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상(叢林盛事卷上) 원극잠(圓極岑)

태화당 2026. 2. 1. 08:37

圓極岑和尙 台之仙居人 抱節孤高 近世罕及 久依雲居如和尙 在書司十七載 如遷寂 一錫回浙 依正堂辨道場 未幾 令董座元 出世霅之卞山 乃石林先生講之地 辨意具此一瓣香 爲拈出 而岑竟嗣雲居如 叢林多高之 後歷董大刹 然福緣蹭蹬 涉世多艱 岑終不以介意 平生施利 未甞經眼 後退常之華藏道場而終焉 有語錄二十卷行于世 侍郞曾公仲躬 爲序其首 岑有贊長蘆且菴 其贊云 夜半推出日輪 天明把住桂轂 拈將四部洲 放在一粒粟 奏無絃而非履霜之樂 唱胡歌而非白雪之曲 大冶煅絶鑛之金 痛鎚碎無瑕之玉 東湖赤梢鯉魚 生出金毛鐵犢

圓極岑; 彦岑 宋代楊岐派僧 字圓極 臺城(江蘇南京)人 依雲居法如領旨 住太平州隱靜院 [五燈會元二十 普燈錄二十一]

雲居如; 法如(1080-1146) 宋代楊岐派僧 丹丘(浙江臨海)胡氏 依護國瑞祝髮 登具 遍參浙右諸宗匠 晩至龍門 以平日所證白佛眼淸遠 遠曰 此皆學解 當求妙悟 命主香積 未幾 晨興開厨 忽大悟 遠可之 出住南康雲居寺 [普燈錄十六 五燈會元二十]

正堂辨; 同正堂辯 明辯 又作明辨 宋代楊岐派僧 字正堂 安吉(今屬浙江)兪氏 事報本蘊受具 參龍門佛眼淸遠得法 作頌古百首 繼住何山 衆數千指 又遷住道場寺 紹興(1131-1162)中寂 壽七十三 [五燈會元二十 續傳燈錄二十九 敎外別傳十]

座元; 又作首座 第一座 卽僧堂內座位之元首

; 卽易經 又稱周易 相傳是周文王姬昌所作 內容包括經和傳兩個部分 經主要是六十四卦和三百八十四爻 卦和爻各有說明 卽卦辭和爻辭 作爲占卜之用 周易沒有提出陰陽與太極等槪念 講陰陽與太極的是被道家與陰陽家所影響的易傳 傳包含解釋卦辭和爻辭的七種文辭共十篇 統稱十翼 [百度百科]

一瓣香; 又作一炷香 瓣者 瓜瓣之意 香之形狀似瓜瓣 故稱一瓣香 又以瓣爲片之意 故稱一瓣香

蹭蹬; 遭受挫折 不如意

桂轂; 從容錄第二十五則曰 桂轂乃月也

四部洲; 四大部洲 卽四大洲 又稱四洲 四天下 住須彌山四方鹹海之四大洲也 一南贍部洲 舊云南閻浮提 或從林立號 或以果立名 二東勝神洲 梵云東毘提訶 舊云東弗婆提 爲身形勝故 名爲勝身 三西牛貨洲 梵云西瞿陀尼 舊云西瞿耶尼 爲貿易牛故 名爲牛貨 四北瞿盧洲 舊云北鬱單越 譯曰勝處 於四洲中國土最勝 故名勝處 [西域記一 俱舍光記八] 사대부주(四大部洲)니 곧 사대주(四大洲).

白雪之曲; 祖庭事苑三 陽春白雪 古樂府曲名也 唐顯慶二年(657) 太常上言 禮記家語云 舜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是知琴操曲弄 皆合於歌 又張華博物志云 白雪 是大帝(黃帝的尊稱)使素女鼓五十絃瑟曲名 又楚大夫宋玉 嘗對楚襄王云 客有歌於郢中者 其始曰下俚巴人 國中屬而和者數千人 其爲陽歌薤露 國中屬而和者數百人 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數十人而已 引商刻羽 雜以流徵 國中屬而和者不過數人 是以唱彌高 其和彌寡也 是知白雪琴曲 本宜合歌 以其調高 人和遂寡 自宋玉之後 未有能和者 五年(660) 呂才造琴歌白雪等曲 製歌辭 編入樂府

 

