷不自迷 對悟立迷 悟不自悟 因迷說悟 所以悟爲迷之體 迷爲悟之用 迷悟兩無從 箇中無別共 無別共 撥不動 祖師不將來 鼻孔千斤重

眼搭眵; 原指眼中粘著眼屎之意 禪林中 轉指執著己見 不離小見

 

소주(韶州) 남화(南華) 지병선사(知昺禪師)

()의 영강(永康) 사람이다. 상당(上堂) 차사(此事)는 가장 희기(希奇)하나니 당두(當頭; 當面. 當下)에 설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동린(東鄰)의 전사옹(田舍翁)도 수례(隨例; 慣例를 따름)하여 1()을 얻었다. 성색(聲色)을 꿸() 뿐만 아니라 또한 시절에 응한다. 만약 이 무슨 종()이냐고 묻는다면 팔자(八字)도 사람에게 붙지() 않는다.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날마다 설하고 시시(時時)로 거()하지만/ 땅이 산을 받듦과 같거늘 얼마(幾許; 는 조사)를 다투겠는가/ 농서(隴西)의 앵무(鸚鵡)가 사람의 연민(憐愍; )을 얻나니/ 대도(大都; 대개) 다만 능히 언어(言語)하기 때문이다(). 사유(思惟)를 그만두고 반려(伴侶)를 대동(帶同; )할지니 지자(智者)는 애오라지 들으면 맹렬히 제취(提取)한다. 다시 일반(一般)이 있어 또한 크게 기이하나니 묘아(猫兒)는 특별히() 노서(老鼠)를 잡을 줄 안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공중을 향해 휘젓고() 가로되 장하(長河)를 휘저어 소락(酥酪)으로 삼아도 하해(; 새우와 게)는 오히려 스스로 안탑치(眼搭眵). 한 번 치고() 가로되 대지를 변화해 황금으로 만들어도 궁한(窮漢; 빈궁한 자)은 의전(依前)히 적골력(赤骨力)이다. 다시 자가(自家)가 무분(無分; 분한이 없음)이 되는가, 다시 승당(承當)을 수긍하지 않음이 되는가. 가중(可中; 當中)에 개한(箇漢)이 있어 하부(荷負)하여 행함을 얻거늘 다소인(多少人)은 실전조죄(失錢遭罪)한다. 다시 한 번 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보산(寶山)에 이르렀으니 개안(開眼)함을 쓰고() 망망(忙忙)히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춘광(春光)이 난만(爛熳)하여 꽃이 다투어 피고()/ 자규(子規)는 울어 서산의 달을 떨어뜨린다/ 교범발제(僑梵鉢提; 憍梵鉢提와 같음)는 길게 토설(吐舌)하나니/ 저사(底事; 此事)가 분명하지만 누구를 향해 설할까. (). 상당(上堂) ()가 스스로 미()가 아니라 오()를 상대해 미를 세웠다. 오가 스스로 오가 아니라 미로 인해 오를 설한다. 소이로 오는 미의 체()가 되고 미는 오의 용()이 된다. 미오(迷悟) 둘이 종()이 없고 개중(箇中)에 별공(別共; )도 없다. 별공(別共)이 없으니 헤쳐도() 부동(不動)한다. 조사가 가져오지 않았고 비공(鼻孔)이 천 근의 무게다.

眼搭眵; 원래 안중에 붙은 안시(眼屎; 눈꼽)의 뜻을 가리킴. 선림 중에선 전()하여 자기의 견해에 집착하여 소견(小見)을 여의지 않음을 가리킴.

 

潭州龍牙智才禪師

舒州施氏子 早服勤於佛鑑法席 而局務不辭難 名已聞於叢林 及遊方迫暮至黃龍 適死心在三門 問其所從來 旣稱名 則知爲舒州太平才莊主矣 翌日入室 死心問曰 會得最初句 便會末後句 會得末後句 便會最初句 最初末後 拈放一邊 百丈野狐話作麽生會 師曰 入戶已知來見解 何須更擧轢中泥 心曰 新長老死在上座手裏也 師曰 語言雖有異 至理且無差 心曰 如何是無差底事 師曰 不扣黃龍角 焉知頷下珠 心便打 初住嶽麓 開堂日 僧問 德山棒 臨濟喝 今日請師爲拈掇 師曰 蘇嚕蘇嚕 曰 蘇嚕蘇嚕 還有西來意也無 師曰 蘇嚕蘇嚕 由是叢林呼爲才蘇嚕 後遷龍牙

迫暮; 薄暮 傍晚.

