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나암수(嬾菴需)

태화당 2026. 1. 31. 09:58

懶菴需和尙 依佛心才 才居大乘 需已首衆挂牌 後問學者卽心卽佛因緣 時玅喜菴于洋嶼 需之友號光狀元者 與需書云 菴主手段與諸方別 可來此少款 需咲而不答 光以計邀師飯 需往赴之 及門 會玅喜開室 需隨衆 喜問曰 僧問馬祖 如何是佛 祖云 卽心卽佛 作麽生 需下語 喜詬之曰 汝見解如此 敢妄爲人師也 鳴鼓普請 揭其平生所得力處 排撝邪解 需淚交頤 不敢仰視 默計之曰 我之所得 旣所排撝 西來不傳之旨 豈止如此耶 遂歸心弟子之列 一日 喜問曰 內不放出 外不放入 正當恁麽時如何 需擬答 喜拈竹篦劈脊連打數下 需豁然大悟 曰 和尙已多了也 喜又打一下 需作禮 喜咲曰 今日方知不汝欺 遂以偈印曰 身心一如 身外無餘 這瞎驢 付與鼎需 自是名振叢林 出世住泉之延福 遷西禪 甞示衆云 太虛挂劒 用顯吾宗 據坐禪威 如何近傍 縱具地回天轉 電卷星飛底手段 要且不堪勍敵 而今莫有別休咎底麽 出來相見 稍涉遲回 一搥直敎粉碎 喝一喝 下座 又至節示衆云 二十五日已前 羣陰消伏 泥龍閟戶 二十五日已後 一陽來復 鐵樹開華 正當二十五日 塵中醉客 騎驢騎馬 前街後巷 遞相慶賀 物外閑人 衲被蒙頭 圍爐打坐 風蕭蕭 雨蕭蕭 冷湫湫 誰管你張先生 李道士 胡達磨 又示衆云 橫按鏌鎁 虛張意氣 穿開碧落 徒費精神 直饒不動神鋒 坐致太平 堯舜之君 猶有化在

因緣; ()一物之生 親與强力者爲因 疏添弱力者爲緣 例如種子爲因 雨露農夫等爲緣 此因緣和合而生米 ()禪家把機語或示機應機的行爲動作等 稱爲因緣 意同公案 此指二

光狀元; 彌光(?-1155) 宋代楊岐派僧 號晦庵 別號禪狀元 光狀元 閩州(福建)長樂人 姓李 十八歲出家受戒 曾謁圜悟克勤 黃檗景祥 高庵善悟諸師 於廣因大慧宗杲門下頓悟 竝嗣其法 禪狀元之號 卽由大慧所立 初於鼓山弘法 未幾 任泉州敎忠寺住持 歷十年 移住福州龜山 後因疾而歸返雲門庵 高宗紹興二十五年示寂 撰有晦庵光狀元和尙語要傳世 [普燈錄十八 聯燈會要十七]

少款; 意爲稍稍款洽 指交談漸投機

馬祖; 道一(709-788)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713-741)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769)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普請; 一禪林集衆作務曰普請 二但集衆云普請 此指二

竹篦; 禪林中師家指導學人之際 大抵皆手持此物 作爲點醒學人悟道之工具 又作竹篦子 其長約四十至五十公分 乃剖竹作無弦之弓形 手握處再捲藤塗漆 又於禪林中 師家或禪徒以針鋒相對 往來挨拶 參究禪機之際 師家或首座持竹篦以參禪問答 稱爲竹篦商量 [象器箋器物類]

劈脊; 對著脊背 劈 冲著 正對著

; 一呵叱 動詞 二呵斥聲 嚒喝聲 三咨語 此指三

遲回; 猶豫不定

一陽來復; 月令廣義十一月令曰 十一月一陽生 其卦復 復者反也 陽動于下以順上行之義 自十月純坤積體 始成一陽而來復 又自五月姤卦一陰始生 至此七反而一陽來復 [五家正宗贊助桀]