원극잠(圓極岑; 彦岑) 화상은 태()의 선거(仙居) 사람이다. 포절(抱節; 節操를 굳게 지킴)하고 고고(孤高)했으니 근세(近世)에 미칠 이가 드물다(罕及). 오래 운거여(雲居如; 法如) 화상에게 의지했고 서사(書司; 書記)에 있은 지 17()였다. ()가 천적(遷寂; 逝世)하자 하나의 석장(錫杖; )으로 절(; 浙江)로 돌아가 정당변(正堂辨; 明辨)을 도량(道場; 道場寺)에서 의지했다. 오래지 않아 좌원(座元; 首座)을 주관(主管; )하게 했고 삽()의 변산(卞山)에서 출세했으니 곧() 석림선생(石林先生)이 역(; 周易)을 강설했던 땅이다. ()의 뜻에 이 일판향(一瓣香)을 갖추려고 했고 염출(拈出)하면서 잠()이 마침내 운거여(雲居如)를 이었다(). 총림에서 다분히 그()를 고상(高尙; )히 여겼다. 후에 대찰(大刹)을 겪으며 주관(主管; )했으나 그러나 복연(福緣)이 층등(蹭蹬; 여의치 못함)하여 섭세(涉世; 세상을 접촉함)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잠()이 마침내 개의(介意)치 않았다. 평생 시리(施利)하면서 일찍이 경안(經眼; 눈여겨 보다)하지 않았다. 후에 상(; 常州)의 화장도량(華藏道場)으로 퇴거하여 마쳤다. 어록 20권이 있어 세상에 행하나니 시랑(侍郞) 증공(曾公) 중궁(仲躬)이 그 첫머리()에 서()했다. 잠이 장로(長蘆; 장로사) 차암(且菴)을 찬()함이 있었으니 그 찬()에 이르되 야반(夜半)에 일륜(日輪; )을 퇴출(推出; 밀어내다)하고 천명(天明)에 계곡(桂轂; )을 파주(把住)했다. 사부주(四部洲)를 집어 가지고(拈將) 한 알의 좁쌀에 놓아두었다(放在). 무현(無絃; 無絃琴)을 연주(演奏; )하니 이상(履霜; 琴曲의 이름)의 음악이 아니며 호가(胡歌)를 창()하니 백설의 곡(白雪之曲)이 아니다. 대야(大冶; 큰 대장간)에서 절광(絶鑛; 뛰어난 鑛石)의 금()을 불리고(; 저본에 로 지었음) 통추(痛鎚)로 무하(無瑕)의 옥을 부쉈다. 동호(東湖)의 적초(赤梢; 붉은 꼬리) 이어(鯉魚)가 금모(金毛)의 철독(鐵犢)을 생출(生出)했다.

圓極岑; 언잠(彦岑)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원극(圓極)이며 대성(강소 남경) 사람이니 운거법여에게 의지하여 영지(領旨)했고 태평주 은정원에 주()했음 [오등회원20. 보등록21].

雲居如; 법여(法如; 1080-1146)니 송대 양기파승. 단구(절강 임해) 호씨. 호국서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았고 등구(登具)하고는 절우(浙右)의 여러 종장을 두루 참방했음. 만년에 용문에 이르러 평일에 증득한 바를 불안청원(佛眼淸遠)에게 고백하자 청원이 가로되 이것은 모두 배워서 이해한 것이니 마땅히 묘오(妙悟)를 구해야 한다. 명하여 향적(香積)을 주관하게 했음. 얼마 되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 주고(厨庫)를 열다가 홀연히 대오했고 청원이 이를 인가했음. 출세해 남강 운거사에 주()했음 [보등록16. 오등회원20].

正堂辨; 정당변(正堂辯)과 같음. 명변(明辯)이니 또 명변(明辨)으로 지음. 송대 양기파승. 자는 정당(正堂)이며 안길(지금 절강에 속함) 유씨. 보본온을 사사하고 수구(受具)했으며 용문 불안청원(佛眼淸遠)을 참해 득법했음. 송고 백수(百首)를 지었음. 하산을 승계해 거주했는데 대중의 수가 천지(千指)였음. 또 도량사로 옮겨 주()했음. 소흥(1131-1162) 중에 입적했으며 나이는 73 [오등회원20. 속전등록29. 교외별전10].

座元; 또 수좌ㆍ제1좌로 지음. 곧 승당 내 좌위(座位)의 원수(元首).