 

담주(潭州) 용아(龍牙) 지재선사(智才禪師)

서주(舒州) 시씨(施氏)의 아들이다. 일찍 불감(佛鑑)의 법석에 복근(服勤)하면서 국무(局務)에 어려움을 사양(辭讓; )하지 않았고 이름이 이미 총림에 알려졌다(). 및 유방(遊方)하다가 박모(迫暮)에 황룡(黃龍)에 이르렀다. 마침() 사심(死心; 悟新)이 삼문(三門)에 있다가 그에게 좇아온 곳을 물었다. 이미 이름을 일컫자 곧 서주(舒州) 태평(太平)의 재장주(才莊主)가 됨을 알았다. 익일(翌日) 입실하자 사심이 문왈(問曰) 최초구(最初句)를 회득(會得)하면 바로 말후구(末後句)를 이회(理會)하고 말후구를 회득하면 바로 최초구를 이회한다. 최초와 말후는 집어다 일변(一邊)에 방치하고 백장의 야호화(野狐話)를 어떻게 이회하는가. 사왈 입호(入戶)하면 이미 온 견해를 알거늘 어찌 다시 역중(轢中)의 진흙을 거()함을 쓰겠습니까(). 심왈(心曰) 신장로(新長老)가 상좌의 손안에 죽어 있다. 사왈 어언(語言)은 비록 다름이 있더라도 지리(至理)는 또 차이가 없습니다. 심왈 무엇이 이 차이가 없는 일인가. 사왈 황룡의 뿔을 두드리지() 않으면 어찌 함하주(頷下珠)를 알겠습니까. 사심이 바로 때렸다. 처음 악록(嶽麓)에 주()했다. 개당일(開堂日) 승문 덕산방과 임제할을 금일 스님에게 청하오니 염철(拈掇; 擧說)하십시오. 사왈 소로소로(蘇嚕蘇嚕). 가로되 소로소로에 도리어 서래의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소로소로. 이로 말미암아 총림에서 호칭(呼稱)해 재소로(才蘇嚕)라 했다. 후에 용아(龍牙)로 옮겼다.

迫暮; 박모(薄暮; 黃昏). 방만(傍晚; 저녁 무렵).

 

因欽宗皇帝登位 衆官請上堂 祝聖已 就座 拈拄杖卓一下曰 朝奉疏中道 本來奧境 諸佛妙場 適來拄杖子已爲諸人說了也 於斯悟去 理無不顯 事無不周 如或未然 不免別通箇消息 舜日重明四海淸 滿天和氣樂昇平 延祥拄杖生歡喜 擲地山呼萬歲聲 擲拄杖 下座 上堂 彈指一下曰 彈指圓成八萬門 刹那滅却三祇劫 若也見得行得 健卽經行困卽歇 若也不會 兩箇鸕鷀扛箇鼈 上堂 擧死心和尙小參曰 若論此事 如人家有三子 第一子聰明智慧 孝養父母 接待往來 主掌家業 第二子兇頑狡猾 貪婬嗜酒 倒街臥巷 破壞家業 第三子盲聾瘖瘂 菽麥不分 是事不能 祇會喫飯 三人中黃龍要選一人用 更有四句 死中有活 活中有死 死中常死 活中常活 將此四句 驗天下衲僧 師曰 喚甚麽作四句 三人姓甚名誰 若也識得 與黃龍把手竝行 更無纖毫間隔 如或未然 不免借水獻華去也 三人共體用非用 四句同音空不空 欲識三人幷四句 金烏初出一團紅

朝奉; 事物紀原四曰 朝奉 宋朝會要曰 太平興國元年(976) 詔改唐朝議大夫爲朝奉大夫

 