衲被蒙頭; 以衲被覆蓋頭上 衲被 補修縫綴所製成被子 蒙 覆蓋

打坐; 指跏趺而坐 使心入定 卽指坐禪 打 動作行爲之意

冷湫湫; 形容空寂淸凉之悟道境界 亦謂學人鏟除俗情妄念之際 猶待明見本來眞性

鏌鎁; 又作鏌邪 莫邪 古代之名劍名 莫邪乃吳(一說楚 或謂韓)之著名鑄劍匠干將之妻 夫妻二人爲協助吳王闔閭 遂鑄陰陽二劍 陽劍稱干將 陰劍稱莫邪 於禪林中 鏌鎁劍轉指自身本來具有之智慧 或師家自由自在接化學人之般若智見

碧落; 碧天也 落 籬也 說文 杝 落也 文選 張衡西京賦 揩枳藩 突棘落 李善注 落 亦籬也

 

나암수(懶菴需; 鼎需) 화상이 불심재(佛心才; 本才)에게 의지했다. ()가 대승(大乘; 대승사)에 거주하자 수()가 이미 수중(首衆; 首座)으로 괘패(挂牌)했다. 후에 학자에게 즉심즉불(卽心卽佛; 곧 마음이 곧 부처)의 인연(因緣)을 물었다. 때에 묘희(玅喜)가 양서(洋嶼)에서 암거(庵居; )했다. ()의 벗은 호()가 광장원(光狀元)이란 자였는데 수()에게 글을 주어 이르되 암주(菴主; 묘희)의 수단(手段)은 제방(諸方)과 다르니 가히 여기로 와서 소관(少款)하시게. ()가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이 계책(計策; )을 써() 스님을 반(; 食事)으로 맞이했다(). ()가 가서 다다라 문에 이르렀다(及門). 마침() 묘희가 개실(開室)한지라 수()도 대중을 따랐다. ()가 문왈(問曰) 중이 마조(馬祖)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조운(祖云)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다. 어떠한가(作麽生). ()가 하어(下語)했으나 희()가 꾸짖으며(詬之) 가로되 너의 견해가 이와 같으면서 감히 허망하게 사람의 스승 노릇을 하느냐. 북을 울리고 보청(普請)하여 그()가 평생에 득력(得力)한 바의 곳을 높이 걸고() 사해(邪解)라며 배휘(排撝; 물리치며 찢음)했다. ()가 눈물이 턱에 교차(交叉; )하며 감히 앙시(仰視)하지 못했다. ()를 묵계(默計)하여 가로되 나의 소득(所得)이 이미 배휘(排撝)되는 바니 서래(西來; 달마서래)하여 전하지 못하는 의지(意旨; )가 어찌 이와 같음에 그치겠는가. 드디어 제자지열(弟子之列)로 귀심(歸心)했다. 어느 날 희()가 문왈(問曰) 안으론 방출(放出)하지 않고 밖으론 방입(放入)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어떠한가. ()가 대답하려고 하는데(擬答) ()가 죽비(竹篦)를 집어 등에다(劈脊) 몇 번(數下; 量詞) 연타(連打)했다. ()가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가로되 화상(和尙), 이미 많았습니다(多了也). ()가 또 한 번(一下) 때렸다. ()가 작례(作禮)했다. ()가 웃으며 가로되 금일에야 비로소 너를 속이지 못할 줄 알았다. 드디어 게()로써 인가(印可; )하여 가로되 신심(身心)이 일여(一如)하고/ 신외(身外)에 나머지가 없다/ (), (; ) 할려(瞎驢)/ 정수(鼎需)에게 부여(付與)한다. 이로부터 이름이 총림을 진동(振動; )했다. 출세하여 천(; 泉州)의 연복(延福)에 주()했다가 서선(西禪)으로 옮겼다. 일찍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태허(太虛; 허공)에 괘검(挂劒)하여 써서() 오종(吾宗)을 나타내고() 자리에 기댄(據坐) 선위(禪威)이거늘 어떻게 근방(近傍; 곁으로 다가감)하겠는가. 설령(設令; ) 지회천전(地回天轉; 천지를 회전)하고 전권성비(電卷星飛; 번개를 걷고 별이 날다)하는 수단을 갖추었더라도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경적(勍敵; 强敵)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금(而今; 여금)에 휴구(休咎; 길흉. 福禍)를 분별할 이가 있지 않느냐, 나와서 상견(相見)하라. 조금이라도 지회(遲回)에 건너면 한 번 쳐서() 바로() 분쇄(粉碎)되게 하겠다. ()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또 지절(至節; 冬至나 혹 夏至)에 시중(示衆)해 이르되 25일 이전(已前)은 군음(羣陰)이 소복(消伏)하고 니룡(泥龍)이 문호(門戶; )를 닫는다(). 25일 이후(已後)는 일양이 내복(一陽來復)하여 철수(鐵樹)가 꽃을 피운다. 바로 25일에 당해선 진중(塵中)의 취객(醉客)이 기려기마(騎驢騎馬)하고 전가후항(前街後巷)에서 체상(遞相; 서로서로) 경하(慶賀)한다. 물외(物外)의 한인(閑人)납피로 머리를 덮고(衲被蒙頭) 위로(圍爐)하여 타좌(打坐)하나니 바람은 소소(蕭蕭; 바람이나 빗소리 따위가 쓸쓸한 모양)하고 비도 소소(蕭蕭)하고 차가와서 추추(冷湫湫; 차가와서 서늘한 모양)하거늘 누가 너희() 장선생(張先生)ㆍ이도사(李道士)ㆍ호달마(胡達磨)에 상관(相管; )하겠는가. 또 시중(示衆)해 이르되 막야(鏌鎁)를 가로 누르며(橫按) 의기(意氣)를 허장(虛張; 허세를 부리다)하고 벽락(碧落)을 천개(穿開)하여 도연(徒然; )히 정신(精神)을 허비(虛費; )한다. 직요(直饒; 가령) 신봉(神鋒)을 동()하지 않더라도 앉아 태평을 이루나니() 요순지군(堯舜之君)이 오히려 교화(敎化; )가 있다.