; 곧 역경(易經)이니 또 명칭이 주역(周易). 서로 전하기를 이는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이 지은 것이라 함. 내용은 경()과 전() 두 개 부분을 포괄함. 경의 주요(主要)는 이 64()384()며 괘와 효에 각기 설명이 있으니 곧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며 점복(占卜)의 용도로 작성했음. 주역은 음양(陰陽)과 태극(太極) 등의 개념을 제출함이 있지 않음. 음양과 태극을 강설하는 것은 이는 도가(道家)와 음양가(陰陽家)의 처소에서 영향을 입은 역전(易傳). ()은 괘사와 효사를 해석한 7종의 문사(文辭)를 포함하여 공히 10()이니 통칭이 십익(十翼)[백도백과].

一瓣香; 또 일주향(一炷香)으로 지음. (; 오이의 씨)이란 것은 과판(瓜瓣; 오이의 씨)의 뜻. 향의 형상이 과판과 같은지라 고로 호칭이 일판향임.

蹭蹬; 좌절(挫折)을 조수(遭受). 여의치 못함.

桂轂; 종용록 제25칙에 가로되 계곡(桂轂)은 곧 달이다.

四部洲; 사대부주(四大部洲)니 곧 사대주(四大洲). 또 명칭이 4주ㆍ4천하니 수미산 사방의 함해(鹹海)에 거주하는 4대주임. 1. 남섬부주(南贍部洲; Jambu-dvīpa) 구역에 이르되 남염부제(南閻浮提)니 혹 숲을 좇아 호를 세웠고 혹 과실로 이름을 세웠음. 2. 동승신주(東勝神洲; Pūrva- videha) 범어로 이르되 동비제하(東毘提訶; Videha)며 구역에 이르되 동불바제(東弗婆提)니 신형(身形)이 수승한 연고로 이름이 승신(勝身)이 됨. 3. 서우화주(西牛貨洲; Apara-godānīya) 범어로 이르되 서구다니(西瞿陀尼; godānīya)며 구역에 이르되 서구야니(西瞿耶尼)니 소를 무역하는 연고로 이름이 우화(牛貨)가 됨. 4. 북구로주(北瞿盧洲; Uttara-kuru) 구역에 이르되 북울단월(北鬱單越)이며 번역해 가로되 승처(勝處)4주 중에 국토가 가장 수승한지라 고로 이름이 승처임 [서역기1. 구사광기8].

白雪之曲; 조정사원3. 양춘백설(陽春白雪) 고악부(古樂府)의 곡명(曲名). 당 현경 2(657) 태상(太常)이 상주(上奏)해 말했다. 예기(禮記; 19 樂記)와 가어(家語; 孔子家語)에 이르기를 순()5()의 거문고를 탄주해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했다 했습니다. 이로 알지니 거문고 가락(琴操)과 곡()의 희롱이 다 가()에 합당함. 또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이르되 백설(白雪)은 이 대제(大帝; 黃帝의 존칭)가 소녀(素女)로 하여금 50()의 큰 거문고를 두드리게 한 곡명이다. 또 초()의 대부(大夫) 송옥(宋玉)이 일찍이 초양왕(楚襄王)을 대해 이르되 객이 영중(郢中; 의 수도)에서 노래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처음에 가로되 하리파인(下俚巴人)이라 했습니다. 국중(國中)에 따라서(은 이을 촉) 화응하는 자가 수천 인이었으며 그가 양가(陽歌)와 해로(薤露; 曲名. 는 부추 해. 염교 해)를 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백 인이었으며 그가 양춘(陽春; 曲名)과 백설(白雪; 曲名)을 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십 인이었을 뿐입니다. (; 五音 중의 하나)을 당겨 우(; 五音 중의 하나)에 새기고 섞어 치(; 五音 중의 하나)에 유입(流入)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몇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 까닭으로 창()이 더욱 높아지면 그 화응이 더욱 적습니다. 이로 알지니 백설(白雪)의 금곡(琴曲)은 본래 의당 가()에 알맞으며 그 곡조가 높기 때문에 사람이 화응함이 적음. 송옥(宋玉)의 후로부터 능히 화응하는 자가 있지 않았음. 5(660) 여재(呂才)가 금가(琴歌)인 백설(白雪) 등의 곡을 짓고 가사를 제작해 악부(樂府)에 편입했음.