흠종황제(欽宗皇帝)가 등위(登位)함으로 인해 뭇 관원(官員)의 청으로 상당(上堂)했다. 축성(祝聖)하고 나서 법좌로 나아가 주장자를 집어 한 번 치고() 가로되 조봉(朝奉)의 소중(疏中)에 말하되 본래 오경(奧境)은 제불의 묘장(妙場)이다. 아까 주장자가 이미 제인을 위해 설해 마쳤다. 이에서(於斯) 깨달아 가면 이()가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사()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려니와 혹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따로 저() 소식을 통함을 면하지 못한다. 순일(舜日)이 거듭 밝으니 사해(四海)가 맑고()/ 하늘에 가득한 화기(和氣)에 승평(昇平)을 즐긴다/ 상서(祥瑞)를 끌어들이는() 주장자가 환희를 내고/ 땅에서 떨쳐 일어나는(擲地) 산호(山呼)의 만세(萬歲) 소리이다.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손가락을 한 번 퉁기고() 가로되 탄지(彈指)하매 팔만문(八萬門)을 원성(圓成)하고 찰나에 삼기겁(三祇劫)을 멸각(滅却)한다. 만약에 견득(見得)하고 행득(行得)한다면 건강(健康; )하매 곧 경행(經行)하고 피곤하면 곧 쉬려니와() 만약에 알지() 못한다면 두 개의 가마우지(鸕鷀)가 저() 자라를 마주 들 것이다(). 상당(上堂) ()하다. 사심화상(死心和尙; 悟新)이 소참(小參)에 가로되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예컨대() 인가(人家)3()가 있는데 제1(第一子)는 총명하고 지혜롭고 부모를 효양(孝養)하고 왕래(往來)를 접대(接待)하면서 가업을 주장(主掌)한다. 2자는 흉완(兇頑)하고 교활(狡猾)하고 탐음(貪婬)하고 기주(嗜酒)하고 도가와항(倒街臥巷; 거리에 넘어지고 드러눕다)하면서 가업을 파괴한다. 3자는 맹롱음아(盲聾瘖瘂;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며 숙맥(菽麥)을 분간하지 못하고 시사(是事)에 능하지 못하고 다만 끽반(喫飯)할 줄만 안다. 3인 중에서 황룡(黃龍; 悟新)1인을 선택해 쓰고자 한다. 다시 4구가 있으니 사중(死中)에 유활(有活)ㆍ활중(活中)에 유사(有死)ㆍ사중(死中)에 상사(常死)ㆍ활중(活中)에 상활(常活)이다. 4구를 가지고 천하 납승을 감험(勘驗; )한다. 사왈 무엇을 일러 4구라 하느냐, 3()의 성()이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인가(). 만약에 식득(識得)한다면 황룡과 손잡고 병행(竝行)하되 다시 섬호(纖毫)의 간격(間隔)이 없으려니와 혹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차수헌화(借水獻華)하여 감을 면하지 못한다. 3인이 공체(共體)면서 용()이 용()이 아니며/ 4구가 동음(同音)이면서 공()이 공()이 아니다/ 3인과 아울러() 4구를 알고 싶다면/ 금오(金烏; )가 초출(初出)하매 한 덩이()의 붉음이다().

朝奉; 사물기원4에 가로되 조봉(朝奉) 송조회요에 가로되 태평흥국 원년(976) 조칙으로 당() 조의대부(議大夫)를 고쳐 조봉대부(朝奉大夫)라 했다.

 

師居龍牙十三載 以淸苦蒞衆 衲子敬畏 大帥席公震遷住雲溪 經四稔 紹興戊午八月望 俄集衆付寺事 仍書偈曰 戊午中秋之日 出家住持事畢 臨行自己尙無 有甚虛空可覓 其垂訓如常 二十三日 再集衆 示問曰 涅槃生死 盡是空華 佛及衆生 竝爲增語 汝等諸人 合作麽生 衆皆下語不契 師喝曰 苦苦 復曰 白雲湧地 明月當天 言訖囅然而逝 火浴獲設利五色 併靈骨塔於寺之西北隅

 

스님이 용아(龍牙)에 거주한 13()에 청고(淸苦)로써 대중에 임했고() 납자가 경외(敬畏)했다. 대수(大帥; 主將) 석공(席公) ()이 운계(雲溪)로 옮겨 주()하게 했다. 4(; )을 경과한 소흥(紹興) 무오(戊午; 1138) 8월 보름() 갑자기() 대중을 소집(召集; )해 사사(寺事)를 부촉하고 인하여() 서게(書偈)해 가로되 무오(戊午) 중추(中秋)의 날에/ 출가하여 주지(住持)한 일을 마친다()/ 임행(臨行)에 자기도 오히려 없거늘/ 무슨() 허공을 가히 찾음이 있겠는가. 그 수훈(垂訓)이 여상(如常)했다. 23일 다시() 대중을 소집하여 물음을 보여 가로되 열반과 생사가 모두 이 공화(空華)며 부처 및 중생이 모두() 증어(增語)가 된다. 너희 등 제인은 합당히 어떠한가. 대중이 모두 하어(下語)했으나 계합하지 못했다. 스님이 창왈(喝曰) (), (). 다시 가로되 백운이 땅에서 솟아나고() 명월이 하늘에 당했다. 말을 마치자 천연(囅然)히 서거했다. 화욕(火浴; 火葬)하여 설리(設利)를 획득했는데 오색이었고 영골(靈骨)과 함께() 사원의 서북 모퉁이에 탑을 세웠다.