因緣; (1). 1()의 생()에 강력(强力)을 친여(親與)하는 것을 인()이라 하고 약력(弱力)을 소첨(疏添)하는 것을 연()이라 함. 예여(例如) 종자는 인이 되고 우로(雨露)와 농부 등은 연이 되어 이 인연이 화합하여 쌀이 생산됨. (2). 선가에선 기어(機語)나 혹은 시기응기(示機應機)의 행위동작(行爲動作) 등을 잡아서 인연이라 호칭함. 뜻이 공안(公案)과 같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光狀元; 미광(彌光; ?-1155)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는 회암이며 별호는 선장원(禪狀元)ㆍ광장원(光狀元)이니 민주(복건) 장락 사람이며 성은 이(). 18세에 출가하여 수계했고 일찍이 원오극근ㆍ황벽경상ㆍ고암선오 여러 선사를 참알했음. 광인에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문하에서 돈오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선장원(禪狀元)의 호는 곧 대혜로부터 세워진 것임. 처음에 고산에서 홍법하다가 얼마 안되어 천주 교충사(敎忠寺)의 주지에 임명되었고 10년이 지나 복주 귀산으로 이주했음. 후에 질병으로 인해 운문암으로 귀반(歸返)하였다가 고종 소흥 25년에 시적했음. 찬술(撰述)에 회암광장원화상어요가 있어 세상에 전함 [보등록18. 연등회요17].

少款; 뜻이 조금씩 관흡(款洽; 말이 친절하고 정성스러움)함이 됨. 교담(交談)하면서 점차 투기(投機)함을 가리킴.