 

明州蓬萊卿禪師

上堂 有句無句 如藤倚樹 且任諸方點頭 及乎樹倒藤枯 上無衝天之計 下無入地之謀 靈利漢這裏著得一隻眼 便見七縱八橫 擧拂子曰 看看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上堂 杜䳌聲裏春光暮 滿地落華留不住 瑠璃殿上絕行蹤 誰人解插無根樹 擧拄杖曰 這箇是無根底 且道解開華也無 良久曰 祇因連夜雨 又過一年春 上堂 擧法眼道 識得凳子 周帀有餘 雲門道 識得凳子 天地懸殊 師曰 此二老人 一人向高高山頂立 一人向深深海底行 然雖如是 一不是二不成 落華流水裏啼鸎 閑亭雨歇夜將半 片月還從海底生

 

명주(明州) 봉래경(蓬萊卿) 선사

상당(上堂)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이 나무에 기댄 것과 같음은 다만() 제방(諸方)의 점두(點頭)에 일임하거니와 나무가 넘어지고 등()이 마름에 이르러선(及乎) 위로는 하늘을 찌를() 계교(計較; )가 없고 아래론 땅에 들어갈 모략(謀略; )이 없다. 영리한(靈利漢)이 이 속에 일척안(一隻眼)을 붙인다면(著得) 바로 칠종팔횡(七縱八橫)함을 보리라. 불자를 들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일곡양곡(一曲兩曲)을 아는 사람이 없고 비가 야당(夜塘)을 지나니 추수(秋水)가 깊다. 상당(上堂) 두견(杜䳌) 소리에 춘광(春光)이 저물었고/ 땅에 가득한 낙화(落華)는 체류해 머물지 않는다/ 유리전상(瑠璃殿上)에 행종(行蹤)이 끊겼거늘/ 어떤 사람(誰人)이 무근수(無根樹)를 꽂을 줄 알겠는가.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뿌리가 없는 것(無根底)이다. 차도(且道)하라, 개화(開華)할 줄 아느냐() 또는 아니냐. 양구하고 가로되 다만() 연야(連夜)의 비로 인해 또 1년의 봄이 지나간다. 상당(上堂) ()하다. 법안(法眼)이 말하되 등자(凳子)를 식득(識得)하면 주잡(周帀)하고도 나머지가 있다. 운문이 말하되 등자를 식득하면 천지현수(天地懸殊). 사왈 이 두 노인에 1인은 고고(高高)한 산정(山頂)을 향해 섰고 1인은 심심(深深)한 해저(海底)를 향해 다닌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하나는 이것이 아니며 둘은 이루지 못하나니/ 낙화유수 속에 지저귀는 꾀꼬리다/ 한정(閑亭)에 비가 그치고() 밤은 거의() ()인데/ 편월(片月)이 도리어 해저로 좇아 난다().

 

安吉州何山佛燈守珣禪師

郡之施氏子 參廣鑑瑛禪師 不契 遂造太平 隨衆咨請 邈無所入 乃封其衾曰 此生若不徹去 誓不展此 於是晝坐宵立 如喪考妣 逾七七日 忽佛鑑上堂曰 森羅及萬象 一法之所印 師聞頓悟 往見鑑 鑑曰 可惜一顆明珠 被這風顚漢拾得 乃詰之曰 靈雲道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如何是他不疑處 師曰 莫道靈雲不疑 只今覓箇疑處了不可得 鑑曰 玄沙道 諦當甚諦當 敢保老兄未徹在 那裏是他未徹處 師曰 深知和尙老婆心切 鑑然之 師拜起 呈偈曰 終日看天不擧頭 桃華爛熳始擡眸 饒君更有遮天網 透得牢關卽便休 鑑屬令護持 是夕 厲聲謂衆曰 這回珣上座穩睡去也 圓悟聞得 疑其未然 乃曰 我須勘過始得 遂令人召至 因與遊山 偶到一水潭 悟推師入水 遽問曰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潭深魚聚 悟曰 見後如何 師曰 樹高招風 悟曰 見與未見時如何 師曰 伸脚在縮脚裏 悟大稱之 鑑移蔣山 命分座說法 出住廬陵之禾山 退藏故里 道俗迎居天聖 後徙何山及天寧

 

안길주(安吉州) 하산(何山) 불등(佛燈) 수순선사(守珣禪師)

()의 시씨(施氏)의 아들이다. 광감영(廣鑑瑛; 行瑛) 선사를 참()했으나 계합하지 못했다. 드디어 태평(太平)으로 나아가() 대중 따라 자청(咨請)했으나 아득하여() 소입(所入)이 없었다. 이에 그 이불()을 봉()하고 가로되 차생(此生)에 만약 통하지 못한다면(不徹去) 맹서코 이것을 펴지 않겠다. 이에 낮엔 앉고 밤에 서서(晝坐宵立) 고비의 상을 당한 것과 같았는데(如喪考妣) 칠칠일(七七日; 49)을 넘겼다(). 홀연히 불감(佛鑑; 慧懃)이 상당(上堂)해 가로되 삼라 및 만상이 일법(一法)으로 인() 친 바다. 스님이 듣고 돈오(頓悟)했다. 가서 불감을 뵙자 감왈(鑑曰) 가석(可惜)하게도 한 알의 명주(明珠)를 이 풍전한(風顚漢)이 습득함을 입었다. 이에 힐문하여 가로되 영운(靈雲)이 말하되 도화(桃華)를 한 번 본 후로부터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다시 의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그가 의심하지 않은 곳인가. 사왈 영운이 의심하지 않았음을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只今)도 저() 의처(疑處)를 찾으매 마침내() 불가득입니다. 감왈(鑑曰) 현사(玄沙)가 말하되 체당(諦當; 적합)하기는 심히 체당하지만 감히 보증하노니 노형은 미철(未徹)하여 있다. 나리(那裏)가 이 그가 미철(未徹)한 곳인가. 사왈 화상이 노파심이 간절한 줄 깊이 압니다. 불감이 그렇다 하였다(然之). 스님이 예배하고 일어나 정게(呈偈)하여 가로되 종일 하늘을 보면서 머리를 들지 않다가/ 도화(桃華)가 난만(爛熳)하자 비로소() 눈을 들었다(擡眸)/ 가령() 그대에게 다시 차천(遮天)할 그물이 있다면/ 뇌관(牢關)을 투득(透得)하고 곧바로 쉬리라. 불감이 부촉하며 호지(護持)하게 했다. 이날 저녁 여성(厲聲)으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번 회(這回)에 순상좌(珣上座)가 안온하게 수면할 것이다(睡去也). 원오(圓悟)가 듣고서(聞得) 그가 그렇지 않으리라 의심했다. 이에 가로되 내가 꼭 감과(勘過; 는 조사)해야 비로소 옳다. 드디어 사람을 시켜 불러 이르게 했다. 더불어 유산(遊山)함으로 인해 우연히 한 수담(水潭)에 이르렀다. 원오가 스님을 밀어 물에 넣고 급히() 문왈(問曰)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떠한가. 사왈 못이 깊어 고기가 모였습니다. 오왈(悟曰) 뵌 후엔 어떠한가. 사왈 나무가 높아 바람을 부릅니다(). 오왈 뵘과 뵙지 않을 때 어떠한가. 사왈 신각(伸脚)이 축각(縮脚) 속에 있습니다. 원오가 크게 칭찬했다. 불감이 장산(蔣山)으로 옮기자() 명하여 분좌설법(分座說法) 하게 했다. 출세해 여릉(廬陵)의 화산(禾山)에 주()하다가 고리(故里)로 퇴장(退藏)했다. 도속(道俗)이 맞이해 천성(天聖)에 거주하다가 후에 하산(何山) 및 천녕(天寧)으로 옮겼다().

 

上堂 𨍏轢鑽住山斧 佛祖出頭未輕與 縱使醍醐滿世間 你無寶器如何取 阿呵呵 神山打羅 道吾作舞 甜瓜徹蔕甜 苦瓠連根苦 上堂 擧婆子燒庵話 師曰 大凡扶宗立敎 須是其人 你看他婆子 雖是箇女人 宛有丈夫作略 二十年簁油費醬 固是可知 一日向百尺竿頭做箇失落 直得用盡平生腕頭氣力 自非箇俗漢知機 洎乎巧盡拙出 然雖如是 諸人要會麽 雪後始知松柏操 事難方見丈夫心 上堂 如來禪祖師道 切忌將心外邊討 從門所得卽非珍 特地埋藏衣裏寶 禪家流 須及早 撥動祖師關棙 抖擻多年布襖 是非毀譽付之空 竪闊橫長渾恰好 君不見寒山老 終日嬉嬉 長年把掃 人問其中事若何 入荒田不揀 信手拈來草 參 僧問 如何是賓中賓 師曰 客路如天遠 侯門似海深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長因送客處 憶得別家時 曰 如何是主中賓 師曰 相逢不必問前程 曰 如何是主中主 師曰 一朝權祖令 誰是出頭人 曰 賓主已蒙師指示 向上宗乘事若何 師曰 向上問將來 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大海若知足 百川應倒流 僧禮拜 師曰 珣上座三十年學得底