馬祖; 도일(道一; 709-788)이니 당대승. 남악회양의 법사. 한주(사천 광한) 사람이며 속성은 마()니 세칭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 용모가 기이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 당화상(唐和尙; 곧 처적)에게 의지해 체염(剃染)하고 유주의 원율사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개원(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의 불적령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의 남강과 공공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 4(769) 종릉(강서 진현)의 개원사에 주석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 424일에 시적했음. 나이 80. 당헌종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했음. 그 파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의 홍양(弘揚)2()를 병칭함.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송고승전10. 경덕전등록6. 전법정종기. 오등회원3].

普請; 1. 선림에서 대중을 소집해 작무(作務)함을 가로되 보청임. 2. 다만 대중을 소집함을 일러 보청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竹篦; 선림 중에서 사가(師家)가 학인을 지도할 즈음에 대저(大抵; 대개) 모두 손에 이 물건을 쥐어서 학인의 오도(悟道)를 점성(點醒; 點檢하고 깨치게 함)하는 데 쓰는 공구(工具). 또 죽비자(竹篦子)로 지음. 그 길이는 약() 40에서 50에 이르며 대를 쪼개어 활줄이 없는 활 모양으로 만듦. 손잡이에 다시 등()을 감고 칠()을 바름. 또 선림 중에서 사가나 혹 선도(禪徒)가 침봉(針鋒)을 상대(相對)하여 애찰(挨拶)을 왕래하면서 선기(禪機)를 참구하는 즈음에 사가나 혹은 수좌가 죽비를 쥐고 참선하며 문답함을 죽비상량(竹篦商量)이라고 호칭함 [상기전기물류].

劈脊; 등에 대착(對著). ()은 충착(冲著; 찌르다). 정대착(正對著).

; 1. 가질(呵叱; 꾸짖음)이니 동사. 2. 꾸짖으며 물리치는 소리. 마할(嚒喝: 語氣詞)하는 소리. 3. 자어(咨語; 탄식하는 말). 여기에선 3을 가리킴.

遲回; 유예(猶豫)하며 정()하지 못함.

一陽來復; 월령광의(月令廣義) 11월령에 가로되 11월에 1()이 생기(生起)한다. 그 괘()는 복()이다. 복이란 것은 반()이다. 양이 아래에서 동하여 위를 따라 행함의 뜻이다. 10월 순곤(純坤)이 적체(積體)함으로부터 비로소 1양을 이루어 내복(來復)한다. 5월 구괘(姤卦) 1()이 처음 생기함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7()하여 1양이 내복한다 [오가정종찬조걸].

衲被蒙頭; 납피로 머리 위를 덮어씀임. 납피(衲被)는 보수하고 꿰매어서 제작해 이룬 바의 피자(被子)며 몽()은 부개(覆蓋; 덮어쓰다).

打坐; 가부하고 앉아서 마음으로 하여금 입정(入定)하게 함이니 곧 좌선을 가리킴. ()는 동작과 행위의 뜻.

冷湫湫; 공적(空寂)하고 청량한 오도의 경계를 형용함. 또 이르자면 학인이 속정(俗情)과 망념을 깎아 제거한 즈음에 오히려 본래의 진성(眞性)을 환히 보기를 기다림.

鏌鎁; 또 막야(鏌邪)ㆍ막야(莫邪)로 지음. 고대 명검의 이름. 막야(莫邪)는 곧 오(; 일설엔 , 혹은 이르기를 )의 저명한 주검장(鑄劍匠)인 간장(干將)의 처임. 부처(夫妻) 2인이 오왕 합려에게 협조하여 드디어 음양 2검을 주조했는데 양검(陽劍)은 명칭이 간장(干將)이었고 음검은 명칭이 막야(莫邪)였음. 선림 중에서 막야검은 전()하여 자신이 본래 갖추어 있는 지혜, 혹은 사가가 자유자재하게 학인을 접화(接化)하는 반야의 지견을 가리킴.

碧落; 푸른 하늘임. ()은 울타리임. 설문 이(; 울타리) ()이다. 문선. 장형의 서경부. 지번(枳藩; 탱자 울타리)을 문지르고 극락(棘落)에 충돌한다. 이선(李善) () () 또한 리(; 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