 

상당(上堂) 탁력찬(𨍏轢鑽)과 주산부(住山斧)를 불조가 출두하여 경솔히 주지 않는다. 종사(縱使; 設使) 제호(醍醐)가 세간에 가득하더라도 네가 보기(寶器)가 없다면 어떻게 취하겠는가. 아하하(阿呵呵), 신산(神山; 僧密)은 타라(打羅; 체질)하고 도오(道吾)는 작무(作舞)했다. 단 오이는 꼭지까지 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다. 상당(上堂) 파자소암화(婆子燒庵話)를 거()하고 사왈 대범(大凡) 부종입교(扶宗立敎)함은 모름지기 이는 기인(其人)이라야 한다. 너희가 보아라 저 파자(婆子)는 비록 시개(是箇) 여인이지만 완연히 장부의 작략(作略)이 있다. 20년 동안 사유비장(簁油費醬; 기름을 체질하고 장을 소비하다)한 것은 참으로() 이 가히 알겠으,나 어느 날 백척간두(百尺竿頭)를 향해 저() 실락(失落; 丟失이니 잃어버림)을 지어() 바로() 평생의 완두(腕頭; 팔뚝. )의 기력을 써 없앰을 얻었다. 스스로 저() 속한(俗漢)이 지기(知機)한 게 아니라 거의(洎乎) 교묘가 다해 졸렬이 나왔다(巧盡拙出).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제인이 알고자 하느냐. 설후(雪後)에 비로소 송백(松柏)의 지조(志操)를 알고 일이 어려워야 바야흐로 장부의 마음을 본다. 상당(上堂)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의 도를/ 마음을 가지고 외변(外邊)에서 찾음()을 절기(切忌)한다/ ()으로 좇아 얻은 바는 곧 보배()가 아니며/ 특지(特地) 매장(埋藏)된 의리(衣裏)의 보배()/ 선가류(禪家流)/ 급조(及早; 빨리. 일찍. 일찌감치)를 써라/ 조사의 관려(關棙)를 발동(撥動)하여/ 여러 해의 포오(布襖; 갖옷. 웃옷)를 두수(抖擻; 털다)하라. 시비와 훼예(毀譽)를 공()에 부여(付與)할지니/ 세로는 넓고 가로는 길어야(竪闊橫長) 온통() 흡호(恰好). 그대가 보지 못하는가 한산로(寒山老)는 종일 희희(嬉嬉)하고 장년(長年; 오랜 해)에 파소(把掃)했다. 사람이 기중(其中)의 일이 어떠하냐고 물으면 황전(荒田)에 들어가 가리지() 않고 풀을 손 닿는 대로(信手) 집어 왔다(拈來). ()하라. 승문 무엇이 이 빈중빈(賓中賓)입니까. 사왈 객로(客路)가 하늘 같이 멀고 후문(侯門; 諸侯의 문)은 바다 같이 깊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늘 송객(送客)하던 곳으로 인해 별가(別家; 집을 떠남)할 때를 억득(憶得)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상봉하매 전정(前程)을 물음이 필요하지 않다.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일조(一朝)의 권(; 권세)인 조령(祖令)이거늘 누가 이 출두(出頭)하는 사람인가. 가로되 빈주(賓主)는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만() 향상(向上)의 종승사(宗乘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향상하여 물어 가지고 오너라.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입니까. 사왈 대해가 만약 지족(知足)한다면 백천(百川)이 응당 도류(倒流)하리라. 중이 예배했다. 사왈 순상좌(珣上座)30년 동안 배워 얻은 것이다(學得底).

 

師嘗謂衆曰 兄弟如有省悟處 不拘時節 請來露箇消息 雪夜有僧扣方丈門 師起秉燭 震威喝曰 雪深夜半 求決疑情 因甚麽威儀不具 僧顧眎衣裓 師逐出院 每曰 先師祇年五十九 吾年五十六矣 來日無多 紹興甲寅 解制退天寧之席 謂雙槐居士鄭績曰 十月八日是佛鑑忌 則吾時至矣 乞還鄣南 十月四日 鄭公遣弟僧道如訊之 師曰 汝來正其時也 先一日不著便 後一日蹉過了 吾雖與佛鑑同條生 終不同條死 明早可爲我尋一隻小船子來 如曰 要長者 要高者 師曰 高五尺許 越三日鷄鳴 端坐如平時 侍者請遺偈 師曰 不曾作得 言訖而逝 闍維舌根不壞 郡人陳師顔以寶函藏其家 門弟子奉靈骨 塔于普應院之側

 

스님이 일찍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형제가 성오처(省悟處)가 있을 것 같으면 시절에 구애(拘礙; )되지 말고 청컨대 와서 저() 소식을 드러내어라. 설야(雪夜)에 어떤 중이 방장문(方丈門)을 두드렸다. 스님이 일어나 등불()을 잡고() 위엄을 떨치며(震威) ()하고 가로되 설심(雪深)한 야반에 의정(疑情)을 구결(求決)하려면서 무엇으로 인해 위의(威儀)를 갖추지 않느냐. 중이 의극(衣裓; 옷자락)을 돌아보았다(顧眎). 스님이 사원에서 축출(逐出)했다. 매번 가로되 선사(先師)는 다만() 나이가 59였고 나의 나이는 56이다. 내일(來日)이 많지 않다(無多). 소흥(紹興) 갑인(甲寅; 1134) 해제(解制)하자 천녕지석(天寧之席)에서 물러났다. 쌍괴거사(雙槐居士) 정적(鄭績)에게 일러 가로되 108일은 이 불감(佛鑑)의 기일(忌日; )이다. 곧 나의 시기(時期; )가 이르렀다. 장남(鄣南)으로 귀환함을 구걸했다. 104일 정공(鄭公)이 제승(弟僧) 도여(道如)를 보내 문신(問訊)했다. 사왈 네가 온 게 바로() 기시(其時). 하루 앞(先一日)은 편의를 만나지 못하고(不著便) 하루 뒤(後一日)는 차과(蹉過)했다. 내가 비록 불감(佛鑑)과 더불어 동조생(同條生)이지만 마침내 동조사(同條死)가 아니다. 명일 아침 가히 나를 위해 1()의 작은 배(小船子)를 찾아 오너라. 도여가 가로되 긴 것을 요합니까, 높은 것을 요합니까. 사왈 높이가 5척 가량()이다. 사흘을 넘겨 닭이 울자 단좌(端坐)함이 평시와 같았다. 시자가 유게(遺偈)를 청하자 사왈 일찍이 작게(作得)하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사유(闍維)하매 설근(舌根)이 무너지지 않았다. 군인(郡人) 진사안(陳師顔)이 보함(寶函)으로써 그 집에 소장(所藏; )했다. 문제자(門弟子)가 영골(靈骨)을 받들어 보응원(普應院)의 곁에 탑을 세웠다.

 

隆興府泐潭擇明禪師

上堂 擧趙州訪茱萸探水因緣 師曰 趙老雲收山嶽露 茱萸雨過竹風淸 誰家別舘池塘裏 一對鴛鴦畫不成 又擧德山托鉢話 師曰 從來家富小兒嬌 偏向江頭弄畫橈 引得老爺把不住 又來船上助歌謠 上堂 永嘉道 一月普現一切水 一切水月一月攝 竪起拂子云 看看 千江競注 萬派爭流 若也素善行舟 便諳水脉 可以優游性海 笑傲煙波 其或未然 且歸林下坐 更待月明時

老爺; 父親的尊稱與自稱

把不住; 控制不住(自己或他人)

笑傲; 嬉笑遊玩

 

융흥부(隆興府) 늑담(泐潭) 택명선사(擇明禪師)

상당(上堂) 조주가 수유를 방문하여 탐수한 인연(趙州訪茱萸探水因緣)을 거()했다. 사왈 조로(趙老)는 구름이 걷히매 산악이 드러났고/ 수유(茱萸)는 비가 지나매 죽풍(竹風)이 맑다()/ 뉘집 별관(別舘)의 지당(池塘) 속에/ 일대(一對; 한 쌍)의 원앙(鴛鴦)은 그림을 이루지 못한다. 또 덕산의 탁발화(德山托鉢話)를 거()했다. 사왈 종래로 집이 부유해 소아가 귀엽더니/ 다만() 강두(江頭; 강변)를 향해 화뇨(畫橈)를 희롱했다/ 노야(老爺; 아버지)를 인득(引得)해 잡아도 머물지 않고(把不住)/ 또 선상(船上)에 와서 가요(歌謠)를 도운다. 상당(上堂) 영가(永嘉)가 말하되 일월(一月)이 일체(一切)의 물에 보현(普現)하고 일체의 수월(水月)을 일월(一月)이 거둔다.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보아라, 보아라. 천강(千江)이 경주(競注)하고 만파(萬派)가 쟁류(爭流)한다. 만약에 본디() 행주(行舟; 배를 운행)를 잘한다면() 바로 수맥(水脉)을 알아서() 가이(可以) 성해(性海)에 우유(優游)하고 연파(煙波)를 소오(笑傲)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다만() 임하(林下)로 돌아가 앉아서 다시 달 밝을 때를 기다려라.

老爺; 부친의 존칭과 자칭(自稱).

把不住; 공제(控制; 制御)하여도 머물지 않음(자기 혹 타인).

笑傲; 희소(嬉笑)하면서 유완(遊玩; 노닐며 즐김).

 

台州寶藏本禪師

上堂 淸明已過十餘日 華雨闌珊方寸深 春色惱人眠不得 黃鸝飛過綠楊陰 遂大笑 下座

闌珊; 衰落 凋零 將盡

 

태주(台州) 보장본(寶藏本) 선사

상당(上堂) 청명(淸明)이 이미 지난 지 십여 일에/ 화우(華雨)가 난산(闌珊)하니 방촌(方寸)이 깊다/ 춘색이 사람을 뇌란(惱亂; )해 잠을 얻지 못하는데/ 황리(黃鸝; 누런 꾀꼬리)가 녹양(綠楊)의 그늘을 날아 지나간다. 드디어 크게 웃고 하좌했다.

闌珊; 쇠락(衰落). 시들어 떨어짐. 거의 다함.

 

吉州大中祥符淸海禪師

初見佛鑑 鑑問 三世諸佛 一口呑盡 何處更有衆生可敎化 此理如何 師擬進語 鑑喝之 師忽領旨 述偈曰 實際從來不受塵 箇中無舊亦無新 靑山況是吾家物 不用尋家別問津 鑑曰 放下著 師禮拜而出

 

길주(吉州) 대중상부(大中祥符; 寺名) 청해선사(淸海禪師)

처음 불감(佛鑑)을 뵙자 불감이 묻되 삼세제불을 한입에 삼켜 없앴거늘 어느 곳에 다시 중생이 있어 가히 교화하겠는가. 이 이치가 무엇이냐. 스님이 진어(進語)하려고 하자 불감이 할()했다. 스님이 홀연히 의지(意旨)를 영오(領悟)했다. 술게(述偈)해 가로되 실제(實際)엔 종래로 티끌도 받지 않나니/ 개중(箇中)에 구()도 없고 또한 신()도 없다/ 청산도 하물며 이 오가(吾家)의 물건이므로/ 집을 찾거나 달리 나루()를 물음을 쓰지 않는다. 감왈(鑑曰) 방하착하라. 스님이 예배하고 나갔다.

 

漳州淨衆佛眞了燦禪師

泉南羅氏子 上堂 重陽九日菊華新 一句明明亘古今 楊廣橐駝無覓處 夜來足跡在松陰

 

장주(漳州) 정중(淨衆) 불진(佛眞) 요찬선사(了燦禪師)

천남(泉南) 나씨(羅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중양(重陽) 9일에 국화가 새롭나니/ 1구가 명명(明明)하여 고금에 뻗쳤다/ 양광(楊廣)의 낙타(橐駝)는 찾을 곳이 없더니/ 야래(夜來)에 족적(足跡)이 송음(松陰)에 있더라.

 

隆興府谷山海禪師

上堂 一擧不再說 已落二三 相見不揚眉 飜成造作 設使動絃別曲 告往知來 見鞭影便行 望刹竿回去 脚跟下好與三十棒 那堪更向這裏 撮摩石火 收捉電光 工夫枉用渾閑事 笑倒西來碧眼胡 卓拄杖 下座

 

융흥부(隆興府) 곡산해(谷山海) 선사

상당(上堂) 일거(一擧)하고 재설(再說)하지 않아도 이미 이삼(二三)에 떨어지고 상견하여 양미(揚眉; 눈썹을 치켜뜨다)하지 않아도 도리어() 조작을 이룬다. 설사(設使) 줄을 움직이매 곡조를 분별하고 감을 고하매 옴을 알고 편영(鞭影)을 보고 바로 가고 찰간(刹竿)을 바라보고 돌아가더라도 발꿈치 아래 좋게 30방 주거늘 어찌 다시 이 속을 향해 석화(石火)를 촬마(撮摩)하고 전광(電光)을 수착(收捉)함을 감내하겠는가. 공부(工夫)를 헛되이() 씀은 온통() 한사(閑事)니 서래(西來)의 벽안호(碧眼胡)를 웃겨 넘어뜨린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五燈會元卷第十九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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